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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17일, 영상기자이기에 가능했던 “귀한” 순간들  - 전국 여성 영상기자들의 대모 이향진 MBC 국장 퇴임 인터뷰   MBC 이향진 국장이 2025년 3월 31일 정년퇴직을 맞았다.  1986년 11월 15일부터 2025년 3월 31일까지 38년 5개월 간(14017일) 재직한 이향진 국장의 소회를 통해  영상기자 발전과 여기자 성장의 역사를 동시에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인터뷰 : 조은경 기자)   Q. 국장님, 정년퇴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먼저 38년 5개월이라는 놀라운 재직기록을 달성하셨는데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대학4학년때 입사해서 무탈하게 정년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986년 입사해 영상기자로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것들(영상취재, 생방송뉴스팀 중계PD 등)을 경험했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Q. 여기자가 드문 시절에 기자가 되셨어요. 혹시 영상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대학시절 사진반 활동을 열심히 했고, 그것을 계기로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MBC 신입사원 공고를 보고 영상기자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선배가 입사하셨을 당시 현장에서 여기자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A. 여성 영상기자 1호 선배가 계셨지만 제가 입사했을때는 퇴사하신 상태라 제가 입사했을때는 홍일점이었죠. 취재현장 어디를 가도 눈에 띄어서“카메라 무겁지 않냐?”등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았죠. 여기자가 드문 시절이라 보도국이 있는 5층에는 여자 화장실도 없어서 다른 층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죠. 처음 입사해 수습기간과 신입시절에 야근할 때 숙직실이 없어서 사무실 책상과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죠. 선배들의 관심과 배려로 일을 배우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고, 현장에 가서도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더 열심히 취재할 수 있었죠.   Q. 실제로 일을 하시면서 입사를 준비하셨을 때 생각했던 부분과 달랐던 부분, 또는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 있으셨는지? A. ENG카메라의 무게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죠. 지하철 공사장 등 여성출입이 터부시 되는 곳에서의 취재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설득해서 적당한 선에서 취재를 하기도 했죠. 아무래도 여기자가 거의 없는 곳에서 일하다보니 임신으로 야근과 업무 조정 등을 하는 문제 등은 처음이라 데스크들과 상의해서 해결했어요. 물론 날씨스케치, 남산외인아파트 폭파 등은 간간이 취재를 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출산휴가도 3개월, 육아휴직도 있어서 예전보다는 좋아진 것 같아요.   Q.영상기자가 되기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셨을까요? A. 누구보다 먼저 뉴스를 현장에서 접한다는 것이죠. 문화, 과학, 경제, 정치,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영상취재와 시사매거진 2580 같은 긴호흡의 시사물 취재, 세월호사고, 박근혜대통령 탄핵과 문재인대통령 취임식까지 생방송뉴스팀의 중계PD로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습니다. 김현경 북한전문기자와 <여기자 북한방문기-평양 10박 11일>(2001년3월) 취재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MBC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과 이미지개선을 위해 2005년, 2006년, 2008년 <MBC시청자촬영대회>를 개최했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대회 수상자들이 MBC, KBS에 영상기자가 되신 분들도 있고 종편 시민기자 등 영상분야로 전업하신 분들도 계셔서 뜻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영상기자이기에 가능했던 귀한 순간들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Q. 그러면 실제로 영상기자가 된 후에, ‘영상기자가 되기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 취재 현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문화와 스포츠 취재를 할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오랜기간 취재를 했던 분야인데 심미안을 기르고, 영상적인 고민을 많이 해야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취재원들도 순수하고 좋은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취재하는 것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Q. 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긴 시간을 겪으시면서 영상기자들의 취재 환경이나 업무 변화도 많이 체감하셨을 것 같아요. 국장님이 느끼신 가장 굵직한 변화는 무엇인가요? 또 영상기자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보시는지요? A. 80년대만 해도 해외 출장을 가면 현지방송국에서 위성송출을 해야했는데 지금은 MNG나 인터넷으로 송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영상기자들이 1인 3~4역을 해야해서 업무로드가 증가했죠. 지상파뿐 아니라 종편, 유튜버 등 매체가 늘어 현장이 훨씬 복잡해져서 자리경쟁, 속보경쟁이 더 치열해졌습니다. 요즘은 ENG카메라가 아니라도 누구나 휴대폰으로 영상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이 영상기자가 되어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영상기자들은 더 높은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해야 차별화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기도 합니다.   Q.앞서 언급한 변화들 외에도 여성 후배들이 늘어난 것도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사람 수도 늘어나고, 이제 10년 넘은 여기자들도 회사에서 자리잡고 있죠. 대선배로서 이런 여기자 후배들의 성장을 보는 기분은 어떠실까요? A. 참 뿌듯한 일입니다.예전에 비해 여기자들의 수가 많이 늘어나고,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출입처에서 자신의 몫을 당당히 해낸다는 것도 괄목할만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자 후배들이 20명 이상되고 각자 방송사에서 제몫을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기자 후배들이 더 늘어날거라고 봅니다. 남자기자들보다 현장에서 취재원들과 친화력있고, 섬세한 면에서 여기자들이 강점이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뉴스영상을 제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Q. 여기자에게 요구하는 모습들이 달라져서 과거와 같이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나 현장에서 처우 등이 개선되고, 출입처에 나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선배는 여기자들의 롤모델이셨는데, 앞으로 여기자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A. 예전에 비해서 여성영상기자들이 많아졌고, 자신의 강점을 현장에서 녹여낼수 있는 능력들이 있습니다. 입사초기부터 취재원, 취재기자, 오디오맨, 차량기사 등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자”는 생각으로 일을 하니 생각지 못했던 행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습니다. 영상기자가 현장에서 취재원이나 현장상황을 신속, 정확하게 판단하고 영상취재를 해야 좋은 뉴스가 됩니다. 호기심을 많이 가지고 질문을 많이 해야 핵심을 파악할 수 있죠. 10명의 영상기자가 현장에 있으면 다 다른 영상을 취재하고 담습니다. 뉴스가 만들어지고, 후속뉴스가 나갈때도 나의 영상이 유용한 영상이 될 수 있을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합니다. 그리고 나의 영상이 아카이브로 잘 남겨졌을 때 방송사의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그래서 취재할 때 캡션에 신경을 쓰고, 영상을 자료로 남길때도 정확하게 영상과 캡션을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좋아하는 일도 열정을 갖되 지치지 않아야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머리를 비우고 여유를 가져야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사고의 유연성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고의 유연성은 업무와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한가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38년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이향진 국장은 평소의 바람대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며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근무의 마지막 날 열린 자그마한 축하 자리에는 MBC 동료들과 후배 여성 기자들, 협회 최연송 회장 등이 참석하여 꽃다발과 함께 그녀의 마지막 퇴근을 축하했다.
    2025-04-28
  • 수사받는 기자들을 위한 법적 조언
    수사받는 기자들을 위한 법적 조언 -  1.연재를 시작하며 - 수사와 멘탈 관리   수사받는 기자들을 법적 조언, 줄여서 ‘수기법조’ 연재를 시작합니다. 물론, 이 칼럼이 쓸모 있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나한테 이런 일이?’ 싶은 경우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수사기관에 출석, 조사받는 때를 포함해 형사절차의 흐름을 따라 단계별 대처방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수사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양재규-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 수사는 누가 받을까? 범죄자? 아니다. 뻔한 질문 같지만, 죄를 지었다고 의심받는 사람이 수사를 받는다. 죄를 안 지었어도 수사받을 수 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 전, 어느 공공기관 소속 직원들이 대거 수사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발단은 시민단체의 고발이었다. 설령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도 고발장이 접수되면 수사는 개시되게 되어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금방 끝날 것 같은 사건이라도 종결되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당사자가 체감하는 시간은 훨씬 길 것이다. 무엇보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는 막막함과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무기력함으로 지치기 쉽다. 형사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은 긴장과 초조함의 연속일 것이다. 유죄판결보다 무서운 것이 멘탈이 무너지는 것이다. 기왕 수사받게 되었다면 멘탈부터 단단히 관리해야 한다. 첫째,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짓말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내가 한 일이니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생각도 위험할 수 있다. 수사와 재판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모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수사관이 내 말을 믿어주리라 생각하는 것도 금물이다.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피의자(또는 피고인)는 무죄로 추정되지 않나? 맞는 말인데, 현실은 다르다. 수사관은 나의 결백을 밝혀줄 변호인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무죄추정이 아니라 유죄추정이 보다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둘째, 진실은 말이 아닌, 증거의 문제다. 수사기관이나 법정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니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나의 말이 아닌, 증거를 본다.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증거 문제에 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물적 증거를 미리 확보해 두어야 한다. 특히 사람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사람의 말은 계속 바뀐다. 내게 유리한 말을 해주던 증인이 앞으로도 동일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 정말 중요한 증인이라면 자필 확인서를 받아두거나 녹음을 해두는 것이 좋다. 입증 문제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특수한 사정이 있다. 바로 ‘취재원 보호’다. 핵심 취재원들은 대개 소송의 승패를 가를 증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런 취재원을 수사기관에 출석시키거나 재판에 소환하면 신원이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패소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취재원을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취재원을 증인으로 세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취재원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않고도 나머지 증거만으로 충분한지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셋째, 수사에 임하기 전,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수사나 재판에서 일관성 있게 진술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진술을 위해 사전 입장 정리가 중요하다. 임기응변식의 대응으로는 일관성 있게 진술하기 어렵다. 마치 잘 짜인 시나리오를 따라 연기하는 배우처럼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철저히 계산된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한편, 무죄 주장을 할 것인지,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낮추는 데에 집중할 것인지도 사전에 정리하는 것이 좋다. 유죄가 확실한 상황인데 무죄를 주장하면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이유로 오히려 형량만 높일 수 있다. 무조건적인 무죄 주장은 결코 지혜로운 대처방안이 아니다.   [오늘의 수사·재판 관련 기본용어 해설] 피의자: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아 수사의 대상이 된 사람 용의자: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이 여럿인 경우로 용의자 중 누군가를 수사의 대상으로 특정하게 되면 그 신분이 피의자로 전환됨 피고인: 수사 결과,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만한 사정이 확인되어 재판에 넘겨진 사람. 검찰의 기소로 피의자가 피고인 신분으로 전환됨 고소: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해줄 것을 수사기관에 정식으로 요청하는 제도 고발: 범죄 피해자가 아닌 제삼자가 가해자를 조사해 줄 것을 수사기관에 정식으로 요청하는 제도
    2025-04-28
  • 2025년 대통령 선거 보도, 책임있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한다.
