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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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줌인] 수색꾼에게 필요한 것, 단 한 명의 친구, 동지
    수색꾼에게 필요한 것, 단 한 명의 친구, 동지      역사적으로 봐도, 진실과 정의는 언제나 높은 곳에 감춰져 있었다. 그것이 알려지거나 폭로되면 불편해지는 이들이 높고 깊고 후미진 데에 진실을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사실일수록 우연히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거기엔 반드시 인위성(인간의 의지)이 개입되어야 한다. 숨겨진 진실이 땅에 폭로되도록 누군가 기어올라가 찾고 사투를 벌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을 수색꾼이라 부르자. 진실을 쫓는 수색꾼에게는 파헤치고 폭로하는 데 사용할 근육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무언가를 찾고 발견할 수가 없다.    진실을 찾아내려는 자들, 곧 수색꾼의 반대편에 그들을 훼방하고 무력화시키는 파수꾼들이 존재한다. 파수꾼이 지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거짓, 부정의, 부조리다. 거짓과 부정의, 부조리를 옹호하는 파수꾼이란 곧 인간의 무관심, 지독한 무지, 탐욕, 그리고 공명심이다.    수색꾼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언제나 조직이 개인보다 진실 찾기에 유리하고 효율적이란 것이다. 진실은 깊이 묻혀 있고 높은 데 감춰져 있으므로 그것을 찾으려면 지속적인 수색(한 번 하고 끝내는 수색이 아니라), 긴 시간,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손에 넣기는 어렵고, 오랜 탐색이 요구되므로 혼자가 아니라 둘, 셋 혹은 그 이상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어떤 목적, 어떤 행위가 아무리 고결하다고 해도 혼자 힘으로 어떤 일이 지속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지 한 명의 수색꾼보다 다수의 수색꾼 조직이 효율적이고 수색에도 능하다. 더 멀리, 더 넓게 나아갈 수 있고 더 오랫동안 일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하다.    참된 언론은 참된 동지로 구성된다. 감추려는 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와해시켜야 할 것도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조직이다. 감추려는 자, 거짓과 부조리의 파수꾼들은 동지애를 경멸한다. 감추려는 자, 진실이 사회에 떨어지기 원하지 않는 자들은 가장 먼저 동지의 조직을 무력화시키려 시도한다. 그들은 왜 뭉쳐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설파한다.    승진, 입신, 환상적인 보상 체계는 진실을 감추려는 자, 파수꾼들의 무기다. 그들은 그 무기를 사용해 동지애(조직)를 효율적으로 무너뜨린다.    더 잘 단합되고 더 잘 협동하는 것은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아니라 부역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높은 곳에 있는 진실을 얻기 위해 뭉치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위해 뭉친다. 그들은 무지와 무관심을 찬양한다. 그들은 진실은 너무나 멀리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먹고 마시자고 유혹한다. 그들은 늘 ‘그런 것까지는 알 것 없어’, ‘그런 깊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 라고 말한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자들이 협력하는 것이다.    세상에 진실과 정의를 찾기 위한 연대, 길고 지루한 길을 함께 걷자고 하는 동지애만큼 고결한 것은 드물다. 진정한 수색꾼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평판과 기회를 잃어야 하고, 거짓과 부조리 파수꾼들의 표적이 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색꾼이 모든 것을 기꺼이 잃고, 파수꾼에 맞서는 것은 오직 ‘양심’ 때문이다. 양심은 수색꾼의 횃불이다. 양심을 지킨다는 말은 곧 한 인간의 의지가 가장 험난한 시험대 위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 / 편집장      
    2019-09-09
  • 무분별한 운영, 드론의 위험성
    무분별한 운영, 드론의 위험성       ▲ 지난 7월 18일 한 방송사에서 대구 스크린골프장 화재현장을 감식하고 있는 소방대원의 가까이에 드론을 날리고 있는 장면      4차 산업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는 드론은 손쉽게 온·오프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소방에서는 화재 발생 시 드론에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해 화재 진압 경로 계획 및 상황에 대한 판단에 활용할 수 있다. 경찰도 실종자를 수색하거나 위법차량을 적발하는 데 드론을 활용한다. 드론 택배, 드론 택시 등의 이야기도 나온다. 드론을 활용한 전환적 풍경, 편리한 미래가 예고된다. 그러나 드론으로 인한 부작용, 사고의 위험성 등에 대한 경고는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다.    