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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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참혹했던 베트남 쓸개즙 관광
     “찍지 마세요.”  마취된 채 끌려온 곰 앞에서 농장 주인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 망했다. 어떡하지.’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옷을 잔뜩 껴입고 출근한 어느 날.“따뜻한 동남아. 좋겠네. 잘 다녀와.”영문을 몰라 멍하게 있으니 선배가 출장이 잡혔다고 설명해주신다. 베트남 곰 사육농장에서  패키지관광객들에게 불법으로 곰 쓸개즙을 판매하고 있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웅담을 채취해 구매자들의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저는 관광객인가요?” 선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며칠 후 청주공항. 취재기자와 나는 편한 복장과 소품들로 관광객처럼 위장했다. 그런데 아뿔싸. 패키지 관광객들 대부분이 부모님 연배였다. 난감했다. 인솔자나 가이드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정체를 눈치채면 취재가 엎어질 수도 있었다.‘어떻게 그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까?’   일단 넉살좋은 이미지로 인솔자와 가이드는 물론 관광객들과도 친해지기로 했다. 짐도 들어드리고 식사시간에 반주도 같이 하면서 낯을 익혔다.“근데 젊은이들 둘이 어쩐 일이래? 뭐하는 청년들이랴?”“저는 사표내고 사업하려고 준비 중이고 이 친구는 국회 공무원이에요.” 취재기자는 그렇게 건실한 청년이 되어가고 나는 일개 백수가 되어갔다. 하지만 그로인해 의심의 눈초리를 많이 걷어낼 수 있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베트남 하롱베이에 도착한 우리들은 취재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단 한 번밖에 없는 곰 쓸개즙 쇼핑을 준비했다. 사진촬영 정도는 가능하다는 취재원의 얘기를 듣고 준비한 DSLR, 몰래카메라, 휴대폰 등 의심을 사지 않고 취재할 수 있는 것을 고화질 순서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취재기자와 상황에 맞게 위치를 나눠 다양한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어두워. 하나도 안 보여. 클로즈업을 못 찍겠어.” 곰 농장에 들어서니 줄지어 늘어선 쇠창살들이 보였다. 희미한 백열등에 곰이라는 형체만 가까스로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곰 눈과 손을 아주 큼지막하게 찍으려고 노력했지만 DSLR LCD와 뷰파인더엔 거무스름한 형체만 보일 뿐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농장 주인은 우리를 허름한 건물로 끌고 들어갔다. 관광객들을 의자에 앉힌 농장 주인은 곰 쓸개의 효능을 온갖 의학용어들을 동원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 아시죠? 고엽제도 아시겠네요? 베트남에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을 치료하는 아주 특효약이 바로 곰 쓸개즙입니다. 웅담의 주성분인 우루소데옥시콜린 산이라는 성분은 골수에 쌓인 약기운을 제거하고....”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몰입해서 듣고 계셨다.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마취된 곰이 들어왔다. 키가 2미터가 족히 넘을 듯한 곰이 수레에 누워 가냘픈 숨만 쉬고 있었다. 그 때 바로 옆에 앉아계시던 아저씨의 카메라에서 스트로보가 번쩍 터졌다. “찍지 마세요. 사진기 뺏길 수도 있어요. 한국 가서 인터넷에 올려서 보신 관광이 어떠니...” 신경질적인 농장주인의 반응에 농장 직원들도 덩달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목에 걸고 있던 DSLR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며 주의를 주고 휴대폰을 만지는 것도 유심히 쳐다봤다.   취재기자와 나는 눈으로 대화하며 DSLR을 목에 걸고 촬영하는 일과 가지고 간 몰래카메라로 효과음과 곰 쓸개즙 채취 장면을 취재하는 일로 역할을 나눴다. 농장 직원들은 이런 방식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주사바늘을 찔러 쓸개즙을 뽑아내고 있었다. 쓸개즙을 뽑아내는 장면, 채취한 쓸개즙을 나눠 마시는 장면, 판매하는 장면 등을 모두 취재하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사히 취재를 마치고나서 출장 장비들을 정리하며 느낀 몇 가지를 노트에 기록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상황을 상상해서 취재장비를 구성하고 우발 상황에 대한 플랜B를 준비하고 있어야 된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DSLR과 휴대폰을 WI-FI로 연동하는 방법으로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DSLR의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휴대폰 화면만 보면서 촬영할 수 있었기에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 이와 같은 취재현장에서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노트를 덮으며 다음엔 또 어떤 흥미진진한 출장이 기다리고 있을 지 생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비록 지금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가이드와 농장주의 협박전화는 달갑지 않지만......         김경락 / MBC 사회2부
