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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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6월 개최예정.<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영상저널리즘>세미나, 방송문화진흥회 세미나지...
    6월 개최예정.<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영상저널리즘>세미나, 방송문화진흥회 세미나지원 공모사업 선정 ▲ 4월 5일, 방송문화진흥회 세미나 지원 사업 지원자 계약식  협회는 방송문화진흥회가 진행하는 2021년 세미나 지원 공모사업에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영상저널리즘>세미나를 개최하는 내용의 사업공모를 하였다. 그리고 지난 3월 말 방문진의 세미나 지원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 5일 오전 방송문화진흥회 회의실에서 세미나 지원 사업 공모선정 단체들의 공식 계약식에 참여해 행사이행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하는 공식 계약을 맺었다.   협회는 오는 6월 말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영상저널리즘>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방송문화진흥회로부터의 지원사업선정은 우리협회가 생기고 처음 있는 일로, 이번의 세미나 성공을 통해 계속적인 지원사업 선정을 받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회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확대시키는 사업들을 벌여 나갈 예정이다.
    2021-04-15
  • 주간경향 미얀마 특집호 구매, 배포
    주간경향 미얀마 특집호 구매, 배포 ▲ 주간경향 1422호 특집호  우리협회(한국영상기자협회)는 언론인단체 최초로 미얀마 군부 규탄과 우리 언론의 적극적인 취재를 촉구하는 성명을 낸 바 있고, 미얀마돕기 언론단체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1000여명의 취재, 사진, 영상기자들이 해직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 협회의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조직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김영미 분쟁전문PD가 해직된 미얀마의 언론인들을 임시고용해 돕는 활동을 벌이고 있고, 그들이 취재한 기사와 사진으로 4/2발매된 주간경향 1422호 특별판이 제작되었다.  미얀마의 시민과 해직 기자 지원, 김영미PD의 미얀마 진실 알리기 운동에 도움을 주고자, 4/7 부회장단과의 협의를 거쳐 주간경향 1422호 미얀마특별판을 단체구매하기로 했다.  운영위원과 편집위원들, 협회 관계자들을 감안해 총 70부를 구매해 발송하였으니, 주간경향 미얀마특별호를 받으신 운영위원, 편집위원분들은 동료 협회원분들과 함께 읽어보시고, 미얀마 시민과 언론인들에 대한 응원과 지지 함께해 주시기를 바란다.
    2021-04-15
  • 멈춰있는 시간의 현장
    멈춰있는 시간의 현장   ▲지난 1월 20일, 서울의료원 음압병동 안으로 들어가기 전 방역복을 입고 있는 필자        우리 직업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껏 수많은 제한구역과 여러 나라를 경험했다. 주변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물론 나 스스로도 굉장히 즐거움을 느낀다.    일을 하다 보니 장소와 경험의 다양함 속에도 일정한 패턴과 규칙이 생겼다. 장소와 내용, 대상만 바뀔 뿐 내가 하는 일 - 정확히는 카메라로 현장을 담는 것 - 은 시간이 흐를수록 패턴화되었다. 그런 것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익숙함에 자연스럽게 물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됐다.    지난 1년은 코로나19 이슈에 묻혀 살았다. 처음엔 확진자가 발생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바로 달려갔다. 시간이 흐른 뒤엔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거나 어려워진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을 만나러 다녔다. 새로운 이슈도 늘 반복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조금씩 일상에 익숙해질 때쯤 나를 긴장하게 하는 특별한 지시를 받았다.    “음압병동 안에 들어가야 한다.”    음압병동 제한구역 앞까지만 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음압병동에 근무하는 의료진과 함께 환자 병동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도 되나?’ 그리고 또 하나는 ‘꼭 들어가고 싶다.’였다.    코로나19 환자가 있는 음압병동 안에 처음 들어가는 거라 걱정이되면서도 한편으로 내 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음압병동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개인방역, 장비, 취재범위, 취재 후 조치 등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장비는 최소한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쵤영 장비는 취재 후 여러 번 소독 과정을 거친 후 밀봉하여 한 달간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감염관리실에서 방역복 교육을 받고 적응 훈련을 했다. 뉴스로만 접했던 방역복을 실제로 입어보니 생각 이상으로 답답했다.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고 한겨울인 날씨에도 금세 땀이 흘렀다. 문득 지난 여름 이 방역복을 입고 고군분투했을 의료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의료진 뒤를 따라 음압병동에 첫 발을 내디뎠다. 긴장감이 흐르는 것도 잠시. 의료진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숙달된 모습이 지난 1년을 압축적으로 말해줬다. 