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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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BS 위성 DMB 재전송 안한다
    SBS 위성 DMB 재전송 안한다 입력 : 2005.05.11 20:02 58' "위성 DMB(이동 멀티미디어 방송)에 SBS가 만든 TV 프로그램을 공급하지 않겠다." 안국정 SBS 사장은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SBS는 지상파 DMB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안 사장은 "지방 제휴사들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고, 지상파 DMB가 자리를 잡기 전까지 위성DMB에 프로그램 재전송을 허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오는 18~2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하는 '서울디지털포럼 2005' 행사를 지상파 DMB로 시청방송할 계획"이라며 "7월부터 본반송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달부터 위성DMB 방송을 시작한 TU미디어는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과 프로그램 제공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방송사들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당분간은 위성 DMB에서 지상파 방송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앞서 정연주 KBS 사장도 최근 "앞으로 3년간 위성DMB에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한편, SBS는 올 7월부터 시민들이 제공한 뉴스와 영상을 인터넷이나 TV로 내보내는 '유포터'(유비쿼터스 리포터)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안국정 SBS사장은 "유포터를 공개모집해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열린 매체'를 만들어가겠다"라고 말했다. (김희섭 기자 fireman.chosun.com)
    2005-05-12
  • 위르겐 힌츠페터에 대한 회상
    [카메라기자 18호]  위르겐힌츠페터에 대한 회상   - 5월, 우리의 원죄에 대한 반성의 씻김굿이 필요하다. -       나준영(MBC)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에서도 한참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어느 성당에서 ''광주 비디오''를 몰래 상영한다는 정보는 중간고사가 끝나도 마땅히 갈 데가 없던 어린 청춘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그날 성당을 찾아 자리를 꽉꽉 메웠던 어린 눈들은 ''80년 광주''의 ''끔찍한 영상''을 지켜보며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필름 뒤에 숨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수많은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누가 저런 걸 찍었을까? 저건 사실일까? 혹시 북한 놈들의 소행은 아닐까?''   다음날 학교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첫 회 상영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두 번째로 상영된 영화를 본 아이들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붙잡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학교와 부모에게 통보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전날 보았던 무시무시한 영상의 정체를 밝혀 주며 우리를 안심시켜주셨다. ''좌익용공세력과 북한이 우리 국민을 혼란 시키기 위해 만든 영화가 여기저기서 상영되고 있는데 그건 전부 연출된 것이니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6.10 항쟁이 일어났다.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괴물도 학교 담장 너머에서 거세게 밀려드는 민주화의 함성을 막지는 못했다. ''6.29'', ''직선제대선'', ''광주 청문회'', ''5공 청문회''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어린 우리들도 민주화의 가치와 숨겨졌던 진실에 조금씩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우리들에게는 ''80년 광주''의 충격적인 영상 뒤편에 뭔가 무서운 음모가 있음을 말해 주는 듯한 그의 어두운 모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다시 내가 그를 만난 건 대학의 광장과 로비에서였다. 더 이상 ''그''와 ''80년 광주''는 좌익용공세력의 모습도, 날조된 허구도 아니었다. ''518영상제''가 있던 날, 선배들의 입을 통해서, 대자보와 유인물을 보고서, 또, ''80년 광주''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읽고서야 나는 처음으로, 고등학교 시절 우리가 보았던 영상들이 모두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기록한 이가 어느 외국 방송사의 파란 눈을 가진 이방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공포와 두려움이 깨달음과 분노가 되던 순간 수많은 젊은이들이 ''짱돌과 화염병'', ''최루탄과 백골단''이 대립하는 모순의 거리로 내달음 쳤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의 대학에서 그의 영상 한 편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운동가들의 화려한 연설보다, 또, 수없이 쏟아지던 사회 과학 서적들보다 젊은 청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진실 된 영상의 힘''에 대해 깊은 관심과 고민들을 갖게 해 주었다.   