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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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어야 할 우리들의 숙제 ‘풀(POOL)’
    풀어야 할 우리들의 숙제 ‘풀(POOL)’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너트 조이는 노동자’   "테이블 오른쪽에서 스케치해주시고요! 저는 가운데서 싱크 딸게요. 아! 그리고 그쪽은 밖에서 교육감 들어오는 거 맡아 주시고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굳이 이곳에서까지 취재 풀(POOL)이 필요한 건가?'   지난 1월 20일, 곽노현 교육감이 석방된 뒤 처음으로 갖는 회의에서였다. 회의장은 3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카메라기자가 이동해가며 취재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조중동’ 종편과 ‘뉴스Y’는 풀을 구성해 취재했다. 세밀하게 역할을 나눠 일사불란하게 촬영해 나갔다. 모두발언의 어디가 중요한 건지, 누구의 표정을 어느 순간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정신없이 취재하던 내 눈에 다시 그들이 비쳤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품에 너트를 조이는 일을 부지런히 반복하는 노동자처럼 보였다.   취재를 마치고 선배와 이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회사마다 그림이 똑같으면 우리(취재 기자)는 'ㅇㅇㅇ뉴스 누굽니다' 이것만 바꾸면 되겠네."라며 선배는 냉소를 보였다. 입가에 저절로 쓴웃음이 배어 나왔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답은 금세 나왔다. '기존의 카메라기자들이 하던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하려던 건 아닐까?'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그들에게 잘못된 POOL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풀의 남용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해묵은 과제다. ‘조중동 종편’의 풀 남용도 기존 카메라기자들의 관행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장에서 2개사만 취재하고 나머지 방송사는 촬영한 회사로부터 그림을 받는다든지, 물 먹은 그림을 쉽게 받아 나눠 가진다든지, 풀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현장에서 굳이 풀을 한다든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에게 이런 풀이 잘못된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늘도 방송뉴스에는 많은 풀 영상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가운데는 경쟁하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취재하려고 맺은 풀 영상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천편일률적인 보도 영상이 대한민국 방송뉴스를 메운다면 시청자들의 볼 권리는 침해된다. 같은 기사라도 카메라가 비출 수 있는 부분은 무궁무진하고 그 안에서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들도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차별화된 뉴스 콘텐츠 제작에 사활을 건 카메라기자들이 똑같은 영상으로 어떻게 뉴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단 말인가. 방송뉴스에서 영상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우리가 풀에 관대하다면 이건 모순이다. 카메라기자의 역량을 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풀을 지양함으로써 카메라기자의 경쟁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풀을 통해 모든 방송사에서 같은 영상이 나온다면 개인의 역량은 드러나지 않는다. 역량이 노출되지 않으면 경쟁은 불가능하고, 경쟁이 사라지면 발전도 없다.   노동의 분업은 작업의 효율성을 증대시킬지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노동 소외를 불러온다.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작업 과정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기사를 쓰는 카메라기자의 취재과정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자신만의 일관된 흐름을 통해 취재를 시작해 마무리한다. 이 과정을 통해 뷰파인더 속 프레임엔 비로소 한 기자의 정체성이 녹아든다. 무분별한 풀 취재로 일관성 없는 컷을 짜깁기한 기사에 카메라기자의 정체성과 미장센 등이 담겨 있을 리 만무하다. 순간의 편리함을 좆다 스스로를 취재 과정에서 소외시키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종편채널의 출범으로 매번 취재현장은 카메라기자들로 넘쳐난다. 포토라인은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고, 취재 1시간 전에 현장에 도착해도 자리를 못 잡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우리가 카메라기자로 일하는 이상, 일터 환경을 스스로 변화시켜 나가는 작업은 필수다. 그들의 취재 방식을 놓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인다면 그들 스스로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새로운 기자들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제대로 풀을 사용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한다. 배완호 MBN 영상취재부
    2012-02-22
  • 프로페셔널한 멀티플레이어가 되자
    2012 방송카메라기자협회 신입 카메라기자 연수 후기 프로페셔널한 멀티플레이어가 되자   ‘한국방송카메라협회 신입카메라기자 연수’   듣고 보기만 했던 타이틀이 달린 연수에, 제 이름 석자가 참가자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것이 실감조차 나지 않은 채로 2월 3일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모임에서 MT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단체여행이라는 것에 더 이상 감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정말 2004년도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던 그 순간만큼 설레는 아침이었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인해 가벼운 배낭을 메고 목동에 있는 방송회관에 모여 처음 뵙는 분들과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 속초로 출발하였습니다. 막상 차를 타고 보니, 짧은 한, 두 달이었지만 현장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분들도 있어서 조심스레 대화를 나누면서 또 휴식을 취하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속초연수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배정받은 방은 기대보다 더 깔끔한 시설이었고 저희 동기 다섯 명은 따뜻한 산바람을 맞으며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교육을 받으러 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연수를 가기 전까지는 일정에 포함된 교육일정은 명목상(?) 있는 것이고 간단하게 마친 후 회포를 푸는 자리가 메인이벤트일 것이라는 건방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저의 안일한 착각이었습니다. 