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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민주주의를 위한 , 세상에 없던 상의 탄생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의 의미
    세상의 민주주의를 위한 , 세상에 없던 상의 탄생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의 의미힌츠페터가 80년 5월 우리에게 보여준 것- 한 사람의 올바른 감시자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한국인에게 1980년 5월은 독재 권력이 국가의 이름으로 시민의 생명과 인권, 민주주의 시스템을 어떻게 앗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픈 경험이다. 더불어 한 명의 올바른 감시자가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로잡고, 독재 권력을 밀어내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만든 계기이기도 하다. 목숨을 건 올바른 감시자 한 명의 역할이 ‘폭도’라는 이름을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 시민’으로 ‘광주 사태’라는 이름을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독일인 영상기자 힌츠페터 이야기이다.  힌츠페터는 광주의 5월을 세계인들이 알 수 있도록 알렸던 당시 유일한 감시자였다. 폭압의 현장 속에서 진실을 알리기 위한 헌신적 노력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했다. 특히 영상기자의 특성상 그는 위험한 현장에 있어야 했고, 그가 지킨 현장에서 담아낸 영상을 본 사람들을 또 다른 감시자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독재 타도의 불기둥은 힌츠페터의 현장을 간접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지킨 현장이 모두의 현장이 되었고, 한 사람의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기대는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세계 곳곳의 제2, 제3의 힌츠페터를 위한 상,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작년 말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은 공동으로 힌츠페터의 정신과 업적을 기념하고, 광주5.18정신의 세계화를 실현할 새로운 국제보도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기로 했다. 관련 예산은 광주광역시가 지원하기로 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자유와 인권, 평화의 메시지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힌츠페터를 기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의 독재와 인권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취재하는 영상기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제2, 제3의 힌츠페터가 세계 곳곳의 현장에서 감시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현장을 지킨 이들을 위한 상’이 될 것이다. 사실을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현장을 지키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들을 위한 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더불어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자유와 인권, 평화’를 위한 상이 될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1980년 5월 광주와 같은 일들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인권이 탄압받고 있으며, 독재에 의해 자유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이러한 현장에서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위한 감시자를 시상하게 될 것이다.  ‘목숨 걸고 진실을 보도할 일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상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근본적으로 더 이상 힌츠페터와 같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고 보도하는 일이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 현재 기존의 미디어 상은 대부분 국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 역시 이미 기득권으로서 정말 낮은 곳에서 인권을 박탈당하는 현실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여전히 독재와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그와 같은 감수성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과 동행하는 아시아권에서 새로운 미디어상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미디어 관련 상들과는 차별성을 두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조직위원회 구성 명단 공동위원장 한원상 한국영상기자협회 전임 협회장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   한국영상기자협회 나준영 협회장   5.18기념재단 이기봉 사무처장   이혜원 국제연대부 부원   한국영상기자협회 추천 조직위원 문승재 연합뉴스TV 영상취재부장   신봉승 KBS 영상편집부 디지털편집팀장 김정은 KBS 영상취재부 차장   김우철 전MBC영상기자, 밴쿠버대 박사과정 조성진 OBS영상취재부 차장     하륭 SBS 영상취재부 기자   5.18기념재단 추천 조직위원 김영미 분쟁전문저널리스트     전윤철 광주MBC 영상취재부장   임유주 안동MBC 영상취재부장   윤석년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상훈 광주KBS 취재2부장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조직위원회 구성 명단임유주/ MBC
    2021-05-06
  • 힌츠페터 어워즈, 히어로 메이커 2.0
    힌츠페터 어워즈, 히어로 메이커 2.0 ▲ 3월 5일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조직위원들은 라이펜슈튤 독일대사를 만나, 이 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5.18이 다가온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야기하려면 광주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고, 광주의 5.18을 이야기 하려면 수 만 명의 이름 없는 민주주의 영웅들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몇 년 전 영화 ‘택시운전사’가 소개한 푸른 눈의 영상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씨의 막중한 역할도 다시금 의미를 갖는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80년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내언론이 소개하지 못한 당시의 모습을 기록한 유일의 영상기자인 그를 기념하는 시상식이 올해 10월에 열릴 예정이다. 광주518기념재단과 한국영상기자협회는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을 제정하고 언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 세계의 영상기자들의 역할을 소개하고 힌츠페터 기자의 이름 없는 헌신을 보다 의미 있게 소개하려고 한다.