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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MBC “포스코, 성역아냐”…기자단체, 포스코노사에 사과요구
    포스코 비판 다큐에 포스코 노사, 산재 취재방 해…노조가 “투자중단” 협박도 포항MBC “포스코, 성역아냐”…기자 단체, 포스코 노사에 사과 요구       ▲지난16일정의당김종철대표가산재사고조사를위해포스코를방문했다. 이 장면을 취재하려는 포항MBC 취재진이 포스코 측으로부터 저지를 당했다<지난 16일 포항MBC뉴스화면갈무리>         포스코 노사가 포항제철소 노동자의 산재 사망 취재를 잇달아 막아 언론 현업인 단체가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노조는 포스코 직업병 실태를 다룬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직후 포항 지역에 대한 투자와 사회공헌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지역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은 지난 11일 유가족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의원 참관 아래 포스코 하청업체 소속 60대 노동자가 기계 설비 수리를 하던 도중 떨어져 사망한 산재 사고 조사를 진행했다. 포항MBC는 유가족 요청과 노동부 협조 아래 현장을 동행 취재하기로 했다. 하지만 포스코 내 다수 노조인 한국노총 금속노련 포스코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취재 당일 포항MBC 취재진의 출입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취재기자가넘어지는 등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고, 결국 취재가불발됐다.    포항MBC는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포항제철소를 방문한 16일 다시 동행 취재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포스코 회사 측이 취재를 막았다. 당시 현장 취재를 나갔던 기자는 “회사 측에서 취재진만 들어갈 수 없게 막았고, 당 대표와 노동부 관계자가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버스에 타지 못하게 했다.”고 밝혔다.     포스코 노사가 산재 사망 취재를 막고 나서자 한국기자협회와 한국방송기자연합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포스코 노사에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16일 성명에서 “언론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전했다는 이유로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포스코 노조가) 집단적인 물리력을 행사해 정당한 취재를 방해한 행위는 민주주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두 단체는 이어 포스코를 향해 “소속 직원이 완력을 행사해 취재를 방해하고 회사 임원들이 노조의 물리력 행사를 방치한 경위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포스코 노사가 포항MBC의 취재를 막아선 배경에는 지난 10일 방영된 특집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 마라’가 있다. ‘그 쇳물 쓰지 마라’는 포스코 직업병 실태와 환경 오염, 지자체와 지역 언론의 카르텔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다음날, 한국노총포스코노조는 포스코의 포항 지역사회 투자와 사회 공헌, 지역사회 소비활동을 일체중단하고 직원과 가족주소도 이전해 포항을 소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포스코 사측은 포항시와 상생협력을 계속 추진하겠다고밝혔지만, 지역사회는‘포스코 노조 뒤에 사측이있다’며 믿지않는눈치다.    포항MBC는 16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노조가 특정 방송사의 다큐를 문제 삼아, 50만 포항시민과 포항시를 볼모로 협박하는 행태는 납득할 수 없다.”며 “포스코는 포항에서 비판할 수 없는 성역이 아니며, 환경, 노동, 안전과 관련해 법적 의무를 다하고 언론의 상시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할 포항의 한 구성원”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도 21일 성명을 통해 “포스코 노조는 노동자 보호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사망사고를 취재하는 정당한 언론활동까지 앞장서 방해했다.”며 “직업병과 대기오염을 지적한 정당한 보도를 두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포항시민과 언론사를 말그대로 겁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쇳물쓰지마라’를 촬영한 양재혁 기자는“포스코에서 포항MBC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촬영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려고 노력했고, 프로그램이 완성된 뒤 전문가의 자문도 받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안경숙기자          
    2021-01-05
  • 청와대 비순방 취재기
