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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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하루를 살아도 정규직으로
    하루를 살아도 정규직으로  서민들의 호주머니에 먼지가 날리고 목구멍에 거미줄이 생길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고 한다. 한편에선 무역흑자를 이야기하며 경제가 날로 번창 한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파트타임, 일용직, 비정규직 등 노동자의 삶은 쪼개져 층을 이루고 서로 갈등과 반목을 한다.  보이지 않는 사회 계급론이 등장하고 수많은 차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모든 원인은 자본의 자기증식 과정에서 파생되어지는 것이다. 자본은 생존이라는 이름하에 모든 것을 정당화 시키며 차별과 대립, 불신을 조장해 내며 사회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회의 공기라는 방송국는 어떠한가. 차별과 변형근로를 비정규직에 강요하고 그 범위도 차차 넓어지고 있다.  이들은 고용불안, 저임금 그리고 참기 힘든 직장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대전mbc의 경우 현업에 종사하는 직종 중 비중이 큰 카메라기자의 절반이 넘는 5명이 비정규직이다. 후배 중 한명은 “하루를 살아도 정규직이 좋다.”는 말은 버릇처럼 한다. 이 후배의 경우 4월 한 달에 연장근로를 법정기준인 48시간을 초과해 무려 72시간을 일했고 1주일에 하루를 쉬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경우가 허다하며 휴일근로 시 대휴사용이나 할증인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정규직보다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있지만 임금은 60~70%대이고 항상 불완전 고용 속에 목소리를 죽이며 노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후배는 척추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한지 한 달 만에 출근해야 했다. 타 방송국의 정규직 카메라기자는 3개월 입원하고 퇴원 후 3개월간 현업에서 재외 되었던 상황과 비교하면 너무 대조적이다.  비정규직이란 이름 하에선 임금이 적고, 노동을 더하고, 몸이 아파도,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재계약할  때마다 회사가 무슨 큰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대하는데, 월급 적은 것도 속상하지만 무시당한다는 모멸감은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라고 하소연하는 후배의 한숨 속에 우리 사회의 고통이 숨어 있었다.  궁극적으로 노동자라는 동일 계급이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라는 중심부와 주변부 노동자로 나뉘어 쉽게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에선 2등 국민, 회사 내에선 2등 노동자로 취급받으면서 일상적으로 ‘절망’을 경험하고 있다. 저임금이라는 물질적 궁핍을 넘어 노동자의 자존심을 상실하고 차별에 대한 분노가 극단적으로 치닫는데, 이것이 자아나 사회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지곤 한다.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애정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공유하고 모순을 타파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규직이라는 안락함과 편안함속에는 비정규직의 절망과 희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대전MBC 보도국 카메라취재부 기자 김  훈
    2006-05-18
  • 알뜰한 당신, 알뜰한 카메라기자!
    제30호 이어지는 인터뷰 - 아리랑국제방송 김태원 차장 1. 카메라기자로서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언제이신지?  다른 일을 좀 하다가 1996년에 아리랑국제방송이 개국하면서 입사하여 올해로 11년차가 되었다. 한창 나이 때 입사하여 그동안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니 세월이 정말 빠른 것 같다. 많은 선배님들이 보기엔 아직도 피라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2.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으시다면?  입사해서 갔던 첫 해외출장이 기억난다. 특집 기획물을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출장을 갔었는데 첫 해외출장, 아프리카 오지, 경험 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배운 것도 많았던 값진 경험이었다. 출장 갔다 와서 ‘킬리만자로엔 과연 표범이 있을까?’,‘숫사자처럼 사는 아프리카 전사 마사이족 남자들’과 같은 취재 후기를 인터넷에 올려 많은 관심도 받았다. 카메라기자가 아니라면 내 평생 언제 아프리카라는 곳에 갈수 있었을까 라는 자부심과 함께 그곳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꿈, 지금도 지구촌 어디선가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는 인간들의 역동성들로 그동안 가졌던 편협된 시각과 좁은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3. 카메라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하시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으시다면?  특별한 어떤 한 순간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항상 새로운 것을 갈구한다. 안정보다는 도전과 모험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이 나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었다. 또 어떤 것에 실증 날 틈이 없이 다른 것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배움의 즐거움도 매우 컸다. 방송 뉴스와 언론에 대한 가치관, 다른 나라의 언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경험,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이 직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배움과 기회가 나에게 찾아와 나는 지금 엄청난 도전 속에 살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경영혁신팀’이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고 있으며 조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경영적 마인드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경험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 지금 계신 경영혁신팀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요?  내가 지금 속해 있는 경영혁신팀은 말 그대로 아리랑국제방송의 혁신을 위해 만들어진 신생팀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조직 운영 효율의 극대화에 대해 연구하고, 그를 위한 혁신활동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업무를 하는 곳이 우리 팀이다.  각 방송사마다 회사 나름의 비전과 방송 목표가 있다. 우리 팀은 회사 내 각 부서의 목표가 회사의 비전과 방송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며, 사원 개개인의 목표 역시 팀의 목표 달성과 동시에 회사의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수립, 실행될 수 있게 도와주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성과관리와 혁신 교육, Work Out Program도 준비 중이다. 5. 