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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집상 수상소감] 통제와 탄압을 뚫고 기록한 이란여성들의 ‘생명과 ...
     “인사이드 이란 : 자유를 위한 투쟁”- 통제와 탄압을 뚫고 기록한 이란여성들의 ‘생명과 자유’를 위한 저항 ▲2024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집상 수상자 게스빈 모하메드(글)언론인으로서, 우리는 참으로 모순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고, 이메일이나 메시지로 중요한 소식들에 간단하게 연결되는 세상. 하지만 공익을 위한 자유로운 보도가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몇몇 권위주의 국가는 이러한 환경에서 예외입니다. 대신, 그러한 권위주위적인 국가들은 같은 기술을 정보를 통제하고, 반대 의견을 공격하며, 표현의 자유를 감시하고 억압하는데 사용합니다.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에 따르면, 세계의 자유도는 18년째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권위주의가 다시 부상중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진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함은 그 무엇보다도 분명합니다. ▲2024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집상 수상자 네치르반 만도기술발전을 언론과 정보의 통제로 악용하는 권위주의국가들, 그 속에서 ‘진실’의 취재이러한 배경 속에서, 유서 깊은 영국의 ITV 채널에서 2023년 말에 방영된 <인사이드 이란: 자유를 위한 투쟁> 제작진은 한 가지 어려운 질문에 답해야만 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곳곳에서 억압당해 가는 중인 세상에서, 어떻게 언론에서의 공개 발언이 곧 사형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권위주의 국가 내부의 인권 침해를 세상에 내보일 수 있을까요? 언론인과 활동가들은 늘 집중 감시를 받고, 전자화된 시스템이 기록을 남겨 관광객 등으로 위장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현장에 접근해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요? 이 질문들은 22세의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지나 아미니가 경찰 구금 중 사망한 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진 질문들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엄격한 여성 복장 규정을 위반했다는 구실로 체포되었고, 그 죽음은 1979년 정권 수립 이후 가장 길고 거대한 반정부 시위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진압과정에서 2만 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100여명의 언론인을 포함해 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 중 70명이 넘는 피해자가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짧은 영상들 속에선,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들 거리로 나서 “여성과, 생명과, 자유” 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더 자유로운 이란을 향해, 우리에겐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권리들을 갖기 위해 싸우러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평범하지만 동시에 매우 용감했던 시민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이 영상들은 소셜 미디어에 퍼졌지만, 너무나 적고 너무나 약했습니다. 이란 정부가 자국민의 불만과 이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을 차단시킨 것입니다. 이에 대응해, 우리 팀은 정부의 탄압이 심화되는 가운데 시위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를 기록할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이란 정부가 침묵시키려 하는 이란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했습니다. 2019년 홍콩 시위 직후, 나는 비행기에 올랐고 현지에서 시위자들과 촬영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란에서의 취재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2024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집상 수상자 로빈 반웰취재원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까지 넘나들어 이미 이전에 이란 내부를 취재한 바 있고, 시위를 시작한 사케즈 지역 사람들과 같은 쿠르드 민족에 속한 사람으로서, 이란에 접근하는 것은 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장 최선의 경우라도 이란 내부에서 자유로운 취재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철저히 감시당하리라는 것 또한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엔 사람들– 우리가 만날, 또 우리가 알리려 했던 목소리들 – 이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란 내부에서 촬영하되, 이란 당국의 시야에서, 그들의 레이더에서 벗어나 비밀리에 촬영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빠르게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우리와 함께 작업하기로 한 이란의 영상제작자 ‘하페즈’가 우리의 숨은 영웅입니다. 그는 많은 시위자들처럼 여성 권리 향상과 삶의 질 개선, 비리 척결,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두려움 없이 진정 자유로운 삶을 갈망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여성 시위자들을 비밀리에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2024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집상 수상자 "하페즈" (안전을 위해 익명처리.)이들이 당국에 붙잡히지 않도록 촬영 중 안전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란에선 정권에 대한 비판은 금지되어 있기에, 이란 내부의 모든 출연자들은 익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영상기자와 제작자가 영상의 결과와의 사이에서 저울질해야 할 가장 중요한 윤리적 고려 사항입니다. 권위주의 정부들은 해외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들을 감시하며, 방송이 나간 후 보복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국경 너머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에서, 쿠르드인 프리랜서 기자 네치르반 만도와 촬영감독이자 감독인 로빈 반웰, 그리고 저는 함께 투옥 또는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한 이란인들을 구출하고 있는 쿠르드계 반 이란 활동단체에 독점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국경을 넘었음에도, 자신의 집을 떠난 이란의 활동가들은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국경을 넘나드는 탄압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쇠퇴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란에서의 1년간의 이야기들을, 시위의 시작부터 그 여파까지 온전히 담기 위해 우리는 철저한 저널리즘 정신에 입각해 잠입취재로 다뤄야 했고, 이를 위해 다양한 저널리즘적 도구와 스토리텔링을 활용했습니다. 방영된 내용 이 외에도 설득을 통해 검증된 지하 활동 단체들로부터 이전까진 볼 수 없었던 방대한 자료들을 확보했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이란인들이 남긴 수천 개의 휴대전화 영상을 수집했습니다. 시위현장에서 촬영된 100시간 분에 달하는 영상들을 검토한 후, 철저한 검증을 거친 200여개의 영상들을 작품에 사용했습니다. 권위주의가 급부상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안타깝게도 이제 더 이상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권력자들이 더욱 강력해지고, 더 많은 수단들을 활용해 진실들을 감추고, 우리의 활동을 감시하는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자이자 영상제작자로서 진실을 담고,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더 새롭고 안전한 보도 및 영상취재방식들을 끊임없이 고민해야만 할 때입니다.
