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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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취재기(평창) 꿈은 현실이 되었다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이 열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쿨러닝> 혹은 800만 이상의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 영화 <국가대표>를 관통하는 주제는 동계 스포츠에 소외된 이들의 현실 극복이다. 대한민국 평창이라는 곳 역시 그간 동계올림픽에 소외되었다. 하지만 선택은 평창!!! 꿈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의 꿈은 전 세계 곳곳에서 동계 스포츠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지역 선수들이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라는 모토는 IOC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고 한다. 지극히 쿨러닝적이며 국가대표틱한 정서로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개최지 선정의 기쁨과 흥분의 순간도 잠시. 모두들 떠난 알펜시아 현장에서 떠오르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동계올림픽 상위권을 달려온 우리나라지만 특정종목에 편중 되어있고, 아스팔트에서 봅슬레이를 연습해야 하는 현실이 마음을 억누른다. 과연 내 눈 앞 지금은 초록의 스키점프대에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비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리고 소망한다. 개인적으로 동계스포츠를 좋아하기에 어릴 적 스케이트와 썰매를 시작으로 스무 살 무렵엔 스키, 이젠 스노우보더로 겨울을 보낸다. 솔직히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되길 기대했던 건 제 이기심이기도 하다. 동계올림픽 유치로 제 개인적인 취미에 좋은 환경이 조성될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부디 평창의 성공과 저의 겨울철 이기심이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김정원 YTN 영상취재부
    2011-07-21
  • 영상취재 조직 왜곡 우려
    동아종편 채널A 카메라기자 용역 입찰 영상취재 조직 왜곡 우려 신생 종편채널과 보도채널이 경력 공채와 신규 인력 채용을 진행 중이다. 올해 종합편성과 보도채널이 공채로 뽑은 경력기자의 규모가 7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jTBC가 중앙일보와 신입기자 통합 채용에 나섰고, 채널A, TV조선 등은 하반기 채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같이 종편사의 신규인력 채용이 본격화 됨에 따라 우수 인력 확보와 기존 인력에 대한 이탈 대비로 언론사들의 행보도 빨라지고있다. 일부 언론사는 종편의 인력 수급이 끝난 후에 신규 인력을 채용한다는 계획까지 나돌 정도로 기자사회에 종편과 보도채널의 경력 및 신규 채용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알려진 데로 지상파 카메라기자들의 이동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7일 동아일보 종편인 채널 A에서 카메라기자 용역 입찰을 마감해 3~4개사가 접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에 참가한 용역회사는 기존 방송용역 회사 1~2개사와 카메라기자 원로 선배들이 중심이 된 2개사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또, 연합뉴스의 보도채널 뉴스와이가 카메라기자 경력 사원 전형 과정에서 기존 연합뉴스 노조의 반발로 채용을 철회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경영자본 논리에 의한 저가 인력의 수급은 취재현장에서 여러 문제점이 보인다. 지상파방송과 보도채널이 수 많은 채널 중에서도 여전히 높은 시청률과 우수한 신뢰도를 형성하는 것은 많은 이유 중에서도 내부 구성원들의 소속감에 따른 자부심과 기자로서의 사명감으로 경쟁력을 높였다고 많은 언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많은 카메라기자들은“영상취재 조직을 용역으로 왜곡 시켜서 출범하는 것에 한탄하며”“경영의 효율성으로 값싸게 영상인력과 영상을 공급 받고자 한다면 시간이 지난 후 현재 방송사들과의 격차는 더 없이 벌어 질수 밖에 없고 시청자의 외면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한다. 지상파 방송도 이미 경영 논리로 접근 한 저가 외주 취재물이 물의를 빚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 지상파 방송의 아침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케이블TV 방송은 저급한 선정적 영상과 보기 어색한 재연 영 상의 난무, 그릇된 영상문법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는 물론 시청자들의 비난을받고 있다. 학자들은 영상저널리즘이 촬영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기자로서의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하고 용역 카메라기자가 저널리스트인지를 오히려 반문했다. 덧붙여, 현장취재나 제작경험이 없는 경영진이 영상취재 조직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우려했다. 이에 저널리스트의 사명감을 찾을 수 없는 신생 종편사와 보도채널의 뉴스 탄생에 많은 카메라기자들이 공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2011-07-21
