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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소타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의 역사인식
    일본 군국주의 전범자와 정치인의 역사인식 (2) 아소타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의 역사인식 아소 타로 (사진출처: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https://www.kantei.go.jp) 조선인 강제노역으로 성장한 아소기업과 가계  아소 타로(麻生太郞) 일본 자민당 부총재(사진1)는 1940년 9월 20일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979년 정계에 입문한 뒤 일본 중의원 의원에 13차례 당선했으며 일본 내에서 손꼽히는 대표적인 '극우파' 정치인이다. 경제재정정책 담당 대신, 총무 대신, 외무 대신 등을 지냈으며, 2008년 9월부터 1년간 제92대 일본 총리를 역임했다. 현재는 일본의 권력 핵심이며 ‘나카소네 야스히로 세계평화연구소’ 회장을 맡고 있다.   아소 씨의 증조부 아소 타키치(麻生太吉)는 일본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을 징용해 노역시킨 아소 광업의 창업주이다. 아소 타키치(麻生太吉)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해 온 아소 씨의 부친 아소 타카키치(麻生太賀吉)는 일본 중의원 의원 3선과 아소광업,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조선인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노역시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아소 씨 자신도 선대의 회사를 물려받아 아소 시멘트 회사를 경영해 왔다. 1979년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중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아소 시멘트 사장을 사임했다. 이 회사의 전신 기업은 아소 광업이다. 표1) 주요한 연행 기업 ※ 회사명은 당시 기업명으로 표시 함.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의하면 전시 중에 조선인을 강제 연행한 기업명과 연행자 수를 지금까지 밝혀진 범위에서 보면 미쓰비시 광업회사가 13,39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그다음에 아소 광업이 10,623명이었다(표1). 표 2) 아소계열의 탄광 (후쿠오카 지역)  아소 광업은 1954년 아소 산업으로 개칭되고 1969년에는 석탄산업의 폐업을 계기로 아소 그룹이 ‘주식회사 아소’로 변경되었다.  아소 광업은 조선인 노무자의 착취로 성장해 그룹으로 발전했다. 아소 씨는 이 그룹에서 최고 경영자의 대표를 지냈고 여기에서 나온 자본력으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조선인 강제노역으로 성장한 전범 기업 '아소 탄광'을 운영한 일본 재벌 가문의 후계자로 유명하며 '망언 제조기'로도 유명하다. 망언 제조기 아소타로   아소 씨는 2003년 5월, 자민당 정조회장 당시 한 강연에서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원했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한글은 일본이 보급하고 의무교육제도도 일본이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옳은 것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2005년 11월, 외무대신 당시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의 한 강연에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관해서 지적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다”라고 말해 전쟁 피해국들을 비난하고 주변국들을 자극하기에 이르렀다. 아소 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조선인 강제노역의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조선인 강제징용은 없었다"고 하고 ‘전쟁 가능한 일본’을 위한 일본의 평화 헌법 개헌과 관련해 “나치식 수법을 배우면 어떤가?”라고 말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조선인 강제연행으로 부를 쌓은 아소재벌   일제 강점기에 다수의 조선인이 아소 탄광 등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그곳에서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사망자가 다수 나왔다.   아소 씨의 선조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에 엄청난 고통과 막대한 피해를 줬고, 다수의 조선인을 저임금으로 고용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그중 하나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 아소 씨가 사장을 역임한 현 아소 시멘트의 전신, 산업시멘트철도(주)도 있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1932년 8월, 임금 착취와 임금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파업을 단행, 차별대우 철폐, 임금 즉시 지급 등을 요구했을 정도다.   한편, 후쿠오카에 있는 아소 광업 계열의 아소카미미오 탄광을 비롯한 7개의 탄광 회사(표2)에서 사망한 조선인 명부에 기록된 희생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사진2 2006년 1월, 인터뷰하는 강성향 씨 (사진=한원상 제공)  ▲사진3  아소광업주식회사 분광업소 아카사카탄광에 동원된 강성향 씨 (빨간색 동그라미) 사진=한원상 제공 씻을 수 없는 과거의 상처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협화회(協和會)가 조직되었다. 전·도·부·현에 만들어진 협화회는 일본 정부와 지방기관이 직접 관여한 조직 단체로 일본 내무성 경보국의 하부 기구인 경찰서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구제·보호, 지도 등의 이름으로 재일조선인의 황민화를 추진하였고 나중에는 전쟁 수행을 위해 필요한 노동력 확보에 관여했다. 협화회는 일본 내 전시체제의 감시역이 된 특별고등경찰(이하 특고경찰)과의 지시·감시 아래 조선인에 의해 근로보국대를 조직해 규슈의 탄광이나 광산, 홋카이도의 건설 현장 등에 강제로 보내졌다.  전쟁으로 국내외적으로 어려워진 1943년, 일본은 노동력 부족으로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이에 내각 직속으로 종합국책 입안을 담당하고 있는 기획원은 국민동원 실시계획에서 한반도로부터 조선인 징용 외에 일본 거주 조선인의 노무 동원을 결정했다. 당시 재일조선인이 가장 많았던 곳은 오사카부(大阪府)로 43만 명이 넘었다.  강제 연행된 피해자의 증언   필자는 당시 오사카부 내 ‘협화회’ 회원으로 아소광업(주) 아카사카 탄광(후쿠오카현)에 연행돼 살아 돌아온 생존자 강성향(당시 85세) 씨를 2006년에 만났다(사진 2). 오사카부 오요도 근로보국대 소속이었던 강 씨는 아소광업(주) 분광업소 아카사카 탄광에서 노동을 했다(사진 3). 아소 광업은 아소 씨도 사장을 지낸 바 있는 아소 시멘트의 전신 기업으로 당시 사장은 아소 씨의 부친 아소 타카키치이다.   당시 조사에서 아소 광업에 연행된 조선인 가운데 경북 영주시 하망리에 거주한 강 씨가 유일한 생존자였다. 고령의 강 씨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받은 고통에 대해서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 씨는 과거에 탄광으로 강제 연행된 조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 당시 일본에 갔을 때, 경위와 생활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오사카에는 조선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대부분 협화회 회원이었다. 이 회에서 일본인화 교육 및 황국신민화교육을 받았다. 오사카 오요도 경찰서가 관할하고 있었다. 경찰서에 조선인을 관리, 감시하는 특고경찰과가 있었는데 조선인에게는 대단히 두렵고 지옥과 같은 곳으로써 특고경찰과가 모든 것을 지시하고 실행했다. 0월 0일 출두하라는 영장이 와서 나를 포함한 재일조선인 청년들이 특고경찰과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합격자는 탄광으로 보내졌다. 한 청년이 검사 도중 아프다고 신고했더니 특고경찰로부터 심하게 맞아 비명이 밖으로 들렸다. 누군가 맞는 소리가 들리면 겁이 났다.”  - 아소아카사카탄광에서 주로 어떤 일을 했는가?    “나는 아소 광업(주) 고분광업소 아카사카 탄광에서 일했다. 탄광에는 보국대 소속 조선인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징용자로 끌려온 조선인도 수천 명이 있었다. 일본인은 여러 명 있었지만 모두 관리자였다. 탄광 내 조선인에 대해 차별이 있었다. 특히 재일조선인보다 한반도에서 끌려온 조선인들이 더 고생이 많았다. 이들은 얼굴도 체형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탄진을 뒤집어쓰고 힘든 작업을 하고 있었다.”  - 조선인 희생자가 있었는가?   “갱내에는 가스가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가스가 배출해도 다이너마이트를 끊임없이 터뜨리다 보니 가스는 고이기만 했다. 너무 더워서 몸이 피곤하고 졸음이 왔다. 부상자는 갱내에서 밖으로 옮겨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 조선인 중에 죽은 사람도 있고 몸이 부자유가 된 사람도 있었다. 나도 졸았다. 일하다가 발가락과 손가락을 다친 적도 있다. 사고가 나는 원인은 갱내에 설비 문제도 있었지만 아무리 설비가 갖춰져 있다고 해도 매일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갱목이 버틸 수가 없었다.”    강 씨는 “아소 아카사카 탄광으로 끌려갔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당시 가까운 절에 하루도 빠짐없이 가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강 씨는 아소 씨의 망언 발언에 반발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죽을 만큼 힘든 일을 선택하겠나? 우리 조선 사람들은 탄광에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강제 연행되었다. 일제 때 고통 받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한 원 상 (한국영상기자협회 고문)
