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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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불’로 시작된 취재
    ‘큰불’로 시작된 취재   ▲ 전북 군산시에서 불법폐기물에서 난 불을 진화 중인 소방관들<사진>     ▲ 불이 꺼진 뒤 드러난‘쓰레기 산’<사진>        올해 6월 25일, 군산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큰 불이 났다. 매일 얼마나 껐나, 언제 꺼지나를 두고 언론사마다 단신 기사를 쏟아낼 정도로 불은 대단했다. 6백 명 넘는 소방 인력이 매일같이 물을 쏴 결국 불은 일주일 만에 잡혔는데, 화염이 걷힌 뒤 드러난 광경은 더 대단했다. 취재하면서 그런 건 처음 봤다. 공장 안에 있던 건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산’이었고, 양은 1만 톤에 달했다.    반복되는 화재 사건. 동기 취재기자와 함께 <불법 폐기물은 왜 이곳으로, 어떻게 왔나> 원초적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도주  4월 2일에도 군산 한 공장에서 큰 불이 났다. 역시 불법 폐기물이 쌓여있던 곳이다. 현상만 놓고 보면 폐기물 화재 사고였고,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두 화재에 얽힌 속 얘기는 달랐다.    4월과 6월, 잇따라 불이 난 두 공장의 임차인은 같은 사람, 그러니까 김 씨였다. 김 씨를 비롯해 불법 투기 일당이 남의 공장을 빌려 벌인 일이었고, 김 씨는 불이 났을 땐 이미 도주한 뒤였다.    추적 끝에 붙잡힌 ‘김 씨’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김 씨를 쫓았다. 저희 취재진도 그를 추적했다. 취재를 시작하며 던진 “폐기물이 왜 이곳으로, 어떻게 왔나”를 탐사하려면, 먼저 투기범을 찾아야만 했다.    저희는 김 씨와 함께 일한 폐기물 브로커의 영업 동선을 거꾸로 추적했고, 광주광역시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한 폐기물 업자로부터 주요한 정보를 얻었다. 업자는 충북에 있는 한 공장에서도 같은 일, 폐기물 불법 투기가 벌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리고 충북 진천으로 갔다. 공장엔 주인도 모르게 폐기물 3천 톤이 쌓여있었다. 공장주는 “제조업을 한다는 어느 남성에게 공장을 빌려줬더니 이렇게 됐다”, “그와 곧 만나 쓰레기를 치우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아직 경찰에 신고는 안했다”라고 했다. 임대차 계약서에 적힌 이름, 우리가 쫓던 수배 중인 김 씨였다. 추적 끝에 투기범 김 씨는 도주 5개월 만에 붙잡혔다.    취재 끝에 밝혀낸 폐기물의 불법 고리  취재 처음 던진 ‘원초적 궁금증’의 답을 알려면, 고리의 시작점까지 가야 했다. 결국 김 씨와 폐기물 브로커 사이 고리는 밝혀졌다.    취재와 기획 보도는 사법기관의 수사를 앞서갔다. 저희가 불법 폐기물 문제를 투기범에 한정하지 않고 고리를 쫓았기에, 경찰 수사도 윗선 수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취재로 밝혀낸 폐기물업체 관계자들이 줄줄이 입건됐고, 탈법이 확연히 드러난 일부 업체는 지자체로부터 영업정지 행정 처분을 받았다. 저희는 사건의 현상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원인을 찾아나섰다. 허술한 제도와 지방정부의 관리 부실을 지적했고, 최근 환경부는 해양쓰레기 처리 용역과 관련해 관련법을 손보는 일을 전향적으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습에 당하지 않으려면 진열을 잘 정비해야 한다. 없는 제도를 꾸리고 있는 제도의 허점을 메우는 일은 정부가 할 일이다. 지금이 ‘반복되는 불법폐기물의 고리’를 쳐낼 칼을 벼릴 때가 맞다.       김동균 / KBS전주      
    2020-11-18
  • 재난현장의 슈퍼맨
    재난현장의 슈퍼맨   ▲ 포항의 고속도로에 널브러져 있는 푯말 <사진>      멸망 위기에 처한 크립톤 행성을 구하기 위해 슈퍼맨이 출동한다. 슈퍼맨.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지만 행성이 위험에 빠졌을 땐 언제 어디에서든지 빨간색 망토를 휘날리며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악당을 퇴치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작은 사건 현장에서도 슈퍼맨을 볼 수 있다. 결국 두 팔 벌려 하늘을 날았던 슈퍼맨은 임무를 완수하고 크립톤 행성을 지켜낸다.  면접장에서, 매번 카메라를 짊어진 슈퍼맨이 되겠다고 나는 말했었다. 언제나 크고 작은 사건 현장의 중심에 서고 싶었고 어떤 현장이든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건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슈퍼맨 영상기자다.    입사 후, 주로 사건사고 현장 한가운데 있었던 내 모습은 슈퍼맨은 아니었다. 특히 태풍과 같은 재난 현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거센 바람이 온몸을 강타할 때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영화 속 주인공을 꿈꿨지만, 현장에서는 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빨간 망토도 없었다.    영상기자에게 때때로 안전과 영상의 퀄리티는 반비례하기도 한다. 안전보다는 영상에 치우쳐지기 마련이다. 현장은 마냥 영상기자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현장의 상황을 신속하게 영상으로 담아내야만 한다. 재난 현장의 위험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위험 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당연히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지난 9월, 태풍 마이삭 현장. 이른바 ‘태풍 추적조’, 즉 태풍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피해 상황을 취재하는 임무를 맡았다. 