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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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인 대상 해외 연수 프로그램 실시
    연수기획 3. LG상남언론재단  www.lgpress.org   언론인 대상 해외 연수 프로그램 실시  LG상남언론재단(이사장 유재천)은 언론인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1년 단위로 현직 언론인대상 해외 연수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해외연수프로그램은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 등 언론사 보도 분야에서 3년 이상 종사하고 있는 현직 언론인(기자,PD)을 대상으로 서류 심사와 면접심사를 통해 선발한다.  언론인들에게 해외의 대학, 국제기구, 연구기관, 기업 등에서 취재를 겸한 연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언론인들이 자율적으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해외에서의 소중한 체험을 귀국 후 언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언론인 스스로가 연수기관과 방법, 시기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다양하고 만족도 높은 연수 활동을 할 수 있다.  연수 공고는 매년 연말 각 언론사로 관련 공문과 함께 발송되며 재단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올해 선발된 인원은 해외연수 9명과 상반기 어학교육 12명 등 언론인 연수과정에 총 21명을 선발했다.  이번에 선발된 언론인들은 오는 7월부터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1년간 언론,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및 취재활동을 벌이게 되며 1년간의 학비, 체재비, 왕복항공료 등을 지원한다.  LG상남언론재단은 국내 합숙교육과 해외 현지 실습을 병행한 듣기와 말하기 중심의 고밀도 어학과정 운영을 통해 국제화된 언론인의 양성을 도모하고 있다.  어학교육은 영어과정, 중국어과정으로 나뉘는데, 영어과정의 경우 참가자 수준에 따라 A,B 2개의 과정으로 나뉘어 있다. 상급 수준의 지원자일 경우(TOEIC 700 이상) 국내 합숙 8주(LG인화원)와 해외 합숙 2주(미국 또는 캐나다)로 구성돼 있는 A과정에 지원 가능하다. 중급 수준일 경우(TOEIC 700 이하) 해외과정 없이 10주 동안 LG인화원에서 합숙하는 B과정에 지원할 수 있다. 한편, 중국어과정은 총 8주 과정으로 국내 4주의 교육이 끝난 후 해외(중국)에서 4주의 실습과정을 거치게 된다. LG 상남언론재단의 해외 연수 지원 전 반드시 준비해야 할 서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해당학교 입학허가서 또는 연수기관 연수계약서 1부 - 토익,토플,텝스 또는 해당지역 언어능력 증명서(유효연한 3년) 1부 - 연수계획서(A4지 5매 분량) - 소속사 대표의 추천서(각사 양식) - 지원신청서 1부, 이력서 1부, 확인서 1부(이상 소정양식) 입학 서류 입수 방법 가. 지원서 및 기타 서류 제출 해외연수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이 희망하는 연수기관으로부터 입학허가서를 얻는 일입니다. 지원서(소정 양식) 등 지원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갖추어 5~10개 학교에 제출합니다. 이때 외국어 등 각종 입학시험 성적 (예: TOFLE, TSE, GRE, GMAT 등)을 요구하는 학교에는 해당되는 시험에 응시하여 그 성적을 보내주도록 시험 주관 기관에 요청해야 합니다. 지원서 작성 요령에 대해서는 각 학교마다 원서 상에 또는 별도로 상세히 안내하고 있으므로 미리 잘 읽어 보고 작성해야 하며 특히, 성명, 생년월일, 전공과목, 주소 등은 정확하게 기입하여야 합니다. 원서를 제출할 때는 원서와 함께 지원자의 학업 상황과 재정 상황 등을 나타내는 각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여기에는 졸업 증명서, 성적증명서, 재정 보증서, 추천서, 자기 소개서와 연구 계획서 등이 해당될 수 있으나 학교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개별 접촉 후 필요서류를 준비해야 합니다. 나. 입학 허가서 취득 입학 원서(지원서)를 제출하면 학교에서 지원자 File을 만들고 서류가 완비되면 입학사정을 하게 됩니다. 입학이 확정된 사람에게는 입학허가를 통보하는 편지나 또는 입학허가서(I-20)를 보내게 되며 국가 또는 학교마다 입학 사정 절차가 다르지만 대체로 제출에서부터 입학 여부 통보까지는 우편배달 기간을 포함하여 약 1-2개월이 소요됩니다. 다. 연수 계획서 1. 일반연수과정 현재 몸담고 있는 직장의 업무와 연결되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의 연수계획서가 호평을 받을 것입니다. 선물시장, 환경오염, 교통정책, 소비자 권리 등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으며 해외언론관련 연구도 가능할 것입니다. 2. 학위과정 LG상남언론재단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1년 과정입니다. 따라서 학위과정의 경우 적합한 과정을 본인이 정하셔야 합니다. 학위 과정을 위한 연수계획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또, 장래에 유망한 분야이거나 독특한 학문 분야 등이 우수점수를 받을 것입니다. 정보통신 산업, 중소기업정책, 벤처, 산업, 환경 등은 이 시대 언론인으로서 전문적인 연구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작성요령 연수계획서는 특별한 양식이 없습니다. 일반 논문처럼 주제선정 배경, 연구 일정, 도구 효과, 연구 후 업무와의 접목 계획 등을 서술하면 됩니다. 