    2023-06-29
  • “언론이 작고 위태로운 성냥일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둠은 훨씬 커질 것”
    “언론이 작고 위태로운 성냥일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둠은 훨씬 커질 것”협회, 2023광주민주포럼 특별세션 국제세미나 열어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자들과 언론학자, 회원, 국내외 시민운동가들 참여힌츠페터상을 통한 언론인들의 국제연대, 한국의 국제보도 활성화 방안 모색 ▲지난 5월 17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2023광주민주포럼 세미나 “언론이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작고 위태로운 성냥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둠은 훨씬 커질 것이다.”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특집상을 수상한 브루노 페데리코 기자가 지난 17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국제언론상을 통한 민주화 경험의 국제화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세미나에 참석해 언론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는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가 2023 광주민주포럼의 특별세션으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1회 수상자들을 초청해 마련했다. 페데리코 기자는 “지난 몇 년 간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 끝없는 탐욕을 가진 소수가 저지르는 폭력에 고통받고 저항하는 다양한 인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계속되는 질문은 ‘언론이 사회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라는 것”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페데리코 기자는 콜롬비아와 파나마를 잇는 협곡지대인 다리엔갭을 거쳐 미국으로 넘어가려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이주자들의 험난하고 위험한 여정을 카메라에 담아 지난 2020년 8월12일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 ‘필사적인 여정’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그는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미미한지 실망스러울 때가 많지만, 언론이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작고 위태로운 성냥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둠은 훨씬 커질 것”이라며 “우리의 다큐멘터리, 보도, 기사로 이주민의 미국 혹은 유럽행을 막기 위한 각국의 정책을 바뀌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대상인 ‘기로에 선 세계상’의 첫 수상자인 미하일 아르신스키는 “2020년 당시 야당 후보였던 스비아틀라나 치하노스카야의 선거 운동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벨라루스 사람들이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민주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앞장서는지 보여주기 위해 ‘두려워하지 마(Don’t be afraid)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아르신스키는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벨라루스에서의 인권 침해와 표현의 자유 사안이 주목을 끌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며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이 민주적 가치와 인권 보호를 위해 계속되는 벨라루스의 싸움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수상자들에 이어 세 번째 발제를 맡은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더 커졌고,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 대신 다자질서가 등장했으며,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는데도 관성과 학습된 무기력 때문에 국제뉴스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한국 언론의 외신 의존도는 90%로 미국과 영국 언론에 집중되어 있다”며 “더 이상 외신에 의존하지 말고 자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양혜승 전남대 교수(신문방송학)는 “MBC 비속어 발언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 해외 순방 때 전용기 탑승 거부, KBS 수신료 분리징수,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을 맡은 교수의 구속 등 윤석열 정부의 언론정책을 보면 한국에 언론 자유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우리 사회가 어렵게 쌓은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3-06-29
  • [뉴스VIEW] 졸속과 파행의 공영방송 공격
    [뉴스VIEW] 졸속과 파행의 공영방송 공격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책이 입안된다. 그 정책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자원과 사람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정책의 종류는 다양하다. 미디어정책도 그 하나다.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정책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 같이 찬성만큼이나 반대가 극심한 양극화 사회는 더욱 그러하다. 운 때도 맞아야 한다. 예기치 않은 글로벌 경제위기나 팬데믹을 만나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물 건너가기 일쑤다. 정책은 목표와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근거도 있어야 한다. 앞의 것은 ‘절대적’인 것이고, 뒤의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부동산의 가격 안정은 절대적인 것이고, 강한 규제보다 시장에 맡기자는 안은 상대적인 것이다. 국민의 지지가 다음 요건이다. 선거를 통한 당선이 후보의 모든 정책 공약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그중에는 목표나 과정이 불투명한 것도 있고, 다른 것보다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도 있으며, 주변 조건이 나빠져 실효를 잃어버린 것도 있기 때문이다.  윤정부는 미디어정책에서 큰 그림을 제시한 적이 없다. 목표나 철학을 본 적이 없다. 그저 단순한 실행적 조치만 있을 뿐이다. 그에 대한 이유나 근거도 없다. 다른 안과 견주어 ‘보다 낫다’는 정책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국민이 지지하는 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 시청자와 함께 한 KBS에 철퇴 같은 정책을 시행하면서 제대로 된 조사나 공론화도 하지 않는다. 이유에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다. 다른 정책이나 스타일로 미루어 이 정부도 기왕의 국민의 힘 계열 보수정부와 크게 다름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정부들은 대체로 상의하달, 상명하복 방식에 익숙하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거나 ‘임명권자의 뜻’처럼 위계에 의한 지배를 추구한다. 이들에게 (권력)감시 저널리즘은 매사에 딴지나 걸 뿐인 ‘성가신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모든 권력이 조금씩은 갖고 있는 이런 속성으로 윤정부의 정책을 무마시켜주기에는 그 결과가 너무 심대하다. 특히 수신료의 분리 징수가 그러하다. 한번 분리하면 돌아가기가 불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다. 분리 징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헌재는 수신료를 ‘공영방송을 위한 특별부담금’으로 보고 통합 징수를 정당화했다. 실제 공영방송을 유지하는 많은 나라에서 수신료는 기본 재원이며 징수 방식 역시 대부분 강제적이다.  물론 수신료가 최근 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청 단말기가 다양해지고 경쟁 미디어가 범람해 ‘(협회)가입료’ 또는 ‘(기술)사용료’가 원래 뜻인 ‘licence fee’의 의미가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더 이상 수신료를 걷지 않고, 영국 역시 실행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수신료를 중단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캐나다나 네덜란드는 오래전에 국고로 돌렸다.  그러나 국민투표에 부친 스위스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독일과 핀란드에서도 일종의 가구세 또는 방송세(稅)로 전환해 오히려 수신료를 강화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우리처럼 전기료에 통합해 재원을 늘려주었다. 특히 유념할 것은 이들 나라의 수신료가 한국에 비해 많게는 9배, 적게라도 5배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라는 점이다. 한국의 수신료는 주지하다시피 1980년에 제정된 이래 43년간 단 한 차례도 올려본 적이 없다. 수신료의 장점은 단연 책무성이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책무를 다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이런 수신료를 윤정부는 분리로 바꿔 공영방송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려 한다. 이의 심각성을 윤 정부는 정말 모르는 것 같다. OTT가, 종편이 정말 공영방송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윤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 될 것이다.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3-06-29
