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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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시적, 대승적 차원의 취재 이루어져야
    <6자회담 취재후기 Ⅱ>    거시적 대승적 차원의 취재 이루어져야  한반도는 근대사 이래 동북아 4대 열강인 미 · 러 · 중 · 일 세력의 각축장이자 이들 힘의 완충지대였다. 분단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곳은 여전히 대치상태에 있으며, 강대국들의 틈에서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다. 4대 열강은 한반도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여 동북아에서 패권을 잃지 않으려해 왔고, 그러한 국제정치의 역학적 배경 하에서 6자회담 이란 것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번 회담은 북 핵실험이후 북미가 첫 공식 대면을 가졌다는 것에 나름의 의미가 있었으나 양측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성과 없이 끝나 6자회담 회의론까지 대두 되었다.  이번 회담의 핵심 당사국은 역시 북한과 미국이었고, 최대관심사는 ‘북한이 과연 핵 폐기 의지가 있는가’ 그리고 ‘미국이 북에 금융제재를 해제할 것인가’ 등 이었다. 회담 내내 한 치의 양보 없이 북한은 선(先) 금융제재 해제를 미국은 선(先) 핵 폐기 이행을 주장하여 회담은 끝까지 평행선을 그었다.  회담이 진행된 지난 12월 18일부터 22일까지, 베이징은 한국, 중국, 일본, 취재진의  취재열기로 뜨거운 겨울을 맞았다. 한국 취재진은 회담 하루 전에 도착하여 본회담 장소인 조어대(釣魚臺) 근처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에 프레스센터를 마련했다. 메리어트 호텔은 이전 회담 때도 계속 한국 측 프레스센터로 이용되었던 터라 비교적 준비가 잘 되어있고 이용이 편리했지만, 취재가 주로 이루지는 각국 대표단 숙소 그리고 북한 대사관과 각 방송사 지국이 있는 외교단지와 거리가 있어서 위치상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다.  국내로의 송출은 주로 위성을 이용했고, 위성 청약 시간 이후의 취재물은 인터넷을 통해 송출이 이루어졌다. 또 상황에 따라 각 방송사 베이징지국에서 송출을 하기도 했다. 위성 송출실은 호텔 1층에 마련되어 비교적 이용이 편리했다. 위성 송출은 하루에 2-3회에 걸쳐 이루어졌고, 시간은 한번에 30분씩 저녁 7시부터 10시 사이에 할당되었다.    이번 회담의 취재는 조어대(본회담장소), 각 대표 숙소(주로 한미), 북한대사관, 중국 측 프레스센터, 베이징공항, 한국 측 프레스센터, 양자 또는 다자회동 장소(시내 모처) 등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조어대는 본회담 장소로 개막과 폐막 때 제한적으로 취재가 허용되었는데,  국가별로 한 두 팀만 가능했다. 또 한미 대표가 묵는 숙소도 매일 아침과 밤 필수 취재 코스였다. 이곳은 공식적으로 브리핑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보여 질 정도로 회담진행 상황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였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취재 열기는 매우 뜨거웠고, 한 두시간전에 가서 미리 자리를 잡지 않으면 취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공식적인 브리핑이 아니므로 몇 시간 전에 도착해 기다려야 각 국 대표를 놓치지 않고 좋은 자리에서 취재가 가능했다. 북한대표 숙소의 경우에는 북한대사관이며 비공개로 움직이므로 평상시 특별히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회담이 막바지에 이르면 필요에 따라 즉석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깜짝 기자회견을 하므로 회담 후반기에는 정문에 기약 없이 스탠바이 하고 있어야 했다. 다행이 이번 회담에서는 김계관 대표가 중국프레스 센터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져 이전 회담에서와 같이 북 대사관 앞이 취재진에 의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상황은 없었다.  이번 회담 중에는 북미 간 금융실무 협상도 함께 진행되었다. 이는 6자회담의 성패가 달려있는 중요한 협상이었다. 북한은 동결된 2천5백만 달러 해제를 주장했고, 미국은 이 돈이 돈세탁 등 불법행위에 관련된 만큼 현재로선 동결이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이 협상의 결렬은 결국 이번 6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그런 만큼 이 협상 대표와 협상 진행 상황도 이번 우리 6자회담 취재진의 주 취재대상이었다. 6자회담 대표는 본회담장 뿐 아니라 만찬이나 저녁 식사 등 시내 모처에서 양자, 다자간 회동을 가졌고 이 또한 우리 취재진을 바쁘게 움직이게 했다.  6자회담 취재는 일명 ‘뻗치기’를 할 일도 많고, 뛰어야 할 일도 많은 만만치 않은 취재다. 특히 물량과 정보력에서 앞선 중국 및 일본 취재진과의 경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은 개최 의장국으로 자국 내 취재이기에 당연하겠지만, 직접 당사국이 아닌 일본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극성스럽게 취재 활동을 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반면 미국 러시아 북한 등의 취재진은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한국은 6자회담의 주요 당사국이다. 이는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바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회담이다. 그리고 냉전 이후 동북아 패권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다시 짤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이 회담을 중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관심을 가졌는지 뒤 돌아 보아야 한다. 국제 회담의 성패는 몇몇 담당 외교부 직원의 몫만은 아니다.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기본으로 모든 국가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국내에선 이 회담이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저녁 메인뉴스에서 주요 뉴스로 다루어 지지 않았고, 방송사에 따라서는 로컬 뉴스 시간대 즈음에 편성되기도 했다. 물론 국제회담이라는 것이 국민 개개인의 일상생활과 직접적 관련이 없기에 큰 이목을 끌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장래와 존폐가 달려있는 중요한 문제이니 만큼 거시적, 대승적 차원에서 취재가 이루어지고 뉴스가 다루어져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여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타국에서 함께 뛰어주고 격려해주신 선후배 카메라기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특히 추위와 허기 속에서 뻗치기 할 때 마다 따뜻한 도시락을 직접 날라 주신 베이징지국 선배께 감사드린다. 김현태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
