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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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헝가리 유람선 사고 취재기] 화려함 아래 잠긴 슬픔
    화려함 아래 잠긴 슬픔     ▲ 다뉴브강의 야경<사진>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의 알람을 끈다. 자연스레 화면의 연합뉴스 속보 알림을 읽는다. 지난 5월 30일 아침, 헝가리 다뉴브 강의 유람선 사고, 승객은 모두 한국인들임을 알리는 속보가 떴다. 기사를 읽고 나는 무거운 맘으로 눈을 떴다. 선박 사고, 하면 으레 세월호가 생각난다. 당시 긴 시간 팽목항에 머물며 많은 슬픔을 마주했기 때문이리라. 떠나간 아이들, 그 위에 겹치는 유족들의 모습. 다뉴브 강 소식을 듣자마자 내 뇌리에 먼저 스친 것이다.    헝가리는 직항이 없어 언론사 대부분이 한 군데씩은 경유해 헝가리로 입국했다. MBN 취재진은 암스테르담을 경유해서 들어갔다. 헝가리에 입국하기 전, 적은 취재인원으로 어떤 사안을 우선에 두고 취재해야 할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론은 역시 현장에 답이 있으리라, 하는 것뿐이었다.    헝가리에 도착해 사고 피해자 가족들의 입국 영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공항에는 내외신의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 중이었다. 가족들이 입국하는 상황에서 가장 신경쓴 것은 거리였다. 가급적 근접 취재는 피했다. 가족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이동 중에 얼굴을 가렸다. 현지에서 이미 취재진으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국은 유족 취재 시 조심해 달라는 브리핑을 했다. 우리 취재진은 유족에 대한 취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서도 유족에 대한 취재지시가 전혀 없었다. 대신 침몰 사고 현장 속보, 수색 상황, 피해 선사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 취재 관행 상 큰 변화라고 할 만한 부분이었다.    사고 현장은 실종자 수색 작업과 허블레니아호 인양 준비에 한창이었다. 헝가리 군함을 모선으로, 작은 보트들이 쉴 새 없이 오가며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MNG 현장 연결 모습이 포착되었다. 머르기트 다리 위에는 검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헝가리 시민들은 꽃과 촛불로 추모를 이어갔다.    침몰 사고의 초기 주요 취재 포인트는 수색이 이루어지는 침몰현장과 정례 브리핑이 이루어지는 신속대응 본부 2곳이었다. 그 이외에 하류 수색 현장과, 실종자들이 발견돼 현장감식이 이루어지는 곳 등이 더 있었다.    우리는 사고 현장을 우선적으로 커버하고 현재 수색이 이루어지고 있고 실종자들이 발견된 하류 지역을 집중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당국의 수색 정보가 철저히 차단된 상황에서 실종자 수색 현장을 커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아도니 지역과 굴츠라는 지명이 사고 현장에서 55km가 떨어져 있다는 것. 취재진은 현지인 코디와 함께 물어물어 어렵게 실종자들이 발견돼 현장 감식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실종자들은 인양 후 현장 감식이 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착 직후 감식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후 부다페스트로 복귀하려다가 아직 당국에서 브리핑하지 않은 추가 실종자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입수해 그곳으로 이동했다.   ▲ 실종자가 발견된 아도니-굴츠 지역<사진>    한참 수색이 이루어지는 동안 선박 인양 시점은 주요 관심사였다. 현장과 언론에서는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라 했지만 기약이 없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양을 위한 클라크 아담호는 수심이 내려가지 않아 다뉴브강의 다리를 통과하지 못해 현장 도착이 미뤄졌다. 유속이 빨라 잠수사들의 작업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클라크 아담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제 곧 인양이 시작될 터였다. 인양을 앞두고 헝가리 대테러청에서 인양 현장이 잘 보이는 곳을 언론사에 개방하되 출입인원 제약을 두겠다고 했다. 인양 취재를 위한 협회사 간 풀 구성 논의가 이루어졌다.   ▲ 허블레니아호 인양 위치풀<사진>    각사가 인양 시간대 특보를 준비 중이었다. 결론은 인양 장소를 둘러싼 위치 풀이었다. 또 허블레니아호 인양 시 MNG송출로 5개 사가 모든 영상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인양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이 짧지 않을 것이란 점이었다. 배터리, MNG의 전원, MNG 유심 용량 등이 문제였다. 배터리 문제나 유심 교체로 인해 송출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생방송 중 인 화면이 블랙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장 취재팀과 서울 제작진 간 충분한 협의와 약속이 필요했다. (실제로 인양은 8시간 가까이 걸렸다.)    풀 구성을 논의하고 인양을 앞두고 서울에서 출발한 교대팀이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인양을 지켜보고 취재하고 싶었지만 선발대에게 예정된 취재는 여기까지였다.    귀국을 앞두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사고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바라봤을 풍경이었을지 모르는 풍경이다. 통행금지가 풀린 다뉴브강에는 유람선들이 유유히 떠 있었다. 세체니 다리와 부다성, 국회의사당의 야경은 역설적이게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는 다뉴브강 아래 잠긴 슬픔이 너무 컸다.     임채웅 / MBN      
    2019-09-09
  • 홍콩, 20세기 제국과 21세기 제국 사이에 놓이다
