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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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TN 신입 기자를 소개합니다
    촬영기자로서 다짐        안녕하십니까. 17기 수습 촬영기자 최광현입니다. 저는 제가 담아내는 영상을 통해 시청자에게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고 싶습니다. 사실 ‘시리아 난민’이 문제라고 하면 시청자들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예뉴스 소비에 열중합니다. 촬영기자는 그 누구보다 사건, 사고 현장에 먼저 가는 사람입니다.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제 나름의 시각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촬영기자의 눈이 시청자의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촬영기자는 단순히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고민을 통해 사건, 사고 근저에 있는 사실을 시청자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촬영기자는 어깨가 무겁습니다.   저는 촬영기자로서 그 무거운 짐을 평생 짊어지고 갈 생각입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단단한 촬영기자가 되겠습니다.   시청자에게 올바른 영상을 전달하려면 촬영기자 스스로 현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신문을 읽고 뉴스를 모니터링 하겠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건, 사고에 대해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시청자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영상이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하겠습니다.   단정한 촬영기자가 되겠습니다. 촬영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만큼 YTN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항상 단정한 차림으로 취재에 임할 것이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촬영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선배들이 6개월의 수습 기간 이후 자신의 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6개월 동안 각고면려의 자세로 임할 것이며, 항상 겸손한 자세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그때그때 질문하여 부족한 부분을 빨리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매사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초심을 잃지 않는 촬영기자가 되겠습니다. 일이 익숙해지고 연차가 늘면서 타성에 젖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신입 때 다짐했던 포부를 끝까지 명심하고 되새기겠습니다.   2015년 9월 1일. 저는 YTN의 촬영기자가 되었습니다.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 위에 올라선 지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났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느낀 건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선배들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후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광현 / YTN 
    2015-11-23
  • YTN 신입 기자를 소개합니다
    "생각"하는 촬영기자가 되겠습니다.   신문방송학과 학생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제가 처음 카메라 기자라는 직업을 접한 곳은 군대였습니다. 촬영과 영상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었던 제가 단지 신문방송학과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단의 영상을 책임지는 정훈공보병이 됐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가 하던 일 중 하나는 부대에 일이 생기거나 행사가 있을 때 보도자료를 받은 카메라 기자들이 오지 못할 경우, 영상을 대신 찍어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보도 영상은커녕, 휴대폰으로도 영상을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는 제게 공보장교가 와서 한마디 건냈습니다. “모르겠으면 그냥 촬영기자들 졸졸 따라다니면서 찍어”  이 한마디에 저는 카메라를 들고 말 그대로 ‘영혼 없이’ 카메라 기자들을 따라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와서 저 때를 생각하는 이유는 저는 ‘영혼 있게’ 뛰어다니면서 영상을 담은 카메라 기자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카메라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실 아직은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대학생 때는 손 끝 하나 건드려보지 못한 엄청난 중압감의 ENG 카메라를 다루며 각종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습득하기 벅찬 상태입니다. 