  • 줌인 <용역은 절대 목숨걸지 않는다>
    종편 채널들이 개국을 앞두고 경력과 신규 인력 채용에 한창이다. 그러나 우려 했던 대로 카메라기자 채용에 있어 정규직 대신 용역과 도급 형태로 가져갈 모양 새다. 아직 정확히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모 종편이 최근 카메라기자 외주 용역 공 개입찰을 실시 해 서너 군데 용역업체가 응찰 하는 등 여러 부분에서 정황이 포 착되고 있다. 종편 채널의 경영진이 카메라기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려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돈’때문일 것이다. 좀 그럴듯하게 표현하자면 경영 혹은 임금의 ‘효율성’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값싼 임금으로 부려먹고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해고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는 또한 정규직으로 뽑은 PD, 기 자, 행정직들과는‘한 식구’가 아니라는 살벌한 선긋기이기도 하다. 같은 배를 탄 ‘운명 공동체’는 절대 아니라는 이야기다. 경영학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당장 향후 3년 내 생존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종편 채널의 경영진이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 경영 행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론과 방송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볼 때는“아예 언론 할 생각이 없구나!” 라고 읽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방송은 모두 다 알다시피‘팀’으로 일해야 한다. 특히 언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보도’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취재기자와 카메라기자의‘팀웍’이 우 선적 조건이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일어난 수많은 재난과 사고 현장은 이 두 역할자의 눈과 입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도하기 위 해 수많은 기자들이 목숨을 걸어왔다.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 포탄 속에서의 이 라크 전 취재가 그랬고 곧 무너질지도 모를 삼품 백화점 붕괴현장 지하 구조현 장에서도 그랬고 불과 작년 여름 태풍 취재를 하다 카메라를 움켜 쥔 채 산화한 선배의 마지막 모습이 그러했다. 이들이 한 컷 영상을 찍기 위해 하나 뿐인 목숨 을 거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언론인이라는 사명감! 그것은 자신이 속한 매체의 한 일원이며 팀이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뼛속 깊게 함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 재난 지역의 취재 시에는 용 역직으로 업무를 도와주는 오디오맨은 절대 보내지 않는 것이 방송사의 관례이 기도 하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만한 열성이 없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보다 는 그들에게 목숨을 걸 만큼의 응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것이 적확 한 표현 일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언론인이라면 때론 한 컷, 한 마디의 보도를 위 해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용역, 도급 파견직 카메라기자가 그럴 수 있을까? 절대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상시적인 저임금과 해고의 위협,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진짜 목숨 걸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바 로 공동체로부터 유리된 소외감 때문일 것이다. 즉 현재 한국사회에서 용역, 파 견직이란 자기가 속한 매체 즉 언론사를 위해 죽도록 일 해 봐야 결정적인 순간 에는 한 식구가 아니라는 소외와 차별이 돌아올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역은 제 목숨 걸어 취재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제도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제도로‘언론’흉내를 내려는 싸구려 ‘사고’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편채널 스스로 진정한‘언론’임을 포기하겠다는 대외 선언에 다름 아닌 카메라기자 용역채용 방침을 철회하기 바란다. 더불어 이 대목에서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드는 원로 선배들의 카메라기자 용역업체 추진 사업도 즉각 중 단되어야 할 것이다. 채 2년도 못 누릴 제 잇속 차리기에 수 십년 쌓아온 카메라 기자의 명줄이 끊길 판이다. 아무리 후안무치한 집단도 동업자와 후대의 등을 치 지는 않는다는 점, 뼈저리게 상기하길 바란다.
