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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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C&M 김민호 이사]
    종합 방송인 김민호 이사 김민호 이사는 81년 문화방송 카메라 기자로 입사한 후, 10여년 동안 '카메라 출동'이라는 방송 뉴스의 대표적인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 했다. 이후 MBC 프로덕션 교양 예능 국장을 거쳐, 현재 C&M 이사겸 C&M 미디어원 서울 미디어국 보도본부장을 겸임하고 있다. 카메라기자로써 열정을 다해 현장에서 일을 하고, 프로듀서 겸 방송 진행자로써 이 시대의 건강한 물음을 시청자들에게 던졌다. 그리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대학교수로 미래의 방송인을 가르쳤고, 지금은 여러 방송인을 이끄는 위치에서 자신의 방송 철학을 프로그램에 녹여내며, 이제는 말하기보다 '듣는' 방송을 추구하며 ‘김민호의 사람이야기’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김민호 이사의 방송철학과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 본다. 지금까지 종합 방송인으로 살아 오셨고,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방송인로써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과 전달하고 싶으셨던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입사하자마자 카메라 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카메라출동’이라는 프로그램이 카메라 기자가 기획하고, 제작하고, 리포트를 하는 것 이었는데, 도와주는 이가 없어서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깨쳐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상과 글로 리포트를 구성해야 했는데, 주로 영상으로써 구성을 하여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했고, 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아쉬운 점은 ‘카메라 출동’이라는 것이 단순 고발을 위해 제작이 되었다는 것인데요, 누구의 잘잘못만을 탓하려고 만든 프로그램 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금 카메라 출동이 존속하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의 잘못이 아닌 우리 사회의 ‘시스템의 부조리‘를 말하고, 시민이 살아가기에 불편한 것들을 해소 해 나갈 수 있는 ’감시자‘로써의 역할을 방송에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건전한 시민의식에 대해서도 말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건강한 토론(논쟁이 아닌)을 해서 결과를 모색하는 그런 방송을 하고 싶었고, 그런 방송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것이구요.. 그래서 그 이후 여러 프로그램 제작을 거치면서, 프로듀서겸 진행자로써 ‘여기서 잠깐’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화두는 “왜 그럴까요?”라는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물음입니다. 한 5년 동안 제작하면서 ‘고발’이 아닌 ‘전달’로써 단순한 사실을 가감없이 전달하고 시청자들의 생각을 유도하고, 판단 할 수 있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반향은 컸습니다. ‘소통’이라는 커뮤니케이터로써 보도와 제작 쪽에서 많은 벤치마킹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 이름을 걸고 ‘김민호의 사람이야기’라는 심층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발과 소통을 넘어 지금은 ‘듣는’ 프로그램으로 지향하고 있습니다. 사회 각계 각층의 저명한 인사들의 사는 애기를 듣는, 그들의 삶을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풀어나가 편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00회 이상 진행이 됐는데요, 지휘자 금난새씨나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리노 김용걸 교수등 많은 인사들의 삶을 인터뷰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이사님의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보면 많은 도전과 변화가 있었는데요, 이사님의 삶의 태도와 자신의 이루고픈 꿈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는 항상 방송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종합 방송인으로써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방송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방송만을 만들며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방송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사실 방송에 욕심이 많다 보니 MBC에 몸담고 있을때 불만이 좀 있었습니다. 방송을 스스로 만들어 보고싶은 욕심에,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고 싶은 욕심에 제 스스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주어지는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제 스스로의 역할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기자로써 피디로써의 역할을 거치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프로그램 제작에 나서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제가 가진 방송인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꿈이라고 하면 각 방송사에서 퇴직하신 분들의 방송인 OB 방송을 해보고 싶습니다. 거창하게 전국을 상대로 방송을 하는 것은 아니구요.. 지금 살고 계신 곳의 구청의 소식을 전하는 기자로써 카메라기자로써 직접 촬영하고 글쓰고 편집할 수 있는 그런 방송 프로그램을 꿈꾸고 있습니다.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직 전국 방송 기자로써 일하시다가 퇴직하셔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지금 제가 가지고 있고 추진하고 있는 작은 꿈입니다.   