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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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스마트폰 중계, 또다른 도전의 시작
    스마트폰 중계, 또다른 도전의 시작     ▲ 스마트폰 중계를 하는 아리랑TV 현장 분위기    방송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 중이다. 어느새 UHD 화질이 대중화되어가고 있고, 송출도 LTE에서 5G로 발전 중에 있다.    뉴스 영상취재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 기술 발전의 큰 흐름에 발맞춰, 현장 취재도 기존 방식의 틀을 깨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 취재’이다.    바야흐로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각종 액션캠과 핸드짐벌 등 다양한 기기들을 활용한 취재로 뉴스 영상의 새로운 문법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동안 스마트폰 취재를 보편화하는데 주력해왔던 아리랑TV는, 또 다른 방식으로 스마트폰의 활용을 모색 중이다. 바로 ‘스마트폰을 통한 중계시스템 구축’이다. 이 시스템은 일종의 ‘작은 중계차’를 의미한다. 여러 대의 스마트폰으로 촬영되는 영상 신호들을 하나의 중계기를 통해 모으고, 태블릿 PC로 현장에서 컷팅까지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간의 스마트폰 취재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시험 무대는 빨리 왔다. 스마트폰 중계 시스템이 구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뉴스 연결 제안이 불쑥 나왔다. '추석', 우리 민족의 대표 명절에 맞춰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새 시스템을 선보이는 것이 어떤가 하는 제안이었다. 현장 중계팀이 신속하게 꾸려지고, 회사 내 기술연구소와 영상취재파트 간 정보 교환을 통해 어떤 식으로 뉴스 중계를 할 것인지 결정하는 긴 과정이 이어졌다.    시스템이 사실상 완성되기는 했지만, 아직 방송에서 선보인 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 반 우려 반이었던 게 사실이다. LTE망을 사용하는 통신 특성상, 통신거리 제한 또는 인파에 의한 통신장애 등 해결해야 할 위험 요인들이 많았다. 특히 추석 당일 중계 장소로 선정된 곳이 용인에 위치한 한국민속촌인데, 추석과 같은 명절에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걱정이 컸다. 이런 저런 연결의 방해 요소들이 충분히 예견되었다.    뉴스 중계 당일 전까지 어떠한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추석 당일, 현장에 아침 일찍 도착하여 상황을 살펴보았는데,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민속촌을 방문해, 취재팀 모두 내심 당황했다. 중계 예정 장소에서는 상황이 더 나빴다. 연결 장소가 민속촌 내에서도 핫한 장소라 관람객 이동량이 상당했다. 연결 준비 단계부터 애로사항이 생겼다. 중계에 사용하기로 한 총 4대의 스마트폰 중, 2대는 카메라를 고정하여 보여주고, 나를 포함한 2명의 영상기자가 짐벌을 사용해 카메라를 직접 컨트롤한다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현장의 관람객들로 인해 중계기와의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다. 리허설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중계 동선을 계속해서 수정해 나갔다. 중계팀으로 함께 한 기술연구소 분들과도 분주히 소통하며 어떻게 하면 매끄럽게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중계 직전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드디어, 뉴스가 시작되었다. 연결 콜이 들어왔다. 리허설을 충분히 하긴 했지만, 돌발 상황에 대비해 긴장을 놓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취재기자의 움직임에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을 시작했다. 스마트폰 중계의 특성상, 다른 카메라의 영상과 방송되는 온에어 영상을 모니터 할 수 없었기에, 카메라의 움직임에는 역시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취재기자를 따라 이동하는 메인 카메라 역할이었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인파 속에서 충돌 없이 움직이면서 신호는 끊어지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순식간에 2분이 흘러갔다. 연결이 끝나자마자, 바로 영상을 확인했다. 전체적인 흐름은 괜찮았지만, 역시나 현장 상황 상 통신 장애는 어쩔 수 없었다. 영상이 살짝살짝 끊기는 것 등, 아쉬움이 남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이게 최선이리라.    일반 중계차나 ENG를 통한 MNG 연결이 아닌, 다수의 스마트폰을 통해 현장에서 컷팅하여 현장 연결을 해냈다는 자부심은 작지 않았다. 스마트폰 취재를 시작한 데 이은, 스마트폰 중계라는 두 번째 걸음을 나아간 데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협회보에 이렇듯 짧은 보고를 남기는 만큼 방송 뉴스에 작은 참고가 되시기를 바란다.     임현정 / 아리랑TV      
    2019-11-06
  • [줌인] 고(故) 안정환 선배를 추모하며
