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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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노이 회담, 그 기억의 단편
    하노이 회담, 그 기억의 단편       호텔, 양국 정상의 잠자리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예정되었던 날짜보다 2주가량 이르게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취재는 정상들의 유력 숙소지, 회담 장소 등이었다. 멜리아, jw메리어트, 메트로폴 하노이, 인터콘티넨털 레이크사이드, 크라운 플라자, 팬 퍼시픽 등 전부 나열하기도 벅찬 이 호텔들 모두 하노이 내에 위치해 있다. 서울에 있는 호텔들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북미 정상이 묵을 수도 있는 이 호텔들을 전부 뒤졌다.    국내 다수 언론들의 동선이 대부분 겹쳤다. 국내에서 두 정상의 유력 숙소 후보지를 기계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이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 컨벤션 센터(NCC)는 유력 회담장이라는 이유로 야외스튜디오 섭외 장소 1순위가 되었다 - 하지만 NCC에서는 끝내 회담이 열리지 않았다. 영빈관, 북한대사관 등도 취재진들로 붐볐다. 소형캠 혹은 몰카를 든 취재진들은 호텔들 로비나 국가 컨벤션 센터 등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궁금증이나 취재 열기와 정반대로 양국 정상의 숙소에 관한 어떠한 내부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회담 며칠 전까지 회담장 유력지 보도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하노이로 지정되기 전에는 다낭이 유력하다며 (오보 아닌) 오보를 쏟아내고 유력 호텔 앞에는 어김없이 라이브 연결이 전파를 탔다.    회담의 예상 논제, 협상 성사 가능성 등 주요 내용들은 소홀히 다뤄졌다. 그 빈자리를 보여주기식 흥미 위주 소식이 채웠다. 수많은 호텔 중계엔 대부분 팩트란 게 결여되어 있고 단순한 추측, 재미 추구형 만담 등만 나열되었다.      ※ 모든 방송사가 관심을 보이므로  ※ 이목을 끌기 위한 흥미 위주의 내용    협상의 결실이 없이 북미 정상이 결별한 것 이상으로 우리의 보도 역시 어떤 결실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동당역과 국영방송사 그리고 공안    김정은 위원장이 비행기를 타고 오느냐, 아님 할아버지인 김일성처럼 기차를 타고 오느냐 하는 것도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다.    기존 싱가포르 북미 1차 회담 때 이용했던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타고 중국 내륙을 지나서 베트남으로 오는 건 북한이나 베트남에 모두 의미있는 일이었다. 55년 만에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베트남을 방문하는 기념비적인 이벤트이자 과거 김일성 주석과 호찌민 주석의 우정을 복원하는 의미까지.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이용했던 열차를 타고 김정은 위원장이 온다면 과거를 재현하며 선대의 우정을 다시금 양국이 되새길 기회가 될 터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기차 타고 온다는데, 근데 동당역이라고 중국과 베트남 국경지에 있는 그 역까지만 타고 온대”.    동당역은 하노이에서 차량으로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럼 1박 2일로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한국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출장을 왔는데 베트남에서 또다시 출장을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노이에서 동당역까지는 거리상 170km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로 상황이 열악한 데다, 대부분이 (편하고 시야 확보가 용이한) 직선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만만하지 않은 일정이었다.    4시간 걸려 도착한 동당역 앞은 이미 각국 취재진으로 장사진을 이뤘고 트라이포드 놓기 쉽지 않은 상태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기차에서 내려 나올 입구는 하나였다. 곧 모습을 드러낼 김 위원장의 예상 가능한 동선을 두고 자리 다툼이 치열했다. 촬영상 가장 좋은 자리 앞에 1차로 옹기종기 취재진이 모여 있었고, 그 자리를 놓친 언론사들이 바로 그 뒤에, 그 다음은 다시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취재 대기 행렬이 3열, 4열 계속 두터워지고 자리가 뒤로 밀릴수록 트라이포드와 간이 사다리 높이가 점점 높이 올라가야 했다. 촬영 장비를 두고 부러움 어린 말도 오갔다.    “이런 건 어디서 구했어? 나도 준비해 올 걸.”  국내 취재는 영상기자, 사진기자 공히 인정하는 현장의 룰이 적용된다. 누가 좀 더 일찍 와서 자리 잡으면 그 노력을 인정하고, 늦는 경우 좀 더 높은 위치에 설 수 있는 장비를 가지고 온다. 각사 취재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경쟁하고 또 인정하는 문화가 있다.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문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베트남 국영방송인 VTV 관계자는 취재진이 모여 있는 자리 뒤쪽으로 높은 단상을 세웠다.    “저기 자리를 잡으면 앞에 자리 잡은 취재진 때문에 밑에는 안 보일 텐데?”    다들 의아함 섞인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국내 취재진의 순수한 우려에 불과했음이 곧 드러났다. VTV의 높은 단상이 설치된 직후 베트남 공안이 나타나더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손짓 발짓(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으로 자리를 재조정했다. 