나는 무엇부터 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굉장히 흥분됐지만 욕심내지 말자, 하고 되뇌며 차분히 지켜봤다. 간호사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조심히 뒤따라갔다. 처음 간 병실에서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을 준비하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분은 가족이라도 이만큼 못 해 줄 거라며 의료진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중증환자가 있는 병실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몸을 닦아주며 일일이 밥까지 떠먹여 주어야 한다. 그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들 수가 없었다. 환자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동선으로 필요한 만큼만 촬영했다.    음압병동 안에는 최소한의 인력만 출입하기 때문에 환자를 돌보는 일 외에도 모든 일을 의료진이 한다. 환자가 퇴원하면 청소는 물론 구석구석 가구 꼭대기까지 소독하고 관련 의료폐기물을 처리한다. 잠시도 쉴 새가 없다. 정신없이 병동을 누비다 보면 3~4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코로나19, 그리고1년. 사회는 점점 적응하여 생활패턴이 전환적으로 바뀌고 그러면서 감염병에 대한 경계가 살짝 느슨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음압병동 안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지난 1년동안 변함없이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결혼 직후 음압병동에 오게 되어 1년째 신혼을 포기하고,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임시 숙소를 이용하고, 개인 생활은 모두 접어둔 채 환자 치료에만 집중하는 의료진의 정신, 모습은 정말 경이로웠다. 해외여행 못 간다고 아쉬워하고 카페에 앉을 수 없다고 툴툴거렸던 내가 새삼 부끄럽게 느껴졌다.    음압병동 1년의 시간을 다 담아낼 순 없지만 보는 이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줄 수 있길 바랐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시간. 모든 것을 포기한 이들을 생각하면서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각자가 방역에 힘을 보탰으면 하는 바람이다.     류재현/ KBS    
    2021-03-11
  • 코로나19, 1년… 영상기자의 소회
    코로나19, 1년… 영상기자의 소회      코로나19가 국내에 발병한 지 1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한 해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 마스크없이 살 수 있는 일상부터, 자영업 경제 그리고 지속되는 코로나19에 따른 마음의 병, 코로나 블루까지. 일선에서 취재하다 보면 시민들의 어려움이 피부에 느껴질 만큼 다가오고,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코로나19 초창기에 중앙방역대책본부의 확진자 발표에 따라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동선을 체크해 취재했는데, 주변 상가 자영업자들의 항의가 많았다. 동시간대, 확진자와 장소가 겹친다면 초기에 자발적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시청자에게 알린다는 목적이었지만 주변 상인들의 마음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물론 취재 시 최대한 타 영업장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면서 2차적으로 편집을 통해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만 상인들 입장에선 뉴스 보도가 일종의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 1년간많은사람을만났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직접 들었다. 시험 일정 연기로 응시하지 못한 수험생, 정부 지원금이 있어도 더는 버티기 힘든 자영업자, 학교에 입학했어도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학생들... 현재 전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별진료소에서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검사받으며 울고 있을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처지에서 마음이 아팠다. 바이러스에 일상을 빼앗기고 강제로 거리를 두게 된 마스크 쓴 시민을 보고 있으면 한순간에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생각에 잠기게 된다.    취재현장에서는 가능한 한 일목요연한 전달, 생생한 현장 전달 등이 최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 매전 최선의 판단을 해야 한다. 이는 종종 커다란 부담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수많은 갈등이 있겠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리라. 코로나19 이슈 측면에서 보면,  시청자를 대신한 정보의 파수꾼 역할을 맡고 있지만 동시에 감염의 위험에 노출된 매개체이기도 하기에 현장 방역수칙 준수는 매우 중요하다. 취재진들이 감당해야 할 숙제가 몇 가지 더 늘어난 셈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모두가 예전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올해 2021년은 부디 코로나19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보도, 이슈 역시도 예전의 일상, 평화로웠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태범/ 연합뉴스TV   
    2021-03-11
  • 익숙함, 설렘
