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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EBS자연타큐멘터리 2부작 -개미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
    특집 EBS자연타큐멘터리 2부작 -개미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 개미 오는 3월 7, 8일 이틀간에 걸쳐 EBS에서 방송 예정인 자연다큐멘터리 ‘개미’는 일반 자연다큐와 달리 아주 작은 피사체를 다루고 있어 일반 렌즈로는 촬영이 불가능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촬영작업이 까다롭고 매우 힘들게 제작한 만큼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개미를 촬영하기 위해 문동현 PD를 비롯한 EBS다큐팀은 이에 따른 특수장비 제작과 다양한 촬영방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제작후기를 들어본다. 글 | 문동현 EBS TV1국 다큐팀 PD E-mail:dhmoon44@hotmail.com 작년 초, ‘개미’를 자연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야, 그거 재미있겠다!”라는 반응부터, “근데, 촬영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고 하거나 “그걸로 자연다큐가 될까?”하는 회의적 반응까지…. 어쨌튼 우리는 주위의 기대와 우려를 무시(?)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늘 그렇듯 자연다큐에 100퍼센트 확실한 아이템이란 없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아이템이라도 막상 현장에 나가서 부딪쳐보면 ‘아 그게 아니었구나’며 자신의 무지와 무능력에 절망하거나 반대로 ‘한 컷이라도 건지면 다행이겠다’하고 나갔는데 의외의 수확을 건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연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하면 할수록 낯설고, 어렵고, 스스로를 끝없는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뜨리는 존재. 그래서 끝내 포기하고 돌아설라 치면 어느새 살짝 돌아와 저만치 앞에서 얄밉게 손짓하고 있는 그런 존재…. 내가 ‘자연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자신에 대한 허울을 먼저 벗어 던져야 가슴을 열고 만날 수 있는 존재(말로는 알고 있는데, 진정 가슴으로 체득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일지…). 개미를 촬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맞닥뜨린 첫 번째 문제는 역시 ‘SIZE’였다. 피사체가 너무 작아 일반 렌즈로는 그야말로 풀샷(F.S)으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클로즈업 필터나 접사렌즈를 써야했는데, 문제는 개미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부지런한 동물이라는 데 있었다. 포커스 맞추기도 힘들 정도로 아주 작은 데다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뽈뽈대며 움직이는(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런 피사체라니! 생태를 담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뭔가 특수한 렌즈가 필요했다. 작은 개미촬영용 장비 준비 촬영팀끼리 머리를 맞대고 고민과 상의를 거듭한 끝에 우리는 청계천으로 달려갔다. 청계천?. 이상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청계천에는 우리가 잘 아는 특수공구상가가 있다. 거기서 우리는 개미를 촬영할 수 있는 특수렌즈를 직접 깎아 만들 작정이었던 것이다. 즉, 스틸카메라용 렌즈를 우리가 쓰고 있는 베타캠 카메라에 맞게 깎아 붙이려는 야심찬 계획!! 두 세 번 더 손을 보기는 했지만 결과는 만족할만 했다. 50mm 스틸렌즈와 기존 줌렌즈, 벨로우즈, 그리고 클로즈업 컨버터(close-up converter).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청계천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고, 향후 개미촬영의 핵심 장비가 되었다 .이에 따라 개미들의 그룹샷(G.S)부터 얼굴 클로즈업까지 다양한 사이즈를 촬영할 수 있는 기본렌즈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물론 사이즈를 바꿀 때마다 렌즈도 바꿔 끼워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정도는 행복하게(?)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우리는 바로 두 번째 벽에 부딪치게 됐다. 바로 개미가 주로 사는 곳이었다. 형광등을 조명으로 사용. 일본왕개미나 곰개미, 불개미류는 대개 햇볕이 잘 드는 탁 트인 곳에 살기 때문에 광량(光量)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보다 작은 종들, 예컨데 고동털개미나 꼬리치레개미, 주름개미 등은 나무줄기 등에 살고, 갈색발왕개미나 침개미류는 아예 침엽수림이나 낙엽 밑에서만 산다. 이 녀석들을 촬영할 때는 늘 그늘이 져 있기 때문에 사이즈가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광량조차 제공되지 않는 것이다. 부족한 광량으로 인해 기껏 찍어봐야 심도가 얕아 포커스가 뭉개지기 일쑤였다. 조명해결이 급선무였다. 우리가 야외촬영 시에 일반적으로 쓰는 쥬피터(Jupiter Light)나 휴대용 썬건(Sun Gun)은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걸 개미들한테 갖다 대는 것은 바로 뜨거운 열로 고문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 열이 안 나면서도 안정적인 광량을 확보할 수 있는 조명기구가 필요했다. 열이 안나는 조명기구?, 쿨라이트(cool light)?…. 그래 쿨라이트!! 다행히도 영상팀에 쿨라이트(Cool Light ; Tungsten)가 있었다. 휴대하기도 좋게 사이즈도 작았다. 가을 이후엔 한 대 더 받아 두 대나 쓸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 조명감독(베스트 조명의 김모씨)은 참 편했다. 조명기구라고 해봐야 겨우 한 손에 들 수 있는 라디오만 한 쿨라이트가 전부였으니. 아, 그 대신 쿨라이트는 전원공급을 따로 해야하는 불편이 따랐다. 휴대용 발전기를 들고 다녔는데, 발전기에서 나는 소음이 굉장했다. 최소한 50미터 이상 떨어트려야 하는데 그게 현장에서는 뜻대로 안된다. 그래서 우리가 촬영한 테이프의 현장음(S.O.T;Sound of track)은 거의 다 발전기 소음이다. 결국 오디오를 편집해야 하는 나만 죽을 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촬영은 하고 봐야 되니까.자연다큐 촬영은 늘 그렇듯이 산 넘어 또 산이다. 하나 해결되면 또 다음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게 자연다큐의 매력(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이라고들 하지만, 참 괴로운 매력이다. 쿨라이트 하나로 조명이 해결됐다고 좋아했더니,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쿨라이트는 작은 크기만큼이나 조명범위가 매우 좁다. 불과 수 센티미터…. 개미 그룹샷 밖에 안된다. 게다가 빛이 텅스텐이라는 단점도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텅스텐은 자연광과 다르다. 약간 더 누렇게 나온다. 클로즈업이야 그렇다 쳐도 풀샷용 조명이 필요했다. 그늘진 곳에서의 풀샷용 조명은 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우리 카메라맨 부사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고,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그 친구 덕분에 촬영기간 내내 모두들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풀샷용 조명 문제 역시 그 친구가 해결을 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제작도 했다. 답은 형광등이었다. 형광등은 열도 안나고 색온도 역시 자연광(Day Light)과 비슷했다. 형광등을 다섯 개씩 이어 붙여서 큰 조명판을 만들었다. 그걸 두 개 만들어 양쪽에서 비추면 완벽한 조명기구가 되는 것이다. 고정으로 세팅해 놓거나 급할 땐 하나씩 떼서 들고 나갈 수도 있다. 조금 무겁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쓸만하다. 이와 같이 기본 조명에 덧붙여 필요할 때마다 이노비젼 라이트(Innovision Light)를 활용함으로써 조명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개미촬영용 크레인 제작 내친 김에 우리는 개미 촬영용 크레인을 만들기로 했다. 일반 크레인은 너무 커서 개미같이 작은 피사체엔 접근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니크레인을 제작하는 것!. 이 정도는 몸으로 때우는 데 익숙해져 있는 우리 EBS 자연다큐팀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굳이 청계천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철물점이면 충분했다. 지면 관계상 상세한 설계도를 첨부할 순 없지만, 대충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몸체(Body)는 전부 앵글(철물점에 가면 쌓여있다)로 만든다. 기본축은 5∼6자 정도. 각 연결부위는 베어링 너트를 사용하고 약간씩 기름칠을 해주면 좋다. 가장 어려운 부위는 카메라를 얹는 부분인데, 카메라 발바닥을 이용하면 된다. 약간의 용접이 필요하고, 카메라 손잡이에 발바닥을 붙이는 게 중요하다. 기본 삼각대는 고장났거나 못쓰는 것을 이용하면 되고(카메라의 무게가 꽤 있는 관계로 가능한 튼튼해야 한다) 삼각대 헤드는 두 개가 필요하다. 삼각대와 몸체를 잇는 부분하고 카메라가 실리는 부분까지 헤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무게와 평형을 잡아주는 도구로는 역기의 추를 사용했다. 이것도 두 개 정도면 충분하다(재료는 체육관련 용품점 등에 가면 많이 있다). 이것으로 OK.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이동할 때 휴대하려면 분해와 조립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로인해 너트를 풀 수 있는 공구를 늘 갖고 다녀야 한다. 크레인 제작에 대한 내용이 조금 장황하고 설명이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카메라를 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팬 콤마 촬영기법 사용 개미라는 특수한 아이템인 만큼 특수한 장비도 많이 썼고, 특수한 촬영기법도 다 동원했다. 이 중에서 팬-콤마(Pan-comma) 촬영기법을 사용했다. 일반적인 콤마촬영(미속촬영)은 이제 어느 정도 일반화됐기 때문에, 팬(Pan)이나 달리(Dolly)를 하면서 콤마촬영이 되는 기법을 쓰기도 했다. 처음 시도라 완전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영상이 만들어졌다. 열흘 이상이 걸리는 불개미탑 건설과정이나 나무기둥에 집을 붙여 올리는 고동털개미의 집짓기 장면 등은 콤마촬영만이 담아낼 수 있는 탁월한 영상이다. 다큐제작에 따른 서로간의 정보교환이 중요 작년에도 VIDEO PLUS에 글을 게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를 보고 모 방송사에서 장비 사용에 대해 문의 전화를 해온 일이 있었다. Finger cam(흔히 ‘꼬마카메라’라고 부름)의 구입처와 사용법 등에 대해서였다. 그래서 우리 영상팀에 연결해 줬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상세하게 썼다고 생각하지만 궁금한 게 있다면 직접 찾아오는 것도 대환영이다. 국내 자연다큐의 발전을 위해서 장비 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교환이 서로간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미는 일반 곤충들보다도 촬영이 훨씬 어렵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도 힘들지만, 녀석들이 땅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정말 암담하다. 정말 중요한 속내는 그 속에 다 있는데…. 