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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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시위 취재 - 홍콩평화시위를 다녀오다
    퇴근시간 무렵, 동료들과 맥주 한 잔 마시기로 하였기에 “퇴근 하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서려 했다. 내근데스크가 조용히 와보라고 한다. 왜일까? 내일 조근일정이 갑자기 생겼나 싶었다. 궁금함을 가득 느끼며 가까이 가니, “현상이 너 홍콩가야겠다.” 아주 기분 좋은 일이 생길 때 하는 표현이 “홍콩 간다!” 이듯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엄청난 착각이었다. 홍콩 시위 덕분에 급작스레 잡힌 출장이었던 것이다. 바다건너 남의 나라 시위까지 취재를 한다는 것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두 시간 정도 급히 짐을 챙기고, 다음 날 새벽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도착했다. 이미 쌀쌀해진 한국날씨와는 다르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후덥지근한 기온이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출장준비를 하며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중국 령의 자치구라는 점이었다. 중국출장에서 ENG카메라를 사용하는데 생기는 제약이 홍콩시위취재에서 생길 것 인가에 대한 걱정. 공항에서 장비를 압류당해 취재를 못하는 상황의 발생은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홍콩시위(우산혁명)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은 1997년 영국령에서 중국으로 홍콩이 반환되면서 약속되어진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 부여, 향후 50년간 기존체제 유지”등등의 약속이행의 뒷면에 중국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지에의 반발이라 볼 수 있다. 홍콩을 운영하는 “행정장관”의 임명에 있어 홍콩시민들은 자유로운 직선제를 원하고, 이에 반해 중국에서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행정장관을 임명하려는 데서 오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공권력의 시위진압(물대포, 최루탄)에 우산으로 맞서는 평화시위라는데 그 의미가 있었다.   시위는 "홍콩섬" 2곳(센트럴, 커즈웨이 베이)과 "구룡 반도"의 2곳(몽콕, 침사추이)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는데, 그중 우리는 홍콩 시청건물과 행정관의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는 “센트럴”을 취재의 본거지로 삼기로 한다. 시위대들이 도로 자체를 막아버려서 승용차를 타고는 현장에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심지어는 택시도 근처로 가려하지 않았다. “이동수단 지하철 확정.” 졸지에 홍콩에서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였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그간 취재현장 코앞까지 데려다준 회사의 기사님들 생각이 났다.   지하철로 두정거장 떨어진 "성완“에 숙소를 정하고 취재지로 향했다. 센트럴 광장에 도착하니 정말 구름 같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시위대는 기본적으로 평화적 시위를 하고 있었다. 출장 전 보았던 경찰과 강경하게 대치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찰에서 한걸음 물러난 영향도 있겠지만, 그 많은 시위대들이 모여 있는 현장에 경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신기했다. 한국 시위현장에선 가끔 시위대보다 경찰이 더 많아 보이기도 했는데 여기에선 관공서 입구를 지키는 소수의 경찰들만이 눈에 띄었다. 경찰들에게 누구를 위한 경찰이냐고 묻는 시위대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시위현장에 생각이 겹친다.  시간이 지나며 시위대와 공권력의 충돌보다는 오히려 시위대와 반시위대간의 충돌이 더 자주 발생했다. 생계활동의 방해에서 비롯되어진 반시위대들의 마음도 십분 이해는 가지만, 홍콩 자체의 미래를 위해 시민 모두가 시위를 지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취재를 마친 후 숙소에서 인터넷 송출은 안정적인 속도 덕분에 수월했다.  ENG카메라을 들고 취재를 다니는 동안 예상외로 홍콩시민들이 SBS 로고를 많이 알아보는데 놀랐다. 아마도 그간 홍콩에 방송된 한국 예능프로나 드라마의 영향이리라. 덕분에 시위대들은 타국의 취재팀에게 꽤나 호의적이었다. 조금 더 몸가짐에 신경이 쓰인다. 5박6일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 편에 오르며 평화적인 시위대와 그 시위대들을 강제로 진압하지 않는 홍콩경찰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았던 건 오산이었다. 며칠 후 강제진압을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이랑 별반 다를게 없네.”김현상 / SBS 영상취재팀 
