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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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기자 협회보

NEWS

지속가능경영
  •      국방부 카메라기자실 신설
            국방부 카메라기자실 신설 국방부 출입 기자단은  지난 4월11일 카메라기자실를 신설 해 입주했다. 이날 태양식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은 현판식에 참여하고 국방부 대변인실과 간담회를 갖았다.  국방부 출입 기자들은 숙원이었던 기자실 신설과 촬영 단상이 제작되어 고무되어 있었다.  카메라기자 존이라 불리는 이 단상은 서울시 브리핑 룸에 이어 두 번째이며 영상 취재 및 오디오 수음이 편리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정부 및 지자체 브리핑 룸으로 확대 제작 될 것으로 판단된다.
    2011-06-01
  • MBC 류종현부장 법무부장관 표창 수상
      MBC 류종현부장 법무부장관 표창 수상 MBC 류종현부장이 지난 4월 15일 법의 날에 법무부장관 표창을 수상하였다. 류종현부장은 평소 초상권과 저작권을 부단히 연구하여 관련분야의 법학발전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언론보도에서 피의자인권을 보호하고 저작권침해 청소년형사초범들에게 교육을 통하여 기소를 유예함으로써 재기의 기회를 제공한 공로가 인정되어 이 같은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류종현부장은 그동안 일부언론의 사건보도에서 피의자들의 초상권이 무분별하게 침해되는 상황에 대하여 협회후원으로 학술저서와 세미나 등을 통하여 이를 개선하는 노력을 경주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다매체시대의 도래로 더욱 첨예해진 저작권분쟁과 관련하여 문화관광부와 법무부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교육조건부 기소유예제도의 강사로 참여하여 부지불식간에 저작권을 침해한 형사범들의 구제활동에도 꾸준히 봉사해온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2011-06-01
  • 제주도 아날로그 방송 중단
    이달 29일 제주도 아날로그 방송 중단 제주도의 아날로그TV 지상파 방송이 다음달 29일에 전면 중단된다. 지난 해 울진 강진 단양 세지역은 모두 합쳐도 5만 5천여세대 규모이지만 제주도는 22만 세대에 달한다. KBS 제주총국 김보현 기자는 “제주도는 이미 디지털방송을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차질없이 디지털방송 전환이 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말했다. 현재 제주도 소재의 방송사는 6월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지속적으로 고지하고 있으며 기존 아날로그TV를 사용 할 시 컨버터를 설치 할 것과 디지털TV의 구매를 권고하고 있다. 정부는 제주도 내 아날로그 방송 시청자들이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도록 디지털 컨버터 공급, 디지털TV 구매보조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선, 아날로그 방송 종료로 TV방송 시청이 곤란한 지상파 직접수신세대를 겨냥해 디지털컨버터 지원사업이 전개된다. 대상층은 해당 지역내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과 일반세대 및 노인(만65세 이상), 장애인 등이다. 또한, 저소득층에 한해 디지털TV 교체비용도 일부 지원된다. 이정남 기자
    2011-06-01
  •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 우리는 행복한 곳에서 산다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2011년 3월11일 15시30분쯤,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냐??” “지금 인터뷰하러 서강대에.....” “너 지금 일본가야 하니깐 그냥 빨리 들어와.” “네!...지금요?” 허걱!!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그때서야 알았다. ‘얼마나 심하길래...!!’ 저녁 21시 비행기라서 장비를 챙긴후, 개인짐도 없이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집에 전화하니 황당해하는 와이프!! 다행히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다음날 출발하게 되었다. 출장팀은 2팀(촬영기자-이승환,이승준/취재기자-윤경민,최명신)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선배, 일본은 선진국이에요.... 일본에 도착하기전 같이온 이승준(촬영기자)기자 떠나기전에 한말이 있다. 내가 사고지역은 모든 것이 부족하니 철저히 준비해야한다고... 후배왈 "선배, 거긴 선진국이에요...!! ""그런가...!!" 일본에 도착하니 모든 상황이 어려움을 단번에 느낄수 있었다. 우리팀은 하네다에서 국내선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 야마가타를 거쳐 센다이로 향했다. 야마가타에서 렌트후 출발할 당시 주유소마다 차들이 몇백미터씩 줄서 있었다. 사고 현장으로 들어갈수록 문을 연 음식점과 주유소는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보이는 마트, 가게 등을 돌며 물자확보에 힘을 쏟았다. 여기서 굶어죽기 싫어서.... 도쿄에서 부터 올라온 승준팀은 가까운 피해현장들을 취재하며 20리터 기름통을 6개나 사서 가는 곳마다 기름을 채웠다고 한다. 음식 또한 길거리에서 직접 해먹었다고 한다. 센다이에서 만났을 때 내가 한마디 한다. "선진국이라며...!" / 승준왈 "그러게여...!!" 나중에 우리도 확보 못한 기름통을 하나 얻어 쓰고 밥도 얻어먹었다. *이곳이 피해가 크다는 지역 사람들의 모습인가!! 3월13일 저녁 센다이에 도착, 한국 영사관으로 향했다. 