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영상기자 협회보

NEWS

지속가능경영
  •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중국 지진 취재를 가서 여러 날을 머물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칭촨현에서 머물었던 하룻밤이다.  지난달 21일, 중국에 도착한 지 나흘째, 우리는 지진 피해로 고립되었던 칭촨현으로 떠났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칭촨현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가 이제야 길이 뚫렸던 것이다. 칭촨현은 청두시에서 아침 7시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3시간여를 달린 후 험난한 산길을 오르내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가는 길에 공안들의 검색은 없었다. 그러나 도로가 문제였다. 좁고 굴곡진 산길을 달리기도 아찔한데 바위를 피하고 절반이 날아간 도로를 달리려니 과격한 운전 솜씨를 자랑하던 현지 운전기사인 장 씨도 등골이 싸늘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징촨현 약 40km를 남겨둔 지점에서 산사태로 인해 길이 통제되었다. 이때 장 씨가 조심스럽게 취재진에게 말을 건넸다. “그만 돌아가는 게 어때?” 그러나 돌아갈 수는 없는 법. 다행히 기다린 지 30분 만에 도로는 뚫렸다. 굽이진 산길을 달리고 달려 저 앞에 파란색 천막 행렬이 보였다. 처참히 부서진 가옥들, 공동 급수대에서 설거지며 빨래를 하는 사람들. 눈앞의 광경은 처참했다. ‘여기가 우리가 취재해야 할 곳이구나.’  현지 농민의 안내로 언색호와 갈라진 산을 찾아갔다.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천막을 세우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너무나 외진 곳이라 이제야 천막이 지원된 것이다. 비포장 산길을 오르다 산사태가 일어난 길 앞에 차가 멈춰 섰다. 흙더미 너머로 언색호가 있다는 것이다. 무너진 흙더미를 넘어 왼쪽으로 틀자마자 긴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한 가운데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고, 맑은 물 아래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야채들이 보였다. 좁은 실개천이 산사태로 막히면서 물이 차올라 개천 양쪽의 밭을 삼켜버린 것이다. 호수를 따라 30분을 걸어 올라갔다. 그러나 호수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 계곡이 끝나는 곳이 호수의 끝이겠지.’라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언색호 촬영을 마친 시간이 오후 5시. 지금부터 산의 갈라진 틈을 찾아가야한다. 해지기 전에 내려오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현지 농민이 앞장서서 산을 올랐다. ‘카메라(PD-150)도 가벼운데 왜이래 힘들지……?’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를 안내하는 농민의 발걸음이 무지 빨랐던 것이다. 허름한 천운동화를 신었는데도 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오르던지……. 게다가 숨소리와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이들의 일상인 듯했다. 산 중턱에서 바라보니 건너편 산의 산사태와 갈라진 틈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레코드버튼을 눌렀다. 내 거친 숨소리가 녹음될 정도로 액정 화면은 위아래로 쉼 없이 움직였다. ‘젠장, 줌은 전혀 쓰지도 못하겠는데…….’ 산을 1시간 정도 오르자 발아래로 갈라진 틈이 나타난다. 팔뚝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폭에 수 미터 길이의 틈이 반복적으로 길을 따라 나있다. 여진이 있을 경우 바로 산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산을 내려갈 때까지 여진이 없기를…….’  칭촨으로 내려오는 길에 해가 저문다. 취재진은 이곳 주민들의 저녁 생활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곳 주민들에게서 받은 느낌은 여유와 인심이다.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의 대부분이 밝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카메라를 보고 모여든 주민들이 건네는 말에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은 ‘한궈(한국의 중국발음)’뿐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오~ 한궈!’ 하며 신기한 듯, 반가운 듯 마냥 웃는다. 천막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네 식구의 어머니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죽을 퍼 담는다. 취재진에게 권하는 것이다. 네 식구 먹기에도 넉넉하지 않을 식사인데도 불구하고 낯선 외국인에게 그들의 밥을 나눠준다. ‘역시 시골인심인가?’  이 외진 시골마을에서도 휴대폰은 필수품인 듯하다. 전기가 끊긴 이곳에 유일하게 전기가 지원되는 곳은 휴대폰 충전소이다. 수십 개의 휴대폰 충전기가 멀티탭에 꽂혀있다. 주민들은 도로가 끊여 갈 수 없는 가족들에게 휴대폰으로 안부를 전했다.  오늘의 취재를 마치고 취재진의 저녁시간. 칭촨에서의 하룻밤은 이곳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 민간구조대와 함께 묵게 되었다. 구조대가 마련하준 식사는 중국에 있는 열흘 동안 먹은 식사 중에 최고의 밥상이었다. 흰쌀밥에 김치, 구운 김, 꽁치찌개 등 너무 맛이 있어 밥 두 그릇에 누룽지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어버렸다. 운전사 장 씨도 꽁치찌개가 맛있었는지 무엇으로 만든 거냐며 묻는다. 텐트에서 자는 동안 두 번의 여진을 느꼈으나 너무 피곤해서인지 꿈속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 했다. 이렇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칭촨현에서의 하룻밤이 저물었다. 곽영주 기자 kwakyj@ytn.co.kr
    2008-07-04
  • “디지털이 바꿔 놓은 뉴스취재의 기록 ”