    2007-02-06
  • 새로운 취재방식과 정보 교류에 대한 고민 필요
    제목 없음 <6자 회담 취재후기 Ⅰ> 새로운 취재방식과 정보 교류에 대한 고민 필요  2006년 12월 17일 09시.  미국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이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는 것을 취재하기 위해, 우리들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다.  우리는 차문을 열고 장비를 챙겨 공항 VIP출구로 향한다. 현재 기온 영하 10도.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무려 영하 20도 이상인 상황. 촬영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앞으로의 취재가 쉽지 않을 것임을 몸으로 느낀다. 크리스토퍼 힐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장소는 폭 5m 내외의 좁은 공간. 이미 전날 자전거 자물쇠로 사다리를 묶어놓은 외신들 덕에 앞자리는 사다리 행렬로 기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나마 일찍 도착해서 우리는 두 번째 라인에 트라이포드를 펼칠 수 있었다. 힐은 오후 13경 일본비행기로 도착한다고 하니, 우리는 4시간동안 바들바들 떨고 있어야 한다. 그나마 일찍 도착해 두 번째 라인이라도 확보한 것이 다행이다.  힐이 도착하기 2시간 전. 속속 외신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도착한다. 자물쇠를 채워 놓은 사다리 덕에 느긋한 그들과, 반면 늦게 도착해서 3번째 라인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다른 취재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십 명의 취재진들의 주시하는 눈동자, 떠들어대는 입모양을 통해 드디어 ‘6자회담’ 취재를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4시간 동안의 뻗치기 끝에 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힐이 도착하자 시끄럽던 취재현장은 일순간 그의 멘트를 따기 위해 조용해진다. 싱크를 따는 팀 외에는 부지런히 스케치를 하기 위해 최대한 각도가 되는 곳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스케치 전쟁이 치러진다. 힐이 모습을 보였던 시간은 불과 5분 내외. 4시간의 뻗치기에서 얻어내는 것은 3분 내외의 싱크와 대여섯 컷의 영상. 우리 팀의 첫 번째 취재는 이렇게 끝났다.    ‘6자 회담’의 대부분의 취재는 뻗치기로 시작해 뻗치기로 끝난다. 일주일 동안의 동선은 힐이 머무는 숙소 ‘국제 구락부’와 ‘북한 대사관’ 그리고 회담장소인 ‘조어대’가 전부였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뻗치기 후 각국 대표들의 싱크를 따는 것이었다. 아침 싱크를 따기 위해 대표들이 출발하기 전에 그들의 숙소에 도착해야 했다. 전날 늦게 끝난 일정에도 불구하고 0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떠지지 않는 눈에 물을 뿌려 물리적으로 의식을 깨게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며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06시 30분. 호텔 한 켠에 설치된 포토라인 앞줄에는 이미 24시간 대기하는 외신 트라이포드로 여유 공간이 없다. 그나마 우리가 확보 할 수 있는 곳은 두 번째 열. 두 번째 열에서는 첫 번째 열 트라이포드 위에서 촬영을 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가 카메라를 어깨에 맨 채 기다려야 했다.  힐의 회담장 출발 시간은 미정. 마냥 뻗치고 있어야 하는 상황. 그나마 이곳 국제 구락부는 상황이 나았다. 호텔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춥지 않았고, 수많은 취재진 들 덕에 한국에서 혼자 뻗치기를 할 때와는 다르게 뻘쭘하지 않아서 좋았다. 처음에는 외부인들의 눈치를 의식해서 기자로서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려 했으나 힐이 출발하기 10분전에 알려준다는 보좌진들의 설명을 들은 이 후에는 긴장이 풀리면서 모두들 소풍분위기를 연출하는 듯 했다. 울 양탄자가 깔려 있는 바닥에 주저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운 좋게 소파를 차지한 사람은 잠을 청하기도 한다.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외신 기자들과 이것저것 물으면서 친해져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명함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렇듯 ‘힐의 숙소에서의 취재’는 새벽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하는 나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수 십대의 카메라 틈에서 힐 싱크를 딸 때 느끼는 극도의 육체적 피곤함을 제외하고는 부담이 덜한 편이었다.  ‘6자회담’은 힘든 출장이라고 선배들은 말한다. 각국의 수석대표들에게서 비슷한 시간에 다양한 싱크를 확보해야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팀들은 미국, 대한민국, 북한 이 세 나라에만 신경을 집중하면 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돌발 상황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해 하루라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새벽에 일이 시작되고(물론 순번을 돌려 취재를 맡게 함으로 누적된 피로를 상쇄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늦은 시간에 아침 리포트까지 처리해야 됐기 때문에 취재가 불가능한 정식 회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베이징 출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베이징 시내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작년 이맘때 수의대에서 무한대 뻗쳤던 황우석 사건 취재와 빗대어 비교할 정도였으니,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지루하고 ‘무한으로 증폭된 찰나의 긴장상태’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외신들과 비교했을 때 취재 인력의 상대적 부족함에서도 힘듦의 원인을 끄집어 낼 수 있다. 