    2024-12-19
  •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 소감] 팔레스타인의 기자들도, 전쟁만을 담고 싶지는 않...
    "가자로부터 온 목소리"-팔레스타인의 기자들도, 전쟁만을 담고 싶지는 않습니다 ▲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 모하메드 사와프 (글)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나의 도시. 이웃들이 타겟이 되고, 도망칠 곳조차 없이 그 다음 목표는 나와 내 가족들이 될 지도 모르는 그 곳을 카메라에 담아내야만 하는 것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영상기자들과 언론인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고통이자 고뇌입니다. 스스로가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사건을 보도해야만 한다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의 뒤편에는,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한 도사리고 있습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잔인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더라도, 이미 도망칠 수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 살라 알 하우전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은, 특히 이번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바깥의 그 어떤 기자들도 절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을 그런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국 기자들은 더 이상 가자에 접근할 수 없고, 이제 이곳의 현실을 전 세계에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현지의 기자들뿐입니다. 카메라는 이들의 또 다른 눈이 되어,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엉망이 된 거리,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을 비추며 초토화된 주위 사방을 담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겐, 내딛는 발걸음마다 위험이 도사리고,살아있는 매 순간이 또 다른 위협입니다.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복잡한 현실은, 그저 자신과, 자신 가족의 안위와 진실을 전하는 것 둘 중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뇌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기자와 군사 목표가 점점 더 같은 뜻으로 여겨지고 있는 전장에서, 그들은 그들의 카메라로 인해 다음 번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끝없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자에서, 동료들이 한명씩 쓰러져나가고 있습니다. 마치 기자들이 정말 이스라엘군의 표적이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 우리는 계속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침묵을 택하느니 뻔히 보이는 죽음을 택하는 쪽이 낫고, 우리의 죽음이 기왕이면 아무도 모르는 채 이뤄지기 보다는, 차라리 아주 명백하게, 모두에게 보여 질 수 있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제 동료들, 아흐메드, 마르완, 살라, 이브라힘 등과 저는 오랫동안 한 팀으로 같이 일해 왔고, 우리 민족이 가진 서사와 아픔을 공유하며 또 함께 이어져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기자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동료 시민이자 같은 인간으로서 가장 어두운 밤 그들의 곁에 섰습니다. 2023년 10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리는 매일같이 끝없는 폭격과 전차 행렬 사이에서 생사의 문턱을 오가고 있습니다.  ▲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 이브라힘 알 오틀라 매일 취재 기획을 세우고 나서지만, 맞닥뜨리는 전장은 그동안 겪어왔던 그 어떤 전쟁과도 같지 않습니다. 보다 힘들고 끔찍하며, 그 끝이 대체 어딘지, 총성이 멎으리란 희망을 가져도 될 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잊혀서는 안 될 아픔들을 세상에 알리고자 냉혹한 현실과 사투를 벌일 때면 순간순간이 영원처럼 길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또 폭격 장소로 나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손에 쥔 카메라가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 무엇이든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먼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폭탄이 또 우리를 겁먹게 할지라도, 우리의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의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만약 우리가 기록하지 않는다면, 우리 그리고 가자 지구 주민 모두가 시선 밖에서 조용히 죽어갈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죽기보단 모두의 눈앞에서 죽는 것이, 적어도 더 낫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순간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주인공들이 그저 피해자로만 비춰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영상은 구급대원, 아이, 의사, 그리고 그 외 각자의 삶 속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뉴스를 만들어 내보내는데 그치지 않고, 숫자로만 다뤄지는 사람들도 전부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영상 속 모든 이들은 각자 희망과 꿈, 그리고 삶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있기 전, 그들 모두는 세상에 전해줄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 기자들도 결코 안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인해 우리 모두의 집이 파괴되었고, 모두들 집과 가족과 동료들을 잃었습니다. 전쟁의 첫 주에, 벌써 우리 회사 사무실은 폭격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170명이 넘는 가자(Gaza)기자들의 죽음, 피해자의 눈으로 참상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책임 ▲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 故마르완 알 사와프나의 동료, 마르완은 이스라엘 미사일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폭격을 촬영하기 위해 준비하던 도중이었습니다. 사망하기 불과 이 주 전에 부모와 형제, 어린 조카를 포함한 47명의 가족을 잃은 상태였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심각한 부상을 입고 가족을 잃었으며, 이브라힘은 집을 잃고 남쪽으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살라의 집도 공격당해 여러 가족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습니다.이 모든 이별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다시 현장에 돌아와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들을 멈추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계속 이 일을 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은 이제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사명입니다. 세상은 반드시 피해자들을 두 눈으로 봐야만 하고, 그렇게 만들기 까지가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지금까지 17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기자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언론인들이 죽었습니다.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기자로 일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취재 후 다시 안전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와, 스스로의 삶의 터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취재하는 것은 한참 다릅니다. 여기선 전쟁이 일상의 일부이며,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이 다음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옵니다. 가자에는 도망칠 곳이 없고, 공간은 협소하며, 모든 출구는 봉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상을 고인이 된 동료 마르완과, 그밖에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기자들에게 헌정합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의무이며, 우리는 늘 인류애를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도 전쟁만을 다루고 싶진 않습니다. 인간은 전쟁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며, 기자는 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존재가 아님을 잘 압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우리는 전쟁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의 일부로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갈 것입니다.