교육의 첫 테이프를 끊으신 KBS의 이중우 수석부회장님의 강의는 카메라 기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에 관한 부분, 예컨대 통찰력을 갖추어야하며 폭넓은 인간관계를 통해 지식과 감정을 쌓아야 하고 또 정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카메라기자가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또 쉽게 망각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여 다시금 되새기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진 2교시에서는 협회장이신 태양식 회장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초심을 잃지 말고 자신만의 컬러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것에 대한 당부를 마치신 회장님의 다음 말씀은 바로 이제부터는 기획, 촬영, 편집까지 모두 참여하는 카메라 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강의는 제가 이번 연수를 통하여 가장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실 지나가는 행인들도 모두 HD촬영이 가능해진 이 시점에서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시스템적으로, 또 인력구조상 그것이 실현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은 그러한 상황일지라도 계속해서 바꾸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앞으로는 기회조차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힘들더라도, 조금 더 내 시간을 내어서라도 차근차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곧이어 SBS의 박현철 정보문화국장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역시 앞에서 이어졌던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카메라 기자’로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 시점에 와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와 경험담이었고 너무나 와 닿는 내용에, 그리고 사실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에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지금 현대사회는 직업군에 대한 경계 자체가 모호해지는 시대이며 우리가 속해 있는 직종 또한 그러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편집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며 오히려 그보다 더 나아가서 프리, 프로덕션, 포스트프로덕션 단계에서 전문성을 띄어야 한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막을 채워주신 OBS 채종윤 분회장님의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카메라기자에 대한 정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에서 조금 더 나아가 그 성질적인 측면에서의 그것은 ‘품위를 지키고 양심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더 나아가서 국민의 눈을 대표하는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이며, 그러한 상황에서 품위를 지키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고 또한 국민의 눈을 대표하는 존재인 만큼 영상으로 기록하는 데에 있어서 양심을 가지고 취재에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진심어린 강의 내용 한마디 한마디에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많은 것을 느끼고 감동하였던 것 같습니다.   제 42회 이달의 카메라 기자상 시상식이라는 뜻 깊은 행사를 마치고, 이후부터 이어진 동해바닷가에서의 산해진미 파티와 오고가는 술잔 속에 쌓였던 정과 나누었던 웃음들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정말 내 자신이 전국에서 700여명 밖에 되지 않는 방송카메라기자가 되었다는 소속감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큰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1박 2일이 어찌 보면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짧은, 꿈같은 하룻밤이었지만 훗날 기억하면서 또다시 소주한잔 기울일 수 있는 맛있는 추억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한 번 이러한 만남과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신 카메라 기자협회의 수많은 관계자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김준모 / MBN 영상취재부
    2012-02-22
  • '처음'을 기억합니다
    2012 방송카메라기자협회 신입 카메라기자 연수 후기   살아가며 마주한 경험 중에 '처음‘을 기억하긴 어렵지만, 몇 가지 기억나는 ’처음‘이 있습니다. 양 옆의 페달 없이 네발 자전거에서 두발 자전거로 트랜스포머 했을 때,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가는 날,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다니던 길을 도로주행을 위해 달렸을 때 등이 머릿속에 이미지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억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추억을 같이 공유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준 어머니, 운전을 가르친 아버지. 소중한 사람과 함께했던 ’처음‘은 그 기억이 오래갔습니다.   먼 훗날, ‘처음’을 기억할 소중한 추억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속초에 있는 한 연수원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취재 현장에서 가장 많이 스킨십 할 동료들. 어깨도 부비고 때론 밤도 같이 샐 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같이 교육도 받고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친분도 쌓았고 ‘곧 보자’는 약속도 했습니다. 우리들 마음을 화이트보드로 비유했습니다. 기자로서 활동하며 칠판 위에 낙서가 생기고 흠집이 나더라도 최소한의 한 부분은 반드시 지키자고 다짐했습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라는 도구로 우리는 인연을 맺었습니다. 카메라를 이용해 카메라기자는 영상언어를 구사합니다. ‘가, 나, 다’를 뗀 이도 있고 아직 옹알이 수준인 이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우리들 안에 있는 따뜻한 감수성이 표현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 안에 선배의 말씀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길러 나만의 영역을 서로가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시청자에게 더 큰 행복을 주고 싶은 바람 때문입니다.   이번 연수 자리는 제겐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명카 7기로 짧게 활동했지만 다들 축하해 주셔서 매우 감사했습니다. 명카 동기들에겐 먼저 가게 되어 미안하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협회사무실을 찾을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신 사무국장님 고맙습니다. 이것  저것 책도 챙겨주셔서 공부할 때 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협회원으로서 만나 뵙게 될 날이 많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번 신입 카메라기자 연수를 위해 애써주신 협회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박준수 /  YTN 영상취재부
    2012-02-22
  • 2012 전국 신입 카메라기자 공동연수 개최
    2012 전국 신입 카메라기자 공동연수 개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태양식)가 주최하고 LH가 후원한 2012 전국 신입 카메라기자 공동연수가 지난 3일과 4일 양일간 속초 LH연수원에서 개최됐다. 이번 연수에는 전국 신입 카메라기자 21명과 대학생 명예 카메라기자 11명이 참가했으며, 각 회원사 분회장 및 운영위원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연수는 첫째 날 태양식 회장(미래, 카메라기자의 경쟁력)과 KBS 이중우 수석부회장(카메라기자의 역할과 중요성) 그리고 SBS박현철 교육문화국장(보도영상론1)와 OBS채종윤 분회장(보도영상론2)의 강의로 진행되었으며, 둘째 날은 동해 일출을 본 후 설악산 반을 했다.   연수에 참석한 MBN 김준모 기자는 “동기들과 나누었던 웃음들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전국에서 70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카메라기자가 되었다는 소속감을 갖게 되어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고 밝혔다.