    2025년 대통령 선거 보도, 책임있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한다.   채영길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헌법재판소가 전원 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그날, 국민은 2024년 12.3 정변이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이 아니라 명백한 내란 기도였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우리는 123일간의 탄핵 정국이라는 지옥을 견뎌냈지만, 그것은 그저 한 국면의 종료였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대통령 선거라는 더 큰 무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일상의 정권 교체가 아닌, 헌정질서 회복과 민주주의 심화라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 언론은 지금까지 회피했던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연 헌정질서를 파괴한 세력과 동일한 무대에서 정치 경합을 허용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이 내세운 '후보'의 경합을 중계하며, 선택이라는 이름의 부조리를 감내해야만 하는가?   방송 영상은 정치를 재구성하는 정치의 언어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방송 영상 보도의 책임이다. 영상은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구성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며, 의미를 확장하거나 삭제하는 가장 강력한 저널리즘 도구다. 내란을 조력하고 공조한 정치인들을 클로즈업하거나, 그들의 발언을 편집 없이 전달하고, 오히려 현장감 있는 톤으로 재현하는 뉴스 영상은 시청자에게 그 발언의 실질적 위험보다 발언자의 존재감을 강화시킨다. 영상은 사운드 바이트 하나로 맥락을 전복할 수 있고, 자막 하나로 발언의 폭력을 중립적 언어로 전환시킬 수 있다. 윤석열을 옹호하는 자들의 “계엄령은 계몽이었다”는 발언을 보도 영상에서 무비판적으로 내보내는 순간, 방송은 폭력의 언어를 정상의 언어로 세탁하는 매체가 된다. 탄핵 정국 동안 방송사들은 윤석열 측의 계엄령 논리를 요약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재현했고, 아스팔트 극우의 광기어린 구호와 폭력 장면을 교묘히 편집하여 마치 대립 구도가 당연한 것처럼 처리했다. 내란에 침묵한 정치인의 얼굴을 정중한 뉴스 인터뷰의 앵글로 담아낸 그 순간, 방송은 이미 단절이 아니라 재결합의 무대가 되어버렸다.   ‘중요한 정치인의 발언’, ‘양측 보도’, ‘국민의 알 권리’, 이 문장들은 저널리즘의 알리바이로 자주 호출된다. 그러나 그러한 알리바이 뒤에서 방송 영상은 극우세력의 정치적 권력을 정당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자막에서 “논란”이라 쓰는 순간, 극우세력의 ‘환호’와 ‘폭력’의 영상을 확산시키는 순간, 반헌정, 반민주는 우리의 정상적 모습이 되어 버린다. 민주주의 파괴가 단순한 하나의 의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위기의 주체에게 마이크를 제공하고, 정제된 조명과 앵글을 통해 그들을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방송 보도 영상은 단순한 중계가 아니라 정치적 재연이며, 시청자는 정상적으로 세탁된 극우세력을 마주할 이유가 없다.   방송 보도 영상의 언어   영상 기자들은 잘 알고 있다, 카메라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어떤 순간을 보여주고 어떤 구호를 배치하며, 어떤 음성을 제거하고 어떤 인물을 주목하는가에 대해 방송 영상은 매 순간 정치적 편집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모든 장면은 역사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 계엄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앵글, 후속 질문 없는 인터뷰, ‘양측 의견’이라는 명목 아래 편집된 구도는 결코 저널리즘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이다. 대선 후보로 호명된 자가 민주주의의 적이었다면, 방송은 그 호명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그 호명이 어떤 역사를 망각하게 만드는지를 영상 언어로 비판해야 한다. 방송은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 장면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인터뷰는 누구의 귀환을 연출하는가? 지금 우리는 저널리즘의 이름으로 반헌정 세력을 복권시키는 정치 드라마의 중계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이다.   이번 대선은 이전의 대선과는 전혀 다르다. 헌정질서의 회복과 민주주의의 복권을 위한 시민적 기록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 언론, 특히 방송 영상 저널리즘은 그 무대의 형식이 아니라 역사적 전환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출현’시키는 내용을 구성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 정당성은 정당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송은 그 민주주의의 출현을 위한 프레임과 언어를 책임져야 한다.    
    2025-04-28
  • 제38회 한국영상기자상 대상 주인공 ‘민주주의를 지킨 영상기자’ 48명
    제38회 한국영상기자상 대상 주인공 ‘민주주의를 지킨 영상기자’ 48명 협회, 지역뉴스탐사기획 등 7개 부문 시상… “뉴스 현장 한가운데서 ‘진실의 목격자’, '진실의 기록자'가 되어 준 모든 영상기자들께 감사”   2024년 대한민국의 영상보도를 대표하는 제38회 한국영상기자상 대상의 주인공은 ‘나’, ‘너’가 아닌 ‘우리’였다.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영상기자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올해 대상은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발동부터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계엄군 퇴각까지 긴박했던 계엄 내란 사태를 취재한 14개 회원사 기자 48명에게 돌아갔다.   서태경 영상기자상 심사위원장은 계엄 선포 당일 현장의 영상기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유한 데 대해 “특종을 바라는 기자들의 욕심보다 급박한 순간에서도 국민들의 알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역사적인 판단이었다”면서 “‘민주주의를 지킨 영상기자들’에게 제38회 한국영상기자상을 수여함으로써 우리 영상기자들이 보여준 영상저널리즘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행보를 기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뉴스 탐사기획보도 부문은 KBS 김경민‧정준희 기자의 ‘캄보디아 리딩방 현장취재 연속 보도’가 수상했다. 취재팀은 캄보디아 현지 취재를 통해 취업을 미끼로 한국인들을 끌어들여 불법 주식 리딩방을 운영하면서 국내 주식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거대 범죄 조직의 실태를 파헤쳤다.   지역뉴스 탐사기획보도 부문은 폐어구로 죽어가는 바다 생물들의 모습과 대안을 모색한 KBS 제주 고아람 기자의 ‘죽음의 바당 제주’에 돌아갔다.   개인의 삶의 루트를 따라 ‘제주4.3사건’의 역사를 풀어내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과 아름다운 영상으로 잘 만들어진 영상”이라는 찬사를 받은 JIBS 윤인수‧고승한 기자의 ‘더 루트 - 사라지는 기억’은 보도특집‧다큐 부문의 수상 주인공이 됐다.   새로운 시선 부문은 독도에서 살았던 3대 가족의 삶을 통해 독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은 MBC 손지윤‧허원철 기자의 ‘현장 36.5 - 독도 주민과 어민, 그 생활권 연속 보도’가 받았다.   인권‧노동 부문은 YTN 시철우 기자의 ‘YTN 탐사보고서 - 웰컴 투 코리아’가 수상했다. 시 기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착취, 불법 현장을 보여주었다.   공로상은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발전에 기여한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트로피를 디자인한 김운성‧김서경 작가가 수상했다. 또, 지난 2년 동안 협회 부회장을 맡아 협회 발전을 위해 힘쓴 KBS 이재섭‧SBS 양두원‧KBS강릉 김중용‧MBC 정인학 기자와 협회보 제작을 맡아온 MBC 현기택 편집장‧안경숙 기자, 각종 사업을 주관하며 협회 발전을 위해 애쓴 사무국 이경선 사무장‧안도현 간사와 이윤석 파나소닉코리아 상무에게도 공로상이 수여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축사 영상에서 “혼란스러운 계엄 상황 속에서 여러분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비상계엄의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켜낼 수 있었다”면서 협회를 향해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일구어온 민주화 경험과 언론자유의 역량을 세계와 공유하고, 그 경험을 다시 우리의 민주적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큰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나준영 회장은 비상계엄, 채 상병 사건, 22대 총선, 의료 공백, 대일 굴욕 외교, 제주항공기 참사 등 “2024년 한 해 동안 우리가 경험한 정치·사회적 혼란과 고통, 이에 영향받은 경제적 파장의 여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지난 한 해 뉴스 현장의 한가운데서 ‘진실의 목격자’, '진실의 기록자'가 되어 준 모든 영상기자들께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 앞서 28대‧29대 영상기자협회장 이‧취임식이 진행됐다. 최연송 제29대 회장 당선자는 연임을 통해 4년 동안 협회 발전과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성공적인 안착을 이끌어낸 나준영 회장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최 당선자는 이어 “우리 영상기자들은 그 역할에 비해 이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한다”면서 “열심히, 묵묵히 일해서 성과를 내면 사회도 알아주겠지 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나 우리 스스로를 더 존중하고, 이 사회를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더 널리 당당히 알리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최 당선자는 ▲영상기자 위상 제고를 위한 홍보 강화 ▲현장취재 지원 강화 ▲국내외 연수·교육 기회 확대 ▲지역 및 소규모 회원사 지원 강화 ▲다양한 수익 재원 발굴로 협회 재정 안정화 ▲대학생 직업설명회 ‘영상기자 드림 투어’ 개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 부문 확대 개편 추진 ▲시니어 회원을 위한 ‘새로운 도약’ 프로그램 구축 등을 임기 내 역점 사업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5-02-27
  • 취재진에 대한 폭력,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 파괴 행위...  탄핵 선고 등 대형 정치 이벤트 앞...
