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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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영상미디어센터의 시대가 도래한다!
    <명예카메라기자 마당> 영상미디어센터의 시대가 도래한다! 영상미디어 시대  그동안 영상은 텔레비젼이라는 매체를 통해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었지만 시민들의 영상향유 욕구 증진과 영상기기의 사용능력 향상으로 직접적인 자기표현이 용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창작의 욕구는 지역 영상문화 확산과 맞물려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으로 본격화되었다. 처음으로 2002년 5월 미디어액트가 문을 연 후, 2004년 5월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과 강서구의 노력으로 지역영상미디어센터로써 최초로 강서영상미디어센터가 개관하였고, 지난해 11월에는 수도권 중심의 방송 인프라의 개선을 위해 방송위원회 지원으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가 설립되었다. 또한 문화관광부는 2008년까지 15개 시·도당 1개소씩 지역영상미디어센터 설립을 지원하기로 하여 현재 김해시와 제주도에 영상미디어센터가 생겨났고, 2006년에는 대구 디지털산업진흥원과 인천 남구에도 센터건립 지원을 확정한 바 있다. 이렇듯 영상미디어 문화의 확산이 점차 가속화 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센터란 무엇인가?  영상미디어센터는 영화전용관을 통해 다양한 영상문화 감상과 영상 시설및 기자재들을 일반인에게 제공하고 영상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영상제작을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적인 영상문화공간이다. 이러한 영상미디어센터 설립을 위해서는 건물의 리모델링, 기자재 구입 등 최소 10여억 원이 들어가는 막대한 사업이다. 이를 위해 영상관련기관에는 각 지역에 막대한 국고 보조금과 지방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가 방송위원회의 120여억 원 지원으로 건립된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문화부 역시 2008년까지 총 300억원을 투입해 총 15개의 지역영상미디어센터를 육성할 계획이며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각 지역영상미디어센터에 방송 기자재를 지원하고 있다. 지역 영상미디어센터의 역할  이처럼 정부 또는 지역의 예산으로 지원되므로 미디어 센터는 공공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시작은 그 정체성이 분명하지는 않았다. 최근 미디어센터의 설립과 운영이 순조롭지 않은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영상미디어센터가 하나 둘씩 늘어갈 것이며 그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영상미디어센터가 보다 활성화, 보편화 되기 위해서는 안으로 전용상영관 운영, 영상미디어 교육, 영상 도서관등 미디어센터만이 가능한 활동이 활발히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밖으로는 시간과 공간의 극복을 위해 지역 학교 CA,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문화관련시설과 연계한 프로그램 등 지역 영상문화 활성화를 위해 모색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미디어센터는 영상미디어의 활용 공간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확대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 영상관련 문화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지역에서 시작되는 영상미디어 민주주의 실현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지에는 정보를 가진다. 그리고 영상은 1초에 30장의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물론 영상이 가지는 정보량이 이미지보다 30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정보량이 큰 만큼 정보소외 현상도 커질 수도 있다. 이제 영상문화의 확산으로 건립되고 있는 지역영상미디어센터가 다양한 프로그램과 노력이 바탕이 되고 시민들의 참여로 미디어센터 존재의미를 거듭 확립되어가길 바란다. 제1기 대학생명예카메라기자 윤치영  
    2006-04-18
  • <릴레이 인터뷰>후배들이여, 꾸준한 승자가 되어다오!
