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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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광춘 前 KBS 국장]
      특별히 이루고 싶은 것 없이 이대로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슬기롭고 지혜롭게 사는게 꿈이다!   요즘 근황은 어떠십니까? 나 같이 제주도에 내려와서 사는 부부가 내 주변에도 10쌍이 있는데 다 정년퇴직 한 사람들과 같이 지내고 살고 있다. 그 사람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운동도 하고 사우나가서 맥주도 마시고 또 건강을 위해서 조깅도 꾸준히 하고 있다. 연고도 없는 제주에서의 생활은 어떠십니까? 퇴직하고 나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설계하다 보니 마음이 드는 곳에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녹색운동 같은 것도 하지만 공기도 안 좋고 서울생활이 힘들게 느껴져서 더 환경이 좋은 곳을 찾게 됐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기본이 되는 것이 공기와 물인데 제주도는 공기도 좋고 물고 좋다. 정치나 사회문제같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편안히 살고 싶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TBC(구 동양방송)에서 일할 때 청와대 출입기자 였었는데 1979년 10월 26일에 박대통령과 함게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을 갔었다. 처음으로 헬기를 타고 출장 간 날이었는데 3개의 헬기에 경호원과 기자, 그리고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이었던 전두환씨와 함께 갔었다. 그렇게 삽교천을 다녀왔는데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79년도에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을 방문할 때 함께 취재를 갔었다. 당시 나는 TBC의 청와대 출입기자로 갔고 KBS와 MBC의 청와대 출입기자도 함께 갔었다. 나는 스튜디오 카메라보다 조금 개량된 유메틱(Umatic)이란 ENG 카메라를 가져갔다. 촬영을 마치고 사우디 방송국에서 위성을 사용해서 송출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방송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많이 뒤졌고 위성 송출이 없었던 당시에는 대단히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나 위성을 이용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해외에서 촬영하고 당일로 위성을 통해 영상을 전송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에서의 위성 송출이어서 매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일본 특파원으로 발령 나기 전까지 제작했던“Made in Korea”라는 특집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수출품을 장려하기 위해서 기획되었는데 세일즈맨을 따라서 중동, 아프리카, 북미 등 여러 곳을 다녔는데, 2달에 걸쳐 세계 일주를 하기도 했다. 그 후부터 “Made in Korea”1시간 짜리 프로그램 5편을 방송하게 됐다. 그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나라의 수출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무엇이 있습니까? 특별히 이루고 싶은 것 없이 이대로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건 가족 이라고 생각한다. 이웃들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하고 있는 공동체가 편하게 살면 나도 편해진다고 생각한다.주변의 작은 공동체부터 큰 공동체까지 모두 편하게 살았으면 한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슬기롭고 지혜롭게 사는게 꿈이다. 카메라기자 후배들에게 한말씀 하신다면? 현재는 스마트폰, IPTV 등 멀티미디어 시대이자 IT정보화 사회다.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귀찮아~ 모른다~ 하고 외면하면 시대적으로 뒤떨어지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의 기록자로서 세상을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카메라기자는 역사의 기록자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가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할 때도 있을것이다. 그래서 시야를 넓게 가졌으면 좋겠다. 또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긴 안목의 인생 설계도 하면서 살면 좋겠다. 어느 순간엔가 40, 50대가 지나서 정년퇴직도 하고, 자식 결혼하고 손자도 보고...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것까지 설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못하면 세상을 주관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다. 천리안을 가지고 자기 삶을 설계해서 주관적이고 의미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     대담 : 김보현 팀장 / KBS 제주총국 ※ 제76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4
    2010-11-15
  • 하버드대의 운동벌레들
