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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가니스탄 전쟁 20년, 다시 탈레반의 시대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20년, 다시 탈레반의 시대로…  2001년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었던 오사마 빈 라덴 체포협조를 탈레반정권(오마르)이 거부하면서 시작된 아프간 전쟁. AP통신 서울지국 TV기자로 근무하던 필자는 각 대륙에서 1명씩 총3명이 한조가 되어 한달씩 로테이션으로 아프간 근무를 하는 팀에 포함되어 12월15일 바그람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당시 아프간은 민간항공기 운항이 금지되어있는 상황이라 이슬라마바드에서 카불까지 회사가 UN을 통해 마련한 전세기를 이용했다. 토요일 새벽 이슬라마바드에서 1시간 조금 넘게 비행하여 도착한 바그람 공군기지는 언 듯 보아도 마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전쟁영화 세트장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바그람 공군기지는 지금 뉴스에 나오는 카불공항(하미드 카르자이)과는 달리 카불외곽(약 45km 떨어진)에 위치한 군사공항인데, 당시 시내에 있는 카불공항은 재건 전이라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 하였고 바그람 공군기지마저도 전자 이착륙장치가 없어 조종사가 눈으로 확인하고 착륙여부를 판단하였다.    미처 뜨지도 못하고 활주로 옆에 두 동강난 탈레반 전투기들, 기지 활주로 두 개 중 하나는 폭격으로 생긴 구멍이 여러 곳 있었고 공항 전역에 무장한 미군들과 아프간 군인들, 그리고 기관포 등을 보며 공항에 접근할 때  ‘아... 그냥 이 조그만 비행기가 다시 하늘로 솟구쳐 날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짐을 내리고 미군 트럭을 얻어 탄 후 기지 밖으로 나가 마중 나온 현지 운전사를 만났다.  닷지 픽업트럭에 몸을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카불 시내로 가는 길도 예사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흙먼지를 내며 달리는 우리 차는 혹시 모를 저격에 대비해 일정속도 이상을 유지하며 달려야 했다.   도로 주변엔 민간인 복장이지만 소총을 매고 탄띠를 두른 외국인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하고 있었으며 (용병으로 추정) 부서진 탱크위에서 놀던 어린이들은 아직 전쟁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얼굴과 맑은 눈을 깜빡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용기를 내어 흔드는 손짓에 환한 웃음도 보여주었다. 다 부서져 있는 검문소를 통과할 때는 아프간 군인들을 향해 우리가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불은 고대시대 실크로드의 동서양을 잇는 길이라 상대적으로 강대국들의 침략이 잦았고 그로 인해 문화와 치열한 전쟁의 역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오늘날에도 카불은 세계적 호텔체인인 인터콘티넨탈이 1969년 영업을 시작할 정도로 교통의 요지이다. 그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우리 숙소 겸 업무공간이었는데 전쟁의 후유증으로 전기 공급이 끊기기 일쑤였고 겨울임에도 온수는 아애 나오지 않았다. 객실 유리창은 총격으로 깨져있어 12월 카불의 찬바람이 방안을 휘감고 있었다. 객실 천정과 벽에는 호텔외부에서 객실을 향해 난사한 총탄자국이 선명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마침 2001년 라마단의 마지막 날이었다. 저녁이 되자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한 북부동맹 리더들이 저녁식사를 위해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몰려들었고 나의 아프간 첫 임무도 시작되었다. 전쟁에 승리한 북부동맹군들은 하늘을 향해 간간히 총을 쏘면서 언덕위에 있는 호텔 마당으로 차를 몰고 올라왔고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근접하는 나를 총으로 막는 무리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추후 아프간 초대 국방장관으로 추대된 북부동맹 리더도 있었는데 며칠 후 나와 동료들은 북부동맹의 숙소로 인터콘티넨탈이 정해져 무장군인들에 의해 호텔에서 나가야 했다.       해가 지자 카불시내는 하늘을 향해 쏘는 자동소총 소리와 차량 경적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로 혼란스러웠다. “탈레반의 반격이 시작되었나?” 불안해하는 나에게 현지코디들은 “라마단 마지막 날을 축하하는 것이니 걱정 말라.”고 웃음을 보냈다. 전쟁 속에서 살던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을 것이다. 이날부터 무거운 푸른색 방탄조끼와 방탄헬멧은 카메라보다 먼저 챙겨야 할 짐이자 생명보호 도구로 내 몸에 달라붙었다.   아프간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현지코디 D, F, K (신변보호를 위해 실명이 아닌 이니셜로 표기)는 우리와 함께 항상 취재를 다녔다. 초대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 단독 인터뷰, 연합군의 순찰, 바그람 기지에 도착한 미 상원의원들과 카르자이의 면담을 위한 기지내 숙영, 탈레반이 로켓으로 고대석상을 부순 바미안 지역 난민들 취재, 아프간 탱크부대 재정비 및 훈련, 백신접종과 빵집 재개관... 제목으로만 보면 별것 없는 취재 같지만 아직도 아프간 남부지역은 총격과 폭격이 계속되고 카불외곽은 치안이 불안한 상황이라 모든 삶이 전시상태였다. 그래서 탈레반이 물러간 카불이지만 탈레반 시대엔 남자 보호자 없이 다니면 종교경찰의 막대기를 피할 수 없었던 아프간 여인들은 아직 부르카를 벗지 못한 채 거리로 외출하고 있었다.   어느새 출장 한 달이 되어가던 2002년 1월, 카불은 점점 활기를 띄어가고 있었다. 거리시장의 상인들 모습도 한껏 밝아져 있었고 거리에서 아프간 명물인 카펫을 직접 제작, 판매하는 이들도 많았다. 시민들도 이제는 낯설지 않은 외국인들에 대해 미소를 보이는 등 많은 곳에서 변화가 느껴졌다. 식당은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흥정소리도 곳곳에서 들렸다. 그러나 칸다하르 등에서 계속 전투가 진행 중이라 밤에는 통행금지가 유지되었고 전기는 툭하면 끊어져 열심히 발전기를 돌려야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선가 자동소총 소리가 들렸으며 밤에는 그 소리가 더 자주 들렸다.   길었던 한 달 간의 아프간 순환근무가 끝나고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가는 UN비행기 안에서 멀어져가는 카불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고단한 삶이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한 희망이 엿보이는 곳이었고 가진 것은 없지만 웃음을 잃지 않던 아이들의 크고 맑은 눈동자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도시였다. 더욱이 2001년12월24일 어두운 카불 밤거리에서 소총부리를 내 배에 대고 위협하던 아프간 군인 때문에 또 하나의 삶을 시작하게 된 나라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20년,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의 손에 넘어간 2021년 8월, 외국군과 정부에 협력했던 현지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취재시 고락을 같이 했던 세 명의 아프간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D, F, K 모두 무사하길 기도해본다. 문승재 / 연합뉴스TV 부국장