앞으로의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지금 속해 있는 경영혁신팀에서 맡은 바 업무를 잘 수행하여 멋진 외도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며, 장기적으로는 현업에 복귀하여 그 전부터 준비해왔던 아이템을 기획하여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6. 선후배, 동료 카메라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카메라기자에게도 경영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많은 카메라기자들이 그러한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카메라기자의 경영부문 참여는 우리 직종의 위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영의 핵심은 전략과 기획이며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이 카메라기자 자신의 기획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은 기획, 누가 합리적인 방안과 계획력을 갖고 있냐는 논리 싸움이다. 회사 내 경영 핵심 부서에서의 경험은 우리의 논리력과 대외협상력을 증진시켜 줄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인력 풀이 많이 형성되어야 카메라기자의 위상과 더불어 카메라기자협회의 위상도 올라갈 수 있음이다.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미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셨지만, 꾸준한 자기계발이다. 내가 말하는 자기계발이란 대학원 등 2차 교육기관에서의 공부만이 아니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생활 속의 공부이다. 폭넓은 시각을 갖기 위한 다양한 분야의 독서도 좋고 글로벌시대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외국어 회화 공부도 좋을 것이다. 또 우리의 직업이 카메라기자이므로 매일매일 외신 뉴스를 모니터링 해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될 것이다. 특히 CNN이나 BBC를 보면 짧은 뉴스마저도 그때그때의 트랜드에 맞게 참 잘 만드는 것 같다. 참신한 영상이나 구성을 배워볼 만한 새로운 형식도 많다. 그러므로 본인의 미래를 위해 바쁘지만 짬짬이 공부하는 ‘알뜰한 카메라 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7. 협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다른 것보다 동호회의 활성화를 위해 협회가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자신이 원하는 취미 생활을 하기 위해 동호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또 딱히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생각에 그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직업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어느 순간 실증이 날 수도 있다. 이런 때를 대비해 필요한 것이 취미이다. 본업 외에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무엇이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협회에서 설문 조사 등을 통해 동호회에 대한 수요를 조사해보고, 그 수요에 따라 동호회를 만들어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낸다면, 회원들의 친목도모는 물론 협회에 대한 관심도 제고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아리랑국제방송 김태원 차장의 인터뷰도 끝이 났다. 그리고 여러분의 열하와 같은 성원해 힘입어 24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이어지는 인터뷰’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다음호인 31호부터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화제의 인물’이 연재될 예정이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6-05-17
  • 언론, 지식과 사고의 커뮤니케이터
    제목 없음 언론, 지식과 사고의 커뮤니케이터  언론이란? 말이나 글로 자기 사상을 발표하여 논의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 또한 개인이 그 사상이나 의견을 언론에 의하여 발표하는 자유이다. 근대적인 헌법이 기본적 인권으로서 보장하는 자유의 하나이며,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인간은 타인과 더불어 사회적 기호를 생산함으로써 사회적 의지와 이익을 표출할 수 있다. 개인은 경험을 통하여 사회의 문화유산을 이어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지속적인 믿음을 가지며, 관습을 습득한다.  언론인도 마찬가지로 사회 문제의 증세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하고, 객관적 자료와 주관적 판단을 기초로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리는, 사회라는 환자를 취급한다고 본다.  언론에 있어서 신문과, 뉴스라는 매체는 ‘지식과 사고의 커뮤니케이터’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매체는 여러 가지 생각과 의견을 제시하는 용기이며, 개인의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형성체로써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언론인 역시도 매체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로써 역량을 다하며, 어떤 사건으로부터 얻은 ‘사고’를 선택하여 기사를 작성하고 보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메신저로써의 언론인은 수용자와의 서로의 직관을 통해 공감하는 새로운 사건을 만들 냄으로써, 뉴스 및 기사의 가치성을 재창조 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방송의 흐름과 변모는 다변화 다양화 속 정보 및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매체는 수용자의 선택적 목적만을 겨냥해가고 있어 진정한 저널리즘으로써의 매체로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본다.  언론에 자본의 수요가 증가할수록 관리 기능은 강화되는 반면, 언론의 ‘신념’과 ‘의견’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상업방송, 상업신문은 문화의 다양성으로 채워지기보다 스포츠, 오락, 드라마, 가십, 연예 정보 등의 방송과 지면으로 가득 채워지고만 있다.  이러한 방송의 흐름 속에서 신선한 이념과 동기로 무장한 신념으로 카리스마적 특성을 지닌 진정한 언론인을 목마르게 찾고 있는지 모른다.  진정한 언론인이란 없다. 하지만 언론인은 자신의 가치 판단에 따라 가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사회적 가치 질서에 도전하는 적대 세력에 대하여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감과 동시에 정열적으로 일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하며, 보도, 기사, 논평 등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담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수용자에게 알릴 의무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식과 진실의 사고를 전하는 커뮤니케이터로써의 언론인이야 말로 우리시대의 방송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 있는 자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학생명예카메라기자 임영고
    2006-05-17
  • 아파트 촬영허가 받으셨어요?
