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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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한국방송대상 보도영상부분 수상자, MBC 김태형 차장
      한국방송대상 보도영상부문 수상자, MBC 김태형 차장 지난 7일 KBS 홀에서 열린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보도영상 부문은 MBC 김태형 기자가 ‘영상편지 효(孝)’로 수상했다.  ‘영상편지 효’는 2006년 9월 27일부터 총 7편에 걸쳐 뉴스데스크를 통해 방송됐으며 안동교도소 모범수, 남극세종기지 대원 등 추석 때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부모님들께 영상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김태형 기자는 이미 2005년에도 ‘데스크영상’으로 같은 상을 수상한 적이 있어 한국방송대상 수상은 두 번째다. - ‘영상편지 효’의 기획 의도는?  시청자의 사연을 방송을 통해 보여 주는 프로그램은 교양물에서는 많이 채택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진정한 의미의 시청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즉 시청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프로듀서, 작가, 성우 등이 참여하여 주인공의 사연을 방송 프로그램으로서 적합하게 만드는 과정이 기존의 방송형식이었다.  이에 비해 지난 추석에 시리즈로 7회에 걸쳐 기획한 효(孝)시리즈 데스크 영상은 이전 국내 방송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고, 영상편지는 추석 때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방송이 대신해서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에게 안부를 전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시청자와 방송인이 함께 사연을 의논하면서 수정하고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주인공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며 뉴스를 제작하는 카메라 기자의 경우 주인공의 사연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영상을 구성하여 편집하는 역할을 통해 진정한 시청자 중심의 뉴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 어떤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아무래도 안동 교도소 모범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기수인데 교도소에 오기 전 시절의 주변 폭력배들이 자기 목소리를 듣고 어딨는지 알게 될까봐 이 사람 본인의 목소리를 방송에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죄수의 목소리를 대신 녹음해서 방송에 냈고 얼굴도 나오지 않게 신경써서 촬영해야했다. 영상이 주가 되는 아이템이었던 만큼 모자이크를 최대로 하지 않기 위해 각도를 잘 잡아야했는데 그림도 예쁘게 나오고 이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도록 한다는 두 가지 점을 모두 고려해야 했으므로 지금까지 한 것 중에 신경을 제일 많이 썼다. 방송 이후에 6mm로 이 모범수의 어머니 반응을 답장 형식으로 촬영해 iMBC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후에 교도관들이 이것을 본인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이런 쌍방향 소통도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  또 다른 취재원으로는 남극세종기지 대원들이 기억난다. 현실상 남극까지 직접 찾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현지 홍보 담당이 6mm로 촬영해서 그 파일을 웹하드로 받고 그와 20일간 매일 밤 메신저로 통신하면서 이러저러한 화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간접취재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그림도 다양하지 않고 화질도 떨어져서 편집할 때 힘들었다.  그밖에 다른 사례들도 모두 취재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에 모두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7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정도 빡빡하고 취재원들과 스케줄 맞추기도 쉽지 않아서 시간이 촉박했었다. - 제작 후  처음에는 한국방송대상에 출품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취재 현장에서 후배들이 특종한 것, 단독으로 찍은 것처럼 좋은 영상들이 많은데 새로운 형식의 아이템이라는 이유로 상 받는 것이 조금 내키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미 한번 상을 받았는데 또 받는 것이 후배들에게 미안했다. 결국 상을 받았지만 정말 개인적인 마음은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영상편지 효’는 시청자가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특히 더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는 ‘영상편지 효’ 이후 ‘나눔의 행복’이란 시리즈를 했듯이 사회공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의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해보고 싶다. 나아가서는 우리 카메라기자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 오 령 기자 ringring@mbc.co.kr
    2008-01-07
  • 외신 어떻게 운영되나?
    외신 어떻게 운영되나? 멀티미디어 취재 시스템 추구 취재 · 섭외 · 촬영 · 편집 등 모두 소화해야 TV News Agency : “안녕 하세요 APTN 입니다.” “네? 어디요?” “AP 통신사의 TV News입니다.” “아~ 예, 무슨 일이시죠?” 필자가 국내 방송사의 정치부나 영상취재부에 전화를 할 때의 내용이다. 말인 즉 슨 대부분의 기자들이 AP Television News(기존 AP TV에서 APTN, 그리고 회사 내 조직개편으로 TV가 기존의 통신사의 업무<기사와 사진 서비스>와 동일한 위치의 조직으로 개편되면서 부르기 시작, 이전엔 자회사개념)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국제부를 거친 기자들은 24시간 AP, Reuters TV, CNN등 여러 외신 화면들을 보기 때문에 “아~ 예 APTN 요!”라는 대답을 한다. 우리같이 자체 Network를 가지지 않고 방송사를 상대로 화면과 기사 서비스를 하는 회사를 TV Agency 라고 칭한다. TV Agency는 방송사를 위한 방송사이다. 그것은 AP나 로이터 TV가 현장에 있다면 기존 방송사들은 이미 자기의 우군을 옆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방송사들이 치열한 보도경쟁을 할 때 우리는 로이터 TV와 경쟁을 한다. 이 경쟁의 목적은 보다 좋은 그림을, 보다 빠르게, 그리고 정확함을 생명으로 한다. 