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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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핵실험 그 후, 평양을 가다> 북한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비행기는 지금 압록강을 건너 공화국 영토 위를 날고 있습니다.  중국 선양공항을 출발한 고려항공 비행기가 40분을 날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한 순안공항 주변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눈에 들어왔다.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찾는 평양, 급변하는 정세 때문인가 왠지 모를 막연한 긴장과 흥분으로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차에 오르자 우리를 감시할 북측 안내원 3명이 올라탔다. 민족화해협의회 소속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들은 3박4일 내내 우리를 감시했다.  차창 밖의 평양시내를 촬영하자 대뜸 하는 말이 "윤선생 우리가 상부에 보고하지 않도록 허락하는 곳만 찍읍시다. 이동하는 차에서의 촬영은 금지입니다."    핵실험 이후 북한 거리에는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기정사실화하는 붉은색 구호들이 넘쳐 났다.  ‘세계적인 핵보유국을 일떠세워 주신 절세의 령장 김정일 장군 만세??핵보유국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도전을 당당히 거부하자?, ?핵보유국이 된 5000년 민족사의 역사적 사변을 길이 빛내자? 등 10여 종의 구호를 볼 수 있었다.  우리를 감시하는 안내원에게 핵실험을 한 이후의 분위기를 물었다. 그는 대뜸 술을 한번에 들이키는 제스처를 취하며 “ 모두들 기분이 좋아 밤 새워 술 마셨다. 그동안 미국의 선제공격 위협 때문에 걱정들을 많이 했지만, 이젠 우리도 핵을 보유했기 때문에 모두들 안심하는 분위기다.” 또 “우리가 핵실험을 하니까 미국과 일본이 벌벌 떨고 북한과 미국의 일대일 대화를 주장하는 미국 민주당의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력 사정은 지난해보다 나아진 것이 분명했다. 순안공항을 통해 입국한 1일 밤, 평양 시내 거리 전역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90% 이상의 가구에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북한 안내원은 중국에 수출하는 석탄 가운데 많은 양을 내수로 돌렸다고 말했다.  평양은 각각 5만 킬로와트 급 화력발전소(동평양화력발전소,서평양 화력발전소)로 전기를 공급한다. 두 화력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력이면 평양은 충분하다고 한다.  을밀대와 묘향산에서 만난 시민들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소리 높여 웃는 모습은 우리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어린 학생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아이 부끄러워...”하며 우리를 피해 달아나는 수줍은 여학생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결혼식을 마치고 사진을 촬영하러 나온 신랑,신부와 그늘에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복장만 아니라면 이곳이 북한이라는 생각을 잊을 정도였다.  감시가 엄격해서 취재가 매우 어려웠다. 북측 안내원이 피곤해서 졸기라도 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마음껏 차창밖의 모습을 영상에 담고 취재기자는 혹시 안내원이 깰가봐 온몸으로 차창으로 내리쬐는 햇빛을 막았다.  문제는 기자 스탠드 업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동트는 새벽에 몰래 나와서 양각도 호텔 주변 대동강변에서 주체탑을 배경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난 우리는 양각도 호텔을 나섰다. 미리 점찍어 놓은 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언제 왔는지 민화협 안내원들이 우리 뒤를 쫓고 있었다. 급하게 나왔는지   모두 체육복 차림이었다. “선생들 좋게 말할 때 들어갑시다.” 무조건 촬영은 안된다는 자세였다. 그들의 험악해진 표정을 보고 순순히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취재가 끝나갈 무렵, 우리를 감시하던 안내원으로부터 검열을 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윤 선생 만찬 끝나고 한 번 봅시다. 우리도 뭘 찍었는지 알아야 하잖소.” 다행히 우리는 매일 찍은 화면을 노트북과 외장하드에 저장시켜 놓았다. 노트북에 카메라를 연결해서 마지막 테잎의 내용을 캡쳐시켜 놓고 만찬장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북한군인들, 남루한 주민들, 초라한 들녘의 풍경, 중요 건물들, 평양부감(양각도호텔 전망대 식당에서 찍은 부감이 나가면 대공 방어시설의 위치가 파악될 수도 있다고 한다) 등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캡쳐된 화면이 있던 나는 실랑이 하는 척 하며 적당히 삭제해 주었다.  평양을 수년간 오간 기업인들은 평양이 중국을 닮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금지하지만 돈이 된다면 묵인하는 자세를 말한 것이다. 평양시내에 외국인(특히 한국인)을 위한 안마시술소가 있고 성도 판다고 한다. 또 가라오케에서 전에는 종업원 손도 못잡게 했는데, 요즘은 먼저 달라붙는다고 한다. 북한이 변화의 길을 접어든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그 길이 개방이 아닌 외화벌이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아 씁슬함을 지울 수 없었다.  방송이 나간 후, NHK, 후지TV, TV아사히 등 일본의 여러 방송사에서 전화가 왔다. 평양 그림을 사겠다는 것이다. 특히 NHK는 핵실험 구호와 평양의 남루한 모습만 집중적으로 복사해 갔다.  일본의 관심이 반갑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KBS 영상취재팀 기자 윤희진
    2006-11-20
  • 비에 젖은 금강산
