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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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최고위급 3명 전격 남한 방문 취재기 - 좋을 땐 당장 통일 될 것 같은 느낌
    좋을 땐 당장 통일 될 것 같은 느낌!  토요일 여유로운 주말 근무의 시작을 충격과 놀람으로 몰고간 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다음가는 실세가,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동시에 남한으로 입국한다는 속보였다. 통일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비서, 김양건 대남비서 3명이 지금 남한으로 들어온다는 뉴스였다.TVU와 카메라 장비를 챙겨 시시각각 진전되는 속보를 뒤로 하고 서둘러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입국 게이트를 확인해서 서쪽 주차장에 대기하니, 속속 타 언론사들이 도착했고, 오래지 않아 황병서 국장, 최룡해 비서, 김양건 대남비서가 경호원을 대동하고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개성, 금강산 출장 다니며 북한 사람을 많이 접했지만, 북한 최고위 3사람을 가까이서 보니 그 느낌이 왠지 신선했다. 그도그럴것이, 예전과 다르게 남북한이 서로 잡아먹을듯이 으르렁거리는 이때에,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남한을 방문했으니, 당장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정상회담도 이루어져 통일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하는 성급한 생각도 들 정도였다.공항과 티타임 장소, 오찬 장소였던 영빈관 식당, 아시안 게임 선수촌 등으로 이동할 때에는, 수많은 언론사들이 취재 경쟁을 벌이며, TVU로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하고, 일거수일투족 그들의 행선지와 만나는 남한측 인사들을 경쟁적으로 취재하는 모습도 진풍경이었다. 그들이 탄 차량이 빠른 속도로 이동함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팔로우 할때는 근접하거나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조금은 위험하게 촬영해서 그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동무들, 살살 하라우!"오찬장소였던 영빈관(처음에는 청와대에 간줄 알았는데, 음식점 이름이 영.빈.관.ㅋ) 주변에는 경계선 경찰들 만큼이나 인근 주민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그들에게는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관심이 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주변 어떤 아저씨는 황병서 정치국장이 조카뻘이라며 믿지 못할 얘기도 하고, 아버지 세대들은 그렇게 교육받았을 법한 북괴 이야기를 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러 온 것이냐는 등, 궁금해서 이것저것 묻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오찬이 끝나고 나오는 북한의 그 세사람이 일반 시민들이 보기엔 참으로 신기하게 보였으리라.늦은 밤까지 라이브 중계로 팔로우를 하며 그날 하루의 뉴스를 모두 이 뉴스 하나로만 소진하기에 국민적 관심사는 어느정도였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언론사들만 호들갑을 떨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은 당장 통일될 것 같은 화해 무드에 한껏 가슴이 부풀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북한 고위급 인사가 3명이나 전격적으로 남한을 방문한 것도 특이한 일이지만, 그들이 통일부장관이나 청와대 안보수석. 총리와 흔쾌히 악수하고, 껄껄 웃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통일이 다가오는 것 아닌가 하는 기분도 많이 들었다. 그간 많은 왕래가 있었지만 요즘의 경직된 남북한 관계에서, 정상회담 다음 가는 중요한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왔으니 남북 관계를 돌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하지만, 그들이 돌아간 이후에 들려오는 뉴스는 어쩔수 없는 남북관계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휴전선과 NLL에서의 충돌, 전단 날리기를 핑계로 한 총격 사건 등. 김정은 다음가는 실세들이 몰려와도 남북관계는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좋을 땐 당장 통일될 것 같은 느낌이지만, 돌아서고 나면 여전히 두 국가 체제로 굳혀져 가는 현실. 통일은 언제 실현될 수 있을까.윤원식 / YTN 영상취재1부 
    2014-11-17
  • 국감취재기 - 고난의 연속이었던 2014 국감
