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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을 싫어한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100주년 기념 사진전 - 전시기획자 조대연 교수 ...
    1. 전쟁을 싫어한 종군기자 로버트카파 100주년 기념 사진전 1.1. 전시기획자 조대연 교수 인터뷰 프랑스 통신원 최효진 올해에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국내외에서 많은 행사가 열렸다. 스페인 내전을 비롯해 20세기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전쟁을 취재했던 종군기자 “로버트카파 100주년 기념전”도 그 중 하나이다. 비록 로버트 카파가 한국전쟁을 취재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보여준 종군기자의 흔적은 정전 60주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는 개막 2주 만에 관람객 만 명을 넘기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 전시 기획 총 감독을 맡은 조대연 교수 (광주대 사진영상학과)를 만나봤다. 뉴욕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ICP) 소장 작품이 직접 한국에 왔다는 점이 특별한 것 같은데, 이번 전시를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사실, 이번 전시가 국내 최초의 ICP작품 소장전이라는 점은 기존 사진전과 차별성을 갖는 부분이다. 사진 작품에서는 최종 인화를 누가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ICP에는 로버트 카파의 동생인 코넬 카파가 직접 선택하고 프린트한 작품들이 900여 점이 넘는다. 이 중 160점이 우리 전시에 선정된 것이니 특별한 것은 맞다. 하지만, ICP측과 기획 단계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우리가 ICP측에 카파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한국에도 전시를 하고 싶다고 연락했을 때, ICP측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왜 우리 작품을 전시하려고 하느냐, 보통 사진전시나 출판 등을 하려면 매그넘(MAGNUM: 로버트 카파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국제 보도사진 작가 그룹) 에이전트에 연락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매그넘보다는 ICP측이 더 많은, 더 좋은 카파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어 작품 선택의 폭이 넓었고, 어떤 의미에서 매그넘보다는 더 전통성을 가진 파트너 같았다. 작품 대여 등 비용 면에서도 ICP와 작업하는 쪽이 더 많은 예산을 필요로 했지만, 전시될 작품 수준을 고려해서 ICP측과 작업하도록 노력했다. ICP 수석 큐레이터였던 크리스토퍼 필립스도 이번 전시를 직접 보고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자기네들이 직접 핸들링해서 진행하는 기획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처음부터 한국 전시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개막이 되고 보니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개최했던 사진전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고 했다. 로버트 카파 사진이 실렸던 라이프 잡지라든지, 카파의 일대기를 소개한 다큐멘터리 영상,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전시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뉴욕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ICP)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사진박물관, 학교, 연구센터. 1974년 로버트 카파의 동생이자 보도사진의 선구자인 코넬 카파가 설립했다. 뉴욕 국제사진센터는 보도사진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강조한 점은 어떤 부분인가? 1913년생인 로버트 카파는 스페인 내전(1936), 2차 세계대전 (1941-1945), 제1차 중동전쟁 (1948), 인도차이나 전쟁 (1954) 등을 취재하며 어떻게 보면 전쟁 사진의 역사를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종군기자로서의 로버트 카파를 넘어,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을 사진가로 살다 간 카파의 일대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로버트 카파가 전쟁사진가였기 때문에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적지 않지만, 그와 함께 그가 사진기 셔터를 누르면서 보여주고자 했던 휴머니즘이 담겨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작품들도 많다. 또, 로버트 카파는 친화력이 굉장히 좋았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람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술 한잔 같이 마셔보면, 누구든 그를 좋은 친구로 생각하게 될 정도란다. 보통 카파와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글을 쓰던 작가나 화가, 기자들을 친구로 두곤 했다. 이번 전시에도 피카소, 마티스, 잉그리드 버그만,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등 카파와 친하게 지냈던 역사적 인물들의 사진들도 많다. 잘생긴 외모와 친화력덕분인지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좋았다고.. 