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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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줌인>경험 많은 카메라기자를 활용하라!
    경험 많은 카메라기자를 활용하라 한국의 카메라기자들의 연 취재 아이템 수 평균 250개 이상    한국의 카메라기자들이 1 년 간 취재하는 아이템의 수를 보면 평균 250개가 넘는다. 1년 중 휴일인 70여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취재현장에서 다양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카메라기자들 취재에 나서는 이런 수많은 아이템의 대부분은 취재기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업무의 시스템에 따라 취재기자의 기획과 함께 진행되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면이 무척 많다. 카메라기자가 취재기자보다 입사 후 더 빨리 방송현업에 뛰어들고 오랫동안 취재 현장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현장경험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지 못한 현실이 말이다.  카메라기자의 기획 참여는 시대의 바람  최근 수년 간 일부 방송사를 시작으로 카메라기자가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생산하여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물론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그래도 카메라기자에게 그런 기획과 프로그램제작의 기회를 주는 정도만 되어도 감사할 따름이다. 카메라기자가 단독으로 제작할 수 있는 분야는 그리 많지는 않다. 시사프로그램과 뉴스라는 특성에 비추어 메시지의 전달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취재기자의 역량이 소중한 사실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에 늘어나고 있는 연성뉴스의 제작바람을 생각하면 카메라기자의 기획참여는 시대가 바라는 요청일 수 있다.  카메라기자의 다양한 현장 경험 활용 - 뉴스 경쟁력 높이는 첩경     최근의 경향을 보면, 문화나 사회적 미담사례, 레져 등 아름다움과 소중함 등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분야가 뉴스에서의 비중이 급격히 늘고있다. 카메라기자가 누구보다도 다양한 취재현장을 누비고 수많은 뉴스 아이템을 취재하면서 느끼고 얻는 현장경험의 활용은 뉴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첩경인 것이다.  카메라기자의 기획 기회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도 방법  하지만 현재의 뉴스제작 시스템에서 이런 변화는 그리 쉽지 않다. 너무 틀에 박혀있는 뉴스의 제작과 프로그램 선정 방식에서 카메라기자의 1인 제작 환경으로의 전환은 힘들다. 물론 인원 면에서도 기존 뉴스를 제작하기에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1년에 하나, 한달에 하나 하는 식으로 그 제작분량을 늘여 가는 방법도 있다. 지금은 초기단계이지만 미래의 뉴스에서 이런 제작방식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6-03-14
  • 선거방송심의위원회, 보도 범위 해석 발표
    선거방송심의규정 제20조 관련, 보도방송의 범위 해석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 는 지난 달 20일 그동안 많은 논란을 일으킨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20조와 관련 보도방송의 범위에 대한 해석을 내렸다.  선거방송심의에 관한특별규정 제20조(후보자 출연 방송제한등)제1항은 ‘방송은 선거일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법의 규정에 의한 방송 및 보도·토론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후보자를 출연시키거나 후보자의 음성·영상 등 실질적인 출연효과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돼있다. 심의위는 <보도방송>의 범위를 선거관련 사항에 대한 프로듀서의 제작물을 포함하되, 시사에 관한 속보 또는 해설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한하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심의위의 이 결정은 그동안 독소조항으로 지적된 후보자 출연제한 조항에 대해 전향적인 해석을 내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민단체와 방송현업단체들은 이 조항에 대해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약한다며 개정을 주장해 왔었다.  한편, 심의위는 여론조사보도 규정 등 선거방송의 공정성 유지를 위한 5개 중점 심의사항을 의결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집중 심의 사항 ▲ 여론조사보도 관련 규정의 준수 여부 ▲ 선거방송의 공정성·형평성·정치적 중립성 유지 여부 ▲ 사실보도 및 객관성 유지 여부 ▲ 선거일 90일전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 방송 및 광고방송 출연 제한 ▲ 특집기획 프로그램 등  이번에 심의위가 공표한 중점 심의사항은 지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와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등 주요 선거 때마다 규정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주요 사례를 중심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의위는 인터넷의 특정사이트에서 실시한 인기투표 형식의 여론조사 결과 등을 포함한 공정성 및 정확성에 의심이 가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했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의뢰기관·조사대상·기간·방법 등의 구체적으로 명시해야하며 오차범위 내 결과인 경우 막연한 순위표시는 금지한다.  심의위는 선거일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5월31일 오후 6시)까지 정당 지지도와 예상 당선자 보도 금지 등의 여론조사 보도기준을 공표 했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
