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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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메라기자, 다큐멘터리 제작 활발
    제목 없음 카메라기자, 다큐멘터리 제작 활발  각 방송사 보도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열기가 대단하다. 얼마 전부터는 카메라기자가 연출과 촬영을 함께하는 카메듀서로서 작품에 임해 활약한 예도 종종 볼 수 있었다.  KBS의 경우, 11월 20일부터 올 가을 정기 개편의 일환으로 보도본부 내의 정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신설될 예정이다. 신설되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쌈"이다. 현재 취재기자 15명과 촬영기자 6명(장익환 데스크 이하 5명)이 전담하며 진행되고 있고, 그 외에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그때그때 충원하기로 한 상태다. 이 다큐멘터리의 방송시간은 매주 월요일 저녁 11시 35분부터 50분간으로 정해져 있으나,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또, 한국사회의 주요 현안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준비 중에 있는데, FTA 문제, 북한의 핵실험 이후의 한국의 안보문제, 한국산업의 새로운 경제 활성화 문제 등과 우주과학 분야, 여성의 육아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밖에도 현재 운용중인 탐사보도팀의 다큐멘터리 제작물도 위에서 언급한 "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현재 이 탐사보도 부문에는 윤기현 데스크를 비롯하여 3명의 카메라기자들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SBS는 한국이 추구해야 할 미래의 비전과 행동 강령을 제시한다는 의도로 기획된‘미래한국리포트’를 2004년부터 계속 제작해 오고 있다. 2004년에는 ‘고령화의 충격’을 주제로 1,2부로 나누어 제작되었으며, 2005년에는 ‘일자리의 위기’를 주제로 역시 1,2부로 나누어 제작, 방송되었다. 올해는 ‘행복의 조건’을 주제로 해 제작, 방송된 상태다. 이 외에도 SBS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디지털 미래의 모습을 집중조명 한다는 기획 하에 서울디지털포럼이라는 다큐멘터리도 계속 만들어오고 있다. 또 SBS에 정규 편성된 본격 HD다큐멘터리인 ‘SBS 스페셜’에도 카메라기자가 참여해 제작한 작품이 꾸준히 방송되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5일에는 한일상 기자가 참여한 ‘국과수 사건파일: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가 방영되었고, 오는 12일 김대철 기자가 영상취재를 한 ‘(가제)이용운 일가의 북한탈출, 그 후 10년’이 방영될 예정이다.  특히 YTN은 카메라기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연출한 ‘축제’라는 8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고장마다 나름의 축제가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축제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한 아쉬움에서 기획된 작품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들을 찾아보고 이것의 운영 방법 및 특, 장점 등을 찾아내 우리나라의 축제와 연결시켜 그 발전을 도모해 보자는 것이 이 작품의 취지이다. 제작에는 총연출을 맡고 있는 조항윤 부장을 필두로 오유철, 정희인, 최윤석 기자가 참여했다. 제작은 지난 1월부터 시작해 오는 12월에 마무리를 지을 계획이며, 내년 1월에 신년 특집으로 방영할 예정이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6-11-22
  • 수중 촬영의 기본,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수중촬영 교육 후기 Ⅰ> 수중촬영의 기본,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강사님이 말씀하시길, "중상급자는 일단 장비 챙겨서 물속으로 들어가세요. 물속에서 봅시다~!"  중상급반에 속한 나는 재빨리 뒤로 한발 물러나며 물었다. "공기탱크와 레귤레이터가 제대로 연결되었는지 검사 좀 해주세요. 혹시나해서요... 강사님, 이거랑 저것도 확인 좀... 10월인데 춥진 않을까요?"  제주도 서귀포에 위치한 다이브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초급과 중상급 반으로 나뉘어 중급반에 배정은 받았지만, 땅에서 만난 지 몇 분이나 됐다고 바다 속에서 만나자는 말인가?  지난 7월 빠듯한 일정으로 오픈워터 과정을 마쳤었기에 출렁거리는 파도만큼이나 여러 가지 걱정에 마음이 울렁댔다. 다시 초급반에서 편하게 교육을 받아야하는 것일까? 이왕 교육받는 김에 다음 단계를 이수해야 하는 것인가? 장비를 순서대로 체크한 뒤 시퍼런 섶섬 앞바다에 심청이마냥 몸을 던졌다. 