    2021-09-24
  • 한국영상기자협회 입회에 즈음하여…
    한국영상기자협회 입회에 즈음하여… “‘제3의 눈’으로 한국 사회 발전 보도…협회 회원들과 유대 깊어지길” 우선 저희 외신기자단을 회원으로 받아 주신 전국의 모든 회원님들에게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에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원으로 가입한 외신영상기자들은 외신풀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22명입니다.  외신풀단은 일본계(NHK, NTV, TV아사히, TBS, TV도쿄, 후지TV)와 구미계(ABC, APTN, BBC, CNN, ReutersTV)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입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우선, 국내 풀단이 사용하는 카메라와 동등한 수준의 기자재를 사용하여 Full HD NTSC방식으로 취재해야 합니다. 이는 한국 지상파와 소재 협력을 염두에 둔 조치입니다. 그 다음으로 영상 기자의 조건입니다. 지상파 방송이나 메이저 방송 경력 3년 이상의 조건을 충족시킨 후 TV World Pool사의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가입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내부적으로 다양한 조건을 두어 상당히 까다로운 가입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가입한 외신영상기자단은 평균 10년 이상 현장을 누빈 베테랑들입니다.  저희 외신은 한국 내 제 3의 눈으로써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취재 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국으로서의 제창과 유신의 과정, 군사독재 시대에는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 외부로 전하였는데,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참상을 세계에 전한 것을 계기로 그 기능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가속화된 한국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눈부신 발전을 근간에서 바라보며 ‘한강의 기적’을 앵글에 담아 보도했고, 2002년도에는 “대한민국~대한민국~ 짝짝짝 짝 짝~”이라는 월드컵 응원가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뒤흔든 붉은악마들의 응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의 붕괴 사고도 전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K-POP이나 한국의 음식 등을 소개하는 문화 전도사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후지텔레비전은 MBC와 1970년대부터 제휴관계를 맺으면서 특파원이 근무하는 지국을 상호 각 사옥에 설치하여 취재 및 활동에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MBC와 후지텔레비전 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각 방송사가 제휴 협정을 맺고 있는데, KBS-NHK, SBS-NTV, YTN-TBS, TV조선-테레비 아사히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역사문제의 인식 차이로 불협화음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일본계 외신 소속인 저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앞으로 더 견고해질 양국의 관계를 기대해 봅니다.  또한 이번에 저희 외신이 하나의 지회로서 가입하게 된 것을 계기로 정부기관에 대한 취재 시 외신사의 환경개선과 함께 회원 여러분과의 유대가 더욱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저희 외신은 한국의 제 3의 눈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수호과정을 지켜볼 것이며, 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황삼규 / 후지TV    
    2021-09-24
  •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 취재 “재난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 취재“재난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코로나시대의 올림픽 취재 올림픽 취재의 첫 단계는 5월 초 코로나19백신 접종이었다. 5월 중순부터는 코로나 관련 입출국 및 취재 유의점에 대한 이메일 자료, 교육 등을 받았다. 올림픽 취재 한 달 전부터는 더욱 각별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모임, 약속 등을 되도록 잡지 않았다. SBS영상취재팀에서 5명이 가는 상황에서 한 명의 손실은 출장자 및 회사에 더 무리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입출국 시간은 총 하루가 걸렸다. 올림픽 경기장 취재에서 가장 이색적이었던 부분은 관중이 없는 스포츠 경기라는 점이다. 올림픽 경기장에 가면서 ‘차 막힘’과 관중들에게 취재를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이었다. 반면에 단점은 경기장 입구에서 실시되는 여러 차례의 방역+보안 검사, 그리고 경기장 내에 취재진이 눈에 잘 띄기 때문에 OBS직원들의 제재가 상당히 엄격했다는 점이다. 모든 경기는 사전 취재신청을 해야 했는데, 허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가 메달권에 오를 경우에는 무리한 취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영상취재에 있어서는 선수들의 대화까지 들릴 정도로 접근이 가능하기도 했지만, 늘 2미터의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회사의 이름을 걸고 온 취재에서 확진이 될 경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거리두기 미숙으로 한국 선수의 방역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도 늘 주의해야 했다. 모든 식사는 IBC에서 해결했다. 취재로 인하여 IBC에 접근하지 못할 경우 현지 코디네이터를 통해서 햄버거, 도시락 등을 사오게 하여 취재차량에서 취식하였다.올림픽 풀(POOL)취재 올림픽 일부 경기에 풀(POOL)취재가 발생했다. 일반적인 풀(POOL)취재와 같이 사전에 협의하고, 업무 분담을 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각사가 하루 전 취재허가를 진행했다. 취재 불허가 될 경우 추가로 비표를 받을 수 있는지 경기장에서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믹스드존이나 ENG존이 취재 불가일 때, 풀 취재를 진행하였다. 