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영상기자 협회보

NEWS

지속가능경영
  • <방종혁의 씨네노트>죽도록 고생하기, 이제는 러시아에서...
    죽도록 고생하기, 이제는 러시아에서... -다이하드: good day to die 존 매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는 크리스마스마다 죽도록 고생했었다. 휴가를 내어 근무지 뉴욕에서 대륙의 반대편 LA에 있는 와이프를 보러가는 것은 만만찮은 일인데, 얼굴을 보기 전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망치려고 작정한 악당들을 소탕해야만 했다. 다음 해에는 와이프가 뉴욕으로 오는 걸 마중 나갔다가 공항을 접수한 특수부대원들과 맞장을 떠야 했다. 이후에는 LA에서 죽은 동생의 복수를 한다며 뉴욕 시내를 설치고 다니는 꼴통 형의 경거망동을 수습하고, 국가의 모든 네트워크를 장악한 악당을 응징하기 위해 총 한 자루를 든 채 아날로그 액션을 벌여야 했다. 부인과의 상봉을 할 때마다 어깃장을 놓는 나쁜 무리들을 처단했지만, 부인과의 서먹한 관계는 좋아지지 않고, 자식들이 커가면서는 아버지를 영웅이 아닌 꼰대로 보기 시작했다. 딸은 아버지가 마초라고 깔보다 부친인 형사와 동행한 머리 좋은 프로그래머를 사귀면서 관계가 좋아진 반면 몇 년 동안 얼굴 보지 못한 아들 녀석은 갑자기 러시아의 감옥에 갇혀있다는 소식만 전해주었다. 존 매클래인 형사의 죽도록 고생하는 모험을 그린 ‘다이하드’ 시리즈의 5번째 이야기는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스파이의 본분대로 아무도 몰랐던 정예 요원인 아들 잭(제이 코트니)는 러시아 정부의 극우세력이 집권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방장관 후보자의 비리를 알고 있는 체르노빌 출신의 핵 기술자의 비밀 장부를 입수하기 위해 3년째 공들여왔다. 잭 매클레인 요원이 코마로프(세바스티안 코치)를 빼돌려 미국으로 탈출하기 직전 그의 목숨을 노리던 마피아의 습격을 받고 재판 방청을 왔던 존 매클레인 형사가 이를 목격하고 아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이번 영화는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기 바쁘던 뉴욕 경찰이 러시아에서 마피아와 맞장을 뜨고, 딸과의 화해 이후 평탄하리라던 예상과 달리 아들이 뭐하는 지도 모르는 파탄난 부자 관계를 끌어들였다. 모스크바 시내의 추격전은 ‘007 골든아이’의 탱크 추격전과 ‘본 슈프리머시’의 자동차 추격전을 뒤섞어 벤츠의 SUV와 러시아 군의 장갑차의 대결로 변주 시켰다. 가족의 여자 구성원과의 화해는 마초의 액션으로 해결했지만, 첨단 무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신세대 첩보원인 아들은 아날로그적인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간 불화를 보여주는데, 이 영화는 이것을 양념으로 활용한다. 한편으로, 단선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던 이전 작품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최근 영화의 유행인 반전을 활용한다. CIA가 빼돌리려던 정치범이 알고 보니 몇 년간 치밀하게 탈옥을 준비하던 악당이라던가, 영화 초반 본드걸처럼 등장한 인물이 알고 보니 이 악당의 계획을 실행하는 가장 중요한 악역이며, 군부를 장악한 극우 정치인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감독은 관객을 홀리기 위해 영화의 흐름을 뒤섞어 버린다. 그러나, 가장 큰 아쉬움은 웃음 코드의 실종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들을 통해 맨몸으로 뒹굴면서도 넋두리를 내뱉고 악당들보다 저질인 체력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우연이 만난 보통사람들의 힘을 빌리면서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던 동네 경찰관의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유일한 대화 상대인 아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대화한 사람이 영화 초반 잠깐 등장한 영어를 조금 말하던 택시 기사뿐이라는 설정상의 한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결국, 액션과 스케일을 키우면서 늙은 육체를 이겨나가는 영웅을 만든 의도는 성공했지만 이 시리즈의 특징인 잔재미를 희생시켜 조금 밋밋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2013-03-29
  • 동일본 대지진 2년, 후쿠시마를 가다.
