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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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줌인> 냉면과 가위
    <줌 인> 냉면과 가위  북측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관계자가 서울에 왔을 때 일이다. 서울시내 모 갈비집에서 갈비를 먹고 냉면을 시켰다. 냉면이 나오고 예쁜 종업원이 가위를 들고 가까이 오더니 가위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민경련 관계자는 순간 당황하여 “어이쿠, 신변안전보장각서도 썼는데 내 거시기를 자르려나보다!”하고 그곳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런데 종업원은 가위를 냉면그릇에 넣고 냉면을 자르는 게 아닌가? 민경련 관계자는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북한에서는 냉면을 자르지 않고 먹는데, 남한에서는 냉면을 잘라먹는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벌어진 웃지 못 할 사건이었다.  제주도 장관급 회담 때 일이다. 장관급회담이 예정보다 늦어져 공동발표문을 작성하고 회담관계자들이 제주 공항으로 향했다.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고, 그들이 탑승할 비행기는 전세기가 아닌 일반인과 동승하는 비행기였다고 한다. 이들이 늦는 바람에 몇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항공사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사과를 하고 승객들의 양해를 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북측 관계자들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던 것이다. 나라의 중대사에 국민 개개인의 불편함 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북한에선 국가 중대사보다 개인의 사정이 우선시 되는 듯한 남한의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지난 4월 28일부터 5일간 북측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초청으로 평양과 남포일대 남북협력 공단을 둘러보았다. 2001년 이후 두 번째 평양방문이었다. 지난번 방문(3월)때보다 날씨는 더 따뜻했고 만리향(수수꽃다리-라일락)의 향기가 그윽했다. 평양과 남포의 거리 모습도 조금은 더 활기차 보였다.  민경련 관계자 3명과 17명이나 되는 남측 경제인들이 함께 평양방직공단과 남포경공업종합공장을 둘러보는 일정은 무척이나 빠듯했다. 북한에서 이미 사업을 시작한 경제인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러온 남측 경제인들 모두 관심 있게 공단과 공장, 북측 근로자들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이것저것 꼼꼼히 물어보았다.  이번 대표단의 안동대마방직 김정태 회장은 대마재배에서 제품생산, 판매까지 전 공정을 북한 현지에서 함으로써 북한에 천연섬유산업의 기초를 닦고 남북한 공동이익을 창출하려는 큰 꿈을 현실로 이루어 가고 있다. 70억 가까운 돈을 북한에 투자하고 평양시내에 대마방직합영회사 공장이 착공한지 3년 여 만인 7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공장이 완공되고 제품이 생산되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북측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대마재배와 대마방직사업이 잘 되어 많은 인력이 일자리를 얻고, 실제 수익이 나는 사업이 되도록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심양의 공장을 두고 있는 신화 인터크루의 고영근 사장은 중국의 부동산과 인건비 인상과 관세 때문에 일부제품을 북한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어려움은 많지만 우수한 인력과 수익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북한현실에 맞게 오더와 납기, 원자재 및 생산에 필요한 소소한 것까지 꼼꼼히 챙겨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고 했다. 북한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인내를 가지고 추진해나가는 것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라고도 했다.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어와 망하고 나간 남한 사업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북한에선 남한의 사업가들이 사업하기 좋은 인프라(교통, 통신, 전기 등)를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고, 남한에선 북한의 상황을 폭넓게 이해하고, 꼼꼼히 파악해서 남북한이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남과 북이 보다 많은 준비와 투자,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성공단과 달리 평양과 남포에 남한 경제인들이 투자해 제품을 생산하는데 남한에서 경협자금지원과 기술지원을 위해서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다고 한다. 법적, 제도적인 근거마련과 더불어 한국내 제조업의 여건이 날로 어려워지고, 더 싼 인건비 때문에 중국 등지로 공장을 옮기는 요즘 한국내 유휴기계와 설비를 북한에 들여와 생산을 하고 북한과 다른 나라에서 판매할 수 있다면 남북한이 함께 경제성장을 하고, 보다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남북경협이 성과를 이뤄 남한 기업인들이 북한에서 성공해 북한 근로자들과 국민들이 지금보다 잘 살게 된다면 남북의 왕래도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북한 어느 곳도 마음껏 취재할 수 있고 남?북 방송을 남북이 함께 시청할 수 있다면 남과 북의 사고와 문화의 갭을 점차 줄여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본다.
    2007-05-17
  • 모바일에 긴장하라!
