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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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찾던 ‘저항의 언어’
    <2023 광주민주포럼을 다녀와서…>우리가 찾던 ‘저항의 언어’ <채종윤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2차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실존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측과 구조 속에 인간됨을 이해하려는 측, 과연 ’인간은 주제적일 수 있는가‘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서양 사상가들 사이에 있었다. 결국 인간은 사회의 구조 속의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이후 구조주의 시대의 문을 열었다. 대표적인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비르트는 구조주의를 언어라는 측면으로 접근했는데, 패권을 지니지 못한 언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어법 사이에는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해 냈다. 이는 어법을 선택한 순간 자기가 선택한 어법이 강요한 ‘형태’로 말하게 됨을 일컫는다. 그에 따르면 ‘징후가 없는 언어 사용’이야말로 ‘패권을 쥔 어법’이며 그 어법은 그 사회의 ‘객관적인 언어 사용’으로 ‘신화화’된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의견이나 개인적인 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가치 중립적인 의미에서 사용하는 언어 사용이 그렇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처럼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어법이 포함한 ‘예단’과 ‘편견’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텍스트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수용자의 모습은 우리가 독립된 주체로서 텍스트를 바라볼 수 없는 데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보편성과 동시성을 가진‘영상언어’, 세상의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힘 이렇게 우리는 인간의 ‘주체 불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인간을 도구화했던 시절, 우리의 심장을 뛰게 했던 사르트르의 ‘주체적 인간’을 다시 소환하고 싶다. 역사의 흐름은 바꿀 수 있고 변혁 시킬수 있다고 믿었던 고민과 논제들이 필요했던 ‘횡포의 시대’가 아직 바뀌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그것은 언어나, 자본이나, 정치권력이나 젠더권력, 지식권력과 같은 현재의 담론에 예속된 우리가 스스로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라고 말 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용기 있는 ‘사유’를 전제한다. 모순적이지만, 그것은 언어에 갇힌 우리가 언어로 예속되어야만(구조적 세계관) 비로소 ‘탈예속’(주체적 세계관)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모든 가치중립적 언어를 허위적 언어로 규정하고 이를 다시 가치중립적 언어를 이용해 응대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환경의 변화에 따라 ‘영상언어’는 이미 보편적이고 동시적 언어가 되었다. 바르트가 말한 순수한 ‘에크리튀르’가 ‘영상언어’일 수 있다고 명증하는 일이 용기 있는 영상기자들에 의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가로막는 벽을 허무는 일에 ‘영상이라는 저항의 언어가 실금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영상을 찍으셔야 해요”, “(미하일 아르신스키)그게 내가 하는 일이에요” 뛰면서 주고 받은 그들의 언어가 우리가 찾던 바로 저항의 ‘영상언어’, 바로 ‘탈신화’의 언어이자 주체적 언어이다.
    2023-06-28
  • 해외 출장의 필수 관문 ‘까르네’ 제대로 알고 계신가요?
     해외 출장의 필수 관문 ‘까르네’ 제대로 알고 계신가요?  ▲ 까르네 클레임 사본. 아주 간단한 메일이지만 클레임 해소가 되지 않으면 상당한 금액의 세금을 납부해야만 한다.  연말연시면 으레 다양한 인사들이 오간다. 연락이 뜸했던 취재원의 안부 문자에서부터 취재를 위해 등록한 자동 메일까지 안 그래도 바쁜 연말에 카톡 하나, 메일 한 통이 얼마나 큰 대수인가? 12월 26일. 대한 상공회의소를 통해 중국 세관으로 받은 메일 한 통 역시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약 3개월간의 피말리는 소명 작업에 매달렸다.  중국 세관에서 보낸 메일은 아주 간단했다. 지난 2022년 1월 베이징 올림픽 취재를 위해 발급한 일시적 수출입 신고인 ‘까르네’가 중국으로부터의 재수출 확인이 되지 않아 그에 대한 소명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아주 무미건조한 몇 줄의 영어 문서 마지막 줄은 만약 소명 자료가 인정되지 않으면 그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재수출은 뭐고 베이징 올림픽이면 11개월 전 이야기인데 뜬금없이 이제야 뭘 소명하라는 건지? 한국의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해 전달되었기에 우선 상공회의소로 문의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요?’  내용은 이랬다. 방송 장비나 전시회 등의 목적으로 해외로 반출되는 고가의 물품에 대해서는 수출입세를 일시적으로 면제해 주는 국가 간의 협약이 있는데 이때 사용되는 서류가 ‘까르네(Admission Temporary Admission Carnet : 무관세 임시 통관증서)다. 보통의 방송장비들이 면세범위를 넘어가는 고가의 물품이기 때문에 해외출장을 위해서는 까르네 신고절차가 필수적이다. 까르네 신고는 한국에서 출국할 때, 해외 특정 국가에 입국할 때, 다시 해외국가에서 출국할 때, 한국으로 입국할 때 총 4번의 확인 도장을 받아야 완전히 절차가 종료된다. 간혹 해당 국가의 사정에 의해 그냥 통과하게 되면 신고를 마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문제는 필자처럼 해당 국가에 입국할 때 신고했는데 출국할 때는 확인을 안 받는 경우다. 이럴 경우 고가의 장비가 해당 국가 내에서 세금 없이 재판매되었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판단해서 적절한 소명이 되지 않으면 신고가액의 20%에 가산세 10%까지 더해진 금액을 세금으로 부과시킨다. 필자의 경우 약 8천만 원이 보험가액이니 30%인 2천4백만 원이 세금으로 부과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2천 4백만 원이라니? 아니 도장 하나 안 받아왔다고 설마 2천4백만 원을 내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2021년에도 모 방송사에서 유사한 상황으로 세금을 납부한 적이 있다고 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해외 유사 사례는 물론이고 까르네 협약의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하는 등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찾아 나섰다. 비공식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마저 고려했다. 그러다 결국은 까르네 국제 협약에 나와 있는 8조 2항의 한 줄에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했다. 까르네 협약에 따르면 기한 내 재수출을 증빙할 수 없는 경우 해당 물품이 제3국에 있음을 증빙할 수 있는 다른 자료가 있으면 된다고 되어 있었다. 세관을 통한 공식 서류 발급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세관은 당시 물품을 확인받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공식적인 서류 발급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른 증빙자료가 필요했다. 