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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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메라기자 그들이 위험하다!
    카메라기자, 그들이 위험하다! 방수복, 방화복, 에어 마스크, 공기통, 방독면, 헤드 렌턴.... 갖가지 보호 장비를 갖춘 소방관들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하철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잠시 후 평상복에 손수건 하나로 입을 가린 카메라 기자들이 그 뒤를 따라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안전모, 고글, 방화복, 방진마스크, 방독면을 착용한 공무원들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불현장으로 모여든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는 카메라 기자. 대형 사고나 재난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끔 그런 장소에서 만나는 소방관이나 공무원들은 기침과 눈물을 흘리는 카메라 기자의 모습을 보고 “큰일 납니다.”, “더 큰 사고 만들지 말고 멀리 물러나세요.”하며 취재를 만류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들의 호의를 웃음으로 무시하며 “괜찮습니다.”, “제 안전은 제가 책임을 져요”하며 호기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카메라기자들도 보통의 인간이다. 그들을 채용하는 전형에 신체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사람을 뽑는 것은 아니며, 화마(火魔)를 겁내지 않을 만큼 재난 상황에 훈련된  사람을 채용하는 것 역시 아니다. 카메라 기자 그들 역시 수시로 위험을 직감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카메라기자들은 왜 지금도 철저한 준비 없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보유 장비가 부족한 현실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방송사가 가지고 있는 안전 장비라야 전쟁지역에서 사용하는 방탄장비(헬멧, 재킷), 방독면이 전부이다. 그것도 따로 보관되기 때문에 신속하게 현장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특별히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현장에서의 지나친 취재 경쟁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취재팀은 먼저 도착한 타사 취재팀이 어떤 영상을 확보했는지. 또 도착 전에 특별한 상황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이는 낙종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리를 잡는다. 속속 전해지는 현장 상황이 대략 파악될 무렵에 화재 현장에서 걸어 나오는 타사 취재진을 보기라도 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누구 할 것 없이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여러 방송사 취재진이 특정 화재 현장에 몰릴 경우, 근거리에서 진화 작업이나 구명 활동을 하는 구급 대원들에게 불편을 끼치기도 한다. 카메라기자들의 안전 불감증 화재 현장이나 대형사고 현장에서 취재하는 카메라 기자는 때로 그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지를 잊게 된다. 실제로 검은 연기 저편에서 불타고 있는 전동차를 촬영한다든가 연기로 자욱한 산불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위인지 잘 알지 못한다. 구조대원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안전장비를 이중 삼중으로 취하고 들어가는 소방관을 보고, 방독면 하나만 믿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때 카메라 기자들은 구조대원이 고도로 훈련되고 화재 현장의 경험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순간에 잊어버린다. 또 방독면의 경우, 화재 현장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사실 또한 쉽게 망각한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각 방송사마다 상황에 따라 상이한 안전정비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화재 현장에서 착용하는 옷, 안전화, 연기를 피할 수 있는 방독면, 고글 등은 필수적이다. 또한 이와 동시에 실제로 화재 현장에 안전장비를 신속히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협회가 앞장서서, 각 방송사 보도 영상 책임자들을 통해 재난 현장이나 화재 현장에서의 지나친 경쟁을 방지할 준칙을 마련해야 한다. 이 준칙의 틀 안에서 경쟁이 이루어져야 카메라 기자들의 신체적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본다. 일부 방송사만이 전쟁을 대비한 안전 교육을 받은 상태다. 실제로 교육을 수료한 기자들은 다양한 현장 상황에 따른 실제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전쟁뿐 아니라 다양한 재난 상황에 따른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카메라기자 스스로 재난이나 화재의 위험을 체득 할 수 있다. 대형 사고나 화재는 매 해 일어난다.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현장에 카메라 기자 있다. ‘전에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하며 자신할 것이 아니라 언제고 안전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던 카메라기자의 안전문제를 이번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2005-05-11
  • 재난취재 안전장비 마련 시급