특히, 카파의 첫 사랑이자 스페인 내전을 함께 취재한 게르다 타로와의 러브스토리라든지, 본인은 사진기자로서 가족을 만들면 안 되는 운명이라며 당대 최고 배우였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혼을 뿌리친 보헤미안으로서의 로버트 카파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전시된 작품 중 전쟁 중에 촬영한 피난민 사진 등을 보면, 로버트 카파가 그들하고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에 사진기 셔터를 눌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30~50년대 그가 활동했던 시대를 생생하게 전하는 사진들이 꽤 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친화력이 현장에서는 취재원들과 가까워지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이다. 촬영기자들도 그렇고, 사진가로서 그런 태도는 기본이다. 카파처럼 취재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 그들과 친해지고자 하는 노력, 또 취재 현장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면 더 깊이 있는 취재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뉴스란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실 그대로를 왜곡 없이 카메라에 담고, 보도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사건을 이슈화시키고, 보도사진/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리액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감성을 담는 것도 중요하다. 솔직히, 카파가 남겨놓은 사진을 보면, 일단 흑백이기도 하고 그다지 화려한 사진들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같은 대상을 지금 찍으면 기술도 더 좋고, 기계가 더 좋아져서 훨씬 더 잘 찍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파의 사진들을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동은 그 사람이 활동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촬영기자들이 후배로서 특별히 배울 점이 있을지? 사실 로버트 카파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사진과 영상의 구분이 특별히 없었다. 영화 산업이 한창이던 시대였고 카파도 사진가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를 찍기도 했다. 카파가 활동했던 시대에 사진 매체는 오늘날의 SNS와 같은 것이었다. 사진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전쟁 현장에서 사람이 총 맞아 죽는 현장을 말 그대로 생생히 보여주게 됐다. 라이프 등 각종 잡지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참상을 바로 업데이트 할 수 있었고, 현장에 있던 카파 같은 사진가들이 들었던 사진기는 잡지 구독자들의 눈을 대신해서 현장을 먼저 본 것이다. 그런 게 저널리즘 아닌가? 오늘날과 같이 사진 저널리즘이 위기인 시대에 40여 년 전 카파가 남긴 보도사진들을 보며, 지금 우리가 남기는 사진과 영상이 수십 년 후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로버트 카파 약력) 1913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본명 : 앙드레 프리드만) 1932 독일 베를린 사진 에이전시 데포트의 암실 조수로 취직. 레옹 트로츠키 연설을 촬영하며 사진기자로서 데뷔. 1933 히틀러 독재 정치가 시작되면서 유대인 박해를 피해 파리로 이동. 1935 ‘로버트 카파’라는 이름으로 사진 판매하기 시작. 1937 스페인 내전 취재 중 연인 게르다 타로 사망 이후 본격적으로 종군기자 활동 시작.      당시 신생잡지였던 라이프 지의 프리랜서로 활동.      헤밍웨이 등과 함께 스페인 내전 취재. 1938 중일전쟁 취재. “400만”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네덜란드 영화제작자 요리스 이벤스와 함께 작업.   1941-1945 제2차 세계대전 유럽전선 취재.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군 부대 동행 취재. 당시 촬영에 쓰인 100여 장의 필름들 중 암실 조수의 실수로 단 열 장만 건짐. 1947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빗 시무어, 조지 로저, 윌리엄 벤디버트 등 동료 사진가들 과 연합 에이전시 매그넘 설립. 1948 제1차 중동전쟁. 텔 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선언 취재. 1954 일본 신생잡지 ‘카메라 마이니치’ 초청으로 3주간 일본 체류 중 ‘라이프’지 의뢰에 따라 프랑스에 대항하는 베트남 독립운동 취재 차 인도차이나로 이동. 남딘에서 타이빈으로 향하는 수송차량이 잠시 멈췄을 때 지뢰 밟고 사망. 1955 라이프 지와 미국 전쟁기자단체가 ‘로버트카파상’ 제정 1974 동생 코넬 카파, 형의 기록과 추억을 보존하기 위해 뉴욕에 ICP 건립. 전시작품 설명 첨부 사진 설명 : ① 공습경보가 울릴 때, 피난처를 향해 달리는 엄마와 딸, 스페인 빌바오. ② 카파의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포토저널리즘의 역사상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③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에 카파가 촬영한 가장 유명한 사진. 포커스도 맞지 않고 상당히 흔들린 상태이지만, 오히려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보도사진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④ 이스라엘의 항구도시 하이파에는 매일같이 유럽 각지로부터 수천명씩 유대인들이 도착 했다. 1949년 5~6월 하이파. ⑤ 연합군이 입성하기 전, 독일군과 전쟁을 했던 20명의 10대 전사자들의 장례식장에서 우는 여성들. 이탈리아 나폴리. ⑥ 1938년 12월호 <픽쳐 포스터>에 실린 카파의 모습. ⑦ 다른 스페인 피난민 강제 수용소로 이동되는 스페인 난민들. 프랑스 바르까레.