어느덧 방송사에 입사해 ''그''와 같은 카메라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그''의 진짜 정체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518''이라는 시대의 사건 속에서 방송과 카메라기자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따져보아야 했다. 나는 믿어왔었다. ''최소한 우리가 방송을 내지는 못했을 뿐 현장에서 기록하였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춰 가면 갈수록 우리 방송과 카메라기자의 모습, 보도영상의 존재는 너무도 초라하고 부끄러워져 갔다. 518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군인이 통제하고, 광주시민이 분노하는 사이에서 기록자로서 서있지 못했다. 군인들의 총칼에 힘없이 카메라를 내렸고,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지 않는 우리의 모습에 광주 시민들로부터 외면 당해야만 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본연의 임무''인  ''기록자의 운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그 포기를 통해 ''518''을 딛고 일어선 정권에서 우리는 ''포기에 상응하는 거대하고 달콤한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몇 년의 달콤함은 역사의 발전 앞에서 우리들 스스로가 이야기조차 하고 싶지 않은 ''원죄''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를 다시 한 번 만난 건 2003년 겨울이었다. 나는 신문 기사를 통해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그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최초로 80년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공로로 ''송건호 언론상''을 받게 된 독일의 카메라 기자 위르겐힌츠페터. 그는 이미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80년대 한국의 민주화 현장을 취재하며 한국의 정권으로부터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에 카메라기자협회가 부랴부랴 간담회를 준비했고, 행사장에 참여했던 한국의 카메라 기자들에게 그는 ''역사의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기록하고 알렸던 사람으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에게서 동업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날 행사 내내, 그리고, 그와의 식사 자리에서 우리는 씁쓸하고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비록 그와의 만남의 자리에 ''5월의 그날'' 카메라기자로서 역사의 현장에 남아 ''기록자의 운명''을 걸었어야 했던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80년, 5월의 그날, 기록자의 운명''을 회피했다는 우리 직업의 부끄러운 역사는 ''5월''이 되면 계속 될 한국카메라기자의 거대한 ''원죄''이자 ''업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일본의 반성 없는 역사 왜곡의 문제로 전국이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5월을 맞이한다. 그 5월의 한복판에서 다시 ''80년 광주''가 되 살아나 뉴스와 드라마를 장식하는 커다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기록한 영상을 대신해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해서 져야 했던 한 파란 눈의 외국인이 기록한 역사를 보며 그날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있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곧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다소 늦었지만, 전국 600여 카메라기자의 이름으로 위르겐힌츠페터에게 ''5월의 카메라 기자상''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가 우리 카메라 기자들에게 ''518에 대한 원죄''를 한 번 더 반성하고, ''역사의 기록자''로서 우리의 모습을 재정립해 보는 ''씻김굿''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2005-05-12
  • 제2회 이달의 카메라기자상 특별상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수여
    [카메라기자 18호]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제2회 이달의 카메라 기자상 특별상에 위르겐 힌츠페터(68,전 독일제1공영방송 카메라기자)씨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80년 광주의 처참한 모습을 영상에 담아 전 세계에 알렸으며 86년 민주화 시위 취재 중 부상을 입었다. 힌츠페터 씨는 이에 대한 공로로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하였으며, 2003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간담회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제2회 이달의 카메라 기자상은 이달 19일 방송회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2005-05-12
  • 카메라기자 그들이 위험하다!
