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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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타데이터의 질이 보도영상의 가치를 결정할 것" -메타매니저 YTN보도국 아카이...
    “메타데이터의 질이 보도영상의 가치를 결정할 것” YTN보도국 아카이브팀 유영식 차장 인터뷰 디지털 아카이브가 도입되고 인제스트되는 영상들의 양이 매우 방대해짐에 따라, ‘메타데이터’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사전적으로는 ‘데이터에 관한 데이터’라는 의미로, 크게 기술적 메타데이터(technical metadata), 서술적 메타데이터(descriptive metadata) 워크플로우 메타데이터 (workflow metadata) 등으로 나뉜다. 기술적 메타데이터가 카메라, NLE, 인제스트 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입력된다면, 뒤의 두 분류는 촬영기자나 인제스트 요원들이 촬영원본이나 외신 수신자료 혹은 기존 테이프/디스크 자료영상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기술(記述)하는 단계에서 생성된다. 이 단계에서 얼마나 정확하고 충실하게 영상자료 관련 정보를 입력하느냐, 그리고 입력된 정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자료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YTN에서는 아카이브 매니저와 메타데이터 매니저(이하 메타 매니저)가 투 트랙(two track)으로 보도영상 관리를 하고 있다. 지난 달 26일, YTN아카이브팀 유영식 차장을 찾아가 메타 매니저의 역할에 대해 물어봤다. 1. 우선 영상아카이브 관리에서 YTN이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인제스트 과정은 어느 방송사나 다 똑같을 것이다. YTN 아카이브팀은 지난 2009년 가을 보도국 내 팀으로 조직되었는데, 그 안에서 수신 매니저, 메타 매니저, 아카이브 매니저 등 3개의 직종이 같이 일하고 있다. 수신 매니저는 아카이브 매니저에 포함된 개념으로, 수신매니저 밑에 국내수신, 국외수신 2개의 팀으로 나눠져 있다. 수신 파트는 통합수신룸을 운영하며 송출수신, 웹하드, 제보영상, 제공영상 등 외부에서 발생되어 회사로 들어오는 모든 영상을 받고 있다. 이런 조직 구성의 장점은, 영상이 처음 들어올 때부터 해당 영상을 어떤 이슈에 묶어서 자료를 보관할 것인지 이슈명을 정할 때 사전에 협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이슈명이 정해지면, 그와 관련해 발생되는 모든 촬영원본, 편집본 등 인제스트되는 영상에 대해선 이 협의된 내용으로 메타데이터를 입력하도록 통일시켜준다. 예를 들어, 이석기 공판이라는 이슈에 대해선 수신매니저와 메타 매니저가 함께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 재판”이라는 이슈명을 정하고 이와 관련한 영상들은 여기에 다 분류해둔다. 따라서 나중에 기자가 영상을 찾을 때, 이슈명 하나만 알고 있으면 해당 영상은 그 이슈명 하나에 다 묶여져 자료를 찾기 쉬워진다. 메타 매니저와 수신매니저 사이의 유기적 관계에서 이와 같이 자료 입력과 관리의 통일성을 가져온다. 일반적으로는 영상이 인제스트가 되고 이것이 나중에 재편집되어 아카이빙이 되는데, 보통은 아카이빙 단계에서 메타데이터 매니저가 개입된다. 그렇게 되면 메타데이터가 부실해질 수 있다. 초기 영상 들어오는 단계부터 메타데이터 컨트롤을 안하고, 후반에 하게 되면 데이터의 질도 떨어지고 부족한 데이터를 보완하는데 필요한 인력도 더 많아질 것이다. 메타데이터는 자료 생산단계부터 아카이빙까지 계속 붙어 다니는 거라서 처음부터 메타데이터 매니저가 개입되어 그 자료와 관련한 정보들이 물 흐르듯이 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촬영원본에 대해선 메타데이터 1차 입력은 촬영기자가 할 텐데, 촬영기자들과 메타데이터 매니저간의 업무분장은 어떻게 되나? YTN에서는 두 명의 메타데이터 매니저가 일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촬영기자가 많은 양의 메타데이터를 입력하고 있어 메타 매니저가 입력된 데이터 2차 가공할 때 컨트롤 할 부분이 적은 편이다. 이것도 YTN이 특별한 점인데, 풀 취재 외에는 촬영기자가 직접 인제스트하고 메타데이터 입력을 하는 비율이 타사와 비교해보면 높은 편이다. 그래서 메타 매니저가 영상 자체에 대한 기술이나 내용 추가는 별로 하지 않는다. 그날 찍어온 영상에 대해서 관련 정보를 잘 아는 사람은 현장에서 촬영한 사람이기 때문에, 촬영자가 얼마나 데이터를 풍부하게 넣어주느냐에 따라 추후 영상을 찾아 쓰는 데에 편리하다는 점을 촬영기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보도영상은, 지나치게 디테일한 정보를 기술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건에 대한 영상이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다룬 것인지, 그 사건에서 중요한 내용은 무엇인지만 입력하면 된다. 커트 종류가 어떻고 상세하게 무엇을 찍어놨고 이런 것은 덜 중요하다. 메타데이터 2차 가공도 그렇게 정리된 포인트에 맞춰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OOO 외경’이라고 적혀있으면, 실제로 영상에서는 어느 수준까지 외경이 촬영된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사건이면 해당 사건의 내막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하고 정보로 입력하는 것이 메타데이터 2차 가공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촬영한 영상의 성격에 따라서 메타데이터 내용과 상세한 정도도 다르다. 3. 아카이브 매니저와는 어떻게 협업하는지? 아카이브 매니저는 어떤 영상을 계속적으로 보관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주로 한다. 반드시 보관을 해야 할 영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 있어 영구보관용 자료를 고르는 일은 무난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보관을 해야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영상이 있다. 예를 들면 제보영상이나 스포츠 영상 같은 경우가 그렇다. 스포츠 같은 경우 전체 자료의 30%를 차지하고, 용량도 크다. 그래서 하이라이트 등 필요한 자료만 선별한 일이 필수적이다. 