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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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줌인) 가짜 뉴스·악마의 편집을 대하는 방법
    가짜 뉴스·악마의 편집을 대하는 방법 국정농단에 이은 탄핵과 조기 대선과정에서 대한민국은 ‘가짜 뉴스(fake news)’라는 거대한 괴물의 실체를 만났다. 언론사의 기사로 착각할 형식을 갖추고, 조작된 내용을 온라인과 신문형태 유인물로 살포하면서 구석구석 퍼트렸다.  게다가 확산속도 또한 API가 트위터 10만 건을 분석한 결과 가짜 뉴스들은 이를 바로잡는 뉴스보다 8배나 빨랐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가짜 뉴스가 실제 기사의 1% 정도 유포된다고 가정했을 때 경제적 비용은 연간 약 30조 900억 원이 발생하는 것으로 현대경제연구원은 추정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형태의 가짜 뉴스는 기존언론사의 왜곡, 과장 보도로 볼 수 있다. 언론진흥재단이 3월 발표한 〈일반 국민의 ‘가짜 뉴스’에 대한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0.1%가 왜곡, 과장 보도를 가짜 뉴스로 인식하고 있다. 또, 뉴스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협하는 왜곡, 과장 보도의 예로 ‘악마의 편집’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목받아왔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명명된 ‘악마의 편집’은 제작진의 의도에 맞춰 영상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의견 자막의 빈번한 사용, 논점과 관련 없는 특별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등 현상을 제멋대로 바꿀 수 있다. 이런 편집은 뉴스 영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제작방법이지만, 과거 ‘돌발영상’을 비롯한 시사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크고 작은 논란은 있었지만, 표현의 자유를 살리고,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하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시간·공간·장소를 이동과 변화에 따라 편집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 대과거, 장소와 공간, 화면을 의도적으로 연결하고, 시간을 뒤섞으면서 시청자에게 알린다면, 기자의 의도대로 새로운 창작물이 만들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영화이론인 몽타주 이론으로 대변되는 에이젠 슈타인의 충돌식 편집을 의도적으로 사용할 경우, 새로운 뉴스 창작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악마의 편집과 가짜 뉴스가 되지 않는 방법은,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öffentlichkeit)과 같은 곳에서 진실과 대결해 이기는 방법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아직은 8배나 빠르고 손실비용도 막대하지만, 현명한 시청자들은 쏟아지는 ‘뉴스 광장’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보고, 존 밀턴의 말처럼 '거짓과 진실이 서로 맞부딪쳐' 방송뉴스의 신뢰는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기자들이 가짜뉴스 검증에 더욱 노력하면, 진실의 속도는 지금보다 빨라져 손실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악의적 편집과 확대 재생산을 두려워해서 법정 생방송을 불허할 필요도 없고, 방송 뉴스의 취재를 불허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 청와대에서 출입 기자의 영상취재를 거부하고, 전속취재에 의존할 이유가 없어지며,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집어삼킨다는 불필요한 경계를 확대할 필요도 없고, 정권이 바뀐 이후 방송사 사장을 물러나게 하려는 방송장악 문건을 만들 필요도 없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카메라 기자에 대한 블랙리스트도 애써 만들어 욕보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에게 어떤 자유들보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1644년 ‘아레오파지티카’에서 말한 존 밀턴의 외침은 2017년 대한민국에도 유효하다.