    제목 없음 모바일에 긴장하라 8년 만에 열린 영상통화시대  입사한 1999년, IMT2000이라는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밀레니엄을 맞아 2000년부터 곧 열린다고 통신회사들은 대대적으로 떠들어댔다. 그리고는 몇 년 동안 소식이 감감하더니 2007년에 들어서니 SHOW니 3G플러스니 대대적인 광고를 하며 본격적인 영상통화시대를 열었다. IT강국이니 통신강국이니 하는 우리나라에서 왜 2000년부터 가능하다고 해놓고 이제야 구현되는 걸까? 엔지니어가 아니어서 자세한 기술적 사항은 모르겠지만 쉽게 생각하면 네트워크 소위 무선인터넷속도의 문제였던 것 같다. 당시 기술적으로는 가능했는지 몰라도 영상이 오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데이터가 오가는 건데 영상이라는 큰 데이터가 오가기 위한 무선 네트워크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또 지금처럼 데이터양에 따라 과금을 하는 방식으로는 어마어마한 요금이 나오기 때문에 그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가면서 화상통화를 할 사람도 없었다. 벨소리 하나 다운받았다 몇 만원이 부과되고 동영상 잠깐 봤는데 몇 십 만원 나와 사회문제가 되는 휴대전화 데이터 요금문제가 영상통화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식간에 시대가 변했다. 소위 무선인터넷시대가 온다온다 하다 정말 열려버렸다. 핸드폰과 PDA, 노트북 같은 모바일 디바이스와 무선인터넷을 기반으로 영상시대, UCC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선인터넷시대, 휴대폰을 주목하자  그럼 무선인터넷 시대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우리가 먼저 주목해봐야 할 것은 휴대폰이다. 핸드폰에는 음성통화를 하는 전화기 기능과 MP3플레이어, 전자수첩,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캠코더가 복합적으로 들어있고 무선인터넷이 가능해 유선인터넷처럼 만큼은 아니지만 증권, 교통정보와 같은 정보가 이용되고 있다. 사용자들도 갈수록 각종 복합기능과 무선인터넷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작년 방송사마다 #0000이라는 영상제보시스템을 갖추었다. 휴대폰 이용자가 디지털카메라, 캠코더기능을 이용해 촬영한 영상을 무선인터넷을 통해 방송사 수신서버로 보내면 방송사에서는 영상을 테이프로 컨버트해 뉴스에 사용한다. 얼마 전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에서 보듯이 큰 사건사고가 터지면 각 방송사는 휴대폰 영상을 확보하기위해 혈안이 되고 휴대폰 영상은 멋지게 1보를 장식한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의 소지품 같은 특성상 사건사고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바로 촬영하고 영상을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휴대폰을 가진 3천만 일반시민이 바로 현장의 기자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요즘 한창 광고하는 영상통화는 한편으로는 영상중계 개념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사건사고 현장에서 중계차와 같은 중계팀들이 오기 전에 휴대폰을 통한 영상중계를 통해 1보를 커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술상으로는 거의 대부분 사건사고의 경우 일반인들의 휴대폰 촬영 영상과 기자들의 휴대폰 영상중계를 통해 1보를 처리하고 그 이후에야 카메라기자가 ENG카메라로 촬영한 사건 이후 영상이 방송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휴대폰이 모든 것을 다해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제점이 많다. MBC가 휴대폰 영상제보시스템을 도입할 2006년 3월 시점에서 봤을 때 동영상 촬영할 수 있는 핸드폰의 보급은 약 40% 남짓이었다. 게다가 동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휴대폰의 보급은 25%이하였다.  휴대폰에서 촬영한 영상을 바로 제보해 달라고 스팟 광고에 뉴스자막에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이 제대로 보급도 안 된 상황이었다. 당시 이동통신사의 예측에 의하면 2006년 말까지 영상전송이 가능한 휴대폰 보급은 40%선을 넘지 않을 것이고 2007년 말에야 60%선까지 보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영상통화가 가능한 휴대폰의 보급은 단말기 가격과 통화이용료 때문에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또 무선 인터넷 전송에 있어서도 아직 개선되어야 할 문제가 많다. 이동통신사에서는 기술적으로 약 900kbps 분량의 영상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 번에 약 480kbps, 대략 500kbps이하 12-16초 남짓의 영상만 보내진다. 단신을 내보내기에도 좀 짧은 길이다. 이동통신사에서 말하는 900kbps정도 약 30초 남짓의 영상만 받을 수 있다면 왠만한 단신기사는 소화할 수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동통신사에서는 동영상 커뮤니케이션을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생각해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을 하면서도 아직은 빈약한 휴대폰 무선인터넷 네트워크로 인해 비교적 대용량의 동영상전송에 많이 대역폭을 할당할 수 없다고 한다. 정말 도움이 되는 1분정도씩 되는 영상을 받기 위해서는 이동통신사가 네트워크를 더 확대해줘야만 가능해 방송사입장에서는 수동적으로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얼마 전 YTN이 SKT빌딩 벤츠 돌진사고를 영상통화로 방송 중계한 것을 보면 동영상이라는 원칙적인 개념의 끊김 없는 영상을 제대로 제공하진 못하고 있다. 물론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될 것이고 실제로 방송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영상이라는 대용량 데이터의 원활한 유통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화질의 문제도 숙제다. 휴대폰영상을 두고 화질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을 수도 있지만 HD시대를 앞두고 방송영상의 화질은 비약적으로 개선되고 TV의 크기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휴대폰영상이 40인치 50인치화면에서 보여질 때 제대로 피사체를 식별하기 어려운 화질의 문제가 있다. 휴대폰영상의 화질을 높이면 용량이 커져 전송에 문제가 있고 많은 시간을 전송하기 위해 낮추면 화질이 너무 안 좋아 방송에 적합지 않다. 