제보영상의 경우, 필요 이상의 긴 분량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저작권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원본은 삭제하고 방송이 나간 단신영상에 영상제공자이름을 입력해 대체 보관한다. 즉, 아카이브 매니저들은 영구보관을 해야 할 영상들의 양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외신)수신영상 원본 앞뒤로 컬러바나 블랙이 같이 들어오는 경우 이를 정리해서 서버에 입력하는 일도 아카이브 매니저의 몫이다. YTN에선 이 작업을 “정제작업”이라 부른다. 보도영상 아카이빙은 아카이브 매니저와 메타 매니저가 두 축에서 영구보관할 핵심영상들을 선별하고 그 영상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일을 말한다. 인제스트는 영상을 물리적으로 입력하는 일이라면, 이 두 축에서는 입력된 영상을 자산으로써 핵심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 메타 매니저는 사실상 아카이브 매니저가 판단해야 될 부분을 1차적으로 관리한다. 나름대로의 판단에 근거해서 삭제할 영상을 선별하고 왜 삭제해도 좋은지 그 근거를 확인한다. 근거가 확실해지면 실제로 삭제를 하기도 하고, 삭제하기가 애매하다면 “판단요망”이라는 말을 내용에 입력하고 자료관리를 아카이브 매니저에게 넘긴다. 4. YTN의 디지털자산관리시스템(MAM)인 iNews는 어떤 시스템이고 여기서의 영상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iNews는 2009년 하반기에 개발이 시작되어 2010년 2월 즈음에 상용되었다. 촬영원본, 외신, 스케줄 녹화본, 편집본 등 매일 생산되는 영상들이 이 시스템에 등록된다. 하루에 약 1200건 정도의 아이템이 발생되고 이 중에서 영구 보관되는 정도는 350건 정도다. 촬영원본, 리포트/단신, 스포츠 하이라이트 영상, 일부 보관이 필요한 제공(제보)영상 등. 그렇다면 매일 800여 이상의 영상이 삭제되는 건데, 그 작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메타 매니저의 몫이다. 현재는 메타데이터에 입력된 내용에서 “추후삭제”, “삭제대기” “판단요망” 등의 문구를 을 보고 수동적으로 지운다. 영상 하나를 검색하고, 일일이 클릭해서 확인한 다음에 삭제 요청과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대량의 자료들에 대해서 이 작업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일부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 불필요한 자료 삭제를 자동화시키면 나중에는 대량의 자료를 사람이 직접 지울 필요가 없다. 이와 관련해서, 요즘 기록 관련분야에선 보관에 관련된 메타데이터 관리가 이슈화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영상을 잘 인덱싱 하고, 메타데이터 내용을 육하원칙에 맞게 적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것이 일반화되면서 보존과 관련 메타데이터가 중요해졌다. 5. 자료의 중요도에 따라서도 등급별로 분류해서 보관할 수 있는지? 그 또한 보존 관련 메타데이터에 속하는데, iNews에는 아직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나마 보존연한(1주일/1개월/3개월/1년/영구…)과 관련된 부분이 진척됐을 뿐. 향후 중요도에 따른 자료 선별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 선별작업에 있어서 적절한 근거가 필요하다. 지금 단계에서는 촬영원본은 영구 보관하고 있지만, 향후 몇 년이 지나고는 이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남겨야 할 것이다. 그때 무엇을 기준으로 남기고 지울 것인지 그 판단근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필요할 것 같다. 보존 메타데이터는 단순 분류의 차원을 넘어 영상마다 그 성격을 규정하는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여러 방송사 관계자가 모여서 서로 세미나를 열어 도출된 결론이 있다면 거기에 준용해서 공통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자료보존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없으면 각 사에 자료 담당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고 나중에 거기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6. 촬영기자가 인제스트하면서 메타데이터 작성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 일을 메타 매니저가 담당하나? 그런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나중에 다른 이용자가 자료를 찾아 쓰는데 더 유용할 텐데.. 검색에 관련해서는 아카이브팀에서 동의어 처리 등을 해 놓다. 검색엔진에서 외통위, 상임위 등 약어를 입력해도 웬만한 자료는 다 검색결과에 나온다. 그래서 검색 관련 이슈는 없다. 그런데 메타데이터를 입력할 때, 어떤 수준까지 적어야 할지 일일이 사례를 들어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향후 필요한 걸로 본다. 현재 메타데이터 입력은 인제스트하는 촬영기자들의 자율에 맡긴다. YTN에서 아카이브 매니저가 직제화된 것이 올 4월부터였는데, 이분들이 촬영원본과 그에 대한 메타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정제작업을 할 때 해당 영상에 비해 부족한 메타데이터를 직접 채우거나 1차 입력자에게 채워달라고 요청하는 등 여러 조치들을 취하면서 전반적으로 메타데이터가 질적으로 좋아졌다. 그럼에도 촬영기자들마다 사건사고나 이슈를 접할 때마다 거기서 강조점을 찾고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데에는 개인차가 있다. 동일한 영상에 대해 어떤 사람은 열 줄을 적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두 세줄로 끝내는 경우가 있다. 향후 메타데이터 매니저가 혹은 아카이브팀에서 그런 개인차를 극복할 수 있게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7. 디지털아카이브와 관련하여 보도의 경쟁력은 앞으로 어디서 결정될 것으로 보나? 