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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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호 발행 축사- 양동암
    카메라기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신문어떤 과거의 일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한 장의 사진처럼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카메라기자 신문 100호 기념 원고 청탁을 받고 떠올려본 2003년. 그 기억 역시 겨울의 끄트머리 충무로 인쇄골목의 여백이라는 조그만 사무실의 열기로 떠오릅니다. “대통령 축사 왔어?” 이 기산 어느 면에 넣어요?” “오타 다시 한 번 봐 주세요”“배송은 몇 시에 되는 거지?” 꽤 쌀쌀했던 바깥 바람에도 사무실 안의 초짜 배기 편집위원들은 우왕좌왕 열을 내고 있었습니다. 어설프고 엉성했지만 편집위원들의 그런 열기로 2003년 2월 23일 4년 만에 일간지 판형으로 복간된 카메라기자 신문 5호가 나왔습니다. 신문 복간에는 당시 심승보(MBC)회장님과 나준영(MBC)대의협력 국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전 같은 회사라는 악연(?)으로 편집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격월로 발행되는 신문이었지만 신문 편집 경험이 없던 우리 편집위원들에게 두 달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어떻게 신문을 알차게 만들까?’ 에서 ‘무엇으로 이 많은 면(8면이었음)을 채우나!’ 하는 한탄으로 회의가 진행되긴 했지만 각 사의 편집위원들은 열심히 고민하며 신문을 만들었습니다.카메라기자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협회와 회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신문은 꼭 필요한 것이라는 공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 된 신문이 이제 100호를 발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우리 신문도 크게 발전해서 회원들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재난 보도영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부터 디지털 시대 신기술 소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의견과 정보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이런 신문의 질적인 발전에는 많은 편집위원들의 고민과 노력 그리고 회원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도 우리 신문은 보도영상의 발전과 공정성. 그리고 카메라기자의 권익을 위해서 다양한 논의의 장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보도영상을 담당하는 카메라기자의 위상과 보도영상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합리하게 힘의 논리로 회원들의 권익을 헤치고, 보도영상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제도와 시스템들이 훼손되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신문의 적극적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카메라기자 신문 100호발행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2003년 복간호 1면에 실렸던 노무현 대통령의 축사 중 일부를 적어봅니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순간의 영상이 진실을 말해줍니다. 그것이 바로 눈으로 보는 뉴스의 힘입니다. 그런 점에서 카메라 기자들은 역사의 현장을 통찰하는 사관의 눈을 가진 정확한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여러분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 해주시길 바랍니다.’ 2003년·2004년 편집장양동암
    2015-09-04
  • CBS신입 카메라 기자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CBS 카메라기자 채성수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생생한 영상을 전달하겠습니다!무더운 여름 뙤약볕 아래 누구보다 현장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카메라기자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CBS카메라기자 채성수입니다.항상 현장에서 커다란 ENG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지고 진중한 눈으로 촬영하시는 선배님들의 모습은 언제나 제게 동경에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카메라기자라고 여러 선배님들께 인사드릴수 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만큼 카메라기자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입니다.CBS에 입사해서 아직은 실수하는 일이 많고 부족하지만 좋은 선배님들께 배우고 있어서 조금은성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더 열심히해서 언젠가는 선배님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어릴적 부터 카메라를 좋아해서 이 일을 하고싶었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만큼 더 열심히 뛰어다녀서 좋은 영상, 중요한 영상들을 담아내는 카메라기자가 되고싶습니다.제가 생각하는 카메라기자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어떤 장면을 촬영해야 이 현장의 분위기를 가장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면서 촬영하는 카메라기자가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채성수 / CBS
