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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KBS·MBC, 아카이브 재구성 아이템 ‘눈길’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KBS·MBC, 아카이브 재구성 아이템 ‘눈길’     ▲ KBS 아카이브 프로잭트 모던코리아 화면 갈무리   ▲ MBC 백투더뉴스 화면 갈무리     방송사들의 아카이브 활용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각 방송사들은 아날로그 영상 자료들을 디지털화하면서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 과거에 방영한 음악,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실시간 스트리밍하거나, 주요 장면을 잘라 편집해 클립 형태로 내보내는 등 과거 자료의 ‘재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과거 자료를 단순히 ‘재탕’하는 것에서 나아가 ‘재가공’해 호평을 받는 작품도 등장했다.    KBS는 ‘KBS 영상 아카이브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대한민국의 오늘을 돌아본다’는 취지로 ‘KBS 다큐 인사이트 -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3부작을 방영했다.    KBS는 9시 뉴스, 시사·예능 프로그램, 드라마의 영상과 인터뷰 자료만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1부, 10월 31일 방영), ‘대망’(2부, 11월 7일 방영), ‘수능의 탄생’(3부, 11월 14일 방영) 등 3부작이 방영된 뒤 한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에 “현대적인 세련된 영상 관습에서 벗어나 드라마, 현장 취재, 인터뷰 등 올드필름만으로 대부분의 서사가 진행되고 간혹 재치 넘치는 ‘짤방’을 포함하기도 해서 유쾌했다”며 “미술관에서 ‘현대사 영상전’을 보는 것만 같음과 동시에,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즐거웠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네티즌은 이어 “이런 뛰어난 작업들이 지상파에서 나오고 있다니 한편으론 다행이라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더 많은 실험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며 다양한 아카이브 활용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KBS는 내년 2월 ‘해태 타이거즈, 지금은 사라진 가장 약한 영웅들’, ‘시대유감, 삼풍’, ‘휴거, 그들이 사라진 날’ 등 나머지 3부작을 방영할 예정이다.    ‘보도 영상’만을 재가공해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MBC의 시도도 눈에 띈다. MBC는 지난 3월부터 최근 뉴스와 과거 뉴스 영상을 교차 편집해 자막과 함께 보여주는 ‘백투더뉴스’를 매주 일요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방송하고 있다.    ‘백투더뉴스’는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의 주요 뉴스를 차지하고 있는 미세먼지 문제가 사실은 1990년대부터 제기되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고(3월 17일 방송), 40년째 해결되고 있지 않은 택시기사 월급제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3월 31일 방송).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2일에는 ‘1998년, 겨울의 기적’ 편을 통해 IMF, 세계 금융위기 등 경제가 어려울수록 우리나라의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과 개인 기부가 증가한 반면, 최근 3년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모금액이 줄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MBC 나준영 뉴스영상콘텐츠국 뉴스콘텐츠취재1부장은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와 MBC ‘백투더뉴스’는 아카이브를 잘 가공하면 영상이 개별 아이템으로 한 번 소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각 방송사와 영상기자들이 아카이브에 쌓이는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 보면 좋겠다.”고 밝혔다.     안경숙 기자    
    2020-01-08
  • 협회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연구위원 김창룡 교수, 방통위 상임위원 임명
