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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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위, 경인지역방송 재허가 추천 거부 2년 넘어
    방송위, 경인지역방송 재허가 추천 거부 2년 넘어 희망조합의 희망, 경인 시청자의 권리 박탈하는 이유 없는 행위    내년 5월 본 방송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해 온 경인TV는 올 하반기 각종 의혹에 휘말리면서 허가 추천이 중단되는 등 개국 준비에 상당한 차질과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28일 경인지역의 새 지상파방송 사업자로 선정된 경인TV 컨소시엄은 법인 설립, 사장 공모, 임시사옥 공사 등 개국 준비를 진행해왔고, 11월과 12월에 집중적으로 옛 iTV 희망조합원들의 복직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10월 16일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이 경인TV에 대해 금품 로비설, 이면계약설 등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시작됐고, 10월31일 국회 문광위 국감에서 1대 주주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국가정보를 유출하고 있다는 의혹이 터지면서 경인TV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현재 경인TV는 전체 희망조합원 187명 중 44명을 정식 고용했으며, 부분적으로나마 방송 시작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전반적인 고용 승계는 재허가 추천이 이루어진 이후, 최대한 하겠다는 것이 경인TV의 입장이다. 경인TV의 한 관계자는 “이미 백 회장도 물러난 상황에서 허가 추천을 무기한 미루는 것은 우리 조합원들의 희망뿐 아니라 경인지역 시청자들의 권리까지 박탈하는 타당한 이유 없는 행위라며, 방송위원회는 조속한 시일 내에 경인TV의 허가 추천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에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스파이 의혹을 불러일으킨 뒤 3개월 여 동안 표류하고 있는 방송위원회의 경인TV 새 사업자 허가 추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을 중심으로 한나라당 고조흥, 열린우리당 김교흥, 문병호, 홍미영, 민생정치모임 정성호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이란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여야 의원 87명의 서명을 받은 이번 성명서는 "경인지역방송이 멈춰선지 벌써 2년이 지났다. 경인지역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지역 지상파TV방송이 없는 지역방송 사각지대"라며 "1360만에 이르는 인구나 경제규모 등을 볼 때 경인지역에 방송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지역언론발전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김서중 교수는 방송위원회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신속히 대처할 방법을 찾아 허가 추천함으로서 경인지역 시청자들의 권익 보호에 힘써야 하는 것이 방송정책 주무기관으로서 방송위원회의 존재 이유”라고 밝히며, 나중에 져야할 책임이 두려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방송위원회의 역할이 아니라고 말했다.  경인지역 민영방송이었던 경인방송(옛 iTV)은 지난 97년도에 설립돼 2004년 12월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과정에서 방송수익 사회 환언 불이행과, 협찬·간접광고 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재허가추천이 거부됐다. 이후 방송위는 지난해 4월 영안모자와 CBS를 주축으로 형성된 경인TV 컨소시엄을 새 사업자로 선정했지만 지난 10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의 미국 스파이 행적 논란이 불거지자 모든 행정절차를 중단한 상황이다.  경인지역의 새 지상파 방송을 기다리던 40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1일 재허가 거부 2년을 맞아 “의혹 규명과 행정 절차는 분리해 진행돼야 한다”며 방송위원회를 상대로 조속한 허가 추천을 요구하고 나섰다. 의혹의 진위는 법정에서 판가름 나겠지만 방송위원회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7-02-20
  • 백두산은 과연 누구 땅인가?
    백두산은 과연 누구 땅인가?  2002년 5월 온 국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을 때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거대한 역사왜곡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사실에 대해 알지도 못하였고 2004년에서야 동북공정 사무처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정내용을 공개하면서 한국에 처음 보도되었다. 이에 격분한 한국정부는 고구려사 문제등과 관련하여 앞으로 역사왜곡은 없을 것이라는 5개항의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이는 외교적으로는 아무 구속력이 없는 구두약속에 불과하였고 2006년 중국의 역사왜곡 작업은 거의 완료되었다. 동북공정의 5년간의 계획은 비록 2007년 1월에 끝이 났지만, 중국 창춘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은 동북공정은 아직 끝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 대회였다.  2007년 1월 28일 후진타오 주석의 개막선언을 시작으로 중국의 공업도시 창춘에서 동계 아시안게임이 성대하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 창춘동계 아시안게임은 2008년 하계 올림픽을 앞둔 나라답지 않게 여러 면에서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특히 순수한 스포츠행사를 동북공정에 이용했다는 점은 결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중국정부는 개막식 식후행사부터 백두산을 창바이산이라 칭하며 중국의 땅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고, 각종 관광안내서마다 창바이산의 관광코스를 실어놓았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자국 심판진들에 의한 편파판정이었다. 어느 정도의 홈텃세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쇼트트랙에서의 편파판정은 그 정도가 심했고, 결정적으로 안현수의 금메달 실격은 우리 국민들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2007년 1월 31일 우후안경기장. 어젯밤 안현수선수 경기의 오심판정 때문인지 빙상장은 일찍부터 중국과 한국응원단으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오늘은 제발 오심 없이 한국선수들이 무사히 금메달을 따기를 바라며 관중석 중간에(이곳엔 따로 ENG존이 없다) 자리를 잡은 나는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경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허탈함을 느꼈다. 분명히 중국선수들이 우리나라 선수들을 계속해서 밀고, 잡고, 막았는데도 중국인 심판들은 침묵했고 결국 금메달은 중국에게 돌아갔다. 한국의 여자 계주팀은 한동안 경기장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행히 연이어 벌어진 남자 5000M 계주경기에서 깨끗하게 금메달을 딴 남자 계주팀 덕분에 빙상장은 온통 태극기 물결이 되었고 한국선수단은 축제분위기로 돌아올 수 있었다. 