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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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기자 협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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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100호 발행 축사- 문재인 대표
    반갑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문재인입니다. 먼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카메라기자협회보 100호 발간을 대단히 뜻 깊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울러 역사의 현장에서 최고의 영상을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신 카메라기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민생과 민주주의가 위기인 만큼,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 막중합니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심판자입니다. 흔히 삼권분립을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언론이 제4의 권력으로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진실을 바로 보는 정확한 시각과 흔들림 없는 공평함이 생명입니다. 앞으로도 카메라기자 여러분들께서 우리 사회의 공정한 심판자이자 대한민국의 중심추로서역할을 충실히 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카메라기자들은 역사의 산증인이자 진실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투철한 직업정신과 사명감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시청자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카메라기자 여러분들의 열정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역사적 순간들을 담아내며 품위 있고, 유익한 방송 보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와 새정치민주연합도 언론의 공정성, 독립성, 객관성, 공익성을 확립하여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꽃피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무궁한 발전과 더불어,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문재인    
    2015-09-07
  • 100호 발행 축사- 심상정 대표
    무더운 여름날, 땀은 비 오듯이 흐르고 걸음 속도에 맞춘 뒷걸음질이 아슬아슬 합니다. 눈이 뒤에라도 있는 양 능숙한 발걸음이지만 한 눈에 보아도 육중한 카메라가 더 없이 묵직해 보입니다. “조심하세요” 라고 말씀드리려는 찰나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지고, 뜨거운 조명 속 답변을 드리다보면 어느새 엘리베이터 안. 그렇게 만들어 진 영상이 TV를 통해 온 세상에 전해지면 정치는 비로소 국민과의 소통을 시작합니다. 방송카메라기자님들과 저의 하루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이미지와 영상이 그 어느 때보다 대중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 우리는 늘 현장의 생생한 장면을 갈구하고 정치인의 말 한마디, 미세한 어조의 떨림 등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카메라기자님들의 민첩함과 끈기는 국민의 알 권리를 더 없이 충만하게 하고 우리내 정치를 보다 깊숙히 국민 속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협회보 발행 100회를 맞아 드리는 말씀이 더욱 뜻 깊은 이유는 이렇듯 방송카메라기자님들께서 늘 감탄과 감사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정치인을 ‘100미터 미인’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까이서 보면 흠결도 많지만 언론을 통해 보았을 때는 매끔한 모습의 정치인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어느덧 정보 소비자와 공급자의 거리가 그 어느 때 보다 가까워지며 정치인들을 향한 ‘100미터 미인’ 이라는 말은 점차 희석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방송카메라기자님들의 역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로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전해지며 정치인들을 불편하게도 하지만 그 또한 국민들께서 보셔야 할 정치의 생생한 장면이며 정치와 국민이 보다 가까워지는 과정일것입니다. 다시한번 한국방송기자협회 협회보 발행 100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중우 협회장님을 비롯한 관계자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고 진실과 균형, 그리고 사회정의를 바탕으로 한 공정보도 방송을 수행함이 이 시대의 요청임을 깊이 인식한다” 는 그 윤리강령의 글귀처럼 늘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는 방송카메라기자협회가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의당 대표 심상정          
    2015-09-07
  • 100호 발행 축사-박원순 시장
