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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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지게 투쟁했던 2012년 봄날
    멋지게 투쟁했던 2012년 봄날   공정보도라는 기치를 들고 파업을 시작한지 벌써 90일이 넘었다. 지난 90여일은 그동안 우리가 선언적으로 외쳐온 공정성과 공정보도가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정보도라는 구호를 매일매일 외쳐왔지만 실제 공정보도는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되는 것인지 명쾌하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많이 언급되는 양적 균형과 기계적 중립과 같은 방법론적 개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무미건조한 양적 균형과 기계적 중립이라는 개념들이 왜 어쩔 수 없이 현재 우리가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선택할 밖에 없는 최후의 선택이자 공정보도의 최후의 방어선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2012년 총선 보도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총선 보도가 한창이던 지난 4월 3일부터 5일까지 짧은 3일간의 기간 동안 총선보도 리포트에 대한 영상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그 동안 수십 년 동안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공정보도가 너무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카메라기자의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만이 우리 선배들이 수많은 역경과 희생을 통해 얻어낸 공정보도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영상분석 결과를 보면 보도영상에서의 편파보도는 매우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정보도의 대표적인 개념인 양적 균형은 매우 충실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오히려 야당보도가 근소하게 더 길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보도가 시작되면서 여기저기서 이거 뭔가 이상한데 딱히 뭐라고 하기 힘든 지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림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장난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인파 속의 여당과 썰렁한 야당 프레임이다. 박근혜위원장 중심의 여당보도는 항상 인파 속의 박위원장과 환호하는 시민들이 보여졌다. 샷과 앵글을 분석한 결과 여당보도에서는 42%의 풀샷이 사용돼 야당에 비해 10%이상 많은 반면 야당보도에서는 미디움샷이 8%가량 많았다. 풀 샷은 선거유세의 규모와 반응은 유세 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의 정도와 강도를 보여주는 선거 유세보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샷으로 한나라당은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인 모습과 환호하는 모습이 보여졌지만 민주당은 풀 샷이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되었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유세규모 전체를 보여주는 풀 샷은 거의 없었고 앵글 자체도 매우 불안정했다. 분위기는 당연히 열기도 없고 썰렁함 그 자체였다.   두 번째는 유세중인 박근혜 위원장과 회의하는 민주당 프레임이었다. 여당보도는 항상 유세현장에 있는 박근혜 위원장이 보여진다. 90%가 현장 유세영상이고 박위원장의 등장비율도 60%가 넘는다. 반면 야당은 유세영상의 비율이 56%로 여당에 비해 무려 34%나 적고 대신 회의나 브리핑과 같은 비유세영상이 44%나 차지했다. 여당의 대표는 항상 유세현장에 있는데 야당은 실내에서 회의를 하거나 브리핑을 하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게다가 야당 보도영상에는 자료화면까지 등장한다. 휴대전화 공약부분에서 휴대폰 자료화면이 나오고, 4월 5일 보도에서는 전날 회의하는 자료화면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아무리 파업 중이지만 여러 건의 현장 유세가 취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대표가 지역구 후보의 손을 들어줄 때 야당 후보는 휴대폰 자료화면에 밀려 등장하지도 못 한 것이다.   세 번째는 꽃받는 박근혜위원장과 어정쩡한 한명숙대표 프레임이다. 박위원장은 항상 웃고 악수하고 손을 흔들고 지지자로부터 3일중 2번이나 꽃을 받는다. 반면 한명숙 대표는 시민들과 악수하는 장면보다 그냥 혼자 걸어가는 장면, 리포트 첫 화면에서부터 머쓱하게 걸어가는 장면, 악수를 하다 말고 옆으로 빠져나가는 모습, 지지 후보와 손드는 장면은 없이 손 내리는장면 등 영상기자가 보기에 NG컷인 장면이 너무도 자주 등장한다. 열심히 유세하고 열렬한 지지를 받는 박근혜위원장과 어정쩡한 한명숙대표라는 이미지를 줄 수밖에 없는 의도가 다분한 편집이 아닐 수 없다.   방송뉴스영상의 조작은 매우 교묘하게 이루어져 심증은 가더라도 방송은 한번 흘러 지나가면 다시 돌려보기 힘들고, 신문의 사진처럼 한 컷 한 컷 비교하기 힘들어 그 문제를 인식하기 어렵다. 