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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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정상 회담장과 동굴(?) 만찬사
    남북 정상 회담장과 동굴(?) 만찬사 서영호 기자(영상취재1부 차장) young@mbc.co.kr 정상 회담장의 카메라 모터소리 6월 13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는 온통 텔레비전 속으로 집중되었다. 두 정상의 만남은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보였고 모두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였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정상회담장안에서 들리는 우리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갑작스러운 기계 음에 우리는 또 한번 놀랐다.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열리는 장소에 웬 공사장 굴착기 기계음? 그것은 다름 아닌 북한 카메라맨이 촬영하는 구형 16mm 필름 카메라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시청자 모두 두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텔레비전을 지켜보았지만 필름 카메라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두 정상이 나누는 대화가 묻혀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여간 짜증나는 게 아니었다. 굴 속처럼 울리는 대통령 만찬사 또한 14일 저녁 김대통령의 만찬사 역시 녹음취재 상태가 비정상적이어서 마치 동굴 속에서 만찬이 진행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또 평양에서 전송되는 생생한 화면은 각 방송사들이 미처 확인할 겨를도 없이 거의 리얼타임으로 방송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결국 각종 유형의 방송 사고를 내고 말았다. 2000. 6. 27 전후의 사정이 어떠하였던 그건 방송사의 문제이지 시청자에게는 관심밖의 일이다. 14일 뉴스데스크 시간에 방송된 김 대통령의 만찬사는 너무 울려서 내용을 알아듣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거의 방송 사고나 다름이 없었고 급기야 사과 자막까지 내보내고야 말았다. 왜 이런 실수가 발생할 것일까? ▶우리나라 카메라 기자들의 오디오 경시 풍조 우리는 TV 카메라 기자라는 직업상 오디오보다 비디오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 취재 현장에서 외신 방송 팀의 오디오맨을 보게되면-육중한 체격에 무슨 라인은 그리도 많은지 치렁치렁한 오디오 케이블을 몸에 감고도 부족해서 자기 키보다 길다란 붐 마이크를 챙겨들고 열심히 오디오 녹취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별스럽게 유난을 떤다고 느껴온게 사실이다. 개별적인 인터뷰 녹취는 확실하게 마이크를 세팅하여 취재하고있지만 현장음을 녹취하는 경우 따로 마이크를 들고 다니기 보다는 ENG 카메라에 부착된 지향성 마이크에 주로 의존해왔는데 그것은 고정된 마이크가 주는 편이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향성 마이크의 성능은 항상 우리가 기대한 만큼의 음질을 보장받지 못할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지향성 마이크의 특성상 주위가 비교적 조용하거나 잡다한 소음에 영향을 받지 않을 때 비교적 깨끗한 음질이 보장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정확한 녹음 취재가 불가능하다. ▶정상회담 취재 치밀한 사전준비 아쉬워... 이번 정상회담의 경우도 이같은 지향성 마이크의 사용이 빚어낸 실수였다. 회담장은 조용한 실내이지만 예상치 못한 필름 카메라의 등장으로 인해 정상회담장의 육성이 필름 카메라의 소음 속으로 파묻히고 말았다. 취재전 좀더 충분한 준비가 있었으면 사상 처음으로 언론에 근접 공개된 김정일 위원장의 생생한 육성을 더욱 명확하게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취재팀이 정상회담 장에서의 복병(?)이였던 필름 카메라의 출현을 전혀 예상치 못하였다면, 14일 저녁 만찬사의 경우는 사전에 확인이 가능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오디오 사고가 발생했다는 데에 우리는 더욱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전 세계로 향한 만찬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만찬사는 마치 동굴 속에서 진행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소리가 울려서 도통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동굴(?) 만찬사는 각국 방송사의 방송망을 통해 전 세계로 메아리 치질 않았던가? 결국 이것은 평소 우리의 현장음 녹취에 대한 적당주의가 빚은 당연한 결과로 생각된다. 이제 영상취재의 반을 차지하는 녹음취재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왔다. 과연 그 동안 우리는 오디오 녹취에 얼마만큼의 열정을 보여왔는가? 녹취 때마다 헤드폰을 착용하고 미세한 잡음을 체크하여 왔던가? 또 오디오 녹취는 오디오 맨 에게 일임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 현재의 오디오 맨이 전문 오디오맨 으로서 손색이 없는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만찬장이 특별한 장소였다고, 그렇게 붕붕 소음이 울릴 지 예상 못 했다고 변병하지 말자. 프로는 변명하지 않는다. 프로에게 실수란 인정되지 않는다. 정상회담 장에서 사라진 두 정상의 육성 부분과 만찬사의 교훈으로 우리는 아마추어가 아닌 전문가를 지향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 겸허한 初心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
    2003-02-24
  • 후지모리 이후의 페루
    자료출처: 문화방송 뉴스인뉴스 '페루'란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지요? 후지모리, 몬테시노스, 안데스, 잉카, 마추피추 등이 떠오를 걸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국제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년 전의 일본대사관 인질사건과 그 사건을 일으켰던 투팍 아마루 해방운동, '빛나는 길' 같은 단어도 생각날 것입니다. 그 페루가 내일(현지시간으로 4월 8일 일요일)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동시에 치릅니다. 이번에 뽑히는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도망가버린 후지모리의 후임으로 임기는 5년입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모두 백20명입니다. 대통령 선거에는 모두 8명이 출마했습니다. 그 가운데,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후지모리를 위협했던 원주민 출신의 알레한드로 톨레도(55살)와 여성 후보인 로우데스 플로레스(41살), 그리고 후지모리 전에 대통령이었던 알란 가르시아(51살) 세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당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내일 투표에서는 과반수를 얻지 못하고, 오는 5월말이나 6월초에 결선투표를 해야 할 전망입니다. 페루는 지금 정치불안과 빈부격차, 경제난, 그리고 마약문제까지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선두의 세 후보는 모두 일자리 창출과 경제개발, 그리고 빈곤퇴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페루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페루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중간쯤에 있고 태평양과 닿아있는 나라입니다. 북쪽으로 에쿠아도르와 콜롬비아, 동쪽으로 브라질과 볼리비아, 그리고 남쪽으로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면적은 약 백28만5천 평방 킬로미터로 남한면적의 열 세배쯤 되는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서쪽 해안의 평원지대만 사람이 살 만하고 중앙은 안데스산맥의 험난한 높은 바위산 지역이고, 동쪽은 아마존의 밀림입니다. 인구는 지난해 7월 현재 2천7백만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수는 천5백만 명이 조금 못된다고 합니다. 페루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찬란했던 문명, 잉카의 나라입니다. 그 역사는 약 만년이나 됩니다. 그러나 남아메리카 대륙의 3분의 1을 차지했던 잉카족의 안데스문명은 1532년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침공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맙니다. 이때 잉카족을 이끌고 최후까지 투쟁했던 왕자의 이름이 투팍 아마루입니다. 그래서 위에 말한 '투팍 아마루 해방운동'이란 단체의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페루는 1821년 7월28일 독립선언을 하고, 그 4년 후인 1824년 공식적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합니다. 그러나 이때도 독자적인 힘이 아니라 베네주엘라 출신의 혁명가 시몬 볼리바가 이끈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페루는 지형이 셋으로 나누어지듯, 민족구성도 셋으로 나뉘어집니다. 45%의 원주민, 37%의 메스티조(원주민과 백인의 혼혈, 페루말로는 '촐로'라고 합니다.), 그리고 15%가 백인입니다. 나머지 소수민족으로는 흑인과 일본인 중국인 등으로 약 3%입니다. 15%의 백인이 수백년 동안 페루의 권력층, 상류층을 형성하면서 페루를 지배해 왔습니다. 그리고 메스티조가 그 다음이고, 순수 잉카의 후예들은 가장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종문제가 남미국가중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페루는 독립 후부터 1960년대까지 줄곧 군부독재와 과두정치체제에 시달렸습니다. 60년대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그러나 힘의 공백 때문에 경제난과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대통령에 출마하는 알란 가르시아가 대통령으로 있던 89년에는 무려 7천6백50%의 인플레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후지모리가 대통령이 된후 과감한 정책추진으로 인플레를 잡고, 경제발전을 이루나 했지만, 86년 아시아를 휩쓴 경제위기의 와중에 페루의 경제도 같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페루는 현재 인구의 절반이 극빈자이며, 취업희망 노동자 두 사람중 한 사람만이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50%라는 말입니다. 마약문제도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원래 페루는 전세계에서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코카 재배지가 가장 넓은 나라였습니다. 8년대와 90년대 경제개발과 강력한 단속으로 코카를 재배하던 농민들이 다른 직업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고, 또 이웃 콜롬비아가 미국과 합동으로 강력한 마약단속정책을 펴는 바람에 코카인 값이 올라가자 다시 코카나무를 재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유엔 마약통제프로젝트(UNDCP)의 보고에 따르면 페루에는 약 7만7천 헥타아르의 버려진 코카 경작지가 있는데, 3개월에서 6개월이면 완전히 옛날처럼 코카를 경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동쪽 아마존 밀림 지역에서는 벌써 새로운 코카 경작지가 관찰된다고 합니다. 페루에서 코카 잎의 가격은 지난 6달 동안 킬로그램에 2달러에서 4달러로 배로 뛰었다고 합니다. 인종문제, 경제난, 실업, 부정부패, 마약-이런 여러 어려운 문제를 떠안고 나갈 대통령을 내일 뽑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에 지친 페루 유권자들은 선거에 시큰둥한 반응이란 보도입니다. 네명 가운데 한 명이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거운동도 정책보다는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선두주자인 톨레도는 혼외정사에서 얻은 아이가 있고, 코카인 약물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음해에 시달리고, 여성 후보인 플로레스는 레즈비안이란 유언비어에 발끈하고 있습니다. 만년의 역사와 풍부한 자원을 갖고도, 식민지배의 악성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페루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2001. 4. 7
    2003-02-24
  • Sky Diving 하늘을 날다.