내시경 카메라도 사용해 보고 개미의 굴을 교묘하게 절단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찍어내기는 했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외국의 선진 자연다큐 제작물 중 개미의 굴속까지 따라 들어가 찍은 장면을 본적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찍었을까? 어떤 장비를 사용했을까?. 기회가 주어지면 한번 가서 보고 싶기도 한데, 마음만 급할 뿐이다. 우리는 오늘 당장 찍어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이러한 여건 내에서도 우리는 최선을 다 기울였다. 자연다큐멘터리 2부작 <개미>는 3월 7일, 8일 이틀간에 걸쳐 방송 됐다. 이 프로그램은 개미의 신비한 생태, 인간사회와 너무나 비슷한 그들의 사회생활 등이 담겨져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아울러 영상적인 측면에서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다양한 방법과 새로운 촬영기법들이 동원되는 등 촬영작업이 까다롭고 매우 힘들게 제작한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촬영이 끝나고 마무리 편집 작업을 하고 있는 요즘, 새삼스레 촬영 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촬영은 제쳐두고 렌즈 깎는다고 청계천의 어디로 정신없이 뛰어 다니던 모습, 철공소 직원들처럼 하루종일 장비만 만들다가 “우리 카메라맨 맞어?”하며 웃던 모습들, 쇳덩어리 같은 장비 두서너 개씩 짊어 매고도 씩씩거리며 올라가는 우리 촬영팀을 바라보던 등산객들의 경이로운 눈빛들, 개미를 찍고 있는 우리를 빙 둘러싸고 신기해하며 구경하던 사람들(모니터는 아예 그사람들 차지였다) 등…. 그런 모습들 속에서 자연다큐 제작자로서 자괴감과 보람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자연다큐 제작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외의 상황들에 대해 제작팀이 직접 몸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장비나 기술적인 부분이라도 지원이 좀더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해마다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자연다큐멘터리 작품들은 해마다 제작되고 있다. 모두가 힘들게 고생해 가면서 만들어내는 작품들이다. 애정을 갖고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 격려도 해가면서….
    2003-07-08
  •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
    인도 캘커타의 ‘소나가치’라는 홍등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 도 규 만 | (에센스21 PD)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은 도규만 PD가 모 일간지의 외신란에 난 기사를 보고 기획했다. 촬영장소는 소나가치였는데 이곳은 한국의 미아리, 청량리, 영등포와 같은 창녀촌으로, 창녀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조합을 만들어 캠페인을 하는 등 작은 반란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은 작년 5월 촬영한 것으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아시아리포트>에서 방송한 바 있다. 언제나 그렇듯 아이템은 ‘우연히’ 찾아온다. 인도의 소나가치라는 지명을 본 것 역시 그랬다. 모 일간지의 외신란에 난 작은 기사가 그 발단이었다.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 ‘홍등가’라는 장소가 주는 야릇함과 ‘반란’이라는 단어와의 묘한 부조화. 프로그램이 갖춰야할 요소들은 두루 갖추고 있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신문이나 잡지 같은 활자화된 정보에 한 두 번 속은 것이 아니라서, 이번에는 차분히 마음을 먹고 자료조사부터 시작했다. 인도에 관한 한 가장 많은 정보량을 제공하는 BBC 홈페이지에 들어가 ‘Sonagachi’라는 단어를 두드리니 꽤 많은 양의 정보가 모니터에 떴다. 대부분의 기사는 1995년도에 일어난 캘커타(참고로 소나가치는 테레사 수녀의 도시 캘커타의 대표적인 홍등가가 위치한 곳으로, 서울의 영등포나 청량리쯤 되는 곳이다)의 섹스워커(제3세계에서는 창녀들에 대한 명칭으로 Sex-Worker라는 용어를 쓴다/이하 ‘매춘여성’이라 씀)들의 공개시위 이후의 활발한 활동들에 대해 연도별로 리포트하고 있었다. 그리고 뉴스위크에서도 특집으로 다룰 정도여서 거의 매춘 여성들의 ‘해방구’처럼 보였다. 현지 상황이 이 정도로라면 취재가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경찰과 포주들에 대항해서 몸싸움도 벌이고 가두캠페인도 할 정도라면 하고 싶은 만큼 취재할 수 있겠다는 일종의 ‘자신감’도 생겼다. 적어도 캘커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1999년 4월 26일, 설레는 마음으로 캘커타에 도착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인도의 중심이었던 캘커타의 첫 인상은 회색이었다. 대부분 100여 년이 넘은 건물들. 도시의 일부분처럼 분간이 안 되는 검은 얼굴의 사람들. 너무나 자연스럽게 옆구리 쿡 찌르며 구걸하는 사람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 첫 눈에 들어온 인도는 그런 이미지였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곧장 도착한 곳은 MSC(Mahila Sammanya Commitee:여성협력위원회)본부. 캘커타 뒷골목 허름한 건물 지하에 들어있는 사무실에는 수십 명의 매춘여성들과 자원봉사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우리가 도착하자 MSC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스마라지트 자나 박사(전염병 전문의)가 반갑게 맞았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곧장 프로그램에 대한 협의에 들어갔다. 마침 취재기간이 메이데이(노동절)와 제2회 벵갈주 매춘여성대회와 겹쳐 있어서 행사도 많고 각종 언론기관의 취재도 많아 경황이 없을 듯 보였지만, 아시아 동쪽 끝의 작은 나라에서 ‘일부러’ 취재하러 왔다는 것이 고맙다며, 차분히 일정을 일러주고 각 행사와 자신들의 구체적 활동, 그리고 그 의미와 성과들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어 취재포인트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 두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면서 사람들이 우루루 사무실 밖으로 몰려나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부랴부랴 뒤따라갔더니 일행은 두 대의 트럭에 나눠 타고 캘커타 시내 중심부 광장으로 향하면서 각종의 구호와 전단지를 뿌리고 있었다. 거리캠페인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들이어서 그런지 시민들의 반응도 자연스러웠다. 구호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트럭에 걸린 플랭카드의 영문구호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Sex-Work is real work. We demand worker’s right(매춘노동도 노동이다.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한다)” 그들 중 한 명이 마이크를 잡는다. “우리들이 요구하는 것은 안전한 노동이다. 우리들은 에이즈의 공포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 우리들은 당신(남자)들에게 콘돔착용을 정당하게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경찰과 포주들의 부당한 억압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한다. 우리는 노동자로서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공정하게 나눌 것을 요구한다”. 노동자로서의 권리. 이들의 요구는 우리나라처럼 매춘금지가 아니다. 인도 역시 매춘은 불법이지만, 관계당국의 묵인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불법과 묵인의 굴레에서 자행되는 비인격적인 처우개선, 에이즈 확산방지를 위한 공개적인 요구들이 현재 소나가치에서 벌어지는 권익운동의 주류이다. 캠페인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의견도 동조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인도에서의 에이즈 문제는 심각한 지경이며, 이를 기반으로 해 시민사회에서의 보건문제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 그녀들의 정당한 노동의 권리 요구로 진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소나가치의 매춘여성들의 권익운동은 1992년에 시작된 세계보건기구의 에이즈 실태조사연구의 책임자였던 스마라지트 자나 박사로부터 시작됐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캘커타 홍등가에 유입되는 매춘여성들은 인도 및 인근 국가(네팔, 방글라데시 등)의 빈곤층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여전히 계급적 굴레에 강하게 결박돼 있는 인도사회에서 매춘여성들의 존재는 카스트 체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최하위 카스트(out-cast)이다. 이들을 찾는 손님들 역시 릭샤(인력거)꾼과 같은 인도사회 최하층의 남성들이다. 오로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흘러 들어온 여성들과 단순한 성적인 욕구를 잔돈푼으로 해소하려는 손님들간의 밀거래에는 당연히 경찰과 포주의 비호가 뒤를 받치고 있다. 그리고 남존여비의 관념이 지배적인 사회분위기에서 비롯되는 폭력적이고도 비위생적인 성 관계의 일반화. 그 현실은 처참한 것이었다. 1992년 가을, 에이즈 실태 조사연구가 끝나자 캘커타 보건담당이었던 자나 박사는 캘커타市 및 웨스트벵갈州 인근의 에이즈 확산 실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주위의 동료의사들과 지역유지들을 규합해 매춘여성들의 보건을 책임지는 일명 ‘소나가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생소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자나 박사는 우선적으로 당사자들인 매춘여성들과 연대를 결심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나 박사는 지역단체들과 권력기관들과의 조화를 모색했지만 정작 저항은 그 여자들로부터 비롯됐다. 그녀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우리들을 거부했다”(아니마 바너지/MSC회원). “우리는 점차 홍등가가 그 자체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의사소통법도 다른 사회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캠페인의 방법도 일반적인 에이즈 예방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매춘여성 스스로 권리를 자각하고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했으며, 그들 스스로의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하게 됐다”(스마라지트 자나 박사). 소나가치 프로젝트라는 자원봉사단체에서 매춘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조직인 MSC가 창설된 것은 1995년이다. 우연한 사건이 그 발단이 됐다. “기달불이라는 동네에서 4∼5명의 남자들이 여자아이들을 방에 가두고 채찍으로 때리고 담뱃불로 지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죠. 이 소식을 듣고 약 1,200여명이 몰려가 몸싸움을 하고 그 남자들을 감금하고 경찰을 불러 우리 앞에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공개사과를 받아냈지요. 그 일이 MSC 결성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사드나 무헤르지/MSC회원/아시아태평양여성기구 의장). 