그래서 선거보도에는 매우 엄격한 양적, 내용적 균형을 강조하고 선거이전에 영상기자단은 샷과 앵글에 대해 미리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의해 영상취재와 편집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리포트 길이, 인터뷰 길이는 물론 풀 샷, 대표 발언시 샷의 크기, 군중의 반응 샷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기준을 세우고 기계적으로나마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너무 단순하고 기계적이라며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 그 기계적 중립이 이번 MBC 총선보도에서 한 순간에 허물어짐으로써 그 기계적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보도영상은 기사가 전달하지 못하는 선거유세의 규모, 분위기, 후보자에 대한 인상과 같은 시각 정보와 감성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중요한 정보원으로 언론을 장악하려는 세력들은 항상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만 보여주기 위해 보도영상을 통제해왔다.   이에 저항해 분신과도 같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지금 김재철과 그 일당들은 자신들의 편파보도를 대선까지 이어가기 위해 정체불명의 영상PD를 채용하고, 영상편집부를 영상파트에서 분리해 직할체재에 두고 자신들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조직개편이라는 도발을 단행하려 하고 있다. 지난 90여 일간 MBC뉴스에 대한 참담함과 자괴감,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시련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강하게 단결시키고 있고 파업의 명분은 이제 하늘을 찌르고 있다. 공정방송을 외치는 오늘 하루하루의 투쟁은 너무도 의미있고 뿌듯하다. 불의에 분연히 일어났고, 불의와 싸웠던 내생에 가장 뜨거웠던 날들로 기억될 2012년 하루하루 나는 멋지게 투쟁하고 있다. 이창훈 / MBC 영상취재부
    2012-05-04
  • 4.11 총선 취재기- 12월 대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4.11 총선 취재기 12월 대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4.11 총선은 새누리당 승리, 민주통합당 참패, 통합진보당 중간성적표, 자유선진당 몰락, 무소속 부진, 국민생각/진보신당 국회입성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야권의 두축이라 할 수 있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선거연대 그리고 선거 전 불거진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호재속에서 야권이 여유있게 과반을 획득하리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틀리고 말았다. 누가 그랬던가? 선거는 곧 전쟁이라고... 상대를 쓰러트리지 못하면 내가 쓰러지는 현실... 보이지 않는 총성이 울려 퍼지는 전쟁과 같은 상황... 우린 약 2개월여를 그속에서 함께 보냈다.   2012년 1월...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한 민주통합당의 분위기는 4월에 있을 총선에서 무조건 과반을 넘어 제1당이 된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현장을 취재하는 출입기자들도 이전과는 달라진 늘어나는 취재인력, 주위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인물들의 회의 참석, 공보국의 회의실 이전 제의(인원이 많아서)를 지켜보면서 ‘야! 정말 이번 선거는 야당이 이길 것 같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공천이 시작되면서 잡음이 들리더니 연말부터 발목을 잡았던 야권단일후보 문제마저 상황을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총선을 얼마 앞두고 터진 김용민 막말 파문건은 큰 악재로 다가왔다. 한명숙 대표를 둘러싼 주위의 분위기가 이처럼 점점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빨리 정리해야 할 일들에 대한 판단이 미뤄지면서 당내 분위기는 몇달만에 바뀌어 버렸다.   총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민주통합당을 출입하는 카메라기자들은 당혹스러웠다. 침체된 당 분위기처럼 상대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영상과 한명숙 대표의 영상이 비교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이전부터 인기가 있었던 대선후보였지만 한명숙 대표는 인지도 면에서 열세를 면치못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손이라도 잡아 볼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들었고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의 유세현장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현장에서 부족한 취재인력으로 부감을 촬영하고 싶어도 새누리당과 너무 비교가 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정도 영상에서의 열세를 면해 간다고 생각할 즈음 총선상황은 양당의 의석수가 비슷하게 가거나 질 수도 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4.11 총선 최대 이슈메이커로 떠오른 인물... 