허겁지겁 선수들의 인터뷰를 마치고 시상식장으로 향하던 나는 문득 여자선수들의 손에 종이 한 장씩이 들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게 뭐예요?” “저희 세레모니 할거예요.” 뭔가 특별한 세레모니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시상식 입장순간부터 나의 카메라는 그녀들을 쫓았고, 그녀들이 들어올린 것은 바로 ‘백두산은 우리 땅’이었다. 그녀들의 백두산 세레모니에 한국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졌고, 중국인 대회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해 하였다. 스포츠행사에서의 정치적 세레모니에 대한 외교적 심각성은 뒤로한 채 나 역시 가슴 시원함을 느꼈고, 내가 취재한 뉴스를 접한 한국에 있는 국민들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백두산 세레모니는 연일 계속된 편파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녀들의 의사표시임과 동시에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사표시였던 것이다.  2007년 2월 1일. 사태의 심각성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중국정부는 문제의 ‘백두산 세레모니’에 대해 보도금지 명령을 내렸고 일체의 TV와 신문을 통제하였다. 다음날 출국하던 대한 체육회장에게 중국 측 대회관계자가 공항에서 고성이 오고 갈 정도로 크게 항의를 했다하고, 한국 선수단측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우리 취재단도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후속취재를 위해 찾아간 중국의 CCTV부스에서는 트라이포드를 세우기가 무섭게 모두들 달려 나와 취재를 거부하였고(첫날 환영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날 저녁에 있던 한국과 중국의 남자 아이스 하키장에서는 아예 취재를 통제하였다. 인터넷 송출을 위해 급하게 호텔로 향하던 나에게 중국의 사복 공안은 여권제시를 요구하며 동행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허술하게만 보였던 취재시스템이 한번 통제하기 시작하니까 정말이지 무섭게 통제가 되었다.  2007년 2월 4일 원자바오 총리의 폐회선언으로 대회는 끝이 났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이 끝났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연개소문 드라마에 발맞추어 중국에서는 설인귀 장군의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고 한다. ( 설인귀 장군 드라마는 고구려 말기 연개소문과 맞대결했던 당의 장수 설인귀를 영웅으로 묘사한 대형사극이다) 이 모든 것이 그 연장선상임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스포츠선수들의 정치적 세레모니가 결코 옳은 일은 아닐뿐더러 외교적으로 충분히 분쟁을 일으킬 만한 사안이지만, 저마다의 마음속에 이제는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면 세레모니를 한 선수들도 보도를 한 취재진들도 만족할 것이라 생각한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중국의 끝없는 지평선이 부럽지 않았던 것은 그네들 가슴으론 결코 품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재영 /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기자
    2007-02-20
  • <만나봅시다 - 제주카메라기자회 홍보부장 부현일(JIBS) 기자>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한 컷의 영상, 한 컷의 사진”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제주특별자치도 문예회관 제1전시실에서 제주카메라기자회가 개최하는 2006 보도 사진, 영상전이 열렸다. 올해 5회째를 맞은 이번 전시는 보도사진부문과 영상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보도사진부문의 보도 사진 130여점을 비롯해 영상부문의 2006년 10대 뉴스, 카메라기자가 본 2006년 영상뉴스, 현장을 누비는 카메라기자들의 활약상 등이 두루두루 선보였다. 그럼 이번 행사의 홍보를 전담했던 제주카메라기자회 홍보부장 부현일(JIBS) 기자를 만나보자. ◆ 제주카메라기자회에서 개최한 ‘보도영상 · 사진전’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본 보도영상 · 사진전은 역사의 기록자인 카메라기자와 사진기자가 현장을 누비면서 취재해 온 영상과 사진들 중 특별히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선별해 전시함으로써 도민에게 영상취재의 의미를 알리고, 카메라기자와 사진기자의 역할에 대해 도민에게 홍보하는 뜻 깊은 행사다. ◆ ‘보도영상 · 사진전’을 기획하게 된 계기  기획하게 된 계기는 아주 명료하다. 다름 아닌 ‘카메라기자 및 사진기자의 커뮤니티 활성화와 상호협력’이다. 좁은 바닥,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언론사는 22개. 제주의 크기나 사안 발생의 빈도를 따져볼 때, 적지 않은 숫자이다. 그렇다보니 기자들끼리 부딪히는 일도,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카메라기자와 사진기자들은 이런 취재현장의 폐단을 없애고, 카메라기자의 권익향상과 화합 도모를 위해 무엇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탄생한 것이 ‘제주카메라기자회’이며, 본 회 창립 직후 회원들의 단합을 위해 기획된 것이 바로 ‘보도영상 · 사진전’이다.   ◆ 보도영상전을 추진해오면서 어려웠던 점  가장 어려웠던 점은 너무 다른 두 매체(영상과 사진)의 조화를 이끌어 내는데 있었다. 같은 ‘제주카메라기자회’ 회원이지만, 카메라기자와 사진기자가 생각하는 바는 분명히 달랐다. 영상과 사진을 조화시키기 위한 논의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둘 중 어느 것이 주가 되느냐에 대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여기에 전시 시기 또한 논란거리였다. 이렇다 보니 차라리 전시를 따로 하자는 의견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불협화음은 조금씩 아름다운 화음으로 바뀌어갔고 ‘보도영상 · 사진전’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제주카메라기자회 회원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모아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 보도영상 · 사진전을 해 오면서 특별히 보람을 느꼈던 점  무엇보다 보람을 느꼈던 점은 보도영상 · 사진전으로 말미암아 ‘제주카메라기자회’가 카메라기자, 사진기자 할 것 없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해가 갈수록 더욱 발전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로써 우리 전시는 차츰 외부의 인정도 받게 되었다. 일예로, 도 차원에서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제주민들을 위해, 또 일본 재외도민들을 위해 순회 전시를 추진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한 컷의 영상, 한 장의 사진이 국경을 넘어서까지도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힘으로 제주의 역사를 전달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제주카메라기자회 회원들에게 안겨주었다. ◆ 앞으로 보도영상 · 사진전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램인가?  