    홍콩, 20세기 제국과 21세기 제국 사이에 놓이다     ▲ 홍콩 시위 현장<사진>.   ‘2019年 07月 27日’과 ‘21/07/2019’    홍콩과 중국은 다르다. 우선, 언어부터 본토의 표준어인 ‘만다린’이 아니고 광둥어와 영어를 쓴다. 심지어 글자도 홍콩은 중국에서 쓰이는 간체자가 아니라 번체자를 선호한다. 화폐도 본토의 위안화가 아니라 서구와 같이 달러화(홍콩달러)를 쓴다.     이와 같이 말하는 법과 쓰는 법, 화폐가 다르니, 당연히 문화적으로도 둘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날짜를 쓰는 법에서 홍콩은 동양에서 일반적인 연월일 순이 아니라 서구식인 일월년 순으로 거꾸로 쓴다. 홍콩은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고, 자동차 운전석도 오른쪽에 있다. 또 중국과 달리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대륙과는 전혀 다른 20세기를 보낸 홍콩을 같은 중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898년 홍콩이 영국에게 임차된 후 지난 100년 동안 두 지역은 전혀 다른 사건과 세월을 거쳐왔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었지만, 20년이 흐른 지금도 그 차이는 여전히 물과 기름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21세기, ‘중국’이라는 새로운 제국 앞에 선 홍콩    중국이 홍콩을 빼앗긴 계기가 된 1840년 아편전쟁은, 청나라의 아편 단속에 반발한 영국의 보복 전쟁이었다. 국민의 마약 중독을 막기 위한 청나라의 조치에 영국이 반발해 힘으로 이를 무력화시켰다. 비록 영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역사는 후에 이 전쟁을 ‘가장 불명예스러운 전쟁‘, ’명분 없는 전쟁’으로 기억한다.     약 180년이 흐른 2019년 ‘또 다른 불명예스러운 전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명분 없는 전쟁’의 칼자루를 쥔 주인공은 중국이다. ‘행정장관 직선제 거부‘, ’범죄인 송환법 제정 시도’ 등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一國兩制)’라 불리는 홍콩 자치에 서서히 영향력을 넓혀가자 홍콩 시민사회가 반발하기 시작했다. 2019년 6월 이후 수십 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홍콩의 자유’를 요구하며 저항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00년간 경험한 문화·정치·경제의 자유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유롭게 ‘페이스북’이나 ‘구글’을 이용하던 홍콩 시민이 어느 날 갑자기 ‘웨이보’ 밖에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긴 시간 동안 누린 자유와 삶을 앞으로도 보장해달라는 이들의 명분은 타당해 보인다. 이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중국 정부는 폭력과 무자비로 대응하고 있다. 청나라를 힘으로 굴복시킨 그 제국이 겹쳐지는 상황이다.     홍콩은 어디로 가는가    최루탄과 방독면, 곤봉과 벽돌, 경찰과 시위대. 홍콩 시위의 풍경은 지난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최루가스로 뿌옇게 흐려진 거리에서 간절히 자유를 외치는 홍콩 시민들의 모습은 과거 우리 사회의 모습 같아 더 안타깝다. 홍콩 시민사회도 대한민국처럼 그들의 바람을 쟁취할 수 있을까? 우리와 달리 막강한 제국을 상대로 직접 투쟁해야 하는 홍콩 시민들. 매일매일 지하철과 공항을 점거하는 시위대의 용기가 위대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고단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까닭이다. 동·서양의 문화가 절묘하게 결합하여 ‘동양의 진주’라 불리는 작은 섬에 또다시 역사의 파도가 거세게 일고 있다.     안민식 / KBS       
    2019-09-09
  • 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튀어나오고, 깨지고... 전주 풍남문 ‘안전 우려’        전주 풍남문 일부 성벽이 돌출됐다는 제보가 있었고 현장에 가 보았다. 성벽은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구조물에 가려져 있었다. 시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튀어나온 성벽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였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돌이 쪼개져 손이 들어갈 정도 틈이 생긴 데도 있었다. 성벽은 그야말로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30cm 플라스틱 자를 가져와 튀어나온 길이를 측정했고, 손을 흔들거나 손가락을 대보기도 했다. 드론을 띄워 가림막이 설치된 성벽의 전경을 담았다. 이렇게 풍남문 성벽 돌출 기사를 내보냈다.    뉴스가 나간 다음 날 선배가 찾아왔다. ‘어제 리포트에서 클로즈업 샷이 부족했다. 타사 리포트는 봤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선배가 말한 타사 리포트에는 성벽 클로즈업이 11컷이 사용된 반면 내 리포트엔 3컷이 전부. 물론 단순히 클로즈업이 정답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현장에 갔을 때 그날 핵심 주제를 화면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또 한번 느껴야 했다.    “소리와 자막 가리고 영상만으로도 이해가 돼야 한다.”    영상기자들이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 아닌가. 그 말을 실천하고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문제는 현장을 떠나고 리포트를 제작하고 나면 찾아온다는 것. 왜 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누군가 소리는 없이 화면만으로 내 리포트를 봤다면? ‘그래서 풍남문에 뭐가 문제라는 건가’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날 이후로 머릿속이 복잡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취재 현장에 서는 것이 다시 두려춰졌다. 단순히 리포트 잘 만들고 못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게 문제였다.    이전에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적었던 메모를 다시 꺼냈다. 당시 나는 꽤나 불안했나 보다. 선배들이 한 말을 자세하게 적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리포트를 찾아 모든 장면을 비슷하게나마 따라 하려고 이미지를 캡처하기도 했다. 촬영하고 돌아와서도 내 마음은 불안이 지속되는 상태였다.    ‘뉴스 시간 내에 못 만들면 어쩌지?’  ‘실수해서 방송사고 나진 않을까?’    제작을 끝내고 방송 테이프를 넘겨야 안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메모는 지난 5월 이후로는 더 이상 적혀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이때쯤 혼자서 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일에 적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리라. 그 이후 촬영, 편집이 힘들다고는 해도 조금씩 나태해졌던 건지도 모른다.    메모를 보다 보니 웬만큼 답이 찾아지는 듯했다. 안도감. 나는 무언가 놓쳤던 게 아니라 불안에 나 자신이 나름의 대응책을 찾아냈던 것이다. ‘적당히 이 정도면 돼’라는 안일한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이 쌓이고 쌓여, 방치되고 또 방치돼 성벽이 갈라졌듯이, 업무에 있어 나 자신의 문제 역시 작은 안일함이 오랜 시간 누적되어 나타난 것이 아닐까?    순간의 방심은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방송사고보다 더 큰 문제는 보도의 완성도. 영상은 고민과 취재, 생각의 최종 표현물이다. 그런 만큼 더 노력하고 한발 더 뛰며 새어나가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좌절을 찾아 사람을 만난다. 왜냐하면 그 좌절이야말로 성장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좌절이 또 찾아오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리라 다짐해 본다. 정성수 / KBS전주총국      
    2019-09-09
  • ‘기적의 생환’ 조은누리,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적의 생환’ 조은누리,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 군ㆍ경찰이 조은누리양을 찾기 위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   ▲ 지난 7월 23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실종됐다가 열 흘 만에 구조됐던 조은누리 양이 충북대병원으로 이송 되고 있다<사진>.      군·경·소방 인력 5700여 명. 군 수색견과 드론팀을 포함해 열흘간 수색 끝에 조은누리 양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실종 당시 한마음 한뜻으로 무사귀환을 염원했던 국민의 바람이 통한 걸까? 열흘간의 장마와 폭염, 악조건 속에서도 조은누리 양은 잘 버텨주었고 사람들이 ‘기적의 생환’이라고 말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조은누리 양‘ 기적의 생환’, 앞으로 실종 수색 변화 이끄나?    조은누리 양이 발견됐을 당시 나는 다른 현장에 있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휴대전화기 화면에 뜬 ‘조은누리 양 발견’이라는 문구를 보고 굉장히 놀라고 또 기뻤다. ‘의식이 있고 대화도 가능하다. ’정말 말 그대로 ‘기적의 생환’이었다.    조은누리 양이 발견되고 어떻게 열흘간 버틸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관련 후속 보도가 많이 나왔다. 태국 치앙라이 한 동굴에 갇힌 뒤 구조대가 찾기까지 열흘을 버틴 10대 소년들은 종유석에 떨어진 물로 수분을 채웠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열흘 이상 버텼던 생존자 역시 구조대가 물을 뿌려 최소한의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조은누리 양 실종 당시 날씨를 찾아 확인해 보니 총 3번 비가 왔었다. 조 양은 어쩌면 그 비를 통해 수분을 공급받아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조 양의 사례는 향후 산중 실종 수색에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당시 집중 수색 장소 범위 바깥에서 발견이 됐다. 평소 조 양의 행동과 실종 지점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을 거라 고 판단해 군·경·소방 인력이 일주일 넘게 산 전면부에 한해 집중 수색을 했다. 하지만 조 양은 가족 등과 헤어진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1.7km 떨어진 산 뒤편 능선 계곡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조 양이 열흘간 버틸 수 있던 이유, 수색 범위 밖에서 발견된 지점 등을 기록해 조 양의 ‘기적의 생환’을 ‘조은누리 백서’로 만들기로 했다. 열흘 간의 기록을 백서로 만들어 산중 실종 사건에서의 대응과 수색 주 안점 등을 정리해 비슷한 사례에 참고하기 위해서다.    끈질긴 수색과 취재    실종 이틀째부터 나는 조은누리 양 취재에 참여했다. 당시 경찰과 소방 인력이 투입돼 이미 조은누리 양을 찾고 있는 상황이었고 취재팀은 조심스럽게 어머니 인터뷰를 요청했다. 며칠 뒤 어머니와의 인터뷰가 보도되자 당사자인 어머니에 대해 인터넷 여론이 싸늘했다.    ‘핸드폰도 없는 아이를 왜 혼자 보냈는가.’  ‘아이를 잃은 엄마 같지 않게 너무 침착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었다. 인터뷰 당시 어머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다. 두 손을 움켜잡고 조은누리가 꼭 돌아와 달라며 계속 기도를 했다. 조 양의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혹시나 조은누리가 방송을 보게 되면 꼭 돌아와 달라는 이유에서 인터뷰에 응했으리라. 그러나 이와 달리 여론이 싸늘해 취재진으로서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취재팀은 주변 마을을 돌고 산과 수풀, 저수지와 주변 계곡들을 샅샅이 수색하는 현장에 내내 함께 있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났고 조은누리 양의 실종 소식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있었다. 군 인력 뿐만 아니라 충북도·청주시, 마을 주민들까지 발 벗고 나서 조 양의 수색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취재진은 매일 돌아가면서 조 양 소식을 체크했다. 지난 1일 밤에는 열화상 드론 수색팀과 함께 야간까지 같이 취재를 이어갔고 MNG(Mobile News Gathering)를 통해 현장을 보여주었다. 열화상 드론이 산 주변을 수색할 때 현장에는 조 양의 아버지가 눈을 떼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음날인 2일 오후 2시 40분경 조은누리 양을 발견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육군 32사단 박상진 원사와 군 수색견 ‘달관이’가 조 양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조 양의 상태는 의식은 있었지만 탈수 증상을 보였다. 