    청와대 비순방 취재기     ▲ 금년 6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단      설렘의 첫발  활주로 한가운데 웅장한 대통령 전용기 앞에서 멋진 포즈의 사진이 첨부된 취재기를 협회보에서 종종 봐왔던 터. 해외순방 취재는 영상기자로서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 1월, 긴장과 설렘을 안고 청와대 춘추관으로 출근하게 됐다.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는 일인지라 몇 주간의 신원확인 절차를 거쳐 최종 출입승인이 났다. 수석보좌관 회의, 국무회의, 비상 경제 회의, 장관 임명장 수여식, 국가기념일, 대통령 현장 방문 등 처음 접해 보는 새 일과. 나는 이것들을 차근차근 신입 자세로 배워나갔다.    언택트 순방  어느 순간 협회보에선 단골 취재기인 청와대 해외순방 취재기를 못 본 지 10개월이 된 듯하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해외여행에 대한 특별여행주의보 조치가 발령되면서 예정된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 역시 올스톱됐다. 확산세가 꺾일 때는 해외순방이 일말의 가능성을 보였으나 추후 재확산으로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출입 기자들의 순방 취재에 대한 뜨거운 염원은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대체하는 국가 간 화상회의로 외국 정상들과의 언택트 만남이 일상화됐다. 감염 확산 우려로 인해 취재 인원 제한 조치가 더해져 취재 기회도 반으로 줄었고 꼼꼼한 이중 열 체크로 출입 경호는 이전보다 더 까다로워졌다. 마스크를 쓴 대통령의 어색했던 모습이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눈에 익숙해졌다. 우리 역시 한 발짝 더 멀리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취재하는 비대면 출입 기자가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 종식을 기원하며  ‘역대 청와대 출입 영상기자들 중 최초로 해외순방 한 번 못 가본 사람들’이 될거란 이야기를 듣는다. 연말을 코앞에 두고 이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출입하고 있는 동료 선후배들 역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코로나 블루에 가까운 표정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코로나19 종식만이 살 길’이라는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출입처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을 잘 이어가야 하리라. 그리고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마음만은 거리 두지 않고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의료계 및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하루빨리 확산세가 꺾여 마스크를 안 쓰던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내가 있는 곳에서 묵묵히 취재에 임하려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하루빨리 순방 취재기도 협회보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정인학 / MBC      
    2020-11-18
  • 50일을 넘긴 역대 최장기 장마
    50일을 넘긴 역대 최장기 장마   ▲ 지난 8월 14일 충북 영동군에서 유례없는 장마에 수확을 앞둔 농민들의 시름은 커져만 갔다. 취재진 인터뷰에 응한 한 피해 농민        장마 취재의 시작  새벽 2시경, 창밖의 빗소리가 요란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거침없이 울렸다. 최장기 장마 취재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알람인 줄 알았던 벨소리는 영상취재 부장의 전화였다. 충북 오창 지역에서 원룸 건물이 침수됐다는 내용. 당장 뉴스특보에 반영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촬영 후 편집까지 완성시켜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지 영상기자라면 알 것이다.    MNG  새벽부터 보도국은 뉴스특보 준비로 분주했다. 뉴스특보에 기자 연결이 잡혀 있는 상황, 곧바로 MNG 라이브 장비를 챙겨 청주 무심천으로 출발했다.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를 뚫고 가면서 이번 장마는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현장에서는 리포팅 위치를 정해 주고 나서 방송국 주조정실과 MNG 테스트를 해야 한다. 원활한 뉴스 진행을 담보하는 작업이다. 재난 상황에서 방송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MNG 장비는 기본적인 이동통신망 세팅이 되어 있고 조작이 간단한 편이기 때문에 사용에 큰 문제가 없지만 뉴스 시간에 맞춰야 하는 시간적 압박감과 기계적 고장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매 시간 뉴스특보를 위한 장시간 대기로 체력적인 부담 등이 컸다.    온갖 부담에도 불구하고, MNG 장비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거리가 먼 곳에서 현장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출하여 현장감 있게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고 시간적인 압박감 속에서도 뉴스특보에 정확히 맞춰 기자 연결을 함으로써 원활한 뉴스 진행을 돕는다. MNG 특유의 기동성 덕분에 수해 피해 현장을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시청자 안방까지 전달할 수 있었고 재난방송 주관사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수해 피해 현장  충북은 물 폭탄을 맞았다. 