    2015-09-02
  • <지역 취재기>
    “광수야, 오늘은 하늘에서 한 번 훑어야 할 거 같은데...”   데스크 지시가 떨어진다. ENG카메라만 챙기던 내가, 챙겨야 될 준비물이 하나 더 생겼다.그건 바로 카메라가 달린 비행물체, ‘드론’이다.처음엔 모든 게 어려웠다. 전에 RC카나 RC비행기를조종해봤지만 드론은 만만치 않았다.‘오르락 내리락’이 전부. 그마저도 떨어질까, 날아갈까 조마조마. 퇴근하고 주말에 시간을 내서 틈틈이 연습을 하지만, 그것도 별로 효과는 없었다. 닥쳐서 해야 뭐든 이뤄지듯이. 대부분 조종능력과 기술은 취재하면서, 현장에서 날려가면서 익혔다. 그렇게 드론은, 십년 넘게 내 곁을 지켜온 ENG카메라의 자리를 조금씩 차지해가고 있었다.최근 드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만큼, 드론을 활용한 제작물이 늘고 있다. 현장에 나가면 부감 찍을 포인트부터 찾았던 나지만, 이제는 드론을 띄울 안전지대(?)부터 찾는다. 취재기자들도 리포트에 좀 더 다양한 드론 영상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때문에 단순한 항공촬영을 넘어 어떻게 이것을 보도 영상에 적절하게 녹여 뉴스의 완성도를 높일지 많이 생각하게 된다. 특히 드론같이 긴 호흡을 가진 영상을 1분 30초 내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뉴스 영상에서 그 효과가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접근이 어려운 현장 취재를 넘어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조종기술이 늘수록 카메라 기자로써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안전에 대한 고민도 점점 늘고 있다. 내가 조종을 아무리 잘해도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드론은 언제든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드론을 활용하는 카메라 기자라면 누구든 갖고 있는 고민이겠지만 강원도 기자로써의 고민이 있다. 강원도에는 군부대가 워낙 많다보니 드론을 띄우기 전에 항상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서 날려도 되는지 물어보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긴 건 이것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찍어도 안 걸리던 것이 드론을 조금만 띄워도 쉽게보이는지. 드론을 띄우고부터 강원도 군부대 시설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이렇게 고민도 많지만 얻는 것도 많다. 강원도 최초로 뉴스 영상에 드론을 도입한 카메라 기자라는 타이틀.보여지는 타이틀보다도 뿌듯함이 들 땐 ‘뉴스가 멋있어졌다.’ ‘그림이 세련됐다.’ 등의 시청자들의 반응이 들려올 때다.이런 반응에 모든 고생이 잊혀지고, 끊이지 않는 고민들이 지난 십여 년간 나를 진짜 카메라 기자로 키우고 지탱해 준 힘이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거쳐야 할 길이란 것도 안다. 역시 나는 천상 카메라 기자인가보다.           이광수 / G1 보도국      
    2015-09-02
  • <아프리카 취재기>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아프리카     입사 20년만에 아프리카에 갈 기회를 얻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동안 그 기회를 애써 잡으려 하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묘한 곳이다. 가고 싶으면서 가고 싶지 않은 곳.. 에볼라, 테러, 기아, 해적.. 나의 마음을 주저앉게 하고도 남을만한 단어들부터 떠올랐다. 반면에 대자연, 사파리, 원시, 정글 등 만만치 않은 매력들이 손짓했다. 몸보다 마음이 늙으면 생전에 아프리카를 못 간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출장을 준비했다. 2주 일정의 가나와 케냐의 초행길엔 준비할 것이 많았다. 우선, 황열병 예방주사는 전에 남미출장 때문에 맞은 것이 아직 유효기간이 남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유효기간10년) 가나와 케냐 입국 시에 모두 꼼꼼하게 옐로카드 소지여부를 검사받았다. 말라리아약도 처방을 받았는데 과정이 간단치 않았다.보통은 황열병 주사를 맞고 국립의료원에서 처방을 받아오는데 그곳에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근처에서 처방받으려 했지만 주변 약국에 약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약이 있는 약국을 확보하고 그 근처의 가정의학과에서 처방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문제가 있었다. 의사가 말라리아에 대해서 네이버보다 지식이 많지 않았다. 의사가 권한 약은 아프리카지역에서 내성이 생긴 성분의 약이었다. 그래서 설명을 하고 다른 약을 요구하니, 의사는 검색 후 수긍을 하고 약을 바꿔주었다. 실제로 남아공월드컵 당시 내성이 생긴 약제 처방으로 사망사고가 있었고 이 때문에 의사가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아프리카에 많은 열대열 말라리아의 예방약은 ‘메플로퀸(제품명 라리암정)’과 ‘아토바쿠온-염산프로구아닐 복합제(제품명 말라론정)등을 복용해야 하며 내성이 확인된 클로로퀸 계열의 약은 처방받아서는 안된다. 나는 그 중에서도 간에 부담이 덜하다는 말라론을 처방받았다. (처방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마지막 고비는 이라크전쟁 트라우마가 있으신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두바이에 간다고 하고 길을 나섰다. 두바이가 중간기착지이므로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근데 이것이 더 큰 화근이 될 줄이야... 