    “디지털이 바꿔 놓은 뉴스취재의 기록 ” 1. ‘디지털 뉴스 핸드북’은 어떤 책인가?  구지 정의하자면 ‘취재메뉴얼’이자 ‘디지털 길잡이’ 쯤 되겠다. 그렇다고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하시지는 말기를. 이 책 안에는 ‘디지털 방송 환경’에서 뉴스 제작에 필요한 딱 기본적인 것들만 들어있다. 기본적인 것의 기준은 내 경험을 통해 세웠다. 다시 말해 내가 LNG 시스템이나 MBC 멀티미디어 제보 시스템,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디지털 뉴스룸 구축에 참여하면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앞으로의 방송환경에 적응하면서, 장비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카메라기자’인 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유용한 정보를 정리한다면, 다른 기자들에게도 유익한 내용이 되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하면서도 유익한 책’이 되었으면 한다. 2.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몇 년 전에 신입사원을 위한 디지털 매뉴얼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알아야 하는 것은 비단 신입사원에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선배가 문제인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나오고 취재 방식도 변화하는데, 그것에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MBC 본사도 그렇지만, 이런 현상은 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한 것 같다. 이런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목적은 사내 교육용으로 디지털 취재 매뉴얼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회사나 그 외 외부 지원을 찾아 보았지만 사내외에 그런 지원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방안을 강구한 것이다. 매뉴얼의 경우 다른 것보다는 책의 형태로 만들어 지는 것이 전달 면에서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출판사의 힘을 빌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을 한 것이다. 3.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다른 것보다는 책으로 만든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사실 책을 쓰는데 걸린 시간은 약 4개월 정도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은 이유는 내가 전에 해왔던 일들의 기록 혹은 정리 성격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내가 모르는 내용이 있어 공부하며 쓰기는 했지만, 쓰는 것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커뮤니케이션북스’가 언론 분야의 서적 출간에는 가장 권위 있는 출판사이지 않나? 그런데 내가 처음 책을 쓰다 보니 요령도 없고 글 솜씨도 없어 그 출판사의 권위에 맞게 그리고 ‘책’이라는 형식에 맞추어 규격화 시키는 작업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출판사와 오고가며 수정하는 시간이 2개월, 순수하게 출판에만 걸린 시간이 2개월 정도 걸렸는데, 수정에 소요된 두 달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 너무 힘들고 지치다보니 ‘책’이 나왔을 때도 반갑다기보다는 홀가분하고, 시원하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4. MBC에서 ‘디지털’ 혹은 ‘HD’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이창훈’일 것이다. 어떻게 그런 내공을 쌓게 되었나?  카메라기자에게 영상적인 감각도 물론 중요하지만, 본인의 감각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쓰는 장비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카메라기자는 카메라라는 도구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 하에 누군가가 해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내 스스로 알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쌓이다 보니 지금에 이르게 된 것 같다. 공부를 하다 보니 더욱 관심을 갖게 됐고, 이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볼 기회도 주어졌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우선 우리 회사 선배들에게 감사하다. 선배들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또 후배들의 조언도 한 몫 했다. 함께 고민하고 공유했던 그들에게 역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5 ‘디지털’에 완전 문외한인 사람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팁을 알려준다면.  우선 겁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하다가 안 되면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이 책 안에는 기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케이블 잭에 대한 설명까지 담겨져 있다. 그런 내용까지 담은 이유는 내가 예전에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장비를 연결하고자 했던 방식이 있었는데 그것이 안 돼 애를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단자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만 있었어도 가능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다 알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부담도 갖지 마라. 조금씩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그 앎의 속도가 두 배, 네 배, 여덟 배로 빨라질 것이다. 6. 올해 특별히 세워놓으신 목표가 있으시다면.  사실 현재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이번 학기가 논문 학기이다. 논문 역시 보도영상에 관련된 내용으로 쓰고 있는데, 카메라기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영상 기법들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영상 기법들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이번 학기에는 논문을 잘 마무리해서 대학원을 졸업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자 계획이다.  하나 더 말씀드린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인 ‘디지털 뉴스룸 구축’을 성공리에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것까지 마치고 나면 2008년도 다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7. 