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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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릴레이 인터뷰> 부산MBC 이태곤 부장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자!" 1. 요즘 많이 바쁘시죠? 근황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나는 4년 전부터 영상취재부 데스크를 맡고 있다. 부산 MBC는 보통의 지역사와 달리 인력이 허용되어 데스크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데스크 업무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데스크는 영상에 대한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보통의 지역사에서는 데스크가 취재를 나가다 보니, 카메라기자 개개인이 영상 촬영에서부터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다. 아직 지역에서는 ‘인격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아 별 무리 없이 넘어가고 있으나,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분명 ‘영상’의 인격권 침해에 대한 분쟁이 빈번히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장치가 ‘데스크’이다. 카메라기자들이 취재해 온 영상물들을 보고,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는지 체크하며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역할, 지역사에도 분명 이러한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내 생각이 이렇다보니, 스스로를 더욱 바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치열하게 바쁜 생활을 즐긴다. 여러분도 즐겨라! 즐기다 보면 진짜 즐거워진다. 2. 카메라기자의 미래에 대해 많이 고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부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카메라기자가 미래에도 스스로의 자리를 확보하고, 왕성히 활동하기 위해서 다음의 세 가지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문성 강화이다.  같은 카메라기자라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신 있는 부분을 선택해서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유일한 자’ 그리고 ‘최고인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이다. 앞으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유일한 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고인 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카메라기자로서 ‘원맨시스템’이 가능한 사람, 즉 아이템 기획, 기사 작성, 촬영, 편집, 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도록 그러한 기회를 많이 부여해야 한다. 또한 문화, 예술 분야의 촬영에 있어 특히 미적인 감수성을 보이는 사람은 그것을 더욱 살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는 데스크나 윗선의 배려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카메라기자의 미래를 위해 현업 카메라기자는 카메라기자대로, 데스크는 데스크대로 서로 노력하여 이 부분을 반드시 현실화시키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카메라기자의 조직력 및 역량 강화이다. 카메라기자의 조직은 타 조직에 비해 아직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본다. 특히 지방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영상취재부가 독립되어 있는 지방사가 거의 없다. 각 지방 방송사의 여건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우리 카메라기자의 조직력 문제이다. 텔레비전 방송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영상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카메라기자가 여전히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도록 노력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알리고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자. 우리 조직의 힘을 길러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발전이 나의 발전’이라는 생각도 필요하다. 스스로 본인이 편한 것만 찾고, 그것에 안주한다면 조직의 미래 뿐 아니라, 카메라기자로서 개인의 미래도 없다.  업무에 쫓겨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카메라기자 간의 교류 그리고 대외적인 교류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교류를 정보의 창으로 삼아라. 기자는 정보가 자본이다. 카메라기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것이다.  대외적인 교류를 통해 카메라기자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기자로서 자본이 되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보유하며, 우리 조직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한다면 카메라기자의 조직력과 역량은 자연히 강화되리라고 생각된다.  세 번째는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볼 수 있는 영상 풀 문제와 제보 영상 사용 문제 해결이다. 90년 대 초까지 만해도 많지 않았던, ‘영상 풀’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영상 풀’이 이루어지면서 방송3사의 뉴스가 똑같은 그림, 똑같은 내용으로 방송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청자들의 ‘볼 권리’ 침해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카메라기자의 존립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다보면, 경영자 입장에서 카메라기자의 필요성은 급감하게 된다. 순간 편하기 위해서, 그리고 낙종을 면하기 위해서 행하는 ‘영상 풀’은 스스로 몰락을 자초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협회 차원의 제동이 필요하다. 지방사의 경우, 회사에서 영상 풀을 지시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카메라기자협회에서 준칙을 만들어 카메라기자 뿐 아니라 회사도 이를 준수하게 해야 할 것이다.  제보 영상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특히 ‘조작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욱 심각하다. 