    2014-11-18
  • 줌인 - 카메라기자의 안전은 누가 지키나
    ◁줌인▷“ 카메라 기자의 안전은 누가 지키나 ”2014년은 정말 대형 참사가 끊이질 않는 해이다.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로 인해 무수한 생명을 잃고 불과 얼마 되지 않아 판교에서 야외공연을 관람하려고 생각 없이 건물 환풍구에 올라섰다 붕괴되어 1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대형사고 이후엔 기다렸다는 듯이  안전 불감증이란 말이 따라 온다. 언론도 앞 다투어 이 점에 비중을 두어 보도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번 생각해 볼게 있다. 과연 이러한 사건 사고를 다루는 카메라 기자들의 안전의식은 어떠할까! 판교 사고를 보면서 저길 왜 올라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동시에 좋은 영상을 담으려는 카메라 기자들도 아무생각 없이 올라가서 트라이 포드를 펼치지 않았을까! 취재를 하다보면 보다 좋은 영상을 담기위해 안전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부감을 찍기 위해 건물 모서리에 매달린다던가, 차 문 밖으로 몸을 내밀거나 심지어 화재현장에 안전장비 하나 없이 다가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현장과 상황을 접할지 모르는 카메라 기자들에겐 안전과 영상은 반비례의 모순적 상황일 수밖에 없다. 작은 뷰 파인더로 세상을 담다 보면 정작 본인 뒤로 다가서는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 되는 아찔한 순간은 카메라 기자들이라면 누구나 수차례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제 위험한 상황속에서도 오로지 영상에 대한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 적도 그 사례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더구나 재난지역이나 분쟁지역과 같은 안전이 전혀 담보되어있지 않은 현장에 파견되어 위험을 안고 취재 하는 게 대한민국 카메라 기자들의 숙명이다. 평소 안전에 대한 교육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설령 있다 해도 형식에 그칠 것이며 그나마도 바쁜 스케줄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 일 테니까! 안전 불감증에 대해 보도를 하는 본인들도 안전에 대해 이렇듯 무심한데 사회의 안전망이 어떻게 체계를 잡고 이루어 질 수 있을까! 회사는 취재에 앞서 안전 교육과 그 지원을 보다 실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체계화 하여 사고에 대한 위험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카메라 기자 자신도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에 먼저 본인의 안전은 본인이 직접 챙긴다는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한다. 태풍 취재 시 헬멧 착용이 그 작은 행동의 모습일 것이다. 좋은 영상도 그 영상을 담는 자의 안전이 확보되어진 뒤에야 완성도 있는 가치를 발휘 할 것이다. 안전에 대한 마음과 행동은 과해도 그 결과는 넘치지 않는다. 
    2014-11-17
  • 세월호 참사 기록보존, 어디까지 왔나?
    세월호 참사 기록보존, 어디까지 왔나?   가족대책위, 안산에 "416기억저장소"마련  사회적 기억화를 위한 민/관 협력모델 구추세월호 참사 기록보존, 어디까지 왔나? 가족대책위, 안산에 “416기억저장소” 마련 사회적 기억화를 위한 민/관 협력모델 구축이 시급 최효진/(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00일이 지났다. 여전히 실종자는 9명에 이르고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여전하다. 여야가 세월호특별법 등 이른바 세월호 3법에 관한 합의안을 지난달 31일 발표했고, 관련 수사와 재판도 진행 중이다. 기록학계도 여전히 이 참사를 사회적 기억화(化)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본지는 지난 5월, 진도 현지에서부터 세월호와 관련한 기억 구술채록을 전개하는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과 명지대 기록팀의 활동을 소개한 바 있다(미디어아이 95호). 진도 현장수집은 8월 말 일단락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시민과 기록전문가들이 뭉쳐 안산에 공간 및 시스템을 마련하고 “416기억저장소”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올해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상처를 준 사건 가운데 하나인 “세월호 참사”의 기록보존 활동 현황에 대해 알아본다.   사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기 위한 움직임은 시민 사회 곳곳에서 시작됐다. 유가족 대책위원회에 소속된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이하 기록위)”를 비롯해, 기록전문가와 시민아키비스트들이 모인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 서울광장 추모기록(노란 리본, 메모지, 현수막 등) 수집/보존 활동을 주로 담당해온 “세월호 사고 추모기록보존 자원봉사단(이하 기록봉사단)” 등이 그 주체들이다.   