■ 독일대사 접견, 적극 협조 약속 지난 3월 5일,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 한원상 힌츠페터국제보도상 공동조직위원장, 신봉승 KBS 기자, 김정은 KBS 기자 등은 미하일 라이펜슈튤 독일대사를 만나 협회가 준비 중인 이 상의 목적과 진행사항에 대해서 설명하고 독일대사관측의 협조를 부탁했다. 힌츠페터 기자가 재직했던 독일1공영방송 ARD의 현직 기자중 이 상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을 심사위원으로 추천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이 한국과 독일의 민주주주의 가치 확산의 가교 역할이 될 수 있도록 독일내 수많은 언론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라이펜슈튤 독일 대사는 이 자리에서 상의 취지에 공감하며 하나 베커 1등 서기관에게 ARD소속의 심사위원 선정 등  준비위원회와 상시적인 협조 실무를 맞아줄 것을 당부 했다. ■ 힌츠페터, 영상기자를 부르는 새로운 브랜드 협회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준비위원회는 이상이 단순히 영상기자들만을 위한 상을 넘어 퓰리처, 로리펙 등과 같은 국제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브랜딩 작업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국내홍보대행사, 마케팅회사들이 참가한 공개입찰을 거쳐서  칸느국제광고제 등에서 수상경력이 있는 ‘파울러스’를 조직위원회 마케팅회사로 선정하고 로고, 명칭, 슬로건, 선언문, 홈페이지 등 힌츠페터상의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협회가 정한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슬로건은 5월 13일 공식기자회견 자리에서 공개되고 홈페이지와 로고등도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미국인들은 영웅 만들기를 좋아한다며 짧은 미국의 역사와 전통을 비꼬기도 한다. 그러나 영웅을 만들고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힌츠페터상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공감하는 말이다. 우리에게 힌츠페터 기자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역사와 광주의 희생, 그리고 영상기자의 역할을 모르는 이들에게 힌츠페터가 왜 영웅인지, 영웅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처음으로 이 상을 소개하는 협회와 준비위원회의 역할은 대한민국을 넘어서서 전 세계의 언론인들에게 광주, 민주주의, 영상기자 이 세단어가 왜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으로 대변되는지를 알리는 역할인 것이다.신봉승/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조직위원, KBS영상편집부
    2021-05-06
  • 영상 기자와 보건소 직원 부부의 1년간의 사투 (feat. 코로나19)
    영상 기자와 보건소 직원 부부의 1년간의 사투 (feat. 코로나19) ▲ MBC배완호 기자 가족사진 여행의 준비는 늘 즐거웠다.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여행 블로그를 탐험하는 내 눈동자엔 에메랄드빛 바다가 선명히 맺혀있었다. 항공기 예약을 끝으로, 나의 할 일은 줄어드는 디데이(D-day)에 설렘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그 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여행 정보를 보다가 뉴스 페이지를 클릭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으레 습관이었다. '중국 우한, 원인 없는 폐렴 발생' 중국에서 전염병이 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클릭하여 볼 생각조차 없었다. 당연히 나의 '싱가포르 가족 여행'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후, 한 달 정도가 흘렀을까. 우리나라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방송국들은 대대적인 속보 경쟁을 펼쳤다. 순식간에 전염병의 공포가 온 나라를 집어삼켰다. 내가 가려 했던 싱가포르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장춘몽. 나는 여행 사이트에 들어가 항공기 예약 취소 버튼을 눌렀다. 꿈같았던 여행 계획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 대신 마스크가 내 얼굴에 올라가 있었다.허무하게 끝난 여행 계획…감염대응팀 발령난 아내는 오늘도 ‘부재중’ 나는 이번 봄 여행은 못 가지만, 여름에는 갈 수 있을 거라고 아내에게 힘주어 말했다. 아내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오빠,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아내는 보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의 주 업무는 보건소 회계였다. 아내는 보건소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감염팀 인원을 계속 확충하고 있다고 했다. 본인도 그 대상에서 예외는 아닐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는 코로나19에 대해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설마 메르스만큼 힘들까.’ 나는 메르스가 우리나라를 강타한 2015년에 결혼했다. 결혼식장에 하객들이 많이 오지 못할 것 같아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있다. 또, 메르스 위험 현장을 취재할 때 느꼈던 무색무취한 전염병의 공포가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했다. 메르스는 나에게 전염병의 공포를 명징하게 심어주었다. 하지만, ‘장마같이 한 번 휩쓸고 가는구나’ 하는 짧은 공포 기간에 대한 안도감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코로나19도 그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여파가 작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꼭 그러길 바랐다.  아내는 몇 주 되지 않아 정말 코로나19 감염대응팀으로 발령받았다. 아내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방호복을 입고 일했다. 나는 “이야~내가 그 복장을 한 의료진을 오늘 촬영했잖아.”라고 반겼다. 아내와 처음으로 취재원과 취재진으로서의 인연이 이어진 게 신기해 촐싹댔던 거 같다. 아내는 그런 내가 못마땅해 보였는지 퉁명스러웠다. “이거 입고 일하는 나는 죽을 맛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집에서 힘들어하는 아내의 어깨는 주물러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1차 유행’이 시작되자, 아내는 그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은 채 정말 우주로 갔는지 집에 좀처럼 복귀하지 못했다. 오늘도 볶음밥이다. 어제는 감자가 많이 들어갔다면 오늘은 게맛살을 많이 넣었다. 딸과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 요리에 볶음밥만한 게 없다. 둘만의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이제 딸은 엄마가 언제 오는지 내게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유치원 친구들 이야기, 좋아하는 캐릭터가 새겨진 옷을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다. 이 어린 것이 나보다 어른 같아 보였다. 딸은 서걱서걱 거칠게 썰어놓은 채소를 포크로 찍으며 말을 이었다. “아빠, 코로나 때문에 키즈카페도 못 가는 거지?” 엄마가 저녁에 없는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딸에게 그새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딸은 다른 아이들처럼 키즈카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뛰어놀 수 있는 곳에 못 간다는 시련은 엄마의 부재만큼이나 힘든 모양이었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아빠, 코로나가 끝나면~” 딸은 가고 싶은 곳을 내게 말할 때 늘 어두에 ‘코로나가 끝나면’을 붙였다. 