지방사의 경우, 관공서에서 배포하는 제보 영상으로 뉴스를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차원에서는 인력 절감 차원에서 그리고 카메라기자들은 편하게 뉴스를 만들어 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반감을 갖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역시 영상 풀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입지를 흔드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당장의 편안함을 쫓아가다가 우리가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3. 카메라기자를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으시다면 무엇입니까?  1993년 3월에 일어났던 구포 열차 사건이다. 열차가 탈선을 해 많은 사상자를 냈던 사건인데, 사상자 구조 작업이 한창일 때 취재를 해, 보다 생생하게 현장을 전할 수 있었다. 이것은 타사보다 무려 1시간 이상 앞선 특종이었다.  그날, 삼월 삼짓날이 가까워 불자들이 바다에 방생을 하는 모습을 스케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열차가 탈선했다는 제보를 접하였다. 취재기자를 독려하여 현장으로 가는데 접근이 쉽지 않았다. 길을 포기하고, 철조망을 뛰어넘어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이 사고는 무려 78명이 사망하고, 256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사고였다. 나는 비교적 사고 현장에 일찍 도착해 수습 과정을 그대로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거의 혼자 독점 취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5대 일간지는 그 때의 사건을 신문에 게재하면서 내가 찍은 영상을 캡쳐하여 함께 실었고, 외신에서도 풀을 하였다.  부산에서 일어난 사고 중에서는 매우 큰 사고였던 데다가, 그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일이 많았던 터라, 내가 했던 취재 중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4. 후배 카메라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카메라기자들은 영상만을 다루다 보니, 사고나 시각이 편협해지기 쉽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 보다는 갈수록 감각적이 되어간다.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가 대외적인 힘을 갖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하나 더! 우리 후배들은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긍정적인 사람만이 상대방을 설득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THE PRESENT"라는 책이 있다. “PRESENT”라는 단어가 ‘현재’라는 의미와 ‘선물’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는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이러한 말이 나온다. “현재는 다른 말로 하면 선물이다. 현재가 즐거워야 미래가 즐겁고, 또 과거도 즐겁다!” 우리는 현재를 다루는 사람들이다. 현재를 다루는 우리의 일을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즐겨라! 그리고 사랑해라! 나는 후배들이 하루하루 본인이 만든 뉴스에서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카메라기자가 되었으면 한다. 5.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의 주자를 추천해 주십시오.  나는 마산MBC의 정 견  부국장님을 추천한다. 정 견 부국장님은 특히 카메라기자의 인화단결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며, 친화력이 대단하신 분이다. 후배 카메라기자들이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5-09-09
  • 평양 축전 기간 중 평양 순안 공항에서
    이 한 장의 사진 2001년 8월 15일 평양축전 기간 중 평양 순안 공항에서 이 해 민족통일대축전은 처음 남측 대표단이 공식 참가하였으나, 한 참가 교수가 만경대 방명록에 친북 성향의 글을 남겨 논란이 되었다. 공동취재단 왼쪽부터 MBC 양윤모 부장, 김종수 신부(7대 종단 대표), YTN 권한주 기자, KBS 구재영 차장, KBS 전영선 차장 (보도 기술, 위성 송출 담당)
    2005-09-09
  • 64년만의 폭우, 그 피해 현장 스케치
    64년만의 폭우,  그 피해 현장 스케치    “아니 이것이 뭔 난리여!! 내 나이 팔십 평생 요렇게 비가 많이 온 걸 본 적이 없는디... 이것이 뭔 일이다요 기자양반~”  350밀리미터의 집중 호우가 쏟아져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버린 부안군 줄포면. 비가 그친 3일 오전, 마을에서 만난 80대 노모는 연달아 한숨을 내쉬며 취재진을 붙들고 울먹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온 마을이 물에 잠겨버린 줄포마을은 길이 보이지 않은 물바다 그 자체였던 것이다.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은 지붕만 덩그러니 내 놓은 채 물속에 잠겨있었고, 구명보트만이 차로를 대신해 수로로 변해버린 도로 위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 광경은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너무나 터무니없고 급작스런 상황이라 그저 멍하니 물속에 잠긴 집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한없이 측은해 보였다.  1942년, 집중호우로 인해 하루 강우량 336.1mm의 비가 내린 이래 두 번째로 많은 비가 내린 8월 3일 오전 10시경, 279.5mm의 많은 비가 쏟아진 전주 시내 저지대 및 일부 지역은 주택 수백 가구가 물에 침수되고, 시내 4차선 도로변 일대가 어른 가슴까지 닿을 정도로 물이 차올랐다. 그동안 타 지역에 비해 그다지 큰 재해가 없었던 전주지역도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쏟아진 폭우로 인해 더 이상 ‘기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조용했던 산간 마을도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평소에는 졸졸 시냇물이 흐르던 마을에 400mm가 넘는 엄청난 폭우로 산이 무너져 떠내려 오고, 마을 입구 비닐하우스와 농산물 저장고가 통째로 떠내려갔다. 몇 년 전, 어릴 적 떠났던 농촌 마을로 귀농하며, 수 천 만원의 빛을 내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는 50대 마을주민. 폭우 때, 재빠르게 몸을 피해 살아났지만, 삶의 터전을 통째로 잃은 슬픔에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고 물살에 휩쓸리는 바람에 10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농경지 2만 7천 ha가 고스란히 물에 잠겼다. 