사전 허가가 3사(SBS, KBS, MBC) 모두 나지 않는 경기도 있었고, 한 개 사만 허가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BIO의 판단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늘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취재 제한시 타사와 상황을 공유하고 풀 여부를 논의해야 했다. 풀 상황에서 개별 취재에 모호한 지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큰 충돌없이 3사가 올림픽을 마무리했다.올림픽 조직위원회 운영 미숙 올림픽 개막전에서는 주경기장 주변으로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일본인들의 인파를 뚫고 경기장에 입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폐막식에는 주경기장 주변으로 도쿄올림픽을 반대하는 시위대들로 둘러싸였다. 취재진들은 코로나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매일 일본 내 확진자뿐만 아니라 올림픽 관계자, 선수들의 확진자 숫자도 대폭 증가했다. 일본 내 확진자는 개막일 4,225명에서 폐막일 14,000여 명, 도쿄도는 개막일 1,356명에서 폐막일 4,066명으로 집계되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선수와 관계자 총 436명으로 발표했다. 취재진에 대한 PCR검사는 매일 진행했지만, 함께 동거동락하는 코디에 대한 검사는 한 번도 없었다. 경기 중 선수들 간의 스킨십도 강한 통제가 없었다. 경기 중 스킨십을 제재했지만 방송을 통해 그대로 노출되었다. 선수촌에서의 선수 교류도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게 통제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경기장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유일한 인원은 선수들이었다. 취재 제한은 코로나로 인한 경기장 내 인원 제한에 목적이 있다. 취재진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지점들이다. 정당하게 취재 허가를 받고 온 올림픽에서 다시 매 경기 출입 여부를 제한받았다. 조직위에서는 인원 통제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합리적으로 그 과정을 진행했어야 하지만 강압적인 통제에 가까웠다. 취재진이 거의 없는 경기장에서도 원칙대로 취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고, ENG존이 포화되는 상황에서도 추가로 취재 허가가 나있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할 수밖에 없는 취재현장이었다. 올림픽 경기장 시설들 역시 부족함이 많이 보였다. 가건물을 사용하는 태권도 경기장의 경우에는 한 사람의 걸음에도 ENG존 바닥이 흔들려서 촬영이 쉽지 않았다. 배구 경기장, 양궁 경기장, 올림픽 주경기장 등은 주변에 공사 자재들을 치우지 못한 채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 등은 비용의 문제로 인하여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적자인 상황에서 안전에 대한 신경을 쓸 수 없었던 것일까. 관중들이 들어왔더라면 사고의 위험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올림픽 관계자, 자원봉사자들 역시 충분한 교육을 받고 훈련된 인원들이 아니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없이 많은 자원봉사자들 중 제대로 길 안내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없었다. 통제 대상에 대한 숙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합법한 이동에도 제한이 걸리는 경우가 꽤 있었다. 공식적인 문서로 발급된 오디오 주파수를 확인하는 절차조차 하루 이상 걸렸다. 부족한 자원봉사자의 공간은 일본 자위대가 채웠다. 주로 보안 공간에서 마주하였다. 한국팀이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자위대가 태극기를 향해 경례하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하지만 과거 침략의 반성 없이 역할 확대 중인 자위대에 대한 거부감은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 한국 선수단 및 한국 취재진들 모두 큰 문제없이 도쿄올림픽을 마쳤다. 2022년에는 동계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몇 개월 남지 않은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는 이번 올림픽 운영 방식을 참고하게 될 것이다. 영상기자들 역시 이번 올림픽에 대한 내용 공유를 통해 다음 올림픽을 잘 준비하길 바란다.하륭 / SBS
    2021-09-24
  • 방역 아래 초대 받은 불청객
    방역 아래 초대 받은 불청객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가 확산하는 가운데 개최 강행이냐, 취소냐 이야기가 많았지만 일본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행을 선택했다.  개최가 결졍되고 선수와 임원, 올림픽 지원인력?등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입국했다. 그리고 올림픽을 취재하기 위한 미디어 관계자들도 대거 입국했다.  미디어에 대한 통제는 엄격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버블방역체계를 내우며 코로나 19방역규칙을 정리한 플레이북을 배포했다. 미디어 관계자들의 외부 접촉을 차단하고 코로나 확산을 막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먼저 입국 과정부터 일본 정부의 승인이 필요했다. 일본 정부는 각 언론사에게 일본 입국 후 14일 동안의 활동 계획서를 받고, 이를 검토한 후 입국 승인을 내주었다. 숙소는 전용 예약 홈페이지를 통해 조직위에서 지정한 숙소 중?한 곳을 골라 예약해야 했다. 입국 후에는 입국일 포함 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으며,?이 기간에는 외부에 나갈 수 없고 오직 인근 편의점 이용만 15분 동안 가능했다. 이후에도, 입국 후 14일은 활동계획서에 기재하고 승인된 곳들을 제외하면 이동이 불가능했다. 교통편도 대중교통과 렌터카의 이용은 불가능했으며 조직위에서 마련한 미디어 전용버스와, TCT라는?방역 택시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가 잘 이루어졌을까? MBN취재진은 첫 출발부터 조직위의 원칙 없는 방역을 접했다. 출발 당일 새벽 조직위는 메일을 보내와 정부승인이 안 났으니 출국을 늦춰달라는 요청을 했다. 출국을 늦추면 자가격리 4일을 면제해 주겠다는 약속도 함께 해왔다. 방역의 첫 단계인 자가격리 4일의 원칙을 조직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숙소 예약 또한 조직위의 구멍 뚫린 방역체계를 느낄 수 있었다. 조직위가 지정한 일부 숙소가 미디어 전용 사이트에서 예약이 불가해 문의 메일을 보내자, 조직위는 일반 호텔 예약 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진행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방역이 철저한 호텔인 줄 알았던 미디어 전용 숙소가 일반인들도 함께 묵을 수 있고 분리되지 않은 숙소였던 것이었다.   입국 후 차량 이동은 어땠을까? MBN취재진은 조직위의 플레이북 내용대로 렌터카 이용이 불가해 차량을 취소하고 전용 버스와 방역택시를 타고 이동했지만, 일부 언론사는 렌터카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자가격리가 없었던 MBN취재진은 입국 다음날부터 바로 취재 활동을 했다. 