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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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카메라기자
    <사 설> 위기의 카메라기자  최근 들어 각 방송사들의 구조조정설이 터져나오면서 시절이 하수상하다. KBS의 팀제 개편, MBC의 구조조정, SBS의 인원 동결 등 둘러보아 시야에 잡히는 것은 내내 악재들로 보인다. 위기인가 기회인가. 천지가 개벽을 하더라도 현장에서 취재하는 사람은 있어야 할 터,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은 방송보도가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용감무쌍한 사람들도 일부 있기는 하다. 과연 그럴까. 매일 이어지는 뉴스제작 중에 카메라기자들이 발제를 한 아이템은 얼마나 되는가. 현장 취재가 이루어지기 이전까지의 과정에서 기획에 참여한 아이템이 어느 정도나 되는가. 연합뉴스, 인터넷 등등의 빠른 업데이트를 보면서 그 중에 방송뉴스가치를 판단하며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자는 몇이나 될 것인가. 혹시 수동적인 제작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학한다고 하지 말자. 우리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시험대에 오를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자만하지도 말자.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기 싫든 간에 조직 내부에서 우리를 독립된 기자로 인정하는 층은 그리 넓지 않다. 뉴스의 제작 과정을 살펴보자. 뉴스는 정보에서 출발한다. 각 사의 풍부한 정보 보고 내용들을 보라. 전체 인원과의 비중으로 볼 때 카메라기자의 취재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취재원들이 취재기자들만 상대한다고 푸념하지 말자. 우리가 카메라를 놓고 퇴근을 한 후에도 취재부서의 정보 수집은 계속된다. 공석에서, 사석에서 흘러 다니는 이야기들을 ‘정보화’하는 주체는 취재기자인 경우가 많다. 이것이 힘이다. 일에 대한 열정이다. 정보의 흐름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누가 할 것인가. 출입처의 세분화, 장기화를 통해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취재기자의 출입처가 바뀌어 새로운 기자를 동반자로 만났을 때, 그를 위해 출입처의 제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의 데이터베이스는 필수적이다. 출입처의 취재원들이 면식 몇 번 가지고 내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얼굴 아는 사람이 오히려 불편하다. 그들의 머리 속을 누비며 깊은 정보와 분석력을 기르자. 취재원에게 명함도 건네지 않고,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도 귀찮아 하면서, 취재원이 나에게 정보를 주리라는 기대는 티끌만큼도 하지 말자. 출입처의 발생 상황은 기본적으로 챙기고 그 일이 끝나면 곧바로 기획 아이템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노력이 없다면, 그는 기자가 아니다. 취재기자인 척 살자는 말이 아니다. 취재기자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가 하자는 말이다. 출입처의 세분화에 필수 요건이 있다. 팀간 배려다. 평소에는 철저하게 팀간 구분을 확실하게 하되 긴급한 발생에서는 서로 돕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직업의 재도약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술 사주고 밥 사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다. 더군다나 지금 횡행하고 있는 각 사간의 원칙 없는 카피는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하락시킬 것이다. 달콤한 맛에 취해 뱉어내지 못한다면 급기야 엄청난 독이 되어 우리의 숨통을 옥죌 것이다. 사족 한마디. 주인의식을 가지고 ‘경영’마인드를 기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스스로를 ‘경영자’라고 착각하는 중간간부들의 마인드를 우려한다. 중간간부에게는 사측에 우리의 취재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그것을 관철하는 마인드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2005-07-11
  • 외신이 본 한국의 카메라기자
    제목 없음 외신이 본 한국의 카메라 기자 日本放送協會(NHK) 서울지국 카메라 기자 이정우 카메라 기자의 역할은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영상화(映像化) 하는 것. 기본적으로 사명감을 갖고 “보도에 관련된 영상은 모두 취재한다.” 라는 점에서 일본의 카메라 기자나 한국의 카메라 기자 모두 같은 일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단, 한국의 카메라 기자들의 경우 자신의 취재물을 직접 영상편집을 한다는 것. 반면 일본의 카메라 기자들의 경우, 기본적인 영상취재 업무 이외에 손수 아이템을 발굴해서 취재 및 촬영을 하고, 구성과 멘트를 준비하여 직접 리포팅을 한다는 것이 양국 카메라 기자들의 다른 점일 것이다. 일본방송협회(NHK) 서울지국의 카메라 기자로서 현장에서 마주친 한국의 카메라 기자들의 모습은 대단히 열정이다. 전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취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매우 중요한 사안이고, 일본을 비롯해 서구 유수의 방송사에서는 너무나 당연시 하는 원칙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취재 및 제작 여건이 열악한 탓인지 아직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첫째, 부실한 Audio Pick up에 대해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신문사의 사진 기자와 달리 방송 카메라 기자의 어려움은 취재할 때 영상뿐만 아니라 오디오 수록에도 충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카메라 기자들은 인터뷰를 포함해서 현장음의 중요성을 너무 간과하는 듯한 인상을 받곤 한다. NHK의 경우, 영상 취재 시 오디오맨이 항상 분배기에 붐 마이크를 연결하여 CH-1, CH-2 등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가며 현장음을 확실하게 수록한다. 