    2017-11-02
  • 취재현장 포토라인 개선방안 세미나 열려
    취재현장 포토라인 개선방안 세미나 열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한원상)가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민병욱)이 후원한 ‘취재현장 포토라인 개선방안’ 세미나가 지난 13일 오후 6시 스텐포드 호텔(상암동)에서 개최되었다. 포토라인은 지난 1994년에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취재질서를 지키고 취재원의 인권보호를 위해 포토라인 규정을 선포하고 언론매체의 증가와 경쟁으로 인해 2006년 8월 31일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포토라인 시행준칙의 내용을 개정했다. 그 후 11년이 지난 현재 포토라인 규정의 재제 강화와 세부 준칙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포토라인 개선방안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번 세미나는 포토라인의 취재 환경과 초상권에 대한 문제, 포토라인 준칙 강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방송사, 신문사, 언론중재위원회, 학계 등의 전문가가 참여해 취재 현장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김동규 건국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첫 발제자로 나선 MBC 나준영 차장이 ‘영상취재현장의 변화와 포토라인’을 주제로 취재현장에서 일어나는 포트라인 문제점을 제기하고,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인제대 김창룡 교수가 ‘포토라인과 초상권의 대립에 관한 연구’ 주제로 발표했다. 또한,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변호사가 ‘포토라인의 진화와 초상권 동의’를 주제로 발제하고 김종완 YTN 차장이 ‘취재공간과 포토라인의 공적 기능’을 주제 마지막 발제자로 나와 발표했다. 이어서 국민일보 이병주 차장과 SBS 홍종수 기자, OBS 조성진 기자, MBN 이우진 기자 등이 토론자로 나와 발제자 발표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 날 세미나에서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주제 발제를 통해 “포토라인에 대한 규정은 법적 근거가 없지만, 공공성과 공익성이 인정되고 있는 만큼 언론사 차원에서 질서유지를 위해, 취재협조를 위해 세분화, 명문화 시킬 필요가 있다”며 “동행 의무가 없는 제3자는 포토라인에 서지 못하도록 하든가, 서겠다고 고집할 경우 초상권 보호의 의무를 질 수 없다는 점을 미리 고지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완 YTN 차장은 포토라인 취재 위반 시의 제재 방안으로 “협회에 소속된 회원의 경우 협회에서 징계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며 “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비회원사 기자, 회원사나 비회원인 기자의 경우, 징계절차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회원사와 민간 위원을 포함한 ‘영상취재 윤리위원회(가칭)’의 신설과 함께 포토라인, 취재윤리 위반자 및 위반 언론사, 단체에 대해 규제를 할 수 있는 신설기구를 제안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정남 기자
    2017-11-02
  • 포토라인 시행준칙 10년, 포토라인의 현장정착은 성공, 협회의 준칙 세부조항에 대한 실...
    포토라인 시행준칙 10년, 포토라인의 현장정착은 성공, 협회의 준칙 세부조항에 대한 실행은 의문 한국사회에서 취재의 물리적 통제선인 ‘포토라인(PHOTO LINE)’은, 다른 나라와 달리, 취재진 간의 사전합의, 취재진과 취재원 간의 사전협의를 통해 설치 운영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포토라인’은 언론이 추구하는 알권리와 취재원의 인권이 동시에 구현될 수 있도록 취재현장에 설치되는 ‘자율적 질서 유지선’ 이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급증한 언론매체들의 취재경쟁으로 취재진과 취재원간의 충돌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를 예방하고 원활한 취재를 진행하기 위해 1994년 12월 22일, 한국카메라기자회와 한국사진기자회는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을 합의하고 발표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IT혁명과 함께, 뉴스의 생산, 유통, 소비의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더욱 많아진 다매체 환경으로부터 새로운 매체들이 포토라인현장에 정착하고 취재원의 인권 보호를 강화하는 취재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가 함께 제정해서 선포한 2006년 8월 31일 <포토라인 시행준칙>이다. 