동영상 파일을 업컨버트해 화질을 약간 개선시켜 사용하기는 하지만 원본 화질을 많이 개선시킬 수는 없는 한계가 있다. 이 또한 휴대폰 제조사가 동영상 화질을 개선시켜주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수동적인 상황이다.      이상의 문제는 따지고 보면 기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지엽적인 수준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불과 1년 반 전까지도 이런 기술과 이런 시스템들이 우리 업무에 적용될지 상상도 못했다는 점이다. 벌써 미래의 일로만 여겨졌던 촬영한 영상을 노트북에서 MP4 파일로 인코딩해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와이브로나 HSDPA와 같은 무선인터넷으로 전송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앞으로도 새로운 수많은 IT기술들이 등장할 것이고 신기술은 어떤 식으로 우리의 업무패턴을 변화시킬지 모른다.  휴대폰 동영상 제보 시스템의 도입에 있어서도 타 기술부서에서 개발한 경우와 카메라기자 자체적으로 개발 및 안착시킨 두 가지 케이스가 있는데 후자가 더 뉴스제작 현업에 이용할 수 있도록 업무중심으로 디자인돼 초기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이제는 기술은 단지 기술부문의 일이라고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카메라기자가 적극적으로 개발, 적용단계에서부터 기술을 받아들이고 이용해야 무한 경쟁시대의 취재환경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이창훈 / MBC 보도국 영상취재2팀 기자
    2007-05-17
  • 우리 신랑 이재섭, 너무 너무 사랑합니다!
    <2007 가정의 달 특집 - 카메라기자와 가족 Ⅲ> 우리 신랑 이재섭,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평일 아침,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의 점심상을 준비한다. 순두부찌개와 호박볶음, 그리고 엄마가 가져다주신 김치와 밑반찬들...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잠을 잘 것이고, 잠에서 깬 뒤 먹을 것을 찾을 것이다. 그땐 내가 유치원에 있으므로 밥을 미리 차려놓는다. 메모지에 수고했다는 한마디 적어 밥상 위에 올려놓고 출근.  결혼 1년 차 신혼부부이자 연애 9년 차 연인인 우리… 우린 고3때 입시학원 셔틀버스(봉고차)에서 처음 만났다.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를 더 알게 될수록 맘에 드는 것이 많아졌고, 그렇게 우리는 아직까지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다.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었던 나,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었던 우리 신랑. 이재섭씨는 참 신기하고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대부분 이뤄 낸다.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내 앞에서는 한없이  아기 같기도 하고 또 가끔은 바보 같을 정도로 빈틈을 많이 보인다. 나에게 꼭 “채워주세요~” 라고 말하듯이… 그래서 더더욱 이 사람에게 빠져 드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진정한 선수랄까?  카메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제일 자신감 넘쳐 보일 때는 카메라와 있을 때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꿈을 준비했고 마침내 KBS 카메라기자가 되었다. 남편이 KBS에 들어간 이후부터 뉴스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남편이 카메라기자여서 좋은 점은 그 당시 이슈에 대해 남들보다 더 자세히,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어디서 어떤 취재를 했는지 집에 오면 재잘재잘 잘도 얘기해준다. 한번은 아주 재밌는 일도 겪었다. 결혼 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마지막 한일전 때의 일이다. 전날 말하기를 응원전을 촬영하러 갈 건데 아직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며 전화하면 응원하는 곳에 나타나라는 것이었다. 약속대로 다음날 장소가 정해졌다며 나오라는 곳이 ‘찜질방’이었다. 처음으로 화장을 하고 불가마에 가봤다. 사람들 틈 사이에 끼어서 열심히 응원했고 남편은 그걸 열심히 찍었다. 같이 식혜도 먹고, 야구도 보고… 재밌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남편의 일이 늘 이렇게 재밌는 것만은 아니다. 안타까울 때가 더 많다.  황사현상에 대한 날씨 뉴스가 나오면 ‘저 황사 우리 신랑이 다 마실 텐데…’ 화재현장이 나오면 ‘유독가스 마시고 쓰러지지는 않으려나…’ 눈, 비 자연재해가 나오면 ‘저 몇 컷 찍으려고 얼마나 떨었을까…’등등 뉴스 보며 맘 졸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번은 화재현장에서 더 생생한 화면을 잡는다고 소방관들이랑 같이 불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은 그때 좋은 화면을 찍었다고 선배들에게 칭찬을 받았다며 좋아했지만, 말하는 동안에도 계속 잔기침을 하는 남편을 보고, 나는 얼굴은 웃어주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좋은 화면 안 찍어도 좋으니 제발 몸조심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선택한 일이기에 그냥 웃어주며 용기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제 7월 말이면 우린 엄마 아빠가 된다. 지금도 우리 자신이 참 어리다고 느껴지는데, 이 어린 부부가 엄마 아빠가 된다니 나 스스로도 그림이 안 그려진다. 우리 아기는 아빠의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자랑스러워하겠지? 그러나 늘 지친 모습으로 집에 들어와 주말이면 수면부족의 후유증으로 소파와 침대를 찾아 해매는 모습을 보고도 자랑스러워할까? 하지만 우리 아기도 언젠가는 시청자를 위해서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아빠의 진정성을 알아줄 날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그를 위한 밥상을 차린다. 결혼 전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끓이지 못했던 나지만, 요리책을 커닝 페이퍼 보듯이 옆에 꼭 붙여놓고 그가 맛있게 먹는 상상을 하며 오늘도 주방을 어지럽힌다. 우리 신랑 이재섭 씨를 너무 너무 사랑하기에… 김미정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이재섭 기자 아내