추상적으로 계획서를 작성해서는 눈길을 끌 수 없으며 월별 분기별 등 주기별로 구분하고 연구를 위해 방문할 곳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적는 것이 좋습니다. 자료를 모으는 방법과 모은 자료를 정리하는 방법도 기록하고 연구한 주제를 소속매체에 기획 보도한다면 높은 점수를 받을 것입니다.   라.  소속기관장 추천서 추천서에는 연수기간동안 급료를 지불하고 연수 후 신분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을 담으면 될 것입니다. 추천양식은 특별한 것이 없고, 각 사 양식을 따르되 피추천자의 근태와 성품 등에 대해서 간단히 피력하면 심사위원들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언론인으로서 연구학 주제를 자체매체에 보도하도록 배려한다는 내용도 포함되면 공신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기타 지원서류 이력서, 신청서, 확인서 이력서와 신청서, 확인서는 LG 상남언론재단이 홈페이지를 통해 혹은 직접 배포하는 소정양식에 작성합니다.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해도 되며 영문 이력서의 경우 완성 후에는 꼭 Native Speaker의 교정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
    2008-04-29
  • 여보, 고마워요!
    제목 없음 <제21회 카메라기자대상 수상자 해외 연수를 다녀와서> 열심히 일 해준 남편 덕에 가진 즐거운 시간! “여보, 고마워요”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훌훌 떠날 수 있는 여행은 언제나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설전부터 가방을 챙겨 놓고 문준(아들)이에게 태국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문준이는 사실 상을 받은 날부터 여행을 출발하는 날까지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의 낯설음과 함께 푸켓 공항에 내리니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라는 팻말을 든 안내인과 가이드가 친절하게 우리들을 안내했다. 무척 더울 것이라 고 생각한 날씨는 새벽이라 그랬는지 건기라 그런 것인지  덥지는 않았다.  푸켓의 날씨는 아침, 저녁은 선선하고 해가 뜬 오후에는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처럼 무더웠다. 제일 먼저 시작한 체험관광은  코끼리 트래킹이다. 마침 관광객이 없어서 기다리지 않고 가족단위로 코끼리를 타고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코끼리를 타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크다는 생각을 했고 약간은 무섭기도 했다. 코끼리의 수명은 100년 정도이며 투어를 하는 코끼리는 나이가 든 코끼리라고 한다. 젊은 코끼리는 약간 위험할 수가 있다고 한다.  다음은 팡아만 국립공원, 이곳에서는 보트를 타고 주위의 경관을 둘러보았다.  둘째 날은 큰 보트를 타고 피피섬으로 향했다. 가이드에 의하면 쓰나미로 인해 한국인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약간은 무섭기도 했지만 별 탈 없기를 기도하며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피피섬에 도착해 작은 보트에 옮겨 타고 주위의 작은 섬을 구경하고 바다에서(영화 ‘비치’에서 나온 에메랄드 빛 바다) 스노클링을 했다. 명준이는 팔라우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겁도 없이 헤엄을 치며 물고기들에서 빵을 주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  마지막 날, 오전에는 리조트 내 수영장에서 일행들과 함께 즐거운 물놀이를 하였다. 함께 온 아이들이 뜻하지 않게 모두 아들이었지만 모두 어찌나 착하고 조용한지 어른들의 큰소리 한 번 없이 잘 어울렸다. 즐거운 물놀이를 마치고 짐을 챙겨 check-out을 하고 쇼핑을 하며 지인들에게 줄 선물들을 사고  그 유명하다는 태국 마사지를 받고 개운하게 푸켓공항으로 향했다.  3박5일 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며칠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니 힘이 빠진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명준이는 “ 한국은 추우니까 다시 푸켓 으로 가자”고 조르는 통에 잠깐 동안 난감했다.  열심히 일 해준 남편 덕분에 나와 아들은 오랜만에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고, 쉴 새 없이 푸켓에 대한  설명을 해준 홍성배 가이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또한 함께 간 다른 방송사 기자 가족들에게도 즐거운 여행이었길 바라며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한혜경 / YTN 이성모 기자 아내
    2008-04-29
  • 특종은 운, 그러나 운도 노력이다
    <미니인터뷰 - 삼성언론상 영상사진 부문 수상자 MBC 권혁용 기자> 특종은 운, 그러나 운도 노력이다 1. 삼성언론상 영상사진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  우선 기뻤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이랄까? 어떤 사람들의 비극이 나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데 대해 기분이 이상했다. ‘새옹지마’, ‘전화위복’, ‘전복위화’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 이는 세상만사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분들의 비극이 나에게 ‘상’이라는 것으로 다가왔다는 것은 앞에 언급했던 말들과 거리가 있지만, 나 하나만 놓고 봤을 때도 그러하다. 이런 종류의 해외 출장은 다들 꺼려하는 것 중 하나다. 그런데 내가 갈 출장도 아니었음에도 우리끼리 쓰는 말로 ‘총 맞고’ 가게 되었다. 