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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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단했지만 활력이 된 설악산 빙벽 등반 교육
    고단했지만 활력이 된 설악산 빙벽 등반 교육 고영민 / KBS 보도영상팀   지난 1월 23일부터 7일 간 설악산 일대에서 고산지대 취재능력 향상을 위한 위탁연수를 받았다. 외부 위탁연수여서 KBS 선후배 동료들도 있었지만, 사회에서 각자 다른 일들을 하다가 모인 사람들까지 모두 28명이었다. 위탁 교육을 한 단체는 “한국등산학교” 로 1974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등산학교로 정규반, 암벽반, 동계반의 크게 세 가지 교육과정을 통해 약 1만 명의 산악인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등산학교다. 그 명성에 맞게 정말 훈련은 혹독하게 이루어졌다. 매일 새벽 5시30분 기상하여 6시부터 40분간 비몽사몽간 3km 구보와 팔 벌려 뛰기 300회, 팔굽혀펴기 30회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빙벽 등반 야간 실내 이론교육 등 일주일간 조출하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   빙벽 등반을 위해 아이젠, 픽켈, 아이스바일, 8자하강기, 카라비너, 스패츠 등 생소한 단어들의 장비들과 고글, 기능성 내의, 빙벽화 등의 일주일간 필요한 개인 용품을 가방 한 가득 담았다. 그리고 23일 점심 무렵 회사 본관 앞에 모여 이번 연수를 같이 받기로 되어있던 선후배 6명과 회사버스를 탔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등산도 가끔 했었지만 난생 처음 경험해 보는 빙벽 등반에 대한 설렘과 긴장감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4시간을 달려 드디어 설악산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도착해 입소식을 마치고 빙벽 등반에 필요한 장비들을 착용하니 몸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본격적인 훈련(연수였지만 나는 훈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의 첫날, 평소 같으면 아직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인 새벽 5시30분 알람이 울리고 씻는 것도 귀찮아 머리엔 모자를 옷은 설악산의 새벽 찬 바람을 피하기 위한 두꺼운 것으로 입고 운동장에 집합했다. 가벼운 스트레칭 후 3km 구보, ‘이제 끝이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강사의 한마디. “팔 벌려 뛰기 100회!” 여기저기서 “아~” 하는 신음 소리가 들려오면서 힘든 일주일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훈련 첫날은 실내 이론 교육과 아이젠 착용 후 걷고 하강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가벼운 몸 풀기 정도의 교육이었다. 둘째 날 드디어 실전 훈련. 30m의 비룡폭포 빙벽 등반을 시작했다. 안전벨트와 빙벽용 아이젠를 착용하고 양손에 아이스바일을 들고 첫 발을 내디뎠다. 강사들이 시범을 보일 때는 간단해 보였지만 직접 등반을 시작하니 너무 힘들었다. 아이스바일도 얼음에서 빠질 것 같아 양손에 계속 힘이 들어가 있게 되고 아이젠도 얼음에서 미끄러질 것 같아서 얼음을 계속 차게 됐다. 그래서 한 번 타고 내려오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발가락에도 통증이 왔다. 그렇게 30m 빙벽을 두 번 오르고 온 몸이 녹초가 되어서 숙소에 복귀 한 후 신발을 벗어보니 왼쪽 발 엄지발톱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다음 날 아침 운동이 걱정됐다.   또 다시 아침 5시 30분 알람이 울리고 기상, 피 멍이 든 엄지발가락에 통증을 조금 이라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바람에 반창고를 둘둘 감고 아침에 운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통증은 덜 했다. 이날 빙벽은 미시령터널 건너기 전에 있는 매바위라는 곳이었는데 높이는 전날과 비슷했다. 여전히 이날도 팔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아이젠 킥은 여전했다. 힘겨운 8시간의 훈련을 마치고 복귀했는데 어제 피멍이 들었던 발톱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졸업 등반은 장수대쪽에 있는 60m 짜리 실폭 등반이었다. 실폭이란 말 그대로 폭이 가느다란 폭포. 아무리 연습동안 발가락에 피가 나고 했어도 졸업 등반을 해내지 못하면 수료증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야말로 4일 간의 고생이 허사가 되는 상황이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 명씩 등반하던 연습 등반과는 달리 졸업등반은 세 명씩 동시에 등반을 해야 했다. 앞 등반자가 30m 정도 등반을 하면 또 다른 사람이 등반을 하기 때문에 앞 등반자가 떨어뜨리는 얼음덩어리에 뒷사람이 부상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말이 60m지 높이로 따지면 건물 20층 정도의 높이였다. 그렇게 등반을 하다가 얼음덩어리에 뒤통수를 한 대 맞았는데 충격이 상당했다. 그래도 자진해 회사의 지원을 받아서 왔는데 수료증을 받지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어 마음을 다잡고 등반을 했다. 출발은 나름 좋았다. 바일도 아이젠도 나름 얼음에 잘 박히는 듯 했다. 그런데 절반 정도 지나가는 순간부터 팔도 아파오고 손가락이 얼어오는지 바일을 잡는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바일과 아이젠이 얼음에서 빠지면서 땅 밑으로 꺼졌고 30m 높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강사가 줄을 풀어주고 밑으로 내려줬다면 내려갔을 텐데 내려 주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내려올 수 있는 방법은 정상에 올라간 후 직접 하강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시 얼음에 아이젠과 바일을 박고 손을 녹이기 위해서 허벅지에 손을 비비고 팔 근육이 풀릴 때까지 한 10분을 공중에 매달려 있은 후에 다시 빙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등반을 시작한지 얼마가 지난지도 모르겠지만 드디어 60m 빙벽의 정상을 밟았다. 