다변화되는 미디어 환경 속에 일하는 후배 카메라기자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미디어의 핵심은 영상입니다. 미디어의 변화와 혁명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개더링 되는 영상을 좀 더 화질이 좋게 만드는 것과 영상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만드는 기술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미디어 컨텐츠의 핵심를 이루는 영상은 이렇게 발전이 되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을 만드는 카메라기자의 의지라고 하겠습니다. 단순 찍어내는 것이 아닌 한 컷으로 취재, 전달 하고자 하는 것의 의미를 담고, 시청자들의 흡입력을 끌어내는 그런 의미있는 영상을 만들고 구성 할 줄 알아야합니다. 영상을 만들어내고 압축하여 의미를 담고 전달하는 구성 능력. 카메라기자는 단순 기자가 아니라 영상구성작가가 되야합니다. 영상과 또한 글과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3위일체의 영상구성작가가 우리가 나아갈 길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방송인으로서 ‘스타성’이 있어야 합니다. 배우나 가수나 스타성이 있어야 대중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영상 또한 “자기가 자기를 메이크업‘하는 영상 메이크업이 필요합니다. 흡입력있는 영상과 구성으로 프로그램을 제작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스타성은 자신의 ’안과 밖이 조화‘를 이룰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상물을 만들 때 기존의 예쁜 그림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 역발상으로 함축적인 영상과 과감한 음악, 영상, 편집의 저돌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나아가 영상구성작가로서의 능력을 갖추어 종합 방송인으로 자리를 매김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카메라기자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표출해 프로그램을 만들 줄 아는 ‘완벽한 방송인’이 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양동 C&M 미디어원 센터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는 2시간가량 이어졌다. 서울 15개 구와 경기지역을 아우르는 지역 보도물과 제작물을 담당하고 있는 김민호 이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방송에 대한 열정을 인터뷰 내내 보여 주었다. 또한 현실에 안주 하지 않고 나아가는 카메라기자의 모습을 강조 했다. 인터뷰 이후 C&M 스튜디오와 사무실을 보여 주시면서 ‘큰 방송사에 비해서 규모도 작고 그렇지만 여기서 내 꿈을 펼칠 수 있다.’라고 뿌듯하게 말씀 하셨다. 김민호이사는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루려고 지금도 방송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대담`정리 : 정연철 / MBC 영상취재부
    2010-07-15
  • <릴레이 인터뷰> GTB 권순환 팀장
    GTB 권순환 팀장 1. 미디어 아이 제 73호에서 YTN 진민호차장님께서 추천해주셨는데, 추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 미디어아이에서 나오는 <릴레이 인터뷰>를 보다가 나에게도 기회가 올거라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그만큼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고맙고 황송스러울 뿐입니다. 2. YTN 진민호차장님과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되었고, 어떤 분이신가요? - 처음 YTN 개국 시에 방송국에 입사하였습니다. 고향인 강릉에 발령 난지 얼마 되지 않아 <강릉 잠수함 무장공비 사건>으로 YTN 기자들이 모두 내려 왔었습니다. 그때 진민호기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서로 연락하면서 친분을 쌓았습니다. 처음에 진민호차장님을 뵈었을 때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 무서웠는데 차차 함께 시간을 보내고 촬영을 하면서 보기보다 참 순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순한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연락을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3. 카메라 기자가 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며, 카메라 기자가 된 후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방송기술관련 취직을 준비하였습니다. 몇 번의 실패를 맛보다가 YTN개국 당시 방송국에 입사하였고 중계팀으로 배치되어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접하였습니다. 그 후 강릉으로 발령되어 내려가 있는 도중 카메라팀이 없어 직접 카메라를 잡게 되면서 우연찮은 기회에 카메라기자가 되었습니다. - 카메라기자는 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촬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플 때 취재?촬영을 못하는 심정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4. 카메라 기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인가요? - 예전 화물연대 파업당시 탱크로리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탱크로리 운행 중단으로 기름 운송에 차질을 빚어 심각한 위기에 달하였습니다. 그러나 몇몇 탱크로리 운전자들이 운행을 한다는 제보를 받고 촬영을 하였습니다. 최대한 운전자들의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히 촬영을 하였습니다. 방송에 나갔을 때 탱크로리 운전자의 모습과 차량이 조금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들이 문제가 되어 방송 후 탱크로리운전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너가 촬영한 것 때문에 나와 내 차가 위험해 졌는데 책임질꺼야?" 