현장에서 신속 정확한 취재를 하는 것은 어느 회사나 어느 기자나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고, 이 쪽 아카이빙과 관련해서는 데이터의 양과 질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데이터가 얼만큼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서버에 들어가느냐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이 중요한 발언을 해서 이를 정리할 때에는 녹취파일을 일일이 다 들어봐야 거기서 중요한 부분을 메타데이터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녹취록이 첨부되어 있으면 여기서 시간과 노력을 훨씬 줄여줄 수 있다. 해당 영상과 관련된 기사들 혹은 프리뷰 등 각종 첨부자료들이 얼마나 매칭되었느냐에 따라 향후 자료의 질이 결정될 것이다. 현장 취재를 하면서 생산한 각종 데이터들이 시간이 지났을 때 서로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붙어있는가에 따라 각 사의 경쟁력이 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피겨 선수 김연아와 관련한 동일한 영상을 모든 회사가 다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이 자료를 얼마나 자세히 설명하고, 관련 자료(보도자료, 관련기사, 인터뷰 녹취록 등)를 얼마나 첨부해두었느냐에 따라 보도영상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촬영기자, 취재기자, 아카이브매니저 등 해당 영상콘텐츠와 관련한 모든 이들이 협업을 할 필요가 있다. 8. 보도영상 아카이빙을 위해 협회가 할 일이 있다면? 자료 관리 단계에서, 어떤 영상을 저장하거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필요 없는 영상을 지울 때 필요한 판단 기준을 협회 차원에서 마련했으면 한다. 구체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건사고 등 분야별 영상들에 대해 자료적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 기준들을 내놓고 거기에 비추어서 각 사 아카이브 매니저가 개별 영상의 역사적 가치를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 최효진/취재 및 정리
    2013-12-16
  • KBS 전한옥 국장 - 방송인생을 돌아보며
    1.퇴직소감? 아직까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33년간 우리 집 같이 근무한 회사에서 발걸음을 떼려니 시원섭섭하다. 쉬지 않고 일을 해왔으니 일단은 휴식기를 가지고 싶다. 그동안 바빠서 가지지못했던 여유시간을 가지면서 여가생활을 하고싶다. 후배들이 항상 내가 지나갈 적 마다 퇴직에 대한 소감을 매일같이 물었었는데, 나는 퇴직할 준비도 안되있었고, 아직도 회사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려니 기분이 참 묘했었다.그저 실감이 안난다. 첫 번째로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퇴직하고 뭐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는데 일단은 나 혼자 갖는 시간을 갖고싶다. 직장다닐때도 새벽에 운동을 다녔었는데 이제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다. 테니스, 골프, 복싱 등 다방면의 운동을 가리지 않고 배웠었는데 이젠 마음껏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좋다. 그밖에도 색소폰, 하모니카 등 악기연주에 취미를 두었다. 열심히 배워 봉사활동에 기여를 하고 싶다. 내가 취미가 많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하루하루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즐겁게 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취미생활을 즐기며 즐겁게 살고 싶다.   2. 인상깊었던 취재? 지금도 기억이 남았던 취재는 남북 고위급 정상회담을 취재하러 평양에 갔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워낙 중대한 취재였기 때문에 많은 취재진들을 대동하지 못하고 경력이 꽤 되는 소수의 중견차 취재기자, 카메라기자들만이 어려운 절차를 걸쳐 평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막중한 임무를 어깨에 진 듯 했다. 혈혈단신으로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서 직접 질문을 하면서 현장을 바삐 뛰어다녔다. 내 목소리가 생방송으로 울려퍼지는 순간, 그때 흘렸던 땀방울의 결실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 하나의 기억에 남았던 취재는 1999년에 발생했던 화성 씨랜드 화재참사이다. 그 당시 엄청난 특종이었는데 이미 타사에서 제보를 받고 자사보다 한걸음 빠르게 취재를 했었다. 하지만 타사 취재진이 내보낸 영상에는 화재를 진압하고 난 뒤의 남겨진 앙상한 잔해들밖에 없었다. 우리 측에서도 기발한 대응책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곰곰이 대책을 마련하던 도중에 분명히 6미리로 누군가가 찍었을 것이다. 라는 너무나도 확신에 찬 생각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영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제보를 이곳저곳 수소문 끝에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영상을 어떻게 전달받느냐가 최대의 난관이었다. 지금도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은 인간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내가 가장 친했던 형님이 헬기 조종사였다. 마침 형님께서 도움을 주신다며 연락이 왔었다. 그리하여 형님께선 직접 헬기를 타고 제부도로 가셨다. 하늘이 돕는 것과같이 마침 테이프를 입수했다는 연락이 왔다. 문제는 테이프공수를 어떻게 할꺼냐가 문제였다. 또 다른 문제는 헬기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형님께 큰 재난이니, 어디에든 불시착을 해서 테이프를 꼭 공수하라고 사정을 했었다. 테이프를 공수하신 형님께서는 가까운 수원 KBS로 가셔서 전달을 해주려고 했는데.. 아까와 똑같은 사정으로 착륙장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내려서 손수 테이프를 공수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민고민 끝에 그러면, 우리 kbs 직원 한 명이 옥상에서 테이프를 받겠다. 떨어뜨려 달라. 라고 형님께 얘기를 했다. 