그 결과 3천 여 억 원의 어마어마한 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같은 참담한 소식을 접하고, 곳곳에서 자원 봉사의 손길이 이어졌다. 공무원과 군인, 학생. 그리고 휴가를 대신해 수해 현장으로 달려온 직장인까지. 거기에 타 시도의 주민들도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복구 작업에 일손을 보탰다. 덕분에 폐허나 다름없었던 수해 현장은 빠른 속도로 제 모습을 찾아갔다. 하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피해복구 계획은 농심(農心)을 들끓게 만들었다. 결국 성난 농민들은 복구 작업과 피해 보상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수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과 적정한 보상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급기야는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재배해온 벼가 물에 잠겼는데 정부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거대한 트랙터로 수만 평의 논을 갈아엎기에 이르렀다.  64년만의 폭우로 수해가 발생한 지 벌써 한 달.  이번 전주 지역 수해는 남긴 상처만큼이나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언젠가는 나에게도 똑같은 피해가 발생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재민을 보듬는 따뜻한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방송 또한 지역 방송 중심의 재해 방송이 아닌 중앙 방송이 나서, 전국적인 방송 매체로서의 소임을 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지역에 집중된 피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자연재해란 사실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피해성금 모금 또한 지역방송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중앙방송매체를 통한 전국적인 모금방송이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똑같은 재해를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이번 피해에 대한 자각과 경험부족으로 더 큰 피해를 만들었던 임기응변식 대처에 대한 반성 속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전주방송 보도국 이동녕 기자  
    2005-09-09
  • <릴레이 인터뷰> PSB 최용부 부장
    "항상 연구하는 영상 전문가, 그것이 우리 카메라기자가 나아갈 길이다!" 지난 26일, 아침부터 푹푹 찌는 매우 무더운 날, 기자는 최용부 부장을 만나러 국회에 갔다. 최용부 부장의 첫 인상은 ‘듬직한 경상도 사나이’ 그 자체였다. 1. PSB 서울지부로 오셨다던데,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부산에 있을 때보다 훨씬 여유가 있다. 취재만 끝내면, 그 이외의 시간은 내 시간이니까. 나는 서울지부로 오기 전까지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시간적인 여유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데스크를 맡았다. 그냥 ‘데스크’도 아니고, ‘이동 데스크’였다. 부산방송은 지역방송인 관계로 여건 상 데스크도 취재를 해야 했다. 아침에는 다른 기자들보다 일찍 나와서 타 방송의 뉴스 모니터하고, 낮에는 취재에 합류하고, 밤에는 데스크로서의 업무를 했다. 이런 생활 속에 어떻게 ‘여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데스크를 그만 두기로 결심을 했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조직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조직이 더 좋은 방향으로 변모하려면 구성원의 순환이 원활해야한다. 인력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고, 활력이 없는 조직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데스크’라는 굴레를 벗어버린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시간의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도, 조금씩이나마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모두 감사한 일이다. 요즘 예전에 찍어 놓고 바빠서 필름 채 두었던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다. 의미 있는 사진들은 블로그에 올리는 작업도 하고 있으니, 한 번씩 방문해 구경들 하시라.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날 것이다. 2. 작년에 최용부 사진전(崔容富 寫眞展)이라는 HD방송 영상전시회를 개최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러한 전시회를 기획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힘들게 제작한 영상이 뉴스에서 한 번 방영되고 나면, 그것으로 수명을 다할 때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영상들을 데이터화시켜 후에 정보로 활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해왔다. 그러던 중 HD 장비가 보급 되었고, 모든 컷을 완벽한 한 장의 사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나에게 HD 다큐멘터리 “구화산 김지장”을 제작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시범적으로 그 다큐멘터리를 활용하여 사진전도 열고, 영상집도 내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영상을 활용한 출판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출판만이 아닌 산업과 예술의 전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은 활용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치의 문제이고 우리 ‘영상인’의 위상 문제이다. 영상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그렇게 높은 가치를 지닌 영상이 지금까지는 타 프로그램 제작 시 자료로 사용되는 것이 다였다. HD 시대가 도래한 지금, 영상이 정보 또는 지식으로서 100% 인정받기 위해서는 ‘영상의 데이터’화가 필수적이다. 나는 영상 데이터 활용의 실례로 ‘최용부 사진전’과 ‘영상집’을 여러분에게 선 보인 것이다. 3. 카메라기자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현재의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카메라 기자의 위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속보 경쟁 면에서 우리는 이미 작은 카메라군단에 밀려있다. 뉴스 영상을 우리만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밀려들어오는 그들은 시대의 대세이다. 기본적인 뉴스 영상은 우리가 아니어도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으로 부단히 올라가야 한다. 