그리고 아직 제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언어인 영상언어를 고민하며 익히기도 바쁩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제가 선배들께  배우고 현상을 뛰어다니다보면 언젠가 극복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제가 찍는 영상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생각하는 카메라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멋지다고, 예쁘다고 촬영했던 영상이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고, 제가 좋은 의도를 갖고 촬영한 영상이 누군가에게는 다르게 해석되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촬영하게 될 현상, 사건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생각해서, 이를 왜곡되지 않고 진실성 있게 전달하는 카메라 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카메라 기자는 현장에 나가서 의미 없는 것을 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직업이 아무 생각이나 고민 없이 임하면  더 위험하다고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아오며 일어난 대부분의 사고는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 중요한 직책을 차지해 의미 있는 것을 휘두르다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 직업적으로 의미 있는 것을 다룰 수 있는 신분이 됐습니다.  다만 이것이 좋은 결과를 불러올지, 나쁜 결과를 불러올지는 내가 얼마나 생각하고 고민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바른 생각을 하는 카메라 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김세호 / YTN
    2015-11-23
  • YTN 신입 기자를 소개합니다
    카메라기자란 이름을 받고   우리 주변에서는 지금도 셀 수 없이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분야도, 성격도 각기 다른 그 모든 일들을 우리가 직접 찾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사회가 발전하며 각 분야의 성격이 뚜렷해지고 있기에, 거꾸로 우리는 서로를 점점 더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가치관이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성숙한 사회의 한쪽에는, ‘나만이 옳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갈등과 대립의 벽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카메라기자는 이런 장벽을 허물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결은 렌즈가 가진 직관성과 현장성에 있습니다. 어떤 감각보다도 직관적인 시각 자료로 현상을 보여주기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건사고부터 복잡한 최신 과학 트렌드까지, 남녀노소 모두를 이해시키는 가장 좋은 도구를 든 전문인이 카메라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이러이러한 일도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네’라는 사실 그 자체를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카메라기자의 본분이자 매력이라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이 막중한 임무를 띤 직업군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는 사실이 설레면서도 어깨가 무겁습니다. 현장에서 나 한 사람의 판단과 가치관으로 담아낸 영상이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내 눈과, 프레임을 결정하는 줌렌즈 위의 손가락이 거대한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미덕을 칭찬하고, 누군가의 악행을 고발해 여론의 단두대 위에 올릴 수 있는 파급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수습 카메라기자 박한울’입니다. 영상을 취재하고 나서 스스로 그림을 봐도 아쉬움과 한숨만 이어지곤 합니다. 생각의 틀도 기술의 능숙함도 미진합니다. 그러나 기술만 앞세워 ‘때깔 좋은’ 영상을 뽑아내기보다는, 위에 풀어 쓴 글처럼 생각을 먼저 하는 데 초점을 두고 6개월의 시간 동안 스스로를 담금질하려 합니다. 명함에 파인 직업명이 카메라감독이 아닌, 카메라기자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뒤 어느 날, 선배들에게 다른 말은 몰라도 이 말만은 꼭 듣고 싶습니다. “쟤는 생각이 건강한 친구야.”   2015년 10월 19일 YTN 수습 카메라기자 박한울     박한울/ YTN
    2015-11-23
  • <이신 변호사칼럼> 유언에 대하여(2)