태풍 동선을 쫓아 피해 현장을 촬영하다 보니 어느 순간엔 취재진이 태풍보다 앞서 도착해서 태풍을 기다리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동 중 고속도로에서 널브러져 있는 커다란 나무판자를 피하려다 옆 차량과 충돌할 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고 거센 바람에 날아든 각목이 취재차량 앞 유리를 강타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위험하고 아찔한 상황이었다. 동시에 태풍 상황을 잘 보여주는, 소위 그림 되는 것들이기도 했다. 이 영상은 모두 당일 메인 뉴스에 방송되었다.    영상기자가 재난 취재 현장으로 나가기 전 많이 듣는 말은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몸 조심해라.”    “안전이 우선이다.”    “욕심내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라.”    현실은 어떤가? 안전모 하나를 생명의 끈처럼 생각하며 사방팔방 돌아다닌다. 이것은 모든 영상기자의 숙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취재진의 안전이 화두가 되기도 한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중계현장에서 안전 문제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건물 안쪽으로 몸을 피해 다시 중계를 이어가겠다고 한 경우도 있다.    이제 시청자들은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거나 웅장한 뉴스를 원하지 않는다. 단조롭더라도 현장의 사실성이나 진실이 담백하게 담겨 있는 영상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태풍 현장에서 항상 기자 중계나 리포트를 보고 위험하고 위태로워 보인다는 시청자들의 지적과 댓글이 이를 보여준다.    영상기자는 재난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 현장에서 슈퍼맨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안전도 지켜야 하고 짧은 시간 안에 현장의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신속한 송출과 MNG 중계 능력까지 겸비해야 한다. 현장의 책임은 점점 녹록하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재난 현장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 현장을 달려왔다. 우리가 현장에 가는 목적은 현장과 진실을 알리려는 데 있다. 이것은 취재진의 안전이 뒷받침된 후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취재진의 안전이 없다면 시청자의 안전을 위한 정보 제공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양현철 / SBS        
    2020-11-18
  • [줌인]힌츠페터가 지금 언론에 시사하는 것
    [줌인]힌츠페터가 지금 언론에 시사하는 것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기록했다. 한국 언론에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모든 것은 내 눈앞에서 일어났던 일. 피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위르겐 힌츠페터’를 검색하면 나무위키에 이 인용구가 가장 먼저 나온다. 짧은 문장이지만 곱씹어볼 게 많다.    우리 언론 종사자들은 헤게모니, 힘, 영향력 등을 목표로 일하지 않지만, 반대로 이것들이 없는 언론은 얼마나 유명무실한가? 진실을 취급하는 언론은 그 결과물로써 힘, 영향력을 선물로 얻는다. 이는 수용자가 언론에 되돌려주는 신뢰값이자 헌사이다. 이것들 없이는 언론이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언론이 한국 사회에서 힘과 영향력을 잃어가는 것은 언론의 미래를 볼 때 심상찮은 현상이다. 신문과 방송 등의 이른바 올드미디어, 레거시 미디어 전체가 한 덩어리로 수용자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기성 언론 전체가 일종의 적응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다. 누군가 TV 토론에서 진단한 것처럼, 이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현상이기도 하다. 영상기자 직종의 관점에서 보면, 영상이 하나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자성을 하게된다. 자율성, 자주적인 시각이 크게 약화된 것이다.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뉴미디어에 진출하며 새 활로를 모색 중이지만 여기에서도 자율성, 자주성, 자발성, 주체성은 크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드미디어의 몰락과 함께 미디어 내부 권력이 몇몇 특종 직종에 집중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헤게모니 바깥으로 밀린 직종은 점점 더 부차적인 것, 단순 지원적 파트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오래된 문제다.    한국영상기자협회는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광주광역시와 함께 힌츠페터 상을 준비 중이다. 힌츠페터가 특파원으로 무려 17년 동안 동아시아에 주재했다는 것(1967년 초 당시 ARD 유일의 동아시아 방면 지부가 있던 홍콩으로 발령을 받았으며 1969년 봄에는 베트남 전쟁에 종군기자로 취재하다가 사이공에서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후 일본의 도쿄 지국으로 옮겨가 1973년부터 1989년까지 17년간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 구글 나무위키), 그가 단순히 타 직종의 정보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정보 취득과 판단, 행동의 주체였다는 것, 그의 기록이 역사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 등의 사실에는 오늘날 기성 언론이 참고할 대목이 많다. 자율성과 판단, 실행의 주체가 되는 것은 언론 종사자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다. 이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점점 더 보장하지 않으려 하는 영역이다. 동시에 유튜브와 같은 뉴미디어, 1인 미디어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과는 정반대로 저널리스트의 강력한 주체성, 자율성, 자발성 등을 바탕으로 언론 시장에 빠르게 뿌리내리고 있다.    오늘날 영상기자들은 두 개의 천장을 뚫어야 한다. 하나는 회사 내부의 헤게모니 천장이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피동적인 상태에 가두는 의식의 천장이다. 이것들 모두가 기성 언론, 나아가 영상기자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억압하고 있다.    힌츠페터는 어찌 보면 자율성,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간 21세기 뉴미디어 언론인처럼 보인다. 헤게모니와 힘, 영향력은 앉아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20세기의 위르겐 힌츠페터가 21세기 기성 언론인들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김정은 / 편집장    