기록위는 사고 직후부터 자발적으로 이 참사를 기록하고자 모인 전?현직 작가/기자/PD/영화감독 등을 중심으로 사진기록단, 영상기록단, 작가기록단을 구성했다. 이들은 주로 가족대책위의 입장과 참사를 둘러싼 각종 이슈들을 정리하여 외부로 보도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8월 초 가족대책위 활동에 대한 기록 강화와 여러 채널을 통해  수집된 기록 관리를 체계화하기 위해, 가족대책위 대외협력분과위원회 산하에 “보도기록팀”을 비롯해 기록수집팀, 기록관리팀, 공동체프로그램운영팀, 총무팀 등을 구성했다. 최근 유투브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 “416TV"는 이들 활동을 통해 생산/수집되는 영상과 각종 취재 결과물을 네티즌들에게 직접 알리는 주요 채널이다.   한편, 네트워크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생산되는 다양한 기록, 즉 유가족 대책위 활동은 물론이고 생존자/피해자/실종자와 그 가족들의 사적(私的)기록, 검찰수사, 재판, 언론 등 공공기록, 추모활동을 기획하는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이 생산한 기록 등을 망라적으로 수집한다. 수집된 기록을 지속적으로 보존, 관리하여 시민들에게 전시/출판 등을 통해 공개하고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역할까지가 네트워크의 몫이다. 현재 안산에 수장고, 사무공간, 전시공간 등으로 구성된 “416기억저장소”를 마련하고 각종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시민들로부터 각종 기록물 기증받기 위한 시스템, 기증받은 실물/디지털기록물 관리를 위한 정리/기술 시스템, 기록물을 활용해 제작되는 각종 전시, 영상 콘텐츠 서비스를 위한 시스템, 참사와 관련한 기억 수집을 위한 촬영/편집 장비 마련과 구술기록관리시스템 구축 등이 주요 골자다. 앞서 설명한 기록위와 네트워크에서 생산/수집한 기록물은 모두 이 416기억저장소로 모이게 되며, 416기억저장소의 컬렉션 일체와 공간, 각종 시스템은 가족대책위에 기증된다. 네트워크는 이를 운영하기 위한 인적/물적 자원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그렇다면 국내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 해당하는 국가기록원을 비롯해 공공 부문의 참사기록 관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국가기록원은 지난 4월 30일, “여객선 세월호 사고 관련 기록물(일반/시청각기록물, 행정박물)의 관리 철저 협조요청”이라는 공문을 안행부 등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바 있다. 이후 5월, 서울시, 인천시, 안산시 등은 임시분향소 운영기록과 노란리본, 소망종이 등 추모기록을 수습하여 정리, 등록했다. 또, 7월부터 안산시와 경기도교육청이 “세월호 사고수습 백서 발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기록학계 안팎에서는 세월호 참사 기록보존과 관련해 민관 협력 모델 구축이 가장 시급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은다. 유관 기관/지자체들이 참사 증거기록을 무단 폐기하거나 위/변조 등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공공기관에서 생산되는 기록물 현황과 정보의 흐름을 분석하면 진상규명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 또 현재도 방대한 분량의 실물/디지털 기록물이 수집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공간, 시설, 장비, 인력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가족대책위는 시민 모금을 진행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이들이 운영해야 할 416기억저장소는 정부와 지자체, 가족대책위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상태다. 현행 공공기록물관리법은 민간기록물을 수집,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어서, 민간 부문의 4.16참사 기록 관리를 정부가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 국가기록원 등이 이번 참사 기록보존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관련 법률과 조례 개정을 통해 민간기록물 관리기관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416기억저장소는 아직까지 보존 시설과 각종 시스템 구축이 진행 중에 있고, 따라서 수집된 기록물을 활용하기 위한 이용자들의 요청에도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다. 사진전시회 등 가족대책위 내부 요청이 있을 경우 기록물을 제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디지털 형태로 수집되는 기록물은 대용량 스토리지를 구축해 정리/기술을 우선 진행하고 있다. 진정한 민/관협력을 통해 올해 말 기록물 기증시스템 등 각종 인프라가 정비되어 참사기록의 수집, 관리, 보존,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각 기능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기대한다.