나는 딸의 간절한 소망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잘 정리했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될 것 같아 측은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딸은 밝았다. “아빠, 콧구멍 보인다. 마스크 올려 써야지~” 외출할 때 배시시 웃으며 내 걱정까지 해준다. 나보다 ‘거리두기’도 잘한다. 숫자를 배우는 시기인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사람 수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이제 아무도 오면 안 돼. 유치원에서 다섯 명이서~ 모이면~ 안 된다고 했어.”  딸의 숫자 세는 모습에 감탄해야 하는지, 코로나 시대의 애처로운 단면에 한탄해야 하는지 나는 그저 실없이 웃기만 했다. 아이랑 볶음밥 먹으며 지낸 1년…아내는 다시 백신팀으로 차출 우리나라에 백신이 들어오기 한 달 전, 보건소 내에서는 백신팀이 뜨거운 감자였다. 백신팀에 인력을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코로나 대응에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이다. 그 백신팀에 아내가 또 차출되었다. 아내는 내 생각보다 더 고수였던 걸까. 무림의 고수가 도장 깨기라도 하듯 코로나 관련 부서를 모두 깨고 다니는 아내의 모습에서 나는 고수의 위세를 느꼈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도장 깨기 고수의 눈 밑은 다크서클이, 볼에는 마스크를 많이 한 탓에 뾰루지가 나 있었다. 더 이상 묘사한다는 것은 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 못하겠다. 늘 피곤에 절은 모습이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나는 잠에서 덜 빠져나온 눈을 하고 거실에 나왔다. 아내는 머리카락도 다 말리지 못한 채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맨날 애를 볶음밥만 해 먹여? 고기랑 브로콜리 구워놨으니까 같이 먹어. 브로콜리는 저거 다 먹여야 해!” 나는 알았으니 출근하라는 신호로 성의없이 팔을 흔들어댔다. 딸의 유산균이 식탁에 있다며 꼭 챙겨주라는 목소리가 현관문이 닫히면서 작아지자, 그녀의 출근을 다시 실감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맑은 파란 하늘이 거실 창을 통해 들어왔다. 좋은 날씨에 괜히 마음만 심드렁해졌다. 딸과는 인형놀이를 하며 시간을 메꾸고 있었다. 인형도 우리도 맑은 하늘은 그저 병풍에 불과해 보였다. “띠링~오빠, 나 데리러 올래?”아내의 문자였다. 웬일인가 싶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억울하단다. 함께 공원이라도 가서 놀자고 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딸은 애지중지하던 엘사 인형을 바로 던졌다. 딸과 함께 차를 타고 아내가 있는 보건소로 갔다. 아내는 보건소 정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타자, 바로 내비게이션에 근처 공원을 입력했다.스트레스 날려줄 최고의 엔도르핀은 자식…아내는 언제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잔디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비록 마스크가 입을 가리고 있었지만 아내와 딸 모두 웃는 모습임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내는 보건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내게 얘기했다. 보건소의 인력난이 심해 보건소 직원들은 아내와 같이 다들 힘든 처지였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 결혼한 여직원들은 모두 이혼당할 위기라며 웃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내는 “코로나19에서 언제쯤이면 벗어날 수 있을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잘 되겠지, 올해만 넘기면...’ 난 이 말을 속으로 삼켰다. 이미 열 두 번도 더한 말이었고, 말에도 시효가 있다면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난 말이었다. 대신 딸이 영재일지 모른다면서 딸의 비상한 행동을 전하며 화제를 돌렸다. 아내는 크게 웃었다. 지극히 평범한 자식의 가끔의 재미난 돌발행동과 말은 언제나 부모들의 최고의 엔도르핀이었다. 이 엔도르핀으로 아내의 스트레스가 그나마 희석되길 바랐다.  해가 질 무렵, 우리는 돗자리를 개며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의논했다. ‘예전 같았으면 외식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서로에게 묻어나왔다. 집에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아내가 딸의 안전벨트를 여미는 모습이 룸미러에 비치자 나는 시동을 걸었다. 라디오에서 때마침 뉴스가 흘러나왔다. “우리 정부는 올해까지 국민의 70퍼센트 이상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할 것이라고...” 나와 아내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코로나 시대의 어느 하루는 저물어갔다.배완호/ MBN
    2021-05-06
  • 작년과 달리 봄의 생기가 돌지만, 사람들의 삶은 아직
    작년과 달리 봄의 생기가 돌지만, 사람들의 삶은 아직 ▲ 대구카톨릭대학병원에서 확진자 병동 촬영 준비 중인 필자 (MBN 김형성 기자) 어느새 코로나와 맞는 두 번째 봄. 여전히 하루 300~400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KF94 마스크를 쓴 채이지만 기나긴 겨울을 견뎌낸 뒤 맞이하는 새봄이 반갑기만 하다. 이 봄을 누구보다 반가워할 도시가 있다. 코로나에 지난봄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대구다.  지난해 2월 18일 31번 코로나 확진자를 시작으로 대구의 일일 확진자 수는 2월 29일 741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3월 중순 대구의 확진자 수는 6700여 명으로 당시 전국 확진자 수의 70%에 육박했다. 인구 240만 도시에서 매일 수백 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대구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대구발 코로나’ ‘대구 봉쇄’라는 오명과 낙인, 루머가 쏟아졌다. 매일 아침마다 수많은 기자들은 대구시청 브리핑 룸으로 출근을 했다. 새롭게 나오는 확진자 동선과 당시 대구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밤낮없이 취재를 했다. 봄을 잃어버린 2020년 대구  당시를 생각하면 두 가지 현장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대구 중심인 동성로에 취재를 나갔는데 항상 사람이 붐비던 동성로는 마치 유령도시처럼 사람들의 인기척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십 년간 한 곳에서 장사를 한 사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대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고 한 곳에서 장사를 했지만 이런 한산한 동성로 거리는 사장님도 처음 본 광경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장사를 이어나가기 힘들고, 웃음조차 잃었다고. 그러면서,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길 원한다고 말씀하시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번째로 기억나는 건 음압 병동 취재 현장이다. 당시 대구 지역 방송사로서는 처음으로 주어진 기회였다. 당시 의료진도 부족하다는 레벨D 방호복까지 챙겨 입었는데, 입은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방호복 안은 땀으로 가득 찼다.  