빙벽을 오르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정상에 서서 저 멀리 눈 덮인 설악산 정상을 바라보니 속이 시원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빙벽 등반을 해냈다는 가슴 벅찬 보람도 있었다. 6박 7일간의 고산지대 취재능력 향상 과정 빙벽 등반을 통해 언제나 새로운 분야와의 접촉은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10-02-22
  • 지옥보다 더 끔찍했던 아이티 참사
    지옥보다 더 끔찍했던 아이티 참사 신봉승 / KBS 보도영상팀   아이티는 가는 길도 멀었다. 서울에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까지 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네 번 갈아탔고, 여섯 번의 기내식을 먹어야 했으며 도미니카공화국 공항에서 육로로 10시간을 달려서야 겨우 도착할 수가 있었다. 75시간의 긴 여정으로 온 몸이 지친 상태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지진 발생 5일차에 현장에 겨우 도착한 취재진은 진도 7.3 지진의 참상을 눈이 아닌 코로 먼저 느낄 수가 있었다. 콧속을 밀고 들어오는 비릿한 냄새, 1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실감하는 데는 후각 하나면 충분했다. 텐트를 준비하지 못해 프레스룸을 숙소 삼아 잠을 자던 첫날 밤. 아이티 모기들은 처음 맛보는 동양인 피가 그토록 맛있었는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양말 속으로 바지 밑단을 집어넣어도 보고 수건으로 얼굴을 덮어 신체노출을 최소화해도 덤벼드는 모기들은 피해갈 수 없다. 결국은 프레스룸을 뛰쳐나와 119구조대가 건네준 모기장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지만 모기장과 맞닿는 부분은 여지없이 아이티 모기들에게 헌혈보시를 해야만 했다. 낮에는 무질서와의 싸움이었다. 길거리 한가운데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시신, 그리고 아무도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포르토프랭스에서 서울에서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취재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UN군이나 경찰이 보이지 않는 변두리의 피해지역은 안전을 위해 섣불리 들어갈 수도 없었다. 외국 대사관, UN군사령부, 외국기업체 주위에는 구호품과 일자리를 얻고 이민을 하려는 난민들이 구름떼처럼 모여서 그들을 달래가면서 취재를 했다. 아이티는 이번 출장팀이 꼽은 최악의 해외출장지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출장을 함께 다녀왔던 윤양균, 송상엽 선배 두 사람 모두 오지 험지 출장이라 하면 남부럽지 않게(?) 다녀봤다고 자부 했지만 아이티를 최악으로 꼽은 데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편안하게 들어가서 잘 숙소가 없어 맨 바닥에 라면박스를 깔고 노숙을 했다. 세수할 물은커녕 마실 물도 부족해서 시내에 취재를 나갈 때면 UN군이 이재민들에게 나눠주는 생수를 챙겨 와야 했다. 우리도 난민이니까. ‘취재난민’ 통상 좋은 그림들만 모아모아 편집을 하는 기존의 편집 룰은 아이티에서만큼은 예외였다. 넘쳐나는 시체들과 처참함 장면들은 골라서 빼냈다. 아무리 기자의 본분이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뷰파인더로 보기 힘든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그렇게 아이티에서의 악몽 같았던 일주일은 지나갔다. 아이티를 떠나 도미니카에서 만난 황상무 선배는 끔찍했던 일주일을 “이생에서 죄를 많이 지어서 지옥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아마도 지진 후 아이티에서의 일주일간이 지옥이 아닌가 싶다”고 회고했다.
    2010-02-22
  • “백야의 잠못드는 밤 코펜하겐”
    42박 43일간의 세계일주취재,참으로 가슴 벅찬 일정이었다. 3대륙 12개국을 돌아다닌다니 처음엔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해외취재에 이골이 난 몸이라 자신을 했건만 그 기대는 첫 날 런던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급체! 첫날 과식을 한 탓인지 하루종일 어지럽고 식은 땀을 흘려야 했다. 어떻게 촬영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게 흐려진 가운데 우리는 이미 벨기에를 치고 덴마크에 와있었다. 또 바뀐 시차속에 몸을 적응하려하니 해가 지지 않는다. 새벽1시가 돼서야 해가 지더니 새벽4시에 해가 뜬다. 잠도 못자고 쳇기도 가시지 않은채 새벽에 뜨는 해를 맞이해야만 했다. 42박43일간의 세계일주취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지는 라인강에서 물끄러미 숭어떼를 발견했다. 매운탕이 그리웠다. 선배가 매운탕사진을 휴대폰으로 보내왔다. 눈물이 났다. 매일 바뀌는 잠자리와 음식,이틀 단위로 바뀌는 시차. 유럽에서 조금 적응하려니 이번엔 대서양을 건너 플로리다에 와 있다. 또 한번 모든게 뒤집혔다. 이번에는 혹독한 더위와 싸워야 했다. 피부는 벌써 원주민 수준으로 타버렸고 체력은 바닥을 내보였다. 된장찌개가 그리웠다. 미국에서 끝내 된장찌개를 먹지 못하고 우리는 일본,중국,말레이시아를 치고 빠져야 했다. 더위를 먹어서 파인애플을 소금에 찍어 먹은 기억외에는 별로 기억나는게 없다. 편집을 한참하는데 편집실밖에는 낙엽이 떨어졌다. 그렇게 그렇게 다큐3부를 방송하고 나니 12월겨울의 중턱에 와 있다.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백야의 코펜하겐도 라인강의 숭어떼도 힘들었던 2009년의 추억속에 묻혀버렸다.