어쨌든 가서 특종을 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다녀와서 후유증이 컸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을 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좋기만 한 일도 그렇다고 나쁘기만 한 일도 없는 것 같다.   2. 수상작에 대한 간단한 소개  지난해 6월, 캄보디아 캄포트 밀림에 승객 22명을 태운 항공기 AN-24가 추락한 사고를 취재한 리포트이다. 우리 취재진들은 27일 캄보디아 군 수색대에 의해 추락 지점이 특정되자 현지 군 헬기를 이용해 밀림을 뚫고 들어가 현장 상황을 국내외 언론사 중 가장 먼저 시청자에게 전했다. 사고 현장의 객관적 사실을 전하는 영상 외에도 한국인 희생자와 현지 교민 구조대 그리고 희생자 유품 등 희생된 한국인과 연관된 영상 위주로 취재를 해 현지 방송이나 APTN 등 외신과는 차별화된 뉴스 영상으로 국민적 관심사인 항공기 추락사고 현장을 특종 보도했다. 3. 현장을 취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글쎄,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얼른 취재해서 1보를 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이 났었던 것 같다. 그 희생자 중 우리 동료도 있지 않았던가? 그도 오랜만에 마음먹고 시간을 내어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으리라. 그러면서 나는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내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가족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언제나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나의 응원군이 되어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또 앞으로는 몸이 좀 피곤하더라도 나의 가족과 최대한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웃음) 4. 카메라기자 혹은 사진기자에게 특종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  나는 ‘특종’이 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된 것도 운이고, 거기서 군 헬기를 탄 것도 운이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다만, ‘운’이 따른다 하더라도 전혀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특종’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온 ‘행운’이 느껴졌을 때,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마냥 운이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좋은 운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5.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한 말씀  계획이랄 것이 뭐있나?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다. 영상취재2팀을 떠난 지 6개월 만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사회부 일, 다시 충실히 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다. 남들은 6개월 계획이다 1년 계획이다 세우는데 나는 계획이라는 것을 세워본 적이 없다.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되는 것이지 계획이 무슨 필요가 있나? (내가 좀 무대포 스타일이다.)  계획이라기보다 다짐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내 아이에게 하는 투자의 1/100이라도 굶고 병들고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나눠주자는 생각을 했다. 캄보디아 출장을 가서 보니 사는 것 자체가 고해인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으면 나누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캄보디아 출장은 나에게 정말 여러 가지를 느끼고 깨닫게 해주었다. 상을 타게 돼서도 그렇지만 여러 면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출장이 될 것 같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4-28
  • 이념의 벽을 넘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평양 공연를 취재하고   “이념의 벽을 넘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르릉” “평양 좀 다녀와라.” ...“네...”  말끝을 흐리며 전화를 끊는 순간 3년 전 평양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설렘과 약간의 긴장, 같은 민족 간의 동질성과 이질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인터뷰와 관광이 일정의 전부였지만 호텔 문밖조차 나가지 못하는 통제와 촬영한 화면을 지워야하는 황당함에 화가 났던 2005년의 기억. 썩 내키진 않았지만 가야했다. 가라면 갈 수 밖에...  마음이 바뀌면 행동도 변한다. 북미관계 개선을 바라는 북측의 초청에 미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뉴욕 필은 이념의 벽을 넘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의로 평양공연을 결정했다. 각국 언론들은 이를 과거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에 견주며 앞 다투어 보도했고 실제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을 예상하기도 하였다. 