무보험 차량이라면 그 차를 안심하고 운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운전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우린 차량을 보험에 가입한다. 그러나 드론을 운영하는 사람 중 보험을 넣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드론 활용에 대한 법규의 준수, 보험 가입을 통한 대비 등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드론 사용이 확대되어 벌어질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지난 어린이날, 한 행사장에서 하늘을 날던 드론이 추락해 사람이 다치는 입는 사고가 있었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차량에 드론이 추락해 선루프가 파손되었는데 드론 주인을 찾지 못해 보상 받을 길이 없다는 피해 글도 올라왔다.    우리가 일하는 현장 상황은 어떤가? 지난 7월 대구 달서구 두류동 스크린 골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다음날 곧바로 현장 감식이 있었다. 감식은 화재 장소인 2층부터 시작됐다. 현장 여건을 고려해 방송뉴스 카메라 풀팀이 구성되었다. 현장에 들어가기 직전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공중에 떠 있다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드론을 보고 마침 인도를 걸어가던 시민이 놀라 소리를 지른 것이다. 현장이 비행 제한 구역은 아니었으나 가로수가 줄지어 있고 2층 높이에 전깃줄이 엉켜 있어 사고 위험은 현저하게 높았다. 현장에 가면 우리는 경쟁을 한다. 더 나은 영상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영상 경쟁에만 몰입되어 있으면 다른 가치들은 지켜지기 어렵다. 시민의 안전은 우리의 보도 경쟁보다 먼저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닌가? 또 사건 현장에 대한 경찰 통제 역시 우리가 따라야 할 기본적인 선이다. 사고 현장 위에 무분별하게 날아다니는 드론에 대해 다 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쟁이 아름다운 경쟁이 아니라 악취 나는 경쟁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드론에 대한 우리 내부의 사용 원칙이 필요하다.     백재민 / MBN 대구지사      
    2019-09-09
  • [초상권] 살인하면 영웅이 되는 나라
    살인하면 영웅이 되는 나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모텔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장대호(38)라는 사람이 투숙객 A씨와의 다툼 끝에 살인을 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 그는 추호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반말을 했고, 숙박비 4만 원을 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방송사 기자들 앞에서 주장하면서 “이 사건은 흉악 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이라고 뻔뻔 당당하게 대꾸했다.    언론의 보도에도 법과 도덕이 따라야 한다. 여기서 법과 도덕이란 정당성을 의미한다. 이를 쉬운 말로 다시 하자면 ‘올바 른 것’ 혹은 ‘지당한 것’을 의미한다.     살인범 장대호는 고려시대 정중부를 언급하며 “고려 때 김부식의 아들이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사건이 있었는데 정중부가 잊지 않고 복수했다"라며 살인범의 살인동기를 에둘러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살인범의 살인동기를 인터뷰하고 방송하는 이 땅의 언론은 과연 제 정신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살인이란 지구상의 어느 국가에서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이다. 어찌 그 죄에 대하여 변명이 필요하며 궤변을 대중 앞에 방송한단 말인가? 이런 살인궤변을 한 번도 아니고 반복하여 방송하는 것은 시청자의 시청권에 대한 도전이자 고인과 유족에 대한 능멸이 아닌가?    왜 국민이 그런 살인범의 누추한 변명을 여과 없이 들어야 하나? 한두 번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반복하여. 그럼 강간범에게 강간의 추억(?)을 인터뷰해서 그걸 방송이라고 해도 좋단 말인가? 그 흉측한 저승사자의 혐오스런 얼굴을 클로즈업(close-up)하여 방영해야 한단 말인가? 누가 그 흉상을 보고 싶다고 했나? 저승사자가 흉악한 얼굴을 번쩍 들고 뻔뻔 당당한 어조로 고인에게 (저승에서 또 만나서 또 그렇게 하면 다시 살해하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은 꿈에 나타날까 무서웠다.    살인자가 얼굴 들고 살인동기를 인터뷰하겠다고 동의했다면 언론이 살인범의 초상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은 방송이 언제부터 살인범에게 그렇게 호의적이고 관대했는가? 살인범에게도 살인동기를 말하도록 ‘언론의 접근권’을 공공연히 허여하자는 게 공공의 질서를 강조하는 수사기관과 언론기관의 진정한 사명이고 임무란 말인가?    하늘에서 살인범의 그 궤변을 듣고 있을 고인의 영혼과 유족의 심정을 언론은 헤아려보기라도 했는가? 