    제목 없음   하버드대의 운동벌레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KBS 스포츠국에서는 학교 체육에 관한 특집물을 제작하였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학교 체육은엘리트 운동부를 중심으로 한 체육교육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체육 교육은 운동부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등한시 하면서 오로지 운동에만 올인 하는 비교육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운동부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모순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은 특집물을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제작하게 된 것이고 그 중 이란 특집물은 나에게 많은의미를 부여한 취재물이었다. 환승시간까지 포함해서 18시간 만에 도착한 미국의 보스턴은 유럽풍 건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미국속의 유럽 같은 도시였다. 영국에서의 신대륙 첫 이민자들이 건설을 한 도시인 보스턴은 우리에게도 80년대 유명한 미국 드라마인 로 널리 알려진 세계 최고의 대학중 하나인 하버드 대학과 MIT 등 유명한 학교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는 교육 도시이다. 우리 취재팀이 어렵게 섭외를 해서 취재를 시작한 하버드 대학의 교정은 늘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하나의 관광 명소이기도 하였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하버드 대학은 미국과 전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는 명문대중의 명문대이다. 항상 모여서 학업과 관련된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이 흔하게 눈에 띄었다. 그런 모습은 아마도 너무 당연한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과 함께 자주 접한 모습은 항상 운동에 열심인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하버드대학은 신입생으로 들어오면 기혼자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전원 다 교정 각지에 위치한 기숙사에 들어가서 생활을 해야 한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룸메이트와의 사회성을 배우고 운동을 같이 하면서 리더십을 연마하고 있다. 각 기숙사동별로 대항전 형식의 운동 경기를 지속적으로 해서 연말에는 우수 운동기숙사를 시상까지 하고 있다. 하버드대학은 공부와 함께 거의 모든 학생들이 구기 및 기타 운동을 열심히 병행함으로써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격과 체력을 키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만난 교포 및 한국 유학생들도 모두 한 가지 이상의 구기 종목을 꾸준하게 연마하면서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들 말했다. 하버드대학은 수업 강도는 해마다 몇 명의 자살 학생을 유발할 정도로 매우 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하버드대학은 몇 블록 안 떨어진 MIT 공대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공과대학인 MIT도 일 년에 몇 명씩 반드시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나온다고 한다. 그 만큼 공부와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학생들은 수업 후 시간을 이용하여 학교 근처 찰스 강변을 조깅하거나 강위에서 조정 경기를 하거나 격한 구기 종목을 하면서 체력을 키우면서 스트레스를 또한 해소하고 있었다. 우리 취재팀이 인터뷰를 한 하버드 의대의 존 레이트 교수는 걷기 운동만 짧은 시간을 해도 뇌가 활성화 되는 등 운동은 육체적 건강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하버드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보스턴의 캠브리지 지역은 항상 자전거를 타는 학생들과 조깅하는 학생들 그리고 미식축구등 격한 운동을 하는 학생들의 신선한 땀냄새로 가득차여 있었다. 이번 취재를 마치면서 우리나라 체육 교육은 어떠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육체의 건강 유지에 필요한 체육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고 학교의 운동부는 오로지 대회에 나가서 우승이란 열매를 따기 위한 용병으로만 만들어져서 졸업 후 프로 선수가 못 된다면 제대로 사회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든 절반의 인간으로 변형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우리나라도 엘리트 중심 체육이 아닌 건강한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서의 체육이 될 수 있도록 그 교육 방향이 바뀌어야겠다. 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늦가을에 가져본다. ※ 참고로 하버드 대학 교정을 촬영 하려면 대학 홍보실의 사전 허가만 받으면 쉽게할 수 있지만, 내부 촬영에는 상당한 시간 전에 미리 섭외를 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보스턴의 물가 또한 상당히 비싼 편임을 알려드립니다. 이중우 / KBS 보도영상국 ※ 제76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4
    2010-11-15
  • 저곳이다! 황장엽안가를찾다
    제목 없음   저곳이다! 황장엽안가를찾다   사건 캡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 황장엽씨가 사망했고 안가를 찾아 취재를 해야 한다. 주소는 논현1동!”번지수 없는 논현1동 하나로 보안 속에 둘러싸인 황장엽씨 안가를 무작정 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네비게이션에 논현1동을 입력해 돌아다니다 과학수사용 경찰 승합차를 발견했다. 경찰차 옆에서는 신문사 사진기자들이 평범해 보이는 빌라 건물을 촬영하고 있었다.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연 황장엽씨가 보안 문제가 있을 법한 저런 빌라에 살았을까?촬영도중 취재기자로부터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곳이 아니고 차병원4거리 근처라는 얘기가 …”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단서를 잡기 힘들어 경찰차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주차해 죄송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적힌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경찰관이 받겠지……전화가 연결되고 신분을 밝히자 상대방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어 버린다. ‘왜일까? 아무 말도 못하는 곤란함을 피하고 싶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걸어봤다. 이번엔 받자마자 끊는다. 