북핵문제와 더불어 미국과 남한의 권력구조가 변하는 시기에 열리는 이번행사는 단순한 공연이 아닌 북미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가져올 상징적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출장 팀은 한층 더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2월 23일 아침 6시 마침내 십 여대의 중계차량과 버스가 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이번 행사의 취재를 위해 보도진은 선발대로 취재기자 3명, 카메라기자와 오디오맨 2명이 육로로 방북하고 취재기자 1명과 카메라기자, 오디오맨 2명은 중국에서 뉴욕필 단원들과 함께 항공편으로 평양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북측 CIQ에 도착하니 CNN 취재팀이 우리를 취재 하기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북측의 입국수속도 예상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9시30분 개성을 지나 평양에 도착하니 12시 30분. 북녘 땅에도 따스한 봄 햇살이 겨울을 녹이고 있었고 우리를 맞는 북측 안내원들도 친절했다.  그러나 막상 취재에 들어가니 역시나 제한과 통제가 가해졌다. 매일 밤 내일 취재를 위해 북측과 협상과 실랑이를 해야 했고 당초 아무문제 없을 거라던 송출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유롭지 못했다. 별도의 취재차량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북측이 제공한 차량에 일방적인 일정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당초 기획했던 아이템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예정된 행사일정에 대한 기본적인 취재마저 쉽지 않았다.  북측의 호의적 태도를 기대했던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고 역시 북측은 당일 공연행사의 진행에만 관심이 있을 뿐 혹시라도 있을 행사에 부정적 보도를 우려한 탓인지 기자단, 특히 남측 보도진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무척 심했다. 기본적인 거리스케치도 승인받은 구간에서만 허가되었고 두세 차례에 걸친 촬영화면 검열, 기사 사전제출도 요구받았다. 취재가 끝나면 매일 밤 다음날 아이템을 논의하고 다시 북측과 취재동선과 송출시간을 협의해야 했다. 취재통제에 대한 답답함과 아쉬움이 쌓여갔지만 어떤 상황에도 뉴스는 나가야 했다.  마침내 공연 당일 평양거리는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변해있었고 우리 취재팀은 긴장하며 공연장인 동평양 대극장으로 향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남측과 북측 그리고 미국 측의 모든 스텝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취재팀은 공연장 내부 취재를 승인받질 못했다. 공연을 취재하러 와서 정작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우리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지만 북측과 미국 측이 이번 공연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했다.  마침내 한 시간 반의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은 모두 조금씩 상기되어 있었다. 입장할 때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있던 이들의 표정을 환하게 변하게 한건 무엇이었을까?    이번 뉴욕필 평양공연은 여러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들어 냈다. 단원들과 ABC, CNN등 주요 언론사 기자단, 참관인들을 포함해 269명에 달하는 미국 측 방북단은 역대 최대 규모였고 공연장인 동평양 대극장에 적대국인 북, 미 양국 국기가 내걸리고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공연내용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MBC는 남북 방송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장비와 인력을 모두 육로를 통해 이동시켰고 공연 실황은 HD화질로 조선중앙TV를 통해 북한 전역과 전 세계 15개국에 생중계 되었다. 남한의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되는 미국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는 북한 주민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이번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차량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북측 주민들. 비록 직접 그들을 만나고 취재할 순 없었지만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평양의 모습을 마음속에 담고 평양의 미국인이 아닌 자유롭게 취재하는 평양주재 기자를 꿈꿔본다. 정우영 / MBC 보도국 문화스포츠영상팀 기자
    2008-04-28
  • 숭례문의 마지막을 지키며