막말 파문으로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던 김용민 후보를 만난 유세 현장은 식을줄 모르는 인기로 가득찼다. 이 정도라면 당선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4월 11일 오후6시. 영등포에 위치한 민주통합당 당사에서 방송3사의 출구조사를 시청하던 한명숙 대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심 그래도 결과는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 박빙 지역이 많아 그 누구도 예측을 할 수 없었다. 결국 한 대표의 미소는 이 후 볼 수 없었다. 10시쯤 박빙지역에서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연초의 그 좋던 분위기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물론 18대 87석에서 19대때 127석으로 많은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사이에 문제에 대한 판단 오류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은 무서웠다. 앞으로 남은 대선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야당은 또다시 유권자들의 냉혹한 심판을 받을 것 같다. 민심은 정치인들의 적당히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9대 총선에서 야권단일화 과정에서부터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곳은 아마 관악을 지역구일 것이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김희철 전 민주통합당 후보의 경선, 그 과정에서의 여론조사 조작 파문, 그리고 이어진 이정희 대표의 재경선 제안, 김희철 후보의 불복과 민주당 탈당, 이정희 대표의 사퇴와 그 대타 격으로 내세운 이상규 통합진보당 후보... 관악을 선거는 3자 구도속에서 결국 이상규 후보가 당선되기까지 이처럼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관악을은 헌정 사상 최초로 어렵사리 이뤄낸 야권연대에서 가장 상징적인 지역구로 떠올랐고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선거기간에 특히 관악을에 매달렸다. 지역 거리유세 때 마다 허리를 90도 이상 굽히는 낮은 자세로 일일이 지역민들의 손을 붙잡고 작은 목소리로 한 표 한 표를 부탁했다. 나는 15개월 동안 국회에 출입하면서 이정희 대표의 그렇게 간절한 모습을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처럼 관악을 선거는 이상규 후보가 나왔지만 실제로 이정희의 선거이기도 했다. 결국 이상규 후보는 이정희 대표의 도움으로 관악을에서 지역민들의 지지로 당선되었고 통합진보당은 13석을 차지하면서 제3당이 되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수도권에 텃밭을 개척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울산, 창원이라는 전통적 텃밭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해 뼈아픈 결과도 가져왔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2월에 대선이라는 더 큰 싸움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각자의 위치에서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 총선유세현장 맨 앞에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본 후보들과 각 당 지도부들의 모습이 이제는 언제였던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은 또 우리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김대철·제일 / SBS 영상취재팀
    2012-05-04
  • 대한민국 최초의 父子 카메라기자
    대한민국 최초의 父子 카메라기자 변영우 변성중 기자를 만나다   아버지와 아들이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인터뷰 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4일 저녁 7시 목동에서 드디어 재회했다. 간단히 가족을 소개해 달라. 아들이라 키우기 힘들었겠다.   변영우: 1남 1녀를 두고 있다. 아들과는 무려 8살 차이가 나는 딸이 있다. 성중이가 하도 동생을 낳아달라고 해서 낳았다.(웃음)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성중이가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던 게 생각난다. 딸은 보스턴대학 국제학과를 1년 일찍 조기졸업하고 지금은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을 하며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성중이나 딸이나 키우면서 말썽 한번을 안 피웠다. 화초를 좋아해 많이 키웠는데 꽃잎 한번 따지 않았다. 하지 말라는 행동은 하지 않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다른 집은 벽이며 장롱이며 온통 낙서로 도배가 된다고 하는데 우리 애들은 참 순했다. 카메라기자가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변영우: 중앙대 사진학과를 다녔다. 사진을 전공 한 계기는 고3때 몸이 아파 휴학을 했었다. 그 후 나름대로 사진 작업을 했는데 성과가 좋게 나왔다. 