머리가 수면으로 완전히 잠기자, 물속에서 서서히 하강하는 동료들이 보였고, 바다 속의 평화로운 모습에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어항에 들어있는 물고기처럼 바다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돌과 해초 사이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 위로 우리가 기차놀이를 하듯 섬 주위를 맴돌았다. 조개(굴?)를 돌로 깨서(이래도 되는건지 모르겠지만)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다. 우리가 취재해야할 대부분의 수중상황은 정반대겠지만, 일단 제주도의 바다밑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23도의 수온도 10월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해질녁에 뭍으로 나온 우리는 연신 하품을 해대며 서귀포 수협강당에서 11시까지 이론교육을 받았다.  교육 둘째날, 6시에 기상한 우리들은 반별로 나뉘어 다녔다. 초급반은 수중환경에 적응하는 기본 수중교육을, 중급반은 짝(버디)을 이루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교육을, 상급반은 수중에서 카메라를 다루는 교육을 받았다. 수중에서 장비를 벗었다 입기도 하고, 공기가 고갈된 상황에 대처하는 법등 수중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교육을 계속 반복했다.  셋째 날은 서귀포 앞바다의 기차바위라는 포인트에서 보트 다이빙을 했다. 비교적 깊은 30M의 수심에 조류도 있었다. 선장님이 오늘 같은 날은 시야가 잘나오는 편이라고는 했지만 정작 들어가보니 5M정도 밖에 안보였다.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나와 내 버디였던 KBS 조정석기자 그리고 우리가 내뱉는 공기방울만 보일뿐 세상이 온통 파랬다. 순간 작은 공포(?)가 밀려왔다. 우리 둘밖에 없나? 다들 어디 갔지? 얼마나 더 내려가야 바닥이 보이는 거지? 다이빙 컴퓨터를 확인하며 20M 지점을 지나는 순간 바닥이 희미하게 보였다. 섬주위의 바다보다 특별한건 없었다. 돌과 해초류만 있을 뿐 물고기들도 거의 없었다. 바닥에 거의 닿아서야 같이 내려온 우리 팀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가 조류 때문에 30m를 하강하면서 거의 50m를 흘렀던 것이다. 잠시 기차바위를 구경하다가 상승하겠다는 수화를 하고 공기방울을 따라 수면으로 올라왔다. 해냈구나~!!!  개인별로 7개의 공기탱크를 완전히 비운 3박4일의 짧다면 짧은 여정이었지만, 카메라기자로서 수중 상황에서 어떻게 촬영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걸음마를 배울 수 있었던 최고의 기회였다. 바다라는 거칠고 무궁무진한 공간과, 강이나 호수같이 겉은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에서, 물가에서 발만 동동구르며 궁금해했던 내게, 제주도에서 봤던 물밑세계는 분명 새로운 세계였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카메라기자 협회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다른 동료들에게도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김경철 기자 hialex@mbc.co.kr
    2006-11-20
  •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수중 촬영 교육 후기 Ⅱ>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수중 촬영 교육의 필요를 절감할 때 즈음  지난 7, 8월 환경기획 “위기의 금강을 살리자”라는 기획 리포트 시리즈물의  영상취재를 전담하면서 난 대전, 충남.북, 전북 등 5백만의 젖줄 금강을 발원지인 ‘뜬봉샘’부터 충남 서천의 금강 하구 둑 까지 20여 일간 천리 길을 직접 발로 뛰면서 취재를 다녔다.  주로 물과 관련된 취재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중촬영을 할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스킨스쿠버 경험이 전혀 없던 난 최종 리포트 편집 시 그저 편성제작팀의 수중 촬영 분을 가지고 편집에 임해야만 했다.  수중촬영이 이루어질 때마다 물 밖에서 그들을 기다려야 했고 내가 직접 하게 된 영상취재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수중촬영의 중요성과 수중촬영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촬영기자가 직접 물 속에 들어가 촬영을 한다면 보다 짜임새 있고 보다 영상구성에 맞는 촬영이 이루어질 거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카메라기자협회 홈페이지에서 수중촬영교육연수 공고를 접하게 되었고 데스크이신 윤정 부장과 촬영기자선배들의 적극적인 후원에 대전총국 막내인 내가 연수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중촬영 연수  제주도 다이버랜드에서 10월 27일 오후부터 30일 오전까지 계속된 수중촬영교육연수!  