애써 잡힌 취재 대오가 일거에 뒤로 밀렸다. 베트남 공안의 정리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미리 잡은 자리가 속절없이 엉키고 포토라인이 VTV 단상에 맞춰서 그어졌다. 우리 입장에서야 울분을 토할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이니!   트럼프 차량 행렬과 재밍    “아…. 중요할 때 또 깨지네”  부조와 통화하기 위해 끼워둔 이어폰에서 탄식이 들려왔다. 트럼프 대통령 숙소 앞에서 여러 번 들었던 소리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정상이 숙소에서 회담장으로 떠나기 전 숙소 앞 풍경, 그리고 회담장 풍경은 둘 다 실시간으로 전달을 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두 곳의 환경이 많이 달라 취재진은 애를 먹었다.    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 차량과 가까운 거리에서 이동하는 ‘재밍 차량’ 때문. 재밍 차량? 생소한 단어다. 이 차량은 대통령이 탄 차량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VIP가 탄 차량과 함께 움직이며 원격으로 주변 전파를 방해한다. MNG 장 비로 실시간 라이브를 하게 되면 이 차량의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밍 차량이 등장하게 되면 그 이전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자 지금 트럼프 숙소 앞으로 해서 라이브 물릴게요.”      부조의 요청에 흔쾌히 응답하고 꽤 긴 시간 동안 분주히 움직이는 경호원들과 참모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그러다 트럼프 차량을 맞이하기 직전 부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어 화면이 깨지네요.”  “네? 왜 그러죠?”  “직전까지 문제없었는데. 아, 저거 재밍 차량 때문인가, 다른 방송사도 똑같군요.”    갑작스러운 화면 깨진다는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모든 것이 재밍 차량 때문임을 알게 됐다.    “저 차가 지나가면 MNG 속도가 확 떨어지거나 속도가 아예 0으로 바뀌네!”    재밍 차량 덕분에 중요한 순간에 몇 번이나 깨지는 화면이 전송됐다. ‘한국이었으면 VIP가 지나갈 때 재밍 차량이 뻔히 있는데 이렇게 MNG로 라이브 할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북미 2차 회담은 아무 결실도 없이 끝이 났다. 하지만 이번 회담으로 북미 회담이 끝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회담들이 열릴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회담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바로 그 자리에 반드시 영상 기자들이 있으리란 점이다. 실패든 성공이든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좀 더 나은 영상 뉴스를 시청자들께 전달해드리고자 하는 바람, 또 그런 마음이다.     전범수 / MBN         
    2019-05-08
  • ‘극한출장, 베트남 2차 북미정상회담’
    ‘극한출장, 베트남 2차 북미정상회담’     ▶ 할롱베이 크루즈 투어 나서기 직전 크르주 안에서 건배를 제의하는 북한 리수 용 노동당부위원장.   ▶ 할롱베이 투어를 떠나는 북측고위급대표단. 북측대표단이 할롱베이를 찾았다는 것 은 북한이 관광산업단지를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 오전 6시, 상쾌한 아침이었다. 취재장비를 차에 싣고 하노이에서 할롱베이 어딘가로 향하는 이른 일정. 마음이 가볍고 육신이 소생하는 기분이었다. ‘중년이 되니 아침잠이 없어졌나. 이른 일정인데 기분이 꽤나 상쾌하군...’ 물론 이런 건 아니다.    2월 24일 베트남으로 출발. 하지만 실상은 ‘김정은 위원장 숙소’와 ‘미국 협상단 숙소’ 앞 길바닥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뻗치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쌀국수 - 라이브 - 쌀국수 - 몸싸움 쌀국수, 이런 과정의 반복이었다. 베트남 입국 며칠 만에 삭신이 쑤셔왔다. 아침 일찍 할롱베이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잠시 밤의 휴식을 생각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추운 겨울날 뜨끈한 욕탕에 들어갈 때의 기분? 다시 잠들 시간을 떠올리며 하루 하루를 버틴 것.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 공식 일정이 시작되는 첫날 오전.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대표단 시찰단의 일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SBS 현지 출장팀들은 위원장과 시찰단 일정 파악에 애를 먹었다. 베트남 내 한인 기업인과 대사관 등을 취재한 결과 이들이 하이퐁 경제단지와 관광지인 할롱베이를 찾을 가능성이 높았다.    취재단은 일단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할롱베이로 무작정 출발했다. 할롱베이 내에 대기하고 있다가 정보가 입수되면 붙겠다는 계획으로.    오전 8시 30분쯤(한국시간 오전 10시 30분), 취재진 일행은 할롱베이 진입 직전이었다. 마침 고속도로 뒤편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짧은 차량 행렬이 사이렌을 울리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왔구나!’  차량들은 순식간에 우리 팀 취재차량을 앞질러 경주마처럼 빠르게 질주했다.  “붙어!”    우리 차량도 그들 꽁무니에 붙어 내달리기 시작했다. 놓칠 듯 말 듯 그들의 꽁무니에 붙은 채로 가까스로 선착장까지 다다랐다. 멀리 정면으로 북한 관계자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차 안에서 레코딩 버튼을 누르고, 차 문을 열고, 달렸다. 곧바로 환영인파와 북측 촬영단, 주관방송인 베트남 VTB, 지역 사진기자들이 엉켜 붙었다. 인터내셔날 몸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이었다. 