가뜩이나 억울하고 분한 유족이 그런 보도에 어떤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행동이라도 하거나 분개한 시청자가 수사기관과 언론기관을 고발하여 이른바 ‘징벌적 배상’(punitive damage)이라도 청구한다면 속이 시원할까?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상습도박과 외국환거래법위반의 알려진 연예계 공인들에 대해 수사기관이 ‘포토라인’의 생략을 검토 중이라는 뉴스가 조금 전에 보도되었다.    이는 이른바 ‘초상권’에 대한 돌연변이성 신종 증후군으로서 공인의 범법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다수 시청자들을 냉소케 하고 있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아직 공개소환의 계획이 없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살인범의 살인의 추억(?)을 공공연히 방영하던 언론과 수사기관이 정작 공인에게는 ‘피의사실공표’ 를 우려해서(?) 포토라인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새빠진 궤변으로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괴물의 엉덩이에 빨간 뿔이 달린 (?) 도깨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굳이 ‘법의 지반이 자유의지로서 정신적인 것’이라는 헤겔의 법철학을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언론인들은 이런 방송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겠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찌 그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는 공인으로서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아스럽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언론의 사명은 제4부로서 입법 사법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균형 잡힌 민주적 권리구조를 견고히 하여 모든 국민에게 그런 권익의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류종현 / 전 부산대학교 초빙교수      
    2019-09-09
  • 판문점 북미정상회담과 보도영상
    판문점 북미정상회담과 보도영상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순간이 라이브로 전파를 탔다. 이전 라이브 영상처럼 정제되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TV 화면이 보는 이에게 불안감을 줬다. 생중계를 하던 뉴스 앵커는 당황해 하며 라이브 화면이 고르지 못한 것에 대해 계속 사과했다. 생경한 풍경이다.    방송 이후, 판문점에서의 북미회담이라는 세기적 이벤트를 깔끔하게 전달하지 못한 데 대해 비난이 쏟아졌다. 현업자들에게는 뼈아프지만 당연한 수순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념 전파의 도구로, 국가주도의 선전 선동 도구로 기록영화를 적극 활용한다. 이번 북미회담에서도 북한은 영상 기록에 꽤 신경을 쓴 듯 보였다. 여러 대의 북측 영상 카메라가 자유의 집 옥상 등 주요 동선마다 미리 배치되었고 2팀 이상의 ENG 촬영팀이 근접 경호라인 안에서 통제 없이 밀착 촬영을 했다. 촬영은 판문점 북미회담을 준비하는 북측에게는 경호와 의전에 버금가게 중요한 우선 사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잘 기록되어야 할 순간이었을 테니까. 이벤트 자체의 가치도 가치이지만, 그들 입장에서 인민들에게 보여줄 무엇이 필요했으리라.    미국 측 백악관 취재단의 입장은 또 달랐을 것이다. 물론 싱가포르나 하노이처럼 공식적이고 중요한 행사에서는 으레 사전에 언론과 협의하고 생중계를 준비한다. 일반적으로 백악관 공보관이 지정하는 포토라인이 있고 대통령이 지나가면 큰소리로 질문하고 먼발치서 쓸 만한 컷을 잡는다. 아주 나쁘게 말한다면 정돈되지 않은 시장판이다. 백악관과 미디어는 견제하고 감시하는 관계다. 프랜들리하지 않고 미디어를 위해 편의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알아서 취재해야 하는 환경이다.    회담 후, 우리는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두 가지 버전의 영상기록을 보았다. 사회주의 선전영화 한 편과 반대로 카메라가 흔들리고 뒤집어지는 급박한 현장 라이브.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준비와 미비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북한의 미디어는 영도자 김정은 보여주기가 중요했던 것이고 미국의 언론은 역사적 순간의 실시간 보도가 중요했다. 결국 이날 북미회담에 대한 두 풍경은 상이한 체제 하의 상이한 기록, 상이한 언론의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의 경우는 어땠는가? 회담 당시 북한과 미국 측 취재단이 아닌 한국 취재단은 접근 자체가 원천 불허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혈혈단신으로 현장을 뚫고 들어가 라이브 백팩을 짊어지고 고군분투한 YTN 박진수 기자의 현장 연결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역사적인 <판문점 북미회담>의 순간을 ‘북한 조선중앙 TV’와 ‘미국 방송사’ 제공의 영상으로만 역사에 기록하는 수모를 당할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동시대인뿐만 아니라 후대에 기록 가치가 있는 역사적 사건 현장에서 자국 취재단과 기록에 관한 협의가 제대로 없었던 부분은 매우 아쉽다. 언론이 얼마나 제기능을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별도로 최소한의 성의가 없었던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최경순 / MBC      
