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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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5월>저자 김정은 기자를 만나다
    저자 김정은 ; 1976년 출생.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2007년 카메라기자로 KBS 보도 본부에 입사했다. 보도영상국 소속으로 변양균&신정아 사건,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숭례문 방화 사건, 용산 철거민 참사, 신종 플루 대재앙 등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을 취재하면서, 전직 대통령이 1년 만에 피의자로 전락한 희대의 사건과 마주하게 되었다. 5월 23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하자 법무부 장관은 수사 종료 성명을 발표했고, 전직 대통령의 뇌물 스캔들과 관련된 의혹들을 영구 미제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검찰이 먼저 제기한 권력형 비리 사건은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끝나 버렸다. 저자는 당시 검찰 수사 과정과 서거 국면을 보도했던 한 사람으로서,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책임을 고민하다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년에 걸친 취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2009년 5월'을 집필했다. 1. <2009년 5월>을 썼습니다.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기억에 남는 일 등 소회를 말한다면?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가장 먼저 하시는 질문이 “혹시 노빠세요?”입니다.(웃음) 우리 사회 정치 논쟁이 그만큼 단순합니다. 어떤 분은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느냐?”, “그분을 지지하고 변론하기 위해 책을 썼느냐?”고 묻습니다. 책을 쓴 것이 그분을 지지하기 위한 행위라면 책을 쓰지 않는 것은 그분을 반대하는 행위가 되나요? 우리 사회가 모든 행위와 언론을 그처럼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썼던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가물가물합니다. 다만 매일 매일 책에 대한 압박과 불안에 시달렸던 생각만 납니다.(웃음) 당시 제가 기록했던 집필일기를 보면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흘러갔던 게 다시 떠오릅니다.(웃음) 제 글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관련 인사들의 인터뷰가 없으면 안 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저는 출판사에서 그래도 어떤 도움을 줄 것이라고 약간의 기대를 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가장 힘들었던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구성>일 것입니다. <구성>이 나와야 집필을 시작할 수 있는데 <구성> 초안이 서너 달이 가도록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제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 1차 구성안이 나온 게 2010년 8월쯤이었던 것 같은데요. 책을 써보자고 출판사와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게 2월이니까 약 6개월이 걸린 것입니다. 집사람이 임신해서 서울 친정에 있었고 저는 태백에 있으면서 매주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왔는데 서울 가는 길 위에서, 그러니까 운전하다가 구성 초안이 갑작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때 차 안에서 혼자 운전하다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모릅니다.(웃음)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무슨 복권에 당첨됐나 싶었을 겁니다. 2.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무엇보다도 사회적 과오에 대한 채무자로서의 부채의식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는 마치 요즘 장마나 태풍처럼 매우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순식간에 우리 사회 한 부분을 휩쓸어버리고 망가뜨린 후 사라져버렸습니다. 막상 검찰 수사가 진행중일 때에는 당시 상황이 몹시도 강력하고 당황스러워서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놓치지 않고 검증해야 될 사실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따져서 정리하고 처리할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당시를 되돌아보면서 허탈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역사이고 지나가버린 사실에 불과합니다만 사회 차원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본다면 그러한 사실은 한 사회의 부채가 되고 과오가 됩니다. 저는 바로 그러한 부채, 과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언론은 그 부채나 과오에 대한 제1순위 채무자입니다. 언론은 당시 상황에 커다란 책임이 있는 당사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일종의 부채의식이죠. 