덧붙여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마디.  이전에는 카메라기자들이 본인이 쓰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용에 대해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반면 최근에는 자기가 필요한 것들을 본인이 직접 찾아 공부해 사용하는 능동적 유저로 변해 가는 것 같다. 그렇게 했을 때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매우 크다. 개인적으로 기술 이용론자다. 보도 영상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 능동적인 유저가 됐을 때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업에 적용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카메라기자야 말로 제대로 기술에 끌려가지 않고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모든 카메라기자들이 본인이 필요한 것은 본인이 연구하고, 개발하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더욱 경쟁력 있는 기자로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7-04
  •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인터뷰 주자는 YTN 부산지국 전재영 차장이다. 전 차장은 거리상의 문제와 더불어 개인적인 사정(둘째 아이 출산 임박)으로 서면 인터뷰를 청해왔다. 이번 인터뷰는 메일로 질문을 보내고 답변을 받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럼, 이제 그를 만나보자. 1. 윤 차장이 절 ‘바다’ 라고 했다는데……  사실 너무 낯간지러운 칭찬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평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때, 그런 정도로 넓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오히려 윤 차장이 ‘바다’와 같은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 주위의 누군가가 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네요. 이제부터라도 정말 ‘바다’같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인성을 갈고(?) 닦아야겠습니다. 2. 윤 산이라는 친구는……  1994년 YTN 공채 2기로 첨 만났죠. 같이 수습생활을 하고 저는 부산지국으로, 그 친구는 인천지국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면서 가끔 만나 술도 많이 먹었죠. 그리곤 몇 년 있다가  그 친구가 당시 개국예정이던 인천방송으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윤 차장, 참 고생 많이 한 친굽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요. 다른 분들도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윤 차장이 몸담고 있던 회사가 매우 큰 시련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 와중에 자신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됩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고 시련을 잘 이겨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죠. 저는 그런 친구가 고맙기도 하고 또 존경스럽기도 하답니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글쎄요. 말 그대로 ‘일’ 에 대한 기억인데요. 2002년 4월에 부산 인근 김해의 한 야산에 중국 민항기가 추락해서 1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가 있었습니다.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는데, 그런 날씨에 사고 현장인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동안의 육체적 괴로움은 차치하고서라도, 현장에 도착한 제 시야에 들어오는 그 처참함이란… 저의 오감을 통해 전해진 것은 온통 ‘죽음’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것이 잘 잊히지 않더군요. 물론 슬픈 일을 당한 유가족의 절망에 비할 바이겠습니까 마는, 지금도 그 주변을 지날 때면 저도 모르게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4. 근무여건……  어느 회사에 계시는 분이건, 충분한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희 지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저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힘들지만 ‘재미있게’ 일을 하려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죠. 물론 생각하는 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요.   5.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실 수도 있는데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시겠지만, 내 이름을 걸고 좋은 ‘작품’ 하나 정도는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동료, 선 ? 후배들이  만들어 놓으신 좋은 작품들을 보면, ‘아, 나도 저렇게 만들고 싶다’하는 부러운 마음과 듭니다. 또 조급한 마음도 들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저 스스로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을 해야겠지요. 6. 후배들에게……  아직 후배보다 선배들이 많이 계시는 ‘연차’라서…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저 스스로 항상 다짐하는 것이 ‘열심히 배우자!’입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도둑질’만 빼고는 뭐든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직무와 연관된 것은 말할 나위가 없겠죠?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듯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방송 제작 환경에 잘 적응하고 아울러 더 큰 동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이때 배우는 것이 바로 우리 카메라기자들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라고 봅니다. 사실 저도 생각만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으니 오늘부터는 정말 열심히 배워야겠네요. 7.  다음 주자 추천……  협회 사무처장이신 MBC 정민환 차장을 추천하고 싶은데요. 사실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지만 몇 번 만나 얘기를 해본 결과,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을 보면 항상 떠올리게 되는 단어가 ‘팔방미인’입니다. 성격도 좋으시고, 능력도 출중하시고… 말 그대로 ‘만나면 좋은 친구’가 아닌가 싶네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2008-07-04