    2013-10-07
  • 화면 밖 그들의 열정이 빛나기에
                           화면 밖 그들의 열정이 빛나기에 “60여명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습니다.” 스타 배우이면서 자신을 낮추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정적으로 일한 스텝진을 치켜세운 영화배우 황정민의 청룡영화제 수상소감은 모 기업이 광고에도 사용할 만큼 큰 화제가 되었다. 덕분에 대중들은 소수의 주·조연 배우를 지원하는 수많은 스탭들의 땀과 열정이 좋은 영화의 원천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방송뉴스에선 화면에 등장하는 화려한 스튜디오의 앵커와 현장을 누비는 취재기자만을 주인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솔직히 필자도 뉴스 현장에서 기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취재지원장교로 근무할 기회가 없었다면 화면 밖에서 활약하는 영상취재기자의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신문과 달리 시청각 자료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송뉴스는 영상이 필수적이다. 짧게는 1분, 길게는 2분가량 되는 한 꼭지의 방송뉴스에서 앵커와 취재기자가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은 불과 10여초. 그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영상이 내용을 대신한다. 그만큼 영상취재기자가 얼마나 가치 있는 영상을 촬영하는지가 그 날 뉴스의 성패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현실을 시청자가 그대로 보고 듣고 재구성해 이해한다고 생각하면 그 중요성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보다 생생한 영상을 전하기 위해 취재현장을 동분서주하는 영상취재기자, 화면 밖 보이지 않는 그들의 열정과 프로정신은 좋은 뉴스를 만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취재현장에서 만난 영상취재기자들은 흡사 전투에 임하는 군인과도 같았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던 영하 15도 혹한의 날씨에도 특전사 요원과 함께 얼음을 깨고 들어가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아프리카 남수단의 불볕더위에서도 15kg에 육박하는 카메라를 들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달려가며, 10미터가 넘는 전망대 사다리를 수차례 올라가는 그들의 눈빛에는 오로지 좋은 영상을 촬영하겠다는 갈망뿐이었다. 목표를 향해 돌격하는 용사처럼 한 치의 망설임과 주저함도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오해도 있었다. 왜 짧은 영상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낭비할까? 별다른 차이도 없는데 왜 다시 찍을까? 현장에서 취재를 지원하는 동안 수십 초가량의 짧은 영상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더 좋은 장면을 얻기 위해 반복촬영을 하거나하면 솔직히 짜증이 났다. 육군의 활동상을 홍보해주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며 땀 흘리고 있는 기자에게“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만하고 돌아갑시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들의 열정이 그저 단순한 집착으로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최전방 GOP 야간경계근무 취재지원을 마치고 피곤해하는 필자에게“우리는 발로 뛰고 눈을 통해 세상을 보여준다. 피곤하지만 장병들의 멋진 모습을 담아서 기분이 좋다”라고 말하는 모 매체 기자의 말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취재기자를 현장에서 돕는 장교로서 이들 못지않은 프로정신을 가져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누구보다 취재현장의 특징과 촬영내용을 잘 알고 있는 책임자로서 더 좋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영상취재기자들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영상취재기자들과 함께 땀 흘리며 호흡했던 현장 장면이 뉴스에 나오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짧은 뉴스지만 그들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걸 알기에 가끔은 기사의 내용보다는 영상에 더 집중할 때도 있다. 또 취재기자만 보고 뉴스를 평가하는 지인에겐“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뛰어다닌 영상취재기자들이 있다”고 괜히 흥분하기도 한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영상취재기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응원하고 싶다.   기자들도 배우처럼‘이달의 기자상’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상을 받고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필자가 방송기자로 취재부문에서 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배우 황정민의 소감을 빌려“영상취재기자분들이 만들어주신 좋은 영상 덕분에...전 그저 기사를 작성하기만 하면 됐습니다.”라고 그들의 노고를 한껏 치켜세워 줄 것이다. 오늘도 전국의 취재현장에서 시청자들에게 가치 있는 뉴스를 전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고 있을 영상취재기자들을 응원하며 그들의 더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                                                                      육군 취재지원장교 소령(진) 김태웅
    2013-10-07
  • 나의 로망, 그랑블루
    나의 로망, 그랑블루                                                         MBN 영상취재1부                                                               조영민 기자   열대의 뜨거운 태양 아래 하늘과 구름 그리고 에머랄드 빛 바닷속 화려한 산호초와 물고기들...누구나 한 번쯤은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이미지는 금방이라도 바닷 속에 뛰어들고 싶은 유혹을 한다. 물속에 두둥실 떠있는 모습과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며 언젠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스쿠버는 수중 자가 호흡기(Self 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의 줄임말로 수중에서 호흡하도록 고안된 장비를 말하며 이 장비를 사용하는 다이빙을 스쿠버 다이빙이라고 한다. 스쿠버는 많은 사람들이 도전해 보고 싶은 아웃도어 활동으로 실제로 많은 촬영 기자들이 즐기고 있는 대표적인 수상레포츠다. 