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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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도운 파울 슈나이스 목사
    1980년 <5⋅18 광주 민주항쟁>의 진상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린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사(ARD)의 도쿄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1월 사망). 힌츠페터에게 광주의 소식을 처음 알린 사람은 당시 일본에서 동아시아 선교사로 활동한 독일인 파울 슈나이스(Paul Schneiss) 목사였다.    파울 슈나이스 목사 / 사진= 한원상     필자는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 인권문제와 한국 민주화운동에 관여한 가와사키 재일한국인교회 이인하 목사(2008년 사망)의 소개로 슈나이스 목사를 알게 됐다. 슈나이스 목사가 2003년 7월 ‘기독자 민주동지회 70∼80년대 해외활동 기자회견’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을 때  만났고, 이후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을 하고 있다.   슈나이스 목사는 1958년 동아시아 선교사로 일본으로 파견돼 활동했다. 1970년대부터는 유신독재의 시작과 김대중 납치사건 등으로 정치 억압과 인권 탄압에 투쟁하는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KNCC)의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슈나이스 목사는 일본 여성과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당시 독일인은 비자 없이 한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어서 그는  한국내 민주화운동 인사들,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한국 민주화운동 인사들 사이에서 정보 전달자 역할을 했다. 또 그는 한국 교회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독일 교회와 세계 교회에 알리고 지원하는 일도 했다.   1970년대부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민주화운동은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원을 받았다. 독일,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일본의 교회도 한국교회의 인권운동을 지원했다.   2003년 7월, ‘기독자 민주동지회 70∼80년대 해외활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파울 슈나이스 목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 사진=한원상     이들은 ‘한국민주화기독자동지회’(이하 민주동지회)를 결성해 한국 민주화운동에 중점을 두고 해외 운동세력과 연대해 ‘게릴라’식을 전개해 운동했다. 이들은 일본과 미국의 국회, 행정부, 언론기관, 교회기관, 각 사회단체들에게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했다. 그리고 한국 민주화를 위한 협력을 요청하고 세계적으로 민주동지회를 확대해 나갔다.   일본에서는 1974년 1월에 민주화 투쟁에 나선 한국 기독인들을 후원하는 ‘한국문제 기독자 긴급회의’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슈나이스 목사도 이러한 조직에서 활동했다. 그는 국내외 네트워크를 이용해 한국에 들어와서 위장술을 써가며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자료를 일본에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일본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일본 주재 독일 특파원과 외국 특파원을 만나 정보를 제공하고 한국의 엄혹한 군사통치와 민주화 투쟁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일본을 거점으로 국제적인 연대운동에 힘써 왔다.   당시 일본의 시사월간지 세카이(世界). 사진=한원상     특히 슈나이스 목사는 당시 지명관 도쿄여자 대학 교수(훗날 한림대학 석좌교수 역임)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자료를 전달하고 지 교수의 집필을 돕기도 했다. 지 교수는 1970년대부터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의 시사월간지 세카이(世界)에 'TK생'이라는 필명으로 매월 한국정세와 민주화 투쟁을 알리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1972년 11월부터 1988년 3월까지)을 15년여 간 연재했다. TK생은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져 있다가 2003년 7월 그 정체가 지명관 교수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003년 7월, 지명관 전 한림대 교수가 일본의 시사월간지 세카이(世界)에 'TK생'이 자신이라고 필자에게 밝혔다. / 사진=한원상     필자는 2001년부터 국내와 일본을 오가면서 당시 TK생을 도왔던 사람들을 만나 취재했다. 2003년 7월 YTN에서 <TK생은 말한다>를 방송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TK생이 지명관 교수라는 것을 밝혔다.   지명관 교수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에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은 슈나이스 목사와 그의 가족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을 넘나들면서 성명서, 유인물, 재판 기록, 구속자 가족회 편지, 음성 녹음 등의 자료를 과자 상자와 몸속 등에 숨겨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슈나이스 목사는 한국의 정보 당국으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혀 추궁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국 정보 당국 요원들에게 “한국을 방문하기 싫지만 독일에서 자꾸 선교사로 가라고 해서 왔다” 고 변명했다.    한국 정보 당국은 그를 조사했지만 아무런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슈나이스 목사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한국을 방문했다. 그 과정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결국 한국 정부는 1978년 12월 그를 홍콩으로 강제 출국시키고 입국 금지시켰다.   그는 거기서 그만두지 않았다. 부인인 기요코 여사가 한국을 오가며 슈나이스 목사의 역할을 대신했다. 