    <숭례문 화재 취재기 Ⅰ> 숭례문의 마지막을 지키며  우리가 하는 일,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은 마음이 굳센 사람이어야 잘 해낼 수 있는 것 같다. 대형 화재나 교통사고와 같은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현장에서도, 또 사건 유가족 취재와 같은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슬픈 현장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일 수 있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커다란 사건사고의 현장을 정신없이 취재하는 동안 마음에 슬그머니 떠오르는 생각, 내가 저 사람들의 슬픔을 이렇게 한 발 물러나서 카메라에 담고, 저렇게 안타까운 사건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내가 나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도 매순간 떠오르기 때문이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너무 큰 비약이지만, 항상 터지는 일들과 각종 사연들 속에서 냉정하고 공정하게 영상취재를 함으로써 우리의 존재가치를 종종 느끼게 되곤 하니 마음이 굳세지 않고는 자칫 회의감에 상습적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일이 바로 우리의 일이다.  설 명절의 끝자락에 주간 근무와 야근이었다. 다행히 연휴 중간에는 근무가 없었기에 고향에 다녀와서 편안한 마음으로 근무를 섰다. 연휴 마지막에 큰 사건이야 있겠냐며 뉴스를 보고 있는데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황급히 장비를 챙겨서 나가는 동안에도 숭례문 일대 어딘가에서 그리 크지 않은 불이 났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숭례문을 향해 올라가는데 정말 숭례문 지붕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어..어.. 하는 동시에 차에서 내려 현장을 영상취재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래도 그나마 연기만 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스케치를 했다. 수많은 소방차들과 소방관들이 쉬지 않고 물을 뿌렸다. 연기가 잠잠해질 즈음 숭례문 안쪽으로 소방관들이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진화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생생한 모습을 담기 위해 얼어서 미끄러운 계단을 올라가서 내부 모습을 잠시 스케치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현장이 흘러가더니 이제 불이 곧 잡힐 듯 보였다. 연기도 잦아들고 있었다. 내심 그래도 정말 이만하기를 다행이라며 이후 어떤 그림을 취재해야 좋을지 떠올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근근이 끊이지 않던 연기가 점점 심해지고 결국 크레인에 올라탄 소방관들이 숭례문 현판 앞에서 무언가 작업을 시작했다. 결국 지붕 내부에 있던 불을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숭례문의 얼굴과도 같은 현판을 보존하기 위해 떼어내기로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작업하는 소방관들과 현판을 주시했다. 크레인이 좌우로 움직이며 작업한 지 오래지 않아 곧 우당탕 소리와 함께 숭례문 현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반인들의 현장 접근을 막던 의경들도 깜짝 놀라 떨어진 현판을 쳐다봤다. 나 역시 레코딩 불빛이 들어온 뷰파인더를 보면서도 아- 하는 소리를 낮게나마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얼마 후부터 시뻘건 불길이 2층 누각 틈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낼름거리는 뱀의 혀에 비유한 불길의 모습 그대로였다. 흰 연기가 아니라 짙은 회색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외곽에서 취재를 하면서 정확한 진화 상황을 그때그때 알 수 는 없었지만 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숭례문 지붕의 구조를 당시 자세히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많은 물을 뿌려대는데도 안쪽의 불길을 잡지 못하는 모습에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 많은 소방관들의 노력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눈빛과 마음 졸이며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거센 불길은 숭례문 2층 누각을 집어삼켰다. 점점 번져가는 불길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만큼 추운 날씨였지만 이게 정말 현실에서, 내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나 하는 착각도 들었다. 한참을 타던 숭례문은 결국 한 귀퉁이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기의 얼굴 같은 현판을 떼어낸 숭례문이 힘없이 주저앉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없던 화재현장에서 숭례문 현판이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덕분에 회사에 입사한 이 후 가장 큰 칭찬을 받았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많은 선배, 후배들이 격려를 해주시기도 했다. 운이 좋았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받았음에도 현장에서 화재를 취재할 때도 회사에 들어와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움이 조금 남아 있었다. 숭례문이 전소되는 현장을 끝까지 지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뉴스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그 아픈 현장을 마음속으로만 걱정하며 지켜봐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밤 내내 나는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직분에 충실하고자 하는 단단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허무함 또한 그 안에 함께 있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슬프고 아쉽고 힘든 현장들을 취재하는 일들이 있기에 항상 마음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서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숭례문은 그렇게 아쉽게 보냈지만 그 마지막 모습을 내가 끝까지 옆에서 지켜줬다는 뿌듯한 마음 때문이다. 숭례문의 현판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비통한 모습을 나의 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동환 / SBS 영상취재팀 기자