    안전한 재난현장 취재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사전 교육과 전문 장비 마련 등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재난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취재 시 그에 필요한 안전 장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➀ 건물 붕괴 대형 건물 붕괴 사고의 경우 석면 가루나 유독 가스로부터의 오염 그리고 화마와 2차 붕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현장 취재에 임해야 한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석면 가루 등 유해 분진을 들여 마시지 않도록 방진 마스크를 준비해야 한다. 방진 마스크는 특수한 필터가 장치되어 분진을 막아주는 한편 흡기(吸氣)의 능률에 지장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물체의 낙하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위해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합성수지로 제작된 안전모가 가볍고 활동성 면에서 적합하다. 건물이 붕괴되면서 갖가지 유해 분진이 대기 중에 떠돌아 시야 확보가 쉽지 않고, 눈에 들어갈 경우 안질환을 유발하므로 투명 보안기의 착용 또한 중요하다. 붕괴 현장의 경우는 남아있는 구조물의 2차 붕괴 위험이나 인화 물질에 의한 폭발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감안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현장 책임자의 통제에 적극 협조해야 하고 허가된 구역에서 취재 활동을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➁ 산불 산불은 지난 식목일에만 전국 20여 곳에서 발생했듯이 봄철의 대표적인 재난이다. 산불의 규모와 진행경로, 진화작업 상황은 1차 취재대상인데, 이를 위해 보통 산불의 진행 길목 앞까지 접근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유독가스나 연기 따위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얼굴에 쓰는 ‘방연 마스크’는 필수이다. 일반 화재와 달리 그 지역 일대가 연기나 유해가스로 뒤덮이게 되고 적게는 수십 분에서 많게는 수십 시간동안 연기를 마시게 되므로 기도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바람이 심할 때에는 날아다니는 불씨로부터 시야 확보와 눈 보호를 위해 ‘투명 보안 고글’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또한 일정 시간 산불 지역에 있게 되면 호흡기 계통에 손상을 주거나 두통 등의 통증을 유발하므로, 보도 차량에는 ‘휴대용 산소캔’과 가벼운 외상에 응급 처치할 수 있도록 ‘비상 의약품 키트’ 등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 큰 산불은 바람으로 인해 급속도로 번지게 되는데, 돌풍으로 산 속에서 고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2인 이상이 움직여야 하며 산불 진화 관계자의 도움 아래 취재 동선을 계획해야 한다. ➂ 화학 약품 방송사 A기자는 화학 약품 제조 공장 화재의 취재 지시를 받고 현장에 갔다. 화재 지점인 공장 뒤편으로 이동하기 위해 작은 개천을 하나 건너는 과정에서 공장으로부터 흘러나온 화학약품이 다리에 묻어 2주간 주사와 약물치료를 받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보통 화학 물질의 사고 시에는 처리 능력과 대처 능력이 다른 경우보다 월등히 떨어진다. 해당 화학 약품이 호흡기에 해를 주는 물질인지 피부에 닿아 손상을 주는 물질인지 등 기초적인 사전 지식은 평소에 갖추어 두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호흡기 보호구, 안전모, 보안경, 안전화 등을 갖춰야 하며 호흡기계나 피부에 유해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작업복을 착용해서는 안 되며 지원구역(Cold zone)에서만 사용한다. 유독한 기체(이황화탄소, 수은, 할로겐과 할로겐화수소, 진한 암모니아수, 발연성산, 아세트산 등의 휘발성 물질)을 마셨을 경우 즉시 통풍이 잘 되는 곳으로 옮기고 앉거나 누워서 깊게 호흡을 한다. 다량의 기체를 마셨을 경우에는 즉시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피부를 상하게 하는 물질(강한 염기, 진한 황산, 진한 질산, 포르말린, 페놀, 크레졸)등이 피부에 닿으면 다량의 물로 충분히 씻은 다음, 탄산수소나트륨 수용액이나 암모니아수, 아세트산이나 붕산의 묽은 수용액으로 중화하고, 다시 다량의 물로 충분히 씻어야 한다. 눈에 닿은 경우에는 10이상 충분히 물로 씻은 다음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재난에 대한 대비와 예방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기자들의 ‘안전 불감증’은 시급히 탈피해야 할 문제이다. 재난 현장의 유형에 따른 체계적인 사전 교육과 안전 장비의 마련 등 체계적인 시스템 정비가 절실히 요구된다. 재난 안전 필수 장비 건물 붕괴 현장 안전모, 투명 고글, 방진 마스크, 비상의약품키트 대형 산불 현장 or 지하도 화재 투명 고글, 방연 마스크, 휴대용 산소캔, 방염복, 비상의약품키트 화학약품 사고 현장 호흡기보호구, 안전모, 보안경, 안전화, 집중 호우 현장 우의, 장화 시위 현장 안전모    
    2005-05-11
  • 뉴스 오디오에 관하여(MBC 오디오 엔지니어```)