    유언(遺言)에 대하여(2)   지난 지면에서는 유언제도의 취지와 유언의 방식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지면에서는 유언의 효력 및 유증(遺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언은 유언자가 사망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발생하게 됩니다.(민법 제1073조 제1항) 유언자는 유효한 유언을 한 이후라도 살아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도록 유언철회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언자가 유언을 철회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유언을 철회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를 법정철회라고 합니다. 법정철회사유로 ‘전후(前後)의 유언이 저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전(前)유언은 철회한 것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죽으면 00아파트를 A에게 준다.’라고 유효한 유언을 하였다가 살아있는 동안 ‘내가 죽으면 00아파트를 B에게 준다.’라고 또 다른 유언을 하였다면 시간적으로 앞선 유언은 철회를 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또, ‘유언 후의 생전행위가 유언과 저촉되는 경우’에는 전(前)유언은 철회한 것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죽으면 00아파트를 A에게 준다.’라고 유효한 유언을 하였다가 유언자가 살아있는 동안 00아파트를 B에게 매도한 경우 그 매매는 유효하고 앞선 유언은 철회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또한 유언자가 유언증거나 유언의 목적물을 훼손한 경우에는 그 훼손한 부분에 관한 유언은 이를 철회한 것으로 봅니다. 유증(遺贈)이란 유언에 의하여 재산을 무상으로 증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증의 종류로는 포괄적 유증과 특정적 유증이 있습니다. 포괄적 유증은 상속재산의 전부 또는 비율에 의한 유증으로 예를 들면 상속재산의 3분의 1 또는 2할을 준다는 형태의 유언을 말합니다. 특정적 유증은 개개의 재산상의 이익을 구체적으로 특정한 유언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은 장남에게 동산은 차남에게  현금은 장녀에게 준다. 라는 형태의 유언입니다. 유증을 받는 자를 수증자(受贈者)라고 하는데, 유언자의 사망 전에 수증자가 사망한 경우 유증의 효력은 당연히 발생하지 않습니다. 포괄적 유증을 받게 되는 수증자는 상속인과 마찬가지로 상속재산의 일부비율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게 되므로 상속인이 한 명 늘어났다고 보면 됩니다. 특정적 유증의 경우 유언자가 사망하게 되면, 일단 상속인에게 그 특정물건이 상속되고 수증자는 그 상속인에게 그 특정한 물건에 대해 유증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청구권을 취득한다고 해석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유언자가 사망하였다고 하여 수증자가 특정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곧바로 취득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유증의 목적이 된 권리가 유언자의 사망 당시에 상속재산에 속하지 않은 때에는 그 유증은 효력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유언자가 자기의 사망당시에 그 목적물이 상속재산에 속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유언의 효력이 있게 할 의사인 때에는 유증의무자는 그 권리를 취득하여 수증자에게 이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증의무자가 그 권리를 취득할 수 없거나 그 취득에 과다한 비용을 요할 때에는 그 가액으로 변상할 수 있습니다. 유증을 받는 수증자의 경우 유언자가 사망한 이후 언제든지 유증을 승인 또는 포기할 수 있고, 일부분만을 승인하고 일부분은 포기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유증의무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기간 내에 유증을 승인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를 수증자가 답변을 하도록 최고할 수 있고, 그 기간 내에 답변을 하지 않으면 수증자가 유증을 승인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신/ 협회 고문변호사
    2015-11-20
  • <지역 취재기>
      G1 창사14주년기념 보도다큐멘터리가능성의 바다 관광블루오션 동해       (G1강원민방 홍성백 기자)     꿈과 목표 평소에 수중촬영에 관심이 많아 회사업무와 교육을 병행하여 현재 모 단체의 인스트럭터로 있고 마찬가지로 인스트럭터인 유세진 선배와 함께 수중팀을 꾸려 촬영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촬영을 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꿈과 목표가 있었는데 네셔널 지오그래픽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 마다 제작된 유명 다큐멘터리를 보며 한곳 한곳 가보는 꿈을, 그 장면을 직접 촬영하는 상상을 하곤했습니다.   낯선 기획안 사내 네트워크 쪽지로 기획안 하나가 보내져왔습니다.