승인 받은 활동계획서의 내용대로 움직여야 했기에 움직일 수 있는 장소는 제한돼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제대로 통제가 가능했을까? 선수들이 입국하는 나리타 공항은 활동계획서에 적을 수 없어 미디어의 취재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나리타 공항은 미디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있었으며 취재에도 제한이 없었다.   14일 동안 미디어가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전용 버스와 방역택시 TCT이다. 물론 이러한 방침을 어기고 렌터카를 이용한 언론사도 있었지만, 조직위의 방침과 규정을 이행한 언론사는 그 곳에서 또한 방역 구멍을 느껴야 했다. 방역택시는 전화로?예약한 후 이용할 수 있었는데?TCT콜센터에 연결하려면 10분 이상이 소요됐다. 콜을 받는 인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지금 바로 택시를 이용한다고 전화를 하면 이용 가능한 택시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약을 한다 해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실제로 MBN취재진은 신주쿠의 주경기장에서 2시간을 기다려 방역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예약이 되지 않을 때는 대중교통을 탈 수 없기에 숙소에서 주경기장까지 30분 넘게 걸어가는 날도 있었다. 도쿄 조직위가 내세운 버블 방역은 말 그대로 쉽게 꺼지는 거품이었다. 실행할 준비도 의지도 부족했다. 렌터카를 이용하지 말라고 하면서 올림픽 구역 차량 통행 패스를 판매하는 것과 같이 자신들의 방침들이 서로 충돌해 지킬 수 없는 경우도 목격했다.  일본 정부와 조직위는 세계인의 축제를 생생하게 전달할 목적의 미디어를 안전하게 지원하기 보다는 방역이란 이름으로 실행 가능하지도 않은 통제를 하려고만 했다. 적자를 최소화해 빨리 끝내야 할 올림픽이었다. 미디어를 초대하긴 했지만, 그들에게 취재진은 불청객이었던 것이다. 임채웅 / MBN 
    2021-09-24
  • Olympics, Enjoy the Moment!
    Olympics, Enjoy the Moment! ‘사상 처음’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곳을 찾기가 힘들만큼 ‘전례 없는’ 올림픽. 그리고 영상기자로서 ‘첫’ 종합대회 출장. 평소 같으면 기대가 앞섰을 출장이지만 이번엔 출발 전부터 각종 악재와 우려로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방사능과 코로나에 대한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부터 올림픽 조직위가 승인한 ‘Activity Plan’에 따라 철저히 제한된 동선까지. ‘기껏 불러놓고 취재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라는 의구심을 품은 채, ‘얼마나 잘 치르는지 한 번 보자’는 다소 삐딱한 시선을 카메라에 장착하고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으로 향했다.   ‘원칙’만 있고 ‘효율’은 없는 운영 우선 악명 높았던 ‘입국절차.’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만 3시간 30분이 걸렸다. “언론인들은 일본의 적(敵)이 아니다.”라는 국제스포츠기자협회(AIPS) 회장의 일갈이 내 입에도 맴돌았다. 현장에 배치된 일본의 자원봉사자들은 보안 검색대를 한 번 통과할 때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를 네다섯 번씩 연발할 만큼 친절했지만, 그것이 결코 취재를 수월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일본인 특유의 ‘원칙주의’와 ‘꼼꼼함’은 종종 취재를 어렵게 만들었다. 20kg이 넘는 장비를 든 취재진에게 코앞에 있는 입구를 두고 굳이 건물을 빙 돌아 들어가라고 하는 건 애교. 자원봉사자들은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대여섯 명이 하기 일쑤였고 - 한 명만 거치면 될 일을 대여섯 명 거쳐야 가능했다 - 그나마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Mixed Zone에서의 선수 인터뷰 시간을 90초로 제한해놓고 시간을 넘기면 카메라 옆으로 다가와 (말을 하고 있는 선수 앞에서)  촬영을 중단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이도 있었다. “올림픽 취재는 원래 이런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 혼자서 영상, 음향, 송출, 장비 등 여러 가지를 동시에 챙겨야 했던 영상취재기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효율성이야말로 적(敵)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처음이어서 더 어려웠을 수 있는 그 시간들을, 함께 출장 온 영상기자 선배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장비와 짐을 최소화·간소화해 부담을 줄이는 것부터 취재 시간의 효율적 사용 및 이동 동선의 관리까지, 역시 ‘경험자’의 내공은 달랐다. BIO, ENG Zone, Mixed Zone등 ‘올림픽 취재는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을 두루 할 수 있었던 것, 자주 해보지 못했던 ‘스포츠 영상취재’의 촬영 기법 등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올림픽 출장의 가장 큰 성과였다. ‘엄격’한 듯 ‘허술’했던 버블 방역 출국 전 두 번을 포함, 일본에 머물렀던 23일간 모두 12번의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매일 체온을 비롯한 몸 상태를 ‘OCHA’(온라인 체크인 건강관리 앱)를 통해 올림픽 조직위에 보고했고, 동선과 접촉자 파악을 위한 위치추적 앱도 설치했다. 입국 후 14일 간은 숙소, IBC, 경기장을 제외한 어떠한 곳의 출입도 불가했고 동선도 철저히 제한됐다. 숙소 로비에는 조직위에서 보낸 ‘감시원’이 상주했고, 방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식사 및 음주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취재진에게 유독 엄격했던 방역수칙이었지만, 정작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일본 자국민에 대한 통제는 소홀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숙소가 위치했던 신주쿠의 유흥가는 밤만 되면 노 마스크인 채로 모여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일본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미리 백신을 맞은 게 천만다행이면서도, ‘이 정도면 백신이 효과가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입국 14일 이후로는 격리가 풀려 자유로운 이동과 외출이 가능해졌지만 숙소 근처의 식당을 가는 것조차 불안했다. 개인적으로 첫 일본 방문이었지만, 식도락(食道樂)은 포기한 채 3주 내내 거의 모든 식사를 도시락과 컵라면, 즉석식품으로 해결했다. ‘성적’보다 ‘성장’이 중요해진 올림픽 그럼에도 불편하고 힘들기만 했던 올림픽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올림픽의 주인공인 ‘국가대표’ 선수들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경험을 무엇에 비교하랴.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순간만은 언제나 설렘 가득이었다. 