    협회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연구위원 김창룡 교수, 방통위 상임위원 임명     ▲ 한원상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사진 오른쪽)은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김창룡(사진 왼쪽) 인제대 교수에게 본 협회의 활동과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지난 11월 15일 한국영상기자협회).    김창룡 인제대 교수가 차관급인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에 임명됐다.    김 상임위원은 언론 분야의 다양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로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 이용자 보호 등 현안을 다룰 수 있는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당신이 진짜로 믿었던 가짜뉴스’ 저자로 방통위가 추진하는 허위조작정보의 대책 마련 등에 힘을 보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 상임위원은 영국 카디프대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민일보 기자, AP통신 서울 특파원과 방송위원회 보도교양심의위원, 선거방송심의위원, 한국언론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역임하면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금년에는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추진하고 있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연구위원과 이달의 영상기자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 11월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되면서 도중에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박예원 기자  
    2020-01-08
  • 영상을 통해 기록되는 역사의 사실 보도영상실록
    영상을 통해 기록되는 역사의 사실 보도영상실록   언론 불신시대를 살아가는 영상기자 4인의 성찰과 비전 세월호 참사부터 북미 정상회담까지, 역사의 현장에 청춘을 바친 MBN 영상기자 4인이 말하는 2010년대   ▲ 지은이 배완호·김원·한영광·전병수 / 출판사_좋은땅    2010년 즈음, 언론고시를 통과한 이제는 어느 회사에서든 허리를 담당하고 있을 기자들에게 각별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부터 국정농단, 북미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이슈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었지만, ‘기레기’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언론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진 참으로 역설적인 시기였다.     특히 큼지막한 방송사 로고가 달린 커다란 ENG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비는 영상기자들에게 그 체감의 강도는 더 강했다. 언론의 평가와 모든 불만을 현장에서 홀로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통렬했던 2010년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영상기자 4명이 모여 뼈저린 반성과 함께 기자 본연의 자세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을 펼친 책이 출간되었다.    책 「보도영상실록」 은 대한민국 역사를 영상으로 담았던 영상기자들이 언론의 불신과 업계 위기상황 속에서 이제는 화면이 아닌 글로 기록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어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써 내려간 또 하나의 역사서라 할 수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북미회담과 같은 국내외 굵직한 사건들을 영상기자들만의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며 언론의 책무, 그리고 나아갈 길을 색다르게 제시한 점이 돋보인다.    다사다난했던 2010년대를 마무리하며 2020년대에를 대비할 수 있는 언론인들의 담담한 소회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어 보인다.     박예원 기자  
    2020-01-08
  • <태풍 취재기> 태풍의 최전선 가거도, 제13호 태풍 ‘링링’ 그 중심에 서다
    태풍의 최전선 가거도, 제13호 태풍 ‘링링’ 그 중심에 서다     ▲ 제13호 태풍 ‘링링’ 가거도 취재현장<사진>    지난 9월 초, 제13호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이란 예보가 나왔다. 지리적으로 태풍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인 곳.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끝자락의 섬.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Km, 뱃길로는 233Km, 쾌속선으로 가는 데 4시간 30분이 걸리는 국토 최남서 쪽에 위치한 섬, ‘가거도’.    태풍 ‘링링’은 9월 7일 토요일쯤 우리나라에 상륙할 예정이었지만 뱃길이 막히면 닿을 수 없기 때문에 서둘러 채비를 했다. 우리 취재팀은 먼저 목포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8시에 가거도행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4시간 30분여 만에 아득한 수평선 끝에 섬을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옹벽이 나타났다. 1979년에 시작하여 30년 만인 2008년 완공된 길이 500m, 높이 12m, 폭 15m에 달하는 이 옹벽은 세찬 바람과 거센 파도로부터 가거도를 지켜주는 방파제다.    