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신입주니어 영상기자 연수> 강의 요약플라톤의 동굴에서 기본적으로 저널리즘에 동원되는 이미지들은 숙련된 영상기자들이 ‘현실’(Reality)과 ‘재현’(Representation) 사이에서 윤리적 줄다리기를 수행한 결과물이다. 일차적으로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을 실시간으로 포착할 수 있는 현장이 드물고, 더 자주는 사건의 행적을 사후에 뒤따르며 취재하기 때문이다. 설령 실시간 현장이라 해도, 어떤 현장들은 ‘찍히기 위해 존재’하고, 더러는 카메라의 존재감 자체가 현장에 영향을 미쳐 교호작용을 일으킨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처럼 ‘재현’이라는 모종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사건 뉴스 영상의 구성을 위해 관습적으로 동원되던 ‘피의자 조서 시퀀스’ 같은 것들이 대표적 사례다. (데스크톱 앞에 앉아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혐의사실을 수차례 지웠다가 재타이핑하는 수사관의 모습이 기억난다) 보도 영상의 윤리가 성숙해지는 흐름 속에 이렇듯 ‘동원된 현실’들이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피테르 얀스 산레담 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1604)플라톤의 국가(Politeia) 7권에 등장하는 비유, 일생동안 동굴 내벽만 바라보도록 결박된 채 머무는 죄수들이 있다. 그들은 이데아가 아닌, 불빛에 비친 그림자 상으로만 세상을 인식한다. 평론가 수전 손택은 기념비적인 저작,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1977) 서두에서 사진 이미지의 속성을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인용해 설명한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관통시켜 얻은 실사 이미지는 기계장치의 산물이기에 얼핏 진리를 담은 ‘세계의 편린이자 축소판’처럼 보이지만, 기실 동굴 벽에 투영된 그림자와 같이 환영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손택은 사진이 세계를 “증명”하는 순수하고 투명한 매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현실을 …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사진도 회화나 드로잉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일에 가장 관심이 있는 경우라도,” 사진가는 “사진이 결과적으로 보일 모습을 결정”해야 하기에 “피사체에 특정한 기준을 들이대기 마련”이다.- (조주연, 벤야민과 바르트 사이 : 수잔 손택의 사진론. 2020) 이러한 견지에서, 영상 기자는 실사 이미지라는 태생적 환영을 최대한 윤리적으로 다루어 수용자로 하여금 뉴스를 비판적으로 소비하도록 안내하는 책무를 진다. 카메라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포착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요원한 일이지만, 2026년 현재의 보도 영상은 적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수십 년에 걸쳐 정교하게 가다듬은 역사적 성과물이다. 4월 6일 자 KBS 뉴스 - ‘빈 라덴 잡은 최정예 부대 투입’ 리포트생성형 AI 영상이라는 환영 그리고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AI로 납작하게 재현한 생성형 그래픽이 뉴스 곳곳에 범람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미-이란 전쟁 중 실종된 전투기 조종사의 구출 작전을 다룬 KBS 뉴스에는 수십 대의 미군 전투기 편대가 회피기동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도 없이 마치 소풍 길에라도 오른 듯 옹기종기 줄 맞춰 이동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됐다. 네이비실 대원들이 이동 헬기의 ‘포신’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모습 또한 눈길을 끌었다. ‘시청자의 이해를 돕고 흡인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빈 공간을 가상의 짐작으로 온통 채워 넣은 AI 그래픽이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이는 대상의 선별, 관찰과 개입, 롱테이크와 숏 분할, 구도·프레임·화각·심도·색감 등 … 진자 운동하는 보도 영상의 무게추를 재현이 아닌 리얼리티 쪽으로 끌어당기려 노력해 온 영상 기자의 도메인 지식 체계가 AI 프롬프트 텍스트 몇 줄로 와해되고 있는 지점이다. 나쁜 재현이 동반하는 할루시네이션은 육안으로 포착된 적 없는 현실 위를 겹겹이 덮어 시청자의 눈과 귀를 교란하고 인식의 지평을 가둔다. 그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조작된' 동굴 안의 가장 나쁜 환영이다. 손택이 회의했던 실사 이미지의 리얼리티 재현 능력을, AI 그래픽은 아예 출발선상에서부터 폐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손택에 따르면, 「사진에 관하여」의 비판은 “현실은 퇴위했고, 남은 것은 재현뿐, 즉 대중매체뿐”이라는 냉소가 아니라, “실은 현실을, 그리고 현실에 더 완전하게 반응하는, 위험에 빠진 기준들을 지키려는 옹호”다.-(조주연, 2020). 생성형 AI 그래픽의 오용은 이제 뉴스 영역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수용자들에게 ‘퇴위하는 리얼리티’라는 반대쪽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영상 기자는 바로 그 위험에 빠진 기준을 지키려는 최전선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AI의 홍수 앞에서, 영상 기자의 소명은 카메라 뒤에 서는 것을 넘어 뉴스 제작 시스템 전반에 걸쳐 리얼리티의 마지막 닻줄을 붙드는 것이다. KBS 영상취재1부 지선호
2026-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