5년 동안 올림픽을 위해 피땀 흘려온 선수들의 열정으로 타오르는 눈빛은, 바닥난 체력에 숯이 되어 있던 나의 정신력에도 불을 지펴주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내 가슴을 유독 뜨겁게 해주었던 몇몇 선수들이 기억에 남는다. 출전을 위해 온몸의 수분을 다 빼낸 것도 모자라 삭발까지 감행한 강유정(유도, ‘선수’ 생략), 자신을 가로막는 벽은 물론 스스로의 한계까지 뛰어넘어버린 우상혁(육상), 귀화까지 해 가며 ‘한국의 아이들이 단 몇 명이라도 럭비를 알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실천했던 코퀴야드 안드레 진(럭비), 세계 최강자들과 겨루며 투혼을 발휘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한 뒤에도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진윤성(역도). 메달과는 관계없이 그들은 나에게, 또 우리 국민에게 이미 챔피언이었고, 선수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모습은 우리(한국 관객)들도 더 이상 메달과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축제 그 자체를 즐기게 해주었다. 그들과 함께 우리도 한 뼘 더, 성장했다. ARIGATO, Team Korea  ‘유래 없이’ 말 많고 탈 많았던 도쿄올림픽은 3년 후 파리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고, 나의 첫 올림픽 출장도 무사히 끝났다. ‘무사함’에 그저 감사한 출장이었다. 폐막식에서 올림픽 스타디움 전광판에 펼쳐진 ‘ARIGATO’라는 감사 인사를 우리 선수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다시 시작된 3년이라는 그들의 기다림이 희망으로 가득하길 응원한다.  그리고 끝내 ‘미생(未生)’이었던 이번 올림픽 또한 파리에서는 ‘완생(完生)’으로 치러질 수 있기를 바라며, さようなら、東京(사요나라, 도쿄).김동세 / MBC 
    2021-09-24
  •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첫‘기로에 선 세계상’(대상) 수상자에 미케일 아르신스키(M...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첫‘기로에 선 세계상’(대상) 수상자에미케일 아르신스키(Mikhail Arshynski) 벨라루스(Belarus) 영상기자  선정뉴스부문,  싱가포르 CNA방송의 양곤지국 영상기자 노만(Norman. 가명), 콜린(Colin. 가명) 공동수상특집부문, 美PBS NEWS <Desperate Journey> 영상보도한 브루노 페데레코(Bruno Federico)  ▲미케일 아르신스키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심사위원회는 지난 8월2일부터 27일까지 13개국에서 출품된 25개 출품작들에 대한 1차, 2차 심사결과, 대상인 ‘기로에 선 세계상’  수상자로 벨라루스(Belarus)의 영상기자 미케일 아르신스키(Mikhail Arshynski)를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폴란드에 기반을 두고 벨라루스를 시청권역으로 하는 벨셋(Belsat) 위성방송의 영상기자인 미케일 아르신스키는 2020년 벨라루스 대선운동 기간 중, 야당후보들의 선거캠페인을 따라다니며, 루카센코 정권이 벌이는 야당후보들에 대한 탄압, 선거운동 방해, 벨라루스 시민들의 민주정부 탄생을 열망하는 집회와 활동들을 취재했다. 그리고, 취재영상들을 정리해 벨라루스 대선을 다룬 보도다큐〈Don’t be afraid〉를 제작해 지난 5월 방송했다. 그는 벨라루스 대선 취재 과정에서 대중집회를 촬영, 방송하려다 경찰에 체포되어 법원으로부터 10일간의 구금판결을 받고 구금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독재권력의 불법선거를 고발한 그의 고민과 노력이 힌츠페터 기자가 광주의 참상을 알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오랜 기간 취재, 보도해 온 정신과 맞닿아 있기에 ‘기로에 선 세계상’의 수상자로 선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얀마기자들 수상-미얀마시민들에 대한 세계인의 연대, 지지의 뜻도 담겨뉴스부문 수상자로는 싱가포르 CNA방송 양곤지국의 노만(Noman. 가명)과 콜린(Colin. 가명) 두 명상기자가 선정됐다.올 2월 27일, 미얀마 양곤에서 개최된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대규모시위 도중,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최루탄 발사, 구타와 연행작전이 벌어지는 장면을 취재해 당일 전 세계에 보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번 수상자 선정이 두 기자의  용감한 취재에 대한 격려이기도 하지만,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세계시민들이 보내는 연대와 지지, 응원과 격려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이주민, 망명자들의 인권과 삶의 희망을 담아낸 영상미특집(Feateurs)부문 수상자로 선정 된 브루노 페데레코(Bruno Federico) 기자는 남중미와 북중미를 잇는 험난한 협곡지대인 다리엔갭(Darien Gap)를 거쳐 미국으로 이동하려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이주자들의 험난하고 위험한 여정을 카메라에 담아 미국의 공영방송 PBS 뉴스에 <필사적인 여정: Desperate Journey>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주민, 망명자들의 인권과 삶의 희망을 보여준 이 보도는 뉴스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고, 취재원들의 위험하고 험난한 여정을 무거운 카메라와 장비들을 갖고 함께 이동하며 생생하면서도 높은 영상미로 표현해냈다는데서 심사위원들의 큰 점수를 받았다. 오는 10월27일 서울서 시상식, 9월 9일 ~ 12일 <에이스페어(Ace-fare)>에서 수상작 전시회 개최힌츠페어국제보도상 수상자들에 대한 자세한 발표는 9월 1일 광주 5.18기념재단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상의 시상식은 오는 10월 27일 수요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 한국전파진흥협회는 오는 9월9일부터 12일까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에이스페어(Ace-fare)>에서 수상작들과 최종심사에 오른 다른 다섯 작품들을 공개하는 전시회도 개최할 예정이다.허은지 기자(tvnews@tvnews.or.kr)
    2021-09-01