    2010-01-13
  • 세계 최초 지상파 풀 HD 3D 방송 계획
    미디어 환경의 급진적인 변화,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작업 반드시 선행돼야 영화 <아바타>의 인기는 시청자에게 3D 영상이 친근하게 접근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쇼 2010’에서 선보여진 3D 신기술들은 미디어환경의 급변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정부는 올해 3D 콘텐츠에 대한 예산으로 200억여 원을 책정했다. 그리고 지난 12월29일에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3D TV 실험방송 추진단'을 출범시켰으며, 국내 3D 방송 촉진을 위한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10월에는 풀 HD급 지상파 3D TV 실험방송을 실시해, 3차원 영상의 방송을 조기에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들은 세계의 3D 시장을 선점하고 3D 미디어환경을 조기에 정착시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정부의 3D 방송 계획이 국민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점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3D? 영상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현실 재현’ 효과를 내는 것 몇몇 광고와 만화 속에서 우스개 차원으로 연출된 ‘사람이 TV를 뚫고 나오는 것’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싶지만, 2차원이 아닌 3차원으로 영상을 접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쉽게 말하자면 TV에서 ‘사람이 뚫고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3D영상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3차원 영상은 한 대 이상의 카메라를 통해 동시간대에 다양한 시점에서 촬영된 영상들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물체를 3차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물체를 바라볼 때 오른쪽 눈과 왼쪽 눈으로 들어오는 신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쪽 눈으로 들어가는 영상신호가 다르기 때문에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를 활용해 편광안경을 이용하거나, 디스플레이 되는 장치에 렌즈를 부착함으로써 각 눈으로 들어가는 영상이 다르게 만드는 방법 등이 연구되고 있다. 풀 HD 3D환경으로 가는 LCD와 카메라의 진화 지난 12월 3일 LG 디스플레이는 세계 최초로 ‘셔터안경’식의 풀 HD 3D LCD를 양산 출시했다. 또한 파나소닉은 업무용으로서 세계 최초로 양안식 풀 HD 3D카메라를 발표해 올해 가을부터 발매할 예정이다. 이러한 미디어 장비 기술의 혁신적 진보는 정부로 하여금 3D 시장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LG 디스플레이에서 발표한 LCD는 현재 상용화 된 HD급 3D 디스플레이보다 두 배 이상 화질이 선명하며, HD급 3D LCD 및 풀 HD급 2D LCD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영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한다. 파나소닉에서 발표한 카메라의 경우 하나의 카메라에 두 개의 렌즈, 카메라 헤드, 메모리 카드가 있다. 종래의 3D카메라는 좌우의 눈용으로 영상을 촬영하기 때문에, 2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두 개의 렌즈를 통해 광축을 인간의 눈의 간격인 6.5cm분 만큼 떼어놓아 설치해 촬영했다. 그러나 카메라가 클 때 간격을 조정할 수 없기도 했고, 이동할 때 엇갈림이 생기기도 했다. 단계적으로 3D 영상 제작의 어려움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이러한 LCD의 지속적인 기술력의 향상은 현실과 가까운 영상을 구현할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방통위는 올해 하반기 풀 HD급 3D 방송을 지상파, 케이블, 위성에서 실험 송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 밝혔다. 더불어 오는 11월에 열릴 예정인 G20 정상회의 때 이를 시연하고, 내년과 내 후년 각각 열리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여수세계박람회도 3D TV로 중계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사를 통해 정부의 입장을 ‘통보’마냥 들은 이런 계획은 앞으로 겨우 아홉 달 남은 일이다. 3D 산업, 국민 고려하지 않는 ‘아름다운’ 신 성장동력?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주도해온 한국의 3D 기술은 아직까지 서구나 일본과 비교하면 한 발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올해 세계 최초로 지상파 TV를 통해 풀 HD 3D 콘텐츠를 송출할 전망이다. 일본의 3D 방송의 경우 위성방송이며 풀 HD화질이 아니다. 또한 일반 TV를 보유한 가정에서는 겹쳐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지상파로의 송출을 머뭇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서구나 일본에 비해 뒤쳐진 3D 기술을 가진 한국이 세계 최초로 풀 HD 3D 콘텐츠를 송출하겠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3D 방송시장 선점과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깔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사업 추진에 있어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이유, 즉 일반 TV를 가진 가정에서는 겹쳐진 화면을 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충분히 감안해야만 한다. 