    고(故) 안정환 선배를 추모하며      동료들이 검은 옷을 입고 모인 빈소. 차고 건조한 느낌의 형광등 불빛 아래 놓인 영정사진. 그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 왜 그랬는지, 무슨 상황에서였는지 선배는 엄지를 치켜세우고, 비현실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 2017년 파업 때, 매일 보았던 그 얼굴이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춥고 바람도 매섭고 지루하리만치 길었다.    선배는 그 겨울 동안 늘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생각해 보면 그게 선배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나도 같이 하고 싶어. 내가 도울게. 전력을 다해 바꿔 보자.’  그런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차저차 선배가 파업 대열에 합류해 주었고, 실제로 큰 힘이 됐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선배에 대해 지금처럼 많은 것을 알지 못했으리라. 선배의 마음속에도 그 기억이 나와 같이 남아 있을까?    파업이 끝나고 나서 선배는 처음으로 팀장이 됐다. 그 기간은 참 짧게 끝나고 말았다. 팀장 자리에 앉아 암 선고를 받고 나서도 우리는 모두 담담했던 것 같다. 질병의 명칭이 주는 위압감과 공포를 선배도 나도 애써 외면한 것이리라. 나는 왠지 선배가 마지막까지 버티고, 당장에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은 것 같다. 무슨 근거로, 그런 배짱을 부렸을까?    선배도 딸 둘, 나도 딸 둘이다. 선배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 지점이다. 워낙 말수가 적어 선배로부터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는 못했다. 오히려 내 딸 이야기를 선배에게 많이 했다. 그때마다 선배는 지긋이 웃으면서 마지막에 그저 짤막한 코멘트를 남길 뿐이었다. 선배가 얼마나 두 딸을 사랑하고 있는지, 또 형수를 아끼는지 느낄 수 있는 코멘트를.    이따금 선배와 술잔을 기울였다. 선배는 원래 말이 없는 사람, 후배들에게는 왠지 엄격해 보이는 사람, 다가가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선배와 참으로 편안하고 진솔한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언론사에 들어와 온갖 불의와 싸우면서 믿을 수 있는 동료, 선배와 솔직하고 격의 없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선배와 마주 앉았던 그 자리가 몹시 그립다.    선배를 보내고 나니 남는 후회란 더 자주 밥을 먹지 못한 것, 더 자주 술잔에 술을 부어주지 못한 것, 더 깊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지 못한 것, 그런 소소한 것들뿐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테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선배의 눈을 보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가?    10월 7일 아침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7시 반. 이른 시간에도 2백여 명의 사람들이 회사 신관 로비에 모였다. 선배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아침 일찍 추모식에 참석한 것이다. 짧은 추도 예식이 끝나고, 신관 3층 보도영상 팻말이 붙은 문을 지나 좁다란 복도를 걸어간 끝에 나온 아카이브실. 선배가 마지막 며칠을 머문 장소다. 영정사진을 안은 유가족은 아카이브실을 거쳐 4층 특집팀 사무실로 향했다. 선배가 암 선고를 받고 나서 몇 개월간 앉아 있었던 팀장 책상. 형수가 그 자리에 서서 한없이 흐느껴 운다. 마치 그 자리에 선배가 앉아 있었을 때 겪었던 일을 자신은 훤히 알고 있다는 듯 펑펑 눈물을 쏟는다. 오열하는 형수를 바라보며 나 역시 거기 앉아 있던 선배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들이다. 선배가 조금 먼저 정상에 올랐을 뿐이다. 나도 역시 삶의 길을 묵묵히 걷다가 언젠가 선배처럼 정상에 이르리라.    선배가 떠난 후, 내 기억 속에 남은 선배는 싸우고 있고, 승리에 감격하고 있고, 마지막엔 그 승리의 여운을 조금이나마 공유하는 그런 모습이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선배의 삶에, (그땐 몰랐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저벅저벅 선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던 그 시점에 그런 승리, 작지만 감격스러운 사건이라도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어 아찔하다.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높이 치켜세우는 선배 모습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그날 속엔 나도 있었고, 환히 웃고 있던 선배도 있었던 것이다. 반년 가까이 급여를 받지 못하며 국정농단, 사법농단, 언론농단 세력과 맞서 싸우고, 개혁을 부르짖었던 시간은 순수하고 또 정의로웠다. 힘겹고 고독한 길을 걸어간 이상 우린 싸움 이전에 이미 승리자들이었다. 그 기억 속에 선배가 영원히 남으리라.    남은 가족들께 깊은 슬픔과 함께 심심한 위로를 전해 드린다.      김정은 / 편집장      
    2019-11-06
  • 워킹대디도 힘들어요