  • 연대와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연대와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4년전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택시운전사>.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록하여 세계에 알린 독일인 영상기자 힌츠페터를 따라 스토리가 전개되는 영화를 볼 당시에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기록하는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그의 이름을 딴 ‘힌츠페터 국제 보도상’이 우리의 손으로 세상에 나올 지 상상하지 못했다. 518재단과 함께 한 이번 시상식은 전세계 영상기자들을 위한 첫 국제보도상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고, 그 뜻에 동참한 협회 선후배들 및 외부 전문가분들과 3월 중순 첫 회의를 시작하면서 긴 여정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하지만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영상기자들을 발굴하고 그 정신을 공유하자는 곧은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진행이 될 수록 무수한 한계가 쏟아져 내렸다. 전업 상근 조직위를 구성할 수 없었던 구조적 한계, 부족한 예산의 한계, 해외 네트워크의 부재, 부족한 인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처음 준비해 보는 영상보도 부문의 국제 시상식이었기 때문에 레퍼런스가 전무했다. 그 많은 위기마다 조직위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의 취지에 호소하고, 그 선의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분쟁지역 취재를 오래해 온 김영미PD도 그렇게 합류하였고,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AP의 마샤 멘도자(Martha Mendaza) 기자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쟁지역 전문 기자이자 제작자인 쥴리아니 루흐프스(Juliani Ruhfus) 같은 저명한 분들도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기자들의 정신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라는 절실한 마음이 닿아서 우리 상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아무도 시상식의 존재를 모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조직위원회 선후배들이 개인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돌아보면 결국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이 순간에도 사선을 넘나들며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는 기자들을 보듬고 그 가치를 공유하자는 연대와 순수한 정신에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준비과정은 어려웠지만 상을 준비하면서 각별한 순간들도 또한 만나게 되었다. “우리의 가치가 세상 속에서 저평가된다고 늘 생각을 해왔는데 이런 상을 준비해줘서 감사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격려의 말과 동시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공감,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희생을 감수하며 싸우고 있고, 그 순간을 기록하는 영상기자들이 그 옆에 있다라는 사실은 점점 위축되어 가는 현장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여러 위기와 감정이 촘촘히 엮인 시간들을 지나서 마침내 대륙과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국내와 아시아,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다양한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우리 손에 도착하였다. 이들 작품들은 서로 다른 맥락이지만 작품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 유학생의 아버지가 자신은 위험하지만 딸은 안전한 나라에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애틋한 사연 속에도, 우리의 평범한 모든 일상이 부럽다는 미얀마 유학생의 눈물 속에도, 험난한 길을 뚫고 필사적으로 이동하는 난민과 동행하며 그 힘든 과정을 체감시켜 주려는 영상기자의 치열한 노력 속에도, 총성 속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용기 속에도, 또한 낯선 벨라루스와 에스와티니처럼 우리에게 생경한 곳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외침 속에도, 그리고 서방의 프레임 밖에서 좀처럼 들리지 않던 팔레스타인의 나직한 목소리 속에도 지구 곳곳에서 카메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영상기자들의 열망과 치열함이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518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던 힌츠페터 기자는 죽어서도 광주에 묻히고 싶다라는 얘기를 종종 했었고, 그런 유지에 따라 그의 신체의 일부가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되었다. 현장에서 치열한 삶과 참상을 기록해 본 경험이 있는 영상기자라면 개인을 압도하는 그 말로 하기 힘든 거대한 순간들의 강도와 의미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정신은 다시 이렇게 망월동을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싸우는 전세계 영상기자들과, 또 그 가치를 이해하는 분들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국내외 많은 현안들이 넘쳐나고, 또한 소셜미디어가 저널리즘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국제시상식의 맥락이 원경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상식을 통해 변하지 않는 직업의 가치를 세계의 영상기자들과 나누고 서로 연대하고, 카메라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쓰이는 순간을 서로 공유하고 응원하는 것. 그 기록들은 카메라를 처음 들었을 때 가졌던 모두의 초심에 가까울 것 같다. 그래서 심사 보다는 응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이 상에 영상기자들의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김 우 철  전 MBC 영상기자 캐나다 Simon Fraser 대학원 박사과정
    2021-09-01
  • 5.18, 처음으로 취재 보도한 영상기자 찾았다
    5.18, 처음으로 취재 보도한 영상기자 찾았다 유영길 전 美CBS 서울지국 영상기자, 힌츠페터국제보도상‘오월광주상’부문 첫 수상자 선정  80년 5월19일, 광주 금남로 투입된 계엄군·저항하는 시민들 처음으로 취재해 미 CBS뉴스에 보도 ▲1970년대말 남북군사 회담을 취재중인 유영길 기자 ‘한국 뉴웨이브 시네마의 아버지’로 불린 유영길 촬영감독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최초로 보도한 영상기자임이 밝혀졌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심사위원회는 지난 8월 27일 회의를 열고 영상 보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는 비경쟁부문 상인 ‘오월광주상’의 첫 수상자로 유영길 전 美CBS 서울지국 영상기자를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5.18 진상조사 전문가들과의 함께 유 기자의 가족, 외신기자 시절 동료들을 인터뷰하고 당시 방송자료를 포함한 국내외 자료를 조사하는 등 검증작업을 벌여 왔다. 위원회는 당시 CBS서울지국의 영상기자이던 유영길 기자가, 1980년 5월 19일 오전, 광주에 장갑차와 군트럭이 투입된 현장과 계엄군이 대검 등을 장착한 소총으로 시민들을 위협하는 장면, 시민들의 저항 장면, 전투기를 동원한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 등을 처음으로 영상에 담아 미국CBS뉴스를 통해 세계 첫 보도를 했다는 공적내용을 확인했다.  