    영상저널리즘의 바른 길을 모색하는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회보 <카메라기자>가 벌써 발행 100회를 맞았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국 현장 곳곳에서 고군분투 하고 계실 방송카메라기자 여러분들이 흘린 땀과 열정이 맺은 결실입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시민의 삶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서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는 그 길마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밤낮없이 동행해주신 고마운 분들이 계셨습니다. 바로 방송카메라기자 여러분들입니다. 방송카메라기자들의 시선은 비단 시민 삶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사실 너머의 진실에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진실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도 쉼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카메라기자 여러분들께서는 가려진 진실의 단면을 찾아내고 기록하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계실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최근 취재 현장은 속보를 위한 전쟁터라는 얘기를 자주 듣곤 합니다. 매체가 다변화, 다양화되면서 특종 아닌 특종이 양산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그러나 영상저널리즘이 직면한 이 변화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변화 속에서 또 다른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의 특종, 속보의 유혹에 흔들리기보다는 역사를 기록하는 진실의 눈으로서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언론의 존재이유이자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충실히 지켜 나간다면, 대중이 진정 원하는 참신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여정에 서울시도 항상 함께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피사체와 훌륭한 카메라가 만날 때 아름다운 영상이 완성되듯, 서울시부터 시민의 아름다운 삶의 단면을 담은 진실의 피사체가 되어 여러분들의 카메라 앞에 서겠습니다. 시민의 꿈과 희망이 현실로 꽃피는 서울, 세계 속에 우뚝 서는 서울의 모습이 여러분들의 카메라 속에 가득 담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특별시장 박원순    
    2015-09-07
  • <이신 변호사칼럼> 유언에 대하여(1)
    유언(遺言)에 대하여(1)   유언은 자유롭게 자신이 죽고 난 이후 자신의 재산에 대한 재산적 법률관계를 정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제도입니다. 이것은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는 국가에서 피상속인의 최종적 의사를 존중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만, 민법 제1112조 이하에서 유류분(遺留分)제도를 두어 상속인에게 상속재산의 일부분을 법률상 반드시 남겨두도록 하여 유언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즉, 유언자에게 처와 아들이 있는데 유언으로써 자신의 전 재산을 처에게 주도록 하였다고 하더라도 아들은 상속재산에 대해 권리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유언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원래 받았을 상속분의 절반을 받을 수 있는 유류분권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민법 제1060조에서는 “유언은 본법이 정한 방식에 의하지 아니하면 효력이 생기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유언은 민법 제1065조에서 제1070조가 규정하고 있는 법정의 방식에 의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유언은 유언자의 진의를 확보하고, 사후 위조 또는 변조의 위험성 방지 및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엄격한 방식을 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언의 방식은 5가지가 있는데  ①유언자가 그 전문,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필하고 날인한 자필유언증서  ②유언자가 녹음에 의하여 유언의 취지, 성명,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하는 녹음유언  ③유언자가 증인 2인 이상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술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가 서명 또는 기명날인한 공정증서유언  ④유언자가 필자의 성명을 기입한 증서를 엄봉하고 날인한 후 이를 2인 이상의 증인의 면전에 제출하여 자기의 유언서임을 표시하고     그 봉서표면에 제출연월일을 기재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한 비밀증서유언 ⑤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위 ①에서 ④까지의 유언방식에 의할 수 없는 경우에 유언자가 2인 이상의 증인의 참여로 그 1인에게 유언의     취지를 구술하고 그 구술을 받은 자가 이를 필기, 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있습니다.   