    2008-04-28
  • 사라진 숭례문, 우리 지성의 현주소를 보여줘
    <숭례문 화재 취재기 Ⅱ> 사라진 숭례문, 우리 지성의 현주소를 보여줘  2008년 2월 10일 밤 8시 50분경. 국보 1호가 불에 타기 시작했다. 내가 숭례문 현장에 도착한 것은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2-3분 간격으로 걸려오는 전화 속 선배의 목소리는 다급함 그 자체였다. “지금 가고 있다니까요, 선배! 곧 도착할 겁니다.” 나의 이유 있는 답변은 선배를 전혀 안정시키지 못했다. 그 이유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라고 그렇지 않았을까.  옥상을 개방해준 YTN 덕분에 나는 불타는 숭례문을 공중에서 취재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한 메트로폴리탄 중의 하나인 서울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상징하고 그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상징하는 숭례문이 붉은색 망토를 뒤집어쓴 채 춤추고 있었다. 5시간이 지나서, 숭례문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치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내 가정의 처녀가, 폭군의 노리개가 되어 강제로 춤추며 흥을 돋우는 운명에 놓였다가, 삶의 모든 이유를 잃어버린 채 혀를 깨물고 바닥에 쓰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 모습은 슬펐다. 나 뿐 만아니라 불이 날 때, 그리고 불이 꺼지고 난 후 현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그 슬픔은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  민족적, 사회적 분노와 허무는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대부분 우리가 책임이 있다고 믿는 관계당국들 - 소방방재청과 서울시 중구청, 그리고 문화재청 등 - 을 향했다. 물론 그러한 책임추궁은 매우 타당하다. 그러나 주저앉은 국보가 단지 그들만의 문제라고 결론 내버린 사회적 분위기가 썩 개운치만은 않다. 오히려 숭례문 화재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축적해온 지적, 문화적 정신적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주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우리의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가 문화재청에 내준 전체 예산 규모는 4278억 원이다. 이는 정부 전체 예산의 0.19%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경우 문화재 복원비용으로만 5천 6백억 원을 쓰고 있다. 234개 지자체 중 문화재 전담부서를 두고 있는 곳은 단 4곳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의 문화재 관리는 허술했다. 그러한 관행과 현실로부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한명 한명의 시민들이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무관심하고 그 중요성을 잊고 있는 동안 우리가 보수하고 후손에 돌려줘야 할 문화는 조금씩 훼손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회를 평가할 때 국민총생산이나 무역규모, 기업의 투자 같은 것들을 손쉽게 지표로 삼지만, 그러한 것들이 한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문화 - 총체적 의미에서의 - 야말로 그 사회의 지적 성숙도, 시민의식, 정신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진정한 척도라 할 수 있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다.”는 어느 소방관의 항변은 그야말로 유아적이고 천진난만하다. 그러나 철부지 같은 한 소방관의 말에는 문화적으로 지적으로 그 깊이가 매우 얄팍한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꼬집는 것 같기도 해 씁쓸했다. 적어도 이번 화재를 통해 단지 한 단면만을 보고 또 다른 측면을 보지 못하는 눈은 정확하지 못하다.  불을 끄지 못하고 허둥대는 소방관의 모습에는 적어도 문화의 보수와 질적 성장을 외면해온 대한민국의 모습이 오버랩 돼있다. 사라진 국보는 우리 사회 지성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화재 관련 당국을 합리적으로 문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저마다의 방기된 책임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어쩌면 600년을 산 민족의 선생이 자신을 태우면서 우리에게 남기고 싶은 교훈은 아니었을까. 김정은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
    2008-04-28
  • 국보에서 잿더미로...