    2020-11-18
  • MBC ‘보도영상연구회’
    MBC ‘보도영상연구회’   ▲ 지난 9월 21일‘4k 카메라와 UHD프로세싱’을 주제로 진행된 MBC보도영상연구회 세미나에 참가한 MBC 영상기자<사진>.       ▲ 1998년부터 1999년까지 2년 사이 진행된 보도영상연구회 포럼내용을 정리한 제1호 자료집 ‘보도영상’. 97년 대선 당시 이른바‘총풍사건’과 법정취재 허용 논란 등을 담고 있다<사진>.          얼마 전 퇴근길 우편함을 보니 인구주택 총조사 ‘센서스’ 설문지가 가가호호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설문지가 지나치게 얇다 싶었는데 펼쳐보니 시대 흐름에 맞춘 QR코드 응답 안내였고, 저녁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예전 같으면 한참이 걸렸을) 설문 응답이 끝났습니다. ‘세상 참 편해졌다’는 끄덕거림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응답의 간편함과는 별개로, 설문을 할 때마다 꼭 머뭇거리게 되는 어려운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당신은 현재 어떤 일을 하십니까?    ①회사원 ②전문직 ③자영업 …’    고민의 지점은 ①과 ② 사이입니다. 영상기자를 회사원이라 하자니 뭔가 월급쟁이 샐러리맨 같은 느낌이 맘에 안 들고, 전문직이라 하자니 무엇에 대해 ‘전문’인지 스스로도 좀 애매합니다. 누군가는 ‘촬영’ 전문가를, 또 누군가는 ‘뉴스’ 전문가를 자처하겠지만, 분명한 점은 의료 전문가인 의사나,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처럼 딱 떨어지는 전문 영역과의 매칭이 한 번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면 다행인데, 좀 더 나아가 ‘내가 과연 전문적인가’하는 자책까지 이어지면 그야말로 난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언론 고시(?)까지 통과했으면 그럭저럭 전문가 아닐까’ 하는 소심한 합리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응답란이 채워지곤 합니다.    서설이 쓸데없이 길었는데, MBC에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 답이 될 것 같은 영상기자 소모임이 있어 이 자리를 통해 소개할까 합니다. 좀 거창한 이름의 ‘보도영상연구회’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영상기자를 자리매김하기 위한 MBC 영상기자들의 고민과 연구가 녹아 있는 공간입니다.    영상기자 연구모임의 시작은 세기를 앞서 1990년대 후반부터였습니다. 각종 사건·사고와 정치 공방들로 말 그대로 다이나믹 코리아였던 당시, 그 바쁜 와중에도 영상기자 직종의 가치와 비전을 탄탄히 하려는 선배 영상기자들의 갈증이 있었고, 그렇게 ‘문화방송 보도영상연구회’가 만들어졌습니다. 10여 명의 영상기자들이 주축이 되어 각종 보도 현안과 영상 이슈들을 연구회 테이블에 올렸고, 현업에 소비되어가는 와중에도 영상 조직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 위한 연구회의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자발적 연구모임이라는 태생적 한계 탓에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영상기자회를 통한 다양한 지원과 배려가 이어졌고, 영상취재부서 차원의 도움도 많았습니다. 우리 일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강사료를 자체 지급해가면서까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세미나를 진행했고, 이는 대외적으로도 ‘공부하는 영상기자’ 인식을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우리가 다뤘던 주제는 실로 광범위해, 영상문법의 ABC부터 종군 취재 노하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다가도 컬러리스트로부터 색보정 프로그램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업무를 마친 늦은 저녁이 힘들 법도 하지만,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에도 참석자들은 열정적이고 강의는 알찼습니다. 언론학자와 영화감독, 카메라 엔지니어 등 다양한 패널이 자리에 힘을 보탰고, 깊었던 고민들은 책으로도 발간되어 지식을 전파했습니다. 뉴스를 직접 제작하는 영상기자들의 모임이다 보니, 참여했던 외부 전문가들에게는 현업자 집단의 귀중한 피드백을 얻어가는 창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단단하게 다져진 보도영상연구회는, TV 화면 크기가 두 번이나 바뀐 지금까지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회사 사정에 따라 부침이 있었던 모임 진행도, 이제 분기별 격월 모임으로 자리 잡았고, 2018년 이후엔 회사 인재 개발부가 진행하는 융합 업무 프로젝트 ‘크로스 이슈(Cross Issue)’ 스터디 그룹에 선발되어, 영상기자 조직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연구모임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발자취 못지않게, 앞으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뉴스 보도에서 언론 종사자의 영역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시민기자와 유튜브 저널리즘은 영상보도의 영역에도 예외가 아닙니다.3 이제 영상기자들은 더더욱 우리의 ‘전문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NG가 권력이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만큼이나 까마득해, 이젠 호랑이도 전자담배를 지나 금연에 성공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블랙박스와 CCTV가 우리의 주요 경쟁 상대이고, 레거시 미디어의 한계가 점점 드러나는 이 시대에, 보도영상연구회는 영상기자들에게 붙은 전문가 칭호가 여전히 어색하지 않도록 다양한 고민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다가오는 4K 시대를 준비하는 한편, 해외의 뉴스 트렌드도 놓치지 않고 훑어야 할 것입니다. 