우린 북측 대표단에 바짝 붙었다. 선두에 선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얼굴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뒷걸음질 치는데 옆구리에 ‘악’ 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갈비뼈 사이로 뭔가 훅 하고 두툼한 통증이 파고들었다. 북측 영상기자가 복부를 가격한 것이었다. 북측 영사기자의 엘보우 킥이 지속적으로 날아들었다.    “저리 가라우!” (엘보우 킥을 날리며)   “아씨... 저리 좀 가라니까!”(다시 엘보우 킥.)  단잠으로 회복된 내 소중한 생명에너지가 북측 영상기자의 엘보우 킥으로 소실되고 있었다.    팔로우는 할롱베이 관광용 크루즈 입구를 지나 크루즈 안까지 계속되었다.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이 현지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건배하는 모습을 담는 중에도 북측 영상기자의 엘보우 킥은 쉬지 않고 날아왔다. 타격 부위가 정확하고 강도가 매번 같아 북한 특수부대 출신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 영상기자의 고통이여!    북측 대표단은 베트남 선상 근무원들에게 남측 취재진 퇴선을 요구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엘보우 킥을 맞고 있었다. 마침내 선내에서 쫓겨나는데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카메라를 밑으로 내렸다. 동시에 베트남 선상 근무원에게 짧은 영어를 내뱉었다.  “Wait, please. Just a moment. Can you speak English?”    물론 내 영어는 미끼이고 카메라에는 현송월 단장의 얼굴이 담기고 있었다. 배에서 쫓겨나자마자, 티브이 유로 영상을 송출했다. 중간 중간 촬영 원본이 한 번씩 출렁거린다. 27일은 모든 방송국에서 특보 방송을 내보냈지만 당시 방송시간대에는 아직 딱히 새로운 정보, 새로운 영상이 들어오지 않던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건진 소중한 단독 영상이었다. SBS만이 새롭게 입수한 영상을 내보냈다.    하노이에선 영상기자들이 하루 종일 길바닥에서 라이브 연결 등으로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만큼 부족한 인력을 짜내 내가 할롱베이로 급파된 것이었다. 그래서 더 부담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단독 영상까지 포착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 현명한 결단을 내리고 하노이 상황을 막아 준 동료들과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산 엘보우 킥에 버틴 나의 튼튼한 갈비뼈에 단독 영상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    하노이로 돌아온 늦은 밤. 숙소에서 동료들과 회포를 풀었다.  “내가 수원 사람인데 이참에 수원 왕갈비 가게나 차려볼까?”    베트남에서 정상회담 취재로 노고 많으셨던 모든 영상기자 여러분, 수고하 셨습니다.     설치환 / SBS       
    2019-05-08
  • 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아침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에 서는 날. 기자 생활 14년 동안 수없이 자료화면을 통해 보고 편집하며 만나온 그의 ‘실물’을 직접 취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주었다.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재판이지만, 오전 일찌감치 광주법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광주법원은 이미 경찰들과 전 씨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스마트폰 생중계 소리들이 뒤엉켜 귀가 따가웠다.    오후 12시가 막 넘었을 무렵, 전 씨가 탄 차가 광주 IC를 지나 10분 후면 광주법원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왔다. 현장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차량이 광주지방법원 법정동 후문에 도착했다. 차량이 보이는 순간부터 나는 뷰파인더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의 동선을 따라 팔로우 했다. 인파에 둘러싸인 차량 문이 열리고 드디어 전두환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그를 비추고, 취재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공간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압력과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음들 속에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전 씨의 음성이 이어폰을 통해 내 귀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이거 왜 이래?”    짜증 섞인 그 한 마디. 그는 그 말 한 토막을 남기고 법정동으로 다급히 들어가 버렸다. 시민들의 외침, 울부짖는 소리가 내 가슴 한 구석을 무너뜨렸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법정 내부에서 방청객들이 하나 둘 나왔다. 그들은 밖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에게 재판 분위기를 전했다. 일관되게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한 전 씨 측의 대응이 전해지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제히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자리에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전 씨가 타고 온 차량에 시동이 걸리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차량으로 움직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전 씨 차량을 따라 법정동 정문 쪽으로 향했다. 