토사에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마을 전체가 흙 속에 반쯤 잠겨 손도 못 대는 상황. 피해 주민들을 위한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바위와 토사가 그대로 밀고 내려와 주택을 덮쳤고 지옥 같았던 순간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주민들은 울분을 토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현장이 처참했고 차를 타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역대급 장마로 용담댐 수위가 높아져 방류를 시작했고 하류 지역인 충북 영동군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강의 수위가 높아져 곳곳의 도로와 농작물이 물에 잠겼고 순식간에 차오른 물이 마을 입구를 막아 세웠다. 무리하게 물 위를 지나가려던 차량은 시동이 멈춰 그대로 서 버렸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망설임 없이 물에 잠긴 도로를 건넜다. 집은 이미 잠겼고 가구들은 물 위를 떠다닌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의 안전보다는 눈앞의 현장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피해 현장을 두 번 많게는 다섯 번 이상 다녀오면서 재난 현장의 참담함과 자연 앞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느꼈다.    TV를 켜면 온통 뉴스특보에 비 피해 소식이었다. 최장기 장마가 끝날 무렵, 마이삭과 하이선 2개의 태풍이 연달아 한반도를 향해 북상했다. 유례없는 이상 기후에 많은 피해와 상처가 남은 상황,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으로 모두가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고 하루빨리 복구되길 바랄 뿐이다.       김장헌 / KBS청주      
    2020-11-18
  • ‘큰불’로 시작된 취재
    ‘큰불’로 시작된 취재   ▲ 전북 군산시에서 불법폐기물에서 난 불을 진화 중인 소방관들<사진>     ▲ 불이 꺼진 뒤 드러난‘쓰레기 산’<사진>        올해 6월 25일, 군산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큰 불이 났다. 매일 얼마나 껐나, 언제 꺼지나를 두고 언론사마다 단신 기사를 쏟아낼 정도로 불은 대단했다. 6백 명 넘는 소방 인력이 매일같이 물을 쏴 결국 불은 일주일 만에 잡혔는데, 화염이 걷힌 뒤 드러난 광경은 더 대단했다. 취재하면서 그런 건 처음 봤다. 공장 안에 있던 건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산’이었고, 양은 1만 톤에 달했다.    반복되는 화재 사건. 동기 취재기자와 함께 <불법 폐기물은 왜 이곳으로, 어떻게 왔나> 원초적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도주  4월 2일에도 군산 한 공장에서 큰 불이 났다. 역시 불법 폐기물이 쌓여있던 곳이다. 현상만 놓고 보면 폐기물 화재 사고였고,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두 화재에 얽힌 속 얘기는 달랐다.    4월과 6월, 잇따라 불이 난 두 공장의 임차인은 같은 사람, 그러니까 김 씨였다. 김 씨를 비롯해 불법 투기 일당이 남의 공장을 빌려 벌인 일이었고, 김 씨는 불이 났을 땐 이미 도주한 뒤였다.    추적 끝에 붙잡힌 ‘김 씨’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김 씨를 쫓았다. 저희 취재진도 그를 추적했다. 취재를 시작하며 던진 “폐기물이 왜 이곳으로, 어떻게 왔나”를 탐사하려면, 먼저 투기범을 찾아야만 했다.    저희는 김 씨와 함께 일한 폐기물 브로커의 영업 동선을 거꾸로 추적했고, 광주광역시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한 폐기물 업자로부터 주요한 정보를 얻었다. 업자는 충북에 있는 한 공장에서도 같은 일, 폐기물 불법 투기가 벌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리고 충북 진천으로 갔다. 공장엔 주인도 모르게 폐기물 3천 톤이 쌓여있었다. 공장주는 “제조업을 한다는 어느 남성에게 공장을 빌려줬더니 이렇게 됐다”, “그와 곧 만나 쓰레기를 치우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아직 경찰에 신고는 안했다”라고 했다. 임대차 계약서에 적힌 이름, 우리가 쫓던 수배 중인 김 씨였다. 추적 끝에 투기범 김 씨는 도주 5개월 만에 붙잡혔다.    취재 끝에 밝혀낸 폐기물의 불법 고리  취재 처음 던진 ‘원초적 궁금증’의 답을 알려면, 고리의 시작점까지 가야 했다. 결국 김 씨와 폐기물 브로커 사이 고리는 밝혀졌다.    취재와 기획 보도는 사법기관의 수사를 앞서갔다. 저희가 불법 폐기물 문제를 투기범에 한정하지 않고 고리를 쫓았기에, 경찰 수사도 윗선 수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취재로 밝혀낸 폐기물업체 관계자들이 줄줄이 입건됐고, 탈법이 확연히 드러난 일부 업체는 지자체로부터 영업정지 행정 처분을 받았다. 저희는 사건의 현상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원인을 찾아나섰다. 허술한 제도와 지방정부의 관리 부실을 지적했고, 최근 환경부는 해양쓰레기 처리 용역과 관련해 관련법을 손보는 일을 전향적으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습에 당하지 않으려면 진열을 잘 정비해야 한다. 없는 제도를 꾸리고 있는 제도의 허점을 메우는 일은 정부가 할 일이다. 지금이 ‘반복되는 불법폐기물의 고리’를 쳐낼 칼을 벼릴 때가 맞다.       김동균 / KBS전주      
