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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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路)의 재발견
    길(路)의 재발견   ▲ 성산대교 밑 보도 한쪽에 잠자리를 사냥한 거미의 모습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됐다. 첫 보도는 원인 모를 폐렴으로 우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이것이 나의 삶과는 상관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2020년 10월 말 현재, 한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가 코로나19 소용돌이 속에 목숨을 잃는 중이다. 코로나19라 불리는 전염병은 한 명이 동일 공간에 있다면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여러 명을 감염시킬 수 있고 밀집, 밀폐된 곳에서는 전염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한두 명으로부터 시작된 후에는 인적 네트워크가 여러모로 감염 확산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풍경이 변하고 있다. 2020년 3월.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대중교통 이용이 마음 편하지 않다. 생면부지의 불특정 다수와 함께 좁은 공간에 밀폐되는 일은 이제 감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나의 길(路)의 재발견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직선거리 7km의 도보 출근. 첫 시작은 코로나19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행위로써의 걷기뿐만 아니라 길 위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에 중독되고 말았다. 한강 산책로를 따라 여의도까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로 90년대와 2000년대 가요를 듣는다. 특정 가요가 유행했던 옛날, 개인적 경험들이 어제 일처럼 기억 속에서 소환된다. 내 기억 속 검색 주제어는 가요 제목인 것 같다 - 나는 기억 소환 해시태그#라 부른다. 이승환의 ‘천일동안’,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등. 이런 기억의 소환을 통해 당시를 회상하는 마법 주문 같은 경험을 한다. 잊은 채 살아가고 있던 일, 기억의 존재조차 망각하고 있었던 것 등을 불러내는 것이다.    소환된 추억을 곱씹으며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와 함께 한강 산책로 아스팔트 위를 한 발짝 한 걸음 힘차게 내딛는다. 신기한 것은, 탁 트인 한강변에서 불어오는 뒷바람을 맞으면 평균 두 시간 남짓 걸리던 것이 대략 15분 정도 단축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맞바람을 맞으며 걸을 땐 우선 무척 괴롭다. 모자가 뒤집힐 듯 날리고 눈도 게슴츠레 떠야 한다. 한 손은 모자를 붙잡고 상체는 바람을 맞으며 몸을 구 부정히 한 채 걸어야 한다 - 인간이 바람에 맞서는 본능적 자세다. 바람은 걸음을 도와주기도 하고 때론 발걸음을 붙잡기도 한다. 마주 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피해 보지만 사실 이런 때 사람 구경은 돈 주고 살 만하다. 사람들 각각의 외모도 외모지만,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얼굴과 몸짓 손짓에서 그(그녀)의 삶의 궤적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를 준다. 상대방도 나를 힐끗 보다 시선을 돌린다. 서로가 서로를 살피고 탐색한다. ‘그’ 또는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멋진 사이클의 행렬에 이어 어느 순간 따릉이들 한 무리가 바로 옆 아스팔트 위 페인트칠로 경계를 이룬 자전거도로를 쏜살같이 (때론 강바람을 만끽하듯 여유를 부리며) 지나간다. 마스크를 썼지만, 그 순간만큼은 코로나19도 잊은 듯한 행복감이 마스크 너머로 드러나는 것 같다. 일부러 가식적으로 지을 수 없는, 마음이나 가슴에서 표현되는, 행복한 표정들의 행렬이다.    앞만 보고 갈 때. 주위를 살피며 걸을 때. 어제는 못 본 대상,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오늘 보이는 경험. 오늘이 어제가 되었을 때, 내일,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이 일어난다. 물론 대단한 발견은 아니다. 한 달 동안 같은 길을 오갔는데 굉장히 낯선 시설물이 눈에 들어온다 - 낡고 허름하다. 처음 본 것 같다. 하지만 실은 최소 십수 년을 그 자리를 지켰을 시설물이다. 단지 내 뇌의 저장을 담당하는 기억 속에 입력이 안 됐을 뿐이다. 아마도 조물주가 인간 뇌가 터질까 봐, 아니면 기억이 아닌 창의적인 생각 좀 해보라고 일부러 망각이라는 여유 공간을 남긴 걸까?    저장된 기억의 소환에는 필히 모종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오늘도 길 위를 걸으면서 주위를 잘 살피고 관찰하지만 놓치는 것들이 있다. 인간은 놓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반복’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한강변 산책로 귀퉁이 늘 같은 자리에 있던 거미. 평상시에는 잊고 있다가 뇌 속 기억을 소환하는 연결고리가 벼락 치듯 번쩍하고 이어지면 문득 생각난다. 성산대교 아래 한강 펜스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거미 녀석. 잠자리 날개를 잘 포개어 놓고 거미줄로 단단히 고정한 채 맛있게 포식 중이던 녀석이다. 아니, 정정한다. 거미 녀석이 아니라 그냥 거미로 불러야겠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거미에 대한 나의 지식으로는 모를 일이다. 검색하면 알 수도 있겠지만 귀찮다. 암튼 한동안 그 거미를 잊고 살았다. 내 기억에 있는지조차도 기억 못 하고 있었다.  한강변을 걸으며 우연히 다른 펜스에 횅하니 한가운데 500원 동전 크기의 구멍이 뻥 뚫리고 거미는 온 데 간 데 보이지 않는 주인 없는 거미집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기억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기억 속 어둠의 심연 속에 파묻혀 있던 성산대교 밑 그 거미가 번쩍하고 생각난다. 잠자리 체액을 쪽쪽 빨아먹으며 포식하고 있던 그 거미. 발걸음을 재촉하며 그 거미가 있던 곳으로 가본다. 