단순 뉴스가 아닌 밀착 취재나 기획 취재, 또는 영상미 높은 작품을 제작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영상가공능력과 비교 분석력을 키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10년 후 우리는 ‘영상의 생산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지 모른다. 전부 우리 몫이었던 영상 취재 부문이 조금씩 우리의 손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때를 대비해야 한다. 10년 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만들어진 영상 데이터를 가공하거나, 비교 분석하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영상전문가 중의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아마추어가 자신의 감각이나 촬영 기술만 믿고 뛰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프로페셔널리스트가 그 만큼의 내공을 쌓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 경지에 도전해야 한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은 연구이다. 카메라기자는 영상전문가로서 기본은 갖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스스로 카메라라는 도구에만 안주한다면, 카메라기자의 미래는 어둡다. 도구에 얽매이지 않는, 그리고 항상 연구하는 영상전문가가 되자. 그것이 우리 카메라기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4. 앞으로의 포부나 욕심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10년 동안의 데스크 생활을 접고, 현업으로 돌아온 지금 일에 대한 특별한 욕심은 없다. 이젠 현업에 주력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보고 싶다. 특히, 나는 의미 있는 그림들을 많이 찍고 싶다. 1’ 30” 길이의 뉴스만 찍어서는 ‘영상을 향한 나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그것에 빠져 살고 싶기도 하고, 좋은 스틸 사진을 많이 찍어 사진전도 두 번 정도 더 열고 싶다. 서울에 온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서울은 참 신기하고 재미난 것이 많은 곳인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지낼 서울에서의 2년이 심심하지 않을 듯싶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서울 골목골목을 사진에 담을 작정이다. 서울의 골목골목이 궁금하신 분 역시 나의 블로그로 오시면 볼 수 있을 것이다. 5. 다음 호 이어지는 인터뷰에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부산MBC의 이태곤 부장님을 추천한다. 다른 훌륭한 분들도 많겠지만, 이 분이야말로 카메라기자의 위상이나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시고 애 쓰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5-08-11
  • 외신의 테러 뉴스가 주는 교훈
    <사 설> 외신의 테러뉴스가 주는 교훈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외신뉴스의 고정코너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뉴스가 바로 테러관련 소식이다. 게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서도 테러소식은 역시 단연 1위다. 자살폭탄테러, 총기 난사, 대중교통 폭파 등의 방법으로 인종, 문화, 종교, 군사적 열등 상황을 해결하려는 테러는 최근에 급증하고 있고 따라서 이에 대한 뉴스 비중 역시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적으로 역동적인 세상에서 외신들의 뉴스 영상을 보면 사건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분위기가 상당히 차분하다. 잔인한 시체의 모습도 없고, 유가족의 오열, 공포에 휩싸인 주변인의 모습도 없다. 오히려 상황 수습하는 경찰이나 군인의 모습과 기자의 긴 스탠드 업 장면이 대부분을 이룬다. 물론 테러라는 것이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에 카메라기자가 테러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지나치게 차분하다. 또 추후에 방영하는 후속기사에서도 자료화면으로 과거의 폭발흔적이나 파편 등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현재의 수습 모습이나 경찰들이 경계하는 장면 등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뉴스영상은 어떤가? 사건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기자들이 현장을 누비고 다니고, 역동적인 화면구성으로 보다 자세한 설명을 시청자에게 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기분이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어떻게 사건이 발생했는지 취재기자가 연기까지 해준다. 이처럼 아주 자세한 내용을 보여주는데 모든 노력을 다한 결과 시청자들은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외신의 뉴스가 이성에 호소하는 영상을 보여주며 사건의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동안, 우리의 뉴스영상은 감성에 호소하여 계속해서 시청자의 눈을 화면에 붙잡고자 하는 욕심이 다분히 나타나 있다.  우리의 뉴스영상도 초상권의 보호, 재연 영상의 금지 그리고 속칭 ‘몰카’라 칭하는 남몰래 촬영하기를 금지하며 뉴스의 객관성 확보에 노력해왔다. 지난 10 여 년 동안 해온 이러한 객관화 노력은 한국의 뉴스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직접적인 객관성 확보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인 뉴스의 이성적 접근에는 많이 못 미친다. 여태까지는 소극적인 측면에서 객관성을 확보하는데 노력을 했다면 이제는 적극적인 측면에서 객관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시청자들이 뉴스영상을 보면서 그 사건의 내면과 배경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성적 영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뉴스영상의 역할은 자세한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현장을 멋지게 그리고 많이 보여준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생생함은 부족하지만 오히려 차분하게 사건의 현실을 이해하면서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이 더 국민에게 필요하다. 외신도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뉴스를 봐주기 바란다. 하지만 뉴스가 갖는 역할이 더 중요하기에 우리 뉴스영상보다는 차분한 모습으로 사건을 접근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한다.  