하면서 술 취한 목소리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분은 분을 참지 못하며 욕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순간 저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서 "촬영한 부분에 대해서 피해가 있을 때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오히려 더 화를 내었습니다. 저 또한 답답한 마음에 직접 만나 단판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큰 싸움이 일어 날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분과 만나 술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니 화도 누그러졌고 나중에는 서로 형, 동생 하면서 친한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5. 지금현재 카메라 기자단 강원지부장이신데,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강원지부를 이끄실 생각이신가요? - 작년 말에 지부장을 맡아 뭘 어떻게 이끌어갈까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시기가 시기다 보니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방이라는 여건상 실제 피부로 많이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원도에 있는 카메라기자분들에게 교육의 여건을 많이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카메라기자의 참다운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강원도지역 카메라기자를 대상으로 에디우스 교육(편집교육)을 올해 초에 실시하였습니다. 지방에서는 최초라고 들었습니다. 교육을 마친 강원도권 기자들 분들도 배움에 기뻐하여 저 또한 흐뭇하였습니다. 아직은 장비와 장소부재로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여 교육의 여건을 만들겠습니다. 6. 평소 쉬는 날에는 무슨 일을 하시나요? - 골프를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GTB 본사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여유를 즐길만한 시간이 없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주말에는 되도록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7. 앞으로 세운 계획이 있다면? - 미래는 개척하기 어렵겠지만, 일단 계획이 있다면 카메라기자들이 좀 더 편안하게 일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주변 여건이 어렵다고 하는 현실에서 카메라기자들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안전적인 기반을 만들고 싶습니다. 8. 카메라 기자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저도 이 직업을 갖기 전에 카메라기자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몰랐습니다. 지금 들어와서 경험하며 일을 해보니 티는 나지 않지만 참 중요한 직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유하자면 산소라고 생각합니다. 느끼지는 못하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기자를 준비하는 후배님들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선 책임의식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실제 현장에서 내가 손해를 볼지라도 나의 책임으로 인해 국민들의 알권리가 보장된다고 생각하면서 카메라기자를 준비하십시오. 사건 사고 현장은 어떤 상황인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좋은 앵글을 잡기위해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책임과 희생이라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됩니다. 9. ‘신생아 불법매매 현장'이 특종보도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취지와 이 영상을 통해 얻은(사회적인 것이나 느낌)것은 무엇인가요? - 2005년도 말이었습니다. 그 당시 막내 취재기자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선배님 신생아 불법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데 취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처음 생각 했을 때 너무 어려운 취재라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비인륜적이고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막내기자와 단합하여 취재를 시작하였습니다. 막상 시작하니 단서도 쉽게 나오지 않아 촬영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제보가 하나 들어오더니 어느새 여러 제보자들이 연락을 주어 촬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보자들의 인터뷰와 촬영을 통해 '신생아 불법매매 현장' 이 보도 되었고 비인륜적인 현장의 모습이 방송된 후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을 하며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라며 많은 댓글을 달아주었습니다. 보도가 나간 후 지지부진하던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사각지대에 놓인 의료기관에 대한 정부의 관리정책 강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근본 원인인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을 강화하는데 일조하여 저 또한 뿌듯하였습니다.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를 추천해주신다면?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는 서울 KBS에 있는 김대원기자입니다. 김대원기자는 강릉에 파견내려와서 저와 인연이 있었고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침착한 성격이 맘에 끌렸던 친구입니다. 강릉에서 서울로 발령나면서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으며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김대원기자 보고싶습니다. 춘천한번 내려와서 얼굴 한번 봅시다^^ 대담 : 안정원 / 제5기 명예카메라기자