오디오맨이 장비 이동뿐만 아니라 진정한 오디오맨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부 검찰 취재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붐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상과 음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취재물이 만들어지는 만큼 영상 수록뿐만 아니라 오디오 수록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장비 면에 좀 더 투자를 하여 카메라 기자 관리 하에 오디오맨이 분배기와 붐 마이크를 활용하여 적절하고 확실한 오디오가 수록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때라고 본다. 둘째, 취재 원본 관리에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의 뉴스를 보다 보면 화면에서 적지 않은 스크래치를 발견할 수 있다. 최근에 수록된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스크래치가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원본 및 자료 관리가 부실했다는 이야기이다. NHK에서는 취재 원본이 도착하면 우선 그 원본을 사용하여 편집을 하고, 1년여 이상 자료로써 취재 원본을 보관한다. 약 1년이 지나게 되면 스케치와 중요한 녹취 부분을 여유 있게 편집을 해서 자료로 보관을 하는 형태이다. 한국에서는 자료 이관이 이루어지게 되면 인터뷰를 비롯한 녹취 부분이 생략된 채 스케치 화면만 자료 입력이 되고, 바로 재활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지만, 어렵게 취재한 화면과 인터뷰 등이 깨끗하게 다시 방송이 될 수 있도록 자료 이관과 보관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셋째, 공동 취재에 있어서 포토 라인 준수 및 POOL 문제이다. 공동 취재 현장에 있어서 취재원 보호와 질서 있는 취재를 하기 위해 포토 라인이 설정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취재진들이 너무 열정적(?)인 나머지 애써 설정된 포토 라인이 취재원의 등장과 동시에 무너지는 상황을 종종 보곤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일단 포토 라인을 정해 놓고 사진 기자들과 카메라 기자들이 한국처럼 취재원과 정면(正面)으로 서지 않고 비스듬히 사선(斜線)으로 줄을 선다. 사선(斜線)으로 줄을 서기 때문에 서로 엉키지 않고 각각 공평한 앵글로 취재원을 따라가는 원리이다. 아울러 일본의 방송사들은 Position Pool을 하지 않는다. 만약 취재 반경이 너무 넓어서 카메라 기자 혼자서 모두 커버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한국처럼 각 사 한 명씩 포지션을 나눠서 취재하기보다는 각자 데스크에 보고를 하여 본사에서 추가 인원을 배정 받는다. 정말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전통적으로 POOL이란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POOL은 각 사 고유의 영상 색깔을 부정하는 것이며, 자산으로서의 가치도 부정하는 행위라고 보는 시각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 같다. 넷째, 자신이 기획한 아이템을 리포팅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NHK의 카메라 기자는 보도국 영상센터 영상취재부 소속이다. 한국과 달리 기본적인 영상취재 업무 이외에 직접 리포팅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직접 아이템을 발굴해서 취재 및 촬영을 하고, 이것에 구성과 멘트를 첨가하여 손수 리포팅을 한다. 때로는 항공 취재 시 헬기에 부착된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서 핸즈 프리에 연결된 마이크로 직접 중계를 하기도 한다. 주로 대형 사건 사고 발생 시 하는 일이다. 한국의 경우, 카메라 기자가 직접 기획하여 제작할 수 있는 코너는 KBS 뉴스광장의 ‘광장 영상’과 MBC 뉴스데스크의 ‘데스크 영상’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는 직종간 이동이 빈번하다. 카메라 기자에서 ND(뉴스 디렉터; 데스크 역할을 하는 PD)로, TD(테크니컬 디렉터; 기술 감독)로, 또는 취재 기자로 활약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만큼 제작 능력이 있다는 것인데, ‘멀티 플레이어’로 서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은 본인에게나 조직에게나 상당히 이득이 된다고 본다. NHK는 전세계 3 곳의 해외 총국(베이징, 뉴욕, 런던)과 30여 곳의 해외 지국 및 산하 지국(서울, 홍콩, 워싱턴, 베를린, 타이페이, 파리, 모스크바, 테헤란, 방콕, 시드니, 상해 등)을 운용 중인데, 그 중 상해 지국장으로 카메라 기자가 발탁된 적도 있다. 만약 그 카메라 기자에게 기본적인 영상취재 능력이외에 아이템 발굴 및 선정, 기사 작성 등 취재 능력이 없었다면 지국장으로서 발탁은 무리였을 것이다. 한국의 카메라 기자들도 영상편집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살려,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로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 한상윤 기자 hakata@kbs.co.kr)
    2005-07-11
  • TV 뉴스, 재연 영상 사용 자제해야 한다!