    고난의 연속이었던 2014 국감  지난 16일 오후, 가을의 선선함에도 국회의 한 상임위장은 열기가 가득했다. 온 국민을 비탄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등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는 이날 농해수위 국정감사에는 전 해경 진도 VTS센터장과 세월호 1, 2등 항해사,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123정 김정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되어있어 관심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 이미 점심시간부터 상임위장 앞에는 각 언론사에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트라이포드와 장비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상임위 시작 30분 전, 문이 열리고 카메라기자들과 사진기자들이 앞을 다투며 뛰어 들어갔고, 가장 좋은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트라이포드와 휴대용 사다리가 가득 자리를 잡았다. 시작 전 증인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에 잔뜩 긴장하며 뷰파인더를 통해 증인들을 볼 수 있었다. 팍팍 터지는 플래시에 얼굴의 초점이 맞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셨고 언제나 그랬듯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국회 의원들의 질의와 증인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떠올랐다. 4월의 그 차가운 바다에서 죄 없이 스러져간 아이들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떤 취재 현장에서도 냉철함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카메라기자의 덕목이었지만, 증인으로 불려 나온 그들을 보자 마음속에서 원망 섞인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당신들 왜 그렇게 밖에 못 한 거야? 도대체 왜?” 고성이 오가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유가족 몇 분이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소리도 치며 상임위장 안은 그야말로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 특히 여야 의원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가장 먼저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123정 김정장과 세월호 1등 항해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여야 의원들은 김 정장에게 당시 퇴선 명령도 하지 않고, 선내 진입 명령을 받고도 이행하는 않은 데 대해 따져 물었다. 이에 김정장은 “상황이 긴박했고 당황했다. 당시 상황에서 구조 요청을 한 사람들은 다 구조했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속에서 육두문자로 퍼부어주고 싶은 생각이 날 찰라.... 유가족들이 소리를 지르고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한편 1등 항해사는 “자기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는 발언을 하기도 해서 모든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카메라 기자가 보는 국정감사카메라 기자가 겪어야 하는 국정감사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다. 인간 CCTV가 되어 종일 영혼 잃은 패닝(panning)만 해야 하기에 자기와의 싸움을 하게 되고 결국 지고 만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맘 놓고 쉴 시간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감은 떨어지고 나라는 자아는 이미 기계에 불과해진다. 다리는 아프고 머리는 멍해지고 내일도 계속이구나... 패닉(panic)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기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나만을 위해 여기 서있는 것이 아니기에.... 앎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렉(rec) 버튼을 누르고 있다.오랜 준비를 거쳐 국회의원들과 마주한 자리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자료를 준비해왔지만 "네" 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허무하게 국정감사를 마쳐야만 하는 기관들도 있다.홍종수 / SBS 영상취재팀 
    2014-11-17
  • <특별기획> 카메라기자의 심리적 외상에 대하여
    카메라기자의 심리적 외상에 대하여세월호 참사의 생채기가 가시기엔 여전히 이른 시기이다. 협회에서는 재난보도 준칙 마련 및 재난보도 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카메라기자의 심리적 외상과 정신적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점진적으로 방안을 마련했다. 심리적 외상과 트라우마 심리적 외상, 트라우마라는 것의 정의를 내리자면 개인의 죽음이나 죽음의 위협, 신체적 상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 혹은 폭력적인 사건에 노출되서 생기는 심리적인 상처를 심리적 외상 트라우마라고 정의를 내린다.  외상이 어떻게 생기는지 되짚어 올라가 보면 외상성 사건들로부터 시작이 된다. 외상성 사건들이라는 것은 전쟁, 천재지변, 화재, 비행기 추락과 대형선박사고 등 이런 부류들의 사고들이 죽음과 상해를 가져올 수 있고 인간에게 굉장한 정신적 충격을 가하는 사건들을 외상의 근원이라고 일컫고 외상성 사건 이라고 지칭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중요한 증상은 세 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일어난 사건의 기억들이 계속 끊임없이 떠오른다던지, 혹은 악몽을 꾸는 것. 그와 더불어 지나간 사건이 지금 당장 발생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들, 재경험을 하게끔 하는 증상이 그 중 하나이다. 