가나, 못 가나? 바리바리 준비하고 도착한 나의 첫 아프리카는 가나였다. 샘 오취리의.. 도착해서 수도 아크라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니, 샘 오취리가 자신의 모국을 적극적으로 미화시켜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 번화가라는 곳은 우리 70년대 시골 읍내 수준이었다. 특히 하수구가 미비해서 이리저리 흐르는 오물은 안타까웠다. KOICA의 도움으로 돌아본 세계최대의 전자제품 쓰레기장 아그보그블로시는 멀지않은 나의 기억을 소환했다. 난지도. 지금은 미디어 산업의 메카가 되었지만 90년대 초에 둘러본 난지도는 쓰레기의 그랜드 캐년이었다.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장관이 펼쳐졌고 아동노동을 비롯해 열악한 난민형 빈민들의 삶을 취재할 수 있었다.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이기주의와 생존이 절박한 가나의 현실이 접점을 이룬 곳이었다. 우리나라가 60년대 초에는 가나의 국민소득의 절반이었다고 한다. 자칫 우리의 현재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가정하니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다음 취재는 가나의 코코아 산업이었다. 아프리카의 2번째 코코아 수출국이지만 원료수출에만 그쳐 농부들의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체적으로 연구소도 만들고 조합도 만들어 수익을 높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킹스바이트라는 자체 생산 초콜릿도 생산하고 있었는데 선입견과는 달리 지금껏 먹어본 어느 초콜릿보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었다. 한국에서 맛을 본 동료들이나 가족들도 매우 만족했다. 초콜릿은 아직도 다국적 대기업에 의해 식민지적 산업구조가 고착되어 있는데 가나사람들의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에서 커다란 변화의 시작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가나 사람들은 대체로 선량한 느낌을 주었지만 카메라를 발견하는 순간, 야수로 변했다.그렇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고 돈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작은 핸디캠으로 촬영 했지만 나의 검지 못한 얼굴은 어디서나 눈에 띄는지라 카메라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동생처럼 지내던 운전기사 P.J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의 입장을 변호해 주었고 재미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무료로 설득 당했다는것이다. 나는 항상 해외출장마다 현지인 운전기사를 만나면 첨부터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후진국일수록 돌발 상황이 있기때문에 현지인 운전기사를 우선 내편으로 만드는데 노력한다. 그런 나의 노력은 이번 취재 중 여러 충돌상황을 모면케 해주었다.중국사람은 싫고 한국, 한국사람이 좋아 한국에 오고 싶다던 착하고 부지런한 PJ가 눈에 선하다. 하쿠나 마타타~ 케냐. 케냐에 도착한 날 밤, 기관총을 든 경찰한테 뇌물(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뭔가 좋은 것’)을 뜯겼다. 이것도 우리네 20년 전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비록 아직도 더 세련되게 더 많은 액수들이 오고가고 있긴 하지만.. 첫 번째 취재는 코끼리 밀렵문제였다. 1박2일의 초단기 취재일정상 밀렵꾼들을 만난다는 건 언감생심. 어렵사리 밀렵된 코끼리 사체를 발견하고 레인져들의 증언을 듣는 것으로 취재를 마쳤다. 이런 추세로 밀렵이 진행된다면 100년 내에 코끼리가 멸종된다는 생뚱한 팩트는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보너스로 주어진 사파리취재에서 드넓은 대지 위를 뛰노는 사자, 코끼리 사이를 누비며 도시생활에 찌든 나의 영혼은 아프리카의 대평원을 뛰노는 한 마리의 스프링 벅처럼 리셋 되었다.다이슨 선풍기처럼 텅 빈 머리 속을 아프리카의 공기가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취재현장인 짜보국립공원에서 나이로비로 돌아오는 원래 5시간정도의 여정은 9시간이 걸렸다. 속으로 하쿠나마타타 (No problem) 를 되뇌며 성불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취재는 가난한 커피농가의 자립을 위한 노력들을 취재했다. 가나의 코코아와 마찬가지로 케냐의 커피농가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인해 재배기반 자체가 무너진 곳이 많았다. 한국의 NGO ‘월드 베스트 프렌드“가 케냐 북부의 바링고주를 도와서 공정무역을 하고 있는 현장을 취재했다. 제 값을 받자 흥이 나서 농사에 매진하고 있는 농부들과 진심으로 한국의 공헌에 감사하는 바링고 주지사와 공무원들의 모습에서 공정무역을 통한 국제협력의 성공사례를 볼 수 있었다. 이번 취재에서 자립에 힘쓰는 아프리카인들의 노력들을 보며, 인간의 주요한 가치들을 훼손하더라도 이익의 극대화만을 꾀하는 서구식 자본주의 (우리나라에서도 횡행하는)가 아프리카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원조를 미끼로 자본주의 경제대국들에 의한 신식민지화를 국제사회가 경계해야 하고, 자신들의 전통과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재생 가능한 (Renewable) 원조모델이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당초 겁먹었던 것 보다 훨씬 순조롭게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한국엔 메르스가 돌고 있었다. 두바이에서 돌아온 걸로 되어있는 나는 또다시 어머니의 큰 걱정꺼리가 되어있었다.     최연송 / KBS보도영상국 영상취재부        