가거도항 선착장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태풍 탓인지 500명이 채 안되는 가거도 주민 절반 정도가 이미 섬을 빠져나갔고 당분간 육지로 나갈 수 있는 배편을 통해 나머지 사람들도 섬을 빠져나갈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마중 나온 마을 이장의 트럭 짐칸에 몸을 실었다. 취재 거점이 될 민박집은 항구에서 차로 채 5분이 걸리지 않을 만큼 가까웠다. 식당을 겸한 민박집에는 이미 점심 한상이 차려져 있었다. 가히 낚시꾼들이 한 번은 가 보기를 희망한다는 낚시 천국다운 상차림에 입이 쩍 벌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섬사람들은 어떻게 태풍을 대비하고 있는가? 민박집에서 불과 20m 정도 거리에 위치한 가거도항엔 정박 중인 배가 하나도 없었다. 항구에 아무리 견고하게 배를 정박해 놓아도 태풍의 바람과 파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 태풍 같은 유사 시엔 항구 한쪽에 커다란 기중기를 설치하고 배들을 육지에 올려둔다. 각종 어구들은 배를 올려놓은 장소 부근에 낮고 커다란 고무 상자에 담아 밧줄로 꽁꽁 묶어 두었다. 평소에도 바람과 파도가 세기로 유명한 가거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태풍을 경험하며 쌓인 그들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었다.     배를 타고 들어올 때 우리를 처음 맞아준 거대한 옹벽 방파제로 나가봤다. 대형 기중기 두 대와 여러 대의 포클레인, 덤프트럭이 방파제 위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다. 공사 시작 후 30년 만인 지난 2008년 완공되었다는 방파제는 큰 태풍 때마다 부서지고 유실되어 유지와 보수 공사가 계속 이어졌다. 그날 현재도 보강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보강 공사 막바지에 다시 큰 태풍이 온다 해서 공사 관계자들의 걱정이 큰 상황이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바람도 강해졌다. 방파제를 때리며 파도가 만들어낸 포말의 크기도 한층 커졌다. 섬사람들 주업이 어업인 만큼 생선들을 보관하는 개인 냉동창고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태풍 대비가 한창이었다. 냉동 창고 문은 굳게 잠가 두었고 각각의 창고들을 마치 한 덩어리인 것처럼 밧줄로 꽁꽁 묶어 두었다. 섬사람들은 거의 모든 곳을 태풍에 대비를 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태풍이 도달하기 전 분주하게 대비하는 모습을 담을 수는 없었다.    태풍 관통 D-1일. 을 가거도에서 맞은 둘째 날. 태풍 피해가 잦아서인지 섬사람들은 호들갑스럽지 않게, 대범하게 잔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태풍 대비는 이미 철저하게 완료된 상황이었다. 낮 동안 비는 오다 말다를 반복했다. 먼바다로부터 만들어진 파도가 방파제를 때리고 포말이 한층 크게 일어났다. 해가 저물자 비바람이 강해졌다. 일찌감치 가거도항 앞 주택, 상점들 문이 닫히고 그 앞을 차들이 가로막았다. 강한 바람으로부터 시설물 파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거도 사람들만의 지혜였다.     9월 7일 새벽 4시. 2시간 후쯤 가거도를 통과할 것으로 보이는 ‘링링’을 담기위해 민박집을 나섰다. 미닫이문을 여는 순간 문틈 사이로 몰아쳐 들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세찬 비바람 속에서 LTE 라이브로 태풍 특보를 시작했다. 육안으로 정확한 상황 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항구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두 번의 특보를 마치자 서서히 날이 밝기 시작했다. 가거도항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전날까지 보았던 그 항구의 모습은 아니었다. 깨끗이 비운 자리에 온갖 건축자재들이 널브러져 있고 시설물을 밧줄로 고정하기 위해 세워 둔 폐트럭은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항구 반대편에 보이는 높이 12m 방파제 위로 파도가 치솟고 있었다. 최악인 것은 방파제 옹벽이 무너져 내려 쾌속선을 접안했던 곳까지 덮쳐 버린 것이었다. 이번 태풍이 설마 이 거대한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지나갈까? 방파제를 바라보며 문득 든 생각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링링이 지나간 후,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서너 시간 만에 태풍 ‘링링’은 가거도를 관통하고 빠져나갔다. 가거도 사람들은 다시 묵묵하게 또 재빠르게 태풍이 남기고 간 잔해를 수습 중이다. 첫 날 보았듯 현재도 방파제는 다시 보강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가거도가 하루빨리 다시 이전의 모습을 되찾길 바란다.     서진호 / SBS      
    2019-11-08
  • <태풍 취재기> 태풍 취재현장의 생생함과 안전 그리고 그 중간은 어디?