결국 해당 장비를 회사로부터 수령했고 올림픽이 끝난 후 모든 장비를 회사인 MBC로 반납했음을 증빙하는 서류를 사내 절차를 통해 만들었고 이를 다시 중문으로 번역해 증빙자료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사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찾고 한 뒤라 이제 더 이상 다른 뭔가를 할 수 있는 기력도 없었다. 세금이 부과되면 회사에 보고하고 징계받거나 구상권을 청구해 비용을 개인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구정을 코앞에 두고 출입국 증명서 등의 추가 증빙자료를 함께 대한 상공회의소를 통해 중국 세관으로 보냈다. 그리곤 약 2달 뒤인 3월 중순에 대한 상공회의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축하드립니다. 중국 세관에서 인정을 해줬네요. 까르네 클레임이 해소되었습니다.”  까르네 클레임이 해소되었음을 알리는 것도 역시 단 한 통의 메일이었다. 두 통의 메일에 정말 3개월 동안 천국과 지옥을 몇 차례나 오갔던가? 다행히 이번은 잘 마무리가 되었지만, 클레임 해소를 위한 과정에서 다른 출장의 까르네 서류들 역시 완전히 종료되지 않은 것들투성이었다. 타사의 경우도 비슷해 보였다.   까르네를 발급받고 수출입 신고를 할 때 꼭 알아야 유의 사항이 있다. 대부분의 까르네 클레임은 1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 혹은 그 이후에 제기된다. 이러한 클레임을 예방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재수출기한을 1년짜리로 발급받기를 추천한다. 필자의 경우에도 재수출기한이 6개월이 아닌 1년이었으면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기한이 길어지면 보험료가 올라가는데 모든 까르네 절차를 완벽히 수행한 서류가 있으면 출장 복귀 후 보증보험료 환급 신청을 할 수가 있다. 아마 대부분의 방송사들이 보험료를 환급받는 절차까지는 진행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또 4번의 까르네 신고절차 중 4번 모두를 안 하는 건 아예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 번이라도 신고 절차를 행한 경우에는 한국으로 귀국 즉시 우리 세관과 상의해서 해당 사안에 대한 조치를 완료해야만 추후 까르네 클레임을 피할 수 있다.   주변의 동료들이 대부분 까르네를 출입국 과정에서만 필요한 증빙 자료로만 인지하고 있고 나 역시 그 정도 수준에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까르네는 출입국 과정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담담히 꺼낼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피가 말라가는 듯했다. 해외 출장이 잦아지고 있는 만큼 현장에서 똑 같은 실수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한 마음으로 부끄러운 경험담을 공유한다. 현기택 / MBC
    2023-06-28
  • 여름 휴가에 가서 세네카를 만나자
    [책 추천]  여름 휴가에 가서 세네카를 만나자   세네카는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인, 문인이다. 한 백과에 따르면 그는 대표적인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 중 한명으로, 로마제국 최초의 공인된 폭군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3대 황제 칼리굴라 시대부터 5대 황제 네로 시대까지 벌인 여러 악행들과 별개로, 남긴 여러 작품들이 라틴어 원전으로 사용될 정도로 상당히 수준 높다는 평을 받는다. 세네카의 라틴어 작품들은 키케로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저작과 함께 로마 시대 고전 라틴어의 표준으로 여겨진다. 동양에 《논어》가 고전의 표준이라면 세네카의 책은 서양의 고전으로 여겨질 정도다.  내가 소개할 책은 세네카의 「인생론」이다. 책의 부피가 아주 작고 챕터가 짧으며 문장이 길지 않아 우선 읽기 수월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아주 심오해 깊이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한 문장을 읽고 나서 책을 덮고 푸른 하늘을 보며 음미해 본다면 그 문장이 주는 울림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책에 있는 몇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대로 죽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뭐 그리 힘든가? 제대로 죽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살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 사는 문제에 큰 가치를 두기보다는 생사를 덧없는 것이라 여겨야 한다.’ -156p  ‘고귀한 철학자들은 영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줄 것이며, 아무도 끌어내릴 수 없는 자리에 오르게 해 줄 것이다. 이는 유일한 존재인 우리가 더욱 오래 살 수 있고 불멸의 길을 향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110P  ‘아무리 인생이 짧다고 해도 충분히 즐기고 남을 정도로 길다.’ -91p  ‘미래에 대한 기대로 사는 것은 현재를 사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며 내일에 기대어 오늘 하루를 낭비하는 것과 같다.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75p  여름휴가를 가서 세네카의 「인생론」을 읽으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생의 플랜을 구성해 본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복잡한 인생사에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 없이, 플랜 없이 가다 보면 길을 잃기 마련이다. 지친 일상에 포위되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 어느덧 몸은 늙고 후회뿐인 나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고 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이른 때이다.  오롯이 내 자신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 나가보면 어떨까? 세네카의 「인생론」은 그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책이 분명하다. 김정은 / KBS
    2023-06-28
  • 대통령실이 빼든 KBS 수신료 분리 징수…“방송 장악’노골화” 반발
    대통령실이 빼든 KBS 수신료 분리 징수…“방송 장악’노골화” 반발헌재, KBS수신료는 시청여부와 관계 없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 ▲지난 4월 10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는 KBS 수신료 분리징수와 관련해 대통령실이 주도한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 국민제안’ 투표결과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소속 방송사 노조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제공 :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통령실이 ‘국민제안’이라는 이름으로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카드를 내놓은 데 이어 여당인 국민의힘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과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정부여당의 이같은 움직임은 방송통신위원회, KBS, MBC에 대한 검찰 수사, 세무조사, 감사 등과 맞물려 공영 방송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노골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9일 홈페이지 ‘국민제안’ 코너에 “최근 전기요금 항목에 의무적으로 수신료를 납부하는 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통령실 국민제안을 통해 제기됐다.”며 “수신료 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들려달라.”는 글을 게시했다. 