가장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NHK는 80여명의 취재진들이 베이징에 도착했다고 한다. NTV역시 8팀 이상을 현지에서 봤고, 중국 CCTV 취재진들도 곳곳에서 24시간대기 트라이포드를 뻗쳐놓은 상태였다. 각사에서 1~2팀 정도를 보내는 우리나라 방송국들과 비교했을 때 인력이나 장비 면에서 수적으로 앞선 그들과 경쟁을 벌여 뉴스 게더링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몸이 지치기 때문에 당연히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그 틈을 누군가 헤집어 놓는다면 아수라장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미묘한 긴장상태에서도 타사와의 ‘풀’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웠고, 매 취재 순간 각자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어깨를 더 누르는 듯 했다.  내 카메라기자 경력 3년 반, 해외출장은 수습 이후 단 한번, 위성송출 처음, 부끄럽지만 베이징 출장 전 나의 현 주소였다. 이미 익숙해져 있는 국내 취재에서는 여유부리기도 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던 나였다.  이번 출장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취재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줬다. 선배들 오디오맨 역할로 따라다니면서 일을 했던 해외 출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첫날 수 십대의 ENG를 접했을 때 당황했고, 수많은 외신들 틈에 끼어 공유되지 못했던 우리의 정보력에 좌절했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취재동안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해외 출장임을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가질 기회는 없었지만, ‘6자회담’과 같은 취재에서 얻을 수 있는 상황 대처 능력과 사람들과의 대면 능력, 일정 취재의 핵심인 위성송출까지 일주일 만에 해외 수습 트레이딩 하듯 한 번에 많은 경험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에 특별히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6자 회담과 같이 국가적인 중대사이면서 제한된 공간에서의 취재에 어려움이 예견되고, 특히 해외 취재 인력에 비해 물리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또한 미래 영상 송출의 대세가 될 수 있는 웹 전송에 대한 카메라기자들의 철저한 준비와 다양한 정보 교류의 필요성 또한 절감했다. 배문산 /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기자
    2007-02-06
  • "OUT OF FOCUS" 유감
    “OUT OF FOCUS” 유감 요즈음의 뉴스 화면을 보면 촬영기자가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게 해서 촬영하는 “OUT OF FOCUS” 촬영기법 장면이 눈에 많이 띈다. 이러한 화면은 대개 사건 사고의 잔혹한 장면이나 특별히 피의자의 초상권을 보호할 목적으로 촬영기자가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게 해서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OUT OF FOCUS” 촬영법이 너무 남용되고 있다. 각 방송사의 보도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고 시사 교양프로그램에서 조차 “OUT OF FOCUS” 촬영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심지어 1분20초의 보도 기사에 70%이상 “OUT OF FOCUS” 로 촬영된 화면으로 채워지는 리포트도 목격하였다. 과연 이 보도를 본 시청자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기자의 리포트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흐릿한 화면을 내보내 오히려 기사의 전달력을 떨어트림은 물론이고 화면에 대한 불신감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필자는 이러한 촬영 기법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새삼 논의할 것도 없이 원본 테이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테이프에 수록된 영상물은 취재된 내용에 상관없이 전부 다 훌륭한 내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카메라 기자가 촬영한 원본 테이프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소중한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사실이다. “OUT OF FOCUS” 촬영은 우리가 원하는 초상권 보호란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겠지만 원본으로서의 가치가 반감되고 있다는 사실은 잊고 있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로 거듭날 수 있는 소중한 촬영원본을 단지 일회성 보도용으로 전락시킨 것에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숙한 촬영기자라고 하더라도 복잡한 사건 사고현장을 짧은 시간 내에 정확히 판단해서 촬영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위기의 상황에 처한 기자일수록 더욱 침착하게 정공법 촬영 테크닉으로써 다가서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취재 현장에서 피의자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 중에는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 우연히 포착될 수가 있고 또 사건의 단초가 될 만한 물적 증거물 혹은 건물 배경 등 다양한 시각정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OUT OF FOCUS”로 촬영함으로써 많은 중요한 정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촬영한 원본은 뉴스뿐만 아니라 보다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에 응용될 여지가 많을 뿐 아니라 역사적인 기록물로서 오랜 동안 남게 된다. 