    동일본 대지진 2년, 후쿠시마를 가다. 2011년 3월 11일 모처럼 휴가를 내서 가족들과 강원도 속초로 여행을 갔다. 긴 시간 자동차를 타느라 지겨웠는지 아들 녀석들은 콘도에 들어가자마자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난리를 쳤고 나와 아내는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댄 체 습관적으로TV를 틀었다. 그 순간 화면을 통해 보여 지는 장면을 보며 “저게 뭐지? 정말 잘 만든 CG인가?”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장면은 실제 화면이었다. 리히터 규모 9.0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된 쓰나미가 마을과 사람들을 덮치고 있는 것이었다. 다음날 3월12일 오후3시30분경.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원자로를 둘러싼 콘크리트 벽이 폭발 하였다. 이틀 뒤인 3월 14일에는 3호기 수소폭발, 15일에는 2호기 수소폭발 및 4호기 수소폭발과 폐연료봉 냉각보관 수조 화재 등이 발생해 방사성물질을 포함한 기체가 대량으로 외부로 누출됐다. 이 엄청난 재앙으로 인해 현재까지 사망과 실종자를 포함해 2만여 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33만 명에 이르는 피난 주민들이 생겼다. 후쿠시마(福島), 후쿠시마 현의 현청소재지이기도 하고 일본 제일의 오징어 어획량을 자랑하며 산업과 어업이 활발한 곳이다. 그러나 원자로 폭발로 인한 방사능 오염은 한순간에 이 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취재를 위해 후쿠시마를 찾았다. 도심에는 유달리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마스크 착용이지만 아직도 방사능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여 긴장감이 느껴졌다. 다음날, 사람의 접근이 금지된 원전 반경 20KM안에 포한된 지역의 촌장을 만났다. 지금은 집을 버린 채 부인과 후쿠시마 시내의 한 연립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저 시골에서 농업과 축산업을 하며 살던 촌부가 돌아가지 못할 고향을 생각하며 나날이 지쳐가고 있는 모습은 마음 한편을 답답하게 했다. 그와 동행하여 어렵게 전에 살던 집으로 가 보았다. 우리네 시골과 다를 바 없는 전원적인 곳. 그곳은 삼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집이였다. 그러나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기 저기 그날의 처참함이 눈에 들어왔다.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벽과 지금은 살 처분 되어 사라진 소들이 살던 축사, 사람의 손길이 닿질 않아 녹슬어 가는 농기계들이 2년이란 세월의 무상함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눈앞에 정든 집을 놔두고 객지 생활을 해야 하는 그의 처치가 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던 중  들린 식당에서는 길을 묻던 취재진에게 ‘그곳은 들어갈 수 없다 .위험하니 절대 가지 마라’는 충고를 들었다. 조심히 방사선 설량계로 측정해가며 이동 하던 중 마을 이곳저곳을 순찰하는 경찰차량의 모습이 보였고, 점점 원전사고 지역 깊숙이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통제구역을 만들어 경찰들이 지키고, 사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마을은 2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방사능 피해가 쉽게 회복되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렵게 찾아간 와규 농장. 와규는 일본식 화(和), 소 우(牛)로 일본소라는 의미로 세계 최고 수준의 쇠고기를 말한다. 품종을 지키기 위해 수출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관리도 엄격하다. 그러나 1500두 가까이 사육을 하던 이곳 농장도 방사능 오염을 피해갈수 없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300여 마리를 제외하곤 모두 살 처분 하였다. 살아있는 300여 마리의 소도 농장주인의 반대로 인해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사고 현장에 근접해 있어 내다 팔 수 도 없는 처지. 