    2019-09-09
  • 호모 비디오쿠스는 진화 중
    호모 비디오쿠스는 진화 중      내가 KBS에 입사한 2006년. KBS 9시 뉴스 시청률은 보통 20% 초중반, 잘 나올 땐 30%가 넘었다. 2019년 현재, 시청률은 반 토막이 났다. 다행인 것일까? 아직 시청률은 1위를 고수하고 있으니.    우리가 즐겨보는 네이버뉴스에서 KBS콘텐츠의 점유율은 겨우 3%대. 디지털뉴스제작부에 몸담은 요즘 내가 매일 고민하는 지점이다. 작년 4월에 3명의 영상기자가 영상취재부를 떠나 디지털뉴스부로 왔다. 유현우, 유성주 기자, 그리고 나. 디지털뉴스 제작부는 취재기자, 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인턴 등 다양한 인력으로 구성된 곳이다. 나는 주로 데일리 뉴스를 담당하는 뉴스제작팀 소속으로 ‘케이야’ 콘텐츠를 만들고 있고 유현우, 유성주 기자는 ‘크랩’ 제작팀에서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기획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케이야’, ‘크랩’ 콘텐츠는 유튜브 ‘KBS News’, ‘크랩’ 채널에서 볼 수 있음)    집단의 힘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비디오머그, 엠빅 등과 달리 우린 현재 1인 미디어 시스템 속에서 일하고 있다. 본인의 관심 분야를 취재하거나 취재 원본을 재가공해서 콘텐츠를 만든다.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이지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다 보니) 효율성은 떨어진다. 특히 속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물론 (북치고 장구 치다 보면) 내 개인의 역량이 늘어난다는 장점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획, 섭외, 촬영, 편집, 자막 작성, 기사 작성까지 1인이 거의 다 도맡아 해야 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실제로 자막 작업과 모션그래픽만 편집자에게 넘기고 나머지는 혼자 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 스트리밍 서비스하는 디지털 라이브 진행도 개인 몫이다.      ▲ 네이버에서 기자 검색하면 나오는 네임카드    디지털 영상 콘텐츠는 디지털뉴스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지금은 영상 콘텐츠를 각 부서에서도 제작하고 있다. 정치부에서는 정치 영상 콘텐츠, 국제부에서는 국제 뉴스 콘텐츠를 생산한다. 보도영상국도 [현장영상] 위주로 콘텐츠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최상철, 조용호 기자가 인제스트 된 원본 영상을 재가공해 편집, 자막 작업, 기사 작성까지 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지만, 업무의 총량은 과거보다 늘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입사할 무렵 생겨난 유튜브는 지금 독보적 거대 영상 플랫폼이 되어버렸다. 전 세계 모든 언론사가 어떻게 하면 유튜브 내에서 자사 콘텐츠 조회 수를 늘릴까 고민한다. 디지털미디어 시청 패턴에 따라 편집 기법도 달라졌다. 내가 대학에서 배운 영상 문법도 이 세계에서는 무용지물인 듯하다. 변화가 심한 미디어 환경에서 KBS 뉴스를 살리는 방법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영상기자의 역할과 미래의 열쇠를 찾는 것이 숙제가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는 진화 중인데 우리는 과연 그 속에서 같이 진화하고 있는가. 직종 간의 벽이 허물어지는 이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 역할만 변화하고 있는 건 아니다. 리포트와 단신 기사를 주로 쓰던 취재기자들이 이젠 다양한 형태로 기사를 쏟아낸다. 포털에서 주로 보는 ‘멀티미디어 기사’에 핸드폰으로 직접 찍어온 인터뷰를 넣거나 영상물도 쉽게 첨부한다. 그 과정을 영상기자 도움 없이 혼자서 척척 해낸다. 카메듀서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제작카메라 감독도 있다.    그런 변화 속에 인력난에 허덕이는 우리 대부분의 영상기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5년, 10년 뒤 대부분의 사람이 벽에 걸린 TV를 통해 뉴스를 보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 영상기자는 무얼 하고 있을까? “결국 살아남는 종은 강인한 종도 아니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대응하는 종이 결국 살아남는다.” 변화는 우리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 우리 스스로 그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 비상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생존의 지혜가 절실하다.                                                임태호 / KBS      
    2019-09-09
  • MNG가 바꿔놓은 풍경