물론 아이템의 다양화도 경쟁의 주요 요인이 된다. Epitome :  AP Television News는 한국에서 KBS, MBC, SBS, YTN, 아리랑 TV, 부산방송 KNN, MBN (SNTV), CBS, 그리고 전 세계 600여 개 방송사에 24시간 뉴스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 찍은 그림을 바로 위성으로 송출하는 위성송출 SUV를 사용함으로 보다 빠르게 영상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장비는 보통 SUV 에 부착하는 것으로 이라크 전쟁에서 두 대가 사막을 누비면서 송출을 했다). 전 세계 64개 TV지국은 각 나라와 그 주변국에서 벌어지는 뉴스를 직접 취재 내지는 현지 방송국의 영상을 구입하여 보도하기 때문에 사실상 지구 끝에서 다른 끝까지 그 영역은 광범위하다. 각 지국에는 많게는 5명 정도에서 적게는 1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그 인원의 분배는 그 지역의 뉴스생산량에 비례한다. (서울은 3명이 근무, 그러나 모스코바나 워싱턴 등 Hub 지국은 십여 명이 근무한다).  직원의 채용은 다른 외국회사와 마찬가지로 상시 채용을 한다. 한국방송사처럼 매년 기자를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결원이 생길 경우 공고를 하고(사실 신문에 내거나 방송 공고는 하지 않으나 1년 내내 지원서를 받고 그 중에서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대면 인터뷰와 테스트를 거쳐서 충원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외신에 자리가 나왔다는 말을 외신에 근무하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모를 것이다.       Multi-Media : 취재시스템은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Multi-media를 추구한다. ‘나는 카메라기자니까 영상만 잘 찍으면 돼’라는 생각은 외신에서 살아남기 힘든 사고방식이다. 프로듀서(기자), 카메라기자 (프로듀서도 카메라를 다룰 줄 안다)가 한 팀이 되어서 취재, 섭외, 촬영, 편집, 송출, 현지진행 모두를 소화 할 줄 알아야 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어와 현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취재 능력. 이 모두를 가진 사람을 원하고 또 어느 정도 소양을 갖춘 사람이면 수년 이내에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6월 한국인 관광객 13명을 포함한 22명의 생명을 앗아간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 당시 2명의 방콕기자가 현지로 급파됐다. 우리 회사는 캄보디아에 지국이 없고 대신 방콕지국이 캄보디아를 cover한다. 방콕지국은 캄보디아 현지 연락망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현지에 도착하였을 때 취재팀은 바로 근처 공항에 있던 헬기를 $1,000 에 빌려서 사고 현장을 취재 할 수 있었다. 이 때 우리 취재팀은 Live wire 라고 불리는 위성 전화를 이용한 그림송출 장비를 가지고 갔었고 이것으로 헬기에서 내려서 바로 송출이 가능했다. 이 장비는 전 세계 어디서든지 하늘만 보이면 그림을 송출 할 수 있는 장비이며 휴대가 간편하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그림의 질이 일반 위성송출 보다는 못하지만 우리 기자들이 항상 쓰는 말이 있다. “One is better than Nothing" 특히 영상이 필요한 TV기자들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6자회담의 예를 들면 한국, 북한,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대표는 무조건 따라 잡는다는 생각으로 취재를 한다. 그들이 모두 호텔이나 대사관에 들어가서 하루를 마감해야 우리도 그날 일정을 끝낼 수 있다(사실 러시아는 주요 취재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 중국출장도 한국, 일본에서는 무조건 가야한다. 그러나 비용의 문제로 인원은 항상 최소화 하면서 최대한의 결과물을 내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돌아다닐 때 가장 부러운 대상은 일본계 TV들이다. 그들은 각 지국(6자회담 대상국)에서 한 팀씩, 그리고 본사에서 지원팀이 들어온다. 한편으론 현지인들을 고용, 오토바이까지 동원해서 주요 인사들을 밀착취재 한다. 그래서 그들은 김계관 부상이 언제 어디에 있는지 다 안다. 필자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일본계TV 에게 물러보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이다. CCTV도 모르는 사항을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취재력이고 그들에게서 정보를 빼 내는 것도 나름 취재력이라고 본다. 6자회담에 있어서는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논하기로 하고 지금은 외신이 현장취재를 어떻게 하는가를 논하는 지면이기에 이 정도에서 마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AP나 로이터TV는 국내 방송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현지 교두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에 협회 게시판에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외국 출장 시 그 나라에 있는 TV Agency를 활용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맨 땅에 헤딩한다는 적극적인 생각도 중요하지만 분명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외면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각 방송사들은 TV Agency의 영상을 받는 조건으로 매년 일정액의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출장지에서 AP나 로이터 그림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물론 출장 가서 우리 그림을 받을 수 있으니까 놀고 오라는 말이 아니다. 같은 그림을 찍느라 놓치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보다 많은 정보를 취재하여 보도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말이다. 문승재 / APTN 서울지국 선임 프로듀서
    2008-01-07
  • 긴박했던 카불에서의 7시간