  • 카메라기자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자 특혜
    카메라기자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자 특혜  팔이 저리고,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스르르 눈이 떠지고 잠에서 깨며 눈앞에 펼쳐져 있는 책을 본 후에야 여기가 도서관인 것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점심 먹고 또 졸았네… 어제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중계를 밤새 본 까닭에 피곤함이 밀려 온 것 같았다. 졸음을 깨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뽑아서 호수 쪽 벤치로 향한다. 6월의 신록이 가득한 캠퍼스는 생동감이 넘쳐흐르지만 쳇바퀴 돌 듯 집과 도서관을 오가는 생활만 반복하는 나에게선 생동감은 찾아볼 수 없다.      ‘카메라기자가 꼭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준비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공부가 힘들다고 느껴졌다. 현직에 몸담고 있는 선배님들의 입사과정을 익히 들었고, 그러한 경험담이 나를 채찍질하기도 하지만 머릿속에 맴도는 막막함은 떨쳐 낼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순환교육을 통해 뵈었던 카메라기자 선배들의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보면서 나도 모르게 씩 웃어본다.  무작정 방송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서 대학에 들어왔지만 군대를 제대한 3학년 때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나였다. 작년 봄에 별 생각 없이 지켜보던 뉴스영상에서 '네임수퍼'란 것을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뉴스영상을 촬영, 편집하면서 객관적인 입장으로 영상을 취재하는 기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역사속의 사관. 마음에서 카메라기자에 대한 동경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방송국 공채시험 시즌이 돌아왔고 졸업을 1년 남기긴 했지만 학교 선배들이 지원할 때 경험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나도 무작정 카메라기자 시험에 도전하였다. 시험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고 스스로 위로 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얕은 시각과 부족한 독서량을 뼈저리게 느꼈고, 시험장을 나서면서 졸업 할 때까지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서 시험에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하지만 시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들을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매우 답답했다. 그 때 학교 게시판에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에서 대학생 명예기자를 뽑는다는 광고물을 보게 되었다. 순간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협회사이트에 접속해 정보를 얻게 되었다. ‘왜 진작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를 알지 못했을까?’하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다른 것보다 카메라기자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 대학생 명예기자가 되었고, 임명장을 받으러 오라는 말에 마치 뭐라도 된 냥 기쁘게 달려갔다. 내 꿈에 한발 다가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렇게 명예기자 활동이 시작되었다.  많은 카메라기자 선배님들과 명예기자 선배들과의 만남, 협회에서 주최하는 교육을 통해서 명예기자는 카메라기자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축복, 아니 특혜라고 생각했다. 꺼내든 명함을 다시 들여다보니 이러한 사실도 잊은 채 힘들어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동시에 나도 꼭 현장을 누비는 카메라기자가 되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 해본다. 오늘도 나는 ‘오늘은 어떤 주제로 논술을 써볼까? 왜 토익점수는 더 안 오르지? 내일은 무슨 책을 읽을까? ’ 등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에 감사드리며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선배님들이 안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윤성욱 / 제3기 대학생 명예 카메라기자
    2008-07-04
  •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미얀마 싸이클론 피해 취재기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싸이클론이 휩쓸고 간 미얀마. 외신을 통해 전해오는 미얀마 피해는 수 만명의 희생자를 낳으며 국제적 관심이 모아졌다. 5월 6일 갑작스런 미얀마 출장 지시를 받았다. 다음날 현지로 출발하는 일정으로 취재기자 한명과 촬영기자는 신봉승선배를 1진으로 두 명. 출발당일 아침 우리는 미얀마대사관에서 급행으로 비자를 신청했다. 보통 2박3일이 걸리지만 신청비를 더 내면 당일 오후에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20:50분 방콕을 거쳐 미얀마 양곤으로 출발...  과거 버마로 불리던 미얀마는 군부독재 국가이다. 