    2006-03-14
  • 대한민국 동쪽 땅 끝을 다녀오다
    제목 없음 대한민국 동쪽 땅끝을 다녀오다 출발 그리고 도착 2월 17일 갑작스레 독도 출장이 결정됐다. 취재 목적은 작년 일본 시마네현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을 맞아 독도 현지 분위기를 전달 하는 것. 급하게 결정된 만큼 출발하는 것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독도로 가는 민간 선박이 없어 간신히 해경의 경비정을 섭외했으나 다시 승선인원이 문제가 되었다. 처음 중계팀을 포함해 15명으로 구성된 출장인원은 경비정 승선인원 제한으로 어쩔 수 없이 8명으로 축소되었다. 특히 영상기자와 오디오맨 그리고 취재기자 2명이었던 취재팀은 영상기자와 취재기자 1명씩만 가는 것으로 결정되어 출발 전부터 험난한 출장길을 예상케 했다. 게다가 중계팀에서 카메라맨이 빠지는 바람에 내가 중계 카메라까지 맡아야만 했다. 밤 10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새벽 2시가 넘어서 묵호항이 있는 동해에 도착해 잠깐 눈을 붙였다. 18일 오전 9시 묵호항에서 중계팀 그리고 KBS 취재팀과 함께 해양경찰 경비정 1003호를 타고 독도로 출발했다. 7시간의 긴 항해 끝에 독도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독도의 동도에 있는 접안시설에 경비정을 댈 수 없어 소형 보트를 이용해 독도로 들어갔는데 무거운 SNG 장비 때문에 짐을 옮기는 데만 1시간 넘게 소요됐다. 게다가 우리는 독도에 도착할 때까지 입도 허가가 나지 않은 바람에 선착장에서 경찰과 실랑이까지 벌여야 했다. 해가 거의 질 무렵에 입도 허가가 나고 우리는 간신히 독도경비대 막사 식당 앞에 SNG 장비를 옮겨 놓고 도서실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작년 독도에 위성장비를 설치한 KBS는 우리와 같은 8명이 독도에 들어왔지만 짐은 우리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취재 그리고 중계 도착 다음날인 2월 19일 10년 만에 독도로 다시 이주하는 김성도씨 부부와 이예군 씨를 취재했다. 독도에 두 가구가 거주하게 된다는 것은 독도가 국제법상으로 유인도로 분류되어 일본의 독도는 무인도라는 주장을 무의미하게 하는 의미 있는 사건이다. 성금으로 마련된 독도 호를 타고 독도의 서도에 내린 김성도씨 부부를 중심으로 독도이주 안녕기원회와 거주지인 어업인 숙소 등을 두루 취재했다. 다케시마의 날 전날인 21일에는 독도를 지키는 독도 경비대원들과 동해안의 밤을 홀로 비추는 독도 등대 소장을 만났다. 일부 보안 시설 때문에 취재 시 독도경비대장의 협조를 구해야 했지만 대부분 큰 어려움 없이 취재할 수 있었다. 일본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로 선포한 2월 22일, 나는 해뜨기 전부터 해진 후까지 영상기자와 중계 카메라맨 1인 2역을 소화해내야만 했다. 아침 6시 뉴스부터 메인인 8시뉴스까지 총 5번의 중계를 했고 이의근 경북도지사가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독도경비대원들을 격려하는 행사를 취재했다. 당초 일본 시마네현에 맞선 독도지킴이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기상이 나빠 관계자들이 독도에 오지 못해 행사는 연기되고 말았다. 만일 행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독도의 동, 서도를 오가며 더욱 분주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중계 포인트는 KBS와 함께 동도 꼭대기에 있는 헬기 착륙장에 잡았다. 헬기장은 넓을 뿐만 아니라 낮에는 독도의 서도, 밤에는 동도를 상징하는 등대를 배경으로 할 수 있어 중계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자 유일한 곳이다. 바다바람이 거세게 불어 조명을 비롯한 중계 장비를 설치하는데 다소 애를 먹었지만 우리와 KBS 모두 중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생 활 출장이 갑작스레 결정되어 독도 입도 허가도 받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맨바닥에서 먹고자고 할 각오로 독도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에 생수, 컵라면, 햇반, 참치 통조림 등 일주일 분량의 부식 과 버너 그리고 침낭을 준비했다. 다행히 경비대장의 배려로 스팀이 들어오는 경비대 막사 도서실에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닥은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콘크리트. 중계팀이 우천을 대비해 가져온 커다란 비닐과 경비대에 빌려준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침낭을 펴 우리팀 8명의 숙소가 완성됐다. 거센 바다바람 때문에 버너의 불이 잘 올라오지 않아 도서실에서 물을 끓여 참치 통조림을 반찬으로 햇반과 컵라면을 끓여먹었다. 독도에서는 따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경비대원들을 위한 체력단련장에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 6대와 당구대 탁구대 등이 설치되어 있어 가끔 이용할 수 있었다. 