    제목 없음 제29호 이어지는 인터뷰 - 전주MBC 신형우 부장 1. 요즘 많이 바쁘시죠? 근황은 어떠신지?  봄 개편을 앞두고 있어 정신없이 바쁘다. 전주MBC의 경우 취재와 제작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개편의 영향이 크다. 게다가 현재 데스크를 맡고 있어서 더욱 마음의 여유가 없다. 산들산들 봄바람도 불어오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2.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시게 된 이유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이 어렸을 적부터 나의 소망이었다. 한마디로 방송국은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스무 살이 갓 넘던 시절 내가 한참 스틸 카메라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던 것도 나의 직업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카메라는 나에게 ‘순간’을 선물해 주었다. 내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을 사진이라는 형태로 내 곁에 둘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러한 스틸 카메라의 매력은 동영상을 담는 필름 카메라인 경우 배가되었다. 특정한 ‘순간’을 넘어서서 ‘시간의 흐름’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그것을 필요한 순간 사용할 수 있었다. 마치 황진이의 시구처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 내어 춘풍 부는 날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이라는 시간을 베어 이불 속에 넣어 두었다가, 임이 오신 봄날 밤 굽이굽이 편다고 했다. 나도 ‘시청자가 원하는 순간’을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한 허리 베어내어’ 생생하게 보여 줄 수 있는 ‘능력가’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내가 동경해 왔던 방송국을 직장으로 삼고 말이다. 이것이 내가 카메라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이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으시다면?  글쎄... 전주MBC에서 특종을 한 ‘중공군 어뢰종 군산항 출몰’사건과 익산에서 있었던 비행기 불시착 사건이 떠오른다. 또 전주 좁은목에 스케치를 갔다가 우연히 사고 장면을 포착하여 특종을 한 승용차 정면충돌 사건도 생각난다. 특히 좁은목 승용차 정면충돌 사건은 차가 두동강이 날 정도로 큰 사고였다. 그것을 촬영하면서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다. 4.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이것은 단지 우리 후배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 그런 것 같다. 나는 후배들이 ‘꾸준한 사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참 여러모로 능력 있는 친구들이 많다. 기본적인 능력 면에서는 흠 잡을 데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끈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끈기도 능력이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머리가 좋은 사람도 꾸준한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 후배들이 ‘꾸준한 승자’가 되었으면 한다. 5.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시다면?  요즘은 좀이 쑤시다. 봄바람까지 불어 더욱 그러하다. 별다른 목표는 없다. 나도 양성호 부장처럼 빨리 현업으로 복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른 현업으로 복귀하여, 카메라를 메고 세상을 누비고 싶다. 봄바람이 그립다.  이렇게 MBC 신형우 부장님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지난 호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였던 양성호 부장님 말씀대로 정말 종가집 ‘큰 형님’같은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구수한 어투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분이었다.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를 추천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누구를 추천해야할지 난감하다며, 극구 고사하셨다. 그리고 협회에서 ‘카메라기자’들에게 귀감이 될 만 한 분을 추천해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협회는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로 아리랑국제방송의 ‘브레인’ 김태원 차장을 추천한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6-04-18
  • 방송사의 몰래카메라 취재기법은```
    [문화일보   2006-03-28 14:39:57] 청와대 비서관의 골프회동을 보도한 방송사의 취재기법이 논란거리다. 골프회동을 첫 보도한 27일 SBS TV‘8시뉴스’는 ‘간큰청와대 비서관, 대기업 임원과 골프’란 보도를 통해 경기 여주한 골프장에서 몰래카메라 기법으로 촬영된 장면을 보도했다. 1분40여초에 달한 이 보도의 첫 장면에서는 청와대 모 비서관과골프를 친 일행이 신발의 먼지를 터는 장면과 개인적 소회 등이 목소리 변조없이 방영됐다. 각 인물의 얼굴은 감춰진 채 보도됐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공인의 사생활 보도기준이 어느 선이냐’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건국대학교 황용석(신문방송학) 교수는 “몰래카메라 기법은 정상적이지 않는 취재관행에 속한다”면서 “다만 대상자가 공인이고, 사회적 논란이 있을 경우 허용되는 사례가 있는데 청와대 비서관의 경우 골프회동을 부인하다가 인정했다는 면에서 용납가능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언론재단 김영욱 책임연구위원은 “공공의 이해관계에관련되거나, 중대한 상황일 때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몰래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다”며 “그러나 해외의 유수방송사에서는 이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반드시 상급자에게 사전승인을 받도록 한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위원은 “이 사건이 국민이해에 중대한 사건이냐는 시각이 있을수 있고, 개인사생활을 침해한 측면도 있어 방송사의 몰래카메라 취재기법은 보다 엄격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표기자 lip@munhwa.com