미얀마 사람들 앞에서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은 과거 우리나라 군부독재시절의 서슬퍼런 보안사나 안기부의 악명처럼 현지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미얀마 역시 정보 분야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미얀마의 보안대 MI는 소수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얀마 사람 10명이 모여 있으면, 그 중에서 2~3명은 MI이거나 그 끄나플이라고 한다. 이런 정치적 환경을 지닌 국가로의 재난취재 출발은 조심스러움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 했다.  출발전날 외신을 통해 전해 온 미얀마공항에서 BBC기자의 추방소식은 가뜩이나 아무런 정보나 현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었다. 상황이 안 좋을수록 더욱 계획적인 준비로 대응하는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우리의 신분을 노출시킬 만한 장비(핸드마이크, 로고택, 심지어 명함까지)는 가져가지 않았다.  양곤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예상 시나리오를 짜야했다. 전날의 BBC기자 추방사건으로 외국인과 취재진에 대한 미얀마 당국의 태도를 예상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행이 아니고 개별적으로 입국한다. 모두 성공적으로 들어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호텔에서 픽업 나온 사람을 찾아라. 미입국자는 방콕에서 대기 또는 서울 복귀.  양곤공항의 분위기는 우리 스스로 위축되지만 않는다면 여느 동남아공항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모두 다행히 성공적으로 입국 후 호텔 미니밴에 올랐다. 공항에서 시내에 있는 호텔까지는 30여분 남짓. 차창 밖으로 보이는 뿌리채 뽑힌 거목들과 부서진 집들은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게 했다. 현지 국영방송인 MR TV뉴스는 온통 군부정권 장군들이 구호품을 전달하는 화면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군경의 눈을 피해 아주 조심스럽게 양곤시내 취재를 마친 우리는 자신감과 더불어 현지에 최초로 들어간 한국언론으로써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싸이클론 피해의 중심부인 미얀마 남부 이라와디 삼각주로 들어가자. 그러나 현실은 현지코디도 구할 수 없었고 도움을 구할 사람은 현지호텔의 한국인직원이 전부인 상황이었다. 이때 신봉승선배의 아이디어로 한국에 있는 ‘버마민주화동맹’이란 단체를 통해 ‘oo’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아웅산수지를 지지하는 단체의 사람을 현지코디로 구할 수 있었다. 참고로 미얀마사람들은 예명을 주로 쓴다. 이유는 이름이 길고 외국인이 따라부르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떻게 그곳으로 갈 것인가? 각 지역마다 이동 할 수 있는 미얀마의 도로는 오로지 하나. 우회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길이 막히면 돌아서 갈 길이 없다. 목적지까지의 예상시간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반정부인사들의 도움으로 차량과 현지사정에 정통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서 준비해간 라면과 생수 그리고 호텔에서 구입한 빵을 싣고 가장 피해가 크다는 이라와디 삼각주 보걸리시로 출발. 목적지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상황은 양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출발 전 서울에서 봤던 외신 화면보다 더욱 심각했다.  우려했던 대로 보걸리시 입구에서 우리는 경찰들에게 출입통제를 받았고 여러 수단(?)으로 들어가 보려 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군부정권 서열3위의 장군이 현지에 와있었다. 보걸리시 입구까지의 상황만으로도 안의 피해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추정이 가능했다. 해가 지면서 어쩔수 없이 빠뽀라는 도시로 나와 1박을 했다. 다음날 수소문 끝에 또 다른 피해 지역인 꽁창곤시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현지취재가 가능할지 긴장감 속에 도착한 마을은 취재 이전에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 질 수 있는지,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을 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이 나약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라와디 삼각주 취재를 마치고 양곤으로 돌아오는 길은 촬영기자로, 그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취재기간 동안 라면 한 끼와 빵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운 것을 마치 훈장처럼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많은 천연자원과 동방의 정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나라 미얀마. 싸이클론 피해의 현장에서 숨쉬고, 보고, 느꼈던 KBS 촬영기자로서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상민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
    2008-06-26
  • <줌인> 취재 시 안전사고 예방할 수 있다
    취재 시 안전사고 예방할 수 있다  지난달 27일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취재하던 일간지 사진기자가 환영, 반대 시위대간의 충돌도중 날아온 각목에 맞아 이마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는 일이 있었다. 집회나 시위도중 폭력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취재를 나가는 기자들이 안전장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폭력시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만 안전모와 협회에서 나눠준 프레스용 완장을 갖춰 취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안전사고는 안전장비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현장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취재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안전장비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위험에 노출된 채로 취재를 하게 된다. 