이후에는 자녀들까지 나서서 서울과 도쿄를 200회 이상 오가며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다.    파울 슈나이스 목사와 부인 기요코 여사 / 사진= 한원상   1980년 5월 광주 민주항쟁 당시, 서울에 있던 부인 기요코 여사가 직접 목격한 군부대 이동 소식을 일본에 있는 슈나이스 목사에게 전했고, 이 소식을 들은 슈나이스 목사는 당시 도쿄 특파원이던 독일 기자 힌츠페터에게 전했다. 한국 상황을 전해 들은 힌츠페터는 이후 광주를 직접 찾아 광주민주항쟁의 학살을 취재해 전 세계에 보도했다.   당시 <5⋅18 광주 민주항쟁>에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으나 국내 언론은 신군부의 언론 검열 강화 등의 조치로 자유롭게 보도할 수 없었다.   슈나이스 목사는 당시 독일 국영방송 도쿄 특파원이던 힌즈페터 기자를 광주로 파견해 한국의 군사정권의 만행을 생생하게 취재해 <5⋅18 광주 민주항쟁>을 보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5⋅18 광주 민주항쟁>은 1987년 6월 항쟁에 많은 영향을 미쳐 한국의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한원상 한원상 / YTN 
    2017-11-03
  •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추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추진 광주광역시 “지원 적극 검토”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한원상)는 1980년 당시 ‘5·18광주민주항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처음 알린  독일 제1공영방송 소속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1월 사망)의 기자정신을 기리기 위해 ‘힌츠페터 국제보도상’(가칭)을 추진하기로 했다.  2003년 12월, MBC영상연구회 초청으로 MBC를 방문한 위르겐 힌츠페터(가운데)와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왼쪽) /사진=한원상  본 협회 한원상 회장은 지난 9월 14일 광주광역시를 방문해 윤장현 시장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한 회장은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려 한국의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공헌한 힌츠페터 기자의 정신을 기릴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제정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9월 14일 한원상 회장이 광주광역시를 방문해서 윤장현 시장과 면담을 가졌다.  KBS광주 서재덕 부장(왼쪽), 광주MBC 김영범 부국장(오른쪽)이 참석했다. /사진=광주광역시 제공 한 회장은 “‘5·18광주민주항쟁’은 1987년 6월 항쟁에도 큰 영향을 미쳐 국내‧외에서 민주화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세계 도처에서 독재정권과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5·18광주민주항쟁’의 역사를 인식시킴으로써 이들이 민주화를 이루는데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영상의 힘은 펜보다 강하다”며 “자유‧민주‧평화를 위해 취재하다 사망하거나 민주화 확산에 기여한 기자를 수상자로 선정함으로써 ‘5·18광주민주항쟁’ 정신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외교 확대와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로 연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필요한 사업이라고 한 회장은 강조했다. 이에 윤장현 시장은 “‘5·18광주민주항쟁’의 역사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과 관련해 광주광역시가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본 협회는 지난 2005년 5월 19일 광주의 참상을 취재해 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공로로 힌츠페터 기자에게 특별상을 수여했었다. 
    2017-11-03
  • MBC노조 “부당한 ‘보도영상지침' 내렸다” 폭로
    세월호, 촛불시위 등 축소⋅왜곡...... “김장겸 사장 등 관련자 법적 대응 방침” MBC 보도국이 뉴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와 촛불 집회 등과 관련해서 ‘불공정한 보도영상지침'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여기에는 김장겸 현 MBC 사장이 관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MBC 노조 양동암 조합원이 불공정한 보도영상 지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정남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 노조)는 10월3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로비에서 ‘MBC 불공정 보도 영상 지침 및 영상편집 부문 부당노동행위 폭로’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사장이 보도국장 등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5공화국 시절 '보도지침'이 부활한 것처럼 '영상 편집 보도 지침'이 조직적으로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이 날 기자회견에서 MBC노조 양동암 조합원은 메일과 뉴스 영상 등의 증거를 제시하면서 ‘불공정한 보도영상지침’에  대해서 설명했다. MBC 노조가 폭로한 이메일 보도영상 지침                                                                                                                          사진: 이정남 기자 그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권 모 영상편집부장이 세월호 진실을 가리고 축소하거나 왜곡했다”며  권 부장이 부원들에게 영상편집지침을 담은 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당시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은 금지됐다. 오열하는 유가족의 얼굴을 내보내지 못하게 했고, 슬픈 음악을 넣는 것도 불허했다”고 폭로했다. 이 내용은 “김장겸 당시 보도국장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다”며 “당시 세월호의 침몰과 구조 상황 분석을 위한 중요한 자료인데도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의 휴대폰 영상은 MBC뉴스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권 부장이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장면은 ‘외부 영상’이다”며 “사용하지 말 것을 메일로 지시하는 등 부당한 보도 영상 지침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결국 뉴스데스크에 영상은 방송되지 못하고 집회 폭력성을 부각하는 영상이 리포트로 구성됐다”고 주장했다. 