농장주인은 인터뷰에서 소들은 원전사고로 오염되었고 그 소가 방사능 오염의 표본이면서 산 증인이 된다고 했다. 인근 마을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이미 오래 살아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했지만 노인 몇 명만 남아있는 마을에  피난 떠난 후손들이 돌아오질 못하고 있다며 마을 전체가 유령 마을로 변해 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도 조금씩 안정을 찾고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후쿠시마. 한때 안전만큼은 절대적이라고 내세웠던 일본의 모습이 한 없이 초라하게 보였다. 거대한 자연에 맞선 인간의 오만이 불러일으킨 재앙의 대가는 너무나 혹독하고 잔인했다. 하루빨리  피난 나온 일본인들이 집으로 돌아 가 예전처럼 살 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현석 KBS 보도영상국
    2013-03-29
  • 나로호 발사 취재기
    26일 (D-4) 여행용 캐리어를 꺼내 주섬주섬 짐을 담는다. 작년 늦가을 첫 취재 때는 가벼운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갔던 것 같은데, 3번째가 되니 한겨울이 되어버렸다. 옷이 그만큼 두꺼워 졌으니 짐도 자연스레 늘 수밖에... 늘 내려갈 때 마다 출장기한은 5일+a 다. 5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5일짜리 출장이야 우리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늘 5일 옆에 붙어있는 +a 가 문제다. +a가 수십 일이 되진 않지만 단지 확신이 없는 기간이 불안하다고 할까? 27일 (D-3) 여수공항에 비행기가 내리고 창밖을 보니 바람이 많이 분다. 을씨년스럽게도 하늘도 우중충 하고, 약한 눈발도 날린다. 하늘이 황금 같은 일요일, 게다가 생일에 출장을 가는 내 마음 같다. 나로우주센터 주차장에 마련된 KBS 취재 부스에 장비를 풀고 내일부터 시작될 보도를 위해 사전 점검에 들어갔다. 3번 반복되다 보니 이젠 1시간 만에 척척이다. 2차 때 말썽이었던 편집기도 이번에는 쌩쌩 잘도 돌아간다. 28일 (D-2) 냉정하게 말해 나로호 발사는 나로호가 쏘아질 하늘 저 멀리 만큼이나 이미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미래의 우주강국 보다는 현재의 새로운 대통령 당선인과 그녀의 인수위원회에 귀를 세웠고, 언론의 뉴스 또한 앞으로 꾸려질 새 정부에 맞춰 있다. 그래서 뉴스의 양도 줄어 오늘은 나로호의 기립과 관련된 뉴스 1꼭지. 하지만 슬프게도 양이 줄었다고 취재의 양이 준 것은 아니다. 1,2차 때와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발사대 가장 가까운 암초위로 올라갔다. 매번 올라갔던 암초였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해경에서 육지로 올라갈 것을 요청했다. 이왕 올라간 암초이니 기립까진 취재하고 얌전히(?) 배를 타고 나왔다. 우주센터로 복귀하니 우리가 무단으로 나로 발사대 근처까지 갔다는 이상한 소문이... 29일 (D-1) 발사 하루 전, 우주센터는 날씨도 쾌청하고 태풍전야처럼 고요하다. 마음은 이미 발사 성공 후 집으로 향하고 있다. 새로울 것도 전혀 없는 1,2차와 반복된 취재일정. 3번에 걸쳐 선발대로 내려와 후발대로 올라갔던 나에겐 나로 우주센터는 대한민국 우주강국의 전초기지가 아닌 외로운 남쪽나라일 뿐이다. 30일 (D-day) 이른 아침 우주센터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로호 모형 위 까마귀가 앉아 까악 거리기 시작했다. 10분여 목 놓아 울어대는데 불안함이 엄습했다. 어찌나 까마귀 소리가 구슬프던지 또 다시 실패하려나 보다 하고 있는데, 동기의 한마디 “제일 중요한 1단 발사체는 러시아 꺼잖아, 외국에서는 까마귀가 길조래~ 오늘은 성공하나 보다.” 울어댄 까마귀 때문이었을까? 예정된 발사시간 나로호는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나로호 삼수 만에 SKY 입성’ 이라는 조소 섞인 말도 있었지만, 가을부터 해 넘어 한겨울까지 나로호를 취재했던 취재진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항우연의 조광래 단장이 발사성공 전까지 공황장애를 앓을 정도라 하니, 연구진의 발사에 대한 갈증이야 어느 국민들보다 간절했을 거다. 물론 100여명의 취재진들도 마찬가지, 이제 고흥은 안녕이다. (2020년 유인우주선 발사 전까지만//)   윤성구 KBS보도영상국
    2013-03-29
  • 그날 법원에선 무슨일이 있었나?