강원도 강릉에서 수십억 규모의 해중공원을 조성하는데 이걸 계기로 동해안 수중생태와 스쿠버다이빙 관광을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곧바로 선배한테 전화가 왔고 이미 예산지원과 모든 결정이 나와 1년 뒤 회사 창사기념특집으로 방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볼 수 있음과 동시에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긴장감에 기획안을 수십번도 더 읽어 보았습니다.   촬영 돌입 남은기간은 1년. 평일엔 춘천 본사에서 데일리와 당직을 하고 주말에는 바다로 달려갔습니다. 강원도 고성부터 시작해 속초, 양양, 강릉 바다 속을 들어갔고 제주도, 울릉도, 필리핀 등을 다니면서 바다 속의 사계와 각 지역의 해양관광 모습을 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흔들리거나 색감을 잃지 않은 고퀄리티의 영상이 필요했습니다.내 몸을 충분히 가누고 컨트롤 할 수 있는 다이빙 능력과 수중에서도 쉽게 조작 가능한 촬영능력, 라이트와 광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촬영대상을 찾는 게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뭘 찍어야 할지, 찾아서 어떻게 찍어야하는지, 발견하는 순간 도망가 버리고 움직이는 생물들을 편집이 가능하게 찍어야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자신들이 나오는걸 싫어하는 리조트와 다이버들의 촬영도 어려웠습니다. 회유하는 물고기가 돌아올 때까지 한자리에 30분 동안 돌틈에 혼자 숨어 기다린 경험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위기. 그래도 해야 돼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해진 기간 안에 고퀄리티의 아웃풋을 뽑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배가 안 떠도, 시야가 좋지 않아 아무것도 안보여도 바다에 들어가야만 했고 다른 영상에 붙여 편집할 수 있도록 바위에 붙어있는 생물 하나라도 찍어와야 했습니다. 3박의 울릉도 출장 중 갑작스런 강풍주의보에 하루 밖에 물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 하루에 모든 분량을 촬영해야 했습니다. 제주에선 높은 파도에 배 밖으로 튕겨 떨어지기도 했고 힘으로도 버틸 수 없는 조류에 라인을 놓쳐 선배와 손붙잡고 위험하게 수면에 떠올라 배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이 순간이 지나면 담을 수 없는 것들이기에 선배의 한마디가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해야 돼 우린 기자잖아’     방영과 성취 많은 우여곡절과 힘든 제작과정을 지나 방영 전 날이 되었습니다. 예고, 전타이틀, 제공, 광고, 본편, 클로징, 후타이틀 등 한 장면 한 장면, 자막하나 틀린 것 없나 수십 번을 봤습니다. 수십 번을 보고도 집에서 혼자 시청한 본방의 설렘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과 방법, 수중촬영 등의 기본 능력도 배웠지만 제작 기간 동안 내 빈자리를 같이 일하는 동료와 선배들이 메꿔주시고 도와주시고 힘을 불어 넣어주심에 다시 한 번 방송은 다 같이 하는 것이 구나를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다큐제작팀에 추천해주고 모든 구성과 편집을 혼자 한 선배한테 고맙다는 말 하고 싶습니다. 이제 하나의 꿈과 목표를 이뤘으니 또 다른 목표를 향해 한층 더 발전되는 촬영기자가 되겠습니다.         (G1 유세진기자와 홍성백기자)         홍성백 / G1 보도국
    2015-11-20
  • <사이버 폭력 취재기>
    21세기 신 주홍글씨사이버 폭력 벤쿠버는 우기로 접어들어 비가 내린다.   캐나다 벤쿠버는 우기로 접어들어 비가 내렸다. 몇 년 전 자살한 소녀의 집으로 가는 길은 비가 내려서인지 우울함이 더 했다. 생소한 이름일수도 있고 들어본 이름일수도 있는 아만다토드.15살의 어린 나이에 자살이라는 극한의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으려 그녀의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내리는 비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인터뷰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조심스런 취재였다.  13세의 아만다 토드는 부모의 이혼과 원만하지 못했던 학교생활의 탈출구로 화상채팅을 하다가 상대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 그만 본인의 가슴을 보여줬고 얼마 뒤 그 남자가 이 화면을 캡처를 해서 다시 전신을 보여 달라는 협박에 넘어가 전신을 보여주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그 화면은 걷잡을 수 없이 세상에 퍼져 나갔고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아만다 토드는 창녀취급까지 받는 수모를 당했고 여러 차례 학교를 옮겨보고 심리적 치료도 해 봤지만 그녀를 올가멘 지독한 낙인은 지울 수가 없어서 15세가 되던 해에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캐나다는 충격에 빠졌다. 그녀의 엄마는 딸의 죽음을 계기로 제2의 아만다 토드가 나타자지 않도록  사이버 폭력이 사라지길 바라며 캠페인에 앞장서며 활동하고 있다. 아만다의 방을 스케치 하기위해 갔더니 정말 그 또래의 소녀같이 벽에 저스틴비버의 사진이 붙어있었고 인형도 많았으며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평범하고 예쁜 아이의 방 그대로 였다. 