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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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는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이미지와 문자를 사용해 왔다
    인류는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이미지와 문자를 사용해 왔다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다’. 그리고 보는 것과 언어를 연결시키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지적으로 성장한다. 이렇듯 우리의 시각은 사물의 형상과 언어라는 개념을 매개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시각의 작용은 곧 인식의 작용과 직결된다.  이와 같은 시각에 의한 언어 인식의 역사는 개인적 경험을 넘어 인류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인류는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먼저 사용했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처럼 구석기 사람들은 소와 말을 그리면서 사냥의 성공과 안녕을 기원했다. 이후 상형이나 설형 등의 문자가 생기자 이미지의 자리를 문자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플라톤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경멸하기까지 했다. 그에게 이미지란 인간을 둘러싼 실재 환경에 대한 인식의 표상에 불과했다. 그가 추구하는 이데아(Idea)란 진리의 세계에 비해 이미지는 실재 세상에서도 왜곡된 결과물일 뿐이었다.   이후 서양의 전통은 문자와 발음을 포괄한 텍스트가 사진과 영상을 동반한 이미지보다 더 우수한 기호로 인식돼 왔다. 생각을 지성(Intelligence)와 직관(Intuition)으로 나누고 텍스트는 지성과 이미지는 직관과 관련된 기호로 구분하려 했던 편향성은 많은 철학자들의 시도에서 볼 수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 1770-1831)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의 생각을 가장 높고 가장 진실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언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미술과 같은 이미지와 관련된 영역은 언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됐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인쇄물은 유통의 세계화를 가속화시켰고 이미지는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혁명은 이 모든 걸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정보는 간단한 디지털 이미지로 유통된다. 아이들은 책 대신 컴퓨터 화상 강의로 공부한다. 글은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 SNS 이모티콘 등은 이미지가 얼마나 문자를 대신하고 있는 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생각할 점이 있다. 이런 미디어의 범람과 이미지의 폭발로 대표되는 영상시대의 재림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에 대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TV, 영화, 게임 영상들은 어떤가? 영상은 본연의 언어적 기능을 상실한 채 우리에게 선정적, 폭력적 메시지를 계속 주입한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핏빛으로 얼룩져있고 TV는 상업적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게임은 또 어떤가? 이렇듯 우리는 영상의 폐해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이를 영상 폭력이나 오염으로도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영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베르 뒤랑은 이런 저급 영상에 무감각해진 현대인을 가리며 ‘죽은 눈’이라고 표현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유는 누구도 영상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작금의 실정에 있다. 사실 영상을 교육할 전문인도 없다. 영상을 단순히 찍고 편집하는 대상이 아닌 표현과 이해의 미디어로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교육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영상을 진정한 창조적 상상력과 건강한 언어적 기능의 수단으로 양성화 할 수 있는 길이다.  사실 지금껏 영상교육이 없었던 건 아니다. 초기의 영상교육은 미디어로부터 보호를 목적으로  청소년을 떼어 놓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다. 1970년대 TV의 출현과 함께 영국에서 시작된 최초의 영상교육은 교육의 주요 내용이 ‘매스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력 특히 문화, 도덕, 사상적 악영향에만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보호주의론(Protectionism)’의 범위에서만 다뤄졌다. 결국 이런 영상교육의 방향 설정은 영상교육을 TV라는 일방향적 매체를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청소년의 수동적 대응만 강조한 교육이란 한계 상황을 맞았다.   21세기를 넘긴 현재의 영상은 예전의 TV같은 ‘올드 미디어’의 모습이 아닐뿐더러, 이른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온갖 종류의 뉴미디어와 공존하는 복잡한 환경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영상을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영상을 감상과 비판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수동적 수용자의 입장을 벗어나, 영상 자체를 활용해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삼는 적극적 사용자의 관점에서 영상교육을 보다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 관점에서의 영상교육은 청소년들이 영상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자신들의 큰 잠재력을 발견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독일의 미디어학자 디터 바아케(D.Baacke)에 의하면 미디어 능력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이용하며, 혁신적, 창의적으로 구성 제작할 수 있는 주체적 능력을 말한다. 바로 이 미디어 능력을 독자적으로 개발, 발현시키는 교육이 미디어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미디어가 ‘자아 정체성’을 위한 교육의 대상이자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영상 리터러시(Literacy) 교육을 권유한다. 이는 영상시대에 이미지를 어떻게 읽고 표현하는 가를 가르치는 영상 문해 교육이다. 영상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 의식과 심미적 능력까지 변화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즉 영상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란 시각적인 표현 언어가 갖는 상징체계와 구조를 분석해냄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영상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나서고 표현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열린 교육일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교육이 새싹을 터드렸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 방송 일선에 선 기자들이나 방송인을 길러내는 대학에서도 이런 관점의 교육을 염두에 두고 방송제작과 교육과정 재편과 같은 노력을 한다면 영상은 훌륭하고 건강한 미디어의 수단으로 각광 받을 것이다. 정경열 교수/영산대학교 방송콘텐츠학과
    2018-07-04
  • 폐어선‘ 스쿠버다이빙 성지’ 변모 해중공원 수중촬영기
    폐어선 ‘스쿠버다이빙 성지’ 변모 해중공원 수중촬영기  똑같은 파도, 똑같은 백사장을 놓고 경쟁하던 때는 이미 지 났다. 여러 시·군 지역에서는 특색이 있는 해양 레포츠에 승부를 걸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이미 서핑,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 등 다양 한 해양레포츠에 기반을 다지는 데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다녀온 곳은 강릉시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해 중공원 조성사업 지역을 다녀왔다.  국비 80억 원이 투입되어 매년 3만4천 명이 지역을 찾아 경제적 파급효과가 연간 6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에선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난파선 다이빙인 이른바 렉 다이빙(wreck diving)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폐어선 투입부터 완공까지 촬영을 해왔던 터라 누구보다 먼저 이곳을 촬영하고 싶었다.  수면에서 천천히 하강하다 보면 거대한 배의 형체가 나타나 고 그 위로 소나기가 퍼붓듯 물고기 떼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낡아 폐기하는 배를 사서 기름때를 모두 벗겨낸 이 배에는 해 초가 무성하게 뒤덮여 있었다. 어선이 물고기 집 역할을 해 언 제라도 물고기 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물고기 떼에 넋을 놓기도 전에 영상을 먼저 카메라에 담았다. 선실과 선실 사이, 복잡한 배의 구조물을 따라 짜릿한 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총길이 60m, 바닥 수심 36m지점에 있으며 렉다이빙 자체 가 위험하지 않게 안으로 진입해 밖으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 는 구조여서 중급자 이상이면 누구든지 즐길 수 있을 듯했다.  곧 2천 톤급 초대형 폐선박이 하나 더 투입되어 이곳이 스쿠버 다이빙의 명소가 될 듯하다.   촬영 하면서 수많은 촬영 분야 중 하나인 수중촬영이지만, 수중촬영을 하다 보니 그동안 쌓아오신 선배들의 노하우와 장 비들 외엔 요즘 현실에 맞는 촬영 매뉴얼이 없다는 걸 알았다.   몇 가지 찾아보고 교육을 다녀와도 원론적인 설명만 있을 뿐 실제로 수중상황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실제로 내가 물속에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궁금증을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선배들의 노하우였다. 협회와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영상기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수중촬영 매뉴얼을 만들어 보는 것이 목표다.                                                                                                                           홍성백 / 강원 G1   