보호안경에 습기가 차 카메라 뷰파인더조차 잘 보이지 않았지만, 평소 ‘한 번 지나간 현장은 다시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해 왔던 터라 현장감 있게 찍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각지에서 지원을 오고 코로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을 취재했는데, 그중 한 분은 예전에 간호사 일을 그만두셨는데 코로나로 인해 대구에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기사와 이야기를 접하고 자신도 도와야겠다고 자원해서 오셨다고 했다.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보살펴야 하는 건 매우 힘들지만 자신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서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이렇게 1년 전 대구는 어느 도시보다 도움이 필요했다. 소방관, 자원봉사자, 의료진 등 많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대구에 도움을 줬고, 코로나와 싸움을 이어나갔다.내년 봄, 코로나19가 종식된 완전한 봄을 기다린다. 그로부터 1년. 대구의 봄은 어떻게 변했을까.수많은 상가들이 그간 상황들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많은 자영업자들, 생활 속 거리두기, 5인 모임 제한 등으로 지친 시민들의 모습을 취재하면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란 생각에 잠기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당시 유령도시 같던 대구의 거리는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던 상가 상인들은 매일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면서 힘을 내고 웃음도 조금씩 보였다. 여전히 코로나19 관련 취재가 많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분들을 만난다. 2021년이 벌써 3분의 1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모두가 힘들고 코로나19 유행은 지속되고 있다. 하루 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기를 소망한다.  김형성/ MBN대구
    2021-05-06
  • <힌츠페터국제보도상> “5월 13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5월 13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광주5.18기념재단에서로고, 슬로건, 공모및심사일정공개예정5월말전세계를대표할전문가심사위원위촉, 10월말서울서1회시상식개최 ▲4월22일 열린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회의 모습 5.18 정신의 세계화와 진실보도를 위한 힌츠페터의 기자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조직위원회는 한 달간의 활동을 통해, 구체적인 공모심사계획을 확정하고, 오는 6월 1일부터 수상 후보자 공모를 시작한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조직위원회(공동위원장 한원상·이철우)는 지난 22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제5차 회의를열고,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시상과 관련한 제반 사항을 논의, 확정했다. 조직위는 오는 5월 13일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로고와 슬로건, 공모 일정, 시상 일정 등을 발표하기로 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홈페이지도 이날 공개된다.  조직위는 이어 같은 달 17일에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와 서울 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언론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심사위원도 다음달 선정 절차를 완료하고 공모가 들어가기 전에 공개하기로 했다. 후보자 접수는 6월1일부터 받을 계획이다.  조직위원회는 전 세계적으로 국제 분야에 적극적인 취재활동, 연구활동을 벌여온 영상기자, 저널리스트, 학자들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8월말쯤 수상자를 확정해, 올 10월말 제1회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의 홍보대행사로는 ㈜파울러스가 선정되었다. ㈜파울러스는 ‘2018 칸 라이언즈 광고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점자 스마트기기 ‘닷미니’의 광고 영상을 제작한 업체다. ㈜파울러스의 김경신 대표는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성공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화를 응원하고,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실천하는 영상 기자를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인들과 연대한다는 취지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라이펜 슈툴 독일대사, <힌츠페터국제보도상>성공을 위해 적극 지원하기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준비를 해온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나준영)는 5.18기념재단과 함께, 지난 3월 16일, 이 상의 조직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조직위는 공동위원장 외에 나준영 회장, 김영미 국제전문저널리스트 등 협회와 5.18기념재단이 추천한 인사 16명으로 구성됐다.  조직위 구성에 앞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준비위원들은 3월 5일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대사를 만나 독일정부와 대사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준비위원들은 이 자리에서 힌츠페터기자가 근무한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소속의 영상 기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또,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에 라이펜슈툴 대사가 참석해 줄 것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라이펜 슈툴 대사는 “그동안 광주에서 열리는5.18 관련 행사에도 참여해 왔는데, 이렇게 힌츠페터의 활약과 정신을 기리는 국제보도상이 제정되어 감사하고 기쁘다. 시상식에 독일대사로서 참여할 것이고, ARD방송사 영상기자의 심사참가는 물론이고, 독일의 언론단체, 기자단체 등이 힌츠페터국제보도상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독일대사관도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협회는 1980년 5월 계엄군의 진압에 맞선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의 민중 항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기자를 높이 평가하여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추진해 왔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당시 언론 통제로 인해 국내에서는 보도될 수 없었던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려 한국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힌츠페터의 광주 취재과정은 2017년 8월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바있다.안경숙기자(cat1006@naver.com)
    2021-05-06
  • ‘몽유와’에서‘오월광주’를보다.