덧붙여, 최소한 기레기 소리는 듣지 않게끔 취재 윤리를 살피고 시민들에게 눈을 맞추는 훈련도 이 공간에서 진행하기 좋은 주제입니다. 쓰다보니 참 거창한 내용이 많지만, 한편으론 이런 고민을 함께 할 사람들과 모임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연구회에서 진행한 몇 차례 포럼의 내용을 정리해 발간한(99년) 자료집 ‘보도영상’ 1호의 서문은 이렇게 끝맺음되어 있습니다.    ‘비록 어눌하고 서툰 첫걸음이지만, 우리가 내딛는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보다 공정하고 진실된 보도영상, 시청자가 공감하는 보도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힘찬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자찬일 수 있지만, 지난 20년간 보도영상연구회의 족적은, 이 첫걸음의 방향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천명한 ‘진실’과 ‘공정’, ‘공감’의 세 키워드는 앞으로의 20년에도 여전히 중요한 영상기자들의 소명이자 가치입니다. 이런 고민들이 오늘날 영상기자를 전문가 집단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설문 응답에 망설일 필요가 없게끔, MBC 보도영상연구회는 영상기자들의 지식 곳간을 열심히 채워가겠습니다.     박주일 / MBC  
    2020-11-18
  • 영상기자에게 출입처란
    영상기자에게 출입처란   ▲ 2019년 겨울, 국회 영상기자실에서 영상기자와 함께      2019년 말, 신입 때부터 이어진 약 3,650일이라는 약 10년간의 사회부 생활이 끝나고 국회로 출입처 발령을 받았다. 모든 변화에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법. 나 역시 그동안 해왔던 사회부 생활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마치 이직을 앞둔 회사원처럼) 내심 떨렸던 기억이 난다. 내 자리의 짐을 빼고 장비를 옮겨 출입처로 이사(?)하는 것도 그런 기분에 한몫했던 것 같다.    출입처에서 보내는 기간은 언론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MBN의 경우 보통 약 2년 정도이다. 거의 군 복무와 맞먹는 기간 동안 회사가 아닌 공간에서 다른 회사 사람들과 지내게 된다. 출입처에 오고 나서 새삼스레 느낀 부분이지만, 이토록 장기간 여러 회사에서 한 곳으로 직원들을 파견해 같은 업무를 분담하는 시스템은 보도 영상업계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매우 드물지만 또 필요한 부분이다. 사진과 영상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특수 업무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풀을 짜서 해결해야 하는 부득이한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2020년은 유례없던 코로나 시국이고 이런 측면은 더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존의 6개사뿐만 아니라 종편, 지역 방송사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취재 공간에 머무르는 인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실 국회라는 출입처에서 제작하는 정치 기사는 회사마다 원하는 기사의 방향이 대동소이하므로, 사회부와 같이 ‘구르는’ 일보다는 ‘조율’을 하는 업무가 더 주요하다. 그렇기에 현재로서는 열 개가 넘는 방송사마다 조금씩 다른 요구사항들을 수용해, 취재하고 송출하기까지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게 협회 풀단의 여러 역할 중 하나이다.  출입처의 영상취재는 현장에서의 중점을 다른 곳에 둔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대부분의 사회 부성 기사는 영상을 통한 내용 전달에 중점을 두고 이 부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국회에서의 영상취재는 ‘싱크’가 차지하는 중요도가 8할에 가깝다.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를 담았는지 놓쳤는지의 여부에 따라 곧바로 결과물이 달라진다. 흔히 얘기하는 ‘그림의 질’ 보다는 ‘싱크의 유무’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출입처가 처음이었던 나로서는 새로이 경험하고 느끼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2, 3주 정도는 신입으로 입사해서 수습 기간을 겪던 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예컨대, 국회 내 건물이나 구조 혹은 위치 등을 기억하고 매 순간 발생하는 일정을 따라다니는 것만 해도 버겁고 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취재기자들의 취재요청에 익숙해져 있던 사회부 경험상, 국회 영상기자 풀단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취재는 나를 어리바리하게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국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슈를 풀단에서 직접 팔로우하고 뉴스의 가치를 판단한 후 영상취재 여부에 대한 각사의 논의를 거쳐 일정을 커버하는 선택과 집중의 과정들은, ‘영상기자’라는 타이틀을 놓고 보았을 때 ‘영상’보다 ‘기자’ 쪽에 더 비중이 실려 있었고 더 큰 책임감을 갖게 해 주었다.    겨울, 봄, 여름이 지나고 다시 가을이 왔으며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사회부 때도 빠르게 지나가던 시간에 더 가속도가 붙은 기분이다. 