    취재진에 대한 폭력,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 파괴 행위 탄핵 선고 등 대형 정치 이벤트 앞두고 현장 취재진 안전 위협 ‘심각’ 윤석열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난동을 부리며 취재진을 조직적으로 폭행하고 취재 장비 등을 탈취한 것을 두고 “심각한 언론자유 위협”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피해를 입은 해당 방송사들도 법적 조치에 나서는 등 초유의 사태에 강하게 대응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진행되던 지난 18일, 일부 지지자들은 법원 앞에서 집회를 취재하던 MBC 기자와 오디오맨 등을 둘러싸고 지속적인 폭행과 폭언을 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새벽엔 지지자들의 행동이 더욱 극렬해졌다.  취재를 위해 법원에 온 기자와 취재 차량을 대상으로 폭력적으로 언론사 소속을 확인하고, 언론사를 가리지 않고 조직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MBC 영상기자와 오디오맨은 집단 구타를 당했다. 조롱, 도발 넘어 부수고 빼앗고 때리고 MBC 영상기자 사회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현기택 기자는 “법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서부지법으로 가려는데 한쪽에서 ‘MBC다!’ 하고 소리치더니 군중들이 몰려와 취재진을 둘러싸고 욕설과 폭행을 가했다”며 “메모리카드를 빼앗고 트라이포트, 배터리, 오디오맨의 휴대전화 등이 사라지고 송출 장비 라인도 부서졌다”고 밝혔다. 현 기자는 이어 “KBS <추적 60분> 팀의 도움을 받아 현장 영상을 확보해 보니 폭행 정도가 심각하고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판단해 방송을 결정했다”면서 “회사 차원에서 법무팀의 지원을 받아 가해자들에 대한 고소・고발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취재진 폭행에 가담한 주 가해자들은 현재 구속기소된 상태다. KBS・MBN 취재진도 시위대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MBN 취재진은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메모리 카드를 빼앗기고 집단 구타를 당해 얼굴, 손목, 발목 부상과 전치 3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다. 또, 시위대 10여 명은 카메라를 들고 취재 중인 KBS 영상기자와 오디오맨을 수차례 집단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KBS의 카메라 등 촬영 장비가 일부 파손됐다. 후발대로 현장에 간 KBS의 기자는 “시위대가 현장의 취재진을 무차별 폭행한다는 얘기를 듣고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MBC 영상기자와 오디오맨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말리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해 시위대의 일원인 척 하고 ‘폭행은 안 된다. 우리 이미지만 나빠진다’고 하면서 폭행을 말렸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이어 “흥분한 많은 사람들이 MBC ENG 카메라를 집어던지기도 하고 취재 장비와 메모리 카드를 뺏으려고 했다”며 “오디오맨은 시위대가 날린 주먹에 눈을 정통으로 맞아 많이 걱정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해당 방송사들은 즉각 강력 대응에 나섰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MBC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이번 사태를 “단순히 한 언론사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헌법적 핵심 가치인 언론자유를 유린한 폭거”라고 규정하고 “반헌법·반국가세력에 대해 폭동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며, 취재진 보호와 MBC의 보도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도 향후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KBS와 MBN도 20일 “헌법상 기본권인 국민의 알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현장을 누비는 취재진을 폭행한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사법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폭행 가담자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등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영상기자협회 등 9개 언론현업단체도 긴급 기자회견을 얼어 “대한민국 법치를 뒤흔든 폭도들에게 어설픈 관용이란 있을 수 없다”며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일체의 행위에 견결하게 맞서며 그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취재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권고안을 만들어 지난 22일 각 방송사와 회원들에게 고지했다. 권고안에는 ▲안전거리 유지와 유사시 현장 이탈 ▲취재진 보호할 추가 인력 배치 ▲집회·시위 참가자를 자극할 수 있는 취재·보도 지양 ▲취재진 안전을 우선한 취재 지시 및 폭력 상황 채증 위한 보조 촬영장비 부착 ▲언론 자유 억압하는 참가자들에 대한 흐림 처리 금지 ▲취재진 보호에 대한 경찰의 적극 협조 등 6개 사항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앞서 협회는 서부지법 난동 시위대의 모습을 각 방송사가 흐림처리해 보도하자 회원들에게 “시위 참가자는 초상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 (그들을) 블러(흐림)처리하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행위의 주체를 보호하거나 옹호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목격자 없는 폭동 만들기’ 나준영 회장은 “언론인을 폭행하고 장비를 빼앗아서라도 목격자를 없애겠다는 그들의 행위는 헌법이 규정한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 회장은 이어 “이런 행위가 헌재 선고, 조기 대선 등 이후에 이어질 현장에서 매번 나타날 경우 언론 자유를 넘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 영상기자는 “대통령 2차 체포 당일 관저 앞에 취재를 갔는데, 누군가 우리 회사 이름을 외치자 사람들이 몰려와 내 옷을 잡아끌고, 여러 명이 오디오맨을 잡아 끌어가기도 했다”면서 “헌재에 취재를 나갈 때도 카메라를 가져가지 못하고 휴대폰을 갖고 갔는데, 그만큼 취재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편,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난 3일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에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10원칙’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채 교수는 민주주의 수호가 저널리즘의 본질임을 상기할 때 반민주적 세력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제공하는 ‘기계적 중립’ 또는 ‘따옴표 저널리즘’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과 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는 인물이나 발언은 전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극우 세력이 유포하는 허위 정보를 ‘양측 의견’으로 보도해 ‘거짓 균형’을 맞출 게 아니라 근거 없는 주장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하라고 제언했다. 채 교수는 “헌재 선고 이후 대선이 치러질 텐데, 경마식 보도는 극우적 행위와 메시지도 다른 후보와 동등한 차원에서 다루게 된다”며 “사회적으로 수용돼선 안되는 메시지나 세력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될 수 있고, 실제로 유럽 극우 정당이 제도권으로 들어온 방식인 만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현직에 있는 기자들과 시민사회, 학계가 머리를 맞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상기자들을 향해서도 “영상은 굉장히 강한 메시지를 주는 힘이 있는 만큼 민주주의에 부정적이고 반사회적인 집단의 입장이 광범위하게 공유되어 (그 집단이) 세력화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부지법 침탈 사건처럼 민주주의의 제도를 흔드는 폭력에 대해 영상을 반복해 보여주기보다는 최소한의 보도로 덜 중요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 교수는 “이번에 서부지법 침탈자의 초상권은 보호해야 할 대상자들이 아니므로 흐림 처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처럼 영상기자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며 “추상적 수준에서 ‘객관적・기계적 중립을 거부한다’가 아니라 민주주의 입장에서 어떤 영상과 오디오를 편집・가공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5-02-27
  • 2024년의 힌츠페터, 우리들의 뜨거운 기록
    2024년의 힌츠페터, 우리들의 뜨거운 기록 동료 기자 여러분, 우리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일반 시민들이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을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 왔습니다. 한 해 두 해 경력이 쌓이면서 당연 하다는 듯이 청와대, 국회, 정부청사, 법원 등을 출입했습니다. 불법계엄사태를 겪으며 내가 지금 왜 이곳에 발붙이고 서 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냉혹하게 추운 겨울 밤, 시민 분들이 기자들보다 먼저 국회 앞에 모여 장갑차를 막고 계엄군과 싸우며 우리를 국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시커먼 헬기들이 국회 하늘 위로 날아오는 모습을 각 종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 정보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국회 밖에서 고군분투하는 국민들을 위해 우리들이 할 일은 국회 내부의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드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반시민들에겐 자유롭지 않은 장소를 출입하는 이유였습니다. 계엄군에 둘러싸인 국회의 모습을 보면서 출입증의 무게감을 느꼈습니다. 익숙함을 당연함으로 여기고 어깨에 힘주었던 지난날들의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동료애를 느꼈습니다. 마치 미리 훈련이라도 한 듯 그 혼란 속에서도 서로의 눈빛을 읽고 필요한 포지션을 찾아 역사적인 취재를 해냈습니다. 우리는 원팀이었고, 하나의 팀이어야만 했습니다. 사명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카메라를 들고 밤새 뛰어다니던 영상기자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2024년의 힌츠페터(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곧 또 다른 역사의 큰 변곡점 앞에 서게 됩니다. 취재를 하면서 늘 ‘원 팀’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때론 치열한 경쟁도 하게 되겠죠. 어깨는 부딪히겠지만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 항상 간직하겠습니다. 글을 마치며, 힌츠페터는 1980년 5월의 광주취재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픈데도 촬영을 하는 자신을 혐오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슬픔과 참담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뒤로하고 계속 찍을 수밖에 없었다. 슬퍼하기만 했다면 자료를 많이 모으지 못했을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져 가는 모습에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지만 그 감정들을 억누르며 계속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영상기자의 사회적 사명이고 국민들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영상기자 여러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JTBC 김영묵 기자  (제 120회 이달의 영상기자상 뉴스특종단독보도부문 / 제 38회 한국영상기자상 대상 수상)