경비대장이 컴퓨터 중 2대를 취재용으로 제공해줘 각 사의 취재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중전화가 있어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쓰였다. 휴대폰은 일부 지역에서만 사용가능하지만 신호가 약해 소리가 잘 끊어지고 배터리 소모도 커 평소엔 전원을 꺼놓고 지냈다. 뒤늦게 독도에 들어온 MBC 취재기자가 맨홀에 빠져 갈비뼈가 손상되는 사고가 있었다. 또한 동기인 우리 취재기자도 선착장에서 트라이포드를 들고 뛰다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다. 독도는 잘 정비가 안된 곳이 많아 사고의 위험이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항상 안전에 유의해야 할 곳. 그 곳이 바로 독도였다. 복 귀 22일 8시뉴스 중계를 마치고 모든 위성장비를 정리하고 짐을 꾸렸다. 23일 아침 7시에 해경 경비정이 오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6시부터 장비를 선착장으로 내렸다. 그리고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소형보트를 타고 동해의 푸른 파도를 가르며 독도를 떠났다. 괭이갈매기, 삽살개 그리고 매서운 바닷바람과 함께했던 독도에서의 5박6일. 어쩌면 내게 독도는 콘크리트 바닥 위에 깐 침낭 속에서 밤을 지새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기억으로 먼저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쉽게 갈수 없는 곳인 만큼 쉽게 잊혀지지 않은 기억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동쪽 끝에서 내 두발로 대한민국을 느끼고 돌아온 시간이므로…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주용진 기자
    2006-03-14
  • "내가 보아야 국민이 본다는 각오로 항상 먼저 보겠습니다"  인생 제 2의 출발을 함에 있어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은 남달랐습니다. 하지만 영상취재기자로서 일할 기회를 얻은 것은, 이제 출발선에 서기 위한 작은 언덕을 넘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시작될 앞날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영상취재기자로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것을 통해 수많은 시청자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 세상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이 일을 선택했습니다. 어떤 선배가 말씀해주셨듯이 ‘내가 봐야 국민이 본다.’ 라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함과 보람, 그리고 사명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을 하면서 보통 사람들은 가보기 힘든 곳에-하늘, 땅, 물을 가리지 않고- 누구보다 먼저 발자국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간접경험을 시켜줄 수 있다는 점 또한 우리 일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다양한 곳을 경험하고 풍부한 문화를 접함으로써 보다 넓은 시각과 생각을 가진 사람, 오만하지 않고 다양성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아닐까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항상 역사의 현장에 본인의 두 발로 당당히 서서 공정한 시각으로 그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하게 됨으로써 이 일을 하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기에 오늘도 수많은 선배들이 고생을 무릅쓰고 카메라와 함께 현장에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제가 하는 일에 대한 기술적인 면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꾸준히 연습하고 단련하고자 합니다. 좋은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도 그것을 표현할 기술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항상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생각하겠습니다. 단지 화면을 구성하고 앵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취재원이 어떤 마음인지,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공감하고 그것을 충실하고 진실 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일을 해나감에 있어 수년이 지나 스스로 일에 대해 적응이 되었다고 해서 매너리즘에 빠져 무기력한 사람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승부근성과 정신력, 그리고 사명감을 무장하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처음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자 했는지를 잊지 않겠습니다. 급변하는 방송환경에서 도태되지 않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항상 준비된 인재가 될 수 있음으로써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영상취재기자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SBS뉴스텍 수습영상취재기자 신동환
    2006-03-13
  • 나의 할 일 - 시청자의 효자손이 되는 것