    1월 31일 오전 9시. 공판이 열리는 법정 출입구 앞, 취재진들로 보이는 이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주요 포인트에 자리를 잡기 위해 트라이포드와 사다리를 뻗쳐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날 오후 2시, 취재 대상은 최태원 SK회장이다. 회삿돈 횡령 투자 혐의로 1심 선고에 맞춰 법정 출두하는 그는 모든 언론사의 관심 1순위이다. 법정 입구를 통과하는 피의자 스케치와 싱크를 확보해야하는 취재는 찰라의 과정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순간 스트레스가 굉장히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여기에 출입구가 여러 곳인 상황에서 언론의 시선을 피해보려는 취재원과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려는 취재진들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더해지면 그 스트레스는 배가 된다. 그래서 장소를 제공해주는 법원과 취재원, 취재진 모두 사전에 합의를 통해 포토라인을 만들고 서로가 만족할 만한 룰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후 1시 30분.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최태원 회장이 지나가는 곳마다 아비규환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토라인에 맞춰 일렬로 세워 놓았던 트라이포드는 쓰러진다. 뒷걸음치며 셔터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는 사진기자가 넘어지고 뒤에 있는 계단을 보지 못한 영상기자는 엉덩방아를 찧을 뻔 한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최태원 회장의 싱크를 따보려고 두 팔을 올려 육중한 ENG카메라를 머리위에 든 채 까치발을 위태롭게 디디며 쫓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이 순간 초등학생 때 받았던 벌이 생각나는 사람은 나뿐이었을까? 약속했던 포토라인을 깨고 수행원을 대동한 채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최태원 회장을 그냥 보고만 있을 취재진은 한명도 없기에 결국 이리가지고 못하고 저리가지도 못한 채 법원 정문 로비에서 꼼짝없이 얼마간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일이 마무리되고 홍보팀에게 강하게 항의를 한다. 선고 후 나올 때는 절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약속을 다짐 받는다. 이번엔 홍보팀과 법원에서 언급한 출구에 포토라인을 믿고 설치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출입구에 자리 잡은 몇 명의 취재진들 빼고는 모두들 선고 공판이 확정되길 기다리면서 그 곳 유리 현관문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결과는 최태원 회장 징역 4년,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된다. 모두들 선고 이후 최재원 부회장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포토라인에 있던 취재진들이 뒷문으로 뛰기 시작한다. 아차 싶은 마음에 너도 달리고 나도 달린다.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간 곳에서 최재원 부회장이 탄 차가 보인다. 취재진과 수행원들이 뒤엉켜 악을 쓰며 실랑이는 벌이는 그 곳.‘두 번의 불신’이라는 씨앗이 어느새 자라 서로에 대한 분노로 증폭되어 있다. 형의 구형에 충격을 받은 듯한 동생이라지만 공인으로서 약속을 저버리고 언론을 회피하는 모습은 당당하게 자신의 소명을 밝히고 사회적 기업을 추구하는 CEO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 와중에 KBS 정환욱 기자는 불특정 수행원에게 발등이 밟혀 골절되는 불미스런 사고까지 발생해 더욱 더 불신감만 커져갔다. SK가 주연인 한 편의 블랙코미디 작품에 조연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우리 카메라기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보여 씁쓸하기까지 하다. 이런 후진적인 취재 관행이 바뀌기 위해서는 재계 총수이자 공인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언론 앞에 당당하게 나서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하려고 하는 책임감이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배문산 SBS 영상취재팀
    2013-03-29
  • 새내기 촬영 기자의 대선 취재기-선거의 법칙
    새내기 촬영 기자의 대선 취재기-선거의 법칙 국회 출입 이틀째. 뭐가 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하루가 끝나갈 때였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전남의 수해 피해 현장을 방문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광주로 출장을 가야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나의 첫 출장이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얼마나 들어가는지 PC방은 찾기 어렵고, 네비게이션은 엉뚱한 길로 안내를 하고, 현장에는 얼마나 사람들이 모이는지 말 그대로 구름떼였다. 대통령 선거일까지 3개월이 남았는데 매일 이런 상황과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이 아찔했다. 출장과 출장, 야근과 조근, 주말 근무가 쉼 없이 계속 되면서 정신없이 두 달여가 지났다. 무슨 일이든 첫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이다. 국회 출입 2달이 막지나, 11월 27일. 공식 선거운동일이 되었다. 본격적인 대선레이스의 개막이 다가온 것이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의 첫 선거운동 지역은 대전이었다. 대전역 광장. 아침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고,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 번을 빙 둘러봐도 사람은 많이 모여있지 않아 보였다. ‘여기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취재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려 근접 취재를 하시던 KBS의 이규종 반장님을 찾았다. 그런데 KBS 오디오맨 마저 반장님을 놓친 것이었다. ‘화장실 다녀오시나?’하고 디스크를 건네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이동시엔 DMB로 각 사의 뉴스를 바로바로 모니터링 했다. ‘와 ~’하는 탄식이 나왔다. 대전역의 부감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보여줬다. 화면 어디 빈곳 없이 빽빽이 들어찬 시민들이 보였다. 이래서 부감이 중요한 거구나. 단박에 알게 되었다. 취재 후 안보였던 이규종 반장님은 박근혜 후보의 차에 올라 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담아오신 거였다. 