                       현장 속에서                                                        현장1-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유명업체에서 지은 아파트의 처마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서 현장을 찾았다. 사고가 난 H아파트는 2년 전에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였다. 사고가 난 처마는 가로 5 미터, 세로 1 미터, 깊이 1미터이고 총무게가 5톤 이상 나가는데 처마를 고정하는 연결 철근이 부실하게 공사가 되어있어 그 하중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황당한 사고였다. 현장은 흥분한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너져 내린 처마를 불안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해당업체의 홍보팀 담당자가 나와서 주민들에게 땅에 닿을 듯이 사과를 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출입구 19곳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시공된 것이라서 복구 지원팀은 현관마다 임시 철봉을 갖다 대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취재팀은 우선 주민들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주민은 우리가 이곳 시골에 무엇을 보고 입주를 했겠느냐며 그 잘난 회사 이름보고 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다른 주민들은 정말 인명피해가 나질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어떤 어르신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런 대기업에서 공사를 이따위로 해! 제비집을 지어도 이것 보다는 잘 짓겠다” 라면서 혀를 찼다. 우리 취재팀은 이런 사고 현장을 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해줄 전문가를 수배하였다. 다행히 현장과 가까운 쪽에 있는 전문가를 찾을 수 있었고 오후에 그들과 현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점심 식사 후에 취재팀은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사고 아파트의 분위기는 오전 상황과는 너무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를 대하는 주민들의 반응이 싸늘해져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주민 대표라는 분이 우리 취재팀을 막고 나섰다. 이유인즉 이미 보도된 것은 할 수없고 이 시간 이후에는 모든 취재 내용이나 방송사 자체의 조사 활동을 묵인 할 수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새벽에 본사 야근 근무자가 밤잠을 설쳐가면서 부실한 공사에 대한 보도를 하였건만 이제는 주민 대표라는 분이 선두에 서서 우리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우리 상식이라면 자칫 큰 인명사고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었든 사건을 만천하에 알려 앞으로 이러한 사건 재발을 막고자하는 것이 우리 보도의 참뜻이 아닌가! 이 사건의 보도 역시 그곳 주민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주민 대표는 막 조사 활동을 벌이던 사고 업체 조사요원의 활동조차 막으면서 주민 자치회에서 지정한 업체 외에는 일체의 조사 활동도 안 된다 면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리고 주민 대표는 또 보도가 나가게 되면 반드시 아파트 이름을 빼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주민 대표와 취재팀과의 대화 중에 주변에 있던 주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며 근심스러운 표정이다. 마침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가 끝난 시간이었는데  여러 명의 어린이들이 방송 카메라를 보면서  “아저씨! 우리 아파트 값 떨어져요 찍지 마세요” 라는 말에 정말 갑자기 어께에 메고 있는 카메라가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당장에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파트 사고가 났을 때에는 우리 취재팀과 같이 공분을 느끼며 흥분을 하였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진정을 되찾을 시점에서는 이제 자신들의 아파트 값 등락에 사로 잡혀있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금할 수없었다. 현장2- 지난 4월 구리 시에서도 위와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역시 한 유명 건설업체에서 지은 D 아파트. 이번엔 처마가 아니라 집안 천정이 내려앉은 희귀한 사고였다. 당시에도 사고가 새벽 시간에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을 저녁 시간에 천정이 무너져 내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고가 난 아파트는 천정의 석고보드를 고정시키는 연결 나사못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사건이었다. 연결 부위에 사용된 플라스틱 나사는 처음에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사못에 포함되어있는 수분이 점차 증발하면서 석고보드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끊어지는 단점이 있어  요즈음에는 사용하지 않는 소재였다. 그 나사못을 생산한 업체는 현재 부도가 난 상태였다. 그 아파트는 사고가 난  집만 문제가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집들도 상황은 비슷해 언제 천정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가운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한 데에도 우리가 첫 보도를 한 후에 후속보도를 위해 취재를 나갔을 때에도  주민들의 반응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멀쩡히 인터뷰를 다 해놓고도 취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인터뷰는 꼭 좀 빼달라고 간곡히 요청을 한다. 