    뉴스 현장 일선에서 보다 나은 뉴스와 보다 나은 화면을 위해 애쓰고 있는 카메라 기자 분들에게 같은 방송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고생하신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매일 여러 번에 걸쳐 뉴스를 보고, 또 뉴스를 듣습니다. 보다 신속하고 보다 좋은 그림을 중시하는 방송 환경에서, 또 조금이라도 빨리 뉴스를 전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들 속에서 사실 오디오는 단지 목소리가 잘 들리기만 하면 된다고 여겨지는 게 이제까지의 현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드라마나 예능 및 교양 프로그램들과 뉴스 보도는 다르므로 같은 잣대로 오디오의 품질을 평가하는 것이 무리이기는 하나, 점차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비디오의 중요성과 함께 오디오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 뉴스보도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오디오 엔지니어로서 제가 뉴스를 보며 느낀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뉴스 뿐 아니라 다른 여타 프로그램의 오디오 수음 시에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인데, 오디오의 입력레벨을 너무 높게 잡아, 수음한 오디오가 찢어져서 못쓰게 되거나 , 소리는 잘 들리나 노이즈가 낀 것처럼 고음부가 지글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오디오 입력레벨은 적당히 낮은 레벨로 설정하여 수음하고, 나중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오디오 레벨을 높여 준다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각 카메라마다 입력 레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또한 뉴스를 보다 보면 기자들의 sync에 있어 뉴스마다 약간씩 다른 음색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sync를 수음하는 장소라던가 각 기자들의 목소리 특성이 달라서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수음하는 마이크의 종류가 달라서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취재 시 사용하는 마이크 종류를 한가지로 통일 시키면, 보다 비슷한 음색의 오디오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눈 , 비가 많이 오거나, 주변의 소음이 심하거나 기타 험난하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기자들이 리포팅 하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오디오맨의 입장에서 오디오의 수음이 제대로 될 수 없는 환경에서 오디오의 수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핀 마이크 보다는 핸드마이크나 와이어리스 마이크 boom대를 이용하는 등 지향성이 있는 마이크를 이용해 오디오를 수음하는 방법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effect 수음의 경우에도 boom대를 이용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카메라에 부착되어 있는 effect 마이크를 성능 좋은 것 교체하는 방안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뉴스 편집 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오디오 편집에도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 주시고, 뉴스를 방송하는 오디오 엔지니어와도 자주 대화를 하여 오디오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면 그것이 곧 좋은 오디오 품질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상이 제가 오디오 엔지니어로서 뉴스를 보면서 생각한 점입니다. 이는 카메라 기자뿐만 아니라 오디오 엔지니어도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글뿐 아니라 여러 방면의 교류를 통해 쌍방이 같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루트를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다시 한 번 좋은 뉴스, 신속한 뉴스를 위해 뛰고 계신 카메라 기자 분들께 고생하신다는 말씀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MBC 오디오 엔지니어 안준호
    2005-05-11
  • 양양 산불 현장에서
    가칭 “눈물 젖은 이재민”이란 아이템을 받고 양양 산불 현장을 가던 취재팀은 라디오를 통해 산불이 거의 진화되었다는  방송을 들으면서 반신반의했다. 동해안 산불은 오전에 완전 진화가 되지 않으면 오후에는 거센 강풍을 타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과거의 경험으로 봐서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는 검은 연기가 이곳저곳에서 솟구치며 강풍을 타고 거대한 불길로 변해갔다. 차의 방향을 낙산사로 향해 가는 도중 운전기사와 취재기자가 비명을 지른다. 도로변의 양 옆 숲이 동시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불꽃 터널이 되어버렸다. 불길을 헤치고 낙산사로 진입한 기자의 눈에 보이는 산불은 쓰나미로 밀려오던 거대한 파도, 바로 것이었다. 소나무 사이로 불길이 두 서 너 번 울렁울렁 하다 바로 낙산사 건물로 옮겨 붙으니 피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소방대원과 스님 그리고 일부 신도들은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문화재 피신과 화재 진화에 여념이 없었다. 산짐승들도 모두 경내로 피신해왔다. 제일 먼저 홍예문에 불이 붙고, 원통보전, 요사채 순으로 붙어갔다. 정말로 속수무책이었다. 헬기는 검은 연기로 인해 뜨지 조차 못했고, 모든 건물이 다 탄 후에는 날아온 헬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매운 연기 속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촬영을 겨우 다 마친 기자 눈에 띄는 것은 화재 진화를 지휘하던 소방대장의 허탈한 표정뿐이었다. 주변엔 어떤 언론 매체도 보이지 않는다. 급히 중계차로 와서 영상을 전송하려 하는데 안 된단다. 앵커와 기자가 토킹으로 생방송 중이라 서, 우물쭈물 20여분이 흐르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송출할 수가 있었다. 20여 년간 강원도 영동지역에서만 근무했기 때문에 산불을 자주 겪은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산불진화방식은 종합적 진화 전략 부재였다. 