정문 주변은 이미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경찰들 뒤로 분노한 시민들이 가득 모여들었다. 거대한 그물망을 친 듯한 풍경.    법정동 정문에 전두환, 이순자의 모습이 나타나 자, 시민들은 울부짖는 목소리로 외쳐댔다.    “전두환 살인마!”  “전두환을 처벌하라!”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들은 전 씨가 탄 차량에 물병을 던지고 몸으로 차량의 앞을 막아섰다. 꽤 한참 동안 격렬한 대치가 이어졌다. 나의 뷰파인더 안에서 시민들이 탄식하고 울부짖고 있었다. 표정들을 담는데 정신이 없었다.    30분 정도가 흐른 뒤에야 전 씨의 차량은 법원 밖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 역시 뷰파인더에 묻었던 눈길을 거두었다.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 허탈감은 나 자신을 넘어 그 공간 전체를 배회했다.    39년 만에 이뤄진 전두환의 광주 방문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번에는 사과를 하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걸어온 광주시민들의 가슴에는 다시 대못을 박혔다.    역사는 한 시대가 저문 뒤에도 여전히 마감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매듭은 언제나 그렇듯 단지 피해자만이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매달리고 해결하려 할 때 풀릴 것이다. 그날이 속히 오길 희망한다.     이정현 / 광주MBC       
    2019-05-08
  •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검은색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열 대가 넘는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차를 따라붙는다.  시속 100km가 넘으면서도 수시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경쟁적으로 검은 차에 필사적으로 렌즈를 갖다 댄다.”    이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 3월 11일,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날은 전두환 씨가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오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새벽부터 연희동 사저의 취재 열기는 극에 달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그를 따라가며 취재할 이른바 ‘추격조’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전두환 씨의 차를 쉽게 따라붙을 수 있을지 위치와 간격, 경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카메라 기자라면 이런 추격 임무가 낯설지 않다. 15년 차인 내 기억에도 전임 대통령의 신상에 주요한 변화가 생겼을 때 거의 예외 없이 추격조가 편성됐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도로 위 차량(혹은 오토바이) 팔로우가 매우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일반적으로 그 위험성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카메라 기자의 안전 문제(때로 이것은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취재 윤리, 법 위반 등의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날 내 취재 차량은 타사 차량에 추돌을 당했다. 당시 상황을 간단히 복기해 보면, 내가 탄 차량은 연희동을 나와 강변북로, 경부고속도로를 연이어 달렸다. 그리고 천안 - 논산 간 고속도로를 거쳐 광주에 도착했다. 도로 위 팔로우 경쟁은 연희동을 떠나는 순간부터 불붙었다. 지상파, 케이블, 종편, 신문사에 이르기까지 10대가 넘는 차량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위험한 질주를 벌였다. 전두환 씨의 차량 역시 취재진 차량을 피해 거침없이 달렸다. 중간에 잠시 휴게소에서 머무르려고 하다 포기하고 다시 백수십 킬로의 시속으로 곧장 달아나기도 했다.    사달은 광주 시내에서 일어났다. 법원 근처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 있는데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며 추돌이 벌어졌다. 탑승자 전원이 매우 강한 충격을 느꼈다. 문제는, 그런 사고 상황에서도 한가롭게 차를 세우고 사고 수습을 할 형편이 못됐다는 데 있다. 협회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순간 우리 중 누가 한가롭게 사고 수습을 하고 있을까? 전 씨의 법원 출두 현장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에야 추돌 가해자, 피해자 양측이 만났다.    그날의 피해자는 우리 차량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언제든 가해자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현재까지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고 사실은 도로 위 위험한 질주를 해야 하는 한 우리 모두가 잠재적 가해자들이다. 서글픈 일이다.    나중에 차를 세우고 보니 우리 차에서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수십여 차례 브레이크를 밟아 패드가 타 버린 것이다. 실제로 광주에 도착할 무렵 제동하려고 할 때 차가 밀리는 현상이 지속됐다.    차량 추적에는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선루프를 열고 상반신을 밖으로 내고 찍을 때 혹여나 브레이크를 밟거나 요철 구간에서 차량이 흔들리면 허리에 강한 충격을 직접 받는다. 규정 속도를 무시한 질주 경쟁은 어느 누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실제로 사고는 이제껏 빈번하게 일어났다. 