그래서 형님께선 테이프를 옥상에 던져주셨는데, 예상대로 테이프는 산산조각이 났다. 긴 좌절 끝에 있었지만 죽으란 법은 없었던 것 같다. 마침 회사에 남아있는 엔지니어가 그 테이프를 완벽하게 복원해냈다. 자사보다 빨리 취재를 갔던 타사는 우리측보다 몇 분 빨리 뉴스를 내보냈지만 이미 다 타버린 재밖에 안남은 잔해의 그림만 뉴스에 나갔었고 몇 분 후에 뉴스를 내보낸 우리 측은 활활 불에 타고 있는 씨랜드의 그림을 뉴스에 내보냈기 때문에 긴박하고 급박한 서사의 끝에 대서특종의 낙을 선사받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급박했었다. 3. 후배들에게 해줄 충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첫 번 째로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카메라기자들 항상 일이 차고 넘치는 것 다 안다. 일하는 것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일에 치여 가정에 소홀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한 가장의 자세가 아니다. 두 번째로 부모한테 잘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부모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한정되는 의미가 아니라 아내의 부모님께, 장인어른 장모님께도 내 부모처럼 생각해서 효도를 많이 해야 한다. 세 번째로 부부간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라는 얘기를 끝으로 하고 싶다. 부부끼리 여행도 많이 하고 여유시간을 충분히 가져 부부간의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장유진/취재 및 정리
    2013-12-16
  • 협회 여성보호센터 자원봉사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이중우)와 청소기 전문회사  KIRBY(회장 최화선)는 지난 20일 서울시 여성보호센터에서 청소 자원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서울시여성보호센터는 만 18세이상의 여성 노숙인 보호센터로서 복지 서비스를 통해 부랑여성들을 가정과 사회로 복귀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180여명이 머물고 있으며 대부분이 무연고자들이다.   봉사단에는 협회 사무처 및 컬비 임직원들과 대학생 명예카메라기자들이 참여했다. 이날 봉사단은 집먼지 진드기와 미세먼지를 제거 할 수 있는 컬비 청소기를 이용해 생활관 1층과 2층 전실의 침구류와 실내를 청소했다. 집먼지진드기와 미세먼지는 아토피성 피부염과 천식과 알레르기성 비염 등의 호흡기질환들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호센터에 머물고 있는 여성분들은 먼저 청소를 받고자 경쟁도 벌어졌으며 많은 분들이 봉사단을 적극도와 주어 예정 된 시간보다 일찍 작업을 마쳤다. 이날 봉사에 참여한 대학생 명예카메라기자 황인성은 “바쁘게만 살아왔는데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며 “작은 힘이였지만 여성 노숙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뿌둣했다”고 밝혔다. 이중우 회장은 “사람들 모두 높은 이상만을 추구하느라 바쁘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주어진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자원봉사에 참여한 컬비 임원은 “컬비청소기는 강한 흡입력과 함께 특수필터(HEPA)를 통해 진드기와 미세먼지 제거한다.”며 “1년에 3회 이상 무료 봉사활동을 오랫 동안 지속해 왔다”고 말했다. 한편, 협회는 지난 달 컬비와 자원봉사 등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장애인 시설 등에서도 봉사 활동을 진행 할 예정이다. 장유진 기자
    2013-11-21
  • KBS 노조 파업 중단
    KBS 노조 파업 중단 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 이하 KBS노조)은 지난 달30일 오후 총회를 열고 파업을 장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KBS노조가 ‘방송독립 쟁취와 임금투쟁 승리’를 내걸고 지난달 26일부터 진행한 무기한 총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1일 오전 5시로 업무에 복귀했다.국회 방송공정성특위의 기한이 연장된 만큼 새로운 투쟁으로 돌입한다는 이유에서다. KBS노조는 “11월까지 KBS노조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권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3-10-07
  • 줌인 - 무분별한 현장영상 사용의 심각성
    무분별한 현장영상 사용의 심각성 최근 들어 CCTV와 자동차 블랙박스, 스마트폰 제공 화면으로 사건 사고 뉴스를 만드는 경우가 너무나 흔하다. 물론 그 순간의 영상만큼 전달력이 뛰어난 것도 없을 것이다. 보도 영상의 중요성은 뉴스를 결정하는 가치기준으로도 나타난다. 텔레비전뉴스의 경우 영상 화면을 통해서 설명력을 높일 수 있으며 생동감이나 높은 신뢰감을 준다. 이점에선 그 현장을 실시간 촬영한 영상만큼 전달력이 강한 도구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와 같은 화면은 사고 순간의 모습을 시청자에게 보여줬을 뿐 아니라 원인 규명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재해 현장의 모습을 보여줘 실시간으로 전달하여 더 많은 피해를 줄이는 기능도 해왔다. 그러나 이젠 기자들이 사건사고 현장에서 현장 취재 보다 그 당시 촬영된 영상을 찾느라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흔한 장면이 되어가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충분한 논의 없이 그러한 영상만으로 보도가 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러한 경향은 지상파, 케이블 따질 것 없이 앞 다투어 내보내고 있어 그 심각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뉴스 가치가 떨어져 다루지 않던 단순 범죄도 CCTV화면이 있다는 이유로 버젓이 하나의 아이템으로 뉴스 시간을 할애 받고 있다. 