자신의 얼굴이 나가면 주민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난리가 난다면서 극구 자신의 얼굴을 삭제해달라고 애원을 해 온다. 우리는 취재팀은 사고가 난 아파트 외경을 찍기 위해 트라이 포트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30중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왜 아파트를 찍으세요? 허가는 받으셨어요?” 라면서 따지듯 묻는다. 우리는 역시 이 같은 사고 재발을 막고 다른 업체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를 않는가! 우리는 “만약에 이 사고가 아주머니 댁에서 일어났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고 반문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의 흥분한 목소리에 아주머니는 멀쑥이 쳐다만 보고서 슬슬 뒤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뭐니 뭐니 해도 마니MONEY 라고 한다지만 요즈음의 한 세태를 보는듯해 영 뒷맛이 개운 칠 않았다. 문화방송 보도국 영상취재부 서영호 부장
    2006-05-16
  • 아파트 촬영허가 받으셨어요?
    현장 속에서 현장1-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유명업체에서 지은 아파트의 처마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서 현장을 찾았다. 사고가 난 H아파트는 2년 전에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였다. 사고가 난 처마는 가로 5 미터, 세로 1 미터, 깊이 1미터이고 총무게가 5톤 이상 나가는데 처마를 고정하는 연결 철근이 부실하게 공사가 되어있어 그 하중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황당한 사고였다. 현장은 흥분한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너져 내린 처마를 불안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해당업체의 홍보팀 담당자가 나와서 주민들에게 땅에 닿을 듯이 사과를 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출입구 19곳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시공된 것이라서 복구 지원팀은 현관마다 임시 철봉을 갖다 대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취재팀은 우선 주민들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주민은 우리가 이곳 시골에 무엇을 보고 입주를 했겠느냐며 그 잘난 회사 이름보고 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다른 주민들은 정말 인명피해가 나질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어떤 어르신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런 대기업에서 공사를 이따위로 해! 제비집을 지어도 이것 보다는 잘 짓겠다” 라면서 혀를 찼다. 우리 취재팀은 이런 사고 현장을 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해줄 전문가를 수배하였다. 다행히 현장과 가까운 쪽에 있는 전문가를 찾을 수 있었고 오후에 그들과 현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점심 식사 후에 취재팀은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사고 아파트의 분위기는 오전 상황과는 너무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를 대하는 주민들의 반응이 싸늘해져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주민 대표라는 분이 우리 취재팀을 막고 나섰다. 이유인즉 이미 보도된 것은 할 수없고 이 시간 이후에는 모든 취재 내용이나 방송사 자체의 조사 활동을 묵인 할 수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새벽에 본사 야근 근무자가 밤잠을 설쳐가면서 부실한 공사에 대한 보도를 하였건만 이제는 주민 대표라는 분이 선두에 서서 우리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우리 상식이라면 자칫 큰 인명사고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었든 사건을 만천하에 알려 앞으로 이러한 사건 재발을 막고자하는 것이 우리 보도의 참뜻이 아닌가! 이 사건의 보도 역시 그곳 주민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주민 대표는 막 조사 활동을 벌이던 사고 업체 조사요원의 활동조차 막으면서 주민 자치회에서 지정한 업체 외에는 일체의 조사 활동도 안 된다 면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리고 주민 대표는 또 보도가 나가게 되면 반드시 아파트 이름을 빼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주민 대표와 취재팀과의 대화 중에 주변에 있던 주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며 근심스러운 표정이다. 마침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가 끝난 시간이었는데 여러 명의 어린이들이 방송 카메라를 보면서 “아저씨! 우리 아파트 값 떨어져요 찍지 마세요” 라는 말에 정말 갑자기 어께에 메고 있는 카메라가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당장에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파트 사고가 났을 때에는 우리 취재팀과 같이 공분을 느끼며 흥분을 하였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진정을 되찾을 시점에서는 이제 자신들의 아파트 값 등락에 사로 잡혀있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금할 수없었다. 현장2- 지난 4월 구리 시에서도 위와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역시 한 유명 건설업체에서 지은 D 아파트. 이번엔 처마가 아니라 집안 천정이 내려앉은 희귀한 사고였다. 