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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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신 변호사 칼럼> 상속에 대하여 (1)
    상속에 대하여(1)지난 지면에서 이혼의 효과 중에 가장 중요한 면접교섭권과 재산분할청구권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지면에는 사람이 사망할 경우에 발생하는 재산상속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속권을 인정하는 근거에 대해서 현대사회의 개인은 공동생활을 하며, 공동생활에 쓰이는 재산은 어느 가족 구성원의 특유재산일 수도 있으나 그 재산축적에는 배우자 등의 협력이 전제가 되었으므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잠재적인 공유자이고 그 재산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생활보장의 담보가 되는 재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속은 사망함으로써 개시됩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비행기에 갑과 갑의 아들이 타고 있다가 비행기사고로 사망한 경우 누가 먼저 사망했는가에 따라 상속의 효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즉, 갑이 먼저 사망하고 갑의 아들이 사망한 경우 아들이 갑의 재산을 상속받은 후 사망한 것이므로 그 재산은 모두 갑의 배우자가 상속하게 되나 갑의 아들이 먼저 사망하고 갑이 사망한 경우 갑의 재산은 갑의 배우자와 갑의 모친이 공동으로 상속하게 되어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상속의 순위에 대해서는 다음 지면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따라서, 민법 제30조에서는 “2인 이상이 동일한 위난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규정하여 위와같은 경우 특별한 반증이 없는 한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어 갑의 아들은 갑의 재산을 상속하지 못하여, 갑의 배우자와 갑의 모친이 공동으로 상속하게 됩니다.(물론, 재판과정에서 갑의 배우자는 갑이 갑의 아들보다 먼저 사망했다는 사실을 반증해서 자신이 갑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민법 제999조에서는 제1항에서 “상속권이 참칭상속권자로 인하여 침해된 때에는 상속권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은 상속회복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제2항에서 “제1항의 상속회복청구권은 그 침해를 안 날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을 경과하면 소멸된다.”라고 상속회복청구권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청구권은 진정한 상속인이 그 상속권의 내용실현을 방해하고 있는 자에 대하여 상속권을 주장함으로써 그 침해를 배제하고 상속권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청구권입니다. 여기서 참칭상속인이란 상속권을 주장하면서 상속재산을 점유하고 상속권을 침해하는 자를 말하며, 다른 상속인의 상속분을 침해하는 다른 공동상속인도 상대방이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최근에 삼성가의 장남 이맹희가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을 상대로 수조원대의 상속재산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상속회복청구권에 근거한 것으로 고 이병철회장의 공동상속인 중 1인인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을 피고로 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참칭상속인으로부터 상속재산을 양수한 제3자도 상속회복청구권의 상대방이 될 수 있으나 제3자는 상속재산이 동산, 무기명채권 또는 유가증권인 경우 선의취득을 주장하여 자신의 재산양수행위가 유효함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선의취득이란 “동산을 양수한 자가 선의이며 과실없이 그 동산을 점유한 경우에는 양도인이 정당한 소유자가 아닌 때에도 즉시 그 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는 제도입니다.이러한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권의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이 개시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하면 소멸됩니다. 이러한 상속회복청구권에 제척기간을 둔 이유는 상속으로 인한 분쟁을 조기에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이신 / 협회 고문 변호사 
    2014-08-13
  • 국방부 출입처 인터뷰
     대한민국의 국방의 중심 국방부 출입처를 방문했다. 정예화된 선진강국 이라는 굵직한 슬로건이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 검문을 하던 각 잡힌 군인들처럼 출입처 기자실도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속에 인터뷰를 진행하리라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나의 확실한 착오였다. 여태껏 방문했던 출입처들 중에 가장 화기애애하고 가족 같았던 기자실이었다. 그들은 확실히 그저 “동료”의 느낌보다 생활과 전투를 같이 하는 “전우”의 느낌이 강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도 ‘전우애’를 탐탁히 느낄 수 있었던, 인간미 넘치는 그런 출입처였다. Q.국방부 출입처 소개다른 출입처들이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미리 통보하는 취재스케쥴에 맞춰서 모든 국방부에서 총괄하는 훈련, 행사들을 취재한다. 그러나 국방부가 나라의 군 보안과 밀접히 연관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취재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국방부 입장에서는 보안상황이고 크게 보면 국익을 위한 사항들이기 때문에 관계자 측들과 조율을 통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또한 국방부를 포함해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와 더불어 군 관련된 산하기관들 모두 취재를 나가기 때문에 군 관련 다방면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취재를 할 수 있다. 군 관계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 많다 보니 다시 내무반생활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Q. 국방부 출입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해상훈련을 취재 나갔을 적이다. 고속정을 같이 탔는데 선체가 굉장히 흔들려서 하루종일 배 멀미를 했다. 훈련상황이니 이렇다 할 취재환경도 마련되어있지 않아 있었고... 선체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찍으려고 하니 찍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 내려놓고 배멀미를 견디고 있었는데, 해군이 기자들보다 먼저 잠을 자겠다고 들어갔다. 