    2006-03-28
  • 픽션된 논픽션의 세계
    픽션 된 논픽션의 세계 다큐멘터리의 두 얼굴, 예술과 저널  다큐멘터리, 뉴스...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세계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자 한다. 사람들에게 진실함을 보여주고, 그 진실성은 논픽션 세계의 핵심이다. 다양한 매체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TV. TV를 통해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되기도 하며,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한번쯤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는 ‘예술’과 ‘저널’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소외된 것, 잘못된 역사나 사회에서 소재를 얻고, 그것을 보도 한다는 점에서 저널의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뉴스가 아니기에, 그것을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촬영, 구성, 편집하는 과정에서 예술성이 가미된다.    방송을 공부한다고 마음먹은 후로 ‘방송의 픽션과 논픽션’에 대해 많은 생각과 시간을 보냈으며 아직 이 명제는 속 시원히 풀리지 않고 있다. 항상 나의 머릿속 한 부분을 차지한 채 좀처럼 떨쳐지지 않고 있다. 처음엔 논픽션 프로그램, 논픽션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멋모르고 받아들인 것이다. 나의 생각은 투영된 채 눈으로 보여 지는 영상을 그때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보잘 것 없는 경험이지만, 지난 몇 년간 다큐멘터리와 뉴스를 제작하면서 과연 카메라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사실이 진실한지 공정한지에 대해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다른 이의 영상을 보면서 자체의 의미보다는 진실한 모습을 찍은 것인지 연출된 상황은 아닌지 나의 의심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는 자연스러워지고 싶었다. 절대 진실한 영상만 담고 싶었다. 진정한 다큐멘터리는 세상과 인간, 자연을 자신만의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작품의 미학적 예술성과 동시에 사회에 던지는 의미 있는 메시지들을 가지려 끊임없이 고뇌하는 ‘양날의 칼’이 되어야 하며 그 속에 진실성과 공정성은 항상 내재되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다큐멘터리 주인공에게 던진 나의 한 마디, "평소처럼 해주세요"  항상 ‘나는 생각의 끈이 짧다.’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여름 한 장애 입양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었다. 며칠 만에 나오는 영상은 사실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2달이라는 시간을 두고 하루하루 촬영해 나갔다. 정식으로 배운 제작과정이 없었기에 참 많은 시간동안 영상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련한 것이 뮤직비디오나 단편영화처럼 시나리오를 미리 꾸몄었다. 앞날을 내다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것처럼 다큐멘터리는 나의 머릿속에서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나리오를 들고 첫 촬영을 나갔던 것을 기억한다. 웃기게도 나의 머릿속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으면서 촬영 대상자 가족에게 저희가 없는 것처럼 평소처럼 행동해달라고 주문을 했었다. 그렇게 해달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이것 또한 연출이 아니었던가? 처음 1주 동안은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1주 동안 찍은 영상을 모니터했을 때 전혀 만족할 수 없었다. 머리로만 움직였을 뿐. 가슴으로 담으려 했던 영상이 아니었다. 내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이중인격자처럼 느껴졌다. 스탭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작품에 대한 회의보단 제작자로써의 자세와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대해 늦은 시간까지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만족할만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다시 촬영을 나가고, 카메라 전원부터 켜지 않았다. 그 가족의 생활을 그저 바라봤다. 그 가족의 생활을 내가 훔쳐간다는 느낌 때문에, 그것도 사실 그대로 가져가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채 언제부터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가족과 동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연출인가?  그 후 촬영을 재개했고, 편집가정을 거쳐 ‘인연’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지금도 그 다큐가 진실성과 공정성을 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나와 스탭들의 생각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2달이라는 시간을 보여줬지만, 그것은 그 가족의 미미한 부분이다. ‘인연’ 이 다큐멘터리는 완성되었지만, 이 다큐를 인해 나의 생각은 더 복잡해진 것 같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큐의 진실성과 공정성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가 되 버렸다.   가장 진실하고, 가장 공정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자질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 들 수 있어야한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 외국의 한 다큐 작가는 예술가들의 무덤만 찾아 다녔다고 한다. 