    긴박했던 카불에서의 7시간 카불에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프간 피랍자들이 풀려난다는 소식에 갑작스럽게 가게된 두바이 출장. 하지만 그들이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올지 확실히 정해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출발 할 때만 해도 두바이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감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정부가 카불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고 지난번 김경자, 김지나 씨의 경우처럼 두바이를 거치지 않고 뉴델리를 거쳐 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별다른 소득없이 돌아오는 출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공동취재단이 구성되면 카불 취재를 허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나절 동안 카불에 들어간다 만다를 반복하다 결국 내가 방송 6사(SBS KBS MBC YTN MBN KTV)의 영상풀 대표로 카불에 들어가기로 결정된 것이다. 급하게 두바이의 아프간 영사관으로 향해 카불에 들어가는 타사 기자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비자를 받았다. 현지시간 8월 31일 새벽 3시 두바이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공동취재단 7명은 6시 40분카불로 향하는 아프간 국적기 ariana afghan arines를 타고 두시간여 만에 카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 국가의 수도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황량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도시,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 공항에서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느낌이 더했을 것이다. 급하게 차를 몰아 석방된 인질들이 머물고 있는 카불 중심가의 serena 호텔에 도착했다. 카불에 도착하기 전에는 석방된 19명 전체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공동취재단에 끼지 못한 타 언론사의 압력으로 결국 피랍자 대표인 유경식씨와 서명화씨 두명만 인터뷰하는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11시 쯤 시작된 기자간담회는 기자단의 예상보다 훨씬 밀도가 높았다. 유경식씨는 납치 경위와 피랍 후 생활 등을 조근조근 이야기해 그 동안의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서명화씨는 납치되어 있는 동안 자신의 흰 바지 안쪽에 몰래 기록한 일지를 공개하는 등 기사꺼리를 쏟아냈다.  덕분에 테입을 예상보다 긴 50분이나 돌렸고 그만큼 영상송출에 압박을 받게 되었다. 송출시간이 현지시간으로 오후 1시부터 2시(한국시간 오후 5시30분에서 6시30분)까지로 잡혀있었는데 12시 반이 넘어서야 3사 기자 스탠드업과 오디오를 마무리 지었다.게다가 외교부가 석방 모습을 찍었다는 6mm테입을 바로 찾지 못해 호텔에서 조금 더 지체하게 되었다.  1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에서 송출포인트인 터키 통신사 IHA(Ihlas News Agency)로 출발했는데 카불은 주소가 체계적으로 되어있지 못해 위치를 찾는데 약간 애를 먹어야만 했다. 간판하나 없는 허름한 건물에 위치한 IHA 통신사, 사무실 안의 장비들을 봤을 때는 과연 송출을 제대할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1시가 조금 넘어서야 겨우 송출을 시작했다. 보내야할 영상은 내가 찍은 원본과 외교부의 6mm를 포함해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고, 송출시간은 제한되어있어 마음은 점점 다급해져만 갔다. 게다가 기자 오디오에 채널1이 빠졌다는 연락이 오고 기자단의 KBS 두바이 특파원이 기사가 바뀌었다며 스탠드업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할때는 긴장감에 혀가 바싹 마를 정도였다. 급하게 송출시간을 30분 늘려 2시 30분(한국시간 오후 7시)에야 가까스로 송출을 완료했다.  잠시 한 숨을 돌리는가 싶었으나 카불에서의 정말 위급한 상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호텔로 돌아가 석방된 인질들이 버스에 탑승하고 공항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그리고 뒤를 따라 가려하는데 호텔에 우리를 태울 차량이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 오디오맨만 남겨놓고 모두 출발해버린 것이었다. 당황해서 호텔 밖으로 뛰어 나가니 때마침 카불의 수많은 외신들이 석방된 인질들을 태운 버스를 쫓아 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눈앞에 보이는 외신차량을 세워 에어포트를 외쳤다. 다행히 승차를 허락받아 뒷자리에 타고 버스를 따라 공항으로 달려갔다.  외신들의 취재열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버스를 쫓기 위해 과속에 급커브 그리고 역주행까지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순간이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공항앞에 도착만하면 별 문제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것은 오판이었다. 두바이행 비행기가 UN기여서 UN 관할구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허가된 차량만 출입이 가능했던 것이다. 외신차량에서 내려 기자단에 합류하려 했으나 달랑 ENG카메라만 들고 있는 나는 정문에서 경찰들에 의해 출입을 제지당했다. 한국 기자라고 외쳤지만 아무소용 없었다. 여러명의 경찰들이 나를 둘러싸고 총으로 위협하면서 뒤로 물러설 것을 요구했다. 여권도 비행기 티켓 때문에 외교부 직원에게 넘겨준데다 지갑마져 없는 상황, 그순간 두바이로 돌아가지 못하고 카불에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코리안 풀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낭패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 우리를 발견한 정부관계자가 버스에서 내려 경찰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전화 통화를 하고 10분 정도 경찰과 실랑이를 한 후 가까스로 관문 통과를 허락받았다. 물리적 시간의 수백배에 달하는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 UN비행기가 카불 공항을 이륙하고서야 나는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솔직히 카불 취재는 위험한 곳에 들어간다는 걱정보다 공동취재단으로서 방송 6사의 영상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훨씬 컸다. 정부에서 미리 카불 취재를 허가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려졌을 것이다. 아찔했던 순간을 여러번 넘기며 별 탈 없이 취재를 마무지 지을 수 있어 다행이다. 주용진 / SBS 영상취재팀 기자
    2008-01-07
  • <인터뷰> 워싱턴 특파원을 다녀와서