해군이 배멀미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였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라서 굉장히 벙쪄있었다. (텍스트로 옮기니 그 당시 상황의 긴박함과 재미를 재현할 수 없어 안타깝다.)Q. 국방부 출입처 이후 불편한 점, 혹은 어려움은 없었나. 불편한 점보단 점점 자립심을 잃는 것 같기도 하다. 취재를 할 때 항상 인원제한이 따른다. 훈련을 취재하는 것도 그렇고 취재현장이 나눠져 있기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취재를 한 다음 각 사들에게 공유한다. 예를 들어 공군 비행기를 탈 때도 비행기 좌석에 인원제한이 있어서 평균적으로 2개사, 많게는 3개사 까지 갈 수 있어서 모든 인력들이 취재를 나가고 싶어도 못나간다. 그래서 모든 사들을 대표해 취재를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이상을 발휘하여 취재에 총력을 다한다. 기자실 내에 분위기가 가족같고 돈독한 점도 이러한 이유에 있다. 사실 우리 출입처는 통일되면 제일 먼저 없어지는 출입처일 것이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철주야로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급작스러운 브리핑이 생기면 바로 취재 나가야하고.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취재에 보안, 검열, 제약등이 항상 존재하니 가끔 관계자들이랑 트러블도 생기는 일도 있고, 그런 것들은 딱히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출입처던, 취재현장이던,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카메라기자들이 다분히 겪는 일이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14-08-13
  • 신입기자를 소개합니다.
    영상으로 세상을 말하는 사람들 버버러 쿠니라는 작가가 쓴 ‘미스 럼피우스’라는 책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주인공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라고 답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제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의문과 어떤 일을 했을 때 이 질문에 떳떳하게 답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던져준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촬영기자의 삶.  저에게 있어 촬영기자라는 직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세상에 알리는 촬영기자의 역할을 수행하겠습니다. 세상을 좀 더 변화시키고, 풍부하게 만드는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그 일이 힘들지라도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것들을 전할 수 있기에 항상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겠습니다.  하나의 영상에는 수많은 내용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 어떤 것을 담아내고 만들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런 고민들이 선행된다면 그 영향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찍은 것들이 저뿐만이 아니라 저와 관련된 사람들 혹은 저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에 틀린 게 없고, 그 영상이 우리가 그날 하루는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정도는 담길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영상으로 세상을 말하는 사람들. 그 안에 제가 서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습니다. 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촬영기자가 되겠습니다. 책임 있고, 참된 영상을 보여주는 국가대표 촬영기자가 되겠습니다. 앞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눈으로 세상을 담으며, 카메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고성호 / KBS 보도영상국배워서 남주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만국 공통 언어이자 가장 강력한 언어라 불리는 영상을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촬영기자가 된다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촬영기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카메라기자협회의 대학생 명예카메라기자 활동을 하며 촬영기자의 역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선배님들의 주옥같은 말씀을 귀담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그렇게 촬영기자를 꿈꿔왔던 제가 이제 KBS의 촬영기자가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촬영기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현장 곳곳을 누비며 시청자들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가장 강력한 언어인 영상이 왜곡되거나 오용될 경우에는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행동하고 올바른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촬영기자는 야구의 포지션에 비유하자면 포수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경기의 흐름을 지배하고 팀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하는 포지션. 때론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른 선수와 충돌도 각오해야 하는 만큼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보람만큼은 그 어떤 누구보다도 느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촬영기자라고 봅니다. 그런 촬영기자의 세계에 이제 첫발을 내딛습니다. 카메라를 내려놓는 그 날까지 항상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저 자신을 위해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와 국민을 위해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음과 머리 그리고 발로 뛰며 하나하나씩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김한빈 / KBS 보도영상국시대의 사관(史官)이 되겠습니다. 2014년 3월 28일 정오. 그 날은 KBS 공채41기 최종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오전 내내 KBS 채용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거렸습니다. 