    2015-09-02
  • <최강현 칼럼> 행복한 성(性)
    세월에 장사 없다 더니, 눈앞에 보이는 형형색색의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지 않은 이가 있다. 몸은 예전같이 않지만 마음은 그 옛날 교복 입던 시절이 눈에 아른 거린다.남편을 출근시키고 한동안 창밖에 지는 나뭇잎을 보노라면 슬픔이 밀려오고 피부에 와닿는 싸늘함으로 세월의 흐름을 느껴본다. 계절은 여름인데도 “잊혀진 계절의 성(性)”인 여성의 폐경기(menopause)는 제2의 삶을 사는 시기로 남성과는 다른 중요한 생애 시기이다. 폐경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감소로 인하여 갑작스런 얼굴 붉어짐이나 성교통, 발한증, 신경과민, 두통, 현기증, 건망증, 우울증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증상이 심할 경우는 전문의를 통한 호르몬치료를 권하고 싶다. 규칙적인 운동과 충분한 섭생에 신경을 써야 하며 체중조절에 주의가 필요하다. 요즈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나 남편의 특별한관심과 격려는 매우 중요하며 외식, 영화관람, 쇼핑과 둘 만의 여행을 통해 부인의 힘든 시기를 도와주어야 한다. 폐경기 여성 호르몬의 변화를 알고 극복하자 50대에 접어든 이여사는 최근 잠을 자다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겪었다.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우울감에 빠져 집에 있는 일이 많아지고 한 달에 한 번 있던 생리도 거의 나오지 않는 변화도 최근의 일이다. 이여사는 병원에서 호르몬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난 후부터 증상이나아졌다. 여성의 대표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생리를 시작하고 임신, 출산, 폐경에 영향을 주는 성호르몬이다.여성 갱년기 증상의 대표적인 폐경은 평균 50세부터 나타나며 난소가 기능을 다하면서 여성호르몬이 줄어들고신체적, 정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며 안면홍조, 불면증, 불안감, 초조, 우울, 기억력 감퇴, 성교통, 성욕감퇴, 피부변화 등의 신체적, 정서적 불안증상이 나타난다. 폐경으로 인한 에스트로겐 등 여성호르몬 감소는 여성성의 상실로 끝나지 않고 비만, 심혈관질환,  만성질환, 골관절질환 등의 유병률을 높이고 대표적인 증상은 ‘복부비만’으로 나타난다. 에스트로겐은 복부지방 분해를 촉진하는효과도 있기 때문에 남성형 복부비만이 증가한다.복부비만은 당뇨병, 관절염, 심장질환, 대사증후군, 고혈압 등의 발병률을 높이며 특별히 정기적인 혈압관리에도 유의해야 한다. 폐경이후 에스트로겐의 저하는 뼈 형성에 필요한 칼슘생산을 감소시켜 골다공증 증상으로 나타나며 뼈의 밀도가 감소하게 된다.따라서 폐경기 여성은 식습관과 식단에서 소금과 화학조미료의 양을 줄이고 신선한 채소, 과일 등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 비만은 고혈압의 위험요소이기때문에 균형 잡힌 식생활과 하루 30분 이상의 운동이 필수이다. 갱년기여성들은 호르몬 불균형으로 쉽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과 수면으로 정신적인 여유를 찾아야 한다. 더불어 칼슘제를 평소에 복용하는 습관으로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것도 꼭 기억하자.삶의 질을 좌우하는 남성호르몬의 감소 남성을 상징하는 ‘남성호르몬’은 남성을 표현하면서 성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사춘기에 분비가 급격히 많아지고 점점 증가하다가 35세부터 매년 1%씩 감소한다. 이처럼 남성호르몬의 감소는 남성 갱년기나 발기부전 등의 성기능 장애로이어 진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지만 ‘테스토스테론’은 30대 초반에 정점에 이른 후 30대 중반부터 해마다 감소하여 중년인 40~50대부터는 남성갱년기 증상으로 나타난다. 갱년기가 찾아온 50대 중년 남성들은 대표적으로 성욕이 감소하고 성기능 장애를 겪을 수 있으며, 피로감이나 무기력증, 우울감, 체지방 증가, 탈모, 피부노화 등의 증상을 경험한다.남성 갱년기의 원인으로는 남성호르몬의 감소와 음주, 흡연,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 및 고혈압, 당뇨, 간질환 같은 신체적 요인 등이 있다. 남성 갱년기 치료는 남성호르몬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근력을 증가 시키고 체지방 감소와 골다공증을 예방 하고 또한 인지능력이 향상되고 정신적 증상 등 무기력, 피로감, 우울증 증상이 개선되면 성적능력과 성기능이 향상된다. 단, 남성 갱년기가 없는일반인에게 사용하면 부작용이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 후에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남성 갱년기의 예방과 스트레스 해소법은 산책, 명상, 운동, 취미활동 등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무기질이 많은 저지방 음식을 먹고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하고 주위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는 성기능 장애의 대표선수인 ‘발기부전’으로 유발될 수 있다. 발기부전은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음경의 발기 강직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질환으로 남성의 성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자신감마저 위축시키는 사회문제가되고 있다. 심인성 발기부전은 성전문가와 상담 후 운동 등 훈련법(성치료)으로 효과를 볼 수 있으며, 기질적 발기부전은 전문의의 진단에 따라 약물복용, 호르몬 주사, 수술 등으로 치료해야 하며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남성 갱년기 극복하는 건강 습관 예전에는 중년 이후 신체능력 저하를 자연스런 노화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100세 시대 수명 연장에 따른 의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첫째, 고지방식과 과식을 피하고 균형식단으로 푸른 생선을 많이 섭취 하자.둘째, 콩, 생굴, 은행, 마늘, 토마토 등의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잡곡, 견과류, 과일과 채소를 섭취 한다.셋째, 일주일에 3회 30분 이상의 등산, 조깅 등의 유산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자.넷째, 적당한 휴식, 수면, 여가, 대화를 즐기면서 화내지 말고 스트레스를 줄이자.다섯째, 금연을 실천하고 음주는 소량으로 줄이자.         최강현 / 부부행복연구원장·성교육 & 부부전문가        