    워싱턴 특파원을 다녀와서 미국에서의 LNG 취재 - 특파원의 취재영역 확대 워싱턴 특파원 3년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후배 기자가 “L.N.G 매뉴얼”을 주었다.  “L.N.G” Laptop News Gathering. E.N.G 카메라를 이용해 얻은 취재 영상물을 S.N.G (Satellite News Gathering)밴을 통해 송출하는 대신 인터넷을 이용해 휴대용 Laptop 으로 전송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내가 워싱턴으로 부임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했던 LNG의 사용법을 좀 더 개선한 것이다.  23년 전 뉴스취재에 필름을 사용하는 시대가 끝나고 E.N.G(Electronic News Gathering) 시대가 시작 될 무렵 입사하여 필름 자르는 가위를 버리고 막 수입한 전자효과기에서 디졸브 효과를 사용해 84년 LA올림픽 하일라이트를 밤을 새워 만든 시절처럼 지금 신입후배들은 랩톱에서 다양한 영상효과로 자신의 영상을 재창조하고 인터넷으로 영상을 주고 받는 새로운 영상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L.N.G라는 용어도 모른 채 이 L.N.G 를 처음 사용해 본 것이 3년 전 워싱턴 특파원시절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계열사 네트워크가 잘 되어있었고 오지에서는 전화국에서 K.T케이블망으로도 송출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느린 전송속도인 인터넷을 뉴스영상송출용으로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신시설이 취약한 섬에서는 늘 배편으로 취재TAPE을 직접 가지고 나와야 했다. 특히 서해교전 이후 백령도는 중요한 취재지역으로 떠오르고 그곳에서 취재한 보도영상을 배편보다 빠르게 보내기 위해 개발한 인터넷 송출 시스템을 시스템 개발부의 홍성추부장의 소개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워싱턴 특파원 발령을 받으면서 먼저 떠오른 것이 이 인터넷 송출 시스템이었다.  회사의 네트워크 같은 망을 사용할 수 없는 미국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영상전송시스템 L.N.G가 통할 것 같았다. 넓은 미국 지역의 다양한 취재를 하려면 반드시 비싼 위성을 사용해야 하기에 뉴스 가치를 먼저 따져 취재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인터넷 송출 시스템을 사용하면 송출비용이 없고 낯선 곳에서 영상위성송출 Feed Point를 찾아 헤매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생생한 취재화면을 보낼 수 있어 부담 없이 출장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보시스템부로 가서 노트북을 신청했으나 당시 인터넷 영상 송출 개념이 없었고 단지 기사송고용으로 노트북을 지급하므로 카메라특파원에게 줄 수 없다고 했다. 분명 미국에서 인터넷 영상 송출이 가능하며 노트북을 주면 반드시 그 값어치 이상을 할 거라 설득하여 중고 노트북을 차용증을 쓰고 빌려갔다.    워싱턴 특파원 근무는 늘 워싱턴 에서 일어나는 한국 관련 일정을 따라가기 바쁜 생활이었으나 노트북을 가지고 온 이상 워싱턴이 아닌 곳에서도 취재하고 싶었다. 덕분에 인터넷 송출로 몇 가지 사건을 단독 취재할 수 있었다. 허리케인 취재, 하인즈 워드, 최경주 P.G.A 우승, 미 프로야구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선수 등 스포츠취재도 있었다. 미국 허리케인 관련 뉴스가 국내에서 관심이 있을까 했으나 우리나라 태풍의 계절과 맞물려 허리케인 뉴스가 먹혀들었다.  나의 노트북 송출장비를 믿고 유재용 차장이 기획한 2004년 9월 14일 알라바마 모빌시를덮친 허리케인 “아이반” 취재. 모든 사람들이 떠난 도시를 지나 모빌시 해변까지 가서 허리케인 “아이반”이 지나갈 때 해변에서 넘치는 파도를 배경으로 한 현장 스탠드 업과 2004년 9월 24일 마이애미에서 미국대통령 선거 기획취재하면서 만난 허리케인 “진“의 눈을 추적해 새벽 0시 20분 웨스트 파암 비치까지 달려가 시속 185km의 강풍과 폭우 속에서 허리케인의 눈이 지나가는 순간 현장을 포착해 LNG로 송출했다. 당시 워싱턴의 타사 언론들은 그런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열악한 곳에서 어떻게 어디서 취재영상을 빠르게 송출했는지 궁금해 했었다. 2005년 8월30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때 도시의 80%가 침수된 곳을 최명길 부장과 먼저 들어가 가장 빨리 한국에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L.N.G의 기동성 덕분이었다. 위성송출 FEED POINT도 다 날아 가버리고 또 찾아다닐 시간도 없었기 때문 L.N.G시스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영상송출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니 취재 결정을 쉽게 하게 되어 빨리 현장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FedEx Kinko(사무업무 지원 상점)에서 에어컨 바람에 덜덜 떨며 공짜 인터넷으로 밤새워 전송했던 일이다. 미국에서는 스타벅스 커피점, FedEx Kinko나 고급 호텔 로비에서 공짜로 빠른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단지 길거리 같은 개방된 장소에서 작업하는 초라한 장면을 연출해야 했지만 현장에서 가까우면 장소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고 인터넷 전송속도만 좋으면 되는 것이었다. 한번은 공항 쓰레기통 옆에서 송출한 적도 있었는데 이유는  애틀란타 공항 출국장 입구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압축하기위해 사용하는 전원이 있어서였다.  노트북과 송출장비에 전원공급이 되기에 애틀란타 공항의 무선인터넷을 이용해 2006년 봄 하인즈 워드가 한국으로 첫 모국방문 떠난 그 자리 취재현장 바로 그 곳에서 영상을 본사로 날려 아침뉴스에 바로 방송할 수 있었다. 일부 기자들은 위성를 사용해 편하게 영상을 전송하고 쉴 수 있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는냐, 내일 취재를 위해 빨리 위성송출하지 왜 밤새워 인터넷을 잡고 씨름하느냐는 비난도 있지만 청약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Feed Point를 찾아다닐 필요 없이 자유롭게 취재한 후 방송 시간에 맞추어 인터넷 잘되는 숙소에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송출하는 것이 더 편해서였다. 2005년 10월 1일 토요일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스보로 에서 열린 클라이슬러 클래식골프대회 3라운드, 선두로 나선 최경주를 TV에서 보고 노트북과 취재장비를 싣고 5시간 달려 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최경주의 주특기인 벙크샷 버디를 잡으며 우승하는 것을 완벽하게 취재해 보낼 수 있었던 것은 L.N.G의 경비부담 없고 별 준비 없이 현장으로 달려 갈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 이었다. 워싱턴의 취재 환경 워싱턴특파원들의 주된 활동 무대는 백악관도 국무부도 아니다.  그 주변 가까운 곳에 있는 National Press Building에 사무실을 두고 CNN과 미국 주요 방송사 뉴스를 모니터하고 미국 국무부가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FNS, (Federal news service)와 미 의회가 보내오는 일정메일, 미국 국제 외교 전문 연구소들의 사이트에서 한국관련 일정이 있는지 확인하고 관심이 있으면 R.S.V.P 을 보낸다. 응답을 하지 않아 그 장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북핵 청문회나 위안부 청문회를 미 의회에서 하면 일본 방송사에서 대거 몰려들어 취재카메라 대수를 한정하고 R.S.V.P 도착순으로 배정한다. 배정 못 받을 경우는 녹화기를 가져가 다른 언론사가 촬영하는 카메라에서 A.V 를 뽑아 녹화하기도 한다. 