다른 일은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에게 발표가 났다는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발표 전에는 1분이 멀다하고 새로고침을 눌렀는데 막상 발표가 났다고 하니 확인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고 긴장감에 목이 메어 왔습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검색창을 확인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촬영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해 온 2년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스크롤을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합격자 명단에서 제 수험번호를 찾았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연수원을 마치고 ojt 교육을 받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신입 사원으로 첫 시작을 하기에는 좀 늦은 서른셋의 나이. KBS공채를 준비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모든 것을 쏟아 붓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간절했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기에 불안감이 더욱 컸습니다. 공부를 해왔던 2년 남짓의 시간들은 불안, 그리고 초조함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숱한 낙방을 거치면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하나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단 한 가지는 촬영기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공채를 준비했고 끝내 합격했습니다. 뉴스는 매일매일 기록되는 역사책이고 촬영기자는 현대의 사관(史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촬영기자는 국민들에게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합니다. 사마천은 진실을 기록하고 후세에 알리기 위해 극한의 수치와 모멸감을 견뎌내며 ‘사기’를 완성했습니다. 쉽고 편안한 길도 있었지만 사관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어려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었던 것입니다. 촬영기자의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에게 진실된 정보를 전달해야만 합니다. 항상 객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겠습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누구보다 빠르게 현장으로 달려가고, 깊숙이 들어가 국민의 눈이 되겠습니다. 저는 지금 촬영기자로서의 첫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구구단을 배웠듯, 좋은 촬영기자가 되기 위해 촬영의 기본과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해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현장을 누비며 셔터를 누를 생각을 하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영상저널리즘의 가치를 위해 분투해 오신 많은 선배님들. 존경합니다! 앞으로 많이 꾸짖어 주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시대의 사관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규일 / KBS 보도영상국Shoe-leather reporting‘슈레더 리포팅(Shoe-leather reporting)’은 편안한 책상머리를 벗어나 신발 밑창이 닳도록 현장을 찾아다니는 저널리즘을 의미합니다. 촬영기자 선배님들이 역사의 현장을 지켜왔던 것처럼 저 역시 KBS 촬영기자로서 항상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겠습니다.방송뉴스에서 촬영기자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촬영기자는 눈앞에 벌어진 것 중에서 핵심을 선택해 전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또한 넘쳐나는 영상에서도 사실관계를 파악해 거짓되지 않은 정보를 시청자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습니다. 올바른 촬영기자의 역할을 감당해내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시청자를 생각하며 진실을 찾겠습니다. 카메라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마음으로 느끼며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채워가겠습니다. 낮은 곳부터 바라보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지역 사회의 감시자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으로 현장을 지키겠습니다. 이 마음가짐을 끝까지 지켜내도록 선배님과 동료의 아낌없는 조언 부탁드립니다.이대용/KBS 보도영상국촬영기자라는 또 다른 이름  또 다른 이름이 생겼습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아니라, 제가 정말 가지고 싶었던 촬영기자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이름을 달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저의 이름 앞에 자랑스러운 촬영기자의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촬영기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보니 큰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다양한 현장에 많은 사람들을 대표해 나가고 또 제가 본 것을 영상으로 잘 전달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입사 후 가장 많이 고민을 했던 것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OJT교육을 받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잘해야만 하겠다!” 라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촬영기자는 괜히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무거운 카메라 안에 더 무거운 내용을 담아내야 할 때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무거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열정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기사보다 영상이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이유 역시 촬영기자의 열정이 뒤받침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뉴스영상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뜨거웠습니다. 항상 이러한 열정을 가지고 현장을 누비는 촬영기자가 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 속에서 촬영기자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뜨거운 뉴스영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의 새로운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영상취재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정태라는 이름 보다 촬영기자라는 새로운 이름이 더 빛이 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정태 / KBS 보도영상국
    2014-08-13
  • <최강현 칼럼> 행복한 가정 만들기 -애인처럼 사는 법.. 침묵하는 남성을 이해...