따라서 긴급성이 요하지 않는 취재 내용물이라면 가급적 현장에서 피의자의 뒷모습 혹은 Big Close-Up 등으로 화면을 처리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편집 과정에서 간단히 모자이크 등의 보완 처리를 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특히 요즈음은 과거와 달리 NLE 편집이 보편화 되어있기 때문에 모자이크 등 다른 여러 가지 화면 이펙트를 통해서 촬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훨씬 수월해졌다. 따라서 “OUT OF FOCUS” 촬영법은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다가 정작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함에 다름이 없다고 생각된다. 요즈음의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미래의 방송 프로그램이 어떠한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다가설지는 현재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영국의 역사학자 Edward Hallet Carr는 “역사는 어제와 오늘의 대화” 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훌륭한 미래의 콘텐츠는 귀중한 과거의 자료와 현재의 자료가 어우러져 탄생될 때 최고의 가치를 뿜어내리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래의 방송프로그램은 콘텐츠와의 전쟁이고 촬영 원본은 미래 방송 프로그램의 자양분이고 생명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 현장기자들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 그리고 항상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할 때에 반드시 매너리즘의 복병이 나타난다는 점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무심결에 취재해왔던 방식이 단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혹은 촬영자의 편의성에 묻혀 정작 보여 주어야할 것을 놓치고 있었든 것은 아닌지 이제 한번쯤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할 시점인 것 같다. 문화방송 보도국 서영호부장 2007/2/1
    2007-02-01
  • 점심시간 줄여가며... 팍팍한 카메라기자의 일상
    <할 말은 합시다> 점심시간 줄여가며... 팍팍한 카메라기자의 일상   아침 출근.  취재일정에 올라온 아이템을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 벌써 여러 개의 취재일정들이 올라 와 있고 오후에는 FTA 관련 시위가 예정되어 있어 만만치 않은 하루가 예상된다. 더군다나 오늘은 휴가자와 출장자가 많아 현업 투입인원이 더욱 적어 여러 개의 일정을 소화해 내야 한다.  일하는 도중에 회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지금 하고 있는 일 후딱 마무리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취재기자 아무개와 함께 리포트를 제작하라는 지시. 이동을 하고 취재기자를 만난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한명의 취재기자와 돌아다니며 고생하는 건 그나마 괜찮은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러 명의 취재기자들을 맞닥뜨릴 때 마다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든다. ‘후배라도 받아야 좀 나아질 텐데……’  그나마 올해는 신입사원 채용계획조차 없다. ‘휴가도 내야 되는데……’  요즘 워낙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 눈치를 보는 중이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카메라기자의 일상이다.  방송국에서 인력난이야 어찌 보면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보도부문 취재기자 대비 카메라기자 인원비는 갈수록 불균형해 지고 있다. 취재기자의 수에 따라 카메라기자의 수가 탄력적으로 보충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각 방송사의 최근 몇 년간의 신입사원 채용 현황을 보면 취재기자 대비 카메라기자의 신규채용 인원이 점점 더 악화되는 경향을 띄고 있다. 방송사에선 대체적으로 취재기자 3명에 카메라기자 1명의 비율이 관례적인 것으로 여겨지곤 하는데 이는 내근 취재기자 1명에 외근취재기자 2명을 카메라 기자 1명으로 소화하는 것이 적당하다는 판단이 작용해 왔던 탓이다.  KBS의 경우, 2006년 서울과 지역의 취재기자는 신입, 경력 포함 40명을 뽑은 반면 카메라 기자의 경우 5명에 불과했다. 2005년의 경우에도 취재기자 33명에 카메라기자 8명으로 4배 이상의 차이가 나고 있다.  MBC도 2002년도에서 2005년까지도 4년간 36명의 신입 · 경력 취재기자를 선발하고 카메라기자도 14명이나 뽑아 원활한 인력보충이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전체 현업 취재기자 대비 카메라 기자의 비율은 여전히 3:1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SBS는 2005년도에 6명의 취재기자와 1명의 카메라기자를 뽑았고, 2006년의 경우 5명의 신입 취재기자에 카메라기자는 단 1명도 채용되지 않았다. 전체 현역 취재기자 대비 카메라기자의 비율이 4:1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인데도 신입사원의 충원이 이루어 지지 않은 것이다.  YTN 역시 2001년부터 2년 단위로 카메라 기자를 선발했으나 카메라기자에 비해 취재기자는 3배 이상의 규모로 채용되어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YTN의 2006년 신입사원채용에 취재기자는 6명이나 채용이 되었으나, 카메라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카메라기자 인력 수급은 한 명의 카메라기자가 상대해야 하는 취재기자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의 결과는 카메라기자의 노동 강도에 켜지는 빨간불에 의한 뉴스의 질적인 하락일 것이다. 넘쳐나는 취재아이템 중 일부는 6mm 카메라를 사용하여 VJ가 제작하게 되고, 이러한 임시방편 식의 제작방식은 어느덧 일상이 돼버렸다.  인력은 뉴스 제작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본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위에서는 적절한 투자 없이 결과물만 내려고 한다. 인력 충원이 있을 때도,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규모를 정하는지 알 수 없다. 인력 충원에서 가장 우선 시 되어야 하는 것이 현업 부서의 필요와 요구 아닌가?  오늘도 점심시간을 줄여가며 다른 취재 아이템을 배정받고 서둘러 장소를 이동하는 카메라 기자들의 일상은 팍팍하기만 하다. 편집위원 공동취재
