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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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최초’, ‘새로운’ 그리고 ‘친환경’
    [현장에서]         ‘처음’, ‘최초’, ‘새로운’ 그리고 ‘친환경’  - 파리올림픽 취재기           센 강에서 열리는 야외 개막식.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의 성비가 동일한 최초의 올림픽. 파리올림픽은 새로운 올림픽이 될 것임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끊임없이 제기된 센 강 수질 논란과 함께 한여름에 ‘노 에어컨’, 테러 위협 등 우려도 컸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인명 사고 없이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역대 최소 출전 선수에도 역대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이란 기분 좋은 성과를 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경기장이다. 내부가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그랑팔레(Grand Palais)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해 건립된 이곳은 전시회나 문화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쓰인다. 여기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열렸고 우리나라가 각 종목에서 금메달을 2개나 따냈다. 특히 결승전에서 선수들이 입장할 때 나선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화려한 유리 지붕이 특징인 이곳에서 혈투를 벌이는 선수들을 로우 앵글로 비춘 샷은 일품이었다.         베르사유 궁전 앞 광장에 만들어진 야외 경기장에서는 근대 5종 경기가 열렸다. 이곳에서 아시아 여자 최초로 우리나라 성승민 선수가 값진 메달을 따냈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을 배경으로 한 승마 경기는 한 폭의 서양화를 보는 듯했다. 현장에서 취재할 땐 차양막이 전혀 없어서 온몸으로 햇볕을 받아야 했지만, 멋진 중계 화면을 보면서 그냥 참아야겠단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원래는 경기장이 아닌 곳을 경기장으로 쓰다 보니 불편한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미디어 출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입구에서 취재 포인트까지 동선이 긴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의 경기장에는 비계 구조물(일명 아시바)이 설치돼 임시 관중석으로 쓰였는데 사람이 걸어 다니면 카메라가 쉽게 흔들려 주의해야 했다.         ▲ 펜싱, 태권도 경기장이었던 그랑팔레 앞      친환경 올림픽 또는 절약 올림픽   그동안 새로 지은 올림픽 경기장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평창올림픽 경기장이 바로 그 예다. 뾰족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매년 수십억에 달하는 운영비만 들고 있다. 파리올림픽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자 건물을 최대한 덜 짓는 것을 목표로 했다. 새로 만든 경기장은 단 두 개다. 경기장에 쓰인 모든 건축 자재 역시 저탄소 자재가 사용됐다.     IBC(국제방송센터) 건물도 친환경적이었다. 외관부터 오로지 기능에만 충실하게 지어졌다. 기자들에게 제공하는 미디어 키트도 없었다. 기자실도 마찬가지다. 경기장마다 규모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원 콘센트와 TV 등 필수품만 있었다. 생수병은 제공되지 않았고 과일과 뜨거운 커피, 텀블러를 사용해야 하는 급수대가 마련돼 있었다. 쓰레기통도 전부 종이로 만들어졌다.     문제도 있었다. 몇몇 선수단은 선수촌 식단에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육식은 채식에 비해 탄소를 많이 발생시킨다. 저탄소 올림픽을 위해 식단에서 고기를 줄인 것이다. 일부 선수들은 외부로 나가 육류를 보충했다.         선수들이 이동할 때 타는 버스에는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다. 버스가 길을 잘못 찾기라도 하면 선수들은 찜통 버스 안에서 컨디션 조절을 해야 했다. 나 역시도 폐회식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시간이 폐회식 취재보다 몇 배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으로 돌아와 출장기를 쓰는 지금 한 달 넘게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시차 적응보다 날씨 적응이 힘들다. 파리는 적어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에어컨 사용 여부가 논란이 됐지만 앞으로는 폭염으로 하계올림픽이 전 세계 도시 다수에서 열리기 힘들 거란 전망마저 나온다. 지구촌 축제가 지속되기 위해서 친환경 올림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SBS 윤형 기자      
    2024-08-29
  • 나의 첫 올림픽 출장
    [현장에서]  나의 첫 올림픽 출장 - 파리올림픽 취재기   낯선 도시에 첫발을 내딛다.     모든 것은 한 통의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파리올림픽 취재 확정." 그 한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영상 기자로서 수많은 현장을 경험했지만, 올림픽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그것도 파리에서. 나는 이 출장이 단순한 취재를 넘어선 개인적인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한편엔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나는 그 낯선 도시가 나를 어떻게 맞이할지, 그곳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이 순간, 어깨에는 무거운 카메라 장비가 걸려 있었고, 마음에는 묵직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올림픽’. 어릴 적 TV 속에서만 보던 거대한 무대가 이제는 현실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질 차례였다. 그런데 그 무대 위에서 나는 카메라 뒤에 서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가슴을 뛰게 했다. 이 낯선 도시는 나에게 어떤 도전과 이야기를 안겨줄지 궁금했고, 동시에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이미 그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첫 발을 내디딘 상태였으니까.   불타오르는 경쟁의 현장, 파리의 중심에서     올림픽 경기장이 나를 압도했다. 각국의 선수들이 금메달을 향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은 경외감을 넘어 경탄 그 자체였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수천 명의 관중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선수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매 순간을 포착해야 했다. 하지만 이내 현실은 내게 예상치 못한 도전을 던졌다. 파리의 여름은 생각보다 더 무자비했다. 쏟아지는 햇빛은 내 피부를 태우는 듯했고, 경기장에서 몇 시간씩 촬영하는 동안 내 몸은 점점 지쳐갔다.     하루는 근대5종 경기를 촬영하던 중, 태양이 너무 강렬해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모든 것이 흐려지는 듯한 순간, 나는 결국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그늘로 피신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이 중요한 장면을 놓치면 안 돼!"라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가 선수들의 순간을 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남은 마지막 힘을 다 쏟아붓고 있었다. 