    MNG가 바꿔놓은 풍경     2017년 8월. ‘혹시 모르니까.’       전국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던 대한민국보다 조금 더 기온이 높은 필리핀으로 ARF(아세안 지역 포럼)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혹시 모르니까’ 하는 생각으로 MNG 장비를 챙겼다. 데스크가 먼저 ‘혹시 모른다’ 하고 이야기를 한 터였다. 잘 작동하면 OK고, 그렇지 않으면 안 써도 상관없다, 그런 공감 하에. 챙겨가는 나도, 챙겨 보내는 회사도 그런 공감대가 있었다.    현지에 도착하고 보니 각사 취재팀 모두 저마다 MNG 장비를 챙겨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허름한 쇼핑몰 구석진 좌판에서 각자 몇 개씩 선불 심카드를 구입하고, 삼삼오오 모여 사뭇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심카드를 MNG에 장착했다. ‘과연 잘 작동할까?’ 그 출장 기간 동안 아주 가끔 한 번씩 몇몇 취재팀이 라이브를 시도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도 차원일 뿐이었다. 반드시 MNG로 송출해야 한다, 하는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그래서 현장은 노트북을 거쳐 한국으로 날아갔다. 당시 분위기는 그랬다.    2018년 6월. 러시아 월드컵.                      낫과 망치가 새겨진 붉은 깃발과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2018년 6월, 내게는 러시아보다는 소련으로 각인되어 있던 러시아로 월드컵 출장길에 올랐다. 불과 1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것은 MNG가 해외 취재 시에도 ‘반드시 필요한’ 장비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각사 출장팀마다 최소 한 대씩은 MNG를 챙겨 드넓은 시베리아 땅으로 향했다. 우리의 경우 모스크바 팀은 라이브를 준비했고, 상대국 팔로우 담당팀(내가 속했던 팀이다)이 MNG를 활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당시 러시아는 이동통신 사정이 좋지 않았다. 우리 팀의 첫 취재 포인트였던 갤레인지크는 3G와 LTE가 오락가락했고 아예 이동통신망이 잡히지 않는 음영 지역도 많았다. 이미 사전답사를 마친 스웨덴 취재팀은 유선망을 미리 신청해 MNG에 활용하기로 했다. 한 달여 기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러시아 다섯 개 도시를 취재하는 동안 MNG가 많이 활용되었다. 때론 짐이 됐지만 매우 유용한 송출 수단이 되어 주었다. 영상을 노트북으로 가공해 업로드 하는 일련의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회사에서는 현장 영상이 예전보다 빨리 도착하니 그만큼 기사에 반영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2019년 2월.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회담. 지구상에서 가장 취재하기 힘든 두 나라가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회담을 열었다.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1차 회담에 이어 각 방송사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그리고 그 열기의 중심에는 MNG가 있었다. 우리 취재팀은 생중계가 많을 것에 대비하여 1팀당 한 대의 MNG와 수십여 장의 심카드를 준비했다. MNG를 이용한 실시간 해외 생중계가 어느덧 직종의 주 업무가 되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 도착한 동당역부터 그의 숙소 앞까지 수많은 내외신 취재진이 MNG로 무장해 그를 맞이했다. 가공되지 않은 영상이 찰나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한국으로 날아가고 그대로 전파를 탔다. 바야흐로 중계차를 보내지 않고, 위성을 이용하지 않고도 해외 중계방송을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달라진 일상     문제는 MNG 생중계가 현장 취재보다 더 우선시되는 해외 출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MNG는 우리의 출장 풍경을 근본부터 바꿔 놓고 있다. 출장팀을 꾸리는 최초 단계부터 MNG 중계를 위한 최적 인력, 장비 구성이 논의된다. 현지 통신 사정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 점검 사항이 되었다. 현지 공항에 도착하면 호텔로 가기 전에 심카드 판매점을 먼저 찾아야 한다. 과거엔 하지 않았던 일이 주된 업무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다가올 미래. 영상기자의 과제.     올해 봄 우리나라 최대의 화두 중 하나는 5G 통신망의 출범이었다. LTE보다 최대 20배쯤 빠르다는 그 무시무시한 녀석은 수치상 늘어난 대역폭만큼이나 우리 영상기자의 업무 현장에 앞으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모뎀 하나가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양이 늘어 장비는 더욱 가볍고 작아질 것이다. 