    2014-03-20
  • 초보 카메라기자의 제주 적응기
            서울 촌놈 제주로 이직하다   나는 작년에 처음으로 제주 땅을 밟았다. 여행으로라도 한번쯤 다녀왔을 법도 한데 서른이 넘도록 기회가 닿지 않았다. ‘제주도 한번 못 가봤다’는 말에 ‘서울 촌놈’이라며 친구들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제주에 정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여느 직장인처럼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며 부푼 기대를 안고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마침내 만난 제주는 눈이 부셨다. 일주일간 제주도를 일주하며 아름다운 풍경 하나하나에 시선을 빼앗기고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살면서 매일 이 풍경을 렌즈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제주에 매료된 나는 회사를 옮겨 제주도로 내려오게 되었고, 그렇게 그리던 제주를 매일 카메라로 담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의 제주와 현지인의 제주는 같은 공간의 다른 섬이었다. 관광객의 눈으로 바라본 제주의 쏟아지는 햇살과 아름다운 바다, 야자수가 늘어서있는 휴양지의 느낌과는 거리가 있었다. 제주의 산은 험하고 바다는 사나웠다. 제주는 많은 오름과 척박한 땅, 높은 한라산을 품고 있고, 언제나 바람이 심해 파도가 거칠기 때문이다.   제주에 정착하는 데 첫 단추를 잘 꿰기 위해선 무엇보다 육지와는 다른 제주만의 문화를 이해해야 했다. 제주는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도라고 한다. 화산활동은 제주를 돌이 많은 척박한 땅으로 만들었고,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서 늘 바람의 피해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제주 여인들을 남편 없는 가장으로 만들어 험난한 생활전선으로 내몰았고, 제주 여인들은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밭일을 하는 등 두 몫의 일을 하였다.   또한 4.3이 할퀴고 간 역사의 상처는 긴 생채기를 남긴 채 제주 사회 내에서 보이지 않는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이런 환경, 역사적인 면들이 제주의 문화를 만들었고, 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제주 정착의 어려움제주어를 알아듣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혼디손심엉 벵삭이 웃는 제주. 느영나영 모다들엉 제주를 지꺼지게. "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모두 손잡고 함께 웃는 제주, 너와 내가 모여 제주를 즐겁게하자 라는 뜻이다.  유네스코에서 가장 빠르게 소멸하고 있는 언어로 제주어를 손꼽았고 젊은 사람들은 제주말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추세이다. 그러나 여전히 제주어는 제주 사람들에게 통용되고 있는 말이다. 바람이 많이 불고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제주의 특성상 짧고 빠르게 말해도 의미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지금의 제주어가 되었다고 한다. 시골에서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할 때에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 속사포처럼 나왔다. 제주어를 듣고 있자면 내가 외국에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다시 물어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물론 지금도 100%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무슨 얘기구나 하는 정도는 알아듣게 되었으니 그래도 한 10%정도는 제주사람이 된 것 같다. 제주에서의 인상적인 취재아직까지 선배들에 비해 취재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주에서의 가장 인상적인 취재는 눈이 오던 날의 한라산 취재이다. 눈 내리는 한라산은 겨울왕국 그 자체였다.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식물들과 풍경이 나타났고, 윗새오름에 드넓게 펼쳐지는 눈밭 위로 솟아오른 백록담은 구름에 둘러싸여 신령한 느낌마저 주었다. 특히 구상나무에 펼쳐진 상고대는 눈과 바람이 빚어낸 한라산의 보석 같았다. 한라산의 아름다움은 눈과 바람에 맞서기에 충분한 대가를 주었다.   제주도는 마법 같은 곳이다. 인구 60만, 관광객 천 만 시대에 들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에 차있고, 4.3추념일 지정, 지방선거 등등 굵직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적응해야할 부분도 많고 배워야할 것들이 태산 같지만 마법 같은 제주도에서 제주만의 것들을 올곧게 지키는 일들(특히 제주바다 수중취재 등)을 취재하고 싶다. 제주에서 초보 카메라기자가 점점 영글어 알찬 열매를 맺는 모습을 기대해주시길!