속된 말로 ‘이게 짬이구나’ 싶었다. 첫 날의 충격은 찌글찌글(?)한 경력의 초보 촬영기자에게 대선은 대통령 선거 취재의 법칙을 되새기게 했다. 이른바 부감의 법칙과 속도의 법칙이다. 부감의 위력을 알게된 뒤로, 부감을 찾아서 어딜 가든 높은 건물을 한번 둘러보고 무작정 올라가게 되었다. 강릉에서는 이른 아침에 실례를 무릅쓰고 가정집 문을 두드려 베란다를 열어달라고 한 적도 있다.(더 좋은 장소를 찾아서 실제 촬영은 하지 않았다.) 경찰들도 경호를 위해서 주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있었는데, 부감 위치가 겹칠 때면 촬영을 통제하는 경찰과 그때마다 언성 높이며 싸우기 일쑤였다 - 경호상 이유라지만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 안돼요’라는 말로 카메라 앞을 막아선 경찰들을 생각하면 화가 오른다. 그렇게 3개월을 선배들과 나는,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 홍천, 광주의 대형할인매장, 포항의 죽도시장 초입, 부산 자갈치 시장 근처 여관 옥상까지 오르고 또 올랐다.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뗀 촬영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워낙에 쟁쟁한 실력을 가진 선배들이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저 조금 더 먼저 가서 좋은 자리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속도의 법칙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체는 점점 늘어났고 취재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타사보다 먼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보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현장을 파악해두어야 했다. 차량을 운전하는 형님에게 가장 많이했던 말도 바로 ‘형님 빨리요’였다. 폭우를 뚫고 진주에서 부산으로, 울산에서 포항으로 네비게이션의 예상시간도착을 앞당겨 달리는 일이 일쑤였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 나니 날아온 과속 딱지 2장. 아찔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강원도 일정이었다. 고 이춘상 보좌관이 교통사고로 숨진 일정이었다. 그저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일까. 요즘에 차에 탈 때면 하는 말이‘형님, 빨리 가시는데, 천천히 가셔도 되요’다-이게 정말 말이 안되는 말이지만 어쩔 수 없이 ‘빨리’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집보다 모텔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던 3달이 지나고 12월 19일이 되었다. 대통령선거일.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양강 대결. 최종 득표율 박근혜 후보 51.6%, 문재인 후보 48%.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당선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당선인의 집 앞은 벌써 삼엄한 경비, 경계가 준비되었다. 삼성동 자택을 나서는 박근혜 당선인을 기다리는데 문득 ‘내가 따라 다니던 후보자가 당선인이 되었다’라는 생각에 말로 못할 많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평생에 대통령선거 취재를 다녀 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앞으로 많아야 한번 정도, 아니 없을 수도 있다. 내가 배운 것 보다 앞으로 배울게 더 많기 때문에 이번 대통령 선거를 취재한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류석규 YTN 영상취재부
    2013-03-29
  • (줌인)방송카메라기자에 대한 폭행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방송카메라기자에 대한 폭행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지난 2월1일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에 대한 선거 공판과정을 취재하던 KBS 정환욱 기자가 취재를 막으려는 SK측 경호원에 의해 발등 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포토라인이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 벌어진 일이였다고는 하나 방송 카메라 기자에 대한 폭행은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공권력에 의한 폭행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2008년6월2일 새벽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취재하던 많은 카메라 기자들이 경찰에게 폭행당하는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당시 현장을 담으려는 카메라 기자들을 막기 위한 경찰의 의도적인 과잉반응이 불러온 폭행이었다. 경찰에 의한 폭행은 이것만이 아니다. 2009년7월11일 용산참사 추모집회를 취재 하던 중 경찰에 의한 폭행은 또다시 일어났다. 취재를 하던 카메라 기자를 향해 우산으로 찌르고 심지어 현장을 지휘하던 기동대장은 기자들을 향해 밀어붙이라고 명령을 하곤 무전기로 때렸고 급기야 기자들을 연행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 큰 부상을 입는 일이 또 일어나고 말았다. 왜 카메라기자에 대한 취재 방해 및 폭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가! TV뉴스는 영상으로 현장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에 그 파급력이 다른 어떤 매체보다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단 영상취재를 막고 그 뒤에 수습을 하자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있는 것이다. 강력하게 항의를 하면 성의 없는 사과와 함께 폭행에 대한 제발 방지를 하겠다는 겉치레식 약속은 실과 바늘처럼 따라붙었고 그 이후에도 그러한 상황은 반복되어 지곤 한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카메라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 이상은 겪어 봤을 것이다. 카메라 기자도 사람이다 보니 현장을 정확하게 담아내야 하는 카메라 기자들이 정신적 고통으로 현장에 대한 부담을 느낀다면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영상취재가 될 것인가! 이러한 환경 속에서 기자 개인의 기지와 순발력(?)으로 사태를 피해야 하는 게 유일한 해결법처럼 느껴지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장폐천(以掌蔽天) 즉,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카메락 기자의 렌즈를 가린다고 해서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정당한 취재 활동은 보장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될 수는 없다.