비합리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대응폭력에서의 자그마한 승리로 소나가치의 여성들은 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르고, 그해 11월에는 캘커타를 포함한 벵갈주전역의 매춘여성들의 공개집회를 개최했다. 캘커타대학 강당에서 치뤄진 1회 대회 후 5,000여명에 이르는 매춘여성들은 캘커타 시내를 행진했다. 이것이 외부에 공개된 최초의 매춘여성들의 집회로 기록된다. 현재 MSC의 활동은 크게 보건분야와 매춘여성들을 위한 각종의 활동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보건분야의 활동인데, 자나 박사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의료봉사자들과 캘커타 일대 12개 장소를 거점으로 진행된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소나가치 및 캘커타의 군소 홍등가 내부에 위치한 보건소에서 매춘여성은 물론 그 가족, 그리고 홍등가에 들리는 손님들까지 각종의 성병과 기타 질병들을 무료로 진료해주고 치료해주는 활동들을 통해 MSC는 홍등가에 필수 불가결한 조직으로 자리잡는다. 매일 이 시간이 되면 MSC 회원들은 녹색가운을 입고 홍등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돌보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보건캠페인을 벌인다. 녹색가운 자체가 스스로 매춘여성임을 드러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는 사람들이나 MSC회원 자체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활동은 놀라운 결과로 드러난다. “소나가치에서 콘돔 사용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1992년 당시 콘돔 사용자가 2∼3%였던 것이 1998년에는 무려 78%를 차지했고, 에이즈 감염률도 28%에서 12%로 격감했다”(스마라지트 자나 박사). 해외취재에서 긴장의 끈을 놓으면 항상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취재원과의 원활한 협조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돌발상황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취재 사흘째 MSC활동의 본거지인 소나가치의 본격 취재에 들어갔다. 도착해서 두 시간 가량 소나가치에 있는 그들의 사무실에서 전반적인 현황과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상을 인터뷰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코디가 너무 마음을 놓지 말고 항상 회원들 가운데에 있으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건만, 취재진 주위에 MSC회원들이 4∼5명씩 항상 둘러싸고 있어서 촬영에 지장을 느낀 나는 슬그머니 무리에서 이탈해서 홍등가의 다른 모습을 찍는 도중, 시커먼 남자들 5∼6명이 순식간에 나를 에워싸고 카메라를 뺐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들 말로 시끌시끌하더니 어느새 옆구리로 차가운 금속성의 물체가 감지되고...아찔했다. 첫날부터 코디하던 친구가 조심하라고 했는데, MSC회원들과 같이 다니던 며칠 동안 경계심이 사라지고, 그들(MSC)의 힘을 너무 과신했던 것 같다. 잠시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녹색가운(녹색가운은 MSC회원의 상징이다)을 입은 MSC회원 10여명이 달려와 그 남자들을 몸으로 밀어내고 재빨리 나를 그들의 무리 가운데에 쏙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그후로도 몸싸움은 30여분간 계속되고 그 남자들은 후퇴했다. 그날의 취재는 그걸로 끝나고 MSC사무실로 돌아와서야 경위를 알 수 있었다. 소나가치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9년이 흘렀고, MSC가 결성된지도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은 소수였다. 오후 2시까지의 캠페인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그들의 일터인 홍등가로 돌아가야 하고, 여전히 홍등가는 견고한 요새였다. 아직까지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보건캠페인으로 대표되는 무료진료...), 홍등가 전체의 영업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포주나 깡패들이 그들의 활동을 묵인해주는 정전상태가 지속되고 있을 뿐 여전히 그곳에는 폭력과 억압이 횡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인도 내부의 방송은 물론, 외국의 방송사도 비디오카메라로 취재한 적이 없는 험한 곳에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를 휘둘러 댔으니... 그래도 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자나 박사와 MSC측에 부탁을 했지만, 그들의 마지막 말에 더 이상의 무리를 감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은 수 시간 동안의 대화의 마지막에 들은 자나 박사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어쩌면 당신은 프로그램을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그 그림을 찍어갈 수 있다. 우리들 몰래 찍어 가는 것까지 우리가 통제할 길은 없다.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우리도 당신의 생명을 보호해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신이 떠나고 난 후에 우리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우호적인 관계로 되돌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흐를 것이다. 당신이 판단해주길 바란다”. 취재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욕심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욕심은 PD로서 프로그램을 대하는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에서 요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홍등가의 매춘여성들이 활발한 권익보호투쟁을 한다...이들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어두운 삶의 편린들이 흩어져 있다...이들의 밝은 오늘은 짙은 어둠과 대비되어야만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등의 드라마 스토리가 머리 속에 박혀있는 것이고, 그 모든 것들을 비디오로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현장에서 무리를 감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 당시 그들이 막무가내로 촬영을 중지시켰다면 나도 감정적으로 몰래카메라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촬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내가 떠난 후 그들의 활동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프로그램이 어떠한 의미인가? 나는 왜 굳이 그 먼 곳까지 찾아갔을까?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 현장이 있어야만 프로그램의 메시지가 전달되는가? 현장에 맞닥뜨려 있는 PD는, 특히나 <아시아리포트>와 같이 PD 혼자 현장에서 모든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 작업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돌발상황에서 순간적인 결정은 프로그램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이번의 경우 소나가치 홍등가 여성들의 생생한 삶은 인터뷰로 처리했다. 실제 그들의 삶을 밀착 취재하는 대신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내게 신뢰를 가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때때로 현장에서는 취재원과의 우연한 의기투합이 되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기는데, 나의 경우 프로그램의 논리보다는 현장의 논리를 신뢰하는 편으로 결정을 내릴 경우 예상치 않은 도움의 손길이 벌어진다. 더 이상 홍등가의 삶에 대해 밀착 취재하거나 몰래 찍어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 MSC측에서는 전날 밤 긴급회의를 열어 그들의 남은 활동에 대한 상세한 스케줄을 숙소로 통보해왔다. 스케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들의 배려가 숨막히는 일정표에그득했기 때문이다. 취재 4일째. 우선 그들의 보건활동을 따라갔다. 소나가치 뒷골목에 허름하게 자리한 빈집을 개조해 임시보건소로 쓰고 있었는데, 환자들과 자원봉사자들로 가득했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폭염을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하나로 간신히 버텨내며, 싫증내지 않고 성실히 환자들을 진료하고 약을 조제해주며 주의사항을 하나하나 웃는 얼굴로 일러주는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외국인도 더러 눈에 띄었다. 두 시간 여의 취재가 끝나자 이번에는 우리들을 또 다른 거리캠페인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비합리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대응폭력에서의 자그마한 승리로 소나가치의 여성들은 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르고, 그해 11월에는 캘 커타를 포함한 벵갈주 전역의 매춘여성들의 공개집회를 개최했다. 캘커타대학 강당에서 치뤄진 1회 대회 후 5,000여명에 이르는 매춘여성들은 캘커타 시내를 행진했다. 이것이 외부에 공개된 최초의 매춘여성들의 집회로 기록된다. 현재 MSC의 활동은 크게 보건분야와 매춘여성들을 위한 각종의 활동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보건분야의 활동인데, 자나 박사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의료봉사자들과 캘커타 일대 12개 장소를 거점으로 진행된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소나가치 및 캘커타의 군소 홍등가 내부에 위치한 보건소에서 매춘여성은 물론 그 가족, 그리고 홍등가에 들리는 손님들까지 각종의 성병과 기타 질병들을 무료로 진료해주고 치료해주는 활동들을 통해 MSC는 홍등가에 필수 불가결한 조직으로 자리잡는다. 매일 이 시간이 되면 MSC 회원들은 녹색가운을 입고 홍등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돌보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보건캠페인을 벌인다. 녹색가운 자체가 스스로 매춘여성임을 드러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는 사람들이나 MSC회원 자체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활동은 놀라운 결과로 드러난다. “소나가치에서 콘돔 사용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1992년 당시 콘돔 사용자가 2∼3%였던 것이 1998년에는 무려 78%를 차지했고, 에이즈 감염률도 28%에서 12%로 격감했다”(스마라지트 자나 박사). 해외취재에서 긴장의 끈을 놓으면 항상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취재원과의 원활한 협조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돌발상황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취재 사흘째 MSC활동의 본거지인 소나가치의 본격 취재에 들어갔다. 도착해서 두 시간 가량 소나가치에 있는 그들의 사무실에서 전반적인 현황과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상을 인터뷰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코디가 너무 마음을 놓지 말고 항상 회원들 가운데에 있으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건만, 취재진 주위에 MSC회원들이 4∼5명씩 항상 둘러싸고 있어서 촬영에 지장을 느낀 나는 슬그머니 무리에서 이탈해서 홍등가의 다른 모습을 찍는 도중, 시커먼 남자들 5∼6명이 순식간에 나를 에워싸고 카메라를 뺐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들 말로 시끌시끌하더니 어느새 옆구리로 차가운 금속성의 물체가 감지되고...