한 사회가 어떤 상황을 핸들링하는 과정을 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스트로스 칸  IMF 총재에 대한 수사가 제2의 국면을 맞고 있는데 과연 비슷한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혹은 과거에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이나 빌팽 전 프랑스 총리의 사르코지 음해 의혹 같은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하기를 바라고 또 거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3. <2009년 5월>의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제가 책에는 썼지만 편집 과정에서 빠진 것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로맹 롤랑의 말인데요. ‘패배자들로부터 그들이 불공평한 실패에서 얻은 일종의 구원의 권리, 즉 모욕을 당하고도 자부심을 가지고 운명에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권리까지 빼앗으려고 하지 말라.’ 이것이 제 책의 주제를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글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정치적인 표현인데요.(웃음) 당시 사건을 보는 다양한 견해가 있겠습니다만 검찰 수사가 몹시 무리했고 정치성을 띄었다는 데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정 정치 세력이 권력을 사유화하려고 시도하더라도 성숙한 사회는 그러한 전횡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러한 논의 이전에 근대적 과제였던 <공포주의>, <광기>의 청산부터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향후 계획에 대해 간략히 말한다면? 지금 제가 5년차인데 한참 일을 많이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들께서 저를 볼 때마다 태백에서 많이 쉬었냐고 물으시는데 사실 저는 지옥 속에서 1년을 보냈거든요.(웃음) 그런데 어쨌든 서울에서 벗어나서 한적한 곳에 와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재충전의 시간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군 제대한 게 25살 때였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집에서 가장 노릇 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일상 속에서 짬짬이 쉬는 노하우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웃음) 책을 읽는다든지 카페나 극장에 자주 간다든지. 당분간 글은 쓰지 않고 일하고 취재하면서 그렇게 좀 시간을 보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난 이후 연말쯤에는 소설 단편집을 쓸 계획입니다. 장편에 대한 구상도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단편집을 먼저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동료, 선후배 분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게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리: 조승연 KBS 보도영상국
    2011-08-22
  • 미디어가 만들어낸 유럽 신한류 열풍
    K팝의 고향, 멍게와 번데기를 먹는 나라 미디어가 만들어낸 유럽 신한류 열풍 최효진 (미디어아이 프랑스통신원) “한류, 제니스에 몰려들다” 지난 달 10일과 11일 양일간 파리 제니스 공연장에서 열린 SM타운 파리 콘서트를 앞두고,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피가로 지(紙)가 콘서트와 프랑스에서의 한류 열풍 현상에 대해 소개하고자 앞세운 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을 위시하여 이번 파리 K팝 공연에 관한 현지 언론 보도는 다분히 자극적이고, 심지어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르몽드와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한국전쟁과 특히 “인천상륙작전”을 의식한 듯, K팝과 한국 드라마 등 한국대중문화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도 상륙했다 혹은 정복했다는 식의 기사가 많다. 그리고 그 문화적 흐름의 근원지인 서울 SM기획사를 찾아, 한류 스타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했다. 수년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쳐 기계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들을 문화상품으로 제작해내는 스타시스템과 그로부터 생산되는 문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프랑스 현지 언론들도 프랑스에서의 한류 열풍을 대서특필했다고 알려진 듯 한데, 각 매체 문화 면은 현지에서의 한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층적으로, 그리고 신랄한 비판으로 파고 든다. 일례로 한 민영TV매체인 M6의 매거진 프로그램에서는 이번 콘서트를 이끈 큰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한류팬 50여 명의 한국단체관광을 동행취재했다. 약 10분 내외의 분량으로 한류를 소개한 이 프로에서 취재진은 이들 소녀팬들이 K팝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담는 한편,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프랑스 소녀들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에 한국 문화를 발견하는 과정을 같이 담았다. 