생활 속에서 ‘지하철 역’에 관심을 두고 역의 특징 하나하나를 기억한다든지, 서울 시내의 가로등만 관찰해 본다든지 한 후에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하는 과정을 연습한다. 사회내의 약자의 편에 서서 진실을 파헤치기도 하며, 사회내의 강자의 편에서 그들의 의견을 알아 볼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 감동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성과 공정성일 것이다. 예를 들어 쓰레기소각장 건설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고발을 한다고 하자. 이러한 고발은 누구를 편드는 것도, 정치적 목적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상에 대립하고 있는 양자 간의 의견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하며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제작자는 직접 나서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 아닌 있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감당해 내기 힘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제1기 대학생명예카메라기자 김동현  
    2006-03-14
  • "아는 만큼 보인다" 선배님, 알고 싶습니다!
    제목 없음 "아는 만큼 보인다" 선배님, 알고 싶습니다!  카메라기자 협회의 대학생 명예 카메라기자로 인사드리게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3개월 만에 이렇게 다시 수습사원으로 입사소감을 올리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선 입사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취업 대란 속에서 직장을 잡았다는 기쁨도 크지만, 그동안 꿈꿔왔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더욱 큽니다. 오로지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선배님들을 직접 뵙고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도 큰 기쁨입니다.  학부시절 사진동아리와 방송연구회 활동을 같이 했기 때문에 졸업을 즈음하여 진로 선택을 고민할 때 사진기자와 카메라기자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하였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둘 다 해보고 싶었지만 결국 함축적 표현을 하는 시인의 기질보다는 구체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소설가 기질이 제게 더 맞다고 생각하여 카메라기자를 선택했습니다. 편집을 통해 2차적 창조활동을 있다는 점에서 역시 카메라기자가 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카메라기자가 되기 위한 소질 개발에 더욱 중점을 두었습니다. 기동성을 높이고자 따 두었던 2종 소형 면허와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그리고 방송아카데미에 등록하여 학교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던 스탠다드 카메라도 맛보기로 배웠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자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방학을 하면 배낭여행을 다녔습니다. 어학연수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장차 카메라기자가 되었을 때 더욱 유리하게 작용하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매일 매일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다시 한 번 제가 선택한 진로가 적성에 잘 맞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영상취재기자는 화려한 직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기자들의 얼굴도 나오지 않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사건과 이슈"라는 스타를 발굴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끔 하는 한 사람의 전문인. 묵묵히 사회의 구석구석을 돌며 감동을 전해주고 공분을 일으키기도 하여 발전지향적인 사회를 꿈꾸는 영상취재기자!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모 기관의 슬로건이 딱 들어맞는 직업 아닐까요? 친구들과 만나게 될 때 면 종종 "왜 카메라 기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직종의 매력에 대한 가치관은 모두 다르시리라 생각되지만 저는 “인생을 가장 역동적으로 살 수 있게끔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양한 사회계층,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며,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카메라 기자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수습기자로서의 생활이 시작될 텐데 걱정이 많이 앞섭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이 진부한 표현일지언정 제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일도 많고, 사회적 지식도 불충분한데 과연 제가 잘 해낼 수 있을런지....분명 영상취재기자에게는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보다는 사회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본질을 읽어내는 눈이 필요할 테지만 아직까지 제게는 그런 소양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낍니다. 이제 입사하였으니 끝이라는 생각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설계도를 어떻게 그려야할지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6mm의 고성능화와 광범위한 보급, 그리고 시민기자와 VJ의 등장은 영상취재기자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취업 핑계로 외면해온  교양서적을 탐독하고 차별화된 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선배님들... 이제 백지상태로 처음 사회에 들어서는 초년병이 여기 있습니다. 부디 애정 어린 조언과 질책이라는 거름을 아끼지 마시고 뿌리셔서 선배님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고 건강한 사회의 파수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십시오. MBC 영상취재부 김신주 기자  