아찔했다. 첫날부터 코디하던 친구가 조심하라고 했는데, MSC회원들과 같이 다니던 며칠 동안 경계심이 사라지고, 그들(MSC)의 힘을 너무 과신했던 것 같다. 잠시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녹색가운(녹색가운은 MSC회원의 상징이다)을 입은 MSC회원 10여명이 달려와 그 남자들을 몸으로 밀어내고 재빨리 나를 그들의 무리 가운데에 쏙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그후로도 몸싸움은 30여분간 계속되고 그 남자들은 후퇴했다. 그날의 취재는 그걸로 끝나고 MSC사무실로 돌아와서야 경위를 알 수 있었다. 소나가치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9년이 흘렀고, MSC가 결성된지도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은 소수였다. 오후 2시까지의 캠페인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그들의 일터인 홍등가로 돌아가야 하고, 여전히 홍등가는 견고한 요새였다. 아직까지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보건캠페인으로 대표되는 무료진료...), 홍등가 전체의 영업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포주나 깡패들이 그들의 활동을 묵인해주는 정전상태가 지속되고 있을 뿐 여전히 그곳에는 폭력과 억압이 횡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인도 내부의 방송은 물론, 외국의 방송사도 비디오카메라로 취재한 적이 없는 험한 곳에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를 휘둘러 댔으니... 그래도 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자나 박사와 MSC측에 부탁을 했지만, 그들의 마지막 말에 더 이상의 무리를 감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은 수 시간 동안의 대화의 마지막에 들은 자나 박사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어쩌면 당신은 프로그램을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그 그림을 찍어갈 수 있다. 우리들 몰래 찍어 가는 것까지 우리가 통제할 길은 없다.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우리도 당신의 생명을 보호해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신이 떠나고 난 후에 우리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우호적인 관계로 되돌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흐를 것이다. 당신이 판단해주길 바란다”. 취재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욕심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욕심은 PD로서 프로그램을 대하는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에서 요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홍등가의 매춘여성들이 활발한 권익보호투쟁을 한다...이들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어두운 삶의 편린들이 흩어져 있다...이들의 밝은 오늘은 짙은 어둠과 대비되어야만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등의 드라마 스토리가 머리 속에 박혀있는 것이고, 그 모든 것들을 비디오로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현장에서 무리를 감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 당시 그들이 막무가내로 촬영을 중지시켰다면 나도 감정적으로 몰래카메라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촬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내가 떠난 후 그들의 활동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프로그램이 어떠한 의미인가? 나는 왜 굳이 그 먼 곳까지 찾아갔을까?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 현장이 있어야만 프로그램의 메시지가 전달되는가? 현장에 맞닥뜨려 있는 PD는, 특히나 <아시아리포트>와 같이 PD 혼자 현장에서 모든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 작업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돌발상황에서 순간적인 결정은 프로그램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이번의 경우 소나가치 홍등가 여성들의 생생한 삶은 인터뷰로 처리했다. 실제 그들의 삶을 밀착 취재하는 대신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내게 신뢰를 가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때때로 현장에서는 취재원과의 우연한 의기투합이 되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기는데, 나의 경우 프로그램의 논리보다는 현장의 논리를 신뢰하는 편으로 결정을 내릴 경우 예상치 않은 도움의 손길이 벌어진다. 더 이상 홍등가의 삶에 대해 밀착 취재하거나 몰래 찍어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 MSC측에서는 전날 밤 긴급회의를 열어 그들의 남은 활동에 대한 상세한 스케줄을 숙소로 통보해왔다. 스케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들의 배려가 숨막히는 일정표에그득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거리캠페인은 소나가치를 지역별로 나눠 10명 단위로 조를 짜서 가가호호 방문하여 콘돔을 나누어주며 성병 및 에이즈예방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다. 거리캠페인 역시 소나가치의 거리에서 하는 일이라 전날의 경험도 있고 해서, 불필요한 의심을 살 행동은 아예 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그들이 찍어도 좋다는 사인이 왔을 때 버튼을 누르고, 곤란하다는 표시를 해주면 즉시 카메라를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몇 번을 그러다 보니 어제의 그 깡패들과 포주들도 먼발치에서만 지켜볼 뿐 접근하거나 더 이상의 시비를 걸지 않았다. 오히려 그 중의 일부가 다가와 웃으면서 무엇을 취재하는지 물어도 보고 예상치 않게 즉석 인터뷰도 했다. 이들과 2시간 가량 취재하고 취재진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집의 옥탑 방. 영문도 모르고 들어선 그곳에서는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대부분 문맹인 매춘여성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자각하는 가장 빠른 길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그들의 눈으로 정확히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은 글자를 깨우치는 일이기 때문에 일종의 야학 같은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들과 매춘여성 중에서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자원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이런 종류의 교육은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곳에서 글을 가르치는 매춘여성이자 교사인 미투 닷의 말이다. “교육을 받기 전까지 우리들은 아무 것도 몰랐다. 때리면 맞고 돈 안주고 도망가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읽고 쓸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자신을 깨우쳐가고 있다”. 다음날 아침 취재진이 도착한 곳은 홍등가에 사는 아이들의 작은 학교였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아버지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빈민계층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에게 교육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MSC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어머니들의 교육 못지 않게 아이들의 교육도 중요하다는 것. 골목길을 들어서자 낭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2평 남짓한 공간에 바글바글한 아이들. 초롱한 그들의 눈망울들. 그들의 희망을 물어봤다. 아직 세상의 굴곡을 모르는 아이들의 천진한 꿈이 오롯하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에는 어쩔 수 없이 홍등가의 삶이 배어있다. “경찰이 되어 우리 엄마 못살게 구는 깡패들을 잡을 거예요”,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줄 거예요”, “선생님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세상의 부조리함과 그 부조리함을 바꾸려는 동네아줌마들의 삶이 아이들의 꿈으로 투영된 게 아닐까? 이제 취재의 마지막이다. 4월 30일 메이데이 전날 캘커타대학 강당에서는 제2회 벵갈주 매춘여성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1995년 1회 대회 이후 4년 만이다. 아침부터 후끈 달아 오른 캘커타의 열기는 계속되었고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 캘커타 인근에서 모인 3,000여명의 매춘여성들로 가득하고, 그간의 경과와 성과들이 발표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가득하다. 대회 마지막 순서로 소나 가치프로젝트 깃발을 선두로 MSC 본부깃발, 각 지부의 깃발들이 연단을 가득 메우고, 연단에 있는 사람들과 강당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부르는 “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하리라)”가 울려 퍼지자 곳곳에서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대회장을 나선 이들은 각종의 구호를 적은 플랭카드와 깃발을 들고 캘커타 시내를 가로질러 MSC 본부와 그 인근도로에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저녁 7시가 되자 마치 그림자가 살아나오 듯 사람들이 소나가치 한복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메이데이 노동절 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이들을 옭아매었던 삶의 현장에서 목청껏 그들의 요구를 외친다. 소나가치를 빠져 나와 캘커타 중심부를 지나면서 어느새 준비된 횃불에 불을 붙이고 가로등 하나 없는 캘커타의 어둠을 밝히는 등신불의 모습에서 그들의 과거와 빛으로 나아가는 지난한 발걸음을 본다. 가슴 한 구석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온다. 캘커타를 떠나면서, 그리고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나는 이 한마디의 말을 건졌다. “(지난 5년간) 많은 것을 얻었지요. 세상에 돈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배운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당신 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제야 눈을 떴습니다. 전에는 어두움에 버려져 있었고, 아직도 그 어두움 속에 갇혀있는 자매들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그들에게 빛을 주려고 합니다. 그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지요(만주 비스와스/MSC회원).”