당시에도 사고가 새벽 시간에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을 저녁 시간에 천정이 무너져 내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고가 난 아파트는 천정의 석고보드를 고정시키는 연결 나사못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사건이었다. 연결 부위에 사용된 플라스틱 나사는 처음에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사못에 포함되어있는 수분이 점차 증발하면서 석고보드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끊어지는 단점이 있어 요즈음에는 사용하지 않는 소재였다. 그 나사못을 생산한 업체는 현재 부도가 난 상태였다. 그 아파트는 사고가 난 집만 문제가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집들도 상황은 비슷해 언제 천정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가운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한 데에도 우리가 첫 보도를 한 후에 후속보도를 위해 취재를 나갔을 때에도 주민들의 반응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멀쩡히 인터뷰를 다 해놓고도 취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인터뷰는 꼭 좀 빼달라고 간곡히 요청을 한다. 자신의 얼굴이 나가면 주민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난리가 난다면서 극구 자신의 얼굴을 삭제해달라고 애원을 해 온다. 우리는 취재팀은 사고가 난 아파트 외경을 찍기 위해 트라이 포트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30중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왜 아파트를 찍으세요? 허가는 받으셨어요?” 라면서 따지듯 묻는다. 우리는 역시 이 같은 사고 재발을 막고 다른 업체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를 않는가! 우리는 “만약에 이 사고가 아주머니 댁에서 일어났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고 반문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의 흥분한 목소리에 아주머니는 멀쑥이 쳐다만 보고서 슬슬 뒤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뭐니 뭐니 해도 MONEY 라고 한다지만 요즈음의 한 세태를 보는듯해 영 뒷맛이 개운 칠 않았다. 문화방송 보도국 영상취재부 서영호 부장
    2006-05-16
  • 이산가족 상봉 취재... 어떻게 해야 하나?
    이산가족 상봉 취재... 어떻게 해야 하나?  2006년 3월 23일. 제 1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공동취재단은 결국 철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공동취재단의 이러한 결정은 50여년 만에 혈육의 정을 나누는 뜻 깊은 이산가족 행사를 국민들에게 상세히 취재 및 보도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낳았지만, 북측의 일방적인 취재 제한 조치 및 취재 도중 계속되는 방해 행위에 대하여 공동취재단이 강한 항의 의지를 가지고 행사 기간 동안 계속되는 릴레이 회의 끝에 내린 신중한 결정이었다.  ‘이산가족 공동취재단’은 6개의 방송사와 8개의 신문사 그리고 통신사인 연합뉴스 취재진으로 구성되었다. 공동취재단은 상봉행사에 관한 취재 정보에 대하여 모든 것을 공유하고 취재 일체 행위에 대하여 공동으로 행동한다는 입장을 갖는다. 특히, 12차 이산가족 상봉 취재 당시 SBS 기자의 ‘납북자’ 표현으로 불거진 북측 취재 검열에 대비하여 북측과의 문제 상황 발생 시 단장을 주축으로 모든 취재단원이 참석하는 회의를 통하여 해결 방법을 모색함이 주목적이었다.  2006년 3월 20일. 첫날, 15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단체 상봉 행사부터 우리는 취재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수백 명의 이산가족들이 모이는 행사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족들이 만나기 때문에 취재의 효율성을 위하여 방송팀은 3개조로 나눠 취재를 했다. 수십 년간의 단절로 인해 생겼던 장막이 일순간 허물어져 버린 가족들은 사무친 한과 기쁨을 일순간 눈물로 쏟아냈다. 이를 담아내야만 하는 취재진들. 2시간 남짓의 행사라지만 기사가 될 만한 장면들은 처음 상봉 10분 안에 결판이 나기 때문에 사전 취재했던 가족들 위주로 계획된 동선 안에서 부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기자단’ 완장을 찬 북한 감시원들은 시작 5분 후부터 슬슬 취재 방해를 해왔다. 영상기자 몸 밀치기, 가족들 곁에 슬쩍 들이댄 와이어리스 치워버리기, 울음을 터뜨리는 북측 가족 체크 및 울음 그치게 다그치기 등. 이산가족의 심정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우리 취재단의 의도를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은근슬쩍 시비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시작에 불과했다. 문제는 송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북측은 송출 전 영상 및 오디오 검열을 하고, 공동취재단 방송기자의 ‘납북’, ‘나포’ 등의 표현을 문제 삼아 위성송출을 가로막았다. 또한 중계차 안으로 들어와 임의로 중계 장비 버튼을 건드리려 했으며, 이런 방해 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취재기자단을 완력으로 밀어버리기까지 했다. 또한 MBC와 SBS 기자 오디오 테이프를 빼앗아 갔으며 다음부터는 기사를 미리 보여 달라는 비상식적인 요구까지 해댔다. 18시 30분에 시작된 위성 송출은 오디오 내용 문제로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우리의 취재 권리 요구는 22시가 넘어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2006년 3월 21일. 북측은 전날 상황과 21일자 ‘취재방해’를 골자로 한 조간신문 기사를 이유로 들며 MBC 전봉기 기자와 SBS 한승구 기자에 대하여 취재 불가 통보를 내렸다. 이에 맞서 23명의 공동취재단원은 회의를 통하여 항의의 뜻으로 21일 하루 동안은 취재를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곧바로 북측은 오전 개별 상봉 일정을 취소해 버리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계속 미뤄진 상봉행사는 결국 오후에 재개됐지만, 북측과 공동취재단 의견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은 채 다음날로 넘어가야만 했다.  2006년 3월 22일. 09시부터 시작된 작별 상봉 시간. 