    <핵 실험그 후, 북한을 가다> 비에 젖은 금강산  ‘풍악산, 가을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풍악이라는 별칭을 붙였을까? 곱디고운 풍악의 단풍은 어떠할까? 그 모습을 영상에 담으면 어떨까?’ 카메라기자라면 가을 금강산, 그러니까 풍악산을 영상에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올 가을 들어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던 중 마침내 기회가 왔다. 그것도 아주 묘한 시기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발표를 하고 전 세계가 북핵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시점. 일부 사람들은 금강산 관광을 예약했다가 포기를 하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행선지 역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개성공단과 더불어 금강산관광이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과연 그렇다면 현지 사정은 어떤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이 늘어났다.  10월 17일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  취재팀이 남측 CIQ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관광객들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소 두려운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기대감과 긴장감에 얼굴이 상기된 사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기대감과 긴장감에 약간 상기된 얼굴들이었다. 그 때 내 얼굴도 역시 그들과 같았던 것 같다.  버스에 오르고 남측 통문을 통과한 버스가 북한 땅, 그리운 금강산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관광 안내원이 간단한 주의사항과 함께 남북을 가르는 155마일의 휴전선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휴전선 철책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요?”  안내원이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당연히 휴전선을 TV에서 많이 나왔던 굳건히 세워진 철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온 것은 남방한계선에 세워진 우리 측 철책이었다. 우리는 새로 개통된 동해선 철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달리며, 진짜 휴전선을 보았다. 다 쓰러져 가는 나무 말뚝들, 그것이 휴전선의 표식이었다. 동에서 서로 1280여개의 나무 말뚝이  남북을 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버스는 북측에 들어서고, 북측 초소를 지나 너른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창밖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허리를 굽히고 뭔가 농작물을 가꾸는 듯 보이기도 하고, 도로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지나가는 버스 행렬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날은 특히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마침내 버스는 금강산 관광의 시작점인 온정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예보보다 빨리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려한 단풍의 꿈이 빗물에 젖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온정리에서 바라본 금강산은 시커먼 먹구름에 휩싸여 마치 폭풍전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슴 한 쪽이 무언가에 막혀있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땅콩 드시라요. 맛있는 북한 땅콩 맛 좀 보시라요.”  온정리 기념품 판매소에서 나온 흰 셔츠에 말끔한 남자가 접시에 든 땅콩을 관광객들에게 내밀었다. 조청과 함께 버무린 과자 같은 땅콩이었다. 그 맛을 보는 관광객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금강산의 먹구름 때문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 했다.  후두둑, 후두둑, 만물상으로 가는 버스가 산을 오르는 동안 빗줄기는 더욱 세차게 몰아쳤다. 이윽고 만물상 입구에 내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고, 이 상태로 관광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마저 생겼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우비를 입고, 우산을 들고, 삼삼오오 만물상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처럼의 금강산 여행에 왠 비란 말인가. 날씨까지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푸념을 할만도 한데, 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자못 밝았다. 드디어 금강산을 오르게 되었다는 마음에 모든 시름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관광객들은 어느새 수려한 단풍에 빠지고 가을비 우수에 젖어 금강산에 동화돼 버렸다.  한 관광객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에 걱정이 된 나머지 금강산 관광예약을 취소했다가, 관광이 계속된다는 소식에 다시금 신청하여 금강산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걱정은 됐지만 오기를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와서 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우리 남한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너무나 평온하기만 해서 오히려 이상하다”, “금강산 이름만큼 너무 아름답다” 등 등 대체로 오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정작 궁금한 것은 북측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과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는 것일까? 그들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금강산 관광과 핵실험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부 북한사람들은 이번 일로 관광 사업이 피해를 입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는 듯 했다.    나는 비오는 산을 오르며 관광객과 함께 어우러지는 단풍을 영상에 담느라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렌즈에 뽀얀 습기도 차고 보통의 산행취재보다 배는 힘이 들었다. 하지만 빗물에 젖어 물기를 머금은 단풍은 햇살에 빛나는 단풍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관광객들 역시 금강산에 푹 빠져있는 듯이 보였고, 즐거워 보였다. 여행이란 그곳이 어디든 즐거운 것인가 보다. YTN 영상취재팀 기자 이동형  
    2006-11-20
  • Re:Re:MBC 태그의 뻘쭘함.