그 1년 동안 나는 출입처에서 무엇을 했나, 하고 돌이켜보니 그저 내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급급했던 것 같다. 물론 사회적으로 언론 환경이 바뀌면서 출입하는 당이나 국회의원들과의 소통이 예전만큼 매끄럽지도, 쉽지도 않아진 면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핑계 삼아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특별히 공부하거나 노력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 부끄러울 따름이다. 24명의 영상기자들이 유기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칫 영상기자로서의 책임 또한 24분의 1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생각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제때 떨쳐내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기자라는 소명의식을 슬며시 놓아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문득 글을 쓰면서 다시금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입처에 있는 동안 조금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보고 발전할 수 있는, 기자로서 유의미한 시기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김준모 / MBN          
    2020-11-17
  • ‘좋은 취미’에 관하여
    ‘좋은 취미’에 관하여  취미를 선택받는 모든 사람에게   ▲ 만화를 좋아해 땡땡(tin-tin)의 대모험 전시회에 참석한 필자      취미란 무엇인가? 취미의 ‘취(趣)’는 ‘서두르다’, ‘빨리 달려간다’는 뜻이고, ‘미(味)’에는 ‘맛’ 뿐만 아니라 ‘취향’, ‘기분’이라는 뜻이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부지런히 좇아간다는 뜻이다. 이처럼 취미는 이성의 영역이기보다는 감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개인의 은밀한 취미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누군가의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예전부터 사람들이 흔히 꼽는 3대 취미가 있다. ‘카카오’라 불리는 자동차(카) 튜닝·카메라 수집·오디오 튜닝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장비만 갖춰서는 무언가 아쉽고, 세트를 갖춰도 이보다 더 좋은 스펙, 다른 기능을 가진 장비에 눈길이 간다. 이런 취미는 한번 주머니가 열리면 다시 잠그기 쉽지 않아 과소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투자되는 비용 때문이 아니라 시간 때문에 눈초리를 받는 취미도 있다. 낚시, 게임, 골프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날 지구가 멸망해도 이들은 오늘 마지막 찌를 던지고, 막판 접속을 하고, 최후의 라운드를 즐기리라. 자신의 취미에 몰두하는 이 은둔자들과 자주 어울리고 싶다면 취미를 공유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 비용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에 취향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취미도 있다. 와인 모임, 등산회, 댄스, 서핑 등이 그 예다. 순수하게 취미를 즐기는 사람만큼, 선입견을 갖는 사람도 많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마음 있다’는 편견과 싸워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이들이 종종 마주치는 과제다.    이 밖에도 고스톱이나 포커, 경마 같은 사행성 취미, 이종격투기나 익스트림 스포츠와 같은 취미도 뭇사람에게 환영받기 쉽지 않다. 불건전하다고 핀잔을 듣거나 주변 사람을 염려하도록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개인의 SNS 활동도 검열당하고 제지당한다. 본인이 온라인에 올린 콘텐츠가 의도치 않게 고용주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어서다.    따지고 보면, 취미라는 이름의 개인 영토는 타인에 의해 쉽게 침략당한다. 좋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비용, 시간, 선입견, 윤리, 안전 등의 요소만 고려해도 바람직한 취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위의 기준을 충족하는 취미 중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산책·요리·독서·간단한 보드게임·영화감상·가벼운 운동 정도다. 누구에게 취미로 소개해도 무난한 것들이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만약 운이 좋지 않아 위의 취미들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들이면 더더욱 끔찍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취미를 묻는 공적인 순간에 ‘화투’나 ‘피규어 수집’을 언급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을까?    이런 절제된 영토 위에 살려니 처음 좇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자꾸 잊어버린다. ‘취향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공염불로 들린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숨기고 양보하는 것이 이 땅에서 ‘가장 좋은 취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안민식 / KBS  
    2020-11-17
  • 길(路)의 재발견