    워킹대디도 힘들어요     ▲ OBS 강광민기자 가족    워킹맘은 힘듭니다. 육아만 하는 것도 너무 힘든데 직장 일까지 같이 해내는 엄마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요?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최근에 남성의 육아 참여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일과 육아의 병행이 남성에게도 점점 더 큰 몫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직장 내에서는 워킹대디의 고충이 그다지 조명받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빠가 일하는 것은 당연시되고 가정에서의 육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워킹대디들이 체감하는 사회 분위기는 그렇습니다.    제 짧은 육아 경험을 통해 일하며 아이까지 키워내는 영상기자 아빠들의 어려움을 몇 가지 풀어 보겠습니다.    저는 생후 200일에 접어든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든이(제 아들입니다) 아빠로 불리는 게 이제는 좀 적응이 된 듯합니다. 국회 4진으로 여당을 출입한 지는 1년 반이 넘었고, 국회로 발령을 받았을 즈음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곧 이든이가 출생했고 저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초보 아빠로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낮에는 보통의 영상기자로, 밤에는 이든이의 주 보육자로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마다 육아에 처한 상황과 참여도가 각기 다릅니다. (이 글은 비교적 참여율이 높은 남편들을 기준으로 작성한 글임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조부모가 육아를 도와주면 상황이 많이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읽어 주십시오.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큰 삶의 변화를 겪게 되는 사람은 당연히 아내일 것입니다. 출산하며 겪는 신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이후 양육을 위해 (육아 휴직을 했다면)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해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자신의 삶은 아예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도 아빠는 직장으로 출근하면 낮 동안은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아내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 점이 엄마들에게는 가장 힘든 점일 것입니다.   회사 퇴근은 곧 육아로의 출근  엄마만큼은 아니겠지만 아빠도 육아와 시작되면서부터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우리 경우에 취재 현장에서 겪는 업무 강도가 하루하루 다른데, 집에 도착하면 육아 의무는 매일 그대로입니다. 힘든 취재를 하고 왔으니 육아는 하루 쉬고 싶다고 투정할 수가 없습니다. 200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육아를 하며 제가 감당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더군요. 아마 워킹대디라면 누구나 많이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아이가 없을 땐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생긴 뒤론 퇴근과 동시에 집으로 출근합니다. 육아 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경우는 직장 출근보다 오히려 가정 출근이 몇 배 더 피로하게 느껴집니다. 총각 때는 그리 싫던 휴일 근무를 제발 하고 싶다고 느꼈을 정도로요. 주말에 육아로 쌓인 피로를 회사에 출근해서 쪽잠으로 푸는 아빠들, 저 말고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동료들에게 인정받을 때도 있지만, 육아는 아무리 잘해봐야 본전(?)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열심히 육아를 해도 아내 입장에서는 항상 부족하게 느껴질 테니까요.   두려운 추가 근무들   우리 일은 일반 직장인들처럼 매번 정시 출퇴근이 어렵습니다. 이슈가 생기면 무조건 현장에 가야 합니다. 영상기자 가족들도 이 점을 잘 압니다. 하지만 집에 아이가 생긴 후론 남편의 추가 근무가 곧 아내의 독박 육아 연장을 의미하더군요. 조근, 야근, 출장, 저녁 약속 등이 전부 고스란히 아내의 연장 육아가 되는 것입니다. 워킹대디로서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이가 없을 땐 야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가 저의 피로를 걱정해 줬지만, 지금은 내 근무와 상관없이 아내의 피로가 늘 걱정 1순위입니다. 물론 아빠로서 아이를 매일 봐도 시간이 부족한데 야근이나 조근, 추가 근무를 하게 되면 아이 얼굴 볼 시간을 회사에 뺏기는 기분마저 듭니다.   역사의 기록자에서 아이의 기록자로  ENG 카메라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지만, 집에서는 아이의 시간을 기록하게 되더군요. 핸드폰 카메라로는 성에 안 차 렌즈 교환식 카메라로 바꿨을 정도로요. 아이가 갑자기 배냇짓을 하는데 그 상황을 놓친다면? 일하면서 물먹은 것보다 더 아쉬워집니다. 아이와 집 밖을 나설 땐 항상 카메라부터 먼저 챙깁니다. 아이의 50일, 100일, 200일, 첫나들이, 첫 예방 접종 등 아이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기록해 놓아야 후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대화의 소재가 모두 육아로  풀단이 구성된 출입처에 있다 보니 타사 동료들과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워킹 대디들과 육아로 대화를 시작하면 해도 해도 이야기 소재가 끊기지 않습니다. 멀리 계신 할머니보다 옆자리의 워킹대디 동료들이 최고의 육아 코치입니다. 그 육아 코치들이 종종 넘겨주는 각종 용품은 저희 아이가 소중하게 애용하고요.   삶의 우선순위의 변화  입사 이후부터 결혼 전까지는 일이 1번, 결혼 후에는 아내가 1번이었다면,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아이가 1번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삶의 변화일 것입니다. 