    2005-08-11
  • <칼럼>6mm 디지털 카메라와 방송
    6mm 디지털 카메라와 방송 방송 프로그램은 문화 상품임과 동시에 한 사회의 문화적 수준과 질을 표현하는 문화적 컨텐츠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이런 방송 프로그램의 질 향상은 방송발전을 도모하고 공공의 이익을 제고하며 궁극적으로 시청자의 방송 복지 실현을 목표로 한다. 특히 영상의 시각적 이미지는 동시대를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소형 6mm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1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는 VJ라는 직종이 생겨 났는데, 6mm 디지털 카메라의 사용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6mm 디지털 카메라가 지닌 저예산 테그놀로지의 특성을 바탕으로 이것이 무분별 하게 방송에 등장하면서, 방송의 프로그램의 질 저하를 가져오며 이는 고스란히 시청자가 받는 피해로 작용하는 것이다. 6mm는 저가라는 이유로 방송사내에서 서브카메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IMF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방송국의 제작비 절감이라는 명제를 등에 업고, 이제는 이 6mm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해 만든 프로그램들이 공중파의 상당부분을 메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6mm 디지털 카메라는 배타적 장점을 살려 개척 할 만한 영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적 영상으로 자리매김 한다는 인상을 지을 수가 없다. 카메라를 조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셔터를 넣고 끊는 작업이 아니다. 이 역시 미학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을 위한 다양한 기술적인 선택과 조작이 필요한 것이다. 이 기능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결국 표현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치명적 약점을 안게되고 이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부적합하게 된다. 6mm는 방송용 ENG카메라의 대체품이 아니다. 방송국 내에서의 6mm의 사용은 6mm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에 한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상대적으로 6mm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에만 선택적으로 사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제작비의 절감이라는 당의성에만 치중하다 보면 결국은 6mm의 사용이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6mm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른바 VJ의 1인 제작 시스템은 현재 방송사에서 실행중인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제작 시스템과 비교 될 수 없다. 가령 아이템의 기획에서 취재, 촬영, 편집 단계를 1인이 제작해서 15분물을 1주일만에 완성하였다면, 현재 방송사의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 제작 시스템에서는 15분 물을 하루에 한 작품이상으로 제작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혼자 모든 제작 과정을 책임지다보니 노동 강도가 기존 작업의 몇 배가 되고, 또한 촬영 중 어떻게 다가올 지 모를 위험 또한 혼자서 감내 해야 한다. 그러므로 경제적 논리와 창의성, 영상취재의 전문성, 취재 현장에서의 위험 요소등에서 VJ의 1인 제작 시스템은 비생산적 구조를 갖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방송사 경영진들은 1인 제작방식의 경제적인 혁신성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최근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 1인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 여러 개 편성되었으나 과연 저런 프로그램도 6mm로 찍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때가 많다. 또 아무리 비디오 저널리스트의 작품이 미학적인 질보다는 리얼리티 등의 장점으로 어필하는 특성을 갖는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미학적 질의 한계는 곧 시장 경쟁력의 저해 요인이 되고, 이는 곧 문화 콘텐츠인 방송 프로그램의 질 저하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방송사의 품위(이미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6mm카메라를 가지고 취재원 인터뷰를 하는 것과 ENG카메라로 인터뷰하는 것은 취재 당사자에게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소형 6mm로 접근 할때 나타날 수 있는 비신뢰성이 곧 방송사의 이미지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에게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해야한다는 명제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하는 상위 개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떠한 도구, 어떠한 방법으로 프로그램을 제작 할 것인가는 결국 운용하는 사람의 몫인 것이다. 회사 측의 제작비 절감이라는 무형의 압박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의 근시안적인 편의성의 추구 때문에 6mm 디지털 카메라가 프로그램에 알맞게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6mm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프로그램에 맞게, 그리고 상황에 맞게 적재적소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현재 각 방송사에서는 HDTV시험방송을 포함하여 디지털 방송을 시작하고 있다. 시청자에게 좀더 좋은 화질, 양질의 프로그램을 공급하고자 시행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구 무분별한 6mm카메라의 사용은 시청자들에게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서 좀 더 고급스러운 프로그램을 제공할 기회를 방송사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6mm카메라가 지닌 기능의 우수성을 폄하 하는것이 아니라 6mm카메라는 정말 필요한 적시 적소에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6mm카메라는 6mm카메라만의 배타적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영역안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  