화면도 모자이크정도의 처리만 된 채 방송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 힘없는 여성이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 후 복도를 빠져나가는 범인의 모습, 휴대폰 매장의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가 휴대폰을 훔치는 십 대 청소년의 모습, 차에 치여 쓰러지는 사람의 끔직한 사고 현장의 모습 등, 영상만 있으면 모든 게 방송뉴스가 되는 아찔한 현실이다. 심지어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조폭들 간의 난투극이나 거리에서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내보내기도 한다. 당시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그 순간을 담은 영상을 접한다면 괴로움과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과연 이러한 영상들의 무분별한 사용이 뉴스로서 어떤 가치를 둔 것이었을까! 그리고 이런 방송 행태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그 당시의 현장 영상이 아니더라도 현장 스케치와 목격자 인터뷰만으로도 얼마든지 그 위험성을 알리고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충분이 해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사실에 근거한 영상이라 할지라도 여러 가지 충돌하는 이익을 고려하여 신중을 기해야 한다. CCTV화면을 너무나 신뢰한 나머지 화면의 정황만 가지고 보도를 하여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다. 화면만 놓고 보면 문제가 있어 보이나 좀 더 확인을 해보면 그렇지 않았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참고영상으로 사용해야지 주가 되어선 안 된다. TV뉴스는 불특정 다수를 그 시청의 대상으로 한다. 사실감이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화면을 방송의 도구로 쓴다면 얻는 것 보다 잃는 게 더 많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때로는 한 컷의 영상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하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영상의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말고 충분한 논의가 된 후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2013-10-07
  • 일베의 문제성
    요즈음 인터넷 상의 화두가 되고 있는 일간베스트에 대해서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간베스트는 커뮤니티 사이트다. 하지만 단순한 커뮤니티 사이트라면 이렇게까지 큰 파장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일간 베스트는 극우성향이 강한 사이트이다. 극우성향을 넘어서 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뻗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적으로 일간베스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말투를 사용하면서 전라도 광주시민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또한 광주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지칭하며 역사왜곡을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더 위협적인 것은 일베가 중.고등학생들에게 유행이 되고있다는 점이다. 아직 판단이 미흡하고 주관이 서지 않은 10대들은 일베를 하면서 자연스레 잘못된 역사인식을 뿌리박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의식한다는 점이다. 지난 총선 대선과정에서의 여당후보를 지지하며 여론조작 활동에 힘입어 성폭행모의, 모욕 및 명예훼손 등 각종 범죄행위를 일삼아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뿐, 일베를 범죄자집단으로 명명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건사고가 일베 내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반박은 유효할 수 없다. 그 외에도 지역감정을 거세게 주장하며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극에 달하는 혐오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이 혐오하는 대상은 전라도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한국여자를 김치녀라고 칭하면서 여성비하글을 손쉽게 게재하고 있다. ‘삼일에 한번씩 여자를 패야 한다’ 라는 문장을 줄여 삼일한, 김치녀, 자신들만의 용어를 구축하여 즐거워한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자신보다 약한 약자들을 비난하고 웃음거리로 만들며 그들만의 오락을 하고 있다. 동시에 부정부패를 일삼는 사회적 강자들을 찬양하면서 자기위안을 한다. 그들에게 정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일 뿐이다. 더 나아가 이들의 움직임이 오프라인까지 확장되고 있다. 넷상에서 나와서 이들은 이제 사회의 앞으로 나오려고 한다. 인터넷 속의 익명성을 벗어던지고 길거리로 나온 것이다. 일베를 캐릭터화한 일베충 캐릭터의 탈을 쓰고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유도하고 있다. 대중들의 삶 속에 더욱 손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미지쇄신을 위해 그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애국보수라는 명분 하에 그들은 진보주의자를 빨갱이로 칭하고 정권의 부정부패를 무시한 채 오직 빨갱이 타도에 혈안이 되어있다. 시대를 역행한 것 마냥 그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버젓이 존재하는 진실을 뒤로 하고 거짓과 왜곡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이러한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일베를 유해사이트로 지정하지 않는다. 스폰서가 없이도 일베 사이트는 아직도 운영이 원활하게 되고 있다.
    2013-10-07
  • 전쟁을 싫어한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100주년 기념 사진전 - 전시기획자 조대연 교수 ...