    맞습니다. 독일제로 개당 13만원~18만원 정도 합니다. 마이크 값과 비슷합니다. 국산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6-11-14
  • 해외 출장시 현지에있는 Agency를 활용하세요
    안녕하세요 AP Television서울지국 문승재 입니다. SBS에서 태국 구테타 취재 하신 기자의 글을 읽고 한가지 도움이 될까 해서 글을 씁니다. 저도 이곳 저곳 출장을 다녀 보았지만 항상 공항에서 출발 전에는 긴장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생소한 나라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것이 가장 큰 고민이지요. 그래도 다른 회사의 기자들 보단 마음이 편할수있는것은 현지에 저희 직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현지 공항에 도착하면 어떤 방법을 쓰던지 현장까지 가야하고 그것은 거의 대부분이 현지 경험이 많은 (현지 가이드 보단 현지 기자가 정세에 정통합니다) 저희 동료들이 정보를 줍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국내 방송사들은 거의 대부분 저희나 로이터 TV의 고객사 입니다. 떠나기 전에, 또는 출장을 떠나서 현지에 도착한 후에 현지 로이터나 AP텔레비젼 사무실로 연락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사정이 허락하면 한번 지국을 방문해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들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굳이 저희나 로이터의 시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인사를 하기위해 왔다고 하면서 그날의 스케줄이나 로이터나 AP가 취재하는 일정을 안다면 적은 인원으로 모르는 곳으로 가는 국내 방송팀의 취재활동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외국 방송사들이 현장에서 저희 지국을 찾고 서로가 안면을 트면서 정보를 교류하곤 합니다. AP 텔레비젼나 로이터 TV는 방송사를 위한 방송사임을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p.s. 시설이용은 유료이나 정보공유는 무료입니다...)
    2006-10-30
  • <줌인> 시청자들은 혼란스럽다
    시청자들은 혼란스럽다  지난 9일 북한이 핵무기의 폭파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의 모든 언론은 진위여부와 그 실험 규모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정보를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예의 그렇듯 각 방송사에서는 특보를 시작했고 앵커와 전문가를 동원한 대담이 이어지며, 혹시 핵실험을 했을 경우에 대비했던 다양한 사전 제작 프로그램들을 방영했다. 이 과정에서 쓴 웃음이 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북한의 핵실험을 가장 먼저 전한 것이 한국의 언론이었고, CNN 등 외신들은 한국 언론의 입을 빌려 보도하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일부 방송에서 CNN을 연결해 동시통역하는 방송을 했다. 물론 외신들이나 미국 등의 반응을 전달하기 위한 형식이었으나, 마침 CNN의 보도내용은 한국의 언론들이  어떤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우리가 보도하는 내용을 외국의 언론을 통해 동시통역하며 또다시 내보내는 어이없는 일이 된 것이다.  국제적인 큰 사건이 벌어져 뉴스 속보가 시작되면 항상 외신 특히 CNN을 연결해 동시통역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이런 관례는 한국의 뉴스영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북 핵실험 관련 뉴스영상을 보면 특히 그렇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 영상은 없다. 케케묵은 핵발전 시설이나 지금은 있지도 않을 북한연구원들의 연구모습 뿐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가는 뉴스의 배경화면은 채워야하니, 사막에서의 핵실험장면과 무지 오래된 핵실험 버섯구름 등의 영상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뉴스화면을 채웠다.  불과 10년 전의 뉴스를 보면 아나운서가 자료화면이나 관련영상 없이 기사를 읽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기사를 읽는 아나운서의 얼굴 보기가 무척 힘들다. 그만큼 자료화면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 방송에서는 산불이 난 영상도 자료로 방영한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로 자료화면의 폐해는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 사건처럼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중요한 소식에서 아무 관련도 없는 영상이 난무한다면,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나 언론인이 아닌 시청자들은 무엇이 현재 상황이고 자료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가뜩이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민들의 정서가 불안한 가운데 지나치게 자극적인 영상의 사용은 국가의 질서 유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한국의 방송의무에 크게 반하는 행동일 수 있다. 다행히 일부 방송사는 방송 중에 북한 핵실험과 관련 없는 영상의 사용을 중지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관례는 특정 사건에서 지시하는 모습보다는 원칙적으로 없앨 수 있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신뢰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뉴스영상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그 자리를 내줄 날이 가까워온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2006-10-20