    <외부기고> TV뉴스, 재연 영상 사용 자제해야 한다!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비무장지대 대북감시소초. 새벽 2시 반 지하 벙커로 돼 있는 단층건물 내무실에 김 모 일병이 들어옵니다. 내무실에서 병사 25명이 자고 있었습니다. 김일병은 상병들이 자고 있는 침상을 향해 수류탄 한 발을 터뜨립니다. 김 일병은 이어 다른 부대원의 K-1 소총에 자신의 탄창을 끼워 발사합니다. 병사 5명이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김일병은 체력단련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소초장 김종명 중위를 향해 총을 난사해 살해합니다. 다시 취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 일병은 물을 마시러 왔던 상병 한 명에게도 총격을 가해 살해 했습니다.”    이는 지난 6월 19일 새벽에 일어난 최전방초소 GP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을 CG로 재구성한 <MBC 뉴스데스크> ‘현장’ 리포트 중 일부이다. KBS, SBS도 마찬가지로 사건정황을 CG영상으로 재연,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건당일 군 당국의 발표, 유족들의 주장을 종합 상황을 재구성한 것임에도 기자들이 실제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화면은 며칠 동안 계속 사용되었다.     “총기를 난사한 김일병이 화장실에서 탄창을 끼우는 모습, 선임병에게 수류탄을 투척하는 장면, 수류탄이 굴러가 폭발하는 장면, 내무반, 체력단련실, 취사장 등을 돌아다니며 동료들에게 소총을 난사하고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 붉은색 피가 묻은 채로 죽어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당시 상황을 짐작 하게한다. 그러나 재구성된 화면은 마치 수류탄, 총기 등 현대무기를 장착하고 돌아다니며 상대를 죽이는 FPS(1인칭 슈팅게임)게임이  연상될 정도로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과연 뉴스 보도에서 이렇게 재연된 CG영상을 사용하는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물론 CG 화면이 뉴스보도에서 사용된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6월 19일만 해도 <KBS뉴스9> ‘광란의 흉기난동’ 보도에서 서울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누가 어떻게 어디에서 칼에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지를 친절하게 CG화면으로 재연 보도하고 있다.   TV에서 영상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TV 뉴스의 경우, 영상이 없으면 뉴스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뉴스가 될 수 없다고 할 정도다. 현장에서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을 보도하기 위해 모색한 것이 바로 컴퓨터그래픽, 즉 CG화면이다. 선거관련 보도에서 많이 사용되던 CG영상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내용을 더 알기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뉴스 보도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뉴스에서 현장 영상이 없거나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할 때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재연’기법은 일반적으로 실제 벌어진 사건 현장을 촬영하지 못했을 경우, 실제 사건과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혹은 주장 되는 상황을 연출해서 촬영해 내는 기법을 가리킨다. 이 재연 기법은 시청자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그들의 구체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그와 동시에 다양한 영상처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TV뉴스에서의 CG재연화면은 보도 내용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그래픽 재연화면들은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현장의 모습을 담은 현장사진이라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진, 편집 기술의 발달로 인해, 원본 개념보다는 무한대로 가능해진 복사, 합성까지 어떤 장면이든 마음만 먹으면 연출이 가능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장 사진까지도 왜곡이 가능해진 지금,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뉴스보도에서의 이런 현장 재연 화면의 사용에는 사실성과 진실성의 문제, 공정성 문제, 윤리적인 문제 등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재연 화면들은 뉴스화면에 드라마 기법을 도입한 것과 같이, 상황이 끝난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제작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진실성이 떨어지는 구성으로 인해 뉴스의 공신력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범죄 사건의 구체적 현장 상황 재연은 범죄 수법 등을 자세히 보여주어 모방범죄의 위험이 있다. ‘좀 더 사실적인 보도를 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실감나게 하기 위한 현장재연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낳기 마련이다. 이번 총기 사건 역시 재연 화면 면면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구체적 묘사를 하는 리포트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영상의 전달 효과는 더욱 크기 때문에 이러한 현장 상황 재연 영상의 부작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부적절한 재연 영상이 사용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특히 뉴스에서는 더욱 이러한 상황 재연 방식의 사용은 자제되어야 하며,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화면이 없으면 불가피한 사정을 자막으로 고지하고 자료화면을 사용한다거나, 현장 사진이 하나밖에 없을 경우 그대로 간다든지 하는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다. 시청자들이 뉴스에서까지 자극적인 화면과 화려한 영상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보다는 내용이 있는 뉴스, 진실을 담은 뉴스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는 진실이 담긴 뉴스를 시청할 권리가 있다. 보도영상의 기능은 보여주기만이 아니다. 그것이 사실의 기록과 진실의 전달에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였으면 한다. 노영란 (매비우스 사무국장)  
    2005-07-11
  • 나의 5개월 간의 수습 생활