    2005-08-11
  • 베이징 6자 회담에 다녀와서
    <베이징 6자 회담> “한반도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한국 카메라 취재진 너무 적은 것 아니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지난 7월 24일부터 8월 7일까지 보름간 개최되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주목된 만큼 어느 때보다 각국의 취재열기도 무척 뜨거웠다. 한국의 경우 70여명의 대규모 취재기자단을 파견했는데, 방송카메라기자단은 KBS, MBC, SBS, YTN, MBN, KTV 등 6사가 함께 공동취재단을 구성하였다.  이번 6자 회담은 전력제공을 통해 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한국과, 분명하고 확실한 핵관련 시설폐기를 다짐 받으려는 미국, 납치자 문제를 해결코자하는 일본, 적극적 중재자로서의 중국과 이 모든 사안들에 맞서 평화적 핵이용권을 보장받고 경제적 보상을 챙기려는 북한과의 불꽃튀는 외교 전쟁이었다.  각국의 이해가 첨예한 만큼 각국의 취재전도 치열했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북한 대사관에는  수 십 명의 취재진이 새벽부터 자정까지 진을 치고 있었고,  미국과 한국, 일본대표단이 묵는 숙소 역시 연일 장사진이었다. 특히 시시 때때로 변하는 회담상황 때문에 대표단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얼굴 표정 하나가 모두 뉴스가 되었다.    회담이 예상했던 일주일을 넘겨 보름까지 길어지면서 각국 취재력에도 차이가 났다.  20여 명이 넘게 방송카메라 취재진을 파견한 일본의 NHK와 후지TV는 각 포인트별로 전담 취재진을 상주시키며  긴밀한 연락체계를 구축하여 신속하고 정확하게 취재를 진행할 수 있었고, 뉴스서비스 업체인 APTN과  로이터 역시 현지 언어와 경험이 많은 취재진을 파견하여 원활한 취재가 가능했다. 반면  한국 취재진은 엄청난 숫적 열세와  6개 방송사가 1팀씩 구성한 공동취재단의 특성상 각 방송사간의 건강한 경쟁이 이루어 지지 않는 한계를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 역시 “한반도의 사활이 걸린 사안인데도 한국 측 카메라취재진의 수가 너무 적은 것 같다.” 는  반응을 보였으며, “공동취재를 하면 어떻게 뉴스를 차별화시키냐?”는 질문을 던져왔다. 이렇듯 6자회담의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국인 우리나라가 이번 회담 취재에 보다 적극적인 취재역량을 투입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비용 상의 문제가 되더라도  각 사별 독립취재단을 파견하였으면  보다 나은 뉴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제까지 비용절감과 취재편이를 위해 시청자들의 소중한 권리, 즉, 차별화된 뉴스와 다양한 영상을 선택할 수 있는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침해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최경순 기자 urisuny@imbc.com
    2005-08-11
  • 뉴욕타임즈의 여기자 쥬디스 밀러, 취재원 공개 대신 감옥행
    ■ 취재원 공개 대신 감옥행 취재원 공개를 거부했던 뉴욕타임즈의 여기자 쥬디스 밀러가 지난 6일(미국 시간) 구속됐다. 범죄혐의는 법정모독죄, 취재원을 밝히라는 법원의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취재원 보호라는 직업윤리를 지키는 대신 감옥행을 선택한 것이다. 57살의 쥬디스 밀러 기자는 뉴욕 타임즈 매거진의 탐사보도 전문기자다. 지난 2002년 알카에다 테러망과 오사마 빈 라덴에 관한 기사로 퓰리처상까지 받은 베테랑 기자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관련 보도로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 리크 게이트 사태의 발단은 CNN 토크쇼 '크로스파이어(CROSSFIRE)'의 진행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노박이 지난 2003년 7월 14일 '두 명의 고위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CIA 여성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폭로한 것. 비밀요원의 신분을 폭로한 것은 국가안보는 당사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범죄. 지난 82년에 제정된 정보원 신원보호법 위반으로 최고 10년형에다 5만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래서 리크 게이트(LEAK GATE;정보유출 파문)로 불리는 이 사건에 특별검사가 임명돼 수사에 착수했다. ■ 부시의 최측근이 정보유출? <-- [백악관 비서실장 칼 로브] 관심의 초점은 보수파 칼럼니스트인 노박에게 비밀요원의 신분을 노출시킨 고위관리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백악관 비서실장이자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칼 로브와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스쿠터 리비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이 비밀요원의 신분을 폭로한 이유는 무엇일까? 널리 알려진 얘기로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한 비밀요원의 남편에 대한 보복이다. CIA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남편 조셉 윌슨은 2003년 7월초 뉴욕타임즈에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의 위협을 과장하기 위해 고의로 정보를 조작하거나 무시했다고 폭로했다. 이라크가 아프리카의 니제르로부터 핵폭탄 제조용 우라늄 구입을 시도했다는 부시 대통령의 연초 의회 연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전직 외교관인 윌슨은 1년 전 CIA의 요청으로 니제르를 직접 방문해 조사한 결과 해당 정보가 엉터리였다는 판정을 내렸다. 유엔 산하 IAEA(국제원자력기구)도 관련 정보가 일부 위조서류에 근거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코너에 몰린 부시행정부는 윌슨이 CIA의 요청으로 니제르에 파견된 것은 비밀요원이었던 아내 덕분이었다고 기자들에게 정보를 유출했다.(그러나 윌슨은 70년대 니제르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고 91년 걸프전 직전에는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과 담판했던 미국 외교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또한 윌슨이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실에서 일했고 민주당의 케리와 고어에게 정치헌금을 했다는 점도 털어놨다. 