    2024-12-19
  • 현장에서 기후위기를 실감. 뭉텅뭉텅 사라지기 시작한 육지
    [현장에서]           현장에서 기후위기를 실감. 뭉텅뭉텅 사라지기 시작한 육지            보트 위에 선 A씨가 손을 들어 강을 향해 가리켰습니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에는 반쯤 쓰러진 전봇대와 수평선 위로 듬성듬성 솟은 집들이 있었습니다. A씨가 가족과 함께 터를 잡고 살았던 집은 지금 물속에 잠겨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방글라데시 깔라바기의 이야기입니다. 2009년 사이클론으로 물에 잠겼던 마을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육지와 길이 끊어진 채 옅은 흔적만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기후 위기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는지. 특히 폭우와 해수면 상승의 피해는 서서히 시가 물에 잠기는 방식이 아니라 한번 휩쓸고 간 자리에 다시 물이 빠지지 않는 방식으로 뭉텅뭉텅 삶의 터전과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차라리 집이 물에 잠겨 내륙 지역으로 이주를 마친 A씨네 가족과 이웃들은 안전한 상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을이 물에 잠겨 이주하게 된 A씨의 가족이 살던 곳 바로 옆에는 물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강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수상가옥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육지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만 하는 매우 작은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집은 당장이라도 비가 내리면 물에 잠길 것처럼 입구 바로 앞까지 물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보트에서 내려 수상가옥 촌에 발을 디딘 순간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내년 혹은 올해 있을 폭우에 무사할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됐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열흘간 만난 사람들의 터전을 찾아가면 항상 그들의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엔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살았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마을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평온하고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육지가 사라진 풍경의 충격과 함께 주민들이 다 같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발이 푹푹 빠져 신발도 신을 수 없는 곳에서 맨발로 고운 진흙땅을 밟으며 진흙으로 다시 무너진 길을 다 같이 복구하고 있던 모습. 우리도 주민과 발맞춰 신발을 벗고 맨발로 진흙을 밟으며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미끄러질 때마다 발가락에 힘을 주어 진흙을 잘 잡아야 넘어지지 않는다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취재진을 부축해 주던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주민들의 환대와 도움으로 취재를 잘 마치고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글라데시에서는 또 한 번의 큰 홍수가 났고 인명피해 또한 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만났던 주민들과 마을은 무사할지 마음이 쓰입니다.     얼마 전 동기가 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배우자와 함께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기는 낳을 수 없겠다고 말하며 기후 위기를 아이에게 경험시키는 것이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기후 위기로 인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고통받고 가족과 친구를 잃은 모습을 보고 온 지금 동기가 저에게 던진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더 이상 경고가 아니라 시작된 재난으로서 우리의 터전과 생명을 빼앗고 있는 이 기후 위기로부터 우리의 삶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카메라를 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MBC 전인제 기자       
    2024-12-19
  • ‘처음’, ‘최초’, ‘새로운’ 그리고 ‘친환경’
    [현장에서]         ‘처음’, ‘최초’, ‘새로운’ 그리고 ‘친환경’  - 파리올림픽 취재기           센 강에서 열리는 야외 개막식.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의 성비가 동일한 최초의 올림픽. 파리올림픽은 새로운 올림픽이 될 것임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끊임없이 제기된 센 강 수질 논란과 함께 한여름에 ‘노 에어컨’, 테러 위협 등 우려도 컸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인명 사고 없이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역대 최소 출전 선수에도 역대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이란 기분 좋은 성과를 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경기장이다. 내부가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그랑팔레(Grand Palais)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해 건립된 이곳은 전시회나 문화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쓰인다. 여기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열렸고 우리나라가 각 종목에서 금메달을 2개나 따냈다. 특히 결승전에서 선수들이 입장할 때 나선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화려한 유리 지붕이 특징인 이곳에서 혈투를 벌이는 선수들을 로우 앵글로 비춘 샷은 일품이었다.         베르사유 궁전 앞 광장에 만들어진 야외 경기장에서는 근대 5종 경기가 열렸다. 이곳에서 아시아 여자 최초로 우리나라 성승민 선수가 값진 메달을 따냈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을 배경으로 한 승마 경기는 한 폭의 서양화를 보는 듯했다. 현장에서 취재할 땐 차양막이 전혀 없어서 온몸으로 햇볕을 받아야 했지만, 멋진 중계 화면을 보면서 그냥 참아야겠단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원래는 경기장이 아닌 곳을 경기장으로 쓰다 보니 불편한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미디어 출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입구에서 취재 포인트까지 동선이 긴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의 경기장에는 비계 구조물(일명 아시바)이 설치돼 임시 관중석으로 쓰였는데 사람이 걸어 다니면 카메라가 쉽게 흔들려 주의해야 했다.         ▲ 펜싱, 태권도 경기장이었던 그랑팔레 앞      친환경 올림픽 또는 절약 올림픽   그동안 새로 지은 올림픽 경기장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평창올림픽 경기장이 바로 그 예다. 뾰족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매년 수십억에 달하는 운영비만 들고 있다. 파리올림픽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자 건물을 최대한 덜 짓는 것을 목표로 했다. 새로 만든 경기장은 단 두 개다. 경기장에 쓰인 모든 건축 자재 역시 저탄소 자재가 사용됐다.     IBC(국제방송센터) 건물도 친환경적이었다. 외관부터 오로지 기능에만 충실하게 지어졌다. 기자들에게 제공하는 미디어 키트도 없었다. 기자실도 마찬가지다. 경기장마다 규모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원 콘센트와 TV 등 필수품만 있었다. 생수병은 제공되지 않았고 과일과 뜨거운 커피, 텀블러를 사용해야 하는 급수대가 마련돼 있었다. 쓰레기통도 전부 종이로 만들어졌다.     문제도 있었다. 몇몇 선수단은 선수촌 식단에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육식은 채식에 비해 탄소를 많이 발생시킨다. 저탄소 올림픽을 위해 식단에서 고기를 줄인 것이다. 일부 선수들은 외부로 나가 육류를 보충했다.         선수들이 이동할 때 타는 버스에는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다. 버스가 길을 잘못 찾기라도 하면 선수들은 찜통 버스 안에서 컨디션 조절을 해야 했다. 나 역시도 폐회식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시간이 폐회식 취재보다 몇 배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으로 돌아와 출장기를 쓰는 지금 한 달 넘게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시차 적응보다 날씨 적응이 힘들다. 파리는 적어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에어컨 사용 여부가 논란이 됐지만 앞으로는 폭염으로 하계올림픽이 전 세계 도시 다수에서 열리기 힘들 거란 전망마저 나온다. 지구촌 축제가 지속되기 위해서 친환경 올림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SBS 윤형 기자      