우리 회사 내에서만 해도 차량 추적으로 인한 사고가 이미 두 차례 있었다. 사고를 당한 후배 기자들은 입원을 했다. 후유증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엇보다, 모두가 간과하는 한 가지가 있다. 이런 추격전에서 가장 극도로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한 사람, 바로 운전기사다. 우리가 흔히‘ 형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기 일이란 이유 때문에 위험한 곡예 운전을 하고 있다.(거의 강제에 가깝게.) 취재 차량들의 선두 경쟁 질주 속에서 급제동, 급가속이 수시로 일어난다. 영상기자가 좋은 앵글을 잡고, 돌발상황을 포착하는 데 충실한 조력자가 되려 이들이 싫든 좋든 과격한 방식의 운전을 하고 있다.    영상취재 자체가 우리 일이고 우리 중 누구도 어느 현장, 어느 상황에서든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험한 차량 추적, 도로 위 팔로윙을 사명감이나 의무감만을 이야기하는 일은 이쯤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 이는 너무나 무책임하며 비도덕적이다.    이번 전 씨 차량 팔로윙 과정에서 내가 탄 차량의 추돌 사고가 각사에서 꽤 언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날이 갈수록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고 점점 더 취재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지만 목숨을 건 외줄타기는 멈춰져야 한다. 사람이 하나 불구가 되거나 죽어야 멈추겠는가? 적어도 우리 협회원사들만이라도 도로 위 불법 추적 취재는 금지하자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언론사 차량의 사고가 일반시민 차량의 2차, 혹은 3차 피해를 부를 수도 있다. 언론사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취재 방식은 하루 빨리 중단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각사의 논의와 합의가 절실하다. 협회원들의 중지, 과감한 결단을 제안 드린다.      양두원 / SBS       
    2019-05-08
  • 나열하려는 욕망의 바닥
    나열하려는 욕망의 바닥      하루 중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난도 높은 일이다. 어떤 사건이 뉴스 가치가 높은가? 누가 혹은 누구의 말이 오늘 더 집중 조명될 필요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고 대중이 이에 어떻게 반응할지 헤아리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선택에는 위험이 따른다. 선택은 모험이다. 그것은 마치 룰렛 게임과도 같다. 이른바 백화점식의 ‘나열 뉴스’는 선택의 이러한 위험성을 제거한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 그것은 업자들에게 다분히 매력적이다. 나열은 안정을 추구한다. 거기엔 모험이나 살을 베는 평가가 없다. 보기 좋게 나열된 사건들의 천국에서는 그 누구도 하나 혹은 둘을 선택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    나열 뉴스에서 문제는 오직 어떤 순서로 나열하는가에 있을 뿐이다. 먼저가 있고 나중이 있을 뿐이다. 순서(어느 꼭지가 먼저, 어느 꼭지가 나중), 결핍(어느 꼭지가, 어느 장면이 빠졌는가), 추가(어느 것이 더 들어갔는가). 이것이 나열 뉴스가 다름을 흉내 내는 도구들이다.    나열은 점점 더 촘촘한 나열을 추구한다. 사건을 나열하고 종국에는 한 커트 안에서도 나열을 시도한다. 뉴스업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화면의 3분할, 4분할도 나열하려는 욕망을 반영한다. 하나의 화면조차 나열의 효율적 공간으로 배분되어야 한다. 한 꼭지엔 여러 화면이 담기고, 나아가 자막과 그래픽 등 까지 담겨야 한다. 나열이란 질서 안에서 몇 개가 더 나열되었는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헬리캠 : 더 많이 보여주려는 욕망    나열은 취재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어느 곳에나 카메라가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나열 뉴스의 카메라가 일하는 방식이다. 10개의 카메라보다는 100개의 카메라가 낫다. 두 군데의 포인트보다 네 군데의 포인트가 더 심혈을 기울인 증거가 된다. 중요한 일, 강조하고 싶은 것일수록 더 많은 카메라가 동원된다. 누가 더 다양한 장면을 포착했는가? 누가 가장 희소한 영상을 소유하고 있는가? 이 게임은 영상기자들의 과중한 노동을 당연시할 뿐만 아니라 찬양한다. 누가 더 깊이 갔는가, 가 아니라 누가 더 넓게 퍼졌는가, 가 중요해진다.    헬리캠 영상은 더 높게, 더 넓게, 더 많이 보여주려는 욕망을 반영한다. 우리 중 누구도 헬리캠 영상이 거기 왜 필요한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도로, 인파, 대자연, 어디든 헬리캠을 띄운다.    새의 시선은 인간의 관점에서 괴이하다. 인간은 새의 시선을 얻기 위해 산, 높은 구조물 등의 위에 올라가거나 비행기를 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손쉽게 새의 시선을 얻는다.    우리 눈에 익숙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고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것은 수많은 요소를 일시에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헬리캠은 더 넓게, 더 많은 것을 담고자 하는 욕망을 반영한다. 이것은 나열 뉴스의 끝판왕이다.     김정은 / 편집장       
    2019-05-08
  • 헬기 위 영상취재, 매년 반복되는 풍경