카메라기자나 사진기자의 사회적인 역할은 ‘역사의 기록자’라고 생각한다. ‘보도영상 · 사진전’은 ‘역사의 기록자’로서 우리 카메라기자와 사진기자들의 활동 내용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제주카메라기자회는 진실만을 전달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소명의식으로 제주 역사의 현장을 지켜온 우리 회원들이 보도영상 · 사진전을 통해 그 노력과 열정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나가가 건전하고 활기찬 제주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원동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러한 기치를 가지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 보도영상 · 사진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온 제주카메라기자회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회원 여러분이 없다면, 제주카메라기자회도 없다. 협회는 회원 여러분의 권익과 자질 향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협회에서 수립하는 여러 계획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단합’이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해주며 같이 머리를 맞댄다면 못 이룰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카메라기자회 회원 모두 ‘화합’과 ‘상생’이라는 본 회의 창립 취지를 가슴 깊이 새겨 언제나 단결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에 바라는 것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제주카메라기자회에서 하는 보도영상 · 사진전도 물론 의미가 크지만, 전국 방송사 카메라기자들의 단체인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차원의 ‘보도영상전’은 그 의미가 더욱 크며, 큰 의미를 가지는 만큼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 우리 직종에 대한 홍보를 원한다면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보도영상전’인 것이다. 전 국민에게 카메라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보도영상전’이며, 전국 카메라기자들의 단체인 우리 협회가 ‘보도영상전’을 선점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대규모가 아니더라도 우선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작을 해서 해를 거듭하다보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그러면서 발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꼭 ‘보도영상전을 개최할 예정이니 많은 참여 바란다’는 협회의 공문을 받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7-02-20
  • 디지털뉴스룸이 가져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디지털뉴스룸이 가져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디지털뉴스룸 구축에 필요한 기술 요소와 업무 변화  아날로그 시대의 방송기술이 영상제작기술과 통신 기술 중심이었다면 디지털 시대는 최첨단의 영상, IT, 디지털프로세싱, 네트워크 및 유비쿼터스 기술을 모두 융합하고, 방송 기업의경영 목표에 맞춰서 총합적으로 기술장치적, 조직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디지털뉴스룸의 기술적 요소 중 영상에 관한 직접적인 기술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첨단 테크놀러지의 결집체  디지털뉴스룸은 장치산업적 필요충분 조건인 기술적 요소가 갖춰져야만 이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콘텐츠전략이나 다매체-다채널 정책의 실현이 가능하다. 디지털뉴스룸을 구축하기 위한 기술적 요소들은 다음과 같이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디지털 영상관련 기술 ? IT 하드웨어 관련 기술 ? 네트워크와 Ubiquitous 기술 ? 다매체 송출 기술 ? 지식관리 및 지휘시스템 기술 등이 그것이다.  디지털뉴스룸은 ①정보소스의 획득과 수집 방법(정보소스란 영상, 기사, 정보, 음향, 음성, 그래픽, 문자 등 모든 디지털 소재를 통칭함)  ②정보소스를 각 방송사의 내부 시스템에 보내는 방법(유무선 통신망이나 사람이 직접 가지고 오는 방법 등) ③정보소스의 공유 및 이 소재들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사용 할 수 있는 방법 ④정보소스를 선별하고 가공하는 방법(기사/영상 데스크, 메타데이터, 영상편집,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 등) ⑤여러 매체를 통해 뉴스소비자에게 완성 콘텐츠를 보내는 전달방식(공중파, MMS, IPTV, 인터넷, 모바일 등) ⑥원본이나 완성된 콘텐츠를 분류-재사용하기 위해 저장(디지털아카이브, CMS, MAM)  ⑦뉴스제작을 총괄하는 지식관리 지휘체제인 NRCS (데스크 지시, 기사작성과 송고, 편집 및 모니터, 뉴스순서의 편집과 CG, 자막, 큐시트를 망라한 보도정보시스템) 등이 새로운 차원의 뉴스제작 워크플로우에 맞도록 개발되어 총체적인 라인업을 이뤄야 한다. 영상관련 기술요소-HD ENG로부터 출발  카메라기자나 영상편집기자가 직접적으로 접하는 것은 영상관련 기술인 HD ENG, NLE 등과 노트북을 통한 원본 전송, 취재정보 입수 등에 필요한 사내외 네트워크와 Ubiquitous 응용기술이 될 것이다.  HD 카메라의 영상데이터를 NLE를 이용한 직접 편집이나 디지털뉴스룸에서 서버와 네트워크를 거쳐 편집하고 제작, 송출하는 과정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VCR을 사용하며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프로세스가 나타날 것이다.  지난해 11월 MBC 카메라기자회가 3종류의 HD ENG카메라를 직접 비교한 결과를 보면 ENG카메라는 디지털뉴스룸을 고려한 차세대 IT 기반으로 개발됐지만, 화질 문제나 압축의 안정성, 저장매체의 장단점 같은 물리적 조건이 완전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카메라 무게나 촬영 부가기능, UI 등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편집에서는 지금의 VCR 처럼 1대1 편집이 가능한 장치 개발이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궁극적으로는 NLE를 이용한 편집 line-up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메이커의 HD 카메라와 NLE 사이에서는 저장매체로 부터 영상을 즉각 타임라인에 끌어다 놓고 편집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난 반면, 카메라와 NLE 제작사가 다른 경우, 즉각 반응을 하지 못하고 전환과정, 즉 import나 transcoding을 거치므로 시간이 지연되어 썸네일로 영상을 찾거나 타임라인에 올려서 편집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되어 긴급한 뉴스의 편집 등에서는 문제점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NLE-Stand Alone과 시스템 NLE의 양면성  NLE는 디지털뉴스룸을 구축하기 전부터 사용한 편집 장비인데, Stand Alone으로 사용할 때와 시스템 NLE로 채택할 경우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 다르다. 