수영도 잘 하지 못하고 물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에겐 첫 날부터 바닷물 속에 들어간다는 것이 대단한 부담감으로 느껴졌다. 1시간 정도의 이론 교육과 장비 세팅 교육을 받은 뒤 처음 입어보는 스쿠버 수트를 입고 장비를 챙겨 제주도 밤섬으로 향하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과 후회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마음을 다 잡고 애써 같이 한 9명의 오픈워터 교육생끼리 사진도 찍고 서로에 대해 인사를 하며 긴장을 없애려 했지만 모두들 나와 같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제주도 밤섬에 도착 후 이미 설치 되어있는 교육 장소에서 장비 세팅을 하고 한 명 한 명씩 바다로 들어가는 순간! 모두들 우려했던 거와는 달리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다소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 가뿐숨을 몰아 쉬며 마지막으로 뛰어들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여유에 용기를 얻어 천천히 물 속에 들어갔고 생각과는 달리 정말 BC 부력 조끼와 수트 등 양성부력의 힘에 입어 물에 둥둥 떠다니는 날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한 명 한 명 강사의 도움으로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오픈워터 교육생들! 이리저리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BC에 공기를 빼고 이퀄라이징을 연신 해대며 정신없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날 발견하며 신비한 세상이 아주 조금씩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르륵 부르륵“ 연신 거침 숨에 공기방울은 위로 향했고 조금 지나 난 무릎을 꿇은 채 바다 속 안에 있게 되었다.  내려오다 다시 물 위에 뜬 동료들을 기다리며 조금씩 눈을 크게 뜨게 됐고 조그마한 어류부터 산호초 밑에 모래바닥 그리고 미역들이 내 눈에 드디어 펼쳐져 보였다.  조금씩 손을 뻗으니 새로운 세계가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거친 숨을 내쉬며 육지에서 배운 마스크 물 빼기, 호흡기 빼고 다시 물기 등등 몇 가지 교육내용을 그대로 바다 속에서 힘겹게 교육받았다. 그렇게 30여분이 흐르고 공기통 잔여분을 체크한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한 명 한 명 다시 바다 위로 올라갔다.  위로 다시 올라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BC에 공기를 채운다고 물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감압을 하며 올라가야 하는데 어디 그게 쉬우랴!  처음엔 좀 되는가 싶더니 내 손은 이미 BC에 공기를 가득 채우고 핀을 힘차게 차며 상당히 빨리 물 위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분당 18M를 가야하는데 아마 10여 초 만에 올라간 듯하다. 그리고 금 새 바다 위에 떠있는 나! 얼마나 부끄럽던지 내일은 좀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을 가득 안고 바다 물속을 나왔다.  처음엔 말도 없이 묵묵했던 교육생들이 첫 교육을 마치자 모두들 언제 그랬냐는 듯 배를 타고 가는 내내 서로의 단점을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면서 강사에게 질문을 쏟아내며 각자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려는 노력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 날 역시 같은 장소에 가서 전 날 저녁 이론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오전엔 스킨다이빙으로 바다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진 후 다시 17M정도의 바다 속에 들어가 스쿠버 교육을 받으며 전 날 보다는 조금 여유로운 오픈워터 교육생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 속에서 각종 안전 교육을 마친 후 잠시간 바다 유영을 하며 바다 속을 구경할 때는 정말 너무나 황홀했고 또 다른 세계의 신비로움에 취해 환상적인 세계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물과 좀 더 친숙해진 우리  셋째 날 오전엔 밤 섬에서 좀더 어려운 단계의 교육인 웨이트와 공기통 풀고 다시 메기 등 오픈워터에겐 힘겨운 미션을 받고 교육에 임했지만 모두들 강사의 친절하고도 강도 높은 가르침 속에 조금의 실수만 있었지 문안하게 교육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젠 조금 더 바다 물과 친숙해진 오픈워터과정의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 마지막으로 문 섬에서 스쿠버교육을 받았는데 그 동안 배운 내용을 토대로 바다 유영을 하며 감압 능력과 중성부력능력 등을 체크해 가며 그것을 활용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어찌 3-4일 교육으로 이것이 다 되랴! 어설픈 유영능력으로 바다 속을 다니며 신기한 세계를 맛보면서도 나 자신의 부족함을 상당히 많이 느꼈고 많은 교육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속에서 사진도 찍히고 물고기들에게 먹이도 줘 가면서 다소 여유롭게 바다 속 유영을 하면서 새로운 자유로움과 누구나 느낄 수 없는 오직 바다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난 스릴을 맛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물 속 운전면허증을 받다!  