    카메라기자, 그들이 위험하다! 방수복, 방화복, 에어 마스크, 공기통, 방독면, 헤드 렌턴.... 갖가지 보호 장비를 갖춘 소방관들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하철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잠시 후 평상복에 손수건 하나로 입을 가린 카메라 기자들이 그 뒤를 따라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안전모, 고글, 방화복, 방진마스크, 방독면을 착용한 공무원들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불현장으로 모여든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는 카메라 기자. 대형 사고나 재난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끔 그런 장소에서 만나는 소방관이나 공무원들은 기침과 눈물을 흘리는 카메라 기자의 모습을 보고 “큰일 납니다.”, “더 큰 사고 만들지 말고 멀리 물러나세요.”하며 취재를 만류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들의 호의를 웃음으로 무시하며 “괜찮습니다.”, “제 안전은 제가 책임을 져요”하며 호기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카메라기자들도 보통의 인간이다. 그들을 채용하는 전형에 신체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사람을 뽑는 것은 아니며, 화마(火魔)를 겁내지 않을 만큼 재난 상황에 훈련된  사람을 채용하는 것 역시 아니다. 카메라 기자 그들 역시 수시로 위험을 직감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카메라기자들은 왜 지금도 철저한 준비 없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보유 장비가 부족한 현실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방송사가 가지고 있는 안전 장비라야 전쟁지역에서 사용하는 방탄장비(헬멧, 재킷), 방독면이 전부이다. 그것도 따로 보관되기 때문에 신속하게 현장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특별히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현장에서의 지나친 취재 경쟁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취재팀은 먼저 도착한 타사 취재팀이 어떤 영상을 확보했는지. 또 도착 전에 특별한 상황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이는 낙종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리를 잡는다. 속속 전해지는 현장 상황이 대략 파악될 무렵에 화재 현장에서 걸어 나오는 타사 취재진을 보기라도 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누구 할 것 없이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여러 방송사 취재진이 특정 화재 현장에 몰릴 경우, 근거리에서 진화 작업이나 구명 활동을 하는 구급 대원들에게 불편을 끼치기도 한다. 카메라기자들의 안전 불감증 화재 현장이나 대형사고 현장에서 취재하는 카메라 기자는 때로 그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지를 잊게 된다. 실제로 검은 연기 저편에서 불타고 있는 전동차를 촬영한다든가 연기로 자욱한 산불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위인지 잘 알지 못한다. 구조대원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안전장비를 이중 삼중으로 취하고 들어가는 소방관을 보고, 방독면 하나만 믿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때 카메라 기자들은 구조대원이 고도로 훈련되고 화재 현장의 경험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순간에 잊어버린다. 또 방독면의 경우, 화재 현장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사실 또한 쉽게 망각한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각 방송사마다 상황에 따라 상이한 안전정비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화재 현장에서 착용하는 옷, 안전화, 연기를 피할 수 있는 방독면, 고글 등은 필수적이다. 또한 이와 동시에 실제로 화재 현장에 안전장비를 신속히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협회가 앞장서서, 각 방송사 보도 영상 책임자들을 통해 재난 현장이나 화재 현장에서의 지나친 경쟁을 방지할 준칙을 마련해야 한다. 이 준칙의 틀 안에서 경쟁이 이루어져야 카메라 기자들의 신체적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본다. 일부 방송사만이 전쟁을 대비한 안전 교육을 받은 상태다. 실제로 교육을 수료한 기자들은 다양한 현장 상황에 따른 실제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전쟁뿐 아니라 다양한 재난 상황에 따른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카메라기자 스스로 재난이나 화재의 위험을 체득 할 수 있다. 대형 사고나 화재는 매 해 일어난다.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현장에 카메라 기자 있다. ‘전에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하며 자신할 것이 아니라 언제고 안전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던 카메라기자의 안전문제를 이번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2005-05-11