    2018-07-04
  • 영상기자, 현장이 위험하다
                     영상기자, 현장이 위험하다. YTN 박한울 영상기자 싱가포르에서 호흡곤란 일으켜 업무 과중으로 피로 누적돼..... 업무 환경 개선이 필요   ▲싱가포르 세인트레지스 호텔 앞에서 국내외 취재진, 아래 사진은 YTN박한울 영상기자가 업무 과중으로 쓰러져있는 모습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이열렸다.새로운북미관계수립과한반도의비핵 화에대해서국내언론은물론,세계언론역시두 정상의 만남에 관심을 갖고 톱뉴스로 보도했다. 그 러나 현장의 뉴스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에앞서몇일간현장을취재했던국내방 송사 영상기자들에게는 살인적 노동이었다.   노동강도 높아  영상기자들은 영상 35도의 무더운 날씨에 밀접한 공간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LTE를 이용해서 하루 종일 현장 중계를 진행하는 살인적인 취재를 해야 했다.     근무환경이 최악의 상태인데도 영상기자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세인트 레지스 호텔 앞에서 취재경쟁을 벌였다. 기본적으로 교대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교대가 거의 불가능했다. 한 장소에서 하루에 20시간씩 취재를 하고 4시간의 수면을 취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휴식 시간이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2일 오후 10경 김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마치고 저녁 늦게 호텔에서 빠져나와 공항으로 가는 것을 현장 취재하던 YTN 박한울 영상기자는 취재의 긴장감과 누적된 피로가 쌓여 갑자기 쓰러졌다. 경찰의 도움으로 엠블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KBS 윤성구 기자는 “촬영한 뒤 쓰러졌다. 호흡곤란이 온 것을 보고  후배가 손가락을 입에 넣어 응급조치를 했다”며 “그다음에 자신이 심폐를 만져 응급조치했더니 숨을 쉬었다 “고 당시의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또 같은 취재현장에 있었던 SBS 설민환 기자는 “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같은 직종으로서 안타깝다”며 “취재 업무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당시 영상기자들이 취재현장에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충 스케줄이 공개되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스케줄이 공개되지 않아서 영상기자들은 어떤 상황이 있어도 그 현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국내 영상기자들은 새벽 4시 30분부터 그다음 새벽 1시 30분까지 혼자서 하루 20시간의 취재현장을 지켰다. 하루에 밥을 한 끼도 먹기 힘들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일본의 취재환경 본 받아야  한편,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국내 방송사들의 열악한 취재환경은 일본의 방송사 영상기자들과 대비가 된다.     일본의 NHK 경우는 취재현장 한 곳에서 영상기자가 4명이 파견되었다. 이 중에 한 명은 팀장으로서 취재는 하지 않고 현장에서 근무환경이나 상태 등을 파악해서 적절한 시기에 영상기자를 교대해 주거나 타 업무를 맡는다.     양국 방송사의 영상기자 인원도 단적으로 대비가 된다. 일본의 TV아사히 방송사 영상기자가 13개 팀, 일본의 TBS방송사가 15개 팀이 파견되어 취재했다. 또 하루에 취재현장에서 평 균 4∼5시간을 취재한 후 휴식을 취한다. 교대도 하루에 세 번씩 이루어진다.    하지만 국내 방송사 영상기자 취재팀 구성은 어떤가. KBS 6팀, MBC 6팀, SBS 6팀, YTN 4팀, MBN 6팀, 아리랑 3팀을 구성해서 파견했다. 노동시간은 하루에 1팀당 20시간, 수면 시간은 4시간이었다.     이번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취재한 국내 방송사 영상기자들은 외신 영상기자들과 비교해서도 노동 강도가 휠 씬 높았다. 이에 방송사의 취재 업무환경도 바뀌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국내 방송사 영상기자들은 “기온 35도, 습도 80% 이상의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4시간의 잠을 자고 취재하라는 것은 살인 노동이다”며 “경영진은 하루빨리 업무를 제대로 파악해서 취재업무 개선에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방송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다양하게 LTE를 통한 현장 중계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 역할에 맞게 인력 충원이 있어야 하는데 방송사들은 경영을 핑계로 인력 충원을 하지 않고 있다.     한 방송사 영상기자는 “이제 영상취재와 편집뿐만 아니라, 영상자료수집 업무와 보관 그리고 디지털 콘텐츠 제작까지 대개 세분화가 많이 되었다"며 "과거보다 인력이 부족하면 편집업무를 소홀하게 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또  “오는 7월부터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가 적용될 예정이지만 인원 확충 없이 무제한 ‘과로’와 보상 없는 일방적 희생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소향 기자  
    2018-07-04
  • 남북정상회담 취재준비에 분주한 방송사
     남북정상회담 취재준비에 분주한 방송사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와 23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남북정상회담 주관통신 지원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왼쪽에서부터 KT 네트워크부문장 오성목 사장, 아리랑국제방송 이승열 사장,연합뉴스 조성부 사장, KBS 양승동 사장, 대통령비서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비서관, 문화체육관광부의 노태강 2차관, 박정렬 국민소통실장, 김태훈 해외문화홍보원장(왼쪽부터)이 박수를 치고있다. 오는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되면서 각 방송사들이 정상회담 방송을 위한 준비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한반도의 상황에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는 국내외 약 350개 매체, 2,800명 이상의 취재진이 사전등록을 끝마쳤다. AP, AFP, 로이터 등 뉴스통신사는 물론 미국 CNN, 영국 BBC, 중국 CCTV, 일본 NHK 등 각국의 주요 방송매체들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주목하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과정을 취재했던 일본의 교도통신 아우쿠라 요시카츠(粟倉義勝) 서울 지국장은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정권이 끝날 무렵에 회담을 개최했기 때문에 어떤 성과가 있어도 실천하기는 어려웠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과 중국이 협조하고 동북아시아 전체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며 남북정상회담의 기대감을 표시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남북정상회담의 메인 프레스센터(MPC)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 설치된다. 메인 프레스센터에는 34개국 348여개 언론사의 2천800여 명이 오는 27일 이곳을 찾아 분단 후 최초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남측에 내려와 열리는 정상회담을 취재하게 된다. 취재진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1천여 명과 2007년 회담 당시 1천700여 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메인 프레스센터에는 총 3천200여 평 규모에 안내데스크와 1천 석에 달하는 브리핑룸, 사진과 영상기자실, 국제방송센터(IBC), 인터뷰 룸 등이 설치된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판문점에서 진행되는 주요 정상회담 일정을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전문가 패널 토론과 인터뷰까지 지원할 방침이다. 국내방송사와 통신사들도 남북정상회담을 차질없이 방송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각 방송사들도 생중계를 준비하고 전문가 패널까지 섭외를 한 상태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주관방송사인 KBS는 실시간 생중계로 전 세계에 역사적인 순간을 전달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또 타 방송사들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다양한 특집과 전문가 토론 방송 등을 통해 정상회담의 의미를 분석하고 북미회담 전망 등 향후 한반도 정세를 집중 조명한다. 아리랑 국제방송은 ‘남북정상회담’ 주관 영어 방송사로서 회담 현장의 외신기자들을 위해서 메인 프레스센터 대형스크린에 영문자막도 서비스한다. 이와 함께 해외방송사에 영어콘텐츠를 제공하고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파한다. 한편 KT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방송 및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판문점에 방송망, 전용회선 등 통신 시스템 및 시설을 구축한다. 또한 국내외 취재진을 위한 메인 프레스센터에 방송 통신망 제공과 함께 5G 기지국을 설치한다. SK텔레콤 등도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한국을 찾는 전 세계 언론사에게 정상회담 브리핑 현장을 5G 기술인 360도 영상을 제공한다. 