    2014-11-17
  • 북한 최고위급 3명 전격 남한 방문 취재기 - 좋을 땐 당장 통일 될 것 같은 느낌
    좋을 땐 당장 통일 될 것 같은 느낌!  토요일 여유로운 주말 근무의 시작을 충격과 놀람으로 몰고간 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다음가는 실세가,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동시에 남한으로 입국한다는 속보였다. 통일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비서, 김양건 대남비서 3명이 지금 남한으로 들어온다는 뉴스였다.TVU와 카메라 장비를 챙겨 시시각각 진전되는 속보를 뒤로 하고 서둘러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입국 게이트를 확인해서 서쪽 주차장에 대기하니, 속속 타 언론사들이 도착했고, 오래지 않아 황병서 국장, 최룡해 비서, 김양건 대남비서가 경호원을 대동하고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개성, 금강산 출장 다니며 북한 사람을 많이 접했지만, 북한 최고위 3사람을 가까이서 보니 그 느낌이 왠지 신선했다. 그도그럴것이, 예전과 다르게 남북한이 서로 잡아먹을듯이 으르렁거리는 이때에,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남한을 방문했으니, 당장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정상회담도 이루어져 통일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하는 성급한 생각도 들 정도였다.공항과 티타임 장소, 오찬 장소였던 영빈관 식당, 아시안 게임 선수촌 등으로 이동할 때에는, 수많은 언론사들이 취재 경쟁을 벌이며, TVU로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하고, 일거수일투족 그들의 행선지와 만나는 남한측 인사들을 경쟁적으로 취재하는 모습도 진풍경이었다. 그들이 탄 차량이 빠른 속도로 이동함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팔로우 할때는 근접하거나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조금은 위험하게 촬영해서 그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동무들, 살살 하라우!"오찬장소였던 영빈관(처음에는 청와대에 간줄 알았는데, 음식점 이름이 영.빈.관.ㅋ) 주변에는 경계선 경찰들 만큼이나 인근 주민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그들에게는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관심이 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주변 어떤 아저씨는 황병서 정치국장이 조카뻘이라며 믿지 못할 얘기도 하고, 아버지 세대들은 그렇게 교육받았을 법한 북괴 이야기를 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러 온 것이냐는 등, 궁금해서 이것저것 묻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오찬이 끝나고 나오는 북한의 그 세사람이 일반 시민들이 보기엔 참으로 신기하게 보였으리라.늦은 밤까지 라이브 중계로 팔로우를 하며 그날 하루의 뉴스를 모두 이 뉴스 하나로만 소진하기에 국민적 관심사는 어느정도였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언론사들만 호들갑을 떨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은 당장 통일될 것 같은 화해 무드에 한껏 가슴이 부풀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북한 고위급 인사가 3명이나 전격적으로 남한을 방문한 것도 특이한 일이지만, 그들이 통일부장관이나 청와대 안보수석. 총리와 흔쾌히 악수하고, 껄껄 웃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통일이 다가오는 것 아닌가 하는 기분도 많이 들었다. 그간 많은 왕래가 있었지만 요즘의 경직된 남북한 관계에서, 정상회담 다음 가는 중요한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왔으니 남북 관계를 돌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하지만, 그들이 돌아간 이후에 들려오는 뉴스는 어쩔수 없는 남북관계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휴전선과 NLL에서의 충돌, 전단 날리기를 핑계로 한 총격 사건 등. 김정은 다음가는 실세들이 몰려와도 남북관계는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좋을 땐 당장 통일될 것 같은 느낌이지만, 돌아서고 나면 여전히 두 국가 체제로 굳혀져 가는 현실. 통일은 언제 실현될 수 있을까.윤원식 / YTN 영상취재1부 
    2014-11-17
  • 국감취재기 - 고난의 연속이었던 2014 국감
    고난의 연속이었던 2014 국감  지난 16일 오후, 가을의 선선함에도 국회의 한 상임위장은 열기가 가득했다. 온 국민을 비탄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등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는 이날 농해수위 국정감사에는 전 해경 진도 VTS센터장과 세월호 1, 2등 항해사,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123정 김정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되어있어 관심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 이미 점심시간부터 상임위장 앞에는 각 언론사에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트라이포드와 장비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상임위 시작 30분 전, 문이 열리고 카메라기자들과 사진기자들이 앞을 다투며 뛰어 들어갔고, 가장 좋은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트라이포드와 휴대용 사다리가 가득 자리를 잡았다. 시작 전 증인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에 잔뜩 긴장하며 뷰파인더를 통해 증인들을 볼 수 있었다. 