    <새내기! 그들의 각오와 포부> 나의 할 일 - 시청자의 효자손이 되는 것 “야! 이놈아! 카메라를 아주 뭉게 버리기 전에 썩 꺼져!”  1998년 새벽1시 회현역 지하도. 이불을 뒤척이던 누군가가 내게 날카로운 경고를 했다. 당시 IMF 여파로 지하도는 노숙자들로 그득했다. 빼곡히 펼쳐진 이불들로 통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난 놀랐다. 신문에서 노숙자 증가에 대한 보도는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집삼아 살아가고 있는지 몰랐다. 그래도 나는 사진전을 위한 컷을 만들어야 했기에 셔터를 눌렀다. 여기저기서 욕이 난무했다. 무시했다. 그들의 초상권보다 알려져야 하는 그들의 인권이 앞섰기 때문이다. 비록 학내 작은 사진전이지만 나도 모르게 기자 정신이 발휘됐다. 인화작업을 하면서 생각했다. 천자의 글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욱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을. 결국 난 영상의 전달력과 진실성을 굳게 믿었고 카메라기자를 꿈꾸었다. 그리고 오늘 mbn 수습촬영기자로 당당히 섰다.  이제 남은 것은 보여주는 일이다. 세상에 그득한 모순들과 그로인해 드리워진 그늘을 알알이 짚어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이 말하는 ‘정의 사회 구현’으로 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나’이고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이 존재하기에 관계는 이미 성립되어 있다.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은 긁어주어야 하고, 어두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밝혀 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업(業)이 갖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라고 믿는다. 맥랑한 포부나 거창한 다짐은 없다. 그냥 내가 하는 이 소임으로 한명이라도 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카메라기자를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업(業)을 믿는다. 그리고 나 자신도 믿는다. mbn 영상취재부 김재헌기자  
    2006-03-13
  • 현장에 첫발을 디디며...
    <새내기 그들의 각오와 포부> 현장에 첫발을 디디며...  사회의 첫발을 내딛게 해주었던 신문사 사진기자 생활을 하던 중, 2005년 11월 아리랑 국제방송 신입 카메라기자로 지원을 했을 때, 새로운 분야인 TV 카메라기자로의 전향이 과연 잘하는 선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신이 있었던 것은 디지털 멀티미디어 시대에 스틸사진과 함께 평소 관심을 가져왔던 동영상 까지 할 수 있다면 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영어회화를 계속 공부해왔던 나로서는 아리랑국제방송이 부가적인 환경적 장점도 활용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입사원 입사부터 지금까지 깨달은 점은 한 가지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영상취재가 전문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매진을 해야 기본 이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분야이며, 또 집중하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가장 정직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일적으로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앞으로도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가겠지만, 카메라기자란 누구이며 왜 하는지에 대한 개념정리가 우선 필요하다고 느낀다. 기본적으로 카메라 기자란 자신의 주변세계와 주변사람들의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카메라라는 전달매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카메라기자는 시청자 개개인의 마음과 보다 큰 사회를 면밀히 조사해야 하며 사람과 사람을 일일이 대면하여 그들의 상황을 감지하여야 한다. 또한 자신의 영상이 의미 있고 알찬 내용이 되어야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카메라기자의 윤리성이다.  그 윤리성이란 독자로부터 영상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일이다.  만약 시청자가 영상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다면 영상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영상의 공신력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카메라기자들이 각자가 의식하는 자기 역할에 따라 사건을 차별적으로 조망하고 뉴스가치를 다르게 평가하는 카메라 영상의 특성상  일방적이라는 소통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실만을 영상에 담겠다는 생각이 앞서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최소한 실제로 발생된 사건에 대해서 그 상황을 조작하여 촬영한다든지 촬영된 영상을 변형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카메라 기자가 특정기업을 위해서 일하여서도 안 되며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 일하여서도 안 된다. 이는 외부영향으로 인한 뉴스의 편향 및 왜곡보도를 막기 위함이다.  위의 개념들을 인식하고 지구촌화된 현실에서 인간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등장한 영상이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카메라 기자 입문자로써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겠으며, 언어와 국경을 초월하고 인간 본연의 이상을 하나로 집약시킬 수 있는 수단인 영상이 방송을 통해서 그 목적과 사명을 충분히 수행하게 될 때 카메라기자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무한한 발전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리랑국제방송 영상취재팀 이정인 기자  