이곳 아니면 근처라는 생각을 굳혔다.그래도 혹시 몰라 이 평범해 보이는 빌라를 간단히 스케치하고 본격적으로 주변을 훑었다. 과학 수사대 차량이 있는 곳으로부터 300m 쯤 떨어진 곳에서 CCTV로 둘러싸인 단독주택 하나를 발견했다. 마침 대문에서 남자 한 분이 나오길래 나도 모르게 경찰 또는 당국자라는 생각이 들어“형님!”하고 외쳤다. (기자들은 경찰을 통상‘형님’으로 부른다) 그분은 취재진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며 자리를 피했다. 저곳이다! 처음에 유력했던 빌라는 과학수사 승합차와 경찰 몇 명으로 위장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단독주택의 앞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마당에는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 과학수사관들이 분주히 다녔고 대문 지붕과 벽은 아무나 넘지 못하도록 철조망으로 되어 있었고 방에 있는 창문은 보안상 가리개를 해 놓은 상태였다. 정신없이 스케치를 했다. 1층으로 내려와 스케치를 하던 중 경찰공제회라고 적혀있는 앰뷸런스 한대가 들어왔다. 아직 고 황장엽 씨의 시신이 나가기 전이었던 것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만해도 이미 시신은 경찰병원으로 옮겼다고 얘길 들었는데…… 다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기다렸다. 얼마 뒤 고 황장엽 씨의 시신이 나왔고 앰뷸런스에 실리는 순간을 순조롭게 촬영할 수 있었다. 번지수도 모르고 동네주민들 조차 알지 못했던 안전 가옥을 운좋게 취재할 수 있었다. 경찰차에 붙여진 휴대전화 번호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전화를 걸어 본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김세경 / SBS 영상취재팀 ※ 제76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4
    2010-11-15
  • 한번의만남, 두번의헤어짐
    제목 없음   한 번의만남, 두 번의헤어짐 추석계기 남북이산가족 1차 상봉 행사를 마치며...   1차 상봉행사가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금강산에서 이루어졌다. 분단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만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가족의 지극한 사랑이라는 테마로 잘 그려낸 작품이자 진정한 다큐멘터리였다.  10월 30일 토요일 오전 11시경 436명의 주인공들을 태운 버스 20여대가 미끄러지듯 비무장지대로 들어섰고, 시내버스 두서너 정거장 거리를 지나자 무표정한 얼굴의 북한군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사람과 풍경은 이질적으로 다가왔고 순간 마음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버스 종점 역시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있었다. 오후 3시 10분경에 이루어진 ‘첫’금강산 면회소 단체상봉! 첫 상봉의 격렬한 울음이 순식간에 터지고 동시에 밀착취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4시 30분 뉴스 특보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가슴 벅차오르는 뭉클함과 촉박한 시간으로 인한 긴장감 때문에 신경 또한 곤두세워졌다. 1차 행낭 전달이후 우리는 본격적인 취재를 할 수 있었다. 5시까지 예정된 첫 단체상봉,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가족들의 만남을 꼼꼼히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원하는 것을 촬영하고자 조바심도 내지 않았다. 상봉에 사소하게라도 누를 끼치는 상황이라면 카메라는 피했고 감동적인 상황에는 총잡이처럼 자연스레 그들에게 다가갔다. 상봉의 순간, 90세 할아버지는 61세의 아들을 만났고, 96세의 할머니는 71살의 딸을 만났고...울음과 눈물이 가득 했다. 만남 자체로 눈물이 흐르는 한편의 다큐멘터리였기에 다른 무엇도 필요치 않은 취재의 현장,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의 현장이었다. 현재 이산상봉을 신청한 남측의 이산가족 8만3000여명 가운데 70세 이상 고령자가 약 77%이고 매년 수 천 명씩 숨지고 있어 상봉 정례화의 시급성에 대한 이야기 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바라볼 수도 없는 장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이산가족을 둔 노인들은 세상을 떠나고, 생전에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후손들끼리 만나는 일이 늘고 있다. 장본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후손끼리만 만나는 것을 보고 있는 게 슬픈 현실이다. 더 슬픈 현실은 한국전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우리들에게, 분단의 아픔이 현실만큼 깊숙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깨어지는 유일한 순간이 바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아닐까 싶다. 금강산 면회소에서야 남북문제가 지니는 비극성을 느낄 수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 금강산 취재보도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극적인 상황이 실제 설정이 되고, 우리에게 실제로 그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금강산에서 참으로 어렵게 이루어지는 현실... 이제는 우리 남북문제를 기계적인 이념의 대립보다는, 하나의‘휴머니즘’으로 또한 지고지순한 가족 사랑의 테마로 인식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승연 / KBS 보도영상국 (사진설명) 􀕝 첫날 단체상봉 현장을 취재 중인 KBS 진만용 차장(사진 위) 􀕜 북한측 안내원과 함께 한 남측 공동취재단(사진 아래)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4
    2010-11-15
  • 강제병합 100년 사할린 취재