    2014-03-20
  • 잠 못 드는 취재 288시간
         수습 취재기자 동기들과 함께 서울지역 경찰서로 투입된 지 3일차, 나는 강남라인 배치 후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두 시간마다 라인 선배에게 특이사항과 경찰서를 돌며 알아낸 정보를 보고한다. 혼자서 ‘형님’이라 불리는 취재원 경찰들과 부딪치며 하루 18시간 이상을 경찰서에서 있게 된다. 현재시간 11시 15분, 보고시간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보고거리를 찾지 못 한 답답한 마음과 긴 밤과 새벽에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송파경찰서 민원실에 앉자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민원인끼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순간 보고 거리가 되겠구나 생각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수첩에 그들의 이야기를 몰래 받아 적기 시작했다.   민원인들의 말에 의하면 20년 전 사기범 잡힌 사건 같았다. 평소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성실한 민 집사는 딱한 사정을 핑계로 사기를 벌였다. 정씨 부부는 피해자에게 자신의 잠실 33평 아파트를 담보로 84년에 8600만 원가량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경찰서에는 가해자의 형을 만나 사기당한 돈을 받기 위한 목적의 자리였다. 나는 84년 즉 공소시효를 1년 남겼다는 피해자의 말에 졸린 기운이 달아나 더 집중하여 듣게 되었다.   가해자 민 씨는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 이름도 바꾸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미국에 피신해 있다가 이름도 바꾸고 미국 시민권으로 들어왔기에 첫 번째 입국 당시 한국에 입국 했을 때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인천공항입국 공소시효를 1년 남긴 시점에 공항 입국 심사대에 설치한 지문인식기로 인해 경찰이 잡아넣은 사건이었다. 그전에 이름을 바꿔 한국에 들어온 적 있었으나 그땐 지문검색이 안되던 시점이었다. 이후 아무 것도 모르던 가해자는 공항 입국 시 지문 인식으로 공항에서 잡혔다고 한다.   이 피해자 말고 다른 사람들도 돈 3000만원 빌려주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가해자의 형이 최대한 다 갚는 쪽으로 하겠다고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의사를 전달하였다. 시간이 걸리지만 갚겠다며 민원실에서 이야기 하던 자리였다.   엿듣다 보니 보고시간을 넘겨 현재 상황까지 대충의 내용을 요약하여 라인 선배에게 보고하고 더 엿듣겠다고 보고했다. 다 엿듣고 모자란 부분을 물어보기 위해 용기 내어 민원인에게 접근하였다. 나의 회사와 기자 신분을 밝히고 명함을 건네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말을 건넸다. 피해자들은 원치 않는다며 피했지만 사실 관계를 듣고 제가 도움이 될 수 있기 원해서 물어봤다라고 말을 건네고 몇 가지 질문을 빠르게 건네고 대답을 짧게 듣고 헤어졌다.   사건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가해자의 이름과 나이 피해자 부부 중 한사람의 이름과 나이, 피해금액, 피해자의 공소시효 시점 등 기사가 나갈만한 사실이 되었음에 짜릿함을 느꼈다.   라인을 담당하는 선배에게 취재 한 정보들을 종합하여 보고 하였다. 선배는 수고했다며 알아낸 정보들을 데스크에 보고 하였고, 아쉽게 방송뉴스로 만들기는 영상과 소재가 조금은 빈약한 사건이라고 조언 해 주었다. 송파 수사과장의 사실 진위 여부 파악 후에 다음날 아침 인터넷에 단신 기사로 제작하기로 결정되었다. 경찰서 취재를 통해 작성된 내 첫 기사를 봤을때, 말로 표현 못하는 뿌듯함이 3일간의 피로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실제 인터넷에 단신으로 기사화 되어 실리게 되고, 나름 취재기자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고 열심히 취재 했다. 같이 경찰서를 돌고있는 취재기자 동기들도 내가 한 단신기사를 보고 부러워하며, 카메라기자 말고 취재기자 하라는 농담도 주고받고 했다. 이후에도 노력한 결과 한 차례 단신기사가 더 실렸고, 지구대에 신고접수된 공포탄피 발견 사건을 보고하였다. 부족한 잠을 채우려는 마음보다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마음이 먼저였다. 그러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2주간, 288시간의 경찰서 생활이 종료되었다.   288시간의 경찰서 취재를 마친 나는 현재 현장에서 카메라를 메고 취재하는 카메라 기자로서 취재를 하고있다. 하지만 그전에 ‘기자’임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기자이며, 진실을 카메라로 기록 하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단순히 현장을 담기만 하는 카메라기자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장 너머에 진실을 표현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앞으로 경찰서를 돌며 능동적으로 취재 했던 기자로서의 취재소양을 잊지 않고, 사실에 입각한 취재의 중심에 서는 기자로 남고 싶다.               유용규 / MBN 영상취재1부      