    2012-02-22
  • 남극,  그곳에 사람들이 있다...
    남극 취재기 남극,  그곳에 사람들이 있다...   한국을 떠나 순수 비행시간으로만 33시간 만에 칠레 최남단의 도시인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했다. 정말 멀고도 먼 곳이었다. 푼타아레나스는 남극대륙으로 향하는 여행자나 취재진들이 대부분 경유하는 칠레의 작은 도시이지만, 남극 대륙과는 아직도 1200km나 떨어진 풍광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우리 취재진은 남극의 기상악화로 바로 남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3일간을 체류했다. 남극 대륙으로 들어가는 일은 오직 신만이 허락하기에 우리 취재진은 날씨가 좋아지기만 기다렸고, 마침내 12월 17일 하얀 대륙에 자리 잡은 세종기지에 전세기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약 2시간의 비행을 마친 전세기는 남극대륙 킹조지섬에 위치한 칠레 프레이기지에 도착했다. 칠레 프레이기지는 칠레공군과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 기지로써 남극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건설한 기지였다. 하늘에서 본 남극대륙은 말 그대로 장광이었다. 온통 하얀 빙하와 여름철이라서 가끔 보이는 흙 색깔, 바다위엔 큰 유빙들이 떠다니는 모습 등 가끔 방송에서 본 모습 그대로의 모습인 남극이었다. 칠레기지에서 조디악이란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도착한 우리 세종기지의 모습은 차디찬 바람 속에서도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 취재진과 함께 기지로 들어간 하계 연구원들을 따뜻하게 맞이 해주는 25차 월동대원들의 미소에서 그 따뜻함을 느낀 것이었다. 18명의 월동대원들은 2011년 12월부터 1년간 세종기지를 지키면서 연구 활동과 기지 보수 유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의 지원으로 세종기지에 들어 온 대원들로서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무척 열심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일상과 업무를 취재하여 작은 다큐프로그램인 취재파일 4321에 녹여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극지인 남극은 요즘 여름철이라고는 하지만 차디찬 바람 때문에 항상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를 오르락 내리락 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 산중턱에서의 취재는 특히 힘들었다. 세찬 바람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내 몸은 이미 얼음장처럼 굳었기 때문에 강한 정신력이 요구되는 상태가 되곤 했다.   세종기지 주위엔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펭귄들이 매우 많아서 처음엔 신기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무신경해진다. 세종기지는 과학연구기지이다. 여름철인 요즘에는 월동대원 외에 한 30여명의 연구원들이 들어와서 극지에 관한 여러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해양 생물, 지구 대기, 지의류, 조류 등 정말 많은 연구가 행해지고 있고 우리 취재팀은 열정적인 연구 활동과 데일리 뉴스를 많이 소화했다.   우리 취재팀이 세종기지에 있는 동안 러시아 선박 구조 활동, 한국 어선의 화재, 운석 발견 등 사건사고도 몇 개가 발생해서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날 그날의 취재물을 인터넷으로 송출해야만 했고 너무 느린 인터넷 속도 때문에 늘 잠은 새벽이 지나야만 잘 수 있었다. 빡빡한 취재 일정 때문에 휴일 없이 보낸 30일이었지만, 그곳에 모인 월동대원과 하계 연구원들과 따뜻함을 함께 나눈 시간 덕분에 고립된 공간에서의 생활이었지만 너무나 행복했다. 그들과 나눈 빙하주와 따뜻한 대화는 세종기지를 떠난 온지도 벌써 2주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립다.   서울에서 12000km 떨어진 남극 세종기지엔 따뜻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 차디찬 바람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러기에 벌써 난 그들이 귀국해 함께 할 기분 좋은 술자리가 기다려진다. 위험한 파도를 헤치면서도 불평불만 없이 우리 취재팀의 취재에 많은 협조를 해 준 모든 월동 대원과 하계 연구원들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남극이란 극지 취재는 상당히 제한적인 요소가 많았다. 여름철이지만 기상이란 자연적 조건 앞에서는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극히 미약한 존재임을 이번 출장에서 다시 한 번 느끼고 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중우 / KBS 보도영상국
    2012-02-21
  • 몰래카메라는 부득이 한 경우에 최소한으로
