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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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MB 방송시대의 도래 - 차별화 된 DMB 방송 기대
    “ DMB 방송시대의 도래 ”  요즘 주변에서 DMB 핸드폰을 쉽게 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고가 장비에다 효율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해 이용을 꺼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가격이 많이 떨어지고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인해 이용객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러한 DMB 방송의 확산으로 인해 기존의 공중파 방송과 CF와는 다른 형태의 영상물들이 생겨나고 있다. 개인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현세대를 비추어 볼 때 향후 몇 년 뒤에는 DMB방송이 하나의 확고한 매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현재 DBM방송이 어떠한 형태로 발전되어가고 있으며 영상인으로서 이러한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방송이란 이동형 Service를 주목적으로 하는 방송으로서 휴대용 Receiver (이동 전화, PDA)나 차량용 Receiver를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다채널 Multimedia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신개념의 위성 방송 Service이다.  DBM 방송은 크게 지상파 DMB와 위성 DMB으로 나뉠 수 있는데 지상파 DMB는  현재 비어 있는 브이에이치에프 12번 채널을 이용해 이동수신용 멀티미디어 방송을 하는 개념으로 주로 차량에서의 이용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무료 방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에 위성 DMB는 지상파 DMB와는 달리 위성체를 이용해 방송을 하며 수신율이 낮은 도심지역은 갭 필러라는 일종의 중계기를 활용해 수신을 하는 방식이다. 휴대전화 단말기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현재 티유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하고 있다. 현재로선 위성 DMB가 유리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위성 DMB는 본방송을 먼저 시작 할뿐만 아니라, 지상파 DMB가 서울 및 수도권에 한정 된 반면 전국 서비스라는 장점이 있다. 서비스 구역은 시장 규모를 의미 하므로 위성 DMB가 더 큰 시장에서 더 많은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성 DMB는 월 수신료를 받는 유료방송이라는 점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있다.  언뜻 무료인 지상파 DMB가 더 널리 보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위성 DMB는 유료인 만큼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통해 폭넓은 마케팅 활동을 벌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콘텐츠 측면에서 지상파 DMB는 시청자의 요구에 더 가깝다. 시청자가 가장 원하는 콘텐츠가 지상파 TV 3사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성 DMB는 다양하고 색다른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혈안이다. 현재는 주로 위성 DMB방송을 이용하고 있는 20~30대의 연령대를 겨냥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용객들이 TV 3사의 프로그램을 많이 선호하고 있지만 충분히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이용객들을 끌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성DMB는 이동하는 차안이나 실외에서 시청하는 휴대성이 강한 매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격을 감안한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트콤 형식의 짧은 단막극이나 짧은 호흡을 가진 드라마타입의 영상을 시리즈물로 만들어도 괜찮은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재는 매체의 홍수 시대이다. 수많은 매체가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고 하루에도 수 십 편의 광고와 뮤직비디오 드라마 뉴스 영화 등의 영상을 접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매체가 생겨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고 있는 영상들은 기존의 틀에 박힌 것들  뿐이다. 이렇게 획일화된 매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 DMB방송이라고 생각된다. TU에서도 콘텐츠 공모전과 영상 공모전을 주최하며 새로운 콘텐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기존의 공중파 방송과 차별화된 독립적인 DMB 방송을 만들어나가길 기대한다.   대학생명예카메라기자 김민선  
    2006-05-18
  • 취재원의 바램, 지켜주고 싶었지만...