    2007-01-05
  • <줌인>자극적 영상의 뉴스 사용은 자제되어야 한다
    자극적 영상의 뉴스 사용은 자제되어야 한다  지난 7일 일어난 김형칠 승마선수의 경기 중 낙마 사망 사고는 스포츠 경기에서의 충격적인 사고여서 소식을 접한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특히 모든 방송 뉴스시간마다 반복해서 전해지는 낙마장면은 고 김형칠 선수의 유가족 뿐 아니라 시청자 모두에게 섬뜩한 느낌을 전했다. 물론 사고장면은 각방송사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가려져서 전달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사고장면의 자극적인 모습은 가려지지 않았다.  KBS, MBC, SBS, YTN 등 방송사 공히 저녁 메인 뉴스에서 사망소식을 두 꼭지에 걸쳐 방송했고, 사망장면을 연속해서 편집 방영하는 모습은 같은 뉴스를 전달한 외신의 스틸 사진사용과는 많이 대조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다음날 인터넷을 통해 많은 항의가 이어졌고 방송사들은 뉴스에서 더 이상 낙마장면을 방영하지 않는 변화를 갖는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사망장면의 사용을 자제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지난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을 때 북한의 핵실험과 아무 관련 없는 지하 핵실험 자료화면을 수 없이 반복하여 방영하는 우를 범해 한차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지 불과 두 달밖에 안된 이 시점에서 또 다시 비슷한 비난을 받는 모습을 보면 이는 구조적으로 뉴스영상의 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뉴스는 사실의 전달이라는 이유로 타 프로그램보다 조금은 자극적 영상의 사용에 자유롭다. 하지만 외신들처럼 최대한 자극적인 면을 삭제하고 방송하는 모습과 비교해 볼 때, 뉴스는 항상 인권 문제와 함께 충격적, 자극적 영상의 사용에 항상 조심하고 의미전달이 가능하다면 최소한의 영상만을 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모자이크를 했다고 해서, 스틸 컷으로 완전히 보여주지는 않았다고 해서 양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뉴스영상이 자극적 영상을 사용하는데 최대한 조심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통제 시스템의 확립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일부 선배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방송의 사용여부 결정 방식이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기준을 정하고 법률적 검토, 외신의 사례 등을 연구하여 진정으로 수준 높은 뉴스영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뉴스영상 통제시스템은 단순히 뉴스 영상을 위한 일 뿐만 아니라 뉴스 전체에 대한 통제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뉴스영상의 통제 시스템을 위한 연구가 하루빨리 카메라기자협회와 함께 시작되고 그 결실을 얻어야 한다. 2007년 새로운 한해가 수준 높은 뉴스영상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
    2007-01-05
  • 나는 카메라기자 남편을 데리고 산다
    제목 없음 나는 카메라기자 남편을 데리고 산다 딩동~  문을 열었다. 옷이며 신발에 푸른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남편이 집안으로 들어선다. “무슨 일 있었어?”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어보지만 사실 난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날 평택시위를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내 남편 이름 세 글자를 확인했으니까.  내가 방송 카메라를 메고 사는 남편을 데리고 산 지 벌써 6년이다. 방송 카메라를 안고 사는 애인으로 함께 한 시간까지 합하면 10년에서 조금 빠지는 세월이다.  내 남편은 ‘아스팔트 노동자’다. 그렇다. ‘아스팔트 노동자’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남들은 방송국 카메라기자라고 하면 폼 나는 직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곁에서 지켜볼 때에는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시청자의 눈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보다 사실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단다. 그렇게 영상 취재라는 것을 하다 보니 때론 시위대 속에서 페인트를 맞기도, 하고 경찰의 방패에 옷이 찢기기도 한다. 또 취재원들에게 떠밀리기도 하고, 험악한 상황에 말려들기도 한다.  그런 남편의 삶이 녹아있어서인지 텔레비전 뉴스는 내게 특별하다. 남편이 만들어낸 그림 너머엔 남편의 눈이 있다. 또 남편의 팍팍한 삶이 묻어있다. 가끔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의 어깨가 한없이 힘겨워 보이는 날은 그날의 뉴스도 힘겹고, 그의 어깨가 환한 날은 그날의 뉴스도 환하다. 어쩌면 남편은 카메라 렌즈 너머의 삶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는 죽은 농민의 주검과, 또 하루는 내동댕이쳐진 포장마차 아줌마의 설움과, 또 하루는 정치인들의 가식적 웃음과도 말이다.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타 방송사 뉴스에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밤새며 취재원을 기다리며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는 우리 남편의 모습을... 그 모습을 보고 그간 이해하지 못했던 남편의 생활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남편이 말하길, 카메라렌즈에는 힘이 있단다. 그리고 그 힘을 알기에 조금 더 겸손하려고 하고, 조금 더 진실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대학시절 학교 앞 시위 현장이 담아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폭력시위가 될 수도 있고 평화시위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나?