본인은 올겨울 동남아에서 스쿠버를 목표로 실내 풀장 스쿠버다이빙부터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어느 주말, 영상취재부 동료들과 잠실 올림픽파크 잠수 풀장으로 향했다. 풀장에는 여성 다이버들이 더 많았는데 그만큼 어렵지 않고 매력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잠수에 뛰어들기 전 호흡법과 이퀄라이징, 마스크에 들어온 물 빼기 등과 안전 수칙을 숙지해야 한다. 모든 아웃도어 활동이 그렇듯 교육받을 때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기억하라는 것 지킨다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흔히 산소통이라고 부르는 탱크는 공기통이 옳은 표현이다. 산소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숨 쉴 때처럼 질소와 아르곤, 이산화탄소 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인데 호흡을 제대로 내뱉지 않으면 몸속에 질소가 남아 있어 감압병의 원인이 된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호흡에 빨리 적응했고 이어 장비를 갖춰 스쿠버 다이빙에 나섰다. 공기통과 탱크의 공기를 이용하는 부력조절기, 웨이트 벨트, 호흡조절기, 스노클 등을 입고, 쓰고, 메야 한다. 그 무게는 30kg에 육박한다. 마지막으로 부력조절기에 공기를 넣은 후 마스크가 벗겨지지 않도록 손으로 잡고 뛰어들었다. 어릴 때 배운 수영 실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생각보다 중심 잡기는 수월했으나 풀장 깊은 곳으로 조금씩 내려갈수록 귀가 아파왔다. 외부 압력이 증가하면서 고막이 압착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코를 잡아 막고 수시로 불어주면 물속 압력과 같아지면서 고막이 팽창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아픈 증상을 해소할 수 있는데 이를 이퀄라이징이라고 한다.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점차 안정을 되찾자 두려움도 사라지면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 수많은 다이버들을 볼 수 있었다. 5m 바닥에서 제법 몸놀림도 익숙해지고 자유롭게 노닐다가 뽀글뽀글 공기방울을 내뿜으며 바닥을 즐기고 있는데 아쉽게도 강사는 올라갈 시간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처음에는 내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도 않았고 물에 대한 공포심으로 바짝 긴장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물속서 편하게 유영하며 호흡하는 건 상상 이상 놀라운 경험이었다. 수많은 다이버들이 얘기하는 ‘태아가 엄마 배 속을 유영하듯’이라는 표현이 와 닿았다. 겁먹지 않아도 된다. 무언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한 번쯤은 체험해보길 추천한다. 실내 다이빙이 이 정도인데 실제 바닷속 세상은 어떨까. 멈출 수 없는 호기심에 조만간 바다로 떠날 것 같은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2013-10-07
  • 라나 플라자 붕괴 그 후 …
    라나 플라자 붕괴 그 후... 방글라데시의 8월은 무더웠다. ‘가난한 나라를 꼽으라고 하면 늘 손에 꼽히는 나라. 그렇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높은 나라.’ 방글라데시에 대해 딱 이정도만 알고 간 출장이었다. 다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휘감는 습한 기운은 비행으로 지친 몸을 더욱 무겁게 눌렀다. 지난 4월,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가 붕괴 되었다. 라나플라자는 세계 유명브랜드의 의류를 만들던 공장들이 모여 있는 건물이었다. 한순간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당시 근무하던 1149명의 노동자들이 숨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인재(人災)였다. 사고 4개월 후 찾은 라나플라자 사고 관련 희생자 유족과 부상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깨를 누르던 그 어떤 것은 바로 방글라데시의 습한 기운이 아닌 이번 취재의 주제였다. 내가 제일하기 싫은 취재, 바로 사고 유가족 취재다. 사고 후 4개월여 남짓 지났지만 당사자들의 상처가 아물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 그들의 설 아문 상처를 헤집고 취재할 수 있을까?. 븡괴 현장은 상당히 정리가 되어있었지만, 아직 가시지 않는 역한 냄새와 함께 실종자를 찾기 위해 몇몇의 사람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 취재를 시작하자 카메라를 본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몰리기 시작했고, 하나둘씩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 하지만 가슴으로는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내 딸을 찾아주세요.”, “내 아내를 찾아주세요.” 타국에서 온 하얀 얼굴의 취재진에게 유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울부짖었다. 낙후된 의료시설 탓에 치료보다는 신체의 일부를 절단해야 했던, 평생을 사고의 트라우마를안고 살아가야하는 사고의 당사자들은 적절한 보상 없는 지금의 시간을 절망과 함께 보내고 있었다. 붕괴사고 이후 국제사회의 손길이 이어졌고, 방글라데시에 하청을 준 유명 의류업체들은 사고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4개월이나 지났지만 사고의 당사자들과 유가족의 손에는 보상금이 아닌 눈물 닦은 천 쪼가리뿐 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심한나라. 피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금은 다른 힘 있는 누군가의 지갑을 채워줬을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의 삶은 구걸이 되었고, 건강하게 재봉틀을 돌리던 누구는 손을 잃은 채 밤새 천장이 무너지는 악몽 속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늘어가고 또 늘어가고 있지만 이런 상황의 근원적인 대책인 노동 환경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단기적인 보상금만 있을 뿐 장기적인 의류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서구의 의류 브랜드들은 가격 단가를 낮추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고, 의류산업을 국부로 인식하는 정부는 외화가 빠져나갈까 노동자들의 인권에 침묵하고 있다. 취재를 하는 동안 열악한 노동환경에 안타까워하고, 또한 이들에 침묵하는 해외의류업체와 방글라데시 정부에 함께 분노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우린 그들의 상황을 더하거나 덜함 없이 카메라에 담아갈 뿐이었다.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방글라데시에서 담아온 것들을 조심스레 풀어놓을 때가 되었다. 하나하나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끌어낸 상처임을 알기 때문이다.