모든 휴가는 아이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기 위한 날이고, 모든 일상의 스케줄은 아이에게 맞추게 되었습니다. 부부 대화의 소재 또한 대부분 아이의 하루에 관한 내용이고,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아이 위주로만 생각합니다.    저와 아내의 자유는 없어졌지만, 이러한 변화를 행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초보 아빠로 그동안 힘든 점도 많았지만, 아이의 미소가 저희 부부를 버틸 수 있도록 에너지를 줍니다. 우리 세 가족이 함께한 사진을 보면 더없이 행복하고 흐뭇한 감정에 벅차오릅니다. 이 아이와 함께할 미래가 몹시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일과 육아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희망으로 가득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응원하고 싶습니다!  영상기자 워킹 대디, 모두 파이팅~~!!     강광민 / OBS      
    2019-11-06
  • [줌인] 수색꾼에게 필요한 것, 단 한 명의 친구, 동지
    수색꾼에게 필요한 것, 단 한 명의 친구, 동지      역사적으로 봐도, 진실과 정의는 언제나 높은 곳에 감춰져 있었다. 그것이 알려지거나 폭로되면 불편해지는 이들이 높고 깊고 후미진 데에 진실을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사실일수록 우연히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거기엔 반드시 인위성(인간의 의지)이 개입되어야 한다. 숨겨진 진실이 땅에 폭로되도록 누군가 기어올라가 찾고 사투를 벌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을 수색꾼이라 부르자. 진실을 쫓는 수색꾼에게는 파헤치고 폭로하는 데 사용할 근육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무언가를 찾고 발견할 수가 없다.    진실을 찾아내려는 자들, 곧 수색꾼의 반대편에 그들을 훼방하고 무력화시키는 파수꾼들이 존재한다. 파수꾼이 지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거짓, 부정의, 부조리다. 거짓과 부정의, 부조리를 옹호하는 파수꾼이란 곧 인간의 무관심, 지독한 무지, 탐욕, 그리고 공명심이다.    수색꾼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언제나 조직이 개인보다 진실 찾기에 유리하고 효율적이란 것이다. 진실은 깊이 묻혀 있고 높은 데 감춰져 있으므로 그것을 찾으려면 지속적인 수색(한 번 하고 끝내는 수색이 아니라), 긴 시간,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손에 넣기는 어렵고, 오랜 탐색이 요구되므로 혼자가 아니라 둘, 셋 혹은 그 이상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어떤 목적, 어떤 행위가 아무리 고결하다고 해도 혼자 힘으로 어떤 일이 지속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지 한 명의 수색꾼보다 다수의 수색꾼 조직이 효율적이고 수색에도 능하다. 더 멀리, 더 넓게 나아갈 수 있고 더 오랫동안 일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하다.    참된 언론은 참된 동지로 구성된다. 감추려는 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와해시켜야 할 것도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조직이다. 감추려는 자, 거짓과 부조리의 파수꾼들은 동지애를 경멸한다. 감추려는 자, 진실이 사회에 떨어지기 원하지 않는 자들은 가장 먼저 동지의 조직을 무력화시키려 시도한다. 그들은 왜 뭉쳐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설파한다.    승진, 입신, 환상적인 보상 체계는 진실을 감추려는 자, 파수꾼들의 무기다. 그들은 그 무기를 사용해 동지애(조직)를 효율적으로 무너뜨린다.    더 잘 단합되고 더 잘 협동하는 것은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아니라 부역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높은 곳에 있는 진실을 얻기 위해 뭉치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위해 뭉친다. 그들은 무지와 무관심을 찬양한다. 그들은 진실은 너무나 멀리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먹고 마시자고 유혹한다. 그들은 늘 ‘그런 것까지는 알 것 없어’, ‘그런 깊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 라고 말한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자들이 협력하는 것이다.    세상에 진실과 정의를 찾기 위한 연대, 길고 지루한 길을 함께 걷자고 하는 동지애만큼 고결한 것은 드물다. 진정한 수색꾼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평판과 기회를 잃어야 하고, 거짓과 부조리 파수꾼들의 표적이 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색꾼이 모든 것을 기꺼이 잃고, 파수꾼에 맞서는 것은 오직 ‘양심’ 때문이다. 양심은 수색꾼의 횃불이다. 양심을 지킨다는 말은 곧 한 인간의 의지가 가장 험난한 시험대 위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 / 편집장      
    2019-09-09
  • 무분별한 운영, 드론의 위험성