그런 아만다가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세상에 대한 미움으로 촬영 내내 가슴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그녀의 엄마로부터 인터뷰를 한 뒤 아만다의 묘지라도 가보려 물어봤더니 아만다는 어둠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아이라 화장을 한 뒤 그 유골함을 집에 두고 작은 재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녀의 엄마는 그 가해 학생들을 다 용서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과연 용서가 되는 것일까!   인터넷의 세상, 그 가운데서 특히 SNS(Social Network Services)는 많은 세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역사적으론 아랍의 봄을 일으켰고 작게는 개인 간의 소통을 통한 네트워크 구축이다. 이러한 순기능 뒤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악마의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다. 청소년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이버 왕따다. ㅇㅇㅇ동영상 유출, 우리는 오늘도 출처를 모르는 찌라시와 동영상을 보며 내심 재밌어하고 죄책감 없이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즐기는 세상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의 화살은 언젠가 나와 내 소중한 사람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보고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전 세계에 4위인 83% 달한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SNS를 통해서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갈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퍼져나간 내용은 다시는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로 남아 죽는 그 순간까지 괴롭힐 것이며 죽고 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무서운 악마로 남는 것이다.   제2의 아만다 토드는 내가 될 수 있고 내 가족이 될 수 있다.   밴쿠버 작은 마을 연못가엔 벤치가 있다. 그 벤치엔 아만다 토드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그녀의 명복을 빈다.       정현석 / KBS  
    2015-11-20
  • 42회 한국방송대상 수상자 이종혁 인터뷰
    (이종혁 기자)         Q. 제42회 방송대상 카메라기자상을 받으셨는데, 어떤 작품으로 상을 받으셨나요?  이게 어떤 작품으로 상을 받은 것이 아니고 개인상인데요. 개인이 방송발전에 얼마나 공적을 쌓았느냐하는 개인상이예요. 그 공적을 인정받아서 그중에 카메라기자로서 보도영상에 어떤 공적을 쌓았는지를 인정해주는 상이예요. 드론을 활용해서 받았어요. 보도국에서 최초로 드론을 도입(활용)해서 보도영상의 지평을 넓혔다 하는 그런 의미로 말이죠. 솔직히 KBS가 한 달 후에 하고 제가 한달 전에 했어요. ^^  KBS 이재섭 선배가 더 열심히 하셨어요.     Q. 상을 받은 소감?  영광스럽죠.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혼자만 한 게 아니고, 처음 시작할 때 주도적으로 제가 맡아서 하긴 했지만 도입하는 거부터 주변에서 신경써주신 선배님, 후배들 (이성재후배, 박지민선배, 고은주후배) 다 같이 했는데,  혼자 전담한 것으로 이렇게 큰 상을 받았네요.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상을 받았어요. 정말 고맙고 감사해요.     Q. 카메라기자로서 취재를 하면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취재는?  아무래도 드론으로 상을 받은 것이라서 가장 기억에 많이 것은 예전에도 한번 작품으로 드론을 사용했는데, 드론교육을 받고 처음 실전에 투입됐을 때, 드론을 떨어뜨렸거든요. 그 당시에만 해도 고가의 장비인데...서해 앞바다에서 날렸다가 떨어뜨렸던 그런 기억이 가장 많이 남네요.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같이 갔던 후배들, 오디오맨들은 떨어진 드론을 주우러 바다에 들어갔어요. 저는 거의 멘붕에 빠졌죠.(웃음) 다행히도 떨어진 드론이 수심이 얕은 곳에(허리까지만 잠기는 수심) 떨어져 다시 주워서 날릴 수 있었어요. 그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네요. 그러고 나서는 드론을 계속 날리니까~~뭐 떨어뜨릴 걱정은 없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     Q. 드론을 활용한 취재 시에 어려웠던 점은?  위험성, 안전. 이러한 법규 위반. 저번에 협회에서 주최한 드론간담회를 통한 드론 교육시 들었던 내용들. 전에 드론에 관련된 법규가 구비되어있어도 인식이 부족했을 때는 사람 많고 차도 많은 복잡한 신촌 하늘에서 날린 적이 있는데 많이 무모했던 것 같아요. 어려웠었죠. 취재쪽에서는 요청이 오는데 날리기가 애매하고 법은 제정이 돼 있었지만 인식이 없었던 상황이었죠. (이런데서는 날리면 안된다하는) 요즘은 조금씩 인식을 하고, 위반이 문제가 되고 그래서 지금은 컨트롤 할 수도 있고, 처음 드론을 도입해서 한 2년간은 드론취재 요청이 들어오면 우리도 이제 이걸 안정화시키고 실적을 쌓아야 했기 때문에 무리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좀 어려웠어요.     Q. 