지형지물을 확인하고 위치를 가늠해 도착해 보니 회색빛 보호색으로 몸을 위장한 채 다리는 얼룩무늬를 띄고 있는 것이...여전하다. 거미줄 한가운데 거미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무사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거미를 만날 수는 없을 것을 알고 있다. 그날 이후 그 거미는 내 기억 속 어둠의 공간에 또다시 던져서 다시 기억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로 걷기 중독자가 된 나는 오늘도 길(路) 위를 걷는다. 걷다 보면 세상이 한없이 높은 벽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자신감이 충만해질 때도 있다. 잘 닦인 길 위를 걸으며 주위를 살피기도 하고 때로는 의도치 않게 보이는 뭔가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나를 길(路) 위의 방랑 중독자로 만들고 있다. 길(路)이 작고 소소한 관심이 주는 삶의 재미와 성찰을 선물했다.     김상민 / KBS      
    2020-11-17
  • 도심 속 고궁 산책
    도심 속 고궁 산책   ▲ 올여름,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모습      “서울은 천박한 도시.”    지난여름, 여당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서울을 가리켜 아파트값만 얘기하게 되는 천박한 도시로 표현해 논란이 됐다. 행정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도중, 서울의 집값 문제 및 재산 가치로만 평가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한 발언이었다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강남불패니 마용성, 노도강 하는 단어들을 떠올려보면 맞는 말이고, 서울이 조선왕조 500년에 근현대 100년을 더한 현재 진행형 역사 도시임을 생각해 본다면 틀렸다. 서울은 단순히 물질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님은 분명하다.  입사하며 시작된 서울살이가 어느덧 7년 차. 최근 몇 년 사이 나에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서울 시내 고궁 산책이다. 조선 500년의 수도였던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자그마치 5개의 궁궐이 있다. 취재 일정 중 비는 시간이나 철야 근무 후 쉬는 날이면 나는 고궁을 찾는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인 도심 길을 걷다가 고궁의 흙바닥을 걸으면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역사문화적 식견은 부족하지만 보이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한국의 전통미를 말할 때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고 표현한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여유로이 고궁을 바라보고 있자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부드럽게 곡선으로 뻗어나가는 지붕 선에서, 오방색으로 물든 단청에서, 정전 앞 넓게 깔린 월대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느낀다. 고궁을 걷다 인적이 드문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사색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여러 취재 현장에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이 사색 속에서 차분히 가라앉는다. 내 머릿속에도 여백의 미를 넣어주는 순간이다.  서울의 5대 궁궐 중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왕이 아닌 왕의 부모인 상왕이나 대비 등이 기거하던 궁궐이었다. 그 때문에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해 다소 소박한 규모로 권위보단 친근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고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혼자 여유롭게 산책하기에 좋다. 창경궁 내에 있는 연못인 춘당지는 창덕궁 후원과 더불어 서울에서 사계의 변화를 가장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녹음이 푸르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물든다. 해설사 인솔하에 정해진 시간 동안만 관람이 가능한 창덕궁 후원과 달리, 창경궁 춘당지는 항시 자유관람이 가능해 훨씬 더 한가로이 계절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선선한 날씨에 가을이 물들고 있는 요즘이 창경궁을 산책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세계 10대 도시로 손꼽히면서도 600년 역사의 기품이 흐르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도심 속 고궁이 있다. 경복궁 근정전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광화문 너머 도심 속 빌딩들이 보인다. 고도(古都)의 궁궐 속에서 바라보는 높은 고도(高度)의 빌딩 숲 풍경은 이 도시의 품격을 느끼게 한다. 서울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서울의 고궁을 걸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라웅비 / MBN      
    2020-11-17