이들은 낮에는 남대문, 인사동과 같은 서울 시내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국내 주요 방송 3사의 음악프로그램 녹화장을 찾는다. 그런데, 이들이 새로이 문화적 발견이라고 소개한 아이템은 민박집 화장실에 설치된 비데, 재래시장에서 먹는 비릿한 멍게와 징그러운 번데기, 이런 것들이다. 한국을 조금 아는 시청자들은 한국 음식 중에 맛있는 것도 참 많은데, 왜 하필 저런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는 반응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취재진 역시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급하게 취재일정이 잡힌 터라 한국 문화에 대한 사전조사가 부족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 프로는, K팝과 한류를 소개하기 보다는 거기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십대 소수 마니아들의 현상 보도에 그쳤다. 실제로 현지에서는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소소한 논쟁이 오가고 있다. 한국전쟁이 났을 당시, 프랑스 참전 군인들이 한국이 베트남 옆에 붙어 있는 나라인 줄 알고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부산항에 도착했다는 시절이 있었는데, 불과 반세기 만에 우리 말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프랑스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말그대로 한류 열풍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0일 공연 직후, 기자회견에서 슈퍼주니어 리더 이특이 “10년 전 프랑스 꼬마 조르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큰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프랑스팬들이 우리 노래를 따라 불러준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말처럼, 분명 몇 십 년 사이 한국문화는 특히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현지에 무섭게 상륙하고 있다. 주불한국문화원 등에서 사물놀이나 판소리와 같은 일회적인 전통문화공연에 그쳤던 현지 한국문화 소개는 이제, 유투브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는 온라인 세상에서 현지 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급속도로 널리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온라인 세상에 모인 유럽 한류팬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기회는 어쩌면 지난 달에 있었던 콘서트가 보여준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10여분 만에 매진된 이틀 간의 공연 티켓 1만 4천여 석을 메운 소수 마니아들의 문화가 우리가 말하는 유럽 한류의 전부라는 분석도 있다. 300 여개가 넘는 파리 공연장 중에서, 그것도 7천여 석에 불과한 작은 공간에서 개최된 콘서트를 두고 우리는 신한류라는 너무 과장된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번 파리 K팝 공연은 규모 면에서 보면, 같은 가수들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개최하는 콘서트에 비하면 너무나 작다. 예를 들어, 왠만한 한류 스타들이 일본의 도쿄돔에서 공연을 할 때, 이 객석을 채우는 한류팬들의 수가 2만 여명이 넘는다. 프랑스 인기 가수들이 주로 공연하는 파리 베르시 공연장이 이와 비슷한 규모로, K팝 공연을 여기서 개최할 경우 이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발짝 더 뒤로 가서 보면, 프랑스에서의 신한류 열풍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영화 등을 위시하여 한국 대중문화에 푹 빠진 몇몇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에 불과하다. 여러 이민사회가 모여사는 프랑스가 이른바 “똘레랑스(관용)”으로 하나 둘 자신들의 문화에 흡수해가는 다양한 문화적 흐름 중에 한류가 있다. 프랑스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에 북아프리카식 덮밥요리인 쿠스쿠스가 생활화된 것처럼, 일본 망가에 빠진 프랑스 젊은이들이 자주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처럼, K팝과 한류 콘텐츠는 이제 점차 일부 프랑스 젊은이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있다. 이들이 한국 대중가요와 드라마를 접한 시기를 물어보면,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소녀팬일 경우 대부분 적어도 5년에서 6년은 되었다고 답한다. 일본 드라마와 J팝, 그리고 망가 등을 보다가 한국 것들을 접하게 되었다고. 비록 시작은 타 문화에서 흘러들어왔지만, 이들에게는 이미 최신 K팝을 듣고 가사를 배우는 일, 엊그제 지상파 방송 3사에서 방영된 트렌디 드라마를 섭렵하는 일, 각종 국내 연예뉴스 스크랩 등은 이제 한국인들과 같은 일상이 됐다. 최근 무섭게 불어닥치는 바람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유럽땅에 조금씩 스며들어온 가랑비 같은 것이 우리가 말하는 유럽 신한류이다. 우리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을 아시아가 아닌 다른 땅에서 만났다고 자축하는 분위기는 이쯤해서 접어두고, 한국 언론은 이들 한류팬들이, 그리고 그들 주변의 친구과 가족 등이 K팝으로 알게 된 한국이라는 나라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모험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이 멍게와 번데기 같은 희한한 음식을 먹는 나라라는 식의 인식에서 벗어나 K팝이 보여주는 역동적이고 다양한 한국문화의 진면목을 그들의 생활 속으로 끌어가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11-08-04