김민호 MBC 영상편집부 조합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탄핵 보도에서도 악의적인 영상 지침이 있었다”며 “촛불집회에 참석 인원이 많이 모인 영상은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태극기 집회는 참석 인원이 많이 보이게 영상을 편집한 경우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MBC노조는 “태극기 집회의 참여 인원이 촛불집회보다 많다”고 하는 MBC뉴스는 “이 같은 조작된 영상편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허유신 MBC노조 홍보국장은 기자회견 후 “예전에는 보도국 안에 영상부국장이 따로 있어서 뉴스 영상 편집은 영상편집부장이 영상부국장의 승인을 거쳐야 했다”며 “그런데 영상취재부를 해체하고 영상편집부를 보도국장 직속으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사실상 마음대로 편집하는 구조가 돼버렸다”고 밝혔다. MBC노조 김연국 본부장은 “'보도 영상 지침'과 관련해 김장겸 사장과 권 모 당시 영상편집부장 등 관련자를 업무방해와  노동조합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정남 기자
    2017-11-02
  • 지역 방송사, 지방자치단체 홍보영상 의존도 심각해
    지역 방송사, 지방자치단체 홍보영상 의존도 심각해 방송의 객관성⋅공정성에 부합한 지 검토 필요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도적 장치 마련 필요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영상보도윤리’지켜나갈 것 지역 방송사들이 인력난의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관공서에서 제공되는 홍보영상을 받아 뉴스에 방송되는 사례가 높아지고 있어 영상 저널리즘의 객관성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지역 방송사의 카메라 기자에 따르면 “매일 3~4 꼭지로 구성된 시⋅군 뉴스 리포트가 보도되고 있다”며“3~4 꼭지 중 그날 발생된 뉴스가 적어도 2~3개일 경우 최소 한 명의 카메라 기자가 오전과 오후를 할애해 커버해야 하는 분량을 인력 운용의 효율성이란 이유로 시⋅군에서 촬영한 영상을 제공받아 방송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제공된 영상은 질적인 면에서도 아마추어 수준의 영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지역을 조사한 결과 시⋅군에서 보내는 영상 가운데 1~2곳을 제외하고는 노출의 적정도, 오디오의 과다 수음, 인터뷰 샷의 불안정 등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상으로 편집되고 방송되어도 누구도 이것을 개선하지 않고 관행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 방송사 한 기자는“이러한 관행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히려 지역 방송사가 시⋅군의 홍보실 전속에게 촬영 협조를 요청해서 영상을 제공받는 경우가 많다”며“손쉬운 방법으로 뉴스를 제작하기 때문에 뉴스 영상의 질 문제는 개선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관공서에서 제공하는 영상은 당연히 본인들이 강조하고 싶거나 홍보하고 싶은 내용밖에 없다”며 “거기에 있는 부정적인 내용을 모두 빼면 그 내용의 영상 자체는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인력난에도 문제가 있지만 카메라 기자를 담당하는 영상취재 부서 조차도 시⋅군 뉴스까지 촬영 지원을 하지 않고 편리성에 만족을 하고 있어 레이지 저널리즘(Lazy journalism) 즉, 게으른 저널리즘 때문에 보도의 객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성공회대학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언론사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가 정말로 제대로 운영되는지를 꾸준히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인데 국민의 알 권리와 별개로 주관단체에서 자기들의 목적에 맞게 취재해서 제공한 홍보영상을 여과 없이 그것을 수용해서 방송하는 것은 기자로서 취재권이나 보도의 기본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라며“이것은 언론이 견제와 역할의 감시자가 아닌 지자체에 종속된 홍보매체가 다”고 비판했다. 언론사의 기자라면 기자의 시각에서 확인하고 영상을 취재하는 것이 기자의 역량이고 뉴스의 영상인데 언론사가 지자체의 유리한 정보나 홍보하고 싶은 내용만 방송하는 것은 완전히 언론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일본 TBS 보도국 영상취재부 타다마카토(多田誠) 기자는“일본의 방송사는 인력난의 이유로 기자가 취재현장에 가서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채, 지자체 또는 관공서의 홍보실에서 제공하는 화면을 사용하거나 전속에게 인터뷰를 취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며 “기자는 직접 취재현장에 가서 취재하는 것이 원칙이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 제공한 홍보영상물은 지자체의 목적에는 부합될지 몰라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거슬리거나 이익단체의 반대되는 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언론이 추구하는 것이 진실이고 법이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면 그들의 목적에 맞게 사실을 마치 진실이라고 한다면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홍보영상을 제공한 단체는 사실에 불과한데 언론을 통해서 방송되면 국민들은 진실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언론사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성공회대학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방송사들은 전부 허가제이다”며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재승인 심사를 할 때에 저널리즘의 원칙에 부합하였는지 아닌지 면밀히 검토해서 재승인을 해야 하는데 거의 대부분 문제가 있더라도 넘어가고 있다”며“문제가 있는 방송사를 찾아서 재승인을 거부하던지 아니면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최근에 수도권에 있는 방송사들도 관공서와 기업에서 제공하는 영상을 받아 방송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방송의 저널리즘 기능이 상실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언론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언론사를 조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안보를 지켜야 할 취재 제한 구역이 아닌 오픈된 취재 장소에서도 취재하지 않고 관공서의 홍보영상을 그대로 제공받아 방송하는 것이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부합한 지 면밀히 검토해서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기자의 권리와 운영 준칙, 영상보도의 객관성과 공정성 등을 담보할 수 있는 내용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검토해서 내년에‘영상보도윤리 가드라인’을 만들 예정이다. 