    2006-03-14
  • 위험등급 4등급, 보험등급 군인과 같아
    위험등급은 4등급, 보험등급 군인과 같아 “DANGER MONEY"는 통상 ‘위험수당’을 의미한다. 지난 이라크 전을 취재하면서 국내 방송사들도 이전에 외국의 언론사들에 비해 턱없이 낮았던  ‘위험수당’ 제도를 보완하거나 신설하였다. 더불어 각사마다 차이는 있으나 해외 위험 지역 취재 시 만약에 발생할 위험에 대비한 여행보험 및 특별 재해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수당’ 제도의 보완은 아직도 해외 분쟁, 위험지역 취재에 국한되었을 뿐 실제적으로 대부분의 취재가 이루어지는 국내에서의 ‘위험 업무’에 대해서는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카메라기자에게 있어 ‘고위험 취재’는 사실 특정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매일 접하는 뉴스 특히 사건, 사고에 있어 위험요소는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일상 취재 업무 중에서 고위험 업무를 분류해 보자면 크게 ‘재해 취재’와 소위 ‘특수 촬영’ 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재해취재에는 풍수해, 폭설, 산불 등 자연재해 취재와 화재, 붕괴, 교통사고 등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일반재해 취재가 있다. 전자가 계절적, 지리적 요인이 많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그 위험도와 피해정도가 크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후자는 일상생활 주변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며 예측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특수 촬영’이라 한다면 항공촬영, 수중촬영, 고 산악 촬영, 고공 크레인 촬영 등이 있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항공촬영은 카메라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항공촬영의 경험을 갖고 있을 만큼 가장 취재 빈도가 높다. 반면 수중촬영 및 고 산악 촬영은 취재 빈도는 항공촬영보다 낮지만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와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카메라 기자들 중에서도 스페셜리스트들이 팀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국내에서 일상적으로 수행되는 ‘고 위험 취재’에 대한 ‘위험수당’ 및 관련 보험제도의 밑받침 수준은 해외에서의 고위험 취재에 비해 매우 일천한 상황이며 방송사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십여 년 째 개선이나 보완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현재 항공, 수중촬영의 경우 KBS는 23.000원, MBC는 20.000원, SBS는 15.000원의 위험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나 10년 전에 책정된 금액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이런 위험수당 제도도 자체 헬기를 보유하고 있는 방송사의 경우에 해당하며 자체 헬기는 없지만 재해나 사고 시 군경 헬기 등에 탑승하는 방송사들의 경우는 아예 위험수당 지급 제도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불어 이와 관련한 보험제도는 더욱 미비한 수준인데 대부분의 방송사들이 해외 고위험 취재 시에는 여행보험, 특별보험 등에 가입하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일상적인 고위험 취재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산업재해보상보험’이 유일한 공적 보완 장치이다. 예외적으로 헬기 탑승의 경우에는 헬기 자체에 탑승객을 대상으로 한 인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경우 불의의 사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헬기를 제외한 수중촬영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회사에서는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업무 외 질병이나 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완, 보상하기 위한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고위험 취재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보장정도는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국내에서 ‘고위험 취재’를 수행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경우 개인적으로 가입한 상해, 생명보험을 제외한 공적인 수준의 보상수단은 산재보험이외에는 아직 미약한 수준인 것이다.  손해보험업계에서 보험요율 산정을 위해 직업별 위험도 등급을 산정할 때 카메라 기자 직종은 ‘4등급’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군인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국방부는 최근에 현역군인들의 위험수당을 20%정도 인상한 바 있다. 공군은 헬기를 제외한 군용기 탑승객에 대한 보험 적용을 최근에 헬기에까지 확대 적용하였다.  카메라기자들의 위험업무 수준을 군인의 수준으로까지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험 업계에서조차 군인과 같은 수준의 위험 직군으로 분류하고 있는 이상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에 대한 보완 장치는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이라크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이 몇 년 안에 다시 발생할 수 있을까? 오히려 수해, 산불은 거의 매년 발생하고 항공촬영은 거의 매주 이루어지며 화재, 사고는 거의 매일 발생한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 모든 순간에 우리 카메라기자들은 항상 그 한가운데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신진수 기자
    2006-03-14
  • <줌인>경험 많은 카메라기자를 활용하라!