    무분별한 운영, 드론의 위험성       ▲ 지난 7월 18일 한 방송사에서 대구 스크린골프장 화재현장을 감식하고 있는 소방대원의 가까이에 드론을 날리고 있는 장면      4차 산업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는 드론은 손쉽게 온·오프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소방에서는 화재 발생 시 드론에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해 화재 진압 경로 계획 및 상황에 대한 판단에 활용할 수 있다. 경찰도 실종자를 수색하거나 위법차량을 적발하는 데 드론을 활용한다. 드론 택배, 드론 택시 등의 이야기도 나온다. 드론을 활용한 전환적 풍경, 편리한 미래가 예고된다. 그러나 드론으로 인한 부작용, 사고의 위험성 등에 대한 경고는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다.    무보험 차량이라면 그 차를 안심하고 운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운전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우린 차량을 보험에 가입한다. 그러나 드론을 운영하는 사람 중 보험을 넣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드론 활용에 대한 법규의 준수, 보험 가입을 통한 대비 등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드론 사용이 확대되어 벌어질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지난 어린이날, 한 행사장에서 하늘을 날던 드론이 추락해 사람이 다치는 입는 사고가 있었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차량에 드론이 추락해 선루프가 파손되었는데 드론 주인을 찾지 못해 보상 받을 길이 없다는 피해 글도 올라왔다.    우리가 일하는 현장 상황은 어떤가? 지난 7월 대구 달서구 두류동 스크린 골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다음날 곧바로 현장 감식이 있었다. 감식은 화재 장소인 2층부터 시작됐다. 현장 여건을 고려해 방송뉴스 카메라 풀팀이 구성되었다. 현장에 들어가기 직전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공중에 떠 있다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드론을 보고 마침 인도를 걸어가던 시민이 놀라 소리를 지른 것이다. 현장이 비행 제한 구역은 아니었으나 가로수가 줄지어 있고 2층 높이에 전깃줄이 엉켜 있어 사고 위험은 현저하게 높았다. 현장에 가면 우리는 경쟁을 한다. 더 나은 영상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영상 경쟁에만 몰입되어 있으면 다른 가치들은 지켜지기 어렵다. 시민의 안전은 우리의 보도 경쟁보다 먼저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닌가? 또 사건 현장에 대한 경찰 통제 역시 우리가 따라야 할 기본적인 선이다. 사고 현장 위에 무분별하게 날아다니는 드론에 대해 다 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쟁이 아름다운 경쟁이 아니라 악취 나는 경쟁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드론에 대한 우리 내부의 사용 원칙이 필요하다.     백재민 / MBN 대구지사      
    2019-09-09
  • [초상권] 살인하면 영웅이 되는 나라
    살인하면 영웅이 되는 나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모텔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장대호(38)라는 사람이 투숙객 A씨와의 다툼 끝에 살인을 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 그는 추호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반말을 했고, 숙박비 4만 원을 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방송사 기자들 앞에서 주장하면서 “이 사건은 흉악 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이라고 뻔뻔 당당하게 대꾸했다.    언론의 보도에도 법과 도덕이 따라야 한다. 여기서 법과 도덕이란 정당성을 의미한다. 이를 쉬운 말로 다시 하자면 ‘올바 른 것’ 혹은 ‘지당한 것’을 의미한다.     살인범 장대호는 고려시대 정중부를 언급하며 “고려 때 김부식의 아들이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사건이 있었는데 정중부가 잊지 않고 복수했다"라며 살인범의 살인동기를 에둘러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살인범의 살인동기를 인터뷰하고 방송하는 이 땅의 언론은 과연 제 정신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살인이란 지구상의 어느 국가에서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이다. 어찌 그 죄에 대하여 변명이 필요하며 궤변을 대중 앞에 방송한단 말인가? 이런 살인궤변을 한 번도 아니고 반복하여 방송하는 것은 시청자의 시청권에 대한 도전이자 고인과 유족에 대한 능멸이 아닌가?    왜 국민이 그런 살인범의 누추한 변명을 여과 없이 들어야 하나? 한두 번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반복하여. 그럼 강간범에게 강간의 추억(?)을 인터뷰해서 그걸 방송이라고 해도 좋단 말인가? 그 흉측한 저승사자의 혐오스런 얼굴을 클로즈업(close-up)하여 방영해야 한단 말인가? 누가 그 흉상을 보고 싶다고 했나? 저승사자가 흉악한 얼굴을 번쩍 들고 뻔뻔 당당한 어조로 고인에게 (저승에서 또 만나서 또 그렇게 하면 다시 살해하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은 꿈에 나타날까 무서웠다.    살인자가 얼굴 들고 살인동기를 인터뷰하겠다고 동의했다면 언론이 살인범의 초상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은 방송이 언제부터 살인범에게 그렇게 호의적이고 관대했는가? 살인범에게도 살인동기를 말하도록 ‘언론의 접근권’을 공공연히 허여하자는 게 공공의 질서를 강조하는 수사기관과 언론기관의 진정한 사명이고 임무란 말인가?    하늘에서 살인범의 그 궤변을 듣고 있을 고인의 영혼과 유족의 심정을 언론은 헤아려보기라도 했는가? 