    특별기획 몰래카메라는 부득이 한 경우에 최소한으로 법이야 어떠하든, 또 누가 뭐라 해도, 과거한 때 취재일선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속보 경쟁을 하면서 제작에 급급한 나머지 “우선찍고 보자” 라든가, “수단과 방법은 차후고, 목적달성이 우선이다”라면서 취재원의 인격권이나 인권을 소홀하게 다룬 경우가 없지 않았다. 이제 와서 왜 그런 구차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제 세월이 흘러 취재환경이 바뀌었으니 과거의 관행을 반면교사로 삼아 발전된 선진언론을 가꾸어보자는 이야기를 잠깐 나누어 보고자 한다. 사실 과거의 그런 취재환경 하에서 취재원의 인격권 등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에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을 훔치는 것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관점에서 과거의 취재관행을 되돌아보며 흐트러진 우리의 자세를 빗질하고 OECD국가다운 언론환경을 구축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그리 오래 전은 아니지만, “남편이 자신의 주거지에 녹음장치를 설치하여 간통행위가 의심되는 자신의 처와 다른 남자 사이의 대화 및 신음소리 등을 녹음한 후 그 녹취록을 간통죄에 대한 증거로 제출한 사건에서, 위 대화 및 신음소리 부분에 관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판례”(서울서부지법 2007.9.19, 선고, 2007고단270)를 언론의 보도기사로 접한 기억이 독자 중에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기사를 접하는 순간, “그럼 어떻게 증거를 제시하란 말이야....” 라고 고개를 갸우뚱 한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이 판례의 법률적 근거가 바로 “타인의 대화비밀 침해금지”에 관하여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 라고 규정한 통신비밀법인 것이다.(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1항) 이 조항의 핵심은 남편이 부인의 불륜 현장녹음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분명한 표현으로 사적인 통신 비밀을 보호하고 있다. 관련 법조문에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의 부분을 천천히 살펴본다면 굳이 질문이 반복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남편이 부인의 통화를 녹음해도 아니 되는데, 하물며 기자라고해서 남의 통화를 녹취해도 된다는 것은 상식으로도 불가능한 것임이 명백해진다.   굳이 법전의 규정을 운운하지 않고서라도, 취재원에 대한 예의차원과 건전한 취재 윤리차원에서 이른바 ‘몰래카메라’는 합리적인 취재방법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따라서 최소한의 범위로 자제되어야 하고, 또 자제해야 할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상식을 배척하거나, 최소한의 취재예의를 거부하면 결국 주위의 원성이 우리를 향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고, 마침내 법이 인위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금의 사례나 판례에서 보듯이 일단 법이 작동하면 취재원도 똑같은 법익을 누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처벌의 경중은 차지하고서라도, 반격의 화살에 맞서기조차 구도적으로 만만치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명약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사례로 든 판례와 관련 법조문에서 “~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의 부분을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으로써 카메라기자가 제3자의 비공개대화를 녹취하여 방송하는 것을 법이 허용하는지 여부는 상식선에서 스스로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른바 ‘독수독과 이 론(毒樹毒果理論, fruit of the poisonous tree)’으로써 ‘위법하게 수집된증거인 독수(毒樹)에 의하여 발견된 2차적 증거로서 독과(毒果)의 증거능력은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수집된 증거자체가 불법이었기에 증거로서의 효력을 상실한다는 원칙으로써, 판례법에서 그 이론이 발전하였다. 1769년 영국 제1대 맨스필드 백작이자 대법관 윌리엄 머레이는 “민사소송에서는 법원이 원고와 피고에게, 그들의 의사에 반하는 증거를 도출하도록 강제할 수 있으나,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뤄지는 어떤 증거의 도출도 강제할 수 없을뿐더러,[Roe v. Harvey, 98 Eng. Rep. 302 (K.B. 1769)] 피고인에게서 갈취한 어떤 증거나 자백도, 공판에서 피고인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Rudd’s Case, 168 Eng. Rep.160 (K.B. 1775)] 라고 판시하면서 시작된 법 이론이다.   이 이론은 오늘날 미국 수정헌법의“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받지 아니할 권리”로 발전하였고, “자백이 유일한 증거일 경우, 그 자백만을 증거로 어떠한 처벌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법 이론으로 진보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형사소송법상의 증거법칙으로써 2007년 형사소송법의 개정으로 원래의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Exclusionary rule)’에 ‘능력’을 추가하고, ‘법칙(rule)’을 ‘원칙’으로 바꾸어 ‘위법수집증거능력배제원칙’이라는 규정으로 명문화 되었다.(형사소송법 제308조의2) 이에 따라 대법원은 2007년 11월에 위법으로 수집된 증거물을 포함하여 증거물에 대해 위법수집증거능력배제원칙을 적용시켜 증거능력이 부정됨을‘원칙’으로 하되, 특별히 예외적으로만 사안에 따라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음을 판시했다.(대법원2007.11.15. 