    경험 많은 카메라기자를 활용하라 한국의 카메라기자들의 연 취재 아이템 수 평균 250개 이상    한국의 카메라기자들이 1 년 간 취재하는 아이템의 수를 보면 평균 250개가 넘는다. 1년 중 휴일인 70여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취재현장에서 다양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카메라기자들 취재에 나서는 이런 수많은 아이템의 대부분은 취재기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업무의 시스템에 따라 취재기자의 기획과 함께 진행되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면이 무척 많다. 카메라기자가 취재기자보다 입사 후 더 빨리 방송현업에 뛰어들고 오랫동안 취재 현장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현장경험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지 못한 현실이 말이다.  카메라기자의 기획 참여는 시대의 바람  최근 수년 간 일부 방송사를 시작으로 카메라기자가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생산하여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물론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그래도 카메라기자에게 그런 기획과 프로그램제작의 기회를 주는 정도만 되어도 감사할 따름이다. 카메라기자가 단독으로 제작할 수 있는 분야는 그리 많지는 않다. 시사프로그램과 뉴스라는 특성에 비추어 메시지의 전달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취재기자의 역량이 소중한 사실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에 늘어나고 있는 연성뉴스의 제작바람을 생각하면 카메라기자의 기획참여는 시대가 바라는 요청일 수 있다.  카메라기자의 다양한 현장 경험 활용 - 뉴스 경쟁력 높이는 첩경     최근의 경향을 보면, 문화나 사회적 미담사례, 레져 등 아름다움과 소중함 등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분야가 뉴스에서의 비중이 급격히 늘고있다. 카메라기자가 누구보다도 다양한 취재현장을 누비고 수많은 뉴스 아이템을 취재하면서 느끼고 얻는 현장경험의 활용은 뉴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첩경인 것이다.  카메라기자의 기획 기회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도 방법  하지만 현재의 뉴스제작 시스템에서 이런 변화는 그리 쉽지 않다. 너무 틀에 박혀있는 뉴스의 제작과 프로그램 선정 방식에서 카메라기자의 1인 제작 환경으로의 전환은 힘들다. 물론 인원 면에서도 기존 뉴스를 제작하기에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1년에 하나, 한달에 하나 하는 식으로 그 제작분량을 늘여 가는 방법도 있다. 지금은 초기단계이지만 미래의 뉴스에서 이런 제작방식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6-03-14
  • 선거방송심의위원회, 보도 범위 해석 발표
    선거방송심의규정 제20조 관련, 보도방송의 범위 해석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 는 지난 달 20일 그동안 많은 논란을 일으킨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20조와 관련 보도방송의 범위에 대한 해석을 내렸다.  선거방송심의에 관한특별규정 제20조(후보자 출연 방송제한등)제1항은 ‘방송은 선거일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법의 규정에 의한 방송 및 보도·토론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후보자를 출연시키거나 후보자의 음성·영상 등 실질적인 출연효과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돼있다. 심의위는 <보도방송>의 범위를 선거관련 사항에 대한 프로듀서의 제작물을 포함하되, 시사에 관한 속보 또는 해설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한하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심의위의 이 결정은 그동안 독소조항으로 지적된 후보자 출연제한 조항에 대해 전향적인 해석을 내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민단체와 방송현업단체들은 이 조항에 대해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약한다며 개정을 주장해 왔었다.  