마치 선수들이 금메달을 향해 달리듯, 나도 한순간 한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전력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시. 다른 날들과는 달리, 프랑스 샤토루로 가는 특별한 날이었다. 여자 사격 경기를 촬영하기 위해 어둠을 뚫고 이른 시간부터 출발했다. 해도 뜨기 전의 프랑스는 적막했지만, 내 마음속은 잔뜩 기대감으로 차 있었다. 사격 경기는 내가 특히 기대하고 있는 경기 중 하나였다. 사격 25m 권총 결선에 출전하는 양지인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 것이라는 예상 못 했지만, 그녀의 모든 순간을 잘 기록하고 싶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은 점점 더 긴장감에 휩싸였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관중들의 숨소리가 멈추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 또한 선수들과 함께 그 긴장감을 느꼈다. 양지인 선수의 얼굴에는 엄청난 집중력이 드러났고, 나는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담기 위해 렌즈를 조준했다.     경기가 끝났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양지인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내 카메라에 그녀의 환한 웃음이 그대로 담겼다. 내가 목격한 순간은 단순한 승리 이상의 감동이었다. 한국을 대표해 최선을 다한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그 순간, 나 역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감동을 함께 느꼈다.     메달의 반대편에서     올림픽은 승리의 무대만이 아니다. 경기장을 나서며, 나는 여러 선수의 좌절을 마주했다. 메달을 놓친 이들의 눈물은 예기치 못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는 패배 속에서도 자신만의 싸움을 견뎌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오랜 시간 견뎌온 노력과 고통이 서려 있었고, 경기장의 패배는 그들의 삶 속에서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한 선수의 패배 후 믹스드존 인터뷰를 촬영하던 날이 있었다. 그는 패배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 장면을 멍하니 지켜봤다. 렌즈를 통해 느껴지는 그의 감정은 너무나도 진실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승리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견뎌온 시간과 과정 역시 올림픽의 일부라는 것을.     경기가 끝난 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선수들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분명 최선을 다했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눈물을 기록할 때, 나 역시 그들의 아픔과 좌절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배의 순간에도 그들만의 드라마가 존재했다. 나는 스포츠가 단순한 승리와 패배를 넘어선 인간의 감정과 꿈이 얽힌 거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승리의 기쁨 뒤에 숨겨진 패배의 아픔은 올림픽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떠나는 파리, 가슴 속에 남은 울림     출장 마지막 날, 나는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동안의 여정을 떠올렸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처럼 나도 이제는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경기장 앞을 지나며 잠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경기장은 이제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선수들과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한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환한 미소, 예상 밖의 승리에 감격해 나도 모르게 질렀던 환호성, 그리고 메달을 놓치고 흘린 눈물, 그 모든 감정을 담아내던 내 카메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곳에서 내가 담아낸 것은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각자의 싸움을 마주한 인간들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그 깨달음들은 나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그것이 앞으로 나의 여정에 깊은 자양분이 되어줄 것임을 느꼈다. 경기장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의 열정과 감동이 남긴 울림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떠나지만, 파리에서의 경험은 나를 더 강하게,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를 맞이할 또 다른 현장에서도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MBC 한지은 기자    
    2024-08-29
  • 영상기자 여러분,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영상기자 여러분,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힘겹게 만들고 지켜온 공적방송과 이를 움직이는 시스템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일반시민으로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천불이 나는데, 그것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보며 기록까지 해야하니 영상기자 여러분들의 심경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일반시민들이 가닿지 못하는 곳에서 시민들의 눈이 되어주고, 또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증거를 넘겨주는 영상기자 여러분의 노고와 분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MBC의 DNA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무너지는 것은 참 순식간이었습니다. 겨우 0.7% 차이로 갈린 2022년 대통령 선거 후 2년만에 KBS가, YTN이, TBS가 이렇게 무너져내리고, 마지막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MBC도 바람 앞의 촛불같은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허약한 것일까요? 여러 차례 되풀이된 언론노조의 파업이나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은 왜 윤석열 정권의 광기어린 인사정책 앞에 맥을 못 추는 걸까요? 촛불로 잡은 정권을 5년만에 내주고나니 더 힘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때일수록 길게 보고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에서 힘을 얻어야합니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박근혜 탄핵 직후의 MBC를 한 번 돌이켜보지요. 김재철-김장겸 등의 체제하에서 민주화 이후 20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던 MBC는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조 활동 열심히 했던 언론종사자들은 다 밀려나고 ‘시용기자’다, ‘경력기자’다 하는 무리가 들어와 MBC의 DNA 자체가 완전히 뒤바뀐 거 아니냐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죠. 그러나 MBC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MBC가 전문가와 일반국민 모두에서 영향력, 신뢰도, 열독률 등 3개분야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것이지요. KBS, YTN, TBS가 무너지고 나니 MBC의 존재가 더욱 빛나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권에서는 사활적 이해를 걸고 방송장악을 위해 몸부림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도저히 깜냥이 안되는 이진숙을 방송위원장으로 내세워 방문진 이사진을 불법 개편한 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일입니다. MBC 영광과 상처모든 언론사들이 저마다 영욕의 역사를 갖고 있겠지만. 