  • 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 지난 10월 초, 파주의 한 연습실에서 연습에 한창인 이날치 밴드      따랑 땅 따랑~ 따랑 땅 따랑~’    댄스곡이 시작될 것 같은 130bpm의 흥겨운 베이스 리듬 뒤에 한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는 킬링 파트가 시작된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뭔가 힙합 같기도, 디스코 같기도 해서 힙(Hip)한 것을 좇는 MZ 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조회수 2억뷰를 넘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한 노래 이야기이다.    사실 이 노래는 판소리였다. 북소리에 맞춰 “얼쑤~” 하며 갓 쓴 소리꾼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가 아는 그 전통의 장르가 맞다. 다만 그 판소리를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라는 그룹이 완전히 재해석한 곡이다. 베이스 두 명과 드럼 한 명, 네 명의 판소리 보컬로 구성된 이 밴드는 ‘이날치’라는 19세기의 명창의 이름을 따서 결성되었다.    화제가 되고 있는 ‘범 내려온다’는 거북이가 용왕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인 ‘수궁가’의 한 부분을 발췌했다. ‘범 내려온다’를 계속 듣다 보면 토끼전에서 갑자기 왜 범이 등장한 건지 궁금해지는데, 토끼를 찾으러 육지로 올라 온 거북이가 ‘토 선생’을 ‘호 선생’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호랑이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내려온다는 에피소드였다.  이날치는 이런 엉뚱한 전개를 놓치지 않았고, 사실 전체 줄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범의 등장을 과하다 싶을 만큼 반복했다. 그 결과 ‘판소리를 편곡했더니 수능 금지곡이 되네’, 라는 댓글 반응이 돌아왔다. 곡의 중독성이 워낙 강해서 다른 일에 집중을 못하게 한다는 찬사를 받은 것이다. 최근에는 1일 1범의 시대라는 댓글까지 등장했다. 분명 판소리 수궁가는 이날치를 통해 2020년 가장 힙한 음악으로 탈바꿈했다.    파주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이날치’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다는 느낌이었다. 무대에서는 괴짜 같은 분위기에 폭발적인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뭔가 조용하고 진중한 분위기가 낮게 깔려 취재진도 긴장하며 카메라 세팅을 진행했다.    인터뷰 자리를 배치하는데, 드러머인 이철희 씨가 가장 먼저 구석자리를 차지했다. BTS와 콜라보를 하겠다던 당찬 포부와는 달리 촬영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친근함을 느꼈다.    인터뷰는 기존의 형식과는 달리 유튜브에 달린 댓글 중에 하나를 뽑아 읽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첫 번째 순서로 당첨된 이철희 씨가 댓글을 뽑았는데, 현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철희 씨가 취재진이 준비한 댓글의 글씨가 작아 읽지를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돋보기까지 동원했는데 힙하게만 보이던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뭔가 짠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50이 넘은 나이에도 10대가 공감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존경의 마음도 들었다.    이날치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직접 베이스도 담당하고 있는 장영규 씨는 수식어가 많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음악감독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고, 퓨전 국악그룹 ‘씽씽’을 결성해서 화제를 끈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장영규 씨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 많은 음악 중에 판소리 수궁가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는 무심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날 뷰파인더를 보며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놀라웠던 말이다. 참신한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심청가로 춤을 출 순 없으니까’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판소리를 춤을 추기 위해 선택했다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범 내려온다’, ‘ 좌우나졸’, ‘어류도감’ 등 이날치 모든 곡이 수궁가에서 춤을 추기에 가장 적합한 구절로만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그는 이날치의 음악을 국악과 같이 장르로 규정하지 말아 달라고도 부탁했다.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이철희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했다.    “독특한 국악 같은 걸로 기억되는 밴드가 아니라 그냥 음악이 좋아서 듣는 편안한 노동요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국악의 현대화를 꿈꾸는 밴드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취재진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보컬의 수장 격인 소리꾼 안이호 씨는 요즘 갓보다 스냅백이 더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국악 무대가 많이 사라진 가운데 이런 흐름들로 기분이 좋은 한편, 그저 이렇게 한번 화제가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치의 음악이 특이한 노래라서가 아니라 그냥 듣기 좋은 음악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길 바란다는 포부를 밝혔다.    촬영을 하는 도중에도 다음 스케줄 때문인지 작업실은 소란스러웠다. 예정에 있던 추가 스케치를 생략하고 자리를 비워 주었다. 촬영이 끝났다고 말하자마자 옆에서 기다리던 스탭들이 달려들어 이날치 멤버들에게 의상을 입혀보고 또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저 이렇게 한번 화제가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 .’    안이호 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급변하는 음악 문화 속에서 이날치의 음악은 계속해서 롱런할 수 있을까? 끝이 아닌 시작을 말하는 이날치는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난 후에 클럽에서 젊은이들과 떼창하고 있는 이날치와 다시 한번 마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승태 / SBS    
    2020-11-17
  • 귀사(貴社)의 테이프(Tape), 안녕하십니까?