올해로 시행 11년째를 맞는 <포토라인 시행준칙>은 언론활동의 당사자들이 공권력이나 사적 권력의 일방적인 통제를 받지 않고, 취재자유와 인권보호를 구현하기 위한 자율적 질서 유지선을 만들고 시행해, 일선 현장에 안착시켰다는 것이 큰 의의를 가진다. 2006년 <포토라인 시행준칙>이 제정되어 시행되면서 심각했던 신구매체간의 불필요한 취재경쟁이 줄어들고 포토라인과 풀취재에 있어서 합리적 취재질서가 형성되어 갔다. <포토라인 시행준칙>의 제정과 동시에 각 협회는 소속 회원들에게 준칙의 홍보와 내용 숙지를 위한 핸드북을 제작, 배포하고 회원세미나와 같은 교육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준칙의 2장 3조에 규정된 프레스카드의 제작과 배포가 이루어지고 취재현장에서 협회회원들이 포토라인 설치에 대한 운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했다. -협회의 홍보, 세미나 활동 활발했으나, 타 협회와 꾸준한 연대, 교육활동은 미흡 카메라기자 협회는 다른 협회와 달리 홍보와 교육활동에 꾸준히 힘써 왔다. 지난 10년간 ‘준칙’의 운영과 문제점을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해 세 번의 ‘포토라인’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 내용은 협회신문에 게재되었고, 발제문은 홈페이지의 자료실에 첨부되어 협회원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되었다. 또한, 2014년 세월호 참사보도에 반성하는 언론인들이 만든 <재난보도준칙>의 제정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포토라인 운영의 성과를 바탕으로 재난보도 상황에서 언론의 윤리를 지키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 차례의 세미나를 통해서 드러난 현장의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공식적인 노력, 이를 위한 다른 협회와의 교류, 지방사 회원들이나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준칙’ 관련 세미나와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협회차원의 포토라인 시행 결과에 대한 모니터와 조정 작업 필요 ‘준칙’의 2조 1항은 ‘포토라인의 운영이 결정되면 협회별로 그 안을 회원과 취재원에게 통보하고 협회홈페이지를 통해 공고’해야 한다. ‘2항’은 회원사 이외의 포토라인 참가자에 대해서는 각 협회의 사무국에서 취재 참가를 접수받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포토라인의 시행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협회 홈페이지의 사전공고는 전무했다. 이것은 협회가 ‘준칙’의 규정대로라면, 시행주체로서 취재현장에 대한 사전 체크와 관리, 모니터를 해야 하지만 실행의 모든 기능을 일선 취재현장에 모두 위임해 버리고 손 놓고 있는 현실을 보여 준다. 매일 생겨나는 수많은 포토라인들을 협회가 전부 관리한다는 것은 현재의 협회 상근 인력의 상황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있었던 대형 사건사고현장의 포토라인만큼은 협회차원에서 관리, 모니터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협회가 회원들에 대한 영향력과 조정능력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문제를 가져 올 수 있다. 협회가 ‘준칙’ 시행의 실질적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편채널의 출범이후 ‘준칙’의 규정들을 근거로 종편사들이 카메라기자협회의 ‘포토라인’ 참가를 문의해온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협회에 대한 외부의 이런 시각을 제대로 인식하고 ‘준칙’ 제정, 시행의 주체로서 카메라기자협회의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준영 / MBC
    2017-11-02
  • 취재환경 변화에 맞춘 포토라인
    취재환경 변화에 맞춘 ‘포토라인’, ‘풀취재’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준칙’을 넘어선 협회, 방송사의 취재가이드라인으로 발전해야. 영상취재질서의 확립을 영상취재조직의 변화필요. 2014년 세월호와 연관된 구원파의 관계자로 유명탤런트 A씨가 검찰조사를 위해 인천지검에 소환됐다.  A씨와 동행한 B씨와 C씨는 포토라인에서 취재하던 영상기자들에게 촬영되어 뉴스에 자신들의 얼굴이 그대로 방송되는 바람에, 초상권 및 사생활비밀의 침해, 명예훼손이 일어났다는 취지로 KBS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 8월18일 2심 재판부는 2006년 만들어진 <포토라인 시행준칙> ‘제1장 제1, 제3조를 근거로 “‘포토라인’은 유명인사에 대한 취재가 과열 경쟁 양상으로 번짐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설정하는 일종의 취재 경계선으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거나 중요한 뉴스가 되는 장소에 설치되어 촬영이 예정되어 있는 공개적인 장소이다.” 라는 법리해석을 내렸다. 