    1. 전쟁을 싫어한 종군기자 로버트카파 100주년 기념 사진전 1.1. 전시기획자 조대연 교수 인터뷰 프랑스 통신원 최효진 올해에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국내외에서 많은 행사가 열렸다. 스페인 내전을 비롯해 20세기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전쟁을 취재했던 종군기자 “로버트카파 100주년 기념전”도 그 중 하나이다. 비록 로버트 카파가 한국전쟁을 취재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보여준 종군기자의 흔적은 정전 60주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는 개막 2주 만에 관람객 만 명을 넘기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 전시 기획 총 감독을 맡은 조대연 교수 (광주대 사진영상학과)를 만나봤다. 뉴욕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ICP) 소장 작품이 직접 한국에 왔다는 점이 특별한 것 같은데, 이번 전시를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사실, 이번 전시가 국내 최초의 ICP작품 소장전이라는 점은 기존 사진전과 차별성을 갖는 부분이다. 사진 작품에서는 최종 인화를 누가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ICP에는 로버트 카파의 동생인 코넬 카파가 직접 선택하고 프린트한 작품들이 900여 점이 넘는다. 이 중 160점이 우리 전시에 선정된 것이니 특별한 것은 맞다. 하지만, ICP측과 기획 단계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우리가 ICP측에 카파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한국에도 전시를 하고 싶다고 연락했을 때, ICP측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왜 우리 작품을 전시하려고 하느냐, 보통 사진전시나 출판 등을 하려면 매그넘(MAGNUM: 로버트 카파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국제 보도사진 작가 그룹) 에이전트에 연락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매그넘보다는 ICP측이 더 많은, 더 좋은 카파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어 작품 선택의 폭이 넓었고, 어떤 의미에서 매그넘보다는 더 전통성을 가진 파트너 같았다. 작품 대여 등 비용 면에서도 ICP와 작업하는 쪽이 더 많은 예산을 필요로 했지만, 전시될 작품 수준을 고려해서 ICP측과 작업하도록 노력했다. ICP 수석 큐레이터였던 크리스토퍼 필립스도 이번 전시를 직접 보고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자기네들이 직접 핸들링해서 진행하는 기획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처음부터 한국 전시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개막이 되고 보니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개최했던 사진전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고 했다. 로버트 카파 사진이 실렸던 라이프 잡지라든지, 카파의 일대기를 소개한 다큐멘터리 영상,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전시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뉴욕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ICP)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사진박물관, 학교, 연구센터. 1974년 로버트 카파의 동생이자 보도사진의 선구자인 코넬 카파가 설립했다. 뉴욕 국제사진센터는 보도사진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강조한 점은 어떤 부분인가? 1913년생인 로버트 카파는 스페인 내전(1936), 2차 세계대전 (1941-1945), 제1차 중동전쟁 (1948), 인도차이나 전쟁 (1954) 등을 취재하며 어떻게 보면 전쟁 사진의 역사를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종군기자로서의 로버트 카파를 넘어,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을 사진가로 살다 간 카파의 일대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로버트 카파가 전쟁사진가였기 때문에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적지 않지만, 그와 함께 그가 사진기 셔터를 누르면서 보여주고자 했던 휴머니즘이 담겨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작품들도 많다. 또, 로버트 카파는 친화력이 굉장히 좋았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람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술 한잔 같이 마셔보면, 누구든 그를 좋은 친구로 생각하게 될 정도란다. 보통 카파와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글을 쓰던 작가나 화가, 기자들을 친구로 두곤 했다. 이번 전시에도 피카소, 마티스, 잉그리드 버그만,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등 카파와 친하게 지냈던 역사적 인물들의 사진들도 많다. 잘생긴 외모와 친화력덕분인지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좋았다고.. 특히, 카파의 첫 사랑이자 스페인 내전을 함께 취재한 게르다 타로와의 러브스토리라든지, 본인은 사진기자로서 가족을 만들면 안 되는 운명이라며 당대 최고 배우였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혼을 뿌리친 보헤미안으로서의 로버트 카파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전시된 작품 중 전쟁 중에 촬영한 피난민 사진 등을 보면, 로버트 카파가 그들하고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에 사진기 셔터를 눌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30~50년대 그가 활동했던 시대를 생생하게 전하는 사진들이 꽤 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친화력이 현장에서는 취재원들과 가까워지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이다. 촬영기자들도 그렇고, 사진가로서 그런 태도는 기본이다. 카파처럼 취재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 그들과 친해지고자 하는 노력, 또 취재 현장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면 더 깊이 있는 취재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뉴스란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실 그대로를 왜곡 없이 카메라에 담고, 보도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사건을 이슈화시키고, 보도사진/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리액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감성을 담는 것도 중요하다. 