    2024-08-29
  • 나의 첫 올림픽 출장
    [현장에서]  나의 첫 올림픽 출장 - 파리올림픽 취재기   낯선 도시에 첫발을 내딛다.     모든 것은 한 통의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파리올림픽 취재 확정." 그 한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영상 기자로서 수많은 현장을 경험했지만, 올림픽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그것도 파리에서. 나는 이 출장이 단순한 취재를 넘어선 개인적인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한편엔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나는 그 낯선 도시가 나를 어떻게 맞이할지, 그곳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이 순간, 어깨에는 무거운 카메라 장비가 걸려 있었고, 마음에는 묵직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올림픽’. 어릴 적 TV 속에서만 보던 거대한 무대가 이제는 현실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질 차례였다. 그런데 그 무대 위에서 나는 카메라 뒤에 서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가슴을 뛰게 했다. 이 낯선 도시는 나에게 어떤 도전과 이야기를 안겨줄지 궁금했고, 동시에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이미 그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첫 발을 내디딘 상태였으니까.   불타오르는 경쟁의 현장, 파리의 중심에서     올림픽 경기장이 나를 압도했다. 각국의 선수들이 금메달을 향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은 경외감을 넘어 경탄 그 자체였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수천 명의 관중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선수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매 순간을 포착해야 했다. 하지만 이내 현실은 내게 예상치 못한 도전을 던졌다. 파리의 여름은 생각보다 더 무자비했다. 쏟아지는 햇빛은 내 피부를 태우는 듯했고, 경기장에서 몇 시간씩 촬영하는 동안 내 몸은 점점 지쳐갔다.     하루는 근대5종 경기를 촬영하던 중, 태양이 너무 강렬해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모든 것이 흐려지는 듯한 순간, 나는 결국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그늘로 피신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이 중요한 장면을 놓치면 안 돼!"라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가 선수들의 순간을 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남은 마지막 힘을 다 쏟아붓고 있었다. 마치 선수들이 금메달을 향해 달리듯, 나도 한순간 한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전력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시. 다른 날들과는 달리, 프랑스 샤토루로 가는 특별한 날이었다. 여자 사격 경기를 촬영하기 위해 어둠을 뚫고 이른 시간부터 출발했다. 해도 뜨기 전의 프랑스는 적막했지만, 내 마음속은 잔뜩 기대감으로 차 있었다. 사격 경기는 내가 특히 기대하고 있는 경기 중 하나였다. 사격 25m 권총 결선에 출전하는 양지인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 것이라는 예상 못 했지만, 그녀의 모든 순간을 잘 기록하고 싶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은 점점 더 긴장감에 휩싸였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관중들의 숨소리가 멈추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 또한 선수들과 함께 그 긴장감을 느꼈다. 양지인 선수의 얼굴에는 엄청난 집중력이 드러났고, 나는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담기 위해 렌즈를 조준했다.     경기가 끝났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양지인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내 카메라에 그녀의 환한 웃음이 그대로 담겼다. 내가 목격한 순간은 단순한 승리 이상의 감동이었다. 한국을 대표해 최선을 다한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그 순간, 나 역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감동을 함께 느꼈다.     메달의 반대편에서     올림픽은 승리의 무대만이 아니다. 경기장을 나서며, 나는 여러 선수의 좌절을 마주했다. 메달을 놓친 이들의 눈물은 예기치 못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는 패배 속에서도 자신만의 싸움을 견뎌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오랜 시간 견뎌온 노력과 고통이 서려 있었고, 경기장의 패배는 그들의 삶 속에서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한 선수의 패배 후 믹스드존 인터뷰를 촬영하던 날이 있었다. 그는 패배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 장면을 멍하니 지켜봤다. 렌즈를 통해 느껴지는 그의 감정은 너무나도 진실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승리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견뎌온 시간과 과정 역시 올림픽의 일부라는 것을.     경기가 끝난 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선수들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분명 최선을 다했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눈물을 기록할 때, 나 역시 그들의 아픔과 좌절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배의 순간에도 그들만의 드라마가 존재했다. 나는 스포츠가 단순한 승리와 패배를 넘어선 인간의 감정과 꿈이 얽힌 거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승리의 기쁨 뒤에 숨겨진 패배의 아픔은 올림픽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떠나는 파리, 가슴 속에 남은 울림     출장 마지막 날, 나는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동안의 여정을 떠올렸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처럼 나도 이제는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경기장 앞을 지나며 잠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경기장은 이제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선수들과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한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환한 미소, 예상 밖의 승리에 감격해 나도 모르게 질렀던 환호성, 그리고 메달을 놓치고 흘린 눈물, 그 모든 감정을 담아내던 내 카메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곳에서 내가 담아낸 것은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각자의 싸움을 마주한 인간들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그 깨달음들은 나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그것이 앞으로 나의 여정에 깊은 자양분이 되어줄 것임을 느꼈다. 경기장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의 열정과 감동이 남긴 울림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떠나지만, 파리에서의 경험은 나를 더 강하게,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를 맞이할 또 다른 현장에서도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MBC 한지은 기자    