    2018-05-04
  •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며...우리에게 남은 숙제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며...우리에게 남은 숙제   ▲사진제공: 한국사진기자협회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45분   취재 회의가 끝날 무렵 회의실에 뉴스속보 하나가 전달됐다.     “서해바다 진도 해상 여객선 좌초” 곧바로 보도국 기자들은 하나같이 휴대폰을 꺼내 들어 여객선 사고 파악에 나섰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kbc 서부본부(목포) 취재 2(?) 팀과 광주 본사 취재 2팀(?)이 사고 지역인 진도 동거차도, 팽목항, 진도 한국병원으로 나눠서 현장으로 발 빠르게 달려갔다. 나는 선발대로 진도 한국병원에 도착해 취재하는 동안 여객선 탑승 전원 구조라는 정부 당국의 발표를 인용한 언론 보도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아! 다행이다.”그리고 구조된 승객들이 철부선을 타고 들어오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진도 팽목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철부선에서 내린 단원고 학생들 입에서 배에 아직 친구들이 남아 있다며 울음을 터트릴 때 단순한 사고가 아닐 거라는 불길함이 뇌리를 스쳤다. 국민들의 기대와 염원을 담아 세월호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언론 매체들은 4월 11일 육상 거치 작업이 완료되는 순간까지 생방송으로 국민들에게 전하면서 세월호가 남긴 많은 의혹들을 풀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다음 달 목포신항에 세월호 선체가 바로 세워지면 본격적인 진상규명이 이뤄 길 것으로 기대된다. 미수습자 5명 수색작업과 침몰 원인 조사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벌써 4년이 흘렸다. 많이 슬퍼했고 참담했고 죄송했다. 차가운 바다에 자식을 묻은 부모에게 멀리 떠나보내야 할 형제에게 마이크와 카메라를 내밀어 울분을 쏟아 내는 유족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영상은 기록해야 했다. 함께 울고도 싶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당국에 항의도 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기자였기에 영상으로 남겨야 했다. 4년 전 카메라 앵글 속에 한 유가족 분은 언론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지만... 4년이 지나 “우리를 잊지 마세요 “라며 흐느끼며 우는 모습에 너무도 가슴 아팠다. 우리 기자들은 4월 16일과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아직 세월호 안에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 실종자 5명이 남아 있다. 다시 4월을 기억하겠다.   “기억은 잃으면 미래를 잃게 된다.”   남은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영상을 기록하는 것은 기자의 사명이다.    염필호 / KBC광주방송    
    2018-05-04
  • <특별 인터뷰> 4⋅27 남북정상회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까
    <특별 인터뷰>   4⋅27 남북정상회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까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인터뷰(현 경기도교육감)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무드가 가속화되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3월 26일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하고 오는 4월 2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국제사회의 관심 속에서 한반도의 전쟁 종식과 평화를 정착시키는 역사적인 합의를 이루기 위해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정권 마지막 통일부 장관으로서 회담 준비를 총괄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현 경기도 교육감)을 지난 3월 30일 경기교육청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 의의   이번 4월 27일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첫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밝히고 직접 특사를 파견해서 문재인 대통령과 협의를 한 정상회담이다. 둘째 미국과 북한 간에 물밑 접촉에 의해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노력의 결과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는 남북미 3자가 동시에 의지를 가지고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판문점 평화의 집은 남쪽의 땅이고 시설이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남쪽에 오는 최초의 북한 지도자이다.   -  남북정상회담이 두 번 열렸다. 과거의 회담과 다른 점은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에는 북한의 핵개발이 완성되지 않았다. 미사일이나 로켓의 개발도 미완성 상태였다. 과거의 회담과 이번 회담의 다른 점은 과거에는 정보당국의 접촉을 통해 비공개적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면 지금은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정상회담을 주도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만일 핵무기에 관한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하고 그와 동시에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여 핵보유 국가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강력한 체제의 기반을 확보하였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먼저 남북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제안하였고 이후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자는 강력한 제안을 한 것이다.   -  남북정상회담에서 예상되는 의제는   남북 정상은 이번 회담을 큰 틀에서 “통 큰”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북미 외교관계의 정상화와 북한 체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그 중심에 있을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유엔 안보리 의결로 강력한 제재를 해 왔다. 특히 최근에 미국은 북한에 대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의 압박을 가해 왔다. 그래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남측 특사를 통하여 밝힌 비핵화의 원칙과 이를 추진하는 기본원칙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비핵화에 따른 원칙과 과정에 관하여는 이미 1994년 북미 간의 제네바 합의에서 2005년 6자 회담의 9.19 합의까지 수많은 합의와 이행 과정이 있었다. 이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한 전면적인 폐기와 함께 북한과 미국 간의 외교적인 정상화를 통해서 북한의 체제 보장을 어떻게 이루어 가느냐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종전선언과 한반도에 대한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 평화체제 완성이라는 것이 의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지   평창올림픽이라고 하는 국제적인 평화의 제전을 통해서 각국 간의 외교적인 노력이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북 간에 고위급 회담과 북한 특사의 자격으로 남측을 방문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 부장이 문제인 대통령을 예방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회담을 한 것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남측 특사단이 북한 방문해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전달한 것이 결국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처럼 이번 평화의 기회는 기적처럼 이루어졌다.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한반도를 위협하였고 미국은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무력사용까지 하면서 북한에게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따라서 이번에 극적으로 이루어진 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특사들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파견해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과정과 내용,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합의 관계를 설명하고 주변 국가들과 국제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마 앞으로 정상회담의 성공 요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성급하게 성과를 만들려고 하기보다 남북의 신뢰를 쌓아가면서 장기적으로 남북대화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남북 간에 합의한 대로 정상 간의 핫라인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남북대화의 길을 넓혀 가야 할 것이다. 과거 남북관계에서 대화와 협력의 관계가 깨지고 단절을 거듭하게 된 것은 남북내의 정치적 변화가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북한과 국제사회 간의 불신과 미국의 견고한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대북정책의 결과였다. 