2007도3061)   몰래카메라를 “독수독과 이론”에 적용하여 특별히 예외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공익과 관련한 취재로서 몰래카메라의 녹취대상이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인‘공인’일 경우에는 법익형량에 의해 취재가 가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판단은 사법부가 해야 할 몫이며, 현실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그로부터 송사에 휘말려 곤혹을 치러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옳은 취재방법을 회피하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옳다면 초지일관 취재의 목적을 이루어야 마땅하겠지만, 그렇다고 정당한 취재원의 권리와 요구를 알면서 무시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녹취상대가 공무원이었고, 취재내용이 방사능폐기물문제였던 어느 몰래카메라취재사건에서 해당 공무원이 통신비밀보호법위반으로 고소한 사례가 있었다. 그때도 역시 몰래 녹취한 대상이 “비공개 회의”였다는 점을 들었다. 그래도 그 사건은 원만한 합의로 종결되었기에 망정이지, 사법부 최종판결까지 갔더라면 피차 다 같이 지치고 망가져서 이기든 지든 결국 실익도 없는 싸움으로 상처뿐인 영광으로 끝내야 할 문제였기에, 원만한 종결은 모두의 바람이었고 윈윈(win-win)을 안겨준 것이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자유에 대한 제한과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통신 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함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마약이나 살인과 같은 중범죄의 현행범도 아닌 사람을 몰래카메라로 취재하는 것은 언론의 정당한 취재방법이 아니며, 통신비밀보호법에도 부합되지 아니하는 편법내지는 위법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은 어떤 경우라도 취재원의 기본권을 보장하며 취재를 진행해야 한다. 상대의 인격권이나 인권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의 목적만을 성취하기 위해 취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개선해야 할 전근대적인 취재관행인 것이다. 촬영사실을 숨기고 취재원을 촬영하여 방영하는 몰래카메라방식야말로 자칫 취재원의 음성권과 초상권침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취재내용이 공공의 관심사이고, 몰래카메라방법 이 외에는 취재가 사실상 불가능할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몰래카메라 취재를 인정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법원판결에 나타난 통상의 허용범위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몰래카메라로 취재한 테이프는 위법증거에 해당되어 압수내지는 수색의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3년 8월 9일 우리나라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몰래카메라취재 테이프를 검찰이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하여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모방송사를 압수수색하려 했다가 해당 방송사가 ‘취재원 보호’를 들어 이에 불응함으로써 압수수색이 불발된 사례가 있었다. 이 사례 역시 테이프가 불법적인 수단인 ‘몰카’로 제작되었다는 것이 압수수색의 영장발부를 가능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당시 미디어법 전문가들이 보는 견해 이었다.(더 자세한 것은; 김옥조, 미디어법,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279~308쪽 참조)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 타산지석으로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를 한두 개 고찰해보는 것은 좋은 참고와 함께 의미가있을 것이다.   1988년 일본 국민들의 의심을 받아 오던 일본리쿠르트 사장 비서실장이 일본의원에게 뇌물을 주는 장면을 니혼텔레비전이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방영하였다. 일본검찰은 해당실장을 뇌물공여죄로 구속하고, 법원은 방송사의 해당 원본을 압수하기 위한 영장을 발부하였다. 니혼텔레비전은 보도의 자유를 들어 항고하였으나, 최고재판소는 몰래카메라테이프가 범죄성립판단의 중요증거이고, 이미 그 영상이 방영이 되었으므로 보도의 자유를 침해하지도 않는다고 판단하여 테이프압류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이 있은 바로 다음해, 일본 TBS가 조폭이 폭행하는 장면을 촬영하여 방영한 일이 일어났다. 역시 일본검찰이 원본테이프를 압수하기 위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려하자 TBS가 항고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이때도 역시 법원은 그 테이프가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증거임을 들어 압수를 결정하였다. 류종현 / MBC 영상취재부 부장
    2012-02-21
  • 뉴스타파 권석재 기자를 만나다