    2024-08-29
  • 영상기자 여러분,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영상기자 여러분,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힘겹게 만들고 지켜온 공적방송과 이를 움직이는 시스템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일반시민으로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천불이 나는데, 그것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보며 기록까지 해야하니 영상기자 여러분들의 심경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일반시민들이 가닿지 못하는 곳에서 시민들의 눈이 되어주고, 또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증거를 넘겨주는 영상기자 여러분의 노고와 분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MBC의 DNA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무너지는 것은 참 순식간이었습니다. 겨우 0.7% 차이로 갈린 2022년 대통령 선거 후 2년만에 KBS가, YTN이, TBS가 이렇게 무너져내리고, 마지막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MBC도 바람 앞의 촛불같은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허약한 것일까요? 여러 차례 되풀이된 언론노조의 파업이나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은 왜 윤석열 정권의 광기어린 인사정책 앞에 맥을 못 추는 걸까요? 촛불로 잡은 정권을 5년만에 내주고나니 더 힘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때일수록 길게 보고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에서 힘을 얻어야합니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박근혜 탄핵 직후의 MBC를 한 번 돌이켜보지요. 김재철-김장겸 등의 체제하에서 민주화 이후 20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던 MBC는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조 활동 열심히 했던 언론종사자들은 다 밀려나고 ‘시용기자’다, ‘경력기자’다 하는 무리가 들어와 MBC의 DNA 자체가 완전히 뒤바뀐 거 아니냐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죠. 그러나 MBC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MBC가 전문가와 일반국민 모두에서 영향력, 신뢰도, 열독률 등 3개분야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것이지요. KBS, YTN, TBS가 무너지고 나니 MBC의 존재가 더욱 빛나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권에서는 사활적 이해를 걸고 방송장악을 위해 몸부림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도저히 깜냥이 안되는 이진숙을 방송위원장으로 내세워 방문진 이사진을 불법 개편한 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일입니다. MBC 영광과 상처모든 언론사들이 저마다 영욕의 역사를 갖고 있겠지만. 공영방송의 마지막 보루가 된 MBC도 현대사의 굽이굽이에 상처와 영광을 함께해왔습니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고, 아직 영상기자들의 활약이 시작되기 이전인 라디오 시대였지만, 부산MBC는 1960년 3ㆍ15 부정선거에 대한 마산시민의 규탄시위를 생중계하여 4월혁명의 단초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MBC와 같은 계열이었던 부산일보는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을 때, 그 사진을 전국에 전파하여 4월혁명을 불러왔습니다. 부산군수기지 사령관으로 이 모습을 지켜본 박정희는 언론이 가진 무한한 힘에 두려움과 부러움을 느껴 사주 김지태에게 부정축재자란 누명을 씌워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와 부산 서면 일대의 토지 10만평을 강탈해 5ㆍ16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MBC는 그야말로 박정희 것이 되어버렸지요. 박정희가 죽고난 뒤 MBC의 처리 문제가 심각한 현안이 되었습니다. 언론통폐합을 꿈꾸던 전두환 정권은 MBC도 KBS에 통합시켜버리려고 했지만, 박정희 유가족의 처우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1971년 MBC 증자를 기준으로 그 이전 5ㆍ16장학회가 갖고 있던 지분(증자 이후 30%)을 박정희 유가족 몫으로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따서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증자분 70%를 뺏어 이리저리 돌다가 민주화 이후 결국 방송문화진흥회가 MBC의 지배주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MBC가 소유구조는 공영적이면서 실제 운영은 광고에 의존하고 있어 ‘공영적 민영방송’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독특한 방식를 갖게된 것은 엄청나게 요동쳤던 한국현대사의 산물입니다.  언론 암흑기를 거쳐 방송민주화를...1980년대는 언론의 암흑기였습니다. MBC만 하더라도 1980년 5월 광주의 성난 시민들이 사옥에 불을 질렀지요. 6월항쟁 당시의 거리에서 MBC 취재차량이 돌을 맞고, 기자들은 발길질을 당했지요. 꼭 외부의 발길질 때문이었겠습니까. 언론인으로서 손톱만큼이라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에게 땡전뉴스나 보도지침이 견딜 수 있는 일이었겠습니까? 언론종사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또 직능별로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프로가 정상화되고 MBC에서는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00분토론>, <2580> 같은 프로그램이, KBS에서는 <추적60분>, <생방송 심야토론>, <다큐멘터리 극장>, <인물현대사> 같은 프로그램이 출현했지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의 선배 여럿이 감옥 구경도 하고, 뉴스룸이나 스튜디오를 떠나 창고정리도 하고 청소도 해야 했었지요. 그렇지만 1987년 양김씨의 분열에 의한 패배와 1990년 3당합당으로 민주진영이 반토막 나버린 참사에도 불구하고 1997년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데는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이루어낸 방송민주화와 전교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교육현장의 민주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싸움이 지겹도록 계속 되는 것은 여러분이 일하고 있고 지키고 있는 현장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수구세력이 MBC를 ‘노영방송’으로 규정하고,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에 극우·뉴라이트 세력을 대거 포진시킨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지금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으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있는 김광동이나 차기환, 뉴라이트 핵심이었던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최홍재 등이 방문진 이사라는 직함을 얻었지요. 빨간색 안경의 공안검사 고영주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자리를 더럽히기도 했고요. 최근 윤석열 정권이 어거지로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이진숙은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을 만나 MBC 민영화를 몰래 논의하다 녹음이 되어 크게 말썽을 일으켰던 자이지요. 어디 이진숙 뿐인가요? 지금 현장에서 뛰고 있는 영상기자 여러분들은 선배세대와는 또 다른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언론환경도 바뀌고 기술도 바뀌고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의 욕심 많은 방송장악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새롭게, 더 유쾌하게, 더 발랄한 여러분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계속 우리의 눈과 기억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한홍구 (성공회대 열림교양학부 교수)