    2013-03-29
  • 23대 운영위원회 1차회의 대구방송 회원사 가입
    23대 운영위원회 1차회의 대구방송 회원사 가입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이중우)는 지난 23일 속초LH연수원에서 2013년 제1차 운영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 주요 안건은 올해 주요 사업 계획에 대한 논의와 회원사가입건에 대한 의결이 있었다. 이에 따라 대구방송 TBC가 신규 회원사 가입이 참석 운영위원 만장일치로 통과 되었다. 대구방송은 3월1일부로 정식회원사 및 회원에 가입하게 된다. 협회 운영위원회는 향후 4월말에 대전에서 영상풀과 영상저널리즘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며 6월에는 광주 9월에는 경남지역에서 세미나 및 워크숍을 진행 할 예정이다. 기타 안건으로는 에디우스 인증센터 개설 등 미디어아이의 발행과 협회 제반 사항에 관해 토의했다. 협회 사업에 대한 세부일정은 추후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 될 예정이다. 한편, 협회는 같은장소에서 제48회 이달의 카메라기자상 시상식과 운영위원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을 개최했다. 제48회 이달의 카메라기자상 수상자는 뉴스부문에 MBC 박주일 기자의 <위기의 천수만> 기획보도부문에는 SBS 이재영 기자의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 지역보도 부문에는 JIBS윤인수 기자의<월파피해 계절이 없다>로 결정됐다. 카메라기자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장준영)는 기획 부문에 대한 출품은 심사에 공정을 높이기 위해 15분간 압축한 영상과 전체 작품을 동시에 제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3-03-29
  • 방송장악 2기 체제는 안된다.
    방송장악 2기 체제는 안된다. 이명박 정부 5년, 방송통신위원회는 위원장이 주축이 되어 그들의 권한을 함부로 행사해 왔다. 물론 방송통신위원회 내에는 여당이 임명한 위원들만 아니라 야당 쪽이 임명한 위원들 역시 존재하기에 이해가 다른 세력 간의 견제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정부 5년 동안 그들의 권한을 사용해 다방면에서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해쳐왔다. 새롭게 출범하는 박근혜정부에 새로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로 넘어갈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은 대체로 규제와 진흥에 관한 것들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상파, 라디오 방송 허가권, 케이블과 위성방송 허가권, 유료방송 사업자 채널구성과 운용 및 약관 승인권 등을 담당하게 된다. 이를 이용해 각 언론사에 반정부적인 보도는 하지 말라는 압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합의제인 방송통신위원회 기능은 축소하고, 장관 1인의 지휘 하에 놓인 미래창조과학부에 방통위의 권한을 대폭 몰아주는 것은 청와대가 배후에서 방송 재허가권과 광고, 주파수 등을 통해 방송을 장악하는 ‘방송장악 2기 체제’가 완성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야당과 언론단체, 학술·시민단체는 한목소리로 새누리당의 ‘방송정책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해야 한다.’ 는 원안만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방송·통신 정부조직 개편은 방송통신위원회의 합의제 기능이 올바로 작동되도록 재정립되고 기관의 독립성이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순수한 의미의 통신진흥 업무만이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문제들 중 공론화되는 것은 대체로 언론을 통해서 결정되어진다. 그만큼 언론은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훼손되어 진정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사회, 그리고 구성원들 모두 잘못된 정보에 의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박근혜정부와 여당은 또 다시 지난 정권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시녀로서의 역할을 모색한다면 또다시 사회의 불신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13-03-29
  • 한국전파진흥협회 교육 안내
    전파방송통신인재개발교육원에서 진행하는 스테디캠 촬영 & 영상편집 교육을 소개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신청바랍니다. *** 관련 문의는 한국전파진흥협회(www.atic.ac, 02-317-6198)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201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