가뜩이나 억울하고 분한 유족이 그런 보도에 어떤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행동이라도 하거나 분개한 시청자가 수사기관과 언론기관을 고발하여 이른바 ‘징벌적 배상’(punitive damage)이라도 청구한다면 속이 시원할까?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상습도박과 외국환거래법위반의 알려진 연예계 공인들에 대해 수사기관이 ‘포토라인’의 생략을 검토 중이라는 뉴스가 조금 전에 보도되었다.    이는 이른바 ‘초상권’에 대한 돌연변이성 신종 증후군으로서 공인의 범법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다수 시청자들을 냉소케 하고 있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아직 공개소환의 계획이 없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살인범의 살인의 추억(?)을 공공연히 방영하던 언론과 수사기관이 정작 공인에게는 ‘피의사실공표’ 를 우려해서(?) 포토라인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새빠진 궤변으로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괴물의 엉덩이에 빨간 뿔이 달린 (?) 도깨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굳이 ‘법의 지반이 자유의지로서 정신적인 것’이라는 헤겔의 법철학을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언론인들은 이런 방송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겠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찌 그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는 공인으로서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아스럽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언론의 사명은 제4부로서 입법 사법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균형 잡힌 민주적 권리구조를 견고히 하여 모든 국민에게 그런 권익의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류종현 / 전 부산대학교 초빙교수      
    2019-09-09
  • 판문점 북미정상회담과 보도영상
    판문점 북미정상회담과 보도영상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순간이 라이브로 전파를 탔다. 이전 라이브 영상처럼 정제되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TV 화면이 보는 이에게 불안감을 줬다. 생중계를 하던 뉴스 앵커는 당황해 하며 라이브 화면이 고르지 못한 것에 대해 계속 사과했다. 생경한 풍경이다.    방송 이후, 판문점에서의 북미회담이라는 세기적 이벤트를 깔끔하게 전달하지 못한 데 대해 비난이 쏟아졌다. 현업자들에게는 뼈아프지만 당연한 수순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념 전파의 도구로, 국가주도의 선전 선동 도구로 기록영화를 적극 활용한다. 이번 북미회담에서도 북한은 영상 기록에 꽤 신경을 쓴 듯 보였다. 여러 대의 북측 영상 카메라가 자유의 집 옥상 등 주요 동선마다 미리 배치되었고 2팀 이상의 ENG 촬영팀이 근접 경호라인 안에서 통제 없이 밀착 촬영을 했다. 촬영은 판문점 북미회담을 준비하는 북측에게는 경호와 의전에 버금가게 중요한 우선 사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잘 기록되어야 할 순간이었을 테니까. 이벤트 자체의 가치도 가치이지만, 그들 입장에서 인민들에게 보여줄 무엇이 필요했으리라.    미국 측 백악관 취재단의 입장은 또 달랐을 것이다. 물론 싱가포르나 하노이처럼 공식적이고 중요한 행사에서는 으레 사전에 언론과 협의하고 생중계를 준비한다. 일반적으로 백악관 공보관이 지정하는 포토라인이 있고 대통령이 지나가면 큰소리로 질문하고 먼발치서 쓸 만한 컷을 잡는다. 아주 나쁘게 말한다면 정돈되지 않은 시장판이다. 백악관과 미디어는 견제하고 감시하는 관계다. 프랜들리하지 않고 미디어를 위해 편의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알아서 취재해야 하는 환경이다.    회담 후, 우리는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두 가지 버전의 영상기록을 보았다. 사회주의 선전영화 한 편과 반대로 카메라가 흔들리고 뒤집어지는 급박한 현장 라이브.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준비와 미비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북한의 미디어는 영도자 김정은 보여주기가 중요했던 것이고 미국의 언론은 역사적 순간의 실시간 보도가 중요했다. 결국 이날 북미회담에 대한 두 풍경은 상이한 체제 하의 상이한 기록, 상이한 언론의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의 경우는 어땠는가? 회담 당시 북한과 미국 측 취재단이 아닌 한국 취재단은 접근 자체가 원천 불허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혈혈단신으로 현장을 뚫고 들어가 라이브 백팩을 짊어지고 고군분투한 YTN 박진수 기자의 현장 연결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역사적인 <판문점 북미회담>의 순간을 ‘북한 조선중앙 TV’와 ‘미국 방송사’ 제공의 영상으로만 역사에 기록하는 수모를 당할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동시대인뿐만 아니라 후대에 기록 가치가 있는 역사적 사건 현장에서 자국 취재단과 기록에 관한 협의가 제대로 없었던 부분은 매우 아쉽다. 언론이 얼마나 제기능을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별도로 최소한의 성의가 없었던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최경순 / MBC      
    2019-09-09
  • 호모 비디오쿠스는 진화 중