    뉴스타파 권석재 기자를 만나다 입사 때 그 느낌“나는 세상을 바꾸고 있다”   마감일 바로 전날 권석재 기자를 프레스센터 1층에서 만났다. 저녁 5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11시가 다 되어 끝을 맺었다. 너무나도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뉴스타파 소개   뉴스타파는 뉴스답지 않은 낡은 뉴스를 타파한다는 의미, 성역없는 취재로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탐사보도를 지향한다. 가짜 뉴스는 가라. 진실한 뉴스를 위한 뉴스타파를 모토로 해직 언론인을 중심으로 주1회 제작되고 있음. 카메라기자 해직 후 근황   2008년 10월에 해직됐다. 그 후로 노조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최근 뉴스타파 제작진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첫 조카 백일 때 우스갯소리로 조카에게 “지우야 앞으로 노조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웃었는데 이제는 그 웃음을 견딜 수 있게 된 것같다.”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동지들의 희망펀드도 있고... 무엇보다 요즘은 뉴스타파로 저의 정체성을 찾아 기쁘다. 뉴스타파는 기존 뉴스와 어떻게 다른가?   기자들이 많은 반성을 해야 한다. 방송기자들이 폼 잡는 것을 그만 할 때가 되었다. 4대강 취재를 갔는데 그 곳에 기자들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선거관리위원회 취재도 역시 뉴스타파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기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취재는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는 얘기를 입사 때부터 들어왔지만 지금의 언론환경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기형적 언론이 잘못된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대안적 차원의 뉴스타파가 안착하고 있는 것 같다. 방송환경이 많이 다를 텐데 취재는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보통 월요일 2시에 기획 회의를 한다. 목요일에는 편집이 있는데 하루 이틀 밤샘 작업을 한다. 뉴스타파를 제작하면서 직종간의 경계는 없어졌다. 나도 기획에 참여를 해야 하며 PD도 앵커도 촬영을 해야 한다. 멀티플레이어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디지털 방송환경은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해직된 후 5년 동안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소형 카메라로도 고화질의 영상을 담아 낼 수 있고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든지 편집이 가능하다. 이러한 변화가 뉴스타파를 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거창한 스튜디오가 없어도 프롬프터가 없어도 진실 된 콘텐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뉴스타파 보도 후 동료기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저는 YTN에 96년 1월에 입사했다. 약 17여 년 동안 YTN 카메라기자로 열심히 했다. 수없이 많은 뉴스 콘텐츠를 제작했지만 개인적으로 뉴스를 잘 봤다거나 하는 의견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뉴스타파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 전화를 했다. 수고했다고 아주 잘 만들었다고... 방송 일을 하면서 이렇게 보람된 적이 있었나 싶다. 회사 동료들도 격려해주고 심지어는 중학교 동창에게 까지 전화 연락이 왔다. 친구야 자랑스럽다고... 트위터에서 뉴스타파 1편의 클릭수를 산술해 시청률을 계산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시청률이 약 3%대라고 한다. 뉴스타파의 시청자들은 직접적인 자신의 의지로 시청한다. 그렇기에 뉴스 내용에 대해 보다 이해도가 높고 댓글 수도 많다. 누리꾼들의 반응이 폭발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시청자들의 코멘트는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가? 저도 이렇게 까지 반응이 나올지 생각을 못했다. 약간의 기대는 했지만 수없이 많은 고뇌와 기획을 한 동료들이 자랑스럽다. 가끔 댓글을 보며 ‘내가 사회를 바꿀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한다. 입사 때의 느낌을 갖게 되어 울컥 마음이 짠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런 기분을 선후배들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우리도 나태해 질 수 있는데 그 나태함을 지적해주고 지지해주고 감시해주는 시청자들이 있어 감사하다. 시청자는 우리를 감시해 주고 우리는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회원여러분들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뉴스타파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   뉴스타파는 뉴스타파로만 끝나야 되지 않을까 싶다. 궁극적인 꿈은 직장에 복직되어 뉴스타파에서 쌓은 내공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싶다. 사회 비판감시 기능을 강화한 시사 프로그램의 제작. PD수첩처럼 호흡이 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방송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 말이다. 그 간 부서장이 바뀔 때마다 제작 아이디어를 많이 냈지만 인원부족과 케이블방송의 열악한 한계 등을 이유로 채택되지 못했다. 뉴스타파는 6~7명의 인원으로 1주일간 50여분의 프로그램을 만든다. 방송사가 의지가 있다면, 제작진이 사명감이 있다면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회원들과 협회에 하고 싶은 말 카메라기자의 정체성을 찾고 카메라기자 조직이 발전하려면 꼭 필요한 경우의 풀을 제외한 풀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남용되는 뉴스 풀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또 중견 카메라기자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만 조직에 활력이 붙는다. 특별히 YTN동기나 후배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고 항상 든든하며 감사하다. 사실 협회에도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해직 기자들을 감싸주지 못했고 협회차원의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협회에서도 자동 탈퇴 된 걸로 안다. 협 회는 카메라기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부당하게 해고 당한 기자들은 적극적으로 보듬을 필요가 있다. 대담: 이정남 기자