남북의 확고한 평화의 의지는 곧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정책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특히 현재 북한의 자신감과 미국의 정치외교적인 기화 그리고 중국의 동북아세아에서의 외교적인 위치를 고려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한반도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 남북 관계에서 향후 유의해야 할 점과 주력해야 할 점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라고 부른다. 이 회담은 남북관계를 새롭게 화해와 통일의 길을 확인하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었다. 7년이 지나서 2차 정상회담을 2007년에 열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를 북한이 받아들이면서 그 배경으로 북은 남북 간의 신뢰 회복, 그리고 국제사회의 우호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2007년 정상회담은 2차라는 차수를 붙이지 않고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정상회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이는 북한이 2007년 정상회담을 2000년 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발표한 ‘6⋅15 남북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과정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3차 정상회담이 아니라 ‘2018 남북정상회담’이라고 이름이 붙여지는 것은 역시 ‘6⋅15 남북 공동선언’의 이행을 통한 남북관계의 회복과 더 나아가 북미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남북대화를 준비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한미, 북미 간의 긴밀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이후 처음으로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하여 남북미 3자의 회담이 논의되고 있고 남북중 회담도 가능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남북미중의 4자 회담도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의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외교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가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남북관계를 기반으로 북미, 북일 관계는 물론 북한을 국제사회에 문호를 여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 목적> -  통일부 장관 당시 때와 지금의 남북 관계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내가 통일부 장관 임명을 받아서 취임한 때가 2006년 12월 11일이다. 그런데 그 해 10월 9일에 북한이 첫 핵실험을 했다. 그래서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고 대화도 끊기고 남북의 긴장관계가 굉장히 높았다. 그리고 유엔 안보리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의결하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남북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당시에 6자 회담도 가동하고 있었지만 지지부진했다. 마침내 6자 회담에 2007년 2⋅13 합의에 성공했다. 이런 과정에서 2007년 2월 27에서 3월 2일까지 남북장관급 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 이 회담에서 논의된 것은 북한의 핵실험에 관한 항의와 중단을 요구했고 북에 대한 쌀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 문제와 이산가족 상봉 문제, 그리고 남북관계를 다시 복원하는 과제였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우리 측의 입장을 전달했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북핵문제와 함께 경제협력을 강화해 나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 후 5월 중순에 다시 남북장관급 회담이 서울에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8월 8일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발표하게 되었다. 이 회담은 2007년 10월 2일에서 4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내가 통일부 장관 재직 당시와 지금의 상황과 전혀 다르다, 당시 북한 핵실험 이후 극적으로 남북관계가 복원되었고 1년 만에 정상회담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에서 6자 회담의 진행이 남북대화와 병행하여 남북대화의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간에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되었고 국제사회는 대북제제와 압박의 일변도였다. 6자 회담도 북미회담도 모두 단절되었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일관되고 적극적인 남북대화 제의와 북의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으로 남북회담을 물론 북미 정상회담까지 내다보게 되었다. 한반도 문제는 지금이나 과거나 남북이 견고한 관계를 만들어 갈 때 해결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  남북의 향후 과제는   국제사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의 핵무기는 “완전하고 증명이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의 단계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목적은 2018년 1월 1일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결국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북한 정권의 안정적 유지와 안보를 담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은 궁극적으로 북미관계의 정상화라는 목적에 있다. 그렇게 본다면 북한이 핵개발하는 것은 남한을 공격하거나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주권 보장과 북한 정권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그런 안보적 차원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해결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북미관계의 정상화와 북한의 체제에 대한 보장이다. 3월에 남측 특사단이 북측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과 북한의 공동발표문에서 보듯이 북에 대한 제재와 압박이 해소되고 북한의 정권 체제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지면 핵무기를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선대의 유훈이라는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회담을 중재한 것을 어떻게 보는지   우리는 한미동맹 관계 속에서 한반도의 안보를 지켜왔다. 남북대화도 한미관계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국제사회보다 반 발짝 뒤로 가는 것이 옳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6자 회담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구체적인 논의가 진전되어 2007년 ‘2⋅13 합의’ 때는 남북장관급 회담이 가능했다. 또 이것을 이행해 나가기 위하여 6자 회담국이 2007년 10⋅3 합의가 이루어진 직후에 남북은 10⋅4 선언에 서명했다. 이렇게 볼 때 6자 회담과 남북회담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전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도 북미 최고위급 회담과 맞물려 진행된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회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여기에 북미회담, 미중 회담 또는 6자 회담이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과 함께 진행되어야 성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주도권> -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일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는 목적은 무엇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 다시 말하면 아메리카 퍼스트라고 하는 트럼프 정책이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를 흔들어대고 있다. 그런데 과거 미국 정부는 리비아, 이란 등의 국제문제는 물론 쿠바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외교적 성공을 이루었다. 이제 미국에 남아 있는 과제는 대북관계를 해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는 미국 내의 정치적인 지위 강화와 동북아에서 외교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고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 외교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이 목적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6자 회담을 중국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이제부터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통해 동북아에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할 것인지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로 성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까지 북미 회담은 몇 가지 단계가 있었다. '제네바 합의'의 경우에는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고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2000년에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 위원장과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간에 이루어진 합의는 '제네바 합의'의 확인과 그 이행의 약속이었다. 