    길(路)의 재발견   ▲ 성산대교 밑 보도 한쪽에 잠자리를 사냥한 거미의 모습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됐다. 첫 보도는 원인 모를 폐렴으로 우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이것이 나의 삶과는 상관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2020년 10월 말 현재, 한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가 코로나19 소용돌이 속에 목숨을 잃는 중이다. 코로나19라 불리는 전염병은 한 명이 동일 공간에 있다면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여러 명을 감염시킬 수 있고 밀집, 밀폐된 곳에서는 전염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한두 명으로부터 시작된 후에는 인적 네트워크가 여러모로 감염 확산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풍경이 변하고 있다. 2020년 3월.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대중교통 이용이 마음 편하지 않다. 생면부지의 불특정 다수와 함께 좁은 공간에 밀폐되는 일은 이제 감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나의 길(路)의 재발견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직선거리 7km의 도보 출근. 첫 시작은 코로나19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행위로써의 걷기뿐만 아니라 길 위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에 중독되고 말았다. 한강 산책로를 따라 여의도까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로 90년대와 2000년대 가요를 듣는다. 특정 가요가 유행했던 옛날, 개인적 경험들이 어제 일처럼 기억 속에서 소환된다. 내 기억 속 검색 주제어는 가요 제목인 것 같다 - 나는 기억 소환 해시태그#라 부른다. 이승환의 ‘천일동안’,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등. 이런 기억의 소환을 통해 당시를 회상하는 마법 주문 같은 경험을 한다. 잊은 채 살아가고 있던 일, 기억의 존재조차 망각하고 있었던 것 등을 불러내는 것이다.    소환된 추억을 곱씹으며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와 함께 한강 산책로 아스팔트 위를 한 발짝 한 걸음 힘차게 내딛는다. 신기한 것은, 탁 트인 한강변에서 불어오는 뒷바람을 맞으면 평균 두 시간 남짓 걸리던 것이 대략 15분 정도 단축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맞바람을 맞으며 걸을 땐 우선 무척 괴롭다. 모자가 뒤집힐 듯 날리고 눈도 게슴츠레 떠야 한다. 한 손은 모자를 붙잡고 상체는 바람을 맞으며 몸을 구 부정히 한 채 걸어야 한다 - 인간이 바람에 맞서는 본능적 자세다. 바람은 걸음을 도와주기도 하고 때론 발걸음을 붙잡기도 한다. 마주 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피해 보지만 사실 이런 때 사람 구경은 돈 주고 살 만하다. 사람들 각각의 외모도 외모지만,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얼굴과 몸짓 손짓에서 그(그녀)의 삶의 궤적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를 준다. 상대방도 나를 힐끗 보다 시선을 돌린다. 서로가 서로를 살피고 탐색한다. ‘그’ 또는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멋진 사이클의 행렬에 이어 어느 순간 따릉이들 한 무리가 바로 옆 아스팔트 위 페인트칠로 경계를 이룬 자전거도로를 쏜살같이 (때론 강바람을 만끽하듯 여유를 부리며) 지나간다. 마스크를 썼지만, 그 순간만큼은 코로나19도 잊은 듯한 행복감이 마스크 너머로 드러나는 것 같다. 일부러 가식적으로 지을 수 없는, 마음이나 가슴에서 표현되는, 행복한 표정들의 행렬이다.    앞만 보고 갈 때. 주위를 살피며 걸을 때. 어제는 못 본 대상,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오늘 보이는 경험. 오늘이 어제가 되었을 때, 내일,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이 일어난다. 물론 대단한 발견은 아니다. 한 달 동안 같은 길을 오갔는데 굉장히 낯선 시설물이 눈에 들어온다 - 낡고 허름하다. 처음 본 것 같다. 하지만 실은 최소 십수 년을 그 자리를 지켰을 시설물이다. 단지 내 뇌의 저장을 담당하는 기억 속에 입력이 안 됐을 뿐이다. 아마도 조물주가 인간 뇌가 터질까 봐, 아니면 기억이 아닌 창의적인 생각 좀 해보라고 일부러 망각이라는 여유 공간을 남긴 걸까?    저장된 기억의 소환에는 필히 모종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오늘도 길 위를 걸으면서 주위를 잘 살피고 관찰하지만 놓치는 것들이 있다. 인간은 놓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반복’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한강변 산책로 귀퉁이 늘 같은 자리에 있던 거미. 평상시에는 잊고 있다가 뇌 속 기억을 소환하는 연결고리가 벼락 치듯 번쩍하고 이어지면 문득 생각난다. 성산대교 아래 한강 펜스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거미 녀석. 잠자리 날개를 잘 포개어 놓고 거미줄로 단단히 고정한 채 맛있게 포식 중이던 녀석이다. 아니, 정정한다. 거미 녀석이 아니라 그냥 거미로 불러야겠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거미에 대한 나의 지식으로는 모를 일이다. 검색하면 알 수도 있겠지만 귀찮다. 암튼 한동안 그 거미를 잊고 살았다. 내 기억에 있는지조차도 기억 못 하고 있었다.  한강변을 걸으며 우연히 다른 펜스에 횅하니 한가운데 500원 동전 크기의 구멍이 뻥 뚫리고 거미는 온 데 간 데 보이지 않는 주인 없는 거미집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기억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기억 속 어둠의 심연 속에 파묻혀 있던 성산대교 밑 그 거미가 번쩍하고 생각난다. 잠자리 체액을 쪽쪽 빨아먹으며 포식하고 있던 그 거미. 발걸음을 재촉하며 그 거미가 있던 곳으로 가본다. 지형지물을 확인하고 위치를 가늠해 도착해 보니 회색빛 보호색으로 몸을 위장한 채 다리는 얼룩무늬를 띄고 있는 것이...여전하다. 거미줄 한가운데 거미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무사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거미를 만날 수는 없을 것을 알고 있다. 그날 이후 그 거미는 내 기억 속 어둠의 공간에 또다시 던져서 다시 기억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로 걷기 중독자가 된 나는 오늘도 길(路) 위를 걷는다. 걷다 보면 세상이 한없이 높은 벽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자신감이 충만해질 때도 있다. 잘 닦인 길 위를 걸으며 주위를 살피기도 하고 때로는 의도치 않게 보이는 뭔가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나를 길(路) 위의 방랑 중독자로 만들고 있다. 길(路)이 작고 소소한 관심이 주는 삶의 재미와 성찰을 선물했다.     김상민 / KBS      