    2013-10-07
  • 8일간의 기록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
    8일간의 기록 ? 통합진보당 이석기의원 사태 사과부터 해야겠다.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란음모 혐의로 통합진보당 이석기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작된 이후, 8일 동안 국회 의원회관 복도를 지켰다. 복도는 국정원, 통진당, 취재진이 어울려 어지러운 보도의 협주곡을 연주하는 콘서트 홀이었다. 어느 새벽, 밤샘 야근에 지쳐 의자에 눕다시피 하다 인기척에 눈을 떴다. 퀭하니 초점은 잃었지만, 눈 앞에 어른거리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석기 의원이다. 그가 말쑥한 차림새와 당당한 걸음으로 의원실에 들어가며 문 앞 의자에 앉아 널브러진 나를 굽어보며 지나갔다. 부리나케 일어나 촬영의 시늉을 내보지만, 상황은 낯뜨거웠다. 카메라 전원만 겨우 켰다. 그렇게 이석기의원 사태는 그 날 그의 걸음처럼 느닷없이 국회를 강타했다. 예고 따위는 드라마의 몫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해 지난 8월 28일 아침 일찍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오전 6시 30분부터 통합진보당 주요 인사들과 이의원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작된 것이다. 뉴스영상의 민낯이 가공 없이 보도되었다. ‘내란’ ‘전쟁’ ‘총’ ‘비비탄’ 등 선정적인 단어가 둥둥 떠다녔다. 언론의 헤드라인은 언제나 이의원이 열었다. 시간이 갈수록 주장과 의혹은 늘어 갔다. 압수수색 ? 구속영장 청구- 녹취록 공개- 체포동의안 ? 구인영장으로 디뎌지던 징검다리와도 같았던 사건 속에 쉼표는 없었다. 정국은 시계제로의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국회는 정치적 석기시대로 무릇, 거친 몸의 언어가 횡행하는 곳으로 변해갔다.   이석기 의원이 머무는 국회. 국회카메라기자실은 밤낮이 없었다. 통합진보당은 국회3진의 출입처이건만, 5명으로 24시간 의원실 취재와 국외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커버하기란 녹록치 않았다. 예고 없는 집무실 앞 브리핑, 정론관 기자회견, 통진당원 결의대회, 이정희 대표 단식… 무엇보다 이의원 움직이는 발길을 추적하기란 여간 험난한 게 아니었다. 보도전문채널과 종합편성채널들이 tvU를 동원한 실시간 중계 앞에서 여유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되어왔다. 이의원의 얼굴이 강한 메시지가 되었고, 그의 행적에 국민의 시선이 쏠려있었다. 카메라는 보도에 냉혹한 감시의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의원이 국회에 온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중계되었고, 녹화되었다. 사각지대는 없고, 쉬는 시간도 없다. 8일간의 국회는 더디고 복잡했지만, 서서히 들끓어 오르는 용광로 같았다. 국정원과 검찰의 공식 설명도 없는 출처미상의 불분명한 언론보도는 무성했다. 하필이면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에 사건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국면전환용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내란음모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라는 상식적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9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여야 의원들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86.6%의 찬성으로 체포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더 이상 이석기의원의 손을 잡지 않았다. 국정원과 통합진보당과의 난장판 같은 거친 몸싸움을 끝으로 그는 저녁 무렵 국회를 떠났다. 이석기 의원은 자신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와 관련 철저히 사상검증, 마녀사냥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게 말할 권리만큼은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는 볼테르의 오래된 경구를 인용했다. 사상의 자유를 주장한 것이다.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으면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사실과 증거에 충실한 판단, 절차적 정의에 따를 수사와 재판이 필요한 시점에 치밀어 오르는 궁금을 억누르지 못했다. 친분이 있던 통합진보당 관계자에게 직구로 물었다. “사실이야?”  “왜 그래, 믿어줘” 임우식 / SBS 영상취재팀
    2013-10-07
  • 한국방송 카메라기자협회 직업체험
    한국방송 카메라기자협회 체험 소감문    나는 평소 언론과 방송 분야에 관심이 많고, 어느 평범한 고등학생과 다름 없이 진로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하는 고등학생이다. 내가 막상 고등학생이 되어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진로를 구체적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그 직업에 관한 여러 직업인들과의 만남과 체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학기 중에 공부 이외의 시간을 내기는 부담스러워서 직업체험을 할 기회가 없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한국방송 카메라 기자협회에서 인턴 형식으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첫날 협회 건물에 들어가 카메라 기자 협회를 찾기 위해 안내판을 보는 데 협회 분야들이 매우 세분화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15층 사무실에 들어가자 마자 회사 사무실에 처음 들어가보는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시는 국장님들과 직원들이 계셨다. 이곳에서 나는 편집기술과 방송기기를 직접 만져 보고 조작도 해 볼 수 있었다. 편집은 비교적 수월하게 금방 배워 마우스로 조작할 수 있었다. 