대통령실은 한 달 동안 공개 토론에 부친 결과 96.5%(4월 10일 기준 찬성 5만6226건, 반대 2025건)으로 마감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겨레가 이 시스템이 “동일인 중복 투표(어뷰징)가 가능하다”고 보도하면서 투표 결과에 대한 신뢰도와 조작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뒤따랐다. 대통령실의 국민제안에 대해 KBS는  △수신료가 방송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입장이고 △분리 징수를 하더라도 수신료 납부 의무는 유지된다는 점 △프랑스의 경우 주민세 폐지로 인해 함께 부과되던 수신료가 폐지되는 대신, 전체 수신료와 동일한 재원을 정부 예산으로 조달하기로 한 점 등이 누락돼 있어 “참여자들에게 오해와 혼돈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KBS의 한 관계자는 “수신료 분리 징수는 때마다 나왔던 이슈지만 과거에는 KBS의 공정성이나 공영언론으로서의 역할에 불만을 가진 일반 시민이 제기했다면, 이번에는 대통령실이라는 위로부터의 논의라는 점에서 예전과는 사례가 다르다.”라며 “94년 한전이 통합 징수를 한 이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수신료는 단순 시청료가 아니라는 점과 통합 징수의 효율성에 대해 명시했는데,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이 나선다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MBC에 대한 감사, YTN 민영화, TBS 지원 폐지 등의 맥락 속에서 KBS의 수신료 분리 징수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며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KBS를 길들이기 위한 저의가 깔려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수신료 분리징수 시, KBS-1TV 광고 가능성 제기, 전체 방송광고시장 경쟁 심화  광고업계에서는 수신료 분리 징수가 방송 광고 시장에 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수신료 분리 징수가 현실화하면 징수율 하락으로 그동안 수신료로 운영해 온 KBS-1TV가 재원 마련을 위해 광고 시장에 뛰어들 수도 있고, 이 경우 방송 광고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방송 광고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10년 동안 전체 광고시장에서 지상파방송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23%에서 8.8%대로 급락했다.”며 “KBS-1TV가 광고 매체로 전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지만, 만에 하나 시장에 나오게 된다면 새로운 지상파 방송사가 하나 생기는 것과 같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끼리는 물론 종편, 케이블 등 전체 방송 광고 시장의 경쟁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업계에서는 KBS가 광고 경쟁력이 높은 프로그램을 광고가 없는 KBS-1TV에 편성하는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며 “하지만 그런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수신료로 운영하는 KBS의 역할이고, 시장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공영방송이 존재하는 것이 시청자에게도 훨씬 이익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책적 고민과 공론화 절차 없는 수신료 분리징수는 공영방송 장악시도 순천향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심미선 교수는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한 논의는 분리 징수에 따른 공영방송의 부족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우선 고민해야 하며, 공영방송의 수신료 징수 방식을 바꾸는 문제 역시 정책적 고민과 합당한 공론화 절차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국민 의견과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TV수신료 징수 방식을 개선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에 전달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국언론노조는 “미디어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공영방송의 재원 구조만큼은 정치적 이해에 휘말려서는 안되며, 합당한 정책적 고민과 공론화 절차 없이 추진될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면서 정부와 여당을 향해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접으라.”고 촉구했다. 한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을 두고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며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의결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의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에 대해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과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국민의힘은 19일 단독으로 법안소위를 열어 법안을 논의하고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국민의힘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는 27일 본회의에 방송3법 개정안이 상정되지 않도록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가처분 결정을 촉구한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사위와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의힘 법사위가 직무 유기, 책임회피, 늑장 심사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방해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단체들도 성명을 내어 “국민의힘이 방송법 개정안을 헌법재판소로 끌고 간 목적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본회의 통과를 막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른 부담을 회피하고자 하는 정략”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명분도, 현실성도 없는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매달릴 시간에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대안을 제출하라.”며 “합리적 대안도 없으면서 어떻게든 법 개정을 막아 공영방송을 집권의 전리품처럼 장악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겠다는 반민주적 행태를 계속한다면 이미 떠나고 있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3-04-26
  • [인터뷰] 최병한 부산MBC 사장…“이임식 때 박수 받는 선배 되겠다”