이렇게 3박 4일의 교육은 끝나고 드디어 오픈워터 자격증을 받는 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드디어 물속에서 다닐 수 있는 운전면허증을 받는 날이 아닌가!     이젠 나에게 맞는 웨이트 무게 그리고 호흡 조절법, 중성부력 맞추기 등등을 내 기억 속에 간직한 채 시간이 나는 때마다 가까운 수영장을 찾아서라도 내 능력을 체크하고 더 노력하고 배우리라 다짐해 본다. 또 이런 기회를 통해 수중촬영을 할 때 가 온다면 내가 직접 물 속을 자유롭게 영상취재 할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 생각되어진다.  너무나 짧았던 3박 4일의 수중촬영교육연수 매일같이 밤 11시까지 실전과 이론교육을 병행하면서도 웃음과 재미와 즐거움을 안겨준 김정미 강사와 황 강사!  그리고 강사에게 수많은 태클을 걸고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고 노력하던 그리고 서로에게 용기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강릉MBC 김종윤 선배, GTB 이광수 선배, YTN 진민호 선배, KBS 김용진 선배, 전주방송 소재균 선배, 광주방송 최복수 선배, 제주방송 부제일 선배, 오픈워터팀 막내 CBS 이상우 후배  그리고 KBS 대전의 나 이렇게 9명의 오픈워터팀 교육생들!  모두 모두 수고하셨고 오늘의 이 느낌을 간직한 채로 모두 각자의 지역에서 최고의 수중촬영기자로 거듭나시길 기원한다. *^^* KBS 대전총국 보도팀 심각현 기자
    2006-11-20
  • 북한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핵실험 그 후, 평양을 가다> 북한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비행기는 지금 압록강을 건너 공화국 영토 위를 날고 있습니다.  중국 선양공항을 출발한 고려항공 비행기가 40분을 날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한 순안공항 주변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눈에 들어왔다.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찾는 평양, 급변하는 정세 때문인가 왠지 모를 막연한 긴장과 흥분으로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차에 오르자 우리를 감시할 북측 안내원 3명이 올라탔다. 민족화해협의회 소속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들은 3박4일 내내 우리를 감시했다.  차창 밖의 평양시내를 촬영하자 대뜸 하는 말이 "윤선생 우리가 상부에 보고하지 않도록 허락하는 곳만 찍읍시다. 이동하는 차에서의 촬영은 금지입니다."    핵실험 이후 북한 거리에는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기정사실화하는 붉은색 구호들이 넘쳐 났다.  ‘세계적인 핵보유국을 일떠세워 주신 절세의 령장 김정일 장군 만세??핵보유국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도전을 당당히 거부하자?, ?핵보유국이 된 5000년 민족사의 역사적 사변을 길이 빛내자? 등 10여 종의 구호를 볼 수 있었다.  우리를 감시하는 안내원에게 핵실험을 한 이후의 분위기를 물었다. 그는 대뜸 술을 한번에 들이키는 제스처를 취하며 “ 모두들 기분이 좋아 밤 새워 술 마셨다. 그동안 미국의 선제공격 위협 때문에 걱정들을 많이 했지만, 이젠 우리도 핵을 보유했기 때문에 모두들 안심하는 분위기다.” 또 “우리가 핵실험을 하니까 미국과 일본이 벌벌 떨고 북한과 미국의 일대일 대화를 주장하는 미국 민주당의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력 사정은 지난해보다 나아진 것이 분명했다. 순안공항을 통해 입국한 1일 밤, 평양 시내 거리 전역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90% 이상의 가구에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북한 안내원은 중국에 수출하는 석탄 가운데 많은 양을 내수로 돌렸다고 말했다.  평양은 각각 5만 킬로와트 급 화력발전소(동평양화력발전소,서평양 화력발전소)로 전기를 공급한다. 두 화력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력이면 평양은 충분하다고 한다.  을밀대와 묘향산에서 만난 시민들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소리 높여 웃는 모습은 우리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어린 학생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아이 부끄러워...”하며 우리를 피해 달아나는 수줍은 여학생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결혼식을 마치고 사진을 촬영하러 나온 신랑,신부와 그늘에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복장만 아니라면 이곳이 북한이라는 생각을 잊을 정도였다.  감시가 엄격해서 취재가 매우 어려웠다. 