센다이시 미야기현 청사를 지나는데 자위대 소속의 재난 구호트럭 수십 여대가 미야기현 청사를 빼꼭히 에워싸고 있었다. 청사는 피난 나온 이재민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바뀌어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계단 밑이건 화장실 앞이건 다리를 뻗고 쪽잠이라도 청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람들로 넘쳐났다. 사고현장의 취재시작...일본사람들은 참 침착하면서도 담담한 모습이었다.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없고 그저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만 묵묵히 찾아서 하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국민성, 이런 재난상황에서는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청사를 뒤로하고 한국 영사관에 도착했다. 그곳 역시 많은 한국 유학생들, 이 지역 주민들이 강당에 빈틈없이 모여 있었다. 영사관에서 준비한 밥과 두가지정도의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사람들, 연락을 못했던 가족들과 전화를 하는 사람들... 유선인터넷은 연결이 안되고, 전화와 전기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들어왔고, 음식도 주변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사관 직원들은 버스를 확보해서 사람들을 이곳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차량은 확보했지만 기름이 없었다. 어수선한 상황들 속에서 무선인터넷을 이용 화상연결과 제작을 마치고 나서야 종이박스와 신문으로 자리를 깔고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 쓰나미 경보와 지진의 공포... 14일 우리는 쓰나미 피해지역 센다이해안마을로 향했다. 센다이시에서 30여분, 도심을 벋어나 해안으로 접근하자 무너진 집들과 목조주택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배는 집위에 또는 도로위에 올라와 있었고 자동차들은 지붕위며 신기한 모양으로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시내중심 소방지휘본부가 있는 육교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을때 싸리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센다이해안 5키로 지점 10미터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다. 하늘에는 헬기가 쓰나미 경보를 알리는 방송을 반복하고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우리를 육교위로 대피시켰다.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육교위와 높은 건물옥상에 대피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해안가에서 작업을 하던 소방차20여대가 싸리렌 소리와 함께 줄지어서 대피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거 빨리 피해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싸, 특종을 하겠군'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요기 앞까지만 밀려오다 말아라...' 한국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5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시간이 갈수록 안도의 마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나미 경보는 조용히 마무리됐다. 마음을 가다듬고 해안으로 전진... 시내까지는 파괴된 집들과 잔해들등 많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면 해안가쪽은 이곳에 집이 있었던가 할정도로 시야가 탁트였다. 군대군대 콘크리트나 벽돌집이 서있는 것으로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뿐. 일본은 지진이 많아서 목조건물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지진에 강하고 안전하다고...하지만 쓰나미는 예상을 못한것 같다. 수천채의 집들은 집터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한 노인을 만났다. 앨범으로 보이는 찢어진 한장의 가족사진을 들고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곳이 과연 복구될수 있을까? 다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사람사는 동네로 돌아갈수있을까? 의문을 뒤로하고 복귀하던중 시신들을 수습하는 자위대원들을 보았다. 시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쓰나미로 인해 사망,실종자는 2만7천여명이 넘었다. 영사관으로 돌아온 우리는 리포트제작과 간단한 식사, 찬물로 세수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무언가 요동을 치는 것을 느꼈다. 지진이었다. 로밍해간 휴대폰을 지진을 알리는 경보가 울렸고 20초동안 많은 떨림을 느꼈다. 여기온 뒤로 가장 큰 지진의 흔들림 이었다. 정말 이런것이구나...!! * 119구조대-방사능 비를 피하라... 15일 바람을 타고 방사능이 센다이방향으로 올라오고 비도 내린다는 예보가 들려왔다.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오늘은 대한민국 119구조대가 처음 활동하는 날이다. 일본측에서 119구조대 활동모습을 언론에 공개하기를 꺼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린 일단 숙영지로 가기로 했다. 공설운동장 주차장에 마련된 숙영지...