    2011-07-21
  •      국방부 카메라기자실 신설
            국방부 카메라기자실 신설 국방부 출입 기자단은  지난 4월11일 카메라기자실를 신설 해 입주했다. 이날 태양식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은 현판식에 참여하고 국방부 대변인실과 간담회를 갖았다.  국방부 출입 기자들은 숙원이었던 기자실 신설과 촬영 단상이 제작되어 고무되어 있었다.  카메라기자 존이라 불리는 이 단상은 서울시 브리핑 룸에 이어 두 번째이며 영상 취재 및 오디오 수음이 편리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정부 및 지자체 브리핑 룸으로 확대 제작 될 것으로 판단된다.
    2011-06-01
  • MBC 류종현부장 법무부장관 표창 수상
      MBC 류종현부장 법무부장관 표창 수상 MBC 류종현부장이 지난 4월 15일 법의 날에 법무부장관 표창을 수상하였다. 류종현부장은 평소 초상권과 저작권을 부단히 연구하여 관련분야의 법학발전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언론보도에서 피의자인권을 보호하고 저작권침해 청소년형사초범들에게 교육을 통하여 기소를 유예함으로써 재기의 기회를 제공한 공로가 인정되어 이 같은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류종현부장은 그동안 일부언론의 사건보도에서 피의자들의 초상권이 무분별하게 침해되는 상황에 대하여 협회후원으로 학술저서와 세미나 등을 통하여 이를 개선하는 노력을 경주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다매체시대의 도래로 더욱 첨예해진 저작권분쟁과 관련하여 문화관광부와 법무부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교육조건부 기소유예제도의 강사로 참여하여 부지불식간에 저작권을 침해한 형사범들의 구제활동에도 꾸준히 봉사해온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2011-06-01
  • 제주도 아날로그 방송 중단
    이달 29일 제주도 아날로그 방송 중단 제주도의 아날로그TV 지상파 방송이 다음달 29일에 전면 중단된다. 지난 해 울진 강진 단양 세지역은 모두 합쳐도 5만 5천여세대 규모이지만 제주도는 22만 세대에 달한다. KBS 제주총국 김보현 기자는 “제주도는 이미 디지털방송을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차질없이 디지털방송 전환이 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말했다. 현재 제주도 소재의 방송사는 6월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지속적으로 고지하고 있으며 기존 아날로그TV를 사용 할 시 컨버터를 설치 할 것과 디지털TV의 구매를 권고하고 있다. 정부는 제주도 내 아날로그 방송 시청자들이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도록 디지털 컨버터 공급, 디지털TV 구매보조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선, 아날로그 방송 종료로 TV방송 시청이 곤란한 지상파 직접수신세대를 겨냥해 디지털컨버터 지원사업이 전개된다. 대상층은 해당 지역내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과 일반세대 및 노인(만65세 이상), 장애인 등이다. 또한, 저소득층에 한해 디지털TV 교체비용도 일부 지원된다. 이정남 기자
    2011-06-01
  •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 우리는 행복한 곳에서 산다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2011년 3월11일 15시30분쯤,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냐??” “지금 인터뷰하러 서강대에.....” “너 지금 일본가야 하니깐 그냥 빨리 들어와.” “네!...지금요?” 허걱!!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그때서야 알았다. ‘얼마나 심하길래...!!’ 저녁 21시 비행기라서 장비를 챙긴후, 개인짐도 없이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집에 전화하니 황당해하는 와이프!! 다행히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다음날 출발하게 되었다. 출장팀은 2팀(촬영기자-이승환,이승준/취재기자-윤경민,최명신)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선배, 일본은 선진국이에요.... 일본에 도착하기전 같이온 이승준(촬영기자)기자 떠나기전에 한말이 있다. 내가 사고지역은 모든 것이 부족하니 철저히 준비해야한다고... 후배왈 "선배, 거긴 선진국이에요...!! ""그런가...!!" 일본에 도착하니 모든 상황이 어려움을 단번에 느낄수 있었다. 우리팀은 하네다에서 국내선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 야마가타를 거쳐 센다이로 향했다. 야마가타에서 렌트후 출발할 당시 주유소마다 차들이 몇백미터씩 줄서 있었다. 사고 현장으로 들어갈수록 문을 연 음식점과 주유소는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보이는 마트, 가게 등을 돌며 물자확보에 힘을 쏟았다. 여기서 굶어죽기 싫어서.... 도쿄에서 부터 올라온 승준팀은 가까운 피해현장들을 취재하며 20리터 기름통을 6개나 사서 가는 곳마다 기름을 채웠다고 한다. 음식 또한 길거리에서 직접 해먹었다고 한다. 센다이에서 만났을 때 내가 한마디 한다. "선진국이라며...!" / 승준왈 "그러게여...!!" 