  • 재난취재 안전장비 마련 시급
    안전한 재난현장 취재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사전 교육과 전문 장비 마련 등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재난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취재 시 그에 필요한 안전 장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➀ 건물 붕괴 대형 건물 붕괴 사고의 경우 석면 가루나 유독 가스로부터의 오염 그리고 화마와 2차 붕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현장 취재에 임해야 한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석면 가루 등 유해 분진을 들여 마시지 않도록 방진 마스크를 준비해야 한다. 방진 마스크는 특수한 필터가 장치되어 분진을 막아주는 한편 흡기(吸氣)의 능률에 지장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물체의 낙하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위해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합성수지로 제작된 안전모가 가볍고 활동성 면에서 적합하다. 건물이 붕괴되면서 갖가지 유해 분진이 대기 중에 떠돌아 시야 확보가 쉽지 않고, 눈에 들어갈 경우 안질환을 유발하므로 투명 보안기의 착용 또한 중요하다. 붕괴 현장의 경우는 남아있는 구조물의 2차 붕괴 위험이나 인화 물질에 의한 폭발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감안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현장 책임자의 통제에 적극 협조해야 하고 허가된 구역에서 취재 활동을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➁ 산불 산불은 지난 식목일에만 전국 20여 곳에서 발생했듯이 봄철의 대표적인 재난이다. 산불의 규모와 진행경로, 진화작업 상황은 1차 취재대상인데, 이를 위해 보통 산불의 진행 길목 앞까지 접근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유독가스나 연기 따위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얼굴에 쓰는 ‘방연 마스크’는 필수이다. 일반 화재와 달리 그 지역 일대가 연기나 유해가스로 뒤덮이게 되고 적게는 수십 분에서 많게는 수십 시간동안 연기를 마시게 되므로 기도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바람이 심할 때에는 날아다니는 불씨로부터 시야 확보와 눈 보호를 위해 ‘투명 보안 고글’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또한 일정 시간 산불 지역에 있게 되면 호흡기 계통에 손상을 주거나 두통 등의 통증을 유발하므로, 보도 차량에는 ‘휴대용 산소캔’과 가벼운 외상에 응급 처치할 수 있도록 ‘비상 의약품 키트’ 등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 큰 산불은 바람으로 인해 급속도로 번지게 되는데, 돌풍으로 산 속에서 고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2인 이상이 움직여야 하며 산불 진화 관계자의 도움 아래 취재 동선을 계획해야 한다. ➂ 화학 약품 방송사 A기자는 화학 약품 제조 공장 화재의 취재 지시를 받고 현장에 갔다. 화재 지점인 공장 뒤편으로 이동하기 위해 작은 개천을 하나 건너는 과정에서 공장으로부터 흘러나온 화학약품이 다리에 묻어 2주간 주사와 약물치료를 받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보통 화학 물질의 사고 시에는 처리 능력과 대처 능력이 다른 경우보다 월등히 떨어진다. 해당 화학 약품이 호흡기에 해를 주는 물질인지 피부에 닿아 손상을 주는 물질인지 등 기초적인 사전 지식은 평소에 갖추어 두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호흡기 보호구, 안전모, 보안경, 안전화 등을 갖춰야 하며 호흡기계나 피부에 유해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작업복을 착용해서는 안 되며 지원구역(Cold zone)에서만 사용한다. 유독한 기체(이황화탄소, 수은, 할로겐과 할로겐화수소, 진한 암모니아수, 발연성산, 아세트산 등의 휘발성 물질)을 마셨을 경우 즉시 통풍이 잘 되는 곳으로 옮기고 앉거나 누워서 깊게 호흡을 한다. 다량의 기체를 마셨을 경우에는 즉시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피부를 상하게 하는 물질(강한 염기, 진한 황산, 진한 질산, 포르말린, 페놀, 크레졸)등이 피부에 닿으면 다량의 물로 충분히 씻은 다음, 탄산수소나트륨 수용액이나 암모니아수, 아세트산이나 붕산의 묽은 수용액으로 중화하고, 다시 다량의 물로 충분히 씻어야 한다. 눈에 닿은 경우에는 10이상 충분히 물로 씻은 다음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재난에 대한 대비와 예방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기자들의 ‘안전 불감증’은 시급히 탈피해야 할 문제이다. 재난 현장의 유형에 따른 체계적인 사전 교육과 안전 장비의 마련 등 체계적인 시스템 정비가 절실히 요구된다. 재난 안전 필수 장비 건물 붕괴 현장 안전모, 투명 고글, 방진 마스크, 비상의약품키트 대형 산불 현장 or 지하도 화재 투명 고글, 방연 마스크, 휴대용 산소캔, 방염복, 비상의약품키트 화학약품 사고 현장 호흡기보호구, 안전모, 보안경, 안전화, 집중 호우 현장 우의, 장화 시위 현장 안전모    
    2005-05-11
  • 뉴스 오디오에 관하여(MBC 오디오 엔지니어```)