    2007-05-15
  • 친구, 영웅, 가족.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이름 - 아버지
    <2007 가정의 달 특집 - 카메라기자와 가족 Ⅳ> 친구, 영웅, 가족.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이름 - 아버지  과거의 문화가 문자 중심의 문화였다면 현대에서는 이미지를 넘어선 영상이 거의 모든 문화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소설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더 선호하고, 제품에 대한 긴 설명보다는 이미지로 구성된 광고 영상에 매혹된다. 특히 방송은 텔레비전이라는 대중매체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영상에 더 의존하고, 또 그래서 영상은 방송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그 영상을 만드는 데는 영상을 계획하고 구성하는 사람과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 아버지는 바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매우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시는 분이었다. 카메라기자로서의 아버지는 여러 어려운 상황과 수없이 맞닥뜨리며 살아오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마 그 중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은 전쟁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전쟁 현장과 같은 사건의 취재에 대해서는 국제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터라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하였다. 때문에 내가 어렸을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공장의 화재 현장을 취재하고 난 뒤 온몸에 검은 재를 묻혀서 돌아온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모습을 보고나서야 나는 그 동안 아버지께서 단 한 편의 뉴스 영상을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현장에 뛰어들며 일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이후로부터 나는 점차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장소가 방송국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따라 방송국에 자주 드나들었고 방송국 안의 여러 군데를 볼 기회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아버지가 작업 중이시던 편집실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영국에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 계속 집에 늦게 들어오셨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막상 아버지가 일하시던 곳을 둘러보니 그 전에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이후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종종 생겼었는데, 그러면서 나는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사건 취재 이외에도 아버지께서는 카메라기자로서 여러 가지 일을 하셨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고등학생 일 때 데스크 영상을 제작하시던 모습이었다. 9시 뉴스가 끝난 뒤 비록 채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그 짧은 영상 안에는 이 전에 아버지께서 찍으시던 험난한 사건 현장이나 전쟁터가 아닌,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장면들 - 자연 풍경은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정 - 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뉴스가 끝난 후에 아버지가 찍으신 영상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또 자신이 만든 영상물이 하나 씩 늘어나는 것에 즐거워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아버지가 부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나의 생활이나 가치관 등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마음이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오던 아버지의 모습들은 점차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변했고, 후에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나의 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우리 나도 아버지처럼 내가 만들어 낸 작품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아버지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데서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권위적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자상하기만 하고, 또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는 그러한 아버지가 다른 가족들 - 특히 자녀 - 과의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반드시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것과 같아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 때문에 행복하지만 때로는 가족 때문에 슬퍼지기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때로는 사회생활에 적응해나가는 것이 힘겨워 지기도하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지금의 삶에 적응해버린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이 오히려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과 같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좋아한다. 우리에게 잘 대해 주시는 아버지가 좋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가 좋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좋다. 주희진 / 연세대학교 인문학부 1학년 (MBC 보도국 영상취재1팀 주원극 부장 장녀)