  •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의 첫 해외출장”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의 첫 해외출장” ▲도쿄에서 라이브 방송을 준비 중인 MBC 한지은 기자 일본 출장이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내일모레 시찰단을 쫓아 일본 도쿄로 가라는 것이었다. 시찰단의 동선이나 행선지는 공개되지 않아 쉽지 않은 출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첫 출장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되다니, 설레는 반면 걱정이 앞섰다. ‘나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데...’ 선배를 잘 따라다니자 마음먹으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출장 당일 아침 일찍 회사로 와 공항으로 출발했다.  일본공항에 도착해 입국하는 시찰단의 모습을 잡기 위해 부랴부랴 수속을 마치고 입국장으로 나오자 이미 시찰단장은 취재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단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뭔가 잘 못됐다는 생각이 들 때쯤 단원들은 다른 공항으로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이 출장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둘째 날, 시찰단이 외무성에 기술 회의를 하러 들어오는 모습을 잡기로 했다. 들어올 수 있는 문은 총 세 개. 장소를 나눠 기다리기로 했고 나는 북문 앞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앞으로 버스가 한대 지나갔고 그 뒤를 기자들이 쫓아 달리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나도 정신없이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쫓아 달려갔다. 이미 버스는 멀어져 갔고 달리는 게 의미 없다고 판단될 무렵 한 일본 기자가 반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일본 언론의 정보력이 강하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무작정 나도 따라 달려갔다. 사실 큰 성과는 없었지만 현장에서 흐름을 파악하고 순간순간의 판단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셋째 날, 아침부터 후쿠시마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는지 대한 회의가 이어졌다. 시찰단장이 브리핑을 한다고 공지한 장소가 제1원전과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피폭의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이 브리핑은 도쿄지국에서 챙겨주기로 했고 우리는 오염수 방류에 대한 후쿠시마 어민들의 입장을 들어보기로 했다. 원전과 60km 정도 거리의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들어갔다. 어민들과 선장들을 만나 입장을 들어보고 이후 수산물 직판장을 찾았다. 안에는 원전 사고의 원인이 되었던 후쿠시마 동일본 대지진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대형 홍보관이 들어서 있었다.  스케치를 하고 수산물 직판장에서 취재하는 영상기자 선배와 취재기자 선배의 모습을 담았다. 후쿠시마에서 만난 어민들과 선장들, 판매업자들의 입장 또한 꽤 흥미로웠던 포인트였다. 그들은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입장 발표 전에는 오염수 방류로 인해 후쿠시마 바다가 오염되어 수산업이 주춤할까 걱정했던 입장이었다. 정부가 입장 발표를 하자 이들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후쿠시마에서 긴 하루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가면서 영상기자 선배와 나, 취재기자 선배, 코디 선생님까지 묘한 동료애가 샘솟았다. 하늘이 어두워진 것을 바라보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서로 마주 보지 않은 채로 꽤 오랫동안 달렸던 것 같다. 같은 장면을 바라보면서, 그러나 각자 딴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가도 잠깐씩, 동기화가 된 것처럼 같은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출장 기간 동안 총 네 번의 라이브를 했다. 여러 번의 라이브를 하면서 더 좋은 라이브 배경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찾아다녔던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날의 취재를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배경을 찾는 것이 ‘기자가 일본 현지에 와서 직접 취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옆에서 선배가 고심하는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짧은 시간 성장할 수 있었다. 언젠간 혼자 해외출장을 가서 1인분 이상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 아득한 미래처럼 느껴진다.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 처럼 쌓여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멀지 않은 미래에 모든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해내는 나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무수히 애쓰고 분주해질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MBC 한지은 기자 
    2023-06-29
  • 첫 해외출장에서 첫 MNG로 공개한 ‘직지’ 원본… 해외 소재 문화재 환수 움직임 생겨 ...
    첫 해외출장에서 첫 MNG로 공개한 ‘직지’ 원본…해외 소재 문화재 환수 움직임 생겨 ‘뿌듯’  ‘니가 가라, 프랑스’ 영상취재부장에게 온 문자 한 통으로 첫 해외 출장이 결정되었다. 아이템은 <직지>. 1377년 고려시대 청주목 사찰 흥덕사에서 만들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1800년대 말, 프랑스 영사 콜랭 드 플랑시가 프랑스로 가져가 경매에 넘겨졌으며 소중한 우리 유산임에도 현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런 직지가 대중에 공개된 것은 1973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전시회 이후 50년 만으로, 직지의 본고장인 청주에는 직지 원본을 촬영할 수 있는 굉장히 의미 있는 출장이다. 현재 아카이빙된 대부분의 직지 관련 자료들은 복제본으로, 직지의 원본을 촬영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청주에서 직접 취재, 촬영하는 것이 향후 '역사 자료'로 남을 아카이빙에도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여 프랑스행 출장이 결정되었다. 다행히 동기 취재기자와 가게 되어 많은 소통을 하며 준비할 수 있었다. 기존 취재 방향은 출장 복귀 후 리포트를 제작하는 것이었으나 동기와 이야기하면서 직지 공개 당일인 4월 12일에 MNG를 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엔 ‘첫 해외 출장에 첫 MNG라니. 파리에서 방송사고라도 나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앞섰다. 선배들께 여쭈니 '직지 공개 첫날'은 시의성과 의미가 있으니 MNG 연결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취재기자와 함께 프랑스 국립도서관 앞에서 MNG 중계할 것을 데스크에 제안했다. 현지 연결로 직지가 프랑스에서 공개되고 있음을 좀 더 현장감있게 전달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MNG 연결은 충북 지역에서는 처음 연결한 해외 MNG로 그 시도 자체에 나름의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MNG 외에 가장 고민됐던 것은 ‘직지’라는 우리 문화유산이 타국에 귀속되어 전시되고 있는 실상을 어떻게 ‘시각화’할까 하는 점이었다. 직지 원본을 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보도를 통해 ‘직지를 비롯해 고향을 떠나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되찾을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전시회에만 국한해 직지를 촬영하면 리포트가 전체적으로 정적이고 직지가 공개된 곳이 한국인지, 프랑스인지가 잘 전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전취재를 하면서 청주 고인쇄 박물관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2년 전, 직지를 그대로 재현한 복제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거다!’ 싶었다. 직지 복제본을 에펠탑, 개선문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물과 촬영하면 '직지', '프랑스'가 더 시각화되어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인쇄 박물관 측에 복제본을 요청하여 에펠탑 앞에서 직지 복제본을 활용한 이미지컷을 연출했다. 이때의 촬영본으로 직지 프랑스 타이틀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과정도 과정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취재를 통해 작게나마 문화재 환수에 유의미한 움직임이 생긴 것이 가장 뿌듯하다. 직지는 2018년 압류 면제법이 자동 폐기되고 환수 관련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다 보니 그 이후로 지역에서 환수 및 임대 형태 반환 등 직지 환수 움직임이 사실상 없었다. 