  • 보도영상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제목 없음 보도영상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저작권은 권리는 보통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이 갖는다. 그러나 뉴스를 다루는 방송이나 신문의 기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이되 저작자가 될 수 없다. 뉴스저작물(뉴스영상, 사진, 기사, 칼럼, 사설 등)은 생산한 기자가 아니라 기자가 소속한 ‘언론사’가  갖고 있다.    저작권법 제9조에 따르면 ‘법인, 단체 그 밖에 사용자의 기획 하에 법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로서 법인 등의 명의로 공표 된 것의 저작자는 계약 또는 근무규칙 등에 다른 정함이 없는 때에는 그 법인 등이 된다. 다만 기명저작물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도제작물이 단체명의 저작물에 해당된다면 언론사가 저작자 인가?    영상저작물을 단체 등 법인이 제작하였을 경우 저작자를 결정함에 있어서 저작권법 제9조가 우선 적용 될 것인가 아니면 일반원칙에 따라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창작적으로 기여한 자를 저작자로 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견해가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영화나 TV드라마 등 통상의 영상저작물의 경우에는 영상제작자, 감독, 출연자 등 수많은 사람의 명의가 등장하므로 이들 영상저작물을 단체 명의 저작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기명저작물로  볼 것인가를 쉽게 단정 할 수 없고, 이러한 사실상의 곤란 때문에 통상의 영상저작물이 경우에는 저작권법 제9조가 적용 될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뉴스 생산물 역시 언론사를 저작자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민을 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  뉴스 영상의 경우 기명으로 단독 취재를 한 영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방송사에 종사하는 카메라기자라 하여 영상의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보도제작물은 영상과 기사가 하나가 되어 결과물이 완성되기도 하지만 영상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방송이 된 보도제작물의 저작권 문제도 지속적으로 카메라기자가 간과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보도되지 않은 영상자료의 저작권을 누가 갖느냐는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되어야 한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는 “뉴스 저작물이 공표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저작권이 회사에 있는지, 개인에게 있는지 명확히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되지 않은 영상 자료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언론사에 종사하는 사람이 생산한 모든 저작물의 권리는 회사에 있다’는 통념에 반발해 공표되지 않은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제기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언론사가 한 번 게재된 사진이나 기사를 다른 업체에 재판매함으로써 상당한 이익이 발생했다면, 언론사는 그것을 기자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미디어오늘 보도 9월13일자). 이렇듯 저작권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에서  카메라기자협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발전적 방향에 대해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
    2006-10-20
  • 태국 쿠데타 취재기
    <태국 쿠데타 취재기> 이번에도 작심삼일, 삼일 후에 또 작심삼일! 갑작스러운 출장 (우리의 숙명)  아침에 받는 전화 - 기상하기 전에 전화벨이 울리면 비몽사몽간이라도 반사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100이면 100이 일찍 출근하라는 전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출장 건으로 갑자기 전화를 받고 출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갑작스런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인한 현지 급파... 일단 급한 대로 작은 배낭에 간단하게 옷가지를 챙겨서 출근했다. 출근하자 만난 선배들이 군사쿠데타니까 위험할 수 있다며 몸조심하라고 일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얼핏 들었던 출장에 대해서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태국의 군사쿠데타라? 무슨 일일까? 쿠데타라고 하면 우리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군사쿠데타라고 하면 군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언론을 장악할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다.  이미 야근자가 출장 장비를 모두 준비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간단하게 점검만 하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취재기자 선배도 아침에 전화를 받아서 전체적인 출장준비가 미흡한 상태였다. 차로 이동하면서 비행기좌석, 현지 가이드, 이동수단, 위성송출 등을 전화로 준비해야만 했다. 마침 얼마 전에 태국으로 탈북자 취재를 다녀온 선배가 생각났다. 선배를 통해서 현지 가이드, 대사관 공보관, 대한항공 주재원 등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이 번호들이 현지에 도착해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던지...  