    2007-05-15
  • 카메라기자 특파원 턱없이 적어
    카메라기자 특파원 턱없이 적어 세계화시대...TV 뉴스의 경쟁력을 위한 고민 있어야  MBC는 지난 3월 5일 카메라기자 특파원에 서정암부장(파리)과 조수현부장(워싱턴)을 선정하고, KBS는 지난 3월 26일 강윤배부장(동경), 성인현기자(워싱턴), 진만용기자(북경)를 선정 인사발령을 냈다.  KBS는 이번 특파원 선발에서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카메라기자의 경우, 기존 특파원들은 14기 출신이 주를 이루는 반면, 올해 7월 1일부로 발령이 나는 카메라기자 특파원들은 20기가 주를 이룰 정도로 연차가 낮아졌으며, 지역총국 출신 카메라기자도 선발되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KBS 영상취재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파격 선발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파격이 필요한 카메라기자 특파원의 수는 변한 것이 없다며, 글로벌 시대에 시청자가 원하는 TV뉴스를 만들기 위해 과연 어떠한 특단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YTN의 보도국의 관계자도 “특파원으로 나가서 일을 해보면, 카메라기자 특파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며, TV 뉴스 영상의 질적인 측면, 나아가 다른 매체에 비교해 TV 뉴스가 계속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에 앞서 한국인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와 영상의 필요성과 글로벌시대에 걸맞는 TV뉴스의 다양성과 심층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KBS는 특파원이 파견되어 있는 총 13개 지역중 워싱턴, 북경, 도쿄, 파리 등 4곳만카메라기자 특파원이 파견되어 있다. MBC의 경우도 총 9개의 지역 중 워싱턴과 파리 등 두 지역에 카메라기자 특파원이 파견되어 있으며, 싱가포르에만 동남아시아 지역을 커버하는 카메라기자 순회 특파원이 나가 있는 상태다. 카메라기자 특파원이 파견되지 않은 나머지 지역은 KBS, MBC 공히 현지 크루를 프리랜서 또는 계약직으로 채용하여 운용하고 있다. SBS와 YTN는 특파원이 파견되어 있는 모든 지역에서 현지 크루를 쓰고 있으며, 고용 형태는 KBS나 MBC와 동일하다.  한편, KBS가 최초로 인도특파원을 신설했으며, 특파원으로는 국제팀 이재강 기자를 선발했다. 이 특파원은 카메라기자 없이 인도 뉴델리에 파견되어 KBS가 시험 중인 1인 취재 시스템을 통해 현지 소식을 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1인 취재 시스템은 KBS 뉴스시스템 혁신 방안의 하나로, 현지 크루를 통해 확보한 영상을 고성능 노트북을 이용해 편집하고, 송출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KBS 영상취재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기자가 이에 대비해 교육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영상취재, 편집 및 송출의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고려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7-04-16
  • <줌인>무한경쟁시대의 도래와 카메라기자
    무한경쟁시대의 도래와 카메라기자 지난 3월말과 4월초.  한·미FTA 막바지 협상과 협상타결, 한 · 미FTA  협상을 지켜보는 정치권이나 영화인, 농민에 이르기까지, 시시각각 진행되는 FTA협상 현장의 움직임을 발 빠르게 화면에 담아 뉴스로 방송해야만 했던 카메라기자, 그들에겐 피가 마르는 숨 가쁜 시간이었다.  한·미FTA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많은 분야에서 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무한경쟁의 시대, 카메라기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과거엔 취재현장에서 정확한 판단과 순발력으로 영상취재를 한 후, 타사보다 한발 앞서 신속하게 방송하는 것이 카메라기자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4000만의 눈으로, 카메라기자가 취재한 영상만을 시청자들이 볼 수 있다”는 사명의식과 끓어오르는 열정만으로 취재현장을 누비는 카메라기자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최근 들어 UCC와 신문과 인터넷매체의 동영상서비스가 많아지고, 네티즌의 조회 수가 많아지면서 뉴스의 양과 속보성에 있어서 TV 뉴스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방송환경의 변화로 TV뉴스의 영상을 담당하는 카메라기자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인터넷시대에 가장 최근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고품질의 TV뉴스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사고의 전환과 역할의 다변화가 요구된다.  요즘은 보도제작물과 뉴스에서의 HD카메라 등 고품질, 고기능의 다양한 촬영기자재의 도입, 새로운 장비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고 활용하기 위한 지식습득, 그리고 인터넷 송출의 보편화로 인한 NLE 및 PC활용 능력, UCC와의 차별화를 위한 노력이 더 많이 요구되고 있다. 여기에 취재원에 대한 초상권보호, 상황재연과 몰래카메라 활용에 따른 취재윤리의 문제, 영상취재를 위한 고려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해야 할 시대를 맞았다.  카메라기자는 역사의 한가운데서 역사를 기록하는 기록자로, TV에 적합한 뉴스와 보도프로그램의 아이디어제공 및 기획자로, 취재한 많은 영상물들은 뉴스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용도 높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콘텐츠의 생산자로서, 보다 나은 뉴스영상의 취재와 보다 빠른 방송을 위한 장비와 기술의 도입과 활용을 위한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 등 1인 4역 이상을 해야만 한다. 많은 역할을 원활하고 능숙하게 할 수 있어야 유능한 카메라기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 시점에 카메라기자들이 프로페셔널로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는 길은 아마추어리즘을 버리고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재무장하고, 고품질의 TV뉴스로 승부하고, 존재감을 더욱 뚜렷이 각인시키는 것뿐이다.