    출장 다이어리 ♬~~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어떻게 잊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세월가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불과 3시간 거리의 땅 사할린, 그곳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불러준 나훈아 영영의 노래다. 정복남 할아버지, 한인 2세인 정할아버지는 조국 땅을 단 한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우리말은 서툴지만 가사발음은 정확했다. 노래실력이 훌륭해서 그런지 한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사할린에는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징용된 15만 명의 조선인들 중 5만 명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만 했던 징용자와 정복남 할아버지와 같은 그 후손들이 있다. 지난 8월 29일, 징용1세부터 4세들이 사할린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 가가린 공원에 모여 ‘강제병합 100년 사할린 시민대회’가 열렸다. 일본의 배상과 참회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조국을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행사 하루 전 28일 한국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내 조국에 대해서 그리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없는 나다. 그러나 이곳에서 2천 여 명의 동포들과 내 조국을 생각했을 때, 그 광활한 아시아 대륙 동쪽 맨 끝에 자그마하게 자리 잡은 나의 조국! 지정학적의 슬픔뿐만이 아닌 한국인들만의 아름답고 소중한 정서. 난 내 조국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영원히 영원히 네가 사는 날까지~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못 잊을꺼야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못 잊을거야 ♪ 노래의 마지막 가사에 이어 ♬ 므녜 까짓쪄 빠러유 슈또 솔다띄~~~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노래는 모래시계 주제곡 백학이었다. 조승연 / KBS 보도영상국
    2010-11-04
  • 선배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KBS 제주총국 이광우 부장]
    2010년 9월 30일자로 정년을 맞으시는 이광우 부장님을 만나보았습니다 33년을 한결같이 제주 지킴이로 살아온 카메라기자 영원한 제주史의 기록자로 남고 싶다   제주도에서 30여년 간 근무하셨는데 카메라기자로서 느껴지는 제주도의 매력은 어떤 것이 있나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는 한라산과 검은 오름계의 용천동굴, 일출봉 등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 어디를 가든 한시간대의 거리로 갈 수 있어 산과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전국의 사진동호회들이 쉴 새 없이 찾는 곳이니 카메라 기자로 살아온 본인으로서는 천혜의 복을 누리고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다른 어느 도민들 보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과거 100년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아온 아픈 역사가 있었으며, 제주 4.3사건이 일어나자 전도에 소개령을 내려 마을 전체를 불사르고 3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통한의 섬이기도 하다. 또 6.25가 발발하자 예비 검속자들은 재판도 없이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등 정부로부터 버려진 땅이었다. 그래서 과거 제주사람들은 육지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경계하게 되었고, 육지 사람들로부터 배타적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제주에 살면서 이런 사람들의 내면에 깔려있는 잠재의식과 정서를 잘 알아야 가까이 할 수 있다. 제주에 TV 로컬방송이 태동하는 79년도에 KBS에 입사해서 카메라기자로서 33년을 한결 같이 제주 지킴이로 살아왔다. 그동안 단 한건도 낙종한 적 없이 열심히 뛰어왔다고 자부하고 싶다. 카메라기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지요? KBS 지역보도국 카메라기자들이 공히 안고 있는 애로사항은 인원문제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열악한 곳이 많다. 제주도에는 4년제 대학이 제주대학교와 탐라대학교가 있으나 제주를 지망하는 카메라기자 응시자가 없어서 제주도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해마다 본사에서 내려오는 2-3명의 순환근무자로 채워져 1년에 한번씩 송별회와 환송회를 치러야했다. 그중에서도 소통이 잘돼는 후배도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는 항상 을지국 수준으로 취급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뉴스 시간대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총국보다 인원도 부족한데다 업무량마저 많아서 촬영기자의 노동 강도가 다른 타 총국 보다 더했다. 많은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고 수상도 많이 하셨는데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나요?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이라면“제주 해안 253Km를 가다”이다. 제주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수중 비경과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현장을 고발하는 기획물이었는데, 반응이 꽤나 좋았다. 대형 특집물은 약 20여 편을 제작했는데, 그중에“제주의 생명 물∙물∙물”3편과“환경호르몬”등이 있다. 특히 사건사고에 있어서 1994년 8월 대한항공 여객기가 활주로 착륙 도중에 일어난 폭발사고이다. 이 사고 여객기에는 탑승객 152명을 싣고 제주 국제공항에 착륙도중 폭우와 강풍으로 활주로를 이탈하면서 공항 동쪽 울타리를 들이 받았다. 이 사고로 기체가 화염에 쌓이고 연속 폭발하면서 기체가 두 동강이 나고 전소된 사고였으나, 승무원들이 차분하고 일사분란한 대처로 승객 전원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10분 태풍 더그가 지나간 다음날 아침이라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방송국 앞 연동 소방파출소에서 소방 차량이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출동하고 있었다. 119에 알아봤더니 항공기가 비상착륙하다 활주로 울타리를 들이 받아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급히 카메라에 테이프를 장착하고 공항으로 달려갔다. 