그리고 MNG 기능은 궁극적으로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대역폭이 늘어나는 만큼 화질과 음질은 향상될 것이다. MNG 사용이 지금보다 더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반응속도가 빠르니 더더욱 생중계에 적합해질 것이며, 실시간 원격제어 기술의 발전으로 영상기자의 눈과 손을 대체할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은 거대한 흐름이어서 한번 시작되면 거스를 수 없다. MNG가 영상기자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선배들이 늘 변화에 적응해 여기까지 온 것처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 목표에 기여하도록 만들어가는 부분은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기술에 종속되어 단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쯤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속도와 편리함 이전에 영상기자가 있어야 한다. MNG를 다루는 인력쯤으로 전락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게 있다면 MNG는 영상기자들에게 매우 효율적이고 쓸 만한 장비가 될 수 있다.   ※ MNG(Mobile News Gathering)    LTE 등 무선 이동통신망을 이용해 영상과 음성을 실시간으로 송출해 주는 장치     김남성 / SBS      
    2019-09-09
  • TV, 올드미디어일까?
    TV, 올드미디어일까?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에 서는 순간마다 내가 영상기자가 된 것을 실감한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건의 현장마다 취재진이 몰려든다. 빼곡히 채워진 포토라인, 그 사이에 서 있을 때면 긴장감을 느낀다. 동시에 내가 영상기자란 것,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도.    전두환이 광주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로 향하던 날. 나는 아침부터 전두환 자택 앞에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전두환 씨는 이미 집을 나서고 없는 상태였다.     전두환을 옹호하는 보수 유튜버들이 취재진에 시비를 걸었다.  ‘있는 사실 그대도 보도하세요.’  ‘편집하지 마세요.’  ‘너희는 올드미디어, 우리는 뉴미디어!’    그 광경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냉소적인 말이긴 해도 그냥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편집과 사실 보도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우린 올드미디어가 맞는가?    입사 후에 당황스러웠던 몇몇 순간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증거품 스케치. 증거품을 만지고 던지고 하며 촬영하는 풍경이 나에게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현장에서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액션을 요구하거나 소위 그림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다. 나아가 현장은 보여줄 것이라곤 전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을 보여주어야 하는 몫은 오롯이 영상기자 책임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행위는 조작일까? 윤리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액체로 된 증거품을 그대로 놓고 찍어서는 액체의 물질적 특성을 전달할 수가 없다. 에어컨 실외기 취재를 하면서 단순히 에어컨 실외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을 느끼게 할 수가 없다. 액체를 흔들어보거나 어딘가에 따라 보여 주어야 액체의 물성을 전달할 수 있다. 에어컨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 앞에 휴지라도 대 봐야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런 액션이나 상황 설정은 과장이나 거짓, 혹은 왜곡인가?    보수 유튜버들이 말 중에서도 귀담아들어야 할 게 있다. 사실과 진실을 영상으로 제시할 의무가 내게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숙제다. 여전히 많은 질문이 미해결 상태다. 편집을 거의 거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은 사실 전달에 충실한 방법일까? 사실과 진실 전달에 가장 부응하는 편집은 어떤 걸까? 자극적으로 사고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어디까지 온당한가?    초상권과 재산권 등 개인의 권리가 높아져 이제는 현장에서 챙겨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촬영하면서 이런저런 요건을 모두 고려하는 것은 어렵지만 피해서는 안 된다. 시대는 변했다. 업무 수행 과정에서 까다로워진 것이 많지만 우린 시민들의 권리를 지켜줄 의무가 있다. 90년대 카메라 출동과 같이 유치장에 있는 사람이나 무단 횡단하는 사람을 여과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시대는 분명 끝난 것이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방송이 올드미디어가 되느냐 마느냐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과거보다 더 치밀하고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동학 / MBN      
    2019-09-09
  • 우리는 바다에 늘 손님입니다