    헬기 위 영상취재, 매년 반복되는 풍경     헬기 위 영상취재    몇 달 된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지난 2월 1일, 수도권 상공에 헬기 2대가 떴습니다. 매년 한다는‘ 경찰청 설 명절 고속도로 교통상황 및 귀성길 장면 취재’를 위해서였습니다. (상황이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시죠?) 매년 연례 행사(?)처럼 치르는 것이기도 하고, 또 2월 1일이면 아직 연휴 전이라 아직은 본격적인 정체가 이어지기 전이라 짐작해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현장에 갔습니다. 올해 설 연휴는 (2일부터 6일까지) 예년보다 비교적 긴 편이어서 귀성 차량이 좀 더 분산되리라 생각도 했습니다.    오후 2시쯤 노들섬 헬기장(집결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현장에서 담당 경찰들이 기자들을 상대로 간단한 신원조회를 했습니다. 어느 경찰관이 말하더군요.“ 매년 그렇지만 우리 경찰 헬기 잘 좀 찍어주셔야 합니다.” (그 소리에 갑자기 혈압이 확 오르더군요. 내가 명절에 경찰 헬기나 찍으러 다니는 사람인가?)    2시가 훌쩍 넘어가는데 정작 우릴 태울 헬기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이런저런 상념이 들더군요. 헬기가 문제없이 잘 뜰 수 있으려나? 하늘 위에서 별일 없겠지... ?    이윽고 헬기가 도착했습니다. 영상기자(종편포함) 7명과 사진기자 8명은 각각 2대의 헬기에 나뉘어 탑승했습니다. 최근 해병대 헬기 등 몇몇 사고들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 긴장감을 가졌습니다. 프로펠러가 돌고 헬기가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며 상공에 올라가니 바람이 심하게 불더군요. 기체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안전벨트를 매고 착석한 상태였지만 서로를 쳐다보는 눈길에서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30분쯤을 날아 드디어 저 아래로 기다란 용의 몸체와 같은 서해대교가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내 7명의 기자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 뛰어다니는 경쟁이 좁은 헬기 안에서도 벌어질 줄이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입니다.    뷰파인더에 얼굴을 묻고 정신없이 일하는 동안 불안도 상념도 모두 잊었습니다. 웃픈 일입니다. 헬기에 탄 것만으로도 피로도가 높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일 텐데 정작 일할 때만큼은 머릿속이 아주 깨끗해지니.    취재를 마치고 헬기가 다시 노들섬을 향해 복귀하는데 멀리 고속도로에 긴 병목현상이 발생했더군요. 신갈 JC 부근에. 차들이 벌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채 서행하고 있었습니다. 평일 저녁 퇴근 차량 행렬에 더해 긴 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습니다. 마침 옆을 보니 우리가 탄 헬기 오른쪽에 다른 헬기 한 대가 우리와 동일한 높이로 떠 있더군요. 아마도 사진기자 헬기에서 우리 취재진 헬기 모습을 담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리도 상대 헬기 모습을 물론 담았죠.) 뜻하지 않게 취재진이 홍보에 동원된 듯해 약간 씁쓸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으니.)    설날(구정) 귀성 풍경 스케치, 고속도로 정체 소식. 그림도 비슷하고 내용(말)도 비슷합니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뉴스, 이런 방식의 취재 노동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년 경찰 헬기에 올라타 그 안에서 행하는 위험한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좋은 정보, 유익한 뉴스인가?    물론 귀성길 고속도로 정체, 귀경길 현재 교통상황 등이 어떤 시청자들에게는 중요한 뉴스일 수도 있습니다. 와, 많이 막혔네. 지루하겠어. 그런 생각을 들게 하고,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에 금과옥조가 따로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상기자들이 매년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헬기 촬영을 감행하는 풍경이 어떤 측면에서는 썩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의 첨단 기술로 미뤄볼 때, 또 대형 TV 화면으로 비칠 영상의 미적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은 여러모로 불완전합니다. 그 영상이 정 필요하면 경찰청 화면 협조를 따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내용의 핵심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어느 구간의 차가 막힌다’ 에 있습니다. 관행에 의한 행위의 반복, 고민 없이 그저 ‘으레 했으니까 그냥 해’ 식의 워크플로우. 어떤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젠 이러한 관행적 촬영에 관해 이야기 좀 나눠 보고 싶습니다. 과연 이것 말고 다른 방식은 없는가? 또 이런 식의 뉴스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영길 / OBS     
    2019-05-08
  • 기독교계 뉴스 취재 현장의 실상