한국 방송사들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취재물을 서로 공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로 싱크 위주로 취재 분량이 많고 취재가 끝나는 시간이 워싱턴 오후시간 곧 한국 아침 뉴스 시작 시간이라 각사로 돌아가 제작 송출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취재 도중에 아침 뉴스용으로 Tape을 먼저 보내 송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장 취재는 카메라 특파원 혼자서 나가는 일이 많다. 오디오 겸 현장 코디를 맡고 있는 나의 Assistant는 사무실에서 내가 보낸 원본 Tape을 편집해 송출하고 또 다른 곳을 섭외해 나에게 정보를 주면 이동해서 취재한다. 그래서 워싱턴 미 의회나 정가 주변에는 2인 1조로 기자가 트라이포드 들고 카메라기자가 카메라와 장비가 든 배낭을 메고 다니는 취재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주로 싱크위주의 취재이며 취재 현장이 격렬하지 않아 Assistant의 도움을 받을 상황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는 일반적 탐문 취재보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내는 취재가 많다. 통신사의 외신 기사나 Yahoo News의 기사에서 또 뉴욕 타임즈나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서 검색어로 Korea 혹은 North Korea를 넣어 관련 기사와 코멘트가 있는지 확인하여 뉴스를 만든다. 결국 인터넷으로 흘러드는 정보의 가치와 경중을 빠르게 판단하여 제작 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통신사에서 전송되는 AP, REUTER 화면과 워싱턴 지사에서 녹화된 CNN, NBC 등 사용계약을 맺은 언론사의 화면에서 관련 화면이 있는지 체크한다. 한국 언론사 대부분이 사무실을 두고 있는 National Press Building 8층에는 미국 국무부 외신 언론 지원 사무실이 있어 미국 각 정부 부처의 주요 브리핑 Tape을 원한다면 바로 구할 수 있어 이를 가지고 뉴스를 제작하게 된다. 그래서 CNN과 미국 주요방송사의 뉴스 녹화가 주 업무이며 녹화기는 카메라 장비만큼 중요한 장비가 되었다.  3년 전 부임 당시 워싱턴 지사의 방송제작환경은 비교적 좋지 않았다. 노후된 V.C.R 녹화기로 녹화한 방송 자료는 오디오에 노이즈가 있고 비디오는 상태가 나빠 자주 지적받곤 했다. CNN, NBC에서 관련 뉴스를 Tape 녹화기를 사용하여 수동으로 하루 종일 열 받으며 녹화하던 시절이었다. 나의 특파원부임에 맞추어 출장 와 준 보도기술부의 박찬열 차장 권유로 막 시장에 나온 P.V.R (디지털 녹화기)제품으로 교체하여 고화질로 하드 디스크에 자동 예약 녹화할 수 있어 디지털시대의 혜택를 톡톡히 맛보게 되었다. 사실 워싱턴 카메라 특파원 임무 중 가장 힘든 것은 지사내의 장비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국내에서 현장 취재만 하던 것과 달리 편집은 물론 송출 까지 그리고 생방송이 될 경우 화상전화까지 원활히 처리해야 되며 그에 관련된 장비를 정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관리해야한다. 그래서 본사 보도기술부의 장비관리팀의 조언을 늘 받아왔다. 3년, 그 후  미국 방송영상에 의존하는 대신 직접 발로 뛰며 영상취재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주요 미국 관리의 한국관련 Comment를 그날그날 다급하게 처리하는 워싱턴 특파원들이 그들을 직접 섭외해서 취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 미국인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와 특파원은 그다지 중요할 게 없을 수도 있다. 3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워싱턴 특파원의 취재한계를 인정하고 대신 L.N.G 시스템을 활용해 워싱턴을 벗어나 정치외교 뉴스뿐만 아니라 휴먼스토리와 허리케인, 스포츠 등 다양한 뉴스를 다루어 보고 조금이나마 특파원의 취재영역을 확대했다는데 자부심을 갖는다. 이제는 더 진화된 L.N.G 시스템이 나와 광속으로 전송되는 인터넷으로 지역 간의 거리감을 허물며 HD급 화면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송출에 장애 없이 마음껏 다니며 취재할 수 있는 시대를 기대한다. 심재구 / MBC 보도국 영상취재팀 부장  
    2008-01-07
  • <줌인>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멧돼지들이 민가로 내려와 논을 마구 헤집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한강에서 20년 만에 은어가 발견됐습니다. 상류로 올라가는 물고기 떼 모습이 본사 취재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백두산의 봄여름가을겨울을 KBS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미국 도착 후 잠행을 계속해온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모습이 MBC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SBS가 북한 선수단의 숙소를 단독 촬영했습니다. 따뜻해진 봄날을 즐기는 참새와 노랑지빠귀의 모습이 YTN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각 방송사 뉴스의 앵커멘트의 일부분이다. 영상 한 컷이 한 아이템을 살리고 죽이는 방송뉴스의 현실에서 영상의 단독 취재는 분명 강조해야 할 사안이 틀림없다.  그런데 저 문장들 속에 카메라를 잡은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앵커멘트에는 보통 촬영주체가 아예 생략되어 있거나 방송사가 촬영주체로 되어 있다. 정작 현장에 나가서 촬영한 카메라기자의 존재는 온데간데없다. 문득문득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라는 앵커멘트를 들을 때마다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문장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며칠 전 후배가 신문에 난 사진 기사를 오리는 것을 무심히 지나쳤는데 야근을 하려고 회사에 들어와 게시판을 보니 그 사진 기사가 붙어 있었다.  중앙일보에 난 사진 기사인데 내용은 이렇다.  ‘극비리에 방한했던 마이클 헤이든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이 올 3월 27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 들어가는 모습이 중앙일보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는 내용이었다.  기사내용을 읽어보면  촬영주체가 분명히 나타나있다.  앵커멘트는 취재기자가 작성한다. ‘KBS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MBC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SBS가 단독 촬영했습니다’, ‘YTN 카메라에 잡혔습니다’등의 표현은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무심하게 사용된 표현일 것이다. 취재기자가 카메라기자의 존재를 무시한 처사라고 생각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다음의 기사를 보면 반드시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체 유해 논란이 일고 있는 성분이 들어간 중국산 소금이 국산으로 둔갑해 대량유통되고 있습니다. 