  •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취재 후기
    돌잡이로 ‘초심’을 잡아본다!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취재 후기- 뜻밖의 만남   “형!” 누군가 날 형이라 부르며 내 팔을 건드렸다. 집회 현장에서 날 형이라 부를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의아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게 웬걸. 대학교 후배였다.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친구들과 광장에 왔는데 내가 보여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카메라가 신기하다는 둥, 화면발이 안 받으니 자긴 찍으면 안 된다는 둥, 농 섞인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나 곧 후배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형, 좋겠어요. 직업도 있고 보람된 일도 하시고 요즘 우리는 등록금 때문에 장난 아니에요.”라는 말과 함께 후배는 약간 기가 죽은 모습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 난 다시 뷰파인더를 바라봤다. 조금 전과 비교해 현장이 다르게 느껴졌다. 학생들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광장에 모여 목청을 드높였다. 그리고 난 그들을 기록하려고 현장에 와있다는 것을 후배를 통해 새삼 다시 느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REC버튼을 누르는 엄지손가락엔 힘이 들어갔다. 현장 분위기를 전하다   주인공들은 축제를 즐겼다. 야구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간 파도타기로 흥을 돋우었다. ‘노찾사’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는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또한, 무대 앞에서 학생대표가 연설할 때는 이내 진지해졌다. 학생 대표의 말에 동의하며 박수를 보내는 순간엔 비장함까지 묻어나왔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아주머니, 그리고 나이 든 할아버지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열기는 더해갔다.   집회 후, 학생들은 청계천에서 시청으로 거리행진을 했다. 약 1시간 가까이 계속된 행진이었지만 큰 이탈 없이 시청까지 이어졌다. 시청에선 수백의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경찰의 방송에 삼엄한 분위기가 흘렀다.   ‘폭력사태가 벌어진다면…?’이란 가정을 해가며 머릿속이 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냉정하게 관찰하자는 주문을 외우면서 사방을 주시한 긴장된 순간이었다. 다행히 학생들은 도로에서 구호한 번 더 외친 후, 거리행진을 마쳤다.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 긴장했지만 평화롭게 끝난 집회였다. 현장에서 생각하다   등록금은 비싸다. 많은 국민이 나와 같은 생각일 거로 생각한다.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비싸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알바를 하느라 학업에 지장을 받는 대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학생들과 비교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게 되어 취업 경쟁력도 잃게 될 우려까지 생긴다. 또한, 등록금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 중,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졸업 후에도 비정규직에 저임금이라는 덫까지 걸려 신용유의자로 전락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등록금이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관여했다는 사실을 면하긴 어렵다.   반값이다! 30%인하다! 숫자놀음은 중요치 않다. 다만,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사라질 수 있는 현실적인 등록금 책정으로 대학생이 대학생다운 생활을 해야 한다. 이제 갓 돌잡이 한 촬영기자   집회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 오늘 취재하며 느꼈던 것을 되돌아본다. 아직 경험이 미천한 신참 촬영기자인 나에게 이런 작업은 매우 어렵다. 후배를 만난 날이어서 그런가. 후배 눈에 난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집회의 본질을 그대로 담아내는 열정적인 기자로 비쳤으면 좋겠다. 그러나 금세 자신이 없어졌다. 기계적으로 소위, ‘그림이 될 만한 곳만 찾아다니진 않았는지.’ 반성이 밀려온다. 그러고 보니, 7월이 됨으로써 촬영기자가 된 지 정확히 1년이 흘렀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던 다짐을 한 지도 1년이 된 셈이다. 그러나 그 간에 난 초심을 잃고 흔들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촬영기자를 준비할 때의 확고했던 믿음이 현직에 와서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아기는 태어나서 처음 맞는 생일에는 돌잡이를 한다. 나 역시 촬영기자로 태어난 첫 번째 생일인 만큼 스스로 돌잡이를 시켜본다. 무엇을 잡을까? 특종을 잡는 내는 ‘예지력?' 욕심이 굴뚝이지만 참는다. 고민 끝에 다시 한 번 ‘초심’을 잡아본다. 초심을 잡고 진실을 포착하고자 노력하는 촬영기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이번엔 죽을 때까지 안 놓을 작정이다. MBN 영상취재부 배완호