    기독교계 뉴스 취재 현장의 실상     기독교 뉴스    CBS 뉴스는 기독교계 내부의 일반적인 영역만을 다루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이슈와 사건들이 한국 기독교계를 통해 어떻게 재해석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룬다. 교계 언론으로써의 감시, 균형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기독교계 내부의 사건만 집중하지 않고 세상과 교회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 이것은 아마도 CBS 뉴스가 타 교계 방송사와는 다른 점이기도 하다.    교계 뉴스를 취재하다 보면 종종 웃지 못할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보통의 취재 현장에서는 카메라 위치 교대, 포토라인 형성 등에 대한 암묵적인 룰이 있지만, 교계 취재 현장에서는 그런 룰을 기대하기 힘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칭(?) 기자들도 자주 만난다. 그들은 보통 포토라인 개념조차도 무시하고 본인이 목사라고 큰소리친다. 막무가내다. 처음엔 너무나 막막했는데 이제는 이러한 상황, 이러한 사람들 역시도 우리 일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흔히 ‘봉고부대’라고 부르는 사이비 언론인 조직도 있다. 교계의 여러 교단이 주최하는 기자회견 성격의 장소에 몰려다니면서 취재하는 흉내만 내다가 마지막엔 주최 측에 ‘흰 봉투’를 요구하는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이러한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취재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곤욕일 때가 많다.    취재가 가장 까다로운 곳 중 하나는 역시 사이비 이단이다. 사이비 이단 취재는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증거가 되는 폭행과 폭언 등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비상식적이고 폭력적인 이들에게 휘말리지 않기 위해 우린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이비 이단들은 사회 기본 조직인 가정을 파괴하는 반사회적 집단이다. 자신만의 믿음이 확고해 (우리 같은) 언론은 기본적으로 배척한다. 그들의 실상과 반사회성,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 우리 일인 만큼 우리 역시 현장을 피하지 않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취재 현장이란 것 자체가 늘 예측할 수 없는 위험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 중심에 영상기자들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고 진실과 정의 구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아모스 5:24)’는 성경 말씀처럼 언론인으로서, 영상기자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매 순간 다짐한다.     최내호 / CBS
    2019-05-08
  • 다시 찾아온 기회 그리고 설렘
    다시 찾아온 기회 그리고 설렘        2017년 4월 KBS 대전방송총국을 떠나 인구 10만의 작은 시골도시 충남 홍성으로 내려왔다. 내겐 입사 후 2번째 순환근무 지정이었다.    취재기자 2명과 영상기자 1명(나)이 7개 시, 군 지자체와 도청, 교육청 그 관련 기관들을 모두 커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리포트 취재와 제작에 정말 물 흐르듯 소리 소문 없이 휘리릭 2년이 지나갔다. 시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약간의 여유도 없이.    2003년부터 시작된 영상기자로서의 삶! 나도 벌써 17년 차 영상기자라니 세월의 흐름이 알 길 없이 참 빠르다는 것을 새삼 뒤 돌아보게 된다.    1년 365일,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또 취재를 했다. 취재데스크에 의해 선택된 아이템을 영상 데스크의 배정에 따라서. 언제 했을지 모를 비슷한 아이템의 더미 속에서 늘 새로운 것을 찾아 그렇게 열심히 일했다. 가끔은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도 하고, 일 외 활동을 통해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 스스로 이 일에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는가? 또 언젠가부터 난 공식화된 정형적 영상 구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지는 않았는가? 의문을 떠올려 보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장비도 사용해 보고 영화, 다큐멘터리, 해외 뉴스 등도 찾아 보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최선이고 이것이 최고야. 사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에 젖어 하루하루 타협하며 살아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최고이며 무엇이 새로움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우연히 6년 전부터 떠밀리듯 시작하게 된 ‘영상뉴스 시리즈’, 또 직접 연출한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던진 첫 물음이자 숙제였다. “정말 할 줄 아는 것이 리포트 취재, 제작밖에 없는가?” 한정된 공간 속, 한정된 사람들과 한정된 일에 치여 살면서 나는 어떤 늪에 빠져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로소 이 도전을 통해서 새로움 그리고 큰 행복을 느꼈다. 물론 시련도 많았다.    내 일과 임무에 대한 장애물을 뛰어넘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고 또 다른 세상을 생각할 수 있었다. 나에겐 기회이자 설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2019년 4월 1일, 순환근무를 끝내고 난 다시 대전으로 돌아간다. (우연히도 기회가 다시 왔다.) 5년 전 경험한 큰 새로움을 다시 한번 느껴 볼 참이다. 가끔 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을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할 생각이다. 잘 되든 잘 안되든 나에겐 짜릿하고 즐거운 도전이 될 테니까.    지금 나는 다시 설렌다.     심각현 / KBS대전
    2019-05-08
  • 뉴스는 건축이다