    익숙함, 설렘     ▲보신각 앞에서 취재하는 필자      2021년, 조용한 새해가 밝았다. 2020년에서 2021년으로 해가 바뀌는 그 순간, 보신각 제야의 종은 울리지 않았다.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지난 1953년부터 한 차례 중단 없이 계속 이어져 왔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여파로 69년 만에 중단되었다. 예년 같았으면 사람에 치여 발 디딜 틈 없었을 텐데 집합 금지 조치로 보신각 주변이 썰렁하다. 한참 일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전화다.    ‘새해구나....’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제야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새해라는 설렘도 전혀 없이 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에 매년 마지막 날 밤엔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보신각 타종 행사를 지켜봤다. 그 시각 또 한 살 먹는다는 설렘이 있었다. 곧 바뀌게 될 학년과 새롭게 만날 친구들을 생각하며 다가올 한 해를 기대하곤 했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데 익숙함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설렘이 사라져 버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때의 설렘은 과연 지금도 남아있는가?    카메라는 익숙하지만 취재 현장은 여전히 낯설다 ? 언제나 그렇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현장은 저마다 전부 다른 조건이다. 다양한 취재 환경에서, 내가 촬영한 영상이 편집 과정을 거쳐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생각해보면 설렘이 일어난다.    이 직업을 갖게된 후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여러 설렘의 순간들이 있다.     지난해 6월, 남북관계에서 긴장의 끈이 가장 팽팽했던 순간 연평도로 향했을 때. 남쪽을 겨냥하고 있는 북한 옹진반도의 해안포문이 열린 장면을 포착해야 했다. 첫 출장의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자 위험한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여든아홉의 내 할머니는 괜히 기자를 해서 위험한 곳을 찾아다닌다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에게 연평도는 설레는 기회의 땅이었다.    처음으로 다뤄본 망원렌즈로 연평 앞바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북한 땅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설랬는지 모른다. 이 직업을 갖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해무가 짙은 탓에 몇 날을 기다려 북한의 해안 포문을 카메라에 포착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순간. 그때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익숙함과 매너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일것이다. 비록 해가 바뀌는 것이 설레지 않은 나이이지만 그저 매일 주어지는 보통의 하루가 나는 설레고 또 설렌다.     김현우/ MBN     
    2021-03-11
  • 영상기자 디지털 팀, 뭘 만들까?
    영상기자 디지털 팀, 뭘 만들까?    1. 글 기사 : “이게 돼?!”- 그냥 ‘글ONLY’ 기사만 써도 출고가 된다?!   ‘캡틴 아메리카, 타이완 반도체로 중국 때린다’ - KBS 고형석 기자           TSMC 같은 파운드리 반도체 업체가 미국의 대중국 압박 지렛대로 쓰여, 자국 안보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 <국제&IT뉴스>입니다.     재료공학과를 전공한 고형석 기자의 관심사가 투영된 작년 12월 12일 인터넷 기사인데요, 영상기자가 쓴 ‘글 기사’라는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내용만 좋다면 지면 기사나 칼럼 작성에 이렇다 할 사내외의 장벽이 없었습니다. 또, 고형석 기자의 ‘애플, 이러려고 충전기 없앴나?’라는 12월 24일자 IT 기사는 당시 KBS에서 출고된 모든 기사들 중, 이틀 연속으로 가장 많은 조회수와 반응을 기록했습니다.       2. 외신활용 기획영상 : AP, AFP, CNN 등, 제휴사 고품격 영상소스 활용 ‘트럼프의 진단키트‘언박싱’…대체 뭐길래? - KBS 선상원 기자        타 방송사에서 뉴스화하지 않고 있던 외신 영상을 포착해, 발 빠르게 디지털 출고한 기사입니다.     트럼프가 신속진단키트를 소개하는 장면과, 미국 주요 도시 곳곳의 팬데믹 실태를 교차 편집해 5분짜리 웹뉴스를 만들었고, 74만 뷰 가까이를 기록했습니다.     고품질 외신 소스를 활용할 수 있는 제도권 언론사의 강점인 것 같습니다.      3. 현장영상 : 영상기자의 숨결이 담긴 클린픽쳐 활용 ‘[현장영상] 전두환 씨 “말 조심해 이놈아!” 자택 앞에서 버럭’ - KBS 선상원 기자      이처럼, ‘공분’을 자아내는‘사회’아이템이 인터넷 세상에서는 독보적 도달률을 보입니다. 직접 제작해보면 넷상의 반응이 정말 뜨겁다는 걸 느낄 수 있는데요. 한편으론, 조두순 출소일에 ‘공공의 적’을 발견한 유튜버들이 라이브 대전을 벌이던 모습과 맞닿아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현장영상] 2021 수능. 문·답지 전국 시험지구에 배부’ - KBS 이제우 기자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열렬한 반응이 터지기도 합니다. 인터넷 뉴스는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수능 시험지 배포’를 다룬 현장 영상에, 삽시간에 1378개의 응원 댓글이 달려 유튜브 ‘수능 성지’가 됐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수험생들이 그만큼 불안해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4. 시네마틱 스토리텔링 : 개별 프로젝트성 자체 제작   ‘[이산70년기획] 내 나이가 구순 넘었는데, 오백 년 살고 싶습니다’ - 팀 공동 작업              디지털 ‘시네마틱 스토리텔링’이라는 장르의 웹 콘텐츠들이 있습니다. BBC의 REAL, CNN의 Great Big Story, 알자지라의 CLOSE UP, 뉴욕타임즈의 Op-Docs와 같이, 특정 주제와 인물에 대해 짧은 다큐를 표방하는 기획입니다. 