    <수습을 마치고> 나의 5개월간의 수습 생활 “나의 목표는 시청자 앞에 부끄럽지 않은 카메라기자 이상은”  ‘이상은, 빨리 편집팀으로 튀어와!’  카메라 기자가 된 지 5개월 남짓, 여전히 내 온몸을 식은땀으로 흠뻑 젖게 만드는 가장 두려운 말이다. 19층에 있는 편집팀으로 이어진 계단을 밟고 뛰어 올라가면서 내 머릿속은 온통 이런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내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건가? 내가 편집한 리포트 사이에 블랙이 꼈나? 밖에서 송출한 화면이 시퍼렇게 나온 건 아닌가? 아니면 촬영 원본이 엉망진창이라서 호출하는 건가? 실수란 실수는 두루두루 섭렵해온 사고뭉치라서 편집팀이나 영상취재부 데스크에서 전화가 오면 저절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게 된다.    2인 1조로 다른 수습 카메라기자와 함께 일정을 나가다가 혼자서 일정을 나가게 된 첫날부터 실수의 역사, 아니 냉정하게 말해서 사고의 역사가 시작된 것 같다. 명지대에서 정치학과 교수님 인터뷰를 하고 국방부에서 취재기자 스탠드 업을 촬영하면 끝나는 아주 간단한 일정이었다. 수습이 봤을 때도 간단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발생했다. 화이트 밸런스라는 아주 기본적인 카메라 조작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인터뷰이의 얼굴을 스타워즈에나 나올 법한 푸른색 외계인의 얼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는 그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화이트 밸런스, 수평, 포커스, 조리개, 오디오 모두 OK라 생각했건만, 회사에 복귀한 후 편집실 모니터로 촬영 원본을 보고나서야 화이트 밸런스에 이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설상가상으로 오디오 CH1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뒤통수를 누군가에게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그저 멍하니 편집기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별 묘책이 서질 않으니, 심지어는 ‘아, 수습 기간을 못 넘기고 이렇게 허무하게 잘리는구나!’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은 선배의 도움을 받아 색 보정을 하고 CH2를 믹싱을 통해 CH1으로 옮기는 작업으로 겨우 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러한 선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YTN 방송의 수준을 떨어뜨린 것 같아, 선배들에게 죄송하다는 말 밖에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 때, 한 선배의 조언 한 마디가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네가 잘못한 건 선배들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 아니라 시청자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다.’    지금까지는 실수를 해도, ‘수습’이라는 딱지 때문에 면죄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수습 카메라기자’에서 ‘수습’이라는 단어를 떼어낼 때가 왔다. 이름만 ‘카메라기자’였던 ‘수습 이상은’이 진짜 ‘카메라기자’로 거듭날 때가 온 것이다. 지금부터는 누구 앞에서든 “카메라기자 이상은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를 만들어 가겠다. 시청자 앞에 부끄럽지 않은 ‘카메라기자 이상은’, 그것이 나의 목표이다.  YTN 영상취재부 이상은 기자   
    2005-07-11
  • 북극 도전 촬영기
    <북극 도전 촬영기> “성공할 확률 50%, 실패할 확률도 50%”  2005년 박스그랜드슬램 북극원정대는 캐나다의 최북단 이누이트 마을 레졸루트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출발에 앞서 마지막 장비 점검과 식량 그리고 여러 가지 기타 품목들을 점검하며 출발을 기다렸다. 약간의 초조함 속에 나는 이번 탐험에서 일어날 수 있는 3가지 일들을 예측해봤다. 성공할 수 있다는 것과 하나는 실패 할 수 도 있다는 것,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돌아오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북극 탐험에 대하여 흥미롭고도 험난한 대장정을 위해 장비 담당을 맡은 나는 탐험 장비를 점검하며 특히 나의 주요역할인 영상촬영에 필요한 장비를 테스트하고 점검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히말라야 등반에서 몇 번의 촬영을 담당했었으나 극지에서의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라 북극의 환경, 날씨, 기온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상황 요소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했고 북극은 결코 촬영의 기회를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 했다. 2005년 3월 9일 우리는 육지의 끝을 떠나 북극권의 장엄하고도 차가운 북극해 속으로의 거친 탐험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얼음 바위 밭을 이룬 난빙대 한쪽 옆을 가로지르면서 북극점이 있는 좌표를 향했다. 지금부터 가야하고 안 된다는 것을 진실로 느끼기 전까지 모든 것을 바쳐봐야 하는 우리 탐험대는 황량한 눈과 얼음 청빙대의 거대한 원형 속에 경미하고도 미세하게 움직이는 네 마리의 개미였다.  북극점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탐험을 제외한 모든 외부의 문제들은 정지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연의 요소들 즉 추위, 난빙대, 리드(얼음판과 얼음판 사이에 벌어진 바닷물 강), 눈, 바람, 태양, 기타 자연현상에 만족해야 하고 이 모든 세계는 공통된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그들 자연 속에 속해 있다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이 모두를 24시간 지지 않는 태양 아래에서 모든 자연의 모습과 우리를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카메라를 한 번 작동시키기 위해 나는 썰매에서 카메라박스를 꺼내고, 벗기 싫은 장갑을 벗고, 품속에 간직한 배터리를 장착하며, 보온커버 지퍼를 열어 카메라를 작동시키는 등 정말 복잡한 절차와 노력이 필요했다. 북극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탐험 되지 않은 곳을 밟을 때 느끼는 그러한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각 난빙들의 모퉁이는 짜릿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비밀스러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 이른 아침 눈 내린 동네 큰 길을 처음으로 발자국을 새기며 일련의 흔적을 남기는 설레는 그런 흥분이었고. 나는 이런 흥분 속에 카메라를 돌려 자연의 짜릿한 감정과 비밀스러운 풍경을 담았다. 하지만 카메라는 평균기온 -40도의 추위에 배터리는 단2분도 버터주지 못했으며 액정 역시 느려져 뷰파인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감각에 의존하며 찍어야 했다.  나는 이번 탐험에 있어 나의 모든 생활을 깨어있는 의식의 시간과 북극의 자연과 순간적인 상황들을 즐기기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그 상황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  해야 했다. 또한 북극은 탐험가로서의 용기와 기술, 그리고 힘을 시험하려는 것보다. 그 사람의 도덕적 수준정도를 시험하려는 것도 있는 만큼 나는 탐험 대원들의 감정과 갈등, 그리고 심정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극지라는 탐험의 특성상 행동은 차갑고 단편적이며 감정이 없어 휴먼적인 감정과 갈등을 담기에 어려움이 따랐다. 북극은 처음 떠나올 때의 예상보다 차가웠고 거칠었으며 처절했다. 