    2010-07-14
  • <디지털 방송환경의 변화와 보도영상 세미나> 참관기
    <디지털 방송환경의 변화와 보도영상 세미나> 참관기 미 국방부는 2010 합동보고서(Joint Vision 2010)에서 21세기 전쟁은 네트워크(중심)전쟁(network centric warfare)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네트워크 전쟁은 사령부와 최전선의 병사가 정보의 네트워크로 엮여(networked), 정보의 이용가치를 극대화하는 전쟁수행 시스템이다. 군에서 시작한 네트워크로의 흐름은 이미 여러 산업분야로 전파되고 있다. 2010년 5월 28일 “디지털 방송환경의 변화와 보도영상”이란 주제로 서울 그린월드호텔에서 개최된 세미나는 방송계에 불어온 네트워크 열풍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였다. 세미나를 통해 주최 측인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회원과 함께 네트워크제작시스템(networked production system, NPS)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NPS는 방송사만 보유하던 영상데이터를 현장의 카메라기자와 네트워크로 공유하여 방송영상의 활용도를 극대화 하는 것이다. 이는 전선에 있는 병사가 사령부 서버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보를 불러올 수 있는 네트워크전쟁의 수행체계와 유사하다. 이날 지상파 3사와 보도전문채널 2사는 실무를 통해 축적한 NPS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공개했다. SBS는 자사의 네트워크데이터시스템(NDS)을 통해, 당시 방송중인 SBS 8시뉴스의 화면을 SBS 본사의 서버에서 불러와 세미나에서 시연하였다. NPS의 구동장면을 세미나 장에서 공개한 것이다. 다른 방송사들도 NPS 구축을 위한 노력과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발표했다. 여러 방송사 모두 경비적 측면과 업무효율적 측면에서 NPS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다. MBC에서는 NPS의 구축효과로 테이프와 복사장비의 불필요함에 따른 경비절감과 동시에 영상 편집시간의 단축을 꾀했다고 밝혔다. SBS에서는 원소스(테이프 한 개)를 한명의 유저가 이용하는 기존의 시스템과 달리, NPS를 통해 원소스(중앙서버의 데이터)를 다수의 유저가 이용할 수 있어 업무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화, 테이프리스화, 네트워크화 되는 방송제작환경을 고려할 때, NPS는 더욱 활성화될 것임이 느껴졌다. 네크워크화는 방송에서도 피할 수 없는 흐름임을 세미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네트워크 시대의 속보전쟁은 기존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네크워크 시대를 맞아 미군이 네트워크 전쟁을 준비하듯 카메라기자도 NPS로 미래의 보도영상을 준비하는 것이다. 향후 NPS를 이용해, 출장지에서 영상을 편집하는 카메라기자의 모습이 일반화 될 것이다. 순간 사건현장의 최일선에서 취재중인 카메라기자와 최전선에서 전투 중인 군인들이 네트워크로 디졸브되는 느낌이 들었다. NPS가 카메라기자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 보다 신속하고, 보다 다양한 영상으로 구성된 방송뉴스의 시청을 시청자의 한 명으로서 기대해 본다. 고형석 / 회사원
    2010-06-25
  • 월드컵을 가져오자
    월드컵을 가져오자 한국 대표팀이 드디어 원정 16강에 올랐다. 한국대표팀은 당초 예상대로 B조 2위로 16강에 올라 우루과이와 26일 11시 승리의 땅 넬슨 만델라베이 경기장에서  16강전을 치른다. 격세 지감(隔世之感)이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대표팀은 태국, 말레이지아, 버마,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등과 박터지게 축구를 했다.  도토리 키재는 시합이 열리는 날이면 손에 땀을 지고  동네에 한 두개 있는 흑백TV를 보며 응원하던 시절. 그시절 한국 축구가 최고인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76년 9월 박스컵에서는 말레이시아에 1:4로 뒤지다 종료 5분여를 남기고 SBS 해설위원이신 차범근의 그림같은 3골이 터졌다. 그림이었다. 그때 당시 말레이시아는 강적이었다. 아마 지금 말레이시아에게 선제골로 4골을 내어 주었다면 딩크형 할아버지라도 감독이 바뀌었을 것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아시아 동네축구 골목대장 한국과 일본이 세계무대의 벽을 실감한 경기였다면 2002년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한 대회였고 유소년 축구 육성의 중요성을 실감 한 대회였다. 2006년 대회는 17위로 원정 16강 가능성을 본 대회였다. 이때 호주는 우리와 승점이 같은 1승1무1패로 16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우리는 승점 4점으로 16강에 올랐지만 호주는 같은 승점으로 독일과의 대량실점을 만회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어제 새벽에 끝난 C조와 D조의 경기는 우리를 더욱 흥분하게 만든 결과로 나왔다. 우선 8강까지는 전통의 강호들을 모두 피할 수 있는 최상의 대진운이 만들어졌다. 대표팀은 우루과이를 이기고 8강에 진출 할 경우 미국과 가나와의 승자와 대결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아르헨티나는 멕시코를 누르더라도 잉글랜드와 독일의 승자와 대결을 하게 돼 전력을 쏟고 4강에 올라 올 확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루과이를 이겼을 때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한민국은 우루과이에게 지난 90년 월드컵 경기에서 0:1로 석패를 했다. 그 외 친선경기에서도 3패를 했지만 우루과이는 남미예선에서 최하위로 코스타리카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턱걸이로 월드컵에 나왔다. 18경기에서 28득점에 20실점이다. 그만큼 수비가 불안하다는 이야기 였는데 이번 조별리그에서는 무실점으로 16강에 올라왔다. 아트사커 프랑스와 개최국 남아공을 연파하며 조1위로 올라온 강팀임에는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8강에서 남미에서 해볼 만하다는 파라과이에게 2:3패배를 해 4강 문턱에서 주저앉은 기억이 있다. 가까이는 홍명보 감독의 U-20대표팀이 2009년 U-20월드컵 8강에서 가나에게 2:3으로 패해 탈락했다. 결코 우리가 재물로 볼 수 있는 팀은 월드컵 진출팀 중에 단 1팀도 없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16강전에서부터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강호들과 치열한 경기를 치러 어렵게 4강에 올랐었다. 우루과이나 가나 미국 등 결코 만만한 팀이 없지만 적어도 해볼만한 상대와 일전을 벌인다는 것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이번 2010년 월드컵 대진은 아마 다시 오기 힘든 기회 일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효율적으로 이용해 실행해야한다.  8강전에서 전력을 소모한 아르헨티나를 맞아 마라도나 감독의 입에 오바로크를 치고 월드컵을 한국으로 가져오자. 너무 오버인가?^^;;; 이정남  newscams@korea.com