북측 안내원이 피곤해서 졸기라도 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마음껏 차창밖의 모습을 영상에 담고 취재기자는 혹시 안내원이 깰가봐 온몸으로 차창으로 내리쬐는 햇빛을 막았다.  문제는 기자 스탠드 업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동트는 새벽에 몰래 나와서 양각도 호텔 주변 대동강변에서 주체탑을 배경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난 우리는 양각도 호텔을 나섰다. 미리 점찍어 놓은 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언제 왔는지 민화협 안내원들이 우리 뒤를 쫓고 있었다. 급하게 나왔는지   모두 체육복 차림이었다. “선생들 좋게 말할 때 들어갑시다.” 무조건 촬영은 안된다는 자세였다. 그들의 험악해진 표정을 보고 순순히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취재가 끝나갈 무렵, 우리를 감시하던 안내원으로부터 검열을 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윤 선생 만찬 끝나고 한 번 봅시다. 우리도 뭘 찍었는지 알아야 하잖소.” 다행히 우리는 매일 찍은 화면을 노트북과 외장하드에 저장시켜 놓았다. 노트북에 카메라를 연결해서 마지막 테잎의 내용을 캡쳐시켜 놓고 만찬장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북한군인들, 남루한 주민들, 초라한 들녘의 풍경, 중요 건물들, 평양부감(양각도호텔 전망대 식당에서 찍은 부감이 나가면 대공 방어시설의 위치가 파악될 수도 있다고 한다) 등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캡쳐된 화면이 있던 나는 실랑이 하는 척 하며 적당히 삭제해 주었다.  평양을 수년간 오간 기업인들은 평양이 중국을 닮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금지하지만 돈이 된다면 묵인하는 자세를 말한 것이다. 평양시내에 외국인(특히 한국인)을 위한 안마시술소가 있고 성도 판다고 한다. 또 가라오케에서 전에는 종업원 손도 못잡게 했는데, 요즘은 먼저 달라붙는다고 한다. 북한이 변화의 길을 접어든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그 길이 개방이 아닌 외화벌이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아 씁슬함을 지울 수 없었다.  방송이 나간 후, NHK, 후지TV, TV아사히 등 일본의 여러 방송사에서 전화가 왔다. 평양 그림을 사겠다는 것이다. 특히 NHK는 핵실험 구호와 평양의 남루한 모습만 집중적으로 복사해 갔다.  일본의 관심이 반갑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KBS 영상취재팀 기자 윤희진
    2006-11-20
  • 비에 젖은 금강산
    <핵 실험그 후, 북한을 가다> 비에 젖은 금강산  ‘풍악산, 가을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풍악이라는 별칭을 붙였을까? 곱디고운 풍악의 단풍은 어떠할까? 그 모습을 영상에 담으면 어떨까?’ 카메라기자라면 가을 금강산, 그러니까 풍악산을 영상에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올 가을 들어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던 중 마침내 기회가 왔다. 그것도 아주 묘한 시기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발표를 하고 전 세계가 북핵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시점. 일부 사람들은 금강산 관광을 예약했다가 포기를 하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행선지 역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개성공단과 더불어 금강산관광이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과연 그렇다면 현지 사정은 어떤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이 늘어났다.  10월 17일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  취재팀이 남측 CIQ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관광객들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소 두려운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기대감과 긴장감에 얼굴이 상기된 사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기대감과 긴장감에 약간 상기된 얼굴들이었다. 그 때 내 얼굴도 역시 그들과 같았던 것 같다.  버스에 오르고 남측 통문을 통과한 버스가 북한 땅, 그리운 금강산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관광 안내원이 간단한 주의사항과 함께 남북을 가르는 155마일의 휴전선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휴전선 철책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요?”  