공영방송의 마지막 보루가 된 MBC도 현대사의 굽이굽이에 상처와 영광을 함께해왔습니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고, 아직 영상기자들의 활약이 시작되기 이전인 라디오 시대였지만, 부산MBC는 1960년 3ㆍ15 부정선거에 대한 마산시민의 규탄시위를 생중계하여 4월혁명의 단초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MBC와 같은 계열이었던 부산일보는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을 때, 그 사진을 전국에 전파하여 4월혁명을 불러왔습니다. 부산군수기지 사령관으로 이 모습을 지켜본 박정희는 언론이 가진 무한한 힘에 두려움과 부러움을 느껴 사주 김지태에게 부정축재자란 누명을 씌워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와 부산 서면 일대의 토지 10만평을 강탈해 5ㆍ16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MBC는 그야말로 박정희 것이 되어버렸지요. 박정희가 죽고난 뒤 MBC의 처리 문제가 심각한 현안이 되었습니다. 언론통폐합을 꿈꾸던 전두환 정권은 MBC도 KBS에 통합시켜버리려고 했지만, 박정희 유가족의 처우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1971년 MBC 증자를 기준으로 그 이전 5ㆍ16장학회가 갖고 있던 지분(증자 이후 30%)을 박정희 유가족 몫으로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따서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증자분 70%를 뺏어 이리저리 돌다가 민주화 이후 결국 방송문화진흥회가 MBC의 지배주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MBC가 소유구조는 공영적이면서 실제 운영은 광고에 의존하고 있어 ‘공영적 민영방송’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독특한 방식를 갖게된 것은 엄청나게 요동쳤던 한국현대사의 산물입니다.  언론 암흑기를 거쳐 방송민주화를...1980년대는 언론의 암흑기였습니다. MBC만 하더라도 1980년 5월 광주의 성난 시민들이 사옥에 불을 질렀지요. 6월항쟁 당시의 거리에서 MBC 취재차량이 돌을 맞고, 기자들은 발길질을 당했지요. 꼭 외부의 발길질 때문이었겠습니까. 언론인으로서 손톱만큼이라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에게 땡전뉴스나 보도지침이 견딜 수 있는 일이었겠습니까? 언론종사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또 직능별로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프로가 정상화되고 MBC에서는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00분토론>, <2580> 같은 프로그램이, KBS에서는 <추적60분>, <생방송 심야토론>, <다큐멘터리 극장>, <인물현대사> 같은 프로그램이 출현했지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의 선배 여럿이 감옥 구경도 하고, 뉴스룸이나 스튜디오를 떠나 창고정리도 하고 청소도 해야 했었지요. 그렇지만 1987년 양김씨의 분열에 의한 패배와 1990년 3당합당으로 민주진영이 반토막 나버린 참사에도 불구하고 1997년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데는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이루어낸 방송민주화와 전교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교육현장의 민주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싸움이 지겹도록 계속 되는 것은 여러분이 일하고 있고 지키고 있는 현장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수구세력이 MBC를 ‘노영방송’으로 규정하고,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에 극우·뉴라이트 세력을 대거 포진시킨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지금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으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있는 김광동이나 차기환, 뉴라이트 핵심이었던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최홍재 등이 방문진 이사라는 직함을 얻었지요. 빨간색 안경의 공안검사 고영주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자리를 더럽히기도 했고요. 최근 윤석열 정권이 어거지로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이진숙은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을 만나 MBC 민영화를 몰래 논의하다 녹음이 되어 크게 말썽을 일으켰던 자이지요. 어디 이진숙 뿐인가요? 지금 현장에서 뛰고 있는 영상기자 여러분들은 선배세대와는 또 다른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언론환경도 바뀌고 기술도 바뀌고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의 욕심 많은 방송장악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새롭게, 더 유쾌하게, 더 발랄한 여러분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계속 우리의 눈과 기억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한홍구 (성공회대 열림교양학부 교수)
    2024-08-28
  • 영상기자 여러분,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영상기자 여러분,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힘겹게 만들고 지켜온 공적방송과 이를 움직이는 시스템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일반시민으로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천불이 나는데, 그것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보며 기록까지 해야하니 영상기자 여러분들의 심경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일반시민들이 가닿지 못하는 곳에서 시민들의 눈이 되어주고, 또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증거를 넘겨주는 영상기자 여러분의 노고와 분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MBC의 DNA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무너지는 것은 참 순식간이었습니다. 겨우 0.7% 차이로 갈린 2022년 대통령 선거 후 2년만에 KBS가, YTN이, TBS가 이렇게 무너져내리고, 마지막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MBC도 바람 앞의 촛불같은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허약한 것일까요? 여러 차례 되풀이된 언론노조의 파업이나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은 왜 윤석열 정권의 광기어린 인사정책 앞에 맥을 못 추는 걸까요? 촛불로 잡은 정권을 5년만에 내주고나니 더 힘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때일수록 길게 보고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에서 힘을 얻어야합니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박근혜 탄핵 직후의 MBC를 한 번 돌이켜보지요. 김재철-김장겸 등의 체제하에서 민주화 이후 20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던 MBC는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조 활동 열심히 했던 언론종사자들은 다 밀려나고 ‘시용기자’다, ‘경력기자’다 하는 무리가 들어와 MBC의 DNA 자체가 완전히 뒤바뀐 거 아니냐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죠. 