    호모 비디오쿠스는 진화 중      내가 KBS에 입사한 2006년. KBS 9시 뉴스 시청률은 보통 20% 초중반, 잘 나올 땐 30%가 넘었다. 2019년 현재, 시청률은 반 토막이 났다. 다행인 것일까? 아직 시청률은 1위를 고수하고 있으니.    우리가 즐겨보는 네이버뉴스에서 KBS콘텐츠의 점유율은 겨우 3%대. 디지털뉴스제작부에 몸담은 요즘 내가 매일 고민하는 지점이다. 작년 4월에 3명의 영상기자가 영상취재부를 떠나 디지털뉴스부로 왔다. 유현우, 유성주 기자, 그리고 나. 디지털뉴스 제작부는 취재기자, 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인턴 등 다양한 인력으로 구성된 곳이다. 나는 주로 데일리 뉴스를 담당하는 뉴스제작팀 소속으로 ‘케이야’ 콘텐츠를 만들고 있고 유현우, 유성주 기자는 ‘크랩’ 제작팀에서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기획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케이야’, ‘크랩’ 콘텐츠는 유튜브 ‘KBS News’, ‘크랩’ 채널에서 볼 수 있음)    집단의 힘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비디오머그, 엠빅 등과 달리 우린 현재 1인 미디어 시스템 속에서 일하고 있다. 본인의 관심 분야를 취재하거나 취재 원본을 재가공해서 콘텐츠를 만든다.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이지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다 보니) 효율성은 떨어진다. 특히 속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물론 (북치고 장구 치다 보면) 내 개인의 역량이 늘어난다는 장점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획, 섭외, 촬영, 편집, 자막 작성, 기사 작성까지 1인이 거의 다 도맡아 해야 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실제로 자막 작업과 모션그래픽만 편집자에게 넘기고 나머지는 혼자 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 스트리밍 서비스하는 디지털 라이브 진행도 개인 몫이다.      ▲ 네이버에서 기자 검색하면 나오는 네임카드    디지털 영상 콘텐츠는 디지털뉴스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지금은 영상 콘텐츠를 각 부서에서도 제작하고 있다. 정치부에서는 정치 영상 콘텐츠, 국제부에서는 국제 뉴스 콘텐츠를 생산한다. 보도영상국도 [현장영상] 위주로 콘텐츠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최상철, 조용호 기자가 인제스트 된 원본 영상을 재가공해 편집, 자막 작업, 기사 작성까지 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지만, 업무의 총량은 과거보다 늘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입사할 무렵 생겨난 유튜브는 지금 독보적 거대 영상 플랫폼이 되어버렸다. 전 세계 모든 언론사가 어떻게 하면 유튜브 내에서 자사 콘텐츠 조회 수를 늘릴까 고민한다. 디지털미디어 시청 패턴에 따라 편집 기법도 달라졌다. 내가 대학에서 배운 영상 문법도 이 세계에서는 무용지물인 듯하다. 변화가 심한 미디어 환경에서 KBS 뉴스를 살리는 방법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영상기자의 역할과 미래의 열쇠를 찾는 것이 숙제가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는 진화 중인데 우리는 과연 그 속에서 같이 진화하고 있는가. 직종 간의 벽이 허물어지는 이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 역할만 변화하고 있는 건 아니다. 리포트와 단신 기사를 주로 쓰던 취재기자들이 이젠 다양한 형태로 기사를 쏟아낸다. 포털에서 주로 보는 ‘멀티미디어 기사’에 핸드폰으로 직접 찍어온 인터뷰를 넣거나 영상물도 쉽게 첨부한다. 그 과정을 영상기자 도움 없이 혼자서 척척 해낸다. 카메듀서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제작카메라 감독도 있다.    그런 변화 속에 인력난에 허덕이는 우리 대부분의 영상기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5년, 10년 뒤 대부분의 사람이 벽에 걸린 TV를 통해 뉴스를 보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 영상기자는 무얼 하고 있을까? “결국 살아남는 종은 강인한 종도 아니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대응하는 종이 결국 살아남는다.” 변화는 우리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 우리 스스로 그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 비상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생존의 지혜가 절실하다.                                                임태호 / KBS      
    2019-09-09
  • MNG가 바꿔놓은 풍경
    MNG가 바꿔놓은 풍경     2017년 8월. ‘혹시 모르니까.’       전국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던 대한민국보다 조금 더 기온이 높은 필리핀으로 ARF(아세안 지역 포럼)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혹시 모르니까’ 하는 생각으로 MNG 장비를 챙겼다. 데스크가 먼저 ‘혹시 모른다’ 하고 이야기를 한 터였다. 잘 작동하면 OK고, 그렇지 않으면 안 써도 상관없다, 그런 공감 하에. 챙겨가는 나도, 챙겨 보내는 회사도 그런 공감대가 있었다.    현지에 도착하고 보니 각사 취재팀 모두 저마다 MNG 장비를 챙겨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허름한 쇼핑몰 구석진 좌판에서 각자 몇 개씩 선불 심카드를 구입하고, 삼삼오오 모여 사뭇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심카드를 MNG에 장착했다. ‘과연 잘 작동할까?’ 