    Sky Diving 하늘을 날다. 손인식 . MBC 어릴 적 남산 높은 곳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바라보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없이 한없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슈퍼맨처럼 망토를 두르고 탁자에서 뛰어내리기도 하면서 하늘을 날 수 잇는 날을 꿈꾸어 보았다. 3년 전부터 나는 스카이다이빙 촬영을 배우고 싶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스카이다이빙이 그다지 소개되어 있지 않았고, 더구나 스카이다이빙 촬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런 불모지나 다름없는 스카이다이빙 촬영 분야를 개척해 보고 싶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여러 사람에게 물어 보았지만 신통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 국내에 있는 스카이다이빙 협회에서 스카이다이빙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교육을 하려면 매일 점프를 해야 하는데 우리 나라 사정상 아직 그럴 형편이 못된다는 것이고 어느 곳에서도 자세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내가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몇 년이 지난 「Sky Diving」잡지가 고작이었다. 그래도 그 잡지에서 북미에서 가장 크다는 스카이다이빙 학교인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지대에 있는 Perris Valley SkyDiving School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의 자세한 정보를 구하고 교육비를 마련하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그곳의 날씨가 일년 중 점프하기에 가장 좋다는 10월에서 3월이 되기를 기다려 9월 30일 미국 LA로 향했다. 내가 Perris Valley SkyDiving School에서 스카이다이빙 촬영연습에 필수적인 스카이다이빙 RW A 라이센스를 취득할 때까지의 과정과 그 교육내용을 소개하고 자 한다. 스카이다이빙 스포츠는 재미있다. 스카이다이빙은 단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이다. 12.000피트(3600미터) 높이의 비행기에서 점프하여 시속 170Km의 속도로 떨어지며 1분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가 있는 것이다. 그 1분간은 나도 새가 되어 마음대로, 가고 싶은 데로 날아다닐 수가 있는 것이다. 스카이다이빙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자유낙하( AFF : Accelerated Free Fall) : 엎드린 자세 그대로 떨어진다. RW(Relative Work) : 두 명 이상 여러 명이 함께 낙하하면서 원을 그리거나 여러 형태를 만들어 낙하한다. 텐덤(Tandom) : 점프 마스터 가슴에다 연습자 등에 있는 고리를 연결하여 합께 떨어진다. 프리스타일( Free Style) : 똑바로 서거나 거꾸로 떨어지면서 자유로운 동작을 취한다. 스카이써퍼(Skysurfer) : 낙하시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여 다양한 형태의 동작을 창조한다. 프리 플라이트( Free Flight) : 낙하시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여 다양한 형태의 동작을 창조한다. Style : 머리를 지상으로 향한 상태로 가장 빠르게 (곤두박질하는 자세) 낙하한다. Canopy R,W : 여러 개의 낙하산으로 편대를 이루어 여러 동작을 한다. Precision Accuacy : 한 지점에 정확히 착륙하는 정밀낙하. 생명줄낙하(Static Line): 공수 부대 원들이 낙하하는 것처럼 비행기에다 낙하산 줄을 연결하여 점프하자마자 낙하산이 펴질 수 있도록 한 것. 이와 같이 많은 종류의 스카이다이빙이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종목은 RW jump이고 스카이다이빙학교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는 종목도 AFF 와 RW이다. AFF의 과정과 그 내용을 보면 단계가 있는데 각 단계마다 다른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유낙하( AFF : Accelerated Free Fall) 8단계 AFF 제1단계 "두려움 속에서도 무릎을 고정시키기" 두 명의 스카이다이빙 마스터와 함께 자유낙하를 하면서 고공 자유낙하를 경험하게 하고 스카이다이빙의 안전성의 믿음과 낙하산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 배양. (주말 $299.00, 주중 $ 275.00) AFF 제2단계 " 앞으로 이동하기" 두 명의 스카이다이빙 마스터들과 함께 자유낙하를 하면서 스스로 몸의 움직임을 늘리고 앞으로 이동하기, 낙하산 스스로 펴기 ($165.00) AFF 제 3단계 "90도 회전" 두 명의 스카이다이빙 마스터들과 함께 자유낙하를 하면서 몸에와 닿는 공기의 퍼짐(확장)을 알게 하고 90도 회전 3회하기, 낙하산을 조정하여 안정성 있게 착지 지점에 착륙.( $150.00) AFF 제 4단계 " 스카이다이빙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한 명의 스카이다이빙 마스터와 함께 마주보며 낙하하면서 자연스러운 몸의 안정성획득, 보다 낮은 고도에서 낙하산 표기, 4단 계부터는 스카이다이빙 마스터 한 명과 낙하하게된다.($150.00) AFF 제5단계 "회전하기" 한 명의 스카이다이빙 마스터와 함께 자유낙하를 하면서 앞으로 이동하기 , 180도. 360도 회전하기 낙하산 조성하여 정확하게 착륙하기. ($150.00) AFF 제 6단계 "과정의 반 그리고 움직이기" 한 명의 스카이다이빙 마스터와 함께 자유낙하를 하며 좀더 정확한 착지, 델타(손을 몸에 차렷 자세로 붙여 빠른 속도로 목표한 쪽으로 날아가는 자세)이동, 돌아서 중앙 점에 착지($150.00) AFF 제7단계 "연달아 하는 스카이다이빙" 한 명의 스카이다이빙 마스터와 함께 자유낙하를 하면서 출구 나아가기. 속도 낙하(빨리 떨어지거나 보다 늦게 떨어지기), 고도 알기, 공중에서 만나기, 360도 회전하기. ($150.00) AFF 제 8단계 "진보한 숙련된 비행" 한 명의 스카이다이빙 점프 마스터와 함께 점프하며, 땅에서의 준비과정, 낙하산 체크, 출구에서 뛰어내리기, 옆으로 미끄러지기, 이동, 서로 분리하기 ($150.00) AFF 핸드 디플로이(Hand Deploy) 낙하산 펴기를 수동으로 하는 방식 ($90.00) 이렇게 8단계로 이루어진 과정을 이수해야 하는데 한 단계를 통과해야 다음 단계를 연습할 수 있는데 첫날 교육은 아침 9시부터 이루어진다. 오전내 이론 강습과 모형 비행기 문에서의 하강자세 연습, 낙하산 산 개시 예비 낙하산을 펴야하는 시기 선택, 낙하산 조정법 등을 배우고 배운 것에 대한 간단한 필기시험을 치른 후 제 1단계 점프에 들어갔다. 이렇게 1단계에서는 이론 강습과 지상 실기 교육이 있어 다음 단계보다 비싸다. 막상 슈트를 갈아입고 낙하산을 매고 있으나 무척이나 긴장되었다. 낙하산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고 안전할 것 같은 믿음이 왔다. 프로펠러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드디어 비행기는 떠올랐고 비행기 안은 20여 명이 꽉 들어찼다. 출입구 쪽은 자리가 없어서인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여자 다이버들도 보였다. 비행기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건조하고 찬바람이 몰아쳐 들어와 고글에 끼어 있던 습기와 땀에 절여있는 머리 속까지 일순간에 날려버려 상쾌해졌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순간 순간 보이는 다른 다이버의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양쪽에서 인스트렉터가 꽉 잡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메인 인스트렉터가 OK 사인을 준다. 