    2024-08-28
  • 영상기자 여러분,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영상기자 여러분,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힘겹게 만들고 지켜온 공적방송과 이를 움직이는 시스템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일반시민으로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천불이 나는데, 그것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보며 기록까지 해야하니 영상기자 여러분들의 심경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일반시민들이 가닿지 못하는 곳에서 시민들의 눈이 되어주고, 또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증거를 넘겨주는 영상기자 여러분의 노고와 분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MBC의 DNA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무너지는 것은 참 순식간이었습니다. 겨우 0.7% 차이로 갈린 2022년 대통령 선거 후 2년만에 KBS가, YTN이, TBS가 이렇게 무너져내리고, 마지막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MBC도 바람 앞의 촛불같은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허약한 것일까요? 여러 차례 되풀이된 언론노조의 파업이나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은 왜 윤석열 정권의 광기어린 인사정책 앞에 맥을 못 추는 걸까요? 촛불로 잡은 정권을 5년만에 내주고나니 더 힘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때일수록 길게 보고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에서 힘을 얻어야합니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박근혜 탄핵 직후의 MBC를 한 번 돌이켜보지요. 김재철-김장겸 등의 체제하에서 민주화 이후 20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던 MBC는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조 활동 열심히 했던 언론종사자들은 다 밀려나고 ‘시용기자’다, ‘경력기자’다 하는 무리가 들어와 MBC의 DNA 자체가 완전히 뒤바뀐 거 아니냐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죠. 그러나 MBC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MBC가 전문가와 일반국민 모두에서 영향력, 신뢰도, 열독률 등 3개분야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것이지요. KBS, YTN, TBS가 무너지고 나니 MBC의 존재가 더욱 빛나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권에서는 사활적 이해를 걸고 방송장악을 위해 몸부림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도저히 깜냥이 안되는 이진숙을 방송위원장으로 내세워 방문진 이사진을 불법 개편한 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일입니다. MBC 영광과 상처모든 언론사들이 저마다 영욕의 역사를 갖고 있겠지만. 공영방송의 마지막 보루가 된 MBC도 현대사의 굽이굽이에 상처와 영광을 함께해왔습니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고, 아직 영상기자들의 활약이 시작되기 이전인 라디오 시대였지만, 부산MBC는 1960년 3ㆍ15 부정선거에 대한 마산시민의 규탄시위를 생중계하여 4월혁명의 단초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MBC와 같은 계열이었던 부산일보는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을 때, 그 사진을 전국에 전파하여 4월혁명을 불러왔습니다. 부산군수기지 사령관으로 이 모습을 지켜본 박정희는 언론이 가진 무한한 힘에 두려움과 부러움을 느껴 사주 김지태에게 부정축재자란 누명을 씌워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와 부산 서면 일대의 토지 10만평을 강탈해 5ㆍ16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MBC는 그야말로 박정희 것이 되어버렸지요. 박정희가 죽고난 뒤 MBC의 처리 문제가 심각한 현안이 되었습니다. 언론통폐합을 꿈꾸던 전두환 정권은 MBC도 KBS에 통합시켜버리려고 했지만, 박정희 유가족의 처우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1971년 MBC 증자를 기준으로 그 이전 5ㆍ16장학회가 갖고 있던 지분(증자 이후 30%)을 박정희 유가족 몫으로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따서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증자분 70%를 뺏어 이리저리 돌다가 민주화 이후 결국 방송문화진흥회가 MBC의 지배주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MBC가 소유구조는 공영적이면서 실제 운영은 광고에 의존하고 있어 ‘공영적 민영방송’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독특한 방식를 갖게된 것은 엄청나게 요동쳤던 한국현대사의 산물입니다.  언론 암흑기를 거쳐 방송민주화를...1980년대는 언론의 암흑기였습니다. MBC만 하더라도 1980년 5월 광주의 성난 시민들이 사옥에 불을 질렀지요. 6월항쟁 당시의 거리에서 MBC 취재차량이 돌을 맞고, 기자들은 발길질을 당했지요. 꼭 외부의 발길질 때문이었겠습니까. 언론인으로서 손톱만큼이라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에게 땡전뉴스나 보도지침이 견딜 수 있는 일이었겠습니까? 언론종사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또 직능별로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프로가 정상화되고 MBC에서는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00분토론>, <2580> 같은 프로그램이, KBS에서는 <추적60분>, <생방송 심야토론>, <다큐멘터리 극장>, <인물현대사> 같은 프로그램이 출현했지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의 선배 여럿이 감옥 구경도 하고, 뉴스룸이나 스튜디오를 떠나 창고정리도 하고 청소도 해야 했었지요. 그렇지만 1987년 양김씨의 분열에 의한 패배와 1990년 3당합당으로 민주진영이 반토막 나버린 참사에도 불구하고 1997년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데는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이루어낸 방송민주화와 전교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교육현장의 민주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싸움이 지겹도록 계속 되는 것은 여러분이 일하고 있고 지키고 있는 현장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수구세력이 MBC를 ‘노영방송’으로 규정하고,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에 극우·뉴라이트 세력을 대거 포진시킨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지금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으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있는 김광동이나 차기환, 뉴라이트 핵심이었던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최홍재 등이 방문진 이사라는 직함을 얻었지요. 빨간색 안경의 공안검사 고영주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자리를 더럽히기도 했고요. 최근 윤석열 정권이 어거지로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이진숙은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을 만나 MBC 민영화를 몰래 논의하다 녹음이 되어 크게 말썽을 일으켰던 자이지요. 어디 이진숙 뿐인가요? 지금 현장에서 뛰고 있는 영상기자 여러분들은 선배세대와는 또 다른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언론환경도 바뀌고 기술도 바뀌고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의 욕심 많은 방송장악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새롭게, 더 유쾌하게, 더 발랄한 여러분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계속 우리의 눈과 기억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한홍구 (성공회대 열림교양학부 교수)
    2024-08-28
  • 서울 영상기자에게 지역 뉴스 제작 경험이 필요한 이유 - <MBC 김준형 / MBC 서울-지역영상기...