    [인터뷰] 최병한 부산MBC 사장…“이임식 때 박수 받는 선배 되겠다”부산MBC 최초 영상기자 사장 취임…“‘찾아가는 서비스’,자회사 설립 등으로 흑자 경영의 기초 만들 것” ▲지난 3월 29일 부산MBC 사옥 야외광장에서 진행된 최병한 신임 사장 취임식 장면. 부산문화방송(부산MBC)은 지난 3월 24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최병한 부국장을 선임했다. 1996년 부산MBC 보도국 영상취재부 기자로 입사한 최 신임 사장은 부산MBC가 개국한 1959년 이래 '최초의 영상기자 출신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안게 됐다. 협회는 4월 18일 최 사장과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임기 3년의 구상을 들었다.  - 안형준 MBC 사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지역사 첫 사장인데, 취재기자 중심으로 임명되어 오던 관행을 깨고 첫 영상기자 출신 사장이 됐다. “부산MBC에서는 그동안 취재기자나 경영, 서울 본사출신들이 사장이 되어왔고, 이번 선거에 후보들도 13명이나 나와 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남극마라톤대회를 주제로 한 다큐를 기획부터 촬영, 제작, 펀딩까지 혼자 진행했던 점 등 뉴스에 안주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기획을 하고 전체 숲을 볼 수 있는 과정을 피력했다. 나의 사장 선임은 영상기자가 가진 열정과 자격을 높이 평가받은 결과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알아준 이 기회를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최 사장은 지난 2009년 시각장애인 송경태 씨의 남극마라톤대회 도전기를 다룬 <빛을 향해 달리다>를 제작해 23회 한국영상기자상 다큐멘터리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부산MBC 사장으로 취임한 지 3주가 되어 간다. 조직 개편을 벌써 단행했던데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해 달라. “‘사장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구상이 있어 빠르게 조직 개편을 했다. 우선 영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본부장 체제로 바꿨고, 영상미술센터를 영상스포츠국으로 확대했다. 또, 기자와 PD간 협업과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시사제작센터도 만들었다. 방송본부장 아래 PD와 카메라감독 등으로 TF팀을 만들 OTT(Over The Top) 서비스도 강화할 계획이다.”- 직종 간의 칸막이를 낮추기 위해 사내 전직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제도인가. “남극에 취재를 갔다가 무릎 연골 수술을 받고 영상기자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 1년 반 정도 스포츠PD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회사에선 내가 스포츠PD를 지원한 것부터 난색을 표했는데, 이 분야가 취재기자나 PD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내 전직제도는 능력 있고, 조직에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직종간 칸막이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사장 임기 3년 동안 직원들에게 다양한 업무 기회를 주려고 한다.”- 보도국과 관련해선 어떤 구상이 있는가.  “우선 어떤 뉴스가 만들어지는지 보고받지 않고, 회사가 대응해야 할 큰 이슈가 있을 때만 정보 차원으로 알려달라고 했다. 대신 예민한 주제가 있을 때 편집회의를 공개해 민실위 간사나 기자협회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해당 기자가 발제를 하고 토론하면 좋겠다. 편집회의는 회의록을 만들어 외부에 취재나간 기자들도 열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보도국장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부산MBC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역 언론사들이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부산 MBC의 적자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를 타개해 나갈 방안은 무엇인가. “매출이 다른 방송사에 비해 떨어지고, 영업 적자는 해마다 50억 원 정도로 고착화되어 있다. 나는 앞으로 매출 신장을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할 것이다. 우리와 거래가 중단된 기업을 먼저 찾아가고, 부산에서 열리는 대형 행사도 적극 유치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뉴스는 뉴스대로 공영방송의 길을 갈 것이고, 방송사 사장으로서 흑자 경영의 기초를 만들 수 있도록 직접 영업에 나설 것이다.  자회사를 만드는 것도 고민 중이다. 부산MBC는 중견기업으로 분류되어 지방자치단체 행사나 기업 홍보 등에 중소기업 입찰 제한에 걸려 들어갈 수가 없다. 부산 지역에서는 다른 방송사가 자회사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데, 올 연말까지 우리도 자회사를 만들어 영업 손해를 최소화할 계획이다.”- 지금 부산MBC의 이슈는 아무래도 다음달로 예정된 사옥 이전일 것 같다. “(새 사옥 건설 예정인) 땅이 부산 엑스포 부지 인근에 있어 주최 측에서 우리 땅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올 11월에 엑스포 개최지 발표에 맞춰 새사옥 건설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해갈 예정이다. 새사옥 이전 전까지는 범일 사옥에서 지내야 하고, 오는 6월에 범일사옥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 범일사옥은 방송용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 기존 건물을 구입해 몇 개 층을 사용하려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  -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부산MBC만의 색깔을 보여줄 차별화된 콘텐츠 전략이 있다면. "1974년 부산MBC에 <200만의 대화>라는 토론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슈가 있을 때는 시청률이 48%까지 나왔다. 이제 <400만의 대화>를 만들어 <100분 토론>과 같은 영향력을 가진 부산MBC만의 대표 토론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싶다. 새로 이전하는 사옥 앞에 시민회관이 있어 토론 프로그램에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또, <빅벙커> 같은 프로는 킬러 콘텐츠로 만들고 좀 더 네트워크화할 필요가 있다. OTT는 가능한 한 지원할 계획이다. 나는 <피지컬 100>(넷플릭스)보다는 <나는 신이다>가 아카이빙을 잘 활용했다는 면에서 더 좋았다고 본다. 부산MBC의 역사가 있는 만큼 아카이빙을 활용하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 마지막으로, 부산MBC 역사상 영상기자가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게 처음이다. 선배로서 후배 영상기자들에게 당부 말씀 부탁드린다. “리더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영상기자는 기획, 구성, 취재 등 멀티 소양이 잘 되는 구조다. 이러한 소양이 업무를 통해 무한반복 되면 누구나 이 자리에 올 수 있다. 영상기자 중에 제가 먼저 올랐으니 실망시키지 않고, 이임식 때 박수 받는 선배가 되겠다. 또, 내 경험을 잘 닦아 후배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3-04-26
  • [뉴스VIEW] 당신 옆의 소외된 노동 우리가 외면한 취재차 운전기사의 삶과 죽음
    <뉴스VIEW> 김세희 변호사 (민주노총법률원)당신 옆의 소외된 노동우리가 외면한 취재차 운전기사의 삶과 죽음  한 방송사의 취재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분이 국회 취재이동 지원을 나갔다가 한강둔치의 국회 주차장 차량 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그는 20여 년 가까이 한 방송사의 취재 차량 기사로 일했는데 용역회사 소속으로 하는 일은 똑같은데 업체만 매번 바뀌었다. 방송차량 기사들은 대기가 곧 일인데, 방송사, 신문사 기자들이 취재하는 여러 출입처들에는 기자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만, 이들의 취재를 돕고 다음 취재를 위해 하루 종일 대기해야 하는 취재차 운전기사들이 쉴 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년 전 크고 멋진 소통관 건물을 새로 지어 기자실과 브리핑룸, 각 당의 공보담당실이 이전한 국회도 마찬가지다. 이번 취재차 운전기사의 죽음은 국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가장 앞에서 보살피고 지켜야 할 국회와 정당들은 이들의 존재와 처한 상황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근본적으로 방송사는 직원이 아니니 이들의 노동환경에 무관심했고, 근로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역시 정해진 도급액 안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할 뿐 이들의 근로환경에는 관심이 없었다.