주먹구구식으로 공동취재단의 취재를 방해하던 보장성원들은 SBS 한승구기자의 얼굴을 식별하지 못해 취재 제한 조치를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의주시하고 있던  MBC 전봉기기자가 스탠드 업을 시작하자 몸으로 밀쳐내기 시작했다. 결국 강경하게 나오는 2명의 북측 요원과 몸싸움 직전상태까지 격하게 대립하게 됐다. 13시, 북측으로부터 1차 상봉자들과 함께 M, S 취재기자는 같이 떠나라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또한 사실상 추방 조치를 내리며 10시간 동안 고령의 이산가족들의 발을 묶어 놓는 비인도적인 처사까지 보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심사숙고 끝에 공동철수를 결의했다. 곧이어 남측 통일부 기자실에 ‘전원 철수’ 사전 통보를 하였고 이 소식을 접한 정부당국은 우리의 강경한 행동조치에 대해 당황하기 시작했다. 북측과 대화 시도를 했던 통일부는 공동취재단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 라는 부탁을 했고, 우리들은 정부가 조속하고 강력한 대응을 해줄 것이라 믿고 한발 물러서 철수 의견을 잠시 접어두었다.  18시, 가족들을 볼모로 삼았던 북측은 M, S 기자가 떠나지 않으면 13차 2진 상봉은 없는 것으로 하겠다고 알려왔다. 뿐만 아니라 해당 기자에 대하여 ‘공화국법에 따른 처리’를 운운하며 협박까지 했다. 어차피 MBC 전봉기 기자는 1진 상봉 행사만 신청해놓은 터라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한승구 기자에 대한 북측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우리는 대응 회의를 재개했다. 회의 결과 공동취재단은 한승구 기자의 추방조치는 받아들일 수 없고, 2진 취재 역시 우리가 계속 하겠다는 하나의 의지를 모았고 이를 계기로 우리의 주장을 강하게 어필하여 계속 버티기로 했다.  22시 30분, 갑자기 SBS 회사 내에서 한승구 기자의 철수를 지시했다. 통일부의 미온적 대치로 인하여 회사 내부에서는 한승구 기자가 철수하지 않아도 지속적인 취재가 어려울 것 같고 신변안전 확보 역시 약속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통보했다. 결국 23시까지 무조건 1진 이산가족들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북측의 공식 발표에 부랴부랴 한승구 기자는 철수하게 되었다.  2006년 3월 23일. 이른 아침부터 취재단의 향후 행보에 대하여 릴레이 회의를 진행한 끝에 다수결로 철수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물론 당일 도착할 2진들에게 그간의 상황을 전달하고 의견을 수렴해야하는 문제가 남아있었지만, 최대한 빨리 우리의 철수 의견을 공식화해야 했다. 결국 이산가족 상봉행사 취재단의 일정은 4일 만에 철수를 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문제 발생 시 정부와 북측이 서로 협의를 거치는 것 없이 통일부와 통일부 기자단과의 합의로 해결을 보려는 미온적 정부의 자세는 분명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통일부를 위한 취재 행사로 느껴질 정도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받았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북측 취재 시 겪어온 문제점들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에 대하여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되도록 공론화 시켜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북측의 취재 방해는 상대 지역에서의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보장한 남북 간의 합의 사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였고, 북측은 관련 사항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북 당국은 인도주의와 대화교육의 장에서 취재 자유가 보장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배문산 기자  
    2006-04-18
  • 포토라인, 첫 걸음이 중요하다
    <Joom-In> 포토라인, 첫 걸음이 중요하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지난 93년 고 정주영 전 국민당 대표가 검찰에 출두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큰 혼란이 남아있다. 수많은 기자들의 몸싸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정 전대표의 부상 등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카메라기자와 사진기자들은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고 그 결과 포토라인의 설치를 선언하는 등 큰 성과를 올렸다. 그 선언으로 이제 몸싸움은 사라질 것이라 믿었고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요즘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기자들의 몸싸움이 벌어지는 사건사고 현장이 방송을 타고 국민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난 6일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언론재단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한 포토라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하였다. 이 토론에서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포토라인의 필요성은 모두 인정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운용할 것 인가에는 다소 피상적인 접근 밖에는 하지 못했다. 포토라인의 설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워낙 많은 취재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예를 들어 취재원의 이동거리가 긴 공항 같은 곳에서 아무리 포토라인을 만들고 취재진에게 따르라고 해도 좀 더 좋은 그림을 만들려는 욕심을 막을 수는 없어서 결국 심한 몸싸움과 취재원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토라인 필요성의 시작을 제공한 법조계 취재에서 몸싸움 등 혼란을 야기하는 장면을 최근에 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원의 동선이 짧아서? 