팍팍 터지는 플래시에 얼굴의 초점이 맞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셨고 언제나 그랬듯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국회 의원들의 질의와 증인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떠올랐다. 4월의 그 차가운 바다에서 죄 없이 스러져간 아이들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떤 취재 현장에서도 냉철함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카메라기자의 덕목이었지만, 증인으로 불려 나온 그들을 보자 마음속에서 원망 섞인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당신들 왜 그렇게 밖에 못 한 거야? 도대체 왜?” 고성이 오가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유가족 몇 분이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소리도 치며 상임위장 안은 그야말로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 특히 여야 의원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가장 먼저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123정 김정장과 세월호 1등 항해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여야 의원들은 김 정장에게 당시 퇴선 명령도 하지 않고, 선내 진입 명령을 받고도 이행하는 않은 데 대해 따져 물었다. 이에 김정장은 “상황이 긴박했고 당황했다. 당시 상황에서 구조 요청을 한 사람들은 다 구조했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속에서 육두문자로 퍼부어주고 싶은 생각이 날 찰라.... 유가족들이 소리를 지르고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한편 1등 항해사는 “자기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는 발언을 하기도 해서 모든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카메라 기자가 보는 국정감사카메라 기자가 겪어야 하는 국정감사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다. 인간 CCTV가 되어 종일 영혼 잃은 패닝(panning)만 해야 하기에 자기와의 싸움을 하게 되고 결국 지고 만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맘 놓고 쉴 시간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감은 떨어지고 나라는 자아는 이미 기계에 불과해진다. 다리는 아프고 머리는 멍해지고 내일도 계속이구나... 패닉(panic)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기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나만을 위해 여기 서있는 것이 아니기에.... 앎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렉(rec) 버튼을 누르고 있다.오랜 준비를 거쳐 국회의원들과 마주한 자리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자료를 준비해왔지만 "네" 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허무하게 국정감사를 마쳐야만 하는 기관들도 있다.홍종수 / SBS 영상취재팀 
    2014-11-17
  • <특별기획> 카메라기자의 심리적 외상에 대하여
    카메라기자의 심리적 외상에 대하여세월호 참사의 생채기가 가시기엔 여전히 이른 시기이다. 협회에서는 재난보도 준칙 마련 및 재난보도 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카메라기자의 심리적 외상과 정신적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점진적으로 방안을 마련했다. 심리적 외상과 트라우마 심리적 외상, 트라우마라는 것의 정의를 내리자면 개인의 죽음이나 죽음의 위협, 신체적 상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 혹은 폭력적인 사건에 노출되서 생기는 심리적인 상처를 심리적 외상 트라우마라고 정의를 내린다.  외상이 어떻게 생기는지 되짚어 올라가 보면 외상성 사건들로부터 시작이 된다. 외상성 사건들이라는 것은 전쟁, 천재지변, 화재, 비행기 추락과 대형선박사고 등 이런 부류들의 사고들이 죽음과 상해를 가져올 수 있고 인간에게 굉장한 정신적 충격을 가하는 사건들을 외상의 근원이라고 일컫고 외상성 사건 이라고 지칭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중요한 증상은 세 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일어난 사건의 기억들이 계속 끊임없이 떠오른다던지, 혹은 악몽을 꾸는 것. 그와 더불어 지나간 사건이 지금 당장 발생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들, 재경험을 하게끔 하는 증상이 그 중 하나이다. 두번째로는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그런 회피의 증상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과각성의 증상이다. 잠을 이룰 수 없고 항상 심리적으로 신경이 곤두세워 있고 예민하고 불안한 증세를 과각성이라고 명칭한다. 앞서 언급한 이런 세 가지 증상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가장 전형적인 증상이다.  가장 많은 PTSD를 호소한 카메라기자숙명여대 배정근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그리고 카메라기자들을 포함한 세월호 취재집단의 심리적 외상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3개 직종 사이에서 외상 증상에는 유의미한 차이는 없으나 직종 별 감정 경험 차이는 모든 항목에서 카메라기자가 가장 높았다. 부정적 경험을 한 비율에서도 카메라기자가 다른 집단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이는 절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가능하게 하는 결과이며, 세부 유형에서도 다른 직종과 달리 현저하게 편차를 나타냈다. 심리적 외상을 부정하는 언론인들이러한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기자들을 더불어 언론인들은 트라우마에 대해서 부정한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본인이 취재한 사건과 자신을 관능적으로 돌릴 수 있다고 자각하고 그것이 바로 언론의 객관적인 보도 원칙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제한된 시간 안에 보도를 해야되기 때문에 그런 외상에 대해서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이다. 