불법 제조 유통되는 현장을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대통령 4년 연임제를 포함한 개헌안 시안을 정부가 모레 발표합니다. 이 개헌안에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는지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위 기사도 마찬가지로 앵커멘트의 일부분이다. 각 방송사가 특종취재를 하거나 단독 보도를 한 경우에 대부분 위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누가 취재해 보도하는지 해당 기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강조된 표현들이다. 앵커멘트에서 ‘카메라에 잡혔다’는 식의 기사들도 대부분 단독 취재나 특종취재일 경우 사용되는 표현들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기사를 쓸 때 ‘○○○ 방송사가 촬영을 했다’, ‘○○○ 방송사의 카메라에 잡혔다’ 또는 ‘무엇이 카메라에 잡혔다’는 식의 표현도 촬영주체를 넣어서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위에서 언급한 신문사의 표현을 빌리면 ‘○○○ 방송사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정도가 될 수 있는데 이 표현도 촬영주체의 존재감을 나타내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취재기자들에게 요구한다. 앞으로 특종이나 단독촬영의 경우 ‘○○○ 방송사 기자가 촬영했습니다’는 표현을 사용해주길 바란다.  방송뉴스는 취재기자가 혼자 만들 수 없다. 특히 단독취재나 특종취재의 경우 현장감을 잘 살린 영상과 기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만이 좋은 뉴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방송뉴스는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종합결과물이라는 점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일 수 있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세심한 표현 하나가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는 카메라기자들에게 작은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 방송사 기자가 단독 촬영했습니다’라는 앵커멘트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08-01-07
  • <칼럼> 카메라기자와
    카메라기자와 “취재지원선진화” 거점(據點) 기능 상실, 접근권 제약에 문제    이 칼럼을 준비하면서 정부가 제안한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대한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싶어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5층에 있는 교육부 기자실을 방문했다. 마치 70년대 독서실을 연상시키는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수북하게 쌓인 서류 속에서 기자들은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방문자가 보기에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기자실도 “취재 선진화 방안”에 따라 곧 사라질 전망이다.  앞으로 새롭게 단장한 통합 브리핑 실에서 여러 언론사 기자들은 통합적으로 북새통 취재를 해야 될 처지에 놓인 것 같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신속한 기동성이 요구되는 카메라기자에 대한 배려는 “취재 선진화 방안” 어느 곳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 부처에 설치되어 있었던 37곳의 기자실이 폐쇄되면서 카메라기자 입장에서 큰 타격은 해당 지역을 근거로 한 광범위한 취재와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거점(post)이 한순간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다. 통합브리핑룸 조치의 일환으로 “편히 죽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기자실이 폐쇄되고 서울 2곳과 지방 1곳으로 통폐합됨에 따라, 카메라기자는 방송국 본사에서 “죽치고” 기다리다가 사건이 발생하면 한국의 혹독한 교통지옥을 뚫고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해야만 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취재환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처럼 카메라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정부의 통폐합 조치와 접근권 제한은 단순한 취재 시스템 통합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접근권이 제약받는 문제로 귀착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방부 기자실이 폐쇄된다고 할 때 그간 카메라 기자는 국방부 정례 브리핑 취재도 했지만 수시로 용산지역의 사건 현장 취재를 맡아서 필요할 때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용산지역의 시급한 현장 영상취재는 자칫하면 해당관청이나 일반인의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한 거친 화면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과 같은 정부의 언론통제를 위한 무리수 속에서 현대 한국 언론사의 대특종 가운데 하나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면서 취재원과 기자의 상시적인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1987년 1월 서울 검찰청 화장실,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검찰 관계자와 우연히 만나 아래와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검찰관계자: “헛 참! 대학생이라지~ 참 안됐어, 단지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는데...” 신기자: “아 그래요, 참 안되었죠 그런데 어느 대학 학생이래요?” 검찰관계자: “아마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이라지,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이와 같이 이어진 지극히 일상적인 화장실 대화를 단서로 신기자는 남영전철역 근처에 있는 치안본부 대공 분실 509호에서 순진한 청년을 향해 여러 명의 경관들이 무자비한 물고문을 자행하였고 이로 인해 박종철 군은 물고문에 의한 쇼크사를 당하였다는 “우연한” 대특종을 낚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노무현 정부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여 취재원과 기자 사이에 우연한 만남을 차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더욱이 이 같은 조치를 감행한 이유가 “국민들에게 보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언론에게는 보다 효율적인 취재지원을 하며, 정부는 보다 투명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시대적 요청이다.”