그 출장 기간 동안 아주 가끔 한 번씩 몇몇 취재팀이 라이브를 시도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도 차원일 뿐이었다. 반드시 MNG로 송출해야 한다, 하는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그래서 현장은 노트북을 거쳐 한국으로 날아갔다. 당시 분위기는 그랬다.    2018년 6월. 러시아 월드컵.                      낫과 망치가 새겨진 붉은 깃발과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2018년 6월, 내게는 러시아보다는 소련으로 각인되어 있던 러시아로 월드컵 출장길에 올랐다. 불과 1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것은 MNG가 해외 취재 시에도 ‘반드시 필요한’ 장비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각사 출장팀마다 최소 한 대씩은 MNG를 챙겨 드넓은 시베리아 땅으로 향했다. 우리의 경우 모스크바 팀은 라이브를 준비했고, 상대국 팔로우 담당팀(내가 속했던 팀이다)이 MNG를 활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당시 러시아는 이동통신 사정이 좋지 않았다. 우리 팀의 첫 취재 포인트였던 갤레인지크는 3G와 LTE가 오락가락했고 아예 이동통신망이 잡히지 않는 음영 지역도 많았다. 이미 사전답사를 마친 스웨덴 취재팀은 유선망을 미리 신청해 MNG에 활용하기로 했다. 한 달여 기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러시아 다섯 개 도시를 취재하는 동안 MNG가 많이 활용되었다. 때론 짐이 됐지만 매우 유용한 송출 수단이 되어 주었다. 영상을 노트북으로 가공해 업로드 하는 일련의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회사에서는 현장 영상이 예전보다 빨리 도착하니 그만큼 기사에 반영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2019년 2월.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회담. 지구상에서 가장 취재하기 힘든 두 나라가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회담을 열었다.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1차 회담에 이어 각 방송사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그리고 그 열기의 중심에는 MNG가 있었다. 우리 취재팀은 생중계가 많을 것에 대비하여 1팀당 한 대의 MNG와 수십여 장의 심카드를 준비했다. MNG를 이용한 실시간 해외 생중계가 어느덧 직종의 주 업무가 되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 도착한 동당역부터 그의 숙소 앞까지 수많은 내외신 취재진이 MNG로 무장해 그를 맞이했다. 가공되지 않은 영상이 찰나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한국으로 날아가고 그대로 전파를 탔다. 바야흐로 중계차를 보내지 않고, 위성을 이용하지 않고도 해외 중계방송을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달라진 일상     문제는 MNG 생중계가 현장 취재보다 더 우선시되는 해외 출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MNG는 우리의 출장 풍경을 근본부터 바꿔 놓고 있다. 출장팀을 꾸리는 최초 단계부터 MNG 중계를 위한 최적 인력, 장비 구성이 논의된다. 현지 통신 사정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 점검 사항이 되었다. 현지 공항에 도착하면 호텔로 가기 전에 심카드 판매점을 먼저 찾아야 한다. 과거엔 하지 않았던 일이 주된 업무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다가올 미래. 영상기자의 과제.     올해 봄 우리나라 최대의 화두 중 하나는 5G 통신망의 출범이었다. LTE보다 최대 20배쯤 빠르다는 그 무시무시한 녀석은 수치상 늘어난 대역폭만큼이나 우리 영상기자의 업무 현장에 앞으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모뎀 하나가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양이 늘어 장비는 더욱 가볍고 작아질 것이다. 그리고 MNG 기능은 궁극적으로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대역폭이 늘어나는 만큼 화질과 음질은 향상될 것이다. MNG 사용이 지금보다 더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반응속도가 빠르니 더더욱 생중계에 적합해질 것이며, 실시간 원격제어 기술의 발전으로 영상기자의 눈과 손을 대체할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은 거대한 흐름이어서 한번 시작되면 거스를 수 없다. MNG가 영상기자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선배들이 늘 변화에 적응해 여기까지 온 것처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 목표에 기여하도록 만들어가는 부분은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기술에 종속되어 단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쯤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속도와 편리함 이전에 영상기자가 있어야 한다. MNG를 다루는 인력쯤으로 전락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게 있다면 MNG는 영상기자들에게 매우 효율적이고 쓸 만한 장비가 될 수 있다.   ※ MNG(Mobile News Gathering)    LTE 등 무선 이동통신망을 이용해 영상과 음성을 실시간으로 송출해 주는 장치     김남성 / SBS      
    2019-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