불이 붙은 지역을 헬기로 1차, 2차, 3차에 걸쳐 물을 뿌려 잔불까지 진화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 번 뿌리고는 다른 곳에 뿌리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니 쌓여있는 낙엽 속의 불이 계속 되살아나는 것이다. 불이 집 뒤까지 와도 소방차와 진화대원만 기다리며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고, 관광객은 길 막고 기념 촬영하기 바쁘고, 외지에서 온 소방차량은 샛길을 모르니 큰 도로변에만 모여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대형 산불 진화를 위한 종합적인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또한 이번 산불을 취재하는 거의 모든 기자들이 마스크도, 안경도 없이 수건만 뒤집어 쓴 채 현장을 다니고 있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각 언론사는 사고 예방을 위해 취재 기자가 갖추어야할 안전장비에 대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KBS강릉방송국 이준하 기자 [카메라기자 18호]
    2005-05-11
  • <릴레이 인터뷰> KBS 춘천총국 윤홍식 부장
    KBS춘천국 윤홍식 부장 이어지는 인터뷰 코너에 GBN(강원민방) 신현걸 기자가 추천을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갑다는 생각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20여 년 동안 촬영기자 일을 하면서 자랑스럽기보다는 부끄러운 점이 더 많은 것 같아, 매우 쑥스럽기도 하다. 1. KBS 입사는 언제 하셨는지요. 그리고 카메라 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70년대 초반 시골 만화가게에 흑백텔레비전이 있었다. 어린시절 나는 만화가게 주인에게 흑백텔레비전 관람료로 일 회당 100원을 주고 당시 인기였던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러 다녔다.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은 흑백텔레비전 앞에 먼저 가서 앉으려고 만화가게로 달려가곤 했다.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며 어떻게 저런 화면이 만들어질까 궁금증을 키워 가던 중,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다가 온 사건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1971년 12월 25일 대영각 호텔 화재였다. 그 때 화재 현장이 생방송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뉴스 시간에는 다른 방송에서 보지 못한 매우 다양한 앵글의 뉴스 영상이 보도되었다. 그래서 나는 저런 뉴스영상은 도대체 누가 촬영하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꿈을 키워가기 시작해 85년에 KBS에 입사하게 됐다. 2. 많이 바쁘시죠?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일을 만드는 스타일이라 후배들에게 대단히 미안하다. 작년에는 보도특집 프로그램 2개와 사진전 사업을 했는데, 올해도 두 가지를 기획해 놓고 제작에 들어갔다. 한 가지는 특집프로그램이고 또 한 가지는 사업이다(밝히지 못하는 점 죄송하다). 고민이 많다.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각오다. 어제의 홈런으로 오늘의 경기를 이길 수가 없듯이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일을 하고 있다. 연말에 후배들과 “하이 파이브”를 외치고 싶다. 3. 강원도의 변천사를 영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전시회도 개최하셨다고 하던데, 그 취지와 내용이 궁금합니다. 밀레니엄을 준비하던 1999년 모 기관의 소각장을 지나가던 중 깜짝 놀라운 현장을 발견했다. 16mm 필름 자료가 소각 직전에 있었다. 우리의 역사가 한 줌의 재로 날아갈 뻔 했다. 그 때부터 강원도내 주요 기관의 먼지 쌓인 창고를 무려 6개월 동안 뒤지는 각고의 노력 끝에 무료 2100분의 분량의 자료를 수집해 직접 텔레시네 작업을 했다. 텔레시네 작업을 함께 하였던 조중기 기자와 필름에 쌓인 오래된 먼지를 마셔가며 일을 했다. 코와 목구멍으로 먹은 먼지만 해도 엄청나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생성된 강원도 문화의 가치와 정신을 발굴하고, 재조명할 수 있는 무한적 가치를 가진 영상자료를 확보할 때의 감격은 흥분 그 자체였다. 1960년대에서부터 1984년까지의 다양한 자료는 황금 덩어리였다. 당시 춘천방송총국에 있던 16mm 필름 자료 5200분의 분량을 포함해 모두 7790분(129시간)의 분량을 텔레시네하고 테이터베이스화 했다. 이 자료를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무한의 가치를 가진다고 판단한다. 이 자료가 빛을 발하는 시기를 춘천방송총국 개국 60주년에 맞추었다. 마침 2004년이 “강원도 방문의 해”로 지정돼 개국 기념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기에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기획에 들어갔다. ‘강원도 방문의 해’ 선포와 KBS춘천총국 개국 60주년을 맞아 문화적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화 향수권’을 강원도민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고유한 문화적 내용을 재창조한다는 측면에서 강원도 관광의 근 현대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보도특집 「영상 실록 강원관광을 기록하다」’를 기획에서부터 촬영, 편집까지 촬영기자가 직접 제작 방송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강원도 관광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새로 복원된 영상 자료들은 벌목현장, 뗏꾼들의 생활상, 도정활동 모습, 백두대간을 일구는 화전민들의 생활 모습, 동해안 어부들의 조업 변천사, 용평스키장 건설 전의 횡계와 용평스키장 건설 당시의 자료, 초기 동해안 해수욕장의 모습과 관광객들, 설악산 개발 당시의 자료, 소양강 다목적댐 등 대규모 건설 당시의 모습, 미시령, 영동고속도로 등 도로 건설 전의 자료, 도로망 개통 초기의 모습, 도민의 생활상의 변화, 지역축제 등을 최초로 소개하는 60분 분량의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을 방송만으로 끝내기에는 섭섭한 점이 많았다. 