    <지역 칼럼> 취재원의 바람, 지켜주고 싶었지만…  부산에 살고 있는 A모씨는 간암 진단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들이 간을 떼어 이식하고 아버지를 살린 일이 있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2006년 3월 뉴스를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수술을 받고 얼마 후 건강 회복이 더뎌지는 것에 불안해 한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으로(가족의 추정) 그만 자살해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우리는 우선 이 일을 보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워낙 안타까운 사연이라 보도가 되었고 영상을 취재 편집한 본인은 취재원의 신분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 거의 모든 영상의 모자이크 처리였다. 그렇게 아주 조심스럽게 제작한 리포트는 전국에 방송되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본인은 참으로 황당한 일에 겪고 말았다. 방송에 나간 아이템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등록되었다. 뿐만 아니라 포털 사이트는 과거 아들의 간이식에 대해 미담으로만 보도 되었던 각 언론사의 리포트까지도 모두 같이 묶어서 일목요연하게 링크시켜 놓는 친절함 까지 보여 줬다. 당연히 과거의 리포트에는 착한 아들과 단란한 가족 구성원 모두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취재원의 초상권이나 명예는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 아래에 달려있는 댓글은 결코 곱지 않았다. 너무 황당한 일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 인터넷은 급속하게 발전하여 지금은 세상의 뉴스를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인터넷 포털사의 뉴스 서비스 마인드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수준인 것이다. 인터넷의 일반 검색 서비스는 로봇 프로그램에 의해 데이터가 구축된다지만 분명 뉴스는 아직도 사람의 눈과 손을 거쳐 서비스 될 텐데….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았던 그 가족들은 분명한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임에도 불구 하고 제소하지 않았다. 그 가족들이 취재하는 우리에게 아주 약한 약자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게 다시 한번 기억난다. ‘취재를 막을 순 없겠지만 세상에 알려지기는 싫습니다.’ 그 약속을 꼭 당연히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본인이 참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KBS부산총국 보도팀 기자 류석민
    2006-05-18
  • “카메라기자들 까짓것...”  입사하기 전에 보았던 뉴스 한 꼭지가 기억난다. 모 방송사의 고발성 리포트였는데 지방 어느 도시의 건축비리 현장을 폭로하는 기사였던 것 같다. 기사가 어느 정도 나가고 있을 즈음, 그 건축현장에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취재를 하고 있는 카메라기자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서 너 명의 깍두기들이 달려들어 그를 마구 구타하는 장면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선배 그 때 심정은 어땠을까, 많이 다치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도 그와 비슷한 카메라기자가 되어서 여기저기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 때 그 꼭지만큼 위험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자신들에 대한 취재를 꺼려하는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방법의 취재 방해를 받곤 한다. 욕설을 하면서 협박을 하거나 손바닥으로 렌즈를 가리거나 레코드중인 카메라를 뒤에서 흔들거나 또는 여러 사람이 나를 막아서거나... 특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많은 언론 매체가 몰리는 경우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4월 20일 검찰의 현대-기아자동차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찰청에 소환되었다. 현대차 직원들은 자신들의 사장이 찍히는 걸 막아야 하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찍어야하는 사람들이다.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결국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정사장의 모습을 담기 위해 이동하는 나를 막기 위해 그들은 달려들었다. 뒤따라오던 오디오맨의 상의가 찢어질 정도로 거칠게 우리를 잡아 끌자 이에 흥분한 오디오맨이 그 중 누군가의 얼굴을 때렸고 나도 십여명의 용역직원들에게 끌려 화단쪽으로 넘어져서 내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제압을 당했다. 그 사이 정의선 사장은 수많은 사진기자와 카메라기자의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대검찰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 카메라엔 단 1초도 정의선 사장의 모습을 담지 못했다. 명색이 카메라기자로써 이처럼 수치스러운 모습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분하고 억울했다. 중요한 그림을 놓친것도 그렇지만 내가 먼저 포토라인을 어겼다는 일부의 주장은 동의 할 수 가 없다. 당시 현장에는 사진기자와 방송카메라기자 그리고 현대차측이 협의한 포토라인이 건물 현관에서 계단 아래쪽까지 쳐져 있었다. 포토라인의 범위를 보다 넓게 잡아서 가상의 포토라인을 도로 아래쪽까지 생각한다고 해도 분명 대검찰청 정문쪽은 포토라인 외곽지역이었고 나와 오디오맨이 급하게 뛰어서 이동한 곳도 분명 포토라인 바깥  쪽이었기 때문이다. 수백명의 취재진이 모두 질서정연하게 포토라인을 지키고 있는데 어떤 강심장이 그걸 어길 생각을 한단 말인가?  재계 서열 2위의 현대차그룹의 입장에서 이번처럼 안 좋은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 인줄 이해한다. 또 그것을 적절히 콘트롤하는 것도 그룹 홍보실의 임무라는 것, 이 바닥에서 일하는 카메라기자라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분명 현대차가 ‘오버’한 과잉대응이고 취재방해다. 앞으로 걱정되는 것 한 가지는 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을때 “카메라기자들 까짓것... 용역들 불러다 막아버리면 되지 뭐...”라는 인식이 생길까 두렵다. 아니 어쩌면 이번 사건도 그러한 생각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숨고자 하는 사람들이 불러 모을수 있는 용역직원의 수는 카메라기자의 수보다 훨씬 많을테니 말이다. MBN 영상취재부 기자 노동수  
    2006-05-18
  • 하루를 살아도 정규직으로