두번째로는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그런 회피의 증상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과각성의 증상이다. 잠을 이룰 수 없고 항상 심리적으로 신경이 곤두세워 있고 예민하고 불안한 증세를 과각성이라고 명칭한다. 앞서 언급한 이런 세 가지 증상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가장 전형적인 증상이다.  가장 많은 PTSD를 호소한 카메라기자숙명여대 배정근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그리고 카메라기자들을 포함한 세월호 취재집단의 심리적 외상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3개 직종 사이에서 외상 증상에는 유의미한 차이는 없으나 직종 별 감정 경험 차이는 모든 항목에서 카메라기자가 가장 높았다. 부정적 경험을 한 비율에서도 카메라기자가 다른 집단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이는 절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가능하게 하는 결과이며, 세부 유형에서도 다른 직종과 달리 현저하게 편차를 나타냈다. 심리적 외상을 부정하는 언론인들이러한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기자들을 더불어 언론인들은 트라우마에 대해서 부정한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본인이 취재한 사건과 자신을 관능적으로 돌릴 수 있다고 자각하고 그것이 바로 언론의 객관적인 보도 원칙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제한된 시간 안에 보도를 해야되기 때문에 그런 외상에 대해서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이다. 그와 더불어 마초적 직업관도 기자들의 외상을 악화시키는 데 한 몫 한다. 본인이 외상을 입었고 얘기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노출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 외상을 애써 부정하고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인들의 직업적 특성 상 심리적 외상에 취약한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언론계내에서도 이런 것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Solution 외상성 사건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방안은 이런 것들이 있다. 대형 사건 사고들을 경험 할 때 격렬하고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또한 외상성 사건을 취재하고 난 이후에 그 사건을 취재하면서 겪었던 감정, 겪었던 이야기 등을 제 3자에게 이야기 하는 것(Re-briefing)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자신만의 여가생활, 여유를 가지고 심리적 외상을 완화할 수 있도록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참조: 숙명여자대학교 배정근 교수 재난보도 연구분과 및 연구결과장유진 기자   
    2014-11-17
  • <특별기고> '영상역사'의 모색과 영상자료의 중요성
     ‘영상역사’의 모색과 영상자료의 중요성  역사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의 변화 원인과 결과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이해에 필요한 준거점들을 마련하는 것을 주된 과업으로 삼고 있다. 변화의 인과관계 분석을 중시하는 태도는 역사학을 사회과학의 일부분으로 여기게도 하고, 이러한 태도는 때로 특정 변수로 역사의 전개를 다 해명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입장으로 경도되기도 했다. 역사를 특정 요인이나 변수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역사학은 아마도 오래전에 정치학이나 경제학과 같은 분과학문 속에 흡수되어 없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역사는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과 복합적인 관계들이 맞물리며 전개되어 왔다.  역사를 분석적 또는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의도하지 않게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요한 부분들을 간과하거나 경시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들의 정서적 영역을 들 수 있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기쁨, 슬픔, 분노 그리고 이를 규제하거나 표현하는 윤리나 관습 등은 생활세계의 미시적 영역뿐만 아니라 구조적 격변을 가져온 사건들의 전개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다. 정서적 측면의 이해는 과거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 형성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역사학에서 영상자료를 특히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영상자료의 중요성은 기록의 저장과 전달 수단이라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영상자료가 지닌 중요성과 장점은 역시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 교수가 강조했듯이 영상자료가 과거에서 현재로 다양한 의미를 송신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직접 대면하여 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자료라는 데 있다.   