    2003-07-08
  • EBS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뉴스’
    EBS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뉴스’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푸른학교 편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뉴스 -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푸른학교’편은 E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이다. 이 글을 쓴 구재모씨는 제5회 인권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된 다큐멘터리 ‘평화의 시대’를 제작한 감독이다. 현재 한국영상방송아카데미 비디오저널리스트 특강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편견없는 시선으로 푸른학교에 맡겨진 아이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글 | 구재모(Korea Art Center 영상팀 PD) E-mail: rockspider@netsgo.com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다큐’라는 것에 대해서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밑줄 그으며 읽었던 책들에서 ‘다큐는 이런 것이다’ 라고 내려진 정의들은 많았지만, 난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위의 질문들을 다시 한 번 던져보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곤 한다. 거창한 사명의식은 아니지만 내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인생에 대한 나의 어설픈 이해로 인해, 그들에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을 하지 않으려고 난 항상 고민한다. 어쩌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이지만, 촬영 현장에서 겪게 되는 카메라를 든 사람과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과의 관계는 항상 가장 큰 고민이면서 어려운 점이다. 더군다나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그것도 카메라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대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갑자기 잡힌 촬영 일정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 한잔을 하고 밤 12시가 넘어서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학교 선배로부터 내일, 아니 오늘 촬영을 좀 해 줄 수 있겠냐는 전화가 왔다. 특별한 일이 없었던 터라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고, 소개를 받았다는 담당CP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시 작가로부터 간단히 설명 받고 자세한 내용의 구성안을 메일로 받았다. 프로그램은 EBS에서 매일 방송되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뉴스’라는 15분물 다큐멘터리였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작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번에는 용인에 있는 작은 학교를 소개한다고 한다. 구성안을 받아 들고서 다시 작가와 전화통화를 해 보니, 이건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 성우 더빙과 믹싱까지 모두 책임져야하는 ‘연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은 6mm 디지털로 촬영하는,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VJ형식의 프로그램이지만, 다른 프로그램의 꼭지물이 아닌, 한 아이템이 독립프로그램이 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요즘은 PD들도 6mm 촬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VJ라는 이름이 정확한 것일까, 아니면 PD라는 이름이 정확한 것일까? ‘비디오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아직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못했기에 여전히 조금은 헛갈리는 부분이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에서는 ‘VJ 구재모’가 아닌 ‘연출 구재모’라는 이름으로 나가는 방송이니 그렇게 정리를 해 두자. 남은 시간은 불과 12시간 정도? 일을 그냥 덜컥 맡아 버린것에 대한 후회가 약간 들었다. 이미 시간은 새벽 두시를 넘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 할 수도 없고.... 정신을 차리고서 구성안과 약간의 자료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날은 밝아 오고, 다시 한번 구성안 훑어보면서 촬영 순서를 정리하고, PD-150을 어깨에 둘러메고 용인으로 향했다. 촬영을 준비하면서 촬영 약속은 오후 두시로 잡혀있다고 했다. 초행길이고 또 내가 현장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 못한 터라 조금 일찍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경부고속도로로 향했다. 학교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 대표분께 전화를 드렸는데, 왠지 목소리가 그리 탐탁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학교 위치를 확인하고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학교 주변 동네 스케치 촬영을 몇 컷 하고서 다시 구성안 검토. 푸른학교라는 이름의 그곳은 정식 학교는 아니고, 실직자 가정의 자녀들을 방과후에 데려다가 무료로 공부를 가르치고 식사를 해결해 주는 일종의 공부방이라고 한다. 약속시간 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통화했던 주경희 대표를 찾았다. 마침 주부 컴퓨터 교실 수업중이라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 대해 이런 저런 소개를 하고 푸른학교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며, 수업 중에는 인터뷰가 어려울 것 같아 미리 인터뷰를 부탁했는데, 뜻밖에 약간의 짜증까지 내는 것이 아닌가? 물론 많은 상황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선생님들도 모두 자원봉사자들이고 학교 운영도 후원금으로 유지된다는 곳인데, 이런 곳이 방송에 나간다면 학교 입장에서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 한데 도리어 귀찮아하는 반응에 잠시 생각을 정리해 봐야만 했다. 담당 구성작가가 자료수집을 위한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했었겠지만, 이럴 때는 다시 한번 내가 직접 프로그램에 관한 설명을 ‘공손히’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어떠한 의도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어떤 내용들을 담고자 한다는 내용의 설명을 푸른학교 대표께 충분히 드렸다. 그제야 잠시나마 짜증을 냈던 이유를 설명하는 대표의 얘기를 듣고 난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내가 그곳 푸른학교로 취재를 가기 얼마 전 타 공중파 방송사 1곳과 지역 케이블 방송사에서 그곳 푸른학교를 취재해 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푸른학교 대표님은 그렇게 나간 방송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이었다. 촬영을 하면서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요구를 하다 보니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은 피곤에 지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 방송에서 그렸던 그곳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모습이 사실과는 조금 다르게 나갔던 모양이었다. 푸른학교에는 매일 평균 40여명의 아이들이 온다. 대부분 부모님들이 IMF때 실직을 한 가정의 아이들로서,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에 갈 때, 갈 곳도 없이 또 함께 놀 친구도 없이 그냥 골목길을 배회하는 아이들을 보고서 그냥 놔둘 수가 없어서 만든 것이 푸른학교이다. 가난은 단지 불편한 것일 뿐이며 시대적인 문제이지 그 아이들 개개인의 잘못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가난이라는 것조차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세운 푸른학교를 통해서 새로운 작은 공동체의 의미를 만들어 가고 싶은 것이 주경희 대표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전에 나간 방송에서는 내가 직접 보지 않아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주경희 대표의 말에 따르면, 그 아이들의 ‘가난한 모습’에 포커스가 많이 맞추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촬영 시간에 정확히 도착을 해서 정해진 구성안 대로의 촬영만을 했다면 아마 나 또한 그러한 실수를 범했을 지도 모른다. 단지 몇 시간 동안 습득한 십 수 개의 정보들만 가지고서, 그것도 15분이라는 시간 내에 취재 대상의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에 다시 한번 조심스러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어떠한 주어진 조건이라도 깔끔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기획/구성력, 연출력이고 그것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지녀야 할 당연한 요소들이지만, 간혹 프로그램을 위한 제작이 되는 경우는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럴 것이고. 그렇게 얘기를 나누면서 제작 방향을 다시 검토하고 가다듬을 수 있었다. 촬영은 시작되고 언제나 그렇지만 아이들을 촬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카메라를 향해 소리 지르고 달려들고... 아이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만 한다. 그런데 이곳 푸른학교 아이들은 유난히 더 심했다. 이미 카메라를 몇 번 본 탓인지, 어떤 아이는 PD-150 카메라의 LCD 모니터를 열어달라는 황당한 부탁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오후 4시부터 시작되는 수업을 위해서 3시에 푸른학교에서 봉고차가 출발한다. 아이들 데리러 가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함께 차에 올랐다. 한 두 명씩 아이들이 차에 타고 갑자기 만난 카메라에 어리둥절해 하더니만 이내 장난은 시작되었다.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들이지만 일부러 무섭게 보이거나 야단을 쳐서 얌전히 ‘촬영하기 좋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 한 끼를 집이 아닌 푸른학교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가난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의 눈동자는 너무도 맑고 밝았기 때문에, 그냥 있는 그대로 촬영하기로 하고 마이크 녹음 레벨만 신경쓰며 아이들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은 가난으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들로만 가득찬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또래의 아이들보다도 더 맑고 밝은 모습들이었다. 