    태풍 취재현장의 생생함과 안전 그리고 그 중간은 어디?     ▲ 제17호 태풍‘타파’현장<사진>    “위험합니다. 더 떨어지세요!”  지난 9월 22일 제17호 태풍 ‘타파’ 강풍에 주차타워 건물의 외벽 재가 떨어진 상황. 현장 관리자가 불안한 얼굴로 소리 질렀다. 그 소리에 몸이 움찔했다. 물론 현장에 도착해 주변 상황도 살폈고 ‘이 정도 거리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나름 판단을 하고 일을 한 것이지만 아찔한 상황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위험천만하고 생생한 현장을 잡을 수 있는 위치는 어디인가? 아니, 그 그런 위치란 게 세상에 존재할까?    유튜브에는 KBS 태풍 타파 LIVE 특보를 향한 의문이 제기됐다.  “기자가 위험해 보여요.”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꼭 방송 을 해야 하나요?”    휘청휘청 거리는 화면 사이로 취재기자가 눈도 제대로 못 뜨며 중계를 할 때, 라이브 화면으로 살벌한 재난재해 현장이 여과 없이 나올 때 이런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재난 방송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재난 현장을 취재하는 우리 스스로의 성찰이 간절히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재난 보도의 경우에, 영상의 현장감과 역동성이 지나치다면 과유불급일까?’  ‘생생한 영상이란 것은 언제나 선일까?’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영상이 기사의 전달력을 해칠 가능성은 없는가?’    재난 보도는 시청자들이 위험을 깨닫고 대처 방법을 습득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시청자들이 재난 보도를 보고 오히려 취재진의 안전을 걱정한다거나, 그것 때문에 불안을 느낀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지금 우리 재난 보도나 현장 영상을 냉정히 되돌아본다면 그런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지난 몇 차례의 태풍 취재를 곱씹어 보았다. 과하게 서두르다 현장에 도착해서야 헬멧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안 순간. 물체가 추락할 수 있는 장소에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취재를 이어나갔던 기억. 침수된 도로에 들어가서 온 마이크를 했던 것...    우린 현장으로부터 멀리 갈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일의 숙명이다. 우린 그 숙명을 안고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걸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안전을 챙기며 충분히 거리를 확보하고 촬영한 영상은 나를 지켜주지만 현장 역동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TV뉴스에서 현장성이 핵심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취재진의 안전과 현장성,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냉정함을 견지한 보도영상.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현재가 정답은 아니란 것이다. 현장성에 매몰된 나머지 끊임없이 취재진의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취재진과 시청자가 적절히 공감할 수 있는 원칙, 규제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꾸준히 그 답을 찾아나가야 할 것 같다.     김기태 / KBS 울산      
    2019-11-08
  • <태풍 취재기> 고글쇼에 대한 단상
    고글쇼에 대한 단상     ▲ 고글은 태풍현장에 안전하지 않았다.<사진>    “선배, 그거 뭘까?”  제주총국 보도국에 이상한 놈이 나타났다. 물안경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크고, 스포츠 고글과도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투박하다. 분명한 건 뒤쪽의 밴드를 머리에 감아 눈에 쓰는 놈이라는 것.    태풍 취재를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았던 보도국에 이 녀석의 출현은 기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태풍 중계 시 라이브에 참여하는 취재기자는 이 녀석을 꼭 착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명목은 안전을 위해서.    화면에 비친 그 녀석은 생각대로 강력했다. 기사 내용보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고글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과연 고글을 쓰고도 원고를 잘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차치하고라도 고글을 쓴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안전하게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중계를 하는 그곳은 방파제가 높고 바다와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 이미 안전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였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고글을 쓴 것만으로 조금은 더 안전하게 보였다.    “답답하고 거추장스러웠어요. 