그러나 이번 보도로 직지가 타국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고 청주시와 담당 기관인 고인쇄 박물관에서는 본향에서 전시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KBS 보도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또한 아무리 약탈이 아닌 매매 방식이라 해도 전국민적 반응은 환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해외 소재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입사 후 첫 해외 출장은 공개 당일 총 4번의 MNG 연결과 현장 제작 리포트, 귀국 후 4부작 리포트를 마무리로 끝이 났다. 파리를 떠올리면 에펠탑 앞에서 비 맞으며 타임랩스를 촬영한 저녁, 인터뷰와 전시회 스케치를 10분 분량으로 컷 편집해 보내는 데 장장 6시간이 걸려 뜬눈으로 밤새 동동거렸던 새벽, 촬영보조 없이 카메라 2대와 트라이를 들고 프랑스 국립도서관 전시회 스케치하던 순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니 전부 웃으며 추억하는 경험으로 남았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보다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던 첫 해외 출장. 그 부담감이 촬영기자로서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 더 욕심내게 하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첫 해외 출장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앞으로 또 어떤 취재를 하고 어떤 출장을 가게 될지도 기대가 된다. 끝으로, 막내인 내게 좋은 기회를 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은 청주 보도국 촬영기자 선배들께 감사드린다.  (꾸벅)KBS청주 김성은 기자 
    2023-06-29
  • 민주주의를 위한 벨라루스의 투쟁과 한국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2023 광주민주포럼 발표문 요약1]  민주주의를 위한 벨라루스의 투쟁과 한국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미하일 아르신스키 (Mikhail Arshynski,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기로에 선 세계상(대상) 수상자)  루카센코 장기독재에 신음하는 벨라루스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벨라루스 정치 체제는 1994년부터 권력을 유지한 독재정권이라 할 수 있다. 벨라루스 국가수반, 알렉산더 루카센코(Alexander Lukashenko)의 행적은 수많은 시위를 촉발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러왔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갈등의 상황 속에서 벨라루스의 대러 군사 협력으로 인해 국제무대에서 더욱 곤경에 몰리게 되었다.  '비아스나(Viasna), ' 인권 센터의 웹사이트에 기재된 정보에 따르면, 벨라루스에서는 2020년 초 이래로 34,000명이 구금되었다. 징역 11년을 선고받은 야권 활동가 마리아 콜레스니코바(Maria Kolesnikova)를 포함해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장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2020년 이래로 벨라루스 내 인권 상황은 심각한 악화를 거듭하고 있고, 2020년 대선 이후로 벨라루스 권력층은 평화 운동가, 여권, 활동가, 언론인에 대한 억압을 강화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20년 벨라루스 내 정보 공간의 상황은 극도로 고조되었다. 정부가 통제하는 국영 매체는 비판적 소재를 용인하지 않으며 언론 영역을 장악했다. 독립 매체들은 SNS, 메신저, VPN 서비스를 이용해 대중에게 정보를 전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러나, 벨라루스 정부는 이런 독립 매체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언론인과 편집자들이 체포되고, 사무실과 장비는 몰수되었다. 이들의 일부는 징역을 선고받았고, 일부는 벨라루스에서 추방되었다. 예를 들어, '나샤 니바(Nasha Niva)‘ 의 편집 사무실이 폐쇄되고 편집장은 2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이에 따라, 2020년에는 정부 억압에 따라 독립 매체의 언론인들이 벨라루스에서 추방되었고, 이들은 다른 국가로 망명길을 찾아야 했고 값진 인재를 잃었으며, 국가 내 정보의 연결은 와해되고 말았다.   국외로 쫓겨난 언론인들의 둥지, 벨샛TV(Belsat TV)  이들 중 많은 언론인들이 자리 잡은 폴란드의 벨샛TV(Belsat TV)는 ‘텔레비죠나 폴스카(Telewizja Polska)’의 자회사로, 구소련 지역에서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우리의 사명은 시청자분들께 믿을 만한 뉴스를 제공하고, 벨라루스의 문화와 언어를 널리 알리면서 친러 매체가 장악한 국가들의 가짜 뉴스에 맞서는 것이다. 국제팀에서는 주로 폴란드,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일하며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벨라루스와 러시아 언론인에게 벨샛TV에서의 일은 근대적인 매체를 통해 동포들에게 편향되지 않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며, 폴란드 직원에게 있어서는 공산주의의 통치 하에 있었던 폴란드를 지원했던 타국의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이다.  벨샛 TV를 보려면 아스트라 4A 위성(Astra 4A satellite)으로 조정하면 된다. 혹은 폴란트나 리투아니아의 전국적인 복합 상영관, 우크라니아 유선 방송 대부분뿐 아니라 벨샛 스마트 VOD 앱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 채널은 belsat.eu웹사이트와 유튜브에서도 라이브로 송출된다.  belsat.eu 웹사이트는 4개 언어를 지원한다: 벨라루스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 8개 테마로 구성된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총 2.200,000명을 넘는다. 벨샛 소셜 미디어 팀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틱톡에서 프로필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폭력과 억압에 대한 시민저항의 기록, <DON't BE AFRAID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독립 텔레비전 채널인 벨샛TV와 협력하여 보도다큐멘터리 '두려워하지 마라.(DON't BE AFRAID)'를 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20년 당시 여당 후보였던 스비아틀라나 치카누사카야(Sviatlana Tsikhanouskaya)의 대선운동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목적은 벨라루스 사람들이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민주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앞장서는지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두려워하지 마(DON'T BE AFRAID)' 는 선거 운동 참가자 뿐 아니라 구금된 사람, 심하게 구타당하거나 활동 중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까지 정말 많은 인터뷰를 담고 있다. 다큐는 폭넓은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벨라루스의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증명하는 중요한 기록이 되었다. 또, 국가의 억압과 폭력에 동의하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의 강인함과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두려워하지 마(DON'T BE AFRAID)' 의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기로에선 세계상’수상은 벨라루스에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투쟁의 중요성과 기여에 대한 인정으로 여겨진다. 많은 벨라루스 사람들이 다큐 제작진에게 감사와 지지를 표하며 민주적 가치를 위한 투쟁에 있어 국제적 지지와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벨라루스에서의 인권 침해와 표현의 자유 사안이 주목을 끌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이 상을 수상하고 나서 위 사안들에 대해 대중과 매체의 논의는 더욱 깊어졌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이 보여 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와 지지  벨라루스인들에게 한국은 민주주의적 이상을 위해 타협할 줄 모르고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의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민주주의를 위한 벨라루스의 싸움에 있어 국제적 지지와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또,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의 수상을 통해, 벨라루스인들은 민주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있어 꾸준함과 목적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독재 정권에서 벗어나 정립된 민주주의로 나아간 한국의 역사는 벨라루스인을 고취시키는 좋은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한국의 역사를 통해 벨라루스인들은 ‘독재자는 영원하지 않으며, 민중은 독재의 폭정과 억압의 사슬을 끊을 민주화운동의 또 다른 기회를 갖게 될 것임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이 덕분에 많은 벨라루스인들은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움을 이어 나가며 벨라루스의 더욱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2023-06-29
  • 영상을 통한 공감과 연결, 더 나은 미래의 모색