자필유언증서의 방법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언에는 증인이 필요한데, 미성년자,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 유언에 의하여 이익을 얻을 자 또는 그 자의 배우자와 직계혈족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위 증인결격자들이 참여할 경우 그 유언은 전체가 무효가 됩니다. 위 유언방식 중에 ①자필유언 ③공정증서유언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자필유언증서의 경우에 서울중앙지방법원 2005. 7. 5. 선고 2003가합86119 판결에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을 제외한 다른 4종류 유언의 방식은 유언 과정에 증인 또는 공증인이 관여하게 하여 유언의 형식적 엄격주의를 확보하고 있으나,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의 방식은 이와 달리 증인 등 제3자의 관여가 없는 가장 간편한 방식으로서 그에 따른 위·변조의 위험이 그만큼 많아지고 진의의 확인도 어렵게 되므로 그 형식의 엄격성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고 그 엄격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민법은 유언자 본인이 직접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것”이라고 하여 형식적 엄격성을 더욱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판결에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있어서 성명의 자서가 되어 있지 아니한 경우뿐만 아니라 날인이 누락되어 있는 경우에도 적법한 유언으로서의 효력은 없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필유언의 경우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쓰고 날인을 해야 유효하다고 할 것인데  다만, 주소의 경우 유언과 일체성을 가지는 봉투에 쓰더라도 유효하다고 보며, 날인을 하지 않고 무인을 하더라도 유효하다는 하급심판결이 있습니다.    -계속-         이신 변호사  
    2015-09-04
  • 100호 발행 축사- 신진수
    충무로의 밤을 지키고 있을 또 다른이들에게“신차장, 협회 편집부장 좀 맡아줘..”“헉! 선배.. 다른 어떤 일이라도 다 맡을 테니 신문 만드는 것만은 제발 좀…”팀 선배인 태양식 회장이 2011년 카메라기자협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회장사 후배로서 당연히 협회 집행부 일을 도와야 할거라는 각오는 이미 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러나 하필 매달 협회보를 만드는 편집부장이라니… 다른 건 다 도와드려도 그것 못하겠다고 며칠을 버텼었던 같다. 대학시절 3년을 학보사 생활을 한 탓에 마감 전에 원고를 맞추고 인쇄소에서 최종 교정을 하며 소위 ‘날밤을 까야 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트라우마’가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고 할까? 아무튼 나의 학창시절 트라우마에 기인했던 편집부장 ‘고사 작전’은 협회장님과 사무국장님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좌초하고 만다.‘그래 어설펐던 대학 학보보다 그래도 현직 프로들이 만드는 협회보는 좀 나을 거야.’다소 근거 없는 낙관론이 자신감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첫 협회보를 만드는 날,충무로 인쇄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지 않았다. 역시나.. 마감을 앞두고 넉넉하게 한 달 정도 시간을 두고 청탁했던원고 중에 반 이상이 웹하드에 올라와 있지 않은데다 그나마 올라온 원고들 중에 손봐야 할 것들이 수두룩했다. 일단 초벌로 나온 8절지면에 기사들을 수정하고 레이아웃도 좀 바꾸고 헤드라인과 소제목들 뽑고 사진 캡션도 다듬고 하는 순간… 뭔가 불길한 ‘기시감’이 몰려왔다.‘이러다 자정을 넘기겠구나..’ 역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초저녁에 시작한 첫 협회보 교정 작업은 자정을 넘어 새벽 2시 즈음에야 끝이 났다. 그래도 대학 시절처럼 아침 해를 보지 않은 게 어디냐며 자조하듯 집에 돌아가 새우잠을 자고 출근해 졸린 눈을 비벼대는 생활이 두 달에 한번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햇수로는 2년, 격월로 충무로 인쇄소에서 하얗고(?) 뜨거운 밤을 보내야 했다. 물론 힘든 기억만 있었던 건 결코 아니다. 각 사 편집위원들로 구성된 사전 편집회의에서 아이템 선정을 하는 과정에서 당시 정치, 사회적 상황등과 맞물려 각 사 구성원들과 치열하게 토론했던 기억은 물론 탁월한 문장력과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가진 각 사의 숨은 인재들의 보석 같은 글들을 협회보에 싣는 일은 아직도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또한 최종 인쇄를 넘기는 날은 협회장님과 사무국장님, 편집위원들 모두 충무로 인쇄소에 모여 같이 밤을 새워야 했기에 최종 판을 넘기고 난 후 묘한 성취감에 충무로 새벽거리의 선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기억은 아직도 입가에 훈훈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아무튼 협회보의 100호 발간에 부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다는 데 소소한 긍지를 느끼며 아직도 충무로의 밤을 지키고 있을 또 다른 이들에게 격려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2011년·2012년 편집장신진수