새벽4시에 기상, 출발부터 영상에 담고 이후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출동하는 모습을 담고, 구조대 버스를 따라갔다. 경찰서에서 구조활동지역을 배정받은뒤 출동. 미야기현 해안마을, 맥주 물류센타가 있는 곳이다. 일본경찰들이 5~6명의 구조대마다 배치되었다. 조금 긴장을 했다. 혹시 취재를 막지나 않을까! 기우였다. 이곳은 목조건물보다는 단단한 건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집들은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고 역시 차량들은 폐차장을 연상시키듯 뒤엉켜 있었다. 캔맥주 자체가 하천의 물을 대신하듯 사방에 널려있었다. 일부 젊은 남성들은 승합차를 가져와서 맥주를 박스째 가져가는 모습도 보였다. 119구조대는 건물내부및 부서진 잔해 밑을 꼼꼼히 살피며 인명을 구조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신만이 구조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시신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방사능 측정기를 휴대한 구조대원에게 방사능 측정을 부탁했다. 다행히 평균치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참동안 구조활동을 취재하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잠시 철수한다고 한다. 방사능 비라서 방호복을 입으러 간다고... 우리는 점퍼에 있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방호복을 입는 구조대원을 영상에 담았다. 우리는 이들의 무사 귀환을 당부하며 취재를 마치고 현장을 떠났다. * 수돗물, 채소가 오염되면 뭘 먹으라고... 일주일간의 현지 취재를 뒤로하고 방사능이 바람을 타고 퍼지면서 안전지대로의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영사관에 있던 언론사들은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미혼의 기자들은 더욱더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나도 그런데.... 승준팀과 함께 있었던 우리는 같이 북상해 아키타로 향했다. 가는도중에 본사로 부터 한팀은 철수하라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팀이 남기로 했다. 18일 승준팀 복귀. 우리는 도쿄로 향했다. 도쿄지국에는 야구 전지훈련차 오사카에 왔던 취재팀이 특파원을 돕기위해 몇일전부터 취재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팀도 19일 귀국. 특파원과 함께 시작된 도쿄생활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방사능비를 비롯, 수돗물오염에 채소의 방사능 물질 오염까지....수돗물 방사능물질 오염발표전날 라면도 끓여먹고 커피도 타먹었는데...! 마트에는 생수를 찾기가 힘들어졌고, 그나마 1인당 1병씩 팔기시작했다. 도쿄인근에 대규모 지진이 또 온단다. 이젠 점점 무덤덤해진다. 지진도 일상화되고 이젠 피할곳도 없고... 우리야 있다가 떠나면 그만이지만! 특파원선배는 아이들이 4월이면 학기가 시작된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을 떠나온지 17일만에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걱정의 한숨이 순간적으로 나왔다. 회사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서울하늘을 보았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밝은 느낌, 평온한 느낌 이랄까! 우린 행복한 곳에 산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는다.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서 이번 재앙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과 가족들께 조의를 표하며, 일본국민들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기원한다. 이승환 YTN 영상취재1부
    2011-05-20
  • 중계차 줄행랑사건
    쓰나미로 초토화된 일본 동북부 지역 취재를 마치고 영상송출을 위해 영사관이 있는 센다이 시내로 복귀하는 길. 로밍서비스를 통해 휴대폰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뜬다. “현지 중계차 철수로 송출 불가. 각자 현 위치에서 가능한 인터넷 송출 방법 강구 바람” 일본 전역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의 위험 경고가 반복적으로 방송되던 날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더니 이 무슨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자세한 상황을 알아본 결과 영상송출을 담당해 주기로 계약된 일본 현지 중계팀이 비내리는 날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 지역에서 멀지 않은 센다이에 머물고 있는 상태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철수해 버렸고 현재 돌아오라는 우리 취재팀의 회유에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 설명을 듣고 보니 결국 목숨이 귀해서 도망갔다는 것인데.... 목숨이 귀해 도망갔다는 데에 딱히 뭐라고 비난할 논리도 없는 것 같고, 한편 현지인도 도망간 지역에서 지금 나와 동료들은 뭘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가도, 그나저나 통신도 잘 안되는 지역에서 영상송출을 어째야 하는 건가 캄캄하기도 하고, 또 입사 십년차가 되니 중계차가 도망가는 별별 희한한 상황도 다 겪어 보는 구나 싶고. 어쨌든 취재팀들은 각자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어찌어찌 무사히 영상 송출을 마쳤다. 