그리고 “원고들이 피고에 의해 촬영․공표되는 것을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보는 이상 원고들의  사생활의 비밀 및 초상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생활의 비밀 및 초상권이 침해되었음을 전제로 한 원고들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고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포토라인’을 취재현장에 안착시키기 위해 지난 30년간 노력해온 영상기자들의 노력이 취재문화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상식적이고, 법리적인 합리성을 갖는 제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우리가 새롭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은 2006년의 준칙이 현시점과 미래의 취재현장에서 생겨날 인권침해의 문제를 예방하는 데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포문>, <준칙>의 내용들은 ‘과열된 취재현장의 질서를 바로 잡으면 자연히 취재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취재자 위주, 취재중심의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A씨 동행인들의 민사소송’에서 보듯, 이제 취재현장, 포토라인의 현장에서 만나는 취재원들은 영상기자들이 인식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포토라인을 바라보고 미디어에 의한 인권침해를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006년 준칙제정 주체⋅ 인권, 시청자단체가 참여하는 <준칙>개정 필요 시민들의 인권의식의 변화를 취재현장에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2006년에 만들어진 ‘준칙’의 개정작업이 필요하다. 새로운 준칙은 영상기자들만의 입장이 아닌 일반시민의 입장에서 언론에 의한 인권침해를 바라보는 시각, 뉴스시청자로서의 시각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2006년의 준칙제정의 세 협회와 인권단체, 시청자 단체가 참여하는  <영상기자 취재보도준칙(가칭)>의 제정이 필요하다. -영상기자부서의 해체, 포토라인- 풀취재 종합관리 부실화 ‘시행준칙’을 위반 할 경우, 협회가 회원들에게 직접 부과할 수 있는 제재와 벌칙조항이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잘 정착된 데는 각 사 영상기자조직의 역할이 컸다. 뉴스 전반의 영상취재계획을 짜고, 취재지시와 인력배치를 담당하는 방송사의 영상기자조직은 타사 데스크와의 밀접한 교류, 협의채널을 작동시켜 왔다. 그래서, 특정 방송사의 영상기자가 포토라인이나 풀취재의 질서를 무너뜨릴 경우, 피해를 입은 방송사 들은 협의채널을 가동시켜 위반자와 그 방송사를 모든 출입처와 취재현장의 포토라인과 풀취재에서 일정기간 참여배제 시키는 공동 제재방안을 수시로 시행해왔다. 또한, 보도국 내부에서 부서별로 취재의뢰 되는 취재이슈들이 중복되지 않도록 사전에 조정하는 기능을 갖고 취재현장의 과열을 1차적으로 정리해왔다. 하지만, 2012년 MBC에서는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170일 파업이 끝나자 파업보복의 차원에서 영상기자조직을 해체해 버리고, 소속 기자들을 보도국내 일반취재부서로 분산배치 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보도영상조직의 해체로 타사와의 협의, 교류 채널이 무너지고, 사내 조정기능이 상실된 것이 빨리 복원되지 않으면, 취재현장의 과열경쟁을 막을 시스템들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나준영 / MBC
    2017-11-02
  • TV 뉴스 수중촬영 교육 속초에서 열려
    TV 뉴스 수중촬영 교육 속초에서 열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한원상)는 한국언론재단과 지난 11일부터 16일까지 TV뉴스 수중촬영을  속초 스쿠버센터에서 개최했다. 이번 수중촬영 교육은 영화 ‘숨비’의 촬영감독인 김원국 강사(스쿠버라이프 대표)가 전체 교육을 주관하고  오픈워터와 스페셜티(SSI 포토&비디오)과정으로 나눠 진행됐다. 전국 방송사에서 선발된 이번 교육 참가자들은 수중촬영에 관심도 높아 열정적으로 교육에 임했으며  만족도가 높았다. 첫날 강의는 간단 한 레벨테스트와 보트다이빙으로 체력안배를 했다. 오픈워터 교육은 남영주 강사와  SBS 이병주 차장이 교육을 맡았다. 둘째 날 강의는 수중 촬영 교육에 집중했다. 수중촬영은 스쿠버다이빙 실력에 따라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같은 조건이라도 구도와 노출 등의 카메라 기능을 효과적으로 조작해야 하기 위해선  많은 촬영을 해야 한다. 김원국 강사는 수중촬영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즉석에서 수중촬영사진대회를 개최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셋째 날 교육은 오픈워터 과정의 교육생과 함께 보트 다이빙을 실시했다. 회원 강사들(SBS 이병주, MBC 구본원, G1 홍성백)이 보좌를 하며 중성부력 훈련과 제한 수역에서 받은  교육을 반복했다. 스페셜티 과정의 교육생들은 수중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유지하기 위한 교육과 촬영 포인트를 이동하며 실습했다. 수중촬영은 많은 비용과 장비,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영상취재이다. 이번 교육에 참가한 KBS 윤대민 기자는 “수중촬영 교육을 통해 스쿠버 다이빙 기술을 높이고 시급히 UHD 장비를 도입하여 반복 숙달을 통한 자유로운 취재 및 촬영을 준비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밝혔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지속적인 수중촬영 교육을 진행해 카메라기자들이 전문성을 갖고 영상취재에 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한다.