이 북극의 환경은 대원들을 더욱더 어려움에 직면케 했고 대원들은 각자 고난에 익숙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긴 고통의 인내심으로 탐험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나는 이 처절한 상황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나에게 부과된 고난은 의문 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한 상황이 처절하며 처절할수록 카메라에 담겨지는 기록은 더욱 소중하고 흥미로운 기록이 되었기에 나는 간혹 위험을 감소하면서 카메라를 돌렸고 복잡한 절차 탓에 장갑을 벗고 카메라를 잡은 손은 곧 추위에 노출되어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아 손가락의 감각을 읽어 버리곤 했다. 나는 손가락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해 보았으나 굳은 혈관으로 혈액이 순환됨으로써 생기는 통증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자극적인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북극의 석양은 끊임없이 무질서하게 솟아있는 난빙을 엷은 장alt빛으로 물들게 했다. 나는 그것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기에 카메라를 들고 난빙 속을 돌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리드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했고 리드에 빠지는 수난을 여러 번 경험해야 했다. 탐험은 계속 되었고 대원들은 북위 87도를 넘어서면서 감상적인 기분은 사라졌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탐험으로 인한 피로는 친숙하여 졌으며 이러한 현상은 카메라를 작동시키는데 더 이상 방해하지 못했다. 북극의 햇살은 노출이 과다한 사진과 같이 색깔이 없었고 따뜻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밝은 전망도 제시하지 않았다. 탐험이 끝나갈 무렵 무거워지는 나의 발은 체력의 저하를 알리고 있었고 보다 많은 상황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에 대한 조급함과 중압감이 다가 오고 있었다.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은 대원들의 고개를 숙이게 했고 북극점을 며칠 앞둔 우리는 블리자드와 화이트아웃과 싸우며 전진하는 현상을 카메라에 찍기 위해 상당한 양의 체중이 감소되었음에도 나는 마지막 남은 체력과 협상하며 앞에서 찍고 뒤따라가며 찍는 반복된 촬영을 수행 했다. 나는 의지가 약해질 대로 약해져 냉엄하고도 차가운 청빙에 기댄 채 바람을 피하며 햇살을 쬐며 쪼그려 않은 채 영양식을 마시며 이 처절한 환경 속에 나는 살아있었고 오로지 내가 지금까지 찍은 필름들은 단순히 우리가 견딘 시련의 추억들이 되길 바랬다. 탐험 53일째 우리는 그토록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며 미세하고도 경미하게 움직여 목적한 지점에 도착 했고 결코 한명도 못서게 할 거대한 극장 무대의 한가운데 북극점은 차갑고도 장엄한 난빙의 한 중심에 서 있었다. 이곳은 하얀 사막과 같이 내 앞에 여기저기 흩어진 빙하는 나의 상상력이 새롭게 펼쳐지는 듯 했다. 나는 탐험이 끝나자 BC로 돌아와 제일먼저 목욕을 했다. 처음으로 따뜻한 욕조 안에서 57일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내 지친 몸뚱이를 녹이며 따뜻한 물과 여유를 한껏 누렸다. 살갗은 모두 말라 얇은 조각으로 벗겨졌고 양다리는 우스울 정도로 야위어 있었으며 갈빗대는 양 가슴에서 눈에 띄게 튀어나와 있었다. 얼굴은 마치 주의 깊게 치료 받고 있는 환자와 같았다. 박스그랜드슬램 북극원정대 산악인 홍성택  
    2005-07-11
  • <릴레이 인터뷰> MBC 이문로 부장
    (이어지는 인터뷰 - MBC 보도국 인터넷뉴스센터 이문로 부장) 6월 24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 오후, 기자는 이문로 부장과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MBC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더니, 엘리베이터 앞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처음 뵙는 자리였지만 활짝 웃으며 맞아주셔서 매우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1. iMnews를 기획하셨고 또 현재 이끌고 가시는 장본인이시라고 들었습니다. iMnew를 기획하신 계기나 의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iMnews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91년도에 열렸던, 창사30주년 기념 ‘MBC 시청자 비디오 촬영 대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창사 30주년을 맞았던 1991년 5월과 11월에 MBC 보도국은 미래를 예측하며 의미 있는 행사 하나를 기획했다. ‘보는 TV에서 참여하는 TV''라는 표어로 ’MBC 시청자 비디오 촬영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 대회의 취지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아마추어 영상인들의 창작의욕과 영상문화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디오’라는 언어의 가치를 되살리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비디오라는 말은 ‘음란’ 등의 의미를 가진 네거티브 언어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것이 대회의 기획 취지였다. 대회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방송사 최초의 촬영대회였기에 1천 6백 여 명이나 되는 많은 시청자가 참여하는 영상축제가 되었다. 이 ‘MBC 시청자 비디오 촬영대회’는 당시 일반 시민들이 TV 콘텐츠를 받기만 했던 수용자 입장에서 벗어나 ‘TV콘텐츠’의 제공자로 변모하게 만들 대사건이었다. 그 후 방송사들의 뉴스나 교양,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가 직접 제작하거나 제공한 동영상들이 자연스럽게 방송되기 시작했다. MBC는 이와 같은 행사를 꾸준히 개최해오다가 2003년 11월에 ‘내가 만드는 뉴스, 네티즌인 시청자가 함께 만드는 인터넷 아이엠 뉴스를 개국하게 되었다. iMnews는 표어에서 보듯 ’함께 만들어가는‘ iMnews 시민기자 1기와 2기 그리고 11월에 3기를 선발해 150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는 시민기자 500여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벌써 10기에 이르렀다. 언론이 미치지 못하는 시민들의 ‘풀뿌리 정보’를 스스로 기자가 되어 iMnews에 보도하는 시민기자의 활약은 예상 외로 대단하다. 나는 이들이 인터넷 뉴스 기자로서 사회 환경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감시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고 본다. 시민기자는 제도권의 언론과는 다르다. 나는 이들의 활동이 기존 뉴스에 대한 건강한 대안으로 자리 잡아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2. 시민기자 제도의 활성화가 제도권 내에 있는 카메라기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십시오. 우선 우리 카메라기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 카메라기자만의 영역은 없다는 것이다. 시민기자는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의 고유 영역을 침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아마추어 저널리스트의 수준이 높아짐으로써, 그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뿐이다. 시민기자들은 무급이다.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에 대한 금전적 대가가 없다. 그러나 카메라 기자는 일을 한만큼의 대가를 받는 프로페셔널리스트이다. 