    ‘몽유와’에서‘오월광주’를보다. ▲ 군부 쿠데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운집한 미얀마 몽유와의 시민들 (사진=Monywa StrikeCommittee)국내외 언론의 취재, 보도가 봉쇄되어 버린 미얀마 3월 초, 양곤 기자들에게 우연히 들은 어느 지역의 저항 시위 이야기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양곤보다 더 시위가 거센 지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 장군의 고향‘바간’이라는 곳과 멀지 않은 ‘몽유와’라는 농촌 도시였다.  지도를 찾아보니 미얀마의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북쪽으로 차로 두세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양곤과도 먼 이곳에서 그것도 작은 농촌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미얀마에 쿠데타가 난 지난 2월 1일 이후, 전 세계 외신들은 그 누구도 미얀마 현지 취재를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국경이 닫혔고 양곤 공항에서 취재진의 입국이 허용되지 않았다. 작년 11월에 선거취재 갔다가 눌러앉았던 프리랜서 취재진 몇 명과 기존의 소수 특파원들이 미얀마에 외신기자로 있었지만, 그나마도 취재가 전면 통제 되었다. 시위현장에서 취재활동을 하다가는 체포되기 십상 이었다. 미얀마 현지 언론은 더 최악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체가 군부의 표적이 되고 취재진이라는 이유로 체포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일하게 CNN이 군부의 협조 하에 취재하러 들어갔다가 군인들의 감시와 인터뷰이들의 체포로 단 며칠도 취재하지 못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어서 몽유와의 시위 상황은 미얀마 사람들의 SNS 상에서만 회자되는 정도였다. 미얀마 기자들이 지방인 ‘몽유와’까지 취재하러 갈수없었다. 곳곳에 군인 검문소와 감시의 눈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몽유와 시위는 대단했다.  미얀마항쟁의 중심지, ‘몽유와’ 지난 2월 7일 몽유와 시내에 첫 저항 시위가 열렸다. 그 후 현재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몽유와 사람들 모두가 동참한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저항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미얀마’의 광주라 불릴만큼 몽유와는 미얀마 저항의 상징이 되어있었다. 서울에 있는 나는 몽유와에 있는 그들과 어떻게 접촉할지 고민이었다. SNS를 뒤지고 양곤의 기자들과 합심하여 간신히 몽유와 파업위원회(Monywa Strike Community)의 학생 조직과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그들은 나를 경계했다. 미얀마 내부 기자도아니고 한국에 있는 기자가 자기들을 찾아낸 것을 의아해했다.  ‘몽유와’에서 날아온 문자- “THANKS” “우리는 우리끼리 알아서 저항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우리가 당신을 도울 일은 없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왔다. 저항 시위를 하며 군부의 감시와 수배로 경계가 심한듯했다. 나는 그 날부터 미얀마 시민들에게 보내는 한국인들의 연대 소식과 사진 그리고 우리 정부의 단호한 미얀마 군부와의 단절 조치 등을 담은 소식들을 보냈다.  그리고 “부디 안전하게 있기를 한국인의 한사람으로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면 읽기만 하고 답이 없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어느 날, 내가 보낸 한국의 미얀마 연대 소식에 처음으로 “Thanks”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들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인터넷망이 끊겨 소식을 공유할 수 없는 시민들에게 시위의 시작을 알리는 오토바이 행렬 (사진=Monywa Strike Committee)▲ 몽유와 파업위원회를 이끌다가 군부에 체포된 '판다' 웨이 모 나잉(26)씨가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던 당시의 모습  (사진=Monywa Strike Committee) 미얀마 민주화투쟁의 젊은 리더, ‘몽유와’ 의 판다 나는 나에 대한 소개, 미얀마 취재를 7번 다녀왔고 샤프란 혁명 때도 취재했으며 내 SNS를 알려주며 나의 얼굴 사진을 지금 올릴 테니 보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신원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어 했고, 이윽고 조금씩 그들 나름대로 나를 언론인으로 판단하고 ‘몽유와’의 저항 소식을 공유해주었다. 이들은 아마도 버마어에서 영어를 통역해주는 번역기를 이용하는듯했다.  그러면서 이들 중 영어를 가장 잘하는 이가 있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고 별명이 ‘판다’라고 했다. 판다는 26살의 청년으로 ‘파업위원회’와 학생조직의 ‘리더’라고 했다. 농촌 도시의 청년치고 영어가 수준급이었다. 그는 대학생 때 영어를 전공해서라고 설명했다. 그가 이끄는 ‘파업위원회’는 기존의 ‘몽유와’ 대학생조직과 시민들이 저항 시위를 함께 하며 새로 꾸려진 ‘몽유와’ 투쟁 조직이라고 했다.  몽유와’ 저항의 상징이 된 오토바이 행진 -오토바이 소리가 시작되면 시민들의 시위도 시작  그들이 알려준 몽유와 저항 시위의 상징은 오토바이였다. 군부가 인터넷을 끊어서 비싼 돈을 주고 사야하는 사설 가설망(VPN)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엄두가 안 난다. 언제 시위가 시작하는지 알수  없는 시민들에게 시위 공지를 할 수 없어 착안한 아이디어가 오토바이이다.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고 몽유와 시내 한가운데 등장하면 사람들은 ‘아, 시위가 시작 되는구나“하며 집을 나와 시위대를 따랐다.  CDM(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몽유와’ 시민들은 아침부터 집에서 옷을 입고 차비를 하고 있다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소리를 쫓아 찾아갔다. 그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 ‘몽유와’ 시민들은 저항시위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몽유와’의 윤상원, 판다를 만나다. 