그 후 6자 회담에서 체결 한 ‘9⋅19 공동성명’(2005년)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결정적인 합의의 총론이었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엔 안보리는 지속적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결과는 북한의 핵 능력을 증강시킨 것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미국 정부와 다른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대화와 압력의 양면 전략으로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를 통해 최선의 결과를 얻는 노력을 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 비핵화 해결책으로는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다르다. 미국은 2003년에 리비아와 2015년에는 이란 간에 ‘핵무기 폐기를 위한 합의’를 했다. 리비아식 해법과 이란식 해법, 또 고르디아스식 해법으로 북한의 핵 문제를 타결할 수 있을지 리비아식 해법과 이란식 해법은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리비아와 미국, 이란과 미국,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리비아와 이란은 당시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미사일 능력과 핵무기 개발은 분명히 미국에 위협이 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란식, 리비아식, 고르디아스식 해법은 아니다. 제3의 ‘북한식 해결법’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식 해법은 무엇인가? 북한의 문제는 동북아 안전보장 문제, 남북문제 그리고 미중관계가 첨예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북핵의 해결책은 북미관계의 해결, 남북관계의 강화, 미중간의 적절한 조정, 그리고 북일 간의 관계 정상화 등이 얽혀 있는 복잡한 방정식이다. 결국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 간에 북한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는 남⋅북⋅미 정상회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 여기에서 남⋅북⋅중 정상회담도 필요에 따라서 개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북이 참가하는 4자 정상회담이다. 김대중 정권 당시에도 4자 정상회담에 상당한 역점을 두고 4자(4개국)의 외교관계 강화가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4자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에는 ‘10⋅4 선언’(2007년)에서 밝힌 바와 같이 관계국 정상이 한반도에 모여 종전과 평화체제에 대한 협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그것을 제3의 해결책으로 평가해도 되는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선언을 논의할 때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3자 또는 4자의 정상들이 한반도에 모여서 종전과 평화체제에 대해서 회담하는 것을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미국과 관계국을 설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나는 지금도 이것이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 그러면 제3의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지   북한식 해법 또는 한반도식 해법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럼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북 제재에 가장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역시 미국이다. 우선 미국이 먼저 풀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해결책은 결국 미국과 북한이 회담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미 간에 해결의 실마리가 만들어지면 이후에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관련국이 협력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급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은 어느 나라를 상정(想定) 한 것인지.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의제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남과 북에 제3의 나라는 미국도 될 수 있고 중국도 될 수 있다. 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일본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러시아도 참가할 수 있다. 일단 남북미, 남북중, 또는 남북미중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어떤 구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북회담을 중심으로 주변국과 의제에 따른 양자 또는 다자회담을 상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의 역할>  - 향후 6자 회담 협의 재개 가능성은 있는지.   현 단계에서 나는 6자 회담의 가능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이미 그 시대는 지났다. 10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과거보다도 북한의 위상이 강화되었고 동북아에서 중국의 역할이 달라졌다.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러시아와 일본의 역할이 약화되었다.    - 문재인 대통령은 북일 관계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되는지.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아주 견고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북일 관계의 정상화가 없이 남북 관계의 정상화에 완전히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의 개최가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이행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가교 역할은 분명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일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  지난 3월 26일에는 북한과 중국이 직접 대화에 나섰고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서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데 일본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알기로는 북중 정상회담은 작년 말부터 북한의 요구에 의해서 준비가 진행돼 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북중 정상회담 전에 중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에게 정식으로 정상회담의 사실을 알려왔던 것 같은데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언론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이 재팬 패싱, 일본을 배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이미 예정되어 있는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에 관련해서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기 때문에 양국 정부에게 사전에 보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이번에 문제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북중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번 북중 정상회담이 김정은 위원장 취임 후 7년 만에 처음 열렸다는 점에서 굉장히 역사적인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남북회담이나 북미회담 만이 아니고 북중관계를 좀 더 원만하게 풀어감으로써 한반도 평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중국은 그런 의미에서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우호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그런 입장으로 해석하고 있다.   -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는지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서는 거론되지 않았다. 그리고 더구나 북일 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식으로 논의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공식 회담에서는 물론 그런 일이 없었고 비공식 회담에서도 나는 어떻게 이야기되었는지 거기까지 확인을 못했다.    - 아베 총리가 납치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북일 관계를 바람직하게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납치자 문제나 혹은 인신구속에 대한 문제는 일본만이 아니라 남한도 있었고 미국도 있었지 않았는가. 그러나 우리가 정상회담을 할 때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거나 하는 입장은 없었다. 오히려 정상회담을 통해서 인권에 관한 문제를 하나의 의제로 채택해서 논의를 한 적은 있다. 그래서 일본이 북한의 인도적 입장을 분명히 듣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전제 조건으로 북일회담을 추진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국제사회가 가지고 있는 더 큰 문제인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 중국, 러시아, 남북이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 종전과 평화체제를 이룩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일본도 이 의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일본의 정치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원상 / YTN      