    [2023 광주민주포럼 발표문 요약2]  영상을 통한 공감과 연결, 더 나은 미래의 모색  브루노 페데리코 (Bruno Federico,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집상 수상자)  권력과 자본이 저지른 폭력과 범죄의 고발을 위해 시작한 영상기자로서의 삶  저는 영상저널리즘 영역에 뒤늦게 뛰어들었습니다. 가끔은 더 일찍 시작했다면 어땠을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경력을 쌓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겠지만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형성한 경험을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저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지식의 상업화와 노동자의 권리 파괴에 반대하는 학생단체와 함께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후 전쟁 중인 콜롬비아에서 저는 인권활동가, 노동조합, 농민단체와 일하면서 살았습니다.  언론인으로서 가끔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찾습니다. 제 경우에는 그 좋은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전달할지 물어왔습니다. 2008년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이 지역과 주민을 압박하는 거대 석유 회사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와 농민을 지원하는 노동조합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외딴 지역에서 노동쟁의를 다루는 동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살인, 실종, 준군사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범죄의 배후에 우리가 노조로서 상대하고 있던 석유회사의 지원을 받는 준군사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범죄와 폭력을 콜롬비아 안팎에 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저는 미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서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사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그 세계로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4개 언어로 번역했고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다른 투쟁이 제 관심을 끌었고 더 많은 뉴스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 끝없는 탐욕을 가진 소수가 저지르는 폭력에 고통 받고 저항하는 다양한 인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언론이 어두운 방의 위태로운 성냥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둠은 훨씬 더 커질 것  그 속에서 제게 계속되는 질문은: 언론이 사회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인권침해, 불평등, 환경파괴에 맞서 펜, 카메라, 녹음기로 싸울 수 있을까요?  언론이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부패와 부정행위를 폭로한 중요한 사례가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의 취재로 미국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워터게이트 스캔들(Watergate scandal)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진 진압을 위르겐 힌츠페터(Juergen Hinzpeter)가 촬영한 영상이 미친 영향도 있습니다.  2018년, 프로 퍼블리카(Pro Publica)는 부모와 헤어진 후 이민자 보호시설에 갇힌 아이들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울부짖는 음성 녹음을 공개했습니다. 이 절규는 미국 대중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트럼프 행정부가 가족 분리 정책을 중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언론이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수천 가지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언론의 전반적 노력을 얼마나 대표할 수 있을까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미미한지 매우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날로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 전쟁, 이주, 불평등에 대해 보도하고 이미 폭력적인 이미지에 익숙한 시청자에게 인간의 비극을 담은 사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언론이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작고 위태로운 성냥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둠은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핵심적인 무언가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교육, 공감 어릴 때 우리는 학교에 갑니다. 거기에서 수학, 문학, 역사, 생물학 등을 배웁니다. 이러한 지식은 평생 세상을 이해하는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이며 범위와 시간 면에서 제한적입니다. 때때로 그 내용은 건국, 현재 또는 과거의 분쟁, 종교에 대한 국가의 서술에 왜곡됩니다. 학교를 떠난 후에도 우리의 교육은 계속됩니다. 우리가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어디서 알게 되었나요? 기후 변화는 어디서 배웠나요?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요? 팔레스타인 점령과 이주민에 대한 반발에 대해서는요? 뉴스, 다큐멘터리, 라디오로부터입니다.  매체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알려주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처리하고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퍼즐을 맞추면서 스스로 학습합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사건에 대해 알게 됩니다. 또한 뉴스를 접하는 매체가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면 해당 사건의 맥락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매체의 첫 번째 기능입니다.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여러 판본을 나란히 놓고 가짜 뉴스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해석을 반박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정보 출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체와 소셜 네트워크 간의 역할은 영원히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에티켓, 관점, 편집자 및 사실검증을 신뢰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문이 더 신뢰할 만한 정보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현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바로 볼 수 있거나 뉴스를 게시하는 사람이 공식 언론에 접근할 수 없을 때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따금씩 우리는 그곳에서 최고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뉴스 게시자는 공식 매체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거나 매체가 해당 사건에 관심이 없거나 그 이야기가 소유주나 정부의 영향을 받는 매체의 서사에 맞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내용을 해석하고 출처를 확인하는 역량도 중요합니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육을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해하지만, 정보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를 해석하고 다양한 요소를 이해할 역량을 제공하는 지식 체계입니다.   다리엔 갭(Darien Gap)에서 이주민들의 험난한 여정을 담은 “연결은 인간적인 상호작용의 순간을 의미하는 저널리즘의 본질적인 부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언론사를 통해 우리는 A에서 B로 향하려는 특정수의 사람들, 이주민 혹은 망명 신청자에 대한 정보를 받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A에서 B로 가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B에서 A로 가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매체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얻은 정보와 학교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이 합쳐져 인류의 발전에 이주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어느 시점에 이동을 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가족의 역사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또한 이전의 다른 정보와도 일치합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폭력, 빈곤, 기후 관련 재난을 피해 떠나 온 사람들인가요?  우리 국가들 – 저는 여기서 특히 미국과 유럽을 말하고자 합니다 -은 사람들이 탈출하는 상황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요? 왜 이 사람들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A에서 B로 이동하지 않았을까요? 합법적인 경로를 이용할 수 있었을까요? 실제로 그들에게 그것이 선택지였을까요?  