    행복한 가정 만들기  <애인처럼 사는 법.., 침묵하는 남성을 이해하라>  휴가철이 지나고 많은 여성들과 상담하는 내용 중 가장 불만이 많은 것은 ‘남편이 침묵하면서 말을 하지 않고 잘 들어주지 않는다’는 하소연이다. 미혼일 때는 말 많은 남자는 가볍게 보인다고 해 오히려 과묵한 남자가 인기 있지만, 결혼 후 과묵한 남자는 여자들의 속만 답답하게 한다. 특히 말이 많던 남자도 이상하게 결혼만 하면 ‘아는?’ ‘밥 줘’ ‘자자’ 등 하루에 단 세단어로 대화를 끝낸다는 경상도 남자가 돼버리는 것은 왜일까?<말을 듣지 않는 남성, 지도를 읽어내지 못하는 여성>의 저자인 피즈 부부에 의하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에서 남녀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보통 여성은 하루에 6000~8000개의 단어를 사용한다. 얼굴의 표정이나 머리를 끄덕이는 신체언어까지 포함하면 약 2만개 정도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 남성은 하루에 4000개 단어를 말하며 신체언어를 포함해도 7000개 정도의 언어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는 여성의 3분의 1수준이다. 그러니 아무리 남자가 자신의 할당 언어를 다 사용한다고 해도 여자에게는 ‘조용한 남자’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직장에서 이미 많은 언어를 사용한 남자들은 당연히 집에 오면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맞벌이를 하는 경우라면 그나마 ‘조용한 남자’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여자 역시 하루 종일 피곤했을 테니깐. 하지만 전업주부일 경우에는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기껏해야 아이와의 대화가 전부였을 아내는, 오늘의 언어 사용량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려 아직 다 소진되지 않은 언어를 쏟아내려고 한다. 이럴 때 남편은 피곤하겠지만 아내의 말을 인내를 가지고 들어주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아내가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일단은 부부대화에 문제가 없는 부부가 될 수 있다. 남녀 간의 대화 차이는 단순히 언어 사용량의 차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기도 남녀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남자는 ‘용건이 있을 때만 말하는 습성’이 있다. 여자가 전화를 할 때, 많은 남자들이 제일 먼저 ‘왜?’라고 묻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당연히 남자들의 이런 반응에 여자들은 ‘꼭 이유가 있어야 전화를 하냐?’며 섭섭함을 토로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꼭 내 남자만 이러는 것도 아니고, 남자가 당신의 전화가 귀찮아서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늘 ‘용건이 있어야 말하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가 말싸움을 할 때, 거의 대부분 남자가 진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과정의 차이 때문이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먼저 자신이 할 말을 생각한 뒤 말을 내뱉지만, 여자의 경우는 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몸싸움을 할 때도 ‘선빵’을 먼저 날리는 사람이 유리한 것처럼, 말싸움도 마찬가지다. 먼저 내뱉고,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이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남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말을 하기 때문에, 싸워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면 아예 시작도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말싸움을 할 때면 남자는 조용히 듣고만 있고, 여자 혼자 떠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 50대 초반의 한 부부를 보자. 남편이 퇴근 후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아내는 남편에게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상의하고자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남편은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 아내는 화가 났고, 결국 싸움으로 이어졌다. 부부 상담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부부의 싸움은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남편의 무성의한 태도를 문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남자의 대화 습성을 이해했다면, 이들 부부는 싸움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는 대화를 할 때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TV를 잠시 끈 뒤에 대화를 시도하면 충분히 해결된다. 여성과 달리 남성은 한 번에 하나의 일밖에 할 수 없는 뇌의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아내는 중간 중간 ‘여보 지금 제 말을 듣고 있어요?’라고 한번쯤 물어보며 대화를 해보자.   최강현 원장은…    부부행복 & 성교육 전문가로 의정부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 경찰청 성폭력 자문위원, 경찰대, 경기대 외래교수, 대한성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EBS <부모> 특강. MBN <황금알> 등에 출연,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인기있는 스타강사이다.
    2014-08-13
  • <CS칼럼> 자기만 모르는 남들의 평판