각 방송사는 이미 Avid, Grass Valley, Leitch, Sony, Apple, Quantel 제품의 NLE를 직접 사용하거나 비교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tand Alone 으로 사용할 때는 주로 NLE의 UI, 다양한 효과기능, 렌더링의 속도 등을 고려하는데 비해, 디지털뉴스룸에서는 시스템的인 관점을 중시하여 서버, 공유저장장치 및 주변기기와의 호환성, 저해상도 생성, 네트워크 지원 속도, 리얼타임 렌더링 및 송출서버로의 전송 속도 등 주로 전체적인 Performance 차원에서 판단한다. 후속 버전의 개발 및 업그레이드, 가격정책, A/S체제, 제작사의 경영 상태나 기업 영속성 또한 고려 대상이 된다. 각 방송사 NLE를 사용 실태를 보면 SD급 디지털뉴스룸을 갖춘 SBS만 완제품편집과 전송을 실시할 뿐, 타사는 모자이크나 PIP, 음성변조 등 부분적으로 화면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VME (Video Multi Effect)와 별반 차이가 없는 형편이다.  MBC 경우는 3개 제품의 NLE를 사용 중인데, 이 제품 사이에 호환성이 없어서 앞으로도 디지털뉴스룸 구축 전에 Stand Alone NLE 도입을 계속 확대할 경우 나중에 특정 NLE로 인한 시스템 선택의 제한 등이 나타날 수 있고, 특정제품의 NLE에 익숙해진 사용자는  interface trap에 빠지기 때문에 다른 시스템을 기피하는 상황도 배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사가 도입 사용 중인 NLE는 디지털 종합편집 기능을 익히고 디지털 마인드를 확산 시키는데 나름대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IT 인프라-고급차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앞으로는 HD급의 고용량 디지털신호로 촬영한 원본이나 편집 영상, 오디오 등 고용량의 데이터를 카메라나 포터블장치, 인식장치가 장착된 노트북 PC 등으로부터 유무선 인터넷전송망을 통해 본사 데스크나 뉴스룸에 파일전송으로 보낼 수 있다. 반대로, 본사 뉴스룸이나 디지털아카이브에 저장되어있는 영상데이터나 기사 정보를 현장에서 취재, 편집에 사용하기 위해 저해상도 영상형태로 역시 인터넷망을 통해 가져올 수 있다. 이 경우 현장과 중앙 서버를 연결하는 것이 초고속망인 IT 인프라이며, 현장 취재진에게 시간,공간적인 자유를 부여하는 유비쿼터스 기능을 제공할 것이다.  아울러 바이러스나 해킹 등 보안문제가 매우 중요한데, 디지털뉴스룸 핵심시스템이 공격 받을 경우 방송 중단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뉴스룸시스템 내부적으로도 각각의 장치들, 즉 인제스트 단말, 서버, 저장장치, NLE 및 가편집기(Proxy), 주변장치와 송출서버 등이 모두 Fiber channel이나 Gigabit Ethernet으로 연결되어 공유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디지털뉴스룸은 NLE나 인제스트 단말, 송출서버, 디지털아카이브 접속 등 수십여 개 채널에서 50~100Mbps급 고용량 데이터를 동시에 주고받으며 작업을 하고, 수백 명의 보도국 사용자가 동시에 DB에 접속하기 때문에 엄청난 부하가 걸리는데, 이렇게 HD 기반의 대형 디지털뉴스룸을 갖춘 외국 사례가 거의 없고, 또 방송뉴스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대형 재해나 대선보도 같은 초대형 이벤트 방송을 실시간 처리해 낼 능력이 아직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IT 네트워크 기술 및 서버 등 하드웨어의 기술적 완전성은 조금 더 검증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유비쿼터스-초고속 인터넷과 UCC의 등장  뜬금없이 초고속인터넷과 UCC를 언급하는 까닭은 아날로그 시대와 비교하여 디지털시대에는 신기술로 인한 급격한 업무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종래 뉴스영상의 主素材源은 대부분 카메라기자 고유의 영역이었다. 고기능 ENG는 방송사만 소유하고 있고, 원본의 전달, 가공에 전문성과 고비용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엄청나게 보급된 디지털 캠코더, 동영상촬영도 가능한 디지털카메라, 우수한 화질의 카메라폰 등 영상 소스를 얻을 수 있는 장치가 1000만대 이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수십Mbps 수준의 광LAN과,  100Mbps의 전송속도를 지닌 FTTH(Fiber-To-The-Home)나 HFC(Hybrid Fiber Coaxial Cable) 같은 양방향성 인터넷망이 아파트나 일반 주택까지 보급되었다. 아울러 고속Wibro,  HSUPA 같은 초고속 무선 전송 기술의 상용화도 목전에 다다랐는데, 이것은 영상의 획득과 전송의 통로를 전 국민이 거의 다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사족을 달자면, 전국에 1000만 명의 프리랜서 카메라맨과, 1000만 라인의 feeding point가 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편, 집단지식체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Web 2.0의 등장은 누구나 인터넷에 자신이 만든 영상콘텐츠를 올릴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1000만개가 넘는 미니방송국의 출현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런 UCC는 기존 공중파방송의 뉴스에까지 관심과 영향을 주어 매우 적극적인 citizen journalist를 탄생시키고, 이로 인해 종래 방송영상 주역인 ENG 카메라는 앞으로 뉴스 영상의 독점적 지위를 고수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뉴스소비 채널 측면에서도, 양방향성을 갖춘 초고속 인터넷망과 모바일 수신 장치 등으로 인해 방송 송출의 경로도 대폭 확대되어 MMS를 활용한 복수의 전파방송, IPTV의 수백 개 채널로 늘어날 것이며, 방송경영자는 수십~수백 개 채널에 ‘시시각각이 아닌 분분초초’ 마다 새로운 뉴스와 다양한 부가가치를 끊임없이 담아 보내 수익과 영향력을 증가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영상담당 인적자원의 부족이 심화되고 업무량의 증가, multi-function에 대한 적응 능력의 차이 등으로 인해 자칫 카메라기자나 영상편집기자는 업무적 혼란을 겪을 우려도 있다. 기술적 요소가 가져올 화학적 변화  테이프와 VCR 시대는 원본의 입수 지연, 원본 동시 사용의 한계, 기사 완성 및 리포트녹음, 편집 등 순차업무만 가능하기 때문에 시간대별로 정해진 공중파 뉴스의 定時性 (주로 저녁 메인뉴스)에 맞춰왔다. 디지털뉴스룸은 공유와 네트워크 및 종합 지식관리기술로 인해 모든 과정이 순차업무가 아닌 동시업무로 바뀌기 때문에, 복수의 매체별로 별도 제작하므로 常時性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카메라기자는 종래에 4~5분 촬영하면 충분한 단신 아이템을 때로는 IPTV뉴스에 올리기 위해 30분 full로 녹화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고, 정시뉴스에 맞춰 느긋하게 테이프를 보내는 여유대신, 카메라의 포트에 인터넷선 꼽아 촬영하며 뉴스룸으로 직접 전송하는 상황도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카메라기자는 프리랜서나 VJ, 하물며 UCC와 차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multi-function journalist로 발전할 것이다.  한편, 영상편집은 콘텐츠의 사용 목적과, 편집의 규모에 따라 다른 곳에서 부분적으로 만들어 전송한 리포트, 가편집영상, EDL, CG파일 등의 부품을 공유저장장치에서 가져와 최종 완성을 하는 업무절차로 변화하게 되는데, 지금까지처럼 원본에서 영상을 선택하여 배열하는 Editing(편집)이라는 개념 대신, 이미 사전에 설정되고 반제품으로 만들어진 정보 부속들을 종합하는 Packaging(포장), 또는 Assembling(조립)이라는 개념으로 바뀔 수도 있다. 마무리  새로운 뉴스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최고 성능의 고급 장비를 잔뜩 도입한다고 해서 최고 경쟁력을 갖춘 뉴스를 만들 수는 없다. 여러 가지 기술요소가 가진 기능을 면밀히 파악하고 조합하여 방송사 목적에 맞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One Source Multi Use”를 구현하기 위한 디지털뉴스룸을 구축하려면 보도, 영상, IT, 방송엔지니어 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동일한 목표를 설정하고, 가장 적절한 기술적 요소를 선택하는 “지식자원의 Multi Source One Use”를 실현해야 한다. 방송환경과 기술 변화로 인해 구성원들이 겪어야 할 변화는, ‘적응’이라는 수동적 태도를 넘어서서 개개인이 방송경영 마인드를 지니는 ‘화학적 변화’를 통해 ‘능동형 진화’의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끝> 양성호 / MBC 보도국 디지털뉴스룸팀장