    2006-03-13
  • <릴레이 인터뷰>
    제28호 이어지는 인터뷰 - MBC 디지털뉴스룸팀 양성호 부장 1.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나는 지금 디지털뉴스룸 TF Team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 디지털뉴스룸 TF Team은 카메라기자 뿐 아니라 취재기자, PD, 엔지니어 등 방송 일선에서 일하며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갖춘 사람들이 프로그래머 등 IT 전문가와 팀을 이뤄 새로운 방송 환경에 대비한 ‘워크 플로(Work Flow)’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조직이다.  현재는 각 직종의 특성을 나타내줄 수 있는 4명의 구성원이 모여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나, 일의 중요도가 높은 만큼 앞으로는 팀의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뉴스룸의 디자인이 완료되었을 경우, 그것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직종은 카메라기자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기획서도 내가 맡아서 쓰고 있다. 많이 바쁘고, 여러모로 부담도 크지만, 내 손으로 우리 업무의 미래를 디자인한다는 생각에 굉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2. 카메라기자들의 새로운 업무 환경을 구축하는 디지털뉴스룸 TF Team이 하는 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우리 팀은 방송 현업인 중 디지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IT 시대에 부합하는 방송 제작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을 한다. ‘새로운 방송 환경 구축’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한시적으로 뭉친 ‘돌격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장비 선정’이다. 일차적으로 장비에 대한 분석을 하고 가장 고효율의 장비를 선정한 다음에야 그것을 중심으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압축 표준’ 등의 수치를 정해주는 것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중 하나이다. 특히 HD 영상은 그 크기가 매우 크기 때문에 와이브로를 통해 송출할 경우, 그대로 보내기는 어렵고, 또 빠른 시간 내에 보내기 위해 압축을 많이 하면 화질의 손상이 커지기 때문에 가장 적정한 수준의 압축률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곧 시간과 돈을 건 경쟁을 의미한다.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조합하여 디자인해내는 것은 시간과 돈을 절감하는 한편, 타사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3. 카메라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하신 이유  뭐라고 해야 할까? 카메라기자를 하게 된 이유라면 무엇보다 대학 때,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교 3학년 때인가? Non-verbal Communication에 관한 강의를 들었었다. 그 때 ‘영상’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바야흐로 다가올 영상 시대에 관한 교수님의 열강을 들었다. 그 강의를 들은 후, 나의 관심은 온통 ‘영상’이라는 것에 집중되었고, 꼭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특히 저널리즘에 대해 주로 공부하였으므로, 영상과 관련된 여타 직종보다는 카메라기자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남들이 많이 하는 일보다는 아직 접근하지 않은 차별화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그 당시 독립된 직종으로서 출발선에 있었던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은 나의 구미에 딱 맞았다. 게다가 내가 선택했을 때, 이 직업이 망설임 없이 나를 선택해 주었기에, 24년 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카메라기자’라는 직업과 나는 천생연분이 아닌가 싶다. 4. ‘영상 전공’으로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셨다고 하던데, 유학을 가시게 된 계기와 다녀와서 얻은 소득이 있으시다면?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나는 프랑스 특파원을 했다. 문화 선진국 프랑스는 ‘영상’면에서도 역시 선진국이었다. 아무래도 그 때 자극을 받아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었던 것 같다. 특파원을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해 6월, 나는 부푼 꿈과 대단한 욕심을 가지고 프랑스 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에는 정말 욕심이 많았다. 