안내원이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당연히 휴전선을 TV에서 많이 나왔던 굳건히 세워진 철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온 것은 남방한계선에 세워진 우리 측 철책이었다. 우리는 새로 개통된 동해선 철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달리며, 진짜 휴전선을 보았다. 다 쓰러져 가는 나무 말뚝들, 그것이 휴전선의 표식이었다. 동에서 서로 1280여개의 나무 말뚝이  남북을 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버스는 북측에 들어서고, 북측 초소를 지나 너른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창밖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허리를 굽히고 뭔가 농작물을 가꾸는 듯 보이기도 하고, 도로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지나가는 버스 행렬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날은 특히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마침내 버스는 금강산 관광의 시작점인 온정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예보보다 빨리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려한 단풍의 꿈이 빗물에 젖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온정리에서 바라본 금강산은 시커먼 먹구름에 휩싸여 마치 폭풍전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슴 한 쪽이 무언가에 막혀있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땅콩 드시라요. 맛있는 북한 땅콩 맛 좀 보시라요.”  온정리 기념품 판매소에서 나온 흰 셔츠에 말끔한 남자가 접시에 든 땅콩을 관광객들에게 내밀었다. 조청과 함께 버무린 과자 같은 땅콩이었다. 그 맛을 보는 관광객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금강산의 먹구름 때문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 했다.  후두둑, 후두둑, 만물상으로 가는 버스가 산을 오르는 동안 빗줄기는 더욱 세차게 몰아쳤다. 이윽고 만물상 입구에 내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고, 이 상태로 관광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마저 생겼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우비를 입고, 우산을 들고, 삼삼오오 만물상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처럼의 금강산 여행에 왠 비란 말인가. 날씨까지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푸념을 할만도 한데, 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자못 밝았다. 드디어 금강산을 오르게 되었다는 마음에 모든 시름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관광객들은 어느새 수려한 단풍에 빠지고 가을비 우수에 젖어 금강산에 동화돼 버렸다.  한 관광객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에 걱정이 된 나머지 금강산 관광예약을 취소했다가, 관광이 계속된다는 소식에 다시금 신청하여 금강산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걱정은 됐지만 오기를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와서 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우리 남한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너무나 평온하기만 해서 오히려 이상하다”, “금강산 이름만큼 너무 아름답다” 등 등 대체로 오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정작 궁금한 것은 북측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과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는 것일까? 그들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금강산 관광과 핵실험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부 북한사람들은 이번 일로 관광 사업이 피해를 입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는 듯 했다.    나는 비오는 산을 오르며 관광객과 함께 어우러지는 단풍을 영상에 담느라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렌즈에 뽀얀 습기도 차고 보통의 산행취재보다 배는 힘이 들었다. 하지만 빗물에 젖어 물기를 머금은 단풍은 햇살에 빛나는 단풍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관광객들 역시 금강산에 푹 빠져있는 듯이 보였고, 즐거워 보였다. 여행이란 그곳이 어디든 즐거운 것인가 보다. YTN 영상취재팀 기자 이동형  
    2006-11-20
  • Re:Re:MBC 태그의 뻘쭘함.