프로페셔널리스트인 카메라기자가 시민기자제도의 활성화를 도전으로만 여긴다면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객관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 본인의 분야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과 탁월한 분석력, 그리고 고품질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능력을 갖추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직업군과 직무의 변화는 우리만의 어려움이 아니다. 이미 세상은 모두가 경쟁이라는 레이스(race)에 들어가 있다. 이제는 프로페셔널리스트로서 자신만의 주특기가 필요한 때이다. 끊임없는 성장과 성숙,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프로페셔널리스트는 항상 칼날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칼날을 두려워하는 우리는 어쩌면 아직 아마추어인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 저널리스트들을 우리의 벗으로 생각하자!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위기의식이 우리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다. 3. iMnews와 같이 볼거리 위주의 뉴스를 생산하는 인터넷 뉴스의 영향으로 TV 뉴스가 더욱 연성화 되는 경향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말씀해 주십시오. 영상은 매우 감성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 영상이라는 감성적 요소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특성까지 가지고 있어, 감성적이고, 개인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것은 매체가 타고난 특성이다. 인터넷도 TV도 영상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볼거리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글이나 말보다는 영상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영상 고유의 특성이 무시되면, TV 고유의 전달력이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이 TV나 인터넷 뉴스를 볼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잔혹하거나, 외설적인 영상을 뉴스에서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연성적 매체인 TV나 인터넷이 경성화(硬性化)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에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매체에 대한 교육이라고 본다. 어렸을 때부터 매체에 대한 선택과 가치 판단의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교육 이후의 책임은 부모와 본인에게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4.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를 설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협회 설립의 이유와 협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카메라기자가 생산해내는 영상기록은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지닌다. 이렇게 고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프로페셔널리스트들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자신을 찍쟁이, 쇳덩어리라 칭하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카메라기자들의 자긍심도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기자들의 가치를 남들이 먼저 알아주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알리자는 취지로 협회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협회는 카메라기자들에게 기록자로서의 긍지와 사명감을 갖게 하고, 그들의 가치를 대외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5. 선배 카메라기자로서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카메라기자가 창출하는 가치는 국민의 이익이고, 국가의 이익이다. 우리 후배들은 이점을 명심하여 카메라기자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기자다운 기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할 부분이지만, 보도 영상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고 체계를 세우는 것 또한 현재 우리들이 할 일이다. 후배들이여, 끊임없이 공부하고 토론하자. 그것만이 여러분의 무궁한 발전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나는 후배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그 일에 적합한 인물이 되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노력한다. 아직 내가 준비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 나는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날, 가장 먼저 여러분에게 공개하겠다. 나는 여러분이 영원한 카메라기자로 남는 것도 좋지만, 멀티플레이어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 가지 능력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영상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영역에 대한 공부를 했으면 한다.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급변하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공부하는 카메라기자가 되어라’,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가장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5-07-11
  • <릴레이 인터뷰> KBS 제주총국 이광우 부장
    < 이어지는 인터뷰 - KBS 제주총국 이광우 부장 > "카메라기자는 순간을 잡아내는 마술사"  제19호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는 KBS 제주총국의 이광우 부장이다. 이광우 부장은 우리나라 최남단인 제주도에서 20여년간 카메라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제주를 지켜왔기에 누구보다 제주를 잘 알고, 제주를 사랑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묵묵히 한 지역을 지키면서 수많은 취재에 크고 작은 상도 많이 수상하고, 93년부터 6년간 제주지역 카메라기자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카메라기자의 취재 환경 개선과 위상정립에도 한 몫 하는 등 타사 회원들로부터도 제주에 꼭 필요한  카메라기자로 인정받고 있다. 1.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로 뽑힌 소감 한마디 부탁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가장 북쪽에서 근무하는 춘천총국 윤홍식 부장과 가장 남쪽에서 근무하는 나와, 지역은 다르지만 지역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것이 서로 통해서 저를 추천해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나는 내 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추천 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2. 카메라기자를 하게 된 동기는...  