순간찬바람이 전신을 싸고돌며 한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하나 둘 셋 넷 하고 숨을 쉬니 내가 공중에 붕 떠 있었다. 계속해서 세찬 바람이 귀와 입을 때리고 있었다. 귓전에서는 엄청난 바람 소리가 몰아쳤다. 숨을 쉬기 위해서 입을 조금 발리자 바람이 강제로 내 입을 벌이려는 듯 양볼을 부풀렸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인스트렉터인 Moley가 계속 자기 머리를 치며(긴장을 풀라는 신호) 싸인을 보내왔다. 그제야 주위에 있는 구름과 멀리 보이는 산 , 내 앞에서 촬영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내 앞의 카메라맨의 거세게 흩날리는 옷깃을 보니 비로소 내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Moley가 고도계를 가르쳤다. 5000피트, 이제 낙하산을 펴야하는 고도다. 낙하산을 편다는 싸인과 함께 ripcord(낙하산을 펴게 하는 줄)를 당겼다. 순간 강한 나의 몸의 공기 저항력은 100피트에서 낙하산(면적 대략 11*23피트)에서 발생하는 공기 저항력(250^2 피트) 힘으로 나를 당겨 올렸다. 하늘로 튕겨져 올라갔다. 낙하산이 펴지자 순간 고요 속으로 빨려 든 것 같았다. 바람소리로 시끄러웠던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앞과 뒤 주위에 온통 알록달록한 낙하산이 보였다.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1분에 3m 의 속도로 하강하고 시속 5Km로 조용히 전진하고 있었다. 학생용 낙하산은 무척 크고 안전하여 천천히 낙하한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야"하고 소리를 질러 보았다. 온통 내 세상 같았다. 나는 무사히 그것도 정확하게 깃발 바로 옆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첫 점프는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곧 이어서 두 번째 점프가 이어졌다. 세 번째는 90도 돌기, 180도 돌기 등 계속 자세 연습이 이어졌고 이론교육이 계속됐다. 6번째 점프부터는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나는12번의 점프로 8단계를 마칠 수 있었다. 모든 Perris Valley SkyDiving School AFF학생은 졸업하기 위하여 RW인스트럭터와 함께 최소한 10번 이상의 RW jump(두 명 이상이 낙하하면서 원을 만들거나 여러 형태를 만드는 종목)를 하여야한다. 이 과정은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과 안전하게 스카이다이빙 점프를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 10번 이상의 RW 스카이다이빙 점프 역시 위험한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과 비행장, 비행기에서의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RW장비들은 교육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Perris Valley Square One이라는 장비 가게에서 빌려야한다. 하루 $65에 빌릴 수 있지만 개인 가본 장비들은 개인 옷과 같아서 빌려주지 않는다. 헬맷($45 ~$200), 고글($6 ~ $ 100), 슈트($200 ~ $250), 고도계($185)는 각자 구입하여야한다. 스카이다이빙의 가장 중요한 장비인 낙하산은 세 가지의 중요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주낙하산(Main Canopy) : 가장 중요한 장비로 보통 9-cell(낙하산의 부력을 일으키는 공기 주머니가 9개로 7-cell보다 머리 비행할 수 있다)을 사용한다. 가격은 $1.100 ~ $ 1.400이다. 예비낙하산( Reserve Canopy) : 주 낙하산에 이상이 있을 경우 비상용으로 사용한다. 보통 주 낙하산보다 약간 크기가 작은 것을 택한다. 가격은 $1.100 ~ 1.200 이다. 컨테이너(Container) : 주낙하산과 예비낙하산을 접어 넣을 수 있는 배낭으로 여러 가지 안전 장치를 설치할 수 있다. 가격은 $1.000 ~ $1.300이다. 이 외에도 중요한 장비로 사이프러스(Sypres)라 불리는 AAD(automatic Activation Device)가 있다. 이 AAD는 일정 고도에서 빠른 속도로 하강시 작동하게 되어 있는데 제품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1000피트 고도에서 초속 40 - 60피트(12 - 18m)이상의 속도로 낙하시 자동으로 작동되어 주 낙하산이나 예비낙하산을 펴 주는 장치이다. 이AAD의 가격은 $1.300 - $ 1.500이고 USPA(United States Parachute Association)규정에서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이장치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 AAD는 많은 학생들을 위험한 상황에서 구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RW훈련 역시AFF의 8단계처럼 여러 자세와 움직임을 교육받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리가 100Km이상으로 빨리 달리는 자동차에서 한 팔을 창문 밖으로 내밀어 보면 손바닥과 팔에 와 닿는 힘을 느낄 것이다. 170Km의 속도로 낙하할 때 온몸에 받는 공기 저항의 힘은 상당히 강해서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순식간에 엉뚱한 쪽으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RW 훈련은 RW 인스트렉터와 함께 점프하며 연습하는데 한 번 점프마다 $45이다. 자기 장비가 있을 경우 장비 렌트비용, 하루 $65를 절약할 수 있고 하루에 3 - 5번 점프할 수 있다. 보통 20회 이상의 RW점프를 하여야 USPA(United States Parachute Association)에서 요구하는 RW A 라이센스과정을 통과할 수 있다. 나는 21번의 RW점프로 RW A 라이센스 과정을 통과 할 수 있었다. 참고로 USPA에서 요구하는 A,B,C,D 라이센스의 체크 사항을 보자 USPA A License - Basic USPA A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점프 마스터가 될 수 있다. 자신의 낙하산을 접을 수 있고 기본적인 주변상황을 처리 할 수 있고, 물위로 착지 했을 때의 처치법 그리고 아래와 같은 능력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A, 완전한 20번 이상의 자유낙하 주에 최소한 40초이상의 자유낙하를 3번 이상하여야한다. 자유낙하 시간이 전부 5분 이상 되어야 한다. B, 비행기에서 점프를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또 낙하산 산개 시점을 스스로 선택하여 착륙 목표 지점으로부터 20m 이내에 5번이상 착륙해야 한다. C, 자유낙하 하는 동안 마주보고 흔들림 없이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여야 하고 몸을 평평하게 편 상태에서 좌, 우 양쪽으로 360도 회전하여야 한다. D, 독자적으로 안전한 고도에서 점프를 시작하고 또 적당한 고도에서 낙하산을 펼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하여 스스로 점프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E, 자기 메인 낙하산을 접을 수 있고 안전하게 장비를 체크한 수 있고 또 다른 다이버의 장비를 체크할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F, USPA 교관으로부터 물위로 착륙했을 때의 방법을 교육받은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 G, 주변의 일들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하는데 비행기 문에서 나가는 것을 만족하게 실행하는가? 