그리고 이주민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결국 우리는 이들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연민은 현재 각국이 이주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인종차별적이고 착취적이며 냉소적인 정책에서 탈피하도록 우리의 행동을 이끌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이주민의 투쟁을 알리고 교육하고 인식을 증진하기 위해 2019년 동료인 나자 드로스트(Nadja Drost), 카를로스 비야론(Carlos Villalon).과 함께 다리엔 갭(역자 주: 파나마와 콜롬비아 사이에 있는 열대우림 늪지대)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미국PBS-TV 뉴스아워(News Hour)에 방송된 ‘험난한 여정(Desperate Journey)’ 보도로 2021년,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집상을 수상했고,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럽과 미국이 국경을 닫으면서 폭력과 전쟁, 견딜 수 없는 빈곤을 피해 미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이자 가장 긴 이주 경로 중 하나인 남미를 경유하는 육로를 택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파나마의 폐쇄된 국경을 넘을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험준한 지역 중 하나인 다리엔 갭(Darien Gap)이라고 불리는 울창한 산악 정글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미국의 PBS 뉴스아워에서 <필사적인 여정> 시리즈를 취재하는 동안 카메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이티 등 전 세계에서 온 이주민과 망명 신청자들이 다리엔 갭을 건너는 과정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밀수업자에게 버림받은 사람들, 남성, 임산부, 아이들은 위험한 지형과 가슴 높이의 강을 혼자서 헤쳐가야 합니다. 길을 잃거나 식량이 떨어지거나 무장한 강도에게 돈과 텐트, 옷가지 등을 강탈 당하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성폭력을 경험합니다. 강변에 널려 있는 뼈와 시신에서 알 수 있듯이 익사하거나 부상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이 직면한 위험과 장벽은 엄청났지만 그에 맞서는 용기, 끈기, 인간애 또한 대단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약 3만 명의 이주민이 이 정글을 건너왔습니다. 작년에는 이 숫자가 25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보도를 통해 이주민의 힘겨운 여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 그들이 떠나온 상황, 미국에 도착하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이유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국경을 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은 각국 정부가 이주민에 대해 제한적 조치를 취하고자 하는 구실이지만 한 카메룬 망명 신청자는 “안전을 위해 도망칠 때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신경 쓰지 않죠. 그저 안전한 곳을 원할 뿐입니다.”  전쟁의 폭력에서 탈출한 망명 신청자들은 여정을 계획할 방도가 없습니다. 누군가 집 앞에서 총을 쏘는 상황에서는 대사관에서 약속을 잡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릴 수가 없으며 나중에 망명 신청을 뒷받침할 서류를 수집할 기회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주의 이유가 굶주림일 때 비자를 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굶주림은 사람을 총알보다도 더 자주 죽이기 때문에 자신과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애써야 합니다.  이주민들은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집과 사랑하는 사람들, 삶을 뒤로 한 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나란히 걸으면서 취재의 주인공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이는 언론인과 피사체 사이의 빠른 상호작용 이상의 것을 보게 했습니다.  연결은 텔레비전 저널리즘이 흔히 의미하는 정보 수집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적인 상호작용의 순간을 의미하는 언론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비극 뒤에는 책임의 문제도 있습니다. 왜 이 사람들, 아동, 여성, 남성은 정글을 건너고 있을까요? 이것이 그들에게 더 나은 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멕시코 북부의 사막처럼 다리엔 갭을 건너는 것은 유럽의 정책으로 지중해의 목숨을 건 횡단이 강요된 것처럼 미국이 부과한 경로입니다.  이러한 경로는 항상 국경을 폐쇄하고 북쪽 국가의 결정에 따라야 했던 남쪽 국가에 이주 통제를 외부화한 산물입니다. 이들 국가는 더 빠르고 안전하고 쉬운 경로를 폐쇄함으로써 이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여정을 떠나도록 강요하는 동시에 밀입국 범죄 조직의 사업을 조장합니다.  우리의 영상보도, 다큐멘터리, 뉴스기사로 각국 정부가 이주민의 미국 혹은 유럽행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정책이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글의 길에서, 사막 또는 지중해 해변에서 이주민의 시신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우리의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처럼 이주민 개개인의 이야기에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국경에서의 범죄를 지속적으로 폭로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도록 만드는 폭력과 굶주림에 대해 교육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공감을 만들어야 합니다.
    2023-06-29
  • 박수칠 때 떠나자: 한국 언론의 국제뉴스의 자립 선언
    [2023 광주민주포럼 발표문 요약3]  박수칠 때 떠나자: 한국 언론의 국제뉴스의 자립 선언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국제뉴스를 향한 타는 목마름과 분열의 자화상: 미,영의 언론들을 통해 세계를 보아 온 한국 언론의 관성과 학습된 무기력   국제뉴스에서 국내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언론사는 대부분 미국과 영국계다(김춘식 외 2022). 앵글로색슨계로 개신교와 백인이라는 공통점을 갖는 국가다. 제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비롯해 항상 특수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2001년의 이라크 전쟁, 2011년의 리비아 침공,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 파이브아이즈로 알려진 정보동맹에서도 항상 같이 있다. 영국은 이미 1900년대에 세계의 1/4을 식민지로 거느린 국가다. 지금도 코먼웰스(Commonwealth) 모임을 주도한다. 미국이 외교전을 펼 때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는 국가들이다. 미국과 영국 등은 또 일찍부터 국제뉴스에 투자했고, 덕분에 지금도 국제여론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남미 국가도, 중미도, 아프리카도 이들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들 언론에 내포된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할 때가 많다. 덕분에 약소국의 침략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은 미국의 아리크 침공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이 국제사회에서는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 미국의 보호를 받았던 덕분에 한국은 그간 무임승차를 해 왔다. 한동안은 불편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성장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한국이 알아야 할 것과 미국이 알려주고 싶은 것에 대한 괴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관점이 한국과 충돌하는 때도 많아졌다.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 중국, 러시아와 관련한 보도에서 두드러진다. 미디어를 통한 국가 간 심리전을 너무 모른다는 문제와 연결된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통해 표면으로 드러났지만 뿌리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과 관련이 깊다.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아군의 충성심은 키워야 한다. 적을 악마로 만들어야 죄책감도 줄고, 다수 국민의 협력도 얻어낼 수 있다. 냉전은 이 전선이 국제사회로 확대하는 계기였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 트루먼 대통령이 주장한 ‘진실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한국 언론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인용하는 <미국의소리>(Voice of America)나 자유아시아방송 (Radio Free Asia) 등이 이 목표로 등장했다.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은 지키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정부의 목소리를, 언론을 빌어 전달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대외정책과 같은 핵심 국가이익에 관한 보도에서 민간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2월 9일에 일려진 ‘노드스트롬 2’ 가스관 폭파와 관련한 보도다. 탐사보도 전문가면서 풀리처상을 여러 번 받았던 세이모어 허쉬 기자가 폭로했다. 미국과 노르웨이가 공동으로 민간시설을 파괴한 테러 행위다. 한편으로는 독일과 러시아의 협력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게 하는 게 목표였다. 