이처럼 영상자료가 지닌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한국역사학계는 영상자료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2천 년대 초반에 역사학계에서도 한국사회가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주목하며 ‘영상역사’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학계에서 ‘영상역사’는 역사 드라마의 진실성을 논하는 차원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맞물린 결과이다. 영상을 ‘허구’로 보거나 문헌사료의 보완자료일 뿐이라고 여기는 일부 학자들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역사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는 영상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정리, 그리고 영상자료를 분석하기 위한 역사연구 방법론의 모색 등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한데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학 연구소 및 국가기관 등에 의해 해외에 소재한 한국근현대사 관련 영상자료들이 조사되었고, 미국, 유럽, 일본 등에 소재한 주요한 뉴스릴과 문화·선전영화 영상들이 수집 정리되고 있다. 또한 영상자료에 관한 심화된 아카이빙을 DB로 축적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영상역사’의 본격적인 진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영상자료들이 발굴과 수집과 그리고 아카이빙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해외 각국에 소장된 전쟁관련 자료 및 북한관련 영상, 재외 한인 관련 영상 등 해외자료가 지속적으로 발굴, 수집, 정리되어야 한다. 또한 국내 방송사들이 소장하고 있거나 생산한 영상자료도 최대한 접근성과 활용도를 넓혀야 하는 과제도 빼놓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자료가 곧 사료가 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영상자료를 수집하고 DB를 구축한 다해도 이를 읽어낼 수 있는 역사학적 관점과 방법론이 없으면 그저 무용지물에 불과할 뿐이다. 역사이해를 위한 실마리나 흔적을 찾는 역사학자들은 영상의 예술적 완성도를 주목하는 영상 전공자들과 달리 완성된 영상물뿐만 아니라 미편집 영상물 또는 폐기된 영상물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영상자료를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영상자료가 만들어지는 과정 즉, 촬영에서부터 편집까지 과정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사실상 전무하다. 이는 문헌사료 취급과 분석 방법만을 훈련 받아온 역사학자들이 지닌 가장 큰 한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영상역사’의 방법론을 마련해 나가기 위해서는 역사학, 영화학, 사회학, 문학 등의 학제 간 협력이 필요하며, 특히 영상촬영을 담당하는 분들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영상역사 연구는 하나의 컷에서부터 에피소드, 나아가 장편 기록영화의 전체를 촬영한 촬영자의 관점을 정확히 읽는 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상역사’는 영상자료의 특성상 역사학자들만의 고유한 영역이 될 수 없다. 새로운 학문영역이라 할 수 있는 영상을 통한 역사쓰기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동참을 부탁드린다.         허은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2014-11-17
  • 아시안게임취재기 - 인천, 아쉬움만 남았던 15일
    인천, 아쉬움만 남았던 15일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대회 시작 전 출입용 AD카드를 본인이 직접 방문하여 ‘활성화’해야 한다기에 지정된 장소중 하나인 주경기장을 찾았다. 어차피 출입 시마다 사진과 대조할 텐데, 뭔 ‘활성화’인가?! 테러위협으로 보안을 강화하고자 직접 신원을 한 번 더 확인해야 된단다. ‘그래, 귀찮지만 G20회의 때도 그랬고... 뭐, 협조해야지’ 하지만 광활한 주경기장 내, 외부를 도보와 차량을 번갈아가며 두어 바퀴 돌다시피 뒤져보아도 활성화를 해준다는 등록센터를 안내하는 표지판은 없었으며, 만나는 안내요원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였다. 30여분을 헤맨 끝에 찾은 등록센터는 경기장 외곽에 컨테이너박스만한 크기로 나를 비웃듯 숨어있었다. 사무실 하나 찾는 일 조차 숨은 보물찾기의 전통놀이문화와 결합시켜 하나의 스포츠로 승화시킨 조직위의 능력에 감탄하며 들어선 등록센터. 담당요원에게 정말 찾기 힘들었노라고, ‘제발 곳곳에 안내문구 몇 개 붙여달라’고 하니, 돌아오는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저희도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찾아왔어요”. “아...네...” 기자에게도 스포츠정신을 함양하는 조직위의 운영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양궁 컴파운드 결승이 있었던 계양경기장. 