그러나 MBC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MBC가 전문가와 일반국민 모두에서 영향력, 신뢰도, 열독률 등 3개분야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것이지요. KBS, YTN, TBS가 무너지고 나니 MBC의 존재가 더욱 빛나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권에서는 사활적 이해를 걸고 방송장악을 위해 몸부림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도저히 깜냥이 안되는 이진숙을 방송위원장으로 내세워 방문진 이사진을 불법 개편한 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일입니다. MBC 영광과 상처모든 언론사들이 저마다 영욕의 역사를 갖고 있겠지만. 공영방송의 마지막 보루가 된 MBC도 현대사의 굽이굽이에 상처와 영광을 함께해왔습니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고, 아직 영상기자들의 활약이 시작되기 이전인 라디오 시대였지만, 부산MBC는 1960년 3ㆍ15 부정선거에 대한 마산시민의 규탄시위를 생중계하여 4월혁명의 단초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MBC와 같은 계열이었던 부산일보는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을 때, 그 사진을 전국에 전파하여 4월혁명을 불러왔습니다. 부산군수기지 사령관으로 이 모습을 지켜본 박정희는 언론이 가진 무한한 힘에 두려움과 부러움을 느껴 사주 김지태에게 부정축재자란 누명을 씌워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와 부산 서면 일대의 토지 10만평을 강탈해 5ㆍ16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MBC는 그야말로 박정희 것이 되어버렸지요. 박정희가 죽고난 뒤 MBC의 처리 문제가 심각한 현안이 되었습니다. 언론통폐합을 꿈꾸던 전두환 정권은 MBC도 KBS에 통합시켜버리려고 했지만, 박정희 유가족의 처우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1971년 MBC 증자를 기준으로 그 이전 5ㆍ16장학회가 갖고 있던 지분(증자 이후 30%)을 박정희 유가족 몫으로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따서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증자분 70%를 뺏어 이리저리 돌다가 민주화 이후 결국 방송문화진흥회가 MBC의 지배주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MBC가 소유구조는 공영적이면서 실제 운영은 광고에 의존하고 있어 ‘공영적 민영방송’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독특한 방식를 갖게된 것은 엄청나게 요동쳤던 한국현대사의 산물입니다.  언론 암흑기를 거쳐 방송민주화를...1980년대는 언론의 암흑기였습니다. MBC만 하더라도 1980년 5월 광주의 성난 시민들이 사옥에 불을 질렀지요. 6월항쟁 당시의 거리에서 MBC 취재차량이 돌을 맞고, 기자들은 발길질을 당했지요. 꼭 외부의 발길질 때문이었겠습니까. 언론인으로서 손톱만큼이라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에게 땡전뉴스나 보도지침이 견딜 수 있는 일이었겠습니까? 언론종사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또 직능별로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프로가 정상화되고 MBC에서는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00분토론>, <2580> 같은 프로그램이, KBS에서는 <추적60분>, <생방송 심야토론>, <다큐멘터리 극장>, <인물현대사> 같은 프로그램이 출현했지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의 선배 여럿이 감옥 구경도 하고, 뉴스룸이나 스튜디오를 떠나 창고정리도 하고 청소도 해야 했었지요. 그렇지만 1987년 양김씨의 분열에 의한 패배와 1990년 3당합당으로 민주진영이 반토막 나버린 참사에도 불구하고 1997년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데는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이루어낸 방송민주화와 전교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교육현장의 민주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싸움이 지겹도록 계속 되는 것은 여러분이 일하고 있고 지키고 있는 현장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수구세력이 MBC를 ‘노영방송’으로 규정하고,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에 극우·뉴라이트 세력을 대거 포진시킨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지금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으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있는 김광동이나 차기환, 뉴라이트 핵심이었던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최홍재 등이 방문진 이사라는 직함을 얻었지요. 빨간색 안경의 공안검사 고영주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자리를 더럽히기도 했고요. 최근 윤석열 정권이 어거지로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이진숙은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을 만나 MBC 민영화를 몰래 논의하다 녹음이 되어 크게 말썽을 일으켰던 자이지요. 어디 이진숙 뿐인가요? 지금 현장에서 뛰고 있는 영상기자 여러분들은 선배세대와는 또 다른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언론환경도 바뀌고 기술도 바뀌고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의 욕심 많은 방송장악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새롭게, 더 유쾌하게, 더 발랄한 여러분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계속 우리의 눈과 기억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한홍구 (성공회대 열림교양학부 교수)
    2024-08-28
  • 서울 영상기자에게 지역 뉴스 제작 경험이 필요한 이유 - <MBC 김준형 / MBC 서울-지역영상...
    <현장에서.. MBC서울-지역영상기자 교류 프로그램 참가기>서울 영상기자에게 지역 뉴스 제작 경험이 필요한 이유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네, 내일 뵙겠습니다.”늘 하던 인사에 생소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서울에선 한 취재기자와 일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부산에서 ‘내일’을 말할 수 있는 건, 인구 330만 부산의 뉴스 영상을 단 여섯 명의 영상기자가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MBC 내에서 서울과 지역사 영상기자를 일대일로 교환하여 단기간 근무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생겼습니다. 운 좋게 첫 순번이 되어 부산MBC 박현진 영상기자와 2주간 자리를 바꿨습니다. 부산에서의 첫 출근날, 범일동 사옥을 돌며 정신없이 명함 반통을 비웠습니다. 신입사원이 된 것 같았습니다. 지역사의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오후엔 첫 출근이라도 예외 없이 리포트 제작을 나갔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함께 다녀온 취재기자에게 낯선 마무리 인사를 듣자, 그제야 파견 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부산에 내려가기 직전, 한 선배는 ‘각자 맡은 지역에서 잘하면 되지, 교류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대답은 있었습니다. 상경하기 전까지 제가 본 뉴스는 항상 후반부터 지역 앵커가 등장하며 지역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지역 뉴스를 보고 자랐기에 제작 과정이 서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수도권 과밀화가 심화된 현시점에서 지역 뉴스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업무적인 부분 외에도 치열한 수도권을 잠시 벗어나 다른 도시에서 일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개인적인 이유이지, 다른 영상기자들도 홀로 낯선 지역사에서 일하기를 자처할 이유는 아니었습니다.