박상진 원사는 물을 건넸고 조 양은 그 자리에서 물 5병을 먹었다고 한다. 조 양은 곧바로 충북대병원으로 이송됐고 일주일 간 치료를 받았다.    현재 조 양은 그림 맞추기 놀이와 BTS를 좋아하는 평범한 여중생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열흘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실종 사건에서는 피를 말리는 굉장히 길고 지루한 시간이다. 이 긴 시간 동안 모든 국민의 눈이 조 양 찾기 수색 현장에 가 있었다. 그러한 관심과 응원에 감동도 받았다.    해피 엔딩이어서 다행스럽고 나 나름대로 큰 보람을 느낀다. 작은 힘 하나를 보탠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조 양이 당시의 상처를 잊고 더 아름답고 멋진 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강사완 / KBS청주총국      
    2019-09-09
  • 제2의 고향 속초, 이재민들의 여름 나기
    제2의 고향 속초, 이재민들의 여름 나기     ▲ 일부 이재민들이 에어컨 고장으로 선풍기에만 의존해서 여름 나기 하고 있다<사진>.   ▲ 이재민들을 위해 조립식 임시 주택이 마련되어 있다<사진>.     강원도 속초는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 지역 순환근무 때문에 2년 동안 속초에 살면서 인연을 맺었다. 퇴근 후에 집 앞 영랑호를 산책하는 것은 당시 내게 커다란 행복이었다. 그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지난 4월 속초와 고성에 산불이 발생했다. 그곳 지리를 잘 알기 때문에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3일 간 속초와 고성을 오가는 취재를 하게 됐다. 속초 요금소를 통과하자마자 마주한 모습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덩이들과 활활 타고 있는 ‘우리 동네’였다. 그 느낌은 실로 참담했다. 불은 하루 만에 꺼졌지만 산은 까맣게 타고 집들이 전소되어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취재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넉 달이 지나고, 8월의 서울은 폭염이 한창이었다. 나는 다시 속초와 고성으로 가게 됐다. 산불로 집을 잃고 더위와 싸우고 있는 이재민들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쩌면 의식적으로 더 잊고 싶었던 기억이기도 했다. 속초, 고성 등지의 집 잃은 이재민들이 임대아파트나 인근 연수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정도의 소식은 이미 들었던 터였다. 그 이상의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더위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원래 살던 집은 복구했는지 등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속초의 장천마을. 그곳은 속초에서 지낼 때 내가 살던 곳 바로 옆 동네다. 원래 집이 있었던 자리는 공터로 변해 있었다. 그 공터가 터를 닦는 공사 작업 중이었다. 근처 50미터 거리에 주민 41명이 거주하는 조립식 임시주택 20채가 마련되어 있었다. 말은 임시주택이지만 사실상 컨테이너 박스 안에 상하수도 설비와 기본 가전만 갖춰진 곳이었다. 당일 열화상 카메라 상 외부 온도는 63도였다. 말 그대로 ‘찜통’이어서 에어컨이 없다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전기 요금을 감면받고 있는 상태이지만, 감면 기간이 지나면 전기요금 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실제로 한 이재민은 에어컨이 고장 나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고성 용촌마을 조립식 임시주택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재민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낮에는 일을 하러 나가고, 저녁엔 집집마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TV를 봤다. 하지만 오히려 열악한 상황에 적응해버린 그들의 모습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제2의 고향 속초. 바로 옆 동네 사람들의 힘겨운 여름 나기를 보며 ‘나도 어쩌면 집을 잃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불 이후 몇 달 동안 무관심했던 내 모습을 반성했다.    르포르타주 성격의 리포트를 만들고 MNG 라이브 연결을 하는 것이 당일 내 일이었다. 라이브 연결은 포인트가 문제였다. 조립식 주택 밖에서만 할 것인지. 아니면 동선을 조립식 주택 안으로까지 이을 것인지. 조립식 주택 안으로 들어가는 동선은 영상적으로 보면 더 나은 것이지만 여러 가지가 걸린다. 촬영 시 통제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그만큼 라이브를 하기엔 부담스럽다. 사적 공간을 라이브로 연결한다는 것도 영 맘에 걸렸다. 이재민의 어려움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최선인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거주 중인 이재민 분의 허락을 구하고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씬으로 최종 결정이 됐다. 방송 때문에 해당 주택에 거주 중인 이재민은 그날 꽤 긴 시간 동안 협조를 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새삼 심심한 감사와 위로를 전해야 할 것 같다.    대략 1500여 명의 이재민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산불 피해 관련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되었지만, 복구 비용이 부족해 다시 집을 짓기 어려운 이재민도 있다. 한국전력과의 손해 사정, 피해 보상 문제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내 두 번째 고향 속초.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재민들은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아침, 저녁으로 가을 냄새가 나는 요즘 그곳 이재민들의 삶이 걱정스럽다. 올 겨울 쯤엔 그들이 따뜻이 한 해를 마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권준용 / KBS      