    2011-08-04
  • 동아일보, "YTN돌발영상 연출" 결국 정정보도 내
    동아일보, "YTN돌발영상 연출" 결국 정정보도 내 동아일보의 연출영상이란 표현은 부적절 지난해 안상수대표의 보온병 포탄 발언을 방송한 YTN돌발영상에 대해, 연출된 것이라 보도했던 동아일보가 결국 정정보도를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는 화해권고의 형식으로 동아일보의 정정보도를 결정했고, 이에 동아일보는 지난 7월8일자 신문지면과 인터넷에 법원결정에 따른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보도문에서, "YTN이 취재당시 안대표의 포탄발언을 방송카메라기자가 연출없이 촬영한 것임을 알려왔고, 본보의 연출영상이란 표현은 부적절했기에 이를 바로잡는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1일자 "연평도 간 안상수, 보온병 보고 '포탄'- 알고 보니 방송사의 '연출 영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장면은 포탄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에 따라 방송사 카메라기자들이 안 대표에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요청해 촬영한 '연출영상'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또한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을 빌어, "방송 기자들이 자신들의 요청으로 '그림'을 '연출'하다가 빚어진 실수인데 전후 과정을 밝히지 않은 채 방영한 것은 방송윤리상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YTN은 취재과정에서 연출은 없었다며 즉각 반발했고, 언론중재위에 동아일보를 제소했다. 당시 언론중재위원회는 직권조정으로 동아일보의 정정보도를 결정했지만 동아일보가 이에 불복, 이의신청을 하면서 이 사건은 직권조정을 거부하면 자동 민사재판으로 넘어간다는 원칙에 따라 법정공방으로 비화됐다. 하지만 여러 차례 재판이 열린 과정에서 동아일보가 YTN과의 조정을 신청했고, 재판부가 최종 화해권고결정을 함으로써 언론사간 일었던 다툼은 동아일보의 정정보도로 일단락됐다. ▼ 바로잡습니다 ▼ YTN은 지난 12월1일자 본지 A8면 “연평도 간 안상수, 보온병 보고 ‘포탄’ 동영상 알고 보니 방송사의 ‘연출 영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관련하여, “취재 당시 방송사 카메라 기자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안 대표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더니 안 대표가 문제의 보온병을 들고 ‘이게 포탄’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연출 없이 그대로 촬영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본지의 ‘연출 영상’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표현이기에 이를 바로 잡습니다. ======================== 동아일보의 정정보도 게재로 법정공방은 끝이 났지만, 남긴 문제점들은 뒷맛을 개운치 않게 했다. 영상취재기자 역할에 대한 몰이해와 팩트확인의 절대부족, 잘못된 기사표현과 자신들의 잘못을 끝까지 인정치 않던 오만함까지.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위에 열거한 문제점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정남 기자
    2011-07-26
  • SNS시대 영상저널리즘
    SNS시대 영상저널리즘                                            비는 무섭게 퍼붓고 있었다. 지상파 방송, 뉴스채널, 통신사 등에 폭우와 관련된 예보나 특보는 없었다. 반면 트위터 타임라인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첨부된 멘션들이 그득했다. 밖에 내린 빗방울이 트윗으로 오롯이 환생하는 듯 했다. 광화문차선이 없어진 3~4시간 후에야 지상파는 특보를 시작했고, 이보다 1~2시간 이른 시간 뉴스채널들은 특보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추석 때 일이다. 트위터는 단순정보에 그치지 않았다. 우회를 유도하고 침수 피해시 안전수칙과 사후관리 등에 관한 내용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기존 미디어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정보보다 더 세분화되고 적확한 내용들이 실시간으로 교류되었다. 추석 연휴라지만 제대로 물먹은거다. 이튿날 언론사들은 ‘트위터의 힘’이라는 아이템으로 스스로를 위안 삼았다. 뉴스소비시대에서 뉴스생산시대로 헤게모니가 옮겨가고 있다. 기존의 막대한 비용과 매개체를 이용해야만 가능했던 메시지의 전달과정이 기술진화에 힘입어 누구나 쉽게 생산ㆍ유통ㆍ공유가 가능해졌다. 소수에 의한 정보 독점의 카르텔은 분화되는 반면 개방성에 중심을 둔 플랫폼 서비스에는 다수가 참여한다. 영상저널리즘도 매한가지다. 고가의 장비와 일부 훈련된 기자들만이 향유했던 영상독점시대가 저물고 있다. 모바일 기기만으로 불특정 다수가 Anytime, Anywhere에서 취득한 정보들이 네트워킹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산되고 확산된다. 특히 각종 사건·사고의 최초접근이 가능하고 최초 영상과 사진들에 대한 확보도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뉴스가치가 높은 결정적 영상들의 대부분은 제보자들에 의해 채워진다. 