믹스드존에서 자리를 잡고 선수들을 기다리는 내게 운영요원이 와서 말한다. “선수들 인터뷰는 여기서 안하고 2층 프레스룸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합니다.” 뭔가 이상했지만 그리한다고 하니 자리를 옮겼다. 한참이 지났을까. 분명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도 없다. 뭔가 잘못된게 아닐까? 이런 쌩한 느낌은 예전에 ‘물먹던’ 바로 그 기분. 아니나 다를까, 아까 그 운영요원이 다급하게 와서 말한다. “죄송하지만 믹스드존 인터뷰가 맞다”고, “다시 내려가셔야 합니다”. ‘지금 누굴 X개 훈련시키냐’고 항의할 시간조차 없었다. 말을 듣자마자 우사인 볼트로 빙의하여 다시 뛰어 내려간 믹스드존에는 다행히 인터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송출을 위해 또 프레스룸으로 뛰어올라갔다. 투혼을 불사르며 겨우 송출을 마치자마자 전날 과음의 여파가 신호를 보낸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취재하다가 결국 구토까지 하는 나를 보고 외신 사진기자들이 감탄했으리라. ‘한국의 카메라기자는 취재도 마라톤같이 죽을힘을 다하는구나! 오죽했으면 송출을 마치자마자 저렇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본의 아니게 한국 기자정신을 외신들 앞에 선보이게 해주신 조직위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취재현장에서도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관중석 사이에 위치한 ENG-ZONE은 원칙상으로는 일반 관중의 출입이 통제되거나 허용되더라도 잠깐의 이동 정도만이 허용되어야 했다. 하지만 중간에 출입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은 AD카드가 없는 일반 관중들을 제지하는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했고, 중간에 몰려든 관중들과 함께 어우러져 경기를 관람하기에 바빴다. 결국 ENG존 포인트간 통로는 자원봉사자와 관중, 취재진이 뒤섞이는 바람에 너무 비좁아진 나머지 장비를 가지고 이동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조직위의 운영미숙은 경기 취재의 마지막인 믹스드존에서도 드러났다. 그중 경험했던 최악의 경우는 축구 4강전, 對 태국전이었다. 밀려드는 몇몇 태국 기자들은 자리를 잡지 못한 나머지, 한국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 취재진의 카메라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자국 선수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이 곧 나온다, 취재해야 하니 ENG존을 침범하지 말고 다른 곳에서 하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운영요원들에게 제지를 부탁하였으나 그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하고 쩔쩔매기만 했다.  취재구역의 관리가 이 정도였으니 기자회견장에 ENG를 위한 단상을 설치해준 것조차 고마워해야 했을까. 그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드는 기자회견장에서, ENG단상 뒤에 유선 오디오 Out 박스를 설치해주기를 바랬던 것은 지나친 바램이었을까. 결국 묘안을 짜낸 나는 기자회견장 스피커의 뒷부분에 있는 Out단자 하나를 발견하고 오디오 라인을 연결하였으나, 이후에는 이것을 목격한 한국, 일본 취재진들이 앞 다투어 이 Out단자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45억 아시아인의 축제’. 이번 아시안게임 관련 기사마다 붙는 수식어였다. 아시안게임 취재 후기를 요청받고 생각해보았다. 과연 축제였는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써달라는 말에 나는 도무지 좋았던 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에 없는 좋은 말만 늘어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혹여 관계자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무척이나 섭섭하겠지만 할 수 없다. 진작에 잘하시던가. 조직위 기자회견장에서 ‘아시아 운동회’라는 비아냥거림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매 경기마다, 경기 취재 순간순간마다 아쉬움을 넘어 분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끝난 대회, 인천 조직위에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 관계자들에게 한번쯤은 이 글이 눈에 띄기를 바라본다. 외신들이 3년여 뒤에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이 나라 국제대회 운영이 조금은 나아져 있어야하지 않겠는가!이성재 / MBC 보도국 사회2부 
    2014-11-17
  • 아시안게임 취재기 - 진정한 축제가 간절하다