    뉴스 현장 일선에서 보다 나은 뉴스와 보다 나은 화면을 위해 애쓰고 있는 카메라 기자 분들에게 같은 방송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고생하신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매일 여러 번에 걸쳐 뉴스를 보고, 또 뉴스를 듣습니다. 보다 신속하고 보다 좋은 그림을 중시하는 방송 환경에서, 또 조금이라도 빨리 뉴스를 전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들 속에서 사실 오디오는 단지 목소리가 잘 들리기만 하면 된다고 여겨지는 게 이제까지의 현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드라마나 예능 및 교양 프로그램들과 뉴스 보도는 다르므로 같은 잣대로 오디오의 품질을 평가하는 것이 무리이기는 하나, 점차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비디오의 중요성과 함께 오디오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 뉴스보도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오디오 엔지니어로서 제가 뉴스를 보며 느낀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뉴스 뿐 아니라 다른 여타 프로그램의 오디오 수음 시에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인데, 오디오의 입력레벨을 너무 높게 잡아, 수음한 오디오가 찢어져서 못쓰게 되거나 , 소리는 잘 들리나 노이즈가 낀 것처럼 고음부가 지글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오디오 입력레벨은 적당히 낮은 레벨로 설정하여 수음하고, 나중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오디오 레벨을 높여 준다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각 카메라마다 입력 레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또한 뉴스를 보다 보면 기자들의 sync에 있어 뉴스마다 약간씩 다른 음색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sync를 수음하는 장소라던가 각 기자들의 목소리 특성이 달라서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수음하는 마이크의 종류가 달라서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취재 시 사용하는 마이크 종류를 한가지로 통일 시키면, 보다 비슷한 음색의 오디오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눈 , 비가 많이 오거나, 주변의 소음이 심하거나 기타 험난하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기자들이 리포팅 하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오디오맨의 입장에서 오디오의 수음이 제대로 될 수 없는 환경에서 오디오의 수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핀 마이크 보다는 핸드마이크나 와이어리스 마이크 boom대를 이용하는 등 지향성이 있는 마이크를 이용해 오디오를 수음하는 방법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effect 수음의 경우에도 boom대를 이용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카메라에 부착되어 있는 effect 마이크를 성능 좋은 것 교체하는 방안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뉴스 편집 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오디오 편집에도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 주시고, 뉴스를 방송하는 오디오 엔지니어와도 자주 대화를 하여 오디오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면 그것이 곧 좋은 오디오 품질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상이 제가 오디오 엔지니어로서 뉴스를 보면서 생각한 점입니다. 이는 카메라 기자뿐만 아니라 오디오 엔지니어도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글뿐 아니라 여러 방면의 교류를 통해 쌍방이 같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루트를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다시 한 번 좋은 뉴스, 신속한 뉴스를 위해 뛰고 계신 카메라 기자 분들께 고생하신다는 말씀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MBC 오디오 엔지니어 안준호
    2005-05-11
  • 양양 산불 현장에서
    가칭 “눈물 젖은 이재민”이란 아이템을 받고 양양 산불 현장을 가던 취재팀은 라디오를 통해 산불이 거의 진화되었다는  방송을 들으면서 반신반의했다. 동해안 산불은 오전에 완전 진화가 되지 않으면 오후에는 거센 강풍을 타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과거의 경험으로 봐서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는 검은 연기가 이곳저곳에서 솟구치며 강풍을 타고 거대한 불길로 변해갔다. 차의 방향을 낙산사로 향해 가는 도중 운전기사와 취재기자가 비명을 지른다. 도로변의 양 옆 숲이 동시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불꽃 터널이 되어버렸다. 불길을 헤치고 낙산사로 진입한 기자의 눈에 보이는 산불은 쓰나미로 밀려오던 거대한 파도, 바로 것이었다. 소나무 사이로 불길이 두 서 너 번 울렁울렁 하다 바로 낙산사 건물로 옮겨 붙으니 피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소방대원과 스님 그리고 일부 신도들은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문화재 피신과 화재 진화에 여념이 없었다. 