    2014-03-20
  • 폭설취재기 - 1미터 눈폭탄 '진짜 난리예요'
    <1미터 눈폭탄 '진짜 난리에요'>             - 2월 6일.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진다. 원주를 떠나 강릉에 발령난 지 불과 사흘째. 좀처럼 볼 수 없던 탐스러운 눈발에 잠시나마 감상에 젖어든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솜털 같은 하얀 눈이 도로 위에 쌓여간다. 어지러운 도심이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 2월 7일.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눈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하루 사이에 얼굴이 퀭해졌지만 일손을 놓을 수 없다. 현장과 사무실을 벌써 열번 넘게 들락날락거리며 촬영과 편집을 반복하고 있다. 내일부터 주말이다. 비번이니 뜨거운 물에 씼고 좀 쉬어야겠다.   - 2월 8일. 눈(眼)에 눈(雪) 밖에 안 보인다. 벌써 50센티미터나 쌓였다. 주말이고 뭐고 전원 출근이다. 불평할 시간도 없다. 눈밭이 된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도심은 이미 마비됐다. 제설용 중장비만 바쁘게 오갈 뿐이다. 눈앞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다.   - 2월 9일. 즐거운 일요일이다. 하지만 계속 눈이 온다. 오늘도 쉬기는 틀렸다. 출근길 인도에 쌓인 눈 때문에 발이 푹푹 빠진다. 짜증이 난다. 산간마을에는 일부 주민들이 고립됐다. 길가에는 운행을 포기하고 버려둔 차들이 수두룩하다. 기상청은 당분간 눈이 더 온다고 한다. 제발 예보가 틀리기를 바랄 뿐이다.   - 2월 17일.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얼굴이 검게 타버렸다. 열흘 동안 정신없이 눈 속에 파묻혀 지냈다.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눈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열흘 넘게 계속된 눈과 제설에 주민들이 지쳐가고 있다는데, 나도 그 중 하나다. 이 눈이 대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 2월 18일. 눈이 그쳤다. 지난 6일 이후 12일째 만이다. 적설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1911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110센티미터의 눈이 쌓인 것으로 기록됐다. 기상청 예보관들조차 1미터 이상 쌓인 눈을 직접 눈으로 볼 줄은 몰랐다며 당혹해했다. 나도 정말 당혹스러웠다.   - 2월 24일. 일상을 서서히 되찾고 있지만, 마음이 복잡하다. 지붕이 주저앉으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할머니. 열흘 넘게 고립됐던 산골마을 할아버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제설차를 몰았을 공무원까지. 폭설이 할퀴고 간 상처는 깊기만 하고, 삶이 정상화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 장담하기 어렵다. 정신없이 촬영에만 열중하는 사이 피해 주민들의 속사정을 제대로 취재하지 못 한 것은 아닌지 후회스럽다. 폭설은 끝났지만 아직 할일이 많다. 폭설에 따른 피해 복구가 제대로 이뤄질런지, 대규모 재난에 우리 지자체나 정부의 대응 시스템은 제대로 가동됐는지 등 아직도 들여다볼 부분이 적지 않다. 아직 담아내지 못한 눈(雪)이 없는지 다시 눈(眼)에 불을 켜고 현장으로 달려가야겠다.           김중용 / KBS 강릉
    2014-03-20
  • 이산가족 상봉취재기 - 60년만에 허락된 만남
                11년 만이다. 다시 금강산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대학교 신입생이던 2003년, 우연치 않은 기회로 금강산을 다녀 올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 되고 경색되는 남북관계 속에서 언제 한번 다시 금강산을 가보나 했다. 그런데 11년 만에 기회는 찾아왔다. 이제 대학생이 아니라, 그렇게 꿈꾸던 ‘기자’라는 이름으로, 3년 3개월 만에 이루어지는 이산가족상봉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금강산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산가족상봉장에서 취재하는 느낌은 어떨까. 걱정보다는 호기심으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다가왔다.     6개사가 함께하는 풀 카메라기자단은 3팀씩 둘로 나뉘어져 각각 1,2차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취재했다. 