현재 우리는 IT 혁명에 의한 최첨단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다. 단순한 반도체, LCD 산업시대를 넘어 고정밀?고품위 방송인 HD TV는 물론이고 화상전화, 전자화폐, 지능형 홈네트워크 등 과거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던 시스템이 하루가 다르게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손 끝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잊지 못하는 것 하나는 어느 날 문득 책 사이에서 발견된 낡은 사진 한 장처럼 어렵고 배고픈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추억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시절의 낡은 운동화와 헐어서 무릎이 나온 면바지에 오늘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이 모든 최첨단 생활이 어리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관광1번지를 넘어 세계를 향하고 있는 강원도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 초석을 다져온 강원도민들의 노력과 어렵던 생활상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강원 변천사』사진전을 개최해 강원도민에게 보여줘야 하다고 판단했다. 강원도가 걸어온 길이자 그 곁을 함께 걸어온 KBS춘천방송총국 60년간의 기록자료 중 240점을 엄선한 사진전을 가졌다. 강릉시청의 요구로 순회 전시도 1주일 동안 했다. 방송용 아날로그 흑백 필름이 사진으로 선을 보이기까지는 역시 디지털 기술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4. 위의 일들을 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에 없다. 잊었다. 작년에 영상실록 “강원관광을 기록하다”는 조중기 기자와 함께 우수프로그램상을, 강원도 변천사 사진전 개최 공로로 춘천방송총국 보도팀 영상취재 파트가 단체상을 받았다. 아마도 영상취재팀이 단체상을 받기는 국내에서 춘천방송총국이 최초의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 어렵고 힘든 일이야 후배들과 회식하면서 소주잔에 담아 마셔버렸다. 후배들의 고생이 많았다. 매일 뉴스 제작에 바쁜 가운데 속에서도 말없이 프로그램 제작과 사진전 개최의 전반적인 모든 일에 도움을 준 전성관 기자, 최중호 기자, 고명기 기자, 조 중기 기자, 신정철 영상편집요원, 황보미 영상편집요원 모두에게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린다. 5. 기자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취재는 무엇입니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모든 촬영기자는 현장에서 가장 최고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촬영기자라면 리포트를 제작하든, 단신을 촬영하든 간에 촬영한 영상 중 가장 아끼는 한 컷의 영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을 카메라에 담았을 때마다 그 순간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아닐까? 촬영기자는 매일 자신의 혼이 실린 영상을 담아내고 있다. 촬영기자에게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촬영기자에게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어깨와 관절의 통증과 허리디스크의 고통일 것이다. 또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들도 많을 것이며, 가족의 慶弔事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장에서 사명감을 다하는 촬영기자에게는 매 순간이 영원히 기억에 남는 취재일 것이다. 6. 즐겨하시는 취미나 기호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즐기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별 다른 취미는 없고 독서를 하는 편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은 “매달 한 권의 책을 읽자”라고 했는데 잘 되지 않는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지식과 정보는 새로운 것이 좋지만 삶의 지혜는 묵은 것이 더 좋다”라고, 독서를 통해서 삶의 지혜를 배워나가는 편이다. 또 책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아이템을 개발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애주가다. 후배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선배의 간은 의학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니 기증 하시죠”라고 말이다. 간이 커서 많은 량의 술을 마신다고 한다. 솔직히 많은 량은 아니고 술을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 술을 마셔도 요란한 곳(단란주점 등)은 가지 않는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마셔된다. 왜? 안주 싸고, 술값도 싸니까! 낮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해가 떨어져야 술맛이 나기 때문이다. 7. 앞으로의 욕심이 있으시다면 무엇입니까? 욕심은 없다. 그러나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있다. 강원도내 촬영기자가 다함께 하는 대형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8. 다음에 이어지는 인터뷰에 초대하고 싶은 카메라 기자 분의 소속, 성함과 추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특종으로 많은 수상경력을 갖고 계시며, 후배 사랑도 싶으신, 제주방송총국 보도팀의 이광우 선배를 추천하고 싶다.