    2012-02-21
  • ‘뉴스영상PD’ 라는 해괴한 대체근로는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뉴스영상PD’ 라는 해괴한 대체근로는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MBC 협회원들의 공정보도 쟁취를 위한 총파업 투쟁이 보름째를 맞고 있다. 총파업에 앞서 이미 우리 협회는 지난 몇 년간 불공정한 MBC 뉴스에 대한 반성과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해버린 MBC를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주기 위해 선도적으로 제작 거부투쟁에 돌입한 MBC협회원들의 제작거부투쟁에 적극적인 연대를 천명한바 있다.   MBC 기자들 스스로가 지난 1년간 침묵과 왜곡, 편파보도로 얼룩진 MBC뉴스의 실상을 공개하고 편파와 불공정으로 얼룩진 MBC 뉴스의 이미지를 씻어 내기위해 분연히 일어선 가운데, 그 선봉에 MBC 카메라기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협회 모든 구성원들에겐 가슴 벅차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카메라기자들에게도 ‘공정방송’ 쟁취는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 또한 동업자로서 진정한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겸허하게 시청자 앞에 반성과 속죄를 하며 이번 기회를 MBC가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는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고자 했던 MBC 기자들의 솔선수범은 동종업계의 다른 언론인들까지 숙연하게 할뿐더러 각계 각 층의 지지와 성원을 얻어내고 있다. 아울러 매우 힘겨운 투쟁이 이어지겠지만 이 과정을 거쳐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 공정방송 실현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책임 있는 보도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면, 궁극적으로 온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다시 얻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정작 MBC의 명예를 이렇게 추락시킨 책임 당사자인 김재철 사장과 경영진의 대응 태도를 면밀히 살펴보면 상생은커녕 이 모든 파국을 자초하고 있는 듯하다. 작년 말부터 MBC 뉴스 시청률이 저조해지자 자신들의 불공정 보도 관행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언론의 기본을 망각한 이른바 ‘뉴스 개선안’을 제시하며 보도국 구성원들의 사기를 꺾어놓더니 정작 평기자들이 뉴스 정상화를 위해 이미 신뢰를 상실한 MBC 뉴스의 파행 당사자들인 보도책임자들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전개하자 기자협회장과 영상기자협회장을 징계하겠다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자 징계 움직임에 반대하는 보도국 구성원들이 제작거부 투쟁에 돌입하며 선도투쟁에 나섰고 이에 MBC 전체를 살리고자 노동조합이 총파업 투쟁을 통해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사측은 파국을 막아보자는 일말의 성의를 전혀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파업이 장기화되자 이제는 비정규 대체인력을 고용하여 땜질처방을 해보려는 반사회적 작태를 벌이고 있다. 이미 공영방송의 책무를 져버린 지 오래라지만 어떻게 중소기업도 아닌 공영방송 MBC가 우리 사회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개선하고자 했던 비정규직의 망령을 부활시켜 총파업 투쟁의 대응도구로 쓰려 한단 말인가?   그 중 특히 ‘뉴스영상PD’ 라는 해괴한 직업군까지 만들어내며 파업투쟁중인 MBC 카메라기자들을 대체하려는 저열한 발상과 행위에 대해 우리 협회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행위는 공정방송 쟁취를 위해 이번 투쟁의 선봉에 선 MBC 카메라기자들의 명예를 심대하게 실추시키는 행위일뿐더러 아무리 노사 간 극한 대립 중이라 할지라도 소위 이 나라 공영방송 경영진의 발상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저열하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 대체인력으로 채용된 이들의 미래는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의 한 치 앞날도 예측할 수 없는 현재 MBC 경영진들에게 어불성설이기만 하다. 방송직을 꿈꾸는 순진한 젊은이들을 자신들의 일회용 주구로 삼아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밀어 넣으려는 MBC 경영진의 무책임한 행동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만약 MBC 경영진의 이러한 반사회적, 반노동적 행위가 중단되지 않을 경우 이는 비단 MBC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카메라기자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우리 협회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임을 밝혀둔다.