    2015-09-02
  • 내가 만난 메르스
     “메르스? 그게 뭔데?” 5월 20일 오후 4시. 간단한 스케치와 인터뷰만 하면 된다는 데스크의 귀띔으로 국립의료원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담당 기자와 나눈 대화이다. 중동에서 발생한 감기 바이러스이고 전염력이 있긴 하나 우리나라는 기후가 달라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실제 당일 인터뷰한 의료진도 크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여서 나는 이 중동 감기 바이러스가 곧 사라질 줄 알았다.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를 안내한 담당자는 어떤 건물 복도에서 걸음을 멈추게 했고 바로 앞 자동문 너머에 전신 보호 장구를 착용한 의료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를 음압병동이라 불렀고 창문너머 복도 안쪽에 환자 한명이 있단다. 이후 메르스 정국이 확산되면서 방역당국은 이 환자를   “메르스 1번 확진자” 로 불렀다. 복도 밖에서는 그의 가족들이 불안한 기색으로 우리가 진행하는 인터뷰를 엿듣기도 했다. 다음날 이 1번 확진자의 아내도 감염되었다. 총 확진 환자 186명, 사망자 36명, 퇴원 자는 140명에 이르기까지 두 달 동안 전 국민을 극심한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독특한 우리의 병문안 문화와 방역당국의 혼란으로 첫 확진환자 이후 속수무책으로 감염자가 늘어갔다. 6월 중순 서울시내 보건소는 자신이 메르스가 의심된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조그만 미열과 기침 증세만 있어도 자신이 메르스가 아닌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불안해 보였다. 그들과 섞여 취재활동을 하는 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틈틈이 손을 씻으러 화장실을 들렀는데 거기서 유독 기자들을 많이 만났고 손을 씻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도 격리되는 거야?”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기침과 고열을 호소하던 모 언론사 오디오맨이 갑자기 조퇴했다.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지하철 손잡이도 조심하던 때였다. 상상력이 마구 확장되던 시기여서 서울시청 카메라기자실 출입자들 전원 자가 격리되는 것 아닌지 우려했다. 상상은 날개를 달아 상시 출입자들, 임시 출입자들, 카메라기자와 접촉한 취재기자들, 이 취재기자들과 접촉한 다른 기자들까지 격리되는 상상을 했다. 그만큼 메르스 공포가 우리 직종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감기 증세가 없는데도 출근 가방에 체온계와 마스크 그리고 각종 감기약을 넣고 다녔다. 메르스 관련 취재가 많고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기침도 제대로 못하던 시기여서 감기 증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수시로 체온 체크를 했고 하루에 열댓 번씩 손을 소독했다.전문가들은 방역 당국의 관리 소홀과 혼잡한 응급실, 의료쇼핑, 간병문화 등이 메르스 확산의 화를 불러왔다고 질타하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대비 했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메르스 창궐을 막지 못했을 수도 있다. 중동발 감기 바이러스에 대해 무지 했었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의료시설이 부족해 응급실이 과밀화 되었고 의료수준이 일률적이지 않아 실력있는 의사 찾아다니며 아픈 친지를 찾아 위로 방문 한다는 것만이 어떻게 메르스 확산의 원인으로 돌려 버릴 수 있겠는가?SNS 상의 괴담이 점차 사실로 확인되면서 정부 발표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고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확산되었다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우리는 분석자가 아니라 관찰자이다. 사회 현상 그대로를 국민들에게 전달 할 의무가 있다. 메르스 관련 취재를 위해 병원 응급실, 보건소, 식당, PC방 등을 다니면서 소독약에 취하기도 했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했다.보다 섬뜩한 것은 우리 카메라기자 직종이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다녔던 많은 장소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소지가 많고 또 전파자로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번 메르스 정국 파동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안고 가야 될 숙제가 되었다.     정성화 / SBS 영상취재팀          
    2015-09-02
  • MERS 이후 두 달..... 지금은.