       예전에 함께 근무를 했던 동료 한 명이 있다. 그 직원은 학벌도 좋고 똑똑했지만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다른 직원과 함께 일을 하는 태도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기 보다  자기 중심사고로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많았다. 특히, 일을 공동으로 수행해야 할 때 혹은 회의를 할 때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는 집중하는 법이 없었으며 오히려 당사자를 부정적으로 대했다.  누군가의  의견이 길어지면 끝까지 잘 들어 주기 보다 중간에 말을 자르고 자기 말만 고집하는 대화 습관이 있었다.  한 번은 회사에서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팀을 구성한다는 공고가 났다. 최종적으로 선발된 직원의 이름에 그녀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무척 화가 났고 도대체 자신을 몰라 주는 이런 회사가 어디 있느냐’면서 주변에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 까지 했다.  그녀의 말대로 능력이 있는 자신이 떨어진 이유를 자신은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정작 자신만 몰랐을 뿐 주변에서는 그녀가 탈락한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  그 점이 안타까운 일이다. 주변에서 그녀를 볼 때에는 외국어 실력도 좋고 똑똑한 동료였지만 그녀의 업무수행태도는 독선적인 모습으로 비쳐져 타인의 감정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 태도로 해석이 되었으며 평판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런 부정적 평판과 소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 종종 좋은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결국 회사의 이미지가 될 그녀의 태도가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옛말처럼 자신의 좋은 평판과 인간관계도 평소 자신의 정성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주위에도 실력이 좋지만 기회를 종종 얻지 못해서 좌절하는 분들이 있다. 자신이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원하는 업무를 하고 싶고 해외에서 근무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그럴수록 자신의 평판이 중요하다. 자기도 모르는 남들의 평판으로 인해서 손해를 보는 안타까운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성공을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임을 인식하고 인정해 줘야 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 Warren Buffett) 이 있다. 나의 성공은 ‘ 그 사람이 있었기 때문 ‘얼마 전 기사에서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 Warren Buffett) 과  점심을 먹기 위한 약 22억 1400만원 (미화 216만 6766달러)이란 경매된 점심식사 낙찰금액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존경 받는 부자임을 입증하는 단적인 예이다. 버핏은 해마다 자신과의 점심식사를 경매에 부쳐 그 수익금을 빈민과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의료 서비스, 직업 훈련, 재활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그렇게까지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예상컨대, 기업 가치를 평가하여 주식을 사고 수익을 내는 업무의 특성상 냉철하고 예견이 뛰어 났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강조하는 사회적인 성공 요인의 하나는 비즈니스 파트너 이다.  ‘내 주위에는 항상 결정적인 도움을 준 파트너들이 있었다’ 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에 문제점을 해결하고 도움을 준 ‘ 그 사람 ’이 있었기 떄문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 그 때 ‘ 그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 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상대로부터 호감을 가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인간적인 매력을 갖추기 의해서 나부터 노력했다고 한다.  자기 혼자 만의 실력만 있으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다는 사실! 을 기억해야 한다    재승덕 하지마라 < 엘리트 보다는 사람이 되어라> 의 저자 전혜성 박사님의 여섯 자녀 모두는 하버드 대와 예일대 출신이다.   주변에서 전박사님을 보고 공부를 얼마나 지독하게 시켰으면 모든 자녀가 좋은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한다   자녀의 공부 비법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으나 전박사님의 답변은  ‘ 재승덕하지 마라 ‘ 이다.   ‘재승덕 ( 才勝德) 하지 마라’ (재주가 덕을 넘게 하지 마라) 는 공부든 어떤 부분에서든지 재주가 덕을 넘게 하지 말며 재주로 사람에게 다가가기 보다는 먼저 자신이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하며 보다 좋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전박사의 자녀교육방침은  실력이전에 인간미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더 큰 뜻을 이룰 수 있고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 MBA 과정에서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당신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이 무엇인가’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93%가 ‘대인관계의 매너’ 를 꼽았으며 나머지 7%는 실력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실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인간관계가 좋지 않아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력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인간관계가 좋아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인간관계는 주변으로부터 인정과 지지를 얻는데 큰 역할을 하며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대인관계 능력을 어떻게 하면 향상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 주위의 사람들과 사이 좋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강희선 / 한국서비스에듀센터 원장 
    2014-08-13
  • 경험이 아닌 또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