    진정한 축제가 간절하다   우리사회가 지금 축제를 축제답게 즐길 수 있는 여건인가   스포츠팀에 오자마자 인천 아시안게임 취재명단에 이름이 들어갔을 때 설렘이나 기대는 크지 않았다. 폐막 이후의 끔찍한 그림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에. 경기장, 시설들은 대회가 끝나면 처치곤란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잔뜩 끌어다쓴 대회비용에 대한 빚이 남을 것이다. 끔직하다.  대한민국이 과연 그런 국제적 축제를 열고 즐길 만한 여유가 있는 사회인가?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 낳는 나라가 아니었나? 고향에 계신 부모님 얼굴을 1년에 한번 보는 것도 어려운, 아들딸 데리고 놀이공원 한번 가는 게 힘든, 몸 부서져라 일해도 병만 생기고 빚만 늘어가는, 그래서 끝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 숫자가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OECD기준) 나라가 아니었나? 상황이 이런데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면 ‘어머니, 여보, 아들아, 맥주 한잔 하면서 북한하고 인도 선수들이 맞붙는 축구 경기 한번 보러갑시다!’라고 말하게 될까? 아니다. 여기는 엄연히, 그럴 시간 있으면 얼른 씻고 잠이나 십 분 더 자고 싶은 사람들의 나라이다.  대한민국은 축제를 즐길 여유가 없다. 자조적이지만 그렇다. (여담인데, 국민건강증진 대책이라면서 담뱃값을 인상한다는데 정치인들이여,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늘리고 최저임금을 올려라! 노동시간과 노동조건, 여가와 임금 수준 등이 국민보건과 가장 밀접한 요인들 아닌가요? 유럽사람들, 담배 안 펴서 건강한 건가요?)빈곤 속에 더 큰 빈곤,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이 시작됐을 때 그러한 자조는 사실로 입증됐다. 관중석은 몇몇 빅경기를 제외하고는 대개 텅텅 비었다. 주최측은 안 팔리는 표를 공무원 조직에 강매해야만 했다. 아니, 연금도 깎을 거라면서 왜 이런 일엔 애꿎은 공무원을 동원해? 나는 매일 두 경기 혹은 세 경기씩 맡았는데 어떤 날은 관중이 너무 없어서 취재를 마치고 남아 (피곤함을 무릅쓰고) 기꺼이 한 명의 관객이 돼야 하곤 했다. 개최국 시민으로서 민망하기도 하고 선수들에게 미안해서. 시상식은 더했다. 태권도 경기에 갔을 때, 대한민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그나마 관중의 3분의 1정도는 시상식까지 남아 있는데 대한민국의 메달이 없는 날은 관객 없는 시상식을 거행해야 했다. 이런.  그리고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이 시작됐다. 정기휴가 때문에 대회 일부만 취재하긴 했지만, 내가 목격한 장애인아시안게임은 한마디로 빈곤 속의 더 큰 빈곤함 그 자체였다. 아시안게임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관객에게도 언론에도 장애인아시안게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축제였다. 아시안게임 때 촬영포인트를 두고 정말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었던 (그 사람은 나더러 ‘아저씨 여기서 나가세요. 아저씨가 KBS든 뭐든 여기 들어올 권리는 없어요!’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사람이다) 보안담당자가 장애인아시안게임 때 보니 보안 일은 제쳐두고 관객이 되어 한쪽에서 응원전을 펼치고 있을 정도였으니! 상황이 그러니 분위기가 무척 가족적(?)이긴 했다.삶의 여가 회복이 먼저, 축제는 그 다음에 하자고 말하고 싶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 취재를 통해서 나는 다시금 스포츠라는 인간의 행위에서 느껴지는 희열, 육체의 사점이 주는 극적인 감동을 소멸시키는 자본주의의 기계성과 냉혈을 보았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분명 열심히 사는데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여가도 돈도 없다. 물론 일부는 충분히 행복하다. 지나칠 정도로. 그게 오늘 우리사회 비극의 본질이다.  우리는 정신과 영혼의 풍요로움을 위해, 행복한 삶의 회복을 위해 자본주의에 맞서야 한다. 현재를 옹호하고 미화시키는 모든 이즘과 권력, 관습, 그리고 시스템에 저항해야 한다. 좋은 사회와 나쁜 사회의 간극은 바로 거기에 있다. 소비주의와 효율성, 시장 만능의 이기주의와 차가움에 반기를 들 줄 아는 교양과 지성, 인간애가 필요하다. 충분히 싸우고 나서, 반인간과 반민주주의, 몰여가, 낮은 임금과 같은 질기고 막강한 상대와 싸워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어놓고 나서, 아시안게임 다시 한번 했으면 좋겠다. 진정한 축제를! 물론 새것 말고 새로 단장한 헌 경기장에서. 그렇지만 관중석은 꽉 채우고. 비인기 종목 경기에 몰려가서 선수들이 깜짝 놀라게. ‘이 나라는 정말 살 만한 나라구나! 부럽다!’김정은 / KBS 보도영상국 영상취재부 
    2014-11-17
  • 출입처 탐방 -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뉴스가 되는 곳
    국회 출입처 탐방  지난 호 국방부에 이어 대한민국의 입법기관, 국회 출입처 기자들을 만나보았다. 국정감사가 끝나지 얼마 안 된 국회는 그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 여전히 많은 인파들로 분주했다. 국회 카메라기자실을 방문하고 왔다. Q.국회 출입처의 특징?타 출입처와 비교해서 보면 제일 다르다고 생각 하는 것은 국회는 출입기자 6개사 24명의 카메라 기자가 항상 상주하고 있다. 이 곳은 출입처 중에 제일 체계적이고 조직화 되서 20명이 국회 전반적인 취재를 커버한다. 전체적으로 국회 전반의 취재를 한다. 국회라는 곳 자체가 대한민국의 입법기관이고 법을 제정하는 곳이라 중요한 이슈들이 많다. 특히 국회의원 밀착취재를 할 때 느껴지는 현장감과 생동감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적 흐름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국회이다.Q. 국회 취재하면서 어려운 점? 정치인들을 하염없이 쫓아다녀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뉴스가 되는 곳이니깐 항상 예의주시해야 한다. 대부분 미리 짜여져 있는 일정대로 움직이지만, 예외적인 부분이 항상 있어서 일정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허겁지겁 쫓아다닐 때도 있다. 