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카메라기자 마누라로 6년을 살다보니 이젠 조금 엇나간 화이트, 어색한 구도엔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전문가가  다 되었다며 비행기를 태우지만, 그것은 내가 전문가가 돼서가 아니라 남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증거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 그리고 그가 그의 관심이 집중된 것에 나도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오늘은 네 살 난 딸아이가 뉴스를 보다 말고, “엄마, 저 아저씨들 왜 싸워? 싸우면 안 돼!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한다. 우리 딸 말대로 ‘사람들이 싸우지 않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남편도 ‘행복한 뉴스’들로 말미암아 기쁘게 일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 남편 또 어딜 다녀왔나?’ 나는 오늘도 드라마를 보다가 뉴스로 채널을 돌린다. 조수진 (MBC 보도국 영상취재2팀 권혁용 기자 부인)
    2007-01-04
  • 제20대 전광선 신임회장 인터뷰
    전광선 신임회장 인터뷰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달 22일, 운영위원회에서 제20대 회장 선거에 단독 후보로 출마한 MBC 전광선 후보가 운영위원 선거를 통해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오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를 이끌어가게 될 전광선 신임 회장의 당선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  지금은 20년 근속 휴가 중이다. 이렇게 길게 쉬는 것은 입사 이래 처음인 것 같다. 10년 근속 휴가 때에는 3일쯤 쉬었는데, 회사에서 호출을 받아 나머지는 반납했다. 그래서인지 쉬는 것도 좀 어색하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주어진 긴 휴가인 만큼 알차고 즐겁게 보내고 싶다. 요 며칠간은 개인적으로 밀린 일도 하고, 해외에도 잠깐 다녀왔다. 며칠 후 제대로 된 여행도 다녀올 참이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소감  글쎄. 여러 후보가 나와서 경합해 당선이 되었으면, 감회가 남다를 테지만, 아직 피부에 와 닿는 것이 없어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현재 회장이신 19대 곽재우 회장을 포함해 이전 회장님들이 모두 훌륭하게 협회를 이끌어주셔서 그에 대한 부담이 크다. 하지만 선출이 된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다. 처음이라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많이 이해해주시고 도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의 협회에 대한 생각  해가 갈수록 협회의 틀이 갖추어져 가는 것 같다. 단순한 친목단체에서 벗어나 회원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단체로 발돋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협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회원들의 재교육을 위한 수중촬영교육이나 디지털 편집 교육, 우리 직종 홍보로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대학생 명예 카메라기자, 그리고 보도영상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체계적인 정리를 위한 저술 사업 등이 그 예이다. 내가 회장이 되더라도 이러한 부분은 이어갈 생각이며, 좀 더 확대 · 발전시킬 예정이다. 미래 카메라기자협회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  앞에서도 말했지만, 협회는 회원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단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기능을 하고 있지만,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카메라기자가 힘을 가지려면, 카메라기자협회가 힘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카메라기자 개개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협회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신임 집행부 구성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현재 사무처장을 비롯해 각 국장은 결정된 상태다. 내가 지금 휴가 중이라 아직 함께 논의를 하지 못했지만, 휴가가 끝나면 함께 모여 운영위원과 편집위원을 선정하고, 임기 중 진행할 사업의 세부 계획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회장으로 취임하신 후, 진행하시고자 하는 사업이 있으시다면  사업에 앞서 우선 회원 간 교류 기회 확대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다. 협회도 네크워크라고 볼 수 있지만, 회원들끼리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정기 수련대회뿐이라서 아쉬움이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집행부와 논의해 보아야겠지만, ‘소모임’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업으로는 ‘전문인 연수’를 집중적으로 하고 싶다. 현재 방송 환경이 급변하면서 모든 직종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 카메라기자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위기라고 볼 수도 있으나 뒤집어 보면 기회이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카메라기자들이 미래를 위한 준비, 즉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수중 촬영 교육이나 항공 촬영 교육 등 협회에서 마련한 교육 기회 부여는 물론이고, 언론 관련 기관이나 재단에서 보내주는 해외 연수도 협회 차원에서 접촉해 매해 연수 인원을 배정받도록 할 계획이다.  또 하나 이야기하자면, 대학생 카메라기자 인턴쉽 제도를 도입이다. 