지상파는 국민의 TV 시청권까지 고려한 공익에 근거한 방송을 제작하고 송출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정부와 방통위, 문화관광부의 계획 아래서 국민들의 동의 없이 지상파 실험방송을 실시하고, 내년과 내후년의 몇몇 행사를 3D로 중계하겠다는 야망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방통위 전파방송관리과 담당 사무관은 “3D 콘텐츠를 송출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3D 시험방송은 국민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동의를 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신 성장동력의 ‘국익’이라는 수식어로 정부의 일방적인 입장의 표출함으로써 국민들의 TV 시청권을  유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것은 국민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기만해버린 ‘독선’이다. 물론 앞으로 엄청난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나, 정부와 방통위의 이러한 계획들이 세계 3D TV 시장 선점의 기반 마련이라는 의도에서 비롯된 ‘조급증’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기술의 경쟁적 선진화라는 정부의 욕망에, 시청자가 고려되지 않고 단순히 휘둘려지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황혜정 기자 hjnorza@gmail.com ※ <미디어아이> 제71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38
    2010-01-13
  • ‘원소스 멀티유즈’ 위한 디지털 영상아카이브 두 번째
    ‘원소스 멀티유즈’ 위한 디지털 영상아카이브 - 프랑스 국립시청각연구소(INA) 두 번째 ▷ 이어서 우선 프랑스 국립시청각연구소(이하 INA)는 영화, 방송, 광고 등 영상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제작 소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영상 및 음원 자료를 제공한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관련 자료가 필요하면, 촬영기자나 PD, 영화감독들이 파리에 위치한 INA센터에 해당 자료가 작업에 필요하다는 공문을 제출하고, 센터에 직접 가서 그것을 열람 및 활용에 관한 허가를 받아 직접 데크에 앉아 열람`복사 작업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오면서 파일 형태로 온라인 열람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필요한 경우 작업에 필요한 영상 및 음원자료가 있는 타임코드를 찾아 구매 주문을 할 수 있다. 2004년부터는 온라인 열람 등이 가능한 사이트(www.inamediapro.com)가 개설되어, 이곳에서 국내외 영상업계 종사자들이 필요한 영상 아카이브의 검색과 필요한 프로그램의 전체 파일 혹은 일부 판매 주문 등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방송 관련 종사자로서의 회원가입 등 적절한 온라인 등록 절차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아카이브에 보관된 영상자료를 재활용하여 만든 프로그램은 방송사를 통해 방영되고, 방영된 프로그램은 다시 INA 레코딩 로봇에 의해 녹화되어 디지타이징, 보관되고, 이를 다시 재활용할 수 있게 "inamediapro"에 업데이트한다. 또한, INA는 프로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보관된 영상자료를 공개하는  "영상 민주화" 프로젝트를 2006년부터 착수해오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www.ina.fr라는 사이트를 통해 약 10만 여 TV/라디오 방영물들이 공개되어, 온라인 열람을 할 수 있고 필요하면 파일 형태로 구입할 수 있다. "inamediapro"에 비하면 양적 질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영상자료가 필요한데 구하기 힘든 경우 이곳에서 찾을 수 있어, 영상 아마추어들이나 관련 연구자들이 주로 찾는다. 또한, INA에서 보관된 영상자료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제작한 테마별 CD, DVD컬렉션 역시 대중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INA의 영상`음원자료들은 학계의 소중한 연구 자료로 활용된다. INA 영상자료의 열람센터는 프랑스국립도서관 내부에 위치해 있고, 이곳에서는 영상자료가 필요한 연구자들이 자율적으로 자료검색과 열람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Hyperbase", "Mediacorpus"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영화, TV`라디오 방송물, 광고, 연극`뮤지컬 공연 촬영본 등을 프로그램명과 제작정보, 테마, 장르별로 검색할 수 있고 ▲전체`성별`나이별 시청률 분포 및 시장점유율 등의 자료도 검색할 수 있으며 ▲해당 프로그램의 보도자료, 제작자 관련자료, 방송사에서 제출한 관련 보고서도 열람할 수 있다. 검색한 자료들은 INA 중앙하드디스크 서버에 연결하여 온라인 열람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DVD로 보관된 자료를 열람할 수도 있다. 이런 영상자료검색`열람 시스템을 통해 INA는 각 학계(인문과학, 사회과학, 예술학 등)의 학생, 연구원, 교수들의 영상자료를 활용한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주제별로 관련된 학회 등을 주최하기도 한다. INA의 이러한 연구 활동 지원에는 ▲매일같이 방영되는 각종 프로그램이 단지 오락이나 교양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우리 시대 중요한 기록으로서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기억을 담아내고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 주요 텍스트로서의 기능을 하기에 끊임없이 학술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뒷받침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활용되는 각종 TV`라디오 방영분들은 그 저작권 또한 엄격하게 보호되고 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방송 이외에도 각종 문화예술 분야에서 저작권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이 강한 나라이고, 따라서 이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법안 마련의 역사도 매우 깊다. 방송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INA가 설립되어 아카이브 구축이 시작된 시점부터 방송사 관계자 및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컨텐츠 저작권 및 소유권 보호를 위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되어왔다. 