아니면 취재진의 수가 적어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무려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카메라기자와 사진기자들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오랜 관행으로 만들어준 결과다. 어떤 취재진이 오더라도 서초동의 법원과 검찰청에서의 취재는 취재직전 만들어진 포토라인을 준수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물론 이 보이지 않는 협정도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는 노력의 덕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최근 포토라인을 만들어도 쉽게 붕괴되는 여러 곳을 보면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취재진의 수가 적어서 포토라인이 별로 요구되지 않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언론의 다양화, 국민의 알고자하는 욕구 증대로 인해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보다 취재진이 더 많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시대로 들어왔다. 한번 만든 포토라인이 무너졌다고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법조계의 포토라인이 10년이 넘게 걸린 작품이듯 공항, 시위현장 등의 포토라인도 10년 아니 20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노력하여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지금 당장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미래의 한국언론 발전을 위해 당연히 해야하는 과제이다. 다만 힘들어도 첫발을 빨리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2006-04-18
  • 지방선거 취재, 이런 점 주의하라!
    지방선거 앞두고 선거운동 취재영상 이런 점 주의하라!  5.31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유권자 대부분은 후보자 검증 수단으로 인쇄 홍보물보다는 방송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터넷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산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모든 연령과 계층에게 보편적인 매체는 역시 방송인 것이 현실이다. 유권자들이 방송이 전달해주는 대로 판단하고 후보자를 평가하는 현실에서 방송의 공정성은 더욱 중요시된다고 하겠다. 공정한 방송을 위하여  방송위원회는 선거방송심의규정에서 방송의 공정성, 형평성, 객관성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방송 순서의 배열과 그 내용의 구성에 있어서 특정한 후보자나 정당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며 공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방송의 심의결과에서 공정성위반과 관련된 내용이 과반수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보듯 방송의 공정성은 지켜지기 어려운 원칙이다.  이밖에도 각 방송사들은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보도준칙을 만들어 취재, 제작현장에서 활용하고 있으며 선거법에도 언론기관의 공정보도의무를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성이 지켜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취재현장에서 일하는 기자들의 균형 있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보도영상의 공정성  방송기사가 선거에서 차지하는 비중 못지않게 보도영상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후보자의 이미지메이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도영상도 편파 보도의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각종 선거의 영상취재 혹은 기획물 제작 시 주의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본다.  우선 가장 기본적으로 양적인 균등 배분이 중요하다. 편집 시 후보자 간의 녹취, 인터뷰 시간을 동일하게 안배해서 편집해야 한다. 이 때 촬영 각도와 음향 레벨, 조명 상태도 가능한 동등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촬영 시 화면 왜곡이 없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세 장면을 촬영할 때, 카메라 앵글과 위치에 따라 청중의 수가 많아 보일 수도 있고 청중이 거의 없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중의 반응도 어떤 시점에 촬영하느냐에 따라 열기가 있을 수도 있고 냉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편집할 때 인위적인 조작을 삼가는 것이 좋다. 인위적인 이펙트를 이용하거나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화면 조작이 있어서는 안 되며, 화면을 느리게 또는 빠르게 편집하거나 배경음악을 사용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편집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정 후보의 클로즈업을  반복해서 보여주거나 유세 연설 중 실수 장면이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장면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것은 유권자의 판단을 배제시키고 촬영자의 의도를 강요하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정치 편집에서 자료화면을 사용할 때는 특히 주의가 요구된다.