취재차 운전기사들, 최저입찰 용역업체 바뀔 때 마다 고용불안 반복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언론노조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각 언론사에 취재진들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한 취재차량 운전기사들이 있고, 한 때는 정규직들이었던 운전기사들은 97년 IMF 때 모두 외주화되어 용역회사 소속의 비정규직들이 되었다는 것을. 같은 방송사에서 똑같이 차량 운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최저입찰 경쟁 속에서 임금은 늘 제자리걸음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게 그들의 현실이었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방송작가, VJ, FD 등 프리랜서라는 이름하에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방송사에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이후로 10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방송작가 노조가 만들어지고, 방송사의 뉴스제작 프로그램의 작가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으나, 취재차량을 운전하던 그 분들에 대한 소식을 접할 일은 없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검색창에 그분들의 소식을 검색해 보았다. 관련 기사 자체가 많지도 않았지만 제일 먼저 검색된 기사가 방송사의 차량 운전 노동자들이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해고에 직면했다는 기사였다. 방송사에서 도급업체를 변경하면서 고용문제는 도급업체 소관이라며 발을 뗐고, 새롭게 들어온 도급업체는 기존 보다 인원을 줄여, 입찰 참여 업체 가운데 가장 낮은 단가를 제시해 도급계약이 체결됐다는 것이었다. 계약대로라면 최소 2명의 근로자가 해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었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더 나빠졌다고 봐야 옳다. 청소, 운전업무 등 대부분의 외주 도급 계약에서 도급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는 이미 일반적이 일인데, 방송사 차량운전 기사들의 경우 고용승계의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비정규직 문제 자주 다루는 방송사, 정작 내부의 노동인권, 차별은 외면 방송에서 연일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문제와 소외된 노동에 대한 뉴스를 접한다. 그런데 정작 그 뉴스를 전하고 있는 방송사의 사정은 어떠한가. 방송사 내에는 방송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정규인력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기간제, 도급, 파견, 프리랜서 등 다양한 형태의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다. 계약의 종류는 모두 다르지만, 모두 방송제작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인력임에 틀림없는 사람들이다.  2020년에 공공부문 방송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된 한 연구논문을 보면, 방송사 내 불안정노동자의 비율은 42%로 방송 제작에 필요한 전체 인력의 거의 절반가량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방송에서 방송사 내부의 비정규직의 문제, 소외된 노동의 문제를 다룬 기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의 감시자로, 우리 사회 곳곳의 소외된 노동의 문제들에 대해 따가운 일침을 놓던 그 취재의 순간 바로 내 옆에 소외된 노동자는 두 번 허탈했을 것이다. 최근 연이어 방송사에 다양한 영역의 비정규직들과 프리랜서 근로자들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이들도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법원은  프리랜서 방송작가, 프리랜서 PD, 프리랜서 편집감독이 방송국 소속의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외주용역, 파견계약하에 일해 왔던 MD, 방송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해당 방송사 소속의 근로자임을 인정하는 판결도 이어지고 있다.  연이은 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방송사들이 외면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정규직이 담당해왔던 상시적이고 필수적인 업무들을 계속 비정규직화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왔고, 그동안의 고질적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동인권이 준수되지 않고, 차별이 만연한 방송 제작현장에서 공정한 방송, 좋은 방송이 만들어질리 없다. 당신 옆의 소외된 노동자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일은 좋은 방송을 만드는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좋은 방송, 공정한 방송은 인권을 우선하는 노동위에서 만들어진다.김세희 / 민주노총법률원 변호사
    2023-04-26
  • 일본 군국주의 전범자가 제정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상(賞)’
    일본 군국주의 전범자와 정치인의 역사인식 (1)일본 군국주의 전범자가 제정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상(賞)’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와의 한일정상회담 이후 국내에서는 우리 정부의 대일본 외교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일본이 진정한 사과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일 문제를 성급하게 해결하려다 오히려 한일 간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이었다. 이러한 비판의 배경에는 일본의 식민지 피해국과 가해국 간의 시각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과거의 일을 문제 삼아 한·일 관계가 적대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미래의 이익을 위해 걸림돌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과거를 부정하고 진정한 사죄를 회피하면 바람직한 한일관계는 요원할 것이다.   진정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 현재 일본 정치의 주축을 이루는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의 기원이 된 제2차 세계대전 전범자 출신 정치인들의 행보를 살펴보고, 같은 전범국이면서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독일 정치지도자들의 역사인식과 행보를 비교하는 기획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 첫 공식 참배한 일본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사진 출처 :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https://www.kantei.go.jp)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일본 총리(제71·72·73대)를 역임하고 군국주의 상징인물로 알려져 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1965년 8월 15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A급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해 일본의 침략전쟁을 경험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을 분노케 했다.  그는 2003년에 56년간의 일본 정치생활을 끝내고 정계를 은퇴한 후 '세계평화연구소'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 등을 위해 2004년에 "나카소네 야스히로상"을 제정했으며 2019년 11월 29일 노환으로 사망했다(향년 101세). 