현재는 문화재로서의 방송영상물을 국가적으로 보존하고, 전문가 및 일반인들의 자료 활용 과정에서 불법적 무단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이른 상태이다.   HD뉴스 시대와 함께, "국민의 눈과 귀" 역할을 수행하는 촬영기자의 보도영상들은 매일같이 뉴스를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게 하지만, 그날의 뉴스가 끝나고 나면 차차 잊혀 진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사관(史官)으로서 날마다 현장에서 그날의 주요 사건`사고를 촬영한 취재원본과 이를 활용해 편집된 보도영상의 역사적 가치는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또 취재한 모든 영상들을 고스란히 파일로 저장해 놓는다고 "원소스 멀티유즈"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영상이 사회문화사적인 차원에서 중요한지 그 보존가치를 판단하고 영상자료를 적절한 조건하에 보관하고 이를 재활용하도록 주도하는 역할, 이른바 "영상아카이브관리사"의 기능을 매일같이 영상을 다루는 촬영기자가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INA와 같이 국가차원에서 영상문화유산을 소중히 보존`관리하는 디지털영상아카이브 관리시스템과 영상저작권 보호 등의 관련 법안이 우리 실정에 맞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최효진/프랑스 통신원 ninonchoi@msn.com ※ <미디어아이> 제71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38
    2010-01-13
  • 3D 시대는 오는가? CES쇼를 통해본 3D시대
    3D 시대는 오는가? CES쇼를 통해본 3D시대 최근 아바타란 영화가 우리나라의 외화 흥행역사를 쓰고 있다고 해서 화제이다. 그 중 3D로 상영되는 영화관의 경우엔 일반 2D 영화보다 비싼데도(12000원) 불구하고 연일 매진을 기록 중이다. 아바타는 3D로 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화면에서 화살이 튀어나오고 빛이 날아 다니는 등 아바타의 신기록 행진엔 3D란 요소가 크게 작용을 하고 있다. 이런 아바타의 흥행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의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반드시 3D를 동반해야 흥행한다는 것을 제작자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렇게 3D란 요소는 새로운 유행이자 흥행코드이다. 그 3D를 안방 극장에도 끌어들이고자 하는 것이 이번 2010 라스베가스 CES쇼의 화두였다. 당연히 삼성 LG SONY등 주요 TV 제작 업체는 3D를 지원하는 TV를 내놓았다. 다들 서로 다른 장점이 있다고 광고했지만 모두 편광안경을 이용한 3D방식으로 3D를 보기 위해서는 특수 안경을 써야 하는 불편이 있다. 만약 안경을 쓰지 않으면 초점이 맞지 않고 색이 번진 것 같은 거북한 화면을 보게 된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2010년의 TV시장은 3D TV로 정해졌다. 끊임없이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업체와 끊임없이 새로운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하는 TV업체의 이해가 맞은 것이 바로 3D TV이다. 그럼 CES는 어떤 전시회일까? 미국가전협회가 주최하는 세계최대의 전자제품전시회로 CES는 그 해 전자제품의 유행 코드를 세계에 알리는 전시회이다. 한해 동안 팔아야 할 제품을 선보인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전자 업체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수많은 언론사와 바이어들이 몰려들어 전시장은 발디딜틈 없이 북적인다. 또한 단순히 신제품 전시만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삼성 LG등 한국업체들도 많은 돈을 투자해 부스를 꾸미고 유명인을 동원해 자신들의 제품 홍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현지에서 놀랐던 점은 한국업체들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었다. 전시장과는 별도로 각 업체마다 컨퍼런스를 개최하는데 한국업체의 컨퍼런스에는 시작 전부터 줄을 길게 늘어섰고 들어갈 자리도 없을 만큼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두려움도 느꼈다. 한국을 따라오고자 하는 후발 업체들의 시선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2010 CES를 통해 한국업체들도 본격적으로 3D 시장에 참전한다는 선전포고를 하였다. 하지만 3D즉 입체영화는 과거에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좌우색이 틀린 입체 안경을 쓰고 악당의 무찌르던 만화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미사일이 눈앞으로 날아오는데 잡히나 보려고 허공에 손짓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입체영화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는 2D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터미네이터와 타이타닉을 생각해보자 2D로도 충분한 감동과 현란한 화면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비싼 3D에 투자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제작비를 벌 수가 있었다. 물론 기술도 발달하였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훨씬 쉽고 눈의 피로도 덜하고 선명한 3D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아바타 흥행을 계기로 3D는 극장뿐 아니라 거실 TV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이미 사람들은 3D에 눈이 길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럼 앞으로 3D는 TV가 중요할까? 컨텐츠가 중요할까? 사실 TV보다는 컨텐츠가 중요하다. 최근엔 영화파일도 3D 소스로 다운 받을 수 있고 영화관에서 쓰는 고가의 편광안경이 아닌 1000원 내외의 입체안경을 가지고도 충분히 입체영상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론 우리나라의 TV업체들도 단순히 3D TV만을 홍보할 것이 아니라 컨텐츠 업체와 제휴하여 끊임없이 3D 컨텐츠를 확보해 가는 것이 진정한 3D TV의 승자가 될 것이다. 정민욱 / KBS 영상취재국 ※ <미디어아이> 제71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38
    2010-01-13
  • 폭설과의 사투, 72시간...