하강 속도와 수평움직임 둘 다 변화를 주는가? 2- Way RW 점프를 최소 3번이상 참야 하여야 한다. 다른 스카이 다이버와 충돌하지 않게 수평으로 움직여 멀어지고 또 다른 점퍼들과 충돌하는 위험으로부터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고도를 체크하여 낙하산을 펴고, 다른 낙하산과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H, BOD, S&TA, I/E, USPA1 등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필기시험을 치러서 통과하여야 한다. 라이센스 발급 비는 40달러이다. USPA B License - Intermediate A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사람은 B라이센스를 취득을 위한 연습을 할 수 있다. 야간 스카이다이빙. RW다이빙, 기록 향상을 위한 다이빙에 참여할 수 있다. A, A라이센스를 갖고 있거나 A라이센스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 B, 완전한 50번의 낙하 중에 최소한 45초 이상의 자유낙하를 3번 이상하여야 한다. 자유낙하 시간이 전부 10분 이상이 되어야 한다. C, 점프 중 10번은 목표지점 중앙으로부터 10m 이내에 착륙해야 한다. D, 18초 이내에 8자 모양, 뒤로 제비돌기를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E, S/M, 9-2 과정과 모든 장비를 갖추고 흐르는 물에 착륙했을 때의 대처 방법을 증명해야 한다. F, BOD, S&TA, I/E, USPA1 등 일반 적인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라이센스 발급 비는 40달러이다. USPA C License - Advanced B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사람은 C라이센스를 취득을 위한 연습을 할 수 있다 C라이센스를 갖고 있으면 다른 스카이다이빙 점프 마스터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USPA의 경연 점프, 데몬스트레이션 점프에 참여할 수 있다 . 또 USPA 점프마스터 교육을 받을 수 있다. A, B라이센스를 갖고 있거나 B라이센스에 상응하는 능력이 요구한다. B. 완전한 100번의 낙하 중에 최소한 45초 이상의 컨트롤 자유낙하를 10번 이상하여야 한다. 최소한 콘트롤하는 자유낙하 시간이 전부 20분 이상이 되어야 한다. C 100번의 점프 중 20번은 착지지점 중앙으로부터 5m 이내로 착륙해야 한다. D. Random skydive 또는 4-Waydive에서 적어도 4점 이상 받아야 하고 15초 이내에 8자모양, 뒤로 제비돌기를 하여야 한다. E. BOD, S&TA, I/E, USPA1 등 일반 적인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라이센스 발급 비는 40달러이다. USPA D License -Master C라이센스를 갖고 있거나 그에 상응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D라이센스를 취득을 위한 연습을 할 수 있다. D라이센스를 갖고 있다면 다른 스카이다이빙 점프 마스터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USPA의 경연 점프, 데몬스트레이션 점프에 참여할 수 있다. USPA등급을 판정할 수 있고 조교를 선정하거나 안전에 관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다. A, C라이센스를 갖고 있거나 C라이센스에 상응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B. 완전한 200번의 자유낙하를 해야한다. 적어도 60초 이상의 컨트롤 자유낙하가 10번 이상하여야 한다. 최소한 콘트롤하는 자유낙하 시간이 60분 이상이 되어야 한다. C. 25번 정도는 착지지점 중앙으로부터 2m 이내로 착륙해야 한다. D. Random skydive 또는 4-Waydive에서 적어도 2점이상 받아야 하고 18초 이내에 뒤로 제비돌기, 앞으로 제비돌기, 좌로 돌기, 우로 돌기, 좌로 통돌기, 우로 통돌기를 하여야한다. E. 한번의 솔로 나이트 다이빙과 한번의 RW 라이트 다이빙이 각각 20초 이상하여야 하고 USPA 인스트렉터로부터 나이트 점프에 관한 교육받은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 F, BOD, S&TA, I/E, USPA1 등 일반 적인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라이센스 발급 비는 40달러이다. 모든 스포츠에 관련된 촬영이 마찬가지로 이겠지만 수중 촬영은 스킨스쿠버를 아주 능숙하게 하여야하고 스키를 따라가는 역동적인 장면을 찍고자 한다면 스키를 매우 잘 타야 하듯이 그 종목에 아주 능숙하지 않으면 촬영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보다 능숙한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하여 또 스카이다이빙 촬영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서는 사람마다 그 숙련도가 다르겠지만 100회에서 150회의 점프 경력이 있어야 스카이다이빙 촬영 연습을 시작 할 수 있다. 촬영장비는 보통스카이다이빙용 안전헬멧 위에 카메라를 고정하여 촬영하는데 35mm 스틸 카메라와 8mm 비디오 카메라를 장착하여 사용한다. 35mm 스틸카메라는 피사체와 함께 낙하하면서 촬영하게 되는데 리모트 셔터 케이블을 손에 연결하거나 에어셔터를 이용하여 입으로 불어서 촬영하게된다. 화인더는 헬멧 오른쪽 눈앞에 오도록 장착하여 구도를 잡게 되어있다. 이 화인더를 링 싸이트(RIng Sight)라 부르는데 $130이나 하는 고가이다., 색유리에 무지갯빛 나는 코팅을 원이나 십자모양이 생기게 입혀 그 중심에 피사체를 놓게 하여 앵글을 잡도록 한 구조를 갖고 있다. 또 카메라맨이 입고 있는 카메라 슈트는 조금 특수하게 제작되어 잇는데 앙쪽 팔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아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다 안정되게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촬영 테크닉은 현재 카메라맨이 일하고 있다면 스카이다이빙 연습만 하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스카이다이빙 촬영의 응용은 스카이다이버가 각 프로그램의 깃발을 들고 자유낙하 하게 하거나 낙하산에 깃발을 달게 하여 프로그램의 각종 타이들을 제작할 수가 있다. 또 스카이다이빙이나 낙하산을 이용한 내용의 드라마나 각종 교양프로그램 및 예능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고 또 다양한 장르에서 촬영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스카이다이빙이 그다지 비싼 것이 아니어서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조금 큰 도시의 비행장에는 어느 곳에서나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가 있다. 스카이다이버는 16세에서 80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이루고 있고 스카이다이버들 중에는 여성들도 많은데 12%는 여성이다. 다리가 모두 없거나 한쪽 눈이 실명했거나 심지어 장님인 스카이 다이버도 있다. Perris Valley SkyDiving School에서도 여러 명의 장애인 스카이다이버를 볼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시청자의 눈은 보다 새롭고 다양한 화면을 요구하고 있다. 조금만 재미없어도 바로 싫증을 내고 채널이 돌아간다. 외국영화에서 보는 많은 멋있는 장면들을 우리 시청자들도 원하고 있다 . 우리도 이제는 항공 촬영분야에 눈을 돌릴 때가 된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스카이다이빙촬영은 새로운 스포츠 분양의 촬영이므로 진취적인 기상을 갖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많은 젊은 카메라맨들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다.