미국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내부 고발자가 정보원이었다. 정황으로 봐서 가짜뉴스로 볼 이유가 없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유럽의 주요 언론은 지금도 침묵한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는 유투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도 관련 정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국내언론도 다르지 않다. 관심도 없고 굳이 다른 시각을 찾으려는 노력도 안 한다. 국제정보질서의 구조적 모순에는 눈을 감은 채 익숙한 정보원만 찾는다.  덕분에 한국은 강대국이 전개하는 심리전의 놀이터가 된 상태다. 북한과 중국을 악마로 만드는 뉴스는 이런 환경에서 일상 풍경이다(김성해 외, 2021; 김희교, 2022). 분단국가로 살아오면서 굳어진 ‘냉전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또 다른 관심 대상이다.    냉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한반도에서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한국에서 지배적인 생각은 모든 게 북한과 공산주의 탓이다. 미국은 한국을 도와준 착한 천사다. 미국에 대한 보은론, 혈맹, 민주주의 동맹 강화 등의 논리로 연결된다. 진실은 복잡하다. 그렇지만 정반대의 관점이 충돌하고 있다는 건 명확하다. 전 세계를 공산화하려고 했던 적색 제국주의에 대항해 미국이 동맹을 규합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얘기가 다수의 생각이다. 과거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미국과 영국에 책임을 묻는 시각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독일이라는 악마가 없어진 자리에 소련이 들어서고, 냉전이 끝난 자리에 다시 불량국가와 중국이 들어서는 것을 지적한다. 악마가 원래 있었던 게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국제사회에서 누가 악마가 되고, 누가 불량국가로, 또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을 받는지 살펴봐도 틀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것 역시 거짓말로 확인됐다. 중국, 북한, 시리아의 인권을 문제삼고 있는 미국이지만 정작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증거도 많다.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와 이라크의 아부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인권유린과 고문이 그 증거다. 2023년 4월, SNS를 통해 공개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광범위한 불법 도청도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이런 문제의식이 없다. 국내에서 중국이나 러시아는 여전히 악마다. 전쟁 범죄자고, 최악의 인권 국가면서,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파괴하려는 잠재적 범죄자다.   국제뉴스에서 한국언론이 자립하기 위한 다섯 가지 조건  국제뉴스에서 한국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최소 다섯 가지 정도의 개입 지점이 있다. 미국의 품을 떠나 자립하기 위한 조건으로 보면 된다.   국제보도의 소홀했던 영역에 대한 투자  그중의 하나는 국가이익 차원에서 그간 소홀하게 다뤄진 영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일이다. 참여를 희망하는 언론사와 언론인으로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 냉전을 시작하면서 미국이 많은 투자를 했던 ‘지역학’ 연구에서 경험치를 얻으면 된다. 당시 미국은 러시아,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등 전략적 우선 지역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의 다양한 자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바 있다. 국제이슈에 대한 ‘집단지성’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각계 전문가, 해당 주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 프리랜스, 이해관계자 등이 모이는 공론장으로 생각하면 된다.   백화점이 아닌 전문매장이 되어야  두 번째는 백화점이 아닌 전문매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제보도는 지역도, 영역도, 주제도 너무 많다. 영어만 잘한다고 전후좌우 맥락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전문기자를 키워야 하는 이유다. 전쟁, 기후, 과학, 외교 등으로 분야를 세분화하거나, 지역과 국가별로 특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해당 지역의 언어를 아는 기자 중에서 전문가를 길러내는 방식이다.   국제보도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정체성 바뀌어야  국제보도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정체성’을 바꾸는 게 세 번째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공론장’ 관리자라는 자의식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미국과 영국 등 영어권 아젠다, 프레임을 벗어나 국제적인 현안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을 ‘공정하고, 균형감 있게, 맥락에 담아’ 전달하기 위해서다. 중국과 러시아 보도에 적용해 보면 이해가 쉽다. 우선 러시아 동원령 보도에서 국민은 ‘러시아 관점’을 전혀 모른다. 러시아 말을 몰라도 <Russia Today>를 비롯해 대안시각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많다. 러시아 문제에 대한 전문가 그룹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교황조차도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이유, 이번 전쟁으로 유럽의 지정학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경제봉쇄의 부작용이 유럽 정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등에 대한 많은 얘기를 찾아낼 수 있다.   외신에 대한 비판적 거리유지  외신에 대한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게 네 번째다. 특히 앵글로색슨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국과 중국, 유럽과 러시아 등 신냉전의 주역은 미국과 영국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다시 냉전의 불씨를 지핀 것도 이들이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겨냥해 프로파간다를 공개적으로 진행해 왔다. 지금도 한다. SNS도 예외가 아니다. “美 국방부, 가짜 SNS 계정으로 여론 선동.. 감사 착수”(연합뉴스, 22/9/20) 뉴스에 잘 나온다. 미국정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과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산지가 이미 경고한 내용이다. 한편으로는 전 세계 통신망을 통해 불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외정책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심리전을 벌여왔다. 국내 현안을 다룰 때 당연히 던져야 하는 “누가, 왜, 하필 이 시점에,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을 던지면 된다. 해당 매체가 인용한 정보원이 누구인지, 믿을만한지, 독립적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보도, ‘민족’과 ‘국가이익’을 가치판단의 기준에 놓는 철학 필요  다섯 번째로 국제뉴스에 대한 ‘세계관’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최소한 민족이익과 동맹이익의 차이가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중국, 러시아, 북한을 ‘악마’로 본다. 냉전 사고방식 때문이다. 낡은 세계관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게 국제사회다. 게다가, 신냉전을 맞아, 영미권에서 쏟아지는 많은 뉴스는 현상 유지 전략과 관계가 깊다. 북한은 여기서 ‘악마’가 되어야 한다. 불법 돈세탁을 하고, 유엔 제재를 지키지 않고, 주변국을 위협하는 악당이다. 그러나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볼 수 있는 게 많다. 2002년 제네바 합의가 깨진 것도, 위조지폐 사건도, 북한이 핵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도 미국의 ‘적대 정책’ 또는 미국의 ‘신냉전’ 구도와 무관하지 않다. 북한 인권 문제도 미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되는 게 현실이다. 미국이나 서방의 관점이 아닌 ‘민족’과 ‘국가이익’을 가치판단의 기준에 놓는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뜬금없는 얘기가 아니다. 언론이 당연히 복종해야 하는 헌법에 나온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언론이 공개적으로 한 약속에도 반영되어 있다. “평화통일·민족화합·민족의 동질성회복에 기여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다한다” (기자협회)와 “민족의 자주성을 존중하며 통일을 지향하는 국민적 합의의 창출한다“ (Jtbc) 등이다.   민주화경험에 바탕 한 국제사회의 성숙한 동반자라는 집단정체성 만들 때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발신 전략이 마지막이다. 교만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의 성취는 놀랍다. 국제사회에 나눠줄 것도 많고 함께 풀어갈 과제도 많다. 그중의 하나가 민주화 경험이다. 미국이 선물로 준 게 아니었다. 미국은 한국을 반공 전초기지로 만들려고 했고, 민주주의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두 번에 걸친 군사쿠데타에 합법성과 정통성을 부여한 게 미국 정부다. 