또 정치적 사안,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무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무 소득 없이 허탕만 치는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밀착취재로 정의할 수 있지만 가끔 하염없는 기다림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긴 기다림 끝에 중요한 멘트나 뉴스거리를 취재하고 나면 정말 큰 성취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또 다른 고충으로는 너무 협소한 공간에 많은 취재진들이 있다는 것이다. 종편이 생기면서 부피가 커진 카메라, 트라이포드가 더욱 많아졌고 국회에 있는 사진기자들도 굉장히 많다. 간혹 가다 부딪치는 경우가 생기면 정말 힘들다. 아시다시피 카메라기자들은 풀을 해서 제약을 두지만, 사진 기자들은 풀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방송사, 신문사, 인터넷, 종편 등 많은 매체들을 포함해 취재를 할 때면 힘든 것 같다.  Q. 선거 취재? 선거 때 취재를 할 때는 본인이 맡은 후보와 한 몸이 돼서 1분 1초를 쫓아다녀야 한다. 이번년도는 지방선거, 보궐선거, 당 대표 선거가 큰 이벤트였다. (지방선거와 보궐선거는 야당의 참패로 끝났지만) 그 이후 일련의 사태들이 마무리가 되면서 정리가 되는 수순이었다. 취재할 때 가장 유의하여 하는 것은 여당과 야당 대립하는 곳 상황에서 그림 하나하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선거 때는 심지어 화면 사이즈까지 똑같이 비례하게 맞춘다. 선거 유세때 한 쪽에서 시장을 가면 이 쪽도 시장을 가야 한다. 장면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써서 맞춰줘야 한다. 모두 따라다니면서 동원 취재를 할 순 없지만 최대한 비슷하게 아주 공정하게 취재를 해야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치열한 시기이기 때문에 최대한 공정성과 형평성에 맞춰 그림을 찍는다. 당 쪽에서도 굉장히 민감해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쩔 때는 클레임이 들어오기도 한다. Q. 국회의원들이랑 친할 것 같다. 카메라기자들을 가장 많이 의식하고 존재를 인정해주는 곳이 국회이다. 국회의원들은 카메라기자들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인정한다. 자신들의 의정활동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영상’의 파급력이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기자들은 정치색 드러낼 수 없다. 그림을 갖다 몰입시키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된다. 그림을 한 쪽이 유리하게 찍는 것, 혹은 불리하게 찍는 것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일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고 항상 신경을 쓴다. 하지만 이런 점은 있다. 이왕이면 같이 생활하고 같이 뛴 후보가 이겨주면 기분이 좋다. 한 달 가까이 같이 생활하고 힘들 때,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니까. 같이 취재다니고 고생한 후보들이 이겨주면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다. 장유진 / 취재 및 정리
    2014-11-17
  • <방종혁의 씨네노트>혼란스런 시대를 산 작가의 내면을 기록하는 영화 - 황금시...
    <황금시대>-혼란스런 시대를 산 작가의 내면을 기록하는 영화  영화의 첫 장면은 죽은 사람의 독백이다.“나는 1911년 헤이룽장 해란에서 태어나 1942년 홍콩에서 병원의 임시 병상에서 죽었다.” 영화 ‘황금시대’는 위 독백의 주인공 샤오홍의 일대기를 그린다. 이 작품은 심각하게 가부장적인, 그렇지만 당시 중국 동북지방의 평범한 가부장일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두 번이나 가출하고, 여관에서 굶어죽기 직전에 편지 보낸 신문사에서 만난 연인인 샤오쥔의 도움으로 작가가 된 이후, 루쉰과 같은 대가들과 교류하면서 중국 문단 중심에서 활약하다 국공내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시대를 만나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홍콩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작가인 샤오홍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샤오홍의 마음에 새겨준 고향의 이미지를 따라 전개된다.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던 고향은 눈에 덮인 북국, 서리가 낀 창백한 유리, 온몸을 감고 움직이기 힘들게 만든 두꺼운 옷, 여관에서도 감출 수 없는 입김, 연인의 끈 없는 구두를 위해 자신의 신발에서 끈을 잘라 매어주는 가난 등으로 채워진 추운 나라이다. 하지만 고향집 마당의 꽃, 루쉰의 집에서 본 푸른 화초, 거기에서 그녀가 입었던 붉은 상의, 우한에서의 결혼식, 가난한 노동자들의 속을 채워주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국물 요리 등 힘들게 산 생애에서도 화사한 봄날과 여름이 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풍상을 겪고 살아온 작가를 그리기 위해 허안화 감독은 색다르게 접근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죽은 주인공이 자신의 생몰일을 말하게 하고, 주변의 인물들이 순간순간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며 자신이 봤던 샤오홍을 증언한다. 