    <숭례문 화재 취재기 Ⅲ> 국보에서 잿더미로...  5일간의 설 연휴 마지막 날 야간근무. 요란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린 건 저녁 8시 40분경.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회사라 한밤의 사이렌소리는 그다지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날만큼은 대형화재가 났음을 감지할 정도로 요란하고 끊임이 없었다. 곧이어 울리는 전화벨은 남대문에서 연기가 난다는 한통의 전화였다.  장비를 챙겨들고 가면서도 남대문 시장 혹은 남대문 성곽 주변 잔디밭 정도가 탔으려니 했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남대문 누각에서 연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였기에 일단 9시 뉴스에 1보 화면을 쓸 수 있도록 2분가량의 현장스케치를 했고, 과욕을 부린다면 성곽 1층 내부로 접근이 가능한 정도였기에 몇 시간 후 숭례문이 붕괴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시내 전 소방서가 출동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고 불길이 점점 잡혀간다고 생각되었지만 11시경 숭례문 현판이 철거되었고 천장과 기와 사이로 희뿌연 연기가 아닌 불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길을 잡기 위해 대형 장비를 총동원했지만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고 붕괴의 조짐 속에 소방관들 역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일요일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방송을 보고 모여든 시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현장에서 추위에 떨던 동료 영상기자들도 마찬가지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새벽 1시경 2층 누각의 기왓장이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소방대원들도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한 컷 한 컷 600년의 역사가 사라짐을 취재하는 동안 숭례문의 마지막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얼어버린 발은 감각을 잃어 느낌이 없었고 마지막 붕괴로 1층 누각까지 잿더미로 변해버린 숭례문은 내 가슴마저 무너지게 하였다.  야근이 끝나고 퇴근하는 길에 다시 본 숭례문의 처참함은 취재 당시 치열하게 영상을 담으며 냉정을 잃지 않으려던 나에게 침울함마저 들게 했다. 이후 허술해서 숭례문을 골랐다는 방화범의 말은 그간 하루에도 몇 번씩 숭례문을 보며 생활했던 내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카메라기자로 살아온 5년, 수많은 취재현장에서 항상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유지하려 했지만 쉽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숭례문 취재 역시 마음의 평정을 가지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직업을 초월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북받쳐 오는 감정은 막을 길 없었다.  최근 대형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카메라기자들의 눈이 수많은 사람들의 시각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현장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진정 카메라기자의 자세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 취재였다. 이승준 /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2008-04-28
  • <추천하고픈 책>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제목 없음 미래의 삶을 위한 화두를 안고 정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이 책은 제가 대학교를 복학하기 전에 우연히 읽게 된 책입니다. 그로부터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기억 속에서 잊혀질 만도 한데 추천도서로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많은 선배님들께서 즐겨 읽으시는 협회보에 추천하기에 이 책이면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남는 여운은 결코 짧은 시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스님이 주인공인 만큼 난해하고 훈계적인 불교서적이 아닐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절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모아놓은 에피소드 집에 가깝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성철스님이 쓴 자서전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곁에서 성철스님을 시봉했던 제자 원택스님이 함께 수행하면서 겪었던 여러 일화들을 3자적 관점에서 관찰하며 써나간 책입니다. 이렇게 성철스님의 곁에서 20여 년을 시봉했던 저자의 눈을 통해 독자들에게 성철스님의 삶과 수행, 가르침과 깨달음을 전달합니다.  암자에 철망을 두르고 10년 동안 눕지도 않고 철저히 수행한 스님. 삼천 배를 하지 않으면 대통령이라고 해도 만나주지 않았던 강직하고 고집스런 스님. 이 책에서 보여주는 성철스님의 모습은 그런 외적인 부분뿐만이 아닙니다.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다양한 사진들까지 본문 사이에 실려 있어 그의 인간적인 모습까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올해로 열반에든지 8년. 하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이승을 떠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성철스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화두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깨달음은 화두를 들고 방에만 틀어 박혀 있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찰나에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수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는 여러분들도 각자 자신의 현재 삶에서, 나아가 미래의 삶을 위한 화두를 항상 안고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깨달음을 위해 항상 정진하셨으면 합니다. 강광민 / OBS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2008-04-28
  • <릴레이 인터뷰> mbn 박원용 기자