    우리는 바다에 늘 손님입니다          “잡았다!”, “꿀맛!”.   ‘생존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모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자막이다. 문명의 손길이 덜 미친 촬영지에서 출연자들이 자급자족하고 지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제법 재미를 주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저렇게 생물을 사냥하고 요리해서 먹는 게 저 나라들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    결국, 사달이 났다. 태국에서 천연기념물인 대왕조개를 사냥하고 시식하는 걸 방송에 내보냈다가 출연자와 제작진이 태국 정부로부터 고발을 당했고, 석연찮은 해명과정에서 결국 사냥 장면을 촬영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협조공문까지 보내고도 사냥과 촬영을 한 일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런데, 사과문은 이랬다.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중략)... 대왕조개 채취 및 촬영과 관련, 현지 규정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후략)>    또 다른 의문이 하나 더 생긴다. 그 현장의 수중 촬영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물속에서의 촬영을 배우기 전에 스쿠버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수중 수렵과 채취는 거의 모든 교육단체에서 금기시한다. 국내에서 그런 행위가 수산자원관리법 위반인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 역시 금지되거나 허가가 필요한 일인 걸 절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과 환경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속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11년 전 이맘쯤 처음 바다에 눈을 떴다. 일을 위해 하게 된 만큼, 얼마 안 지나 수중촬영도 시작하게 됐다. 기고, 걷고, 뛸 수 있어야, 심지어 뒤로도 뛸 수 있어야 땅 위에서 제대로 촬영을 할 수 있듯, 물속에서도 뛰는 수준 이상으로 몸을 편하게 가누고 움직일 수 있어야 수중촬영이 가능하다. 그저 움직이는 것을 넘어, 수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 즉, (중성) 부력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갑작스러운 상승과 하강으로 인한 압력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부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과 바다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프리다이빙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인위적 호흡 장치와 부력조절 장치, 추진 장치를 가지고 한정된 시간만큼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바다에 우리는 ‘명백히 언제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어류, 갑각류들, 산호들, 해초들, 심지어 돌멩이 하나도 우리는 만날 수 없는 존재로 설계되어 있었다. 서로 접촉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던 존재들끼리 마주치면 문제가 생겨난다. 자라는 데만 족히 30년은 걸린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 산호에 마치 공룡 발자국 화석처럼 보이는 몰지각한 인간의 오리발 자국이 남겨지는 걸 보았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니 겁을 먹고 방어하는 사나운 물고기에 물려 피를 흘리는 사람도 보았다. 겁 없이 손을 뻗어 작은 복어를 만져보려다 복어가 몸을 숨긴 독 품은 산호와 히드라에 쏘여 수십 분 동안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도 보았다 (부끄럽지만 이건 제 얘기입니다).    바닷속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불청객이 된다. 질서로 가득 차있는 곳이기 때문에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함부로 손을 대거나 잡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바닷속 첫 번째 규율이다. 기억과 카메라의 메모리에 담아오기만 할 뿐, 그곳을 휘젓고 부수지 않으려고 잘 움직이고 잘 머물러 있으며 가만히 멈춰 서서 지켜볼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생물 교과서에서 우리보다 열등한 생물이라고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의 주인인 바다의 생물들을 얕보지 않고, 무엇보다 건드리거나 부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거친 파도와 조류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바다가 품을 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 밖과 달리 다이빙 중 멈춰서 가만히 있는 것은 더 힘들다. 바닷속을 느끼고 싶고 담아오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이 가만히 멈춰서서 생각해 봤으면 하는 점이 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몇 안되는 것 중 한 가지를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 속에서 말이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겠지만 물에 들어갔을 때 바로 이 한 가지를 먼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구본원 / MBC      