나중에 우리도 확보 못한 기름통을 하나 얻어 쓰고 밥도 얻어먹었다. *이곳이 피해가 크다는 지역 사람들의 모습인가!! 3월13일 저녁 센다이에 도착, 한국 영사관으로 향했다. 센다이시 미야기현 청사를 지나는데 자위대 소속의 재난 구호트럭 수십 여대가 미야기현 청사를 빼꼭히 에워싸고 있었다. 청사는 피난 나온 이재민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바뀌어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계단 밑이건 화장실 앞이건 다리를 뻗고 쪽잠이라도 청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람들로 넘쳐났다. 사고현장의 취재시작...일본사람들은 참 침착하면서도 담담한 모습이었다.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없고 그저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만 묵묵히 찾아서 하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국민성, 이런 재난상황에서는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청사를 뒤로하고 한국 영사관에 도착했다. 그곳 역시 많은 한국 유학생들, 이 지역 주민들이 강당에 빈틈없이 모여 있었다. 영사관에서 준비한 밥과 두가지정도의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사람들, 연락을 못했던 가족들과 전화를 하는 사람들... 유선인터넷은 연결이 안되고, 전화와 전기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들어왔고, 음식도 주변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사관 직원들은 버스를 확보해서 사람들을 이곳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차량은 확보했지만 기름이 없었다. 어수선한 상황들 속에서 무선인터넷을 이용 화상연결과 제작을 마치고 나서야 종이박스와 신문으로 자리를 깔고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 쓰나미 경보와 지진의 공포... 14일 우리는 쓰나미 피해지역 센다이해안마을로 향했다. 센다이시에서 30여분, 도심을 벋어나 해안으로 접근하자 무너진 집들과 목조주택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배는 집위에 또는 도로위에 올라와 있었고 자동차들은 지붕위며 신기한 모양으로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시내중심 소방지휘본부가 있는 육교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을때 싸리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센다이해안 5키로 지점 10미터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다. 하늘에는 헬기가 쓰나미 경보를 알리는 방송을 반복하고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우리를 육교위로 대피시켰다.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육교위와 높은 건물옥상에 대피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해안가에서 작업을 하던 소방차20여대가 싸리렌 소리와 함께 줄지어서 대피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거 빨리 피해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싸, 특종을 하겠군'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요기 앞까지만 밀려오다 말아라...' 한국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5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시간이 갈수록 안도의 마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나미 경보는 조용히 마무리됐다. 마음을 가다듬고 해안으로 전진... 시내까지는 파괴된 집들과 잔해들등 많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면 해안가쪽은 이곳에 집이 있었던가 할정도로 시야가 탁트였다. 군대군대 콘크리트나 벽돌집이 서있는 것으로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뿐. 일본은 지진이 많아서 목조건물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지진에 강하고 안전하다고...하지만 쓰나미는 예상을 못한것 같다. 수천채의 집들은 집터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한 노인을 만났다. 앨범으로 보이는 찢어진 한장의 가족사진을 들고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곳이 과연 복구될수 있을까? 다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사람사는 동네로 돌아갈수있을까? 의문을 뒤로하고 복귀하던중 시신들을 수습하는 자위대원들을 보았다. 시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쓰나미로 인해 사망,실종자는 2만7천여명이 넘었다. 영사관으로 돌아온 우리는 리포트제작과 간단한 식사, 찬물로 세수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무언가 요동을 치는 것을 느꼈다. 지진이었다. 로밍해간 휴대폰을 지진을 알리는 경보가 울렸고 20초동안 많은 떨림을 느꼈다. 여기온 뒤로 가장 큰 지진의 흔들림 이었다. 