생중계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에서 보낸 디스크를 남측CIQ로 보내면 송출 즉시 각 사가 들어오는 영상을 플레이 시켜 방송을 했다. 선배들이 말하는 ‘원본 플레이’를 해야 했다. 신중하게, 흥분하지 않기를 되뇌이며 취재에 임했다. 커트 중심이 아니라 울음, 흐느낌, 대화가 들어오도록 되도록 길게, 감동적인 모습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번에서 35번 가족까지. 내가 맡게 된 가족들이었다. 특히 9번 가족, 북측 최고령자가 있는 가족이었다. 오래전 헤어진 여동생과 오빠.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9번 테이블을 지키고 서 있었다. 면회장 문이 열리고 가장 앞서 들어오는 걸음도 불편한 한 노인, 그리고 한눈에 오빠를 알아보고 와락 끌어안고 오열하는 여동생. TV로만 지켜보던 모습이 내 눈 앞에, 내 뷰파인더에 펼쳐졌다. 학교 간다고, 돈 벌러 간다고 나갔던 젊음들이, 히끗히끗한 머리로, 걸음도 불편한 늙음이 되어 이제서 만난 것이다. ‘왜 이제 왔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은 한마디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런 가슴 뭉클함에 몰입 되어 취재를 하면서도, 남과 북의 벽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벌어졌다. 사연 있는 가족에 집중해 취재를 하다 보니, 북측에서 한 가족에게 집중하지 말라며 취재를 제지하고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알겠다며 웃어 넘겼지만,(그들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둘째 날이 되어서도 또 ‘어이 YTN은 왜 그러냐’며 제지하기까지 했다. 어떤 가족은 남측 기자들이 다가갔을 때는 머뭇머뭇하더니, 녹색 완장의 북측 기자들이 다가서자 북측의 체제를 찬양하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것이 현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가 끝나면 카메라를 내려놓고 북측 안내원들과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카메라는 얼마나 나가나’부터 눈 많이 내린 날씨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었다. 점심,저녁 시간에 자유롭게 자리하며 북측 기자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다. 둘째날 점심 금강산 호텔에서 이뤄진 단체 상봉 이후에 호텔 테라스에 나가 금강산의 설경을 볼 수 있었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은 담배를 나눠 피우며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가 멀리 보이는 금강산의 봉우리들의 이름을 궁금해하자, 자기도 금강산이 처음이라 모른다더니, 어느새 그 봉우리들의 이름들을 알아와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원도 있었다.     작별의 시간도 어느새 다가왔다. 단 6차례의 만남만으로, 또 헤어져야하는 가족들은 애써 웃음 지으려했다. 아리랑이 불리고, 고향의 봄이 면회장 여기저기서 불렸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한마디 ‘이제 죽어서 봐야지...’ 뷰파인더가 보이지 않았다. 훌쩍. 눈물이 흘렀다. 이런게 슬픔이구나. 울지 않으려했던 가족들은 어느새 이별을 직감했다. 부둥켜 안고, 울고, 마지막 손이라도 잡으려했다. 버스에 올라탄 북측 여동생은 휠체어에 앉은 언니를 보며, ‘울지말라, 웃자’고 했다. 자신의 눈에 맺힌 눈물은 보지 못했었나 보다. 먹을 것을 연신 차 안으로 넣어 주던 9번 가족. 버스가 떠난 뒤 부둥켜 안고 ‘이건 아니잖아’라고 울던 가족. 창문을 열지 못해 마지막으로 손조차 잡아보지 못한 가족. 가족이기 때문에 타의에 의한 이별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60여년 만이다. 어릴 적 헤어진 꼬마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2박 3일. 단, 6차례의 만남만이 허락되었다. 만났지만 또 헤어져야하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아직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은 너무나 많다. 고령의 이산가족이 더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단 한 번의 만남도 소중하기 때문에 금강산, 평양, 개성을 자유로이 오가고,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정례화 되길 바라본다. 흥분과 호기심으로 내딛은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왠지 모를 가슴 먹먹함으로 마무리 되었다.         류석규 / YTN 영상취재 1부
    2014-03-20