    2005-05-11
  • 민상기 기자의 현장 에세이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기자로 남겠다."
    KBS에 팀제가 시행된지도 벌써 10개월이 되어 간다. 120여 명의 인원을 이끄는 자리에서 나와 이제는 현장이 익숙한 모습이 되었는데, 느닷없이 현장소감을 글로 쓰라니 난처하지 않을 수 업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지난 10개월을 떠올려 보았다. 처음 내가 현장으로 나선 때만 해도 주위의 시선이 조금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해방된 느낌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주간이라는 자리에서 관리직이라는 책임을 짊어지고 뉴스를 만들다보니 1년 내내 긴장을 끈을 늦출 수 없는 그 심리적 압박감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 모습이 홀가분하다. 게다가 생생한 취재 현장을 함께 할 수 있어 전과는 다른 활력을 느낀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설 때 마음먹었던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기자’로 남겠다는 다짐을 지킬 수 있어서 더더욱 지금의 나를 보면 살며시 웃음이 나온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은 총리실 출입 카메라 기자.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 제 1청사(광화문 청사) 영상취재 담당이다. 8개 부처, 2개 청 등 무려 10개가 넘는 정부 기관이 있고, 출입하는 KBS 취재기자만도 11명 정도 되니 생각보다 무척 다양한 분야의 일을 맡고 있다. 이 곳은 우리나라 전체의 살림살이를 한 눈에 돌아 볼 수 있는 자리로, 내가 사무실에만 있던 때와는 달리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하게 되는 곳이다. 한 5년만인가? 사무실에서 나와 현장에서 카메라를 처음 들 때는 걱정이 많이 됐다. 그 사이 ENG 카메라도 많이 바뀌었고, 나이를 먹다보니 신문 볼 때도 돋보기를 쓰는데 포커스나 제대로 맞출 수 있을런지 염려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 정도 후배들이 퇴근한 후 혼자서 카메라를 꺼내서 조작법 연습도 했다. 요즈음 새롭게 현장으로 나와 카메라를 들게되면서 예전보다 더 신경을 쓰면서 일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촬영한 뉴스 영상은 시청자뿐만 아니라 함께 근무하는 후배 기자들도 보고 나름대로 평을 할텐데, 주간까지 한 사람이 이 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말이 나오면 안되니까 말이다. 팀원이 되어 생활하며 달라진 또 다른 하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데 아침, 저녁 근무시간 전, 후에 충분히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게다가 퇴근하고 나서 제 2의 생활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외식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다양한 여가 생활도 즐길 수 있어 뒤늦게나마 내가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든다. 난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무사가 칼을 들고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영광이듯 카메라기자가 마지막 남은 몇 년을 현장에서 불태우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영광이라고 말이다.
    2005-05-11
  • "훌륭한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겠다."
    이성수 부장 인터뷰 81년 11월 입사해 현장에서 만 20년을 보내고 2001년 11월 내근 데스크를 맡았고, 2003년 3월부터 스포츠영상부장으로 근무하다 지난 3월 9일 쇼트트랙 경기를 시작으로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현장에 돌아와 보직 부장 때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우선 복장이 변했다. 정장에서 캐쥬얼로 갈아입었는데 3월 초 이후로 한 번도 양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정신적 부담이 많이 줄었다. 보직에 있다 보니 여러 부문과의 관계, 예산문제, 부서 내 여론 수렴 등으로 부담이 컸다. 실제로 양복을 벗고 나니 술이 많이 줄었다. 옆자리에 있던 부서 후배 김경배 차장이 고개를 갸웃 한다. 정신적 부담은 줄었지만 육체적인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다섯 번은 헬스를 찾아 땀을 흘린다. 과거에는 체중을 줄이려 노력했는데 지금은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주로 한다. 과거 현장과 지금 현장에서 달라진 점은? 과거에는 선배들도 현장에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후배들이다. 또 카메라기자를 포함해 현장에서 아는 사람이 20%정도다. 그래서 나이 많은 티 안 내려고 젊게 입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헨드헬드 촬영이 많았는데 지금은 트라이 포트까지 함께 들고 이동하는 경우도 많아 어색하다. 취재장비나 취재지원 시스템은 많이 개선된 것 같다. 하지만 취재환경은 오히려 불편해졌다. 초상권에 대한 인식이나 카메라기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면 적대시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후배들(10년 후배라고 해도 15년차인데....)을 보면 일에 대한 열의가 과거보다는 부족한 것 같다. 주어지는 취재 지시에 너무 매달리고 직접 발굴하고 창조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또 카메라기자로서 권익도 과거보다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더 넓혀야 한다. 앞으로는 생활은 어떻게? 80년대 팀스피릿 훈련 취재차 위싱턴을 간적이 있다. 그곳 NPC(national press center)을 들어가다가 흰 머리에 흰 수염, 파이프를 문 나이 지긋한 카메라기자가 취재장비를 차량에 실으며 젊은 취재기자와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저렇게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후배들 앞에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후배들을 만나면 "노인네가 나왔네", "젊은 자식이 건방지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배가 될수록 후배일 때 보다 더 조심하고 겸손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후배들을 보면 참 잘 찍는 후배들이 많다. 또 후배들의 아이디어나 체력을 보면 난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는 듯하다. 현장에 20여 년간 뛰었으니 경험이 묻어나는 이성수표 메이커로서 훌륭한 후배들과의 전쟁에서 뒤쳐지지 않아야겠다.