    2012-02-21
  • 브라질 칠레 취재기 - 무역 1조원시대 취재기
    브라질 칠레 취재기 - 무역 1조원시대 취재기   1월 9일 저녁 19시, 몸이 안 좋았던 나는 퇴근길 버스에 올라 아내에게 오늘 저녁은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약 10분이 지난 후 부장으로부터 현 위치와 전자 여권이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다급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정확한 상황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여권만 들고 1시간 안에 인천공항으로 넘어가라는 황당한 상황. 필요한 옷가지는 모두 현지에서 구입해 주기로 했으니,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무조건 빨리 인천공항에 도착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촬영기자 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지금껏 수많은 해외출장을 다녔지만, 이토록 황당한 출장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목적지도 모르는 상황이 나를 더 당황하게 했지만, 그만큼 다급하다는 현실을 직시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묻지마 출장’을 시작했다.   브라질 상파울로행 밤9시35분 대한항공편 이륙시간을 40여분 남겨놓고서야 헐레벌떡 인천공항 국제선 로비로 뛰어 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답답할 따름이었지만, 나를 애타게 기다렸던 출장팀들과 급속으로 출국수속을 처리한 뒤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브라질 상파울로행 비행기가 천사들의 고장 미국‘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최종 목적지 상파울로에 도착했지만, 미국에서 E-Star(트렌지션비자)가 따로 필요하다는 사전정보를 알고 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 회사의 모든 해외출장 항공편은 특정 여행사와 거래를 하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항공편 예약을 책임지는데, 이렇게 중요한 사항을 여행사에서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실로 낭패였다. 다행히 담당 기자와 PD는 전자여권으로 공항에서 바로 E-Star를 신청해서 승인을 받을 수 있었지만, 카메라기자는 일반여권이여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확인 차 수속중인 항공사 직원에게 재차 물어봤지만, 취재비자로는 절대로 브라질에 갈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전자여권을 소지한 내가 공항에서 출장예정이었던 촬영기자에게 모든 촬영장비를 인수받고 11박12일의 남미 출장길에 올랐다.   첫 취재는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2시간을 차로 달려 도착한 LG의 공장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에 도착해 점심을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짬밥을 먹었다.   서울을 떠난 후 3일 만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브라질은 치안만 좋으면 정말 낙원 같은 곳이다. 상파울로나리오 등 대도시가 위험하지만 흔히들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하지는 못한다. 오래 거주한 분들도 강도한번 안 당한 분들은 조심만 하면 된다고 하고 여러 차례 당하신 분들은 치를 떨었다.   지금은 치안부재가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상이다. 브라질 상파울로는 1차선과 2차선 사이를 주로 오토바이들이 헤집고 다닌다. 대낮 큰길에서 차가 막혀 있으면 특히 남자 2명이 탄 오토바이가 다가와 권총을 들이대거나 유리창을 깨고 가방, 노트북, 카메라 등을 강탈해 간다.   지금껏 출장 와서 잘 보고 여행 잘 다녔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건 그냥 당신 재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브라질 상파울로 인구가 1천1백 만 명인데 모두 다 강도당하는 건 아니니 가급적 뭉쳐 다니는 게 좋다.   상파울로에서는 강도용 지갑을 따로 준비하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년부터 오토바이도 2명이 타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특히 길 한복판에서 오토바이 서치(몸 수색하는 것)를 보았는데 10명중에 3~4명은 총이 있다고 한다. 한국식당에 가면 방탄차량 판매 안내문구가 있곤 했다. 얼마나 치안이 안 좋으면 방탄차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판매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취재팀은 그래도 강도한번 안 당하고 취재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의 취재는 비교적 순조롭게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한국타이어, LG공장, 코트라사무실 썬스타 공장 및 현지 법인 사무실, 브라질 상파울로 시내 스케치 등 해외 취재 오면 당연이 하는 일들을 마치고 우리 팀은 칠레 산티아고로 떠났다.   칠레 도착부터 마음이 놓였다. 치안도 아주 좋고 공원에 사람들도 어딘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길에는 현대 그렌져, 스타렉스, 기아차 모하비, 쏘렌토 등 우리나라 차량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어서 그런지 마음부터 편안해졌다.   칠레는 3W가 좋은 곳이라고 한다. 우먼, 와인, 웨더. 그런데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날씨와 와인은 비교적 괜찮았다. 날씨는 한참 여름이다. 저녁 9시 넘어야 해가 지기 시작했다. 취재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 좋았다. 와인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맛나고 향도 좋았다.   그런데 길을 아무리 보아도 어여쁜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포스코의 발전소는 칠레 싼티아고에서 2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에 있었다. 한국 분들이 정말 고생하고 계셨다. 인터뷰와 발전소 내부 취재를 마치고 싼티아고에 도착해 시내 스케치와 전망대에서 취재를 마쳤다.   그렇게 11박12일의 일정이 흘러 또다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시간과 트렌지션 시간을 합하여 32시간의 거리. 브라질과 칠레가 먼 거리였다. 서울 도착 후 또다시 정신이 몽롱하고 몸이 나른하니 정신이 없었다.   비록 황당함으로 시작되었던 남미출장이었지만, 10년 만에 다시 찾은 브라질과 칠레는 현지인들의 보다 자세한 일상생활들을 오픈해주었고, 반가움으로 문을 더 넓게 열어준 기억을 남겨주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더 큰 반가움으로 만날 남미를 기약하며... 가정에 행복과 건강 챙기는 2012년 보내세요. 이성모 / YTN 보도국 영상취재부
    201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