영상기자의 클린 픽쳐를 잘 녹일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KBS 디지털콘텐츠팀도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이산70년 기획영상]을 제작해봤습니다. 섭외-컨셉-촬영-색보정-편집-자막 대부분을 1인 제작시스템 기반으로 만들다 보니... 이런 형태의 아웃풋이 지속되려면 제작비가 절실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직종의 틀 내에서 디지털뉴스의 자구책을 타진해본다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수용자의 니즈에 정확히 대응하고 있는 것인지도 가끔은 헷갈리고요. 아무튼 KBS 디지털콘텐츠팀은 조그만 가능성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는 척후병처럼,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지선호 / KBS                
    2021-03-11
  • [취임사] 영상기자 100년을 위해 함께 합시다!
    영상기자 100년을 위해 함께 합시다!     ▲한국영상기자협회장 이 · 취임식에서 제27대 나준영 회장이 제26대 한원상 회장으로부터 협회기를 전달받고 있다.         영상기자 역사 60년의 해에 영상기자 100년을 향하여  1961년 12월, 대한민국에 오늘을 영상으로 기록해, 뉴스로 전달하는 사람들, TV영상기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날로부터 60주년이 되는 해에, 대한민국 영상기자들을 대표하는 협회장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전국의 영상기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60년 동안 TV방송의 발전과 함께, 영상기자와 영상저널리즘도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카메라를 갖고, 영상을 쏟아 내는 방통융합의 시대, 우리는 영상기자 100년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해 역할과 위상을 다시 정립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협회는 이런 회원들의 고민을 모아내는 변화의 용광로, 대안을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변화의 발전소가 되겠습니다.     온택트(Ontact)협회의 구축을 시작으로  그 첫 걸음으로 전국의 회원들이 참여하는 온택트(ONTACT)협회를 구축하겠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회의, 교육, 연수를 강화해, 전국의 영상기자들이 회사와 지역을 뛰어 넘어,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영상기자로서의 정체성과 연대감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도록 만들겠습니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정착으로, 영상시대 영상의 기준과 모범으로  20세기 초, 유럽의 영상가 라즐로 모홀로나기는 “과거의 문맹자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미래의 문맹자는 영상을 모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영상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사람들은 영상언어를 올바로 이해하고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은 영상의 왜곡, 조작을 부추기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영상들이 우리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상시대의 혼란 속에서, 우리 영상기자들은 진정한 영상 전문가로서 영상취재, 제작의 기준을 제시하고, 모범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이를위해, 지난 3년간 우리 협회가 제정, 교육해온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취재, 보도현장에 더욱 깊숙이 정착, 확산될 수 있는 사업과 활동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연대  1980년 5월, 한국의 영상기자들은 광주 민주항쟁의 참상을 온전히 취재,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영상기자사의 부끄러운 공백은 다행히, 독일의 영상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같은 외신기자들이 메꿔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역사적 비극을 스스로 기록하고 보도하지 못한 우리의 아픈 과거를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5.18기념재단과 함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을 제정해, 오는 8월 첫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위기에 빠진 나라들에서 이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상기자들을 지지하고, 격려함으로써, 진실의 영상 한 컷이 세상을 바꾸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가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 그들과 연대해 나가겠습니다.     21대 대선, 시민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위하여  2022년에는 제 21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협회는 <대선영상보도특위>를 만들어 영상보도에 대한 감시, 비판뿐만 아니라, 영상기자들이 선거현장에서 직접 보고, 기록한 것들을 입체적으로 전달해 시민들의 올바른 선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참여와 실천으로 만들어 가는 협회의 변화, 발전  회원 여러분! 지난 60년간 우리가 목격했던 한국 사회의 발전과 성취들 중 꿈과 이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의 참여와 실천 없이 만들어낸 변화와 성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영상기자 100년을 향한 목표, 영상기자와 영상기자협회가 영상시대의 기준과 모범으로서 위상을 정립해 가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함께하는 참여와 실천으로 영상기자 100년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준영 / 제27대 한국영상기자협회장         