  • 미래부 "8VSB 허용은 종편 특혜"
     방송인총연합회(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한국아나운서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한국방송카메라감독연합회, 한국PD연합회) 는 지난 12일 미래창조과학부가 케이블 TV에 대한 8VSB 변조방식을 허용한 데 대해 유료방송 규제완화에 정신이 팔려 무료 보편의 미디어 플랫폼을 망치고 종합편성 채널과 케이블 TV에 대한 특혜를 남발하고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연합회는 8VSB 허용이 고화질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종편에 또 하나의 특혜로 종편이 케이블 TV에 대한 8VSB 허용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통로로 미래부를 압박해 온 결과라고 밝혔다. 종편이 모기업인 보수 신문을 통해 끊임없이 여론몰이를 벌이면서 8VSB 허용을 주장해 왔고 8VSB 허용이 콘텐츠 저가화 현상을 불러 현 정부의 국정철학인 창조경제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상대방을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연합회는 또 미래부가 8VSB 허용을 발표함과 동시에 지상파 UHD 실험국 승인도 발표했지만 지상파 UHD 실험방송은 말 그대로 실험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면서 미래부가 시청자 복지를 위한 올바른 디지털 미디어 정책을 추진하고 종편과 케이블 방송사의 주구가 아니라면 8VSB 허용을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방송협회도 11일 성명설을 통해 미래부의 이번 결정은 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정책적 일관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 등 특정사업자들에 대해 특혜를 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며 관련 정책의 전면 철회와 재검토를 요구했다.        
    2014-03-20
  • 마우나리조트 취재기 - 대형참사 속 배운 소명의식
          2월 17일,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퇴근했다.  지난주에 울산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공장은 예상치 못한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안타깝게도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렇게 바쁘게 1주일을 보내고 휴식을 취하고 싶어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TV를 켰다. TV에서는 파란 수퍼로 ‘마우나리조트 붕괴’라는 속보가 막 보도되고 있는 참이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회사로 다시 뛰어 나갔다.   회사에 도착하니, 이미 당직 선배는 먼저 현장을 가셨다. 나는 취재기자 선배와 시티병원으로 갔다. 마우나리조트는 행정 관할 상 경주였지만, 거리는 울산이 더 가까운 곳이었다. 경주관할인 대구총국에서 현장에 오기 전에 현장을 커버해야했다. 병원을 가는 차안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최소 50명 이상이 붕괴된 잔해에 깔려있는 대형사고였다.    아직 촬영기자라고 하기엔 한없이 부족한 나로서는 TV에서만 보던 대형 참사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많은 학생들이 실려왔다. 그 중에는 피를 흘리고 있는 학생도 있었고 사고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울먹거리는 학생도 있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병원의 학생들에게 사고 당시 상황을 인터뷰 해 나갔다. 학생들은 사고 당시의 생생한 장면들을 말해주었고 나는 그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부상자 스케치와 인터뷰를 마치고 디스크를 차량 선배에게 넘겼다. 처음 수습을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선배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조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뉴스는 속보다. 아무리 그림을 잘 찍어도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그 그림은 없는 것이다.’라는 선배들의 조언 말이다.    그렇게 서둘러 촬영을 마친 뒤 마우나리조트 현장으로 올라갔다. 마우나 고개는 왕복 4차선의 도로인데, 수많은 취재진과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로 진입하는 길은 막힌 지 오래였다.