    2003-02-24
  • 충주예성여고 여섯시간의 인질극
    tvcamera@unitel.co.kr 난 오늘 인간 터미네이터 그들을 보았다. 검은색 방탄조끼에 소형무전기, 한 손엔 가스총, 다른 손엔 방망이. 세상 어떤 범죄와의 싸움에서 이길것 같은 강렬한 눈빛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런 터미테이터 들이 충주예성여고 인질 사건에 투입된 것이다. 3월17일 토요일 화창한 날씨였다. 퇴근 후에 여자친구와의 데이트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오전 10시쯤 전화가 왔다. 예성여고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 쉽지가 않은 취재라 생각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과의 싸움이 시작됐고 조금이라도 정확하고 좋은 그림을 촬영하기 위해 기자들 또한 분주한 모습이었다. 나 또한 인질 사건은 처음 경험이라 분주하게 움직일 뿐 제대로 된 그림을 잡을 수가 없었다. 긴장이 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멍청이가 된 것이다. KBS가 움직이면 같이 그리로, MBC가 가면 또 그리로. 냉철하고 판단력 빠르다는 나로서도 그 이상한 분위기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방송 3사 TV기자들은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나 또한 어차피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는 물 건너간 것이고 내가 이기나 인질범 네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뚝심밖엔 안 생겼다. 경찰관, 부모, 친지 등 많은 사람들에 오랜 설득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네 명의 여학생과 한 명의 여교사를 인질로 자신의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500만원을 사기 당했다는 것이고 그 사기범을 당장 잡아서 자신 앞에 보여 달라는 황당한 조건이었다.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과정이야 어쨌든 500만원 때문에 이런 짓을 한 27세의 젊은 청년을 몹시 미워했고 빨리 상황을 종료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교실밖엔 KBS, MBC 중계차가 출동하여 만약에 있을 상황에 대비하여 생방송 준비에 한참이었다. 이렇게 까지 해도 되는 건가. 뭐 그리 큰 사건이라고 기자인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교실 밖 상황들은 나를 더욱 당황하게 했다. 여섯시간 오랜 설득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거절하는 인질범을 그대로 볼 수 없다는 현장 경찰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네 명의 인간 터미네이터(경찰특공대) 그들이 투입된 것이다. 사전에 꼼꼼한 계획과 치밀한 작전이 기습작전 5분만에 인질극을 종료하게 했다. 범인은 즉시 경찰서로 이송됐고 공포에 떨었던 선생님과 학생들은 아무사고 없이 부모의 품에 안겨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경찰 조사결과 나는 인질극을 벌인 범인의 이면을 알 수 있었다. 평상시 효자로서 순박하게 생활하는 시골 청년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분명 그가 지은 죄는 나쁜 것이다. 하지만 순박한 청년이 왜 그런 짓을 해야 했느냐에 대해선 우리는 어느 누구도 그의 이면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열심히 생활하는 그를 사기 쳐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을 세상과 우리들은 욕할 뿐이다. 인명 피해 없이 여섯 시간 만에 모든 일은 끝났다. 허무한 생각도 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작년에 구제역에 이어서 올해는 인질극으로 충주 지역은 전국적인 관심을 보였다. TV카메라 기자로서 일년에 한번씩 굵직한 뉴스를 경험하는 것도 복 받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는 아직도 멀었는데 내년엔 또 어떤 일이 생길까. 편집 끝내고 뉴스 잘 나가고 21시가 넘었다. 골난 여자친구에게 전화나 해야겠다.
    2003-02-24
  • 몽골고원에서 폴란드의 대평원까지
    몽골고원에서 폴란드의 대평원까지 - <칭기스칸 원정로를 가다> 동행 취재기 박영률(조연출 겸 동행 취재 작가) 분열에서 통합으로, 역사의 변방에서 세계사의 중심으로! 13세기 초 몽골고원에서 몸을 일으킨 가공할 회오리바람이 중앙아시아와 중동 동유럽에 이르는 세계의 대부분을 휩쓸었다. 회오리는 단순한 파괴에 그치지않고 동서를 하나로 이은 새로운 세계사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이 회오리의 중심에는 칭기스칸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칭기스칸! 그는 어떻게 골육상쟁을 일삼으며 강대국들에 이용만 당하던 부족들을 강력한 국가로 통합할 수 있었을까? 수렵과 목축에 종사하던 변방의 오랑캐들이 순식간에 세계를 휩쓸고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계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이는 황량한 몽골 고원과 천산산맥 너머의 사막과 오아시스로 이루어진 중앙아시아 5개국, 차도르의 나라 이란, 카스피해와 석유로 이루어진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폴란드의 대평원에 이르는 30,000Km 100여일간에 걸친 대 장정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함이었다. 1997년 4월 25일 16시 30분 우리가 탄 비행기는 화성표면처럼 황량한 초봄의 몽골고원에 내려앉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오렌지 빛 구릉아래 툴강은 늙은 뱀처럼 길게 허리를 틀고 있고, 그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낡은 아파트들, 성한 유리창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차들과 우리나라에서는 벌써 수십년 전에 사라진 전차, 거지소년들..., 울란바토르는 60년대의 한국을 연상시켰다. 탐사대는 MBC촬영팀 4명과 동아일보 2명, 대우 자동차 정비사 1명, 외부 학술 요원 1명 등 총 8명으로 앞으로의 험난한 일정을 함께할 다목적군이었다.예상했던 대로(?) 모든 일이 지연되었다. 우선 세관에서 차를 찾는 데만 여러 날이 소요되었다. 식량과 탐사 장비 점검, 차량 정비 그리고 몽골측 카운터 파트와 의견 조율 등등..., 5월 2일 드디어 출발, 혀찬사에 제공한 누비라 승용차 2대, 탐사팀에서 구입한 세렉스 트럭 1대와 지원유조차 1대(우리가 가는 구간에는 주유소가 없다)를 끌고 러시아 국경을 향해 대장정은 시작되었다. 출발 전 우리의 차량을 본 몽공현지인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승용차로는 그 길을 절대 못간다는 것이다. 얼마 못가서 필시 되돌아 올 거라는 게 그들의 애기였다. 출발한 지 불과 몇 시간만에 우리는 그들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뢰밭 같은 돌밭, 끝없는 모래 수렁, 가파른 바위산들을 넘어 걸레가 된 타이어를 교체하고 구덩이에 빠진차를 밀며 우리는 전진했다. 마치 무슨 군사작전을 치르는 것처럼, 흡드로 가는 길에 만난 낙타대상은 자기는 태어나서 승용차를 처음 봤다며 자기 낙타와 우리차를 바꾸자고 조르기도 했다. 몽골의 대평원. 그것은 자유 그 자체였다. 보이는 건 구름아래 끝없는 벌판, 그리고 바람소리 바람소리뿐! 몽공의 해는 늦게 진다. 장거리 이동 후 촬영 포인트에 짐을 푼 뒤, 촬영을 마치고 해질 무렵에 돌아오면 어느새 시계바늘은 밤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촛불을 켜고 발전기를 돌려 배터리를 충전시켜놓고, 물 한 컵으로 몽골식 세우와 샤워를 마치고 나면 자정을 훨씬 넘겨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러한 우리의 엄청난 노동강도에 현지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결국 희생자들은 우리와 함께 일했던 현지인 가이드 혹은 운전사들이었다. 몽골뿐만 아니라 몽골에서 폴란드까지 전 구간에 걸쳐 우리와 함께 일했던 가이드들은 우리와 헤어진 후 과로로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촬영은 취재팀이 스스로 정한 몇가지 원칙에 따라 진행되었다. 첫째는 양보다 질을 우선한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흥분해서 보이는 걸 모두 카메라에 담으려 하다면 초반에 거꾸러질 게 뻔하기 때무이었다. 대신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 맞춰 원하는 그림을 담으려 했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 지켜졌다. 두번째는 휴식과 일을 구분한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장기 촬영을 염두에 둔 배려이기는 했으나 이 원칙은 별로 잘 지켜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상황은 항상 돌발적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꼭 필요한데 타이밍을 놓쳐 어렵게 촬영을 마친 경우도 있었다. 바로 독수리 사냥씬이었다. 사막과 대초원 북구
    2003-02-24
  • 잊혀져 가는 것들...