산짐승들도 모두 경내로 피신해왔다. 제일 먼저 홍예문에 불이 붙고, 원통보전, 요사채 순으로 붙어갔다. 정말로 속수무책이었다. 헬기는 검은 연기로 인해 뜨지 조차 못했고, 모든 건물이 다 탄 후에는 날아온 헬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매운 연기 속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촬영을 겨우 다 마친 기자 눈에 띄는 것은 화재 진화를 지휘하던 소방대장의 허탈한 표정뿐이었다. 주변엔 어떤 언론 매체도 보이지 않는다. 급히 중계차로 와서 영상을 전송하려 하는데 안 된단다. 앵커와 기자가 토킹으로 생방송 중이라 서, 우물쭈물 20여분이 흐르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송출할 수가 있었다. 20여 년간 강원도 영동지역에서만 근무했기 때문에 산불을 자주 겪은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산불진화방식은 종합적 진화 전략 부재였다. 불이 붙은 지역을 헬기로 1차, 2차, 3차에 걸쳐 물을 뿌려 잔불까지 진화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 번 뿌리고는 다른 곳에 뿌리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니 쌓여있는 낙엽 속의 불이 계속 되살아나는 것이다. 불이 집 뒤까지 와도 소방차와 진화대원만 기다리며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고, 관광객은 길 막고 기념 촬영하기 바쁘고, 외지에서 온 소방차량은 샛길을 모르니 큰 도로변에만 모여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대형 산불 진화를 위한 종합적인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또한 이번 산불을 취재하는 거의 모든 기자들이 마스크도, 안경도 없이 수건만 뒤집어 쓴 채 현장을 다니고 있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각 언론사는 사고 예방을 위해 취재 기자가 갖추어야할 안전장비에 대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KBS강릉방송국 이준하 기자 [카메라기자 18호]
    2005-05-11
  • <릴레이 인터뷰> KBS 춘천총국 윤홍식 부장
    KBS춘천국 윤홍식 부장 이어지는 인터뷰 코너에 GBN(강원민방) 신현걸 기자가 추천을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갑다는 생각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20여 년 동안 촬영기자 일을 하면서 자랑스럽기보다는 부끄러운 점이 더 많은 것 같아, 매우 쑥스럽기도 하다. 1. KBS 입사는 언제 하셨는지요. 그리고 카메라 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70년대 초반 시골 만화가게에 흑백텔레비전이 있었다. 어린시절 나는 만화가게 주인에게 흑백텔레비전 관람료로 일 회당 100원을 주고 당시 인기였던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러 다녔다.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은 흑백텔레비전 앞에 먼저 가서 앉으려고 만화가게로 달려가곤 했다.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며 어떻게 저런 화면이 만들어질까 궁금증을 키워 가던 중,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다가 온 사건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1971년 12월 25일 대영각 호텔 화재였다. 그 때 화재 현장이 생방송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뉴스 시간에는 다른 방송에서 보지 못한 매우 다양한 앵글의 뉴스 영상이 보도되었다. 그래서 나는 저런 뉴스영상은 도대체 누가 촬영하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꿈을 키워가기 시작해 85년에 KBS에 입사하게 됐다. 2. 많이 바쁘시죠?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일을 만드는 스타일이라 후배들에게 대단히 미안하다. 작년에는 보도특집 프로그램 2개와 사진전 사업을 했는데, 올해도 두 가지를 기획해 놓고 제작에 들어갔다. 한 가지는 특집프로그램이고 또 한 가지는 사업이다(밝히지 못하는 점 죄송하다). 고민이 많다.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각오다. 어제의 홈런으로 오늘의 경기를 이길 수가 없듯이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일을 하고 있다. 연말에 후배들과 “하이 파이브”를 외치고 싶다. 3. 강원도의 변천사를 영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전시회도 개최하셨다고 하던데, 그 취지와 내용이 궁금합니다. 밀레니엄을 준비하던 1999년 모 기관의 소각장을 지나가던 중 깜짝 놀라운 현장을 발견했다. 16mm 필름 자료가 소각 직전에 있었다. 우리의 역사가 한 줌의 재로 날아갈 뻔 했다. 그 때부터 강원도내 주요 기관의 먼지 쌓인 창고를 무려 6개월 동안 뒤지는 각고의 노력 끝에 무료 2100분의 분량의 자료를 수집해 직접 텔레시네 작업을 했다. 텔레시네 작업을 함께 하였던 조중기 기자와 필름에 쌓인 오래된 먼지를 마셔가며 일을 했다. 코와 목구멍으로 먹은 먼지만 해도 엄청나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생성된 강원도 문화의 가치와 정신을 발굴하고, 재조명할 수 있는 무한적 가치를 가진 영상자료를 확보할 때의 감격은 흥분 그 자체였다. 1960년대에서부터 1984년까지의 다양한 자료는 황금 덩어리였다. 당시 춘천방송총국에 있던 16mm 필름 자료 5200분의 분량을 포함해 모두 7790분(129시간)의 분량을 텔레시네하고 테이터베이스화 했다. 