그날밤 동료들과 자판기에서 뽑은 맥주를 나눠 마시며 중계차 줄행랑 사건은 황당하고 재미있는 안주거리가 되어 술자리에서 회자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후쿠시마 인근을 촬영했던 kbs 카메라 감독이 피폭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니 당시 중계차 줄행랑 사건이 새롭게 다가온다. 위험 지역에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신체를 노출한 채 일과 시간에 쫒기며 냉정한 판단을 보류해야 하는 우리의 취재현실. 후쿠시마 지역 취재팀을 결정하는 선택의 순간 은근히 느껴지던 불안간과 긴장감. 정확한 현지 상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일단 장비부터 들고 현장에 들어가야 하는 분위기. 정확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만일 당시 일본 현지 중계팀이 주체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과감한 철수결정을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면? 술자리의 우스개 농담과는 별개로 어쩜 그들의 판단이 더 정확하고 용감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설치환 SBS 영상취재팀
    2011-05-20
  • 리비아 전쟁취재기-우리는 선택과 판단을 해야했다
    인트로 얼마 전 선배로부터 리비아 취재기에 대해 글을 써줄 것을 요청받았다. 다녀온 지 두 달이 넘어가고 갑작스런 일이어서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이번 기회에 중동 출장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길게 출장은 다녀왔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사실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하루하루에 대해 일기처럼 써온다면 쉽겠지만 지면을 낭비할 것이고, 리비아 상황에 대해서 쓴다면 얄팍한 나의 지식보다 인터넷이 월등할 것이다. 그렇다고 상투적으로 출장 시 뭘 했고 뭘 했고 줄줄이 나열하는 것도 그다지 재밌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민 고민하다가 이렇게 글을 써보려 한다.   왜 우리는 리비아로 갔는가? 사실 처음부터 리비아로 가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전역으로 불어올 때 우리의 목적지는 이란이었다. 성인현 선배와 함께. 출발당일 하루 전에 연락을 받았다. 내일 이란으로 가라고. 그러나 당시 성인현 선배와 나는 ‘이란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나라 아니다. 우리 가기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이란 생각 외로 불편 없이 갈 수 있는 나라였다. 이렇게 우리의 기나긴 출장은 빗나간 예상을 시작으로 기나긴 여정이 펼쳐지게 된다. 이런 식의 연속되는 빗나간 우리의 예상들이 의지와 우연이 겹치며 이란을 시작으로 마지막 도착지인 리비아까지 발길을 놔주었다. 리비아 오래 있을만한가? 출장은 모든 시간을 포함해서 장장 31일간 다녀왔다. 정확히 한 달. 그것도 꽉~~~ 채웠다. 이란에서 일주일을 시작으로 짧게는 4일 길게는 10일 이상으로 각 나라에 머물렀다. 참 우리의 경로는 이란을 시작으로 두바이 이집트 마지막 리비아다. 결국 리비아에 머문 시간은 11일. 전체 출장의 삼분의 일이다. 이 말의 행간은 곧...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집 떠나면 고생이다. 게다가 말도 안통하고 먹을 것도 그다지 좋지 않다면 아무리 많은 다른 환경에 관한 호기심과 관심도 5일 이상을 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 입맛에 맞는 것은 후라이드 치킨과 감자뿐이었다. 다른 것은 권하지 않는다. 심지어 햄버거도. (우리가 말하는 체인점은 물론 콜라조차도 코카콜라가 없다. 미국에 대한 중동의 심리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주변은 모래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고 밤이고 낮이고 심심하면 들려오는 한방의 총성. 주변에 보이는 여자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얼굴뿐이다. 나처럼 혈기왕성한 건장한 청년에게 이러한 상황은 실망과 더 나아가 절망이다. 중동 미인이 진정한 미인이라지만 난 잘 모르겠다. 상대 여자에게 건네는 눈빛도 실례가 될 수 있다는 말에 힐끔거림을 제외하고는 나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긴 여정을 달래기 위한 필수 아이템 술. 구할 길이 없었다. 매주 금요일 우리의 축구 응원전을 방불케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삶인 이슬람 국가에서, 금기시되는 술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아니 죄의식마저 느끼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다. 달리 간간이 보이는 맥주가 있기는 했다. 한 잔의 맥주 노 알콜. 마신다면 기분에 취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11일 동안만 리비아에 있었던 것이다.   리비아 어떻게 들어갔나? 두바이에서 이집트로 들어오면서 선배들 모두 리비아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리비아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으며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들어갈 수 있는 루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지인들조차도 위험지역이라는 부담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언제 다시 분위기가 역전될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가 선택한 길은 맨땅에 헤딩. 