이정남 기자
    2017-11-02
  • KBS·MBC 총파업, 경영진 사퇴와 공영방송 정상화 촉구
    KBS·MBC 총파업, 경영진 사퇴와 공영방송 정상화 촉구 방통위, 방문진 업무 검사 이어 ‘보궐이사’ 2명 선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난 26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보궐이사 2명을 선임하면서 ‘공영방송 개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MBC 본부는 지난 9월 4일부터 동시 총파업에 돌입했다. 30일로 57일째 파업이다. KBS 노조도 파업에 참여하여 경영진 사퇴와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진 상황이다. 그러나 양대 방송사의 사장들은 파업에도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노조를 압박했다. 두 공영방송이 정상적인 방송제작이 어려워지면서 비정상적인 편성이 이어졌다. 정부는 시청자 피해를 우려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되자, 사태해결을 위해 지난 9월 21일 사상 처음으로 방문진에 대한 업무 감독에 착수했다. 방통위는 지난 26일 비공개 회의를 열고 김경환 상지대 교수, 이진순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 2인을 방문진 보궐이사로 선임했다. 언론노조는 “MBC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기틀이 마련된 것으로 판단하고 이제 방문진의 과제는 명확하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이사회를 열어 MBC 파괴의 주범인 김장겸 사장을 해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방송장악'이라고 규정하고 국정감사 보이콧까지 선언하며 강력히 반발에 나섰다. KBS도 최근 고대영 사장의 ‘뇌물수수’ 의혹이 제기되면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 새노조)는 고대영 사장을 부정처사·국정원법 위반·방송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KBS새노조 등에 따르면 고 사장은 보도국장 시절이던 지난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보고 받고도 당시 KBS 담당 정보관 이모씨에게서 현금 200만원을 받고 해당 의혹을 기사화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러나 고 사장은 KBS를 통해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돈 받은 사실이 없고 기사 대가로 받은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2017-11-02
  • 낙하산이 없는 회사에 다니자
    “낙하산이 없는 회사에 다니자” 전 직장에 다닐 때 내가 항상 생각하던 말이다. 공직자들이 퇴진 후 노후수단으로 기관장으로 오거나, 여당 정치인이 자신들의 전리품인 마냥 공공기관장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지내면서 그들의 무소신과 무능력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기관장들 중에 소신이 있거나 자리에 걸 맞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긴 어려웠다. 소신과 전문성이 있는 분이 기관장으로 있는 곳에서 일해 보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소원이었다. 그런 면에서 KBS와 MBC는 내가 가고 싶은 회사였다. 내부 구성원 중에서 사장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탁월한 전문성이 필요로 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기에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은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  힘든 곳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구성원들의 역량이 뛰어나고 힘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기관장은 조직원들에게 선배이니 만큼 더욱 더 내부 구성원의 신망을 받을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다. 이에 내부 단합도 더욱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KBS 입사와 함께 산산이 깨졌다. 대선후보의 언론특보가 사장으로 오지 않나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과 편파보도로 문제된 사람이 사장이 되질 않나 내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구성원들의 신망 보다는 외부의 시선을 더 신경 쓴 사람이 많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은 자유가 없이 암울했다.  쉬운 인사권 남용은 언론인에게도 무서운 무기였다.  권력은 제 주머니속의 쌈짓돈인양 언론을 통제하려 했다.  권력은 언론을 장악하여 사실을 감싸고 은폐하려 했다. 지난 시절 동안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인 권력에 대한 감시와 약자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들어 있는 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 시작은 KBS 기자협회 제작거부로 시작했고 양대 노조의 파업으로 그 투쟁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지금 언론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모였다. KBS는 구성원들의 의지로 다시 세워질 것이다. 고형석 / KBS 
    2017-11-02
  • <영상기자 블랙리스트>, 김장겸을 정조준하다!