이 자료를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무한의 가치를 가진다고 판단한다. 이 자료가 빛을 발하는 시기를 춘천방송총국 개국 60주년에 맞추었다. 마침 2004년이 “강원도 방문의 해”로 지정돼 개국 기념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기에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기획에 들어갔다. ‘강원도 방문의 해’ 선포와 KBS춘천총국 개국 60주년을 맞아 문화적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화 향수권’을 강원도민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고유한 문화적 내용을 재창조한다는 측면에서 강원도 관광의 근 현대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보도특집 「영상 실록 강원관광을 기록하다」’를 기획에서부터 촬영, 편집까지 촬영기자가 직접 제작 방송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강원도 관광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새로 복원된 영상 자료들은 벌목현장, 뗏꾼들의 생활상, 도정활동 모습, 백두대간을 일구는 화전민들의 생활 모습, 동해안 어부들의 조업 변천사, 용평스키장 건설 전의 횡계와 용평스키장 건설 당시의 자료, 초기 동해안 해수욕장의 모습과 관광객들, 설악산 개발 당시의 자료, 소양강 다목적댐 등 대규모 건설 당시의 모습, 미시령, 영동고속도로 등 도로 건설 전의 자료, 도로망 개통 초기의 모습, 도민의 생활상의 변화, 지역축제 등을 최초로 소개하는 60분 분량의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을 방송만으로 끝내기에는 섭섭한 점이 많았다. 현재 우리는 IT 혁명에 의한 최첨단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다. 단순한 반도체, LCD 산업시대를 넘어 고정밀?고품위 방송인 HD TV는 물론이고 화상전화, 전자화폐, 지능형 홈네트워크 등 과거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던 시스템이 하루가 다르게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손 끝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잊지 못하는 것 하나는 어느 날 문득 책 사이에서 발견된 낡은 사진 한 장처럼 어렵고 배고픈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추억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시절의 낡은 운동화와 헐어서 무릎이 나온 면바지에 오늘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이 모든 최첨단 생활이 어리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관광1번지를 넘어 세계를 향하고 있는 강원도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 초석을 다져온 강원도민들의 노력과 어렵던 생활상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강원 변천사』사진전을 개최해 강원도민에게 보여줘야 하다고 판단했다. 강원도가 걸어온 길이자 그 곁을 함께 걸어온 KBS춘천방송총국 60년간의 기록자료 중 240점을 엄선한 사진전을 가졌다. 강릉시청의 요구로 순회 전시도 1주일 동안 했다. 방송용 아날로그 흑백 필름이 사진으로 선을 보이기까지는 역시 디지털 기술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4. 위의 일들을 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에 없다. 잊었다. 작년에 영상실록 “강원관광을 기록하다”는 조중기 기자와 함께 우수프로그램상을, 강원도 변천사 사진전 개최 공로로 춘천방송총국 보도팀 영상취재 파트가 단체상을 받았다. 아마도 영상취재팀이 단체상을 받기는 국내에서 춘천방송총국이 최초의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 어렵고 힘든 일이야 후배들과 회식하면서 소주잔에 담아 마셔버렸다. 후배들의 고생이 많았다. 매일 뉴스 제작에 바쁜 가운데 속에서도 말없이 프로그램 제작과 사진전 개최의 전반적인 모든 일에 도움을 준 전성관 기자, 최중호 기자, 고명기 기자, 조 중기 기자, 신정철 영상편집요원, 황보미 영상편집요원 모두에게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린다. 5. 기자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취재는 무엇입니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모든 촬영기자는 현장에서 가장 최고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촬영기자라면 리포트를 제작하든, 단신을 촬영하든 간에 촬영한 영상 중 가장 아끼는 한 컷의 영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을 카메라에 담았을 때마다 그 순간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아닐까? 촬영기자는 매일 자신의 혼이 실린 영상을 담아내고 있다. 촬영기자에게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촬영기자에게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어깨와 관절의 통증과 허리디스크의 고통일 것이다. 또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들도 많을 것이며, 가족의 慶弔事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장에서 사명감을 다하는 촬영기자에게는 매 순간이 영원히 기억에 남는 취재일 것이다. 6. 