    5월 중순, MBC 뉴스의 보건 의료를 담당부서인 사회1부는 대형병원의 ‘중동환자 모시기’ 경쟁에 대해 기획 취재 중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으나 상대적으로 의료시설이 부족한 중동의 환자들이 국가의 지원을받아 외국병원으로 장기입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의 대형병원들이 발 벗고 나서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의 선진 의료 인프라를 인정받는 것이고, 외화획득에도 크게 기여하는 일거양득이라는 거다. 5월20일, <중동호흡기질환 감염자 발생>이라는 취재의뢰서가 넘어왔다.  취재지는 ‘평택’. 처음에는 멍청하게도 ‘중동환자 모시기’와 관련된 리포트인줄 알았다. 이것이 그 후 대한민국을 정신없이 뒤흔들어놓을 재앙의 전조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MERS전쟁은 시작되었다.우선, 타부서에서 영상인력을 급히 지원받았다. MBC는 영상취재부서가  없는 탓에 우리부서의 영상인력으로는 재난사고를 커버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안전’이었다. 가장 현장가까이 접근하는 영상취재진의 ‘안전’과 이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질병전파’의 위험성을 막아야 했다. 긴급한 취재보호장비를 구입해서 배포했다. 발생 초기의 영상인력운용은 가급적 집안에 노약자가 없는 젊은 인력을 중심으로 현장에 투입했으나 결국 밀려오는 취재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전면투입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들려오는 무서운 소식을 접하면서 그것보다 더 무서운 뉴스를 만들기위해 아침마다 감염된 환자와 전염된 병원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끌어온 전쟁은 끝났다. 아니 미봉되었다.MERS 취재 내내 머릿속에는 온통 의문투성이었다. 전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 질병의 실체는 무엇인가? 정말 무서운 괴질인가? 아니면 단지 과민한 집단공황인가? 도대체 이 나라에 국가방역 시스템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세계최고수준이라는 우리나라 대형병원의 정체는 뭘까? 무책임하게 불안을 부추기는 것이 언론의 제대로 된 비판기능인가?이제 그 질병은 차단되었으며 그것의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들은 잘 시행되고 있는가? 앞으로 누가 감시할 것인가? 하지만 이런 나의 의문도 어느날  갑자기 모든 언론에서 서둘러 사라진 MERS보도처럼 서둘러 미봉되었다.그 후 두 달이 흘렀다. 엊그제 <여름철 각막염 조심>이라는 리포트를 만들려고 오랜만에 방문한 한 대형병원은 깨끗했고, 활기찼다. 이제 MERS는 병원관계자와 서로 안부를 묻으며 주고받은 과거의 무용담이 되었다.여전히 병원은 대기표를 손에 든 환자들로 북새통이었다. MERS라는 전대미문의 괴질에 맞서 정부와 의료계와 언론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덕분이라고 하기에는 이 평화가 너무 낯설다.           최경순 / MBC                  
    2015-09-02
  • <유라시아 취재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생방송을...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첫 번째 생방송이 예정된 곳이다. 누군가는 헤어지는 연인과 아쉬움에 진한 키스를 나누고 누군가는 여행의 시작에 들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첫 생방송을 무사히 하기 위해 서울 신호분배실과 전화를 하고 카톡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한편에서는  30개가 넘는 짐과 장비를 기차에 옮겨 싣느라고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9,288km가 새겨진 출발점에서 대망의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출발하는 출정식 절정의 순간에 생방송은 연결됐다.  머나먼 이국땅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을 알리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대가 한 손을 치켜 들며 힘찬 함성을 지를 때, 이 순간 이 전파를 타고 생생하게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안방에 생방송으로 전달되는 순간 긴장되면서도 한편 짜릿했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기차는 끝없이 펼쳐진 초목의 벌판을 지났다. 62시간 만에 도착한 도시 이르쿠츠크 옆에는 바이칼 호수가있다.  ‘성스러운 바다’, ‘시베리아의 푸른눈’으로 불리며 남한 면적의 1/3 크기라는 바이칼 호수에서는 휴양지 해변에 놀러온 비키니 미녀들이 태양을 즐기는 선탠을 곳곳에서 하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여기가 호수가 맞나 생각될 정도. 바이칼 호수가 있는 리스트비얀카에 머무는 시간은 불과 1시간 남짓 이었다. 우리는 이 짧은 시간에 생방송과 리포트를 해야 했는데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통신이 가능한최선의 위치를 찾아 이리 저리 장소를 옮기다가 기지국 안테나를 발견했다. 반가웠다. 이제는 잘 되겠지 하면서 배경까지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통신 상태는 해결되지않았다. 최후의 결정을 했다. 그냥 움직이지 말고 홀드 샷으로 가자. 대신 첫 장면에 가능한 바이칼 호수의 모든 걸 담아보자. 결국 기자가 얼음장 같은 바이칼 호수에 발을 담근 채 한 옆에는비키니에 선탠을 하는 두 여인을 화면에 담았다. 바이칼 호수의 시원함과 휴양지의 안락함 거기에 화려한 여인들까지 멋진 바이칼을 만들어 줬다.이번 시베리아 횡단열차 취재는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출장이었다. 카메라기자도 3명이 투입됐다. 남선은 이승환 기자가 맡았고 북선은 나와 이동규 기자가 출발했다. YTN에서는 드물게 대규모 취재진이 구성된 것이다.이번 취재는 14,400Km라는 지구둘레 1/3의 대장정을 460시간 동안 국경을 넘나들며 때로는 기차에서 몇 날 며칠을 먹고 자고 이동하면서 가는 곳마다 생방송을 통해 소식을 전해야 하는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최대 이동거리인 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3,340km 62시간 동안은 기차에서 먹고 자고 씻고 취재하고 방송해야 하는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이 거리는 서울 부산 거리의 60배가 넘는 그야말로 최악의 코스로 악명 높은구간이다.