    2020-11-17
  • 도심 속 고궁 산책
    도심 속 고궁 산책   ▲ 올여름,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모습      “서울은 천박한 도시.”    지난여름, 여당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서울을 가리켜 아파트값만 얘기하게 되는 천박한 도시로 표현해 논란이 됐다. 행정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도중, 서울의 집값 문제 및 재산 가치로만 평가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한 발언이었다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강남불패니 마용성, 노도강 하는 단어들을 떠올려보면 맞는 말이고, 서울이 조선왕조 500년에 근현대 100년을 더한 현재 진행형 역사 도시임을 생각해 본다면 틀렸다. 서울은 단순히 물질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님은 분명하다.  입사하며 시작된 서울살이가 어느덧 7년 차. 최근 몇 년 사이 나에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서울 시내 고궁 산책이다. 조선 500년의 수도였던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자그마치 5개의 궁궐이 있다. 취재 일정 중 비는 시간이나 철야 근무 후 쉬는 날이면 나는 고궁을 찾는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인 도심 길을 걷다가 고궁의 흙바닥을 걸으면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역사문화적 식견은 부족하지만 보이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한국의 전통미를 말할 때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고 표현한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여유로이 고궁을 바라보고 있자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부드럽게 곡선으로 뻗어나가는 지붕 선에서, 오방색으로 물든 단청에서, 정전 앞 넓게 깔린 월대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느낀다. 고궁을 걷다 인적이 드문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사색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여러 취재 현장에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이 사색 속에서 차분히 가라앉는다. 내 머릿속에도 여백의 미를 넣어주는 순간이다.  서울의 5대 궁궐 중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왕이 아닌 왕의 부모인 상왕이나 대비 등이 기거하던 궁궐이었다. 그 때문에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해 다소 소박한 규모로 권위보단 친근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고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혼자 여유롭게 산책하기에 좋다. 창경궁 내에 있는 연못인 춘당지는 창덕궁 후원과 더불어 서울에서 사계의 변화를 가장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녹음이 푸르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물든다. 해설사 인솔하에 정해진 시간 동안만 관람이 가능한 창덕궁 후원과 달리, 창경궁 춘당지는 항시 자유관람이 가능해 훨씬 더 한가로이 계절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선선한 날씨에 가을이 물들고 있는 요즘이 창경궁을 산책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세계 10대 도시로 손꼽히면서도 600년 역사의 기품이 흐르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도심 속 고궁이 있다. 경복궁 근정전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광화문 너머 도심 속 빌딩들이 보인다. 고도(古都)의 궁궐 속에서 바라보는 높은 고도(高度)의 빌딩 숲 풍경은 이 도시의 품격을 느끼게 한다. 서울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서울의 고궁을 걸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라웅비 / MBN      
    2020-11-17
  • 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 지난 10월 초, 파주의 한 연습실에서 연습에 한창인 이날치 밴드      따랑 땅 따랑~ 따랑 땅 따랑~’    댄스곡이 시작될 것 같은 130bpm의 흥겨운 베이스 리듬 뒤에 한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는 킬링 파트가 시작된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뭔가 힙합 같기도, 디스코 같기도 해서 힙(Hip)한 것을 좇는 MZ 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조회수 2억뷰를 넘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한 노래 이야기이다.    사실 이 노래는 판소리였다. 북소리에 맞춰 “얼쑤~” 하며 갓 쓴 소리꾼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가 아는 그 전통의 장르가 맞다. 다만 그 판소리를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라는 그룹이 완전히 재해석한 곡이다. 