우선 국경까지 가보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이집트와 리비아의 국경 샬렘으로 도착하고 우리는 무작정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PC방, 호텔, 식당. 그 결과 며칠 전 외신기자들을 데리고 리비아로 들어갔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마지막.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때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우리를 데리고 갈 사람 중 물망에 올랐던 사람들이 셋 정도는 됐다. 이중 우리가 선택한 사람의 기준은 외모였다. 우리가 리비아로 들어가는 중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안전이다. 그것을 담보할 만한 사람을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정보는 거의 없다 생각하면 된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얼굴. 어찌 보면 무모했을 수도 있는 방법이었지만 우리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외모를 속일 수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는 말도 통하지 않는 드라이버와 5시간을 조용히 앉아있었다. 우리가 언제 리비아에 도착할 수 있는지도 모른체... 위험하지는 않았나? 위험이라 함은 여러 가지가 있다. 보도에 대한 위험, 환경에 대한 위험, 예상치 못한 발생. 그 중 환경적 위험은 어느 지역으로 가더라도 다 같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단지 그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경험이다. 이는 무엇보다 이번 출장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다. 이번 출장에서는 움직이는 동안 여러 가지의 상황들이 발생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선택과 판단을 해야 했다. 어디론가 이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리비아 도착과 동시에 1시간여 만에 보도를, 전기를 가로등에서 빼올 수 있는 재치도, 위험시에는 어느 것이 위험한지 판단도 해야 했다. 카메라만 들면 이성이 흐려지는 우리들에게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경험은 우리의 안전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경험에서 우러나는 판단이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난 선배와 함께 갔다. 이 말은 직접적으로 내게 오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판단력의 무게를 실감한 일이었다. 출장을 가서도 다른 선배들을 만나며 선배들의 마음가짐과 생활방법들을 엿볼 수 있었다. 단지 밖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선배들로부터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들이야 사소해 보이지만 다들 부담이라는 무게를 혼자서 이겨내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세상 오지, 어떠한 곳으로라도 가야하는 촬영기자들에게 꼭 필요로 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지만 차곡차곡 하나씩 경험이 쌓이다 보면 혼자서도 책임지는 위험 지 출장뿐만 아니라 후배를 데리고 출장을 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때까지 더욱 부지런히 나를 만들어가야,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민창호 KBS 보도영상국
    2011-05-20
  • 대형 사건보도, 희생자와 유족의 사생활 침해 여지 있어
      “대형 사건보도, 희생자와 유족의 사생활 침해 여지 있어”    언론중재위, 언론사에 시정권고 결정 언론중재위원회는 지난 달 8일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대형 사건?사고나 국가적 재난 시 언론의 보도 관행이 희생자와 유족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언론사에 공통으로 시정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희상자와 유족 취재의 언론보도 관행에 대하여 여러 차례 논의한 결과, 슬픔에 빠진 유족이 오열하는 모습을 지나치게 클로즈업하거나 희생자와 유족의 사생활을 상세히 공개하는 보도는 그들의 초상권이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이러한 보도관행의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 밝혔다. 위원회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보다는 재난 수습과 향후 대책 마련에 중점을 두고 피해자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도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며 “이 문제에 대해 언론계가 주축이 되어 학계, 법조계 등과 함께 공청회?세미나 등의 방법으로 개선책 마련해 달라” 고 권고했다. 한편,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2006년 8월 31일 포토라인 준칙을 제정하고 실행해 왔다. 포토라인 준칙 안에는 유족 및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아래 다음 달 17일 서울에서 포토라인 세미나를 개최 할 예정이다. 이번 세미나는 다양한 매체와 방송사들이 설립 된 시점에서 포토라인 준칙을 재정비 하고 취재윤리를 강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정남 기자