    2019-09-09
  •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과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 추진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과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 추진 28일 광주에서 첫 세미나…“광주시민 등 국민 공감대 형성이 우선”     ▲ 지난 8월 28일 광주광역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의 공동주최로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 세미나’가 열렸다<사진>.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한원상·아래 영상기자협회)가 5·18기념재단(이사장 이철우)과 함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추진한다.    영상기자협회와 5·18재단은 지난 28일 광주광역시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위르겐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민주화에 기여한 영상기자를 선정하여 상을 수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5·18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신군부의 단속을 피해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독일 제1공영방송사인 ARD에 전달하여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기자로,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이다.    이철우 5·18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2018년 말 영상기자협회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제안해 왔다.”며 “힌츠페터상 제정을 위해 의견을 나누는 첫 자리인 만큼 현실적인 제안과 거침없는 의견 교류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한원상 회장은 “5·18광주민주항쟁은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원동력이 되었고, 이러한 힘은 한국 국민이 독재 정권과 싸워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화를 이루게 했다.”며 “힌츠 페터 국제보도상은 자유·민주·평화를 위해 노력해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부각시키고,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로 연결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상기자협회는 지난해부터 가장 뛰어난 TV 영상뉴스를 취재한 전 세계 영상기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5월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을 수여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시상 부문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인도주의적 영상에 수여하는 임팩트상 △시의성에 초점을 둔 뉴스상 △우수한 탐사보도에 수여하는 탐사보도상과 함께 세계의 자유·평화·인권·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영상기자(사망자 포함)에게 수여하는 공로상 등이다. 5·18기념재단과 공동주최로, 소요 예산 2억 원은 광주시 후원을 받는다는 구상이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 모두 공감했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신문방송학)는“힌츠페터의 헌신과 희생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저널리스트의 용기와 집념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역설하고 있다”며 “힌츠페터 언론상 제정은 여전히 독재국가에서 신음하는 전 세계 국민들에게 진실의 소중함, 언론자유의 가치를 알리는 큰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또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해 광주 시민을 포함한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또한, 전 세계 영상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보도상인 만큼 해외 언론인들과의 교류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재 조선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힌츠페터가 독일 ARD 소속 영상기자였던 만큼, 이 상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 대한 정보와 시상을 위한 기금 조성 방식에 대한 논의를 독일 정부 또는 ARD와 공유했으면 한다.”며 “힌츠페터의 가족, 친구는 물론 독일 영상 저널리스트 단체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은 이날 세미나에 대해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 자리였다.”고 평가한 뒤 “서울 등에서 한 번 더 세미나를 열자는 제안이 나와 검토를 거쳐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전남대 김영기 교수(신문방송학)의 사회로 김창룡·김성재 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송진호 한국국제협력단 상임이사, 강철수 광주전남언론학회 회장, 김학실 광주광역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김철원 광주MBC 기자, 나준영 MBC 보도본부 뉴스콘텐츠취재1부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안경숙 기자
    2019-09-06
  • 세계 자유·민주·평화에 기여한 영상기자 대상…5·18정신 세계화 기대