    2018-05-03
  • 이미지와 권력 Image and Power
    <줌인>    이미지와 권력 Image and Power     유사 이래 이미지와 권력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미지에 재현된 인물의 크기가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달라졌고,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역시 아우라나, 구도, 혹은 원근법 등을 통해 이미지의 중심이 되는 곳에 지배적 주체들이 배치되었다. 로마와 비잔틴의 분리를 촉발했던 성상파괴(Iconoclasm) 역시 이미지의 재현과 그 제한에 대한 정치적 투쟁의 성격이 깃들어 있고 이미지 전쟁으로도 불리는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에서 사용된 팸플릿, 낙서, 회화 등에도 이미지의 정치적, 사회적 기능에 대한 고민과 다툼들이 녹아 있다. 이미지 생산의 대중화 시대를 열어준 사진은 정치와 이미지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해 주었다. 나폴레옹 3세와 링컨, 빅토리아 여왕 등 근대의 정치인들 조차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이미지를 활용했다. 이미지의 사용이 훨씬 빈번해진 현대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 영상과 관련된 또 다른 이슈는 이미지들의 변형과 가공이 훨씬 쉬워졌고 그에 따라 이미지와 영상이 점점 더 회화적인 표현 수단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미국 공화당의 미디어 담당관이었던 탄타로스(Andrea Tantaros)는 후보자로 완벽했던 오바마(Obama) 이미지와는 달리, 공화당 후보인 팰린(Palin)은 리터칭을 하지 않은 불완전한 이미지들을 부각하였다며 해당 미디어의 보도가 편향적이란 논평을 냈다. 디지털 시대 이미지는 이제 이미지가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고전적 논쟁을 넘어 그 자체가 현대 정치마케팅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커뮤니케이션과 권력관계를 연구하는 카스텔(Castells) 교수는 정부가 유사 이래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통제에 기초해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항상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정부는 태생적으로 민감하다고 진단한다. 그의 말처럼 이미지가 정치의 핵심 요소가 된 영상 시대에 각 정부는 이미지의 자유로운 유통에 민감하다. 그리고 이미지의 영향력은 실제적이다. 일례로, 미국 병사들이 테러 용의자들을 장난처럼 고문하는 장면을 SNS에 업로드 한 아브 그라이브(Abu Graib) 수용소 사건 이후에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3/4 정도가 전쟁 개입은 잘못되었다는 의견을 보였다. 베트남 전에 의해서 확증되고, 로드니 킹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보여주듯, 이미지는 휘발성이 강하고 정치적 동원력이 있기에 그만큼 권력은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에 민감하다. 최근 영상기자들은 현장에서 통제를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출입이 제한된 국제대회나 남북 이벤트뿐 아니라 일상적 취재의 공간에서도 영상기자들은 점점 더 통제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또 이런 추세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뉴욕대학교 리친(Ritchin)교수는 시리아의 가자지구 등 분쟁지역에서 영상기자들은 어떤 것을 촬영해야 하는지 미리 결정된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만 현장접근이 허가되는 상황을 비판했다. 이런 경향은 미디어로 인해 여론이 크게 좌우되던 베트남전 이후 계속되어 온 문제라고 지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매그넘 출신의 사진기자 필립 존스 그리피스(Philip Johns Griffiths)도 오늘날 현장의 포토저널리즘은 이미 예측 가능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작업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은 언론사들이 선정적 사진들을 구걸하고 만들어서 내보내면서 독자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동안, 정부가 언론사를 패스해서 시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움직임을 통해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경향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이미지가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기억은 불변의 기록(script)이라고 믿고 쉽지만 연구들의 기억은 특히 오래될수록 변형과 왜곡에 취약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영국 워릭대학교는 미국 선거캠페인에서 존 캐리(John Kerry)가 배우 제인폰다(Jane Fonda)와 반전집회에 참가한 가짜 사진을 뉴욕타임즈가 사용했는데, 시간이 지난 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실제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와 유사하게 2010년 미국 온라인매거진 슬레이트(Slate)는 진짜와 가짜로 뒤섞인 정치적 사건의 사진들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기억을 하는 실험을 했는데, 절반 가까운 독자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을 실제로 기억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간 비슷한 연구들 역시 이미지는 상상력과 기억을 지배하고, 이는 정체성과 소속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맥락 하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보는가’를 정부가 결정한다는 점은 불편한 지점이다. 최근 기관들이 앞다투어 시행하는 기관 홍보와 뉴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한 직접 소통방식은 정보의 그릇된 전달을 막고 소통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프로파간다적인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위험한 뒷문 역시 열어 놓는다. 911 이후 미국 부시 정부가 이미지를 통해 존재하지 않았던 대량살상 무기의 시각화와 이슬람의 악마화, 그리고 이와 상반된 부시의 이미지 연출 정치는 결국, 이라크 공격에 대한 건강한 공론의 장을 훼손시켰다는 점에서 권력과 이미지의 올바른 함수관계를 성찰할 기회를 준다. 매일 쏟아지는 이미지는 우리의 인지와 사회적 감성, 그리고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집단기억과 정체성으로 연결된다. 국가 권력이 점점 더 많이 행사를 연출하고,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가를 통제하는 시대는 분쟁적이고 다원적인 의견의 다툼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적 원리와도 맞지 않는다. 정치 홍보와 광고 촬영장, 취재 현장, 그리고 현장에서 사실을 구부리는 영상기자, 허구의 영화 장르가 논픽션의 기록물처럼 사용되는 토양, 이미지의 가치를 성찰하지 못하는 미디어 교육 모두가 위험하다. 정부와 언론, 그리고 시민 모두 영상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필요하다.   김우철 / MBC
    2018-04-26
  • 공정보도와 보도영상조직의 역할
    공정보도와 보도영상조직의 역할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의 방송보도는 암흑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이 그러했으며 뉴스전문 채널 YTN은 지금도 투쟁중이다. MBC는 파업 참여에 대한 보복조치로 영상조직이 해체되는 시련을 겪었고 조직이 회복되기까지 5여 년이 걸렸다.   해체의 고난과 복원의 노력을 거쳤던 힘든 시간은 보도 영상조직과 방송저널리즘의 공정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의 CCJ(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t)가 정리한 저널리즘의 9가지 원칙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진실추구와 시민에게 충실, 검증, 취재대상으로부터 독립, 권력의 감시자, 공개 토론장 제공, 중요한 이슈에 대한 전달, 포괄적이고 균형 있는 뉴스, 자신의 양심에 따르는 것이다.   방송저널리즘의 경우는 여기에 공적 영역으로서의 방송의 규범인 ‘공익성’,‘다양성’, 등을 반영하여 포괄적으로 표현한 <공정성>의 가치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방송의 <공정보도>는 매체의 특성상 그 자체가 하나의 개별 프로그램이나 뉴스 콘텐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광의의 개념에서 보면 콘텐츠를 기획하고 취재와 구성, 생산, 전달하는 과정을 통칭하는 뉴스제작 과정의 공정한 시스템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도영상에서 <공정성>을 준수한다는 것은 생산된 뉴스콘텐츠의 의미적 공정성뿐 만 아니라 뉴스 제작과정 전반에 걸쳐 보도영상의 저널리즘의 가치가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보도영상은 그 특성상 현장에서 영상취재의 객관적 사실을 기록함에 있어서의 의도의 공정성, 기술적 공정성, 행위의 공정성, 그리고 그것이 영상편집을 거치는 과정의 구성적 공정성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면을 고려할 때 현장의 영상기자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공정보도 침해행위는 영상취재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편파, 왜곡된 영상에 대한 요구이다. 즉, 부서장이나 취재기자로부터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특정의도에 따른 과장, 축소된 현장의 영상을 요구받는다면 이것은 <공정성>의 침해이다. 영상편집과정에서도 2차적인 보도영상에 대한 공정성 침해행위가 자행될 수 있다. 의도적으로 선택과 배제된 영상을 편파적으로 구성하여 뉴스의 영상메시지를 왜곡시키는 행위가 벌어진다면 보도영상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만일 보도영상조직이 독립되어 있지 않거나,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 보도영상의 공정성을 지키기는 어렵다.   