    2025-02-27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4년…‘다사다난’은 ‘현재진행형’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4년… ‘다사다난’은 ‘현재진행형’ ‘12.3 비상계엄’, ‘대통령 구속과 탄핵 심판’, ‘서부지법 폭동사태’, ‘제주항공 참사’, 그리고......   의대 증원 논란, 아리셀 화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2024년이 지나 다시 새해가 밝았지만, 취재현장은 대형취재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3일 있었던 비상계엄 사태를 시작으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한국 사회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극우 세력은 서부지법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켜 헌정 질서를 유린했고, 헌재 판단에도 불복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한해 동안 현장의 영상기자들을 진두지휘해 온 영상취재 사회데스크(영상 캡)들은 일련의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지난 17일 서울 은평구에서 간담회를 열어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다음은 간담회 참석자 명단이다. - 편집자 주   MBC 현기택(협회보 편집장) SBS 양두원 YTN 윤원식 MBN 변성중 OBS 이시영   ‘비상계엄’이 불러온 살인적 업무 강도… 밥 굶고 차디찬 거리에서13시간 취재해도‘교대 불가’  현기택 : 늘 그랬지만 아리셀 화재부터 시청역 역주행 사고, 12.3 내란에 여객기 사고까지 정신없던 한 해였다. 평소 내가 캡이 되면 후배들에게 시간을 좀 더 많이 줘서 미리 작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년 동안 나름대로 프로젝트를 몇 개 진행했는데,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니 모든 게 다 ‘리셋’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항공기 사고까지 터지면서 12월 3일부터 쉬지 않고 업무가 돌아가다 보니 몸살도 자주 걸렸다. 양두원 : 1월 13일에 캡이 되었는데, 15일에 윤 대통령이 체포됐다. 회사를 20년 다녔는데, 설날 전까지의 2주가 회사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만약 이 노동 강도로 계속 일하면 진짜 잘못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까지 물리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압박받던 시기가 있었나. 예전 광우병 사태 때도 힘들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시영 : 12월 3일 밤에 뉴스를 보고 바로 회사에 들렀다가 국회에 갔다. 원래는 회사 내부에서 라이브를 걸고 조정을 하는데, 내가 현장에 나가면 안에서 라이브를 조정할 사람이 없으니 노트북을 들고 나갔다. 국회 앞에서 카메라에 연결해 유튜브 라이브 걸고, 백팩 메고 취재와 라이브를 다 했다.   윤원식 : 정신없는 상황에서 국회 팀이 전체 풀로 간다고 결정하더라. 전체 풀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순발력 있게 초유의 사건을 커버해 주었다. 국회 풀팀, 그날 야근자들이 제일 고생 많았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초반까지는 전 기자들이 총출동한 상태라 교대도 못 해줬다. 지금은 집회가 8번 정도 반복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오전-오후로 나눠 일한다.   변성중 : 추가 근무가 최근에야 없어졌다. 3주 전까지만 해도 한두 명씩은 꼭 나왔다. 추가 근무는 지원자를 먼저 받고, 지원자가 없으면 그냥 순번대로 짜는데, 근무자는 당일 날 불려나올 것을 예상하고 아무 곳도 못 가고 ‘대기’ 상태로 있었다. 현기택 : 예전에는 대형 사건이 생기면 서로 취재 경쟁을 했는데, 이번에는 포인트별로 경쟁을 해서 특종을 하기 보다는 전체 풀로 운영했다. 풀 취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원식 : 풀을 안 하는 게 좋지만 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인원이 부족하거나 제한된 공간인 경우가 그렇다. 풀단이 있으면 방송사 입장에선 취재 인력 1~2명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코리아풀하고 6개사 풀단이 더 고마운 것 같다.   “현장 그래도 보여주는 것 의미 있지만 라이브 늘면서 다양한 취재 못한 점은 아쉬워”   양두원 : 라이브를 많이 하니까 그쪽에 투입되는 인원이 많아져서 정작 현장을 다양하게 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다. 또, 대형 이슈가 있을 땐 특보가 들어가는데, 하루에도 특보가 4~5번씩 들어가게 되면 영상기자들이 특보 자리에서 위치를 지키고 있어야 해 다른 취재를 할 수가 없다.   현기택 : 전엔 라이브에 대한 수요가 이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요즘은 취재 인력이 제한적인데 라이브 수요가 워낙 많다보니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물론 상황이 벌어지는 것 자체를 보여주는 역할도 분명히 중요하다. 실제로 이번에 국회에서 라이브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지 그림을 찍어서 보내주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취재’를 좀 더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시영 : OBS는 취재를 하고 나서는 휴일 스케치 같은 영상은 편집을 직접 하고 있다. 특히 요즘 우리가 유튜브에서 팀 채널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촬영해 온 영상을 뉴미디어용으로 편집할 수 있도록 각자 편집을 배우고 있다. 우린 지역방송이다 보니 콘텐츠가 많이 들어와도 내부에서 소화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10분의 1도 못하고 있는데 지역 방송들 보면 요즘에 뉴미디어를 엄청 강화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촬영 못하게 한 법은 문제… 현장기자 개인에게 법적 대응, 취재자유 위축케 해   현기택 : 이번에는 대통령 관저 촬영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다. (대통령실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불법 촬영했다며 JTBC, MBC, SBS 등을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권력에 대한 감시는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현행법상 관저 촬영이 불법인 것은 맞지만, 대통령실의 얘기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는지 따져보고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매일 파파라치처럼 취재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스스로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두원 :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관저 촬영은 불법이니 하지 말라고 분명히 공지가 왔고, 여러 차례의 경고를 듣지 않고 취재를 하다 누군가가 연행이 된다면 그 당사자와 취재 지시를 내린 데스크는 어떻겠는가. 다른 건으로 소송이 진행 중인 후배들이 각 사별로 있을 텐데, 회사 법무팀에서 도와준다지만 몇 년 동안 개인이 받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크다. 이제는 소송을 제기하는 쪽도 영리해져서 회사를 상대로 하지 않는다. SBS MBC KBS를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 개인한테 건다.   변성중 : 소송을 당한 기자가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으니까, 상대방을 시달리게 하려는 목적으로 소송을 내는 것 같다.   양두원 : 관저 촬영을 못하게 한 현행법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후배들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다. 누가 개인한테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라고 할 수 있겠나. 위법성 조각 사유가 인정된 전례를 믿고 취재하고 있는 상황인데, 취재 건마다 법적 해석이 다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윤원식 :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시도 때 YTN 국장단은 정문만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방송사 입장은 어떤가?   양두원 : 처음에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타사에서 어떤 그림이 나가면 바로 연락이 오고, 취재기자들도 그림을 쓰기를 원하니 안할 수가 없다. 현기택 : 관저 라이브 당시 우리는 내부적으로 해당 사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현장 장면이 국민들이 알아야 될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찍어놓고 안 쓴 영상이 꽤 있다. 예전 같으면 그림이 있는 걸 알면 바로 연락와서 영상을 쓰자고 했을 텐데,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기로 우리가 결정했다. 그런 판단을 취재기자들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하기 시작했다. 예전하고 조금 달라진 분위기다.   