저녁 6시부터는 저녁시간이다. 근처에 있는 용인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아이들을 위한 식사를 매일 준비해 주는 덕분에 아이들은 저녁을 굶지 않을 수 있었다. 촬영을 다니다 보면 어려운 상황 중에 하나가 바로 밥 먹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다. 식사하는 모습을 촬영하려하니 푸른학교 대표와 선생님들이 나도 함께 밥을 먹으라고 한사코 권유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촬영을 해야 했기에 어렵게 거절을 하고(사실 나도 배는 무지 고팠지만) 아이들 얼굴을 담기 시작했다. 한 입 가득히 비빔밥을 먹는 모습들이 너무도 귀엽고 예뻤다. 햄버거와 피자에 입이 길들여진 요즘의 일부 아이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김치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이곳의 아이들에게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밥을 다 먹고서 스스로 치우는 모습까지, 그리고 하늘이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봉고차 안에 있던 한 아이가 내게 “아저씨, 찍어 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했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 하지만 그 아이의 말이 왠지 정감있게 들리는 건 왜일까? 편집에서 마지막 부분에 그 아이의 말을 넣었다. 보는 사람들이 그 아이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짓게 만들고 싶었고 그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무엇이 고맙다는 것인지는 뭐 여러 가지로 답을 내릴 수 있겠지만, 굳이 해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넉넉지 못한 환경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그냥 느낌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밝은 아이들과 그렇게 밝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푸른학교’ 선생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촬영에 협조해 줘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덜 어둡게 만들려고 하는 그 분들의 노력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2003-07-08
  • NAB의 SONY
    (이 글은 전체적인 참관기에 넣기에는 너무 길어지는 것 같고, 특히 한국인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해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따로 정리했음) NAB에 참가한 수 백 개의 H/W와 S/W 업체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회사가 바로 SONY일 것이다. 우리와 인접한 일본의 대표적 기업이라기 보다는 방송 시장의 대표적 메이저 업체로, 첨단을 걷고 있는 기업이기에 한국 참가단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방송 관계자들이 SONY Booth만은 반드시 들렀다. 지난 99년 Digital TV와 지난해 Internet을 메인 컨셉으로 들고 나왔던 SONY는 올해 "Anycast"라는 다소 생소한 아이템을 등장시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아이템이 아니었고, 일반인들에게 익숙해진 주제도 아니어서 배경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SONY 자체에서도 컨셉을 객관화하고 공유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 듯 했다-미래지향적인 의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NAB 전시장 가운데 가장 중심에,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각종 전시와 데모를 통해 자신들의 컨셉 홍보를 실시했다. SONY가 내세운 "Anycast"는 간단히 요약하면 그동안 단방향성으로 이뤄지던 Broadcast와 상호 교류적인 Network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우리가 이해하는, 곧 시행될, 위성방송·디지털 방송을 뛰어넘어 모든 매체와 모든 콘텐츠를 포괄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즉 그동안 특정 제품이나 특정 기술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사업에서 H/W와 S/W 전 분야로 방송 사업을 이끌어가고 차지하겠다는 속셈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하다. SONY는 이를 위해 최근 상품 위주의 조직에서 고객과 시장 중심으로 개편해, BSNC(Broadband Solutions Network Company)를 신설했다. 다소 추상적인 SONY의 Anycast는 현재 세가지 목표를 세우고 추진중이다. 첫째는 Rich Contents. 다매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역량을 키워간다는 의미로, 360도를 커버하는 카메라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든가 이미 영화사업에 뛰어든 점 등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 둘째 Broadband Platform. 어느 매체이든 어느 시간과 공간이든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터넷처럼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콘텐츠들이-주로 방송사이겠지만-Tape으로 남아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느 종류의 Tape이든 File로 전환할 수 있고, 저장할 수 있는 Network VTR 개발 등을 하겠다는 것이다.(물론 시장의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계산도 들어있겠지만) 셋째, Solution Provider. 이상과 같은 설계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환경을 만들고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SONY의 Anycast를 보면서 아직 경험하지 못한 환경이기에 현재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미래지향적이고, 눈앞에서 구현될 경우 받게 될 새로운 충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감됐다. 또한 낯선 황당함보다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당황함이 앞섰다. 앞서 말했듯이 실체적으로 새로운 아이템은 눈에 띄지 않았으나, 자체 개발한 Non-Linear 프로그램인 XPRI[i:kspri]와 그동안 나왔던 모든 Tape의 이용과 전환, 편집이 가능한 MSB-2000 등이 관심을 모았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곧 서울에서 열릴 KOBA에서 확인 가능 할 듯) 한편 NAB 시작에 앞서 기자들을 상대로 가진 설명회에, 조지 루카스 감독이 참석해 자신이 현재 제작중인 Episode II에 SONY의 24P 카메라를 사용중인데 기존 35mm 카메라보다 화질이 뛰어나고, 다시는 필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돼 있었다. (관련 CD를 갖고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연락바람)
    2003-07-08
  • NAB 2001 참관기
    (NAB는 국제방송기기 전시회로 매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KOBA가 있죠) <<<<< NAB 2001 참관기 >>>>> 충주 문화방송 보도국 이 승 준 리눅스가 대중적 지지에 힘입어 자신만의 컴퓨터 환경을 만들어가더라도 윈도우즈가 이미 컴퓨터 왕국의 공룡으로 자리 잡았고, 앞으로도 이 세상을 이끌고 가리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린 NAB 2001에서는 "Non-Linear"라는 낯설지 않은 녀석이 이제 방송계를 이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Avid와 Editbox, premire 등이 Non-Linear 프로그램의 전부인줄 알았던 내게 NAB는 수 백개가 넘는 관련 프로그램들을 보여줬고, 이미 방송 세상의 큰 흐름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기존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들고 나와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었고, 하드웨어 제작사들도 자신들의 장비에 적합한 Non-Linear 프로그램을 들고 나와 우수성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또한 관련된 컴퓨터 그래픽 S/W와 H/W도 눈부시게 발전해, 상상만 하면 모든 것이 이뤄지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해리 등 국내 광고계와 영화 등 특수 분야에서만 사용되던 첨단 기법 등이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누구나 자신의 PC에서 구현해 내는 빠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같은 Non-Linear 환경에 발맞춰 News Solution(뉴스의 일괄처리방식, 굳이 풀이하자면 뉴스를 프로그래밍해서 PD가 혼자 진행하는 것)이 또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듯 했다. 오히려 뉴스 솔루션이 이미 자리를 잡아서인지 News Coverage(저장)와 Distribution(송출)에 대한 구체적인 사양들을 제시하며 홍보에 나서고 있었다. H/W 분야에서는 특이한 장비나 획기적인 신제품은 눈에 띄지 않았으나, 메이저 회사들은 HDTV 관련 제품들에 주력하는 모습이었고, 붐 마이크와 크레인, 스테디 캠 등 보조 장비들은 사용자의 편의를 충분하고 세심하게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들이 선보였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소품은 각종 효과음과 타이틀 음악 등을 CD로 시리즈를 만든 뮤직 라이브러리와 실제 뉴스 세트를 대신할 수 있는 Virtual 스튜디오 등은 개인이나 소규모 업체 등에서 알맞게 활용한다면 방송의 질을 손쉽게 한 차원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NAB2001은 두 곳의 컨벤션 센터에서 TV·Film, Audio, E-Topia 등 세 분야로 나뉘어 진행됐다. 이틀을 꼬박 돌아다녔는데도 결국 Audio 분야는 보지도 못했고, E-Topia와 TV도 주마간산 격으로 보는데 그쳐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특히 전문 기술 분야에 대한 지식 부족보다 영어에 대한 모자람이 NAB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라스베가스에 대한 견문을 모두와 함께 나눠야 하지만 그러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NAB에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분은 www.nab.org를 참고하시길...