정말 이런것이구나...!! * 119구조대-방사능 비를 피하라... 15일 바람을 타고 방사능이 센다이방향으로 올라오고 비도 내린다는 예보가 들려왔다.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오늘은 대한민국 119구조대가 처음 활동하는 날이다. 일본측에서 119구조대 활동모습을 언론에 공개하기를 꺼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린 일단 숙영지로 가기로 했다. 공설운동장 주차장에 마련된 숙영지...새벽4시에 기상, 출발부터 영상에 담고 이후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출동하는 모습을 담고, 구조대 버스를 따라갔다. 경찰서에서 구조활동지역을 배정받은뒤 출동. 미야기현 해안마을, 맥주 물류센타가 있는 곳이다. 일본경찰들이 5~6명의 구조대마다 배치되었다. 조금 긴장을 했다. 혹시 취재를 막지나 않을까! 기우였다. 이곳은 목조건물보다는 단단한 건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집들은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고 역시 차량들은 폐차장을 연상시키듯 뒤엉켜 있었다. 캔맥주 자체가 하천의 물을 대신하듯 사방에 널려있었다. 일부 젊은 남성들은 승합차를 가져와서 맥주를 박스째 가져가는 모습도 보였다. 119구조대는 건물내부및 부서진 잔해 밑을 꼼꼼히 살피며 인명을 구조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신만이 구조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시신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방사능 측정기를 휴대한 구조대원에게 방사능 측정을 부탁했다. 다행히 평균치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참동안 구조활동을 취재하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잠시 철수한다고 한다. 방사능 비라서 방호복을 입으러 간다고... 우리는 점퍼에 있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방호복을 입는 구조대원을 영상에 담았다. 우리는 이들의 무사 귀환을 당부하며 취재를 마치고 현장을 떠났다. * 수돗물, 채소가 오염되면 뭘 먹으라고... 일주일간의 현지 취재를 뒤로하고 방사능이 바람을 타고 퍼지면서 안전지대로의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영사관에 있던 언론사들은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미혼의 기자들은 더욱더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나도 그런데.... 승준팀과 함께 있었던 우리는 같이 북상해 아키타로 향했다. 가는도중에 본사로 부터 한팀은 철수하라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팀이 남기로 했다. 18일 승준팀 복귀. 우리는 도쿄로 향했다. 도쿄지국에는 야구 전지훈련차 오사카에 왔던 취재팀이 특파원을 돕기위해 몇일전부터 취재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팀도 19일 귀국. 특파원과 함께 시작된 도쿄생활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방사능비를 비롯, 수돗물오염에 채소의 방사능 물질 오염까지....수돗물 방사능물질 오염발표전날 라면도 끓여먹고 커피도 타먹었는데...! 마트에는 생수를 찾기가 힘들어졌고, 그나마 1인당 1병씩 팔기시작했다. 도쿄인근에 대규모 지진이 또 온단다. 이젠 점점 무덤덤해진다. 지진도 일상화되고 이젠 피할곳도 없고... 우리야 있다가 떠나면 그만이지만! 특파원선배는 아이들이 4월이면 학기가 시작된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을 떠나온지 17일만에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걱정의 한숨이 순간적으로 나왔다. 회사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서울하늘을 보았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밝은 느낌, 평온한 느낌 이랄까! 우린 행복한 곳에 산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는다.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서 이번 재앙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과 가족들께 조의를 표하며, 일본국민들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기원한다. 이승환 YTN 영상취재1부
    2011-05-20
  • 중계차 줄행랑사건