    맞습니다. 독일제로 개당 13만원~18만원 정도 합니다. 마이크 값과 비슷합니다. 국산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6-11-14
  • 해외 출장시 현지에있는 Agency를 활용하세요
    안녕하세요 AP Television서울지국 문승재 입니다. SBS에서 태국 구테타 취재 하신 기자의 글을 읽고 한가지 도움이 될까 해서 글을 씁니다. 저도 이곳 저곳 출장을 다녀 보았지만 항상 공항에서 출발 전에는 긴장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생소한 나라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것이 가장 큰 고민이지요. 그래도 다른 회사의 기자들 보단 마음이 편할수있는것은 현지에 저희 직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현지 공항에 도착하면 어떤 방법을 쓰던지 현장까지 가야하고 그것은 거의 대부분이 현지 경험이 많은 (현지 가이드 보단 현지 기자가 정세에 정통합니다) 저희 동료들이 정보를 줍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국내 방송사들은 거의 대부분 저희나 로이터 TV의 고객사 입니다. 떠나기 전에, 또는 출장을 떠나서 현지에 도착한 후에 현지 로이터나 AP텔레비젼 사무실로 연락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사정이 허락하면 한번 지국을 방문해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들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굳이 저희나 로이터의 시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인사를 하기위해 왔다고 하면서 그날의 스케줄이나 로이터나 AP가 취재하는 일정을 안다면 적은 인원으로 모르는 곳으로 가는 국내 방송팀의 취재활동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외국 방송사들이 현장에서 저희 지국을 찾고 서로가 안면을 트면서 정보를 교류하곤 합니다. AP 텔레비젼나 로이터 TV는 방송사를 위한 방송사임을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p.s. 시설이용은 유료이나 정보공유는 무료입니다...)
    2006-10-30
  • <줌인> 시청자들은 혼란스럽다
    시청자들은 혼란스럽다  지난 9일 북한이 핵무기의 폭파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의 모든 언론은 진위여부와 그 실험 규모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정보를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예의 그렇듯 각 방송사에서는 특보를 시작했고 앵커와 전문가를 동원한 대담이 이어지며, 혹시 핵실험을 했을 경우에 대비했던 다양한 사전 제작 프로그램들을 방영했다. 이 과정에서 쓴 웃음이 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북한의 핵실험을 가장 먼저 전한 것이 한국의 언론이었고, CNN 등 외신들은 한국 언론의 입을 빌려 보도하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일부 방송에서 CNN을 연결해 동시통역하는 방송을 했다. 물론 외신들이나 미국 등의 반응을 전달하기 위한 형식이었으나, 마침 CNN의 보도내용은 한국의 언론들이  어떤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우리가 보도하는 내용을 외국의 언론을 통해 동시통역하며 또다시 내보내는 어이없는 일이 된 것이다.  국제적인 큰 사건이 벌어져 뉴스 속보가 시작되면 항상 외신 특히 CNN을 연결해 동시통역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이런 관례는 한국의 뉴스영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북 핵실험 관련 뉴스영상을 보면 특히 그렇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 영상은 없다. 케케묵은 핵발전 시설이나 지금은 있지도 않을 북한연구원들의 연구모습 뿐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가는 뉴스의 배경화면은 채워야하니, 사막에서의 핵실험장면과 무지 오래된 핵실험 버섯구름 등의 영상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뉴스화면을 채웠다.  불과 10년 전의 뉴스를 보면 아나운서가 자료화면이나 관련영상 없이 기사를 읽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기사를 읽는 아나운서의 얼굴 보기가 무척 힘들다. 그만큼 자료화면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 방송에서는 산불이 난 영상도 자료로 방영한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로 자료화면의 폐해는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 사건처럼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중요한 소식에서 아무 관련도 없는 영상이 난무한다면,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나 언론인이 아닌 시청자들은 무엇이 현재 상황이고 자료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가뜩이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민들의 정서가 불안한 가운데 지나치게 자극적인 영상의 사용은 국가의 질서 유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한국의 방송의무에 크게 반하는 행동일 수 있다. 