이럴 때 안전에만 신경을 쓰게 되면 생생한 현장을 잡아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  각종 사고나 화재 등의 현장에서도 안전장비를 갖추는데 소홀히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 터널에서 차량화재로 터널내부에 유독성 연기가 자욱한 상황이었지만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들 대부분이 안전마스크를 준비하지 않아서 호흡기를 혹사시키면서 취재를 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한다. 또한 유독가스로 인한 사망사고 현장에서 숨을 참고 촬영하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호흡기만을 보호할 수 있는 마스크뿐만 아니라 시야를 확보하면서 유독가스로부터 호흡기와 눈을 보호할 수 있는 방연마스크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취재인원에 맞춰 장비도 갖춰지지 못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다보니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수량도 턱없이 모자라기도 하고 파손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장비담당자가 취재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취재 중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비키트를 개발하고 날로 새로워지는 안전장비를 수시로 교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취재 중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안전장비는 장비담당자에게 요구해서 키트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전장비키트가 마련된 후 개별적으로 관리를 하거나 취재차량에 비치해 두면 언제어디서든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준비는 마친 셈이다.  안전장비를 갖춘다고 해서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취재현장에서 안전장비가 없어 머뭇머뭇하는 사이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릴 확률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2008-06-26
  • 삼성특검을 계기로 본 포토라인, "협력과 신뢰가 중요"
    삼성특검을 계기로 본 포토라인 단상(短想) “각 기자들 간의 협력과 신뢰가 중요해”  긴 시간 삼성특검을 취재하면서 지루하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막상 끝내고 글을 쓰려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단조로운 일상도 있었고 하루가 힘들 정도로 격렬한 날도 있어서 시간에 관한 복잡한 심경을 느끼기도 한 기간이었습니다.  우선 삼성특검(이하 특검)을 출입하는 각사 카메라기자들의 간사를 맡아 느낀 포토라인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해 볼까합니다.   포토라인과 각종 매체의 카메라로 복잡했던 특검 로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이며 세계적인 그룹인 삼성 그룹의 비리를 조사하는 특검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이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좁은 로비에 각종 매체에서 온 다양한 장비들로 사람도 통행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럴 때 정렬된 라인 뒤에서 질서 있게 취재하지 않으면 혼란이 극에 달해 취재는 취재대로 하지 못하고 기자간의 몸싸움으로 감정이 상하는 등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포토라인의 필요성이 강하게 필요한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포토라인을 정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선 방송카메라 기자들처럼 상주하는 기자들의 경우는 그래도 기득권(?)이 있었지만 중계카메라나 사진기자들이 경우는 먼저 오는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늦게 오는 기자들은 포토라인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방송은 2개사끼리 서로 풀을 하고 자리가 좋은 사진기자가 타사에 사진을 풀 해주는 등 서로간의 노력으로 혼란을 피하고 포토라인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별탈 없이 취재가 잘 끝난 것은 카메라, 사진, 인터넷 기자들 간의 협력으로 잘 조율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상적인 ‘카메라 존’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되어오고 있지만, 이번 삼성특검처럼 먼저 오는 순서대로 자리가 정해지는 포토라인 유지의 핵심은 상호간의 신뢰인 것 같습니다.  늦게 오는 경우 맘이 급한 것은 알겠는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라인 바로 앞에 놓인 방송 트라이포트 밑에 앉겠다고 하는 사진 기자들이 그런 경우인데 한 명의 사진 기자가 앉으면 다음, 다음으로 계속 이어져서 결국엔 통제가 될 수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간사 간에 조율이 중요한데, 특검의 경우에는 비교적 합의가 잘 이루어져서 포토라인의 유지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결국엔 서로간의 협력과 신뢰가 포토라인 유지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포토라인의 유지가 깨진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이건희 회장의 1,2차 소환 조사 후 귀가 때와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소환 때였습니다. 홍 사장의 귀가 때는 어처구니없게도 같은 직종군의 기자가 본인이 만들어 놓은 포토라인을 지키라며 취재를 방해한 경우였는데 아무리 충성심이 높아도 지켜야 될 것이 있는데 허탈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만 다음에 이런 경우가 있다면 미리 조심하고 잘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다음 경우는 카메라기자들의 포토라인 이탈로 생긴 일이 아니고 취재기자들의 과잉 취재로 생긴 일이였습니다. 보통 때는 취재기자 3명이서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들고 포토라인 안에서 정리가 됐는데 이건희 회장 소환 같은 큰 상황에서는 그 것이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조사 받고 나오는 이 회장에 대한 취재 열기는 이해가 되지만 카메라 기자들이 포토라인 밖에서 질서를 지키고 있는데 안에서 무너뜨려 현장이 엉망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매체의 수가 과거에 비해 많아지고 촬영, 오디오기기도 아주 소형화된 지금 취재기자들의 움직임도 포토라인 안에서 강한 조치로 해결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정리하면 지난 여러 일 동안 삼성 특검에서 포토라인에 관해 느낀 점을 언급한다면 각각 기자들 간에 협력과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 민 /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2008-06-26