    2007-04-16
  • <칼럼>카메라기자 특파원의 필요성
    카메라기자 특파원의 필요성  중국에서 근무한 3년 동안 ‘카메라기자’는 늘 마음의 부담이자 풀어야 할 숙제였다. 2004년 2월 YTN의 두 번째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중국발 리포트는 거의 대부분 전화 녹음으로 제작됐다. 지국 사무실도 없었고 카메라 장비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NTSC 방식의 소니 6밀리 카메라가 있긴 했지만 거의 쓸 기회가 없었다. 제2차 6자회담 개최, 북한 김정일 위원장 중국 방문, 룡천 폭발 사고, 탈북자들의 공관 진입 등 중국에서 발생하는 기사들이 꽤 많아져 하루 하루 전화 연결하고 리포트 제작하기도 바쁜데 익숙치 않은 카메라를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TV 기자가 매일 현장 스탠드업도 없이 자료 화면을 써서 리포트를 하다 보니 답답함과 자괴감이 들었다. 집 한 켠에 방치돼 있던 카메라는 가끔 세상 빛을 보기도 했다. 시간이 넉넉한 기획 취재를 하거나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베이징 특파원들이 집단으로 취재를 할 때에는 할 수 없이 이 카메라를 써야 했다. 어느 날 특파원으로 일하는 동안 스스로 촬영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소한 곳에 가서 외국어로 취재하기도 만만치 않은데 해보지도 않은 촬영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차라리 현지에서 사람을 사서 촬영을 하고 절약되는 시간에 취재를 많이 해서 충실한 리포트를 많이 만드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그래서 2004년 봄 중국 동북 지역의 지린성 일대를 취재할 기회가 생겼을 때 중국인 경력 카메라맨을 고용해서 동행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비교적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취재와는 달리 서로 의도가 잘 맞지 않고 촬영 기법도 달라서 완성도가 높지 않은 결과물에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몇 달 뒤에는 YTN도 지국 사무실을 열고 현지 카메라맨을 고용해 현장 취재를 할 수 있게 됐다. 화면 전송이 걸림돌이었는데 인터넷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FTP 방식을 도입해 큰 비용 부담 없이 문제를 해결했다. 중국 당국의 인터넷 통제로 인한 전송 장애와 저속도 문제는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다.  베이징의 카메라기자 특파원은 여러 종류이다. KBS는 정식으로 특파원이 파견돼 있고 YTN과 MBC는 현지 고용 카메라맨, SBS는 서울에서 파견된 프리랜서가 주촬영을 맡는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역시 최선의 해법은 정규 특파원이 촬영을 하는 것이다. 정규 카메라기자 특파원은 그때 그때 변화가 많은 취재 환경 속에서 신속한 판단을 하고 적합한 영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 실력을 발휘한다. 편폭이 짧은 데일리 리포트는 물론이고 호흡이 긴 기획 취재에서는 더 큰 차이가 난다. 취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자발성은 다른 환경에서 다른 교육을 받아온 현지 카메라맨에게는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방송사의 베이징 지국에 현지 고용 카메라맨이 많은 이유는 저렴한 인건비와 중국어 구사능력 때문이다. 혹독한 IMF를 겪은 이후 방송사들도 비용 측면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앞으로 방송 경영 여건이 더욱 개선돼 많은 정규 특파원들이 파견되고 현지 고용 카메라맨이 훌륭한 보조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김태현 / YTN 보도국 국제부 차장
    2007-04-16
  • 카메라기자 특파원, 그 존재의 의미
    워싱턴지국 3년의 단상 카메라기자 특파원, 그 존재의 의미  얼마 전까지 우리 지국은 FTA 협상 때문에 진땀을 뺐다. 한국 본사에서는 한미FTA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원하는데, 정작 미국 현지는 미국이 한국하고 FTA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막판 타결 때도 미국 언론은 짤막한 리포트 한 꼭지로 결과를 전하는 정도였다. 그러니 FTA 협상에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닌 미국 국민들의 반응은 말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 본사에서 계속되는 뉴스 속보로 인해 미국 측 반응에 대한 소식을 그 때 그 때 전해야 했는데, 미국 국민뿐 아니라 백악관, USTR, 언론 등에서 나오는 반응이 거의 없어 애를 먹었었다.    특파원의 경우, 가장 난감한 일이 이번 FTA처럼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사안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상대국의 반응을 매우 궁금해 하는데, 정작 그 나라에서는 뉴스로 전할 만한 꺼리가 없을 때인 것 같다. 이런 경우 취재기자, 카메라기자 할 것 없이 가장 필요한 것은 순발력이다. 취재기자는 취재기자 나름의 리포트에 대한 순발력을 보여주고, 카메라기자 역시 시청자가 원하는 뉴스를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그 순간에 차질 없이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기민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기자 특파원이 없다면, 영상 취재 전문가가 아닌 현지 크루에게 이런 기민함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또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에서 보는 영상 뉴스의 제작은 어렵다고 본다. 