어렸을 때부터 사진 찍기를 좋아했는데 군에 가서도 우연히 사진촬영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 때 이일이 나의 적성에 꼭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촬영업무 때문에 군 생활이 즐거울 정도였다. 내가 KBS에 입사할 당시에는 방송의 혁명기였다. 방송의 무게중심이 라디오 매체에서 TV 매체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1978년 당시, KBS는 제주에서 가장 먼저 흑백 TV 로컬 방송을 시작했고, 또 불과 2년 만에 컬러 TV로컬 방송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방송의 혁명시기인 1979년 11월, KBS 6기 공채를 통해 카메라기자로 출발하게 되었다. 26년의 세월동안 현장을 고집하며 한자리에만 있다 보니 지금은 많은 선배, 동료들이 이곳을 떠나고, 제주 출신 촬영기자로서는 유일하게 저만 남아 후배들과 함께 아직도 현장에서 뛰고 있다. 3. 카메라 기자로서 좌우명이 있다면...  카메라기자인 우리에겐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카메라기자는 '순간'을 잡아두는 직업이기 때문에,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순간은 쳐버리면 영원히 사라져 버리니까 말이다. 순간을 잡아두는 힘을 가진 마술사(魔術師), 그것이 카메라기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카메라기자는 '순간'의 마술사가 되어야 하므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현장에서 경쟁하는 동시에 한순간도 자기 계발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 이런 연유로 나의 좌우명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이다. 옥돌을 끊임없이 갈고 닦고 연마하듯 나 자신을 항상 계발하고 끊임없이 공부하자는 뜻에서 이다.   4.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형적 특색 때문에 취재하는데 육지와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주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제주는 역사적으로 매우 아픈 역사를 가진 섬이다. 몽고군이 100년 가까이 제주를 지배했고 일제 치하에서는 일본군이 미군과 마지막 전투 준비를 위해 제주주민을 동원해 혹독한 노동착취를 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도 버림받은 최남단 오지로 취급돼오다가 또다시 섬을 피로 물들이는 4.3이라는 참담한 시련을 겪었다. 이러한 역사적 기억 때문에 제주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히 외부인을 경계해왔다. 하지만 한 번 믿고 정을 주기 시작하면, 가진 것을 다주고 싶어 하는 것이 제주 사람이다. 이런 제주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 취재에 나서면 별 어려움이 없이, 오히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또, 남쪽 최고의 산이 있는 섬이라 산과 바다와 관련된 취재 아이템들이 철마다 있다. 취재를 하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태풍이 많아서 여름 내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속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취재하다 보니 이제는 섬과의 대화가 통하는 것 같을 정도로 제주도라는 섬에 애착이 간다. 5. 이 십 여 년간 한 지역을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카메라기자로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26년간 근무하면서 한 번도 다른 지역에 나가 본 일이 없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순환 근무가 일반화 되어 있는 KBS 지역국으로서는 드믄 경우이다. 그 동안 제주 KBS의 카메라기자 수는 업무에 비해 절대 부족했다. 신입사원 모집 때도 제주 KBS에는 제주출신이 카메라기자마저 응시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본사에서 순환근무 체제로 부족한 인원을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지역 지리에 익숙해지고 업무가 자리 잡을 때 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다른 기자가 와서 다시 업무 인수 인계받는 형태의 근무가 계속되니 영상취재파트를 이끌어 가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 20년 이상을 카메라기자 3-4명으로 제주를 지켜오면서 의지만 가지고 버티기에는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 할까하는 마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여건이 많이 나아져 할 만 하다. 최근 들어 5명이 근무하게 되었는데 특집프로그램을 한 명이 전담해도 예전과 비교하면 어려움이 덜하다. 이제야 한 숨 놓인다. 6. 각종 상을 많이 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지...  다른 지역국과 마찬가지로 제주 KBS도 소외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른 지역국보다 조금 더 나은 일을 찾아야 했는데, 그것이 특집 프로그램 제작이었다. 87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50분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2편 내지 3편 제작, 방송했다. 내가 상을 많이 받은 이유라면, 특집 제작을 싫든 좋든 거의 제가 전담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6편의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20회 정도 수상했는데, 이러한 상들은 충실히 기획하고 함께 취재한 취재기자와 제작 기간 동안 데일리 뉴스 스케줄을 소화해준 동료 카메라기자 덕택에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7.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다면...  1994년 8월 10일, 태풍 셀마가 제주를 휩쓸고 지나간 다음날이었다. 아직도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온 섬이 흠뼉 젖어 있을 때인데 난데없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소방서에 전화를 해보니, 152명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가 제주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다가 방호벽을 들이박고 화염에 휩싸여 있다고 했다. 즉시 장비를 챙겨 현장에 도착해보니 기체는 두동강이 난 채로 불타고 있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기에 급히 취재를 하고 테이프를 보내서 타 방송에 비해 43분이나 앞서 첫 방송을 할 수 있었다. 다음날도 블랙박스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사고항공기 조종사와 관재탑과의 교신 내용과 항공기의 재원, 조종사 인적 사항 등 대외비급 서류 카피 본을 입수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특종을 이끌어 냈다.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8. 제주도를 책임지고 있는 카메라기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내가 퇴직해서 나가더라도 제주를 사랑하고 끝까지 이곳을 지켜줄 후배가 들어와 내 뒤를 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9. 다음 인터뷰 주자를 지명해 주십시오. 속이 꽉 찬 남자, 한 곳을 집중하면 먹돌을 뚫을 남자, 마음이 넉넉하고 항상 포근한 남자, MBC 인터넷뉴스의 이문로 부장을 추천한다.  