  • 대전MBC 카메라취재부가 기술국 영상제작부로 통합되는 어이없는 일이
    “안정적이고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 대전MBC 카메라취재부, 기술국 영상제작부로 통합되는 어이없는 일이  부에 대한 욕망과 본능으로 치러진 이번 대선과 총선의 결과가 신자유주의자들의 압승으로 나타났고, 그로인해 노동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타나났는가? 진중권 씨는 이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것을 개혁과 진보의 수사로 치장했다. 그러다 보니 판단에 혼란이 생겨, 대중들은 자신의 삶이 어려워진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탓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표방하던 개혁과 진보의 가치 때문이라고 믿어버리게 됐다. 한나라당에는 이런 애매모호함이 없다. 그것이 그들의 장점이다. 그들은 선명하고 화끈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걺으로써 혼란이 빠진 대중의 욕망을 사로잡아 버렸다. 결국 잘 먹고 잘살자는 욕망이 문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문제에서도 이런 혼란은 이어져 정규직은 자신의 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비정규직은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됐을 때 자신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20대 비정규직과 40대 정규직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한나라당’이라는 합의에 도달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현 정권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생각 자체가 없는 듯하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들의 구조개혁과 더불어 비정규직 고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이들 비정규직의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의 중심에 놓여왔다. 실제 비정규직 및 취약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사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이들 비정규직의 임금과 복지수준이 정규직의 절반에 그치는 매우 열악한 고용조건 역시 그들이 감수해야할 부분이었다. 더욱이 대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관계법과 사회복지로부터 배제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노동시장은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이중적 고용관행이 고착화 되어 있는 가운데 이들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 그리고 사회적 배제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사회에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보수의 광풍 속에서 비정규직들은 자신과 열정을 잃어가고 있다. 또한 성장과 집중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자본의 욕구가 분배와 균형의 논리를 압도해 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원론적으로 성장과 분배의 균형적 발전을 이야기하지만 본심에 드러나는 징후들 속에는 아주 거친 성장주의다. 이런 신자유주의자들이 모인 이명박 정권의 극단적 시장주의는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서두가 너무 장황했다.  이와 같은 현실인식은 대전MBC 카메라기자들에게도 예외 일 수 없다. 9명 총원에 6명이 비정규직인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10여 년 동안을 개선하겠다는 회사의 거짓 약속만 믿고 버텨온 힘없는 노동자인 것이다. 회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법망을 피하며 계약을 연장하다 노동법이 적용되는(300명 이하 사업장) 올해가 되서 고작 한다는 것이 ‘효율성 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인원을 축소하고 조직을 개편한 것’이다. 이 결과 보도국 카메라취재부가 사라지고 기술국 영상제작부로 통합되었다. 조직적인 측면에서도 비정규직이 많은 부서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가없다. 회사 내에서도 2등 국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정규직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권리는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카메라기자도 방송의 근간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생산자이며 이런 생산자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투쟁과 물샐 틈 없는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앞선 구조를 가진 방송국 선배들이나 후배들의 경우도 사회적 힘과 발언권을 이용해 자신들이 앞으로 겪을지도 모를 불합리한 처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한다.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비정규직 스텝들과 연대해 발언권과 사회적 정당성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힘을 모아 비정규직 카메라기자들이 노력한 만큼 정당한 평가와 가치에 대한 주장을 한다면, 그래서 영상뉴스의 중요성과 역사의식을 가진 카메라기자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방송 시스템 개선의 토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가 겪었던 불합리함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들이 회사 사장에게 보낸 성명서를 소개하며 끝을 맺겠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안정적이고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뿐이다. 우리가 신임사장이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혹시나’하는 바람이 ‘역시나’하는 실망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 훈 / 대전MBC 기술국 영상제작부 기자