    2020-11-18
  • 재난현장의 슈퍼맨
    재난현장의 슈퍼맨   ▲ 포항의 고속도로에 널브러져 있는 푯말 <사진>      멸망 위기에 처한 크립톤 행성을 구하기 위해 슈퍼맨이 출동한다. 슈퍼맨.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지만 행성이 위험에 빠졌을 땐 언제 어디에서든지 빨간색 망토를 휘날리며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악당을 퇴치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작은 사건 현장에서도 슈퍼맨을 볼 수 있다. 결국 두 팔 벌려 하늘을 날았던 슈퍼맨은 임무를 완수하고 크립톤 행성을 지켜낸다.  면접장에서, 매번 카메라를 짊어진 슈퍼맨이 되겠다고 나는 말했었다. 언제나 크고 작은 사건 현장의 중심에 서고 싶었고 어떤 현장이든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건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슈퍼맨 영상기자다.    입사 후, 주로 사건사고 현장 한가운데 있었던 내 모습은 슈퍼맨은 아니었다. 특히 태풍과 같은 재난 현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거센 바람이 온몸을 강타할 때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영화 속 주인공을 꿈꿨지만, 현장에서는 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빨간 망토도 없었다.    영상기자에게 때때로 안전과 영상의 퀄리티는 반비례하기도 한다. 안전보다는 영상에 치우쳐지기 마련이다. 현장은 마냥 영상기자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현장의 상황을 신속하게 영상으로 담아내야만 한다. 재난 현장의 위험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위험 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당연히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지난 9월, 태풍 마이삭 현장. 이른바 ‘태풍 추적조’, 즉 태풍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피해 상황을 취재하는 임무를 맡았다. 태풍 동선을 쫓아 피해 현장을 촬영하다 보니 어느 순간엔 취재진이 태풍보다 앞서 도착해서 태풍을 기다리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동 중 고속도로에서 널브러져 있는 커다란 나무판자를 피하려다 옆 차량과 충돌할 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고 거센 바람에 날아든 각목이 취재차량 앞 유리를 강타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위험하고 아찔한 상황이었다. 동시에 태풍 상황을 잘 보여주는, 소위 그림 되는 것들이기도 했다. 이 영상은 모두 당일 메인 뉴스에 방송되었다.    영상기자가 재난 취재 현장으로 나가기 전 많이 듣는 말은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몸 조심해라.”    “안전이 우선이다.”    “욕심내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라.”    현실은 어떤가? 안전모 하나를 생명의 끈처럼 생각하며 사방팔방 돌아다닌다. 이것은 모든 영상기자의 숙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취재진의 안전이 화두가 되기도 한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중계현장에서 안전 문제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건물 안쪽으로 몸을 피해 다시 중계를 이어가겠다고 한 경우도 있다.    이제 시청자들은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거나 웅장한 뉴스를 원하지 않는다. 단조롭더라도 현장의 사실성이나 진실이 담백하게 담겨 있는 영상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태풍 현장에서 항상 기자 중계나 리포트를 보고 위험하고 위태로워 보인다는 시청자들의 지적과 댓글이 이를 보여준다.    영상기자는 재난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 현장에서 슈퍼맨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안전도 지켜야 하고 짧은 시간 안에 현장의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신속한 송출과 MNG 중계 능력까지 겸비해야 한다. 현장의 책임은 점점 녹록하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재난 현장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 현장을 달려왔다. 우리가 현장에 가는 목적은 현장과 진실을 알리려는 데 있다. 이것은 취재진의 안전이 뒷받침된 후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취재진의 안전이 없다면 시청자의 안전을 위한 정보 제공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양현철 / SBS        
    2020-11-18
  • [줌인]힌츠페터가 지금 언론에 시사하는 것