    귀사(貴社)의 테이프(Tape), 안녕하십니까?   ▲ MBC강원영동 방송사가 보관하고 있는 테이프 자료<사진>      14,040개.    저희 회사가 보유한 테이프 개수예요. 손으로 하나하나 셌으니,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틀린 숫자는 아닐 거예요. 1986년 자사 TV개국 방송을 담은 U-matic 테이프부터, 90년대 베타 형제들(Betacam SP/SX, Digibeta), 2000년대 HDCAM까지...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보물 같은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이 보물 같은 아이들,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관하고 계시나요?  각 사마다 차이는 있을 거예요. 이미 모든 형태의 Tape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아카이빙을 끝낸 곳도 있을 테고, 에어컨이라도 있는 자료실에 고이 모셔둔 양심은 있는 곳, 항온이나 방습 따위는 무시한 채 창고 어딘가 방치해 놓은 곳도 있을 테지요. 특히 하루하루 콘텐츠 제작하기에도 바쁜 지역 방송사들은 영상 자료의 중요함을 알면서도 과거(?)의 테이프에 인력과 장비를 투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제 VCR도 생산이 중단되고, 얼마 안 있으면 부품 수급도 어려워질 겁니다. 유메틱은 지금도 재생할 수 있는 VCR 찾기가 쉽지 않아요. 테이프에 곰팡이가 피거나 서로 달라붙어 나중에는 지금의 몇 배, 아니 수십 수백 배의 비용이 들지도 몰라요. 현재 디지타이징 작업을 했거나 하고 있는 곳도 시간과 비용의 한계로 선택 보존하고 있는데,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들게 되면 그때는 눈물을 머금고 폐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러 요인으로 단기간에 방송사 경영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고, UHD도 준비해야 하는데, Tape Digitizing에 큰 예산을 쓰기는 더욱 힘들겠지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시작했어요. ‘제대로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전에 일단 디지털 파일로라도 만들어 놓자!’ 회사에 있는 모든 테이프를 꺼내서 카테고리별, 시간대별로 분류했어요, 회사 한편에 공간을 만들고, NLE 두 대와 VCR, 스토리지로 한 조를 구성했어요. 오래된 것부터 하나하나씩. 테이프에 들어 있는 정보에 따라 어느 날은 하루에 10개도 정리하고, 또 어느 날은 Tape 한 개 정리하는 데 꼬박 이틀이 넘게 걸릴 때도 있었어요.  ‘알바생이라도 쓰지, 그걸 영상기자가 하고 있어?’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단순히 Tape를 캡처하고 파일로 출력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영상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메타데이터를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록이 남아 있는 테이프 자료는 비교적 정리가 쉽지만, 제목도 알 수 없는 테이프는 과거에 수기(手記)로 작성된 기사와 일일이 대조해 내용을 확인하고, 촬영 일자를 특정하기 위해 화면 속 현수막이나 작은 달력도 놓치지 않고 확인해야 했거든요.    NLE 한 대로 캡처받고, 다른 한 대로 파일 생성하고, 그렇게 1년 반을 작업했지만 작업량은 보유하고 있는 전체 테이프의 1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다른 업무와 병행했다 하더라도 거북이 같은 속도네요. 이대로라면 10년이 걸릴지, 20년일 걸릴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더 고민이 필요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회사 자체 예산이 부족하다면, 정부가 추진하는 75조 원 규모의 디지털 뉴딜 사업에 지원해 보는 것이나 지자체와의 협업 등도 좋은 대안이 될지 모릅니다. 협회 차원에서 같이 고민할 필요도 있을 것 같고요.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도, 늦출 수도 없는 일이에요. 우리가 가진 보물들이 얼마나 온전한 형태로 우리를 기다려 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2020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필자의 회사같이 아직 디지타이징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셨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회사에 방치된 Tape, 꼭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귀사(貴社)의 테이프(Tape)들 안녕하신지 말이에요.     김재욱 / MBC강원영동      
    2020-11-17
  • 심상찮은 전광훈 목사 현상
    심상찮은 전광훈 목사 현상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    이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전광훈 목사가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광화문 집회를 독려해 감염병 재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전 국민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의 이름은 2005년 처음 알려졌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흥 설교 도중 ‘여신도가 나를 위해 속옷을 내리면 신자, 그렇지 않으면 아니다’라는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설명 과정에서 예화, 풍자의 의미로 사용했다고는 하나 일반적인 시민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부적절한 발언이 틀림없었다.    목사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은 그의 발언과 극우적인 행보는 다수의 국민들로 하여금 염려와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극우적 성향을 가진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영웅과도 같은 인물로 떠올랐다. 더 나아가 반정부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고 이끄는 카리스마적 종교 지도자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전 목사의 말 한마디에 내 편이 아니면 모두 빨갱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2019년, 전 목사가 금권선거 논란 등으로 주요 교단들이 모두 탈퇴해 유명무실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대표회장이 되고 나서부터 그의 적극적인 반정부 극우 정치 행보가 시작되었다.