당시 한국일보 학생과학 잡지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사진작가로 선정되었고 중앙일보 전국학생 사진 콘테스트 은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그 휴학하는 일 년이 내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영상의 길로 가겠다는 결심은 졸업을 하고 ROTC로 군대를 다녀와 1년 여간 방황을 마친후 이루어 지게 되었다. 그때는 시대 상황이 방송이나 신문의 제 역할을 못하다보니 선배들이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할 정도로 번뇌가 심했다. 하지만 결국 1982년 11월 MBC에 입사를 했고, 드라마, 중계 카메라 등의 촬영감독을 했다가 1991년 SBS가 창사되면서 카메라기자로의 전환을 시도하며 나름대로의 주관과 철학을 갖고 업무에 임했다. 조선시대 승정원은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과 비슷한 역할을 했는데 승정원에는 사관이 있었다. 왕도 승정원 일기를 마음대로 고칠 수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기자 역시 사관의 마음을 갖고 취재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오점 역시 항시 올바른 시각으로 시청자에게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일종의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변성중: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DSLR 카메라를 사주셨다. 사진에 대해 많이 배웠고 촬영하는 것이 즐거웠다. 건축공학을 전공하여 졸업 후 건축회사에서 1년 반 정도 일을 했지만 배움과 현실은 너무 달라 아버지와 상의 후 퇴사를 했다. 그 후 유럽으로 3개월 간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고심 끝에 동경했던 카메라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변영우: 동경했다고 했는데 아들은 표현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말이 없어 속을 알 수 없었는데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카메라기자가 되겠다고 하더라. 본인이 심사숙고해서 결정했기 때문에 아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기억에 남는 취재나 프로그램이 있으시다면?   변영우: 참 많다. SBS 카메라기자들과 함께 집필한 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정말 울면서 취재했던 기억이 있다. 1993년 인가 1994년인가 사할린 교포가 입국했던 적이 있다. 당시 당일 출장으로 사할린에 가게 되었다. 공항 밖을 나갈 수 없는 취재였는데 소련 측의 배려로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주변을 취재 할 수 있었다. 공항이 철조망으로 둘러 싸여 있었는데 남아 있는 가족들이 철조망에 올라타거나 매달려 “가지마라” 소리치며 우는데... 절규였다. 나 역시 흐르는 눈물로 파인더가 흐려져서 촬영이 힘들 정도였다.. 귀국하는 동포들은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가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와 정착했지만 부모의 나라에 뼈를 묻고 싶어 귀국을 결심하게 된 분들이다. 이미 징용으로 인한 강제이별을 경험했는데 또 다시 남아 있는 가족들과 이별을 해야만 했다. 취재 후에도 동포들이 자꾸 생각나 애잔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보람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마약회사 정트리오... 마약실태 파악을 하는 50분 특집물을 제작했다. 90년대 초반일 것이다. LA 할렘가에 들어가기 전 카센터에서 차의 내부를 안보이게 선팅을 한 후 조그만 구멍을 뚫어 그곳으로 마약 현장을 촬영했다. 긴장도 많이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이어 마약 청소년 중독자 개선 센터를 취재했는데 그중에 한국계 청년들도 있었다. 인터뷰 도중 그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우리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다시는 마약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그들의 다짐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2000년대에는 10여 년간 현장 취재를 하지 못했다. 영상편집부장, 영상취재부장, 영상 본부장을 역임했다. 특히 영상편집부장 시절은 아날로그 시스템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점으로 디지털 관련 여러 교육이 이루어졌다. 영상취재기자와 영상편집기자들은 일과 후에도 테스트를 받아야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 방송사가 디지털 선두주자로 나서는데 초석을 다져 보람되었다. 변성중 기자는 이제 3년차인데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었는가?   변성중: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가 기억에 남는다. 천안함 사태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수습기간이었는데 집에서 자다가 급히 연락을 받고 출장준비도 없이 입은 옷 그대로 백령도에 김재헌 선배와 함께 들어갔다. 역사의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고 추위와 싸우며 6일정도 있었다.   변영우: 천안함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이 났는데 부자지간에 첫 합작품이 나올 뻔 했다. 