그와 더불어 마초적 직업관도 기자들의 외상을 악화시키는 데 한 몫 한다. 본인이 외상을 입었고 얘기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노출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 외상을 애써 부정하고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인들의 직업적 특성 상 심리적 외상에 취약한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언론계내에서도 이런 것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Solution 외상성 사건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방안은 이런 것들이 있다. 대형 사건 사고들을 경험 할 때 격렬하고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또한 외상성 사건을 취재하고 난 이후에 그 사건을 취재하면서 겪었던 감정, 겪었던 이야기 등을 제 3자에게 이야기 하는 것(Re-briefing)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자신만의 여가생활, 여유를 가지고 심리적 외상을 완화할 수 있도록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참조: 숙명여자대학교 배정근 교수 재난보도 연구분과 및 연구결과장유진 기자   
    2014-11-17
  • <특별기고> '영상역사'의 모색과 영상자료의 중요성
     ‘영상역사’의 모색과 영상자료의 중요성  역사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의 변화 원인과 결과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이해에 필요한 준거점들을 마련하는 것을 주된 과업으로 삼고 있다. 변화의 인과관계 분석을 중시하는 태도는 역사학을 사회과학의 일부분으로 여기게도 하고, 이러한 태도는 때로 특정 변수로 역사의 전개를 다 해명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입장으로 경도되기도 했다. 역사를 특정 요인이나 변수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역사학은 아마도 오래전에 정치학이나 경제학과 같은 분과학문 속에 흡수되어 없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역사는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과 복합적인 관계들이 맞물리며 전개되어 왔다.  역사를 분석적 또는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의도하지 않게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요한 부분들을 간과하거나 경시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들의 정서적 영역을 들 수 있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기쁨, 슬픔, 분노 그리고 이를 규제하거나 표현하는 윤리나 관습 등은 생활세계의 미시적 영역뿐만 아니라 구조적 격변을 가져온 사건들의 전개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다. 정서적 측면의 이해는 과거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 형성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역사학에서 영상자료를 특히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영상자료의 중요성은 기록의 저장과 전달 수단이라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영상자료가 지닌 중요성과 장점은 역시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 교수가 강조했듯이 영상자료가 과거에서 현재로 다양한 의미를 송신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직접 대면하여 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자료라는 데 있다.   이처럼 영상자료가 지닌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한국역사학계는 영상자료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2천 년대 초반에 역사학계에서도 한국사회가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주목하며 ‘영상역사’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학계에서 ‘영상역사’는 역사 드라마의 진실성을 논하는 차원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맞물린 결과이다. 영상을 ‘허구’로 보거나 문헌사료의 보완자료일 뿐이라고 여기는 일부 학자들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역사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는 영상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정리, 그리고 영상자료를 분석하기 위한 역사연구 방법론의 모색 등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한데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학 연구소 및 국가기관 등에 의해 해외에 소재한 한국근현대사 관련 영상자료들이 조사되었고, 미국, 유럽, 일본 등에 소재한 주요한 뉴스릴과 문화·선전영화 영상들이 수집 정리되고 있다. 또한 영상자료에 관한 심화된 아카이빙을 DB로 축적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영상역사’의 본격적인 진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영상자료들이 발굴과 수집과 그리고 아카이빙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해외 각국에 소장된 전쟁관련 자료 및 북한관련 영상, 재외 한인 관련 영상 등 해외자료가 지속적으로 발굴, 수집, 정리되어야 한다. 또한 국내 방송사들이 소장하고 있거나 생산한 영상자료도 최대한 접근성과 활용도를 넓혀야 하는 과제도 빼놓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자료가 곧 사료가 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영상자료를 수집하고 DB를 구축한 다해도 이를 읽어낼 수 있는 역사학적 관점과 방법론이 없으면 그저 무용지물에 불과할 뿐이다. 