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부터 문 대통령은 간첩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고 이후 광화문에서 문 대통령 하야와 퇴진을 주장하는 대규모 태극기 집회를 한기총 이름으로 개최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의 무대가 기독교계를 벗어나 일반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발언 하나하나는 늘 이슈가 되었고 전 목사는 신이라도 난 듯 더욱 과격한 발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런 전 목사의 입에 주목했고 영상기자들도 그의 말 한마디를 신경 써 담았다 -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어쩌면 그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막말을 분별없이 퍼 나른 언론이 전 목사를 극우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준 격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이유다.  취재 현장에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언론이 객관적 사실에 주목한 것인지 아니면 자극적인 그의 발언에 주목한 것인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전 목사는 보석 140일 만에 8·15 광복절 대규모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보석이 취소돼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되었다.    최근 열린 기독교계 주요 교단 총회에서 전 목사에 대한 이단 심의 및 연구를 마치고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 목사에 대해 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가에 대해 혹 주류 보수교회 세력들의 정치적 입장이 그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일고 있다.       최내호 / CBS    
    2020-11-17
  • 병아리 깃털과 초콜릿 상자
    병아리 깃털과 초콜릿 상자   ▲ 일광욕을 즐기는 얄리와 쎵      떠오른다. 10대 때 아주 힘들게 읽어나갔던, 책(데미안)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으나, 그 구절이 어렴풋이 떠올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5월 초, 유튜브를 보던 둘째가 병아리 부화기를 사달라고 했다. 딸과 나는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아이들 엄마와 아들은 인터넷으로 부화기를 주문하고 유정란을 사 왔다.    부화기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설마 여기서 부화할 리가 없다. 그러나 부화기에 떠 있는 ‘d-day’ 동안은 함께 응원해 주자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파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전원을 연결하고 물을 조금 넣고, 조심스레 유정란 세 개를 올려놓는다. 옵션에서 오리, 메추리, 닭 중의 닭을 선택한다. d-day가 뜬다.     21일...... start!!!    몇 시간에 한 번씩 모터 소리가 들리며 부화기는 알을 돌린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신이 생명을 빚듯 부화기가 조심스럽게 알을 만진다. 액정에 찍힌 날짜는 하루하루 줄어든다. 십여 일이 지나 처음으로 부화기와 동봉되어 배송된 특이한 손전등으로 조심스레 알을 비추어 본다. 육안으로는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집이 단독 주택이지만, 닭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상상해 보지 못했다. 원래 번잡한 집이 더 번잡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혹시나 해서 자주 비추어 보고 싶지만, 아들은 알이 스트레스받는다며 만류한다.    계란이 부화기와 함께 고군분투하는 동안 집안에 여러 큰일을 치렀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십여 일이 지나갔다. 잡생각이 많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문득 어디에서 ‘뺙’ 작은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일까?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알은 깨지지 않았다. 하나 분명 소리는 부화기에 흘러나온다. 정신없이 흘러간 그 시간 동안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도, 생명은 잉태되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알 세 개 중에 한 개 정도 성공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절망… 그리고 이내 두렵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그 신기한 삐약 소리는 좀 더 자주 들렸다. 6월 9일, 여전히 밤에 잠 못 들던 나는 새벽 3시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뺙 뺙’이 ‘삐약 삐약’으로 들린다. 첫 번째 알이 깨졌다. 아들을 깨웠다. 그 순간은 아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삐약이 나왔다’는 말에 잠 많은 아들은 벌떡 일어났다. 부화기의 투명 플라스틱은 병아리의 입김으로 뿌옇게 변했다. 아이는 조심스레 뚜껑을 열고 계란 껍데기를 걷어내고 병아리를 들어 올렸다. 라이언 킹의 무파사가 심바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생명의 탄생은 그야말로 신비로웠다.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온 병아리는 그렇게 우리에게 날아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리고 그다음 날 예상과 달리 나머지 두 알에서 모두 병아리가 나왔다. 축축해서 볼품없던 모습은 털이 마르고 나자마자 금세 귀엽게 탈바꿈했다. 박스에 신문지를 깔고 조그만 접시에 물과 상추 쪼가리들을 올려놓았다. 작은 입으로 잘도 먹어댄다. 병아리는 온도에 민감해 따뜻한 전구를 달아주어야 한다 - 비싸다. 집에 있는 양키 캔들 전등을 사용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세 마리가 옹기종기 캔들 조명 밑에서 잘도 잔다. 몇만 원이 굳었다.    병아리 사육을 반대했던 딸도, 나도 병아리의 귀여움에 빠져들었다. 이제 세 마리 삐약이들은 우리 식구가 되었다. 병아리 이름으로 옥신각신하다가, 신해철의 ‘굿바이 얄리’ 노래가 떠올라 병아리 이름을 ‘얄리’, ‘얄라’, ‘셩’으로 짓자고 했더니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병아리는 보통 2주만 지나도 앳된 모습이 사라진다. 