    2005-05-11
  • 씻겨나가 평평해진 도시 - 반다 아체
    씻겨나가 평평해진 도시 - 반다 아체 [TV카메라기자17호] 임우식 기자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땅에 서 있는 모든 것들이 폭삭 주저앉았다. 해일에 휩쓸린 도시에서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마지막 재앙일지도 모른다. 복구의 삽질로 큰 길은 뚫렸지만, 한 발만 벗어나면 부패한 시체가 널려 있고, 다리 밑으로 흐르던 강은 시신의 바다가 되어버렸다. 대체 무엇이 사람이고 무엇이 쓰레기인지.. 그나마 비닐에 싸여있는 시신은 운 좋은 편에 속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사람이 떠나버린 텅 빈 거리에 유난히 많은 개, 고양이가 배외하던 도시-반다 아체. 으스스한 침묵만이 짙게 감도는 그 곳을 다녀왔다. 아체는 분리독립운동으로 무력 충돌이 계속되는 내전지역이다. ‘제2의 동티모르’를 꿈꾸는 반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정부군 사이에선 밤낮을 바꿔가며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자연히 외부와의 왕래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자국인 조차도 사전 승인을 받아야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로 향하며 비자를 받았는데, 자카르타에서 정부 허가증을 다시 받아야할 정도였다. 번거로웠지만 해외 출장시 그 나라의 절차를 무시했다가 나중에 더 큰 난관에 봉착할 수 있기에 스스로가 참고 서두르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그 허가증이 모든 걸 허락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정부군의 검문만을 통과시켜줄 뿐 갈등지역에서의 안전은 순전히 운에 맡길 수밖에. 12월 30일. 아체에서 12시간 거리의 메단이란 도시에서 출발 준비를 했다. 외신을 체크하며, 아체에 다녀 온 사람들을 만나 현지 사정을 종합해 보았다. 단전, 단수에 도시는 암흑이요 묵을 곳도 없으며, 현지에 기름이 없어 차조차 운행할 수 없다고 했다. 온통 비관적인 소문만이 들렸다. 만반의 준비가 없다면 자칫 들어가는 것만이 전부가 될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송 장비와 최소한의 옷가지만을 챙긴 채 차의 남은 공간엔 휘발류와 식량, 물을 실었다.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란 의문이 맴돌았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를 가정하며 우린 파도에 사라진 폐허의 땅으로 향했다. 그림 같은 적도의 야자수, 화들짝 놀란 길가의 원숭이, 통행세를 강요하는 동네 소년들의 아우성이 귀찮아지고, 좀이 쑤셔 안절부절 못한 채 머리가 멍해져서야 아체는 그 실체를 드러냈다. 도시 초입은 아주 활기찼다. 모든 이들이 분주히 오갔으며, 동남아 특유의 찜통 더위와 버무려진 매연이 익숙했다. 이곳에서의 폭동도 내전도 터무니없어 보였다. 다만 트럭위에 무리져 있는 사람들 입에 걸린 마스크가 유독 눈에 띄었다. 흉조였다. 마스크가 원래 자신과 세상과의 입, 코를 통한 교류를 차단하려는 것이 아닌가. 사스때에도 시위할때에도... 나는 어느새 소문같은 보도 현장에 성큼 다가온걸 비로소야 느꼈다. 아체의 충격적인 모습에 정복당하는 느낌처럼 말이다. 프레스 센터라고 임시로 마련된 공간에는 각국의 기자들이 이미 보도에 한창이었다. 역시 취재진은 변신의 귀재였다. 뻘 잔뜩 묻은 장화에 시커먼 마스크 그리고 얼굴엔 누런 땟국물. 그들 옆에 취재장비가 없다면 누가 그들을 기자라고 보겠는가? 영락없는 구호요원의 모습이자 며칠 후 내 모습일게다. 취재란게 현장 속에 자신을 내맡기는 작업이 아니던가. 위성안테나의 크기와 지름은 방송국 사세의 시금석이었다. 대재난 앞에서 속보전의 승자라는 세계 굴지의 방송사들이 커다란 안테나를 뽐내듯 펼쳐놓았고 인도네시아 방송사들도 나름의 텃세를 보였다. 그땐 우리가 계약한 위성송출사가 들어오기 전이어서 이를 대비한 휴대용 화상위성 전화를 통해 회사와의 연결을 꾀해야 했다. 외신들의 커다란 위성안테나 사이에서 작은 안테나로 하늘을 향해 틈새 자리를 찾아가며 말이다. 비록 화질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나마 연결이 돼 얼마나 고맙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위성사진마저 바꿔 놓은 대재앙의 현장. 밥상이 놓여 있던 자리는 진흙더미가 쌓였고, 호텔앞에는 난파선이 처박힌 곳이 허다했다. 