앞서 언급한 수도권 폭우사태, 연평도 포격현장, 지하철 성추행, 부산오피스텔 화재 등 그 사례는 부지기수다. 수용자들의 진화는 거듭되고 있다. 단순 정보제공자를 넘어 아젠다를 사회에 던져 변화를 이끈다. 신지수 사건이나 신라호텔 한복사건 등의 시발은 SNS였다. 하지만 이런 SNS콘텐츠들은 소위 아마추어나 일반인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공유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정보에 대한 검증과 확인의 게이트 키핑과정이 필요하다. 파급력이 큰 영상정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디지털 시대에 가공, 연출 및 재연 등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공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언론사입장에서는 보도에 신중성을 기해야한다. 속보경쟁에서 즉흥적으로 인용보도 되는 경우 오보에 노출될 가능성은 커진다. 또한 대부분의 영상들이 저화질의 낮은 품질이고 촬영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보니 구성 또한 옹골지지 못하다. 따라서 뉴스가치가 높은 최초영상에 언론사 내부적으로 고품질의 안정적인 영상취재를 더해 구성력과 전달력을 높이는 후반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의 권리침해, SNS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등의 법적문제도 인용보도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저렴하면서도 고화질, 그리고 컴팩트한 광학장비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며 이로 인한 보도영상의 일반화는 심화될 것이다. 변화는 불가피 하다. 하지만 원칙이 우선이다. 수십 년간 한국보도영상이 지켜온 공정성, 객관성, 정확성은 영상기자가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다. 이부분에 마지노선을 명확히 긋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일 것이다. 뉴스의 전달력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제작능력 배양(NLE, 보도그래픽 등), 보도영상의 스토리텔링化, 고도화된 장비의 도입과 운용, 자체적인 콘텐츠 제작능력 배양, LTE(Long-Term Evolution) 상용화로 도래할 상시 생중계시 프로듀서로서의 연출ㆍ기획력 등 뉴스제작의 최일선에서 그 역할은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해 지고 있다. 귀결은 전문성이다. 전문성 강화는 영상기자 안팎으로 지속적으로 주창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과거 보도영상의 독점적 지위에서는 생존에 별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무시돼 왔다. 전문성은 일부기자와 학자의 몫이고 영상저널리즘은 뉴스를 쉽게 전달하는 것이 임무라는 인식이 불과 몇 해전만해도 기자 사회에 만연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한 면 혹은 두면이나 털어 수놓았던 사진르포기사는 깔끔한 그래픽과 삽화로 대체되었다. 신문사에서 신입사진기자를 선발하는 채용공고는 씨가 마른지 오래다. 포토저널리즘의 쇠퇴. 이제 시대는 영상기자에게 영상저널리즘의 역할을 묻고 있다. 김재헌 MBN 영상취재부
    2011-07-21
  • 평창올림픽 유치 취재기(남아공 더반)
    감격의 순간을 담느라 감격을 억눌러야 했다 평창,,,, 자크로케 IOC위원장의 발표순간 모든 유치위원회 관계자와 평창 서포터스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유치위원회 관계자와 기자단 숙소인 리버사이드 호텔에 마련된 야외 응원 장소에서 취재중이던 나도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평창의 도전과 나와도 인연이 깊다. 2003년 7월 프라하에서 열렸던 115차 IOC 총회도, 2007년 과테말라에서 열렸던 IOC총회에도 취재를 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평창의 첫 도전무대였던 프라하는 KOREA POOL로, 두 번째 도전 장소인 과테말라시티는 청와대 기자단으로 패배의 고배를 마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만 했다. 이번 세 번째 도전은 그래서 남다른 마음이었다. 투표가 진행된 6일, 총회장에선 투표가 진행되었고, MPC(Main Press Center)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기자실이 술렁거렸다. 접전이 예상되었으나 1차 투표에서 개최지가 결정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평창이 과반이상의 표를 획득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발표는 현지시간 오후 5시, 나는 서둘러 평창서포터스들이 야외응원을 하고 있는 리버사이드 호텔로 이동했고, 숨죽여 발표순간을 기다리는 서포터스들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자크로케 위원장의 손에 들려진 개최도시 쪽지가 펼쳐지고 평창,,,발표가 되는 순간, 숨죽여 기다리던 관계자와 서포터스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울리며 기쁨에 눈물을 흘리고 평창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고, 이 감격의 순간을 영상에 담느라 나는 감격을 잠시 억눌러야 했다. 123차 IOC 총회가 열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더반은 남아공의 남부에 위치한 무역항이다. 남아공으로 출발 전 걱정거리였던 인터넷 송출 속도는 MPC 에서는 속도가 500Kbps 정도로 그림을 보내기엔 안정적이었다. 또 무선인터넷 모뎀의 속도도 300Kbps의 속도가 나와서 MPC가 아닌 다른 현장에서도 영상을 파일 변환 후 송출할 수 있었다. 평창의 환호와 감격은 이제 조용히 성공적인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변해야 하고 나라와 유치위 그리고 언론사도 7년 앞으로 다가온 동계 올림픽의 알차고 내용있는 준비를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 송록필 MBC영상취재부