베이스 두 명과 드럼 한 명, 네 명의 판소리 보컬로 구성된 이 밴드는 ‘이날치’라는 19세기의 명창의 이름을 따서 결성되었다.    화제가 되고 있는 ‘범 내려온다’는 거북이가 용왕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인 ‘수궁가’의 한 부분을 발췌했다. ‘범 내려온다’를 계속 듣다 보면 토끼전에서 갑자기 왜 범이 등장한 건지 궁금해지는데, 토끼를 찾으러 육지로 올라 온 거북이가 ‘토 선생’을 ‘호 선생’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호랑이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내려온다는 에피소드였다.  이날치는 이런 엉뚱한 전개를 놓치지 않았고, 사실 전체 줄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범의 등장을 과하다 싶을 만큼 반복했다. 그 결과 ‘판소리를 편곡했더니 수능 금지곡이 되네’, 라는 댓글 반응이 돌아왔다. 곡의 중독성이 워낙 강해서 다른 일에 집중을 못하게 한다는 찬사를 받은 것이다. 최근에는 1일 1범의 시대라는 댓글까지 등장했다. 분명 판소리 수궁가는 이날치를 통해 2020년 가장 힙한 음악으로 탈바꿈했다.    파주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이날치’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다는 느낌이었다. 무대에서는 괴짜 같은 분위기에 폭발적인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뭔가 조용하고 진중한 분위기가 낮게 깔려 취재진도 긴장하며 카메라 세팅을 진행했다.    인터뷰 자리를 배치하는데, 드러머인 이철희 씨가 가장 먼저 구석자리를 차지했다. BTS와 콜라보를 하겠다던 당찬 포부와는 달리 촬영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친근함을 느꼈다.    인터뷰는 기존의 형식과는 달리 유튜브에 달린 댓글 중에 하나를 뽑아 읽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첫 번째 순서로 당첨된 이철희 씨가 댓글을 뽑았는데, 현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철희 씨가 취재진이 준비한 댓글의 글씨가 작아 읽지를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돋보기까지 동원했는데 힙하게만 보이던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뭔가 짠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50이 넘은 나이에도 10대가 공감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존경의 마음도 들었다.    이날치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직접 베이스도 담당하고 있는 장영규 씨는 수식어가 많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음악감독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고, 퓨전 국악그룹 ‘씽씽’을 결성해서 화제를 끈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장영규 씨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 많은 음악 중에 판소리 수궁가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는 무심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날 뷰파인더를 보며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놀라웠던 말이다. 참신한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심청가로 춤을 출 순 없으니까’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판소리를 춤을 추기 위해 선택했다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범 내려온다’, ‘ 좌우나졸’, ‘어류도감’ 등 이날치 모든 곡이 수궁가에서 춤을 추기에 가장 적합한 구절로만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그는 이날치의 음악을 국악과 같이 장르로 규정하지 말아 달라고도 부탁했다.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이철희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했다.    “독특한 국악 같은 걸로 기억되는 밴드가 아니라 그냥 음악이 좋아서 듣는 편안한 노동요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국악의 현대화를 꿈꾸는 밴드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취재진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보컬의 수장 격인 소리꾼 안이호 씨는 요즘 갓보다 스냅백이 더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국악 무대가 많이 사라진 가운데 이런 흐름들로 기분이 좋은 한편, 그저 이렇게 한번 화제가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치의 음악이 특이한 노래라서가 아니라 그냥 듣기 좋은 음악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길 바란다는 포부를 밝혔다.    촬영을 하는 도중에도 다음 스케줄 때문인지 작업실은 소란스러웠다. 예정에 있던 추가 스케치를 생략하고 자리를 비워 주었다. 촬영이 끝났다고 말하자마자 옆에서 기다리던 스탭들이 달려들어 이날치 멤버들에게 의상을 입혀보고 또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저 이렇게 한번 화제가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 .’    안이호 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급변하는 음악 문화 속에서 이날치의 음악은 계속해서 롱런할 수 있을까? 끝이 아닌 시작을 말하는 이날치는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난 후에 클럽에서 젊은이들과 떼창하고 있는 이날치와 다시 한번 마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승태 / SBS    
    202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