    2008-06-26
  • 기대와 고통과 깨달음의 과정을 겪고 나서
    제목 없음 기대와 고통과 깨달음의 과정을 겪고 나서 첫날! 너무도 힘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는 게 없으니 아무것도 안보이고 답답하고 스스로 한심한 생각만 들었다. 내용을 모르니 재미도 없고, 컨벤션 센터는 너무 넓어 다리만 아프고… 괜히 Sony랑 Panasonic만 들어가서는 이것 저것 사진 찍고 자료 찾고… 사실 그 부스에 있는 것들은 서울에서도 자주 보는 것들이고 그래서 대부분 너무 익숙한 것들이었다. 굳이 라스베가스까지 가서 봐야 하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는 것이 없으니 그렇게 조금이라도 익숙한 곳으로 숨어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었나 보다. 바보 같은 날이었다. 같이 다닌 선배는 왜 그렇게 아는 게 많은 지, 난 회사 이름도 처음 듣는데 그 선배는 각 회사의 특징 및 대표 브랜드까지 다 꿰고 있다. 자괴감, 피로감, 열등감 3감의 하루였다. 다음날. 일단 마음을 비웠다. 부담도 지우고, 놀 생각도 지우고, 그냥 느끼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들 그냥 궁금해 보이는 것들에 다가가기로 했다. 아직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무선으로 찍은 영상이 바로 전송되는 무선 카메라, 필터 없이 색 온도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라이트, 현장에서 취재한 데이터를 다양한 포맷으로 현장에서 저장하는 소형 필드 레코더, 헬리콥터를 닮은 플라잉 캠과 로보트와 카메라를 접목한 Cambotics, Ultra 3D HD TV 등 많은 것들이 하나 둘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흥미로워질수록 사람들은 친절해졌다.   “Hi… I’m a Korean video journalist… Wow… this is great! Could you explain more detail…” 안 되는 영어로 천천히 관심을 보이면 반응은 하나같다. “Sure, come on… this is…” 하면서 이리 저리 보여주면서 아주 신이 난다. 그 사람도 나도 모두 말이다.   난 라스베가스 NAB에 견학 온 대한민국 방송국에서 일하는 6년 차 카메라기자다. 내가 무슨 IPTV의 미래나 HD 방송의 Total Solution을 이해하고 방송 기술의 첨병으로 한국 방송 발전에 큰 몫을 하려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소박하고 성실하게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이렇게 좋은 경험의 기회를 준 협회 회원들에게 내가 느낀 것을 함께 나누면 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씩 컨벤션 센터를 돌아다니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번 컨벤션의 주제는 “Where content comes to life” 였다. “컨텐츠가 삶이 되는 곳”이라.. 아마도 이번 컨벤션에서 선보인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 같다. 즉 우리 삶에 아주 가깝고 편리하게 이제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미래 기술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이미 충분히 발전한 기술을 삶과 접목하느냐가 화두였던 것이다.    중요한 건 상상력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Day Light 필터가 필요 없이 색 온도가 조절되는 LED 라이트나 지금은 너무도 큰 라이트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는 소형 배터리… 혹은 가벼운 스테디 캠이나 미니 크레인 등등 우리가 취재 현장에서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들을 상상하면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문제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상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평가하는 소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연수는 기대와 고통과 깨달음의 과정이었다. 처음 협회에서 라스베가스 연수를 가라는 말에 얼마나 들뜨고 기뻤던지 하지만 회사에서는 과거와 달리 놀지 말고 공부하는 연수를 해보라고 부담을 주기 시작 했고, 현장에 도착해서는 그 커다란 컨벤션 홀에서 혼자 버려진 듯한 고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현장에 문을 두드리면서 새로운 세상의 문이 조금은 열린 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연수를 다녀와 1주일 동안 무슨 고시공부 하는 학생처럼 공부를 했다. 회사에서 연수 보고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가나다를 처음 배우는 것처럼 부끄러움을 버리고 솔직하게 공부를 했다. 선배들에게 지겹도록 전화해서 묻고 또 묻고 1080p와 1080i에서 p는 뭐고 i는 뭔지 에서부터 자료에 나온 단어 하나 하나의 뜻을 찾아 가면서 그렇게 1주일을 공부하고 연수 보고 발표를 했다. 물론 발표 내용은 연수를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수준에 그쳤지만 그 준비 기간만큼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카메라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쓰고 있는 장비, 또 내가 앞으로 쓸 장비와 그 장비의 메커니즘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했던가에 대한 반성. 장비 전시회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어려운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에 오히려 귀 기울여주는 곳이라는 인식의 변화. 부끄러움에서 시작했지만 구석으로 숨어들어가지 않고 한번 도전해 본 2주일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거품 없이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 바로 그것이다. 정상보 기자 justice@sbs.co.kr
    2008-06-26