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걸어서 가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판단을 했고 30분정도 걸어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사고 현장에는 선배가 계셨고 나는 소방본부에서 접수되는 정보들을 취합했다. 정신없이 사고 현장에서 촬영을 했고 철수 명령을 듣고 회사로 복귀했다. 5시 뉴스광장에 뉴스를 송출하기 위해 정신없이 편집을 마쳤다.   고작 6개월 차 막내 촬영기자인 나는 이런 대형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었고 하루하루가 벅찼다. 이번 사건을 통해 촬영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곱씹게 되었다. 막내 촬영기자로써 이런 대형사건을 빨리 경험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피지도 못한 꽃들이 희생당한 가슴 아픈 사건이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도 촬영기자로써 소명의식을 가지고 현장을 나갈 것이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는 안타까움이 공존할 것이다. 이 감정은 나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촬영기자는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가서 촬영을 하고 시청자들에게 생생한 현장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최선이다.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는 나를 한 단계 촬영기자로써 성숙하게 해줬고 앞으로 펼쳐질 날들에 북극성 같은 존재로 기억 될 것 같다.   이한범 / KBS울산
    2014-03-20
  • 소치 동계올림픽 취재기 - 온몸으로 즐기던 축제, 그리고 옥의 티
        처음 취재해 본 종합대회, 22회 소치 동계 올림픽은 내게 ‘함께 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을 배경으로 한 야자수 무리. 우선 그게 첫인상이다.  대회기간 중 종종 추웠던 날도 있었지만, 해상클러스터가 있는 아들러 지역의 날씨 대부분은 포근함이었다. 생각보다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멀리 눈 쌓인 산봉우리를 보는 일이 많았다. 어차피 산악이 아닌 해상클러스터에서 열리는 경기는 모두 실내에서 이뤄지니 ‘이런 따뜻한 날씨에 동계올림픽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괜한 것이었다.   종합대회 취재는 뉴스를 위한 취재가 전부가 아니다. 교양, 중계 등의 제작 또한 모두 IBC (국제 방송센터) 내의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는데 그 구성원들의 역할이 겹칠 때가 있다. 특히 우리 일이 그렇다. SBS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소치 현장에 온 8뉴스 앵커의 현장 연결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하는 경우가 아닐 때) 장소를 탐색하고 녹화하는 역할을 카메라 기자가 했다. 능동성과 그 날 경기들에 대한 중요도의 이해, 현장에서의 적절한 판단 등이 필요한 일이다. 거기에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열리는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경기가 열릴 때 중계 UNI카메라를 운용하는 일 또한 우리 몫이었다. 중계 피디의 콜이 오기 전에 경기 뿐만 아니라 그 외적인 상황들까지도 미리 파악해 시청자들이 풍부한 현장의 그림을 보는데 기여했다. UNI카메라를 운용한 박영일 선배의 체력적인 피로도가 쭉쭉 올라가는 게 유일한 안타까움이었다. 이런 취재 상황 역시 평소와는 달리 방송을 ‘함께’ 만드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차가운 대륙에 사는 무뚝뚝한 사람들일 것이라는 러시아인들에 대한 내 선입관은 금방 깨졌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은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올림픽 파크에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고, 경기장을 찾은 러시아 관중들은 시합 사이사이에 있던 여흥 타임에 크게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저녁 식사를 위해 찾은 식당에 있던 손님들도 홀 중심에 모여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나이나 인종은 개의치 않았다. 내가 본 도시 전체가 올림픽이라는 축제를 온몸으로 즐길 준비가 돼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부족한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영어를 못하거나 파크 내 길조차 모르는 자원봉사자들이 수두룩했다. 대회 운영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자면, 대회 시작 전 컬링 경기장에 취재를 갔었다. 