    2007-02-20
  • 새로운 나의 이름, KBS 카메라기자
    <안녕하세요? 2007 신입카메라기자입니다> 새로운 나의 이름, KBS 카메라기자 매력적인 이름, 카메라기자  카메라기자 … KBS 카메라기자. 수십 번 적어도, 수백 번 불러도, 수천 번 생각해도 매력적인 이름. 이제 이 매력적인 수식어가 제 이름 앞에 붙었습니다. KBS 카메라기자 권태일.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생시절까지 항상 학생 권태일 이었던 나는, KBS 카메라기자라는 매력적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12년간 품어왔던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고, 이제 새로운 이름에 걸맞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합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사실을 수집해 진실을 규명하는 역사의 기록자 KBS 카메라기자 권태일로……. 카메라기자라는 꿈  1992년 무더운 여름, 초등학교 5학년이던 저는 친구들과 직접 학급신문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땀내를 풍기며 열정적으로 취재를 하던 저의 모습이 스스로 자랑스러웠고, 또 신문을 받으며 기뻐하던 학우들의 얼굴은 어린 저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제가 기자를 업으로 삼고자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꿈은 고등학교시절 사진에 대한 관심과 대학교 시절에 카메라와 함께 영상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카메라기자라는 꿈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백 장의 글보다, 천 마디 말보다 몇 개의 컷으로 구성된 영상이 훨씬 더 의미 있고 파급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자원봉사를 하면서 경험했던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뉴스에서의 영상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매우 급니다. ‘카메라기자가 되어 영상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은 목표를 가지게 했고 이제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KBS 카메라기자가 되면서  최종면접,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라는 면접관님의 말씀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KBS 카메라기자로서 ‘꼼꼼, 싹싹, 빠릿빠릿’ 이 세 가지를 명심 하겠습니다”  이 말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홈페이지 내 인물포커스 게시판에서 봤던, KBS 대전총국 윤 정 부장님께서 후배들에게 남긴 말씀입니다.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 생각되어 가슴속에 새겨두고 있었습니다. 이제 신입 KBS 카메라기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꼼꼼하게, 원활한 협업 위해 빠릿빠릿하게, 그리고 후배로서 싹싹하게 맡은 일을 해낼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들다던 언론사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혹자는 이제 큰 걱정이 끝났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메라기자로서 카메라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역사적 사명을 지고 살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KBS 카메라기자 권태일이라는 이름을 걸고 약자와 국민을 위하는 카메라기자, 사실을 수집해 진실을 규명하는 역사의 기록자가 되겠습니다. 권태일 / KBS 신입 카메라기자
    2007-02-20
  • 2007 MBC와 사랑할 시간
    <안녕하세요? 2007 신입카메라기자입니다> 2007 MBC와 사랑할 시간  혹독하게도 추운 겨울이었다. 뉴스에서는 백년만의 따뜻한 겨울이라고 연일 이상고온을 강조하고 있었지만, 합격자 발표를 초조히 기다리는 두 남자의 심정은 매일 매일이 혹한기였다. 그렇게 하루를 떨며 보내던 12월, “축하드립니다. 00일 신입사원 설명회에 나오세요”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며, 그렇게도 따뜻하다는 2006년의 겨울 날씨가 그제 서야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합격이었다.  사실 MBC는 ‘뜨거움’빼면 남는 게 없는 조직이었다. 두 달여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연수원을 나서며, 두 명의 신입 카메라기자는 그 열정의 실체를 직접 확인했음에 뿌듯해 했다. 연수원의 교육과정은 각자의 마음속에 빨간 상자 하나씩을 자연스레 품게 해 주었고, 그 상자 안에 MBC뉴스의 영상의 미래가 담겨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제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말해볼까 한다.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제일 행복한 시기’라고 칭했던 연수원 교육기간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선 우리에게는 40여명의 가족 같은 동기들이 있었다. 때로는 든든한 형처럼, 때로는 친근한 동생처럼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었기에, 연수원 합숙생활은 끈끈한 동기애로 뭉쳐졌다. 방송은 협업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지금의 이 ‘동기사랑’이, 우리에게 큰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다.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사진 역시 감동받은 부분이다.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과 선배들의 강의는 방송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가능하게 했으며, 상해에서 진행된 미디어 교육 역시 글로벌 감각을 익히는데 충분했다. 물론 ‘해외’에 나간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우리는 광분(?)한 상태였다.  비록 우리들이 연수원 생활을 만끽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맘이 편치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현업 배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수습’의 ‘수’자가 짐승 ‘수’자라는 선배들의 진담 같은 농담을 들으며, 우리는 서서히 짐승(?)