어쨌든 아침 일찍 출발하는 직행 비행기는 놓쳤고, 그 다음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다음 비행기는 1시간 뒤에 출발하고 홍콩에 경유까지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반석은 이미 없었고, 비즈니스 석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처음으로 비즈니스 석에 탔다. 역시 비싼 값을 한다고 넓고 아늑한 공간과 승무원들의 서비스도 차원이 달랐다.  비행기가 방콕 공항에 도착하고.. 연착까지 한 비행기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후 5시 40분 정도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출발선상에 서있는 육상선수마냥 다른 사람들을 앞서서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입국심사대에 섰는데 왠지 모를 긴장... 혹시 외국 언론에 비협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제재도 없었고 그 어느 때보다 편하게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서둘러야 하는 시간... 이미 위성은 포기했다. 시내까지 나가는 대만 1시간이 걸릴테니 전화연결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공항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항공에 전화를 걸어서 사무실을 잠시 쓰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태국에서 첫날 리포트를 해결했다. 첫날 취재  ‘성공한 쿠데타?’ (탱크 옆에서 총 든 군인과 웃으며 사진 찍는 태국 국민들)  실제 취재 첫날이다. 현제 태국의 상황은 어떨까? 이번 태국의 군부쿠데타의 원인은 바로 탁신 총리였다. 통신재벌이라 알려진 탁신 총리.. 경찰 간부 출신으로 옷을 벗고 IBM 컴퓨터의 경찰청 납품 등으로 한 몫을 잡았다. 이후 휴대폰 통신사업으로 완전한 재벌로 변모한다. 그냥 성공한 기업가로 남았으면 좋으련만 주변의 충동과 본인의 권력에 대한 욕구 등으로 인해 정치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기존 정치 세력에 식상해있던 국민들이 신선해 보인다며 탁신의 정계 진출은 성공을 이룬다. 하지만 그의 사소한 욕심 때문이었는지 세금도 내지 않는 등 권력남용과 부정부패가 하늘을 찌르자 국민들의 신임을 잃었다. 그 와중에 왕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태국은 입헌군주제의 나라이다. 시내 곳곳에 국민들이 국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지 경험이 없는 나라 태국.. 1932년 이 나라에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뒤 20번째 쿠데타이다.  우리는 태국의 왕실과 국회, 국방부 등이 있는 시내 중심으로 갔다. 차로 이동하면서 창문밖에는 신문 사진에서 봤던 탱크와 장갑차들이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다. 곳곳에 총을 든 군인들이 눈에 띄었고 우리는 살짝 긴장하였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서 그곳에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은 총 든 군인과 탱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먹을 것들을 사와서 군인들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그들은 이번 쿠데타를 반기면서 군인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약간은 의외였지만 이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탁신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취재 둘 째 날 민주주의의 후퇴 (지식층의 교수들의 쿠데타 반대 집회)  국왕의 승인과 국민의 지지를 받아 국정을 완전 장악한 군부가 정권을 제대로 민간에게 이양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부 대학교수들은 한곳에 모여 쿠데타를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물론 탁신이 물러난 것을 반기는 사람들이지만 군부의 쿠데타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인터뷰 다니면서 대부분이 탁신을 싫어했지만 쿠데타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리 군부가 쿠데타 이후 과도정부 구성-헌법개정-총선실시라는 정권이양 절차를 제시하였다 하더라도 이런 절차와 형식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 겉은 민간정부로 포장하고 권력 내부에는 여전히 쿠데타 지도부가 자리하면서 국왕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군인들의 총으로 정권을 바꿔온 경험을 많이 해온 국민들 스스로도 그?! ? 내성이 길러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이 오래된 습관처럼 다음에도 쉽게 일어난다면 누구를 탓해야 한단 말인가? 돌아오는 비행기...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언제나 출장의 마무리는 돌아오는 비행기였는데... 역시나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고 그 동안의 일들을 정리해본다. 1. 나름대로의 출장 매뉴얼을 만들어 본다. 2. 인터넷 송출 등의 시스템을 잘 알아둔다. 3. 사고방식이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판단할 수 있게 노력한다. 4.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  이번에도 작심삼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삼일 후에 또 다른 삼일을 계획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오랜 습관처럼 될 수 있도록 말이다.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기자 홍종수
    2006-10-20
  • 카메라기자의 혈액형