    2015-09-04
  • 100호 발행 축사- 성인현
    100호에서 200호, 300호가 되길 바라며.내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신문을 발행한게 17호부터였으니 벌써 10년이 넘은 일이다. 당시에는 월간지였고, 한번은 16면으로 증면 발행한 기억도 있다. 협회보가 친목의 장으로써 우리 회원들의 동정이나 알아야할 정보를 제공하는 창구역할을 해왔고,우리 회원들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큰 공유의 공간으로 100호까지 발행되 것은 무척 다행이다. 그 당시 카메라기자들의 관심사는 ‘뉴스화면에 재연금지’, ‘16:9의 와이드 화면 전환 문제’, ‘초상권 보호’, ‘디지털 전환에 따른 비선형 편집’ 등 이었다. 지금 방송환경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걱정들을 했던거다. 물론 ‘풀 취재의 남용’, ‘포토라인의 구성’, ‘보도영상의 공정성 확보문제’ 등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고 앞으로도 해결책이 쉽게 나오지 않을 문제도 협회보의 단골 주제였다.한편 월간으로 신문이 나오던 때라 때때로 벌어지는 카메라기자와 관련한 문제에 적절 하게 논평을 내고 반론도 실어주는 역할도했다. 그리 많은 부수를 발행하는 건 아니지만 인쇄매체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커서 카메라기자들의 입장을 보다 많이 그리고 자주 대변해 줄 수 있었다.요즘처럼 다양한 카메라와 다양한 영상전달매체 그리고 다양한 뉴스채널의 시대에 우리 협회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지금 협회보의 위치가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다.물론 경제적으로나 인력의 운용 등 여러 면에서 협회보를 월간으로 바꾸거나 보다 집중적인 힘을 쏟기 어렵다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협회원들의 정체성은 쉬운 곳에서부터 채워가야 한다. 각지에서 고생하는 카메라기자들의 공동 관심사를 이끌고 우리 조직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은 바로 협회보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200호 그리고 300호 기념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자주 발행되는 신문을 보고 싶다.2005년·2006년 편집장성인현
    2015-09-04
  • 100호 발행 축사- 양동암
    카메라기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신문어떤 과거의 일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한 장의 사진처럼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카메라기자 신문 100호 기념 원고 청탁을 받고 떠올려본 2003년. 그 기억 역시 겨울의 끄트머리 충무로 인쇄골목의 여백이라는 조그만 사무실의 열기로 떠오릅니다. “대통령 축사 왔어?” 이 기산 어느 면에 넣어요?” “오타 다시 한 번 봐 주세요”“배송은 몇 시에 되는 거지?” 꽤 쌀쌀했던 바깥 바람에도 사무실 안의 초짜 배기 편집위원들은 우왕좌왕 열을 내고 있었습니다. 어설프고 엉성했지만 편집위원들의 그런 열기로 2003년 2월 23일 4년 만에 일간지 판형으로 복간된 카메라기자 신문 5호가 나왔습니다. 신문 복간에는 당시 심승보(MBC)회장님과 나준영(MBC)대의협력 국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전 같은 회사라는 악연(?)으로 편집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격월로 발행되는 신문이었지만 신문 편집 경험이 없던 우리 편집위원들에게 두 달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어떻게 신문을 알차게 만들까?’ 에서 ‘무엇으로 이 많은 면(8면이었음)을 채우나!’ 하는 한탄으로 회의가 진행되긴 했지만 각 사의 편집위원들은 열심히 고민하며 신문을 만들었습니다.카메라기자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협회와 회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신문은 꼭 필요한 것이라는 공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 된 신문이 이제 100호를 발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우리 신문도 크게 발전해서 회원들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재난 보도영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부터 디지털 시대 신기술 소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의견과 정보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이런 신문의 질적인 발전에는 많은 편집위원들의 고민과 노력 그리고 회원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도 우리 신문은 보도영상의 발전과 공정성. 그리고 카메라기자의 권익을 위해서 다양한 논의의 장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보도영상을 담당하는 카메라기자의 위상과 보도영상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합리하게 힘의 논리로 회원들의 권익을 헤치고, 보도영상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제도와 시스템들이 훼손되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신문의 적극적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카메라기자 신문 100호발행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2003년 복간호 1면에 실렸던 노무현 대통령의 축사 중 일부를 적어봅니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순간의 영상이 진실을 말해줍니다. 그것이 바로 눈으로 보는 뉴스의 힘입니다. 그런 점에서 카메라 기자들은 역사의 현장을 통찰하는 사관의 눈을 가진 정확한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여러분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 해주시길 바랍니다.’ 2003년·2004년 편집장양동암