무엇보다 고글에 성에가 껴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어요.”    고글 1호 착용자의 실사용 후기이다. 안전하게 보였던 그것이 사실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어 기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보이는 안전’에 집착한 결과 정작 시야의 불 안전성을 제공한 것이다.    과연 시청자는 고글 쓴 기자를 보고 저 사람은 안전하겠네 하고 느꼈을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기자의 안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보이는 안전’을 위해 기자를 그런 상태로 몰아넣어야만 하는 것일까?    태풍 현장을 취재하는 영상기자는 다양한 위험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예측할 수 없기에 사고의 위험성은 크다. 간판이 날아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의 몸조차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분다. 카메라를 들고 있고 뷰파인더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어 영상기자들에게 가해지는 위험성은 더 올라간다. 언제든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영상기자들에게는 특별히 지급되는 안전장비는 없는 실정이다. ‘보이는 안전’에 연연하는 와중에도 회사는 영상기자의 안전에는 뒷전이다.    최근 황희찬(축구선수, 잘츠부르크)의 고글이 이목을 끌었다. 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다른 선수들이 고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 너도나도 껴보겠다고 했단다. 고글이 시각적으로 이목을 끄는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이번 태풍 중계에서 쓰인 고글도 그런 의미에서라면 성공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그러한 ‘보이는 안전’, ‘안전 모사’ 행위들이 정작 안전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을 제공할 뿐이다.    영상기자의 안전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들은 TV화면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고글쇼조차 불필요한 걸까? 취재진의 안전에 대한 전면적인 논의가 절실하다.     김형준 / 제주KBS      
    2019-11-08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홍콩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홍콩     ▲ 홍콩거리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현장을 취재하는 SBS 박현철 영상기자<사진 왼쪽>.      어린 시절 성룡의 ‘쿵후’ 영화로 시작되었던 홍콩에 대한 동경은 십 대에는 장국영과 주윤발, 이십 대에는 크리스토퍼 도일과 왕가위 감독의 영화로 나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 대학생이던 1997년 여권을 처음 만들면서 제일 가보고 싶은 나라가 홍콩이었을 정도로 홍콩에 대한 갈망과 기대는 컸다. 영상기자로 근무한 19년 동안 여느 보통사람보다 훨씬 많은 50여 개의 국가에 출장과 여행을 다녀왔지만 젊은 시절의 기대와는 달리 홍콩을 가본 적이 없었다. 결국 사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취재로 가게 되었다.    어느 홍콩영화의 대사처럼 "1997년 이후에는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홍콩 사람들에게 있어 홍콩의 중국 반환 후 미래에 대한 불안은 그들 영화의 주된 소재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일국양제'가 종료되는 2047년을 불안해하며 [홍콩 광복! 시대정신!]을 외치기 시작했다.    홍콩의 정체성  중국은 진시황의 춘추전국시대 통일 이후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려고 노력해왔다. 중국인들조차 다민족 국가로 결성된 중국의 언어를 통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통신과 인터넷이 발달된 현대에 이르러서 중국의 많은 언어들이 쇠퇴해가고 북경어는 날이 갈수록 그 위세를 확장하고 있다. 홍콩에서 사용되는 광둥어는 중국어의 하나이기는 하나 북경어와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언어학적으로는 다른 언어로 본다고 한다.    우리에게 '주윤발'로 알려진 영화배우의 이름은 북경어로는 '저우룬파'이다. 기자들이 쓰는 기사에도 외래어 표기법에 의해 '저우룬파'로 쓰고 있지만 사실 그의 이름은 그의 언어인 광둥어로 '짜우연 팟'(Chow Yun-Fat)이다.    이처럼 중국에 반환 이후 홍콩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름조차 자신의 언어인 광둥어가 아닌 북경어로 불리는 일이 생겼다. 홍콩 반환 이후 광둥어를 쓰는 홍콩인들은 학교에서 북경어를 교육받아야 하고, 대륙에서 북경어를 쓰는 수많은 본토인들이 ‘성항기병 省港旗兵’처럼 이주해왔다.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99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국의 서구문화를 교육받고 영국인이 되기를 원했던 홍콩인들은 이제 중국인이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일국양제 一國兩制' 불안한 동거  일국양제란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제도가 양립하는 것으로 영국과 중국 사이 홍콩 반환의 기본원칙이다. “홍콩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50년간 변동하지 아니한다”는 전제하에 사회주의인 중국이 자본주의인 홍콩을 흡수해가는 방식이다. 