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의 화면을 사용하거나 사건과 무관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다른 취재와는 달리 선거 취재에서는 오디오의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여러 팀의 카메라와 함께 취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선마이크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항상 최상의 오디오가 수음되도록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고 편집할 때도 특정후보의 음성이나, 현장음이 다른 후보 것보다 크게 들리지 않도록 일정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이밖에 후보자의 바스트 샷 크기를 통일하거나 풀 샷, 리액션 샷을 균등하게 배분하여 편집하는 등의 기본적인 원칙이 요구된다. 선거보도영상의 지향점  방송보도는 신문과 달리 무차별적으로 전파를 타고 전달되며 그 파급효과도 엄청나다. 특히 보도영상이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거나 특정 정당을 우호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보도하는데 활용된다면 선거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으며 보도영상의 신뢰도 또한 크게 손상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선거 현장에서 직접 영상을 취재하는 카메라기자들의 균형 있는 시각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할 수 있다.  기사에 종속된 영상에서 벗어나 선거의 다양한 모습을 발로 찾아감으로써 보도영상 자체로 기능할 수 있는 정체성을 모색해 나가야겠다. KBS 영상취재팀 이영재 기자
    2006-04-18
  • 제주에서의 1년... 이방인에서 가족으로
    <지역국 이야기> 제주에서의 1년... 이방인에서 가족으로  같은 나라지만 비행기를 타고 건너와서 살면서 일한지가 벌써 1년이 됐다. 돌아보면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한 그런 시간이었다. 처음 제주에 발령받아, 공항에서 내렸을 때의 낯설음은 뒤로 한 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 같다.  YTN 제주지국…. 지국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아주 작은 미니 방송지국이지만 각자 직종이 틀린 5명이 개인 역량의 120%를 발휘하며 일하고 있는 곳이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취재에서부터 계절별로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영상에 담아 보내야 하는 일까지 그 규모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업무였다.  그렇지만 바쁜 와중에도 아름다운 자연에서 일한다는 장점과 퇴근 후의 시간적 여유,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바쁜 서울에서는 느껴보지 못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 그 장점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가족과의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출퇴근 시간만 3시간이 넘는 곳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20분이면 가능하다. 퇴근을 해도 해가 떠있고 심지어 평일 퇴근 후에 아이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아줄 수 있을 정도니 처음에는 제주행을 반대했던 집사람도 지금은 아주 좋아하고 있다..  제주도는 고립된 사회였다. 아주 오래전 에는 문화가 다른 완전한 독립된 국가였고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지역 사회측면에서 보면 조금 폐쇄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왔을 때 제주인이 아닌 나를 바라보는 지역기자들의 시선이 그리 따뜻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지금은 다들 잘 지내고 있지만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그 안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던 것이지 한번 마음을 열고나니 같은 회사동료처럼 대해줘서 지금은 크게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또 하나, 내가 지역 사회로 들어왔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던 것은 사투리였다. 제주 사투리는 우리나라말이라고 하기에는 과할 정도로 어렵다. 특히 제주시를 벗어난 곳에 가서 해녀라도 인터뷰를 하려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통역을 해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눈치로 대강 알아듣지만 처음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꼭 제3세계의 언어 같았으니 말이다.  하나 더, 제주 카메라기자 사이에서 조금 낯설었던 점은 ‘호칭’이였다. 서울에서는 입사연도를 따져 선배, 후배로 구분지어 나누는데, 제주도는 입사년도보다는 나이를 따져서 형, 동생으로 호칭하고 지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이 처음에는 거북하기도 했지만, 지나보니 정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해 나도 지금은 그 호칭을 섞어서 쓰고 있다.  그 짧은 1년 만에 제주를 다 아는 것처럼 쓰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서울에서의 9년 생활을 뒤로하고 낯선 제주에서 생활을 하니, 사실 입사 처음 때처럼 1년이 10년 같은 맘도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와서 제주 사투리를 쓰고, 나도 편의점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비교적 간단한 제주 사투리가 나올 때를 보면, 점점 제주 가족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남은 시간 서울로 복귀할 때가지 이 제주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 생각이다. YTN 제주지국 김 민 기자
    2006-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