MBC의 경우 조직해체이후 영상기자들이 취재부서에 배속되어 취재부서장의 지시를 직접 받아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부당한 현장 취재 지시가 빈번하게 자행되었다. 특히 세월호 사건이나 촛불집회같이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왜곡과 편파에 대한 요구가 매우 심했다.   보도영상조직이 해체되거나 종속되면 영상기자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상실되고 뉴스생산의 기본조건인 뉴스의 제작시스템이 파괴된다. 사회 불의를 끈기 있게 추적하거나 긴박한 사건사고의 현장에 가장 빨리 달려가는 것이 취재기자와 영상기자가 함께하는 뉴스의 현장이다. 현장에서 취재된 사실(Fact)과 수집된 영상 (Video)에 의미를 부여하여 재구성하는 것이 방송뉴스 생산과정이다. 그런데 현장취재의 한 축인 보도영상조직이 붕괴되면 뉴스 제작 시스템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방송뉴스는 일반 방송프로그램과는 달리 속보적인 속성이 강하다. 당일 일어난 사건을 신속하게 취재하여 의미를 규정하고 현장의 영상과 함께 생동감 있게 재구성하는 것은 고도의 복잡성과 숙련성을 요구한다. 더욱이 뉴스라는 ‘공공재’의 특성상의 과정에 엄밀한 ‘사실 확인’과 엄격한 ‘윤리적 규범’을 준수해야한다. 따라서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뉴스의 신속성, 정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뉴스제작 과정의 분업과 협업이라는 효율화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보도영상조직의 붕괴는 취재, 영상, 편집의 전문가 집단이 일사분란하게 각자의 역할을 책임지고 협업하여 뉴스를 생산해내는 기본적인 뉴스제작기능을 불구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영상기자가 자기의 업무에 책임을 지고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열외 시켜 버리는 것이다.   보도영상조직의 붕괴는 뉴스생산시스템의 붕괴뿐만 아니라 뉴스 생산자가 지켜야할 가장 소중한 규범인 저널리즘의 가치 역시 붕괴시킨다. 뉴스조직은 다른 기업조직과 달리 구성원들이 일반 노동자가 아닌 특별한 지위를 가진 기자들이다. 기자들이 갖는 특수성은 그들이 개별적으로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생산해 내는 뉴스가 일반 공산품이 아닌 뉴스라는 특수한 ‘공익적 의미구성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들은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또 윤리적, 기술적으로 ‘저널리즘’ 이라는 뉴스 생산과정의 규범을 준수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자신이 생산한 뉴스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뉴스조직 역시 그 사회의 부분이므로 그 생산과정이 사회와 경제적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뉴스생산과정에는 생산의 효율성을 위해 통제하고자 하는 관리자와 독립성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현장 기자들 간에 긴장과 갈등이 상존한다. 뉴스의 생산과정은 양자 간의 갈등과 협력 타협을 거치면서 수행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보도영상은 매우 중요하다. 방송뉴스의 특성상 ‘시각적 이미지’의 ‘의미화 과정’은 중요한 저널리즘의 생산과정이고 이 역시 치열한 갈등과 긴장을 통해 완성되는 저널리즘의 활동이다. 보도영상은 그 자체로 사실과 왜곡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보도영상조직의 해체는 단순히 기능적 파괴일 뿐만 아니라 보도영상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 기술적 저널리즘의 역할을 배제시켜버린 것이다. 이는 보도의 공정성, 객관성, 사실성, 공익성 등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렇듯 보도 영상조직의 붕괴는 ‘뉴스생산 시스템의 붕괴’,‘영상 저널리즘가치의 파괴’, ‘방송뉴스의 공정성 몰락’의 연쇄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방송보도의 공정성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뉴스 생산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보도 영상조직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필요하다. 또한 미디어 기술의 혁명적 발달로 인해 영상취재와 편집은 방송뉴스 제작과정 전체를 통합하는 핵심허브의 기능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상취재와 편집의 융합과 일원화가 가능한 통합된 보도영상조직이어야 한다. 다양한 영상취재와 편집에 첨단 장비와 기술이 도입되고 있는 시기에 보도영상의 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영상기자가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관리시스템의 영상조직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공정한 뉴스를 만들기 위해 취재기자들과 건강하게 협력하는 뉴스제작의 협업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서로가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보도영상부문은 공정방송의 초석을 다시 세우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다. 잃어버린 방송보도 10년의 암흑기를 극복하고 뉴스시청자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 우리 영상기자들은 좋은 뉴스 제대로 된 뉴스조직을 만들어야할 의무와 사명이 있다. 책임지는 보도영상조직 재건을 통해 방송 뉴스정상화와 공정보도 강화에 응답할 때이다. 최경순 / MBC
    2018-04-26
  • 그들은 왜 조용필을 불렀나
    <조용필 평양공연 제작기 3> 그들은 왜 조용필을 불렀나  기립박수  공연시간이 30분 전으로 다가왔다. 무대 뒤 대기 석에서는 최종점검 회의가 열렸다. 수많은 무대에 선 조용필이지만 오늘만은 긴장된 모습이었다. 다 시 한번 순서를 확인하고 가볍게 몸을 푼 조용필이 스태프들에게 외쳤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거야. 화이팅!” 공연 시작 3분 전, 조용필은 불 꺼진 무대에 조용 히 올랐다. 반주자인 그룹‘ 위대한 탄생’과 두 명의 여성 코러스가 양편에 자리를 잡고, 조용필은 가운 데에 섰다. 반투명 커튼 너머로 보이는 관중들의 표 정이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실내경기장을 개조 한 급경사의 공연장은 가장 가까운 관객과 무대의 거리가 3m밖에 되지 않았다. 관중의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였다. 무대 위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딱딱 하게 굳어 있었다. 커튼 저편의 사람들도 긴장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관객은 모두 7천여 명. 문화성 소속의 예술인과 통일전선부, 국가보위부 구성원들 이라고 했다. 예술인은 배우, 가수, 대학교원(교수) 등이었다. 실제 유명 공연단의 가수나 영화에 나온 배우들의 모습도 보였다. 공연에 앞서 윤현진 아나 운서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에서 온 SBS 아나운서, 이곳에서는 방송원이라고 하죠, 윤현진이라고 합 니다. 반갑습니다.”  그러나 박수 소리마저 긴장 속에 파묻혔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드디어 이글거리는 태양을 묘사한 거대한 영상이 무대 뒤에 나타나고, 체육관 구석구 석에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입체음향이 폭발음처 럼 터졌다‘. 태양의 눈’ 영상과 음악이 체육관 전체 를 압도했다.   ‘어두운 도시에는 아픔이 떠 있고, 진실의 눈 속 에는 고통이 있고….’  조용필의 목소리가 조명을 타고 공간을 파고들었 지만 무대 앞의 모습은 변화가 없었다. 이제 관객들 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히트곡‘ 단발머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가 이어졌다. 빠른 템포로 관객들 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이어서‘ 친구여’의 편안한 리듬으로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이어 부른 노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그 겨울의 찻집’. 북 한에서도 잘 알려진 노래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 기 위한 배치였다. 그러나 평양 관객들의 표정은 여 전히 굳어있었다. 관객들의 반응에 조용필과 위대 한 탄생은 당황했다. 거울에 비친 낯선 얼굴을 쳐다 보듯 어색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조용필의 노래에 이런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구나.’  무대와 관객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꿈’을 부를 때부터 조심스럽게 따라 하는 관객이 나타났다. 열창을 마친 조용필이 잠시 호흡 을 가다듬는 동안 윤현진 아나운서가 다시 등장해 긴장이 덜 풀린 조용필에게 다가갔다.   “지금 느낌이 어떠세요?”   “지금 느낌이요…. 어렵습니다. 저도 음악 생활을 굉장히 오래 했습니다. 제가 37년을 음악 생활을 했습니다만, 나이가 지금 40이거든요”  소박한 농담이었다. 남한 정서로는 썰렁하기까지 했는데, 관객들 사이에서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 왔다. 이때부터 무대 위나 객석이나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 북한 가요‘ 자장가’를 부를 때는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조용필은 계속 해서 북한 가요‘ 험난한 풍파 넘어 다시 만나리’를 불렀다. 이때 우리 카메라가 객석의 한 젊은 여성에 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녀의 눈 주위는 곧 불그스레 해졌다. 눈물이 그녀의 분홍빛 한복 위로 떨어졌다. 이윽고 무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손짓은 무대와 교감이 이루어졌다는 신호였다.  이날의 클라이맥스는 가곡‘ 봉선화’였다. 일부러 조용필은 두 옥타브 높은음을 선택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인생의 간난신고(艱難辛苦)가 담긴 듯한 조용필의 깊은 목소리에 관중들은 호흡을 멈춘 듯 무대를 응시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봉선화’만을 들어왔던 관객들에게 조용필의 봉선화는 하나의 파격이었다.   