    하루를 살아도 정규직으로  서민들의 호주머니에 먼지가 날리고 목구멍에 거미줄이 생길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고 한다. 한편에선 무역흑자를 이야기하며 경제가 날로 번창 한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파트타임, 일용직, 비정규직 등 노동자의 삶은 쪼개져 층을 이루고 서로 갈등과 반목을 한다.  보이지 않는 사회 계급론이 등장하고 수많은 차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모든 원인은 자본의 자기증식 과정에서 파생되어지는 것이다. 자본은 생존이라는 이름하에 모든 것을 정당화 시키며 차별과 대립, 불신을 조장해 내며 사회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회의 공기라는 방송국는 어떠한가. 차별과 변형근로를 비정규직에 강요하고 그 범위도 차차 넓어지고 있다.  이들은 고용불안, 저임금 그리고 참기 힘든 직장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대전mbc의 경우 현업에 종사하는 직종 중 비중이 큰 카메라기자의 절반이 넘는 5명이 비정규직이다. 후배 중 한명은 “하루를 살아도 정규직이 좋다.”는 말은 버릇처럼 한다. 이 후배의 경우 4월 한 달에 연장근로를 법정기준인 48시간을 초과해 무려 72시간을 일했고 1주일에 하루를 쉬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경우가 허다하며 휴일근로 시 대휴사용이나 할증인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정규직보다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있지만 임금은 60~70%대이고 항상 불완전 고용 속에 목소리를 죽이며 노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후배는 척추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한지 한 달 만에 출근해야 했다. 타 방송국의 정규직 카메라기자는 3개월 입원하고 퇴원 후 3개월간 현업에서 재외 되었던 상황과 비교하면 너무 대조적이다.  비정규직이란 이름 하에선 임금이 적고, 노동을 더하고, 몸이 아파도,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재계약할  때마다 회사가 무슨 큰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대하는데, 월급 적은 것도 속상하지만 무시당한다는 모멸감은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라고 하소연하는 후배의 한숨 속에 우리 사회의 고통이 숨어 있었다.  궁극적으로 노동자라는 동일 계급이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라는 중심부와 주변부 노동자로 나뉘어 쉽게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에선 2등 국민, 회사 내에선 2등 노동자로 취급받으면서 일상적으로 ‘절망’을 경험하고 있다. 저임금이라는 물질적 궁핍을 넘어 노동자의 자존심을 상실하고 차별에 대한 분노가 극단적으로 치닫는데, 이것이 자아나 사회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지곤 한다.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애정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공유하고 모순을 타파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규직이라는 안락함과 편안함속에는 비정규직의 절망과 희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대전MBC 보도국 카메라취재부 기자 김  훈
    2006-05-18
  • 알뜰한 당신, 알뜰한 카메라기자!
    제30호 이어지는 인터뷰 - 아리랑국제방송 김태원 차장 1. 카메라기자로서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언제이신지?  다른 일을 좀 하다가 1996년에 아리랑국제방송이 개국하면서 입사하여 올해로 11년차가 되었다. 한창 나이 때 입사하여 그동안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니 세월이 정말 빠른 것 같다. 많은 선배님들이 보기엔 아직도 피라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2.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으시다면?  입사해서 갔던 첫 해외출장이 기억난다. 특집 기획물을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출장을 갔었는데 첫 해외출장, 아프리카 오지, 경험 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배운 것도 많았던 값진 경험이었다. 출장 갔다 와서 ‘킬리만자로엔 과연 표범이 있을까?’,‘숫사자처럼 사는 아프리카 전사 마사이족 남자들’과 같은 취재 후기를 인터넷에 올려 많은 관심도 받았다. 카메라기자가 아니라면 내 평생 언제 아프리카라는 곳에 갈수 있었을까 라는 자부심과 함께 그곳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꿈, 지금도 지구촌 어디선가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는 인간들의 역동성들로 그동안 가졌던 편협된 시각과 좁은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3. 카메라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하시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으시다면?  특별한 어떤 한 순간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항상 새로운 것을 갈구한다. 안정보다는 도전과 모험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이 나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었다. 또 어떤 것에 실증 날 틈이 없이 다른 것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배움의 즐거움도 매우 컸다. 방송 뉴스와 언론에 대한 가치관, 다른 나라의 언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경험,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이 직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배움과 기회가 나에게 찾아와 나는 지금 엄청난 도전 속에 살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경영혁신팀’이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고 있으며 조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경영적 마인드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경험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 지금 계신 경영혁신팀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요?  내가 지금 속해 있는 경영혁신팀은 말 그대로 아리랑국제방송의 혁신을 위해 만들어진 신생팀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조직 운영 효율의 극대화에 대해 연구하고, 그를 위한 혁신활동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업무를 하는 곳이 우리 팀이다.  각 방송사마다 회사 나름의 비전과 방송 목표가 있다. 우리 팀은 회사 내 각 부서의 목표가 회사의 비전과 방송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며, 사원 개개인의 목표 역시 팀의 목표 달성과 동시에 회사의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수립, 실행될 수 있게 도와주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성과관리와 혁신 교육, Work Out Program도 준비 중이다. 5. 앞으로의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지금 속해 있는 경영혁신팀에서 맡은 바 업무를 잘 수행하여 멋진 외도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며, 장기적으로는 현업에 복귀하여 그 전부터 준비해왔던 아이템을 기획하여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6. 