침몰 천안함을 바지선에 싣고 예인해 평택항으로 들어올 때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이거만 되면 꼭 특종이니 평택항 입구에 있는 한전서부발전 평택 화력발전소 대형 굴뚝에 올라가 촬영할 수 있게 아는 분께 섭외를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SBS소속이고 아들은 MBN인데... 망설이다 그곳에 근무하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미 경찰관계자가 취재진이 절대로 굴뚝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협조해 달라는 연락을 해왔다며 정중히 거절하는게 아닌가. 첫 합작품(?)이 될 뻔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됐어도 입장이 애매모호 할 뻔했다.(웃음)   변성중: 그 다음 기억에 남는 취재는 역시 아웅산 수치의 인터뷰이다. 만 1년도 안되었는데 출장 명령을 받았다. 책을 통해 보안이 어떤지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다. ( 미디어아이 78호 아웅산 수치 취재기 참고)   이즈음 인터뷰가 진행되었을 때 한국 올림픽 대표팀의 런던 올림픽 축구 대진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변영우: 어떻게 보면 카메라기자는 축구선수와 비슷하다. 개인기도 중요하지만 팀웍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출입처에서는 타방송사 기자들과 팀웍을 이뤄 취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직종에 비해서 경쟁관계의 기자들과도 친하게 된다. 종편 개국이후 POOL에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 협회에서 조율을 잘해야 할 것이다. 저도 협회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해봤지만 지금의 협회는 예전의 친목성 단체에서 벗아나야 한다. 방송3사 체제에서야 세가 약했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언론 직능단체로 자리매김했다. 협회가 풀로 인한 협회 회원사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줘야 한다. 아들에게 카메라기자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변영우: 요즘 아들 보기가 참 어렵다. 기자가 되었는데도 어렸을 때의 성격 그대로인 것 같다. 자주 해 준 이야기인데 잘났다고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고, 팀웍을 깨지 않는 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호간에 인사를 잘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선배들과의 유대감이 재산이 될 것이다. 또, 뛰어난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수를 최소화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마 지속적인 경험을 통해서 느끼게 될 것이다. 후배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변영우: 기자란 말 그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글로 쓰던 영상으로 취재를 하던... 취재기자들이 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글은 현장에 없어도 쓸 수 있고, 과장되게 쓸 수도 있지만 영상은 과장 할 수도 없고 현장에 없으면 아예 취재자체가 불가한 것이다. 예전엔 화재가 발생하면 거리에 상관없이 취재를 갔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소방서 제공의 그림과 인터넷에 올라온 제보영상이 주를 이룬다. 기자가 현장에 없다면 기자라고 할 수 있는가? 현장에서 기록하고 사실 그대로를 전달해야 한다. 가보지도 않고 글을 쓰거나 영상을 받는다면 스스로의 영역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비록 그 곳이 전장이거나 재해현장 일지라도 반드시 현장에 있어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 카메라기자이다. 물론 최대한 안전하게 취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통계를 보니 지구촌에서 분쟁 취재 등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기자의 수가 백여명을 넘어섰다. 현장에 존재하되 안전을 확보하고 기자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변성중: 구체적인 꿈은 아니지만 아버지께서 조언해 주신대로 겸손, 성실, 예절 등 초심을 잃지 않고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참된 기자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자랑을 해 달라   변성중: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너무 엄하셔서 장기간 출장을 가시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눈치 안 봐서 좋고 돌아오시면 선물 많이 사 오시니 좋고... (웃음) 집에서는 아버지이지만 사회에서는 카메라기자 선배이기 때문에 많은 조언들을 구할 수 있어 좋다. 아버지는 풍부한 유머감각과 위트가 있으셔서 제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분위기가 살아 친구들이 아버지를 무척 따르고 좋아한다.   일찍 자리에 온 변성중 기자는 스킨스쿠버 오픈워터 과정의 서적을 읽고 있었다. 이번 휴가 때 필리핀에서 자격증을 딸 예정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참으로 행복하고 화목해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대담: 박현철 이정남 기자