삐약이들도 제법 닭의 모습으로 탈바꿈되어 ‘병 닭’이 되었다. 나름 날개도 커져서 여기저기 날아오르고 박스를 넘어 다니기 시작한다. 이제 세 마리를 더는 좁은 박스 안에서 키울 수 없게 됐다. 일단 임시 거처를 화장실로 옮기고 닭장 만들기에 돌입한다. 인터넷에 파는 닭장은 20~30만 원을 호가했다. 유튜브를 보고 닭장을 검색한다. 우리 집에 맞는 닭장 만들기는 찾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주변 조언을 얻어, 고기 굽는 그물망 큰 것과 개 울타리를 사고 이것들을 얼기설기 엮어 닭장을 만들었다. 얼마 전 주워 온 인형의 집을 개조해 닭장 안에 집어 놓고 방도 만들었다. 모이통과 물통을 페트병으로 만들까 했으나, 인터넷에 3~4천 원짜리를 구매해 좀 더 안정적인 먹이 공급을 시작했다.    마당에 닭장이 생겼다. 한 달이 지나니 성체 닭이 되었다. 새로 옮긴 거처가 어색한지 울어대기 시작한다. 혹시나 옆집에 민폐를 끼칠까 밤새 조마조마했지만, 이내 적응했는지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얄리 얄라 셩에게 문안 인사를 하러 갔는데 왠지 닭장 분위기가 다르다. ‘얄라’가 안 보인다. 불길하다. 동네를 배회하던 들고양이가 어쩌다 벌어진 틈을 이용해 닭을 채간 모양이었다. 닭털 한 가닥만 보일 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날 아침 우리 집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얄리와 셩은 석 달이 지난 지금도 잘 크고 있다. 똥을 너무 많이 싸서 집안으로 닭똥 냄새가 진동하지만, 닭의 몸짓이 은근히 우아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닭은 사람도 알아본다. 졸졸 쫓아다니고 무릎 위에 올라 얌전히 앉아 있고, 어깨 위에 올라가 근엄하게 주위를 바라보기도 한다.  요즘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닭장에 비닐을 덮고 철물점에서 사온 발을 씌워주고 무릎 담요를 닭 방에 올려 깔아 준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닭과 함께 하는 삶. 태어난 지 6개월 후부터는 달걀도 낳는다고 한다. 산란장을 슬슬 만들어 줄 때가 되어 간다. 아침마다 신선한 달걀을 수거하는 기분은 어떨까?  서울에서 닭을 키우는 몇 안 되는 가정. 언제까지 키울 수 있을 지. 남들이 하지 않는 특별한 집이 된 듯한 느낌이다. 동시에 닭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정육점에서 닭 한 마리에 3,000원에 판다는 푯말이 보인다. 화가 난다. 얄리와 셩에게 들어간 돈이 벌써 얼마인데? 그 돈으론 사료값도 안 된다. 앞으론 닭값이 비싸다고 불평하지 않으리. 물론 치킨값은 너무 비싸다.    가끔 인생은 뜻하지 않은 기회로 새로운 과정을 거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보여준다. 닭과 함께 날아온 이 체험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책 속에 끼워져 있던 깃털이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물론 닭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대사. “엄마가 늘 말씀하시길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라고 하셨어요. 어떤 초콜릿을 먹을지 모르니까요.”       조성진 / OBS    
    2020-11-17
  • KBS 김정은 기자와 함께 삽니다
    KBS 김정은 기자와 함께 삽니다       ▲ 작년 가을, 미국 뉴욕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가족과 함께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초겨울이었다. 그는 KBS에 막 입사했었고, 연애를 시작하기엔 너무 바빴다. 야근이 일상이었고, 그런 그를 만나기 위해선 내가 여의도나 그의 집 근처로 갔어야 했다. 서로의 배려 덕분에(?)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우린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고,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다.     첫 만남 당시에 난 카메라기자(지금은 영상기자)란 직업에 대해 알지 못했다. 방송국엔 뉴스를 리포트하는 기자(취재기자)만 있는 줄 알았다. 뉴스영상에 대해선 궁금해한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남편의 직업을 물어 답했을 때, 카메라맨이냐고 되묻거나 연예인 많이 보겠다며 아는 척을 해대면 심히 불쾌할 정도다. 같은 맥락에서, 그를 만나기 전 언론의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 없는 나는, 요샌 언론 같지 않은 언론에 분개하기도 하고, 어떤 기사엔 기자를 향한 (비판적) 댓글을 스스로 달기도 한다.     평소 남편과 나는 참으로 다양한 주제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그가 얘기하고 나는 듣는 편이지만, 난 그 시간이 참 좋다. 재미있고, 유익하고, 혼자 듣기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치, 검찰, 언론, 교육, 부동산, 가십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들려준 적 없는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새로울 뿐 아니라 훌륭한 논증 방식이다. 팔불출 같지만, 남편만큼 지적인 기자는 없다. 덕분에 나는 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현상의 이면에 대해 매일 수준 높은 해설을 듣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당연하지만 유별난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다. (김정은 기자를 좋아하지 않는 당신만 피곤한 게 아니다.) 적당히 눈감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당신을 치켜세워 주면 좋으련만, 그래서 승진도 하고 특파원도가면 좋으련만 꼭 그렇게 고집스럽게 꼿꼿하다.  남편이 책을 통해 검찰이나 언론의 문제점을 다루고, 지난 KBS 파업 때처럼 앞장서 조직의 부조리나 영혼 없는 언론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내인 나는 가끔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싸움에 제 발로 뛰어드는 게 대단하기도, 안쓰럽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지 않아도 월급은 나오는데, 다들 그리하듯 눈치껏 제 잇속을 차리는 게 남편에겐 왜 그리 어려운 일인지 이해가 안 갈 때도 있다. 나 역시 직장인이기 때문에, 어떤 조직원이 그 조직 내에서 잘 나가는지 혹은 꺾이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남편을 지지하고 응원하게 되는 건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결국 인간적인 “양심” 때문인 것 같다. 