    뉴스는 건축이다     국회 의사당 기본설계    자리를 지킨 건축은 시대를 증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기호다. 시간을 거슬러, 오늘도 사라지지 않고 유구히 존재한다. 건축물을 통해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 시점의 방향성을 얻는다. 만약 영상기자가 기록한 영상을 도심 대로변에 펼쳐 놓는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것의 가치는 건축물이 지닌 가치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록된 영상은 과거를 들추어낸다. 또 과거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를 반추하게 된다. 이는 건축물의 기능과 겹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오래된 건축물을 보는 일은 오래된 이미지를 보는 것과 비슷했다. 이미지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만큼 내 일에 대한 관심은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이른바 건축물 덕후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일을 하면서 평소 보고 싶었던 건축물들의 안과 밖을 볼 수 있다는 직업적 이점이 나 같은 건물덕후(?)에게는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현장 인근에 평소 보고 싶었던 건축물이 있다면 마음이 설렌다. 그런 날은 평소보다 더 일찍 나가곤 한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기자회견 때도 그랬다. 전국이 개발 광풍에 노출된 현대 대한민국에서 적산가옥 등 일제강점기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희소해지고 있다.   국회의사당 안    현재 출입처로 나가고 있는 국회 건물을 예로 들어 보자. 건축물이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있었는데 국회 건물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국회의원들의 권위적인 태도, 불통 이미지가 국회 본청 건물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은 아닐까? 의사당 건물은 일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지하철이 생겼지만, 시민 접근성은 여전히 떨어진다. (차가 있어야 그나마 수월하다.) 정문 경찰, 경비의 풍경은 거리감을 강화하고 친숙한 느낌을 지운다. 미학적으로 볼 때 건물은 웅장할 뿐 겸손함이 없다. 돔 역시 아래 건물과 잘 어우러지지 않고 이질감을 증폭시킨다. 창문들은 건물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작아 마치 폐쇄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 폐쇄성은 내부 로텐더 홀 입구 쪽의 붉은 카펫과 화려한 바닥, 조명과 배치된다. 외부의 거리감, 폐쇄성을 고려할 때 내부는 너무 화려하고 지나치게 권위적이다.    건축물의 좋은 예로 안동에 있는 병산서원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2018년 당시 나는 민주당 경선 후보자였던 이재명 후보 취재 차 안동에 갔다. 짬이 나서 (평소 보고 싶었던) 병산서원에 들렀다. 굽이진 길을 따라 서원에 도착하니 소박한 느낌의 한옥이 몇 채 모여 있었는데 그 광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서원은 널따란 강가와 산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강학 공간이었던 건물 중앙의 입교당에 앉아 (입구 역할을 하는) 만대루 쪽을 바라보면 봄이 오는 산천이 만대루의 기둥 사이사이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연 그대로의 목재를 가져다 써 군데군데 삐뚤지만 조화로운 느낌이 운치를 더한다. 자연을 벗 삼아 만대루 마룻바닥에 앉아 책을 편 옛 선비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다. 5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건축물이 현대인에게 감격을 선사한다.   병산서원    아무 기대 없이 현장에 갔다가 우연히 건축물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나는 2012년, 부동산 담당 기자와 함께 서울 강동구에 있는 고덕 주공아파트를 찾은 적이 있다. ‘아파트값 낙폭 2년 만에 최대’ 라는 꼭지를 할 때다. 아파트를 몇 커트 찍고, 부감을 찍으러 올라갔다가 그만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매료됐다. 나도 모르게 꽤 한참 거기 서서 그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오전 내내 비가 내리다 마침 그친 시점. 녹지 비율이 높은 아파트 단지 내 거대한 순록의 나무들이 늦여름의 정취를 뽐내고 있었다. 낡았지만, 시간의 흐름이 켜켜이 박혀 마치 주름살인 듯 콘크리트 건물이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비 갠 후 햇살이 비쳐들고 그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과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40년 된 아파트의 조화. 권위주의 시대에 탄생한 성냥갑 아파트 단지에도 나무가 우거지고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40년을 함께 한 이상 모습은 그 나름의 삶과 멋이 있었다.   고덕 주공3단지 아파트 전경    흔히 건축물의 가치는 장소성, 합목적성, 시대성 등 3요소로 평가한다. 합목적성을 가진 영상, 권력에 의해 난도질당하지 않은 기자 본연의 영상구성이 필요하다. 제 장소에 잘 지어진 건축물처럼 시대를 상징하고 보전 가치를 지닌 영상을 고민해야 한다. 건축의 목적은 결국 사람들이 안락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는 공간 축조에 있다. 영상기자가 생산한 영상 역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좀 더 나은 삶, 사람 냄새 나는 영상을 향해 가야 한다.    나는 오늘도 길가는 곳마다 때론 소박한, 혹은 웅장한 건축물들을 본다. 내게 주어진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의지를 바로잡는다.      배병민 / MBN       
    2019-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