    2011-05-20
  • 조중동 종편의 헐값 영상저널리즘
    조중동 종편의 헐값 영상저널리즘 현실로 되나? 종편의 인력 수급...보도영상에 대한 근본적 인식 부족에서 출발 협회 비상 대책위원회 구성, 이후 상황 강력 대처하기로 최근 종편의 인력 구성안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조 중 동 종편사들의 영상취재 인력구성에 대한 문제가 알려지면서 많은 회원들이 공분과 함께 큰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지난 3일 긴급 수도권 분회장 회의를 열고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비상 대책 위원회를 구성했다. 또한 협회 집행부는 최근 모 종편 방송사에 카메라기자의 아웃소싱과 도급회사 설립을 건의해 물의를 빚고 있는 카메라기자 원로를 직접 만났다. 이 원로는 협회 집행부와 만난 자리에서 “첫번째로 카메라기자 조직을 조직 내에 둘 것을 적극적으로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영적인 논리로 그들은 이미 조직 내에 둘 생각이 없다는 것 느꼈다며 “두번 째로 제안 한 내용은 책임이 따르는 도급회사를 만들어 자신들이 저널리스트로 관리해 채용하게끔 해준다” 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그  도급회사를 3년 후에 모 종편사 조직안에 편입 시킬 것을 권고 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원로는 임금을 올리라는 제안도 했다고 전했다. 이 원로는 이런 시도는 우리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현재의 방송 현황과 시장에서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많은 카메라기자들이 공분하는 이유는 왜 이런 저급한 시도를 우리 원로 선배가 해야만 했느냐 이다. 원로 선배들이 종편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고 하지만 어떤 방송사가 이와 같은 타사 조직을 끌어들여 방송사를 출범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의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원로 선배들이 종편사와 접촉하고 있다 는 이야기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일부 종편사는 자사의 인터넷 매체에서 일해 온 VJ 인력을 수급한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그러나, 경제 논리에 의한 저가 인력의 수급은 취재현장에서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 얼마 전 영화배우 조인성의 전역식을 보면 취재 윤리의 중요성을 실감케 한다.  실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누구도 정리 할 수 없었고 취재원인 조인성과 팬, 경호원, 헌병, 그리고 취재기자들이 뒤 엉켜 결국 조인성은 말 한마디 못하고 경호원과 헌병의 호위속에 자리를 떠났다.  그 후 조인성은 취재진을 따돌리고 팬들과 버스 안에서의 비밀 미팅을 했다 고 전해진다. 또 최근에 있었던 김연아 기자회견장에서도 ENG카메라와 6mm 카메라들이 한데 엉켜 난장판이 되었다. 20여팀이 넘게왔다. 아무도 정리를 하지 못했지만 한 공중파 카메라기자가 나서 취재 열을 정비하고 나서야 정리가 되었다. 종편과 신생 보도채널에 우리가 우려하는 점은 20여년 이상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 쌓아 온 상아탑이 그나마 잘 정비되었다고 자부한 취재윤리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을까 해서이다. 경제가 어렵다 하여 값싸게 영상인력과 영상을 공급 받고자 한다면 시간이 지난 후  현재 방송사들과의 격차는 더 없이 벌어 질 수 밖에 없으며 시청자의 외면은 불 보듯 뻔하다.  협회는 앞으로 종편 방송사가 영상취재 조직을 왜곡 시켜 출범한다면 적극적으로 대처 하고 예의 주시 할 예정이다.
    2011-05-20
  • 사주이익 위한 선정, 왜곡 보도영상 피 할 수 없다
    독립성 전문성 외면한 기형적 카메라기자 조직 사주이익 위한 선정, 왜곡 보도영상 피 할 수 없다 -조중동 종편, 보도영상의 독립성, 전문성 외면한 기형적 영상기자 조직 추진 중.   전 사회적 우려와 반대투쟁 속에 국회날치기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허가권을 얻어낸, 조중동 종편이 올해 12월 1일을 방송개시일로 잡고, 본격적인 개국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 종편채널과 뉴스전문채널의 영상취재조직과 관련한 윤곽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본보의 취재결과, 새롭게 출발하는 종편채널들과 뉴스전문채널은 기존의 방송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보도영상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내의 영상취재 조직이 아닌, 저가 외주 인력에 근간을 둔 영상아웃소싱시스템을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종편선정작업에 참여했던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애초부터 방송을 준비하며, 보도와 제작 분야의 영상관련 직종은 자회사의 형태로 운영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의 한 관계자도 ‘영상조직의 간부와 주요 출입처의 일부만을 경력자로 뽑고, 나머지는 VJ기반의 영상취재를 근간으로 할 것 같다.’고 전했다.   