    <이어지는 인터뷰 시즌2 - mbn 보도국 영상취재부 박원용 기자> "카메라기자 모두가 '진정한 능력'을 갖기 바라며"  지난달 20일, 나는 mbn 박원용 기자와 인터뷰 약속을 하고 국회를 찾았다. 박원용 기자는 현재 국회에 출입하고 있으며, 국회 반장을 맡고 있다. 그 날 국회는 새 대통령 취임식 준비로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박원용 기자 역시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국회 정문에서 만난 박 기자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다는 말과, 부끄럽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매우 친근한 것이 슈퍼마켓 아저씨 같았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지난 인터뷰 주자인 YTN 한원상 차장이 박원용 기자를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본인의 일에 대한 ‘소신’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이어지는 인터뷰 시즌2의 바통을 넘겨받으신 소감이 어떠신지 함께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남다른 ‘소신’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소신’을 갖고 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소신은 특별히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 실천에 옮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한원상 차장이 이번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로 나를 추천했는데, 사실 매우 겸연쩍다. 내가 뭐 특별히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수상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의 귀감이 될 만큼 뛰어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이 되었다. ‘이어지는 인터뷰 시즌2’의 기획 의도가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것이어서 어찌어찌하다 보니 내가 추천이 된 것 같은데, 나 같은 사람보다는 여러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배우는 코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카메라기자로 일을 한 지 몇 년이나 되셨습니까?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카메라기자로 일을 한지 올해로 17년이 되었다. 카메라기자를 시작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17년 이라는 세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17년 이라는 시간을 지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참사’이다. 나는 성수대교가 붕괴되었을 때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현장에 취재를 갔었다. 1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곳에서 내가 촬영했던 장면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는 퇴근시간 무렵이라 차가 막혀 늦게 도착할까봐 현장에 지하철을 타고 갔다. 가보니 기가 탁 막혔다. 그 큰 백화점이, 그렇게 튼튼해 보이던 백화점이 정말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 때는 참 의욕이 대단했던 것 같다. 그 때 우리 애가 5개월 정도 되었을 때인데 겁도 없이 그 속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으니 말이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 일들을 그 때는 했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3.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이 매우 자랑스러웠을 때나 특별히 보람을 느꼈던 일이 있으시다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시청자에게 그들이 직접 보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을 때이다. 1998년, 북한이 금강산을 처음 개방했을 때, 나는 mbn 대표로 그곳 취재를 갔었다. 금강산에 도착하자마자부터 아직 금강산을 보지 못한 시청자들에게 그곳의 면면을 보여주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난다. 카메라를 들고 그 높은 봉우리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내가 촬영한 영상을 본 시청자들이 ‘금강산이 저렇게 생겼구나!’하고 감탄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카메라기자를 하면서 아마도 그때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4. 미래에 본인이 카메라기자로서 정년을 맞았을 때, 스스로 어떤 기자였다고 평가받고 싶나?  어떤 기자였다고 평가받고 싶다고 하기 보다는 특정한 뉴스를 떠올렸을 때, 나 ‘박원용’을 단박에 생각해 낼 정도로 인상적인 ‘특종’을 하고 싶다. 특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특종다운 특종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 가까이에 있는 특종’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개인적으로 여행을 갈 경우에도 캠코더를 소지하는 편이다. 내 눈 앞에서 사고가 났는데 캠코더가 없어 그것을 촬영하지 못한다면 카메라기자로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그렇게 얻은 특종, 그 뉴스로 내가 기억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5. 2008년 새해가 밝은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시다면.  올해는 열심히 공부를 해보고 싶다. 공부와 담을 쌓고 술과 친구한 세월이 길어 잘 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방송 환경이 급변하면서 새롭게 익혀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지금껏 그런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는 인터넷 송출 등 앞으로 내 업무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6.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요즘은 너무도 훌륭한 후배들이 많다. 공부도 많이 하고, 능력도 출중한데다가 다들 외모도 준수하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한참 배워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다소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후배들도 많지만, 어느 집단이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인간관계’이다. 그리고 그 역시 매우 중요한 능력으로 인정된다. 누군가가 얘기했다. ‘진정한 능력은 타인으로 하여금 본인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이라고… 후배들 모두 진정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6. 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협회에서 회원들을 위해 다양한 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중 촬영 교육이나 넌리니어 편집 교육 등 현업과 관련된 교육과 함께 은퇴 후를 대비한 교육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를 들면 재테크나 창업에 관련된 교육이 있을 수 있겠다. 나뿐만 아니라 다수의 회원들이 이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7.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를 추천해주세요.  다음 인터뷰 주자로는 SBS 김두연 차장을 추천한다. 김두연 차장은 업무 면에서도 물론 출중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진정한 능력’을 가진 분이다.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그리고 친절하게 대하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대하면 환하게 웃지 않을 수 없다. 타인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 분, 나는 그를 추천한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