솔직히, 카파가 남겨놓은 사진을 보면, 일단 흑백이기도 하고 그다지 화려한 사진들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같은 대상을 지금 찍으면 기술도 더 좋고, 기계가 더 좋아져서 훨씬 더 잘 찍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파의 사진들을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동은 그 사람이 활동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촬영기자들이 후배로서 특별히 배울 점이 있을지? 사실 로버트 카파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사진과 영상의 구분이 특별히 없었다. 영화 산업이 한창이던 시대였고 카파도 사진가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를 찍기도 했다. 카파가 활동했던 시대에 사진 매체는 오늘날의 SNS와 같은 것이었다. 사진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전쟁 현장에서 사람이 총 맞아 죽는 현장을 말 그대로 생생히 보여주게 됐다. 라이프 등 각종 잡지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참상을 바로 업데이트 할 수 있었고, 현장에 있던 카파 같은 사진가들이 들었던 사진기는 잡지 구독자들의 눈을 대신해서 현장을 먼저 본 것이다. 그런 게 저널리즘 아닌가? 오늘날과 같이 사진 저널리즘이 위기인 시대에 40여 년 전 카파가 남긴 보도사진들을 보며, 지금 우리가 남기는 사진과 영상이 수십 년 후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로버트 카파 약력) 1913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본명 : 앙드레 프리드만) 1932 독일 베를린 사진 에이전시 데포트의 암실 조수로 취직. 레옹 트로츠키 연설을 촬영하며 사진기자로서 데뷔. 1933 히틀러 독재 정치가 시작되면서 유대인 박해를 피해 파리로 이동. 1935 ‘로버트 카파’라는 이름으로 사진 판매하기 시작. 1937 스페인 내전 취재 중 연인 게르다 타로 사망 이후 본격적으로 종군기자 활동 시작.      당시 신생잡지였던 라이프 지의 프리랜서로 활동.      헤밍웨이 등과 함께 스페인 내전 취재. 1938 중일전쟁 취재. “400만”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네덜란드 영화제작자 요리스 이벤스와 함께 작업.   1941-1945 제2차 세계대전 유럽전선 취재.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군 부대 동행 취재. 당시 촬영에 쓰인 100여 장의 필름들 중 암실 조수의 실수로 단 열 장만 건짐. 1947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빗 시무어, 조지 로저, 윌리엄 벤디버트 등 동료 사진가들 과 연합 에이전시 매그넘 설립. 1948 제1차 중동전쟁. 텔 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선언 취재. 1954 일본 신생잡지 ‘카메라 마이니치’ 초청으로 3주간 일본 체류 중 ‘라이프’지 의뢰에 따라 프랑스에 대항하는 베트남 독립운동 취재 차 인도차이나로 이동. 남딘에서 타이빈으로 향하는 수송차량이 잠시 멈췄을 때 지뢰 밟고 사망. 1955 라이프 지와 미국 전쟁기자단체가 ‘로버트카파상’ 제정 1974 동생 코넬 카파, 형의 기록과 추억을 보존하기 위해 뉴욕에 ICP 건립. 전시작품 설명 첨부 사진 설명 : ① 공습경보가 울릴 때, 피난처를 향해 달리는 엄마와 딸, 스페인 빌바오. ② 카파의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포토저널리즘의 역사상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③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에 카파가 촬영한 가장 유명한 사진. 포커스도 맞지 않고 상당히 흔들린 상태이지만, 오히려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보도사진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④ 이스라엘의 항구도시 하이파에는 매일같이 유럽 각지로부터 수천명씩 유대인들이 도착 했다. 1949년 5~6월 하이파. ⑤ 연합군이 입성하기 전, 독일군과 전쟁을 했던 20명의 10대 전사자들의 장례식장에서 우는 여성들. 이탈리아 나폴리. ⑥ 1938년 12월호 <픽쳐 포스터>에 실린 카파의 모습. ⑦ 다른 스페인 피난민 강제 수용소로 이동되는 스페인 난민들. 프랑스 바르까레.
    2013-10-07
  • 화면 밖 그들의 열정이 빛나기에
                           화면 밖 그들의 열정이 빛나기에 “60여명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습니다.” 스타 배우이면서 자신을 낮추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정적으로 일한 스텝진을 치켜세운 영화배우 황정민의 청룡영화제 수상소감은 모 기업이 광고에도 사용할 만큼 큰 화제가 되었다. 덕분에 대중들은 소수의 주·조연 배우를 지원하는 수많은 스탭들의 땀과 열정이 좋은 영화의 원천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방송뉴스에선 화면에 등장하는 화려한 스튜디오의 앵커와 현장을 누비는 취재기자만을 주인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솔직히 필자도 뉴스 현장에서 기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취재지원장교로 근무할 기회가 없었다면 화면 밖에서 활약하는 영상취재기자의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신문과 달리 시청각 자료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송뉴스는 영상이 필수적이다. 짧게는 1분, 길게는 2분가량 되는 한 꼭지의 방송뉴스에서 앵커와 취재기자가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은 불과 10여초. 그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영상이 내용을 대신한다. 그만큼 영상취재기자가 얼마나 가치 있는 영상을 촬영하는지가 그 날 뉴스의 성패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현실을 시청자가 그대로 보고 듣고 재구성해 이해한다고 생각하면 그 중요성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보다 생생한 영상을 전하기 위해 취재현장을 동분서주하는 영상취재기자, 화면 밖 보이지 않는 그들의 열정과 프로정신은 좋은 뉴스를 만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취재현장에서 만난 영상취재기자들은 흡사 전투에 임하는 군인과도 같았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던 영하 15도 혹한의 날씨에도 특전사 요원과 함께 얼음을 깨고 들어가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아프리카 남수단의 불볕더위에서도 15kg에 육박하는 카메라를 들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달려가며, 10미터가 넘는 전망대 사다리를 수차례 올라가는 그들의 눈빛에는 오로지 좋은 영상을 촬영하겠다는 갈망뿐이었다. 목표를 향해 돌격하는 용사처럼 한 치의 망설임과 주저함도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오해도 있었다. 왜 짧은 영상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낭비할까? 별다른 차이도 없는데 왜 다시 찍을까? 