    폭설과의 사투, 72시간... # 반갑다, 눈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산업수도 울산은 겨울에도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도시이다. 변변한 패딩조차 없던 내게, 눈이라는 존재는 신기하고 반가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번 1월 4일에 내린  25.8cm의 기록적인 폭설은 카메라기자에게 눈(雪)이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 1일차, 이불을 거푸집 삼아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있는 월요일 새벽, 핸드폰이 울렸다. 눈이 많이 내리고 있으니 출근을 서둘러달라는 선배의 다급한 전화였다.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보니 세상은 온통 눈 천지였고, 뻥튀기같은 함박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회사로 향하는 길은 이미 10cm정도의 눈이 신발을 집어삼킬 기세로 쌓여 있었다. 장비를 챙겨 나간 곳은 회사와 멀지 않은 목동 일대 이면도로였다. 미처 제설이 되지 못한 골목길에서 낙상이나 차량사고를 커버하기로 했다. 가파른 골목길 아래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길 1시간 째, 사람들의 통행은 많았지만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손발은 얼고 온몸에 눈이 쌓여 내 모습은 마치 눈사람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출근길 스케치를 위해 간선도로로 나갔다. 제설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나온 차량들이 미끄러지고 느림보 걸음을 하면서 왕복 6차선 도로는 주차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여느 강설 때처럼 눈이 내리다 그칠 것으로 생각한 시민들이 자가용 차량을 이용해 출근하면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 2일차, 봉천동 대량 낙상. 6시 30분, 비장한 각오로 회사를 나섰다. 전날 찍지 못한 그림을 반드시 찍으리라 다짐하고 캡이 지시한 목동일대가 아닌 봉천동으로 향했다. 최준식 선배가 찍은 자동차 미끄러지는 모습, 그 곳이 바로 봉천동이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통행이 늘어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발걸음을 따라가다보니 넘어지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소지품을 들고 오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는 중년 남성,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와서 넘어지는 젊은 여성 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빙판길에서는 약자였다. 발길이 뜸해져 버스정류장 근처로 장소를 옮겼다. 인도 저편에서 사람들이 넘어지는 모습이 보이자 달려가 얼른 자리를 잡는다. 이럴 때는 꼭 굶주린 야수같다. 그늘진 상가 앞 인도, 미끄러울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행인들이 그대로 넘어진다. 어떤 할머니는 얼굴이 땅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뉴스를 보면서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일이지만 낙상을 당한 당사자에게는 아픔이며 수치일 수 있다. 오전 내내 봉천동 일대에서만 8명의 낙상자를 촬영했다. 눈이 오면 가장 먼저 가야할 곳이 바로 봉천동임을 이번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 3일차, 지하철 No, 지옥철 Yes. 눈이 그친지 이틀이 지났지만, 계속된 강추위에 눈은 녹지 않고 미끄러운 도로를 피해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로 몰렸다. 그런데 그 눈이 지하철 출입문에 들어가 얼면서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 사고 등이 늘어났다. 문제는 영상취재였다. 사고 상황을 알고 현장을 가더라도 이미 상황이 종료돼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일단 구로역에서 뻗치기를 시도했다. 출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계속된 연착으로 탑승구는 만원이었다. 인터뷰를 시도하자 시민들의 반응은 분노에 가까웠다. 취재도중 만난 서울메트로 노조원은 이 사태가 정리해고에서 출발한 인원 감축-정비시간 지연으로 인해 발행한 인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마무리했지만 문제는 고장난 출입문을 어떻게 촬영하느냐였다. 고장난 출입문을 보더라도 그냥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 취재기자와 상의해 전동차에 직접 타기로 했다. 맨땅에 헤딩, 아니 언땅에 헤딩이었다. 천안행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10량 이상의 전동차 중 고장난 출입문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소위 ‘마와리’를 돌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머리에 이고, 인파속을 뚫으며 찾기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4번째 칸에서 한 여성을 만났는데 우리를 보더니 다급한 목소리를 옆 칸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열릴 것 같던 출입문은 2~3cm 정도 열리다 말고 그런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안 열리자 옆 칸으로 가는 승객들, 플랫홈에서 열차를 타지 못한 승객들, 승하차가 가장 우선인 그들에게 ‘당황’은 사치였다. 취재를 마치고 안내방송을 들으니 수원역이었다. 다른 아이템의 사례 취재를 위해 현장에 왔었는데 의외의 성과였다.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 멀었지만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3일간의 눈 취재, 손발이 얼고 몸은 고생스러웠지만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준 기회가 된 것 같다. 김태훈/SBS영상취재팀 ※ <미디어아이> 제71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38
    2010-01-13
  • 바다에 잠길 운명의 섬나라, 투발루