    2010-06-24
  • 아르헨티나에게 제대로 한방 먹은 날
    아르헨티나에게 제대로 한방 먹은 날 아르헨티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나라 중에 하나이다.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외국이라는 곳을 나가 본 곳이 아르헨티나였고 공교롭게도 지금의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인 마라도나를 취재하러 갔었다. 그때가 벌써 15년 전이다.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보카주니어스 팀을 이끌고 한국에서 재기전을 했었고 그 때 우리는 일개 프로팀을 맞아 국가대표가 상대 하던 시절이었다. 십여년 전만해도 해외 유명 프로팀들이 한국을 방문 할 때면 국가대표가 나서 경기를 했다. 평소 보다 일찍 사무실을 나서 여의도로 향했다. 길거리 응원의 메카인 시청이나 봉은사 길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경기를 볼 수 있으리라는 의도가 있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시원한 강바람에 생각보다 잘 꾸며진 편의시설이 응원전에 나서는 이들을 더욱 즐겁게 했다. 월드컵은 우리나라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축제다. 천안함 사태로 경색된 남북관계, 6.2지방 선거로 인한 남남 갈등은 잊은지 오래다. 이미 우리는 하나였고 우리의 적은 아르헨티나 였다.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손을 놓은 지 오래다. 빨리 아르헨티나와 경기를 해 승전보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1:4패배,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에 허탈했고 일부 언론과 네티즌은 연일 대표팀의 전략부재와 전술, 선수기용을 놓고 씹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맞이하여 우리 선수들은 선전을 했다. 적어도 후반30분까지는... 아르헨티나의  세 번째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이 났다면 염기훈의 슛이 골로 들어갔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오범석선수를 비난 할 필요도 없고 선수기용을 잘못했다며 허정무 감독을 비난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우리한테는 이번 경기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제대로된 스파링 파트너를 만나 다음 결전에 대비 할 수 있는 단비가 될 것이다. 상황은 우리에게 훨씬 유리하다.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1승1무 였음에도 마지막 상대인 스위스를 반드시 이겨야 16강에 진출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1승1패인데도 나이지리아와 비겨도(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잡아주는 상황) 16강에 진출 할 확률이 높아졌다.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정말 퇴장없이 운좋게 지금의 실력으로 선전을 펼친다면 적어도 8강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4강에서 아르헨티나와 다시 만나 후회 없는 한판을 보고 싶다. 이정남  newscams@korea.com
    2010-06-22
  • 2010 NAB SHOW 참관소감
    2010 NAB SHOW 참관소감 현재 KNN의 경우 아날로그 TV 방송을 아직 종료하지 못하고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면서 HD제작이 이제 시작에 불과한 시점에 금년 NAB 2010은 3D 분위기 물씬 풍긴다. 장비 제조업체들은 3D 제품들을 전시하면서 3D쪽으로 분위기를 몰고 간다. 아직 HD 수상기도 이제 겨우 시작되고 있는데 벌써 3D가 대세인 듯하다. 이러다가는 HD와 3D가 동시에 진행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보기도 한다. 최근 KNN 뉴스를 중심으로 일부 프로그램이 HD로 제작되면서 눈높이가 높아져 SD 아날로그 영상을 보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중계차를 도입해서 야구 중계 등 야외 제작을 HD제작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관심은 아카이브, Tapeless 제작환경, NLE 편집 등 일련의 새로운 방송환경 구축에 몰입되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3D 입체영상이다. 디지털의 설계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다. 생각(아이디어, 기획)이 떠오르면 바로 시행할 수 있다.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장비의 도약적 발전도 있었다. 디지털 데이터 테이프 카트리지 1개에 20GB40GB80GB200GB400GB800GB1500GB(1.5TB)3000GB(3.0TB)1) 순으로 기록밀도를 올려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는 좁은 공간에 많은 량의 콘텐츠를 보관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NAB SHOW는 사실 conference 가 중요하지만 대부분 장비전시장만 둘러보고 돌아온다. 한국의 KOBA SHOW 역시 conference가 있다. 많은 사람이 최근 참석하고 있다. Quantel은 편광방식의 3D 그래픽 툴을 현장에서 시연하면서 왼쪽 눈으로 본 영상, 오른쪽 눈으로 본 영상을 각각 그려서 동시 출력하면 입체영상을 구현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일본 Ikegami는 그 동안 3D 카메라 몇 가지를 전시하고 있었다. 사람도 미간(眉間)이 넓은 사람과 좁은 사람이 있다. 카메라도 왼쪽과 오른쪽 카메라 간격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Ikegami는 조정해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다양한 실험을 했던 것이다. 