대회가 1주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아직 경기장 바닥이 얼음이 없는 시멘트 상태인 것을 보고 우리는 설명을 듣기 위해 담당자를 청했다. 불려온 담당자와 한참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자 그 담당자의 반응이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자신은 컬링 경기장의 식음료 담당이라며 웃는 게 아닌가! 내게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표정으로. 이런 식이었다. 처음 담당자를 청했을 때 아무나 불러온 자원봉사자, 자신의 업무가 아님에도 대강 답을 해주던 식음료 담당자. 이런 모습을 보면서 큰 행사를 치를 준비가 덜 돼있다는 생각을 했다. 소치에는 즐기기 위한 마음과 미진한 행사 준비가 함께 있었다.   다섯 시간이라는 조금은 애매한 시차와 늦은 경기 시간으로 육체적으로는 피곤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종합대회 취재의 큰 경험과 러시아 소치라는 평소 쉽게 갈 수 없는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 함께 했던 출장이었다. 그리고 많은 인원이 함께 했던 만큼 다녀와서는 역시 내가 현장에서 얼마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폐를 끼치지 않았는지를 반성하게 되는 출장이었다.         신동환 / SBS 영상취재팀
    2014-03-20
  • YTN, 상암동 시대를 열다
               YTN이 창사 20년 만에 드디어 ‘상암동 시대’를 연다. 종로구 수송동의 연합뉴스 건물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95년 이후 10년, 숭례문 사옥을 매입하면서 힘차게 도약한 10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 상암동 DMC 부지에 어엿한 건물을 지어 새 주인으로 입주하게 된 것이다.   신사옥의 이름은 ‘YTN NEWSQUARE’로 ‘NEWS’(뉴스)와 ‘SQUARE’(광장)가 합성된 신조어이다. 중의적으로 ‘새로운(NEW) 광장(SQUARE)’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YTN이 최초로 지은 방송+오피스텔 건물인 뉴스퀘어는, 전체 18층, 지하 6층이며 1층부터 9층까지 YTN을 비롯한 웨더, 사이언스, 라디오, 월드, DMB, 디지털 YTN 등의 그룹이 사용하게 된다. 영상취재부, 영상편집부, 영상아카이브팀 등 영상관련 부서와 사회부 등 보도국은 3층에 위치하게 되며, YTN 그룹이 사용하는 층 외에는 임대를 계획하고 있다. 뉴스퀘어 사옥 앞에는 YTN의 미래를 상징하는 미술작품이 설치됐는데, 사원들의 투표를 거쳐 <홍익대 미대 이수홍 교수의 ‘세상의 중심’>이 선정되었다. 주변에는 또한, 삼성SDS, LG CNS 등 대형 기업체들과 CJ E&M, MBC 본사, SBS미디어스퀘어 등 방송 업체들이 이미 입주해 있거나 입주할 예정이다.    신사옥에서의 첫 방송은 4월 7일 월요일 0시로 정해졌고, 이사 기간 동안에도 당연히 24시간 뉴스는 중단없이 방송될 것이다. 또한, 이때부터 새로운 CI도 선 봬 신사옥의 새 새얼굴에 어울리는 CI들이 마이크택과 방송 화면 등에 노출될 것이다.    YTN 뉴스퀘어는 사옥을 새로 짓는 의미에 걸맞게 야심찬 새로운 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먼저, 일반인들이 사전 예약을 통해 방송 현장을 관람할 수 있도록 투어 코스를 만들어 live 방송 제작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하였고, 체험 스튜디오에서는 자신이 방송에 나오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1층에는 오픈 스튜디오를 만들어 생방송 토크 쇼 등 공개홀 형식의 방송을 진행할 수 있고, 150평 규모의 미디어홀은 방송, 공연, 예식 등 다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2층에서 5층까지 수직 직통 계단(속칭 달팽이 계단; 빙글빙글 돌아 오르내리는 계단 모양)이 만들어져 신속하고도 원활한 방송 진행에 십분 활용될 계획이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모든 일들이 파일과 메일, 인제스트로 이루어져 사람이 실제로 이동할 일이 줄었지만, 긴박한 보도국의 특성상 멀리 층계를 돌아 업무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이다. ‘달팽이 계단’은 신속한 의사 소통을 상징하며, 예전 연합뉴스 건물에서 근무를 해봤던 YTN 고참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긴급한 방송을 위해 열심히 오르락 내리락 뛰어 다녔던 추억 어린 방송 인프라(?) 환경이기도 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YTN이 20년 청년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될 상암동 뉴스퀘어! 이곳에서 YTN은 새로운 웅비(雄飛)를 꿈꾼다.            
    201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