한 마디로 윌슨에 대한 흠집내기였다. ■ 네오콘과 CIA의 싸움 일부에서는 리크 게이트를 딕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네오콘(NOECON;부시 행정부의 강경파 실세그룹)과 CIA의 싸움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네오콘들은 CIA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해 정보수집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또한 선제공격을 내세우는 네오콘의 입장에서 볼 때 대량 살상무기에 관한 완벽한 정보를 구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CIA는 언제나 관련 정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윌슨의 주장도 마찬가지라고 네오콘은 규정했다. 특히 윌슨이 자신이 니제르로 파견된 것은 딕 체니 부통령이 CIA에 관련 정보의 평가를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폭로한 것도 네오콘의 비위를 거슬렸다고 한다. ■ 취재원 보호라는 족쇄? 이 과정에서 CIA 비밀요원의 신분이 노출됐고 사태는 리크 게이트로 비화됐다.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호재를 만난 민주당 요구대로 특별검사가 임명됐고 부시 대통령도 특별검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정부에 명령했다. 처음에는 부시행정부도 비교적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보유출을 했더라도 기자들이 취재원 보호라는 족쇄 때문에 입도 뻥끗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시카고대 연설에서 수행기자들에게 정보를 유출시킨 자신의 보좌관을 고발하라고 말하기까기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과녁을 빗나간 화살 [NYT 매거진의 주디스 밀러 기자] -->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구속된 쥬디스 밀러 기자는 리크 게이트와 관련해 기사를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처음으로 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노출시킨 로버트 노박과 정보유출자는 아직도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한 로버트 노박 다음으로 CIA 비밀요원에 관한 기사를 썼던 시사주간지 타임의 매튜 쿠퍼 기자도 막판에 정보유출자들의 동의 하에 법정 증언을 승낙하면서 겨우 구속을 모면했다.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는 이미 로버트 노박과 정보 유출자들에 대한 조사를 상당히 진척시킨 상태. 그러나 부시행정부의 실세들을 사법처리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하고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쥬디스 밀러 기자와 매튜 쿠퍼 기자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정보유출자에 관한 증언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언론계 반발 자기 회사의 기자가 구속되자 뉴욕타임즈는 장문의 사설로 즉각 법원의 결정을 반박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즈는 쥬디스 밀러 기자가 감옥행을 선택하지 않기를 원했지만 올바른 일을 했다고 확신한다면서 뉴욕타임즈가 이기건 지건 결국 국민 승리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쥬디스 밀러 기자는 더 큰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을 양보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위싱턴 포스트 역시 사설에 취재원 보호 의무를 강조하면서 검찰이 재량권을 남용했고 그래서 언론자유에 대한 불필요한 공격으로 보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또 취재원 보호를 위한 연방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쥬디스 밀러 기자가 구속된 날을 '언론자유의 암흑의 날'이라고 규정했다. 또 이번 판결은 직업적으로 고유한 권리를 행사한 기자에게 유례가 없는 처벌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는 국제법의 심각한 침해이며 위험한 선례로 미국이 전세계에 나쁜 신호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 누구를 위한 취재원 보호인가 취재원 보호가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고전적인 취재원 보호의 영역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다시말해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온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스로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도 관련 기사에서 이번에 취재원 보호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기업이나 정부의 잘못을 고발한 내부고발자가 아니고 당파적 이해관계에 열중한 정치적 내부자일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그런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기자들이 추상적인 원칙을 지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규정했다. 타임지의 마거릿 칼슨 기자도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취재원 보호라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하찮은 좀도둑을 보호하는 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FAIR(FAIRNESS & ACCURACY IN REPORTING)라는 언론감시단체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정부의 잘못에 대한 내부고발과 정부의 고의적인 정보 유출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서 관련 기자들이 불법적으로 정보를 유출한 정부의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 당파싸움의 희생양 이번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화살은 서서히 과녁의 중앙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처리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벗어난 것처럼 부시 대통령과 그의 분신들도 복잡하지만 그래서 허술한 법의 그물망을 벗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무성하다. 그래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당파싸움에 휩싸인 기자와 하급 공무원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KBS 김만석 기자 (KBS뉴욕특파원)