    2012-05-04
  • 검찰 청사내에서의 휴대폰 촬영, 문제있어
    검찰 청사내에서의 휴대폰 촬영, 문제있어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다보면 많은 취재현장에서 포토라인을 만나게 된다. 미디어의 개체수가 무척이나 많아진 현실에서 가능한 한 다수의 취재진들이 서로의 업무에 방해를 주지 않으며, 각각 최소한의 영상 확보를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서초동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검찰과 법원에서 “포토라인”은 매 취재 순간에 없어서는 안 될 장치이다.   검찰 소환자를 취재할 경우 검찰외부 즉 유리 출입문 바깥쪽에서만 취재를 하기로 한 약속이 몇 년전부터 지켜져 왔으며, 이 공간에서 최대한 서로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한 포토라인을 만들어 취재에 임하고 있다. 취재원이 유리문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는 카메라기자나 사진기자 모두 건물내부로는 들어가지 않고 다만 외부에서 유리창너머로 보이는 소환자들을 촬영 할 뿐이다. 유리문 너머는 다른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 유리문 안쪽에서 취재기자들이 휴대폰으로 동영상 내지는 사진촬영을 하는 행위가 보이며, 또한 이를 활용한 보도를 종종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내 눈으로 봐도 최신 스마트폰들의 동영상은 썩(?) 훌륭하다. 이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휴대전화 내지는 소형영상기기들의 화질 때문에 생긴 욕심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규칙위반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 자꾸 이런 행위가 벌어질 경우 결국에는 모두 그 규칙을 지키지 아니할 것 아닌가? 어렸을 적 보았던 “분노의 역류” 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 you go? we go!" 네가 가면 나도 간다는 소리 아닌가. 이제는 각사별로 취재기자들에게 이런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충고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의 업무영역을 침범했다라는 밥그릇 지키기의 문제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질문해대며-이는 취재기자들의 본업이니-잘 찍으면 얼마나 잘찍었겠는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기본적인 약속은 지켜주는 모습이 필요하다 본다.      ex - 법원의 취재가능구역은 보통 금속탐지기가 설치된 출입구 전까지이다. 이 바깥부분이 검찰에서의 유리문 바깥부분과 같은 역할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2월경에 법원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온 피고소인이 있었다. 이때 워낙 급작스럽게 등장해서 들어가 버리는 통에 검색대 밖에서의 촬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더불어 법원출입이 아닌 신입 사진기자가 검색대 안쪽으로 따라 들어가 촬영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포토라인은 뭉개지고 수명의 사진기자와 카메라기자가 검색대 안쪽에서 촬영하는 근래 법원이나 검찰에서 보기힘든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피고소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진 후 취재진들끼리의 의견조율에 의하여 카메라 기자들은 각사별로 내부에 사정을 연락한 후 영상을 사용하지 않기로 의견조율을 하였던 일이 있었다. 물론 당시의 피고소인이 그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경우였을 것이다.   “품질의 차이”는 인정하겠지만 DSLR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목적의 장비라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런 경우에서 보더라도 취재기자들이 자꾸 휴대폰 등으로 동영상을 찍는다면 결국 부득이하게 다른 취재진들도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생길 것이고 이는 우리들 각자의 취재행위에 더 어려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특이 하게도....사진기자들은 최초로 들어간 그 신입 사진기자만 징계하기로 하고 다른 사람들은 사진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처음 들어간 사람만 징계하고 나머지는 그냥 사용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차후에 사진기자 협회와도 정확한 조율의 선을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 ) 김현상 / SBS 영상취재팀(검찰출입)
    2012-05-04
  • 줌인 <공정한 영상 없이 공정방송 어림없다>