    2011-07-21
  •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취재기(평창) 꿈은 현실이 되었다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이 열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쿨러닝> 혹은 800만 이상의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 영화 <국가대표>를 관통하는 주제는 동계 스포츠에 소외된 이들의 현실 극복이다. 대한민국 평창이라는 곳 역시 그간 동계올림픽에 소외되었다. 하지만 선택은 평창!!! 꿈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의 꿈은 전 세계 곳곳에서 동계 스포츠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지역 선수들이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라는 모토는 IOC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고 한다. 지극히 쿨러닝적이며 국가대표틱한 정서로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개최지 선정의 기쁨과 흥분의 순간도 잠시. 모두들 떠난 알펜시아 현장에서 떠오르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동계올림픽 상위권을 달려온 우리나라지만 특정종목에 편중 되어있고, 아스팔트에서 봅슬레이를 연습해야 하는 현실이 마음을 억누른다. 과연 내 눈 앞 지금은 초록의 스키점프대에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비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리고 소망한다. 개인적으로 동계스포츠를 좋아하기에 어릴 적 스케이트와 썰매를 시작으로 스무 살 무렵엔 스키, 이젠 스노우보더로 겨울을 보낸다. 솔직히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되길 기대했던 건 제 이기심이기도 하다. 동계올림픽 유치로 제 개인적인 취미에 좋은 환경이 조성될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부디 평창의 성공과 저의 겨울철 이기심이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김정원 YTN 영상취재부
    2011-07-21
  • 영상취재 조직 왜곡 우려
    동아종편 채널A 카메라기자 용역 입찰 영상취재 조직 왜곡 우려 신생 종편채널과 보도채널이 경력 공채와 신규 인력 채용을 진행 중이다. 올해 종합편성과 보도채널이 공채로 뽑은 경력기자의 규모가 7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jTBC가 중앙일보와 신입기자 통합 채용에 나섰고, 채널A, TV조선 등은 하반기 채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같이 종편사의 신규인력 채용이 본격화 됨에 따라 우수 인력 확보와 기존 인력에 대한 이탈 대비로 언론사들의 행보도 빨라지고있다. 일부 언론사는 종편의 인력 수급이 끝난 후에 신규 인력을 채용한다는 계획까지 나돌 정도로 기자사회에 종편과 보도채널의 경력 및 신규 채용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알려진 데로 지상파 카메라기자들의 이동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7일 동아일보 종편인 채널 A에서 카메라기자 용역 입찰을 마감해 3~4개사가 접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에 참가한 용역회사는 기존 방송용역 회사 1~2개사와 카메라기자 원로 선배들이 중심이 된 2개사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또, 연합뉴스의 보도채널 뉴스와이가 카메라기자 경력 사원 전형 과정에서 기존 연합뉴스 노조의 반발로 채용을 철회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경영자본 논리에 의한 저가 인력의 수급은 취재현장에서 여러 문제점이 보인다. 지상파방송과 보도채널이 수 많은 채널 중에서도 여전히 높은 시청률과 우수한 신뢰도를 형성하는 것은 많은 이유 중에서도 내부 구성원들의 소속감에 따른 자부심과 기자로서의 사명감으로 경쟁력을 높였다고 많은 언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많은 카메라기자들은“영상취재 조직을 용역으로 왜곡 시켜서 출범하는 것에 한탄하며”“경영의 효율성으로 값싸게 영상인력과 영상을 공급 받고자 한다면 시간이 지난 후 현재 방송사들과의 격차는 더 없이 벌어 질수 밖에 없고 시청자의 외면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한다. 지상파 방송도 이미 경영 논리로 접근 한 저가 외주 취재물이 물의를 빚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 지상파 방송의 아침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케이블TV 방송은 저급한 선정적 영상과 보기 어색한 재연 영 상의 난무, 그릇된 영상문법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는 물론 시청자들의 비난을받고 있다. 학자들은 영상저널리즘이 촬영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기자로서의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하고 용역 카메라기자가 저널리스트인지를 오히려 반문했다. 덧붙여, 현장취재나 제작경험이 없는 경영진이 영상취재 조직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우려했다. 이에 저널리스트의 사명감을 찾을 수 없는 신생 종편사와 보도채널의 뉴스 탄생에 많은 카메라기자들이 공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2011-07-21