편의상 LV/RV(Left Video, Right Video)로 표기. LV/RV의 카메라 간격은 입체감과 눈의 피로감 등에 관해 많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입체감이 있다고 무조건 시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3D방식은 아직 표준화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 국제적으로 표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과거 흑백에서 칼라TV를 시행하면서 흑백TV로 칼라 방송 시청이 가능하도록 개발하였다. 지금도 입체방송이지만 일반 HD 시청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이런 양립성(compatible)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방송사는 2D와 3D를 별도로 방송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수 있다. 양립성을 위해서 방송사와 가전사 간에 표준 규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3D TV라고 소개하면서 제품을 팔고 있다. 2010 NAB는 많은 업체들이 3D를 소개하고 있지만 특별히 solution 기술이라든지 특별한 제품이 없으면서도 3D관련 전시를 하고 있다. 특히 SONY는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3D 제작 중계차를 동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대형 모니터와 passive 방식으로 편광안경을 제공하고 있다. 개발 제공할 수 있다고 장담은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조명 업계의 화두는 당연히 LED였다. 다수의 업체에서 고출력 소형 LED 조명 제품을 출시하였으며 일부업체에서는 대형 Studio 용 제품 도 출시되었다. 문제는 일반 조명용 제품처럼 색온도를 맞추는 문제가 업계의 화두 인데 이번 제품에는 단일 색온도의 소자를 반사면 및 전면 필터를 사용한 색온도 교정제품과 다수의 색온도 제품을 혼합 사용하여 색온도를 교정한 제품이 출시되어 있었다. ENG 취재에서 많이 사용되던 Sungun 할로겐 램프를 사용하던 조명도 LED 형으로 전시되고 있다. 스튜디오 등기구 역시 LED 형으로 만들어진 기구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3D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장비가 그래도 데이터를 기록 보관하는 장비이다. 곡간과 같은 테이터 창고이기에 데이터 방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카이브 장치가 바로 그런 것이다. 아직 3D와 관련된 아무런 표준이 없다. 신호구성, 전송방식, 동기신호 구성, 등등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발전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정용수 / KNN 영상제작팀 ※ <미디어아이> 제73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1
    2010-05-14
  • 김길태 사건 취재기
    “길태다.”   2010년 3월 10일 15:00경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 인근에서 김길태가 붙잡힌다. 경찰이 이양실종사건의 용의자로 김길태를 지목하고 공개수사로 전환한지 8일,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지 4일만이다. 김씨의 흔적을 찾아 사상구를 헤매던 기자들이 급히 사상경찰서로 모인다. 이송되는 김씨를 생방송하기 위한 중계차와 분노에 찬 시민들까지 들어선 경찰서는 북새통을 이룬다. 검거현장에서 경찰서까지는 불과 500m정도. 혹시 기자들을 따돌리려 다른 곳으로 갔을까? 온갖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40분쯤 지나자 정적을 깨고 김씨를 태운 차가 사상경찰서로 들어온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김씨가 차에서 내리자 분노한 시민은 그를 향해 욕설과 주먹을 휘두르고, 과열된 취재경쟁에 포토라인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분노한 시민과 통제력을 상실한 경찰 그리고 흥분한 기자들... 밀치고 넘어지고 소리 지르는 경찰서 주차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무질서의 현장에서 김씨는 “전 모르는데요, 그냥 라면만 끓여먹었는데요.”라는 말을 남긴 채 조사실로 끌려 들어갔다. 김길태처럼 생각하라   김길태의 모든 것이 이슈화 되었다. ‘김씨가 주로 자장면을 먹는다’는 기사가 나가자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김길태 자장면’이라는 검색어까지 등장했다. 경찰의 브리핑이나 김씨의 모습, 사상경찰서 스케치는 촬영 후 실시간으로 방송국에 전송되었다. 수많은 방송사의 카메라기자들은 김씨의 행동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경찰서에서 낮밤을 보냈다. 타사 선배들 뿐 만 아니라 우리 부서 최고참이신 50대 강상윤 부장님은 김씨가 조사실에서 나오는 단 10초를 촬영하기 위해 반대편 건물 창문에서 4시간을 기다렸다. 사람이면 반드시 한번쯤은 화장실을 갈 것이기 때문에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김씨를 잡았다. 범행현장에서는 김씨의 족적을 따라 움직였다. 경찰 못지않은 탐문취재였다. ‘내가 김씨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김씨의 이동경로를 따라 카메라를 들고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김씨의 흔적은 무엇이든지 촬영했다. 김씨가 범행 전 술을 마셨다는 사당에서는 깨진 술병조각이 취재대상이 되었고, 김씨가 시신을 유기하는 장면을 봤다는 목격자를 찾기 위해 현장 근처의 집집마다 벨을 눌러 확인하기도 했다. 현장검증이 이루어진 날, 경찰은 시민들이 몰려 검증의 어려움이 있다는 핑계로 취재를 거부했지만 근접촬영은 풀 취재단이 맡고, 폴리스라인 외부는 자유롭게 취재한다는 선에서 정리되었다. 현장검증은 10시였지만 취재진과 구경나온 시민들은 보다 일찍 나와 김씨를 기다렸다. 나 역시 김씨가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서 카메라를 세웠다. 혹시 돌출행동을 하는 시민을 촬영하기 위해 신경을 썼지만 시민들은 “모자를 벗겨라”며 얼굴공개만 요구할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도시, 재개발 예정지.   김길태 사건이 발생한 곳은 재개발 예정지역이다. 김씨는 이양을 유괴한 뒤 재개발 예정지 내 한 빈집에서 성폭행 뒤 살해했고, 여러 빈집을 옮겨 다니며 경찰의 수사망을 피했다. 