TBC시절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욕심을 보이고 있는 중앙일보 종편의 경우, 애초에는 외주위주의 영상조직을 운영하려다, 최근 영상취재의 중요성을 조금씩 인식해 가면서, 자회사형태로의 영상조직 운영을 검토하고 있지만, 내부 인력운영의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저가 VJ인력에 기댄 운영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뉴스채널로 선정된 연합뉴스의 경우, 오랫동안 외신에서 경력을 쌓은 영상기자를 영상취재팀장으로 임명해 기존의 방송사들의 영상취재조직 형태로 영상취재조직을 구성하려했지만, 종편들의 이런 움직임들을 바라보며, 기존의 연합뉴스에서 동영상서비스를 담당하던 저가VJ들을 활용하는 방향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편의 경제성에 대한 의문, 본격적인 현실화 개국을 준비 중인 조중동종편사들과 뉴스채널이 이렇게 비상식적인 영상취재조직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종편의 초기 선정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되어 온 한국방송언론시장에서의 종편의 근본적 필요성과 경제성에 대한 의문들, 신규종편사들의 3-4년 후 불확실한 생존가능성이 현실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편채널과 신규뉴스채널허가 이전부터 많은 방송학자들과 시민사회단체, 현업단체들은 정부나 종편을 추진중인 언론사들의 논리대로, 현재 한국의 경제규모와 광고시장의 규모가 추가적인 종편채널과 뉴스채널의 등장을 통해 방송광고시장을 성장시키는 긍정적 경제적 효과를 절대로 가져 올 수 없다고 예상했었다. 오히려, 공영방송사들이 키를 쥔 공익성과 공정성을 중심가치로 추구하는 현재의 방송흐름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시청자의 주머니에 의존한 상업경쟁체제로 급격히 이행되고, 그 결과, 대재벌과 방송권력이 결합하고, 머독과 같은 다국적 언론자본까지 가세해 여론시장의 다양성이 사라져, 종국에는 종편사를 추진 중인 언론사들조차 생존의 기로에 서며 한국방송언론 전체를 심각한 한계상황에 직면케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전문가들의 예상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한 두 개의 종편만 생긴다면 자신들은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했던 종편추진 언론사 모두에게 정부가 종편과 뉴스채널을 모두 허가해 주면서, 종편허가 이전에 제기되었던 사회적 우려는 보다 빨리 앞당겨 질 수 있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종편사들은 각 방송사의 유명 PD들을 거액에 스카우트하고, 인기연예인들을 보유하고, 히트드라마들을 제작한 외주제작사와의 상호 제휴관계를 맺으며, 자신들의 유일한 생존을 위해 기존 방송사들의 시청률을 뺏어오기 위한 작업에 막대한 초기투자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막대한 초기자본의 지출이 이어지면서, 그 지출비용을 감당하고, 줄이기 위해, 조중동종편은 방송사의 인력인프라의 규모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영상은 기사의 보조수단’ 조중동 종편의 보도영상에 대한 근본적 인식부족과 왜곡 영상기자조직의 경우, 조중동종편과 신규뉴스채널은 기존에 자신들이 종이매체로서 가진 여론영향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기존인력을 활용하고, 방송뉴스의 필수 취재제작인력인 영상기자를 보조적인 인력으로 설정하는 뉴스조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취재 중 만난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현재 우리 회사의 종편은 원소스멀티유즈의 측면에서 철저하게 본사의 기자와 그들이 써내는 기사를 다양하게 이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조중동종편사들의 인식에는 종이매체로서 갖는 영상에 대한 인식적 한계가 뿌리깊게 작용하고 있다. 신문사신문사의 사진기자로 일하다 한 방송사의 영상기자로 전직한 A기자에 따르면, 신문사의 경우, 신문에서 사진뉴스가 차지하는 역할이 방송에 비해 절대적이지 못하다 보니, 199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기존의 사진부서를 전문성을 가진 조직에서 대학생기자, 인턴기자, 계약직기자, 프리렌서기자들을 이용한 하청가능을 가진 조직으로 전락시키려는 기획들이 계속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신입사진기자의 채용이 억제되면서, 인력의 부족현상을 메꾸기 위한 편법으로, 출입처 위주의 과도한 사진영상의 공유가 이뤄지면서, 영상은 조직의 체계만 갖추면 쉽게 얻어질 수 있다는 의식이 신문사 내부에서 자라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조중동종편사들은 영상기자 조직을 기사의 내용을 보조하거나, 기사의 당위성을 제고하고, 강화시키는 수단으로서 보도영상을 평가하고 이용하려하고 있다. 최근 한 종편사의 영상기자 조직과 관련해 자문을 맡은 영상기자 출신의 원로는 ‘방송사를 준비하는 회사의 인식이 너무나 무지한데 놀라움을 떠나 걱정이 앞선다.’고 평했다. 여기에, 영상기자 조직을 준비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많은 방송경력자들이 현장 취재나 제작경험이 미흡한 취재기자출신으로서 영상기자조직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거나 왜곡하고 있다는 증언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사주-편집책임자-취재데스크-취재기자-영상제작자’로의 수직서열화 한 종편사의 자문에 참여했던 영상기자는 자신이 자문하는 종편사의 아웃소싱영상취재운영계획의 현실성에 의문이 들어, 계획의 기획경로를 물었다고 한다. 