22번째 곡인‘ 꿈의 아리랑’을 부를 때는 무대와 객석이 완전히 벽을 넘어‘ 정서적 소통’을 하고 있었 다. 나는 화사한 분홍빛 한복을 입은 젊은 여성이 마치 코스모스처럼 맑은 미소로 답하는 모습, 30 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행복감에 젖어 즐거워 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남쪽에서 온 한 남자 가 수의 독창으로 시작된 공연이 남북이 어우러진 합 창으로 끝맺은 것이다. 커튼이 내려왔지만 관객들 은 어느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앞뒤 눈치 를 보던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기립박수를 쳤다. 마 지막 앙코르곡은 몇 시간 전에 잠시 연습했던‘ 홀로 아리랑’이었다. 평양 관객들의 호응에 대한 보답이 었다. 조용필은 어떤 노래로도 평양의 관객과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무대와 객석은 맞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은 이번이 마 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무언의 다짐이었다.     조용필은 왜 평양관객 앞에 섰나  조용필 공연은 시청률에서도 성공적이었다. 시청 률 조사기관 TNS의 조사에 17.9%의 남한 시청자 가 방송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혁명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지는 조용필의 목소리를 들었 다. 정확히 말하면 조용필의 노래가 휴전선 이북에 서 미치는 효과를 직접 목격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 론 그 효과는 바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남한의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필의 말대로‘ 음악은 통한다’ 는 것을 신뢰하고‘, 음악의 힘으로 남북한의 정서적 이질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공감했다.  따로 9월 4일 밤 11시‘ SBS 스페셜’ 시간에‘ 조용 필, 평양에서 부르는 꿈의 아리랑’이라는 별도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레이션을 맡은 성우 송 도영 씨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긴장감을 유지하 면서도 시청자들의 감성을 적절히 자극했다는 평 가를 받았다. 조용필의 시선이 5.1경기장에 고정되 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는 팬들의 의견도 있었다.  공연 바로 다음 날 한 인터넷 매체에 비평기사가 실렸다. 대중문화평론가인 모 대학교수는‘ 북한 관 객을 배려하지 않은 조용필의 레퍼토리 때문에 북 한 관객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 나 앞서도 밝혔지만, 조용필이 당장 북한 관객의 갈 채를 받기 위해 평양에 간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 하면 장기적인 투자를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사실 가수가 공연장에서 관객의 호응을 얻기란 쉽다. 재 미있는 농담으로 긴장을 푼 뒤 잘 아는 노래로 호 응을 유도하면 된다.  그러나 조용필은 달랐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소 개하러’ 그 많은 장비를 들고 평양 땅을 밟은 것이 지‘, 평양 관객을 위문하러’ 간 것은 아니었다. 관객 가운데는 조용필의 노래를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 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조용필은 아는 노래로 평양 관객을 위문하기보다는, 모르는 노래를 통해 문화적인 충격을 주길 원했다. 북한 관객들의 가슴 속에 감추어진 문화적인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문화적 동질성이란 이질감의 확인과 극복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조용필 공연의 성과는 공 연장에서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양 관객이 깊은 문화적 충격에서 벗어날 때부터 서서히 나타 날 것이다.   평양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평양 관객이 라면 목소리 좋은 남한 가수가 부르는‘ 북한 노래 를 듣는 공연장’을 선택할까? 아니면 남한 가수가 부르는‘ 남한 노래를 듣는 공연장’을 선택할까? 당 연히 후자라고 생각된다. 평양 관객들은 남한 최고 가수 조용필의 공연에서 조용필의 음악세계와 거 기에 묻어나는 남한의 문화형태를 발견하길 원했 을 것이다. 평양 관객은 이질적인 문화세계를 체험 하러 온 것이지, 남북한 문화의 동질성을 확인하러 오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평양 사람들은 조용필을 통해 남조선을 보고 싶어 합니다’라는 탈북자의 얘 기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들은 왜 조용필을 불렀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용필공연은 협의가 개시 된 이래 일곱 번이나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거쳐 일 년 하고도 한 달이 더 지난 뒤에야 성사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 정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즉, 이것은 조용필공연이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틀 위에서 진행되었으며, 아울러 북한 측은 남북 간의 경색국면을 돌파하는 주요한 사업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조용필 평양공연은 정세의 영향을 받 는 종속변수이자 동시에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주요사업으로 서 독립변수이기도 했던 것이다. 북 한이 남한 가수 조용필의 공연을 요청했던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주변 정황을 볼 때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조용필 가요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개인적 인 선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당시 김정일 위원장 이 조용필의 노래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표시했 다는 사실은 현대아산 현정은 회장을 통해서도 확 인된다. 또 공연 장소를 직접 결정했다는 점도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둘째, 북한 측이 공연 개최를 대가로 방송사로부 터 받는 비용, 즉 경제적 목적으로 공연을 추진했 을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당시에는 남한 방송 사가 북한에서 방송을 제작할 때는 관행적으로 적 지 않은 대가를 북한에 지불했다. 남북문화교류에 대한 사명감뿐 아니라 방송사끼리의 경쟁의식도 한몫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런 상식은 남북관계에서는 통 하지 않는다. 그래서‘ 퍼주기’ 논란이 일고, 비용이 과다해 방송교류의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세 번째 이유는, 조용필이라는 남한 톱스타의 공 연방식에 대한 학습뿐 아니라 한류의 확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중국의 연변지역을 통해서 남한 대중문화가 서서히 북한으로 파고들었다. 북한의 대남 전문부서의 엘리트들은 교류의 필연성을 인 식하면서도 교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었다. 이들은 조용필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공연을 통해 남한 대중예술의 현주소를 체 크하고, 이를 통해 남북문화교류의 파급효과에 대 한 분석과 대응책을 마련했을 것이다.  당시 공연은 초청권이 있는 사람만 관람할 수 있 었는데, 우리 통일부 관계자는 당일 참석자 7천명 중 2천명은 대남부서인 통일전선부 일꾼, 2천명은 국가보위부 일꾼, 3천명은 문화성의 예술인이었다 고 전했다.  북한 측은 나름대로 면역력이 있는 계층 과 고급 예술인들에게 남한 대중예술을 접할 수 있 는 공식적인 통로를 만들어 주고 무대, 조명, 오디 오 장치, 음악적 성향 등의 다양한 예술적 특성을 파악하도록 했다고 생각된다.  북한이 조용필 공연을 유심히 관찰했다는 증거 는 7~8년 뒤에 나타난 모란봉악단의 공연 속에서 확인된다. 모란봉악단의 주요공연은 그들이 처음 에는 공연장소로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던 류경정 주영체육관에서 개최되며, 그들도 조용필 공연처 럼 LED 백 스크린을 활용한다. 그리고 조용필 공 연 때 처음 선보였던 종이꽃가루를 그들도 공연 피 날레 때 사용한다.  최고지도자의 개인적 요구, 정치적인 목적, 경제 적 이득 등을 염두에 둔 다목적 사업인 것이다. 이 것이 바로‘ 북한식’ 대남교류사업이다. 그런데 여기 에 비해 우리는 너무 단순한 목적으로 접근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노련한 프로와 순진한 아마 추어의 만남이라는 지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 리는 우리 식의 교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백 명이 넘는 가수, 매니저, 분장사, 의상코디, 연주자, 아나운서, 방송PD, 작가, 카메라맨, 엔지니어, 운전 기사, 행사기획자, 무대디자이너, 무대장비기술자, 특수효과맨, 오디오 전문가, 조명감독, 무대연출자, 방송기자, 카메라기자, 신문기자, 방송사 경영진, 여 야 정치인, 고급 공무원, 의사, 시민 단체 대표, 항 공기 조종사, 승무원 등 정말 여러 직종의 사람들 이 평양 땅을 밟고, 평양 사람들을 만나 짧은 시간 이나마 나름대로‘ 교류의 전도사’로서 역할을 수행 한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문화공연 교류 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북한 측의 교류목적과 남한 측의 목적이 굳이 같을 필요는 없다.  상대가 있는 사업이라면, 어차피 다양한 구성원이 품은 목적의 식이 꼭 같을 수도 없다. 하물며 반세기 분단 과정 에서 적대적 대결의식만 키워온 남북 간에서야 얼 마나 합치된 이상을 도출할 수 있으랴? 비록 동상 이몽이지만 최대공약수를 도출하려는 성의와 노력 이 중요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 이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오기현/전 한국PD연합회장,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위원장 
    2018-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