심사위원회가 확인한 광주 동구청의 80년 5월 19일 ‘상황일지’에는 ‘오전 10시25분 미국 CBS 기자 3명이 촬영기와 마이크를 휴대하고 상공회의소 옥상으로 올라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유 기자가 촬영한 5월19일 영상은 군부대의 광주 진입과 폭력 행위를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당시 ‘광주동구청 상황일지’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취재한 영상은 인편을 통해 도쿄의 CBS지국으로 보내져 미국 본사로 송출된 뒤, 현지시각 5월 19일 오후 8시 ‘CBS EVENING NEWS’에 서울에 머물던 도쿄특파원 브루스 더닝의 전화리포트와 함께 전파를 탔다.  80년대‘광주비디오’, 방송보도와 다큐, 5.18 진상규명 작업의 중요한 자료로 사용 유 기자의 영상은 1980년대 전 세계에서 제작된 ‘광주 비디오’의 중요 영상으로 사용되었고, 1987년 이후 5.18을 다룬 각종 보도와 다큐멘터리의 영상자료로도 사용되었지만, 영상을 촬영한 기자가 유영길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었다.  심사에 참여한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은 “유영길 기자의 취재영상은 5.18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군의 폭력진압과 그동안 군이 부정해왔던 ‘계엄군의 대검착검’ 등의 무장 상황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를 담고 있다”며 “시민들이 국가폭력에 저항해 정국의 관찰자에서 항쟁의 주인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심사위는 “유영길의 영상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날의 일들에 대한 진위를 아직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영상기자 경험, 영화‘꽃잎’에서 ‘5.18’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리얼리즘으로 승화 유 기자는 5월21일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가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한 결정적인 역사의 순간을 기록하지 못한 것을 평생 안타까워했다. 무거운 배터리를 대신 들어주겠다고 나선 시민과 함께 취재하던 중 그를 잃어버렸고, 배터리를 구하기 위해 당시 5.18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유일한 연락 창구였던 장성우체국에 들른 사이에 군의 집단 발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 기자는 영화 ‘꽃잎’의 제작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허구로 그날을 다시 찍는다.”며 강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장선우 감독, 김영래 촬영조감독 등 영화 ‘꽃잎’의 제작진들은 공수부대의 발포 장면, 금남로의 장면 등을 재현하고 촬영하는데 유감독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실제 겪은 취재경험들이 큰 역할을 했고, 영화 ‘꽃잎’의 5.18 장면들은 유 감독이 추구한 리얼리즘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회상했다. 심사위는 “1980년 5월 19일 광주의 상황을 담은 영상은 유영길 기자가 영상기자로서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문제점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잘 보여준다.”며 “유 기자와 그의 5.18 영상이 다시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1-09-01
  • 코로나19 시대의 청와대 영상기자단 미국 순방기
    코로나19 시대의 청와대 영상기자단 미국 순방기 빗 장 2019년 12월 중국 청두 순방 이후 한동안 해외를 나가지 못할 것이란 현실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2020년 전 세계를 휘몰아친 코로나19의 여파는 삼청동에 자리 잡은 청와대 춘추관에도 미치고 있었다. 정상외교의 길이 막히자 국내로 취재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출입기자 인원수 제한과 재택근무, 비대면 화상회의 증가, 마스크 상시 착용, 수시로 진행되는 방역과 검사 등 계속되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1년에 수차례 순방 취재를 위해 짐을 싸고 풀면서 분주하게 돌았을 춘추관의 시계는 멈춘 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로 확산되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백신이라는 복병을 만나며 우리에게 여름이 오기 전 해외 순방의 빗장을 열어주게 되었다.  리 셋 다시 재개된 한미정상회담 취재, 출입하는 각사 반장들의 합의에 따라 풀 순서상 MBN이 시작점이 돼 순방 인원이 정해졌다. 하지만 17개월 동안 굳게 닫혀 있던 해외 순방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순방 기자단의 1·2차 백신 접종과 인원 축소, 확정되지 않은 일정, 게다가 청와대 영상기자실에서 순방을 경험한 기자들이 극히 일부라는 점 등 모든 상항이 예측과 다르게 진행되었다. 우린 모든 부분에서 리셋을 하고 새로운 틀 안에서 준비해야만 했다. 우선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영상취재와 송출시 필요했던 장비의 준비 외에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했다. 영상기자단 인원도 미국의 순방 수행단 전체 규모 축소 요청에 따라 우여곡절 끝에 7명으로 정해졌다. 코로나 이전 미국 순방과 단순비교해 보니 인원은 24명에서 7명으로, 일정은 평균 1박 4일에서 3박 5일로 정해졌다, 출장 인원은 1/3로 줄고 세부 일정은 확정되지 않은 게 많아 험난한 순방 취재가 예상되었다. 줄어든 취재 인원만큼 책임감은 배가 되어 다가왔다. 백신 접종 대통령 순방 일정이 결정된 후 출국까지 5주 남짓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공동취재단은 미국의 입국 조건에 맞춰야만 했다. 우선 코로나19 항체 생성을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백신 1차 접종을 받고난 3주 후 2차 접종, 출국 전 PCR 검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준비해야 했다. 새로운 기준에 맞춰 국내 일정 취재를 소화하면서 개인 위생관리 또한 소홀함 없이 차분히 준비해야 했다. 자신이 청와대 출입 기자들 중에서 최초 감염자가 되면 너무 큰 민폐가 될 수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만 했다.  출 발 시간이 흘러 출발일이 이틀 안에 들어오자 출장 짐을 싸기 시작했다. 순방을 가는 인원 중 한명을 정해 ‘쌈장‘ 이라는 업무를 담당하게 하고 그 쌈장의 지휘아래 순방기간 일정 등을 고려해 화물, 핸드캐리로 출장 짐을 분산해 보낼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드디어 출발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공식 수행단, 공동취재단이 타고 갈 공군1호기를 서울공항에서 마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가긴 가는구나’ 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만큼 지금 해외로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적한 한·미간의 현안들을 논의코자 1년 5개월 만에 1호기 트랩 위를 오르는 문 대통령을 기내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좀 달랐다. 