    바다에 잠길 운명의 섬나라, 투발루 필자: “Hi, nice to meet you. Thank you for letting me in this cockpit.       만나서 반가워 그리고 이 비행기 조종실에 날 들여보내줘서 고맙고. 조종사: So, I'm going to be on TV, right?       그럼, 이제 내 얼굴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야? 필자: Yes, you're gonna be famous, just like TV star.       그렇구말구, 이젠 넌 유명해지는 거야 텔레비전에 나오는 스타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좁은 조종실 안, 기장과 부기장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장이 알려준다. “저기, 구름 뒤에 보이는 작은 V자 모양 보여? 저게 투발루야.” 피지를 떠난 비행기가 2시간 30여분을 날아서야 남태평양 한 가운데 자리 잡은 투발루를 만날 수 있었다. 조종실 창 너머로 카메라 렌즈를 대고 천천히 줌인 해본다. 구름너머 옥빛 바다 한 가운데 정말로 V자 모양의 투발루, 아니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 섬이 뷰파인더에 들어왔다. 애~앵, 애~앵. 비행기 착륙을 알리는 사이렌이 온 동네에 울려 퍼지면 주민들은 다 공항 활주로 주변으로 모여든다. 일주일에 두 번 피지에서 날아오는 이 항공기가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유일한 창구다. 기상사정으로 결항이라도 될라치면 사람은 발이 묵이고 물자는 떨어져 곤욕을 치러야한다. 비행기는 1시간 정도 머물면서 섬 밖으로 내갈 물건을 싣고 사람을 태운다. 쌍발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아가면서 비행기가 떠나고 나면 남은 활주로는 바로 주민들의 운동장이 되어버린다. 피구 비슷한 전통경기를 하거나 한 쪽에선 배구도 하고 아이들과 개들이 뛰논다. 투발루에는 민관을 통틀어 모든 주요 건물들이 공항 활주로 주변에 모여 있다. 담장 없는 운동장 같은 활주로를 지나 공항청사 건물을 나서면 바로 뒤에 정부청사 건물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이 섬의 대부분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디젤발전소, 기상청 등이 있는 식이다. 우선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나섰다. 사람이 사는 9개의 섬으로 구성된 투발루에서 제일 큰 섬이 ‘푸나푸티’고 그래서 수도가 됐다. 섬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걸어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도착하기 전 자료를 읽으면서 야자나무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만 상상했었는데, 막상 하늘에서 내려 보니 기도 안찬 풍경이 펼쳐졌다. 섬 곳곳에 쓰레기로 가득한 웅덩이가 널려있는 것이다. 사연인즉, 2차 대전 당시 미군이 일본군 점령지역 폭격을 위해 이 섬에 활주로를 건설했는데, 해발고도가 낮아 산이 없는 섬에서 흙을 구하려다보니, 그만 섬 여기저기 평지에서 포클레인으로 흙을 파온 것이다. 주민들에게는 그 대가로 몇 푼의 달러나 군용식량 등이 주어졌다. 그렇게 생긴 구덩이(보로피츠)에 바닷물이 차올랐고, 미군들에게서 받은 코카콜라와 크리넥스 티슈가 쓰레기로 변해 그 웅덩이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활주로가 처음 생겨 섬과 문명화된 사회가 연결되었을 때 주민들은 분명 축복처럼 온갖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맛보았을 테지만, 지금은 서구화된 생활이 만들어낸 쓰레기가 재앙이 되어 그들의 주거지를 위협하고 있었다.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거리 한 쪽에 모여 바비큐를 해먹고 있어서 들렀다. 닭고기를 간장소스 같은 곳에 담가놓았다가 널찍한 철판위에 놓고 굽는데, 이채롭게도 그 연료가 말린 코코넛껍질이었다. 촬영협조를 구하고 몇 커트를 찍어나가는데 눈이 벌게진 청년 하나가 정체불명의 하얀 음료를 먹으라고 얼굴에 컵을 들이댄다. 투발루 사람들은 코코넛 나뭇가지를 자르고 그 끝에 유리병을 매달아 즙을 모으는데, 이것을 설탕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발효시켜 술로도 먹는다. 정체불명의 하얀 액체는 ‘카오’라고 부르는 코코넛 술이었다. 투발루에는 USP(University of Southern Pacific: 남태평양 대학)분교가 있어서 몇 과목을 들을 수 있는데, 나중에 피지에 있는 USP본교에 가서도 학점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지역특성상 기후나 해양생태, 항해관련 학과가 있다. 방학을 맞아 다 함께 일종의 축하파티를 열고 있는 이들이 투발루의 미래를 이끌고나갈 인재들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 호텔 뒤쪽에 있는 간이 부두시설로 산책을 나가봤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연신 자맥질을 하고 있다. 몇 번의 자맥질 끝에 한 아이가 부두로 올라와 손에 쥐고 온 니모(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주황색과 검정색의 세로띠를 가진 귀여운 열대어) 비슷하게 생긴 생선의 살을 한 쪽씩 벗겨서 먹는다. 투발루는 이런 곳이다. 목마르면 주변에 널려있는 야자나무에 올라 코코넛을 따 마시고, 단백질이 부족하면 앞 바다에 나가 어릴 때는 니모 같은 작은 고기를 잡아먹거나 나이가 좀 들면 먼 바다에 나가 지나가는 참치를 잡아먹는다. 이런 자급자족하던 사회가 문명을 만나고 서구적인 소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은 투발루에선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지 식으로 발음하자면 ‘래인바스’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쓰자면 ‘Rain bath'인데 비가 오면 그 물에 샤워를 한다는 말이다. 이들의 생활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어다. 투발루의 모든 건물에는 경사진 슬레이트 지붕아래에 집 뒤뜰에 있는 물통과 연결되는 작은 플라스틱 수로가 설치돼있다. 비가 오면 그 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필자가 머물던 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이틀 비가 안 오더니 급기야 잠자리에 들기 전 더위를 식히려고 화장실 샤워기의 꼭지를 여는데 물이 안 나왔다. 하나밖에 없는 국립호텔에서. 지구온난화와 그로인한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투발루는 현재 바다에 잠기고 있다. 지구상 어느 지역보다 그 변화속도가 빠른 곳이란 점에서 투발루가 처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국제사회에도 그 위험성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막상 투발루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그 위험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투발루인들이 주변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 등으로 이민을 원하며 실제로 절차를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곧 섬이 바다에 잠겨서라기보다는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과 경제적인 문제가  더 컸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온도의 상승이 바다 속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갔다. 어설퍼 보이는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주변 섬들을 돌아봤다. 