    잊혀져 가는 것들... 장달웅/EBS 촬영감독 나른한 토요일 오후, 주말이면 늘 텅비어 있는 편집실에 앉아 프롤로그 몇 컷트만 붙히다, 더 이상 머릴 짜 내어봐도 진전이 없어, 잠시 휴식을 취해보기로 한다. 그 사이 비가 왔나보다. 때늦은 비는 애꿎은 꽃잎만 떨어뜨리곤 쬐끔 오다 말았다. 카메라맨으로 교육방송에 입사하여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흘렀다. 누구나가 나름대로의 편차는 있겠지만, 카메라맨으로서 일련의 성장 과정이 다 있을 줄 안다. 때론 의욕적이고, 때론 나태해지고, 또 때론 자만심에 빠져보기도 하는… 요즘 난 비록 5분짜리지만 몇 편의 프로그램을 제작해보면서 마치 알에서 새롭게 깨어난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잊혀져가는 것들”이란 프로는 방송 목적 외에도, 자료수집에 대한 가치와, 젊은 카메라맨들이 대다수인 교육방송 특성상 프로그램 제작을 통한 카메라맨의 조속한 실력향상(?)을 도모하기 위함도 컸다. 따라서, 관심있고 적극적인 카메라맨들에게는 누구나가 다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개방되어있고, 처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모두들 무난히 돌아가면서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한 주에 한 편,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55분에 방송되며, 고정된 작가 한 명이 한 달에 4편을 담당하고 있다. 어차피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제작하는 관계로, 출장일수는 1박2일 내지, 2박3일 정도의 출장으로, 주로 “ENG스케줄”이 제일 한가한 주말시간대를 이용하여 만들고있다. 이를테면, 목, 금, 토 내지, 금, 토, 일 같은… 본인의 경우엔 작년부터 시작해, 10여편을 제작해오고 있는데, 회를 거듭할 수록 깨우치는 것도 많고, 그 만큼 자신감도 많이 생긴다. 처음 제작할 땐, 본인이 촬영했으면서도 편집이 잘 안 되어 고생깨나하면서 남들이 촬영한 테잎을 갖고 편집해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하는, 때늦은 각성도 해 보았고, 기본적인 커트 편집에서 이제는 의미론적인 샷구성이나, 스토리구성에 따른 커트 편집을 생각해, 아예 야외촬영에서부터 그렇게 시도하고 있다. 그만큼 보다 정교한 촬영술을 꾀할 수 있다 하겠다. 요즘은 현장음이 영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메세지 증폭같은) 중요성을 절감해 소재에 따라선 가능한 한 오디오도 동시녹음용 마이크를 이용해 제대로 수음해 오려고 노력한다. 오디오도 결국, 영상이 아니겠는가! 제작을 해보면서 어려운 점도 많이 겪는다. 아무리 좋은 소재가 있어도, 이제는 우리생활에서 거의 사라져, 제작하기 힘든 것도 있고, 방송국내에서 촬영이 본업이라, 사전답사는 상상하기가 어려워, 전화 연락만 하고, 현장에 가보면, 마음속에 그리고 간, 수려한 영상 이미지들은 무참히 깨져버리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다수의 사람이 출연하는 경우는 (이제는 옛날 같지 않아!) 출연료 문제로 촬영이 순조롭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일인 다기능의 한계를 느끼는 소재도 적지 않았다. 인물 연출이 많은 경우엔 촬영하면서 연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정교하게 제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전방위 방송인으로서 다양하게 경험해 보는 것이 결국엔 (방송은 협업이라는 측면을 생각해 볼 때) 순수 촬영인으로 돌아와서도 다른 스텝과의 의견소통이 이전보다는 훨씬 수월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 촬영하랴, 제작하랴, 조금은 피곤하기도 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단순기능인에서 보다 고급스런 촬영인으로 새로 태어나고 싶은 나의 여망에 지금이 아주 큰 기회가 되고 있다.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우리 들녘에도 파릇파릇 쑥이 돋아나겠지...한동안은 이놈의 쑥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할 테지.... 비단 다음 아이템이 “쑥개떡과 어머니”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2003-02-24
  • 브라질 촬영기
    브라질 촬영기 -신영토의 꿈을 좇아...- 이양한/iTV 경인방송 영상제작부 아시아의 끝자락에 매달린 일각의 돌출, 작지만 끝을 모르고 향하는 화살촉 모양으로 반도의 땅 한국은 자리잡고 있다. 그 지리적 생김새와도 같은 한국인의 기상. 극심한 역사의 아픔을 떨치고 꿈을 향해, 행복을 향해 새로운 곳, 더 넓은 땅으로 한국인들은 어김없이 뻗어갔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글로벌 21세기를 맞이하며 새로운 개방의 신영토 확장 경쟁이 치열하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 조그마한 반도의 땅덩어리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과거 그들의 행보를 통해 세계 속에 우리민족의 삶과 이억만리 타향살이의 현장을 담기 위하여 우리 촬영팀은 브라질, 쌍파울루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1999년 10월 22일, 프로그램 담당 백승창PD와 촬영을 맡았던 필자 자신… 단촐히 두 식구만이 멀고도 긴 여정의 동반자였다. 김포공항 출발에서부터 두 사람 힘으로는 버거운 장비와의 힘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22시간… 지구상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항공기가 가장 멀리 갈 수 있다는 곳. 그곳이 쌍파울루였다. 장시간의 비행 경험이 많았던 필자로써도 이번 비행만큼은 굉장히 지루하고 피곤하게 느껴졌다. 잠을 청해보지만 약간의 긴장 때문인지 애꿎은 몸만 뒤척인다. 어느덧 쌍파울루에 도착했다. 뒤늦은 오전이었다. 몸이 피곤할 때 느껴지는 금속성의 귀곡성이 멍한 뇌리를 강타했다. 우리를 처음 반겨 준 것은 사람 좋게 생긴 현지 한국인 코디의 환한 미소였다.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을 발견했을 때 처음 마주한 인디언의 기분 좋은 웃음, 그것과도 같았다. ‘그들은 붉은 빛을 띤 채로... 자연환경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이들과 나풀대는 검은 머리의 상냥하고 매력적인 젊은 여자였다… 비옥한 땅과 풍부한 강우 그리고 온화한 열대기후…’(포르투갈 연감) 1998년 4월 어름치의 산란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동강으로 출발했다. 물고일주일 내내 이상기후로 비가 내렸는데 우리 촬영팀이 오기 전날 저녁부터 비가 그쳐 이번 촬영팀은 행운이 따르는 것 같다며 사람 좋은 코디는 은연중에 스케쥴 강행을 내비쳤다. 벌써부터 정신력과의 한판이 시작된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의 다짐 -도착한 오늘만은 반드시 숙소에서 잠만 잘 것이라는- 은 뒤로한 채 한국산 승합차에 익숙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어도 봤지만 눈꺼풀은 이미 감겨 졌고 어느새 잠에 빠졌다. “다 왔어요”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 주섬주섬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쌍파울루 외곽의 드라이브 샷을 빼먹은 내 자신을 힐책하며 재 브라질 한국학교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들께 인사를 드렸다. 한국학교의 수업은 주말수업제로 이루어진다. 더군다나 지금은 방학중이었다. 하지만 우리 촬영팀을 위하여 학생들이 기꺼이 등교하여 주었고, 나 자신도 그들의 성의에 답하기라도 하듯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 웅장한 건물과 구조물 그리고 넓은 운동장. 역시 한국인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교육열에서도 뛰어났다. 브라질 땅에서도 다름이 없다. 2세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그 열정이 마치 못 배운 자신들의 한과도 같았고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오기 같기도 했다. 그 교육열은 브라질 현지의 원주민들에게도 자극이 되었고, 그곳의 원주민 자녀들도 한국인 학교에 입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국의 땅에서 근면 하나만으로 버텨온 한인들. 그 후예들은 건강했다. 교육받지 못한 이민족, 그들의 정착이 힘겨웠던 것만큼 한인학교는 더 각별한 의미로 기억된다. 다음 날 일찍 우리는 한인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고 있다는 의류업에 관한 촬영을 위해 쌍파울루 시내의 봉해찌로(Bom Reitro) 한인 상가 지역으로 향했다. 그 번화한 도심내의 상가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한인들은 그 명성에 걸맞게 상점 간판을 한국말과 포르투갈말로 장식해 놓았고, 그것들은 끝없이 도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브라질 내의 의류상가의 70% 이상을 한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말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나라 산업의 특정 분야에서 한 소수 이민계가 70% 이상을 장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농업정책 이민의 일환으로 이곳에 온 농업이민 1세대들이 어떻게 30여년 내에 이러한 엄청난 변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현지에 있던 이민 1세대, 지금은 아들에게 의류상가를 물려 준 한 할머니에게서 그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30여년 전 부산에서 배를 타고 한 달 남짓 항해를 한 끝에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은 싼토스항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최종 목적지인 싼타마리아 농장으로 옮겨졌고 대농의 부호를 꿈꾸며 희망에 부풀어 있던 그들은 현지에 도착해서 쓰디쓴 좌절을 맛봐야 했고 혹독한 시련을 치르게 된다. 