현재 회장은 2021년 10월부터 일본 총리(제92대)를 역임하고 망언제조기와 극우파로 알려진 아소다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가 맡고 있다. 나카소네 씨는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위안소 설치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나카소네가 근무한 '해군 항공기지 제2설영반 부대 지도', 빨간색 동그라미가 위안소가 설치된 곳 (사진=필자 제공). ▲일본 방위성 자료에는 "주계장(나카소네)의 재량으로 토착인 여자를 모아 위안소를 개설하고, (일본군 부대원들의) 기분 완화에 매우 효과가 있었다"고 적혀 있다(사진= 필자 제공).나카소네 전 총리, 해군장교시절 위안소 설치 관여 일본 방위성에서 발견된 「해군 항공기지 제2설영반 자료」에는 당시의 제2시설대 (아베부대) 공영장인 미야지 요네조우(해군기사)의 자필을 포함한 자료를 바탕으로 1962년에 방위성(당시 방위청)이 정리한 것이다(26페이지). 제2설영반의 주계장(회계담당 간부)이 당시 나카소네 해군중위이다. 자료에는 반의 편성이나 장비, 활동 내용과 함께 발릭파판(인도네시아·보르네오 섬)에서 비행장 정비가 끝나고, "(부대원들의 성격이) 거칠어져서 일본인 동지들이 싸움이 일어난다"며 "주계장(나카소네 해군 중위)의 재량으로 토착인 여자를 모아 위안소를 개설했더니 기분 완화에 매우 효과가 있었다"며 나카소네 씨가 위안소 설치에 관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자료에는 발릭파판에 상륙한 후, 민가를 접수해 울타리나 화장실을 만들어 '설영반 위안소'를 설치한 지도도 있다. 한편, 1978년 나카소네 씨가 쓴 자서전 '끝없는 해군' (松浦敬紀편저, 문화방송개발센터출판부)에는 "3천 명에 달하는 대부대였다. 얼마 되지 않아 원주민 여자를 습격하거나 도박에 빠지는 사람도 생겼다. 나는 그들을 위해 고심 끝에 위안소를 만든 적도 있다"고 회상하는 등 위안소 설치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2007년 3월 23일 일본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위안소는 군인들이 바둑을 두는 등 휴식장소의 목적으로 설치했다"며 이른바 '위안부'를 두는 위안소 설치는 부인했다. 자료에는 나카소네 씨가 위안소 설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사실과 인도네시아 현지 여성을 모아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점, 1942년 3월 11일에 해군 기지에 위안소가 개설되었다는 등 구체적인 기술이 있고 위안소 내의 배치도가 있다는 점이 나카소네 씨가 위안소 설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법 전문가인 전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조시현 교수는 "전쟁 당시 일본이 점령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식민지였으며 나카소네 씨가 체포되었다면 네덜란드법과 일본 국내법, 국제법에 적용되어 전쟁범죄로도 처벌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카소네 씨는 위안부 설치에 부정하고 반성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가계(家系) 정치 후계자는 장남인 나카소네 히로후미(78세) 일본 참의원이다. 그는 1986년 참의원 선거에 첫 당선됐다. 이후 외무대신과 문부대신, 과학기술청장관 등을 역임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상', 한국인 수상자 '나카소네 세계평화연구소'는 '세계 평화와 안보에 관한 연구 업적이 뛰어난 사람들을 선정해 시상한다.'는 가치를 내걸고 2004년 "나카소네 야스히로상"을 제정하여 시상해 왔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상(賞)'을 수상한 한국인은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인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제5회)과 외교부 직속 국책연구기관인 박철희 국립외교원 원장(제1회),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제4회)가 있다.■ 필자 소개  YTN 기자로 활동하면서 30여 년 간 일본군 성노예피해자, 강제동원피해자 문제를 취재하고 각종 기획보도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내 청춘을 돌려다오(Give me back my youth)'는 제55회 베를린영화제 국제부문에 출품돼 상영되었다. 일본 히토츠바시대학대학원 사회학연구과(종합사회과학전공)에서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있어서 일본의 선전전'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제25대, 제26대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과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한 원 상 (한국영상기자협회 고문)
    2023-04-26
  • [인터뷰] 109회 이달의영상기자상 인권,노동보도부문 수상자 - KBS대전 심각현 기자
    [인터뷰] 109회 이달의영상기자상 인권,노동보도부문 수상자 - KBS대전 심각현 기자“남겨지지 않을 것이라 남겨야 했다.”  전국으로 방송되는 3.1절 특집 다큐. 처음부터 이렇게 큰 작품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KBS대전 뉴미디어팀 소속으로 웹다큐 ‘달그릇’을 제작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 우연히 일제 강제동원 생존자 현황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외면의 기록, 생존자>를 제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생존자를 찾는 것도, 섭외하는 것도 정말 어려웠다. KBS대전 심각현 기자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등 관련 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피해자 단체도 10개 가까이 접촉했지만, 대부분 왜 취재하려고 하느냐며 거부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피해자는 1800여 분(2022년 초 의료지원자 기준). 하지만 대부분 90대이거나 100세를 넘긴 분들이라 해마다 500~600명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4~5년이 지나면 일제의 만행을 증언할 생존자가 남아있지 않을지도 몰랐다. 여러 차례 공을 들인 보람이 있었는지, 한 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피해자는 많지만 생존해 계신 분들이 거의 없다며 부산에 한 분, 부천에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20살에 나가사키에 강제동원된 김성북 할아버지, 19살에 일본 해저 탄광과 구마모토 비행장 건설에 끌려간 신영현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고 돌아오면서 15분짜리 웹다큐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일제의 강제동원에 대한 배상은커녕 사죄도 받지 못한 상태로 계속 둘 수 없는 문제였다.  “대일항쟁기강제동원과 관련해 서면으로 돼 있는 기록은 있습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구술채록 사업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영상으로는 기록이 안 돼 있어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언론인으로서 내가 이걸 남기지 않으면 앞으로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상황이 오겠죠. 남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남겨야 했습니다.”전국을 수소문해 모두 18명의 생존자를 만났다. 하지만 작품에는 14명의 이야기만 나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터뷰와는 차원이 달랐다. “생존자 찾기도 힘들었지만,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도 너무 어려웠어요. 워낙 연로하셔서 보청기를 꼈는데도 잘 못 들으시고, 이도 없으세요. 또, 일본어를 많이 섞어 쓰셔서 가족 분들이 옆에서 통역하듯 도와주셨어요. (건강이 안 좋으시다 보니) 일반적으로 한 시간이면 끝날 인터뷰를 어떤 분은 정말 죄송하게도 4~5시간 걸린 분도 계세요. 