이양의 시신 발견 후 취재를 위해 찾은 현장은 그야말로 잃어버린 도시였다. 한낮이었지만 인적은 드물었다. 수많은 폐가는 조명을 사용해야만 촬영할 수 있었고, ‘범죄하기 좋은 곳’임을 알리기라도 하듯 습하고 어두웠다. 범행현장과 시신이 발견된 곳은 직선거리로 불과 50M이내였지만 길을 따라 움직이면 몇 배 더 긴 거리였다. 특히 미로 같은 골목은 낮에는 물론 밤이 되면 더욱 길 찾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골목으로 접어드는 2명의 여중생을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리고 아이템을 위해 그 학생들을 불특정으로 촬영하며 분향소에서 처음 만났던 이양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재개발 예정지는 부산에서만 200여 곳에 이른다. 경제논리에 의해 생겨난 재개발 예정지가 더 이상 아이들의 희생지역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역시 카메라기자들의 몫이리라. 이제 방송은 얼굴을 원한다.   김길태 사건은 이른바 조두순 사건으로 아동ㆍ청소년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특히 아동ㆍ청소년성범죄와 같이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얼굴공개에 대한 논란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은 김길태의 얼굴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김씨가 차에서 내릴 때 나의 머리는 인권침해와 알권리의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몸과 카메라는 김씨의 얼굴을 아무런 여과 없이 게더링(gathering)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카메라기자의 판단은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방송은 좀 더 클로즈업된 김씨의 표정을 원했고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영상은 편집을 통해 하루에도 수차례씩 전 국민에게 전달되었다. 흉악범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고민했던 문제였지만 그동안의 논의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극적인 영상만 남았다. 앞으로 제2, 제3의 김길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2010년 4월 15일,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는 피의자 얼굴 등 공개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었다.(제8조의2) 흉악범 얼굴공개에 대한 논란 역시 계속 될 것이지만, 한번 공개된 이상 앞으로의 보도 영상은 더욱 그들의 얼굴을 원할 것 같다. 하지만 초상권 공개는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이제 보도 영상에 있어서도 현장에서의 카메라 기자의 판단을 넘어 협회를 중심으로 법적 기준에 상응하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건은 진행형이다   법원에서는 아직 김길태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이미 사라졌다. 3월이 지난 이후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며, 나 역시 김씨를 잊었지만 후기를 쓰며 다시 한 번 그때를 떠올렸다. 사건 이후 아동ㆍ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정책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또 재개발 예정지에 대한 계획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울러 인권과 초상권에 대해 더욱 신중해야할 방송의 기준은 마련되었는가? 남은 건 김길태의 얼굴뿐이다. 마지막으로 이양의 명복을 빈다. 권태일/ KBS 부산총국 ※ <미디어아이> 제73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1
    2010-05-14
  • 백령도 그 침묵의 바다 앞에서
    그 침묵의 바다 앞에서 천안함이 바다에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를 모니터 하다가 귀에서 맴도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백령도 수심 20m 부근에 침몰하였다"라는 기자의 목소리... 이 소리가 나를 움직이게했다. 수심20m면 스쿠버다이빙으로 얼마든지 내려갈 수 있는 깊이다. 그래서 수중팀이었던 나는 수중팀원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가야 할듯 싶다"고 말했고 그 후배 역시 "가시죠" 쉽게 대답해주어서 백령도로 출발 하게 되었다. 수중카메라를 챙기고 또 HD ENG 까지 챙겨 백령도로 향해 일요일 아침 여객선에 짐을 실었다. 수중촬영장비와 스킨스쿠버 장비까지 화물 도선비 까지 추가로 지불 하면서 도착한 백령도 바다는 천안함 승조원들의 목숨을 그리도 많이 빼앗아 갈만큼 수중팀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보도와는 달리 함수와 함미가 서로 6Km 이상 떨어져 있고 또 대부분의 승조원이 있을꺼라 예상되어지는 함미 부분은 수심 40m내외로 스킨스쿠버로 접근하기는 깊은 수심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백령도에 도착한 첫날 부터 한국구조단의 활동을 취재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부분도 바로 깊은 수심과 사리 현상으로 정조 시간이 매우 짧아 수중 수색작업이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천안함 백령도 침몰 사고를 통해 국민들은 물론 현지 취재팀이 침몰 현장의 현장취재를 하기위해서 가장 많이 언급 되었던 사리와 조금 그리고 정조 시간의 이해가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리와 조금은 15일 간격으로 이루어지며 사리 때는 정조 즉 물의 흐름이 가장적은 시간이 짧기 때문에 수중촬영 또는 수중작업 시간은 아주 짧아지게 된다. 반대로 조금 때에 가까울  수록 정조 시간은 길어지기 때문에 수중촬영 시간 또한 길어지게 된다. 사리와 조금은 달을 보고 쉽게 알 수 있는데 보름달에 가까우면 사리 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서해안뿐만 아니라 남해, 동해, 제주도일대..모두 이와 같은 사리와 조금 그리고 정조 시간을 체크하면서 수중촬영을 한다. 특히 서해는 수심이 얕아서 동해 남해보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하기 때문에 수심을 이용한 다이빙이 자주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또 사리때는 얕은 수심을 이용한 수중촬영을 할 수있지만 반대로 정조시간이 짧아 물이 흐르지 않는 시간을 이용하여 수중촬영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또 심한 조류에 위험할 수 있다. 