한편, 심의위는 여론조사보도 규정 등 선거방송의 공정성 유지를 위한 5개 중점 심의사항을 의결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집중 심의 사항 ▲ 여론조사보도 관련 규정의 준수 여부 ▲ 선거방송의 공정성·형평성·정치적 중립성 유지 여부 ▲ 사실보도 및 객관성 유지 여부 ▲ 선거일 90일전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 방송 및 광고방송 출연 제한 ▲ 특집기획 프로그램 등  이번에 심의위가 공표한 중점 심의사항은 지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와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등 주요 선거 때마다 규정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주요 사례를 중심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의위는 인터넷의 특정사이트에서 실시한 인기투표 형식의 여론조사 결과 등을 포함한 공정성 및 정확성에 의심이 가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했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의뢰기관·조사대상·기간·방법 등의 구체적으로 명시해야하며 오차범위 내 결과인 경우 막연한 순위표시는 금지한다.  심의위는 선거일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5월31일 오후 6시)까지 정당 지지도와 예상 당선자 보도 금지 등의 여론조사 보도기준을 공표 했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
    2006-03-14
  • 대한민국 동쪽 땅 끝을 다녀오다
    제목 없음 대한민국 동쪽 땅끝을 다녀오다 출발 그리고 도착 2월 17일 갑작스레 독도 출장이 결정됐다. 취재 목적은 작년 일본 시마네현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을 맞아 독도 현지 분위기를 전달 하는 것. 급하게 결정된 만큼 출발하는 것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독도로 가는 민간 선박이 없어 간신히 해경의 경비정을 섭외했으나 다시 승선인원이 문제가 되었다. 처음 중계팀을 포함해 15명으로 구성된 출장인원은 경비정 승선인원 제한으로 어쩔 수 없이 8명으로 축소되었다. 특히 영상기자와 오디오맨 그리고 취재기자 2명이었던 취재팀은 영상기자와 취재기자 1명씩만 가는 것으로 결정되어 출발 전부터 험난한 출장길을 예상케 했다. 게다가 중계팀에서 카메라맨이 빠지는 바람에 내가 중계 카메라까지 맡아야만 했다. 밤 10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새벽 2시가 넘어서 묵호항이 있는 동해에 도착해 잠깐 눈을 붙였다. 18일 오전 9시 묵호항에서 중계팀 그리고 KBS 취재팀과 함께 해양경찰 경비정 1003호를 타고 독도로 출발했다. 7시간의 긴 항해 끝에 독도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독도의 동도에 있는 접안시설에 경비정을 댈 수 없어 소형 보트를 이용해 독도로 들어갔는데 무거운 SNG 장비 때문에 짐을 옮기는 데만 1시간 넘게 소요됐다. 게다가 우리는 독도에 도착할 때까지 입도 허가가 나지 않은 바람에 선착장에서 경찰과 실랑이까지 벌여야 했다. 해가 거의 질 무렵에 입도 허가가 나고 우리는 간신히 독도경비대 막사 식당 앞에 SNG 장비를 옮겨 놓고 도서실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작년 독도에 위성장비를 설치한 KBS는 우리와 같은 8명이 독도에 들어왔지만 짐은 우리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취재 그리고 중계 도착 다음날인 2월 19일 10년 만에 독도로 다시 이주하는 김성도씨 부부와 이예군 씨를 취재했다. 독도에 두 가구가 거주하게 된다는 것은 독도가 국제법상으로 유인도로 분류되어 일본의 독도는 무인도라는 주장을 무의미하게 하는 의미 있는 사건이다. 성금으로 마련된 독도 호를 타고 독도의 서도에 내린 김성도씨 부부를 중심으로 독도이주 안녕기원회와 거주지인 어업인 숙소 등을 두루 취재했다. 다케시마의 날 전날인 21일에는 독도를 지키는 독도 경비대원들과 동해안의 밤을 홀로 비추는 독도 등대 소장을 만났다. 일부 보안 시설 때문에 취재 시 독도경비대장의 협조를 구해야 했지만 대부분 큰 어려움 없이 취재할 수 있었다. 