역사이해를 위한 실마리나 흔적을 찾는 역사학자들은 영상의 예술적 완성도를 주목하는 영상 전공자들과 달리 완성된 영상물뿐만 아니라 미편집 영상물 또는 폐기된 영상물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영상자료를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영상자료가 만들어지는 과정 즉, 촬영에서부터 편집까지 과정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사실상 전무하다. 이는 문헌사료 취급과 분석 방법만을 훈련 받아온 역사학자들이 지닌 가장 큰 한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영상역사’의 방법론을 마련해 나가기 위해서는 역사학, 영화학, 사회학, 문학 등의 학제 간 협력이 필요하며, 특히 영상촬영을 담당하는 분들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영상역사 연구는 하나의 컷에서부터 에피소드, 나아가 장편 기록영화의 전체를 촬영한 촬영자의 관점을 정확히 읽는 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상역사’는 영상자료의 특성상 역사학자들만의 고유한 영역이 될 수 없다. 새로운 학문영역이라 할 수 있는 영상을 통한 역사쓰기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동참을 부탁드린다.         허은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2014-11-17
  • 아시안게임취재기 - 인천, 아쉬움만 남았던 15일
    인천, 아쉬움만 남았던 15일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대회 시작 전 출입용 AD카드를 본인이 직접 방문하여 ‘활성화’해야 한다기에 지정된 장소중 하나인 주경기장을 찾았다. 어차피 출입 시마다 사진과 대조할 텐데, 뭔 ‘활성화’인가?! 테러위협으로 보안을 강화하고자 직접 신원을 한 번 더 확인해야 된단다. ‘그래, 귀찮지만 G20회의 때도 그랬고... 뭐, 협조해야지’ 하지만 광활한 주경기장 내, 외부를 도보와 차량을 번갈아가며 두어 바퀴 돌다시피 뒤져보아도 활성화를 해준다는 등록센터를 안내하는 표지판은 없었으며, 만나는 안내요원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였다. 30여분을 헤맨 끝에 찾은 등록센터는 경기장 외곽에 컨테이너박스만한 크기로 나를 비웃듯 숨어있었다. 사무실 하나 찾는 일 조차 숨은 보물찾기의 전통놀이문화와 결합시켜 하나의 스포츠로 승화시킨 조직위의 능력에 감탄하며 들어선 등록센터. 담당요원에게 정말 찾기 힘들었노라고, ‘제발 곳곳에 안내문구 몇 개 붙여달라’고 하니, 돌아오는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저희도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찾아왔어요”. “아...네...” 기자에게도 스포츠정신을 함양하는 조직위의 운영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양궁 컴파운드 결승이 있었던 계양경기장. 믹스드존에서 자리를 잡고 선수들을 기다리는 내게 운영요원이 와서 말한다. “선수들 인터뷰는 여기서 안하고 2층 프레스룸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합니다.” 뭔가 이상했지만 그리한다고 하니 자리를 옮겼다. 한참이 지났을까. 분명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도 없다. 뭔가 잘못된게 아닐까? 이런 쌩한 느낌은 예전에 ‘물먹던’ 바로 그 기분. 아니나 다를까, 아까 그 운영요원이 다급하게 와서 말한다. “죄송하지만 믹스드존 인터뷰가 맞다”고, “다시 내려가셔야 합니다”. ‘지금 누굴 X개 훈련시키냐’고 항의할 시간조차 없었다. 말을 듣자마자 우사인 볼트로 빙의하여 다시 뛰어 내려간 믹스드존에는 다행히 인터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송출을 위해 또 프레스룸으로 뛰어올라갔다. 투혼을 불사르며 겨우 송출을 마치자마자 전날 과음의 여파가 신호를 보낸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취재하다가 결국 구토까지 하는 나를 보고 외신 사진기자들이 감탄했으리라. ‘한국의 카메라기자는 취재도 마라톤같이 죽을힘을 다하는구나! 오죽했으면 송출을 마치자마자 저렇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본의 아니게 한국 기자정신을 외신들 앞에 선보이게 해주신 조직위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취재현장에서도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관중석 사이에 위치한 ENG-ZONE은 원칙상으로는 일반 관중의 출입이 통제되거나 허용되더라도 잠깐의 이동 정도만이 허용되어야 했다. 하지만 중간에 출입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은 AD카드가 없는 일반 관중들을 제지하는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했고, 중간에 몰려든 관중들과 함께 어우러져 경기를 관람하기에 바빴다. 결국 ENG존 포인트간 통로는 자원봉사자와 관중, 취재진이 뒤섞이는 바람에 너무 비좁아진 나머지 장비를 가지고 이동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조직위의 운영미숙은 경기 취재의 마지막인 믹스드존에서도 드러났다. 그중 경험했던 최악의 경우는 축구 4강전, 對 태국전이었다. 밀려드는 몇몇 태국 기자들은 자리를 잡지 못한 나머지, 한국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 취재진의 카메라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자국 선수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이 곧 나온다, 취재해야 하니 ENG존을 침범하지 말고 다른 곳에서 하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운영요원들에게 제지를 부탁하였으나 그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하고 쩔쩔매기만 했다.  취재구역의 관리가 이 정도였으니 기자회견장에 ENG를 위한 단상을 설치해준 것조차 고마워해야 했을까. 그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드는 기자회견장에서, ENG단상 뒤에 유선 오디오 Out 박스를 설치해주기를 바랬던 것은 지나친 바램이었을까. 결국 묘안을 짜낸 나는 기자회견장 스피커의 뒷부분에 있는 Out단자 하나를 발견하고 오디오 라인을 연결하였으나, 이후에는 이것을 목격한 한국, 일본 취재진들이 앞 다투어 이 Out단자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45억 아시아인의 축제’. 