현장에서 취재를 지원하는 동안 수십 초가량의 짧은 영상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더 좋은 장면을 얻기 위해 반복촬영을 하거나하면 솔직히 짜증이 났다. 육군의 활동상을 홍보해주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며 땀 흘리고 있는 기자에게“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만하고 돌아갑시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들의 열정이 그저 단순한 집착으로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최전방 GOP 야간경계근무 취재지원을 마치고 피곤해하는 필자에게“우리는 발로 뛰고 눈을 통해 세상을 보여준다. 피곤하지만 장병들의 멋진 모습을 담아서 기분이 좋다”라고 말하는 모 매체 기자의 말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취재기자를 현장에서 돕는 장교로서 이들 못지않은 프로정신을 가져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누구보다 취재현장의 특징과 촬영내용을 잘 알고 있는 책임자로서 더 좋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영상취재기자들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영상취재기자들과 함께 땀 흘리며 호흡했던 현장 장면이 뉴스에 나오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짧은 뉴스지만 그들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걸 알기에 가끔은 기사의 내용보다는 영상에 더 집중할 때도 있다. 또 취재기자만 보고 뉴스를 평가하는 지인에겐“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뛰어다닌 영상취재기자들이 있다”고 괜히 흥분하기도 한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영상취재기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응원하고 싶다.   기자들도 배우처럼‘이달의 기자상’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상을 받고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필자가 방송기자로 취재부문에서 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배우 황정민의 소감을 빌려“영상취재기자분들이 만들어주신 좋은 영상 덕분에...전 그저 기사를 작성하기만 하면 됐습니다.”라고 그들의 노고를 한껏 치켜세워 줄 것이다. 오늘도 전국의 취재현장에서 시청자들에게 가치 있는 뉴스를 전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고 있을 영상취재기자들을 응원하며 그들의 더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                                                                      육군 취재지원장교 소령(진) 김태웅
    2013-10-07
  • 나의 로망, 그랑블루
    나의 로망, 그랑블루                                                         MBN 영상취재1부                                                               조영민 기자   열대의 뜨거운 태양 아래 하늘과 구름 그리고 에머랄드 빛 바닷속 화려한 산호초와 물고기들...누구나 한 번쯤은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이미지는 금방이라도 바닷 속에 뛰어들고 싶은 유혹을 한다. 물속에 두둥실 떠있는 모습과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며 언젠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스쿠버는 수중 자가 호흡기(Self 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의 줄임말로 수중에서 호흡하도록 고안된 장비를 말하며 이 장비를 사용하는 다이빙을 스쿠버 다이빙이라고 한다. 스쿠버는 많은 사람들이 도전해 보고 싶은 아웃도어 활동으로 실제로 많은 촬영 기자들이 즐기고 있는 대표적인 수상레포츠다. 본인은 올겨울 동남아에서 스쿠버를 목표로 실내 풀장 스쿠버다이빙부터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어느 주말, 영상취재부 동료들과 잠실 올림픽파크 잠수 풀장으로 향했다. 풀장에는 여성 다이버들이 더 많았는데 그만큼 어렵지 않고 매력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잠수에 뛰어들기 전 호흡법과 이퀄라이징, 마스크에 들어온 물 빼기 등과 안전 수칙을 숙지해야 한다. 모든 아웃도어 활동이 그렇듯 교육받을 때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기억하라는 것 지킨다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흔히 산소통이라고 부르는 탱크는 공기통이 옳은 표현이다. 산소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숨 쉴 때처럼 질소와 아르곤, 이산화탄소 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인데 호흡을 제대로 내뱉지 않으면 몸속에 질소가 남아 있어 감압병의 원인이 된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호흡에 빨리 적응했고 이어 장비를 갖춰 스쿠버 다이빙에 나섰다. 공기통과 탱크의 공기를 이용하는 부력조절기, 웨이트 벨트, 호흡조절기, 스노클 등을 입고, 쓰고, 메야 한다. 그 무게는 30kg에 육박한다. 마지막으로 부력조절기에 공기를 넣은 후 마스크가 벗겨지지 않도록 손으로 잡고 뛰어들었다. 어릴 때 배운 수영 실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생각보다 중심 잡기는 수월했으나 풀장 깊은 곳으로 조금씩 내려갈수록 귀가 아파왔다. 외부 압력이 증가하면서 고막이 압착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코를 잡아 막고 수시로 불어주면 물속 압력과 같아지면서 고막이 팽창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아픈 증상을 해소할 수 있는데 이를 이퀄라이징이라고 한다.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점차 안정을 되찾자 두려움도 사라지면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 수많은 다이버들을 볼 수 있었다. 5m 바닥에서 제법 몸놀림도 익숙해지고 자유롭게 노닐다가 뽀글뽀글 공기방울을 내뿜으며 바닥을 즐기고 있는데 아쉽게도 강사는 올라갈 시간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처음에는 내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도 않았고 물에 대한 공포심으로 바짝 긴장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물속서 편하게 유영하며 호흡하는 건 상상 이상 놀라운 경험이었다. 수많은 다이버들이 얘기하는 ‘태아가 엄마 배 속을 유영하듯’이라는 표현이 와 닿았다. 겁먹지 않아도 된다. 무언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한 번쯤은 체험해보길 추천한다. 실내 다이빙이 이 정도인데 실제 바닷속 세상은 어떨까. 멈출 수 없는 호기심에 조만간 바다로 떠날 것 같은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201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