    [줌인]힌츠페터가 지금 언론에 시사하는 것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기록했다. 한국 언론에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모든 것은 내 눈앞에서 일어났던 일. 피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위르겐 힌츠페터’를 검색하면 나무위키에 이 인용구가 가장 먼저 나온다. 짧은 문장이지만 곱씹어볼 게 많다.    우리 언론 종사자들은 헤게모니, 힘, 영향력 등을 목표로 일하지 않지만, 반대로 이것들이 없는 언론은 얼마나 유명무실한가? 진실을 취급하는 언론은 그 결과물로써 힘, 영향력을 선물로 얻는다. 이는 수용자가 언론에 되돌려주는 신뢰값이자 헌사이다. 이것들 없이는 언론이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언론이 한국 사회에서 힘과 영향력을 잃어가는 것은 언론의 미래를 볼 때 심상찮은 현상이다. 신문과 방송 등의 이른바 올드미디어, 레거시 미디어 전체가 한 덩어리로 수용자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기성 언론 전체가 일종의 적응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다. 누군가 TV 토론에서 진단한 것처럼, 이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현상이기도 하다. 영상기자 직종의 관점에서 보면, 영상이 하나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자성을 하게된다. 자율성, 자주적인 시각이 크게 약화된 것이다.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뉴미디어에 진출하며 새 활로를 모색 중이지만 여기에서도 자율성, 자주성, 자발성, 주체성은 크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드미디어의 몰락과 함께 미디어 내부 권력이 몇몇 특종 직종에 집중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헤게모니 바깥으로 밀린 직종은 점점 더 부차적인 것, 단순 지원적 파트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오래된 문제다.    한국영상기자협회는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광주광역시와 함께 힌츠페터 상을 준비 중이다. 힌츠페터가 특파원으로 무려 17년 동안 동아시아에 주재했다는 것(1967년 초 당시 ARD 유일의 동아시아 방면 지부가 있던 홍콩으로 발령을 받았으며 1969년 봄에는 베트남 전쟁에 종군기자로 취재하다가 사이공에서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후 일본의 도쿄 지국으로 옮겨가 1973년부터 1989년까지 17년간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 구글 나무위키), 그가 단순히 타 직종의 정보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정보 취득과 판단, 행동의 주체였다는 것, 그의 기록이 역사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 등의 사실에는 오늘날 기성 언론이 참고할 대목이 많다. 자율성과 판단, 실행의 주체가 되는 것은 언론 종사자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다. 이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점점 더 보장하지 않으려 하는 영역이다. 동시에 유튜브와 같은 뉴미디어, 1인 미디어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과는 정반대로 저널리스트의 강력한 주체성, 자율성, 자발성 등을 바탕으로 언론 시장에 빠르게 뿌리내리고 있다.    오늘날 영상기자들은 두 개의 천장을 뚫어야 한다. 하나는 회사 내부의 헤게모니 천장이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피동적인 상태에 가두는 의식의 천장이다. 이것들 모두가 기성 언론, 나아가 영상기자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억압하고 있다.    힌츠페터는 어찌 보면 자율성,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간 21세기 뉴미디어 언론인처럼 보인다. 헤게모니와 힘, 영향력은 앉아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20세기의 위르겐 힌츠페터가 21세기 기성 언론인들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김정은 / 편집장    
    2020-11-18
  • MBC ‘보도영상연구회’
    MBC ‘보도영상연구회’   ▲ 지난 9월 21일‘4k 카메라와 UHD프로세싱’을 주제로 진행된 MBC보도영상연구회 세미나에 참가한 MBC 영상기자<사진>.       ▲ 1998년부터 1999년까지 2년 사이 진행된 보도영상연구회 포럼내용을 정리한 제1호 자료집 ‘보도영상’. 97년 대선 당시 이른바‘총풍사건’과 법정취재 허용 논란 등을 담고 있다<사진>.          얼마 전 퇴근길 우편함을 보니 인구주택 총조사 ‘센서스’ 설문지가 가가호호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설문지가 지나치게 얇다 싶었는데 펼쳐보니 시대 흐름에 맞춘 QR코드 응답 안내였고, 저녁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예전 같으면 한참이 걸렸을) 설문 응답이 끝났습니다. ‘세상 참 편해졌다’는 끄덕거림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응답의 간편함과는 별개로, 설문을 할 때마다 꼭 머뭇거리게 되는 어려운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당신은 현재 어떤 일을 하십니까?    ①회사원 ②전문직 ③자영업 …’    고민의 지점은 ①과 ② 사이입니다. 영상기자를 회사원이라 하자니 뭔가 월급쟁이 샐러리맨 같은 느낌이 맘에 안 들고, 전문직이라 하자니 무엇에 대해 ‘전문’인지 스스로도 좀 애매합니다. 누군가는 ‘촬영’ 전문가를, 또 누군가는 ‘뉴스’ 전문가를 자처하겠지만, 분명한 점은 의료 전문가인 의사나,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처럼 딱 떨어지는 전문 영역과의 매칭이 한 번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면 다행인데, 좀 더 나아가 ‘내가 과연 전문적인가’하는 자책까지 이어지면 그야말로 난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언론 고시(?)까지 통과했으면 그럭저럭 전문가 아닐까’ 하는 소심한 합리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응답란이 채워지곤 합니다.    서설이 쓸데없이 길었는데, MBC에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 답이 될 것 같은 영상기자 소모임이 있어 이 자리를 통해 소개할까 합니다. 좀 거창한 이름의 ‘보도영상연구회’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영상기자를 자리매김하기 위한 MBC 영상기자들의 고민과 연구가 녹아 있는 공간입니다.    영상기자 연구모임의 시작은 세기를 앞서 1990년대 후반부터였습니다. 각종 사건·사고와 정치 공방들로 말 그대로 다이나믹 코리아였던 당시, 그 바쁜 와중에도 영상기자 직종의 가치와 비전을 탄탄히 하려는 선배 영상기자들의 갈증이 있었고, 그렇게 ‘문화방송 보도영상연구회’가 만들어졌습니다. 10여 명의 영상기자들이 주축이 되어 각종 보도 현안과 영상 이슈들을 연구회 테이블에 올렸고, 현업에 소비되어가는 와중에도 영상 조직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 위한 연구회의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자발적 연구모임이라는 태생적 한계 탓에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영상기자회를 통한 다양한 지원과 배려가 이어졌고, 영상취재부서 차원의 도움도 많았습니다. 우리 일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강사료를 자체 지급해가면서까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세미나를 진행했고, 이는 대외적으로도 ‘공부하는 영상기자’ 인식을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우리가 다뤘던 주제는 실로 광범위해, 영상문법의 ABC부터 종군 취재 노하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다가도 컬러리스트로부터 색보정 프로그램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업무를 마친 늦은 저녁이 힘들 법도 하지만,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에도 참석자들은 열정적이고 강의는 알찼습니다. 언론학자와 영화감독, 카메라 엔지니어 등 다양한 패널이 자리에 힘을 보탰고, 깊었던 고민들은 책으로도 발간되어 지식을 전파했습니다. 뉴스를 직접 제작하는 영상기자들의 모임이다 보니, 참여했던 외부 전문가들에게는 현업자 집단의 귀중한 피드백을 얻어가는 창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단단하게 다져진 보도영상연구회는, TV 화면 크기가 두 번이나 바뀐 지금까지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회사 사정에 따라 부침이 있었던 모임 진행도, 이제 분기별 격월 모임으로 자리 잡았고, 2018년 이후엔 회사 인재 개발부가 진행하는 융합 업무 프로젝트 ‘크로스 이슈(Cross Issue)’ 스터디 그룹에 선발되어, 영상기자 조직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연구모임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발자취 못지않게, 앞으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뉴스 보도에서 언론 종사자의 영역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시민기자와 유튜브 저널리즘은 영상보도의 영역에도 예외가 아닙니다.3 이제 영상기자들은 더더욱 우리의 ‘전문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NG가 권력이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만큼이나 까마득해, 이젠 호랑이도 전자담배를 지나 금연에 성공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블랙박스와 CCTV가 우리의 주요 경쟁 상대이고, 레거시 미디어의 한계가 점점 드러나는 이 시대에, 보도영상연구회는 영상기자들에게 붙은 전문가 칭호가 여전히 어색하지 않도록 다양한 고민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다가오는 4K 시대를 준비하는 한편, 해외의 뉴스 트렌드도 놓치지 않고 훑어야 할 것입니다. 덧붙여, 최소한 기레기 소리는 듣지 않게끔 취재 윤리를 살피고 시민들에게 눈을 맞추는 훈련도 이 공간에서 진행하기 좋은 주제입니다. 쓰다보니 참 거창한 내용이 많지만, 한편으론 이런 고민을 함께 할 사람들과 모임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연구회에서 진행한 몇 차례 포럼의 내용을 정리해 발간한(99년) 자료집 ‘보도영상’ 1호의 서문은 이렇게 끝맺음되어 있습니다.    ‘비록 어눌하고 서툰 첫걸음이지만, 우리가 내딛는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보다 공정하고 진실된 보도영상, 시청자가 공감하는 보도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힘찬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자찬일 수 있지만, 지난 20년간 보도영상연구회의 족적은, 이 첫걸음의 방향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천명한 ‘진실’과 ‘공정’, ‘공감’의 세 키워드는 앞으로의 20년에도 여전히 중요한 영상기자들의 소명이자 가치입니다. 이런 고민들이 오늘날 영상기자를 전문가 집단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설문 응답에 망설일 필요가 없게끔, MBC 보도영상연구회는 영상기자들의 지식 곳간을 열심히 채워가겠습니다.     박주일 / MBC  
    2020-11-18
  • 영상기자에게 출입처란
    영상기자에게 출입처란   ▲ 2019년 겨울, 국회 영상기자실에서 영상기자와 함께      2019년 말, 신입 때부터 이어진 약 3,650일이라는 약 10년간의 사회부 생활이 끝나고 국회로 출입처 발령을 받았다. 모든 변화에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법. 나 역시 그동안 해왔던 사회부 생활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마치 이직을 앞둔 회사원처럼) 내심 떨렸던 기억이 난다. 내 자리의 짐을 빼고 장비를 옮겨 출입처로 이사(?)하는 것도 그런 기분에 한몫했던 것 같다.    출입처에서 보내는 기간은 언론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MBN의 경우 보통 약 2년 정도이다. 거의 군 복무와 맞먹는 기간 동안 회사가 아닌 공간에서 다른 회사 사람들과 지내게 된다. 출입처에 오고 나서 새삼스레 느낀 부분이지만, 이토록 장기간 여러 회사에서 한 곳으로 직원들을 파견해 같은 업무를 분담하는 시스템은 보도 영상업계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매우 드물지만 또 필요한 부분이다. 사진과 영상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특수 업무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풀을 짜서 해결해야 하는 부득이한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2020년은 유례없던 코로나 시국이고 이런 측면은 더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존의 6개사뿐만 아니라 종편, 지역 방송사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취재 공간에 머무르는 인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실 국회라는 출입처에서 제작하는 정치 기사는 회사마다 원하는 기사의 방향이 대동소이하므로, 사회부와 같이 ‘구르는’ 일보다는 ‘조율’을 하는 업무가 더 주요하다. 그렇기에 현재로서는 열 개가 넘는 방송사마다 조금씩 다른 요구사항들을 수용해, 취재하고 송출하기까지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게 협회 풀단의 여러 역할 중 하나이다.  출입처의 영상취재는 현장에서의 중점을 다른 곳에 둔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대부분의 사회 부성 기사는 영상을 통한 내용 전달에 중점을 두고 이 부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국회에서의 영상취재는 ‘싱크’가 차지하는 중요도가 8할에 가깝다.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를 담았는지 놓쳤는지의 여부에 따라 곧바로 결과물이 달라진다. 흔히 얘기하는 ‘그림의 질’ 보다는 ‘싱크의 유무’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출입처가 처음이었던 나로서는 새로이 경험하고 느끼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2, 3주 정도는 신입으로 입사해서 수습 기간을 겪던 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예컨대, 국회 내 건물이나 구조 혹은 위치 등을 기억하고 매 순간 발생하는 일정을 따라다니는 것만 해도 버겁고 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취재기자들의 취재요청에 익숙해져 있던 사회부 경험상, 국회 영상기자 풀단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취재는 나를 어리바리하게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국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슈를 풀단에서 직접 팔로우하고 뉴스의 가치를 판단한 후 영상취재 여부에 대한 각사의 논의를 거쳐 일정을 커버하는 선택과 집중의 과정들은, ‘영상기자’라는 타이틀을 놓고 보았을 때 ‘영상’보다 ‘기자’ 쪽에 더 비중이 실려 있었고 더 큰 책임감을 갖게 해 주었다.    겨울, 봄, 여름이 지나고 다시 가을이 왔으며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사회부 때도 빠르게 지나가던 시간에 더 가속도가 붙은 기분이다. 그 1년 동안 나는 출입처에서 무엇을 했나, 하고 돌이켜보니 그저 내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급급했던 것 같다. 