변성중 : 처음엔 불법 촬영이라 다 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3관문이 밀착 취재된 장면이 나오고 아파트에서 부감 찍은 게 올라오고 하니까 우리가 법을 지키겠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부감 장소를 섭외해 놓고 대비를 하고 있다. 현기택 : 영상기자들에게 현행법을 어기고 취재하라고 시키려면 취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가 모든 걸 끝까지 책임진다는 내용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지금은 개인을 대상으로 소송이 제기되는데, 전혀 다른 성향의 사장이나 보직자가 오면 결국 힘든 건 당사자뿐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기자에게 소송과 법적 처벌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취재자유의 위축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헌재 선고일 앞두고 ‘초긴장’… 양두원 : 헌재 최종 변론 기일을 앞두고 준비하고 있다. 계엄 당일이나 윤 대통령 구속 당시에 비하면 조금 덜 긴장하고 있지만, 헌재 탄핵 심판 선고일은 사실 벌써 걱정된다.   현기택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에 압사 사고 등으로 사망자가 여럿 나왔다. 헌재 선고일도 그렇고, 탄핵심판 청구가 인용돼 조기 대선을 치를 경우 그 상황도 걱정이다. 윤원식 : 군중심리가 정말 무섭다. 박근혜 탄핵 때 헌재 앞을 취재했는데, 탄핵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눈빛이 변하더니 “헌재로 몰려 갑시다” 하면서 군중을 선동하더라. 그때 사람들이 흥분해서 버스를 흔들고 그러다 스피커가 떨어져 2명이 깔려죽기도 했다. 양두원 : 특히 지금은 유튜버가 있다. 유명한 극우 유튜버 몇몇이 사람들을 선동하면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비상계엄’에 가려진 아리셀 화재・여객기 참사・환경 뉴스… 지역방송에선 한때 지역 뉴스 사라지기도 현기택 : 비상계엄 때문에 가려진 사안도 있었다. 아리셀 화재가 발생하고 일주일 뒤에 시청역 교통사고가 터졌다. 사망자는 아리셀 화재가 훨씬 더 많은데, 외국인노동자들이어서인지 뉴스가 묻힌 느낌이다. 내란 사태 와중에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도 내란 사태가 없었다면 좀 더 집중 보도되고 있을 것이다.   양두원 : 환경 뉴스도 사라진 아이템 중 하나다. 역대급 폭염에 11월 폭설이 있었지만 기후와 관련한 아이템을 거의 보도할 수가 없다.   변성중 : 노벨문학상도 상대적으로 조명을 못 했다. 당시 현지 취재를 다녀왔는데, 국내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언제 들어가야 하나 불안하기도 했다.   양두원 :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이 다 이쪽에서 취재를 맡고 있기 때문에 요즘 사건 뉴스가 없다. 사회에서 미담이나 의미있는 일을 취재해서 보도할 여력 자체가 지금은 없는 상황이다.   이시영 : OBS는 지역 방송이기 때문에 항상 메인 뉴스에 경기・인천 뉴스가 3~4 꼭지씩 나갔다. 그런데 비상계엄 이후 지난 두 달 동안 지역 뉴스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중앙에서 발생하는 리포트를 쓰다 보니 지역 뉴스가 다 없어졌다가, 요즘 다시 지역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워낙 큰 이슈이다 보니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지역 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지역 뉴스를 다뤘어야 했다. “영상기자 르네상스 시대… 취재부터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장점 살려 성장하길” 이시영 : 신입 때부터 영상기자는 촬영, 편집, 구성 등 다 잘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후배들에게도 같은 얘기를 해주고 있다. 요즘 유튜브나 뉴미디어 쪽을 하다 보니 편집에 종편 과정까지 다 한다. 영상기자라면 소스를 생산하고 가공해 내보내는 것까지 전부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는 뉴스 편집 위주로 배웠는데, 요즘에는 후배들이 편집, 디자인, 자막, 제목 달기 등 모든 과정을 다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   양두원 : 항상 가르쳐야 하고 부족함이 느껴지는 그런 후배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큰 사건을 닥쳐보니 되게 믿음직스러운 부분이 있어 놀랐다. 특히 라이브, 드론 같은 장비에 대한 습득력 등은 젊은 기자들이 더 좋다. 현장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훨씬 더 다이나믹하게 잘 하고 있더라. 이 친구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안 들 정도로 시스템 내에서 잘 성장했다.   현기택 : 올해 들어 후배 영상기자들에게 ‘제2의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다. 하는 일이 다양해졌고, 우리한테 거는 기대도 생겼다. 장비도 다양해지고 사건도 많이 벌어지고 유튜브도 생기면서 한때 취재 부문의 스텝 역할 정도로 생각했던 영상기자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재능있는 후배들이 한국에서 영상기자라는 직업이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   정리=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5-02-27
  • 12.3 계엄·탄핵의 현장에서 담아낸 국민승리의 역사
        [계엄·탄핵 현장기자 긴급 간담회]   12.3 계엄·탄핵의 현장에서 담아낸 국민승리의 역사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부터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14일까지 한국 언론들은 그야말로 ‘비상 상황’이었다.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기자도, 지인들과 회포를 풀던 기자도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한밤중에 소속 언론사와 현장으로 집결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로 급박했던 상황이 일단락되자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지난 14일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시민들의 염원은 이뤄졌고, 언론도 비상 근무 체제를 마무리하고 헌법재판소 판결과 대통령 수사 등 새로운 국면을 맞아 취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긴박했던 11일 동안 현장 곳곳을 지키며 역사를 기록한 영상기자들에게 당시 상황과 소회 등을 직접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계엄-탄핵 사태 간담회는 지난 16일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의 사회로 온라인 줌(Zoom)으로 진행됐으며, 8개 방송사 기자 13명이 참여했다. 다음은 간담회 참석 기자 명단이다. - 편집자 주     <국회 출입기자> 현세진(OBS) 박현철(SBS) 임채웅(MBN) 박재현(JTBC) 박장빈(KBS) 이정석(G1)   <국회 밖 취재 및 탄핵 시위> 지선호(KBS) 윤형(SBS) 최대환‧전인제(MBC) 김대호(JTBC)   <지역 취재> 진은석(MBN) 박은성(KNN)     ▲ 12월 3일 밤과 4일 새벽, 국회본관으로 들어 오려는 계엄군을 국회 보좌진들이 막고    있고, 이 상황을 영상기자와 취재진들이 취재하고 있다. G1방송 이정석 기자 제공     나준영: 지난 3일부터 오늘까지 2주 동안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텐데 간담회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비상계엄 사태 속에서 영상기자들은 굉장히 바쁘게, 위험하게, 또 어렵게 취재를 해왔다. 계엄 사태가 지난 14일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1차적으로 마무리된 만큼 우리가 이 상황을 논의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안팎에서 현장 취재를 하셨던 분들부터 당시 상황을 말씀해 달라.   말로만 듣던 계엄 소식에 바로 국회로… 경찰 피해 담장 넘어 들어가   박현철 : 대통령이 주요 발표가 있다고 해서 방송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계엄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국회반장에게 전화해 우리가 국회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하고 김포 집에서 바로 국회로 갔다. 국회에 도착하니 벌써 시민들이 와 있고 머리 위에는 헬기가 떠다니고 특전사 병력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도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해 상대적으로 담이 낮은 곳을 찾아 넘어들어갔다.   박재현 :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다가 계엄 소식을 듣고 국회 2풀단 전체 방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오라고 공지한 뒤 바로 국회로 출발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국회 후문 쪽은 출입증만 있으면 용이하게 들어갈 수 있어서 나는 본청 외부 상황을 맡고, 2진은 로텐더홀 내부 상황을 맡았다. 미처 들어오지 못한 두 명은 장비가 없어 밖에서 휴대폰으로 촬영하다가 한 경찰이 담이 낮은 쪽으로 넘어가라고 알려줘 안으로 들어와 취재를 했다.   임채웅 : 마포 쪽에서 회사 선배들과 모임을 하다 연합 기사를 봤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걸 보고 이게 이 시대에 과연 어울리는 단어인가? 처음엔 안 믿어졌다. 영상에서 본 80년 계엄군 이미지가 생각났고, 본능적으로 국회로 가야 한다고 판단해 지하철을 타고 갔더니 정문을 통제하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통제 현장을 스케치하는데, 한쪽에서 담을 넘고 있더라. 그래서 취재기자랑 국회 관계자가 서로 도와 같이 담을 넘는데, 취재기자는 경찰에 잡히고 나만 안으로 들어왔다. 소통관으로 달려가보니 문이 잠겨있었고, 열쇠를 들고오는 KBS 박장빈 기자를 만났다. 박 기자와 둘이 기자실 문을 열고 장비를 챙겼는데, KBS 오디오맨이 우리 장비도 같이 챙겨줘서 본청으로 출발했다.   박장빈 : 집에서 갓난아기를 재우고 밥을 먹으려다 최대한 빨리 국회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다. 기자들이 드나드는 3문 쪽은 이미 경찰차벽으로 다 막혀있고 혼잡한 상황이었다. 회사에 차를 놓고 국회로 뛰었고, 아직 경찰 통제가 심하지 않을 때라 운 좋게 국회 출입기자임을 밝히고 들어갔다. 국회 정문에서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국민의힘 당사로 가라고 해서 국회를 나왔다. 하지만 당사 상황이 다 끝나 국회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는 문이 막혀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국회 밖에서 문별로 상황 스케치를 하는데, 국회의원도 못 들어가게 막는 걸 봤다. 90년대생인 내 입장에선 처음 겪는 계엄인데, ‘이런 게 계엄이구나, 계엄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석 : 집에 있다 계엄 기사를 보고 택시타고 국회로 갔다. 서울교 쪽은 진입이 불가해 여의하류 쪽으로 방향을 틀어 국회 뒷문으로 들어갔다. 