    <영상기자 블랙리스트>, 김장겸을 정조준하다! 긴박했던 영상기자 비상총회 지난 8월 7일 오후 6시30분 경영센터 2층 M라운지. 긴급 소집된 MBC 영상기자회 비상총회가 열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 많은 영상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권혁용 영상기자회장의 개회선언 후 회의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충격적인 보고였다. <영상기자 블랙리스트>의 내용은 보안 상 해당 개인에게만 짧은 시간 회람되었다.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분노는 깊었고 침묵은 무거웠다. 속개된 회의에서 문건의 출처 및 진위를 확인했고, 문건의 위법성과 사법처리에 대한 법적 자문이 이어졌다. 대응과 대책이 논의되었다. 이것이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의 국면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자, 그만큼 위험하고 힘겨운 싸움의 시작임도 알았다. 개개인의 신상발언과 의견이 있었다.  이어 이미 힘겨운 제작거부 투쟁 중인 <시사매거진 2580> 영상기자들의 호소도 있었다. 토론은 치열했고, 결론은 명쾌했다. 행동은 하나였다. “MBC 영상기자 전원은 제작거부를 결의한다! 보도국 차원의 대책을 논의할 보도국 기자총회를 요청한다! MBC에서 자행된 엄중한 인권탄압과 언론탄압의 책임자인 사장 김장겸과 논설실장 박용찬의 퇴진을 요구하며 이들에 대한 민, 형사상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MBC 영상기자는 김장겸, 박용찬이 퇴진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영상기자 블랙리스트>폭로는 김장겸 몰락의 시작이다 다음날 8월 8일. MBC 노동조합과 영상기자회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MBC 영상기자 블랙리스트>를 공개했다. 김장겸. 박용찬. 작성자 권지호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MBC 사측의 불법적인 인권침해와 노동탄압, 언론 탄압과 민주주의의 파괴행위에 대한민국은 경악했다. 2012년 파업에 앞장섰던 보도영상조직을 공중분해시켜 보복하고 잔인하게 탄압한 것이 밝혀졌다. 그것도 모자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영상기자들을 감시하고 배제시킨 증거가 나왔다.  방송의 사유화를 위해 뉴스제작시스템을 파괴하고 동료들을 탄압한 것이다. <MBC 영상기자 블랙리스트>가 드러나자 사측은 당황했다. 폭로 직후에는 이것이 ‘유령문건’이라며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심지어 ‘허위사실 유포시 모든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겁박했다. 하지만 제3노조 소속의 작성자가 밝혀지자 하루 만에 부랴부랴 입장을 바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며 우왕좌왕했다. 사내는 물론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8월 11일 보도국 총회에서 취재기자들의 제작거부가 결의되자 사측은 대체인력 투입을 위해 대규모 ‘취재-영상경력기자 채용공고’를 내며 저항했으나 이틀 만에 철회했다. 이후 <방문진 이사회 녹취록>을 통해 보도국 취재기자들에 대한 배제와 탄압의 음모가 밝혀졌고 아나운서 동료들의 절규를 통해 이러한 핍박이 전사적으로 모든 부문에 걸쳐 자행된 것임이 드러났다.<영상기자 블랙리스트>에 대한 분노는 편성, 콘텐츠, 뉴미디어, 라디오, 아나운서 부문으로 확산되어 제작거부 참여인원이 400명에 이르렀다. 김장겸 체제에 부역했던 핵심 보직부장들의 사퇴도 이어졌다.  절반 가까운 보직간부들이 동참했다. 노동조합과 함께 하겠다는 조합가입자도 서울지부 기준 1천2백50명을 돌파, 2012년 파업 당시인원보다 200명이 늘었다. 마침내 8월 29일 MBC 정상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총파업 투표는 93%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2012년 시작한 투쟁을 2017년에 끝장내자 지난 7월 21일. <PD수첩> 10명의 PD들이 시작한 외롭고 용감한 투쟁은 <시사매거진 2580>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블랙리스트를 통해 폭발했다. 그 뜨거움에 용기를 얻은 수많은 동료들이 제작거부에 동참하며 서로의 의지를 확인했다.  공정방송을 되찾겠다는 구성원들의 열망 앞에 폭압으로 지탱하던 김장겸 체제는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자신했던 그들의 철옹성은 한 줌의 모래성이었던 것이다. 지난 9월 4일, 우리는 지난 2012년 파업의 상처와 슬픔을 이겨내고 다시 파업에 돌입하였다. 이번 싸움은 승리의 싸움이다. 지난 5년간 영상기자들은 조직이 없어지고 푸줏간의 고깃덩어리로 취급받으며 모욕과 상처에도 굴복하지 않고 참아왔다.                                                                                                                                                                                                사진제공 :  MBC 노조 이제 그 기나긴 싸움을 끝내려 한다. 이번 파업은 2012년 시작된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종결짓는 싸움이다. 우리의 소중한 일터이자 국민들의 눈과 귀인 공영방송 MBC를 회복하는 투쟁이다. 2012년 시작된 영상기자들의 투쟁은 2017년 공정방송을 되찾고 MBC를 다시 세우는 그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경순 / MBC 