실제 취재현장에서 쓰이는 카메라를 들고 조작해 보았는데 카메라가 너무 무거워서 한쪽 어깨에 걸치고 손으로 조작을 해야 하는 것은 많은 기술을 요하는 일이며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런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려는 카메라 기자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줌인, 줌 아웃을 해보고 여러 샷들로 촬영 기술도 실행해 보았다. 내가 평소 써왔던 카메라와는 역시 다르게 매우 선명하였다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면 방송용 카메라도 점점 가벼워질 것이고 다른 직업보다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흔하지 않다던 여자카메라기자가 많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른 날은 국장님에게서 방송언어, 촬영 기술, 초상권에 관련된 것 등 영상과 방송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을 배웠다.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것이니만큼 배울 것도 많고 주의해야 할 것도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은 방송국 체험을 하였다. 직업체험 하는 것을 도와주시는 국장님을 따라 방송국 안에서 실제 촬영하여 시청자들에게 보내는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국장님처럼 기자들도 사건에 관해 논평을 하러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만약 기자가 된다면 저렇게 국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방송에 출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았다.   방송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맡은 직종에 따른 다양한 분야가 있다. 각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기획하고 제작할 때 좋은 프로그램도 탄생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더불어 뉴스 제작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의 결실로 방송뉴스가 제작되어 방송으로 송출되어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뜨거운 여름 날임에도 불구하고 방송국에 함께 동행하여 직접 견학과 체험을 시켜 주는 모습에서 기자에 대한 직업열정과 정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나도 나중에 개인적인 보람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국민들에게도 공헌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5일간의 체험이었지만 인생에서 ‘가치있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방송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 진로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체험은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고 인생을 깊이있게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진정한 공부이다.  자신이 직접 해보는 경험만큼 좋은 지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의 꿈을 향한 길에서 한 번 경험을 해 본다는 것 즉, 체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만의 경쟁력이 된다. 더운 여름날, 나에게 이런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주신 이정남 국장님, 강송구 국장님, 그리고 카메라기자협회 직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진명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채원
    2013-10-07
  • 한국방송대상 카메라기자상 김용모 기자를 만나다
    제40회 한국방송대상 카메라기자상을 수상한 김용모기자 수상 소감 한마디 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습니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수상을 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작년과 제작년에도 KBS가 수상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 있을 수상은 아마 타사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가장 고맙고, 동료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취재가 있다면... 사실상 단연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은 제가 3년 동안 도맡아서 한 시사기획 창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매번 취재를 나가지만 기억에 남는 취재가 새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최근의 취재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중 가습기 살균제에 관련된 프로였습니다. 색감조절을 화려하게 한 것도 아니었고 카메라 워킹을 현란하게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ENG카메라로 평범히 찍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 작품을 촬영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습기는 내부의 살균제를 넣어 정화작용을 통해 깨끗해지기는 하지만 미생물이 번식을 하면서 증기로 배출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폐질환을 유도한다는 내용의 다큐였습니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여 127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목숨을 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유아와 산모들이었습니다.