    <궁금해요> 카메라기자의 혈액형 조사 결과 : A형 53명(27%), B형 57명(29%), O형 57명(29%), AB형 : 29명(15%) 우리나라 국민의 혈액형 비율 : A형(32%), B형(30%), O형(27%), AB형(11%)  요즘 대한민국에 피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혈액형’ 붐이 거세가 일고 있다는 얘기다. 혈액형별 처세술, 혈액형 별 학습법, 혈액형별 건강법, 혈액형별 연애법 거기에 혈액형 마케팅까지...   얼마전 SBS스페셜 ‘혈액형의 진실’에서는 노미 도시타가의 ‘혈액형 인간학’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 이는 혈액형에 대한 관심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이 피바람(?)에 부응해 카메라기자의 혈액형별 비율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서울 회원사 회원 351명 중 196명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A형 53명(27%), B형 57명(29%), O형 57명(29%), AB형 29명(15%)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혈액형 비율[A형(32%), B형(30%), O형(27%), AB형(11%)]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A형(27%)이 가장 많은 한국인의 혈액형 비율과는 조금 다르게 B형과 O형이 공히 29%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 국민적으로 봤을 때, 소수인 AB형을 제외하면 A형과 B형, O형이 골고루 분포한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하나는 혈액형과 성격, 혈액형과 직업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이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이 각 혈액형별로 그 특성을 잘 살린다면 모든 사람이 도전해 볼만한 매력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혈액형별 특성’을 보면 묘하게 맞아 떨이진다고 느낄 때가 많다. 혹자는 그것이 ‘애매한 말장난’이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맞아 떨어진다고 느껴질 때, 자신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리마인드 해볼 필요가 있다. 평소에는 생각해볼 기회가 많지 않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제3자의 눈으로 냉정하게 말이다. 그러면서 장점이 많은 본인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말고,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2006-10-20
  • 포토라인 준칙 선포식
    포토라인 준칙 선포식 국민의 알권리 실현, 취재원 보호를 위해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곽재우)와 한국사진기자협회(회장 최종욱), 한국인터넷기자협회(회장 윤원석)는 바람직한 취재문화 정착을 위해 포토라인 선포식을 8월31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취재경쟁의 폐단을 막고 취재현장에서 신문, 방송, 인터넷언론, 통신사 등의 상호협력에 의한 원활한 취재와 언론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포토라인 준칙을 제정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곽재우 회장은 “ 포토라인 준칙을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실현하고 취재원의 인권보호를 도모하여 포토라인 준칙이 정착되어 실행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포토라인준칙 선포식에는 정남기 한국언론재단 이사장과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이 참석해 축사를 했으며 많은 방송, 신문, 통신, 인터넷 매체 데스크들이 참석했다.  한국기자협회 정일용 회장은 “ 많은 사건 사고 현장에서 기자들이  고생이 하는데 가끔 포토라인이 붕괴 되 혼란 한 상황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며 “기자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정해 지키기로 한 것은 대단히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포토라인 준칙은 취재현장에서의 포토라인을 설정하고 실천하는 세부 규정이 담겨져 있으며 9월 한 달간의 시범운영 기간을 거쳐 10월부터 시행 될 예정이다.  또한, 포토라인 설치 운영이 예고 된 취재현장에서는 위 3협회 소속 회원이 아닌 경우 TV동영상 취재는 카메라기자협회, 사진취재는 사진기자협회, 인터넷매체취재는 인터넷기자협회의 사무국에 포토라인 취재 참가를 신청해야한다.  포토라인 위반 시의 벌칙은 각 협회에서 별도의 규칙을 정해 시행하기로 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경우 포토라인을 위반 한 회원사는 최소 1개월이상 또는 3회 이상 포토라인이 시행되는 모든 취재현장에서 포토라인 내 취재를 금지하고, 그 내용은  협회 홈페이지에 이를 공고 할 예정이다.  한편, 포토라인 준칙은 지난 4월 6일 있었던, ‘포토라인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세미나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 되었다.  위의 3협회는 5월3일 포토라인 준칙 제정 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5회에 걸친 회의 끝에 포토라인 준칙을 합의하고 회원사의 의견수렴과 운영위원회를 거쳐 제정 했다.  우리나라의 포토라인은 1994년 12월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협회 간에 협의된 라는 기치를 내걸은 ‘포토라인 운영 선포’를 통해 발효되었다. 이는 상호 간의 불필요한 경쟁과 무질서한 취재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운영되어 왔으나, 10여년이 지난 현재 다매체 다채널시대에 취재진이 늘어나고 무질서한 취재 형태가 반복되어 나타남에 따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 하고자 본 준칙을 제정했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
    200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