    2017-09-19
  •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있어서 원자폭탄의 정치·군사적 함의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있어서 원자폭탄의 정치·군사적 함의 오는 8월 15일은 72번째 맞이하는 광복절이다. 최근 북한의 핵무기 실험과 미사일 발사 문제로 동북아 정치가 요동을 치고 있다. 특히 핵무기 문제는 매우 난감한 정치·군사적 사안이기 때문에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있어서 미국이 1945년 8월 6일과 9일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핵무기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정치·군사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당시 피해를 입은 한국인의 과거사 문제이자 현재진행형 문제이다. 먼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는 군사적 이유에 있다. 1939년 유대계 천재 물리학자인 앨버트 아인슈타인 박사가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독일의 원폭개발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이에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비밀리에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s)라는 이름 아래 당시 금액으로 약2억 달러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우라늄과 플루토늄 폭탄 제조에 나섰다.  전쟁 막바지인 1945년 7월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 기지에서 플루토늄탄 실험에 성공했다.  이 실험에서는 원폭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할 수 없었다. 일단 자체실험에 성공한 결과물을 사용하여 그 효과를 분석해야만 향후 핵무기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실제로 일본 패망 직후인 1945년 9월 ‘미국전략폭격조사단’(USSBS)이 서둘러서 일본에 도착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과 공습의 효과를 자세히 조사한 방대한 자료가 미국 국립공문서관에 남아있다. 미국이 서둘러 조사단을 파견한 이유는 당시 소련이 원폭효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 먼저 조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직까지도 일부 일본인 중에는 두 도시에 대한 원폭투하가 소위 ‘실험용’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둘째, 전후 소련과의 정치·외교적 주도권 경쟁과 관련되어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소련은 미국과 연합하여 주축국인 일본·독일·이탈리아와 싸웠다.  연합국은 1945년 2월 소련 남부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회담을 가졌다. 얄타회담에서 소련은 독일이 항복한 후 3개월 이내에 일본을 공격하기로 미국과 비밀 합의가 이루어졌다. 5월 초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자, 3개월 뒤인 8월에 소련군이 일본을 침공하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7월에 원폭실험에 성공하자 마음이 돌변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소련이 일본을 점령할 경우 전후 아시아 정치 이슈에서 소련이 지분을 요구할 것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미국은 원폭이라는 가공할 무기 사용을 통해 일본의 조속한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소련이 일본을 침공할 명분을 사전에 제거하여 전후 아시아 이슈에서 미국이 주도할 필요성이 있었다. 원자폭탄 사용을 승인한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미국이 일본 본토를 점령할 경우 수많은 미군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원폭투하를 정당화했다.  현재까지도 미국 일각에서 원폭을 투하함으로써 미군 사상자를 줄이고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켰다는 주장을 펴는데 일부는 ‘팩트’고 일부는 ‘신화’다. 원폭투하 결정 이전에 이미 ‘올림픽작전’(Operation Olympic)으로 불리는 일본 규슈 침공이 11월에 예정되어 있었고, 이듬 해 봄 관동지방 점령을 위한 ‘코로넷작전’(Operation Coronet)이 이미 계획된 상태였다. 그래서 이 작전들이 시행되기 전에 전쟁이 종료됨으로써 미군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원폭을 사용했다는 명분은 최소한 미국인들에게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본계인 미국의 러시아 전문 역사학자인 츠요시 하세가와(Tsuyoshi Hasegawa)의 연구에 의하면,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직접적인 이유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가 아닌 8월 9일에 시작된 소련군의 일본 침공이었다. 또한 미국이 원폭을 투하하지 않아도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상태가 아니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일본 국내 무선교신 도청을 통해 일본인의 저하된 사기와 태평양전선에서 붙잡힌 일본군 포로 심문을 통해 일본군의 상태에 대해 비교적으로 상세히 알고 있었다. 