    2017-11-02
  • 지워진 영상기자, 가려진 진실
    지워진 영상기자, 가려진 진실 사측이 원하는 ‘카메라’라는 존재 2012년 8월 17일 김재철 사장은 보도영상부문을 갈기갈기 해체했다. 경영진은 끊임없이 영상기자 직군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들에게 우리는 어긋난 존재였다. 방송 제작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아니 필요 없는 직군으로 규정했다. 2013년 당시 김장겸 보도국장은 뉴스화면이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로 영상기자 네임슈퍼를 화면에서 지웠다. 누가 뉴스를 촬영하는지가 중요치 않다는 명확한 메시지였다. 영상기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무명인이 되었다. 끊임없이 모멸감을 주며, 짤리지 않고 월급을 받는 것만도 감사할 것을 강요했다. 2012년 부문이 폐지된 지 정확히 5년이 지난 어느 날, 경영진들은 아예 영상기자들의 생사여탈권마저 손에 쥐고자 대규모 영상기자 경력채용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경영진이 원하는 ‘카메라’라는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유령’ 같은 존재. 이름이 없다. 속해 있는 조직이 있어도 그곳에서 주변인이다. 왜 취재하는지 묻지 않고 촬영하는 기자. 찍으라는 대로 찍고 궁금해 하지 말고. 가능한 편집도 하지 말고. 묻지 않는 영상의 폐해는 심각했다. 세월호 관련 정부 규탄집회 리포트 편집과정에서 ‘박근혜OUT’ 같은 이름이나 사진, 피켓 화면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공공연히 이뤄졌다. 날씨 중계에서마저 세월호 관련 내부지침이 내려졌다. 광화문에서 날씨 중계가 있을 때마다 세월호 천막, 현수막이 화면에 보이지 않게 하라는 지시가 아침뉴스편집부를 통해 중계피디에게 전달됐다. 설치된 중계카메라를 억지로 틀어서 방송하는 일들이 뉴스 중계현장에서 버젓이 일어났다. 백남기 씨 사망사건 초기, MBC뉴스는 민중총궐기 관련 리포트를 연일 보도하면서 정작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현장 그림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야근자가 수소문한 끝에 영상을 확보했음에도, 장기간 핵심 영상을 의도적으로 누락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를 직업적 사명으로 갖고 있는 듯 한 여기자까지 등장했다. 8월 13일 방송된 시사매거진 2580 ‘전쟁위기설, 전망은?’ 아이템에서, 우리는 인터뷰이보다 화면에 더 많이 등장하는 기자를 볼 수 있었다.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기자의 질문 장면, 본인이 전문가인지 인터뷰어인지 헷갈릴 정도의 영상편집. 가능한 모든 영상테크닉을 동원해 자신의 모습을 화면에 가득 채운 리포트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사보다 기자 자신을 빛내기에 집중하는 아이템이 나가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보도영상! 컨트롤 타워의 부재 컨트롤 타워 공백이 생기면서 업무의 중복이 빈번히 발생했다. 부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부서 간 취재내용이 중복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서울모터쇼’ 컨셉트카 관련 취재에 경제부 영상기자, 일산 주재 사회부 영상기자, 울산MBC 영상기자 그리고 자회사 6mm 취재진이 같은 취재현장에 몰리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졌다. <KBO, 경찰청의 MOU>, <철도노조 탄압중단촉구 기자회견>, <최저임금 관련 양대 노총 기자회견>, <의료민영화 반대 서울대병원 파업> 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효율적 인력 운영이 불가능해지면서 업무량에 따라 부서별 인력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손을 놓고 있는 부서가 있는 반면, 어떤 부서는 취재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인력수급에 대한 문제는 아직 터지지 않은 시한폭탄처럼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다. 정년퇴직 등 떠나가는 영상기자들이 늘어나지만 정작 신입사원의 충원은 전무한 상태다. 영상기자 수가 점점 줄어들어 청와대, 국회, 국방부, 검찰 등 주요 출입처에서 공동취재에 필요한 인력을 빼면 사안·사건별로 발생하는 풀(공동취재)단을 꾸리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영상낙종의 빈도가 높아지며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흘러간 5년.... 채증의 현장 경영진의 계속되는 학대 속에서 영상기자회 구성원의 삶은 조각조각 산산이 부서졌다. 