    쓰나미로 초토화된 일본 동북부 지역 취재를 마치고 영상송출을 위해 영사관이 있는 센다이 시내로 복귀하는 길. 로밍서비스를 통해 휴대폰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뜬다. “현지 중계차 철수로 송출 불가. 각자 현 위치에서 가능한 인터넷 송출 방법 강구 바람” 일본 전역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의 위험 경고가 반복적으로 방송되던 날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더니 이 무슨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자세한 상황을 알아본 결과 영상송출을 담당해 주기로 계약된 일본 현지 중계팀이 비내리는 날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 지역에서 멀지 않은 센다이에 머물고 있는 상태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철수해 버렸고 현재 돌아오라는 우리 취재팀의 회유에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 설명을 듣고 보니 결국 목숨이 귀해서 도망갔다는 것인데.... 목숨이 귀해 도망갔다는 데에 딱히 뭐라고 비난할 논리도 없는 것 같고, 한편 현지인도 도망간 지역에서 지금 나와 동료들은 뭘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가도, 그나저나 통신도 잘 안되는 지역에서 영상송출을 어째야 하는 건가 캄캄하기도 하고, 또 입사 십년차가 되니 중계차가 도망가는 별별 희한한 상황도 다 겪어 보는 구나 싶고. 어쨌든 취재팀들은 각자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어찌어찌 무사히 영상 송출을 마쳤다. 그날밤 동료들과 자판기에서 뽑은 맥주를 나눠 마시며 중계차 줄행랑 사건은 황당하고 재미있는 안주거리가 되어 술자리에서 회자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후쿠시마 인근을 촬영했던 kbs 카메라 감독이 피폭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니 당시 중계차 줄행랑 사건이 새롭게 다가온다. 위험 지역에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신체를 노출한 채 일과 시간에 쫒기며 냉정한 판단을 보류해야 하는 우리의 취재현실. 후쿠시마 지역 취재팀을 결정하는 선택의 순간 은근히 느껴지던 불안간과 긴장감. 정확한 현지 상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일단 장비부터 들고 현장에 들어가야 하는 분위기. 정확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만일 당시 일본 현지 중계팀이 주체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과감한 철수결정을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면? 술자리의 우스개 농담과는 별개로 어쩜 그들의 판단이 더 정확하고 용감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설치환 SBS 영상취재팀
    2011-05-20
  • 리비아 전쟁취재기-우리는 선택과 판단을 해야했다
    인트로 얼마 전 선배로부터 리비아 취재기에 대해 글을 써줄 것을 요청받았다. 다녀온 지 두 달이 넘어가고 갑작스런 일이어서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이번 기회에 중동 출장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길게 출장은 다녀왔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사실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하루하루에 대해 일기처럼 써온다면 쉽겠지만 지면을 낭비할 것이고, 리비아 상황에 대해서 쓴다면 얄팍한 나의 지식보다 인터넷이 월등할 것이다. 그렇다고 상투적으로 출장 시 뭘 했고 뭘 했고 줄줄이 나열하는 것도 그다지 재밌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민 고민하다가 이렇게 글을 써보려 한다.   왜 우리는 리비아로 갔는가? 사실 처음부터 리비아로 가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전역으로 불어올 때 우리의 목적지는 이란이었다. 성인현 선배와 함께. 출발당일 하루 전에 연락을 받았다. 내일 이란으로 가라고. 그러나 당시 성인현 선배와 나는 ‘이란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나라 아니다. 우리 가기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이란 생각 외로 불편 없이 갈 수 있는 나라였다. 이렇게 우리의 기나긴 출장은 빗나간 예상을 시작으로 기나긴 여정이 펼쳐지게 된다. 이런 식의 연속되는 빗나간 우리의 예상들이 의지와 우연이 겹치며 이란을 시작으로 마지막 도착지인 리비아까지 발길을 놔주었다. 리비아 오래 있을만한가? 출장은 모든 시간을 포함해서 장장 31일간 다녀왔다. 정확히 한 달. 그것도 꽉~~~ 채웠다. 이란에서 일주일을 시작으로 짧게는 4일 길게는 10일 이상으로 각 나라에 머물렀다. 참 우리의 경로는 이란을 시작으로 두바이 이집트 마지막 리비아다. 결국 리비아에 머문 시간은 11일. 전체 출장의 삼분의 일이다. 이 말의 행간은 곧...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집 떠나면 고생이다. 게다가 말도 안통하고 먹을 것도 그다지 좋지 않다면 아무리 많은 다른 환경에 관한 호기심과 관심도 5일 이상을 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 입맛에 맞는 것은 후라이드 치킨과 감자뿐이었다. 다른 것은 권하지 않는다. 심지어 햄버거도. (우리가 말하는 체인점은 물론 콜라조차도 코카콜라가 없다. 미국에 대한 중동의 심리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주변은 모래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고 밤이고 낮이고 심심하면 들려오는 한방의 총성. 주변에 보이는 여자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얼굴뿐이다. 나처럼 혈기왕성한 건장한 청년에게 이러한 상황은 실망과 더 나아가 절망이다. 중동 미인이 진정한 미인이라지만 난 잘 모르겠다. 