현실이 그렇듯이 유라시아 친선특급에 올라타고 시베리아에서 생방송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일단 러시아 시베리아라는 곳이 사람도 거의 살지 않는 황무지 벌판에 가까운 땅이고 당연히 그런 곳에서 일상적인 사람들간에 통신조차 쉽지 않은데 그런 곳에서 생방송을 한다니...과연 할 수 있을까.통신, 전원공급, 열차이동, 날씨, 중간 정차역, 정차시간, 시차 등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꼼꼼하고 치밀한 준비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YTN의 친선특급 취재는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 시청자들에게 선사한 멋진 기행이었다.준비한 장비가 너무 많아 장비실장 장비의 블랙홀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ENG, 6mm 등은 기본이고 와이드렌즈, 고프로, 드론, TVU, 별도의 라이트 등 수많은 장비들을 챙겼다. 이 때문에 다양한 시각의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고 보는 눈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출장에 백미 중에 하나가 드론과 고프로 영상이다. 사실 러시아에서도 드론에 대해 부담스러웠는지 계속 문의만 해 오다가 마지막 순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서야 드론 촬영이 가능하다는 승인이 떨어졌음을 알려왔다. 천만 다행이었고 드론을 담당했던 이동규 기자가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해 줬다. 블라디보스토크항, 하바롭스크 아무르강변, 그리고 파란 코발트 바다 같은 풍경을 보여준 바이칼 호수까지 드론이 보여준 시원한 영상은 더위에 찌들었을 시청자들의 눈과 마음에 폭포수 같았을 것이다. 또한 이번 시베리아 횡단열차 취재는 기차에서만 8박을 해야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사실 기차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기차에서 어떻게 먹고 자고 배출할까를 고민 했던 게 사실이다.  출장 후에도 많은 동료들이 기차에서 잘만 했냐고 물어왔다. 그럴때마다 대답했던 말이 생각난다. 첫날은 잠을 못 잤고 다음날부터는 그냥 쓰러져 잤고, 나중에는 기차가 그리워졌다는 사실. 이르쿠츠크 이후 하루 자고 하루는 기차에서 내려서 거점 도시에서 자는 퐁당 퐁당이 계속되다 보니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짧은시간에 취재를 해야 하고 다시 짐을 옮겨야 하는 것들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차라리 기차에 계속 머물렀으면 하는 생각이 날 정도였다. 이번 여정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손기정 선수는 베를린까지 뭘 타고 갔을까? 얼핏 생각해 보면 당연 비행기를 타고 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기차였다.나 역시 이번 취재가 시작되기 전에는 특별히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그러나 이번 원정대 취재를 다녀온 후로 지금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이 순간 철도에 있어서는 일본과 마찬가지인 섬나라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아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과도 연결된 대륙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대륙과 연결되지 못한 채 철도의 섬나라에 살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손기정 선수가,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선생이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헤이그로 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했던 이번 시베리아 횡단열차. 19박 20일 짧지 않았던 14,400km의 대장정.베를린에서 대형 태극기를 펼치며 생방송으로 끝을 맺었던 그순간. 참가자 모두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던 모습이 생생하다.  참가 했던 모두에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순간순간의 기록이 영상으로 빼곡히 쌓여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잊을 수 없는 것. 우리의 염원이 이뤄져 앞으로는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저 시베리아 벌판으로 나아갈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동형 / YTN 영상취재2부                  
    2015-09-02
  • 쇼카손주쿠(松下村塾)와 아베 신조
    지난 7월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시설 23곳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도록 최종 결정했다. 일본은 이 시설들이 '서양 기술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일본의 방식으로 산업화한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일본 정부의 설명대로 등재된 23곳은 모두 산업화의 현장이었을까?후쿠오카 공항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4시간 가량을 달리면야마구치 현 '하기'시가 나온다.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로 하시모토강과 마쓰모토강 사이에 낀 오지다. 하지만 이곳은 일본 역사에 메이지 유신의 발원지로 기록된다.그 주역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이다. 지금도 하기엔 그가 세운 사설 학당이 있다. 바로 쇼카손주쿠(松下村塾)다. 