전쟁 중 미국은 추축국의 ‘무조건 항복’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일본 지도자들에게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명분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쟁말기에 일본 본토는 미 공군의 B-29 폭격기에 의한 재래식 폭탄과 소이탄으로 인해 거의 초토화되었고, 일본인의 전쟁의지가 거의 상실되어 전쟁지도부는 물밑에서 ‘종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민간인 사상자 수가 나날이 늘어가는 가운데서도 전쟁종결을 둘러싼 육‧해군 수뇌부의 의견 불일치와 육‧해군 대원수였던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 결정 지연 등이 원폭의 참화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은 1990년대 천황의 전쟁책임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이후 일본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소상히 밝혀져 있다. 미국의 원폭을 둘러싸고 현재까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나가사키에 투하된 플루토늄탄은 로스앨러모 기지에서 실험에 성공하였으나,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탄은 외부에서 실험을 거치지 않고 실전에 바로 사용된 것이다. 둘째, 나치 독일의 비밀국가경찰(게슈타포) 총수이자 원폭제조 프로젝트 책임자였던 하인리히 뮐러(Heinrich Müller)가 전후 스위스 베른에서 있은 미국 정보기관 요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두 개의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었다”(we had one or two)고 주장했다. 뮐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폭탄은 최소한 독일이 패망한 1945년 5월 초 이전에 완성된 것이다. 그 후 미군이 독일을 점령했을 때 이 폭탄을 입수했을까. 만약 입수했다면 8월 6일 히로시마에 사용된 것일까. 원폭투하를 명령한 트루먼 같은 정치인은 ‘신화’를 만들고 역사가는 정치인이 만든 ‘신화’를 깨는 역할을 한다. 우라늄탄 문제는 아직도 ‘신화’의 영역으로 남아있어 향후 역사가의 연구에 맡길 따름이다. 어쨌든 우라늄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에는 조선인으로서 강제 동원되어 군수공장이나 노역에 시달린 사람들이 있었다. 원폭이 투하된 8월 6일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거나 방사능에 피폭되고 말았다.  생존자 일부는 광복 직후 한국에 돌아왔는데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과 전국 각지에서 아직까지도 영문 모를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피폭자 1세대는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왔지만 2, 3세대는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당해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아직도 자신의 불치병이 외부로 알려지면 결혼과 취업에 장애가 될까 염려하여 공개적으로 외부에 알리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다.  정치인들은 이들이 소수자라 표밭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럴지 모르지만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원폭 피해자 후손 문제는 비단 일본의 과거사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과거사 문제이기도 하다. 72돌 광복절을 앞두고 소수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장회식 뉴욕주립대학교 박사 역사학자‧국제정치학자
    2017-08-29
  • 드론의 구체적인 제도화가 필요하다
    드론의 구체적인 제도화가 필요하다  드론과 관련된 법규와 제도는 자동차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던 19세기 당시 영국의 시가지에는 마차가 즐비했는데, 이들과의 충돌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에는 3명의 운전수를 태우고 이 중 한 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전방 55m 앞에서 자동차가 오고 있다고 소리치거나, 후방 55m에서 자동차가 지나갔다고 붉은 깃발을 흔드는 일을 맡아야 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자동차 법안인 ‘적기조례(Red Flag Act)’이다.  이 법안은 차량의 중량과 속도 및 운행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였는데, 이로 인해 영국의 기업들은 자동차 산업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떼게 되었고 당시 경쟁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에 비해 오히려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한참 뒤떨어지게 되는 불행한 결과를 낳게 하였다.  이처럼 강력한 규제가 새로운 산업의 성장을 해치는 과오를 범하지 않으면서, 신 성장 동력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드론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그에 따른 사회문제(비행사고와 사생활 침해)를 보완할 수 있도록  드론과 관련된 국내 제도의 구체화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은 그동안 관련된 법 규정이 없는데도 규제 완화정책을 시행하면서 드론 산업을 획기적으로 성장시켰다. 