온갖 풍토병과 말라리아 등으로 커다란 희생을 치르며 그들은 무조건 쌍파울루로 향했고, 걸어서 도착한 그곳 쌍파울루에서 당장 민생고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할 수 없이 한국에서 떠나올 때 가져왔던 옷가지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점차 원주민들의 호응이 높자 이젠 한국에서 옷을 사다가 값싸고 질 좋은 옷들을 내다 팔기 시작했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브라질 내의 의류산업을 감히 그 어느 이민족도 넘볼 수 없는 핵심산업으로 이루어 놓았던 것이다. 인터뷰 도중 흐르던 할머니의 눈물… 고향에서 고생하시던 평범한 우리네 할머니의 눈물과는 새삼 다른 느낌을 갖게 하였다. 우리는 곧 농업이민 1세대가 처음으로 브라질 땅을 밟았다는 싼토스항으로 이동하였다. 차창 밖으로 광활하고 드넓은 브라질 대륙이 스쳐지나 간다. 우리 나라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거대한 풍요로움이다. 이 풍요를 얻기 위함이었을까.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았던 이민족들… 풍요로움 뒤로 다시금 그들의 힘겹게 늙어버린 얼굴이 지나갔다. 붉고 거친 브라질의 이미지에 상반되게 오버랩 되는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지중해풍의 세련되고 고풍스러운 전경, 그 아름다운 싼토스항에서 농업이민 1세대의 입항 흔적을 찾기란 매우 어려웠다. 대신 우리는 싼토스항의 아름다운 시가지를 스케치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백PD의 얼굴이 사색되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까부터 웬 흑인이 우리 일행을 계속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현지 코디 조차도 놀란 기색이다. 옆에 있는 상가에 들어가 원주민들에게 그 수상한 사람에 대해 얘기를 늘어놓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더 이상은 쫓아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 브라질을 다녀간 촬영팀들의 분실사건이 잦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쫓기듯 장비를 챙기고 다시 쌍파울루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잠시의 두려움으로 인해 도망치듯 떠나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다 놀란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우리는 이후 며칠을 쌍파울루 근교의 원주민과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커피농장을 스케치하고, 농업이민 1세대 한국인이 아직도 경작한다는 커피농장을 찾아서 브라질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한다는 도시 론드리나(Rondrina)로 출발했다. 론드리나의 날씨는 작렬하는 태양 아래 습도까지 높아 숨이 막힐 듯 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마중까지 나오신 농업이민 1세대인 송흥채 할아버지를 따라 따뜻한 점심을 대접받은 후 차를 타고 커피농장으로 이동했다. 1시간 남짓을 달렸을까, 눈앞엔 나지막한 둔덕과 그 옆에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은 온통 커피나무 숲이었다. 늙은 노부부와 원주민 일꾼 몇 명만의 일손으로 꾸려나가 진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1차, 2차, 3차… 계속되는 이민… 그들이 접했던 것은 판잣집 수용소였고 농장이라 해도 그것은 불모지 폐허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러한 말과 비교한다면 지금은 이곳은 천국이었다. 잘 정돈된 가지런하고 즐비하게 들어선 커피나무숲, 비옥해 보이는 붉은 토양. 이러한 모든 것들을 지금은 주름이 깊게 패인 노부부가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농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스케치하고 있는데 오늘 여정의 호사다마. 갑자기 카메라 경고램프가 깜박이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일까. 나를 몹시 불안하게 한다. 카메라가 몹시 뜨거워져 있었다. DVW-700 디지털 카메라인데 기후에 무척 민감하다는 얘기가 머리에 스쳐지나 갔다. 농장의 뜨거운 직사광선과 복사열 때문인 듯 했다. 잠시 나와 카메라는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잠시 후 다시 촬영을 재개하였고 몇 번인가 경고표시가 반복되더니 잠잠해 졌다. 다행이었다. 만약 카메라에 계속적으로 이상이 생겨 촬영을 할 수 없었다면… 아찔하다. 생각하기도 싫다. 다시 싼타마리아의 커피농장으로 이동. 다시 론드리나로 또 다시 쌍파울루로. 이동도 잦고 촬영해야 할 분량도 많았다. 반복되는 빡빡한 일정이 서서히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매너리즘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촬영조수가 있었다면 정신적인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리라. 버거운 장비의 이동, 촬영을 위한 세팅 등의 소소한 일들이 부담이었고, 촬영 중에 간간이 장비가 모두 제자리에 있는지 분실에 대한 우려로 몇 번씩 뒤돌아보며 오직 나 자신만이 믿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스스로를 제어할 힘마저 잃게 한다. 담당 PD는 촬영현장에 도착하면 관계자들과 미팅하느라 미처 장비이동을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한 일들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데 너무 벅찬 것만은 사실이다. 해외촬영 중에는 특히 불협화음이 생길 소지가 많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입안에선 세치도 안 되는 혀가 독사처럼 날름거리며 치명적인 독을 내뿜으려 하고 원망의 눈빛으로 동행했던 이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 그들 역시 너무나 지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후 탓에 벅찬 작업량까지. 식은땀까지 흘리며 피곤해 하던 어젯밤 백PD의 안쓰러운 얼굴이 생각나 미안한 웃음을 진다. 잠시의 이기적인 생각을 자책하며 이내 뿜었던 독을 스스로 삼켜버리고 이 모든 일은 그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나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달랜다. 내 스스로 편협한 마음을 털어 내며 다시 그들에게 미소를 건넨다. 차라리 위안과 격려의 말로 따뜻하게 대해 주었더라면 하는 후회와 함께. 어언 3주간의 브라질 촬영 중에 필자는 이민 1세대의 한이 어린 뜨거운 눈물도 보았고, 성공한 이민 2세대의 넉넉함도 느낄 수 있었으며, 희망에 찬 이민 3세대의 또렷한 눈망울도 보았다. 이들의 삶이 여유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자신의 노력과 브라질 특유의 포용, 많은 인종간의 혼혈로 인한 차별 없는 인종적인 관용 덕이라 할 수 있다. 2억의 인구, 포르투갈계, 이탈리아계, 독일계, 아프리카계, 일본계등의 동양인들로 구성된 그들의 인종분포처럼 다양한 문화. 원주민의 민족성을 그대로 이은 듯 밝은 미소와 친절한 사람들. 많은 해외촬영을 해보았지만 브라질이라는 이 나라만큼 정감 넘치는 곳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브라질 촬영을 접고 쌍파울루로 다시 향한다. 다음 목적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촬영을 위해 출발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또 어떤 역사를 만나 그들을 이해하고 우리 민족의 어떤 모습을 만나게 될까. 브라질의 힘겨운 이민사는 비단 그곳만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이민 대상국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현재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극복을 했을까하는 궁금증이 피곤한 필자의 촬영을 흥미롭게 한 것도 사실이다. 어느 곳에 있건 어떤 상황에 처하건, 끝내 살아남고야 마는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 동포들이 보여주는 그 근면성은 늘 우리를 자랑스럽게 한다. 그러나 이들의 자랑스러운 삶을 아무리 강조해도 이들이 겪은 상처를 다 씻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화려한 농업이민을 꿈꾸며 고국을 떠나왔던 이들, 이들의 사라진 꿈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슬픔은 끝을 모른다... 행복. 그래!!! 가난한 이들의 행복은 카니발의 거대한 환상 사람들은 일년 내내 일을 한다. 이 짧은 순간의 환상을 위하여 그들은 환상 속에서 왕이 되고 해적이 되고 정원사가 되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수요일에 끝이 나게 된다. 아직도 필자의 집에서는 브라질 커피의 은은한 향이 풍긴다. 그 향기만큼 브라질 촬영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붉은 빛 광활한 대지, 커피나무 숲… 뮬라토 여인을 찬양하는 이 시에서 필자는 아이러닉하게도 그들의 고통과 아픔의 역사를 느낀다. 아름다운 영토와 인종적인 민주주의 뒤에는 그들의 힘겨운 삶이 숨쉬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정서와도 같은 그들 속에서 오늘도 우리 민족은 힘차게 내일을 준비한다. 환상뿐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우리의 기상을 자랑하듯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2003-02-24