    2021-03-11
  • [이임사] 회장 임무를 마치면서
    회장 임무를 마치면서      2017년 1월 한국영상기자협회장 임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 2개월이 흘렀습니다. 돌이켜보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협회의 재정 상태가 적자이고 여건과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임기가 시작되어 어려움도 적잖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치 풍파가 몰아치는 한 가운데 놓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련이 이어졌지만, 도전과 인내로 회원들과 소통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회원들과 약속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협회는 지난 4년 2개월 동안 ‘혁신’의 이름으로 조직의 변화를 추구해 왔습니다. 특히 취임 초기 적자에서 특별 감사를 실시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협회를 만들기 위해 협회의 명칭을 ‘한국영상기자협회’로 바꾸고 직종도 ‘영상기자’로 호칭을 바꿨습니다. 낡은 것을 모두 버리고 현재와 미래에 맞는 혁신을 했습니다. 이후 협회는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아울러 영상기자가 사회적 의무와 언론 보도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시상제도도 바꿨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에 집착하느라 사회 안전에 소홀했다는 점이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협회도 이에 발맞춰 기존의 특종 중심으로 시상하던 것을 인권, 환경, 국제, 문화보도부문 등으로 확대하여 시상하게 했습니다.    또 취재현장에서 취재원 인격권 보호와 영상기자들의 생명과 안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언론은 취재원에 대한 인격권 침해로 초상권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에 소홀해 따가운 사회적 시선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영상기자들의 생명과 안전, 권리보호도 외면받았습니다. 협회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3년간 불철주야(不撤晝夜)로 노력해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냈습니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달의 영상기자상’과 ‘한국영상기자상’ 심사 기준에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적용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방송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영상기자 저널리즘의 수준을 한층 높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영상기자상은 명실상부하게 영상기자에게 주는 최고의 권위 있는 언론상이 됐다고 자부합니다.    협회가 일군 또 하나의 업적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賞)> 제정입니다. 독일 출신의 힌츠페터 기자는 1980년 5월 당시 언론통제로 인해 국내에서 보도될 수 없던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려 한국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공헌한 영상기자입니다. 그의 업적을 기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을 제정하기까지 4년 넘게 걸렸습니다. 인내와 도전으로 광주시와 광주시의회를 설득한 결과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국민이 독재정권과 싸워서 민주화를 이룬 나라입니다. 전쟁에서 패해 미국의 힘으로 민주화를 일군 이웃 일본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세계 곳곳에서 독재정권과 싸우고 있는 나라에서 민주화를 위해 취재하는 언론인을 선정할 것입니다. 이는 <5·18광주 민주항쟁>의 의미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역할도 할 것입니다.    협회는 또 영상물 창작자에 대한 저작인격권 보호도 노력해 왔습니다. 창작자가 만든 영상이 사실과 다르게 훼손되거나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면 영상물에 대한 질서에도 혼란이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국회에 창작자 보호를 위한 성명표시권을 발의했지만, 독일처럼 저작 인격권에 대한 보호가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룬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저는 4년 2개월 동안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앞으로 역사에 맡기겠습니다. 협회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하나씩 결실을 이룰 때마다 가슴이 벅찼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손에서 시작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저는 보람을 느끼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 협회 회원 여러분이 차기 회장과 함께 협회를 잘 이끌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그동안 회원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성원과 격려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한원상 / 25대·26대한국영상기자협회장   