그런데 최근 드론의 성지라 불리는 중국이 드론 안전 규정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드론 사용이 급증하면서  안전사고, 사생활 침해 등 많은 위험요소들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일부터 중국 민항국은 기체 무게 250g이상에 대해 드론 소유주 실명 등록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중국에서 드론을 띄우려면 온라인을 통해 보유 기기를 등록해야 한다.  산업용은 물론 개인용 제품도 이에 해당한다.  사실상 소형 완구용 제품을 제외한 모든 드론은 자동차처럼 소유한 기체를 등록하고 신고해야 하는 것이다. 이어 영국에서도 지난 7월 22일부터 드론 사용자들은 온라인 혹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보유 기기를 등록해야하고 무인기 사용과 개인 정보 보호 등 드론 안전규정을 제대로 습득했는지 입증해야 한다.  이는 400g이상의 드론이 비행 중인 헬리콥터의 유리를... 2kg이상의 드론이 항공기의 유리를 파손시킬 수  있어 드론 사용자의 책임감을 높이고 사고를 막기 위한 규정 개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지난 2016년 6월에 교통부와 연방항공청등 총 26개 기관이 참여하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그간 몇 번의 회의와 수정안을 거쳐 '소형 무인항공기 규정(PART 107)'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비행 준비 단계부터 비행 후 사후 처리까지 드론 기체부터 조종사의 컨디션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면서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그 중 주목할 점은 드론 사용자가 소형무인항공기 원격조정 면허 조건을  충족시키고 이를 입증할 경우 소형 무인항공기 규정(PART 107)에서 설명한 대부분의 제한은 예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드론 관리 및 비행, 사고, 승인 등 비행에 대한 모든 책임은 주조종사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자동차 운전 중 모든 책임이 운전자에게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예외조항에 따라 미국 연방항공청은 만약 드론 사용자가 비행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음을 입증하면 대부분의 제한을 풀어 주는 절차도 만들었고  온라인을 통해 제한 완화 신청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드론을 적용할 수 있는 산업분야는 영상 촬영, 물품 배송, 산림 감시, 시설물 안전진단, 국토조사, 해안선 관리, 농업 살포, 재난인명구조 등 다양하다. 이 중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로 정보를 습득하는 영상 촬영 및  조사, 검사 등의 활용을 제외하고 화물을 실었을 때 최대 이륙중량 25kg을 쉽게 초과하고 원거리 비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이 드론 산업의 발전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고민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여전히 드론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위의 드론 관련 규정에 영상 촬영 분야는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하다.  그래서 방송사의 드론 운용은 이 산업의 바로미터가 될 수가 있다.  따라서 드론을 활용해 항공촬영을 하는 우리는 평소의 직접적인 사용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드론 제도가 보완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건강한 드론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설민환 / SBS 
    2017-08-29
  • 영화<택시운전사> 올해 첫 1000만 영화가 되었다.
    영화<택시운전사> 올해 첫 1000만 영화가 되었다. 그 해 광주를 기억하며 개봉 2주 만에 9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택시운전사>는 평일에도 약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첫 천만 영화가 되었다. 개봉 전 ‘택시운전사’의 흥행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영화는 가슴 아픈 현대사를 목격자의  눈으로 그려내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송강호와 유해진의 연기력과 위르겐힌츠페터 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의 사실적인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80년 5월에 나는 광주에 있었다. 곳곳에 무장한 군인들이 서있었고 공설 운동장에는 탱크와 장갑차도 보였다. 광주에 살던 이종사촌 형은 “북한의 무장공비가 광주에 침입해 사람들을 살육하고 다닌다.”고 했다.  “여자의 가슴을 도려내 나무에 걸어놓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인다.”고 했다. 주위 어른들은 그런 말을 하는 이종사촌형을 나무랐다. 어린마음에 사촌형과 나는 뒷산에 총알을 주우러 가기도 했다. 물론 총알이 있을 리 없었다. 그곳은 경기도 광주였기 때문이다. 그 광주와 그 광주가 다르다는 것을 몇 년이 흐른 나중에 알았다. 하지만 민심은 그곳이 어디든 흉흉했고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계엄이 선포된 지역의 시내에서 군인들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절규가 진실이었건만 어린 나의 눈에는 TV 속 광주 사람들이 폭도로 보였다. 고교시절에 역사속의 광주를 갔다. 그때만에도 올림픽을 방해하고 데모하는 형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시설이었다. 