상대 여자에게 건네는 눈빛도 실례가 될 수 있다는 말에 힐끔거림을 제외하고는 나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긴 여정을 달래기 위한 필수 아이템 술. 구할 길이 없었다. 매주 금요일 우리의 축구 응원전을 방불케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삶인 이슬람 국가에서, 금기시되는 술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아니 죄의식마저 느끼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다. 달리 간간이 보이는 맥주가 있기는 했다. 한 잔의 맥주 노 알콜. 마신다면 기분에 취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11일 동안만 리비아에 있었던 것이다.   리비아 어떻게 들어갔나? 두바이에서 이집트로 들어오면서 선배들 모두 리비아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리비아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으며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들어갈 수 있는 루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지인들조차도 위험지역이라는 부담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언제 다시 분위기가 역전될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가 선택한 길은 맨땅에 헤딩. 우선 국경까지 가보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이집트와 리비아의 국경 샬렘으로 도착하고 우리는 무작정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PC방, 호텔, 식당. 그 결과 며칠 전 외신기자들을 데리고 리비아로 들어갔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마지막.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때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우리를 데리고 갈 사람 중 물망에 올랐던 사람들이 셋 정도는 됐다. 이중 우리가 선택한 사람의 기준은 외모였다. 우리가 리비아로 들어가는 중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안전이다. 그것을 담보할 만한 사람을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정보는 거의 없다 생각하면 된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얼굴. 어찌 보면 무모했을 수도 있는 방법이었지만 우리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외모를 속일 수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는 말도 통하지 않는 드라이버와 5시간을 조용히 앉아있었다. 우리가 언제 리비아에 도착할 수 있는지도 모른체... 위험하지는 않았나? 위험이라 함은 여러 가지가 있다. 보도에 대한 위험, 환경에 대한 위험, 예상치 못한 발생. 그 중 환경적 위험은 어느 지역으로 가더라도 다 같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단지 그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경험이다. 이는 무엇보다 이번 출장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다. 이번 출장에서는 움직이는 동안 여러 가지의 상황들이 발생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선택과 판단을 해야 했다. 어디론가 이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리비아 도착과 동시에 1시간여 만에 보도를, 전기를 가로등에서 빼올 수 있는 재치도, 위험시에는 어느 것이 위험한지 판단도 해야 했다. 카메라만 들면 이성이 흐려지는 우리들에게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경험은 우리의 안전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경험에서 우러나는 판단이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난 선배와 함께 갔다. 이 말은 직접적으로 내게 오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판단력의 무게를 실감한 일이었다. 출장을 가서도 다른 선배들을 만나며 선배들의 마음가짐과 생활방법들을 엿볼 수 있었다. 단지 밖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선배들로부터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들이야 사소해 보이지만 다들 부담이라는 무게를 혼자서 이겨내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세상 오지, 어떠한 곳으로라도 가야하는 촬영기자들에게 꼭 필요로 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지만 차곡차곡 하나씩 경험이 쌓이다 보면 혼자서도 책임지는 위험 지 출장뿐만 아니라 후배를 데리고 출장을 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때까지 더욱 부지런히 나를 만들어가야,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민창호 KBS 보도영상국
    201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