  • 충주 예성여고 인질극
    충주지역은 작년에 구제역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끈 지역이기도 하다 올해는 지난 17일 예성여고의 인질사건으로 또 전국적인 이목을 끌었다 TV 카메라 기자를 하면서 1년에 힌번씩 국짓한 뉴스를 경험하는것도 복받은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17일은 토요일 화창한 날씨였다 빨리 일끝내고 여자친구와의 데이트가 있는 날이다 오전 10시쯤 전화가왔다 예성여고 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 도착하여 상황파악하고 주변 그림 촬영하고 우리들은 (방송3사)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경찰과 부모 친지 등 많은 사람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4명의 여학생과 1명의 여교사를 인질로 자신의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 500 백만원을 사기 당했다는 것이고 그를 꼭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현장의 모든사람들은 500백만원 때문에 이런짓은 한 27세의 젊은 청년을 몹씨 미워했고 빨리 상황을 종료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KBS.MBC는 중계차 까지 출동하여 생방송 준비에 한참이었다 저렇게 까지해도 되는건가 뭐 그리 큰사건이라고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우리에게는 너무 민감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더이상의 시간을 지체 할수없다는 경찰 지청장의 지시와 서장의 권유에 따라 경찰 특공대가 급파 현장 상황을 파악하는데 분주했고 인질극 6시간 만에 경찰특공대의 기습에 인질극은 종료하게 됐다 인질극을 벌인 범인은 경찰서로 급히 옴겨 졌고 공포에 떨었던 선생님과 학생들은 부모의 품에 안겨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500백 만원 때문에 이같은 일은저지른 청년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었으면 한다 사실 인질극 취재는 상당히 드문일이고 있어서는 안될일이다 다행이 다친 사람없이 잘끝났지만 현장 취재를 경험한 우리 TV 카메라 기자의 입장은 현장 상황이 아닌 그 이면도 심도 있게 집어보는 것 또한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2003-02-24
  • 롯데호텔 노조원 폭력진압
    한국기자상 취재기-방송영상부문 YTN, 경찰, 롯데호텔 노조원 폭력진압 공권력 남용 고발 통해 인권문제 제기 한원상 YTN 영상취재부 기자 지난해 6월 29일 새벽 4시경 경찰은 3천여명의 공권력을 투입해 20일동안 파업을 벌여온 롯데호텔 노조원 1천여명을 폭력으로 진압하여 강제연행 했다. 경찰은 이날 먼저 롯데호텔2층 크리스털볼룸에 있는 노조원들을 강제로 연행한 뒤 36, 37층 연회장에서 노조원들과 격렬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노조원들에게 진압봉을 휘두르거나 발길질을 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여 노조원들이 크게 부상당하는 현장을 단독취재 했다. 그날 경찰이 롯데호텔 노조원들을 강제연행 하는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경찰보다 먼저 롯데호텔에 도착했다. 경찰은 지하에 있는 CCTV실을 먼저 점거한후, 2층으로 올라갔다. 뿌연 연기 속에 누군가가 뒤에서 ‘카메라! 카메라!’라는 소리를 외쳤다. 뒤로 돌아보니 윤춘호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경찰에게 카메라를 빼앗긴 채 목이 졸려 있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후, 롯데호텔 노조원들이 손을 뒤로한 채 경찰에 연행되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롯데호텔 건물에는 굉음소리가 울렸고, 거기에 놀란 외국인 투숙객들이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자 조철 민주관광연맹 노조위원장이 36, 37층을 향하여 ‘임신한 여성노조원도 있으니 제발 폭력으로 진압하지 말라고 울먹이며 소리를 외쳤다. 그 목소리를 들은 후 36, 37층까지 걸어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일이 크게 벌어 질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여기에서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릎쓰고 36, 37층으로 걸어올라 갔다. 바리케이트를 설치한 가운데 경찰과 노조원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고, 가끔 롯데호텔 여성노조원들이 힘내라는 구호가 바리케이트 밖으로 들리기도 했다. 1시간후, 바리케이트가 뚫리자 경찰은 노조원들을 연행하기 위해서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의 저지로 늦게 들어갔지만, 여성 노조원들은 나를 보자마자 살려 달라는 듯 고함을 질렀다. 당시 시위 현장에는 경찰이 노조원들을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욕설을 퍼붓고 곤봉으로 내리치고 군화발로 짓밟았다. 카메라 앵글에 비친 그들의 얼굴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경찰은 취재하는 것을 목격하고 취재를 방해하려고 해 한때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내언론과 외신들은 롯데호텔사태에대해일제히보도했다. 당시 취재를 마치고 일본에 갔을 때 특히 일본언론사들은 경찰이 롯데호텔노조원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강제 해산시킨 현장은 일본에서 지난 60∼70년대 대학 점거 투쟁 현장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반면 국내 언론은 경찰의 충격적인 진압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사태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나 대안 제시에서는 여전히 단발적이고 일회적인 보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각계 시민단체의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다. 폭력적인 경찰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한다면서 노조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연행한 사실에 대해 국내외 노동계, 시민단체, 네티즌들은 롯데제품 불매운동과 성희롱 문제까지 확산 시켜나갔다. 또 국회에서도 진상조사단을 구성, 롯데호텔 폭력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를 했다. 이로 인해 롯데측은 8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함으로서 일관성 없는 법집행과 형평성 잃은 공권력투입이 노사간의 엄청난 대란을 몰고왔다. 롯데호텔 노조측은 경찰을 상대로 현장지휘관 등을 살인미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독직폭행등의 혐의로 고소하여, 금년 1월 17일 서울지방법원에 당시 취재한 영상이 과잉진압에 대한 사실을 입증 할 수 있는 증거자료로 채택되었고 유일하게 현장 상황을 잘 안다고 해서 증인으로 출석했다. 기자가 법정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었고, 유일하게 현장상황을 잘 안다고 해서 증인으로 출석했다. 기자가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다는 것은 취재원칙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고민을 해 왔다. 그러나 현장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인권문제였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법정에 출석하게 되었다. 그 덕분일까. 노사와 경찰이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적이고 인권을 보호하는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주택은행과 국민은행 합병반대 파업과정에서 경찰과 노조 양측이 무력충돌없이 일단락 시킨 것은 롯데호텔 과잉진압때보다 한층 성숙된 모습이었다. 앞으로 노사는 서로 깊은 상호 이해를 실현하고 신뢰를 회복하여 주인의식을 가진 회사를 만들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고, 경찰은 인권을 보호하는 경찰이 되기를 바란다.
    2003-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