전체가 생애의 순서대로 진행되다가도 지인의 입을 통해, 때때로 샤오홍의 입을 통해 직전에 관객이 봤던 장면들을 설명하게 만드는 유사 다큐멘터리적인 장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감독은 그녀가 생전에 발표했던 ‘생사의 장’, ‘후란강 이야기’ 등에서 한 부분들을 인용하여 관련 장면에서 관객들이 그녀의 마음 한 부분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지닌 독특한 장치들이 관객에게 주인공의 완전한 내면을 알게 해 주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관객들은 그녀의 전 생애에 걸친 고난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지만, 그 시대의 샤오홍처럼 영화를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영화 중간에 동료 작가들이 항일전쟁시기 참여 문학으로 빠져들거나, 실제로 총을 잡고 전선으로 달려갈 때 그녀는 자신이 가진 문학의 의미를 고수하느라 항상 동료들과 어긋난다. 그녀의 유일한 멘토이자 지음(知音)이었던 루쉰의 죽음 이후 이와 같은 고독은 점점 심해진다. 그녀가 평생을 사랑했던 샤오쥔도, 그녀의 유일한 법적 배우자인 두완무도, 그와 함께 그녀의 임종을 지켰던 전기 작가도 온전히 이해시키지 못한 채 그녀는 홍콩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이와 같은 불이해는 긴 러닝 타임과 더불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샤오홍의 일생에 바친 탕웨이의 탁월한 연기와 영화에 인용된 그녀의 서늘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관객은 미처 알지 못했던 순수한 내면을 지닌 인간을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2014-11-17
  • [나의 취미] 아빠의 인형놀이 - 방송국 장난감의 행복
    아빠의 인형놀이 - 방송국 장난감의 행복  “여보, 나 장난감 좀 살게.”“응. 지유 장난감 벌써 사게? 얜 아직 장난감이 뭔지도 모를텐데?”“아니. 그게 아니라 내꺼...”“응????” 나를 닮은 따님이 태어나신지 한 달쯤 되었을 때 한 침대를 쓰는 여자사람과 나눈 대화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닮은 무언가를 또 찾기 시작했다. 둘째를 갖기엔 너무 일러서 였을까. 이번엔 나를 닮은 장난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내가 든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있었던 부인님과의 기억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 집 안 어딘가에 세워두고 싶었다.  어떤 종류의 장난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아이를 막론하고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L사의 블록 장난감을 시작으로 그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O사의 블록 장난감, 실제 사람과 거의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각종 크기의 피규어까지. 어렸을 적에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본 기억은 많지 않은 아빠의 인형놀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카메라를 든 인형과 마이크를 든 인형이 세트로 있는 것이 1순위였다. 국내외 장난감 관련 홈페이지며 동호회 사이트들을 며칠동안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씩 찾은 장난감들은 잊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에 사진으로 저장해뒀다. 일단 마트에 가서 당장 살 수 있는 것들은 제쳐두고,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제품이나 국내에 있더라도 단종되어서 쉽게 구하기 힘든 제품을 위주로 구매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국산 장난감 O사의 블록 제품. ‘ENG카메라를 든 인형이 있고, 마이크를 든 여자 인형도 있고, 세트, 조명, 중계카메라, 주조정실에 중계차까지...우와...이거다...O사에서 만든 방송국 장난감이라 이름도 OBS다...내 운명의 장난감이야...’ 하지만 이미 10년 전에 단종된 상품이란걸 알게 됐고, 중고물품을 잔뜩 모아놓은 그 인터넷 카페를 며칠간 지켜보던 어느날!  ‘방송국 장난감 팝니다.’ 곧장 연락을 취하고 대구에 있다는 판매자와 가격을 협상한 뒤 받아본 장난감은 정말 대만족이었다. 방송국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모습이며, 카메라를 든 남자 인형과 마이크를 든 여자 인형까지. 부인님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장난감! 조립하는 내내 10년이 넘은 장난감 블록의 부품이 온전히 남아있을까 하는 걱정은 점점 사라져 갔다. 오히려 완성 후에도 남은 블록 몇 개.. 오랜 시간 잘 보관해 준 판매자에게도 감사했다. 그리고 내 장난감의 전시를 위해 테이블의 한 쪽을 내어준 부인님께도 감사를 전한다.  나의 다음 워너비 장난감은 ENG카메라를 들쳐 매고 전쟁터를 헤집고 다니는 종군기자 피규어다. 크기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한국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10년 전 장난감도 뿅 나타났듯이 내 손에 언젠가 들어오리라. 아빠의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며 즐거워 할 꼬맹이 따님의 모습도 상상해 본다.  정형민 / OBS 보도영상팀 
    201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