후배들을 위해서 해주고 싶은 말? (카메라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단순히 그냥 카메라 찍는 거 편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 떠나서 1차적으로는 영상에 대한 어떤 자신의 생각과 뉴스로써 보도영상으로써 어떻게 전달할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거 같고요. 2차적으로는 조금.. (회사에)들어와서 보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이 직종자체를 어떻게 하면 발전 시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 단순히 특수촬영이든, 드론촬영 등을 떠나서 저희는 안하고 있지만 타사는 약간 뉴미디어 쪽으로도 능력을 좀 더 발휘하고 있거든요. 이제는 뉴미디어 쪽으로 이 직종이 단순한 뉴스촬영에만 국한되지 않고 좀 더 어떻게 하면 카메라기자로써 역할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카메라기자가 단순히 카메라 찍는 사람, 편집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고, 영상관련해서 카메라기자의 영역을 넓혀 갈 수 있는... 그런 게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당장은 각 사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그런 영역을 좀 더 넓힐 수 있는 곳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뉴스에만) 국한되어있는 곳도 있고, 단순히 찍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찍는 게 좋고 편집하는 걸 좋아해서 들어온다면 조금 힘에 부칠 수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Q. 카메라기자가 된 이유?  저는 카메라기자가 되고 나서 그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일단 뭔가..영상을 담고 영상을 바라보고 단순히 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직접 사각틀안에 프레이밍을 해서 어떤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드론을 하겠다고 했고. 좀 더 색다른 프레임을 만들 수 있고, 그로인해 좀 더 색다른 화면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어서.. 그런데 이게 단순히 카메라감독이 아니라 카메라기자를.. 그런의미에서는 카메라감독이나 카메라기자나 비슷할 수 있지만 카메라기자는 조금 더 자신의 생각, 주관적인 것을 화면에 많이 담을 수 있어서..PD나 다른 사람들에 의한 영향을 받아서 카메라에 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생각으로 화면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카메라기자가 PD역할도 하고 하는~) 단순히 찍는 것만 좋아했다면 아마 카메라 감독해도 됐겠지만...     Q. 아끼는 사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or 영상)  결혼식(웨딩촬영) 사진..?^^.. 음...시베리아 출장가서 취재할 때...시베리아 허허벌판에서 찍은 사진들.. 한여름에 비닐 하우스에 들어가서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찍힌 사진도 있고.. 사진이 많은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웃음) 아끼는 영상은..(너무 많은?) 드론으로 찍은 영상들은 다 소중한거 같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제가 보관하고 있어요.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서 가끔씩 누군가 필요하다고 하면 도움이 되 줄 수도 있고,  회사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따로 외장하드에 보관하고 있거든요. ^^ 벚꽃축제때 벚꽃을 찍은 것이라던지..많아요. 무언가 의미가 있는 영상이라면 처음 드론을 활용했을 때, 모래섬 같은 거였는데 모래섬을 드론으로 스텐드업을 했어요. 기자들 세워놓고... 그걸로 예전에 협회에서 상받은 것인데~ 그런 스텐드업을 처음으로 시도한거죠. 타사에서 했는지 다른 외국방송에서 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섬이 엄청 큰 섬인데, 바다 한 가운데니까 부감을 찍을 수가 없어서 기자들과 상의했는데, 드론밖에 없다. 드론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기회다! 해서 찍은 것이거든요. 상도 받고, 그 당시에 그것은 개미집도 아니고 거대한 모래섬이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 각오는?  저도 아까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솔직히 지금 이 시스템에서...여기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지금 내년이면 9년차에, 여기에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데로 온 거 같은데, 계속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해요. 매너리즘에 빠지는는 듯한... 드론이라는 것도 결국 2~3년 동안... 거의 한3년을 잡고 했는데 이제는 그것 조차도 관심에서 약간 멀어지고 있는 것 같고, 더 파고 들어가서 공부도 해야되고, 뭔가 좀 더 전문적으로 바뀌어야 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어요. 