현재 각 대학 신문방송학과의 경우, 방송 실습수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실습대신 대학과 협회 그리고 방송사가 연계해 학점이 인정되는 인턴쉽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것을 잘 운용하면, 학생들에게는 방송사에서 실무를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카메라기자협회는 홍보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방송사는 우수한 인재 발굴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대통령 선거, 베이징 올림픽 등 다가오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비한 취재 준칙 수립이나 그에 대한 교육에 힘을 기울일 계획이다. 협회 회원들에게 한 말씀  다른 말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또, ‘힘 있는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를 만들기 위한 원동력은 회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이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두 손 모아 기대한다. 송년 인사 한 마디  지나간 하루보다는 다가오는 하루가, 다가오는 하루보다는 지금의 하루가 더 중요하다. 2006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번한 얘기 같지만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며, 혹은 다가오는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니까. 2007년은 회원 여러분 모두,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7-01-03
  • 카메라기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카메라기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19대 회장 임기를 마치며 “회원들의 뜻을 정확히 읽어내는 협회를 만들겠습니다!”  2년 전 이즈음, 제가 카메라기자협회 첫 직선회장을 맡으며 회원 여러분께 드린 약속입니다. 저 나름대로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임기를 마무리하며 그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만족감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회원 여러분께서 협회 발전을 위해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은 저와 19대 집행부의 큰 힘이 되었고, 디지털 시대에 카메라기자들의 전문성과 위상을 제고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회원 여러분!  올해로 창립 19돌을 맞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33개 회원사, 620여명의 회원을 둔 주요 언론단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협회 창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방송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 TV 보도영상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방송 환경은 우리 카메라기자들에게 ‘발상의 전환’과 ‘변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카메라기자의 정체성에 위기가 올 수도 있고, 반대로 힘찬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2006 한국방송카메라기자대상」 심사를 진행하면서 눈에 띄게 늘어난 카메라기자들의 1인 기획 제작 작품들을 통해 우리들의 숨은 능력을 보았습니다. 임기를 마치며 회원 여러분과 함께 다지고 싶은 각오가 있다면 ‘디지털 시대를 리드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열정과 노력이라는 자본을 아낌없이 투자하자는 것입니다.  끝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전광선 신임 회장과 20대 집행부에도 뜨거운 성원을 부탁드리며, 카메라기자협회의 무궁한 발전과 회원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곽재우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회장  
    2007-01-03
  •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취재기 - 세계의 축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속한 범주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자신에게 맞는 위치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 벗어나 패기와 도전 의식을 가지고 무엇인가 시도한다는 것, 그것은 짜릿함 그 자체일 것이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직종의 한계를 넘어 창의적으로 특집 제작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2005년 11월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 왔다.  필자는 정기 인사와 때를 같이해 영상기획팀장으로 보직을 받았다. 그리고 주변 선 후배들과 논의하고 고심한 끝에 8부작, 세계의 축제라는 아이템으로 특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세계 각 국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수많은 지역 축제와 문화적 특성을 살린 페스티벌이 있다. 그러한 축제들은 또한 고급화 되고, 상업화 되어 엄청난 수익 창출까지 이루어 내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거창한 이름 속에 실속 없는 내용들만 담아낸 축제들이 많아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본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세계 각국의 축제현장에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나라의 축제와 비교 분석하여 우리 것을 고급화시키고, 국제화시켜 수익창출에까지 이바지할 수 있는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운이 좋았던지 제작지원금도 필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인맥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몇 곳에서 협찬을 받은 것이다.  보직부장이 수시로 자리를 비우고 해외 및 국내 출장을 팀원인 카메라기자와 함께 다닌다는 것에 주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고, 그 부담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해외출장 111일, 국내출장 25일이라는 긴 여정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 그리고 겨울로 이어졌다.  