80년대 5월의 광주는 시내 전체가 광주민주화 운동의 진상 규명에 대해 시민들의 저항이 지속되고 있었고 당시의 사진이 거리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때 몰래 유통되고 있던... 그가 촬영한... 영상을 봤다. 바로 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촬영한 광주의 진실이었다. 어린 내게 충격적인 영상이었지만 한편으로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조금씩 사실과 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목격자를 십여년이 흘러 만나게 되었다. <택시운전사>영화에서도 나온 장면이지만 그가 송건호 언론상을 받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MBC 보도영상연구회에서는 카메라기자들과의 만남을 추진했고 카메라기자협회가 후원해 2003년 12월5일 MBC에서 간담회를 개최했다. 많은 이들은 80년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방송은 못했어도 최소한의 현장 기록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광주에 대한 기록은 계엄군의 총칼에 한국의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지 못했다.  광주MBC는 시민군에 의해 불바다가 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 후 2005년 5.18 재단의 초청으로 그 가 한국에 다시 왔다. MBC 나준영 기자의 공적요청을 곽재우 카메라기자협회장이 받아들여, 카메라기자들은 광주 민주화 운동 때의 빚을 갚는 의미로 그에게 카메라기자상 특별상을 시상했다. 그때가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25년이 지난 2005년 5월19일이었다. 위르겐힌츠페터 기자는 “한국의 카메라기자들에게 이런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영광이라는 그의 말에 한없이 작아졌다. 당시 참석했던 방송사 데스크들은 진실을 기록하지 못한 원죄와 방송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참회했다.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80년 5월 광주에서 촬영하던 자신의 모습이 담긴 시상식 현수막을 독일로 갖고 가고 싶어 할 만큼 한국의 카메라기자들이 주는 상에 의미를 두었다. 영화<택시운전사>로 다시 그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기록할 영상을 대신해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해서 져야 했던 한 파란 눈의 외국인이 기록한 역사를 보며 그날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있다.” 우리 카메라 기자들이 ‘518에 대한 원죄’를 한 번 더 반성하고, ‘역사의 기록자’로서 우리의 모습을 재정립하자던 어느 멋진 MBC의 X 등급 카메라기자 선배와 파란 눈의 목격자가 떠오른다. 이정남 기자
    2017-08-29
  • 영화 ‘택시운전사’ 모티브 된 故 위르겐 힌츠페터
    영화 ‘택시운전사’ 모티브 된 故 위르겐 힌츠페터 영화 ‘택시운전사’가 국내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아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이(송강호 분)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 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위르겐 힌츠페터 씨는 독일의 기자이자 언론인이다.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로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을 영상에 담아 언론 통제로 인해 대한민국 내에서는 보도될 수 없었던 광주의 참상을 외국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자신이 촬영한 필름을 큰 금속캔 속에 포장해 과자더미 속에 숨겨서 일본으로 반출한 뒤 독일 함부르크의 뉴스센터에 전달했다. 이 영상은 독일에서 수차례 방송됐고 외국의 다른 언론들도 이 영상을 받아 보도함으로써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2003년 5월 18일 힌츠페터 씨가 광주에서 찍은 영상이 KBS 1TV ‘일요스페셜-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 편에서 공개됐다. 2004년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일시적으로 생명이 위독했던 그는 사후 국립 5.18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밝혀 광주민주화운동 유족회 및 광주광역시 등 관련 단체들이 그의 명예시민증 부여와 안장을 추진했다.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는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회고록을 집필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지난 2005년 5월 19일 광주의 참상을 취재해서 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공로로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2005년 5월19일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한 위르겐 힌츠페터                                 사진:  이정남 기자 2016년 1월 25일 79세의 일기로 독일에서 삶을 마감하였으며 2016년 5월 16일 생전 그가 바란 대로 대한민국의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묘지에 안장됐다.
    2017-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