신기한 건, 가족들에게 전화상으로 연락했을 때 대부분이 아버지(어머니)가 인터뷰하기 싫어하신다고 했는데, 막상 가면 당시의 울분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요. 내 인생도, 엄마 아버지도, 가족도 모두 거기에서 인생을 망치고 송두리째 뺏겼다고요.” 정말 어렵게 만난 한 분 한 분이지만,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바로 충남 태안에서 뵌 가재학 할아버지다.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할아버님 연세가 98세셨어요. 인터뷰 중간에 큰아드님이 호떡을 사와서 잠시 쉬며 먹었는데, 알고 보니 할아버님이 위암 말기여서 이날 서울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었더라고요. 그런데 할아버님께서 내일 당장 죽을지 모르니 얘기를 해야 한다고 (병원에)안 가셨더라고요.” 가재학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마친 뒤 돌아가셨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처음 공개된 증언도 있다. 일본의 해저 탄광인 조세이(장생) 탄광에서 일하다 수몰 사고에서 살아남은 피해 생존자 고 김경봉씨의 증언이 그것이다.  “김경봉 씨가 95년 일본의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탄광 수몰 이후)일본 정부가 유골 수습도 전혀 하지 않으니 유족회에서 (일본 정부와 언론에 대해) 많은 의심을 해 내보내지 않았더라고요. 다행히 유족회 회장을 설득해 당시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군함도’는 잘 알려져 있지만, 군함도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미이케 탄광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심 기자는 만 명 가까운 조선인이 강제로 동원돼 일하다 수십 명이 숨진 미이케 탄광의 생존 피해자를 각방으로 수소문했다. “어떤 탄광을 지정해 생존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제강제동원피해지원재단 홈페이지에서 구술채록사업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봤는데, 보도자료에 미이케 탄광 생존자가 한 분 계시더라고요. 그때 당시 105세라 돌아가시진 않았을지 걱정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 지자체 등을 통해 수소문했는데 개인정보에 막혀 못 찾다가 겨우겨우 따님이 하는 식당을 찾아가게 됐죠. 그런데 구술채록 과정에서 힘드셨는지 인터뷰를 안 하신다고 하셔서 여러 번 부탁해 겨우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성과는 그동안 일제 강제동원과 관련한 언론의 조명이 피해 현장 중심이거나, 국가기록원 등의 자료를 발굴했던 것이었던 데 반해 피해 생존자의 육성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행정안전부에서는 다큐가 방영된 이후 해당 영상 자료를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 피해 현장 세 곳에 직접 다녀왔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생존자 증언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죠.” 생존 피해자들의 인터뷰 사이사이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꽃이 지고, 비가 내리고, 단풍이 떨어지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이번 다큐는 연출 장면을 배제하고 싶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뭔가를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영상미학적으로) 뭐가 필요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이분들이 강제동원된 시기가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이라는 점을 떠올려 이분들의 (슬픈) 청춘과, (흘러간) 지난 세월을 표현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를 찍었다. (꽃만 하더라도 어떤 꽃이 좋을지 몰라) 대전·충남 지역에서 찍을 수 있는 꽃은 다 찍었는데, 실제로 나간 건 몇 장면이다. 나레이션도 별도로 삽입하기 않았는데, ‘노 내레이션 다큐’는 당사자 연출을 최소화할 수 있고, 시청자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 기자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지상파 방송 다큐멘터리는 자꾸 (시청자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지금 환경에서는 주입식으로 가르치듯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당사자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고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요. 반면, 노 내레이션 다큐의 단점이 인터뷰이를 통해 정확한 정보 전달이 안될 수 있다는 건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경험이 중심 내용이기 때문에 될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막을 사용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3.1절 특집으로 방영된 이후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고,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통상부는 이들에 대해 일본 정부나 기업이 아닌 제3자가 배상하는 해법안을 내놨다. 여러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취재한 심 기자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정부 안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정말 화가 났어요. (정부가) 피해 생존자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진정성있게 들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텐데, 많이 안타까웠죠. 생존자들 가운데는 내가 이 나이에 돈 받아서 뭐하냐, 직접 안 찾아와도 된니 TV에서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 주면 된다는 분도 계시고, 사죄와 배상을 모두 원하는 분도 계세요. 가재학 할아버지는 나라를 뺏겨서 그런 걸 어떡하냐고 하셔서 현장에서 취재진이 울기도 했어요. (정부가) 피해자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걸 회복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다음을 진행해야 하는데, 국가 간의 이익 관계만 따져서 하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니 일본 눈치를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삶’이 모여 한 사회의, 국가의 ‘역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는 영상기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영상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역사, 시대의 역사,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이대서 단순히 기록하는 게 아니라 이분들이 당했던 일에 대해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영상기자의 가장 큰 능력은 촬영과 편집, 여기에 기획도 가능하기 때문에 큰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겠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더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조직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영상기자들이 맡은 직종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길 바랍니다.”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3-04-26
  • [2023년 4월 11일 강릉 경포동 산불 취재기] 강풍은 곧 대형 산불로…반복되는 재난 보도...