이번 아시안게임 관련 기사마다 붙는 수식어였다. 아시안게임 취재 후기를 요청받고 생각해보았다. 과연 축제였는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써달라는 말에 나는 도무지 좋았던 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에 없는 좋은 말만 늘어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혹여 관계자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무척이나 섭섭하겠지만 할 수 없다. 진작에 잘하시던가. 조직위 기자회견장에서 ‘아시아 운동회’라는 비아냥거림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매 경기마다, 경기 취재 순간순간마다 아쉬움을 넘어 분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끝난 대회, 인천 조직위에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 관계자들에게 한번쯤은 이 글이 눈에 띄기를 바라본다. 외신들이 3년여 뒤에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이 나라 국제대회 운영이 조금은 나아져 있어야하지 않겠는가!이성재 / MBC 보도국 사회2부 
    2014-11-17
  • 아시안게임 취재기 - 진정한 축제가 간절하다
    진정한 축제가 간절하다   우리사회가 지금 축제를 축제답게 즐길 수 있는 여건인가   스포츠팀에 오자마자 인천 아시안게임 취재명단에 이름이 들어갔을 때 설렘이나 기대는 크지 않았다. 폐막 이후의 끔찍한 그림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에. 경기장, 시설들은 대회가 끝나면 처치곤란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잔뜩 끌어다쓴 대회비용에 대한 빚이 남을 것이다. 끔직하다.  대한민국이 과연 그런 국제적 축제를 열고 즐길 만한 여유가 있는 사회인가?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 낳는 나라가 아니었나? 고향에 계신 부모님 얼굴을 1년에 한번 보는 것도 어려운, 아들딸 데리고 놀이공원 한번 가는 게 힘든, 몸 부서져라 일해도 병만 생기고 빚만 늘어가는, 그래서 끝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 숫자가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OECD기준) 나라가 아니었나? 상황이 이런데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면 ‘어머니, 여보, 아들아, 맥주 한잔 하면서 북한하고 인도 선수들이 맞붙는 축구 경기 한번 보러갑시다!’라고 말하게 될까? 아니다. 여기는 엄연히, 그럴 시간 있으면 얼른 씻고 잠이나 십 분 더 자고 싶은 사람들의 나라이다.  대한민국은 축제를 즐길 여유가 없다. 자조적이지만 그렇다. (여담인데, 국민건강증진 대책이라면서 담뱃값을 인상한다는데 정치인들이여,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늘리고 최저임금을 올려라! 노동시간과 노동조건, 여가와 임금 수준 등이 국민보건과 가장 밀접한 요인들 아닌가요? 유럽사람들, 담배 안 펴서 건강한 건가요?)빈곤 속에 더 큰 빈곤,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이 시작됐을 때 그러한 자조는 사실로 입증됐다. 관중석은 몇몇 빅경기를 제외하고는 대개 텅텅 비었다. 주최측은 안 팔리는 표를 공무원 조직에 강매해야만 했다. 아니, 연금도 깎을 거라면서 왜 이런 일엔 애꿎은 공무원을 동원해? 나는 매일 두 경기 혹은 세 경기씩 맡았는데 어떤 날은 관중이 너무 없어서 취재를 마치고 남아 (피곤함을 무릅쓰고) 기꺼이 한 명의 관객이 돼야 하곤 했다. 개최국 시민으로서 민망하기도 하고 선수들에게 미안해서. 시상식은 더했다. 태권도 경기에 갔을 때, 대한민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그나마 관중의 3분의 1정도는 시상식까지 남아 있는데 대한민국의 메달이 없는 날은 관객 없는 시상식을 거행해야 했다. 이런.  그리고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이 시작됐다. 정기휴가 때문에 대회 일부만 취재하긴 했지만, 내가 목격한 장애인아시안게임은 한마디로 빈곤 속의 더 큰 빈곤함 그 자체였다. 아시안게임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관객에게도 언론에도 장애인아시안게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축제였다. 아시안게임 때 촬영포인트를 두고 정말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었던 (그 사람은 나더러 ‘아저씨 여기서 나가세요. 아저씨가 KBS든 뭐든 여기 들어올 권리는 없어요!’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사람이다) 보안담당자가 장애인아시안게임 때 보니 보안 일은 제쳐두고 관객이 되어 한쪽에서 응원전을 펼치고 있을 정도였으니! 상황이 그러니 분위기가 무척 가족적(?)이긴 했다.삶의 여가 회복이 먼저, 축제는 그 다음에 하자고 말하고 싶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 취재를 통해서 나는 다시금 스포츠라는 인간의 행위에서 느껴지는 희열, 육체의 사점이 주는 극적인 감동을 소멸시키는 자본주의의 기계성과 냉혈을 보았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분명 열심히 사는데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여가도 돈도 없다. 물론 일부는 충분히 행복하다. 지나칠 정도로. 그게 오늘 우리사회 비극의 본질이다.  우리는 정신과 영혼의 풍요로움을 위해, 행복한 삶의 회복을 위해 자본주의에 맞서야 한다. 현재를 옹호하고 미화시키는 모든 이즘과 권력, 관습, 그리고 시스템에 저항해야 한다. 좋은 사회와 나쁜 사회의 간극은 바로 거기에 있다. 소비주의와 효율성, 시장 만능의 이기주의와 차가움에 반기를 들 줄 아는 교양과 지성, 인간애가 필요하다. 충분히 싸우고 나서, 반인간과 반민주주의, 몰여가, 낮은 임금과 같은 질기고 막강한 상대와 싸워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어놓고 나서, 아시안게임 다시 한번 했으면 좋겠다. 진정한 축제를! 물론 새것 말고 새로 단장한 헌 경기장에서. 그렇지만 관중석은 꽉 채우고. 비인기 종목 경기에 몰려가서 선수들이 깜짝 놀라게. ‘이 나라는 정말 살 만한 나라구나! 부럽다!’김정은 / KBS 보도영상국 영상취재부 
    201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