    2003-07-08
  • 뛰면서 꿈꾸는 이들이 모여 있는 일당백의 ‘막강
    뛰면서 꿈꾸는 이들이 모여 있는 일당백의 ‘막강 '뛰면서 꿈꾸는 우리’ 언젠가 내가 회사에 입사해 카메라 기자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채 느껴보기도 전에 처음으로 읽었던 책의 제목이다. 5∼7년 차 경력의 한창 물오른 14명의 현직 기자들이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얘기들을 진솔하게 담았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 책의 내용들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제목만은 나의 머리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기자 특히 뉴스방송의 카메라 기자들을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다. “영상취재팀! 우리 부서는 바로 뛰면서 꿈꾸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우리 부서는 말 그대로 영상을 취재한다. 아니 어쩌면 영상으로 기사를 쓴다는 표현이 맞겠다. 방송의 뉴스가 신문이나 다른 인쇄매체의 기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동적인 영상을 담아 시청자들에게 보다 생생한 실시간의 뉴스와 정보를 전달해 준다는 데 있다. 바로 기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살아 있는 뉴스 깨어 있는 방송” 24시간 뉴스전문 채널이자 한국의 CNN인 YTN이 지향하는 모토이다. 그 한가운데에 영상취재팀이 있다. 그래서 우리 부서는 항상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부서요 사내에서 가장 시끄러운(?) 기가 살아있는 부서이다. YTN 영상취재부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이한상 부국장 이하 50여명의 카메라 기자와 사운드맨 그리고 런닝맨으로 구성된 YTN내에서 가장 인원이 많은 취재 부서다. 그런데도 24시간 뉴스의 특성상 쉴 새 없이 발생 및 기획뉴스를 챙기다보면 또 항상 인원이 부족한 곳이 우리 부서다. 그만큼 영상취재팀은 YTN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서이다. 요즈음 세간에 그 내용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세상을 소리 없이 움직이는 힘’이라는 모회사의 광고카피도 있지만 영상취재팀이야말로 사내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우리 부서엔 대한민국 그 어느 방송사에도 없는 아주 독특하고 희한한(?) 시스템이 하나 있다. 바로 원 맨 시스템이다. 이 말이 정확한 표현인지 아닌지 나도 장담을 할 순 없지만 언젠가부터 모두들 그렇게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YTN에만 존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카메라 기자와 오디오맨의 역할을 카메라 기자 혼자서 다 한다는 것이다. 즉 멀티펑션이요. 일당백이다. 그래서 YTN의 카메라 기자들은 더 힘들고 고달프다. 격렬한 시위의 현장이나 촌각을 다투는 중요한 내용의 기자회견장, 또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등과 같은 극한 취재의 상황에선 참으로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남보다 앞서 뉴스영상을 내보내려 노력 해 왔었고 또 많은 특종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젊음과 투철한 기자정신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부서는 전문가 집단이다. 늘 깨어있는 진실한 방송을 위해 우리가 보는 ‘세상을 보는 눈’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ENG카메라의 눈, 뷰파인더는 바로 그런 균형 잡힌 의식을 담아내는 도구로서의 세상을 보는 눈이다. 우리 부원들 모두 그런 눈을 가지려고 오늘도 애쓰고 있다. 특히 김재동 부장은 YTN이 뉴 밀레니엄 특집으로 기획한 다큐멘터리 7부작 ‘새 천년을 꿈꾸는 땅’으로 작년 한 해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대한민국 영상대전 프로특별상, 한국TV카메라기자회 특별상 그리고 YTN 올해의 우수프로그램상 등을 수상했는데, 취재를 위해 두 차례 100여일 간 몽골과 유라시아 지역 등 지구 반 바퀴에 달하는 지역을 샅샅이 훑었으며, 각종 휴대용 취재장비의 개발과 차량의 개조를 통해 장거리, 장기간 오지취재에 대비하였을 뿐 아니라 편집과정에서는 연속디졸브 공식 개발을 통해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또 일본어에 능통한 한원상 기자는 지난 해 이제까지 사진 한 장으로만 알려져 있던 북한 생존 위안부 박영심 할머니(79)의 생생한 육성과 당시 위안소를 출입했다는 일본군 출신의 하야미 마사노리(78)씨의 증언 그리고 미국과 일본에서 결정적 증거자료를 발굴하는 등 1년 간 단독 취재한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방송함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이 테이프는 정신대 문제를 다룬 동경국제법정에서 증거자료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YTN 공로상 등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MBC 라디오를 비롯한 국내외 언론에 취재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편 이문세 기자는 수중촬영 전문가로서 지난 1년 동안 주말도 잊은 채 ‘한국의 민물고기’를 꾸준히 카메라에 담았는데 우리 부서가 자체 기획한 것으로 한국TV카메라기자회 우수영상부문 최우수상과 YTN 올해의 우수프로그램상을 받는 영예를 차지했다. 앞에서도 잠시 얘기했지만 우리 부서엔 카메라 기자들 외에도 8명의 사운드맨 그리고 3명의 런닝맨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부서로서는 사실 엄청난 대가족인 셈이다. 그렇다보니 재주 많고 특별한 사람들도 많다. 사회팀을 맡고있는 이철용 차장은 후배들 사이에선 ‘봄비’로 통한다. 회식자리에서 술이 한잔 거나하게 들어가면 여지없이 특이한 비음의 봄비라는 노래를 멋들어지게 뽑아내곤 한다. 한 때 사회팀장을 장기 집권했던(?) 조성룡 차장은 후배들에게 카메라 기자로서의 기본적인 예절과 프라이드를 심으려 무척 노력했다. YTN 영상취재부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그의 숨은 노고가 컸다고 많은 후배들은 생각한다. 한편 우리 부서의 빼놓을 수 없는 올빼미 족. 바로 스타크래프트 매니아들이다. 이들은 주로 퇴근 후 모여서 게임을 즐기는데 강재환 기자를 비롯해 김정한, 이승환, 성도현, 권한주 기자 등이다.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 ‘게임은 계속되어야 한다 쭈우욱…’. 역시 우리 부서는 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지켜보기에 안타까운 부원들도 있다. 우리 부서의 심부름꾼으로 총무 및 경리역할까지 하고 있는 박관우 기자와 막내 아닌 막내인 공채 5기 김민, 김종완, 박정호 기자 이후로 새로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후배가 없다. 그 누구보다도 후배들을 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이 문장은 글의 중요성과 힘을, 현대에는 언론의 힘을 잘 표현해 왔다. 그러나 당시에는 카메라가 없던 시대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제는 ‘The camera is mightier than the gun’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영상, 특히 보도영상의 영향력은 크다. 새로운 21세기의 출발선에서 보는 세상은 시시각각 더욱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그 역사와 시간의 한 가운데에서 오늘도 몸은 힘들고 고달프지만 젊고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취재의 현장을 뛰면서 꿈꾸는 우리 부원들의 화이팅을 외쳐 본다.