파견 2주 차에 배정받은 대형 도시개발사업은 저출생·고령화, 청년 유출로 골머리를 앓는 부산에 희망이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이전을 준비해야 하는 농산물시장과 화훼단지의 소상공인들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일했지만, 비교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으로 이전해야 하는 사람들. 저를 놀라게 한 취재기자의 말은 이미 부산에선 많이 다룬 주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선 뉴스 후반부에도 지역 뉴스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일까요? 수도권에선 접하기 힘든 지역 내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지역 뉴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지역의 문제는 오롯이 지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일자리, 인프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거시적인 지역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을 조명하는 지역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결국,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어 ‘균형 발전’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주변에서 여러 의문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같은 MBC라는 이름 아래 가족같이 챙겨주는 선후배들, 그리고 ‘뉴스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라는 하나의 목표였습니다. 이러한 공통감을 느끼게 한 교류 프로그램의 지속을 위해 3년 차 기자가 짧은 감상을 남깁니다.MBC 김준형
    2024-06-27
  • 협회, 전회원사, 회원대상 장마, 폭염 앞두고  안전하고 건강한 취재 요청
    협회, 전회원사, 회원대상 장마, 폭염 앞두고 안전하고 건강한 취재 요청때 이른 폭염, 장마 시작되는데 안전장비는 미비하고, 무리한 오디오맨 감축에 취재안전 빨간불폭염이 여느 해보다 빨리 찾아오고 일부 지역에서는 장마가 시작되면서 영상기자들의 안전에 빨간등이 켜졌다. 일부 지역에는 안전 장비가 부족하고, 현장 촬영을 보조해 줄 오디오맨도 크게 줄어들어 기자들의 안전이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이른 열대야…지역방송사, 재난재해 취재하는 영상기자용 ‘안전모’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기상청은 지난 21일 밤 서울 최저 기온이 열대야 기준인 25도를 넘어 올해 첫 열대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기상청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이르게 나타난 열대야로, 지난해에는 6월 28일 첫 열대야가 발생했다. 6월 폭염 일수도 2.4일로, 최악의 더위로 기록된 2018년의 1.5일을 넘어섰다. 기상청은 한여름인 7~8월에는 지금보다 더 강한 더위가 찾아올 것으로 전망했다.제주도에 이어 남부 지방에는 벌써 장마가 시작됐다. 서울과 수도권도 7월 초 장마가 시작되면 전국적으로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와 함께 이후 찾아올 폭염에 따른 피해도 예상되면서 방송사들은 여름철 일상화된 재난재해에 대비해 취재 보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 한 방송사의 A 영상기자는 “회사에서 작년부터 폭염에 대비해 식용 소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그 외에 폭염 대비는 개인이 알아서 하고 있다”고 전했다.하지만 기자들의 안전을 책임질 장비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MBC의 B 기자는 “언제부턴가 사고 현장이나 위험한 곳을 갈 때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하게 해야 한다고 해서 취재기자들은 안전모를 쓰고 나간다.”며 “그런데 취재기자와 함께 위험한 현장에 나가 촬영을 담당하는 영상기자들은 안전모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 기자는 “화면에 나오는 취재기자에게만 안전모를 지급하는 것이 ‘보여주기식’이 아니라면, 당연히 영상기자에게도 안전모를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오디오맨 감축 따른 재난재해 취재시 안전우려...집중호우 혼자 취재하던 영상기자 큰 부상 입기도취재안전을 위한 장비 마련・보급 문제와 더불어, 영상기자들이 무엇보다 더 크게 우려하는 건 현장 취재보조 인력인 오디오맨의 감축 문제이다. 지역 방송사들은 현장 취재보조 인력인 오디오맨의 감축으로 인해 재난재해취재에 있어 심각한 어려움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재난재해 상황의 라이브중계가 현장 영상기자들의 업무로 이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디오맨 없는 영상취재는 영상기자들에게 잠재적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지역의 C 영상기자는 “장마철에 현장에서 라이브중계에 초점을 둔 취재를 하다보면 돌발상황에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며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현장 속으로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서로 호흡을 맞춰 위험한 부분을 알려주는 영상기자의 또 다른 ‘눈’ 역할을 하는 오디오맨 없이 재난 현장에 나가라는 것은 목숨 걸고 현장에 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지역의 영상기자 D는 “태풍이나 집중호우같은 재난 상황은 오디오맨이 있어도 영상기자가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며 “뷰파인더를 보며 촬영에 집중하다 보면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걸 봐주고 위험 신호를 알려주는 오디오맨들이 없다면 사고 위험은 굉장히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실제로 지난해 전북 지역 집중호우 당시 KBS전주의 영상기자가 오디오맨 없이 혼자 취재하는 과정에서 산사태로 쓰러지는 나무가 그대로 덮쳐 안면근육이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KBS기자들, 오디오맨 감축 국가재난방송주관 방송사 역할 위축 우려KBS의 오디오맨 감축 문제는 영상기자의 안전과 함께 국가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KBS의 역할과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KBS의 오디오맨 인력 50% 감축 방침은 내부의 심각한 우려와 비판에도 현실화하고 있어 오디오맨들의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다.KBS대구는 본사 예산으로 계약한 파견직 5명, 부서 자체 예산으로 고용한 아르바이트 2명 등 모두 7명의 보조 인력을 운용했지만 파견직 3명이 줄어 현재 4명만 남았다. 부서 자체 예산으로 고용한 아르바이트도 내년 예산 상황에 따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KBS청주는 영상기자 6명에 현재 3명의 오디오맨이 근무하고 있다. 영상기자 2명에 오디오맨 1명 비율로 다른 곳에 비해 열악한 환경인데, 7월에 또 한 명의 오디오맨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 1명은 9월, 마지막 한 명은 12월에 계약이 종료된다. 회사쪽은 오디오맨의 인력 문제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어떤 대책도 언급한 적이 없다. KBS청주는 지난해 오송 참사 취재를 담당한 지역이기도 하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관련기사 3면 계속 ☞)( ☞ 1면에서 이어짐 )영상보도가이드라인, 재난재해 취재시 영상기자 자신과 동료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도록 권고KBS제주와 KBS창원 촬영보조 인력 50% 감축이 이미 현실화돼 4명이던 보조 인력이 지난 3월과 4월부터 두 명으로 줄었다. KBS울산에는 오디오맨 3명이 일하고 있는데, 1명이 올해 12월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고, KBS전주는 파견 근로 4명 중 1명이 재계약을 하지 못했고, 하반기에도 한 명이 줄어 2명이 될 예정이다. KBS부산은 6명의 촬영 보조가 4월에 2명, 5월에 1명, 6월에 2명이 계약 만료되어 7월부터는 1명만 남게 될 상황이다. 