선후배, 동료 카메라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카메라기자에게도 경영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많은 카메라기자들이 그러한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카메라기자의 경영부문 참여는 우리 직종의 위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영의 핵심은 전략과 기획이며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이 카메라기자 자신의 기획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은 기획, 누가 합리적인 방안과 계획력을 갖고 있냐는 논리 싸움이다. 회사 내 경영 핵심 부서에서의 경험은 우리의 논리력과 대외협상력을 증진시켜 줄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인력 풀이 많이 형성되어야 카메라기자의 위상과 더불어 카메라기자협회의 위상도 올라갈 수 있음이다.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미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셨지만, 꾸준한 자기계발이다. 내가 말하는 자기계발이란 대학원 등 2차 교육기관에서의 공부만이 아니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생활 속의 공부이다. 폭넓은 시각을 갖기 위한 다양한 분야의 독서도 좋고 글로벌시대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외국어 회화 공부도 좋을 것이다. 또 우리의 직업이 카메라기자이므로 매일매일 외신 뉴스를 모니터링 해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될 것이다. 특히 CNN이나 BBC를 보면 짧은 뉴스마저도 그때그때의 트랜드에 맞게 참 잘 만드는 것 같다. 참신한 영상이나 구성을 배워볼 만한 새로운 형식도 많다. 그러므로 본인의 미래를 위해 바쁘지만 짬짬이 공부하는 ‘알뜰한 카메라 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7. 협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다른 것보다 동호회의 활성화를 위해 협회가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자신이 원하는 취미 생활을 하기 위해 동호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또 딱히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생각에 그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직업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어느 순간 실증이 날 수도 있다. 이런 때를 대비해 필요한 것이 취미이다. 본업 외에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무엇이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협회에서 설문 조사 등을 통해 동호회에 대한 수요를 조사해보고, 그 수요에 따라 동호회를 만들어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낸다면, 회원들의 친목도모는 물론 협회에 대한 관심도 제고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아리랑국제방송 김태원 차장의 인터뷰도 끝이 났다. 그리고 여러분의 열하와 같은 성원해 힘입어 24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이어지는 인터뷰’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다음호인 31호부터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화제의 인물’이 연재될 예정이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6-05-17
  • 언론, 지식과 사고의 커뮤니케이터
    제목 없음 언론, 지식과 사고의 커뮤니케이터  언론이란? 말이나 글로 자기 사상을 발표하여 논의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 또한 개인이 그 사상이나 의견을 언론에 의하여 발표하는 자유이다. 근대적인 헌법이 기본적 인권으로서 보장하는 자유의 하나이며,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인간은 타인과 더불어 사회적 기호를 생산함으로써 사회적 의지와 이익을 표출할 수 있다. 개인은 경험을 통하여 사회의 문화유산을 이어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지속적인 믿음을 가지며, 관습을 습득한다.  언론인도 마찬가지로 사회 문제의 증세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하고, 객관적 자료와 주관적 판단을 기초로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리는, 사회라는 환자를 취급한다고 본다.  언론에 있어서 신문과, 뉴스라는 매체는 ‘지식과 사고의 커뮤니케이터’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매체는 여러 가지 생각과 의견을 제시하는 용기이며, 개인의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형성체로써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언론인 역시도 매체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로써 역량을 다하며, 어떤 사건으로부터 얻은 ‘사고’를 선택하여 기사를 작성하고 보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메신저로써의 언론인은 수용자와의 서로의 직관을 통해 공감하는 새로운 사건을 만들 냄으로써, 뉴스 및 기사의 가치성을 재창조 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방송의 흐름과 변모는 다변화 다양화 속 정보 및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매체는 수용자의 선택적 목적만을 겨냥해가고 있어 진정한 저널리즘으로써의 매체로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본다.  언론에 자본의 수요가 증가할수록 관리 기능은 강화되는 반면, 언론의 ‘신념’과 ‘의견’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상업방송, 상업신문은 문화의 다양성으로 채워지기보다 스포츠, 오락, 드라마, 가십, 연예 정보 등의 방송과 지면으로 가득 채워지고만 있다.  이러한 방송의 흐름 속에서 신선한 이념과 동기로 무장한 신념으로 카리스마적 특성을 지닌 진정한 언론인을 목마르게 찾고 있는지 모른다.  진정한 언론인이란 없다. 하지만 언론인은 자신의 가치 판단에 따라 가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사회적 가치 질서에 도전하는 적대 세력에 대하여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감과 동시에 정열적으로 일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하며, 보도, 기사, 논평 등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담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수용자에게 알릴 의무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식과 진실의 사고를 전하는 커뮤니케이터로써의 언론인이야 말로 우리시대의 방송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 있는 자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학생명예카메라기자 임영고
    2006-05-17
  • 아파트 촬영허가 받으셨어요?