해안에서 3-4km 안팎은 쑥대밭으로 변해버렸고, 길을 내며 양측으로 밀어버린 자재들 사이로 불쑥 시신들이 보였다. 처음엔 그 파괴의 섬뜩함에 놀라 진저리를 치곤했는데 금새 익숙해져 버렸다. 숙소를 정하지 못하고 노숙을 하며 제대로 씻지 못하고 돌아다니던 것. 참을만했다. 야밤에 시 외곽에서 돌아오던 중 길을 막았던 큰 야자수 나무 - 대개 반군이 일부러 길을 막기 위해 나무를 쓰러뜨리는 수법을 쓴다는 걸 숙지했던 터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잊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넌더리가 나는 것은 지구의 살아있는 움직임 - 지진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하릴없이 지루한 휴식에 빠져 방바닥에 철퍼덕 누워 있으면 “우~~~웅~~”소리와 함께 전등이 흔들리고 벽이 좌우로 천천히 왔다갔다 한다. 누군가 흔드는 것 같다. 벌떡 일어나 보지만 어지러울 뿐 도무지 몸이 잔뜩 겁을 먹어 움직이질 않는다.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만 심하게 흔들릴 뿐. 지진은 혼자 있으면 이게 그 진위가 의심스러워지는데 두 눈이 요동치다 마주쳐 비로소 시선이 엇갈리면 그때서야 지진이 왔음을 알아차린다. 잠시 잠잠해질 쯤 밖으로 짐을 챙겨 뛰쳐나가기를 여러 번. 리히터 5.4의 강진이었다는데. 지진 대비 훈련은 확실히 한 셈이다. 피해 직후 전세계에서 구호의 손길이 물밀 듯 밀려와 되려 넘쳐났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체는 지금 단시일 내에 회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도시 기능 회복에만 2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비록 깜짝 취재의 기억은 빠르게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어 갈 것이다. 제트 속도의 쓰나미보다 더 빠른 인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벌써 20년 후의 아체가 궁금하다.
    2005-03-24
  • 기아자동차 채용비리에 대한 취재방해 행위를 바라보면서....
    [TV카메라기자17호] 최근에 광주 소재 기아자동차 채용비리가 전국을 시끄럽게 하였다. 기아자동차 채용비리를 수사 중인 광주지검은 지난달 14일 “2003~2004년 생산 계약직 채용 과정에서 120명이 24억3700만원의 금품을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한테서 금품을 받고 취업에 개입한 32명 가운데 노조 간부 10명, 회사 관계자 3명, 브로커 6명 등 19명을 구속 기소했다. 비록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채용비리에는 공무원, 공사 직원, 정치인 등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기아자동차 채용비리에 대한 정확한 보도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각종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자동차 채용비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행해진 일련의 취재 방해에 대해서 심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아자동차와 노조는 언론의 취재를 못하게 하기 위해 사업장을 원천봉쇄하고, 취재 중이던 기자들을 업무방해혐의로 경찰에 신고하고 폭언 등 다양한 형태로 취재를 방해하였고 광주 지검은 수사 브리핑을 하기 앞서 취재 중인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기아자동차와 노조가 채용 비리 보도에 따른 기업 이미지 실추, 회사관계자의 초상권 침해 등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취재를 원천봉쇄 하였지만 이러한 취재 방해 행위는 오히려 국민들로 하여금 더욱 큰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기업의 실추된 이미지와 신뢰를 빨리 회복하고,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사실을 규명하고 국민들에게 올바르게 알려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아차 광주 공장은 지역민의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 자기 반성과 성찰로 위기를 넘겨야 한다. 김경록기자
    2005-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