라고 변명하고 있다.  카메라 기자 입장에서 신속한 사건대응을 위해서 요소요소 취재 거점이 필요한 시점에서 정부가 주장하는 “기관마다 분산 운영 중인 브리핑 실을 통합, 취재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보화 환경에 맞는 취재 지원서비스를 강화하는 시스템”이라는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과 같은 활발한 브리핑 제도와 정보 청구권이 보장되지 않고 공무원들의 폐쇄성이 큰 우리 현실에서 기자들의 취재접근만 봉쇄할 경우 언론의 ‘감시견(Watch Dog)’ 역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바로 정부 정책의 불투명성으로 연결돼 밀실주의와 부패 등 부정적 관료문화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현대는 네트워크 사회이다. 갈수록 현장 접근이 점차 어려워지는 취재환경 속에서 모든 것이 통폐합 되면 그만큼 접근권이 힘들어지고 궁극적으로 알권리의 침해를 받게 된다.  하지만 정보접근의 제한과 알권리의 침해는 비단 우리나라 언론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미국 피닉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30차 전 세계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 연례 총회에서도 미국정부의 교묘한 정보접근 제한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서 열띤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취재 시스템이 선진화 되어 있고 언론자유가 상당히 보장된 미국에서조차 정보접근에 관한 문제와 알권리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고 논란이 되는 이슈인 것만은 틀림없다.  정부는 취재 선진화를 핑계로 모든 시스템을 통조림화 하려고 한다.  취재의 기본은 현장성이다. 현장성을 제한하는 어떠한 조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카메라기자는 정제되고 계획된 깡통에 담긴 화면 보다, 생생하게 현장이 살아 있는 화면을 시청자에게 제공함으로 보도의 진실성과 신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카메라기자의 핵심적인 의무를 다른 주체에게 양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연말이 다가오면 한해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하듯, 몇 개월 안남은 정권 말기를 맞아 기자실 통폐합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귀중한 국세를 낭비하는 노무현 정부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이민규 /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교수
    2008-01-07
  • 공정한 선거방송, 제작자들의 의식이 중요
    제목 없음 공정한 선거방송, 제작자들의 의식이 중요 영상언어 진실은 촬영과정과 편집과정에서 취사선택으로 얻어져  지난 4일,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방송 80주년과 제44회 방송의 날을 기념하여 한국방송협회와 공동으로 <대통령 선거와 보도영상>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방송회관 3층 회견장에서 열린 이 세미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김춘식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대선관련 방송뉴스에 대한 수용자 반응을 분석해보고 공정한 선거보도를 위한 각 방송사들의 가이드라인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기획됐다.  이날 현업 카메라기자 중에 유일하게 발제자로 참여 한 KBS영상취재팀 김병길 차장은 “선언적 의미의 준칙보다는 제작자들의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방송 현업자들은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경험으로 보아 공정성을 담보하는 데는 개인의 퍼스낼리티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김병길 차장은“영상언어가 표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이 없으나 모두가 진실인 것은 아니다”라며 “진실은 촬영과정에서 취사선택, 편집과정에서의 취사선택을 통해 얻어진다”고 말했다.  따라서 올바른 선거방송을 위해서는 촬영기자의 자의적 판단이나 편향성을 배제하는 등 제도적 장치의 지속적 보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수용자들의 이해증진과 더불어 원활한 피드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제발표는 성균관대 강형구 연구교수· 연세대 정일권 연구교수(제1주제: 대선관련 방송 뉴스에 대한 수용자 반응분석)와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김병길 차장(제2주제: 공정보도를 위한 각 방송사의 영상취재, 편집 가이드라인 분석), 성공회대 염찬희 교수(제3주제: 대선 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 임성규 조사팀장(제4주제: 대선 UCC와 선거법) 순으로 이뤄졌다.  사회자 김춘식 교수는 인사말에서 “최근엔 미디어 유세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TV카메라를 통해 전달되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중요해졌다. 그만큼 방송의 역할은 중요하며  실무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제발표 이후에는 MBC 뉴미디어정책팀의 이원 전문연구위원과 SBS 영상취재팀 김원배 기자(국회출입)가 토론자로 참석한 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각 주제별 발제 내용은 4면에서 개략적으로 소개한다. 오 령 기자 ringring@mbc.co.kr
    2008-01-07
  • 나를 설레게 했던 또 한 번의 기회