                       현장 속에서                                                        현장1-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유명업체에서 지은 아파트의 처마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서 현장을 찾았다. 사고가 난 H아파트는 2년 전에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였다. 사고가 난 처마는 가로 5 미터, 세로 1 미터, 깊이 1미터이고 총무게가 5톤 이상 나가는데 처마를 고정하는 연결 철근이 부실하게 공사가 되어있어 그 하중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황당한 사고였다. 현장은 흥분한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너져 내린 처마를 불안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해당업체의 홍보팀 담당자가 나와서 주민들에게 땅에 닿을 듯이 사과를 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출입구 19곳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시공된 것이라서 복구 지원팀은 현관마다 임시 철봉을 갖다 대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취재팀은 우선 주민들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주민은 우리가 이곳 시골에 무엇을 보고 입주를 했겠느냐며 그 잘난 회사 이름보고 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다른 주민들은 정말 인명피해가 나질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어떤 어르신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런 대기업에서 공사를 이따위로 해! 제비집을 지어도 이것 보다는 잘 짓겠다” 라면서 혀를 찼다. 우리 취재팀은 이런 사고 현장을 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해줄 전문가를 수배하였다. 다행히 현장과 가까운 쪽에 있는 전문가를 찾을 수 있었고 오후에 그들과 현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점심 식사 후에 취재팀은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사고 아파트의 분위기는 오전 상황과는 너무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를 대하는 주민들의 반응이 싸늘해져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주민 대표라는 분이 우리 취재팀을 막고 나섰다. 이유인즉 이미 보도된 것은 할 수없고 이 시간 이후에는 모든 취재 내용이나 방송사 자체의 조사 활동을 묵인 할 수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새벽에 본사 야근 근무자가 밤잠을 설쳐가면서 부실한 공사에 대한 보도를 하였건만 이제는 주민 대표라는 분이 선두에 서서 우리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우리 상식이라면 자칫 큰 인명사고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었든 사건을 만천하에 알려 앞으로 이러한 사건 재발을 막고자하는 것이 우리 보도의 참뜻이 아닌가! 이 사건의 보도 역시 그곳 주민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주민 대표는 막 조사 활동을 벌이던 사고 업체 조사요원의 활동조차 막으면서 주민 자치회에서 지정한 업체 외에는 일체의 조사 활동도 안 된다 면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리고 주민 대표는 또 보도가 나가게 되면 반드시 아파트 이름을 빼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주민 대표와 취재팀과의 대화 중에 주변에 있던 주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며 근심스러운 표정이다. 마침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가 끝난 시간이었는데  여러 명의 어린이들이 방송 카메라를 보면서  “아저씨! 우리 아파트 값 떨어져요 찍지 마세요” 라는 말에 정말 갑자기 어께에 메고 있는 카메라가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당장에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파트 사고가 났을 때에는 우리 취재팀과 같이 공분을 느끼며 흥분을 하였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진정을 되찾을 시점에서는 이제 자신들의 아파트 값 등락에 사로 잡혀있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금할 수없었다. 현장2- 지난 4월 구리 시에서도 위와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역시 한 유명 건설업체에서 지은 D 아파트. 이번엔 처마가 아니라 집안 천정이 내려앉은 희귀한 사고였다. 당시에도 사고가 새벽 시간에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을 저녁 시간에 천정이 무너져 내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고가 난 아파트는 천정의 석고보드를 고정시키는 연결 나사못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사건이었다. 연결 부위에 사용된 플라스틱 나사는 처음에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사못에 포함되어있는 수분이 점차 증발하면서 석고보드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끊어지는 단점이 있어  요즈음에는 사용하지 않는 소재였다. 그 나사못을 생산한 업체는 현재 부도가 난 상태였다. 