내가 ”‘몽유와’ 시민들 몇 %가량이 시위에 참여하나? “라고 묻자,  판다는 ”거의 모두“라고 대답했다. 판다는 대단한 청년이었다. 시위에 연설을 하면 정말 뛰어난 언변과 자신의 신념이 찬 말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이 영상으로 보여주는 시위장면은 마치 광주 항쟁을 보는듯했다.  판다는 윤상원이고 시민들은 광주 시민 같았다. 농촌 도시라고 보기에는 너무 엄청난 장면들이었다. 군부는 이런 몽유와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진압작전을 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시민이고 시민이 시위대인 상황으로 똘똘 뭉쳐있는 몽유와의 시위를 막기에는 쉽지 않았다.  시위도중 사람이 죽어 나가도 다음 날 어김없이 오토바이들과 함께 시위대가 나타난다. 판다는 신출귀몰하며 명연설을 하고 치고 빠진다. 이 상황이 ‘몽유와’에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양곤의 다른 기자들과 취재 화상 미팅을 하다가 판다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기자들은 ”판다랑 이야기했다고?“하며 놀라는 것이 아닌가? 판다는 이미 미얀마의 영웅이라고, 국부 아웅산 장군에 버금가는 미얀마 국민적 사랑을 받는 리더라는 것이다. 나만 몰랐던 것이다. 급하게 몽유와에 연락해 판다 측근들에게 판다에 대해 물었다.  그의 본명은 웨이 모 나잉. 미얀마 군부가 국영방송을 통해 지명 수배한 주요 수배자 20인에 드는 거물이었던 것이다. 내가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면 진작에 알았을 텐데, 원격 취재의 한계였다. 화상이나  메시지로만 서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취재의 취약점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제법 나와 친해진 판다 측근들은 판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판다는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상황이고 무슬림이기 때문에 더 큰 고초를 겪을것이라고 했다. 그뒤로 나는 아침마다 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Are you okay?“ ”Is Panda okay?“로 시작했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그들의 운명이 실감 났기 때문이다, 또한 본격적인 판다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판다와의 인터뷰는 딱히 인터뷰라고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이슈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이뤄졌다. 그가 저항하는 이유, 몽유와 시위 상황, 미얀마 사태에 대한 전망 등등. 그는 정말 똑똑했고 눈빛이 살아 있었다. 몽유와 저항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다. 겨우 이십대 중반 청년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에게 쿠데타는 미리 준비된 현실도 아니었을 텐데 이런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난 것은 미얀마의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민주항쟁’의 끝은 어떻게 됩니까? 미얀마 사람들에게도 광주는 많이 알려져 있었다. 광주 영상을 본 사람들도 많다.  ‘몽유와’의 청년들이 내게 물었다. 광주민주화 항쟁 결말이 어떻게 되었냐고. 마치 자신들의 미래를 점쳐보듯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후 대한민국은 적어도 군인이 총들고 청와대 쳐들어가서 대통령을 감금하고 정권 찬탈하지 못합니다. 군인이 길거리에서 군사 작전을 하고 시민들을 총으로 쏘아죽이고 때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이 광주 민주화 항쟁 때부터 싸워서 오늘날 법으로 그렇게 만들었어요.“라고, 그들은 이런 이야기가 영화 같다고 했다.  몽유와 파업위원회 청년들이나 판다와의 대화는 2021년 서울에 있는 나를 타임머신 타고 1980년 광주로 데리고 갔다. 그때의 광주시민을 실시간 만나서 대화하는 것 같다. 빛바랜 사진의 청바지에 헐렁한 셔츠을 입은 그 시절 광주 청년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매일 그들이 안전한지 확인하며 위성 지도로 몽유와를 보며 어느 시장 어느 거리의 지명을 익히고 매일 시위 상황을 전해 들었다.  어떤 날은 군인들에게 오토바이 2대를 빼앗겨서 억울해하고, 어떤 날은 파업 위원회 소속 활동가 2명이 체포되어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시위는 계속되었다. 시위대 방어용 모래 주머니를 쌓고 ’폴리스‘ 대신 ’피플‘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방패를 만든 그들의 앳띈 모습의 사진을 받아보며 나도 시위대가 된 착각이 들었다. 그러던 4월 15일, 오후, 급박한 메시지가 떴다. ’판다가 금방 잡혀갔다‘ 머리가 하얘지는 듯했다. 파업위원회와 판다 측근에게 연락해보니 판다가 잡혀가던 순간의 영상을 보내왔다. 사제차로 위장한 군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시위에 나가는 판다를 들이 받았다. 목격자들은 그가 군인들에 의해 구타당하며 머리에 피가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체포당시 부상이 아주 심각해보였다. 판다 체포 뉴스는 순식간에 마얀마 사람들의 SNS를 타고 퍼져갔다. 판다의 체포를 걱정하는 글로 넘쳐났다. 판다가 누군지 모르던 외신들까지 그 분위기에 놀라 크게 보도했다. 판다는 민간인임에도 군 사령부로 끌려갔다. 군사 법정에 설 예정이고 경찰관 살해혐의를 받고 있어 최고 사형이 언도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당장 내가  체포되어도 더 많은 ‘판다’들이 있다!! 그러나 판다는 체포 전에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판다의 의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판다는 일부러 해외 언론과 인터뷰해서 최소한 군부가 자신을 죽이지는 못하게 일종의 보험 같은 준비를 한 것 같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1988년 항쟁이후 가택 연금을 당할지언정 군부가 죽이지는 못한 이유가 아웅산 딸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해외에서 유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판다의 체포는 ‘몽유와’에도 큰 충격이었다. 