일본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로 선포한 2월 22일, 나는 해뜨기 전부터 해진 후까지 영상기자와 중계 카메라맨 1인 2역을 소화해내야만 했다. 아침 6시 뉴스부터 메인인 8시뉴스까지 총 5번의 중계를 했고 이의근 경북도지사가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독도경비대원들을 격려하는 행사를 취재했다. 당초 일본 시마네현에 맞선 독도지킴이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기상이 나빠 관계자들이 독도에 오지 못해 행사는 연기되고 말았다. 만일 행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독도의 동, 서도를 오가며 더욱 분주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중계 포인트는 KBS와 함께 동도 꼭대기에 있는 헬기 착륙장에 잡았다. 헬기장은 넓을 뿐만 아니라 낮에는 독도의 서도, 밤에는 동도를 상징하는 등대를 배경으로 할 수 있어 중계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자 유일한 곳이다. 바다바람이 거세게 불어 조명을 비롯한 중계 장비를 설치하는데 다소 애를 먹었지만 우리와 KBS 모두 중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생 활 출장이 갑작스레 결정되어 독도 입도 허가도 받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맨바닥에서 먹고자고 할 각오로 독도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에 생수, 컵라면, 햇반, 참치 통조림 등 일주일 분량의 부식 과 버너 그리고 침낭을 준비했다. 다행히 경비대장의 배려로 스팀이 들어오는 경비대 막사 도서실에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닥은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콘크리트. 중계팀이 우천을 대비해 가져온 커다란 비닐과 경비대에 빌려준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침낭을 펴 우리팀 8명의 숙소가 완성됐다. 거센 바다바람 때문에 버너의 불이 잘 올라오지 않아 도서실에서 물을 끓여 참치 통조림을 반찬으로 햇반과 컵라면을 끓여먹었다. 독도에서는 따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경비대원들을 위한 체력단련장에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 6대와 당구대 탁구대 등이 설치되어 있어 가끔 이용할 수 있었다. 경비대장이 컴퓨터 중 2대를 취재용으로 제공해줘 각 사의 취재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중전화가 있어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쓰였다. 휴대폰은 일부 지역에서만 사용가능하지만 신호가 약해 소리가 잘 끊어지고 배터리 소모도 커 평소엔 전원을 꺼놓고 지냈다. 뒤늦게 독도에 들어온 MBC 취재기자가 맨홀에 빠져 갈비뼈가 손상되는 사고가 있었다. 또한 동기인 우리 취재기자도 선착장에서 트라이포드를 들고 뛰다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다. 독도는 잘 정비가 안된 곳이 많아 사고의 위험이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항상 안전에 유의해야 할 곳. 그 곳이 바로 독도였다. 복 귀 22일 8시뉴스 중계를 마치고 모든 위성장비를 정리하고 짐을 꾸렸다. 23일 아침 7시에 해경 경비정이 오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6시부터 장비를 선착장으로 내렸다. 그리고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소형보트를 타고 동해의 푸른 파도를 가르며 독도를 떠났다. 괭이갈매기, 삽살개 그리고 매서운 바닷바람과 함께했던 독도에서의 5박6일. 어쩌면 내게 독도는 콘크리트 바닥 위에 깐 침낭 속에서 밤을 지새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기억으로 먼저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쉽게 갈수 없는 곳인 만큼 쉽게 잊혀지지 않은 기억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동쪽 끝에서 내 두발로 대한민국을 느끼고 돌아온 시간이므로…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주용진 기자
    200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