그 아파트는 사고가 난  집만 문제가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집들도 상황은 비슷해 언제 천정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가운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한 데에도 우리가 첫 보도를 한 후에 후속보도를 위해 취재를 나갔을 때에도  주민들의 반응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멀쩡히 인터뷰를 다 해놓고도 취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인터뷰는 꼭 좀 빼달라고 간곡히 요청을 한다. 자신의 얼굴이 나가면 주민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난리가 난다면서 극구 자신의 얼굴을 삭제해달라고 애원을 해 온다. 우리는 취재팀은 사고가 난 아파트 외경을 찍기 위해 트라이 포트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30중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왜 아파트를 찍으세요? 허가는 받으셨어요?” 라면서 따지듯 묻는다. 우리는 역시 이 같은 사고 재발을 막고 다른 업체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를 않는가! 우리는 “만약에 이 사고가 아주머니 댁에서 일어났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고 반문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의 흥분한 목소리에 아주머니는 멀쑥이 쳐다만 보고서 슬슬 뒤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뭐니 뭐니 해도 마니MONEY 라고 한다지만 요즈음의 한 세태를 보는듯해 영 뒷맛이 개운 칠 않았다. 문화방송 보도국 영상취재부 서영호 부장
    2006-05-16
  • 아파트 촬영허가 받으셨어요?
    현장 속에서 현장1-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유명업체에서 지은 아파트의 처마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서 현장을 찾았다. 사고가 난 H아파트는 2년 전에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였다. 사고가 난 처마는 가로 5 미터, 세로 1 미터, 깊이 1미터이고 총무게가 5톤 이상 나가는데 처마를 고정하는 연결 철근이 부실하게 공사가 되어있어 그 하중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황당한 사고였다. 현장은 흥분한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너져 내린 처마를 불안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해당업체의 홍보팀 담당자가 나와서 주민들에게 땅에 닿을 듯이 사과를 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출입구 19곳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시공된 것이라서 복구 지원팀은 현관마다 임시 철봉을 갖다 대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취재팀은 우선 주민들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주민은 우리가 이곳 시골에 무엇을 보고 입주를 했겠느냐며 그 잘난 회사 이름보고 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다른 주민들은 정말 인명피해가 나질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어떤 어르신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런 대기업에서 공사를 이따위로 해! 제비집을 지어도 이것 보다는 잘 짓겠다” 라면서 혀를 찼다. 우리 취재팀은 이런 사고 현장을 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해줄 전문가를 수배하였다. 다행히 현장과 가까운 쪽에 있는 전문가를 찾을 수 있었고 오후에 그들과 현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점심 식사 후에 취재팀은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사고 아파트의 분위기는 오전 상황과는 너무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를 대하는 주민들의 반응이 싸늘해져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주민 대표라는 분이 우리 취재팀을 막고 나섰다. 이유인즉 이미 보도된 것은 할 수없고 이 시간 이후에는 모든 취재 내용이나 방송사 자체의 조사 활동을 묵인 할 수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새벽에 본사 야근 근무자가 밤잠을 설쳐가면서 부실한 공사에 대한 보도를 하였건만 이제는 주민 대표라는 분이 선두에 서서 우리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우리 상식이라면 자칫 큰 인명사고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었든 사건을 만천하에 알려 앞으로 이러한 사건 재발을 막고자하는 것이 우리 보도의 참뜻이 아닌가! 이 사건의 보도 역시 그곳 주민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주민 대표는 막 조사 활동을 벌이던 사고 업체 조사요원의 활동조차 막으면서 주민 자치회에서 지정한 업체 외에는 일체의 조사 활동도 안 된다 면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리고 주민 대표는 또 보도가 나가게 되면 반드시 아파트 이름을 빼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주민 대표와 취재팀과의 대화 중에 주변에 있던 주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며 근심스러운 표정이다. 마침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가 끝난 시간이었는데 여러 명의 어린이들이 방송 카메라를 보면서 “아저씨! 