최대한 배우고 습득해서 내 지식의 무게를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늘리는 것이 나의 유학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선한 사고를 가진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나의 목표는 180도 달라졌다.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나의 유학 생활 3년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묵은 것, 딱딱한 것을 비워내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많은 것을 비우고 돌아오니, 세상이 새로워 보였다. 또 못할 것이 무엇이냐는 배짱도 생겼다. 틀에 박힌 사고가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여유도 찾았다. 다시 청년이 된 듯 한 느낌이었다. 그 무엇이 이보다 큰 소득이겠는가? 나는 나의 이런 변화가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5. 후배나 동료 카메라기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보다 ‘카메라기자’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긍지를 가지고 업무에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하는 경쟁은 일반기업 구성원들이 하는 Zero-sum Game이 아니다. 타사 기자의 무엇을 빼앗아 오지  않아도 나 자신의 지식과 감성과 직업적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직업인 것이다. 우리 경쟁의 내용은 하나의 Fact를 더 잘 담아내기 위해 남보다 조금 더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자로 만난 각 사의 기자들이 동료애를 느끼며, 인간적인 우정을 쌓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카메라기자’야 말로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 대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 직종이라는 것이다. 이제 방송가에서 직종의 구분 이라는 것은 갈수록 무의미해질 것이다. 대부분의 일이 1인 멀티 시스템으로 바뀔 것이고, 1인 멀티 시스템으로 운용될 경우에도 업무가 더욱 편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현재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때 가장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래도 카메라나 편집기 등의 장비 사용에 능숙한  저널리스트들일 것이다. 저널리스틱한 감각과 시스템적인 역량을 모두 갖춘 사람, 그들이 바로 카메라기자가 아닐까?  결코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스템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그것을 익히고 적응하는 것 보다는, 시스템적인 면에서 능숙한 사람에게 기사 작성에 대해 교육을 하는 것이 용이할 것이라는 얘기이다. 기본적인 소양에 스스로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간단한 기사 작성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06년 3월, 모두 뜨거운 연애를 시작했으면 한다. 다른 누군가와의 연애가 아니라 책과의 연애 말이다. 책과 절절히 사랑하는 2006년을 보낸다면, 분명 보람찬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6.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시다면  글쎄...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본업에 복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더 바라는 것은 없다. 얼른 카메라를 들고, 취재 현장을 누비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래도 천생 카메라기자인가보다. 빨리 복귀하고 싶어서 몸이 단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의 일에 더욱 몰두하는 것 같다. 7.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를 추천하신다면?  KBS 이상만 부장을 추천하고 싶다. 이상만 부장은 출중한 실력과 함께 따뜻한 정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나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전부터 출입처에서 만나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 내가 프랑스 특파원으로 갔을 때, 그 분이 나보다 먼저 특파원으로 와계셔서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항상 ‘큰 형님’ 같은 분, 나는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로 KBS 영상편집제작팀 이상만 부장을 추천한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6-03-13
  • Re:신입사원 연수는?
    안녕하세요 카메라기자협회입니다. 본 협회 신입사원 연수는 문화방송의 수습 연수가 3월말에 끝나는 관계로 4월초중순 에 진행 될 예정입니다. 곧 정확한 일정을 공고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06-03-02
  • 수습카메라기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카메라기자 수습 교육이 언제쯤이나 있나해서 글을 올립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200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