    세계 자유·민주·평화에 기여한 영상기자 대상…5·18정신 세계화 기대 “공신력 확보, 기금 마련 등 현실적 문제 충분히 검토해야”      ▲ 5ㆍ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힌츠페터 국제 보도상 제정 세미나에서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김창룡교수(가운데)가 발언하고있다<사진>.      지난 28일 열린 세미나 참석자들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 제안을 크게 환영했다. 힌츠페터가 목숨을 걸고 광주의 참상을 취재·보도한 ‘기자 정신’과 한국 민주화의 원동력이 된 ‘5·18 정신’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확산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제를 맡은 김창룡 인제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힌츠페터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는 단초를 제공한 언론인으로 △그의 헌신이 세계 도처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는 개발도상국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확산,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국제보도상 제정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외교 확대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재 조선대 교수(신문방송학) 는 “힌츠페터는 펜보다 강한 영상으로 5·18을 세계에 알리고 진상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라며 “힌츠페터의 이름을 붙인 국제보도상을 제정하는 것은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나준영 MBC 보도본부 뉴스콘텐츠취재1부장은 “힌츠페터는 5·18 당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대한민국 영상기자들에게 원죄를 씌워준 사람”이라며 “상이 제정되면, 수상 과정에 영상기자들의 취재와 보도 과정을 포함시켜 기자들이 바람직한 언론인의 자세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관 지원 vs 국민 모금    이날 세미나에서는 국제보도상 제정과 관련해 심사위원 구성, 기금 마련 방법, 기존 언론상과의 관계 정립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여러 의견이 오갔다.    먼저 재정 문제와 관련해 김학실 광주광역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은 “광주시의회에서는 힌츠페터 상의 존재감과 위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상의 제정에 노력할 것”이라며 “예산이나 조례를 제·개정하는 문제 등 광주시가 도와줄 부분이 있다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광주시에서 펀딩을 받기보다는 국제보도상 제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국민 모금을 시도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김창룡 교수도 “예전에 영국의 언론상을 연구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언론상이 상금을 주지 않았지만 수상 자체로 명예와 권위가 부여되더라.”면서 “관의 지원을 받아 힌츠페터상을 주는 것은 언론 정신하고 맞지 않는 것 같다.”라고 동의했다.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지자체에서 재정을 기본적인 뒷받침을 해야 안정적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광주가 (펀딩의) 주체가 되는 게 맞다고 본다.”며 “조금 더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송진호 한국국제협력단 상임이사도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이나 문화체육관광부 등 국비나 정부 기관의 출연, 광주시 예산과 시민모금 등 다양한 곳의 참여가 가능 할 것”이라며 “국제협력단은 수상 제도에 직접적인 지원을 한 적은 없지만, 상과 관련한 국제포럼 개최와 같은 간접 지원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 5·18언론상’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기존 여러 언론상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김성재 교수는 △신문 분야의 풀리처상 △국제 영상저널리즘상인 로리펙상 △방송계의 풀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 등을 소개한 뒤 “영국과 미국이 독과점하고 있는 세계 3대 언론상, 특히 ‘로리펙상(Rory Peck Prize)’에 버금가는 국제 영상저널리즘상을 제정하는 의의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이재의 연구원은 “현재 5·18기념재단이 시행하고 있는 ‘5·18언론상’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차별성은 무엇인지, 5·18언론상을 통합해 확대 개편하는 방안은 어떤지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재 교수와 송진호 상임이사도 “국내의 다른 언론상, 특히 ‘5·18언론상’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 독일 등 국제적인 협업 필요성 제기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이 전 세계 영상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인만큼 국제적인 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철수 광주전남언론학회 회장은 “국내 단체는 물론 국제적인 관련 단체와 연계해 협업해야 할 것”이라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등과 같은 탐사보도 관련 단체나 언론 연구단체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철원 광주MBC 기자도 “내년 5·18 40주년을 앞두고 독일 취재를 다녀왔는데, 힌츠페터의 미망인 등 지인들조차 영화 ‘택시운전사’를 아직 못 봤다고 할 정도로 현지에선 힌츠페터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국제보도상인 만큼 제정 단계에서부터 독일영상기자협회, 탐사보도협회 등과 실질적인 협력과 연대를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보도상 평가와 선정 과정에도 해외 언론인이나 기관 관계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야 상의 공정성과 권위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 는 의견도 나왔다.    