    <현장에서.. MBC서울-지역영상기자 교류 프로그램 참가기>서울 영상기자에게 지역 뉴스 제작 경험이 필요한 이유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네, 내일 뵙겠습니다.”늘 하던 인사에 생소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서울에선 한 취재기자와 일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부산에서 ‘내일’을 말할 수 있는 건, 인구 330만 부산의 뉴스 영상을 단 여섯 명의 영상기자가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MBC 내에서 서울과 지역사 영상기자를 일대일로 교환하여 단기간 근무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생겼습니다. 운 좋게 첫 순번이 되어 부산MBC 박현진 영상기자와 2주간 자리를 바꿨습니다. 부산에서의 첫 출근날, 범일동 사옥을 돌며 정신없이 명함 반통을 비웠습니다. 신입사원이 된 것 같았습니다. 지역사의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오후엔 첫 출근이라도 예외 없이 리포트 제작을 나갔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함께 다녀온 취재기자에게 낯선 마무리 인사를 듣자, 그제야 파견 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부산에 내려가기 직전, 한 선배는 ‘각자 맡은 지역에서 잘하면 되지, 교류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대답은 있었습니다. 상경하기 전까지 제가 본 뉴스는 항상 후반부터 지역 앵커가 등장하며 지역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지역 뉴스를 보고 자랐기에 제작 과정이 서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수도권 과밀화가 심화된 현시점에서 지역 뉴스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업무적인 부분 외에도 치열한 수도권을 잠시 벗어나 다른 도시에서 일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개인적인 이유이지, 다른 영상기자들도 홀로 낯선 지역사에서 일하기를 자처할 이유는 아니었습니다.파견 2주 차에 배정받은 대형 도시개발사업은 저출생·고령화, 청년 유출로 골머리를 앓는 부산에 희망이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이전을 준비해야 하는 농산물시장과 화훼단지의 소상공인들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일했지만, 비교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으로 이전해야 하는 사람들. 저를 놀라게 한 취재기자의 말은 이미 부산에선 많이 다룬 주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선 뉴스 후반부에도 지역 뉴스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일까요? 수도권에선 접하기 힘든 지역 내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지역 뉴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지역의 문제는 오롯이 지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일자리, 인프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거시적인 지역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을 조명하는 지역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결국,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어 ‘균형 발전’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주변에서 여러 의문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같은 MBC라는 이름 아래 가족같이 챙겨주는 선후배들, 그리고 ‘뉴스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라는 하나의 목표였습니다. 이러한 공통감을 느끼게 한 교류 프로그램의 지속을 위해 3년 차 기자가 짧은 감상을 남깁니다.MBC 김준형
    2024-06-27
  • 협회, 전회원사, 회원대상 장마, 폭염 앞두고 안전하고 건강한 취재 요청때 이른 폭염, 장마 시작되는데 안전장비는 미비하고, 무리한 오디오맨 감축에 취재안전 빨간불폭염이 여느 해보다 빨리 찾아오고 일부 지역에서는 장마가 시작되면서 영상기자들의 안전에 빨간등이 켜졌다. 일부 지역에는 안전 장비가 부족하고, 현장 촬영을 보조해 줄 오디오맨도 크게 줄어들어 기자들의 안전이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이른 열대야…지역방송사, 재난재해 취재하는 영상기자용 ‘안전모’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기상청은 지난 21일 밤 서울 최저 기온이 열대야 기준인 25도를 넘어 올해 첫 열대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기상청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이르게 나타난 열대야로, 지난해에는 6월 28일 첫 열대야가 발생했다. 6월 폭염 일수도 2.4일로, 최악의 더위로 기록된 2018년의 1.5일을 넘어섰다. 기상청은 한여름인 7~8월에는 지금보다 더 강한 더위가 찾아올 것으로 전망했다.제주도에 이어 남부 지방에는 벌써 장마가 시작됐다. 서울과 수도권도 7월 초 장마가 시작되면 전국적으로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와 함께 이후 찾아올 폭염에 따른 피해도 예상되면서 방송사들은 여름철 일상화된 재난재해에 대비해 취재 보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 한 방송사의 A 영상기자는 “회사에서 작년부터 폭염에 대비해 식용 소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그 외에 폭염 대비는 개인이 알아서 하고 있다”고 전했다.하지만 기자들의 안전을 책임질 장비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MBC의 B 기자는 “언제부턴가 사고 현장이나 위험한 곳을 갈 때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하게 해야 한다고 해서 취재기자들은 안전모를 쓰고 나간다.”며 “그런데 취재기자와 함께 위험한 현장에 나가 촬영을 담당하는 영상기자들은 안전모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 기자는 “화면에 나오는 취재기자에게만 안전모를 지급하는 것이 ‘보여주기식’이 아니라면, 당연히 영상기자에게도 안전모를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오디오맨 감축 따른 재난재해 취재시 안전우려...집중호우 혼자 취재하던 영상기자 큰 부상 입기도취재안전을 위한 장비 마련・보급 문제와 더불어, 영상기자들이 무엇보다 더 크게 우려하는 건 현장 취재보조 인력인 오디오맨의 감축 문제이다. 