포항은 지난 3월 촬영보조 계약이 모두 종료됐고 안동은 7월 계약이 모두 종료된다. KBS의 E기자는 “오전에 5~6개의 아이템이 몰리면 오디오맨이 부족해 취재를 나갈 수 없어 어떻게든 오후로 나눠서 오디오맨들이 쉴 틈 없이 취재를 나가고 있다”며 “곧 집중호우와 태풍 같은 재난 상황이 올 텐데 그땐 어떻게 취재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역 KBS의 영상기자들은 보조 인력 50% 감축안이 공개된 지난 3월 일제히 비판 성명을 낸 바 있다. 당시 강원 영동・영서, 부산, 울산, 대전, 대구, 전주, 제주, 창원, 청주 지역의 기자들은 태풍, 산불, 집중호우, 폭설, 폭염 등의 현장을 취재하는 영상기자의 또 다른 눈과 손발 역할을 해 온 촬영 보조 인력을 줄이는 것은 “영상기자의 목숨과 안전을 빼앗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보도에 있어 필수 인력을 감축하게 되면 뉴스 제작 차질, 라이브 방송사고 등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보도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협회, 전 회원사・데스크・회원에 재난 재해시 영상기자의 안전과 건강 위한 노력 당부하는 협조 공문 보내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24일 각 회원사의 데스크들에게 영상기자를 비롯한 취재진의 집중호우, 장마 등의 자연재해와 무더위로 인한 건강과 안전상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하는 협조공문을 보냈다. 또, 같은 내용으로 전회원에게 공지문자를 발송했다. 나준영 회장은 “전지구적인 기후 위기로 인해 재난재해가 일상화된 지금, 재난재해 현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영상기자들에게 이 상황을 빠르고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기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런 사명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영상기자와 현장 취재진의 안전과 건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방송사 내부의 시스템과 지원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고, 영상기자 스스로도 이런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고 대비할 수 있는 노력과 회사와 데스크에 대한 요구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회장은 이어 “영상보도가이드라인 1장의 6조는 ‘영상기자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안전,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와 상급자에게 이를 위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방송사와 데스크는 영상기자의 안전과 인격을 보호 할 최선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면서 “협회는 각 회원사와 데스크들이 취재진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문제점을 모니터해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회원 스스로의 관심과 노력을 위한 교육과 홍보 작업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4-06-26
  • 정치적 유불리 넘어선 '시대정신', 방송 3법 개정으로 실현해야
    정치적 유불리 넘어선 ‘시대정신’ 방송3법 개정으로 실현해야 야7당, 방송사 정치독립 보장 위한 ‘방송3법+방통위법’ 7월 입법‘속도전’ 방송현업자들 “대통령 거부권 넘어 시대정신 실현하는 입법 절실” 한 목소리 ▲ 지난 2017년 3월11일. 암 투병 중이었던 고 MBC 이용마 기자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공 영방송사 사장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현재의 방송3법 개정은 2016.7년 촛불시민들의 요구이 자 고 이용마 기자를 비롯한 현업언론인들의 방송독립의 오랜 소망을 실현하는 것이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이사진의 임기 만료가 8월로 예정된 가운데 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뼈대로 하는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이 7월에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KBS가 사장 교체 이후 공영방송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방문진이사진이 정권의 입맛대로 재편될 경우 MBC마저 KBS의 전철을 따를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실제로 김홍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이 지난 21일 국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통위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 청문회에서 방문진이사 선임 계획에 대해 “8월 임기 만료가 닥쳐왔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해  MBC 공영성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방문진 이사 임기는 오는 8월12일, KBS는 같은 달 31일, EBS는 9월 14일 만료된다.  ▶관련기사 3면 정치권에서는 22대 국회의 핵심 법안인 방송3법의 7월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 18일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방송3법과 방통위법 개정안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방통위법 개정안은 방통위 의결정족수를 현행 상임위원 2인에서 4인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5인 체제인 방통위가 2인 체제로 운영되면서 각종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앞서 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새로운미래,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등 7개 야당은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윤석열 정권의 언론 탄압을 저지하기 위해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하고, 지난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방송3법 개정안을 야7당 공동으로 재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법안심사소위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전체회의에 상정·처리됐다.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전체회의 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정상화 4법은 야7당이 함께 의지를 모은 것이고 오늘 과방위에서 방송정상화 4법을 통과시켰다”며 “최종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없이 즉시 공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안심사소위 과정을 생략한 데 대해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방송3법을) 법안소위로 넘기지 못한 것은 법안소위가 구성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는 여당 위원들이 계속 국회 출석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여당의 ‘날치기’ 주장을 일축했다. 