이재의 연구원은 “수상 대상자에 대한 추천 과정을 객관화하고 수상자 선정 심의위원회를 국제적인 인력풀로 구성하여 운영하는 방안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 여론 수렴 과정 필요…충분한 시간 갖고 논의해야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이 기존의 언론상과 차별화되면서도 권위있는 상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이 필요하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김학실 교육문화위원장은 “단순히 ‘위르겐 힌츠페터’라는 이름만으로는 공신력을 얻을 수 없다”며 “국제보도상 제정 추진을 위해서는 시간보다는 방향이 중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룡 교수도 “한 차례의 세미나로 우리 사회가 국제보도상 제정의 당위성에 동의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수도권이나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도 세미나를 열어 공감대를 만들고 상을 제정하는 방식도 신중하게 시간을 갖고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김철원 기자도 “세미나에 오기 전에는 5ㆍ18 40주년에 맞춰 상이 제정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갖고 추진하는 게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상기자협회는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에 대한 공감대 확산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의 세미나 개최를 검토하고 있다.      안경숙 기자
    2019-09-06
  • 52시간 근로제 취지는 좋은데…
    52시간 근로제 취지는 좋은데… “인력 충원 안돼 업무피로도 증가…시간외수당 등 임금도 걱정”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계도기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각 방송사가 영상기자들에 대해 유연근로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KBS는 영상기자들을 대상으로 1개월 단위로 총 208시간 안에서 자율적으로 업무시간을 조정하는 선택근로제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KBS의 한 영상기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영상기자가 편집을 일부 하고 있고, 해외 출장이나 재해, 대형 사건ㆍ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정근로시간만으로는 사실상 업무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회사도 그렇고 기자들도 현재로서는 선택근로제로 가는 걸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MBC도 8월 12일부터 선택근로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MBC의 한 관계자는 “재량근로제를 원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52시간 근로제의 취지에 맞지 않게 근로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어 보도본부 전체가 선택근로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영상기자들의 경우 국회 등 출입처가 있는 경우 ‘9시 출근 6시 퇴근’을 기본 체제로 하되, 스포츠 분야 등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아침에 일이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해 출근 시간을 30분 늦춰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SBS는 KBS, MBC와는 다른 형태의 유연근무제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SBS 노조는 지난 27일 대의원대회를 열어 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한 협상 경과를 보고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회사쪽과 협상이 진행중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10월 1일 도입을 목표로 3개월 동안 유연근무제를 시행해 보고 결과에 따라 제도를 보완하기로 했다.”며 “회사측은 무조건 시행하라는 입장이지만, 유연근무제를 시행했을 때 발생할 문제점이나 보호책, 적절한 보상 체계 등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SBS의 한 관계자는 “영상기자의 경우 일부 출입처에 한해 선택근로제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며 “청와대, 국회 출입기자와 대형 사건을 취재하는 중계팀이 대상일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영상기자들은 52시간 근무제가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일자리 나누기’의 취지에는 맞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근무시간을 줄이기에 앞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방송사들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채용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SBS는 ‘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영상기자를 2명 채용했다. 반면, 정년퇴직 등으로 퇴사한 인원은 4~5명이나 된다. KBS는 최근 1년 동안 신입 5명, 경력 3명 등 8명을 채용했고, 8명이 퇴사했다. MBC는 파업 직후 지난해 3명의 인력을 채용했지만,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4명이 회사를 떠났다. 특히 MBC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영상 취재 쪽에서만 18명의 인원이 퇴직 등의 이유로 회사를 떠났지만, 정규직 신규 채용은 전혀 없었다.    SBS의 한 기자는 “유연근로제가 불가피하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인력 충원이라는 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어떤 형태도 불리하다고 본다.”