    공정한 영상 없이 공정방송 어림없다   공정방송 쟁취를 외치며 엄동설한에 시작한 MBC 노동조합의 파업이 벚꽃이 다 져버린 지금도 해결의 기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파업 90일째를 목전에 둔 지금, MBC 경영진은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은 커녕 모든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넣기 위한 전횡을 일삼는데 급급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전횡은 이제 MBC 한 회사를 떠나 그 동안 수많은 언론 종사자들이 싸워서 지켜낸 ‘방송협업 시스템’의 틀마저 위협하고 있다   지난 20일 MBC 경영진이 강행한 누더기 조직개편의 내용을 살펴보자.   기존의 보도영상국 소속이었던 영상편집부를 떼어다 보도국 편집3부라는 조직을 신설했다.   84년 MBC에 영상편집부가 생긴 이래로 영상취재부와 영상편집부는 유기적인 업무연관성을 가지고 일해왔으며 현재 어떤 방송사, 심지어 신생 종편에서도 영상취재 부문과 영상편집 부문을 떼어내 운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만큼 방송에 있어 촬영과 편집은 불가분의 유기적 관계이며 의도적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망칠 생각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넌센스’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MBC 경영진이 이런 비상식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는 지난 23일 MBC 영상기자회의 성명서 일부를 인용해 본다.   “조직개편이 일련의 임시직 직원채용과 맞물려 불공정 대선보도를 향한 기반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편파 편집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영상편집부를 슬그머니 편집3부로 바꾼 것만 보더라도 이러한 속내를 눈치 챌 수 있다. ‘기사편집과 영상편집은 완전히 별개다’라는 사실은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인데도, 뜬금없이 뉴스편집부 사이에 영상편집을 끼워 넣은 것이다. (중략)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부서이동의 목적은 다름 아닌 ‘뉴스왜곡 핫라인’ 구축이다. 즉, 계약직 기자에게 입맛대로 기사 불러주고, 임시직 취재PD 시켜 그림 찍어온 후, 말 잘 듣는 편집자 통해 내 맘대로 편집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박근혜 띄워주기’로 점철된 지난 총선 보도에서도 이미 ‘핫라인’의 가공할 만한 위력이 검증된 바 있는데, 그중 편파 영상편집에 대한 카메라기자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아예 영상편집을 보도국장 직할체제로 배속시켜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게 바꾸어 놓았다. 때문에 이 같은 별동대 체계가 공고히 갖춰질 경우, 총선보도를 뛰어넘는 MBC 역사상 최악의 불공정 대선보도가 자행될 전조도 이미 보이고 있다.(후략)“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MBC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취재기자든 카메라기자든 편집기자든 기자에게 ‘공정성’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버젓이 공영방송이라는 곳에서 이런 목숨과도 같은 금과옥조를 조직적으로 짓밟아 구성원들을 불공정과 편파보도의 부역자로 내몰려 한다면 이것은 곧 이 땅의 모든 방송과 언론종사자들의 직업적 자존과 긍지를 위협하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이에 본 협회는 카메라기자에게 목숨과도 같은 보도영상의 공정성을 지키고자 불공정 방송에 노역을 제공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 MBC 분회원들의 투쟁을 강력히 지지하며 MBC 경영진의 이해할 수 없는 조직개편안을 당장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2012-05-04
  • 4.11 총선 취재기 - 국회 4진
    411 총선 취재기                  -OBS 김영길<국회 4진>-   갑자기, 모든 소음은 사라진채 3! 2! 1! 의 카운트가 끝나고, 탄성과 탄식이 들려왔다. 19대 총선의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힘들고 고된 총선을 마치며 마음 한편으로는 시원함과 아쉬움이 뇌리를 스쳤다.   20년 만에 돌아오는 대선과 총선의 해에 국회출입을 하면서 카메라기자로서의 풍부한 경험과 많은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당 내외부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했고, 시도는 새로운 인물들을 언론에 노출시키는 결과도 가져왔다. 그 새로운 인물들이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폭로전과 두뇌싸움이 시작되기도 했다.   연초 한나라당은 여러 가지 사건으로 국회의장과 당대표가 사퇴하며 침체된 상황이었다. 물론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한나라당에게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15년 동안 지켜오던 한나라당 당명을 과감히 새누리당으로 바꾸며 2달 밖에 남지 않은 기간 새로운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민주당에서도 일당을 차지하기 위해 야 통합을 하며 민주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아닌 신생당 명으로 치열한 선거전에 돌입했다.   