물론 사회적으로 언론 환경이 바뀌면서 출입하는 당이나 국회의원들과의 소통이 예전만큼 매끄럽지도, 쉽지도 않아진 면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핑계 삼아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특별히 공부하거나 노력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 부끄러울 따름이다. 24명의 영상기자들이 유기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칫 영상기자로서의 책임 또한 24분의 1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생각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제때 떨쳐내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기자라는 소명의식을 슬며시 놓아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문득 글을 쓰면서 다시금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입처에 있는 동안 조금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보고 발전할 수 있는, 기자로서 유의미한 시기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김준모 / MBN          
    2020-11-17
  • ‘좋은 취미’에 관하여
    ‘좋은 취미’에 관하여  취미를 선택받는 모든 사람에게   ▲ 만화를 좋아해 땡땡(tin-tin)의 대모험 전시회에 참석한 필자      취미란 무엇인가? 취미의 ‘취(趣)’는 ‘서두르다’, ‘빨리 달려간다’는 뜻이고, ‘미(味)’에는 ‘맛’ 뿐만 아니라 ‘취향’, ‘기분’이라는 뜻이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부지런히 좇아간다는 뜻이다. 이처럼 취미는 이성의 영역이기보다는 감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개인의 은밀한 취미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누군가의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예전부터 사람들이 흔히 꼽는 3대 취미가 있다. ‘카카오’라 불리는 자동차(카) 튜닝·카메라 수집·오디오 튜닝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장비만 갖춰서는 무언가 아쉽고, 세트를 갖춰도 이보다 더 좋은 스펙, 다른 기능을 가진 장비에 눈길이 간다. 이런 취미는 한번 주머니가 열리면 다시 잠그기 쉽지 않아 과소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투자되는 비용 때문이 아니라 시간 때문에 눈초리를 받는 취미도 있다. 낚시, 게임, 골프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날 지구가 멸망해도 이들은 오늘 마지막 찌를 던지고, 막판 접속을 하고, 최후의 라운드를 즐기리라. 자신의 취미에 몰두하는 이 은둔자들과 자주 어울리고 싶다면 취미를 공유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 비용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에 취향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취미도 있다. 와인 모임, 등산회, 댄스, 서핑 등이 그 예다. 순수하게 취미를 즐기는 사람만큼, 선입견을 갖는 사람도 많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마음 있다’는 편견과 싸워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이들이 종종 마주치는 과제다.    이 밖에도 고스톱이나 포커, 경마 같은 사행성 취미, 이종격투기나 익스트림 스포츠와 같은 취미도 뭇사람에게 환영받기 쉽지 않다. 불건전하다고 핀잔을 듣거나 주변 사람을 염려하도록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개인의 SNS 활동도 검열당하고 제지당한다. 본인이 온라인에 올린 콘텐츠가 의도치 않게 고용주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어서다.    따지고 보면, 취미라는 이름의 개인 영토는 타인에 의해 쉽게 침략당한다. 좋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비용, 시간, 선입견, 윤리, 안전 등의 요소만 고려해도 바람직한 취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위의 기준을 충족하는 취미 중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산책·요리·독서·간단한 보드게임·영화감상·가벼운 운동 정도다. 누구에게 취미로 소개해도 무난한 것들이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만약 운이 좋지 않아 위의 취미들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들이면 더더욱 끔찍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취미를 묻는 공적인 순간에 ‘화투’나 ‘피규어 수집’을 언급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을까?    이런 절제된 영토 위에 살려니 처음 좇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자꾸 잊어버린다. ‘취향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공염불로 들린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숨기고 양보하는 것이 이 땅에서 ‘가장 좋은 취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안민식 / KBS  
    202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