우리 아파트 값 떨어져요 찍지 마세요” 라는 말에 정말 갑자기 어께에 메고 있는 카메라가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당장에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파트 사고가 났을 때에는 우리 취재팀과 같이 공분을 느끼며 흥분을 하였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진정을 되찾을 시점에서는 이제 자신들의 아파트 값 등락에 사로 잡혀있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금할 수없었다. 현장2- 지난 4월 구리 시에서도 위와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역시 한 유명 건설업체에서 지은 D 아파트. 이번엔 처마가 아니라 집안 천정이 내려앉은 희귀한 사고였다. 당시에도 사고가 새벽 시간에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을 저녁 시간에 천정이 무너져 내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고가 난 아파트는 천정의 석고보드를 고정시키는 연결 나사못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사건이었다. 연결 부위에 사용된 플라스틱 나사는 처음에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사못에 포함되어있는 수분이 점차 증발하면서 석고보드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끊어지는 단점이 있어 요즈음에는 사용하지 않는 소재였다. 그 나사못을 생산한 업체는 현재 부도가 난 상태였다. 그 아파트는 사고가 난 집만 문제가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집들도 상황은 비슷해 언제 천정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가운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한 데에도 우리가 첫 보도를 한 후에 후속보도를 위해 취재를 나갔을 때에도 주민들의 반응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멀쩡히 인터뷰를 다 해놓고도 취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인터뷰는 꼭 좀 빼달라고 간곡히 요청을 한다. 자신의 얼굴이 나가면 주민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난리가 난다면서 극구 자신의 얼굴을 삭제해달라고 애원을 해 온다. 우리는 취재팀은 사고가 난 아파트 외경을 찍기 위해 트라이 포트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30중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왜 아파트를 찍으세요? 허가는 받으셨어요?” 라면서 따지듯 묻는다. 우리는 역시 이 같은 사고 재발을 막고 다른 업체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를 않는가! 우리는 “만약에 이 사고가 아주머니 댁에서 일어났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고 반문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의 흥분한 목소리에 아주머니는 멀쑥이 쳐다만 보고서 슬슬 뒤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뭐니 뭐니 해도 MONEY 라고 한다지만 요즈음의 한 세태를 보는듯해 영 뒷맛이 개운 칠 않았다. 문화방송 보도국 영상취재부 서영호 부장
    2006-05-16
  • 이산가족 상봉 취재... 어떻게 해야 하나?
    이산가족 상봉 취재... 어떻게 해야 하나?  2006년 3월 23일. 제 1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공동취재단은 결국 철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공동취재단의 이러한 결정은 50여년 만에 혈육의 정을 나누는 뜻 깊은 이산가족 행사를 국민들에게 상세히 취재 및 보도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낳았지만, 북측의 일방적인 취재 제한 조치 및 취재 도중 계속되는 방해 행위에 대하여 공동취재단이 강한 항의 의지를 가지고 행사 기간 동안 계속되는 릴레이 회의 끝에 내린 신중한 결정이었다.  ‘이산가족 공동취재단’은 6개의 방송사와 8개의 신문사 그리고 통신사인 연합뉴스 취재진으로 구성되었다. 공동취재단은 상봉행사에 관한 취재 정보에 대하여 모든 것을 공유하고 취재 일체 행위에 대하여 공동으로 행동한다는 입장을 갖는다. 특히, 12차 이산가족 상봉 취재 당시 SBS 기자의 ‘납북자’ 표현으로 불거진 북측 취재 검열에 대비하여 북측과의 문제 상황 발생 시 단장을 주축으로 모든 취재단원이 참석하는 회의를 통하여 해결 방법을 모색함이 주목적이었다.  2006년 3월 20일. 첫날, 15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단체 상봉 행사부터 우리는 취재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수백 명의 이산가족들이 모이는 행사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족들이 만나기 때문에 취재의 효율성을 위하여 방송팀은 3개조로 나눠 취재를 했다. 수십 년간의 단절로 인해 생겼던 장막이 일순간 허물어져 버린 가족들은 사무친 한과 기쁨을 일순간 눈물로 쏟아냈다. 이를 담아내야만 하는 취재진들. 2시간 남짓의 행사라지만 기사가 될 만한 장면들은 처음 상봉 10분 안에 결판이 나기 때문에 사전 취재했던 가족들 위주로 계획된 동선 안에서 부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기자단’ 완장을 찬 북한 감시원들은 시작 5분 후부터 슬슬 취재 방해를 해왔다. 영상기자 몸 밀치기, 가족들 곁에 슬쩍 들이댄 와이어리스 치워버리기, 울음을 터뜨리는 북측 가족 체크 및 울음 그치게 다그치기 등. 이산가족의 심정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우리 취재단의 의도를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은근슬쩍 시비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시작에 불과했다. 