  • 줌인 <용역은 절대 목숨걸지 않는다>
    종편 채널들이 개국을 앞두고 경력과 신규 인력 채용에 한창이다. 그러나 우려 했던 대로 카메라기자 채용에 있어 정규직 대신 용역과 도급 형태로 가져갈 모양 새다. 아직 정확히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모 종편이 최근 카메라기자 외주 용역 공 개입찰을 실시 해 서너 군데 용역업체가 응찰 하는 등 여러 부분에서 정황이 포 착되고 있다. 종편 채널의 경영진이 카메라기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려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돈’때문일 것이다. 좀 그럴듯하게 표현하자면 경영 혹은 임금의 ‘효율성’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값싼 임금으로 부려먹고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해고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는 또한 정규직으로 뽑은 PD, 기 자, 행정직들과는‘한 식구’가 아니라는 살벌한 선긋기이기도 하다. 같은 배를 탄 ‘운명 공동체’는 절대 아니라는 이야기다. 경영학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당장 향후 3년 내 생존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종편 채널의 경영진이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 경영 행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론과 방송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볼 때는“아예 언론 할 생각이 없구나!” 라고 읽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방송은 모두 다 알다시피‘팀’으로 일해야 한다. 특히 언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보도’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취재기자와 카메라기자의‘팀웍’이 우 선적 조건이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일어난 수많은 재난과 사고 현장은 이 두 역할자의 눈과 입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도하기 위 해 수많은 기자들이 목숨을 걸어왔다.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 포탄 속에서의 이 라크 전 취재가 그랬고 곧 무너질지도 모를 삼품 백화점 붕괴현장 지하 구조현 장에서도 그랬고 불과 작년 여름 태풍 취재를 하다 카메라를 움켜 쥔 채 산화한 선배의 마지막 모습이 그러했다. 이들이 한 컷 영상을 찍기 위해 하나 뿐인 목숨 을 거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언론인이라는 사명감! 그것은 자신이 속한 매체의 한 일원이며 팀이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뼛속 깊게 함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 재난 지역의 취재 시에는 용 역직으로 업무를 도와주는 오디오맨은 절대 보내지 않는 것이 방송사의 관례이 기도 하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만한 열성이 없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보다 는 그들에게 목숨을 걸 만큼의 응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것이 적확 한 표현 일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언론인이라면 때론 한 컷, 한 마디의 보도를 위 해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용역, 도급 파견직 카메라기자가 그럴 수 있을까? 절대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상시적인 저임금과 해고의 위협,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진짜 목숨 걸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바 로 공동체로부터 유리된 소외감 때문일 것이다. 즉 현재 한국사회에서 용역, 파 견직이란 자기가 속한 매체 즉 언론사를 위해 죽도록 일 해 봐야 결정적인 순간 에는 한 식구가 아니라는 소외와 차별이 돌아올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역은 제 목숨 걸어 취재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제도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제도로‘언론’흉내를 내려는 싸구려 ‘사고’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편채널 스스로 진정한‘언론’임을 포기하겠다는 대외 선언에 다름 아닌 카메라기자 용역채용 방침을 철회하기 바란다. 더불어 이 대목에서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드는 원로 선배들의 카메라기자 용역업체 추진 사업도 즉각 중 단되어야 할 것이다. 채 2년도 못 누릴 제 잇속 차리기에 수 십년 쌓아온 카메라 기자의 명줄이 끊길 판이다. 아무리 후안무치한 집단도 동업자와 후대의 등을 치 지는 않는다는 점, 뼈저리게 상기하길 바란다.
    2011-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