무엇이 부조리하고 혹은 정의로운 건지, “양심”은 알기 때문이다. 그걸 무시하고, 혹은 없는 것처럼 사는 건 소위 “잘 산다” 해도 껍데기뿐인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딸들이 - 이 녀석들은 남편이 지어 준, 활리와 제라라는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아빠를 닮아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 따위를 목표로 하는 삶이 아니라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살아가기를 자처하는 품 넉넉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부자 되는 게 꿈이 아니길 바라고, 사회의 조화로움 속에서 개인의 행복감을 느끼길(쟁취하길) 바란다.  이미 시작은 성공적인 것 같다. 김정은 기자를 아빠로 두었으니 말이다.  추신. 이 글이 남편 예찬론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흉보는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뒀을 뿐... 다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향주 / KBS 김정은 기자 아내
    2020-11-16
  • 방송사 시신이송 장면 솜방망이 처분 ‘논란’
    방송사 시신이송 장면 솜방망이 처분 ‘논란’ 민언련 “행정지도만 세 번째…면피성 징계 말고 법정제재해야”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언론의 시신 영상 보도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심의 기관이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상임대표 김서중)은 지난달 18일 내놓은 논평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강상현·아래 방통심의위)가 솜방망이 징계를 되풀이하는 사이 방송사들은 개선의 노력은커녕 ‘죽음’의 길조차 상품화하는 보도행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같은 달 16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신 이송 장면을 방송한 KBS·TV조선·채널A·MBN·YTN에 대해 ‘권고’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한원상)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자살한 사람의 시신은 “촬영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주요 사건의 현장 생방송 중에 자살한 사람의 시신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영상기자와 방송사가 시신 장면이 방송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2018년 고 노회찬 의원 시신 이송 생중계 △2019년 문재인 대통령 모친 시신 운구 모습 △2020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신 이송 장면 등을 방송한 방송사에 대해 모두 ‘권고’를 의결했다. 방통심의위는 심의 결과에 따라 △해당 방송 프로그램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 △방송편성책임자·해당 방송 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주의 또는 경고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다. ‘권고’는 심의규정 등의위반 정도가 가벼워 제재를 할 정도가 아니면 내리는 행정조치다.     민언련은 방통심의위를 향해 “방송에서 같은 문제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어 일어났는데도 어김없이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며 “(방송사들이) ‘불필요한 시신 이송 장면을 관행적으로 쓰는’ 배경에는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행정지도를 반복해 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고 꼬집었다.    민언련 김서중 상임대표는 “심의 제도는 사후에 제재를 가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예방하는 측면도 있다.”며 “특히 심의를 잘하고 결정을 알리는 것 못지않게 방통심의위가 심의하고 제재를 가하는 사안이 무엇이고 무엇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언론사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대해 의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방통심의위에 의견 진술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한 방송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방송사 관계자들은 제재 수위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방송사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서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진술한다.”며 “심의 결과가 나온 뒤 방통심의위가 방송사들이 의견 진술에서 밝힌 내용을 잘 실천하고 있는 지 확인하는 과정은 없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방통심의위원들은 시신 이송 장면 보도가 갖는 위험성에 대해 정서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 사안은 시청자의 불쾌감이 아니라 사자와 유가족의 인권에 관한 문제”라며 “세 번이나 같은 잘못을 반복한 언론들이 변명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을 텐데, 그걸 고려했다면 단호한 제재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당시 회의록을 보면 방송심의소위 위원들이 현장 취재와 보도가 필요했다는 점과 문재인 대통령 모친 사망 당시와 비교할 때 흐림 처리를 하는 등 방송사들이 지난해 심의 결과를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안경숙 기자    
    2020-11-16
  • 협회, 2020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온라인 교육 닻 올리다