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간 중간 들려오는 보도국의 살벌한 분위기에 대한 소문들은 우리의 마음을 더할 나위 없이 흉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낭설 아닌 낭설을 들으며, 우리는 보도국에 대한 환상이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평생 원해왔던 일이 결코 호락호락한 수준의 일은 아닐 것이 라는 일종의 자부심이, 우리에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군대마인드를 자연스레 만들어 낸 것이다. 때문에 연수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오히려 다른 직종의 동기들을 챙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우리를 두고 동기들은 ‘스트레스성 정신 착란’이라고 걱정했다.)  천국 같던 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영상취재부에 첫 출근할 날, 우리는 우리의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부서의 분위기에 여러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바로 너무나 친절하고 친근한 선배들의 면면이었다. ‘다들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할 것이다’는 걱정과는 달리 너무나 세세하게 우리들의 부서적응을 도와 주셨기에, 우리는 맘 편하게 새 둥지에 스스로를 깃들일 수 있었다. 아울러,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습교육이 있었기에, 딱딱하게만 보이던 ENG카메라를 점차 편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경찰서 스케치나 날씨 영상 등을 실습해보며, 뷰파인더 속에 존재하는 세상과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점은, 점심시간마다 이루어지는 ‘맛집 기행’이었다. 직장생활을 잠시나마 해보았던 우리는, 점심을 무엇으로 때울지를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던 터라, 매일매일 새로운 미각을 발견시켜주는 선배들과의 점심시간이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을밀대’의 평양냉면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맛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렇듯 교육과 친교가 적절히 어울려지면서, 우리의 MBC생활은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일곱 번. 어색한 사원증을 목에 걸고 MBC에 출·퇴근한 숫자다. 아직은 너무나 낯설고 당황스러울 때도 많지만, 이 숫자가 칠십 번, 칠백 번이 될 쯤이면 우리는 당당하게 스스로를 카메라기자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4800만 국민의 시선을 그려준다는 자신감, 사실을 넘어 진실을 밝힌다는 사명감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이제 우리는 우리가 절실하게 사랑해야할 대상을 만났다. 두고 봐라. 정말 열렬히 사랑할 것이다. 박주일 / MBC 신입 카메라기자
    2007-02-20
  • 변화를 통해 얻은 수확
    <명예카메라기자마당> 변화를 통해 얻은 수확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누가 누구를 좋아 한다더라” 등의 순수한 마음을 실은 이야기보따리들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무엇보다 즐거운 화제였고, 학교 앞 슈퍼의 불량식품만큼이나 달콤한 추억들을 만들어냈다. 어렸을 때 나는 그런 이야기보따리들을 누구보다 먼저 친구들에게 풀어놓고 싶은 욕심이 유난히 많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친구들에게 새로운 소식, 재밌는 이야기들을 전하며 함께 웃었던 추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 교내 방송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학교의 여러 소식을 전교생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학교 운동장은 아침조회를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다. 일사 분란한 움직임 속에 아이들은 각 학년별로 줄을 맞춰 서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그런 부산함도 없이, 교실 맨 앞 모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스피커를 통해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들어야 했다. 실내 훈시가 있는 날이면 마이크 하나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운동장 조회보다 준비가 간단했음에도, 왠지 그날이면 유난히 더 긴장이 되었다. 교장선생님의 음성이 잘 나가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면서 조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초조하게 서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교 방송부로 활동했던 시기는 막 1990년대의 문이 열린 시기였다. 그 당시 초등학교의 교내 방송은 오디오 방송이 전부였다. 하지만 교실 맨 앞에는 우측에는 스피커가 그리고 좌측에는 텔레비전 모니터가 언제나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볼록한 검은 브라운관 안에는 마치 거울에 반사되는 것처럼 학급 아이들의 모습이 동그랗게 비춰지고 있었다. 나는 방과 후 빈 교실에 서서 텔레비전 모니터를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막상 텔레비전의 전원을 누르면 “지지-직”하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전원을 다시 끄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방송부였던 나에게도 마이크와 스피커는 익숙한 기계였지만 텔레비전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존재였다. 매일 스피커로 교내 모든 일정을 전달하던 그 시절 텔레비전 모니터는 그저 하나의 교실 내 장식품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용 8mm 캠코더 한 대가 방송부에 들어왔다. 우리들은 처음 보는 비디오카메라를 다들 신기하게 바라봤고, 어디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부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던 중, 비가 오는 날 아침조회 때는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만 전달 할 것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얼굴까지 보여주면 어떨까하는 의견이 나왔다. 지금처럼 교내에서도 영상 방송이 보편화된 시점에서는 별 일 아닐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비디오를 통해 전교생들에게 실시간으로 교장선생님의 말씀과 표정을 함께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전교생에게 교장선생님의 음성과 영상을 함께 전달한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시도였고, 첫 시도에 대한 긴장감 또한 몰려왔다. 우리는 방송부 담당 선생님께 말씀 드린 후 선생님의 승낙을 받았고, 한대의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각 교실에 영상이 나올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후, 나와 방송부 친구들은 비가 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비가 내리는 어느 월요일, 드디어 처음으로 비디오 방송을 시작하였다. 