소통관에서 장비부터 챙겨 오디오맨 없이 국회 정문, 헬기, 계엄군 진입 등을 촬영했다.   언론통제내용 담은 포고문에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들어   나준영 : 국회팀은 아무래도 국회 일을 취재하다 보니 비상계엄의 심각성을 잘 알고 그래서 급하게 국회로 온 것 같다. 그 외 사회나 경제팀 기자들은 비상계엄 상황을 접했을 때 회사가 안전한지 등 여러 걱정이 들었을 것 같다.   지선호 : 집이 국회 앞이라 데스크 전화를 받고 회사로 가 MNG(영상무선송출장비)를 챙겨 국회 정문을 커버했다. 시민들은 속보를 보고 몰려오고 있고, 경찰이 정문을 통제하면서 시민과 대치하고 있는데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이 사태를 내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뭘 어떻게 찍어야 할지, 국회 정문이 아직 열려 있을 때 내가 들어가서 내부 취재를 도와야할지, 그냥 바깥쪽을 커버해야 할지 등 상황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엄이라는 얘기를 듣고 회사에 도착했을 때 KBS가 국가기간방송사고 국회 바로 옆에 있으니 계엄군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군인들 모르게 숨겨서 찍기 좋은 ‘오즈모 포켓 3’를 몰래 품에 넣고 있었다. 그런데 KBS가 계엄사령부의 주요 타깃 언론사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부끄럽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윤영 : 막내급 취재기자와 국회 앞으로 가면서 긴장감 속에 계엄 포고령을 봤다. 언론을 통제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우리 취재활동을 어떻게 제한할까 조금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환: 집이 멀어서 다음날 나오라고 했는데, 포고령을 보니 언론도 통제를 한다고 해서 혹시나 군대가 방송사에 오지 않을까 해서 자발적으로 나갔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계속 특보를 보면서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전인제 : 관악서 음주단속을 취재하고 복귀하는 길에 최대현 기자가 링크를 보내줘서 상황을 알게 됐다. 북한과의 전쟁이 일어났거나 독재를 위한 수순일 텐데, ‘종북 반국가 세력 처단’이라는 내용을 보고 독재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정문은 아직 철문이 닫혀 있지 않았지만 경찰들이 스크럼을 짜고 막고 있었는데, 모여있던 시민들이 ‘출입기잔데 들여보내줘라’라고 하면 간간이 들여보내주는 상황이었다. 나도 안에 들어가서 취재해야겠다고 판단해 안쪽을 커버했다.   나준영: 지역에서도 상당히 놀랐을 것 같고 다음날까지 상황이 이어졌을 것 같은데 어땠나.   진은석 : 계엄 선포 직후 장갑차가 어디에 있다더라 하는 얘기가 돌았다. 실제 확인해 보니 다 가짜였다. 다음날부터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경남·창원에서는 서울처럼 계엄 찬성 대 반대가 아니라 모두 계엄은 잘못됐다는 의견이었다.   박은성 : 부산은 국회랑 거리가 멀다보니 회사로 집결하지 않고 각자 새벽까지 상황을 모니터링했다. 계엄령이 철회되고 부산도 이튿날부터 바로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취재를 나가면서도 인원이 얼마나 모일까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라. 국민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나왔구나 생각했다.   무장한 군인들과 마주치자 계엄 실감…두려움‧공포 속에 “내가 기록하는 모든 게 역사가 될 것” 사명감으로 촬영   나준영 : 계엄 직후 현장에서 계엄군이 들어오는 걸 직접 보고 이를 저지하는 시민들과 본관을 지키려는 상황 등을 취재하면서 두려움도 느꼈을 것 같다. 혹시 위험했던 상황은 없었는지 얘기해 달라.   임채웅 : 담을 넘을 때부터 두려움을 느꼈다. 계엄이 성공해 담 넘은 사람들, 언론사나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다 처벌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야 한다는 게 더 커서 담을 넘었다. 정문을 사이에 두고 바깥쪽을 보고 있는데, 시민들이 빠르게 모이고 있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본청에 가보니 계엄군들이 본청 밖을 다 둘러싸고 있었다. 미친 군인이 사다리에 올라가서 취재하는 나한테 총을 쏘는 건 아닌가, 카메라를 향해 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이정석: 국회 정문에서 취재 중인데 헬기 소리가 들려 본청으로 부랴부랴 뛰어가면서 ‘이런 상황 자체가 미친 거 같다’는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본청 앞에 도착한 뒤 군인들이 몰려오면서 시민들, 보좌진들과 과격하게 몸싸움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공포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고, 내가 기록하는 순간마다 모든 것이 역사가 될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촬영에 임했다.   박재현 : 본청 정문 쪽 외곽을 취재하는데 군인들이 몰려왔고, 이게 진짜 계엄이라는 걸 그때 실감했다. 일반 군인이 아니라 특수부대원이 오니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총 종류가 너무 많고 내가 보지 못한 총도 있어서 이걸 보줘야겠다는 생각에 무기나 몸에 지니는 탄창 같은 걸 계속 촬영했다. 잠깐 쉴 때면 총을 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겼지만 이 상황을 빨리 찍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계속됐다.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드디어 국회에 진입하는구나, 진짜 큰일나겠구나 싶었다. 발포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많이 두려웠다. ‘빨리 찍어서 송출해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뭘 했는지 모르게 몰입해서 취재했던 것 같다.   임채웅: 나도 취재할 때 군인들 장비에 집중했는데, 이게 정말 위험하고 자극적이고 나중에 중요한 그림이 되겠다 싶어 무기를 하나씩 일일이 스케치했다. 아카이브에서 기사를 쓰는 분들은 탄약통도 찾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병사 한 명 한 명, 또 그룹이 있으면 그룹별로 웬만하면 다 스케치하려고 노력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취재한 것 중에 김현태 단장 그림도 있어 뒤늦게 보도되는 걸 보면서 보람도 느꼈다.   현세진 : 본회의장을 혼자 맡아, 표결 상황을 취재하고 실시간 송출했다. 처음엔 계엄군이 장비를 다 갖추고 문을 사이에 두고 보좌진들과 대치중인 상황이어서 자칫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엄군이 밖에서 문을 잠그고 서성이는 모습에 적극적으로 진압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처음엔 본회의장이 막혀 있었는데 의원들이 들어가면서 취재 허가가 나서 급하게 본회의장에 자리를 잡고 취재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쪽 의원석은 거의 다 찬 상태였고 국힘 쪽은 한동훈 대표를 포함해 10여 명 정도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계엄 해제 표결이 만장일치로 끝나는 걸 취재해 송출하게 됐다.   나준영: 계엄군이 적극 진압을 할 의도가 없어 보인다고 했는데 취재 사다리를 걷어차 취재를 못하게 된 상황도 있었다고 들었다. 혹시 그런 상황을 겪은 분들이 있나.   전인제 : 군인들 일부가 창문 안쪽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더니 갑자기 조금 깨진 창문을 완전히 다 깨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창을 넘어 국회로 진입하는 계엄군과 이를 막으려는 시민들이 뒤엉킨 상황을 취재 중인데, 계엄군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다리를 빼앗아 도망가 버렸다. 사다리를 타고 취재진과 시민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올까 싶었던 것 같다. 계엄이 결국 군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니 군인들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뒷문으로 계속 들어오는 군인을 취재하다가 군용물품을 적재하는 모습을 촬영하게 됐다. 찍지 말라고 내 카메라 앞을 손으로 움켜쥐기도 하고, 라이트를 쏴서 아예 못 찍게 하거나 군인들로 벽을 만들어 가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현장엔 나 혼자여서 연행을 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너무 겁 없이 취재했나 싶기도 하고, 80년대 계엄이었다면 계속 취재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한테 했던 계엄군의 행동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였던 것 같다.     ▲ 12월 3일 밤 계엄군이 국회본관 진입을 위해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의 창문을 깨고 있다.  사진제공 MBC 전인제 기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계엄군을 몸으로 막은 시민과 보좌진들, 계엄사태 세상에 전한 영상기자들, 내란을 막은‘숨은 주역(Unsung Hero)’     나준영: 취재하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말씀해 달라.   박장빈 : 국회 정문으로 군용 미니버스가 들어가려고 하는데 한 시민이 겁도 없이 차량 바퀴 앞에 눕더라. 어떤 두려움 없는 용기가 났는지, 우리나라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주저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보고 시민의식을 느꼈다.   박현철 : 국회방송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시간, 국회 담당 영상기자들이 MNG송출장비를 소지하고 안에 들어가서 국회에서 계엄 해제 투표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단독생중계했다. 방송을 보고 계엄사령부에서도 계엄이 해제됐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게 했다고 본다. 계엄군들도 자기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모습을 라이브방송을 통해 보고 과연 명령만을 따를 것인가, 지금까지 배우고 체득한 민주주의에 대해 떠올리고, 계엄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것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카메라 뒤에서 우리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태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역할을 한 숨은 주역 ‘Unsung Hero(자기희생적 행위를 통해 훌륭한 업적을 이루고도 유명세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정석: 빠르게 진입하는 계엄군을 막으려고 보좌진들이 테이블로 문을 막고 내 뒤편에서는 한 보좌진이 소화기를 발사했다. 