며 “회사에서는 이 제도의 취지를 무시한 채 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차원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MBC의 한 기자도 “10년 전만 해도 80명 가까웠던 영상기자가 지금은 50명도 안 된다.”며 “인력 충원에 대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비상경영안을 통해 인력 감축안이 나오고 신규 채용도 최소화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근무시간 단축이 임금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기자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MBC의 한 기자는 “근무시간 단축은 결국 임금의 하락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시간외수당이 크게 줄어 실질소득에서 심각한 감소를 가져오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며 “저녁이 있는 삶을 갖는 건 좋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업무 피로도를 생각하면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KBS 기자도 “52시간 근무제가 덜 일하고 고용을 창출하자고 도입된 건데, 회사는 비용 절감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며 “월급은 줄고, 사람은 없고, 일은 타이트해지는 구조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안경숙 기자
    2019-09-06
  • “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 언론상 심사기준에 명문화해야”
    “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 언론상 심사기준에 명문화해야” 수용과 개선방향 세미나… 협회 창립 이래 처음으로 검찰 관계자 참석     ▲ 지난 5월 24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한국전파진흥협회에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수용과 개선 방향’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 왼쪽에서부터) 이효균(더 팩트 사진부장), 나준영(MBC 뉴스콘텐츠 취재1부장), 곽현자(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임연구위원), 이승선(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양재규(언론중재위원회 대전사무소장, 변호사), 김창룡(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종서( 경찰청 수사기획 계장), 이응철(대검찰청 기획조정부 정책기획과 검찰연구관), 김언경(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조태흠(KBS취재기자, 검찰청 출입 반장).      지난해 11월 발간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의 업무 흐름에 따라 체계성과 활용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교육과 다양한 홍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한원상)와 한국전파진흥협회(회장 하현회)는 지난 5월 24일 서울 양천구 목동 전파진흥협회에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수용과 개선 방향’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기존 가이드라인을 점검하고 내실화 방안을 모색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영상기자협회 창립 이후 32년 만에 처음으로 검찰 관계자가 토론자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언론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홍보 ▲가이드라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동영상 제작 및 협회 홈페이지 개편 ▲각종 언론상 심사 기준에 가이드라인 적용 명문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이드라인의 구성과 관련해서는 ▲업무 흐름 순으로 기본 골격을 구성하고 ▲업무 전반에 걸친 공통사항은 별도로 정리하여 수록하는 한편 ▲색인 작업을 통해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포토라인 패싱’으로 존폐 논란이 촉발된 포토라인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오갔다.    대부분의 참석자는 ‘포토라인’이 피의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연루된 공적 인물의 경우 국민의 ‘알 권리’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원상 회장은 “작년 11월 펴낸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의 개정 작업을 올해 마무리하고, 내년에는 영어·독일어·일본어 번역판을 제작해 배포하려고 한다.”며 “가이드라인이 성공하기 위해 검찰·경찰 등 관계있는 각 기관과 협조해서 (가이드라인과 취재 현실의) 간극을 좁혀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는 가이드라인 연구팀에서 활동해 온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대전사무소장)와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각각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경과보고 및 수정 보완의 방향’과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내실화 방안’에 대해 발제를 맡았다.    토론에는 나준영 MBC 뉴스콘텐츠 취재1부장, 이효균 더팩트 사진부장, 조태흠 KBS 기자(검찰청 출입 반장), 곽현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임연구위원,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을 비롯해 이응철 대검찰청 기획조정부 정책기획과 검찰연구관, 이종서 경찰청 수사기획 계장이 참석했다.     한국영상기자협회는 초상권 침해에 따른 분쟁이 늘어남에 따라 지난해 6월 현직 영상기자, 언론학자, 변호사 등으로 연구팀을 구성, 11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발간한 바 있다.     안경숙 기자
    201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