취 재 약 14시간 비행 후 도착한 워싱턴 앤드루스 공항. 환영행사 취재를 끝내고 워싱턴 시내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본 풍경은 한국에서 뉴스로 접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많이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안보이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고 하는데 말이다. 순방단이 서울공항에서 출발 직전 미국 CDC에서 노마스크를 결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워싱턴에 도착하고 나서 양국 간 조율단계에서 미국 측이 CDC의 권고를 받아 양 정상이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 수 있어 역사적인 장면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미국 워싱턴에 도착 후 문재인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한미 경제라운드 테이블, 미 의회 방문, 부통령 접견, 한미정상회담, 확대회담, 명예훈장 수여식, 공동기자회견, 한국전쟁 참전용사 추모의벽 준공식, 그레고리 추기경 면담, 백신 협약식, SK이노베이션 애틀란타 공장 방문까지 정말 많은 일정들을 소화했다. 명예훈장 수여식 때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퇴역 한국전쟁 참전 군인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무릎을 꿇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이번 순방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공동취재단도 열심히 취재에 임했다. 해외 나가면 국민 모두가 다 애국자란 말이 있지 않은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주요 의제였지만 지금은 그에 더해 코로나 백신, 반도체, 배터리 등 경제 의제들까지 중요성을 더하게 되었다. 공동취재단은 확정되지 않은 일정들이 많아진 탓에 처음으로 일정수첩이란 걸 받아 보지도 못하고 많은 일정들을 취재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몇몇 일정들은 제한된 인원 속에서 취재와 라이브 중계를 겸해야 하는 위험을 안고 취재해야만 했다. 예전 선후배 동료가 걸어온 길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했고 큰 사고 없이 일정을 마무리한 후 워싱턴과 애틀란타를 기분 좋게 떠날 수 있었다.   귀 국 5월 23일 23시. 깜깜한 하늘에서 내려다본 아기자기한 서울 도심은 차분하지만 활기찼다. 밝은 워싱턴의 하늘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미국 대륙의 차분한 느낌과는 사뭇 대비되었다. 1호기가 서울공항에 착륙하고 서울공항 도착 행사 취재팀은 분주히 카메라를 챙기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 뒷문이 열리고 취재팀은 달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방미 성과에 대한 평가가 좋았기에 대통령의 귀국 모습을 기다리는 언론사가 많았다. 언제나처럼 취재는 순식간이다. 자 이제 송출만하면 우리의 공식 임무는 끝난다. 한 시가 급한 상황. 그런데 아뿔싸!!! 영상 송출용 MNG에 꽂혀있는 유심은 미국유심이 아닌가! 애틀란타에서 딜레이 된 비행 출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출국 행사 취재를 끝내자마자 이륙 전 가까스로 송출에 성공한 후 모두가 안심을 했기 때문에 아무도 한국 유심으로 갈아 끼워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뭐 유심을 바꾸는 게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만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은 모두의 것이었다. 한국 유심카드의 인식 시간은 왜 그렇게 또 길게 느껴지던지...  PCR 검사와 호텔 격리 일요일 늦은 시간에 순방 인원 전체를 검사하기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신 분들도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잠시. 과연 어느 쪽으로 줄을 서야 하는지 우리만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미 몇 번의 PCR 검사를 받으면서 그 순간의 고통이 검사자의 숙련도에 상당히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검사를 잘 받고 우린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김포에 위치한 한 호텔로 이동했다. 도착해 보니 뉴스에서 몇 번 봤던 그 호텔이다. 입소에 필요한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혹시 배달음식 가능하냐”는, 누가 들으면 큰일 날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컵라면 하나씩을 들고 각자 방으로 향했다.  능동감시 2주 다음날 결과가 통보되는 약속한 시간이 거의 다 돼서 문자가 왔다. 검체가 잘 검출되지 않은 분들이 있어 일부 인원이 재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퇴소 시간이 좀 늦어질 수 있다고 한다. 순간 혹시 누가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스쳤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우리는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제부터 2주간 능동감시 대상자가 되었다. 이미 정부는 백신 접종자에 한해 귀국 후 자가격리를 면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바로 정상출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춘추관은 최소 1주일간 능동감시하며 재택근무를 요구했다. 자가격리나 격리시설 입소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매일 걸려오는 질병관리청의 건강상태 확인 전화와 매일매일 내 가족보다 더 내 건강상태를 체크해 주는 지역 보건소 직원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두 번의 PCR 검사를 받고 최종 음성 확인이 된 후 우린 당당히 춘추관에 출입을 하면서 길었던(?) 미국 순방 일정을 끝냈다.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순방의 첫 문은 벌써 잊히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두 번째 순방이 진행되고 있으니 세상사 정말 모르겠다. 끝으로 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고 계시는 동료 영상기자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청와대 미국 순방 영상기자단 (SBS 제일, KBS 강희준, OBS 이시영, 연합뉴스TV 황환필)
    2021-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