그 손만은 꼭 촬영하자는 마음에 카메라에 소화기 분말가루가 묻었지만 계속 찍었다. 군인들이 잠시 뒤로 물러나자 남성 보좌관이 여성 비서관한테 ‘위험하니 피해 있으라’고 했는데, 그 여성분이 ‘함께 싸워야죠. 민주주의를 지켜야죠.’라고 얘기하는 걸 보고 여러 보좌진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국회 1,2,3풀 기자단, 경쟁 넘어 ‘전체 풀’ 결의 …“위기 상황인 만큼 경쟁보단 협업”   나준영: 취재한 영상들을 1, 2, 3풀이 다 풀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던데.   이정석: 본청 진입하니까 기자단 안에서 전체 풀로 간다면서 본관 정문을 지켜달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풀단 사이에 단독보도 경쟁을 할 텐데 이날은 급박하고 위기 상황인 만큼 협업을 하자고 해서 취재위치와 영상을 전체풀(pool)하기로 했다.   나준영: 계엄 사태가 해제되고 4일부터 시민들이 응원봉과 촛불을 들고 나와 거대한 항쟁을 시작했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면서 받은 느낌이나 생각을 말해 달라.   윤영: 국회 앞에 여러 번 취재 갔는데 아이돌 공연장같이 노래가 들리고, 젊은 층, 여성 비율이 약간 높았다. 그래서인지 2030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사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젊은층과 학생들이 많이 나왔고, 그래서 청년과 여성의 정치 참여가 새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언론이 이들의 정치참여와 사회적 목소리에 관심두지 않다가) 이런 현상이 새로운 것처럼 얘기되는 건 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호: 2주 연속 여의도 국회 앞에 취재를 나왔는데, 평소 취재하던 집회보다 규모는 훨씬 크지만 경력은 적고, 평화로운 분위기라고 느꼈다. 다른 집회에서는 가요를 개사해서 트는 경우가 많은데 케이팝을 그대로 트는 걸 듣고 처음엔 두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이것도 새로운 하나의 시위 문화로 정착하는 거 같아 소중한 경험을 했다.   최대환: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컸지만 충돌 없이 지나가는 걸 보면서 그걸 표출하는 방식이 성숙하지 않았나 싶어 인상깊었다. 인터뷰할 때 ‘탄핵될 때까지 끝까지 계속 나오겠다. 우리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는 시민의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지선호: 이번처럼 상황이 가장 안 좋고 극단적이었음에도 시민들이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한 적은 없었다. 전엔 흥분한 시민들이 평소 맘에 안 드는 방송사의 카메라를 보고 달려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모습이 굉장히 적었고, 서로 자제하면서 취재진을 보호해 주는 모습도 있었다. 왜 이럴 수 있었는지 원인을 생각해 보면, 박근혜 탄핵 때와 달리 시민들이 유튜브나 방송사를 실시간 시청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의원들이 담을 넘어 국회로 집결하고 있고, 의결 정족수를 채워가고 있고, 뭔가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알고 정보가 차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의 계엄해제안이 가결되겠다는 희망을 갖고 차분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만약 계엄사령부가 전략적으로 통신을 끊는다면 그래도 이런 시위 문화가 가능할지 질문해 본다.   박은성:부산 시민도 굉장히 많이 모였다. 우리 팀 내에서도 영상취재하면서 많이 놀랐다. 부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모인 게 고무적이었다. 박근혜 탄핵 때와 다르게 응원봉을 갖고 나와 신나는 분위기로 어울리는 게 새로웠다. 즐기면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기회가 되었는데, 지역에서 이런 경우가 없다 보니 우리도 크게 다뤘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 영상기자 존재 의미 증명…일상 취재에서의 차별성 고민해야 나준영: 1980년 5.18, 그 전에 있었던 12.12와 5.17의 경우엔 직접 영상으로 현장을 담는 게 차단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외신이 취재한 영상을 통해 진실을 알아내고 그 분노가 모아져 87년 6월 항쟁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우리가 영상을 통해 비상계엄 상황이 생중계되고 계엄 해제와 시민항쟁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었다. 현장의 영상기자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느낀 영상 저널리즘의 가치와 영상기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말해 달라.   전인제 : 계엄 방송 전에는 기성언론이 위기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이번 상황에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훨씬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현장에 가기 때문에 더 깊이, 더 다양하게, 더 넓게 볼 수 있는 게 우리다. 아무리 디지털 플랫폼이 성장해서 개인화된다 하더라도 주요 언론들이 남아낸 영상들은 계속해서 역사적 자료로 잘 활용될 것이다.   김대호: 몸은 힘들었지만 역사적 순간에 시민들과 함께 있어 영광스럽게 생각했고, 이런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 우리 존재 의미가 증명되지 않았나 싶다.   박은성: 현장의 모습을 거짓 없이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영상기자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윤영: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못 들어가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현장을 지키고 취재보도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선호: 국회의장이나 야당 대표가 직접 담을 넘는 것을 셀프중계하거나 보좌진이 찍어준 그림으로 보도가 많이 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직접 찍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현장을 수집만 잘 한다고 될 것인가 고민이 들었다. 또, 사후 취재를 하는 상황에서 영상취재가 두드러지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역설적으로 영상취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박장빈: 기자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현장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기자 생활하면서 영상기자로서 이보다 더 가치있는 영상에 대한 기록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한 마음으로 열심히 기록한 시간이었다.   나준영: 마지막으로 앞으로 상황에 대한 전망이나 바람을 밝혀 달라.   박재현: 국힘은 상당히 어수선한 상황이고, 국회도 어지러운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급박한 상황을 많이 겪으면서도 이번에 조금 흥분하고 냉정하지 않은 면이 있었던 것 같아 앞으로 그런 역량을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국회도 차분하게 흘러갔으면 한다.   현세진: 계엄이 발표되고, 국회에서 해제 표결이 1시쯤 이뤄지고 군인들이 물러나면서, 이렇게 쉽게 계엄이 끝날 걸 왜 했나 의문이 남는다. 이제 법적 절차에 따라 신속한 헌재 판결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임채웅: ‘국민의 힘’이 질서 있는 퇴진을 얘기했는데 과연 질서라는 게 무엇인가. 국회에서 탄핵안을 가결했으니 헌재로 공이 넘어갔고, 법에 명시된 대로 절차를 따라가는 게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생각한다. 대선을 언제 다시 치를지 어떨지 모르지만, 법에 따라 질서 있는 모습대로 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때를 대비하고 취재해야 할 것이다.       정리=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4-12-20
  • 시민이 지킨 민주주의, 그 현장에 영상기자가 있었다
    시민이 지킨 민주주의, 그 현장에 영상기자가 있었다 목숨 걸고 영상으로 알린 ‘12.3 비상계엄’                                     ▲ 지난 12월 14일 오후 국회본회의장. ‘12.3계엄내란사태’를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2차 탄핵소추안투표가 진행되었고, 이어진 개표작업을 국회출입영상기자단이 취재하고 있다.   ▶ 충격, 분노, 공포, 그리고 희망.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밤 10시28분의 특별담화부터 탄핵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5시까지 대부분의 국민들이 느꼈을 심정이다. 계엄 선포 직후부터 지금까지 시민들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시민들의 ‘승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장영상의 중요성과 영상기자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 을 내놓고 있다.  ▶ 계엄의 밤…담 넘어 국회로 간 영상기자들, ‘통풀(전체영상풀)취재’ 결의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소식이 타전되자마자 방송사 보도국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특히 계엄 선포와 동시에 들이닥칠 계엄군의 모습 등 현장을 담아야 하는 영상기자들의 움직임은 더욱 바빴다.영상기자들은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가 모두 끝난 시간이라 대부분 퇴근해서 집에서 쉬거나 연말 모임 중이었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영상취재 데스크는 “‘내용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뭔가 급하게 발표하는 것 같다’고 해서 집에서 나와 회사로 가는 도중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걸 알게 됐다”며 “회사로 가는 차에서 각 출입처부터 연락을 돌려 ‘계엄이 선포됐으니 출입처별로 정위치하라’고 지시하고, 회사에 도착해 영상취재부 전체 카톡 방에 ‘계엄으로 전원 출근 요청하니 현재 위치에서 회사에 복귀해 달라’고 긴급 공지를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로 가면서 ‘혹시 장갑차나 탱크가 와 있으면 어쩌나’, ‘계엄군이 회사에 들이닥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회사에 들어갈 방법을 고민하면서 갔다”고 당시 소회를 털어놨다.   