즐겨하시는 취미나 기호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즐기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별 다른 취미는 없고 독서를 하는 편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은 “매달 한 권의 책을 읽자”라고 했는데 잘 되지 않는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지식과 정보는 새로운 것이 좋지만 삶의 지혜는 묵은 것이 더 좋다”라고, 독서를 통해서 삶의 지혜를 배워나가는 편이다. 또 책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아이템을 개발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애주가다. 후배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선배의 간은 의학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니 기증 하시죠”라고 말이다. 간이 커서 많은 량의 술을 마신다고 한다. 솔직히 많은 량은 아니고 술을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 술을 마셔도 요란한 곳(단란주점 등)은 가지 않는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마셔된다. 왜? 안주 싸고, 술값도 싸니까! 낮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해가 떨어져야 술맛이 나기 때문이다. 7. 앞으로의 욕심이 있으시다면 무엇입니까? 욕심은 없다. 그러나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있다. 강원도내 촬영기자가 다함께 하는 대형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8. 다음에 이어지는 인터뷰에 초대하고 싶은 카메라 기자 분의 소속, 성함과 추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특종으로 많은 수상경력을 갖고 계시며, 후배 사랑도 싶으신, 제주방송총국 보도팀의 이광우 선배를 추천하고 싶다.
    2005-05-11
  • 민상기 기자의 현장 에세이
    KBS에 팀제가 시행된지도 벌써 10개월이 되어 간다. 120여 명의 인원을 이끄는 자리에서 나와 이제는 현장이 익숙한 모습이 되었는데, 느닷없이 현장소감을 글로 쓰라니 난처하지 않을 수 업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지난 10개월을 떠올려 보았다. 처음 내가 현장으로 나선 때만 해도 주위의 시선이 조금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해방된 느낌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주간이라는 자리에서 관리직이라는 책임을 짊어지고 뉴스를 만들다보니 1년 내내 긴장을 끈을 늦출 수 없는 그 심리적 압박감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 모습이 홀가분하다. 게다가 생생한 취재 현장을 함께 할 수 있어 전과는 다른 활력을 느낀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설 때 마음먹었던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기자’로 남겠다는 다짐을 지킬 수 있어서 더더욱 지금의 나를 보면 살며시 웃음이 나온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은 총리실 출입 카메라 기자.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 제 1청사(광화문 청사) 영상취재 담당이다. 8개 부처, 2개 청 등 무려 10개가 넘는 정부 기관이 있고, 출입하는 KBS 취재기자만도 11명 정도 되니 생각보다 무척 다양한 분야의 일을 맡고 있다. 이 곳은 우리나라 전체의 살림살이를 한 눈에 돌아 볼 수 있는 자리로, 내가 사무실에만 있던 때와는 달리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하게 되는 곳이다. 한 5년만인가? 사무실에서 나와 현장에서 카메라를 처음 들 때는 걱정이 많이 됐다. 그 사이 ENG 카메라도 많이 바뀌었고, 나이를 먹다보니 신문 볼 때도 돋보기를 쓰는데 포커스나 제대로 맞출 수 있을런지 염려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 정도 후배들이 퇴근한 후 혼자서 카메라를 꺼내서 조작법 연습도 했다. 요즈음 새롭게 현장으로 나와 카메라를 들게되면서 예전보다 더 신경을 쓰면서 일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촬영한 뉴스 영상은 시청자뿐만 아니라 함께 근무하는 후배 기자들도 보고 나름대로 평을 할텐데, 주간까지 한 사람이 이 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말이 나오면 안되니까 말이다. 팀원이 되어 생활하며 달라진 또 다른 하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데 아침, 저녁 근무시간 전, 후에 충분히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게다가 퇴근하고 나서 제 2의 생활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외식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다양한 여가 생활도 즐길 수 있어 뒤늦게나마 내가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든다. 난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무사가 칼을 들고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영광이듯 카메라기자가 마지막 남은 몇 년을 현장에서 불태우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영광이라고 말이다.
    200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