이곳 역시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 5월 26일, KBS취재진이 쇼카손주쿠를 찾은 날은 평일이었음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3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일본인들은 그를 위대한 스승이자 스스로 삶을 개척한 영웅으로 추앙한다. 또한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제자들 역시 존경의 대상이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라든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메이지 시대에 총리대신이 되는 인물을 여러 명 배출한 곳, 바로 쇼카손주쿠다.이토 히로부미는 문관으로 메이지 헌법과 관료제의 기초를 세웠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메이지 일본을 대표하는 무관이다. 야마가타의 군부 계보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역인 가쓰라 다로(桂太?), 조선 초대 총독으로 병합조약을 체결한 데라우치 마사다케(寺?正毅), 조선 2대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 好道) 등으로 이어진다. 한 마디로,조선을 지배한 사람들의 계보는 전부 요시다 쇼인으로부터 출발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요시다 쇼인은 '조선을 침략해야 한다'는 이른바 '정한론'의 주창자였다. 그가 25살에 감옥에서 쓴 '유수록(幽囚錄)'엔 '무력 준비를 서둘러 조선을 꾸짖어 옛날처럼 조공을 바치게 만들고, 북으로는 만주를, 남으로는 대만과 필리핀 섬들을 노획해야 한다'고 기술했을 정도였다.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매년 요시다 쇼인의 신사를 참배한다. 그의 이름에 있는 '신(晋)'자는 요시다 쇼인의 수제자였던 다카스기신사쿠(高杉晋作)의 '신(晋)'자를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쇼인 사상의 신봉자다. 때문에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의 이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진짜 목표가 다른 산업화 유산이 아닌 쇼카손주쿠라고 분석한다."일본 우파들의 주장을 대변할 수 있는 모든 사상의 뿌리가 요시다 쇼인에게 있습니다. 지금 일본이 등재를 신청한 다른 산업 유산들은 쇼카손주쿠 등재를 위한 위장일 수 있습니다. 쇼카손주쿠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요시다 쇼인의 사상이 전부 정당화 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강동진 교수는 "쇼카손주쿠는 산업 혁명과는 1%도 관련이 없는 장소" 라고 못 박는다."규슈-야마구치의 산업 유산에 쇼카손주쿠를 억지로 끼워 넣었다는것은 산업 유산 자체보다는 메이지 시대에 관심이 더 많다는 증거입니다. 메이지 시대의 핵심 정신은 '정한론'과 '탈아입구론'으로 대표되는 침략사상입니다." 쇼카손주쿠를 찾았던 날, 취재팀은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 다정하게손을 잡고 찾아온 연인,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맞춰 입고 온 단체관광객들 등 각양각색의 일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쇼카손주쿠가 얼마안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는 자긍심이었을지 아니면 이토 히로부미부터 현 아베 신조 총리까지 국가의 지도자를 여러 명 배출한 야마구치 현을 방문했다는 뿌듯함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표정엔 배우려는 의지와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들은 쇼카손주쿠가 일제가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의 근원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지 못했고, 오히려 일본의 정신과 혼이 깃든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쇼카손주쿠를 일본의 정신과 혼이 깃든 곳으로생각하게끔 만드는 사람들, 일본의 우파들이다. 그 정점에 아베 신조 총리가 있다. 1954년생인 아베 신조 총리는 52세라는 이른 나이에 전후세대로서는 처음으로 정권을 거머쥔 입지적인 정치인이다. 2006년 제90대 총리에 오른 뒤, 96대를 거쳐 현 97대 총리까지 무려 3번이나 총리 자리를 꿰찬 일본 정치의 핵심 인물이다. 그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침략사상의 대표적 사상가인 요시다 쇼인이라는 것은 아베 신조 총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최근 아베 정권은 집단 자위권 법안을 중의원 본회의에서 처리했다.제3국이 공격당한 경우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반격하는 권리인 집단 자위권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에서 벗어나 타국을 침략할 수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드는 일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이다.아베 신조 총리는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않았다”고 주장해 거센 비판에 직면한 적이 있다. 그에게 있어 그 주장은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쇼카손주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방식으로 침략사상을 자국민들에게 슬며시 주입시킴과 동시에 집단 자위권 법안을 처리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개조시키는 등의 일련의 과정은 전쟁을 위한 준비단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나는 일본, 세계경제의 블랙홀이 되어가는 중국,  그런 중국의 확장을 막으려는 미국, 미국과 대립해 예전 소련연방을 꿈꾸는 러시아, 그 사이에 낀 우리나라. 먼 훗날 역사학자들은 21세기 초반의 동북아 정세를 어떻게 기술할까? 어둡고 슬픈 역사의시작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손병우 / KBS 보도영상국 영상특집부      
    2015-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