    2015-09-04
  • CBS신입 카메라 기자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CBS 카메라기자 채성수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생생한 영상을 전달하겠습니다!무더운 여름 뙤약볕 아래 누구보다 현장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카메라기자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CBS카메라기자 채성수입니다.항상 현장에서 커다란 ENG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지고 진중한 눈으로 촬영하시는 선배님들의 모습은 언제나 제게 동경에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카메라기자라고 여러 선배님들께 인사드릴수 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만큼 카메라기자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입니다.CBS에 입사해서 아직은 실수하는 일이 많고 부족하지만 좋은 선배님들께 배우고 있어서 조금은성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더 열심히해서 언젠가는 선배님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어릴적 부터 카메라를 좋아해서 이 일을 하고싶었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만큼 더 열심히 뛰어다녀서 좋은 영상, 중요한 영상들을 담아내는 카메라기자가 되고싶습니다.제가 생각하는 카메라기자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어떤 장면을 촬영해야 이 현장의 분위기를 가장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면서 촬영하는 카메라기자가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채성수 / CBS
    2015-09-02
  • <지역 취재기>
    “광수야, 오늘은 하늘에서 한 번 훑어야 할 거 같은데...”   데스크 지시가 떨어진다. ENG카메라만 챙기던 내가, 챙겨야 될 준비물이 하나 더 생겼다.그건 바로 카메라가 달린 비행물체, ‘드론’이다.처음엔 모든 게 어려웠다. 전에 RC카나 RC비행기를조종해봤지만 드론은 만만치 않았다.‘오르락 내리락’이 전부. 그마저도 떨어질까, 날아갈까 조마조마. 퇴근하고 주말에 시간을 내서 틈틈이 연습을 하지만, 그것도 별로 효과는 없었다. 닥쳐서 해야 뭐든 이뤄지듯이. 대부분 조종능력과 기술은 취재하면서, 현장에서 날려가면서 익혔다. 그렇게 드론은, 십년 넘게 내 곁을 지켜온 ENG카메라의 자리를 조금씩 차지해가고 있었다.최근 드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만큼, 드론을 활용한 제작물이 늘고 있다. 현장에 나가면 부감 찍을 포인트부터 찾았던 나지만, 이제는 드론을 띄울 안전지대(?)부터 찾는다. 취재기자들도 리포트에 좀 더 다양한 드론 영상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때문에 단순한 항공촬영을 넘어 어떻게 이것을 보도 영상에 적절하게 녹여 뉴스의 완성도를 높일지 많이 생각하게 된다. 특히 드론같이 긴 호흡을 가진 영상을 1분 30초 내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뉴스 영상에서 그 효과가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접근이 어려운 현장 취재를 넘어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조종기술이 늘수록 카메라 기자로써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안전에 대한 고민도 점점 늘고 있다. 내가 조종을 아무리 잘해도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드론은 언제든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드론을 활용하는 카메라 기자라면 누구든 갖고 있는 고민이겠지만 강원도 기자로써의 고민이 있다. 강원도에는 군부대가 워낙 많다보니 드론을 띄우기 전에 항상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서 날려도 되는지 물어보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긴 건 이것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찍어도 안 걸리던 것이 드론을 조금만 띄워도 쉽게보이는지. 드론을 띄우고부터 강원도 군부대 시설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이렇게 고민도 많지만 얻는 것도 많다. 강원도 최초로 뉴스 영상에 드론을 도입한 카메라 기자라는 타이틀.보여지는 타이틀보다도 뿌듯함이 들 땐 ‘뉴스가 멋있어졌다.’ ‘그림이 세련됐다.’ 등의 시청자들의 반응이 들려올 때다.이런 반응에 모든 고생이 잊혀지고, 끊이지 않는 고민들이 지난 십여 년간 나를 진짜 카메라 기자로 키우고 지탱해 준 힘이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거쳐야 할 길이란 것도 안다. 역시 나는 천상 카메라 기자인가보다.           이광수 / G1 보도국      
    2015-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