홍콩, 마카오의 식민지 반환과 더불어 최종적으로 대만까지 흡수하는 방식이다.    지금의 홍콩은 중국의 "일국양제"의 시험대상이 되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본토에서 유입된 본토 출신의 근로자와 친중 보수층은 이미 커다란 세력이 되었다. 게다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의 동남아 화교들도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을 지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홍콩 사람들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또한 '일국양제'는 결국 대만을 흡수 통일하기 위한 방법인데, 홍콩에 인민해방군이라도 진입시켜, 강제로 진압을 한다면, 결국 중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대만을 흡수 통일하는 것은 더욱 멀어질 수 도 있다는 국제사회의 예상도 있다.    지난 8월 취재차 도착한 홍콩의 거리는 이미 [광복홍콩! 시대정신!]을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홍콩 경찰청 앞을 봉쇄하고 저항의 의미로 레이저 광선으로 발사하는 등 홍콩섬의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으며, 홍콩 경찰은 이를 막기 위해 최루탄과 살수차를 동원했다. 시위대는 경찰의 진압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지르고는 등 시위가 격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9월 4일 캐리 람 행정장관의 반송 법 철회 선언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민주화 요구와 긴급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홍콩의 시위는 잦아질 줄 모르고 있다. 최근에는 마스크 등의 복면을 쓰고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복면 금지 법'법이 시행되었다. 시위가 격해질 수 록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고, 성난 시위대는 지하철역에 불을 지르고 중국자본으로 된 상점을 부수는 등 과격 행동도 벌어졌다. 넉 달간 홍콩 경찰에 체포 사람만 2천여 명에 이른다. 18세 고교생 쩡쯔젠은 경찰이 쏜 총에 가슴에 맞아 위독한 상태이고, 14세 소년도 경찰이 쏜 실탄에 다리를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처럼 홍콩 사태는 극단으로 치달을 뿐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발이 없는 새가 있지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한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아비정전 阿飛正傳] 아비(장국영)의 독백중에서...    길 잃은 아비의 독백처럼 홍콩이 ‘발 없는 새’가 아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홍콩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박현철 / SBS      
    2019-11-08
  •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출장이 일러준 방향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출장이 일러준 방향     ▲ 아세안지역안보포럼 회의장      휴가 마지막 날, 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나의 첫 출장을 알려오는 전화였다.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와 관련된 언급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일정. 얼마 뒤 점점 늘어나는 카톡방에, 거기 올라오는 수많은 정보까지.   태국을 향해서  첫 출장.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몰려왔다. 출장은 7월 30일부터였지만 가기 전부터 신경 쓸 문제가 많았다. HB그림 수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강경화 장관 출국과 태국 입성을 챙길 것인지. 협회사와 비협회사 간의 POOL 문제는? 출발 전부터 결정해야 할 것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출국길에 올랐다. 공항 게이트 앞에 풀단이 모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먼저 강경화 장관의 수완나품 공항 입국 커버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드디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강 장관이 같은 항공편을 이용하므로 현실적으로 입국은 챙길 수가 없다. 대신 우리 입국 시간 3시간 뒤에, 고노 다로 장관이 돈므앙 공항에 입국하고 오쿠라 호텔로 향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음으로 운이 따른다면 고노 장관은 커버할 수 있다. 누가 갈 것인가는 도착해서 정한다. 우선 여기까지 정리한 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도착한 태국 수완나품 공항. 도착하자마자 심 카드를 샀다. 개통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테스트를 거쳤다. 