    협회, 2020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온라인 교육 닻 올리다 12월5일까지 총 14회…“취재 현장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보완할 것”     ▲ 지난 10월 21일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온라인 교육 현장에서 강사들이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나준영 부장(MBC뉴스콘텐츠편집부),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윤성구 기자(KBS 전략기획부), 이승선 교수(충남대 언론정보학과)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한원상·아래영상기자협회)가 지난 10일부터 ‘2020영상보도 가이드라인’ 교육에 들어갔다. 교육은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둘러싼 현장 기자들의 질문에 강사들의 답변하는 교육용 VOD로 시작한다. 영상을 시청한 뒤에는 가이드라인을 실제로 적용한 사례와 기준에 대해 강사와 교육 참여자가 실시간으로 질의응답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교육 강사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제·개정 작업에 참여해 온 윤성구 KBS 전략기획국 전략기획부 기자, 양재규 변호사,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나준영 MBC 뉴스콘텐츠편집부장 등이 참여했다.     현업 영상기자들은 협회가 가이드라인 제작 과정에서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를 좁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이에 대해 나준영 부장은 “주변 동료와 영상 기자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어봤고, 현업 기자들이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평소 가졌던 궁금증들을 대방출했다.”고 밝혔다.  이승선 교수는 “전국의 영상 기자들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이 무엇인가 여쭤봤고, 현업 기자들이 질문을 가다듬어 집필진들이 거기에 대한 현재 법원 판결이나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기준을 가지고 답을 드리려고 했다.”며 “현재 한국에서 발표된 여러 윤리강령 기준, 각 방송사 편집 지침과 가이드라인, 외국 방송사의 모범적 기준을 이 답을 만드는 과정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개정판에서 특별히 중점을 둔 사안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2018년 가이드라인은 취재 사안별로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취재 현장에서 고민할 수 있는 것, 편집 과정의 고민, 새롭게 나오는 영상 장비들, 예를 들어 드론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개정했다.”고 윤성구 기자가 답변했다. 나 부장은 2018년 이후 두 차례나 개정판을 내게 된 데 대해 “코로나19 사태가 취재 현장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며 “취재원의 안전, 사회 방역 시스템을 방해하지 않고 취재 활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다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 기자들은 “취재원을 보호하고 윤리적 영상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가이드라인이 이야기하는 원칙과 실제 현장이 항상 같을 수는 없는데, 가이드라인을 실제 취재 현장에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나 부장은 강추위에 길에 쓰러져 있는 취객, 음주운전으로 경찰서에 온 남성의 모습이 나간 보도, 강릉에서 잠수함이 내려왔을 때 사살된 무장공비의 모습을 그대로 보도했던 일화 등을 언급하며 “가이드라인이 이야기하는 것들이 현장에선 하기 힘들고 실천하기 어렵다고 얘기하지만, 해보면 변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원상 영상기자협회장은 가이드라인이 영상취재·편집 현장에서 적극 적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타 언론 단체와 협력해 가이드라인 준수를 촉구하는 등 언론 문화를 개선하고 △언론 분쟁이 발생할 경우 가이드라인이 법적 근거의 자료가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중·장기적으로 안착 방향을 모색하는 한편 △경찰청·검찰청·국가인권위원회·자살예방센터 간의 협력을 통해 가이드라인이 취재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또,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고민들을 취재 현장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 보완해 개정하고 교육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제33회 한국영상기자상 지역뉴스부문을 수상한 KBS제주 조세준 기자는 “동료들도 가이드라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기억하고, 취재 환경과 시대적 환경에 우리도 같이 맞추어 변해가는 것을 모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금까지의 교육에는 수도권 회원사 참여가 저조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영상기자는 “KBS는 자체적으로 보도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실질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지, 다른 방송사들은 교육 자체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라며 “세월호나 강릉 펜션 참사 당시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최근엔 시신 운구 장면 보도 등에서 지속적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고 해결하려면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궁금한 것을 함께 얘기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영상기자는 “교육을 받고 싶어도 분위기 때문에 못 받는 곳도 있고, 교육 사실조차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영상 보도가 문제가 되면 사과 방송을 내보내야 하는 등 방송사 입장에서도 유·무형의 손해가 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데스크 등 간부들이 오히려 기자들에게 교육을 적극 권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교육은 전국 방송사의 영상기자, 영상 편집자 500여 명이 대상이지만, 그 밖의 방송 관련 종사자들도 받을 수 있다. 10월 10일부터 12월 5일까지 모두 14회 실시되며, 코로나 19 상황을 감안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교육은 사전 신청자만 참여할 수 있으며, 교육 시간 전에 줌 참여 링크를 접속해야 한다. 교육관련 문의와 신청은 한국영상기자협회 사무국(02-3219-6476)으로 하면 된다.       안경숙 기자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