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은 폐 이식 수술환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여 가습기를 아이들에게 방향을 틀어주던 부모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영 유아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영상을 취재하면서 저 또한 부모 된 입장으로서 구구절절했던 부모들의 사연이 저까지 가슴을 울렸습니다. 항상 취재를 할 때는 담담한 시선으로 해야 함이 당연한 원칙이고 지켜야할 룰이지만 그 취재를 할 때는 저도 모르게 영상 속에 제 감정이 이입되는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더욱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영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취재를 할 때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립적인 영상을 촬영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가끔은 감정에 충실 하는 것도 좋은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 두 달 전부터 KBS 카메라 기자들끼리 자체적으로 뉴스영상포럼을 만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보도영상의 발전방향과 더불어 더 나은 영상취재를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함입니다. 6개의 프로젝트 분과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포럼을 운영 중입니다. 급변하는 영상기술발전 속에서 개인의 노력과 공부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야 합니다. 이론적 요소로도 접근해보고 선험적 요소로도 접근을 해보면서 영상취재의 발전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요가 되기보단 자발적인 공부가 필요합니다. 또한, 발전하는 카메라 영상기술 속에서 본인이 주도적으로 카메라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안주하는 편협되고 폐쇄적인 마인드는 버려야 합니다.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미디어매체와 발걸음을 나란히 해야하며  유튜브, 비메오 등을 통해 아마추어 UCC 유저들에게서도 배울 수 있는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오히려 비전문가들이 어떠한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더 나은 점이 있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습니다.  메모리방식과 포맷이 다양해지는 카메라기술 속에 우리 카메라기자들도 긴장을 풀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메라기자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나태해지지 않고 시대에 발맞추어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라는 말을 꼭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협회에 바라는 점? 협회가 서울시에 있는 국내 대학과 협약을 맺어 대학원 과정을 밟는 제도가 있었으면 합니다. 기회의 장이 있다면 카메라기자들도 대학원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또, 얼마 전에 서울대 보도영상세미나에 참석을 한 적이 있었는데 JTBC 카메라기자가 세미나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협회가 나서서 그런 세미나에 도움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건의하고 싶습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대학생들에게 보도영상과 관련해서 강의도 할 수 있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배울 수도 있는 입장에서 대학원과 협약을 맺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기회라도 협회에서 추진하여서 알아봐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3-10-02
  • 보도영상 부문 폐지 1년을 돌아본다
    <보도영상 부문 폐지 1년을 돌아본다.> 뉴스제작의 중요한 한축을 담당하던 보도영상 부문이 폐지된 지 1년이 되었다. 개국 후 반세기동안 국내외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을 기록하고 전사적 영상저널리즘을 담당하던 부문이 민주적 절차나 사전논의도 없이 없어진 기형적 구조 속에서도 영상취재기자들은 뉴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왔다. 그러나 지난 1년은 뉴스 영상의 경쟁력과 인력 운영 면에서 심각한 구조적 모순을 드러냈다. 인력의 분산은 운영뿐 아니라 직원의 사기와 신뢰, 재교육과 체력적 관리 등 모든 영역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파편화된 운영체제는 전국적이고 규모가 커진 아이템의 영상취재에 취약하고 이와 더불어 컨트롤 타워가 없는 문제는 부서간의 사각지대와 중복지대를 만듦으로서, 규모가 큰 방송사의 경쟁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최근 미디어산업은 물론이거니와 시대전체가 감정을 중심으로 하는 이모셔노믹스의 시대를 향해 가는데 비해, 우리의 뉴스는 비주얼전문가집단을 스스로 배제함으로써 TV매체시청의 기본적 토대가 되는 어트랙션에 대한 고민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있다. 뉴스의 기본은 현장이며 우리나라의 방송뉴스는 현장성을 근간으로 발전하여 왔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덧붙여 방송은 그 시작부터 미학적 매력에 소구한다는 점, 다시 말해 눈높이가 높아진 영상문화 시대에, 구성과 표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전문가의 운용방안에 대한 고민을 배제하면서 우리 스스로 뉴스의 경쟁력을 포기하고 있지 않은가 잘 판단해 보기 바란다. 특히 최근 급증하는 새로운 영상기기의 등장과 시청자들의 높아진 미학적 윤리적 안목은 공영방송의 영상취재기자들에게 재교육의 필요성을 수없이 역설하고 있는데 비해 각 부서에 분산 배치되어 있는 현재의 구조는 통합적인 장비운용과 재교육에 전혀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회사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조직모델이다. 