다행히 무사 연결이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POOL 책임감  우리의 숙소인 아난타라 호텔로 가는 버스는 조용했지만 카톡방에서는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갔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취재 때문이었다. 이미 종편은 4시 버스를 신청해 오쿠라 호텔로 갈 예정이었다. 풀단 간사였던 KBS 윤성욱 선배가 지원하실 분, 하고 운을 떼자마자 범수 선배가 손을 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다음엔 어떻게 오쿠라 호텔까지 갈 것인지 말이 오갔다.   “가까운 데 내려만 주시면 됩니다!”    선배는 나에게 같이 내리자는 손짓을 하고 우리 둘은 하차했다. 아마도 나 혼자였다면 ‘누군가는 하겠지’ 하고 미뤘을지 모른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선배가 한없이 우러러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역시!! 오쿠라 호텔에 도착해 호텔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일본 취재진이 하나둘 모였다. 일본 취재진은 풀을 구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예닐곱 명의 일본 취재진 무리, 그 사이에 우리가 홀로 서 있는 형국이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부쩍 승부욕이 발동했다. 드디어 고노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찰나라 부를 만한 짧은 시간, 아무 말 없이 휙 하고 입구를 지나 호텔로 들어가 버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됐다. 선배가 촬영한 영상 안에서 고노 장관이 유유히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미션은 그렇게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MNG 속보 경쟁  8월 1일 오전 10시 반쯤 카톡이 울렸다. YTN 박재상 선배였다. “일본이 라이브 물고 들어가는데 이게 형평성에 맞는 건가요?” 한·일 양자회담 일정이었다. 화이트 리스트 배제 이슈로 우리에게는 중요한 회담이었다. 우리는 사전에 라이브 연결을 할 수 없다는 공지를 받고 들어간 상태였다. 그런 자리에 일본 취재진이 떡하니 MNG를 어깨에 메고 라이브 연결을 하려 하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일본 취재진은 공지를 무시하고 장비를 들고 들어간 듯했다. 좁디좁은 회견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한일 간의 역사 악연.    “외교부 관계자를 통해 장비를 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문제 제기였다. 다행히 박재상 선배 덕분에 일본 취재진의 부도덕한 행동에 일침을 가할 수 있었다.    ARF가 남긴 것   포럼 후 두 달이 지났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ARF는 큰 성과라곤 없는 회담이었을지도 모른다. 한미일 회담이 있었으나 미국은 한일 갈등 중재를 자처하지 않았고, 일본은 화이트 리스트 배제를 철회하지 않았으며, 결국 우리나라도 지소미아를 파기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ARF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과감히 버스에서 내린 범수 선배, 일본 취재진의 MNG 연결을 제지한 박재상 선배, 그 누구도 방관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자원하는 모습. 낯선 곳에서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해 취재하던 선배들. 앞으로 내가 영상기자로서 가야 할 방향을 일러 주는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다.     김영진 / MBN      
    2019-11-07
  •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한국 vs 투르크메니스탄 (1)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한국 vs 투르크메니스탄 (1)     ▲ 아슈바하트 올림피아드 경기장    마지막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어느 날,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데스크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다음 달에 월드컵 예선 출장 좀 갔다 와라! 투르크메니스탄...!!”  “넹? 어디요? 어디...?”  “투르크메니스탄!”    모처럼 휴일 낮잠을 자다 해외출장 지시를 받았다. ‘투르크 뭐 스탄~~!’ 다음 날, 출장지 정보를 얻고자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 지형으로 이뤄진 나라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해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한 복지 혜택으로 국민 생활 수준은 높으나 지구상에서 유례 없는 독재국가인 나라....]라는 글귀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송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넷 상태는 어떨까?’    며칠 후, 세 개 방송사(MBS/KBS/SBS) 풀이 결정됐다. 취재기자는 셋, 영상기자는 나 혼자였다. 촬영은 물론 송출까지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분명 녹록지 않은 일정이 될 터였다. 