나는 그가 체포된 날 ‘몽유와’에서 시위가 열리지 않을 줄 알았다. 워낙 큰 사건이 터졌기에 사람들이 숨거나 자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몽유와 사람들’이었다. 체포 직후에도 시민들은 모여서 시위를 시작했다. 단 하루도 저항을 멈출 수 없다는 ‘몽유와’ 시민들의 의지였다.  판다 체포 후 나와 그들의 대화는 ‘오늘이 판다 체포 후 O 일째’.. 라고 부른다. 고문의 흔적이 가득한 그의 얼굴이 체포 다음날 공개되고 다들 힘들어했다. 판다의 뒤를 이어 판웨이 표(26)가 파업위원회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그도 판다와 똑같았다. 자기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판다가 없는 시위 현장에 그가 나서서 연설을 하고 시위를 이끌고 있다. 그는 ”더 많은 판다들이 ‘몽유와’에 있다. 판다와 나만 잡아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며 시위 때마다 이야기한다. 이 두려움을 모르는 청년들 앞에서 나는 그 날의 광주와 조국을 군부의 손에서 지켜내려던 젊은 청년들을 본다.  판다가 체포되기 전, 나는 그에게 ‘진짜 시위 때마다 체포가 무섭지 않냐?’고 질문했다. 그는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미얀마의 시민과 미래를 위한 일입니다. 당신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김영미 분쟁전문PD,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조직위원
    2021-05-06
  • “코로나19 이후 해외 취재 재개한다”
     “코로나19 이후 해외 취재 재개한다”청와대 기자단,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백신 접종…도쿄올림픽 방송단 구성에는 ‘골머리’KBS, JTBC 이스라엘에 취재팀 파견 국내 언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단했던 해외 취재를 재개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과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청와대 기자단이 순방 취재 준비에 들어가는가 하면, 방송사들은 오는 7월 개최 예정인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방송단을 꾸렸다. KBS와 jtbc는 야외 마스크 의무 착용을 폐지한 이스라엘에 발빠르게 취재진을 급파하기도 했다.  청와대 기자단은 5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근 기자단을 꾸렸다. 순방 기자단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규모다. 기자단에 포함된 기자들은 지난 15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을 완료했고, 5월 초 2차 백신을 맞을 예정이다.  대통령 해외 순방은 지난 2019년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한·일·중 정상회의 참석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한 영상기자는 “미국의 코로나 방역 상황 등을 감안해 춘추관에서 30명 정도의 기자단이 가면 적당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기자단을 구성한 상태”라며 “실제로 이 인원이 모두 갈 수 있을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실무진의 조율 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기자단은 오는 6월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 취재단 구성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G7 취재단은 한미 정상회담 취재단에 참여하지 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꾸려진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을 G7 정상회의에 초청한 바 있다. 이번 회의에는 G7 국가를 포함해 한국, 호주, 인도, 유럽연합 정상이 게스트로 초청됐다. 한 청와대 출입 기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춘추관에서는 대통령 참석 행사와 동선이 겹치는 출입기자가 코로나에 확진될 경우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이 감염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국가 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며 “특히 미국 순방 취재가 확정된 기자들은 순방 직전 감염되기라도 하면 순방에서 빠지게 되어 취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만큼 다른 기자들과 교대로 출입하지 말고 춘추관에만 상주해 줄 것을 당부한 상태”라고 전했다. 코로나19로 개최를 연기한 제32회 도쿄 올림픽 취재를 앞두고 국내 언론사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석 달 만에 다시 5천 명을 넘어서면서 일본이 도쿄와 오사카, 교토 등 3개 광역 지역에 세 번째 긴급사태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은 “긴급사태 발령과 올림픽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올림픽을 미뤘던 지난해보다 신규 확진자 수가 10배가 넘는 상황이어서 국내 언론사들은 불안감 속에 취재단을 꾸리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우리나라에 배정된 99장의 ID카드를 이미 각 언론사에 배부하고, 취재진 추천을 받아 명단을 확정했다. 