평소 조회 때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교장선생님의 얼굴이 TV 모니터를 통해 뚜렷이 보였고, 브라운관을 통해 바라보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마치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듯,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시끌벅적 했던 실외 조회 때보다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시청을 하게 되니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비가 오는 첫 조회 때 텔레비전을 통한 조회방송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비디오카메라’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하여 이루어낸 새로운 시도는 우리에게 오디오 방송에서 얻지 못했던 큰 수확을 안겨주었다.  당시 아침조회 때 사용된 카메라는 단지 고정된 상태에서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비록 초등학교 아침조회 방송에 지나지 않지만, 어린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첫 번째 생방송이었고, 나의 첫 보도영상이었다. 요즘과 같이 편집이 중요시 되던 때와는 달리 그 당시에는 편집이란 개념 자체를 생각치도 못했고 뚜렷한 개념정립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한 방송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순수한 방송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이 되어 졸업을 앞둔 지금, 진실 된 보도영상을 추구하는 예비 언론인을 꿈꾸며, 초등학교 방송부 시절의 초심을 되새겨 본다.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마음과 끊임없는 호기심, 그리고 가슴 설렜던 첫 시도. 그 때를 떠올리며 정해년 새해를 맞아 박약했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시 쓰고자 한다. 제2기 대학생 명예 카메라기자 정인학
    2007-02-20
  •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두드리면 열립니다
    제목 없음 <만나봅시다 - 영상저널리즘 TF팀 YTN 김재동 부장>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두드리면 열립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에서는 방송위원회에서 지원하는 방송발전기금을 받아 올해 초부터 ‘영상저널리즘’이라는 책의 발간 사업을 시작했다. 이번 저술발간은 보도영상 본질에 관한 명확한 이해와 이론을 정립하며, 실제 사례와 경험을 통해 영상 저널리즘의 전반에 걸친 필수적인 요소들을 재정립 한다는 기치 하에 진행됐다. 이 책의 저술은 본 협회 회원들 중 역량 있는 9명을 추천받아 TF팀을 구성해 이루어졌으며, 구성원 모두 현업에 바쁜 와중에도 끝까지 열심히 작업에 임했다. 그럼, ‘영상저널리즘’ 발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TF팀의 지휘자, YTN 김재동 부장을 만나보자. 드디어‘영상저널리즘’ 서적이 발간되었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  부족한 사람에게 힘주시고, 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한 권의 책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준 전임 곽재우 회장과 방송위원회에도 감사드립니다. 작업과정에서 위태위태한 고비가 몇 차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어 기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탈고를 하고 한동안 ‘생각의 진공상태’에 머무르며, 몸과 마음에 한없는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얼마 전, 광화문의 한 서점에서 다소곳하게 꽂혀있는 본서를 발견하곤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많은 후학들이 이 책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지식을 얻고 체계를 쌓아갈 터인데, 혹 저자들이 미처 걸러내지 못한 허술한 정보나 부적절한 논리가 담기지나 않았을까? 하는 우려에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영상저널리즘’ 저술 발간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하시기로 결정하신 이유  공저자들 모두가 나름대로의 준비와 생각을 갖고 저술에 임했겠지만, 본인 또한 오랜 기간 보도영상론과 관련한 저술을 준비해오던 중이었는데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었지요.    사내외에서 영상취재 관련 교육을 접할 기회가 잦았는데, 이런저런 영상취재 실무를 강의하면서 각종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강의록을 작성하다보니 어느덧 십 수 년이 지났습니다.  도중에 소책자로 엮어 교재로 활용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이런저런 자료들을 모아 정리하게 됐습니다.        영상관련 서적들은 대개 스튜디오 작업이나, 제작부문의 시각에서 서술된 내용이 대부분이며, 외국서적을 번역한 것들 또한 우리의 취재 현장과는 다른 것이 많았습니다. 또 해묵은 이론이나 영화적 관점을 취한 부분 또한 눈에 띄었고, 그나마 보도부문에서 서술한 저술도 취재기자의 시각에서 제시되거나 극히 일부분이 소개되는 정도였으며, 이 또한 왜곡된 서술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실무자들의 관점이 반영된 영상저널리즘 관련서적은 1988년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주도로 출간된 최초의 영상저널리즘,「보도영상과 카메라기자」가 있어 다행이었으며, 그동안 많은 영상기자들이 이를 인용하거나 원용하면서 자신의 보도영상이론으로 확장시켜왔는데, 본서를 저술하는 데에도 여전히 밑거름이 되었다.  다만 영상기자의 시각에서, 또 이 책을 계승한 저술이라는 측면에서, 좀더 발전된 이론을 접목시키고, 세분화 된 콘텐츠로 업그레이드된 영상저널리즘으로, 진즉에 실현했어야함을 자책한다면,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어 아쉬움과 송구함이 가슴 한구석에 여전히 남는다. ‘영상저널리즘’ 프로젝트 TF팀에서 본인이 맡으신 역할  최초 여러 저술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는데, 협회 회장으로부터 보도영상론 저술과 관련해 테스크포스 팀장을 맡아줄 것을 부탁받았다. 아마 제일 연장자이다보니 중책을 맡겼던 것 같다. 맏형으로서 동생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애썼고, 부끄럽지 않은 선배 저술자로 이름이 새겨지기 바랐으며, 해서 팀장으로서 저술 작업의 시종과 진행상황을 조율하되, 여러 저자들과 출판사 사이에서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열심히 심부름을 했을 뿐이다.      TF팀장으로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시면서 가장 어렵다고 느끼신 부분  여러 저자가 함께 하는 작업을 통해서 역할을 분담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현업을 우선적으로 수행하며 남는 시간에 저술활동을 해야 했기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국내외 출장이나 현업에 매달리다보니, 의사결정을 위한 월례회 모임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     특히 원고를 최종적으로 교정하고, 삽화를 처리하며, 이런 저런 정보들을 신속히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소통이 이루어졌어야 할 마무리 단계에서, 집필자들이 여기저기로 국내외 출장을 떠났고, 각자가 담당한 방송 프로그램 편집에 매달려있을 땐, 본인의 기력도 많이 소진된 상태에서 끝없는 고독감을 맛보기도 했다.     