문제는 송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북측은 송출 전 영상 및 오디오 검열을 하고, 공동취재단 방송기자의 ‘납북’, ‘나포’ 등의 표현을 문제 삼아 위성송출을 가로막았다. 또한 중계차 안으로 들어와 임의로 중계 장비 버튼을 건드리려 했으며, 이런 방해 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취재기자단을 완력으로 밀어버리기까지 했다. 또한 MBC와 SBS 기자 오디오 테이프를 빼앗아 갔으며 다음부터는 기사를 미리 보여 달라는 비상식적인 요구까지 해댔다. 18시 30분에 시작된 위성 송출은 오디오 내용 문제로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우리의 취재 권리 요구는 22시가 넘어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2006년 3월 21일. 북측은 전날 상황과 21일자 ‘취재방해’를 골자로 한 조간신문 기사를 이유로 들며 MBC 전봉기 기자와 SBS 한승구 기자에 대하여 취재 불가 통보를 내렸다. 이에 맞서 23명의 공동취재단원은 회의를 통하여 항의의 뜻으로 21일 하루 동안은 취재를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곧바로 북측은 오전 개별 상봉 일정을 취소해 버리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계속 미뤄진 상봉행사는 결국 오후에 재개됐지만, 북측과 공동취재단 의견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은 채 다음날로 넘어가야만 했다.  2006년 3월 22일. 09시부터 시작된 작별 상봉 시간. 주먹구구식으로 공동취재단의 취재를 방해하던 보장성원들은 SBS 한승구기자의 얼굴을 식별하지 못해 취재 제한 조치를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의주시하고 있던  MBC 전봉기기자가 스탠드 업을 시작하자 몸으로 밀쳐내기 시작했다. 결국 강경하게 나오는 2명의 북측 요원과 몸싸움 직전상태까지 격하게 대립하게 됐다. 13시, 북측으로부터 1차 상봉자들과 함께 M, S 취재기자는 같이 떠나라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또한 사실상 추방 조치를 내리며 10시간 동안 고령의 이산가족들의 발을 묶어 놓는 비인도적인 처사까지 보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심사숙고 끝에 공동철수를 결의했다. 곧이어 남측 통일부 기자실에 ‘전원 철수’ 사전 통보를 하였고 이 소식을 접한 정부당국은 우리의 강경한 행동조치에 대해 당황하기 시작했다. 북측과 대화 시도를 했던 통일부는 공동취재단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 라는 부탁을 했고, 우리들은 정부가 조속하고 강력한 대응을 해줄 것이라 믿고 한발 물러서 철수 의견을 잠시 접어두었다.  18시, 가족들을 볼모로 삼았던 북측은 M, S 기자가 떠나지 않으면 13차 2진 상봉은 없는 것으로 하겠다고 알려왔다. 뿐만 아니라 해당 기자에 대하여 ‘공화국법에 따른 처리’를 운운하며 협박까지 했다. 어차피 MBC 전봉기 기자는 1진 상봉 행사만 신청해놓은 터라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한승구 기자에 대한 북측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우리는 대응 회의를 재개했다. 회의 결과 공동취재단은 한승구 기자의 추방조치는 받아들일 수 없고, 2진 취재 역시 우리가 계속 하겠다는 하나의 의지를 모았고 이를 계기로 우리의 주장을 강하게 어필하여 계속 버티기로 했다.  22시 30분, 갑자기 SBS 회사 내에서 한승구 기자의 철수를 지시했다. 통일부의 미온적 대치로 인하여 회사 내부에서는 한승구 기자가 철수하지 않아도 지속적인 취재가 어려울 것 같고 신변안전 확보 역시 약속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통보했다. 결국 23시까지 무조건 1진 이산가족들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북측의 공식 발표에 부랴부랴 한승구 기자는 철수하게 되었다.  2006년 3월 23일. 이른 아침부터 취재단의 향후 행보에 대하여 릴레이 회의를 진행한 끝에 다수결로 철수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물론 당일 도착할 2진들에게 그간의 상황을 전달하고 의견을 수렴해야하는 문제가 남아있었지만, 최대한 빨리 우리의 철수 의견을 공식화해야 했다. 결국 이산가족 상봉행사 취재단의 일정은 4일 만에 철수를 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문제 발생 시 정부와 북측이 서로 협의를 거치는 것 없이 통일부와 통일부 기자단과의 합의로 해결을 보려는 미온적 정부의 자세는 분명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통일부를 위한 취재 행사로 느껴질 정도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받았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북측 취재 시 겪어온 문제점들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에 대하여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되도록 공론화 시켜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북측의 취재 방해는 상대 지역에서의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보장한 남북 간의 합의 사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였고, 북측은 관련 사항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북 당국은 인도주의와 대화교육의 장에서 취재 자유가 보장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배문산 기자  
    2006-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