거기에 상황과 환경이 좋은 않은 국가이면...    고민 끝에 지난 4월 중앙아시아에 3개국 대통령 국빈 방문을 갔다 온 청와대의 모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다. 투르크메니스탄 현지 취재 상황과 송출은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거기에 머무는 동안 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선배는 “인터넷 상황이 아주 좋지 않아서 취재진 모두가 애를 먹어 고생 좀 했었지만 편집한 영상 정도는 업로드 했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힘들기는 하겠지만 인터넷 상황은 어느 정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출장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여기저기 정보를 구하면서 마음의 안도가 다시 불안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투르크메니스탄에 관한 정보 자체가 양적으로 빈약했다. 현지 통신 상황에 대한 내용은 찾기조차 힘들었다. 사전 준비를 하면서 우선 송출은 인터넷 파일 송출을 하기로 하고 만약을 대비해 글로벌 모뎀이 장착된 MNG를 챙겨가기로 했다. 그리고 주 투르크메니스탄 한국대사관을 통해 현지 유심 구매 요청을 하고 현지 가이드도 대사관을 통해 소개받기로 했다.    입국 초청장 신청은 축구협회에서 진행하기로 했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무비자 협약을 체결하지 않아 입국을 위해서는 반드시 입국 초청장을 사전에 받고 공항에 도착해 입국비자를 받아야 한다.    며칠 뒤 출장 일정이 확정됐다. 9월 6일 오전에 인천을 출발해 경유지인 터키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7일 밤늦게 투르크메니스탄 수도인 아슈하바트(Ashgabat)로 넘어가 다시 터키를 경유해서 12일 오전 인천으로 복귀하는 일정이었다.    지난 5일, 조지아와 터키에서 평가전을 치른 대표팀 선수들이 7일 오전 터키에서 마지막 적응훈련을 마치고 10일로 예정된 예선전이 치러질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곧바로 이동 할 예정이어서 우리도 대표팀과 같이 움직여야 했다.    드디어 결전의 나라로 이동할 시간이 다가왔다. 공항 게이트 앞에서 축구협회 홍보팀으로부터 아슈하바트행 비행기에 비즈니스석이 부족해 주전 멤버 선수만 비즈니스석에 탑승하고 벤투 감독과 나머지 선수, 스텝은 이코노미석으로 이동 할 예정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좌석이 부족해 감독이 자진해서 선수들이 조금이나마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그게 사실일까? 취재팀은 혹시 몰라 맨 나중에 탑승했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비즈니석을 지나자 일반석에 벤투 감독과 스텝들이 앉아 있었다. 핸드폰으로 짧게나마 그 영상을 담아 자리에 앉자마자 웹하드에 업로드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통신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능한 한 터키에서 마무리 짓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업로드가 끝나갈 즈음 선수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표정한 벤투 감독 얼굴과는 달리 선수들 얼굴에서는 여유로움과 즐거움, 약간의 흥분도 엿보였다.    얼마 되지 않아 기내에서 낯선 러시아어로 방송이 나와 잠이 깼다. 아슈하바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현지 시간으로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다. 버스를 타고 계류장을 벗어난 취재진은 선수단과 함께 CIP 부스로 이동했다. 비자발급 창구에 대사관 직원들이 선수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미리 부탁한 현지 유심을 전달받고 핸드폰과 MNG의 유심을 교체했다. MNG 상태는 다행히 양호했다.    입국비자 발급을 기다리는 동안 대사관 직원이 우리에게 일렀다. “여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국내에서 사용하든 SNS는 물론 다른 앱도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사용하려면 VPN 우회 앱을 이용해 사용할 수는 있으나 그것도 자주 연결이 끊길 수 있습니다.” 라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카톡이며 회사 시스템이며 국내 모든 인터넷 사이트도 블록 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웹하드와 구글드라이버 상태가 제일 큰 걱정이었다. MNG 사용도 가능성이 불투명해져서 눈 앞이 캄캄했다.    도착 후 2시간이 넘어 비자를 발급받고 간신히 출발 직전에 선수단 버스를 촬영했다. 그러고 나서야 호텔로 떠나는 미니밴에 몸을 실었다. 이른 새벽 시내로 들어서자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광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일직선을 그으며 끝없이 줄지어 서있는 가로등, 온통 흰색의 대리석 건물들,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형이상학적 형태의 기이한 빌딩들이 도시 전체의 화려한 조명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다음 호에 제2부가 연재됩니다.>     서현권 / MBC      
    2019-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