몇 차례에 걸쳐 원고마감을 연장하며, 스스로를 양치기 소년에 비유하던 MBC의 나준영 차장! 싱가포르 순회특파원으로 동남아 각지를 취재하며, 이동 중인 비행기 안에서 원고를 쓸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했지만, 출간 일주일을 남기며, 사진자료까지 꼼꼼히 챙겨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을 땐, 마치 릴레이경기에서 넘어질 뻔하던 주자가 아슬아슬하게 배턴터치를  성공시키는 그런 기분이었다.      현장기자가 발로 쓴「영상저널리즘」의 발간이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첫째, 현업 경험이 풍부한 영상기자들이 직접 저술 작업에 참여함으로서 보도영상이론을  현장기자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체계화시켰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둘째, 가능한 텍스트와 관련된 이미지를 제시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했으며, 특히 보도영상의 표현과 관련한 삽화는 보도영상의 구성논리에 맞추어 독자적으로 제작했다.  셋째, 저술 작업에 뜻을 두고는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를 구체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영상기자들에게, 협회가 산파역할을 해냄으로 소중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며, 이렇게 축적된 경험은 추후 협회가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향후 협회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업에 대해 제안을 하신다면  저술과 관련해선, 현장을 직접 발로 뛰는 영상기자들이 참여했을 때 그 가치가 돋보이는 것이라면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즉 현장의 실무이론을 체계화하는 작업이라면 그것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웨어 등 어떤 분야가 되더라도 유망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도영상 다큐멘터리, 수중촬영, 항공촬영, 영상취재와 안전 등 영상저널리즘의 실무이론과 이를 축약한 영상취재 핸드북, 그리고 영상기자의 역할이 돋보인 프로그램의 제작과정을 엮은 보고서 형식의 저술도 권유할 만하며, 콘텐츠와 관련해선 자기만의 전문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영상기자들의 저술을 지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약 8개월 간 함께 고생한 ‘영상저널리즘’ TF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독일 월드컵 취재, 정상회담 수행취재, 보도특집 취재, 도하아시안게임, 순회특파원 활동, 아름다운 결혼 등,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단 한사람의 낙오도 없이 모두 결승라인에 도착한 저자들, 이상훈(KBS), 유민철(KBS), 나준영(MBC), 이창순(MBC), 주범(SBS), 이병주(SBS), 최준영(YTN), 신득수(아리랑국제방송) 모두에게 깊은 신뢰와 박수를 보내며 진정 감사드립니다. 이제 한번 맺은 소중한 인연들을 내내 기억하고, 합해진 긍정적 에너지들이 영상기자와 협회의 무궁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확산시켜 나갑시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협회 회원들에게 한 말씀  현장의 실무이론을 정립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다양한 저널리즘 관련 이론서를 참고하되,  저자들 간에 치열한 토론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영상저널리즘의 체계를 세우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지식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는 데에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다음 계승자들이 부족한 부분을 또 다시 채워주시고 영상저널리즘의 체계와 영역을 더욱 탄탄하게 확립하고 확장시켜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미지시대의 영상저널리즘이 언론본연의 역할을 수행해내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마지않습니다.  이제 어떤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던 시대는 서서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언론이 상업주의에 매몰되거나 사주의 이념적 성향에 치우쳐 왜곡 보도하며 여론을 호도하는 경향마저 없잖아있습니다. 또 경제 양극화와 한미 FTA , 북한 핵과 연말 대통령 선거 그리고 일본의 우경화와 중국의 동북공정 등 대내외적으로 풀어야할 산적한 난제들로 가득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회원들은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영상저널리즘으로, 국민의 입장에 서서 바른 여론을 형성시키는 영상저널리즘으로 그리고 자신의 양심에 부끄러움 없는 영상저널리즘으로 무장해 언론본연의 기능을 담당해주기를 바라마지않습니다.  사랑하는 영상기자들이여!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두드리면 열립니다.  그대들의 소중한 꿈을 간직하십시오. 그 꿈은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7-02-06
  • 회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신년사>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회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7년 희망찬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회원 여러분께서는 어떠한 계획을 세우셨고, 또 실천해 나가고 계십니까?  저는 올해의 목표를 협회의 재정을 튼튼히하고, 회원 여러분이 자기계발의 기회를 한껏 살릴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협회의 발전이 곧 카메라기자의 발전이고, 협회의 힘이 카메라기자의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무엇보다 협회의 힘을 기르기 위해 올한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한 명의 카메라기자로서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개개인의 발전 역시 카메라기자의 발전이라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올한해 열심히 뛰어주시기 바랍니다.  올해에는 이런 말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특종이야!”  우리는 카메라기자이지 샐러리맨이 아니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스스로 찾아다니고, 열정적으로 연구하는 ‘카메라기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거기에 취재기자의 부연설명이 없어도 상황을 생생히 전달될 수 있는 ‘영상 특종’이 수없이 나오는 2007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회원 여러분 가정에 사랑과 희망이 긷들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전광선 /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장
    2007-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