조금 때는 정조시간이 길어 바닷물의 흐름이 적어 수심은 깊지만 상대적으로 바닷속에 있는 뻘들이 조류에 떠다니지 않고 바닥에 가라 앉아 사리때 보다는 시야가 훨씬 좋아진다. 수중촬영하기에도 또 안전한 다이빙을 위해서는 조금때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좋다. 물론 뉴스환경이 사리와 조금을 따져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그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동해안과 제주도역시 사리와 조금 그리고 정조 시간 또 해류까지도 염두 해서 수중촬영을 해야 하는데. 바다가 깊어서 밀물과 썰물 때문에 강한 조류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다만 남해안의 경우 섬과 섬 사이에서 강한 조류가 발생하는 것 역시 서해와 같이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위험한 취재환경이다. 이병주 / SBS 영상취재팀 ※ <미디어아이> 제73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1
    2010-05-14
  •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아들아.’ 이 말을 듣고도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뉴스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그런 이 말을 나는 현장에서 직접 듣고 있었다. 미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 한마저 느껴지는 가족의 목소리였다. 취재를 하고 있으면 모두들 의식하지 못한 체 눈물짓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었다. 내 옆에 있는 모든 촬영기자선배, 취재기자 모두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했다. 이런 상황에 이팩트와 상황을 담으려는 나는 가슴이 터질 듯했다. 그래도 나는 촬영기자였다. 조금이라도 더 그 모습을 모두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이번 일에 고생한 선후배님들 수고하셨단 말씀을 드리고.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한다. 아들아. 11시 30분. 처음 대전에 도착했을 때 현충원은 평택과 다르게 매우 고요했다. 사람들의 발길은 보이지 않았고 주변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선선하게 내 몸을 스치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침착하게 만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취재차량과 기자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주변을 정리하던 헌병들의 호루라기 소리도 점차 들려왔다. 2시. 현충문 앞으로 방송을 위한 모든 셋팅이 완료되었다. 주변으로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들었고 방송차량과 통제차량들이 여기 저기 얽혀있었다. 일반 시민들도 마지막 길을 떠나는 아들을 가슴에 묻으려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들 그 시간, 그 곳에서 아픔을 나누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긴장하고 있었다. 촬영기자로 현장에 선 역할이 나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작년 수습을 지내고 큰 현장의 중심에 선다는 부담은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려 했고 그런 나는 상황과 분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3시 10분. 부산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며 시민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고정되었다. 유가족의 차량이 현충문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을 따라온 방송차량을 시작으로 운구차량 그리고 유가족의 차량이 여러 대 그 뒤를 따랐다. 술렁이는 분위기와 취재진들의 발들이 어지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발도 현장을 담고자 이리저리 움직였다. 드디어 차량에서 영정사진이 내려오고 사람들의 눈도, 나의 눈도 촉촉이 젖어갔다. 예정되었던 식이 시작하고 마지막 자리를 지키주려는 가족들의 힘없는 모습도 모두 나의 뷰파인더 안으로 들어왔다. 가족들이 헌화를 하며 통곡하고 나의 카메라도 떨렸다. 나는 당시 행사장 안에 pool단으로 들어와 있었다. 큰 현장에서 처음으로 하는 pool단으로 긴장은 매우 컸다. 그러나 주변에 뛰는 선배들을 보며 나 역시 올바른 행동을 하기위해 노력했다. 나는 촬영기자다. 그 순간만큼은 선배도 후배도, 무엇도 아닌 촬영기자였다. 흔들리는 카메라를 진정시키고 한 발짝 뒤에서 냉철히 볼 수 있어야 하는 촬영기자였다. 5시. 이제 마지막 가는 길 하관식이다. 짧은 시간 안에 송출을 마치고 뒤늦게 이동한 그곳에서는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가는 내내 내 발을 무겁게 만들었다. 먼 곳까지 들려오는 가족들의 통곡은 도착하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서 보였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팠다. 왠지 가족들을 대하는 내 카메라가 미안하기까지 했다. 영현이 내려오고 가족의 얼굴을 볼 땐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나는 촬영기자다.’ 나는 촬영기자다. 앞으로 수 십 번 아니 그 이상으로 이 자리를 지켜야 할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계속 힘겹게 카메라를 들어야 할 것이다. 내가 촬영기자인 이상 이러한 아픔과 힘듦은 숙명이다. 항상 웃고 있는 나의 선배도 나와 같은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작은 자리에서, 술자리에서 가볍게 하는 선배의 말 한마디는 한마디 그 이상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새삼 느낀다. 선배들의 가슴도 나처럼 미어졌을 것이란 것을... 민창호 / KBS 영상취재국 ※ <미디어아이> 제73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1
    2010-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