이 계획은 한 케이블뉴스채널과 지역방송사에서 데스크를 지내다 스카웃된 기자들에 의해 작성되었는데, ‘현실에서 영상기자와 영상기자조직의 업무와 역할을 너무 왜곡해 놓아서, 회사의 이익보다는 어떤 개인적 감정과 경험이 개입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한 방송사에서 10여년의 취재경력을 갖고, 새로운 종편사에 스카웃된 취재기자는 ‘스카웃이 확정되고서 비로소, 영상기자조직이 어떻게 계획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의 상태에서 이전 직장이 갖고 있던 영상취재제작시스템과 전혀 다른, 취재기자 혼자서 모든 것을 떠맡아야 하는 시스템을 가진 이곳에서 이전 직장과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들지만, 사주가 있는 회사에서, 그것도 새 직장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이런 사례로 볼 때, 이들 신규 종편들이 영상기자조직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운영계획들은 철저하게 3-4년 후에 종편의 생존을 위한다는 논리에서, 사주의 개인적 이익과 인식에 기반 해, 소수의 폐쇄적 활동에 의해 기획,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주이익과 입장에 기반 한 종편사들의 신규 방송조직의 기획안들이 현실화되면, 종편사출범 이전부터 논의 되었던 사회적 우려들이 현실에서 완전하게 구현될 것으로 보인다.    -사주의 이익에 기반 한 편향왜곡보도의 현실화와 여론시장 왜곡 가능성이 커짐 ->종편사들, 영상저널리즘 독립성에 기반 한 방송사출신 영상기자들의 ‘공정방송’요구,   ‘집단행동’의 원인제거   종편사들이 영상취재조직의 아웃소싱이나 외부조직으로의 기형적 형태를 추진하는 또 하나의 가장 큰 이유는, 영상기자가 현장기자이자 방송보도의 최종완성과정의 한 명으로서 갖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입장표명과 개입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취재현장에서 취재된 사실이나 인터뷰들이 신문지면 등을 통해, 압축왜곡된다는 논란이 존재하는 현실과 달리, TV보도는 분업과 협업의 과정을 통해 이런 논란의 행위가 작동 되는데, 많은 한계와 비밀유지가 어려운 상황이 존재하므로, 취재와 편집의 과정에서 사주의 의지와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이를 좀 더 수직서열화 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따라, 취재, 제작의 권한이 협업과 분업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특정지시를 소화해내는 방향으로 보도부문의 조직이 갖춰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존의 방송사 조직에서 영상기자들은 자신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취재보도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구현하는 한 주체로서,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1988년 사회 민주화 이후, 공정방송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영상기자들이 협회차원의 활동이나 노동조합의 활동에 더욱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그래서, 기존 방송사의 경험을 가진 영상기자들을 조직의 내부구성원으로 위치시킬 경우, 자칫 공정방송의 요구나 이에 대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어, 종편사들은 이에 대한 고려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공정방송이나 보도를 요구하며, 파업이나 취재업무의 사보타주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내부조직에 소속된 정규직의 영상기자들이 카메라를 놓고 편집기를 놓을 경우, 기사는 누가 읽어도 되지만, 영상은 아무나 대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한 신분에 기반 한 영상기자조직의 왜곡이 이뤄질 경우, 궁극적으로 신규 조중동 종편사들은 그들이 원하는 ‘사주-최고편집자-데스크-현장기자-외주영상기자’로 이어지는 수직서열화를 통해 사주의 이익과 입장이 방송과 여론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구조를 완성하며, 여론독과점과 광고시장 독점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   - 40년간 쌓아온 한국 영상기자의 저널리즘 체계와 전문성, 윤리 위협할 듯   가짜 영상저널리즘과 대비필요 조중동 종편채널이 추진하고 있는 사주의 이익을 위한 왜곡된 영상기자조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이다. 하지만, 조중동종편이 출범하면서 갖게 될 왜곡된 영상기자조직은 중소규모의 지역방송사나 PP들에게 초기 몇 년간은 사측으로부터 단순한 경영 비교의 자료로 이용되며, 영상기자 조직에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협회와 각 회원사는 좀 더 긴밀하고 유기적인 취재-편집시스템의 정비와 직업-취재보도 윤리의 재정비와 강화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각 출입처의 POOL단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과 재편이 불가피하고, 보도영상에 대한 방송사별 법적권리 표시를 강화하며, 영상기자 개개인의 업무적 재평가와 재배치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난 20여년 간 협회가 벌여왔던 피의자초상권 문제, 보도영상의 선정성 배격, 현장 취재질서의 문제, 보편적 시청자 알권리 운동과 같은 다양한 보도영상과 관련한 정책적 목표와 개혁운동들을 더욱 강화하고 이슈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사주이익에 기댄 가짜 영상저널리즘과 공익과 공정성을 향한 진짜 영상기자들의 영상저널리즘의 진실을 향한 전쟁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                                                                                                          편집위원 공동취재  
    201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