두 여성 대표는 전국 지원유세를 다니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여당 야당의 싸움은 마치 엄청난 병력을 뒤에 두고 여포와 관우가 맞붙어 있는 듯한 긴장감까지 들기도 했다. 두 여장부로 대표된 여포와 관우의 싸움은 국회에 있는 나에게는 적벽대전 이상의 치열하고, 간절한 전투처럼 다가왔다.   공천과정에서도 쇄신이 이루어졌다. 누구도 예상 하지 못한 중진의원들이 대거 탈락하고, 이를 지지하는 지역민들이 당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등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선거일이 다가 올수록 양당에서의 비방과 폭로는 더 과열되고, 고소, 고발도 진행되었다.   이번 선거에선 지역감정이 없는 지역주의 타파였다. 새누리당의 후보가 호남에, 민주통합당의 후보가 영남에 당과 지역을 뛰어넘어서, 새롭고 혁신적인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여야당 모두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역을 넘어, 인물을 보겠다는 여론조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결국 지역과 당을 뛰어넘지 못했다.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큰 실망감으로 다가왔으리라...   4/11 총선을 마치며 결과는 다시 새누리당이 일당을 차지했고, 민주통합당은 의석수는 늘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니었다. 그 많았던 변화와 혁신의 바람은 새누리당이 민주통합당에게 뒤집힐 만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결국 새누리당의 변화의 바람이 유권자들에게 더 다가온 결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은 과제는 8개월 후에 있을 대선이다.   이제 19대가 시작하면서 두 당이 공약으로 내세운 약속들을 얼마만큼 잘 지키고 이행할지 국민들은 계속 지켜 볼 것이다. 변화의 바람이든, 혁신의 바람이든...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던지, 국민들이 바라는 그런 바람은 국민이 행복한 그런 따뜻한 바람일 것이다. 국회에 있는 소수의 사람을 위한 바람은 절대 아니길...   오늘도 국회에는 아름다운 벚꽃과 함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이러니 하게도...
    2012-04-27
  • 멀티형 카메라기자 되기
    멀티형 카메라기자 되기 단기교육실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태양식)는 방송기자연합회(회장 이재강)와 공동으로 멀티형 카메라기자 되기 단기 과정을 2차에 거쳐 개설한다. 1차 교육은 5월 7일과 8일 양일간 방송회관 9층 강의실에서 개최되며 2차 교육은 6월 7일과 8일 양일간 동일 장소에서 진행 된다.   이번 교육은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카메라기자 양성을 목적으로 방송기사 작성법, 방송언어 교육을 포함해 뉴디바이스 활용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교육 할 예정이다. 뉴디바이스 활용 교육은 DSLR을 활용한 영상취재 방법과 모션그랙픽과 컬러그레이딩의 이해 등을 다룰 예정이다. 교육 신청은 5월 3일까지 협회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 받아 제출하면 된다.
    2012-04-27
  • 19대 총선과 보도영상의 공정성 세미나 개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태양식)는 5월 25일 오후 6시, 서울 그린월드호텔에서 ‘19대 총선과 보도영상의 공정성’ 세미나 및 제43회 이달의 카메라기자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이 세미나는 미디어 정치 시대의 영상저널리즘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고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인지 논의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나타났던 문제저을 분석하고 체계적이고 다각적인 평가를 시도한다.   카메라기자협회 김원배 사무처장은 “카메라기자는 선거 뉴스뿐만 아니라 정치뉴스에서도 민감한 사항이 많기 때문에 영상취재와 편집에서 여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 이 세미나를 통해 19대 총선 보도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되었는지 분석하고 앞으로 영상저널리즘을 중심으로 바람직한 보도 방향을 제시하고자 세미나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이 세미나 내용을 홈페이지 및 미디어아이 지상을 통해 보도해 많은 회원들이 정보를 공유하게 할 예정이다. 한편,  세미나에 앞서 제43회 이달의 카메라기자상 시상식이 진행된다. 이번 이달의 카메라기자상 수상자로는 기획보도 부문에는 뛰어난 영상 구성으로 작품의 주제를 잘 표현한 KBS 김용모 기자의 <시사기획 '창' -부(富)의 정의->가 선정됐다. 또 지역 보도 부문은 대구 MBC 이동삼 기자 <4장의 유서 학교폭력의 진실을 말한다.>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2-04-27
  • KBS 노수긍 부장 출판기념회 안내
    KBS 보도영상국 노수긍 부장이 출판 기념회를 개최합니다. 회원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카메라와 함께  길을 묻다> 출판 기념회 일시: 2012년 3월30일(금) 18시30분 장소: KBS 본관 구내식당
    2012-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