    입사한 지 3년이 다 돼간다...꿈인 줄 만 알았던 mbc를 입사하고 막 수습 딱지를 뗀 후 겪었던 장기간의 총파업...신입 혹은 직무관련 교육이나 연수는 말로만 들었고 바로 투입된 현장이 경험이자 가르침  이였다. 마이너스 통장을 갚기 위한 처절함만큼 기레기(?)로 살고 싶지 않아 노력했던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다... 오로지 나와 내가 속한 조직 그리고 선배들을 통해서만 배웠던 언론인 생활에서 확신이 잘 안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뉴스 생산자로서 책임감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경험이 아닌 또 다른 배움이 필요했다. 1년을 기다렸다 멀티형 영상취재기자 과정... 작년에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홈페이지를 확인하다 이번 교육과정 신청 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오래전부터 바라던 교육이었고 나뿐만이 아니라 카메라기자라면 누구난 이 교육을 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창 언시 공부를 할 때부터 계속 나온 얘기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미디어 시대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멀티형 카메라기자로서의 역할은 꼭 필요하다. 특히 기획, 구성, 제작(수준 높은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줄 만한 영상콘텐츠), 송출까지 카메라기자가 고민해야 할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이번 교육은 이러한 부분을 정말 속 시원히 알려준 알찬 시간이었다. 작년에 첫 교육과정 신청을 실패하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사실 내 연차에 그것도 바쁜 시기에 회사를 빠져서 혼자 교육을 받고 온다는 것이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와서 느껴본 교육의 만족도와 15년차 이상씩 되는 열정적인 만학도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정말 잘한 결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분이 계시면 잠깐의 눈칫밥 때문에 주저하지 마시고 후회 없는 선택하시라!! 초심을 생각하고 다시 다짐해본다...교육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기사작성 시간과 다큐멘터리 기획 시간이었다. 파업 때 해직됐던 박성제 선배님이 기사작성 수업을 맡았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모습이 뭔가 짠했지만 부드러움 속에 강한 의지의 눈빛을 가진 분이셨고 진짜 ‘기자답다’ 라는 생각을 했다. 기사 작성에 대한 도움도 컸지만 주제 선택에 대한 이유부터 어떻게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지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만이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할만한 것으로 표현이 잘 된다. 지금의 나는 오전에 출근해서 그날의 일정을 받고 소처럼 일만 한다. 당연히 시청자들이 볼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전제로 하고 방송을 너무 방송적(?!)으로만 생각한다. 내가 왜 언론인이 되고 싶었고 왜 카메라기자를 선택했는지..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감사한 교육교육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생긴 습관이 있다. 취재 후 회사에 들어와 메모리카드를 임포트 하면서 생기는 자투리 시간에 간략하게라도 내가 직접 기사를 써본다. 바쁘면 구성이라도 짜본다. 교육 전에는 야마에만 집착했는데 지금은 구성에 관심중이다. 그리고 움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사실 영상의 가치가 없다고 무시했는데 무시할 게 아니더라... 더 좋은 영상의 콘텐츠를 만들려면 짤(?!)모니터는 이제 필수다. 여러모로 이런 좋은 기회의 교육을 제공해준 협회에 감사하다. 현업에서 필요한 것만 쏙쏙 골라서 일정 짜주시고 숙소부터 간식까지 모든 걸 챙겨주신 협회 관계자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아쉬운 점은 아니지만 초상권이나 저작권.. 등의 언론 윤리에 대한 교육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다. 양재혁 / 포항MBC 
    2014-08-13
  • 2014 저널리즘 아카데미 멀티형 영상취재기자 교육을 마치고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2014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에 2루수 안치홍선수가 탈락되었습니다. 탈락된 가장 큰 이유는 2루수비 한가지밖에 못한다는 점. 대신에 멀티 내야수비와 도루가 가능한 오재원 선수가 뽑혔죠. 그만큼 멀티능력이 중요하단 이야기인데, 한가지도 썩 잘 해내진 못하지만 다재다능한 능력을 꿈꿔오던 도중에 멀티형 카메라기자교육이 있었습니다. 내용을 보니 크게 8가지 주제가 있었고 기자의 멀티라면 당연히 해내야 할 방송기사작성법, 2013-2014 최고화두인 4K, 헬리캠 교육이 있었습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눈에 들어오는 교육 몇가지만 보고 참석한 제가 창피할 정도로 교육 모두가 정말 도움되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당장 기사를 쓴다?’, ‘리포트를 내가 쓰고 촬영도하고 편집도 한다?’교육도 받기전에 설레임에 앞서 김칫국부터 마시던 중 OBS이동민 부장님을 뵙고 알게 되었습니다. 파릇파릇한 신출내기가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을 때 부장님은 배움에 대한 열정과 도전으로 교육에 임하고 계셨습니다.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저 또한 열심히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12시뉴스 20분전..모두가 조금 일찍 점심식사를 나간사이 꼭 나가야하는 보도자료가 나왔다면? 라이브 연결하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현장에 취재기자가 없다면? 그런데 사무실과 현장에 있는 사람이 카메라기자 나밖에 없어!!!!’ 라는 가정에 이미 저의 교육열은 불타올랐고 교육이 끝난 후 회사에 돌아와서 보도자료를 보고 몰래 단신을 써보아 후배취재기자가 쓴 기사와 비교해보기도 했습니다. 교육 중 ‘섹시하게’ 기사를 썼다라는 말과 해당기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 혼자 연습을 해보던 중 너무 과도한 섹시함에 기사를 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TV리포팅 및 라이브연결 연습시간에는 뷰파인더로만 보면서 ‘잘할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당황하지?’하던 모습을 제가 그대로 하며 떨고 있는 모습에 많이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진 교육에는 DSLR을 이용한 타임랩스와 UHD시장의 현재, SNS를 통한 뉴스보도와 카메라기자의 역할까지.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지원, 지역에 있다는 핑계로 관심 갖지도, 잘 알지도 못한 내용을 배우면서 ‘신세계!’