셋방살이에 주인 눈치를 보듯 살아야 했다. 전문성 없는 취재인력을 비난하거나 MBC보도영상의 질적 하락을 고민하기보다, 삶의 질과 자존감 저하를 먼저 고민해야 했다. 더 이상 기자의 삶을 살 수 없고 ‘카메라’라는 도구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자괴감과 절망을 감당해야 했다. 기자 개개인이 자신에 삶을 부끄럽게 느껴서인지 연대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끊어야 했다. 그나마 주어진 현실에 자신을 구겨 넣어 적응한 시기도 잠시였다. 치욕의 하한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경영진은 ‘유령’으로 살아가는 영상기자에게 최소한의 양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내 집회현장에서 공정방송을 외치는 동료들을, 영상취재지시로 교묘히 이름 붙여 채증하도록 요구했다. 2017년 6월 30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이 MBC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되는 동안 근로감독관과 근로감독관실을 출입하는 이들의 동태를 하나도 빠짐없이 촬영할 것을 요구했다. 7월 5일, 불법 채증에 대한 노동조합의 항의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근로감독관실 촬영지시는 중단되었다. 수치심과 죄의식에 상처받은 영혼은 조각난 유리잔과 같다. 금이 간 이후에는 다시 온전한 존재로 돌아올 수 없다. 우리는 지난 10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난 10년간 눈앞에서 MBC뉴스가 철저히 망가져가는 과정을, 우리는 손 놓고 지켜봐야만 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동안 우리는 청춘을 흘려보냈고 처절한 아픔과 쓰디쓴 좌절을 맛봐야 했다. 공정성, 신뢰도, 시청률 등 모든 방송지수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는 수모들 당했다. ‘엠빙신’으로 조롱당하며, 가장 먼저 퇴출되어야 할 언론사로 지목받는 씻을 수 없는 모욕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긴 싸움을 통해 더 단단해졌다. 힘차게 돌입한 이번 파업을 통해, 10년간의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낼 것이다. 새로운 MBC를 만들 것이다. 정권이 바뀌는 것과 무관하게, 흔들림 없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직으로 MBC를 탈바꿈 시킬 것이다. 공정방송 MBC를 재건하는 것이 우리의 정명이다. 손재일 / MBC
    2017-11-02
  • 다시 시작하는 ‘진짜’ 저널리즘, KBS 파업뉴스
    다시 시작하는 ‘진짜’ 저널리즘, KBS 파업뉴스 파업이라는 해방 공간 그리고 파업뉴스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늘 어깨에 짊어지던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무실을 뛰쳐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공영방송 KBS의 촬영기자들은 목이 말라있었다. 9월 말 현재 「KBS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제작거부와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거의 한 달이 다되어간다.  이번 파업은 KBS 역사상 유래가 없는 참여인원과 열기로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지난 10년간 이명박근혜 정권이 망쳐놓은 일터를 되찾고자 하는 KBS 구성원들의 열망과 언론적폐 고대영 사장 체제로는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는 분노가 굳건히 이번 파업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파업이 다름 아닌 ‘해방 공간’임을 실감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파업뉴스’라는 것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파업 중에 웬 뉴스를 제작하고 있을까. 그간 권력에 줄을 대고 눈치보기로 일관했던 보도국 수뇌부들이 보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뉴스들을 파업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독립적으로 제작해 보도하고 있다. 전파가 아닌 유투브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말이다. 보도국장단이 막은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 단독보도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기 며칠 전, 오랜 친구이자 같은 회사 선배이기도 한 이재석 기자가 연락을 해왔다. ‘중요한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아무래도 파업뉴스로 제작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내용인 즉슨, 지난 정권 군 사이버사령부에서 총괄계획과장으로 일하며 직접 댓글공작에 가담했던 사람이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 인터뷰를 한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내부고발자인 김기현 씨는 단장이 없을 때에는 직무대행을 하는 사실상의 부단장 역할까지 맡았던 핵심적인 인물이다. 