    2019-09-09
  • ‘보이콧 재팬’ 일본 현지 취재기
    ‘보이콧 재팬’ 일본 현지 취재기        한일 양국의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지난 7월 1일 일본 정부는 당국이 생산하는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출 규제의 주요 대상은 우리나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 소재 3가지인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수출 규제를 하는 이유에 대해선 “신뢰 관계의 손상” 때문이라고 일본 당국은 밝혔다.    안보 문제와 역사 문제 사이에서 말 바꾸기를 하며 줄곧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인 아베 정권의 행보에 우리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가 모여 현재 일본제품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지금 일본에 가지도, 일본 제품을 사지도 않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일본 현지의 분위기는 어떨까? 지난 7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일본의 규슈 지역(후쿠오카, 벳푸)을 SBS 취재팀이 돌아보고 왔다.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일본 관광지 중 한 곳인 후쿠오카에선 단체 관광객이 종적을 감췄다. 이곳은 ‘원데이 투어’라는 관광 상품(버스로 주요 관광지를 하루 안에 둘러보는 상품)이 인기였는데 지금은 손님이 없어 아침 일찍 출발하는 버스가 한 대도 없었다. 한국의 전주 한옥마을과 비슷한 분위기의 소도시 ‘히타’는 마을 골목골목마다 한국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곳인데, 현재는 현지인과 상인들 외에는 썰렁한 분위기다.    장사하는 이들은 시름이 깊다. ‘당장 다음 달 세를 낼 수가 없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덕에 그동안 고마웠는데 7월 이후 관광객이 줄어 서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취재진을 향해 털어놓았다.    온천으로 유명한 ‘벳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벳푸는 규슈 지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관광지였다. 지금 벳푸는 단체 버스로 가득 찼던 주차장들이 텅텅 비어 있고 한국 관광객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은 관광산업의 비중이 큰 나라가 아니어서 일본 여행을 보이콧하는 것이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 하지만, 관광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소도시는 (우리가 확인한바) 타격이 컸다. 또한 한국인이 떠난 자리를 중국인 관광객이 메울 것이란 예상도 있었지만, 며칠간 숙박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돈을 쓰고 가는 한국인과 크루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여행을 하는 중국인의 소비 형태는 상이하기 때문에 완전한 대체는 불가능하다는 게 현지 여행 업계의 생각이었다. 일반화하긴 어렵겠지만, 한국의 일본 불매운동은 일본 현지에서도 분명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의아했던 것은 일본 내 언론의 반응이다. 한국 내 일본 불매운동의 커다란 움직임에 대해 일본 언론은 아직도 무게감 있게 다루지 않는 모습이다. 극우 성향의 몇몇 매체를 제외하면 단신 한두 꼭지 수준이다. 언론 보도의 영향인지 우리가 만난 일본 시민들의 상당 수는 정부의 정치적 이벤트 영역과 개인의 행보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일 양국의 갈등 국면에서 완전한 승자나 패자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민사회가 나서서 참여하는 불매운동은 예사롭지 않다. 정치 영역에서의 말싸움 정도로 그치곤 했었던 양국의 충돌이 일정한 선을 넘었고 지금은 시민들이 직접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갈등과 싸움의 진원지는 이미 지난 과거 어느 한 시점에 있다. 결국 일본이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정확하게 반성하고 성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은 불매운동보다 더 큰 저항에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본은 한국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보를 걱정하는 더 큰 세계와 싸우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일본 입장에서도, 한반도에도 긍정적이지 않다. 결자해지는 지금 일본의 몫이다.     최대웅 / SBS      
    2019-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