    2005-07-12
  • 국민의 알권리 붕괴 - 무너지는 포토라인
    무너지는 포토라인 "교육 안 된 일부 언론사에 의해 공항 포토라인 붕괴"   우리나라의 포토라인은 94년 12월, 본 협회와 사진기자협회에 의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라는 운영선포를 통해 발효 되었다. 상호간의 불필요한 경쟁으로 야기된 무질서한 취재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 포토라인을 설정해 운영해 왔다. 그 후 10년이 지난 현재,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포토라인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지난 달 14일 벌어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입국과 검찰 출두 장면은 포토라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6월 14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은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취재를 위해 100여명의 취재진과 ‘대우차 정리해고 원상복직투쟁위원회’(이하 대우차 원복투위), 노동자, 시민단체 등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김 전 회장이 등장한 후 얼마 안 되어, 6mm를 든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포토라인이 무너졌다. 그리고 시민단체 등의 거센 규탄 시위로 김 전 회장은 기자회견도 생략한 채 황급히 검찰로 향했다. 일부 미디어에서는 몸싸움을 해가면서 서로 좋은 그림을 찍겠다고 아우성치는 기자들의 모습을 대단히 흥미롭게 보도하기도 하였다.  김우중 전 회장의 입국장 포토라인이 붕괴된 원인은 지나친 취재 경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에 인천공항을 출입하는 한  사진기자는 “상황을 잘 모르고 방송 화면만 본 국민들은 파리 떼처럼 몰려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전부 사진기자나 카메라 기자로 알고 혀를 찰 것입니다. 심지어 같은 현장에 있던 취재 기자들까지 그들이 전부 사진기자나 카메라기자들인 줄 안다”고 성토했다.  그날 CIQ 지역(입국수속장) 에서도 검찰이 김우중 전 회장을 다른 쪽으로 빼돌리려 하다가 1차 포토라인이 무너졌다. 입국장에서 포토라인이 무너진 원인에 대해 현장에 있던 한 카메라기자는 “취재를 위해 자리를 옮기려는데 시민단체들의 구호소리가 더욱 커지는 격앙된 분위기에서  한 두 명의 6mm를 든 사람과 취재기자들(공항출입기자들은 아님)이 몰려 왔다”고 지적하며, “현장을 떠나려는 검찰 직원과 경찰이 순간 김 회장을 에워쌌고, 그 때부터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현장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공항을 출입하는 조선일보 조인원 기자는“ 늘 그래 왔듯이 공항에서 벌어지는 취재 관행이 공항공사와 경찰이 사전에 협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우리가 포토라인을 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찰의 과잉 경호 속에서 취재원이 안 보이는 경우, 간혹 포토라인 깨지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번 사태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 날 취재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은 취재 관행에 대해 모르는 6mm 카메라맨들과 일부 언론사에 의해 포토라인이 붕괴되었다는 주장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취재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몰지각한 언론사에 대해 강력한 재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많은 기자들은 이 같은 현장 취재에 있어 협회와 관계 기관의 원칙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곽재우 회장은 “빠른 시일 내에 사진기자협회와 유관 협회, 관계부처장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포토라인 문제를 재정립 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검찰의 출입기자들은 현장의 취재진들과  포토라인을 설정해 미리 포지션을 정하고 안정된 취재 모습을 보여 주어 귀감이 되었다.  <용어 팁> 포토라인 이란?  1963년 11월 22일 미국의 케네디(John F. Kennedy)대통령이 달라스에서 오스왈드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이틀 뒤 달라스 경찰에서 구치소로 수감하는 오스왈드를 촬영하기 위해, 각 신문의 사진기자와 방송사의 카메라기자들이 아우성을 치는 순간, 잭 후비가 촬영 팀 사이에 나타나 오스왈드를 사살해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케네디(John F. Kennedy)대통령의 저격 사건이 베일 속에 묻혀 버리게 됨으로서 언론인이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에 미국의 언론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것은 포토 라인(Photo Line)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계기가 되었다.   포토라인이 국내에서 운영 된 실질적인 계기는 1993년 1월 15일, 대통령 선거법 위반으로 정주영 전 국민당 대표가 서초동 지검에 출두한 일이다. 약 100여명의 신문 사진기자와 방송 카메라기자는 포토라인(Photo Line)을 설정하고 두 줄로 나란히 정렬하여 정씨가 입장하기를 기다렸다. 정씨가 검찰 청사로 들어오자 복도의 두 줄로 된 기자의 포토 라인(Photo Line)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정씨의 얼굴을 찍기 위해 한 무더기가 되어 그 앞에 쓰러져 버렸다.   그 순간, 사진기 플래시에 정씨의 이마가 찢겨졌고, 그가 피를 흘리는 모습이 TV를 통해 생중계 되었다. 이 사건으로 사진기자와 카메라기자들은 시민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고, 이것이 1988년 새마을 비리로 검찰에 출두한 전경환 씨의 촬영 때 설정했던, 유명무실한 포토라인(Photo Line)의 실질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실질적인 한국의 포토라인은 1994년 12월 22일, 한국TV카메라기자회(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회(현 한국사진기자협회)와의 협의로 운영 선포 되었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  
    2005-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