방금 소방차가 지나간 뒤라서 공항 철문이 반은 닫히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공항 청원경찰이 완강하게 저지하는 것을 뿌리치고 철문 사이로 잽싸게 뛰어 들어갔다. 항공기는 화염에 휩싸인 채 속에서 펑펑 폭발하고 있었다. 소방관들은 하얀 분말을 엄청나게 뿌려대고 있었으나 동체 속으로는 침투하지 못하여 항공기는 전소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다음날 속보까지 완벽한 특종을 이끌어 냈던 취재였다. VJ육성 등 많은 인재양성을 위해 힘쓰셨는데 이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KBS 제주 영상통신원이라는 타이틀로 2004년 1월 4일 도내 직장인을 중심으로 20여명으로 발족되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이론과 현장 실습을 통해서 이들을 이끌어 왔는데 변변한 카메라도 없이 시작을 했다. 이들에게 아침뉴스 광장에 날씨영상을 맡겨 놨더니 호응이 좋았다. 가끔 교통사고나 화재사고 현장 화면을 뉴스에 방영시키고 네임슈퍼까지 나가자 이들의 사기를 충족시켰다. 차츰 관록이 붙더니 지금은 프로가 되어 아예 VJ 직업으로 나서서 KBS 프로그램 외주제작을 맡고 있는 이도 있다. 다년간 KBS 지역카메라기자 회장과 제주지역 카메라기자회 회장을 역임 하셨는데요, 후배 카메라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촬영기자는 상당한 육체 노동이 수반되는 직업이라서 편하게 일할 생각이라면 지금이라도 직업을 바꿔야 한다. 든든한 버팀목 같은 뚝심과 도전 정신이 동료와 후배에게 도움을 주는 선배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대형사고 현장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역사의 한증인으로서 자신의 손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야하지 않겠나? 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모든 협회가 회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협회에서는 회원들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차원에서 복지를 향상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원 경조사의 질을 높여나간다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차원에서 고려해 봤으면 한다.   약력 - 1979년 KBS 공채6기 촬영기자 입사 - 1997년 KBS제주총국 영상취재부장 -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부회장 - KBS지역카메라기자협회장 - 제주카메라기자회장 수상내역 한국방송카메라기자상, 이달의 기자상, 홍성현언론상, 제주도방송인대상, 방송위원회 좋은프로그램상 외 30개 수상   정리 김재호 기자
    2010-10-04
  • 실질적인 방송인 재교육 이뤄져야
    방송 뉴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선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카메라 기자들의 역할도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카메라 기자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교육 연수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회원 재교육 사업에 재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 동안 협회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발전기금을 주요 재원으로 협회 회원 재교육(디지털영상편집교육, 수중촬영교육, 암벽등반촬영교육, 항공촬영교육, 영국 적대적 험지 교육 등)을 실시해왔으나 방송발전기금의 언론직능단체 지원 연수 중단으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방송발전기금은 방송 콘텐츠 생산의 핵심인 ‘인력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직접적인 방송인 연수가 없어 방송인 재교육 프로그램을 확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007년 연수사업을 주관하면서 현업 방송인, 방송학계 및 방송관련 기관 종사자에 대한 재교육을 통해 방송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디지털방송 등 새로운 방송환경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지원을 위해 연수교육을 실시한다 고 사업목적을 밝힌바 있다. 방송발전기금의 전문 인력 연수 사업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위원회가 주관해 실시해왔다. 방송위의 방송인 전문연수ㆍ교육 지원 사업은 2005년 처음 실시되어 점차적으로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 했었다. 그러나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후  한국전파진흥원으로 이관되어 실시해 왔던 것을 지난해에는 단체 연수 지원 사업을 없애고 한국전파진흥원 IT사업부에서 교육 연수 부분을 직접 위탁 실시했다. 올해는 한국전파진흥협회로 위탁하여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파진흥협회에서 실시하는 방송연수 부분은 방송에서 활용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현재 방송 부분에 활용될 수 있는 교육은 파이널컷 편집교육과 3D 입체영상 촬영 교육 정도로 그나마 인원과 교육회수가 적고 수강하기에 복잡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더욱이 이런 부류의 교육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구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오히려 전통과 노하우를 갖고 교육하고 있다. 