대한체육회는 백신 접종을 위해 이 명단을 질병관리청에 넘겼으며, 대회가 임박하고 선수들의 안전 문제도 있는 만큼 빨리 답을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 기자들 명단과는 별도로 방송사들은 중계 인력을 포함한 방송단 꾸리기에 여념이 없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방송사로부터 방송단 명단을 받아 질병관리청에 보낸 상태”라며 “지상파를 기준으로 방송단 규모가 200~300명 가량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방송사들은 해외 취재를 다녀오면 입국 이후 2주간의 자가 격리를 해야 하고, 현지 취재 환경도 예년과 확연히 다를 것이 예상되는 만큼 방송단 규모를 최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1차 플레이북이 나왔을 때 언론사들에게 취재하려는 곳이 있으면 14일 이전에 미리 신청을 해 놓아야 하고, 신청이 안 된 언론사는 출입과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며 “2차 플레이북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 관련 내용이 어떻게 변경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IOC, 국제패럴림픽위원회,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참가 선수단에게 나눠줄 규범집인 플레이북을 지난 2월 공개한 바 있으며, 갱신된 방역 정보를 토대로 내용을 업데이트해 4월에 2차 플레이북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1차 플레이북에 따르면 참가 선수들은 △일본에 입국한 후 허가가 없는 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처음 14일은 경기장 등 정해진 장소 이외의 외출을 금지하는 한편 △중대한 위반을 했을 경우 ID카드를 무효로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언론계에서는 IOC가 이러한 원칙을 언론 종사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자들의 동선에도 제약이 커 현장에서 새롭게 기사를 발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개별 언론사 차원의 해외 취재도 재개됐다. KBS와 jtbc는 최근 세계에서 최초로 정부가 공식적으로 ‘실외 노 마스크’를 선언한 이스라엘에 취재진을 급파했다. KBS는 지난 16일 이스라엘에 취재진을 파견해 현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KBS 취재진은 입국 직후 곧바로 자가격리에 들어가느라 취재가 어려울 것을 감안해 사전에 현지 취재팀을 섭외해 영상을 촬영, 방송을 내보냈다. jtbc와 중앙일보도 ‘I-방역(이스라엘 방역)의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하겠다’며 지난 17일(현지시각) 취재진을 보냈다. 중앙일보는 “I-방역을 소개하겠다는 취지를 이스라엘 당국에 설득해 어렵사리 특별 입국허가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외국인 입국자 자가격리 기간은 14일이다. 하지만 9일째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아 이상이 없으면 격리 기간이 10일로 줄어드는 만큼 기자들은 이르면 27일부터 본격적인 취재 활동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1-05-06
  •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2020년 ‘굿뉴스메이커상’ 수상에 감사 인사 전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2020년 ‘굿뉴스메이커상’ 수상에 감사 인사 전해“귀한 상 주셔서 감사…질병청 직원 노고 대신해 받겠다” 우리 협회가 수여하는 ‘2020 굿뉴스메이커상’을 수상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협회에 감사 인사를 전해 왔다. 협회가 2003년부터 시행한 ‘굿뉴스메이커상’은 한 해 동안 시청자와 국민들을 기쁘게 했거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정 청장은 지난 3월 22일 협회로 보낸 감사인사를 보냈다. “귀한 상을 주셨는데, 직접 시상식에 찾아 뵙고 감사 인사드리지 못하고 문자를 드려 송구하다.”고 시작한 글에서 정 청장은 “감염병 위기라는 무겁고 엄중한 상황에서 굿뉴스를 전해준 공로로 상을 주셔서 받아도 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면서도 “귀한 상을 주셔서 감사드리고, 질병청 직원들의 노고를 대신하여 감사히 받겠다.”고 전했다.  정 청장은 이어 “신속하고 정확한 방송을 위해 늘 애써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모든 분들의 건강을 기원드린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지난해 영상기자들이 뽑은 2020년 ‘굿뉴스메이커상’ 수상자로 정 청장을 선정했다. 정 청장은 방역 최일선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확실한 방역 대책과 리더십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 청장은 방역 행정으로 지난 2월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대전YTN 박동일 국장이 협회를 대신해 상을 전달한 바 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1-05-06
  • 미얀마 민주화 지지 움직임 언론사로 확산
     미얀마 민주화 지지 움직임 언론사로 확산협회, 회원들에게 <주간경향 미얀마특별판> 배포  주간경향은 지난 5일 <시민은 승리한다>는 제목으로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미얀마 시민의 모습을 표지에 담은 특별판을 발매했다. 주간경향은 김영미 분쟁 전문 PD가 미얀마에서 해직된 언론인을 임시로 고용해 그들이 취재한 기사와 사진을 대거 게재했다. 협회는 미얀마의 시민과 해직 기자 지원, 김 PD의 미얀마 진실 알리기 운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미얀마 특별판을 단체구매해 회원사에 발송하기도 했다.  시사IN은 사회적 협동조합 ‘오늘의행동’과 함께 지난 7일부터 <#WatchingMyanmar #지켜보고있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시사IN은 캠페인 홈페이지를 통해 “국제사회가,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미얀마를 잊지 않고 주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5월 18일까지 진행된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가 이어지자 미얀마 시민들 사이에서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미얀마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요청하는 ‘고마워요 한국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나준영 회장은 “미얀마 사태가 5.18 광주 항쟁과 유사한 점이 많은 만큼 한국의 영상 기자들이 21세기의 ‘힌츠페터’가 되어 미얀마 사태에 대해 제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한국의 언론과 시민들이 미얀마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1-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