현지 크루의 경우, 영상 취재 전문가가 아닌데다, 현지인이나 교포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원하는 뉴스, 즉 깊이 있는 국제 뉴스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카메라기자 특파원이 있는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취재기자 특파원 3명이 나가 있는 지국의 경우, 카메라기자 특파원 한 명이 매일 2~3개의 리포트를 제작한다. 그러다보니 그에 따르는 인터뷰나 관련 컨퍼런스 취재, 기자들 스탠드 업을 하는데 발이 묶여, 카메라기자 특파원으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제작할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다 순서가 되어 참여하는 ‘특파원 현장 보고, 세계를 가다’의 경우도 매일 소화해야 하는 스케줄이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취재를 끝내고 복귀해야 한다. 정말 여유가 없었을 때는 7분짜리 한 편을 제작하는데 오전에 시작해서 그 다음날 새벽 한 시까지 촬영을 하고 아침 비행기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다시 말해 한 명의 카메라기자 특파원으로는 커버하기 어려운 분량임에도 카메라기자 특파원 증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점 또한 문제이다.  그리고 카메라기자 특파원의 경우 인근 출장을 갈 때, 취재기자와 둘이 간다. 오디오맨의 동행이 함께 동행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소 이동할 때마다 장비 챙기랴, 인터뷰할 때마다 마이크 설치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버둥거리다보면 힘이 다 빠져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정신이 혼미하다. 이렇다 보니, 취재기자 역시 함께 버둥거리게 되고 취재기자의 취재에도 방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인원’이 ‘비용’이란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방송 뉴스 전문가로서 우리는 양질의 뉴스를 시청자에게 전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다. 효율적이라는 명목 하에 뉴스 제작자로서의 책임을 도외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비효율이고, 비능률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방송사의 카메라기자 특파원이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숫자인 것을 알고 있다. 방송사의 수익 구조가 나빠지고 있는 시점에서 카메라기자 특파원 증원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TV 뉴스가 진정한 경쟁력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차별화된 뉴스를 생산해 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비용 절감’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뉴스 품질 향상으로 말미암은 경쟁력 제고에는 한계가 없음이다. TV 뉴스의 반은 영상이다. ‘영상 뉴스’가 경쟁력을 갖는 길에 대해 모두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 경제력에 맞게 보도부문에서 품격 높은 국제뉴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카메라특파원 확대는 필요할 것이다. 언제까지 외국 언론사의 시각으로 취재한 영상을 받아야 하나? 최근에는 APTN이 평양에 지국을 개설했다고 한다. 우리도 비용에만 얽매인 근시안적인 사고가 아닌 보다 전략적인 사고로 특파원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국제뉴스의 경쟁력은 영상콘텐츠에서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중완 / KBS 워싱턴지국 카메라기자 특파원
    2007-04-16
  • 동남아 순회특파원을 다녀와서
    지난 6개월이 나에게 준 것들  지난 해 9월 MBC순회특파원제도의 첫 바통이 나에게 건네졌다. 타사의 아이템 중심의 순회특파원제도와 달리 해외의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한 곳에 거점을 두고 주변국가들을 취재하는 우리 회사의 순회특파원제도는 나의 첫 발걸음부터 무겁게 만들었다.  ‘내가 만들어내는 첫 번째 결과물들이 이 제도의 유지와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시할 거라.’는 생각. 그것 때문에 작년 9월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의 좌석은 너무나 불편했다.  그러나, 이런 부담과 우리 부문구성원들의 많은 관심 덕분에 좀 더 진지하게 6개월을 생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큰 과오 없이, 후텁지근한 열대의 뜨거운 하늘을 뒤로하고,  봄기운의 상쾌함을 느끼며 다시 서울의 취재현장에서 가벼운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서울을 떠나며 함께 가는 취재기자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만드는 동남아뉴스는 지금까지 TV에서 보아왔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는 가난하고 낯선 나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또 우리와 많은 관련이 있는 동남아 나라들의 현실들을 제대로 알려주는 뉴스로 만들어 봅시다!’  그래서 순회특파원 기간 동안 ‘놀라운 세상’식의 볼거리성 뉴스보다는 동남아 국가들이 이뤄내고 있는 빠른 정치경제적 발전과 사회 변화, 그리고, 이런 변화 속에서도 자기 문화를 지켜 나가는 동남아시아적 독자성이 갖는 한국과의 연관성들을 우리 뉴스에 소개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또, 나에게는 1997년 IMF사태 이후 경제적 이유로 많은 방송사들이 영상기자특파원을 대폭 감축했고, 이후로 복원이나 신설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 되고 있는데, 과연, 영상기자특파원의 필요성과 경제적 효율성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를 내 스스로 경험하고, 실증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조금은 피곤한 길을 택했다. 