이처럼 각 직능별 전문 교육은 그 직능단체에서 실시해야 된다는 의견이 중론이지만 방송발전기금의 방송인 연수교육은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기술인연합회와 PD연합회만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원으로 자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와 올해 각 직능단체 별 교육이 없어진 이유로 인해 타직종과 카메라기자의 재교육이 전무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특히, 협회가 공공적 성격의 기금 혹은 기관의 지원이 더욱 절실하지만 연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재원이 사실상 방송발전기금을 기반으로 한 한국전파진흥원과 한국언론진흥재단 두 곳뿐이다. 더욱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올해부터 신문의 기능을 강화해 방송인들에게 연수 기회는 그만큼 적어졌다. 뉴스영상의 영향력이 늘어가는 현대의 뉴스시장에서, 뉴스영상을 생산하는 방송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연수교육은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 및  프로그램의 차별화와 고급화로 경쟁우위를 점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할 수 있다. B방송사의 한 카메라기자는 “ 방송발전기금이 콘텐츠와 전문인 육성이라는 명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방송발전기금의 지원이 없어도 가능한 연수에 재원을 쏟아 붓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다”며 ”빠른 시일 내 각 직종별 맞춤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교육내용이 변화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올해 방송발전기금에서 조사연구, 연수교육비로 책정된 예산은 73억이며 방송인프라구축 130억 원 방송기술 개발 39억 원, 방송교육사업 86억 원 디지털방송전환 융자 120억 원 등이다. 방송발전기금 어떻게 조성되고 어디에 사용되나 기금이란 국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자금을 신축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로써 설치하여 운용하는 재원이다.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진흥기금, 영화발전기금, 축산발전기금 등 모두 62개의 기금이 있다. 기금 전체 운용규모는 대략 422조원 정도인데 방송발전기금은 약 2,900억 원 전체 기금 중 41번째 운용규모가 된다. 방송발전기금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직접 운용하는 기금으로, 방송진흥 및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2000년 방송법에 따라 설치하였고, 주요 재원은 방송사업자로 부터 징수하는 법정부담금으로 충당된다. 방송사업자가 한정된 자원인 주파수를 독점적으로 사용하여 사업을 하거나, 홈쇼핑 등을 통해 영업을 하면서 얻은 이익의 대가를 거둬 방송발전을 위한 재원으로 재투자하기 위해서다. 방송발전기금은 지상파방송사업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 홈쇼핑방송채널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등으로 부터 한해 약 1,600억 원 정도가 징수된다. 또한, 국회는 2월 26일 본회의에서 방송통신발전기금 조성과 관련해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은 물론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사업자에도 연 방송광고 매출액의 6% 범위에서 분담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8월 시행령을 내고 내년 1월1일부로 이 법안을 고시할 계획이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방송통신위원회는 매년 “교육방송 등 공공목적의 방송지원”, “방송프로그램 및 영상물 제작”, “장애인 등 방송소외계층 지원”, “디지털 방송전환 지원” 등 방송발전과 공익을 위한 40여개 사업을 수행하게 된다. 향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발전기금을 확대·개편하여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운용할 예정으로, 동 기금을 통해 방송콘텐츠 지원 등 방송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촉진하여 방송통신이 우리경제의 재도약을 이루는데 앞장서도록 할 계획이다. 이정남 기자
    2010-09-28
  •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지난 7월 28일,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대표팀의 취재를 위해 급히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여의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한국 선수단이 머물고 있는 보훔에 도착했다. 보훔은 독일의 북서부 지역의 광공업 도시로 정대세가 속해있는 ‘VfL보훔’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실제로 독일과의 경기가 있던 날, 정대세 선수가 관중석에서 한국팀을 응원했다. 독일과의 경기 전날, 한국 선수들의 동정을 취재하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여름비 치고는 적지 않은 양의 비가 내리는 와중에 최인철 감독과 지소연 선수를 비롯한 한국 대표팀을 만날 수 있었다. 주최국 독일과의 경기를 앞두고도 긴장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씩씩하고 자신감 넘쳤다. 같은 피가 흐르는 한국인으로서 동질감을 느꼈다. 월드컵 사상 최초로 4강을 넘어 우승이라는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독일과의 준결승전, 사실상 결승전과 같은 홈팀과의 경기. 준결승전만 이긴다면 우승도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문턱은 높았다. 체격, 체력, 발놀림, 스피드 등 모든 면에서 독일이 우세했다. 거기에 응원열기까지 더해지면서 우리 선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전후반 60여분 동안 무려 4골을 내주며 독일의 파상 공세에 무너져 가는 듯 했다. 그러나 후반 19분, 날쌘돌이 지소연의 슈팅이 독일의 골문을 갈랐다. 한국팀이 살아있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 것이다. 지소연의 골은 3-4위전 승리를 보여주는 복선과 같은 골이었다. 그러나 심판의 종료 휘슬과 함께 전광판에는 5:1의 점수가 보였다. 한국 선수들은 억누르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쏟아냈다. 함께 위로하던 코칭스태프도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선수들을 다시 만난 곳은 다음 경기가 열릴 빌레펠트 경기장이었다. 