    2003-07-08
  •  뇌성마비 어린이들의 잔치
    이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줄 몰랐다. 이토록 많은 어머니들이 멍든 가슴을 안고 사는 줄 몰랐다. 오후 2시, 데스크로 부터 뇌성마비 어린이들의 작은 잔치를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무 생각없이 도착한 자그마한 공원.... 휠체어를 탄 많은 어린이들과 어머니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그들만의 잔치였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춤을 추는 아이, 벌려지지 않는 입을 오물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내가 정상인이라는 것이 이토록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 어떻게 이들의 모습을 표현해야 할까.... 어려운 숙제였다. 일단 그들의 모습을 모두 담기로 했다.(표현에 자신이 없을 때, 촬영하는 테잎의 양이 많아진다) 특히 그들의 표정에 많은 신경을 썼다. 촬영하는 과정 속에서 점점 뚜렷하게 감이 다가 왔다. 그들이 나에게 해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들도 하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고통, 슬픔, 동정 이런 모든 감정은 표현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희망, 의지, 밝은 모습을 담아 달라고 나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회사에 돌아온 후, 편집과정 내내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가?','왜 이런 표정을 놓쳤을까?' 완성된 아이템은 아침뉴스에 나갔다. 방송 도중 내내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몰랐다. 거품을 문 입가에서 솟아나는 미소, 맑은 눈동자, 몸을 비비꼬며 춤을 추는 아이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모든 것들을 내 눈으로 확인했건만....), 이 모든 것이 내 화면 속에는 없었다
    2003-07-08
  •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KBS 영상취재부 김상하 기자 '징크스'나 '머피의 법칙'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취재하다보면 이상한(?) 일들이 심심치않게 생깁니다. 우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경우입니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던 것들이 막상 그걸 대상으로 취재를 하려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연초에 택배 관련 취재를 할 때였습니다. 평소 거리에 그렇게 많던 택배 차량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습을 숨기고 말았습니다. 다들 어디로 간건지... 한시간, 두시간, 방배동, 신림동 등 거리를 헤매고 나서야 어렵게 그것도 세 대만 간신히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다른 취재를 하려고 거리로 나섰는데 왜 이리 택배 차들이 많은지... 취재차 앞, 뒤, 옆으로 '날 좀 찍어주쇼' 하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상만 약간씩 다를뿐 적잖은 촬영기자들이 경험하게되는 쓴웃음 나는 현상입니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우연히 아이템에 맞는 장면이 차창 밖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취재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덜 됐기 때문에, 그보다는 조금 귀찮은 마음에 '흔한 장면이니까 좀 더가면 더 좋은 그림이 있을꺼야.' 하고 지나치면 먼저 봤던 장면은 나의 안일한 판단을 비웃듯 절대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게으름을 탓하거나 운전기사에게 부탁해서 기억 속의 그 장소로 돌아가는 정말 미운짓을 해야 합니다. 물자 절약 차원에서 재생 테입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끔 일어나는 아주 저주스러운 현상. 정부나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장. 기자회견문 낭독하는 것을 촬영했는데 회사에서 확인해보니 정작 필요한 녹취 부분에 딱 한 줄의 심한 스크레치(테입이 손상돼서 화면이 일그러지는 현상)가 생겨 쓸 수 없는, 아주 기막힌 일도 종종 생깁니다. 취재 기자 스텐드업(리포트 중간에 취재 기자가 직접 나와 설명하는 부분)도 보통 서너 번, 많게는 열 번 넘게 촬영을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컷은 이상하게도 오디오 NG가 나던지 스크레치가 생겨있으니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행사 취재 스케줄을 받으면 시간과 장소를 확인합니다. '광화문 프레스 센타? 이정도면 여의도에서 30분정도면 되겠지'하고 조금 여유 부리다가 어림잡은 시간에 맞춰 회사에서 출발하면 다른 때와 달리 왜이리 길이 막히는지, 건널목 지날 때마다 빨간불에 걸리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취재차 안에서 늦을까봐 안절부절, 연신 시계를 보며 식은땀만 흘리고... 그런 때는 왜그리 시간은 잘도 가는지... 시작시간 30분전이 금방 10분전으로 바뀌고, 조금 일찍 출발할 걸 하는 후회만 가득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주로 1-2년차 초년병 시절에 많이 일어납니다. 그때는 적잖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은 아무 문제없이 잘도 촬영해 가지고 오는 것 같은데 내가 취재 나가면 왜 이런 저런 일들로 꼬이는지... 꼭 필요한 녹취 부분에서는 말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데를 촬영하고 있거나, 그나마 촬영했는데 스크레치가 생겨 버리거나, 시간에 쫓기는 취재를 나가면 왜 가는 곳마다 길은 막히는지... 강북강변로와 올림픽대로 중 왜 우리가 가는 길만 이렇게 막히고 강 건너편은 잘도 뚫리는지... 나를 괴롭히던 그런 일들이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었음을 느낍니다. 왜냐고요? 차 타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이 보이면 '조금 더가볼까'하는 고민없이 '스톱'을 큰소리로 외치고 바로 카메라를 들고 내립니다. 중요하다싶은 녹취는 재생 테입(물자 절약 차원에서 재생테입과 새 테입을 같이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합니다)이 아닌 새테입만을 가려 사용하는 얕은 수도 익혔습니다. 행사 취재? 몇 번을 마음 고생하다보니 이제는 보통 행사 시작 2-30분 전에 도착할 수 있게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차에서 푹 쉬고, 도착해서는 오디오 라인과 촬영 포인트를 선점해 놓는 노하우아닌 노하우를 갖게됐습니다. 제가 1-2년 차일 때, 일에 관한한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던 선배들도 아마도 오랜 기간 그런 시행착오를 거쳤을 겁니다. 저처럼 차안에서 식은 땀도 흘리고, 바로 촬영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좀 더 완벽해 질 수 있는 방법들을 깨우치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징크스'니 '머피의 법칙'이니 하는 말들은 한낱 준비 덜된 자들의 핑계거리에 불과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법칙은 아직도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아직 제가 '준비 덜된 자'라는 반증일까요? 자료출처: http://news.kbs.co.kr/column/col_view/column_5_01.htm
    2003-07-02
  • 뺑소니는 꼭 잡힌다.
    KBS 영상취재부 김상하 기자 4월 30일 밤 1시 반경... 서울 휘경동 도로변에서 환경미화 작업을 하던 환경미화원이 차에 치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발생 시각이 인적이 드문 심야신간인데다 목격자의 진술이 정확하지 않아 담당인 청량리 경찰서는 뺑소니 차량을 잡는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뺑소니 사고 차량이 흰색 카니발이었던 것 같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참조해서 뺑소니 전담반 형사들은 사고 현장을 살폈고, 길가에 방향 지시등이 한 개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일한 단서인 이 방향 지시등의 모델을 찾는 한편, 사고를 당한 환경미화원의 옷에서 사고당시 차량으로부터 뭍은 것으로 보이는 페인트 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이 옷을 국과수에 보내 차량의 색깔이 흰색이 아닌 은회색이라는 것을 밝혀냈고, 방향지시등의 모델이 카니발이 아닌 스타렉스 모델이라는 것을 확인해 사고 차량은 '은회색 스타렉스'로 압축됐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사고 차량이 집으로 가던 도중 사고를 냈다고 가정한다면 차량의 소유지는 서울 북부지역으로 다시 한번 압축되는데, 서울 북부지역에 등록되어있는 은회색 스타렉스는 1180대가 넘기 때문에 이들 차량을 조회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40여명을 투입해 동일 차종의 보험기록과 정비소 수리 일지를 점검, 확인 작업 끝에 721번째 조사차량이 방향 지시등과 그 주위에 충돌의 흔적이 있는 용의 차량으로 보고 운전자를 찾아, 운전자에게 일체의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사고 발생 20일 만의 결과입니다. 조사 결과 운전자는 친구와 소주 두 병을 나눠 먹은 뒤 음주운전을 했고 오토바이 뒤를 스쳤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고 진술했습니다. 정년 퇴임을 1년 앞두고 그 같은 일을 당한 환경미화원 가족들은 처음엔 증거도 없이 뺑소니 운전자를 찾는 것에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경찰이 이렇게 어렵게 사건을 해결해서 그나마 응어리진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뺑소니가 위험한 것은 살 수도 있는 사고 피해자를 길에 방치함으로써 제 2의 살인을 저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뺑소니 검거율을 80%에 달하기 때문에 거의 잡힌다고 보면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뺑소니에 관한한 각 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에 전담반을 구성해서 다른 사고 보다 특별히 중요하게 다루고, 이렇게 조그만 단서로 시작해서 결국은 범인을 잡아내고 맙니다. 뺑소니로 잡히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의해 일반 사망 사고보다 더 엄중하게 처벌받게 됩니다. 아무도 안보는 새벽. 혼자만 도망가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장의 모든 것들은 소리없이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 이렇게 안보이는 곳에서 밤낮으로 애쓰는 경찰이 많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자료출처: http://news.kbs.co.kr/column/col_view/column_5_01.htm
    2003-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