를 외친 제가 너무 창피했고 또 다시 배움에, 내 의지에 채찍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춘천 소양강에 있는 소양강처녀상에서 타임랩스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배운내용 모두 강원민방 카메라기자 선배님들께도 공유하고 설명 드렸습니다. 교육 후 자료를 다시 보내주신 SBS황인석 차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아직 갈길이 멀었음에도 그냥 날리면 되겠지 하던 헬리캠도 기본장치와 디바이스를 이해하고 법적조치와 사고시 보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먼저임을 배웠고, 타사에 비해 많이 늦었지만 헬리캠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보고드렸습니다. ‘멀티’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고, 지역이라 중앙보다 열악하다는 핑계로 잠시 머물러 있던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기사작성법은 물론이고 교육주제 하나하나가 시간이 너무 짧아 더 많이 알고싶고 배우고싶은 마음에 아쉬웠던 이틀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개선하고 더 좋은 내용의 교육을 할 것이라는 회장님의 말씀에 욕심쟁이 같이 또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멀티형 카메라기자 교육은 제 동기에게도, 언제생길지 모를 후배들에게도 카메라기자라면 꼭 받아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교육받으러 멀리서 오시고 아직까지도 단체 카톡방에 관심과 소식전해주시는 선배님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있을 협회 교육에도 많은 ‘강추’와 ‘좋아요’ 누르겠습니다.홍성백 / G1강원민방 
    2014-08-13
  • [특별기획-브라질 월드컵] 응원석 태극기가 펼쳐질 때의 뭉클함을 잊을 수 없어
    브라질은 멀다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한국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브라질이 아닐까합니다. 서울에서 땅을 끝까지 파면 반대쪽에 나오는 나라가 브라질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으니까요. 시차도 정확히 12시간이라서 손목시계의 시간을 변경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미국을 거쳐 가나 유럽을 거쳐 가나 걸리는 시간은 똑같습니다. 기름이 부족해서 한 번에 갈 수 있는 여객기도 없습니다. 환승시간을 제외한 비행시간만 24시간. 그렇습니다. 브라질은 정말 멉니다. 하지만 남미를 언제 또 가보겠습니까? 게다가 월드컵이라니! 쌈바~! 회사파업도 끝나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 24시간 비행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브라질은 위험하다 저에게 주어진 임무는 월드컵 외곽취재였습니다. 시쳇말로 사스마와리였죠. 이과수폭포도, 예수님 동상도, 아름다운 해변도, 아마존 밀림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브라질까지 와서도 시위대들 쫓아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선 사스마와리가 마음은 편하잖아요.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우리 팀은 다행히 별일 없었지만 KBS 모 예능 팀은 공원에서 촬영도중 무장 강도를 만나 ENG카메라를 빼앗겨 결국 귀국했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반대시위 또한 격해서 아침마다 시위대와 경찰들이 충돌하여 몇 명이 다쳤다는 뉴스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모 신문 사진기자가 묵던 호텔방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여 한국기자들이 대피하는 소동도 있었고요. 그렇습니다. 듣던 대로 브라질은 위험합니다. 브라질 공식 가이드북에서조차 강도를 만나면 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고 강도가 직접 돈을 꺼내갈 수 있도록 양손을 머리위로 들고 있으라고 할 정도니까요.브라질은 가난하다 그렇다면 브라질은 왜 치안이 좋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나친 빈부격차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극빈층들이 몰려 사는 마을을 ‘파벨라’라고 하는데요, 브라질 말로 ‘들꽃’이라는 뜻이랍니다. 낭만적이죠? 우리네 달동네처럼요. 하지만 그들의 삶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강력범죄가 주로 일어나는 동네가 바로 파벨라이고, ‘들꽃마을’ 출신들이 브라질에서 성공하려면 축구선수 아니면 갱스터, 두 가지 밖에 없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비운의 축구영웅 네이마르도 파벨라 출신입니다. 이것은 외곽취재팀이 취재하기 좋은 소재입니다. 다행히 현지코디가 축구선수라서 3다리정도 건너 아는 사람 소개로 파벨라 지역을 무사히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축구는 우리에게 ‘고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브라질 축구의 힘은 역설적으로 ‘가난함’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순간입니다.브라질은 넓다 외곽취재팀의 또 하나의 미션은 브라질 한인들과 붉은악마 원정응원단 취재였습니다. 상파울로 한인회는 한국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버스 응원대장정에 돌입했습니다. 왜 대장정이냐고요? 상파울로에서 한국경기가 열리는 쿠이아바까지 버스로 25시간 걸리는 일정이기 때문입니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옥수수 밭이 3시간동안 계속 되고, 옥수수 밭이 끝나면 또 3시간동안 목화밭이 펼쳐지고, 목화밭이 끝나면 또 3시간 동안 사탕수수 밭이 펼쳐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브라질은 정말 넓었습니다. 왕복3000km의 여정 속에서 한인들의 피로를 풀어준 것은 버스에 싣고 간 육O장 사발면과 김치였습니다. 라면은 정말 최고의 음식입니다. 라면 먹고 불꽃 응원!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합니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응원만큼은 우승후보! 비록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붉은 악마의 응원열기는 대단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로 대형현수막 응원이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풍경이지만, 실상은 불법이었습니다. 대형 현수막을 커다란 백팩에 최대한 작은 부피로 접어 넣어 응원석에 가져간 뒤, 애국가가 나올 때 다 같이 힘을 모아 펼치는 광경을 가까이에서 보니(촬영하니) 저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하지만 뭉클함도 잠시, 현수막을 걷자마자 FIFA에서 불법이라며 압수해가버리더군요. 