독일에 지고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던 선수들 얼굴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날은 따로 연습 경기를 하지 않고 체조와 달리기로 컨디션을 조율했다. 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코팅 스태프의 배려라고 했다. 콜롬비아와의 경기가 열리는 빌레펠트 구장, 3-4위전과 결승전이 함께 열리기 때문에 관중석은 경기 시작 훨씬 전부터 만원이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주도권을 잡은 한국은 경기 내내 콜롬비아를 몰아 붙였다. 독일전과는 사뭇 달랐다. 모든 것이 한국팀 위주로 돌아갔고, 콜롬비아는 한국팀을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후반 3분, 지소연의 발끝에서 승리를 알리는 쐐기골이 터졌다. 6경기 동안 8골을 뽑아낸 지소연은 득점 2위상인 실버 부츠를 받은데 이어, 기자단 투표에서도 최우수 선수 2위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우리팀은 깔끔한 경기매너를 보여준 팀에게 주어지는 페어플레이상을 받기도 했다. 세계 3위라는 초유의 성적을 거둔 대표팀이 귀국하는 날, 인천공항 입국장에는 100여명의 취재진이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렸다. 청와대는 대표팀을 초청해 홍보성 이벤트를 진행했고, 경북의 모 지자체장은 지역 출신 선수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황무지같은 환경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에게 더 큰 보상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일회성, 전시성 행사에 선수들을 불러 사진만 찍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어느덧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린 동계올림픽의 영웅들을 생각해보면 심히 걱정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월드컵 사상 첫 동메달의 쾌거, 그것은 선수, 코칭스태프, 국민 모두가 하나되어 이룬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 관심이 좀 더 활활 타올라 여자 축구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김태훈 / SBS 영상취재팀
    2010-09-27
  • 프랑스 기자교육양성센터(CFPJ) 방문기
    프랑스 기자교육양성센터(CFPJ) 방문기 난 2일, 프랑스 파리 2구에 위치한 기자교육연수센터(Centre de Formation et de Perfectionnement des Journalistes, 이하 CFPJ)에 다녀왔다. 이는 릴(Lille) 저널리즘고등교육원(Ecole Supérieure de Journalisme), 리옹정치대학(Science-po de Lyon) 내에 위치한 저널리스트과정(Institut d'Études Politiques), 파리9대학 저널리즘연구소(Institut Pratique de Journalisme), 그리고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에 위치한 정보통신과학고등교육원(CELSA)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저널리즘그랑제꼴이다. 프랑스기자연합(SNJ)과 AFP연합통신 등 각종 언론기관이 모여있는 파리 한복판 루브르 가(街)에 위치한 CFPJ는, 실무경험이 많은 미디어교육가들로 하여금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최근에는 웹 분야에서 기자가 되고자 하는 대학생들은 물론, 이미 현업에서 종사하고 있는 여러 기자들에게 다양한 취재노하우를 전수하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프랑스 언론인들에게 정통성있는 “학문의 전당”으로 통하는 CFPJ에서는 특히 촬영기자 양성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교육철학을 들어봤다. FPJ는 사실상 두 교육기관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저널리즘 관련 학문일체를 가르치며 예비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2년제 그랑제꼴(Centre de Formation des Journalistes, 이하 CFJ)이고, 나머지 하나는 프랑스 국내외 각종 미디어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이들에게 각종 단기실무재교육을 제공하는 연수센터(Centre de Perfectionnement des Journalistes, 이하 CPJ)이다. 2차대전 직후, 1946년 프랑스 레지스탕스 언론인단체였던 “프랑스국방(Défense de la France) » 출신 두 기자 필립 비아네(Philippe Vianney)와 자크 리셰(Jacques Richet)는, 새 시대에 맞는 미디어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올바른 여론형성을 주도하는 우수 언론인 양성을 위해 정통성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CFJ를 창립했다. 창립 이래 이 곳 « 루브르 가(街) 학교 » 졸업생들은 약 2000여 명 정도로, 이들 중 대부분이 프랑스 주요 매체에서 기자 및 주요 편집장들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4년동안 젊은 언론인들의 저널리즘정신을 기리기 위해 수여하는  언론상인 « 알베르 롱드르상 » 수상자도 이 학교에서 4명이나 배출되었다고 한다. 현재 매년 40여명의 예비 저널리스트들이 이 학교의 엄격한 입학기준을 통과해 언론학 이론 및 실기 수업을 거쳐 현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역사적인 언론교육기관임을 증명하듯, 학교 건물 입구에는 이 학교가 창립될 무렵 사용되었을 신문 인쇄기가 CFPJ 로고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맞는 새 언론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는 이 곳 CFPJ는 쉴새없이 변화하는 미디어환경 속에서도 이 기계의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저널리즘 정신만큼은 변함없는 교육철학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한편, 기자연수센터(CPJ)는 각종 매체에서 현재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현장실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년 다양한 연수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다. 