방송3법을 대표 발의한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이훈기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KBS는 이미 정권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장악을 했고 MBC도 8월이면 이사회가 개편되고 사장도 바뀔 수 있는데 지금과 같 은 체제에서는 MBC마저도 정권에 유리한 이사와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저희는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기 위해서 방송3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민주당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7월 입법에 기대를 걸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법안의 본회의 상정 여부를 정하는 법제사법위원장직을 국민의힘이 맡았지만, 22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21대 국회에 이어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비해 민주당은 방통위원장 탄핵과 방송 관련 국정조사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훈기 의원은 “방통위가 (현재) 2인 체제에서 MBC 이사를 임명한다든지 강행을 한다면 그건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 사유도 될 수 있다”며  “(KBS, YTN, TBS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언론 전반에 대한) 국정조사라든가 탄핵 상황은 상당히 변화무쌍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끝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 여지는 얼마든지 있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방송 현업자들은 방송3법 개정을 위해 야7당이 펼치는 빠른 입법 행보를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예상되는 만큼 국회 의결 정족수 2/3(200석)를 넘는 여야 찬성표를 이끌어내 입법을 실현해야 한다는 절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영상기자협회를 비롯한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언론노조 등 언론현업단체들은 지난 5월 29일 우원식 국회의장 후보자와의 간담회, 6월 4일 ‘언론탄압저지 야7당 공동대책위’와의 간담회를 열고 방송개혁 입법에 대한 공영방송 현업인들의 바람과 우려를 전달했다. 22대 국회에서 방송3법과 미디어관련 개혁 법안들이 속도감 있게 입법 추진되려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넘어 여야 의원들의 찬성으로 입법을 실현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방송 현업단체들은 이번 개정 법안들이 지난 20대, 21대 국회에서 자리를 서로 바꾼 여야의 정당들이 오랜 고민 끝에 공통으로 주장해왔던 내용들에 기초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법안의 바탕에는 지난 2016년 ‘촛불 광장’의 시민들이 한 목소 리로 외쳤던 공영방송 독립과 언론 개혁의 열망을 담고 있는 만큼  당시 ‘촛불 시민들의 시대정신을 받들겠다’고 약속했던 여야 정치권이 정치적 공방을 멈추고 2016년부터 이번 총선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이 요구하는 방송개혁의 시대정신을 실현시켜 줄 것을 호소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4-06-26
  • "갔노라, 보았노라, 기록했노라"
    [현장에서]  이종섭 호주대사 출국금지 호주 현장 취재기 “갔노라, 보았노라, 기록했노라”       카메라에 눈이 쏠렸다.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평화로운 3월 10일 일요일 인천공항에 기자들이 몰렸다. 게이트마다 한 팀씩 자리를 잡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지난 3월 8일 금요일 출국 금지 조치가 해제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취재기자들은 마이크를 쥐고 질문을 검토했고, 영상기자들은 녹화 버튼 위에 검지를 올려둔 채 신경을 곤두세웠다.     “언제쯤 온답니까?” 한자리에서 적어도 3시간을 기다린 공항보안직원이 한숨을 내쉬며 동료에게 속삭였다. 오후 4시 50분 그는 아직도 공항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슬슬 준비해야 했다. 출국장을 통과해 탑승구로 가기 전 첫 번째 입구에서 조용히 그를 기다렸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이미 들어온 건 아닐까?’하는 작은 의심이 뇌리를 스쳤고,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직 안 왔습니다.” 오후 6시가 넘어서 공항 로비에서 대기하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의심은 머지않아 확신으로 바뀌었다. 공항보안직원들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고, 이 모습은 그가 이미 들어왔다는 가정에 더욱 힘을 실었다. 우리는 위치를 나눴다. 취재기자와 오디오맨이 최후의 보루인 탑승구를 맡았고, 나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있을 만한 위치로 향했다. 식당이 몰린 곳과 면세점, 대한항공 라운지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이 엄습했고 ‘에이 설마 안 오겠어?’를 되뇌었다.     탑승수속이 마감되기 5분 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의 첫 접선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탑승구 대기 장소에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 등장했다. 빠른 걸음으로 탑승구를 향하던 그는 취재진이 붙잡고 질문하자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말한 뒤 등을 보였다. 공항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은 따돌렸지만, 끝까지 쫓아간 우리를 따돌릴 순 없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다시 만난 곳은 브리즈번 공항이었다. 인천공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는 인력을 나누지 않고 캔버라행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같은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탓에 이번에 만나지 못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이번에도 모든 승객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전과 같았다. “아이고 여기까지 오고 그랬어요? 제 입장은 여러 차례 얘기했기 때문에..”     두 번의 기다림과 두 번의 만남. 우리는 여전히 답을 듣지 못했다. 브리즈번에서 캔버라로 이동 후, 공식적인 인터뷰 요청을 위해 주호주 대한민국 대사관을 찾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짧은 답변뿐이었다. 공식적인 인터뷰는 거절, 대사관을 찾아간 날은 휴무일이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남은 방법은 한가지였다. 출근 시간에 대사관저로 찾아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질문하는 것뿐이었다.     다음 날 새벽 6시, 우리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태양보다 먼저 고개를 치켜들고 대사관저로 향했다. 대사관저 맞은편 공원에 차를 주차한 뒤, 카메라를 설치하고 지켜봤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태울 차량의 출입 경로를 분석하기 위해 액션캠을 가방에 달고 대사관저 앞을 서성였다. 오전 8시 30분이 넘어가자, 각국의 외교관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쪽 귀에 무선 이어폰을 장착하고 건너편에서 대사관저를 지켜보고 있는 오디오맨과 통화하며 카메라 녹화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대사관저 대문 앞에서 한 여성이 밖을 둘러봤고, 우리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곧 나올 것을 직감했다.     “(원철)선배, 이종섭 대사 나옵니다. 어, 어...?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상문)선배, 차량 바로 탔다는데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대사관저에서 나오자마자 차량에 바로 탑승해 출발했다. 나와 취재기자 선배는 질문할 겨를도 없이 출구로 나가는 차량을 향해 달렸다. “대사님! 대사님!” 카메라 앵글이 미친 듯이 울렁거렸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달렸지만, 그런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결국,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몸을 반대쪽으로 돌린 채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3번의 기다림과 3번의 만남. 결국, 아무 답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급하게 출국하는 모습, 기자를 피하는 모습 등의 영상이 남았고 이를 국민에게 전할 수 있었다. 대답 한마디 없던 영상은 오히려 그 자체로 대답이 됐고, ‘역사’로 기록됐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끝까지 쫓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값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이번에도 현장에서 쓰였다.     영상으로 기록한다는 것. 영상기자의 일이다. 일이면서 책임이 따른다. ‘현장에서 영상으로 기록한다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그리고 책무를 온전히 이뤄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영상기자로서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상기자의 현장은 계속해서 제한되고 있다. 공항 탑승구에서 출국장으로, 출국장에서 공항 로비로. 나중엔 출국장이 아닌 공항 입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장을 쫓아가길 주저하지 않는다면 우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갔노라, 보았노라, 기록했노라”. 스스로 당당했던 카이사르처럼 말이다. MBC 허원철 기자  
    2024-05-08
  • 타이완 지진. 언론인으로서의 '선택과 소회'
     [현장에서]  '타이완대지진 현장취재기' 타이완 지진. 언론인으로서의 '선택과 소회'  이름 모를 타이베이 거리에서 TVU 중계를 마치고 인도에 걸터앉았다.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한 건 뉴스 시작 한 시간 반 전. 1보를 급하게 막았다. 오늘 아침 출근길은 서울이었는데, 퇴근길은 타이베이가 되었다. 지진은 타이완 화롄 현에서 발생했다. 진원의 깊이는 20km이며 규모는 7.2로 관측되었다. 타이베이에서 화롄현까지의 거리는 대략 160~170km. 우리는 밤사이 화롄현으로 갈 계획을 세워야 했다. 현지 가이드의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 9시였다. 우리는 그 시간까지 호텔을 잡지 못했다. 화롄현으로 가는 계획이 세워져야 숙소 위치를 정할 수 있었다. 타이베이에서 화롄현으로 가는 직선 도로가 막힌 상황. 현지 가이드는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 1.   타이완을 한 바퀴 돌아서 남부에서 화롄현을 들어가는 방법. 대략 10시간, 742km를 운전을 해야 함.        그 사이에 남부도로 역시 막힐 수 있는 위험성이 있음.   2.  쑤아오 진까지 가서 선박을 알아보는 방법. 타이베이에서 쑤아오 진까지는 3~4 시간이 걸린다. 비교적 화롄현에서 가까운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도로나 기차가 뚫리면 화롄현으로의 갈 수 있음. 진입을 못한다면 쑤아오 진에서 화롄현에 못 가는 현지인들을 취재하는 방법도 고려 가능함.   3. 다음날 오전까지 타이베이에서 교통상황을 보고 결정하는 것. 우리는 격론 끝에 수아오 진으로의 이동을 결정했다. 그때 시간이 이미 저녁 11시 반을 넘고 있었다. 다시 짐을 챙겨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지 가이드는 “터널 운전이 졸리다”며 해발 2000m이상의 산길 운전을 선택했다. 그렇게 쑤아오 진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두 시 반이었다. 선박을 알아보기 위해 두 시간을 자고 오전 다섯 시에 다시 모였다. 새벽에 차량을 선박에 태우고, 쑤아오 진에서 화롄현으로 갈 수 있는 전철을 알아냈다. 그렇게 오전 10시 반에 화롄현에 도착했다. 비교적 화롄현에 일찍 도착했지만, 그날 타사들도 늦게나마 화롄현에 입성했다. 두번째 방식을 선택한 언론사가 있었는데, 남부에서 고립되어 인근 파출소에서 밤을 샜다는 얘길 들었다. 순간의 선택으로 우리는 이번 출장을 순항하게 되었다. 현지의 일부 건물들이 무너졌지만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우리가 취재할 당시에는 13명이 사망했다. 130여 명이 고립되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전화 연락이 되고, 식량의 공급을 받으면서 안전하게 머무르고 있었다. 이번 지진이 1999년 대만 중부 난터우현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지진 이후 25년 만에 발생한 강진이다. 당시 2,415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 후 대만은 지진 대비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난예방 보호법’을 시행했고, 내진 설계를 의무화했다. 일부 영향을 받은 건물들의 경우에는 빠르게 철거하거나, 시민들의 보호를 위해서 군경이 합동으로 구조에 나섰다. 이번 지진의 상징적인 건물이 된 기울어진 톈왕싱 건물의 경우 대략 100미터 이내 접근을 막았다. 영상기자 입장에서는 근접이 안된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지만, 가이드라인은 모든 언론사들에게 엄격하게 적용했다. 타이루거 국립공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출입이 계속 막혔다. 재난상황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사항은 인명구조, 사고 수습이다. 당국의 명확한 판단은 불필요한 경쟁을 자제하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체 판단을 실패하기도 했다. 금지 구역에 들어갔던 부분, 허가 없이 드론을 날렸던 선택에 대해서는 다시금 한국에 돌아와서 반성한다. 당시 드론을 날린 언론사가 한 곳 있었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국방일보 같은 곳이었다. 타이완의 군 언론사도 드론을 날린 지 5분 만에 경고를 받고 착륙시켰다. 화롄현에서 드론을 날린 언론사는 한국 언론사 2곳 외에는 없다. 톈왕싱 건물 앞은 전 세계 언론사들의 중계 포인트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대형 천막을 쳐서 무리 없이 중계 가능하도록 협조해 주었다. 우리가 취재를 위해서 움직일 때면 회롄현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누군가는 우리를 보고 햄버거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음료수나 버블티를 돌렸다. 사실 재난현장에서 기자들 역시 열악하게 지낼 수 밖에 없다. 그런 현장을 이해해 주고 도움 받는 경험은 기자 생활에서 처음 해보는 것 같다. 타이완 국민들은 대체로 언론을 신뢰하고 의존한다고 한다. 물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국민들도 당연히 있다. 재난 상황에서는 언론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하며, 대체로 언론을 통해서 안전과 정보를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언론이 불신을 얻게 된 계기는 세월호 오보가 자리 잡고 있다. 이후 모든 재난상황이 정치적 이슈로 번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기반이자 핵심요소 중 하나이다. 민주주의는 인간 존엄과 자유를 보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판단이 안되는 상황에서는 핵심적 가치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다시금 내가 서있는 곳에서 좋은 언론을 위한 최선을 선택들을 쌓아가고 싶다. SBS 하륭 기자  
    2024-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