김 씨는 카메라 앞에서 밤샘 댓글 공작을 해 여론을 조작한 결과를 매일아침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에 직접 보고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담담하게 쏟아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따로 수령해왔으며 지난 정권의 조사가 의도적으로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그가 한 증언들은 하나같이 톱뉴스 감이었다. 그런데 이런 특종보도를 왜 파업뉴스를 통해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을까. 애초에 지난 8월 초부터 보도국장단에게 이를 방송하고 특별취재팀을 꾸려 추가취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보도국장단은 폭로자의 고발 내용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물적 증거’를 가져오라며 핑계를 댔다. 이미 군으로부터 눈밖에 나있던 내부고발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일급 보안문서를 소지하고 있을 리 만무할 뿐더러, 수사권도 없는 기자에게 이러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은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김 전 과장 스스로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조속한 수사로 자신의 진술이 맞는지 검증하기를 원하는 점 등으로 볼 때 보도할 가치가 차고도 넘치는 사안이었다. 그의 증언이 바로 ‘증거’나 다름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KBS 파업뉴스를 통해 이 내용이 보도된 뒤 많은 매체가 이를 인용보도 했고, 특히 SBS는 톱뉴스로 이틀 동안 보도를 이어갔다. 이 보도를 통해 관련자들의 검찰 조사가 다시 시작되었고, 국방부는 지난 정권에서의 조사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사이버사령부 댓글사건 재조사 TF」를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정규뉴스가 아닌 파업뉴스가 진짜 저널리즘으로 인정받는 공영방송 KBS의 아이러니한 현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지금 파업을 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파업뉴스는 아직도 현재 진행중 파업뉴스 팀 기자들이 둥지를 튼 KBS연구동 기자협회 사무실은 파업이 시작된 후 늘 북적거린다. 파업뉴스 팀은 지난 단독보도 이후로 6편의 파업뉴스를 제작해서 보도했다. 거의 일주일에 두 편 정도를 제작한 셈이다.  ‘KBS 민주당 도청사건’이나 ‘언론인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정리한 굵직한 내용부터 ‘박영환 광주총국장의 막후 인사공작’같은 조합원들의 투쟁심에 불을 지피는 보도까지 내용도 범위도 다양했다. 사무실에서 몸만 가지고 나온 우리 촬영기자들은 모든 장비들을 개인적으로 수급해야 했다. 회사 소유의 장비들은 하나도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촬영용 캠코더와 편집용 PC는 외부 업체로부터 대여했고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DSLR이나 노트북 등도 총동원됐다. 촬영뿐만 아니라 편집 그리고 자막 수퍼부터 인트로 타이틀 제작까지 모든 작업의 A부터 Z를 촬영기자들이 손수 작업해 완성했다. 그야말로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몇 번의 제작을 거치고 나니 본의 아니게 1인 제작 시스템을 경험하고 공부하는 기회까지 운 좋게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내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인프라는 가끔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특별히 데스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팀원들 모두가 서로 상의하고 도와가면서 지금껏 누려보지 못했던 ‘제작자율성’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리고 결과물 역시 아주 훌륭하다.  그야말로 작은 ‘해방 공간’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이러한 작은 해방을 계속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어서 이 파업을 우리들의 승리로 끝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우리들이 일하던 그 현장으로 돌아가 진정한 해방을 실천해야 한다. 지금 우리들이 만들고 있는 ‘파업뉴스’라는 작은 경험이 우리 팀원 모두에게 나아가 KBS 촬영기자 모두에게 어둠을 걷어내는 작은 촛불하나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최진영 / KBS
    2017-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