먼저 긴 취재기간 동안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찔했던 순간의 기억들을 소개한다.  중국 하얼빈에서의 취재는 공안과 규제와의 싸움이 아니라 혹한과의 전쟁이었다. 영하 38도 이상 되는 기온에서의 야외촬영은 몸과 마음을 순식간에 얼려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카메라 핸드그립을 잡고 10초만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바로 손가락 끝이 마비되고, 눈썹에 눈꽃이 피고 몸 전체는 얼음조각상으로 변하는 듯 마비증세가 왔다. 정말 다시는 경험하기도 싫은 기억이었고 그 현장에서 무려 4시간 동안 필자와 함께 고생한 오유철 기자는 평생 잊지 못할 동지가 됐다.  프랑스 니스 카니발과 망통 레몬 축제를 취재하고 브라질 리오카니발을 연이어 취재하려던 계획은 느긋한, 그리고 안전 제일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프랑스인들 때문에 완전히 무산될 뻔 했다. 2월 19일 니스에서 출발해 20일 서울에서 1박하고 여름옷을 다시 챙겨 21일 브라질로 출발하면 몸은 좀 피곤하지만 가능한 일정인 듯 했다.  예정대로 모든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활주로에는 보슬비가 약간씩 내리는 가운데 작은 파도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파리로 우리 일행을 데려다 줄 에어 프랑스 비행기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천으로 모든 비행 스케줄이 취소됐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항공사 직원들은 다음날 가든지, 아님 가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투였다. 우리는 3시간 후에 인천행 대한항공을 갈아타야 하는 일정인데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우선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나는 후배에게 짐을 다시 찾으라고 얘기한 후 다른 항공 일정을 알아보았다. 다음날 마르세이유발 파리행 오전 6시 비행기를 타면, 파리에서 에어 프랑스 편으로 21일 오전 10시 경에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인천에서 당일 오후 3시 출발하는 브라질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 듯 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체크아웃을 한 호텔에 다시 투숙했다. 몸과 마음은 파김치 상태였고,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 2시간을 차로 달렸다. 마르세이유 공항에 도착하니 파리행 에어프랑스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다시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힘든 상황이었다. 김윤석 기자와 필자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브라질 리우 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스페인의 봄맞이 축제를 대표하는 발렌시아의 파야축제가 있다. 파야 축제는 사회적, 도덕적 금기가 허물어지는 일탈의 자유를 제공한다. 파야 축제의 주인공이자, 파야 축제를 대표하는 조형물 파야, 이들은 마지막 밤 축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이 화려하고 강렬한 축제 취재도 그리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았다.  프랑스에서 transit을 하면서 파리 드골공항이 수하물의 블랙홀 이라는 악명을 익히 들었던 터라, 필자는 담당직원에게 수하물이 스페인 발렌시아 공항까지 잘 도착하게 해달라는 당부를 몇 번이나 하고 에어 유로파(스페인 항공)에 몸을 실었다. 늦은 밤에 도착하여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가방 3개는 나오지 않았다. 분실물을 신고하는 대행사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니스에서의 일이 생각나면서, 느낌이 이상했다. 발렌시아 공항엔 파리로부터 하루 2번 비행기가 도착 하는데 다음날 찾은 개인화물 2개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장비가방은 이상하게(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골탕을 먹이는 듯) 3일간 행방불명이 됐다. 대한항공 파리 지사에선 문제의 그 가방이 비행기에 실리기 위해서 화물칸으로 이동하는 것을 매일같이 확인하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그러나 3일간 똑같은 확인이 반복 되었으나 우리는 가방을 받을 수가 없었다. 분실화물을 담당하는 사무소의 본사는 바르셀로나에 있고 공항에 있는 영업소 직원들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당당하게(?) 공식적인 답변만을  반복했다. 너무 화가 났지만 가방을 찾아서 무사히 취재를 마치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취재를 할 수가 있었다. 정희인 차장과 필자는 이 사건으로 파리의 드골공항을 이용해 transit 할 때에는 가능한 짐은 개인 휴대를 해야 한다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이번 특집(8부작, 세계의 축제) 제작은 카메라기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연출 및 촬영을 담당하여, 멀티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확인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지난 1년간 힘들고 어려운  많은 취재 일정을 소화 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팀원들 모두 건강하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해내고자 했던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작품을 마무리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고 있는 정희인 차장, 오유철 기자, 김윤석 기자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전한다.  이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더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YTN 보도국 영상기획팀장 조항윤
    2007-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