다행히 일부 방송사는 방송 중에 북한 핵실험과 관련 없는 영상의 사용을 중지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관례는 특정 사건에서 지시하는 모습보다는 원칙적으로 없앨 수 있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신뢰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뉴스영상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그 자리를 내줄 날이 가까워온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2006-10-20
  • 보도영상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제목 없음 보도영상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저작권은 권리는 보통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이 갖는다. 그러나 뉴스를 다루는 방송이나 신문의 기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이되 저작자가 될 수 없다. 뉴스저작물(뉴스영상, 사진, 기사, 칼럼, 사설 등)은 생산한 기자가 아니라 기자가 소속한 ‘언론사’가  갖고 있다.    저작권법 제9조에 따르면 ‘법인, 단체 그 밖에 사용자의 기획 하에 법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로서 법인 등의 명의로 공표 된 것의 저작자는 계약 또는 근무규칙 등에 다른 정함이 없는 때에는 그 법인 등이 된다. 다만 기명저작물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도제작물이 단체명의 저작물에 해당된다면 언론사가 저작자 인가?    영상저작물을 단체 등 법인이 제작하였을 경우 저작자를 결정함에 있어서 저작권법 제9조가 우선 적용 될 것인가 아니면 일반원칙에 따라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창작적으로 기여한 자를 저작자로 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견해가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영화나 TV드라마 등 통상의 영상저작물의 경우에는 영상제작자, 감독, 출연자 등 수많은 사람의 명의가 등장하므로 이들 영상저작물을 단체 명의 저작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기명저작물로  볼 것인가를 쉽게 단정 할 수 없고, 이러한 사실상의 곤란 때문에 통상의 영상저작물이 경우에는 저작권법 제9조가 적용 될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뉴스 생산물 역시 언론사를 저작자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민을 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  뉴스 영상의 경우 기명으로 단독 취재를 한 영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방송사에 종사하는 카메라기자라 하여 영상의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보도제작물은 영상과 기사가 하나가 되어 결과물이 완성되기도 하지만 영상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방송이 된 보도제작물의 저작권 문제도 지속적으로 카메라기자가 간과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보도되지 않은 영상자료의 저작권을 누가 갖느냐는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되어야 한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는 “뉴스 저작물이 공표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저작권이 회사에 있는지, 개인에게 있는지 명확히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되지 않은 영상 자료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언론사에 종사하는 사람이 생산한 모든 저작물의 권리는 회사에 있다’는 통념에 반발해 공표되지 않은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제기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언론사가 한 번 게재된 사진이나 기사를 다른 업체에 재판매함으로써 상당한 이익이 발생했다면, 언론사는 그것을 기자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미디어오늘 보도 9월13일자). 이렇듯 저작권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에서  카메라기자협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발전적 방향에 대해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
    2006-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