최근 많은 특파원의 취재물들이 현지방송사의 방송화면을 그대로 카피해 기자의 크레딧화면 (스텐드 업)만을 삽입해 리포트하는 방식을 아예 배제하고 힘들어도 비행기에 몸을 싣고, 10여 시간 걸리는 비포장도로의 차량여행도 감수하며 현장을 직접 취재해 나갔다.  그 결과, 급한 속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서울에서 외신화면을 사용한 한 두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가 제작한 리포트 중 중 거의 100% 가까운 영상이 한국 기자의 시각으로 내 자신이 현장에서, 영상취재한 화면으로 채워졌다.  또, 메인뉴스에서부터 아침뉴스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아이템을 직접 영상편집하고 인터넷으로 송출했다.  이런 제작 방식에 속도가 붙으면서, 지난 6개월 동안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돌며 취재, 제작한 아이템을 따져 보니 60여개에 이르렀다. 전체 기간을 따져 보면, 3일에 한 개씩 리포트를 제작해 송출, 방송한 것 인데, 동남아지역의 교통사정과 취재사정을 감안해 보아도, 이 리포트의 숫자는 동일한 지역을 취재권역으로 하는 타사 특파원들의 리포트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고 리포트 품질에 대한 평가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순회특파원기간 중 발생한 몇 건의 사건사고도 현지 카메라맨을 고용해 뉴스를 제작하는 타사의 특파원들 보다 좀 더 빨리 대응하고, 우리 방송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현장의 영상을 갖고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취재, 보도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도 해보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6개월을 돌아보았을 때, 내가 얻은 또 하나의 소중한 성과는 내가 속한 보도영상부문과 영상기자들의 현실과 미래를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따져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뉴스현장에서 다양한 현실들과 마주칠 때마다, 외신화면을 그대로 카피한 화면과 방송사고에 가까운 영상과 오디오가 방송되어도 보도영상분야의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조직적인 모니터와 공식적 비판의 피드백이 없는 영상기자들의 현실이 눈앞에 떠올랐다.  편집기 앞에 앉아, 버튼을 누를 때마다, 편집의 어려움을 새삼 느끼며, 어느 순간부터 영상편집을 회피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이제는 날아갈 능력을 상실한 거리의 비둘기와 오버랩 되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부문의 선후배들이 노력해 구축한 인터넷 송출 시스템을 사용해  인터넷송출을 할 때 마다, 20만원하는 작은 영상전환장치 하나가 노트북과 연결되어  인터넷선을 통하면 전 세계 하늘을 돌고 있는 수백억짜리 위성들의 엄청난 위력을 대체하고 10분에 몇 백반원이나 하는 송출요금을 절감하는 놀라운 현실을 목격했다. 하지만, 이 결과물들이 과연, 우리부문에서 어떻게 축적되고 있고, 알려지고 있으며, 영상기자와 보도영상분야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지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들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 현실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도 뉴스의 공정성과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직업군 개개인의 경제적, 경영적 효율성과 이익을 높이기 위해 뉴스의 마지막 제작단계까지 영상기자들이 좀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도록 요구할 것이다. 또, 자기 혁신의 구체적 증거와 결과물들을 제시할 것도 요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비판과 자기혁신에 소홀하고,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의 축적을 통해 사람들이 영상기자의 경제, 경영적 효율성과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실증에 실패한다면, 우리 영상기자들이 수시로 자신의 회사와 협회보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보도영상의 독립성, 인원증원이나 특파원의 신설 등의 주장들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큰 스트레스이자 공허한 집단이기주의로 보여 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많은 방송사들에서 순회특파원이나 영상기자특파원의 신설, 증원을 위해 많은 노력들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물들이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나 조직 이기주의를 해소하는 출구가 되어 버리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꾸준한 자기 혁신과 자기 평가가 철저하게 이뤄져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영상기자의 도약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축적물과 결과물들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나준영 / MBC 탐사스포츠영상팀 차장
    2007-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