그렇게 준비해간 북이며 꽹과리며, 확성기며 모두 다 압수당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태극전사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라면의 힘?)브라질에게 축구란? 브라질 사람들에게 놀란 점은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나라간의 경기임에도 관중석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각자 원하는 팀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었습니다. 축구강국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외곽취재를 담당하여 국가 대표 팀이나 유명 축구선수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일정과 동선 덕에 브라질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땀 흘리며 취재했던 다른 스포츠 선후배님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 함께 전합니다. Obrigado(고맙습니다)!이재섭 / KBS 보도영상국 
    2014-08-13
  • [특별기획-브라질월드컵] 4년 후 승리의 포효를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또 다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했다. 한국이 벨기에를 상대로 대략득점을 한다면 알제리 러시아전의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도 가능한 상황이었다.한국 선수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혼신을 다했다. 결과는 0 대 1 패배. 경기가 끝나고 대표팀 막내 손흥민 선수는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  6월 9일 막 여름 더위가 시작되려는 한국을 뒤로하고 브라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브라질까지는 장장 24시간에 이르는 긴 비행이었다. 하지만 축구와 정열의 나라 브라질에 대한 설렘은 모든 피로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한국대표팀 베이스 캠프 이과수는 작고 조용한 도시였다.하지만 이과수도 축구의 나라 브라질이었다. 대표팀의 이과수 입성은 작은 도시에 월드컵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수많은 현지인과 한국 교민들은 대표팀 공개훈련을 찾아 응원을 하며 월드컵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훈련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도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첫 경기 러시아전이 기다려졌다.  러시아와의 1차전이 열리는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날 경기장. 경기 시작 전부터 수 만명에 이르는 관중들이 뱉어내는 함성소리로 경기장은 열기로 가득찼다. 그곳에서 나는 경기를 보는 대신 붉은 악마를 마주봐야 했다. 붉은 악마의 응원전을 취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응원단의 표정은 선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후반전 갑자기 붉은 악마들이 서로 끌어안으며 괴성을 질렀다. 이근호 선수의 골. 응원단의 표정을 담느라 골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확인할 여력도 없었다. 결국 호텔에서 천금같은 이근호 선수의 골을 확인해야만 했다. 승리에 대한 희망도 잠시, 러시아의 동점골이 들어갔고 붉은 악마들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1대 1 무승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잘 싸웠다.  1차전을 마치고 베이스캠프 이과수에 복귀한 대표팀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승리는 아니었지만, 경기결과에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훈련 중에도 웃음이 넘쳤다. 나도 선수들의 흥겨운 분위기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도 며칠 후 있을 참담한 결과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알제리전은 그야말로 참사였다. 전반에만 3골을 먹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초반부터 우왕좌왕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골대 바로 뒤 알제리 응원단 근처에서 경기를 취재하고 있었다. 집중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도 답답했다. 정말 정신차리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알제리 응원단 중 몇몇은 한국 취재진인 나를 알아보고 비아냥 대는 듯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후반전 손흥민과 구자철이 만회골을 넣었을때는 나도 모르게 취재는 잠시 접어두고 한국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추가 1실점으로 경기는 4 대 2로 끝났다. 16강에 대한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승리를 바랐고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선수들도 그랬겠지만 취재진은 나 또한 너무나 아쉬었다.   이과수에 복귀한 대표팀 분위기는 1차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16강 진출은 기적이 되었다. 대표팀의 힘이 빠져있었고, 취재진도 왠지 기운이 없어보였다.  결국 대표팀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16강은 좌절됐다. 한달가량 대표팀과 붙어다니면서 꼭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랐다. 벨기에전 패배 후 아쉬움과 눈물을 보이는 선수들이 화면에 나올 때 끝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표팀도 취재진도 짐을 싸고 복귀를 준비해야 했다.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한국 대표팀에게 씻지 못할 악몽으로 남았다. 그곳에서 취재를 하던 나 또한 한 사람으로서 크게 실망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반드시 2014년의 치욕을 씻고 한국팀이 선전하기를 기원한다. 한없이 눈물만 흘리던 손흥민 선수가 4년 후 두 손 번쩍 들며 승리의 포효를 하는 기분좋은 상상을 해본다.      이종혁 / MBC 사회 2부 
    2014-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