    2005-06-13
  •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 파업 현장에서
    건설플랜트 노조 파업의 현장에서 지난 5월 6일,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의 시위와 관련해 취재를 하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고, 나는 현장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좀 걱정이 되었다. 돌과 화염병, 쇠파이프 등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실감나는 화면을 확보하려면 근접할 수밖에 없는데, 플랜트 노조의 강성 시위는 가까이 다가가서 촬영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울산 시내에 밀집한 화학 공장의 설비와 보수가 주요 업무인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것은 지난 3월 18일이다. 이들의 요구 조건은「근로 조건 개선」「재하청 금지」「산업 안전 보장」「휴게 시설 확충」등으로 이들로서는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사용자 측은 이들이 일용직이고, 각각의 계약 기간이 다르며, 여러 업체에 소속된 각기 별개의 노조이기 때문에, 회사마다 입장이 달라 일괄 협상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 조건이 합당하다 하더라도, 건설플랜트 노조 측이 협상을 끌어낸다는 명분 아래 폭력 시위를 벌이고, 울산 시청에 난입해 민원 업무를 마비시키며, 국가 기간 시설인 정유 공장에 들어가 굴뚝 고공 농성을 벌였던 것까지 모두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이것은 유권의 주장이 아니라, 무권의 횡포이다. 횡포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더더욱 용납될 수 없는 것은 시위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과격해졌다는데 있다. 그들이 수레에 날카로운 쇠창을 달고, 진압하고 있는 전·의경에게 돌진하는 바람에 많은 중상자가 발생했다. 또 방패와 헬멧이 빼앗겨 무장이 해제된 전경들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쇠파이프를 내려치는 그들의 행위는, 시민들로 하여금 합당한 그들의 주장마저도 외면하게 하였다. 이런 무차별적인 폭력 현장에서 KBS 박모 선배는 취재 도중에 카메라가 부서지고, 쇠파이프로 머리를 맞아 부상을 입었다. 헬멧을 쓰고 있어서 중상은 면했지만,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노동자들의 고통이 최고조에 달했던, 98년 현대 자동차 정리해고 당시에도 이번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취재를 한 적은 없었다. 다행히 지난 5월 27일, 다른 기관의 중재로 노사협상 재개하여 70여 일 간의 파업이 잠정 중단되었다. 쌍방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절충하고 합의하여, 앞으로는 이러한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노조원들이 협상을 끝내고 자신들의 사랑하는 가족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기나긴 협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으로 기뻐하기만 할 수 있을까? 무차별 폭력에 중상을 입은 전·의경들이 자신들의 가족 중에 있다면? 가족과 함께 하는 기쁨 속에서, 자식을 군에 보내고 시위 현장에서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하는 부모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는지 궁금하다. ubc 울산방송 최문호 기자  
    2005-06-13
  • 아직도 끝나지 않은 5.18의 숙제
    아직도 끝나지 않은 5.18의 숙제 ‘너무 식상하지 않냐? 다 정리된 일을...’ 5월 18일 방송될 SBS 프로그램 뉴스추적에서 5.18 실종자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는 사실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던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 5월 18일에 5.18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나는 주위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을 접하며 ‘이미 완료된 역사적 사실을 단지 시기적으로 겹친다는 이유 때문에 관성적으로 제작하는 것인가?’ 하는 혼돈을 일으켰던 것 같다. 어쨌든 프로그램 제작은 시작되었고 취재진은 11일 간 광주에 머물며 5.18유족회와 5.18묘역, 광주시청, 너릿재, 황룡강 등의 여러 학살 현장을 돌았고 유족들을 만났으며, 한편으론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당시 계엄군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취재 과정을 겪으며 느낀 점은, 5.18문제는 제대로 해결된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5.18문제 가운데 취재진이 집중했던 부분은 실종자 시신 발굴 문제였는데 이 부분을 파헤치다 보니 결국 5.18과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들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다. 실종자의 시신을 찾기 위해서는 광주항쟁 당시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의 제보를 필요로 하는데 문제는 정확한 제보를 해 오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당시 피해 지역에 아직도 거주하는 어르신들은 지금도 5.18 문제를 꺼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껴 취재진을 회피하거나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추며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결정적인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당시 계엄군은 아직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고 정확한 암매장 위치를 증언해 준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익명으로 제보를 해 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제보 내용이 ‘조선대 뒷산에 암매장 했다.’는 식이어서, 넓디넓은 조선대 뒷산을 다 파헤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실상 시신 발굴이 불가능한 수준의 제보였다. 또한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암매장 추정지로 예상되는 지역은 도로가 깔리고 건물이 들어서는 등의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신 발굴 업무를 맡고 있는 광주시청은 암매장 장소라고 제보된 51곳 가운데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5곳을 발굴해봤지만 단 한 구의 시신도 추가 발굴하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재팀은 제보 장소 가운데 몇 군데를 실제로 발굴해 보았지만 발굴과정에서 막막함만 느꼈을 뿐이었다.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시 계엄군의 명단을 확보해서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암매장지에 대한 증언을 수집하는 것인데 계엄군의 명단은 군 당국에서 신변보호라는 명분하에 대외비로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 실종자 문제는 이 같은 폐쇄형국에서 일보의 진전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꼴이었고,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행여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렸다며 마른 눈물을 흘리고 있다. 5.18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한 실정이지만 김영삼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해결된 것이라곤 5.18의 역사적 의미를 일정 정도 격상시켜놓은 것과 공식적인 묘역을 만들어 놓은 것, 피해자 보상 문제에 손을 대었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젠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진상도 공식적으로 규명된 바가 없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 진 바가 없다. 당시 계엄군을 지휘했던 지휘관을 찾아가 봤지만 만날 수도 없었고 전화기를 통해 들은 얘기라곤 ‘ 잘 모른다. 사실상 지휘권이 없었다. 자료를 가진 것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5월 18일에도 5.18에 대한 정부 차원의 행사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광주의 아픔을 해결하는 내용은 전무했다. 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광주문제는 어느덧 관습적인 연중행사로 변질되어 가고 있고, 사람들은 이제 5.18을 지나간 과거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광주에서 만난 피해 당사자들에게 5.18은 치유되지 않은 현재의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육체적인 상흔으로, 어떤 이들은 정신적 트라우마로 25년 넘게 생생한 통증을 지속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실종자 문제에 무게를 두고 취재를 진행했기에 5.18책임자에 대한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루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실종자 문제는 결국 책임자 문제 및 정부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겨우 한 달의 시간으로 제작한 1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5.18 피해자와 유족들의 문제에 도움이 되기에는 대단히 미흡하겠지만 광주문제가 이미 ‘완결되어 버린 역사’라는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꾸어지길 희망한다. SBS 뉴스추적팀 이원식 기자
    200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