그런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깊이를 더 깊게 만들고 싶어요. (1차적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닌데 자꾸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자신을 바꾸고 싶고,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2차적인거는 뭔가  좀  더 다른 분야를 ....1차적인게 기존에 있는 것에대해 계속 깊이 들어가고 싶고 그전에 가졌던 마음가짐을 좀 다지고 싶은거라면, 2차적으로는 좀 더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고, 카메라기자로서 할 수 있는 것. 예를 들어서 요즘에 인터넷이나 미디어에서 드론을 활용한 것.. 하늘에서 본 한국 이런 것.. 시간이 된다면 (해보고 싶어요) 회사에서는 원할지 원치 않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론을 활용해서 보도영상뿐만 아니라 다른쪽으로도 해보고 싶어요. 보도영상내에서도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싶어요. 옛날에는 제가 드론 나사하나부터 다 풀고 조이고 기름칠도 하고 애정이 있으니까 내 자식같고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지금은 빨리 땅에 떨어지기만을 바라죠. 빨리 띄워서 촬영하고 편집하고, 몸이 쉬는게 더 낫겠다란 생각이 들어서... 아까 말한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는 것 같아서 이제는 바뀌어야 될거 같아요!열정을 더 끌어 올려서 일하고 싶어요^^       취재 및 정리/  최소정 기자
    2015-11-20
  • <특별기획> KBS 뉴스광장 영상 페이스북, 유튜브 계정 오픈
    KBS 뉴스광장 영상 페이스북, 유튜브 계정 오픈                                                 (facebook)   (youtube)     7월 29일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KBS 뷰’ 페이지를 오픈했다. 보도영상국에서 관리하는 ‘뉴스광장 영상’ 업로드용이다. 디지털뉴스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보도본부 디지털뉴스부에서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과 유튜브 그리고 각종 SNS에서 우리 뉴스를 서비스하고 있다. 하지만 ‘뉴스광장 영상’의 경우 기사 없이 영상만 업로드하다 보니 검색이 쉽지 않고 조회수가 너무 저조하여 보도영상국 자체 계정을 만들어 우리가 직접 업로드하고 짧은 기사와 검색어를 넣기로 결정하였다.35초~40초 가량의 짧은 영상이긴 하지만 다양한 장비를 활용하여 꽤 공을 들여 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침뉴스에만 한번 방송되는 게 아쉽다는 의견이 영상을 담당하는 영상취재부 사회팀원들 대부분의 의견이었고, 좀 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자체 계정을 만들어서 관리하기로 했다. 특히 올해는 풍경 등의 영상 외에 24절기, 기념일 등을 주제로 영상을 제작하고 있고 시의성 있는 영상의 경우 홍보 부족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어떻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영상을 노출할 지를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페이스북, 유튜브에 업로드 한 지는 이제 3달 가량인데, 최상철 기자가 제작한 ‘태권도의 날’은 페이스북에서 재생횟수가 2만 3천회를 넘겼고, 600번 이상 공유되었다. 특히나 해외 태권도인들이 큰 관심과 댓글을 남겼다. 최진영 기자가 제작한 ‘국군의 날’ 영상은 5천회 이상 재생되었고 KBS 홍보실의 “KBS 한국방송‘ 계정에서 공유되면서 외국인들에게도 많이 노출이 되었다. 물론 디지털뉴스부에서 관리하는 ‘KBS뉴스‘ 계정이나 홍보실에서 운영하는 ’KBS 한국방송‘ 계정에 비하면 팔로워도 훨씬 적어 조회수가 많이 떨어진다. 타 방송사의 주요 SNS계정의 검색수와 비교해도 엄청나게 저조한 실정이지만, ’디지털‘에서 뒤처지고 있는 우리 촬영기자가 직접 관리하는 계정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보도영상국에서 직접 운영하면서 촬영기자들이 직접 짧은 기사나 검색어 등을 자유롭게 넣을 수 있고 각자의 SNS 계정에서도 공유하면서 활용 가능하기에 아직은 미흡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영상 제작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과 페이스북에 어떤 문구를 넣을지 같이 고민해보고 또 영상을 업로드 한 후에 그들에게 오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누리는 것 또한 재미있다.   특히 영상제작에 도움을 준 여러 기관의 공보담당자들이 우리 계정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하면서 감사하다는 표현을 빼놓지 않는다. 매일 30초짜리 짧은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미흡하지만 갖추어졌고 다양한 주제의 질높은 영상을 모바일환경에 매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공들인 영상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접촉시켜 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아직은 우리 촬영기자들 지인들에 의해 퍼져나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길 바란다. 그럼 당장은 ‘뉴스광장 영상’ 방송분만 업로드하고 있지만, 촬영기자 개개인의 감독판 영상, YTN 돌발영상 같은 구성물이나 전혀 새로운 포맷의 실험도 가능할 것이다. 