배의 키를 잡은 톰은 원래 투발루 출신의 외항 선원이었지만, 지금은 가족과 함께 휴식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만해도 그는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가까운 무인도로 건너가 바비큐도 해먹고 수영도 하며 쉬었다오곤 했는데, 지금은 그 섬이 안 보인다고 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잠긴 것이다. 투발루 정부가 정한 산호 국립공원 지역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 봤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바다 속에서 산호가 하얗게 죽어가고 있었다.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산호는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금방 그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져버렸다. 수온상승은 바다 속 생태계도 파괴시키고 있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이후 모든 문명화된 국가들은 줄곧 대량생산을 위해 공장을 가동시키면서 지구를 데워왔다. 그 열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바닷물 분자가 팽창해 해수면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투발루는 쑤나미가 아니더라도 제법 센 풍랑 한 번이면 잠길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하지만, 이 섬은 천 몇 백 년 전부터 인간이 살아오면서 특이한 남태평양 도서문명과 전통을 이어온 곳이다. 인류가 가진 아주 독특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니 투발루가 처한 위험에 대해 그 안타까움이 더했다. 투발루 기상청의 힐리 여사는 기상관련 전문성과 고귀한 인품으로 국제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전 지구적인 이 거대한 문제를 푸는 방법은 산업화를 진행해서 앞서간 선진국들의 결심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전했다. 해마다 6mm가량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는 투발루, 이 상태라면 수십 년 안에 분명 바다에 잠기게 된다. 문제를 일으킨 나라들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고 나서야한다. 박진경/KBS 영상취재국 ※ <미디어아이> 제71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38
    2010-01-13
  • 신입 카메라기자로 보낸 한 해를 돌아보며
    무식해서 용감했던 신입 카메라기자의 2009년 -신입 카메라기자로 보낸 한 해를 돌아보며 벌써 1년이다. 카메라기자의 타이틀을 달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지. 내 인생에 있어서 이처럼 다양한 현장을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해는 없었다. 매 순간 순간이 새로웠으며, 들이쉬고 내 쉬는 한 숨 한 숨이 모두 가쁘게만 느껴졌다. 계산하기보다는 그저 몸으로만 뛰어다니기 바빴던 초년 기자로서의 1년, 많이 부족했던 그 1년을 차분히 돌아보고자 한다. 인상적이었던 현장. 연초에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경기도 일대를 누볐다. 생전 처음 접한 긴박한 현장검증 장소. 수많은 시민들이 희대의 살인마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피해자의 유족과 친구들은 울부짖으며 급기야 실신 지경에 이르렀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날카롭게 촬영을 거부하는 그들을 향해 악착같이 렌즈를 들이밀어야 했던 상황에서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고통에 신음하는 유가족과 그 모습을 뉴스로 담아내야 하는 기자간의 괴리감, 초상권과 취재권, 적절한 판단이 떠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이 매 순간 그런 고민 속에서 노련한 가치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운 순간들이었다. 적절한 시기에 접한 협회보 <미디어아이>의 초상권에 관한 체계적인 기사는 수습기자였던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 하나. 바로 위에 기수 선배들이 ‘촛불시위’를 통해 충돌현장 취재에 익숙해졌다면, 나에게는 ‘용산참사’와 ‘쌍용차 사태’가 그러한 매개가 되었다. 안타까운 사건 직후 화재건물을 취재하려는 카메라기자와 경찰 사이엔 몸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또한 격분한 철거민과 경찰 진압대 틈바구니에 끼어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 최루액이 분사되고 헬기진압이 이뤄지는 현장의 당혹스러움. 빈약한 준비로 시위 현장을 찍을 뿐 일차적으로 내 몸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희미했던 당시, 내 머리 옆을 스쳐 날아가는 보도블럭과 강철볼트는 백 마디 말보다 명확한 가르침을 주었다. ‘효과적인 취재를 위해서라도 내 몸의 안전을 잊지 말 것’ ‘참사’와 ‘사태’를 이야기하다 보니, 유독 2009년 한 해는 죽음과 관련된 뉴스들이 많았다. 카메라기자로서 나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추모하는 시민 인파 속에 묻혀 있었고, 고 장자연씨 자살 의혹을 취재하러 분당경찰서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빈소에서 밤을 새다시피 한 3일을 기억한다. 건강 악화로 의식을 잃은 DJ를 방문한 YS의 화해 멘트를 따낸 역사적 순간에도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든 우리 취재기자와 ENG카메라를 든 내가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장이 치러졌으며, 그러한 현장에서 어느 순간 죽음은 내 안에서도 일상적인 사건이 되어갔다. 커다란 별들이 차례로 스러져갔고, 인면수심의 절도범에게 최진실씨의 유골함이 도굴 당하기까지 하자 죽음에 대한 비현실적인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우리 사회가 피할 수 없는 아픔을 충분히 겪었다면, 그리하여 좀 더 성숙해졌다면 2010년에는 좀 더 따듯한 뉴스의 현장에 서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을 가져본다. 갈등보다는, 장례보다는, 탄생과 화합의 뉴스를 전달하는 2010년이 되면 좋겠다. 어떤 해보다도 다사다난했던 2009년 한 해. 카메라기자의 타이틀을 달고 막무가내로 부딪혔던, 무식해서 용감했던 나의 첫 해. 2010년에는 보다 성숙하고 노련한 모습의 카메라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좀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기를. “선배들의 아낌없는 충고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지선호/MBN 영상취재부 ※ <미디어아이> 제71호에서 이 글을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38
    201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