    [2023년 4월 11일 강릉 경포동 산불 취재기]강풍은 곧 대형 산불로…반복되는 재난 보도 대비 절실 ▲강릉 경포동 산불 당일 차 안에서 촬영한 첫 컷 ▲강릉 경포동 산불 ▲강릉 경포동 산불 당일 KBS강릉방송국 취재진 밤사이 강한 바람이 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출근길이었다. 아파트 상가 유리창이 깨져있고 전신주를 고치는 한전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해안 강풍으로 인한 피해를 종합하는 리포트를 제작할 줄 알았다. 회사에 다다를 무렵 멀리서 검은 연기가 보였다.섣부르지만 짐작했다. 일반적인(?) 화재가 아니라는걸. 아니나 다를까 보도부는 매우 분주했고 출근과 동시에 출동이다. 점차 가까워지는 뿌연 연기... 강릉 경포동 산불이다. 4월 11일 9시 8분 차 안에서 첫 컷을 눌렀다. ENG가 아닌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고 카카오톡 보도부 단톡방으로 전송했다. 화재의 심각성과 1보를 위한 신속성이 더해진 판단이다.취재진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후회와 반성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영상기자의 심정은 말하지 않아도 영상기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으로부터 나오는 발생 초기의 현장감 있는 영상을 확보하는 것. 이것 때문에 재난보도준칙을 망각하고 안전은 잠시 뒷전이다. 불길이 눈앞에 보일 때까지 더욱더 깊숙이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려움은 없었다. 경포동 낮은 산의 구릉 사잇길은 차가 한 대밖에 다닐 수 없는 비좁은 외길이었다. 그 덕분인지 어렵지 않게 불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산불을 진화하고 있는 산림청 고성능 진화차가 보이고 대피하는 주민들이 보였다. 급히 재난용품(안전모, 고글, 방진 마스크)을 착용하고 차에서 내려 촬영을 시작했다. 얼마나 찍었을까. 붉은 연기가 주변을 뒤덮고 뜨겁고 매캐한 연기가 숨을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니 머리 위에선 불붙은 솔잎이 떨어지고 있고 시야 정면에서만 타고 있던 숲이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사방을 태우고 있었다. 급히 촬영을 접고 서둘러 취재차에 탑승했다. 설상가상. 불붙은 솔잎이 취재차 엔진룸으로 들어가고 있어 자칫 차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형님(방송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취재차 기사를 칭한다.)이 부랴부랴 차에서 내려 엔진룸을 열고 솔잎을 걷어내고 어렵사리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근접한 영상 몇 컷만 찍고 나와야겠다는 나의 짧은 생각이 함께한 취재진을 위험으로 내몰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를 포함한 취재진이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까 두려웠다. 재난보도준칙을 망각하고 안전을 뒤로 한 채 위험한 취재를 감행한 나에게 주는 뼈아픈 교훈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다시 떠오른 산불의 악몽...그리고 강원도 영동권 영상기자 잠시 개인사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2019년 고성 산불 당시에도 강한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속초 시내까지 불 이 번져나갔다. 그때 당시에도 나는 현장에 있었다. 취재진이 아닌 피해자 가족으로. 부모님 댁도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주택 일부가 소실되었고 당시 충격으로 아버지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으셨다. 나 또한 산불만 나면 당시 상황이 생각이 난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하고 따뜻한 바람. 그 바람이 강릉 경포동 산불에서 느껴졌다. 봄철에 강원도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국지성 강풍으로 동시에 고온 건조하고 속도가 빠른 특성이 있다. 일명 ‘양간지풍’이라 부르는 바람이다. 이번 산불 또한 양간지풍으로 인해 진화를 위해 하늘에 떴던 헬기도 다시 착륙했다. 산불 진화의 핵심인 헬기가 바람으로 인해 무용지물이 됐으니 급속도로 번지는 불을 눈뜨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피해는 삽시간에 눈덩이만큼 불어나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26명이 다쳤다. 그리고 5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택과 상가 등 건축물 266동과 해수욕장과 공원 등에서 공공 시설물 182곳이 불에 탔고 해안가 송림을 포함해, 경포 일대 산림 179만 제곱미터도 산불 피해를 입었다. 8시간 동안 불이 난 것에 비해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이다. 이렇게 강원도 동해안은 봄철이 되면 강한 바람이 불어 어김없이 산불로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영동권 영상기자들은 봄철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영동권 영상기자들을 재난전문기자라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재난 상황을 많이 접했고 안타깝게도 매우 익숙해져 있다. 이런 우리들 사이에선 금기어가 있다. ‘바람이 심상치 않다’, ‘불안한데’와 같은 산불을 암시하는 말들이다. 그런 말들이 오가면 어김없이 산불이 발생한다고 해서 금기어가 생긴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저런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는 건 이미 상당 기간 건조주의보나 경보가 지속됐거나 강한 바람이 불 때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지만 영동권 영상기자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 상황을 대비해 다시 한번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고 무언의 작심을 조심스럽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냄새 가득한 사무실에서 익숙하게.KBS강릉 박영웅 기자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