민주당의 케네디 행정부와 공화당의 레이건 행정부가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은 민주화라는 꽃을 피워냈다. 냉전의 최전선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경험치도 값진 자산이다. 동족 간 죽고 죽이는 통곡의 시절을 보냈지만 ’진실과 화해 위원회‘ 등을 통해 남남갈등을 차분하게 치유하는 중이다. 국내법과 국제협약을 존중하는 가운데 공동선을 위해 발언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역할이다. 불평등한 국제정보질서를 고려할 때 특히 주의할 부분은 주권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존중과 역량을 가진 사람이 약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한편으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이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에 해당한다. 평화, 인권, 포용, 다양성, 공정, 평등과 같은 시대정신을 확장하는 데 국내언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국제사회의 성숙한 동반자라는 집단정체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참고문헌 김기영 (2014) 국제뉴스 현지화와 그 양가적 측면, <번역학연구> 15(1), 7-24. 김선영 (2021)‘북미정상회담’에 관한 한일 신문사설 비교 연구- 조선일보, 한겨레,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을 중심으로, <일본근대학연구> 74, 272-298. 김성해 (2022) 국제뉴스 사용법, 한국언론진흥재단, 전자책 제1장. 김성해 (2021) 위선과 무례함 그리고 사악함의 변주곡: 북한 관련 ‘가짜 뉴스’를 통해서 본 한국 언론의 민낯, 통일문제연구, 33(2), 189-234 김성해, 심영섭 (2010) 국제뉴스의 빈곤과 국가의 위기,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서. 김성해 (2014) 미국 패권의 후퇴, 국제정보질서 그리고 국가이익: 중견국 한국의 정보주권실현을 위한 이론적 탐색, 언론과사회, 22(4), 54-94. 김성해, 강희민, 이진희 (2007) 한국의 구조적 전환과 미디어담론: 외환위기 이후 영미식 주주중심 모델의 수용을 중심으로, <언론과사회> 15(4), 39-85. 김성해, 김란희, 이주현 (2021) 위선과 무례함 그리고 사악함의 변주곡: 북한 관련 ‘가짜뉴스’를 통해서 본 한국 언론의 민낯, <통일문제연구> 33(2), 189-234. 김성해, 정아름, 유로 (2016) 집단사고의 오류 혹은 의도적 왜곡: 한반도 정세변화를 통해서 본 한국 언론의 중국담론, <미디어와공연예술연구> 11(3), 35-64. 김종수, 황수환 (2021) 북한관련 ‘가짜뉴스’와 남북관계: 진단과 대응방안, <동북아논총>99, 95-112. 김춘식, 채영길. 백강희 (2022) 한국 언론의 외신 인용 보도의 특징과 관행, <언론과학연구> 22(4), 36-99. 김희교 (2022) 짱깨주의의 탄생: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 보리. 안종목 (2016) 한국과 영국 신문의 해외뉴스의 프레임 비교 연구, <커뮤니케이션학연구>24(3), 171-191. 이은별, 이종명 (2022) 한국의 중동, 아랍, 이슬람 보도 지형: 빅카인즈를 이용한 국내언론보도(1990-2021) 분석, <언론정보학보> 112, 95-126 주재원 (2022) 한중수교 이후 한국 언론의 대중(對中) 담론 연대기, <동북아연구> 37(2),5-49. 채영길 (2013) 동북아 신냉전과 국제방송: 한국, 미국, 중국의 국제방송의 대북한 관련뉴스분석 연구, <커뮤니케이션학연구> 21(3), 77-108. 허재철 (2018) 중국 글로벌 뉴스 미디어의 특성 및 외교적 역할에 관한 연구, <중소연구> 42(2), 75-114.
    2023-06-29
  • 전쟁 취재하면 형사처벌?
    전쟁 취재하면 형사처벌?우크라이나 취재한 프리랜서 사진작가 장진영씨, 벌금형에 불복언론사회단체와 함께 취재자유 제한하는 ‘여권법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외교부의 허가 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보도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은 프리랜서 사진작가 장진영씨가 언론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여권법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영상기자협회 등 27개 언론시민사회단체와 장 작가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인의 전쟁 취재를 사전 금지하고 허가제로 운영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며 여권법 위헌법률심판제청의 배경을 설명했다. 국제기자연맹, 국제언론인협회 등 국제적인 언론인 단체도 국제 분쟁 지역에서 언론인의 활동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지지 성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장 작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와 르비우 등을 취재하고 돌아와 시사주간지 ‘시사IN’, 월간 ‘워커스’ 등에 관련 사진을 보도했다. 경찰은 같은 해 4월 장 작가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된 우크라이나를 외교부 장관의 허가 없이 방문해 여권법 제17조를 위반했다며 입건했다. 장 작가는 지난 3월 법원으로부터 벌금 500만원을 납부하라는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4월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여권법 제17조는 ‘외교부장관은 천재지변·전쟁·내란·폭동·테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외 위난상황으로 인하여 국민의 생명·신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민이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기간을 정하여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의 여권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체류를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권법은 ‘다만, 영주, 취재·보도, 긴급한 인도적 사유, 공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목적의 여행으로서 외교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여권의 사용과 방문·체류를 허가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두었다.  이들 단체는 “(여권법 17조는)언론의 전쟁 취재·보도를 외교부의 허가권 아래에 두고 있다”며 “해외 주요 나라는 언론인이 전쟁 지역에서 안전하게 취재할 수 있도록 지원·보호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취재 자체를 허가제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취재·보도 목적의 입국을 외교부가 허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장 작가처럼 프리랜서 언론인은 아예 외교부의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외교부의 허가 요건이 ‘외교부 출입 언론사’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 작가의 법률대리인인 김보라미 변호사는 △여권법이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금지’를 명시한 헌법 제21조 2항에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며 △거대 미디어 회사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 기자의 경우 취재 기회가 봉쇄되는 것은 과도하게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우크라이나전쟁을 취재한  영상기자들, 여권법의 취재자유제한 토로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지난 해 우크라이나전쟁 취재를 다녀온 기자들의 간담회를 열어 현재의 여권법이 국내 언론인들의 국제뉴스취재를 막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했다. 당시 간담회에 참여한 영상기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여권법에 의해, 우크라이나 입국이 막혀 한국 취재진만이 현지 취재를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고, 이후 외교부가 제한적인 우크라이나 취재를 허가하는 과정에서 취재계획서를 요구하는 등 헌법이 보장한 취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들이 공공연히 일어났다며 현행 여권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을 밝혔다.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해외분쟁지역 취재·보도는 2000년대 초반, 이라크 전쟁 당시의 수준에 멈춰 섰다. 당시에는 오히려 독자적으로 국제뉴스를 바라보려고 하던 우리 언론인들의 다양한 노력에 시청자들이 격려하고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언론의 국제보도, 특히, 분쟁보도는 오히려 퇴행해, 우리의 시각이 아닌 외신이 전하는 뉴스와 시각에 의존하고 있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고 말했다.  나 회장은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방송사, 언론사, 또, 소속 언론인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지지부진하고, 평소에 여권법 같은 국내언론인들의 자유로운 해외취재를 제한하는 장벽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그에 대해 침묵하고 묵인해온 것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며,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해외지역의 취재·보도를 활성화하고, 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여권법 개정활동’에 적극 동참하고, 협회차원의 활동들도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3-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