    <수중촬영교육을 마치고 Ⅱ> 나를 설레게 했던 또 한 번의 기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작년에 이어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한 가지 더 늘어나게 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바로 수중촬영 교육연수에 가게 된 것이다. 작년 10월 초급과정으로 참가하여 오픈워터 라이센스 자격증을 업그레이드 시킬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작년에는 난생처음으로 땅위에서 바다 물 속으로 처음 들어가는 것이고 도착하자마자 바다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뭐가 먼지 모르는 상황에서 힘들게 교육을 마치고 온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이번 교육을 가서는 정말 열심히 하여서 수중촬영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게 노력하여 돌아와야지” 라는 생각을 같고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도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밀려오는 실망감과 불안감에 물 먹은 스펀지 마냥 마음이 무거워졌다. 제주도에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은 혼자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점심식사를 하러 이동하던 도중 강사님에게 물어봤다. “강사님 비가 많이 와도 교육해요?” 강사님 말씀이 “바다 속은 비 안 오는데요?” 하고 대답하셨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보길 잘 한 것 같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리고 다시 내 가슴은 빵빵한 풍선이 되어 하늘 높이 붕붕 떠올랐다.  우리는 작년에 교육을 받은 곳이 아닌 ‘굿다이버 리조트’ 숙소에 도착하였고 각자 5일 동안 쓸 장비를 받고 브리핑을 하는 등의 일정으로 첫날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공기통과 각자의 장비를 챙겨서 항구로 이동하여 첫 번째 다이빙 교육을 할 범섬으로 출발했다. 교육 참가자들은 작년과 같이 어드밴스 과정과 비디오 팀 과정으로 나뉘어서 교육을 받았다. 각 팀별로 나뉘어서 간단한 브리핑을 받은 후, 장비착용을 했다. 드디어 물속에 들어갈 시간이 온 것이다. 각자 버디(파트너)를 체크한 후 입수를 시작했다. 확실히 입수전과 입수후의 느낌은 차이가 있었다. 작년에 했던 교육들이 뇌리를 스쳐가면서 ‘아! 이건 이렇게, 이건 이렇게.’ 몸이 스스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몸이 스스로 반응 한다 고해서 바다가 내 몸을 가만히 두는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첫 잠수는 그렇게 작년의 교육을 리마인드 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잠수를 다녀온 후 각 팀별로 브리핑을 했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잘된 것인지를 서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셋째 날은 확실한 중성부력을 마스터하기로 일정을 잡고 중성부력에만 올인 하였다. 중성부력(물속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떠 있을 수 있는 일)은 수중촬영을 하게 될 경우 가장 중요한일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중성부력 맞추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교육이 끝날 때 즈음, 마지막 세 번째 공기통을 다 쓰고 나와서는 각자 머릿속과 몸속에 확실하게 기억이 될 정도로 열심히 해서 중성부력을 마스터 하였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수온 19도 물속깊이 평균 13미터에서 중성부력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 때는 몸을 많이 움직일 일이 없기 때문에 체온이 많이 떨어 져서 호흡기를 물고도 이빨이 “다다다닥” 떨릴 정도였다.  넷째 날은 오전 교육은 ‘펀 다이빙’과 ‘물속에서 나침판으로 수중 길 찾아 가기’, 그리고  ‘수심 5미터 안전정지 교육’을 받았다. 펀 다이빙을 하면서는 수심 30미터까지 내려갔다올라 왔다. 펀 다이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역시 엄청나게 춥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많이 내려가야 20미터 정도였는데, 28미터쯤 내려가니 1미터 1미터의 수심온도 차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수면위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온도 많이 낮았다.)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서 추위를 버텨가면서 펀 다이빙을 무사히 마치고 수면위로 올라왔다. 두 번째 교육인 나침반 활용은 물속으로 들어가서 버디 및 강사와 함께 이동 한 후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찾아가는 훈련을 했다. 그리고 세 번째 교육인 물고기 식별과 수중에서 물고기 그림 그리기 질소마취대비인 안전 정지 후 산소가 많이 들어있는 탱크 호흡기로 바꿔 물기 까지 안전하게 마치고 수면위로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공기탱크 두개가 남았을 때다. 하늘에서는 비가 억세게 퍼 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에 강사님이 말했듯이 바다 속은 비가 안 온다니 들어갈 수밖에 더 있나? 와! 역시나 나는 조류와 엄청난 추위랑 싸우고 있는데 다른 강사 분 한분이 물속에서 미역을 머리위에 올려놓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웃다가 호흡기를 입에서 놓칠 뻔했다. 그때는 얼마나 황당했는지… 물속에서 소리 내서 웃어보긴 처음인거 같다. “어부부부부” 이런 소리가 났던 걸로 기억된다. 마지막 공기탱크는 추위와의 싸움에서 진듯했다. 잠수포기를 결정하고 리조트로 복귀를 했다.  작년교육보다는 하루일정이 더 늘어나게 되어서 더욱더 여유 있게 교육을 잘 받은 것 같다. 수중촬영을 직접적으로 찍어보진 못하였지만 비디오 팀이 하는 걸 수중에서 보았고 머릿속으로 나였으면 어딜 찍고 있을지 포인트도 정해보기도 하였다. 아직까지는 기초단계이지만 기회가 되는대로 노력해서 좋은 수중촬영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번 교육을 준비해준 카메라기자협회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다음번에도 수중촬영교육뿐이 아닌 여러 가지 분야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이상우 / CBS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2007-12-21
  • 아 ! 이런 슬픈일이 ..잊지 못할 경철아!! 좋은 곳으로  잘 가거라
    쌉쌀한 겨울바람이 상쾌한 월요일 아침 습관처럼 협회 홈피를 열고 순간 가슴이  얼어벼렸습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확인하다가 사진을 보고 서야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습니다..직접 만난건 작년 협회주최 수중촬영교육때 단 5일 정도 였지만 인간됨됨이와 카메라기자로서의 열정을 느낀후 부턴 서울로 보낸 동생처럼 느껴 져서 한번 씩 전화로만 안부를  묻곤했는데...제주에서 만난너를 제주에서 보내다니...항상 일욕심 많고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하던 경철이..아마도 너의 그 욕심이 널 이렇게 만들어 버렸나보다....부산에 오면 꼭 연락하겠다던 너의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지..경철아 작년 제주도에서 혁용이랑 같이 찍었던 사진 너 만나면 줄려고 6개월 전부터 뽑았났는데....내서랍에  잘 보관하고 있단다.....이젠 내가슴 속에 너의 그밝은 모습  늘 보관할께.....모든 시름 잊고 잘 가거라.... 고 김경철 기자의 명복을 머리숙여 기원합니다..따뜻은 남쪽바다 부산에서 이윤성 올림
    2007-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