종합편성채널의 영상취재 데스크도 “대통령 팀에서 담화 발표가 있다고 보고가 올라와 준비하고 있는데, 계엄 발표를 보고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며 “재난이 터지면 기본적인 매뉴얼이 있는데 계엄 상황은 처음이라 영상기자 전원과 오디오맨, 취재차량 기사분들에게 출근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회사에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전송 장비를 지참시켜 주요 포인트에 내보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국회, 대통령실, 국방부, 광화문, 서울역, 남태령 등 주요 취재 포인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현장은 국회였다. 기자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경찰 병력이 스크럼을 짜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고, 시민들이 운집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계엄군도 진입했다. 장비 없이 도착한 영상기자들은 우선 휴대전화로 현장 상황을 촬영하면서 국회로 진입할 방법을 모색했고, 상대적으로 경비 가 허술한 쪽의 담을 넘어 들어가기도 했다.  한 영상기자는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경찰과 국회 관계자들, 계엄 소식을 듣고 나온 시민들, 계엄군 등이 뒤엉켜 있었다”며 “경찰이 정문 철문을 닫고 국회의원들까지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취재팀 4명 중 두 명밖에 못 들어갔다”고 전했다.   비상계엄이라는 사안의 중대함, 기자들이 현장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 등을 고려해 국회 영상기자단은 결단을 내렸다. 바로 각사에서 취재한 영상을 모두 공유하는 ‘통풀(1,2,3 풀단 전체풀)'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국회를 담당하는 SBS 박현철 기자는 “국회는 원래 1, 2, 3풀이 다 따로 취재하는 게 원칙인데 그날은 국가적으로 너무 중대한 상황인데 반해 (취재 인력이) 소수 인원만 있었다”며 “현장을 감당하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풀단 총간사를 비롯해 전체 풀로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 방송사 데스크는 “국회 출입기자들이 모두 라이브를 하는 상황에서 영상기자들이 전체 풀 시스템을 가동했다”며 “각사의 이익을 배제하고 전체 풀이 되었기 때문에 상황마다 현장 그림들이 많이 들어왔고, 당시 상황을 국민들에게 잘 알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각, 대통령실 상황도 급박하게 돌아갔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한 영상기자는 “긴급 담화가 있다고 해서 각사 영상기자들이 나와 있었는데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포해 출입기자들이 나온 회사들부터 생방송을 시작했다”며 “계엄 직후엔 출입 통제를 하지 않았는데 자정 즈음부터 기자들도 출입을 통제해 그 시간 이후로 온 기자들은 아예 들어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MBC의 경우 국방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잠깐 나갔던 기자가 출입 통제로 들어오지 못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출입 통제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된 뒤 풀렸다.  ▶ 계엄 내란사태에 가려진 한국최초 노벨문학상 취재   한편, 해외에서 계엄 소식을 접한 기자들도 있었다. 특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을 취재하기 위해 출장 중이던 여러 방송사의 취재진은 해외에서 갑작스레 전해진 계엄령 발표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출장 취재진의 한 명이었던 MBC 김희건 기자의 경우, 스톡홀롬으로 향하던 중 경유지인 뮌헨에 내려 계엄 소식을 접했다. 김기자는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현장취재하기 불과 몇 시간 전인 3일 낮, 서울을 출발해 동료들과 스웨덴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 기자는 “뮌헨 공항에서 계엄 소식을 접하고 한국으로 바로 복귀해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다행히 스웨덴에 도착하니 계엄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언제라도 복귀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한강 작가의 취재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또 “계엄 사태로 스웨덴 총리와의 회담이 무기한 연기되어서인지 MNG용 유심카드를 사러들어간 핸드폰 통신사 관계자가 우리에게 ‘괜찮냐?’고 물을 정도로 현지인들이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잘 알고 걱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해 문학팀에서 굉장히 공들여 사전취재준비를 많이 했고, 개별기획아이템을 위해 섭외해 놓은 것도 많았는데, 특보 체제여서 뉴스 말미에 한 두 개 정도 리포트만 방송되어 개인적으로 아쉽다”면서 “디지털 뉴스로라도 소화해 보려고 했지만, 화장실도 못갈 정도로 인력이 부족해 특보 외에는 편집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일부 콘텐츠만 현지에서 가편집해 디지털 뉴스로 내보냈다”고 전했다.  ▶ 총리실 출입기자단 ‘대통령급 취재체제’로…대통령실 기자단은 헌재로    국회는 지난 14일 본회의를 열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재적 의원 300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세 번째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비상근무 체제로 긴박하게 움직이던 언론사들도 평시 체제로 전환되고 윤 대통령 수사 상황과 헌법재판소 동향 등에 주목하고 있다. 또, 윤 대통령의 업무 정지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으면서 총리실 취재분 위기는 대통령급 취재체제로 전환되었다.   총리실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총리실 영상기자단은 평소 1풀 6명, 2풀 4명, 3풀 2명 등 3풀 12명으로 운영해 왔다”며 “한 총리의 지위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격상되면서 경호 체제가 대통령급으로 바뀌다 보니 출입기자와 오디오맨 등의 신원조회를 다시 실시했고, 경호 인력이 늘면서 외부로 나가는 경호 관련 엠바고가 많아졌다”면서 “총리 시절엔 주간 일정이 미리 올라왔는데 지금은 일정 조율할 곳이 많아 수시로 변동되는데, 총리실 쪽에서도 기자들에게 당분간 일정과 관련한 부분을 미리 공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업무 정지로 관저에 머물게 되면서 취재 인력 일부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대통령실을 취재하는 한 영상기자는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청와대 출입기자단 일부를 헌법재판소에 배정했었다”며 “이번에도 12개사 36명이 3풀로 운영해 오던 대통령실 기자단을 나눠 현재 12명이 헌재로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 ‘위기의 역사’ 한가운데서 영상기자의 존재와 역할 재조명   비상계엄 상황을 사회적 혼란 없이 막아내고 탄핵안까지 가결할 수 있었던 힘은 시민들로부터 나왔다. 시민들은 계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국회의사당을 직접 찾아 기자들과 함께 현장 상황을 전했고, 현장에 나오지 못한 시민들은 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 계엄군 국회 진입 등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계엄 철폐를 촉구했다. 시민들은 계엄 해제 직후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해 대통령 탄핵 가결을 촉구했다. 비상계엄 국면에서 디지털을 통한 시민 참여와 함께 언론의 영상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비상계엄 선포 직후와 윤 대통령 탄핵안 투표일에 MBC, JTBC, 오마이TV 등 언론사는 유튜브에서 상위를 차지했다. 특히 MBC는 이 기간 ‘뉴스특보’ 수도권가구시청률이 11.4%, 순간시청률은 27%까지 오르기도 했고, JTBC 역시 메인 뉴스 ‘뉴스룸’ 시청률이 6.7%로 올라  201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MBC 정우영 뉴스영상2팀장은 “TV로 뉴스를 시청하지 않는 시대임에도 국가적인 큰 이벤트나 사건이 발생하면 아직은 TV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며 “문자 매체와는 달리 방송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 현장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인데, 가장 생생한 모습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 열심히 뛰었고 이런 부분이 잘 발휘되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다른 방송사의 영상기자도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상황에서도 방송 뉴스와 유튜브를 통해 계속 라이브를 진행했다”며 “현장을 담아야 하는 영상기자는 이런 상황에서 제일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언론학회는 16일 낸 입장문에서 “탄핵소추안 가결은 국민이 이겼고, 민주주의가 이겼고, 언론의 자유가 이긴 것”이라며 “계엄 순간부터 탄핵 결정에 이르기까지, 폭력의 억압에 저항하며 치열하게 진실을 기록하고 증언한 언론인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밝 히기도 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서 “영상기자들이 영상을 통해 사안의 핵심과 중대성, 심각성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시민들의 힘이 결집되고 발휘될 수 있었다”며 “1인 미디어를 비롯한 시민 미디어의 정보 생산과 유통 및 공유가 전통적인 영상기자의 고유한 역할과 더불어 시민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어 육군 특수전사령부 김현태 707특임단 단장이 지난 9일 전쟁기념관 앞 거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을 두고 “비상상황에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기자회견, 즉 영상기자의 카메라 앞이었다는 점은 미디어 환경이 변해도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 저널리즘의 책무를 이행하고 있는 영상기자의 존재와 역할은 여전히 의미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이번 사태는 영상기자란 누구이고 어떤 사회적 책무를 갖느냐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사건”이라며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했을 때 영상기자들은 가장 위험한 현장의 최전선에서 취재 보도하면서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저널리즘을 위해 고 군분투했다”고 밝혔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