미디어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구시대적 모델을 탈피하지 못했던 미디어기업들은 침몰하고 있고, 다양한 대안미디어들도 급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상부문을 더욱 전문화, 체계화 시키는 방안들에 대한 참여적 토론과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소 통이 안 되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흘러가고 있다. 신뢰가 높아지면 업무 속도가 빨라진다는 속도의 법칙이나, 최근 선도 혁신 기업들이 생산성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직원들의 사기 관리에 주목할 때, 지금 회사가 직원들에게 어떤 프레임을 대고 있는지 경영진은 충분히 고려해보기를 바란다. 기업혁신, 상호보완적 팀워크, 다양한 생존전략의 모색 모두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경쟁력 있는 영상부문의 재건이다. 우리의 자부심과 보람은 최고의 미디어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우리의 아이가 부끄러워하는 이류기업, 우리의 부모가 만족하지 못하는 회사로 추락하는 것을 눈뜨고 볼 수만 없다. 우리의 현재적 위상은 우리가 우리의 땀으로 쌓아올린 신뢰와 팀워크, 그리고 축적된 역량이 만들어낸 최고의 회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회사의 위상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모두의 것이다. 회사의 결단을 촉구한다. 2013년 8월 17일 영상기자회, 기자회
    2013-08-22
  •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 촉구 서명운동 - YTN 해직기자, 국토 순례 대장정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 촉구 서명운동 YTN 해직기자, 국토 순례 대장정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이중우)와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술인연합회, 아나운서연합회, PD연합회가 지난 달 19일부터 해직 언론인 복직 촉구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방송현업 단체의 서명 운동으로 해직 언론인에 대한 복직에 대한 여론이 점화되기 바라고 있다. 방송현업단체들은 지난달 17일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하며'라는 성명을 내어 "MBC 동료들은 1년, YTN 동료들은 4년 8개월이 넘게 일터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동료들의 복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또한, "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공정 방송하자고 요구한 것이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라며 "이런 일이 벌어지는 나라를 '언론 자유 국가'로 볼 수 없다. 우리 동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고 힘을 보태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업단체들은 성명에서 "가족의 눈물과 한숨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우리를 대신해 희생한 동료들을 잊는다는 것은 방송언론인으로서 정체성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명운동은 5개 단체 회원 1만 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오는 7월17일까지 서명이 가능하다. 취합된 서명 자료는 해직 언론인 복직을 촉구하는 자료로 관계기관에 제출될 예정이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MBC 영상취재 부문의 원상 회복을 촉구하는 서명도 함께 받고 있다. 서명지는 협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하며 각 분회별 서명 후 협회 사무처에 우편으로 제출해야 한다. 한편, 5년 전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며 공정 방송을 위해 거리에 나섰던 YTN 해직 기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권석재 노종면 우장균 정유신 조승호 등 YTN 해직기자들은 지난 달 10일 서울 YTN 사옥 앞에서 '해직 5년을 걷는다'로 명명된 출정식을 하고 3주간 천 리 길을 순례하는 국토 순례 대장정에 올랐다. 'YTN 해직기자들은 지난달 7일 출정사에서 "우리는 반성의 땀을 흘리며 그 곳에 다다라 우리가 YTN의 기자로 복귀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마음에 새길 것"이라고 밝혔다. 출정식을 마친 YTN해직기자들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과 내곡동 사저 부지를 통과하여 서울을 떠났고 해직 기자들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유성기업, 광주 5·18 묘역, 제주 강정마을, 진주의료원, 밀양 송전탑, 울산 현대자동차 송전탑을 거쳐 420km를 걸어서 서울로 돌아왔다. 특히 이들은 부당하게 핍박을 받고도 언론이 외면한 상처의 땅, 언론의 왜곡으로 진실이 가려진 현장을 대장정 순례 코스로 잡았다고 밝혔다. 420km, 19일간의 대장정, 국토순례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달 28일, YTN 정문 앞에서는 순례단을 마중나온 조합원들이 해직 동료들과의 감격적인 포옹으로 뜨거운 환영식을 열었다. YTN 노종면 해직기자는“후배 기자들이 터뜨린 박 속에서 '이제는 우리가 걸을게요'라는 글귀가 등장하는 순간, 들뜬 반가움 속에서도 굳은 의지와 책임감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YTN 도착 전 여의도에서 타 언론사 동료들과 함께 언론 공정성 회복의 의지를 다지는 집회에 참석했고, 언론 독립의 당위성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한국일보를 방문해 한국일보 기자들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팔당에서 서울 한강변까지 진입하는 밤샘 행군에는 시민과 언론인 50여 명이 함께 했고, 여의도에서 YTN까지 오는 길은 백여 명이 함께 걸었다.
    2013-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