지역 방송사들은 현장 취재보조 인력인 오디오맨의 감축으로 인해 재난재해취재에 있어 심각한 어려움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재난재해 상황의 라이브중계가 현장 영상기자들의 업무로 이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디오맨 없는 영상취재는 영상기자들에게 잠재적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지역의 C 영상기자는 “장마철에 현장에서 라이브중계에 초점을 둔 취재를 하다보면 돌발상황에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며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현장 속으로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서로 호흡을 맞춰 위험한 부분을 알려주는 영상기자의 또 다른 ‘눈’ 역할을 하는 오디오맨 없이 재난 현장에 나가라는 것은 목숨 걸고 현장에 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지역의 영상기자 D는 “태풍이나 집중호우같은 재난 상황은 오디오맨이 있어도 영상기자가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며 “뷰파인더를 보며 촬영에 집중하다 보면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걸 봐주고 위험 신호를 알려주는 오디오맨들이 없다면 사고 위험은 굉장히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실제로 지난해 전북 지역 집중호우 당시 KBS전주의 영상기자가 오디오맨 없이 혼자 취재하는 과정에서 산사태로 쓰러지는 나무가 그대로 덮쳐 안면근육이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KBS기자들, 오디오맨 감축 국가재난방송주관 방송사 역할 위축 우려KBS의 오디오맨 감축 문제는 영상기자의 안전과 함께 국가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KBS의 역할과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KBS의 오디오맨 인력 50% 감축 방침은 내부의 심각한 우려와 비판에도 현실화하고 있어 오디오맨들의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다.KBS대구는 본사 예산으로 계약한 파견직 5명, 부서 자체 예산으로 고용한 아르바이트 2명 등 모두 7명의 보조 인력을 운용했지만 파견직 3명이 줄어 현재 4명만 남았다. 부서 자체 예산으로 고용한 아르바이트도 내년 예산 상황에 따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KBS청주는 영상기자 6명에 현재 3명의 오디오맨이 근무하고 있다. 영상기자 2명에 오디오맨 1명 비율로 다른 곳에 비해 열악한 환경인데, 7월에 또 한 명의 오디오맨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 1명은 9월, 마지막 한 명은 12월에 계약이 종료된다. 회사쪽은 오디오맨의 인력 문제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어떤 대책도 언급한 적이 없다. KBS청주는 지난해 오송 참사 취재를 담당한 지역이기도 하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관련기사 3면 계속 ☞)( ☞ 1면에서 이어짐 )영상보도가이드라인, 재난재해 취재시 영상기자 자신과 동료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도록 권고KBS제주와 KBS창원 촬영보조 인력 50% 감축이 이미 현실화돼 4명이던 보조 인력이 지난 3월과 4월부터 두 명으로 줄었다. KBS울산에는 오디오맨 3명이 일하고 있는데, 1명이 올해 12월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고, KBS전주는 파견 근로 4명 중 1명이 재계약을 하지 못했고, 하반기에도 한 명이 줄어 2명이 될 예정이다. KBS부산은 6명의 촬영 보조가 4월에 2명, 5월에 1명, 6월에 2명이 계약 만료되어 7월부터는 1명만 남게 될 상황이다. 포항은 지난 3월 촬영보조 계약이 모두 종료됐고 안동은 7월 계약이 모두 종료된다. KBS의 E기자는 “오전에 5~6개의 아이템이 몰리면 오디오맨이 부족해 취재를 나갈 수 없어 어떻게든 오후로 나눠서 오디오맨들이 쉴 틈 없이 취재를 나가고 있다”며 “곧 집중호우와 태풍 같은 재난 상황이 올 텐데 그땐 어떻게 취재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역 KBS의 영상기자들은 보조 인력 50% 감축안이 공개된 지난 3월 일제히 비판 성명을 낸 바 있다. 당시 강원 영동・영서, 부산, 울산, 대전, 대구, 전주, 제주, 창원, 청주 지역의 기자들은 태풍, 산불, 집중호우, 폭설, 폭염 등의 현장을 취재하는 영상기자의 또 다른 눈과 손발 역할을 해 온 촬영 보조 인력을 줄이는 것은 “영상기자의 목숨과 안전을 빼앗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보도에 있어 필수 인력을 감축하게 되면 뉴스 제작 차질, 라이브 방송사고 등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보도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협회, 전 회원사・데스크・회원에 재난 재해시 영상기자의 안전과 건강 위한 노력 당부하는 협조 공문 보내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24일 각 회원사의 데스크들에게 영상기자를 비롯한 취재진의 집중호우, 장마 등의 자연재해와 무더위로 인한 건강과 안전상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하는 협조공문을 보냈다. 또, 같은 내용으로 전회원에게 공지문자를 발송했다. 나준영 회장은 “전지구적인 기후 위기로 인해 재난재해가 일상화된 지금, 재난재해 현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영상기자들에게 이 상황을 빠르고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기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런 사명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영상기자와 현장 취재진의 안전과 건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방송사 내부의 시스템과 지원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고, 영상기자 스스로도 이런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고 대비할 수 있는 노력과 회사와 데스크에 대한 요구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회장은 이어 “영상보도가이드라인 1장의 6조는 ‘영상기자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안전,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와 상급자에게 이를 위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방송사와 데스크는 영상기자의 안전과 인격을 보호 할 최선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면서 “협회는 각 회원사와 데스크들이 취재진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문제점을 모니터해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회원 스스로의 관심과 노력을 위한 교육과 홍보 작업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