    2021-03-11
  • 가슴이 뛰는 일, 한국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가슴이 뛰는 일, 한국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지난 2019년 6월 12일 정부 중앙 청사를 급습하려는 시위대와 대치 중인 홍콩 경찰(사진=필자)   ▲지난 2019년 7월 1일, 매년 열리는 홍콩 반환 22주년 기념식이 열리던 날, 홍콩 시민 수십만 명이 범죄인 인도법 반대에 시위하고 있다(사진=필자)      저는 10살 때 한국을 떠나 중국 천진에서 10년, 홍콩에서 5년을 살고, 2019년 말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 제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조금 당황스러워지곤 합니다. 부모님이 아직도 중국에 살고 계실뿐더러 어릴 때 한국에서 보낸 기억이 많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저와 제 동생에게 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게끔 하셨습니다. 물론 꿈이 바뀌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계속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기자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저는 홍콩대학교 저널리즘학과에 진학해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영상취재기자의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2017년부터 AP, AFP에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입니다. 홍콩 정부는 2019년 초 범죄인 인도법을 개정하여 대만뿐 아니라 중국, 마카오 등에서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 운동가가 중국 본토로 송환되는데 해당 법안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2019년 중순 수많은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며 길거리에 나왔습니다.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장되었고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민주화 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하루하루 취재하며 무서웠던건 최루탄도 물대포도 경찰의 폭력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 부족한 경험과 실력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최고의 영상을? 해야한다는 의무감도 견뎌내야 했습니다. 온몸이 흥건히 젖고 두 발이 물집과 멍투성이가 되도록 카메라를 들고 뛰었지만 아프고 힘든 지 몰랐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친구들이 폭행당하고 연행되어 가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현장에 나가 자유를 외치는 홍콩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그때 영상 취재기자로서 제일 많이 배우고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오랜 해외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귀국한 후 연합뉴스TV에 입사하게 됐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홍콩에서와는 달리 부서에서 여성은 제가 유일했고 현장에서도 여성 영상기자는 많이 볼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체격 좋은 남자들 사이에서 몸싸움을 해야 하기도 하고 분명 여자로서 부담스러운 상황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부담은 오히려 저를 일에 대해 더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 시청자에게 뉴스를 생생히 전하는 영상기자에게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입사한 지 일 년 반이 되어갑니다. 초반엔 모국이지만 낯선 땅 한국에서 그리고 전원이 남성인 부서에서 제가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좋은 선후배 덕분에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일 년 반 동안 코로나19, 장마, 태풍, 폭설 등 기억에 남는 취재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이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일 년이 되는 날인만큼 대구 출장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입사한 지 몇 달 안 됐을 때 자원해 2주 동안 코로나19 취재 및 현장 연결을 하러 대구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마다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왜 기자가 되고 싶었는지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 관계자들과 타사 선배들과 현장을 조율하고 현장에 계신 취재기자 선배들과 서울에 계신 방송에 관련된 타부서 선배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기사 작성도 촬영도 편집도 대부분 혼자 하던 제가 제일 배워야 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항상 영상 취재기자로서 성장할 수 있기를, 또 지난날들을 밑거름 삼아 더 많은 현장을 저만의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최승연/ 연합뉴스TV     
    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