이 날 학교 안내를 맡았던 베로니크 갸르(Veronique Gare, CFPJ인터네셔널)씨에 의하면, 현장실무경험이 많은 강사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곳 연수센터는 일종의 ‘취재노하우 전수기관’으로 불린다고 한다. 매년 2500여명의 기자들이 이곳을 거쳐가는데, 이들은 실제 취재를 하면서 축적된 기자 각자의 개성과 전문성은 살리면서, 부족한 점들을 재교육을 통해 조금씩 보완해간다. 교육내용은 각 분야에 따라 특성화되어 있는데, 촬영기자교육과정을 보면, TV저널리즘기초, 카메라실무, 디지털편집, 영상언어교육, 기사작성, 멘트녹음, 데일리 및 특집 르포제작 실제 등이다. 방문 당일, 촬영기자교육 현장을 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학생들은 이미 현장 촬영을 나가고 없었다. 촬영을 갓 마치고 돌아와 다른 학생들을 기다리던 한 여학생과 충전 중인 카메라 배터리들, 그리고 남은 ENG카메라 몇 대가 보관되있던 캐비넷만이 마치 한 방송사 영상취재국을 연상시킬 뿐이었다. 랑스에서는 JRI -영상리포터기자(Journaliste Reporter d’Image)- 로 불리우는 촬영기자는 아이템구상, 촬영, 편집, 기사작성, 마이크스탠드 등을 모두 수행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로서, 우리나라의 촬영기자들의 업무와 크게 다른 부분은 없다. 하지만 ‘만능꾼’이 되어야 하는만큼 촬영기자가 되기까지 이곳 CFPJ와 같이 권위있는 교육기관에서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른바 ‘일용직 카메라기자’로서 장기간의 현장실무경력이 있어야 각 방송채널 보도국 정규직 촬영기자로 고용된다. 앞서 설명한 CFJ에서도 언론학 일반을 배우는 1학년을 마친 후에는, 학생들이 각각 세부전공을 정하게 되는데, 이때 ‘촬영기자과정’을 선택하면 현장에서의 촬영기자교육을 받는다. 이처럼 기자들의 전문지식과 실무능력을 중요시 하는 프랑스 미디어 환경에서 이 연수센터는 앞으로 다가올 HD시대에 대비하여 새로운 촬영장비나 편집소프트웨어가 나오면, 촬영기자들이 이를 잘 다루어 실제 취재활동에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또한, 라디오나 TV취재기자들이 촬영기자로 전업하고자 할 경우, 그들에게 맞는 촬영 및 편집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특히, 이 연수센터의 국제팀은 외국인 기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는 데에도 주목할 만하다. 1965년 알제리에서의 현지 기자연수를 시작으로, CFPJ는 1970년대 초반부터 국제팀을 신설하여 이곳의 저널리즘 교육노하우를 세계적으로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갸르 씨는 « 우리는 이미 약 40여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미디어환경의 변화속도가 동일하지 않으며 따라서 외국 기자들의 실무재교육 상황 또한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나라에서 언론인 관련 교육이 지나치게 이론 위주의 수업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외국인 기자들을 위한 현장교육을 담당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라고 하며, CFPJ인터네셔널의 기본취지를 밝혔다. 그녀는 « 이곳 파리에서 외국인 기자교육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경우에 따라 외국의 주요 대학 언론관련학과 및 저널리즘스쿨과 파트너쉽 계약을 체결해 현지에서도 우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캄보디아, 베트남, 레바논, 이집트 등 프랑스어권 국가들에서 이런 현지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비프랑스어권에서 이런 교육의뢰가 들어올 경우는, 필요에 따라 통역사의 도움 아래 수업을 진행시키는 경우도 있죠. »라고 하며, 구체적으로 외국인 기자들을 위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런 CFPJ 국제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목표는,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선진국 기자들의 취재경험 및 전문성을 여러 개발도상국 및 저개발 국가의 기자들과 공유하여, 이들 국가의 미디어환경 발전에 기여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함께 지켜나가고자 하는데 있다. « 작년에는 중국에서 언론관련학과에 다니는 대학생과 촬영기자 등 두 팀이 우리 수업을 듣기 위해 파리에 왔었는데, 이들에게는 약 일주일간의 시간이 말하자면 ‘디지털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직 아비드와 같은 편집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줄 몰랐습니다. 따라서 우리 측에서 이 교육을 담당했었지요. 단 일주일만의 시간이었지만, 우린 그 경험이 그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시대에 맞는 언론인으로서 성장해나가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바야흐로 미디어환경 역시 글로벌시대가 되었다. 이에 맞게 국내 각 방송사는 선진국의 우수한 촬영장비와 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부지런히 배우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 촬영기자들 각자가 가진 개성과 전문적 능력은 살리면서, 실제 취재현장에서 계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문제점은 각종 재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보완해가며 진정한 멀티플레이어 촬영기자가 되는 것이 ‘글로벌저널리스트’가 되는 길이 아닐까. 이를 위해 각사와 본 협회가 좀더 다양한 연수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더 많은 회원들이 좋은 경험을 쌓도록 노력할 것을 기대해 본다. 또 CFPJ인터네셔널의 교육철학과 같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수한 취재노하우를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아시아의 저개발 지역 언론인들에게 전수하여 이들의 미디어환경 발전을 돕는 것 역시 본 협회가 향후 기획해볼만한 글로벌 프로젝트일 것이다.  
    2010-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