보도영상국의 아카이브팀과 협력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각 방송사마다 디지털뉴스에 주안점을 두고 인력도 많이 충원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지만 정작 우리 영상기자가  디지털뉴스부, 뉴미디어부 등에 파견 가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SBS가 최근 2명으로 늘었고 MBC 1명, KBS는 1명이었다가 다시 현업에 복귀하였다. 다른 방송사에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가장 ‘디지털’과 친한 우리 영상기자가 ‘디지털뉴스’, ‘뉴미디어뉴스’의 변화에는 아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지금은 미흡하지만 이런 경험이 오랜 시간 쌓이다보면, 모바일 환경에서 어떤 주제가 인기가 있는지 우리 나름의 데이터가 존재할 것이고 새로운 환경에 우리 뉴스가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나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우리 내부에서도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작업이긴 하지만 이것이 촬영기자들도 디지털뉴스에서 배제되지 않고 모바일 환경에 잘 적응해나가기 위한 가벼운 첫걸음 정도의 의미는 있다고 하겠다.    임태호 / KBS  
    2015-11-20
  • <특별기획> 보는 것이 믿는 것
    ‘보는 것이 믿는 것’  비디오머그(VIDEO MUG)      무더위가 계속되던 6월의 어느 날. 대통령이 가뭄 현장을 찾아 농민을 위로하고 직접 물을 주기도 했다. ‘대통령이 물을 준 논, 잘 자라고 있을까?’ 갑작스런 의문은 현장 취재로 이어져 이른바 “비디오머그-대통령 비상급수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대통령이 다녀간 논의 급수 전후 상황 취재와 주변 농민들의 인터뷰를 담아 정규 뉴스에 담지 않은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었다.  SBS 홈피를 통해 50만 넘는 사람들이 동영상을 봤고, 페이스북 도달수 107만 등 SNS에서는 반응은 더 뜨거웠다.  2015년 2월, ‘SBS뉴스가 만든 새로운 동영상 서비스’라는 모토로 탄생한 비디오머그는 SBS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 네이버 TV 캐스트와 다음 TV 팟 등 포털사이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또 내용에 따라 생생영상, 그때뉴스, 자막뉴스 등 세부 브랜드로  제작하고 있다.  비디오머그팀에는 카메라기자, 취재기자가 시시각각 들어오는 내외신 원본을 이용해 영상 콘텐츠를 만든다. 뉴스를 통해 방송된 아이템이라고 할지라도 원본을 다시 보며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치인의 돌발 발언이나 행동, 취재 당시 보지 못했던 점들이 영상에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카이브 시스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과거 영상자료도 꼼꼼히 살펴 제작에 활용하기도 한다.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체 제작 콘텐츠를 늘려가고 있다. 이슈가 될 만한 혹은 방송에서 다루지 않았던 아이템을 찾아 제작하고 있는 것인데, ‘메신저 삭제 대화 복구 가능’, ‘대구 뺑소니 사건’과 같은 기사는 비디오머그 뿐만 아니라 간판 뉴스인 'SBS 8뉴스'를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뉴미디어용 기획 아이템이 주요 뉴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또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입국 시에는 인터넷 실시간 방송 앱을 이용해 현장 상황을 카메라기자가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제작 과정에 카메라기자가 참여하고 있다. 기존 취재 방식대로 취재기자와 협업하며 일하기도 하지만, 여건상 카메라기자가 혼자 나가서 모든 것을 취재해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얼마 전 서울 일대에 그려진 대통령 비하 그라피티(graffiti)를 찾기 위해 홍대와 신촌 골목을 샅샅이 뒤진 적도 있다. 취재가 끝나면 편집과 자막까지 일련의 작업을 직접 해야 한다. 지상파 플랫폼을 쓰지 않을 뿐 제작 과정은 유사하다.  또 취재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비디오머그’에서 나왔다고 하면 우리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속출한다. ‘스브스뉴스’에서 나온거 아니냐, ‘비디오머거’, ‘비디오뭐’ 등 다양한 반응이 돌아온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설명하고 나서야 못 이긴 척 취재에 응해준다. 신생(?) 매체의 애로점을 몸소 느끼고 있다.   비디오머그가 태어난 지 9개월이 지났고, 11월 중순을 목표로 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유할 수 있도록 콘텐츠 경쟁력을 높일 예정이다. 언젠가는 ‘비디오머그’도 올드 미디어가 되어 또 다른 뉴미디어에 바통을 넘겨 줄 것이다. 그 때까지 시청자와 늘 소통하며,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는 진리를 비디오머그를 통해 느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김태훈 /  SBS 영상취재팀
    201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